우연히 보는데, 사장님이 다른 막걸리는 90%가 밀가루로 만든다고 하시길레. 그래서 집에있는 막걸리 보니까 재료가 쌀이네요. 밀가루로 막걸리 만들던건 옛날 얘기고 지금은 모두 쌀로 만드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그말 듣고 놀랐습니다. 어쨌건 가짜뉴스 하면 안됩니다. 부자되세요!
오바이십니다. 지금 해창막걸리 마시고 있지만 저와는 맞지 않네요. 너무 걸죽해서 금방 배불러버리네요. 저는 그냥 서울 장수막걸리가 딱입니다. 아! 진천의 덕산주조 막거리가 제 인생 막걸리네요. 예전에 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행사만 하면 덕산주조 막걸리를 말통으로 받아서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산주조는 허영만 식객에도 나오죠.
사장님 배가 예전보다 홀쭉 해지셨네요 ㅎㅎ 10년 전부터 단골 지금은 해남농협에서 6도 사가지고 가서 주조장 가본지 오랜된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시음을 안해서 사장님이 반가워하고 술도 잘 챙겨주셨는데 시음하니 조만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예전에 시음한 보리소주 전통주는 완성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사장님 술 조금만 드시고 건강하세요 해창 사장님 엄청 말술입니다 예전에 같이 대작하여 죽을뻔했습니다 ㅎㅎ
명주의 기준은 예술과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신명은 올리되 자연물에 가까워 과음되지 아니하며 견공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해창 6도가 9도, 12도 대비하여 훨씬 품이 높고 일정한 취기로 과하지 않은 흥과 대화를 이끌게 함에 무척 놀랐던 해창 6도와의 첫대면 기억이 새롭습니다\(^_^)/
해창리 인근소재했던 삼화초는 1950년 6월 삼산 원진리 수림마을에 삼화국민학교라는 명칭으로 개교해 1984년 병설유치원을 개설했다. 1996년 3월 삼화초등학교로 개명한 후 2000년 9월 학생수의 급감으로 삼산초등학교 삼화분교로 격하됐다가 2002년 3월 삼산초등학교에 통합되기까지 47회 26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해창리 한 마을 친구들이 매년 50명이상 입학함. 거의 1개반 구성
해남해창이 고향인 사람들이여!!! 어릴적 술도개집 지나 삼화국교 다니면서 밀가루로 빚은 술밥 냄새에 콧구멍 만족으로 만 행복했던 7,80년대. 가을엔 솔도개집 사방이 탱자나무 울타리에 열린 누런색 탱자를 막대기로 떨어뜨려 걸 먹거나 축구공 대신 그걸 공놀이 했지. 노란색 알루미늄 주전자로 부모님 심부름 하거나, 마을 전화기 귀할때 술도개집에서 손잡이 회전식 검정전화기 사용하단 시절... 지금은 없어진 텃밭, 정원내 연못과 어우러진 누워 자라던 소나무 등.. .. 이 어찌 추억이 깃든 그 옛날을 그리워하지 않을수없지않는가. 해창 울대미, 알대미.. 동쪽, 서쪽, 가운데 길 소재 우물샘, 우굴 샘.. 고천암 간척지 공사 준공 완료로 우리고향은 해싱교통로 요충지 역할을 상실했지. 주황색 선체 색깔의 200톤급 대한통운배가 드나들던 산창가. 정부 도정공장이 있던 배과장 운영 정미소. 그 넓던 염전... 향수에 젖어 눈물이 앞가리네.
적산가옥과 일본식 정원 그리고 해창막걸리의 역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1899~1985)가 정미소를 건립하고 1927년부터 본격 운영했다. 해방이 되자 시바타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해남 삼화초등학교 설립자인 장남문씨가 이곳에서 거주하며 주조장을 운영했다. 이후에는 황의권씨가 인수해 3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오대표 부부에게 넘겼다. 주조장과 그 주변에서는 당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정원 한구석 나무 아래 놓인 비석은 이곳이 제물포조약 당시 조선 대표였던 백파 신헌구(1823∼1902) 선생이 살던 집터였음을 보여준다. 암행어사로 5년간 해남에 머물렀던 그가 한양으로 떠나면서 전답을 마을에 기부하자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다. 일제강점기 상흔도 남아 있다. 황국 신민 서사비는 13년 전 주조장을 인수한 오 대표가 정원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1930년대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암송을 강요한 일종의 맹세문이다. 비석 옆 안내판에는 '한국과 일본 간에 있었던 뼈아픈 과거사를 삭여 놓은 생생한 역사적 유물을 다 같이 반성하고 참회하는 교육의 지표로 삼기 위해 마당에 보존, 전시한다'고 적혀 있다.
해창 막걸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1923년 일본인 시코타 히코헤이가 이곳에 정미소를 지어 도정한 쌀로 정종을 만들면서 해창 주조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어 직원으로 일했던 장남문 씨가 불하 받아 해창의 2대 주인이 되었고 장남문 씨는 돈도 많이 벌어 해남 삼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양조업에 종사하던 황의권 씨가 인수해 30년을 술을 빚어오다 대를 이어갈 형편이 못돼 이곳을 자주 찾던 오 씨 부부와 인연이 되어 해창의 지금이 있게 됐다. 오 씨 부부는 그길로 가양주 대가인 박록담 씨와 배상면주가의 창업주 배상면 씨를 통해 전통 막걸리의 제조법을 전수받고 다양한 주조법까지 배운 뒤 해창 막걸리 살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삼촌포 명: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개설] 삼촌포(三村浦)는 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인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는 오래된 포구이다. 해진군(海珍郡)의 관문이자 병선(당시 군함 선박)들의 정박처였고,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항구였다. 진도가 섬으로 옮겨 간 이후에는 진도군과 소통로 역할을 하였다. [명칭 유래] 조선시대 해남에 들어와 있던 진도군 삼촌면과 진도군 사이를 연결하는 포구였으므로 삼촌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해진군은 1409년 해남과 진도를 병합한 옛 고을명 이다. 1409년 진도군이 영암군 시종면에서 삼촌면으로 옮겨 오고, 1412년에는 해남현도 현산면 고현에서 삼산면 녹산역 인근으로 옮겨왔다. 이때 삼촌포는 해진군의 관문이었다. 1437년 해남과 진도가 나뉘어 진도가 읍치를 섬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에 속했다. 이때 삼촌포는 진도와 해남을 연결되는 소통로 구실을 하였다. 삼촌면은 지금 해남군 삼산면의 일부이며 감당, 도토, 목신, 상금, 송정, 용두, 창리, 항리[해남군 삼산면 신흥리 감당마을, 신흥리 상금마을, 송정리 도토마을, 송정리 송정마을, 원진리 목신마을, 창리 용두마을|창리 창리마을] 등 13개 마을이다. 삼촌포에는 어란의 병선들이 정박하였다. 중선 4척과 군사 480명과 뱃사공 4명을 거느렸다 [領中船四艘, 軍四百八十名, 梢工四名]. 15세기 중반 무렵이 되어 병선들은 섬으로 옮겨갔다. 1906년 삼촌면이 해남과 합병되자 진도와 통하였던 삼촌포의 기능도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화산면 고천암 방조제 공사로 바닷물이 차단되어 포구의 기능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조에 “어란(於蘭)은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있다[於蘭 在海珍郡南三寸浦].”라고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해남읍지(海南邑誌)』에서는 “현 남쪽 20리[약 7.85㎞]의 진도와 경계에 있다[三寸浦在縣南二十里珍島郡界].”라고 하였다. 고어란이 해남현에서 남쪽으로 25리[약 9.82㎞]가 떨어져 있었으므로 삼촌포는 상류인 해창리 인근으로 추정된다. 어성포는 삼촌포 상류에 있고 인근에 해창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우연히 보는데, 사장님이 다른 막걸리는 90%가 밀가루로 만든다고 하시길레. 그래서 집에있는 막걸리 보니까 재료가 쌀이네요. 밀가루로 막걸리 만들던건 옛날 얘기고 지금은 모두 쌀로 만드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그말 듣고 놀랐습니다. 어쨌건 가짜뉴스 하면 안됩니다. 부자되세요!
차에 비유하자면 쏘나타를 제네시스g80, 롤스로이스 가격에 파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영업이익률이 엄청남 ㅋㅋ. 판매전략 대단합니다.
오바이십니다. 지금 해창막걸리 마시고 있지만 저와는 맞지 않네요. 너무 걸죽해서 금방 배불러버리네요. 저는 그냥 서울 장수막걸리가 딱입니다. 아! 진천의 덕산주조 막거리가 제 인생 막걸리네요. 예전에 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행사만 하면 덕산주조 막걸리를 말통으로 받아서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산주조는 허영만 식객에도 나오죠.
사장님 배가 예전보다 홀쭉 해지셨네요 ㅎㅎ 10년 전부터 단골 지금은 해남농협에서 6도 사가지고 가서 주조장 가본지 오랜된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시음을 안해서 사장님이 반가워하고 술도 잘 챙겨주셨는데 시음하니 조만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예전에 시음한 보리소주 전통주는 완성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사장님 술 조금만 드시고 건강하세요 해창 사장님 엄청 말술입니다 예전에 같이 대작하여 죽을뻔했습니다 ㅎㅎ
막걸리 배우고싶음. 공장 해보고 싶네
한김에 막걸리 식초 공장도 해 보고싶음
대표님이 인성이 좋아보이시네요 돈받이 버세요
오늘 CU편의점에서 백막걸리를 사다 먹었는데 괜찮던데요.. 순 물.찹쌀.누룩만으로 담은술이라 4.000원정도 하더라구요..
백걸리가 끝맛이 엿기름맛이 나는게 해창이랑 느낌이 비슷하긴해요 근데이거 너무 취향타는듯
백걸리보단 느린마을이 더 맛있는 사람은
해창보단 우곡생주나 담은막걸리가 나음..
좋은 막걸리 만들어주시어 고맙습니다 ♡
해창막걸리응원합니다
사장님 손목에 파네라이 골드가 똭!!!!!강렬하네요
드디어 해창 주조장에서 증류주를 만드시는군요. 원주가 훌륭하니 대단한 작품이 되겠내요.
고운정이죠
막걸른 막주가 이리 비싼가요??증류도 하지않아서 한계가 분명 있을거 같은데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주세는좀 떨어졌는지?
막걸리 좋아하시면 한번쯤은 먹어볼만 합니다. 저는 12도 짜리 먹어봤는데 걸죽하니 다른 막걸리와 차원이 다른듯..
😅
ㅉ
프라이드가 대단하심 해창과 나머지막걸리~~❤
최고다
참좋타
비싼 이유가 있었네요..
넘 비싸서 선뜻 손이 안갔는데 함 마셔봐야 겠습니다..
맛은 있습니다! 근데 개인적으로 저 가격에 또 사서 먹기는 망설여지더군요. 첫 병이 마지막 병이 될듯 싶습니다. 차라리 저한텐 저 돈으로 맥주를 더 사서 마시는 게 만족도가 높음!
용인공세동 양조장막걸리가 단술이잘되는것이다,,,10리터에 9000원이고 참맛이있다 냉장고문에 페트병으로 넣어두면 폭발한다,,,
50,60,70년도까지 막거리맛 👍 최고😂
70년대 막걸리는 전부 밀가루 막걸리였어요. 60년대껀 안먹어부ㅏ서 모르겠고,
70년대 막걸리가 맛맀었다는건 저도 인정 ㅎㅎ
명주의 기준은 예술과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신명은 올리되 자연물에 가까워 과음되지 아니하며 견공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해창 6도가 9도, 12도 대비하여 훨씬 품이 높고 일정한 취기로 과하지 않은 흥과 대화를 이끌게 함에 무척 놀랐던 해창 6도와의 첫대면 기억이 새롭습니다\(^_^)/
막걸리가격은?
어떤 제품이든 오너가 이분 정도의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막걸리 찍끅이 💦 물타서 마쉬며 째리서 홍콩감😂맛 죽이주고👍😅
저는 양조장에 직접 가서 사서 먹었는데, 지금까지 마셔본 막걸리하고 차원이 달맀어요. 그런데 이틀 놓아두니, 막걸리가 걸죽해지면 맛이 떨어지는것 같더라구요.
어떤 막걸리던 양조장에서 갓나온 막걸리가 제일 맛있어요
지금 마시고 있는데 진짜 너무 맛있어요!! 좋은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3:54 막걸리 재료를 좋은걸 쓰신듯.. 맛이 궁금.. 이마트가면 찾아봐야겠네요
차원이 다릅니다
싸게판매할쑤 업나요 예 비싸요 외이러계비싸요
저두 머거본 먹걸리중이 젤루 깔끔허고 마시고 시원달콤한 막걸리여유 해남이 해창막걸리 쵝오여라 ~쵝오 강력추천합니다 강추 강~추😂😂😂
예전에 전라도 광주 태생으로 어떤 형님을 알게 되었었는데 그 분은 현미로만 감미료 없는 막걸리를 만드시던 분이셨는데 저는 그 막걸리가 참으로 좋았었는데.. 그 막걸리로 천연 식초도 같이 만들고.. 지금은 망했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안타깝...
사장님이 자부심이 철철 흐르네 , 화면으로도...
막걸리에 제발 아스파탐 좀 넣지말아주세요
막걸리에 닭도리탕이라,,,, 막걸리에 굵비,,,,막걸리에 간고등어,,,막걸리어 마라탕,,,,
진해 벚꽃 막걸리 제일 맛있어요
해창 응원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부정적인 사람들 의견 흘려들으시고 좋은 막걸리 계속 만들어주세요.
해남좋아합니다
난 해창 별로..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난 걸죽한 막거리는 별로.. 가벼운 거이 좋더라고. 나루 대대포 담은 등등
이거 진짜 마셔보세요 완전 찐~~~~함 맛있음
내가 둘어본촤고의 형님이시다
이재용막걸리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해창리 인근소재했던 삼화초는 1950년 6월 삼산 원진리 수림마을에 삼화국민학교라는 명칭으로 개교해 1984년 병설유치원을 개설했다.
1996년 3월 삼화초등학교로 개명한 후 2000년 9월 학생수의 급감으로 삼산초등학교 삼화분교로 격하됐다가 2002년 3월 삼산초등학교에 통합되기까지 47회 26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해창리 한 마을 친구들이
매년 50명이상 입학함.
거의 1개반 구성
해남해창이 고향인 사람들이여!!!
어릴적 술도개집 지나 삼화국교 다니면서 밀가루로 빚은 술밥 냄새에 콧구멍 만족으로
만 행복했던 7,80년대.
가을엔 솔도개집 사방이 탱자나무 울타리에 열린
누런색 탱자를 막대기로
떨어뜨려 걸 먹거나 축구공 대신 그걸 공놀이 했지.
노란색 알루미늄 주전자로 부모님 심부름 하거나, 마을 전화기 귀할때 술도개집에서 손잡이 회전식 검정전화기 사용하단 시절...
지금은 없어진 텃밭, 정원내 연못과 어우러진
누워 자라던 소나무 등..
..
이 어찌 추억이 깃든 그 옛날을 그리워하지 않을수없지않는가.
해창 울대미, 알대미..
동쪽, 서쪽, 가운데 길 소재 우물샘, 우굴 샘..
고천암 간척지 공사 준공 완료로 우리고향은 해싱교통로 요충지 역할을 상실했지.
주황색 선체 색깔의 200톤급 대한통운배가 드나들던 산창가.
정부 도정공장이 있던
배과장 운영 정미소.
그 넓던 염전...
향수에 젖어
눈물이 앞가리네.
만드는 과정을 보여줘야지
막걸리 즐겨 마시는데요. 해창막걸리 맛보고 싶습니다.전남 어디로 가야되나요?
전남 해남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조장 주소는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1 입니다.
전국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단술이잘되는것이 진짜막걸리다
상주 은자막걸리 천원 잊지못하는 서민주.
해창 막걸리 가격대가 있는이유가 있었네요.
진짜 쌀로 만드니 밀로만든 짝퉁 막걸리랑은 다르죠
요즘은 다쌀로만듭니다. 일반막걸리주조장에서는 의무적으로 오래보관한정부미를 매입해서 막걸리만들어야되죠. 비싼이유는 아무래도 12도 맞추려면 물을 덜타야될거고 정부미가 아닌 비싼 쌀값도 란 이유겠죠.
10만원이 넘는 막걸리 부담은되죠
我的故郷是 海南郡花山面海倉里.
海倉酒造場是最初清酒製造
解放以後 小麦濁酒生産
2008年以降 精米製造
濁酒轉換
社長 呉炳仁 氏 !
한번 먹어보고 안 먹어요.
맛 그저고 비싸요.
솔직히.
막걸리가 서민의 술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아무리 비싸도 살 사람은 있게 마련. 최고의 술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높게 평가할만 합니다.
쌀이 30가마니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막걸리는 좋은데
모양이 저질이야
무슨 20만원짜리 공병이 플라스틱이냐
20만원 짜리 술사면 유리잔 까지 주는데
놋그릇은 줘야지 개똥술
적산가옥과 일본식 정원 그리고 해창막걸리의 역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1899~1985)가 정미소를 건립하고 1927년부터 본격 운영했다. 해방이 되자 시바타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해남 삼화초등학교 설립자인 장남문씨가 이곳에서 거주하며 주조장을 운영했다. 이후에는 황의권씨가 인수해 3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오대표 부부에게 넘겼다.
주조장과 그 주변에서는 당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정원 한구석 나무 아래 놓인 비석은 이곳이 제물포조약 당시 조선 대표였던 백파 신헌구(1823∼1902) 선생이 살던 집터였음을 보여준다. 암행어사로 5년간 해남에 머물렀던 그가 한양으로 떠나면서 전답을 마을에 기부하자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다.
일제강점기 상흔도 남아 있다. 황국 신민 서사비는 13년 전 주조장을 인수한 오 대표가 정원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1930년대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암송을 강요한 일종의 맹세문이다. 비석 옆 안내판에는 '한국과 일본 간에 있었던 뼈아픈 과거사를 삭여 놓은 생생한 역사적 유물을 다 같이 반성하고 참회하는 교육의 지표로 삼기 위해 마당에 보존, 전시한다'고 적혀 있다.
그저과댜포장선전자랑거린지그저기자와미춘대화밬에는소비자한테 안드는재료와과정등을자세하게보도해야하는것이당연지사
3:18 막걸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부자를 위한 술인데
과연 부자가 먹을 라나?
얼마전 복*도가 라는 회사 막걸리 큰맘먹고12000원 주고 샀구만 진한사카린맛 얼마나 단지 식껍. 못먹고 다버렸다는 ㅠㅠ
백년의 역사로 생산은 현대식 작업은 몸종으로 이런 업장에 최근까지 지게차 한데 업이 작업한데는데 이게 깊은맛이고 단맛입니까~
좋은 막걸리 감미료 안쓴막걸리
개인적으로 막걸리 는 부산 금정산 막걸리 가 최고라고 봄
해창렬막걸리
솔직히 사장님이 댓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막걸리는 서민의 술인데. 아무리 좋은 원료로 썼다고 하더라도 가격을 십 만원대 이상으로 올린다는 건 소비자 심리를 부추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증류주도 아니고. ㅎ ㅎ그냥 12도 먹읍시다 비슷해요
82도 짜리 술은 감기에 상비약으로 집에 사둬야겠습니다.
막걸리는 10일 지나면 버려야합니다
술은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데 몸이 아플 때 상비약으로 먹는 것만큼 미련한 것이 없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 좋아요
ㅋㅋ
막걸리가 왜 막걸리지??
나는 해창 막걸리 3병 마실 돈으로 면세점에 가서 조니워커 블루 마실랍니다.
다른 막걸리 서운하겠네요
해창 막걸리
네 비싸서 안먹어요
토속 막걸리 하
그렇게 막 맛있진 않던데...ㅡ..ㅡ 이게대체 왜 비싼지 영상을봐도 먹어봐도 대체모르겠...
우곡생주가 나음...
찹쌀80% 20%맵쌀... 한잔만 마셔도 든든할듯! 비싸다고 생각하면 값싼 밀가루100%짜리 사마시면되고(비싸다고 한사람들)막걸리 애호가로써 해남 드라이브 한번 가야겠다. 배상면주가 "느린 막걸리"도 수입쌀이지만 걸쭉하니괞찮고...
쌀100%로 만든 저렴한 막걸리 있습니다.
집에서만들어먹지만 원가생각보다 안들던대
아 유기농.... 저러면 비싸종
금을 파는거여 ㅋㅋ 술을 파는거여 ㅋㅋ 순금시세는 알고 계시죠 ? ㅋㅋ
인터뷰하는 사람 목소리가 만취상태같은데
한병에 110만원짜리도 나왔던데 개바가지 맞지. ㅋㅋㅋ
소비기한 반영구인가요? 그럼 소장가치라도 있지 보관하면 상할텐데 ㅋㅋㅋ
4:13 근데요 원재료명을 봐도 밀함유라고 써있던데 뭔가요? 본인들도 쓰면서 뻥치지 마세요.
자신감은 좋은데 시건방진게 무슨 해창이 막걸리계 신이냐?ㅋㅋ사장 자기 막걸리 뽕에 너무 취했네 ㅋㅋ
사장이 잘못 알고 있군요
좋은술 비싸게 파는건 맞는데...
막걸리가 비싸도 너무비싸다는 생각은 영상보고나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비싼건 ok 근데 명품을 페트병에?
전라도 제품이라고
볼것도 없이 안살듯....
형님 존경함니다,
일본막걸리인가?
구지 그돈 내고 먹을 마껄리는 아니지 싶은..
막걸리 원료가 머 얼마나 든다고 해창 저거 재수 없다 드럽게 비싸게 파네
처먹지마셈 느림마을 막걸리 ㄱㄱ
3천만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장님 의지는 좋으나 과연
그래도 넘 비싸게 판다
백년에 역사 지게차 한데 없으니
막걸리가 비싸요
막걸리계의 창렬ㅋㅋㅋㅋㅋ 막걸리가 1만원대 넘어가면 일단 거품임. 그리고 해창 12도만 보면 우곡생주보다 두 배 가격인데 우곡생주 퀄리티가 안나옴ㅋㅋㅋㅋ 결론은 편의점에서 3천원초반에 사먹을 수있는 느린마을 막걸리 갑임.
해창 막걸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1923년 일본인 시코타 히코헤이가 이곳에 정미소를 지어 도정한 쌀로 정종을 만들면서 해창 주조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어 직원으로 일했던 장남문 씨가 불하 받아 해창의 2대 주인이 되었고 장남문 씨는 돈도 많이 벌어 해남 삼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양조업에 종사하던 황의권 씨가 인수해 30년을 술을 빚어오다 대를 이어갈 형편이 못돼 이곳을 자주 찾던 오 씨 부부와 인연이 되어 해창의 지금이 있게 됐다.
오 씨 부부는 그길로 가양주 대가인 박록담 씨와 배상면주가의 창업주 배상면 씨를 통해 전통 막걸리의 제조법을 전수받고 다양한 주조법까지 배운 뒤 해창 막걸리 살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수박인가요
쌀가루는 일반 말걸리,,장수막걸리가 최고야..해창은 금가루로 만드는 모양?? 롤스로이스나 타고다시셈...괜한 방송보고 시간낭비했네..
가격도 비싼데 병을 플라스틱 사용하네 인간적으로 만원 넘어가면 유리병에 담아줘라 ㅉㅉ
ㅋㅋㅋ 막걸리을 농주라하죠 농사지으며 농민이 먹던술인데 고급스럽진 안겟죠. 고급스럽다는게 앞뒤가 않맞쥬.막걸리는 농주다. 박정희 대통령이 논밭에서 드셧던 술.
★ 기득권 막컬리 !
서민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조미료 안 쓴 쌀먹걸리는 없는가 ?
삼촌포 명: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개설]
삼촌포(三村浦)는 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인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는 오래된 포구이다. 해진군(海珍郡)의 관문이자 병선(당시 군함 선박)들의 정박처였고,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항구였다. 진도가 섬으로 옮겨 간 이후에는 진도군과 소통로 역할을 하였다.
[명칭 유래]
조선시대 해남에 들어와 있던 진도군 삼촌면과 진도군 사이를 연결하는 포구였으므로 삼촌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해진군은 1409년 해남과 진도를 병합한 옛 고을명 이다.
1409년 진도군이 영암군 시종면에서 삼촌면으로 옮겨 오고, 1412년에는 해남현도 현산면 고현에서 삼산면 녹산역 인근으로 옮겨왔다. 이때 삼촌포는 해진군의 관문이었다. 1437년 해남과 진도가 나뉘어 진도가 읍치를 섬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에 속했다. 이때 삼촌포는 진도와 해남을 연결되는 소통로 구실을 하였다. 삼촌면은 지금 해남군 삼산면의 일부이며 감당, 도토, 목신, 상금, 송정, 용두, 창리, 항리[해남군 삼산면 신흥리 감당마을, 신흥리 상금마을, 송정리 도토마을, 송정리 송정마을, 원진리 목신마을, 창리 용두마을|창리 창리마을] 등 13개 마을이다.
삼촌포에는 어란의 병선들이 정박하였다. 중선 4척과 군사 480명과 뱃사공 4명을 거느렸다 [領中船四艘, 軍四百八十名, 梢工四名]. 15세기 중반 무렵이 되어 병선들은 섬으로 옮겨갔다. 1906년 삼촌면이 해남과 합병되자 진도와 통하였던 삼촌포의 기능도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화산면 고천암 방조제 공사로 바닷물이 차단되어 포구의 기능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조에 “어란(於蘭)은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있다[於蘭 在海珍郡南三寸浦].”라고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해남읍지(海南邑誌)』에서는 “현 남쪽 20리[약 7.85㎞]의 진도와 경계에 있다[三寸浦在縣南二十里珍島郡界].”라고 하였다. 고어란이 해남현에서 남쪽으로 25리[약 9.82㎞]가 떨어져 있었으므로 삼촌포는 상류인 해창리 인근으로 추정된다. 어성포는 삼촌포 상류에 있고 인근에 해창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가격 주고 마시고 싶진 않아요.
뭔소리야 밀가루 막걸리 없어진지가 언젠데? 냉삼 2인분 20만원에 파는 미친 할매랑 동급이네
해창 막걸리를 제대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라거 맥주가 시원함과 청량감이라면 밀맥주는 진하지만 청량감은 없애주지 못하는것 처럼
해창은 최고급 막걸리에 걸 맞는 맞이지만 젊은 세대에서 어필하기에는 힘들듯
정말 건강한 맛과 포만감은 최고인듯
돈많은 사람들이 먹는 막걸리 ᆢᆢ서민들은 못먹는 해창 아폴로 ᆢ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