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혼선생님 묘

Поділитися
Вставка
  • Опубліковано 17 вер 2024
  • 환기 : 010 8605 6308
    기에 의한 기받는 지리공부 하실 의인님들은
    풍수지리의 진리를 찾아서 카페로
    엘로드로 지기에 영향주는 생기맥 지자기맥을 읽어 기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공부하는곳 입니다.엘로드 탐사를 하기위해선 먼저 기공하여 기를 느끼셔야 지기탐사를 잘할 수 있으며 자기 기가 밝아야 명당을 찾을 수 있답니다.마음 기와 땅기가 같게 동조하며 자기 마음 밝기의 지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롭고 덕행으로 기가 좋은분은 혈과 인연이 있고 의롭지 못한분은 연이 없습니다.
    풍수지리는 땅에 지기가 있고 그 지기를 받고자 하는 공부입니다. 기학문입니다.기에 의한 기를 얻는 기 풍수지리가 나와 자손의 건강한 미래를 약속합니다.
    엘로드 활용 지기 실측으로 고조선과 명망 높았던 분들의 혈 풍수지리를 온고지신하는 기와 지리입니다. 진화가 없는 학문 ?
    생기맥 맥상 기가 뭉친곳이 혈이고 혈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건강혈, 지혜혈, 리더쉽혈 등로 나눌수 있고, 생기맥이 종과 횡으로 만나는곳이 생기 십자맥으로 1혈과 비슷한 기를 받아 길한 작용을 하나
    지자기맥이 묘 유골이나 내 잠자리에 횡으로 존재하면 기가 -4 떠어져 병을 부르고 수맥이 종횡으로 겹치는 부분이 지자기 교차점인데 이곳은 기는 -10로 흉만 불러 급 망합니다. 필히 엘로드탐사 배우시는것이 기본입니다.
    명상으로 언제나 마음을 의롭고 밝게 하시고 지리공부 하셔야합니다.
    기만 느끼는 분이면 실증 가능한 기 지리공부입니다.

КОМЕНТАРІ • 1

  • @user-xx5wl1hg9xqkghkghks6
    @user-xx5wl1hg9xqkghkghks6  4 місяці тому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우계 성혼(1535∼1598) 선생의 묘이다. 성혼은 명종 6년(1551) 생원·진사의 초시에는 모두 합격하였으나 복시에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같은 고을에 사는 이이와 사귀게 되면서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학문 성향에서는 이황을 지지하여 이이와 선조 5년(1572)부터 6년간에 걸쳐 사단칠정에 대한 논쟁을 벌여 유학계의 큰 화제가 되었다. 그는 덕행이 뛰어나 선조대 초부터 여러 번 관직이 주어졌으나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이이의 권유로 이조참판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우참판에 이르고 선조 27년(1594)에는 좌참판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영의정 유성룡과 함께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고향인 파주로 돌아갔다. 그가 죽은 뒤 선조 35년(1602)에 사화와 관련하여 관직이 박탈되었다가 인조 11년(1633)에 다시 좌의정의 벼슬이 내려졌다. 묘역은 부인과 합장한 하나의 봉분 형태이다. 묘제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석물은 새것과 섞여 있다.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묘표를 세웠다. 인조 27년(1649)에 건립한 것이고, 비문은 김집이 짓고 외손자인 윤순거가 글씨를 썼다. 보편적인 옥개방부형지만 안정적이고 당당한 형태이다. 하단에는 동자석인 1쌍을 조성하였다. 머리는 쌍계형으로 묶고 두 손에는 지물을 든 형상이다. 부친인 청송 성수침 묘에도 동자석인을 조성하였는데, 창녕 성씨 가족의 공통적 묘제로 볼 수 있다. 묘역 입구에는 성혼의 신도비가 있는데, 김상헌이 글을 짓고 김집이 글씨를 썼다. 이 묘역은 묘제와 다양한 석물의 원형이 유지되고 있어 중요하다. 특히 동자석인의 조성은 지역적 공통성과 연관 지을 수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
    ( 관광공사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