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연꽃 같은 영혼의 스승 비구 법정(比丘 法頂) 1932-2010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하나같이 인생은 짧다고 한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 인생은 곧 끝나버린다는 것. 후딱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곧 끝나버린다는 말이다. -------------------------------------------------------------------- 사람의 덕이란 어디서 오겠습니까?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뜻 도울 때 덕이 자랍니다. 어디서 덕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때 덕의 싹이 자랍니다. -------------------------------------------------------------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빈 마음 그것은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1932년 전남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삶과 죽음에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沙彌戒,十戒)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比丘戒,비구가 받아 지켜야 할 250가지의 계율)를 받았다. 1960년 운허 스님의 부름으로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서 죽비 같은 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1973년 불교계 처음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스님은 1975년 수행자의 본래자리로 돌아가고자 불일암을 짓고 무소유 사상을 설파한다.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한다. 1993년 우리들 마음에 맑고 향기로운 연꽃을 피우고자 순수 시민운동을 주창하였다. 1994년3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발족하여 뜻을 함께 하는 회원들을 이끌어 주었으며,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길상화(故김영한) 보살이 7천여 평의 대원각을 시주하여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스님은 병상이 깊어진 뒤에도 침상에서 예불을 거르지 않았으며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남긴 뒤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세수 78세, 법랍 55세)했다 수행자로서 마지막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스님은, 이 시대의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되어 우리들 영혼을 맑히고 있다.
짱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한국의 사찰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멋진 사찰들이 많아요
가보고 싶다
영상이 같이 넘어와 이것 까지 한국사찰 가볼만한곳 소개 감사합니다
꼭 가고싶은 사찰
시간되면 언제든지 가봐야지
()()()
이 시대의 연꽃 같은 영혼의 스승 비구 법정(比丘 法頂) 1932-2010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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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하나같이 인생은 짧다고 한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
인생은 곧 끝나버린다는 것.
후딱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곧 끝나버린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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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덕이란 어디서 오겠습니까?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뜻 도울 때 덕이 자랍니다.
어디서 덕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때
덕의 싹이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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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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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음
그것은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1932년 전남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삶과 죽음에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沙彌戒,十戒)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比丘戒,비구가 받아 지켜야 할 250가지의 계율)를 받았다.
1960년 운허 스님의 부름으로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서 죽비 같은 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1973년 불교계 처음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스님은 1975년 수행자의 본래자리로 돌아가고자 불일암을 짓고 무소유 사상을 설파한다.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한다.
1993년 우리들 마음에 맑고 향기로운 연꽃을 피우고자 순수 시민운동을 주창하였다. 1994년3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발족하여 뜻을 함께 하는 회원들을 이끌어 주었으며,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길상화(故김영한) 보살이 7천여 평의 대원각을 시주하여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스님은 병상이 깊어진 뒤에도 침상에서 예불을 거르지 않았으며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남긴 뒤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세수 78세, 법랍 55세)했다 수행자로서 마지막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스님은, 이 시대의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되어 우리들 영혼을 맑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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