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가 환국 시대인 8000년 전에는 육지였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모두 해결됩니다. 환국은 당시 세계 최대 온대 지역 평야였던 서해 평야와 황하, 요하, 압록강, 대동강, 한강이 지류인 세계 최대의 강 '고은하'의 풍부한 수량을 배경으로 수천년 간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고인돌 분포지역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화도가 당시 장대한 산으로 바로 천산(파내류산)입니다. 그렇기에 단군왕검이 최초로 몽골+만주+한반도를 통일하고 단군조선을 개창하자마자 운사 배달신을 보내 강화도에 참성단을 쌓게 하고 천제를 지낸 것이죠. 한반도 남쪽 그것도 섬에 이런 중요한 시설을 세운 이유가 바로 강화도가 천산이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세종이도의눈 님 강의가 파스파 문자가 자방고전 아니라는 것 아닌가요? 가림토가 자방고전이라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티벳 파스파 문자에서 찾지말고 단군조선 강역 안에서 다 해결된다고 말한 것인데, 아주 까칠하게 댓글 다시네요. 님 강의는 좋지만, 님이야말로 남의 댓글 정독하고 댓글을 올려 주세요.
창문살 보고 한글 창제했다고 논문 썼던 자들과 같다. 그런데 그런 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되면서 사라졌는데 연산군 때 사람이 썼다는 글에 훈민정음에 나오는 자음과 같은 글자가 이전에 있었다고.. 일본에 가면 한글발음과 자음이 같은 걸 독자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라며 모시는 산사도 있다...ㅋㅋ
@@소나무-f1y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창제원리를 조음기관의 모양에 따랐다고 나오는데요...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고대문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파스파) 기원설 같은 주장들이 있어왔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공개되고 나서는 오히려 이런 주장들이 전부 일소되었지요. 최만리가 언급한 것은 최만리의 분석이라 볼 것도 없고, 고려한글, 첨수도 화폐, 환단고기 등등은 저작 연대도 불분명하고,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어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인데, 굳이 그것을 믿겠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러나 분명하게 훈민정음 해례본은 글자를 만든 원리를 사람이 소리내는 기관의 형상을 본땄고, 모음의 경우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따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소나무-f1y ‘자방고전(字倣古篆)’이란 말은 1443년 음력 12월 30일 자 세종실록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사관은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서체를 닮았다(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고 기록해 놓은 것으로, 언문(훈민정음)은 세종 단독 발명품인데 그 모양이 중국 고대 한자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倣’을 흔히 ‘모방’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마치 훈민정음이 옛 글자나 다른 글자를 ‘표절’한 것처럼 알려진 내용인데, ‘倣’은 ‘닯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 대한 진실은 창제 후 대략 두 달쯤 뒤인 1444년 2월 20일 자 최만리 등 7인의 반대 상소에 나옵니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전서체)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글자의 형상이 비록 옛날의 전자를 닮았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사실 근거가 없사옵니다.(儻曰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라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단호하게 ‘자방고전’ 주장은 일부가 말하는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설혹 말하기를]과 설령 그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모양이 비슷해 보일 뿐 실제로는 세종의 독창적 작품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곧 ‘자방고전’은 글꼴에 관한 것임을 밝히면서 비록 글꼴(자형)이 옛 전서체와 닮았을지라도 소리를 적고 음소 문자를 합해 글자를 합자하는 것은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최만리 등의 이 주장은 상소문으로부터 2년 7개월쯤 뒤에 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의 입으로 정확히 해명되는데, 글꼴은 옛 전서체를 닮았으나, 실제 문자 기능 곧 소리를 나타내는 음소 문자(자모 문자)로서의 기능은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훈민정음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세종이 직접 쓴 정음 취지문(서문)과 세종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쓴 제자해를 가장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해례본에서 창제자가 밝힌 내용을 부정하고 있는 모든 논의는 잘못된 것이며, 세종의 주장을 부정하고 해례본을 위서로 몰아가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가림토문자가 있었다면 왜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요? 가림토문자 몇 글자 안되던데.. 그렇게 쉬운 문자가 있었는데 가림토문자로 지어진 책 한권은 커녕 글귀 하나 남아서 내려오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훈민정음 한글이 창제되고 그 모진 핍박을 받고도 여태 살아남아서 현대에 꽃피운 이유가 뭘까요?? 그건 쉽기 때문입니다 가림토문자가 있었고 한글 만큼 쉬웠을 터.. 그 쉬운 가림토를 버리고 한자를 썼다고요? 그 쉬운 가림토가 사라졌다고요? 그 쉬운 가림토로 기록된 사료 하나 없다고요? 그 쉬운 가림토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쉬우니까요 가림토문자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가림토는 철저히 위작입니다..신대문자나 가림토나 위작입니다.. 퍽 어려운 이두도 일본문자에 남아있는 마당에 그 쉬운 가림토가 사라졌다? 원래 없었어요.. 중간에 한글 보고 신대문자라는 게 있닥 만든 놈들 비슷한 부류들이 훈민정음 까내릴려고 비슷한 거 만든 겁니다 안개속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오시길 바랍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가림토 문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세종대왕께서도 옛 글자를 모방해서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훈민정음과 가장 유사한 글자는 가림토문자라는 것이고,. 만일 가림토 문자가 없었다면 훈민정음은 모방이 아닌 완전한 창작이 되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이 파스파 문자를 모방했다는 것은 딱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매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이집트의 상형 문자,중국의 한자 ,인도의 산스크리트,티베ㅅ파스파,단군 조선의 가림토 다 비슷한 기원전 3000년전에 발생 햇네요.
檀君文字 是什么?
그 명맥을잇는 고려한글도 이미 중국에 있는거 900년전것이란 감정결과 나온것도 있습니다 22년도 일인데 한국미디어가 모두 한국인들 알면안되서 쉬쉬하고있죠 유툽 검색만해도 나옵니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때 단군,고려의 흔적,신지비사등 역사를 지웟지요.
태조 때부터 역사왜곡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때 태워없어진 역사서가 있다던데 어떤 역사서인가요?
@@01dmxufkfj 단군의 역사지요.
중국 기자에 의해 만들어진 문명으로 세탁하기위한 한민족역사말살 작업입니다@@01dmxufkfj
왜 단군조선 추정 강역 안에서 다 해결되는데 그 밖에서 자꾸 원전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가림토문자니 녹도문이니 천산(파내류산)이니 환국이니 모두 단군조선 추정 강역 안에 있습니다.
서해가 환국 시대인 8000년 전에는 육지였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모두 해결됩니다. 환국은 당시 세계 최대 온대 지역 평야였던 서해 평야와 황하, 요하, 압록강, 대동강, 한강이 지류인 세계 최대의 강 '고은하'의 풍부한 수량을 배경으로 수천년 간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고인돌 분포지역의 정중앙에 위치한 강화도가 당시 장대한 산으로 바로 천산(파내류산)입니다. 그렇기에 단군왕검이 최초로 몽골+만주+한반도를 통일하고 단군조선을 개창하자마자 운사 배달신을 보내 강화도에 참성단을 쌓게 하고 천제를 지낸 것이죠. 한반도 남쪽 그것도 섬에 이런 중요한 시설을 세운 이유가 바로 강화도가 천산이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처음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답일 것 같습니다.
제강의를 대충 보셨군요. 역사 어윈등 다 청취하시고 나서 댓글을 올려 주세요. 관심 감사드립니다
@@훈민정음세종이도의눈 님 강의가 파스파 문자가 자방고전 아니라는 것 아닌가요? 가림토가 자방고전이라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티벳 파스파 문자에서 찾지말고 단군조선 강역 안에서 다 해결된다고 말한 것인데, 아주 까칠하게 댓글 다시네요. 님 강의는 좋지만, 님이야말로 남의 댓글 정독하고 댓글을 올려 주세요.
개별적 역사서로 읽으시면 되는데
환단고기 로 묶어서 내놓은 서적은 변질이 많은 부분에서 있으니 환단고기 란 용어는 앞으로 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림토 문자 어디에 있죠!?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 되기 때문에 아닌가요
파스파 문자가 한글의 근원이란 말은 자기 아비를 부정하고 남의 아비를 자기 아비라 하는것과 같다.
진정한 학자이십니다.
감사드림니다
참 신기한건 사라진 대한민국 역사서가 어디서 나온다는거.. 근데 원본은 아니고 뭐시기 필사본이야..
네.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에 수장고 안에 첨수도 부터 꺼내서 고증해야.
정광 교수가 파스파문자를 따라서 한글을 만들었다는 말은 정말 이상했어요...가림토문자를 부정하는 학계가 이상한 거 맞죠~~
가림토문자가 있었는데, 왜 학계에서는 이걸 부정하는 걸까요? 대륙백제, 대륙신라를 부정하는 역사학계랑 똑같은 거죠~~
우리 나라는 학계를 뒤집어야 합니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일제식민사관 때문이라고 하는데 물타기고요 중국을 위해 부정하는겁니다
지금 서울대가면 시진핑기념관이 있고 한국은 공자학원이 장악된상태로 역사주류는 친중학자들이 장악했습니다
가륵 단군 이후에 가림토문자로 기록한 문헌의 전언이라도 흔적이라도 있다면 속을테지만 ...
환단고기 외에는 그 어느 아시아 기록물에도 가림토문자가 연상되는 흔적이 눈꼽만큼도 없으니
환단고기의 저자인 이유립 조차도 이랬다 저랬다 말이 꼬이는 근거 없는 가림토
能13世纪编造的故事当做历史?
신대문자는 훈민정음을 본따 만든것 같습니다.
시간 낭비 차증나
라틴어 희랍어 ㄴ엘 ㅌ티 ㅇ오 ㅐ에이치 ㅣ이
ㅜ티 도 한글 훈민정음 ㄴ ㅌ ㅇㅐ ㅣㅜ 왔네요
창문살 보고 한글 창제했다고
논문 썼던 자들과 같다.
그런데 그런 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되면서 사라졌는데
연산군 때 사람이 썼다는 글에 훈민정음에 나오는 자음과 같은 글자가 이전에 있었다고..
일본에 가면 한글발음과 자음이 같은 걸 독자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라며 모시는 산사도 있다...ㅋㅋ
사람마다 다르니
뭐가맞을까
북한에서 쓴 김일성 역사 믿는사람과 안믿는사람 차이죠 세종이 만들었단건 김일성자서전 믿는거랑 비슷도아니고 똑같습니다
우리 한글자모는 우리 한자에 한자발음기호로 이미 새겨져 있었다. 발음기호 한글자모를 소리글자(철자)로 사용하게 하신 것이다.
세종李道의 勞力에도 不句하고 한글은 부족不足한 言語😂
이 아저씨 국뽕 환빠네 ㅋㅋㅋ 빨리 병원으로 ㅋㅋㅋ
세종대왕이 옛 글자를 모방해서 훈민정음을 창제 하셧다고 문헌에 나옵니다.
어떤 문헌에......?
훈민정음 혜례본에 나오고요,최만리,정인지등도 상소로서 언급햇지요.고려한글,첨수도에서도 발견되고,한단고기 에도나오지요
@@소나무-f1y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창제원리를 조음기관의 모양에 따랐다고 나오는데요...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고대문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 기원설, 몽골문자(파스파) 기원설 같은 주장들이 있어왔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공개되고 나서는 오히려 이런 주장들이 전부 일소되었지요.
최만리가 언급한 것은 최만리의 분석이라 볼 것도 없고, 고려한글, 첨수도 화폐, 환단고기 등등은 저작 연대도 불분명하고,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어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인데, 굳이 그것을 믿겠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러나 분명하게 훈민정음 해례본은 글자를 만든 원리를 사람이 소리내는 기관의 형상을 본땄고, 모음의 경우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따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noiinfiniti8106 훈민 정음 혜례본에 자방고전이라는 거시 나옵니다.그리고첨수도는 만주,요하 일대와 한반도서 출토되는 3000년전에 사용하던 동전이지요,
@@소나무-f1y ‘자방고전(字倣古篆)’이란 말은 1443년 음력 12월 30일 자 세종실록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사관은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서체를 닮았다(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고 기록해 놓은 것으로, 언문(훈민정음)은 세종 단독 발명품인데 그 모양이 중국 고대 한자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倣’을 흔히 ‘모방’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마치 훈민정음이 옛 글자나 다른 글자를 ‘표절’한 것처럼 알려진 내용인데, ‘倣’은 ‘닯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 대한 진실은 창제 후 대략 두 달쯤 뒤인 1444년 2월 20일 자 최만리 등 7인의 반대 상소에 나옵니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전서체)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글자의 형상이 비록 옛날의 전자를 닮았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사실 근거가 없사옵니다.(儻曰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라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단호하게 ‘자방고전’ 주장은 일부가 말하는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설혹 말하기를]과 설령 그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모양이 비슷해 보일 뿐 실제로는 세종의 독창적 작품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곧 ‘자방고전’은 글꼴에 관한 것임을 밝히면서 비록 글꼴(자형)이 옛 전서체와 닮았을지라도 소리를 적고 음소 문자를 합해 글자를 합자하는 것은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최만리 등의 이 주장은 상소문으로부터 2년 7개월쯤 뒤에 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의 입으로 정확히 해명되는데, 글꼴은 옛 전서체를 닮았으나, 실제 문자 기능 곧 소리를 나타내는 음소 문자(자모 문자)로서의 기능은 옛 전서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훈민정음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세종이 직접 쓴 정음 취지문(서문)과 세종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쓴 제자해를 가장 중심에 놓아야 합니다. 해례본에서 창제자가 밝힌 내용을 부정하고 있는 모든 논의는 잘못된 것이며, 세종의 주장을 부정하고 해례본을 위서로 몰아가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옳으신 말씀이 십니다
삼수 가림토
그런 훌륭한 문자가 있는데 ㅋ 왜 한단고기는 한자로 쓰였어?ㅋ
신탁문자 와 지배계급층 문자를 잘 사유해 보세요
병신아 한자도 우리문자이기 때문이야 이놈아야!
웃긴다.
환빠들이 몇명이나 된다고 그 돈 빨아들이려고 이리 고생하시는지.
비엉신~
첨수도에 훈민정음에 쓰이는 가림토 글자가 세겨져 있습니다.
가림토문자가 있었다면 왜 이어져 오지 않았을까요?
가림토문자 몇 글자 안되던데..
그렇게 쉬운 문자가 있었는데 가림토문자로 지어진 책 한권은 커녕 글귀 하나 남아서 내려오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훈민정음 한글이 창제되고 그 모진 핍박을 받고도 여태 살아남아서 현대에 꽃피운 이유가 뭘까요??
그건 쉽기 때문입니다
가림토문자가 있었고 한글 만큼 쉬웠을 터..
그 쉬운 가림토를 버리고 한자를 썼다고요?
그 쉬운 가림토가 사라졌다고요?
그 쉬운 가림토로 기록된 사료 하나 없다고요?
그 쉬운 가림토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쉬우니까요
가림토문자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가림토는 철저히 위작입니다..신대문자나 가림토나 위작입니다..
퍽 어려운 이두도 일본문자에 남아있는 마당에 그 쉬운 가림토가 사라졌다?
원래 없었어요..
중간에 한글 보고 신대문자라는 게 있닥 만든 놈들 비슷한 부류들이 훈민정음 까내릴려고 비슷한 거 만든 겁니다
안개속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오시길 바랍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뭘 그렇게 단정합니까. 태고 문자의 행방을 그렇게 단정할수 있습니까.
가림토 문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세종대왕께서도 옛 글자를 모방해서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훈민정음과 가장 유사한 글자는 가림토문자라는 것이고,. 만일 가림토 문자가 없었다면 훈민정음은 모방이 아닌 완전한 창작이 되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이 파스파 문자를 모방했다는 것은 딱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위에 다른분이 쓰셨지만 성리학을 숭상하던 조선초기때 옛 서적을 없애는 분서갱유가 있었다 합니다. 그게 단절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료가 부족한 옛일을 알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주장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일까지.
참 답답하십니다 ! 비슷하면 어때요 ? 그시절에 중구난방 이었을건데 . .
하도어려우니 쉽게배워쓰기쉽게하기위함이라했어 ! 그와중에 한글은 정리만 잘했다고하지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