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법문에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불교가 전해진 곳은 가야 라고 하시면서 , 허왕후는 인도의 크샤트리아 계급에 왕족 출신으로 부처님 법을 전해고자 배를 타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역사적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드리니 정학하게 일치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저는 신진공고 기계과 86년도 졸업생 김승현 입니다. 내 인생에 스승님 이신 오순제 선생님 건강 하십시오.
한반도는 고려였으니까 당연히 탐라 신라 고려유물이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의 본국은 대륙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님도 교과서만 공부하지말고왕조실록이라도 재대로 읽어보세요. 이것도 조작된 내용만 보지말고 재대로 꼼꼼히 읽어보세요.@@soosoosoo1234
옛 삼국시대에 중국에도 영토가 있었는데 베이징부근에서 상하이 밑 남부 부근까지 였기에 신라로 시집을 올수 있었으며 지금도 인도에서 한국으로 오기 힘든 해상으로 온게 아니라 해상과 육로를 병행해서 왔을것 입니다 왜냐면 당시 중국 남부는 신라의 땅으로 신라 지배에 있었으니깐요
잘은 모르지만 원뿌리는 같은 종족일 가눙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잡니다. 결국은 순다랜드의 같은 종족들이 인도애서부터 갈렸다고 나타나고 있다는데 거기서 부터 갈라져 왔다고 보아집니다. 해안가를 따라 지속적으로 이동을 해온 종족이 우리 한반도에 정착을 한 것(남방계통)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래서 바닷가가 퇴적에 순다랜드라는 지역에 의해서 변화된 평야라는 것이 충분히 받아드려지는 지형의 변화가 그대로 나타난 지형이라고 보아 지네요, 길고긴 낙동강의 하구가 그렇게 매워지면서 드널은 김해평야가 점점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보여지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보여준 사실이라고 보여집니다. 기후의 변화에 따른 이동으로 한반도에서 서로 만나서 그대로 이루어진 종족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잘 나타난 중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기록물이 없기에 기록으로는 알수가 없으나 그 후의 퇴적층의 변화와 만들어진 드넓은 김해 평야지대를 본다면 그렇게 변화되어서 우리 한잔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러니까 인도의 동넘부 지역인들이 해안선을 따라 아동해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대로 확인이 되는 것이 된디고 봐집니다. 그렇게 신라가 이루어졌고, 그 머나먼 지역의 왕족과의 혼인들이 이루아진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봐집니다. 그렇게도 이루어진다는 서실을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텅해서도 충분히 인정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의 동남부 자역민들이 지각의 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해 올라오수가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그렇게 인도의 허황후가 우리 신라의 왕족들과 만나 혼인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일이 그댜로 인정이 된다고 보아 집니다. 그동안 연구를 해오산 분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드러나는 우리 한 반도의 약사적 사건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준들이 해안성\ㄴ을 따라 이동해 오면서 우리 한반도 까지 둘어올 수가 있었구나 라고, 충분히 알수가 있다고 봅니다. 이동해 온 종족들이 거의 그 뿌리가 같았다는 의미가 될 것 같군요, 그래서 인도지역의 허황후가 우리 신라의 왕족들과 혼인을 하는 그런 정황이 잘 드러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군요, 오늘날에는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그냥 드러날 것이라고 봐집니다. 기왕연구를 한 것이라면 그런 것까지 세밀하게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그냥 잘 드러날 것이라고 보아 집니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이루어진 지형의 변화 등과 함께 그 역사적 기긴을 고찰해 본다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간이라고 보면, 인도의 끝자락에서 살던 분들이 이동을 해서 기후의 변화에 따라 아동을 해서, 바이칼 호수의 근처에서 살았던 종족들이 이동을 해서 오늘날 우리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그대로 보여지는 역사적인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라고 보면 될 것 같숩니다. 자는 살았던 분들이 기후의 변화에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오변서, 그 근처에서 살았던 분들과 그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 그대로 증명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집니다.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대로 잘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의 끝 부분에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해 온 오눌의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잘 드러난 것이라고 확신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지약이 오늘날의 김해 평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철저하게 검증이 되는 순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같습니다.
인도는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이고, 한국의 부산지역쯤 위치한 곳에 카니아쿠마리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허황후는 그 곳에 위치한 왕국의 공주이고, 그 곳 언어와 문화가 한국 특히 경상도와 많이 비슷합니다. 지금 제 여친이 이곳 출신이고 얼마전 한국에 왔습니다. 그녀의 할머님이 왕국의 공주였고, 강의에서 설명하신 많은 부분이 사실입니다. 다만,한가지 다른 사실은 , 공주가 인도 북부 출신인것으로 인도정부에서 조작하고 있고 , 그로인해 한국분들이 북부로 여행을 많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 팩트입니다.
허황옥의 이야기를 강의 하시려면, 서울대 고고학과 출신이신 김병모 박사님의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를 읽어 보아야 합니다. 허황옥의 선조들이 중국 보주지역에 집단이주 했으며, 허황옥의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이 중국 사천성 보주 허씨 종중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신정기"라고 하며 김병모 박사께서 직접 찾아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라 황실에서 황후를 배출한 외척인 허씨에 대하여 살펴 보아야 하며, 김일제의 후손으로 황후를 배출한 외척인 왕망 집안에 대하여도 살펴 보아야 합니다. 허씨와 김씨는, 이미, 한나라 황실에서 외척으로서 혈연적으로도 연관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가야까지 배를 타고 와서 별 연고도 없이 혼인을 맺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 학문을 하려거든 선학들께서 일생에 걸쳐 연구한 내용을 짚고 넘어가야 기본인 것입니다. 허황옥이 가져온 예물들로 봐서, 인도, 동남아, 중국등지는 이미 바닷길로 왕성한 교역을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 결혼이란 것은, 집단간의 결합인 것이며, 이해관계가 있을 정도의 지역적 인접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ㅇㅇ 불교가 제일 융성한 나라가 신라죠. 남북국(발해, 후기신라)시대를 거쳐 고리(고려) 역시 불교국가입니다. 골제인 성골, 진골만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외 등급은 그냥 평민들이라 왕이 될 수 없었고 혈통 유지를 위해 왕족인 친인척간 근친혼을 했는데, 외국의 여인을 기다렸다가 왕후로 맞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통하여 역관을 썼다는 얘기도 없고. 저는 예전부터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고 허황후는 원래부터 동이족. 김수로왕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맞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석가족이 살던 중천축국(현재는 네팔, 티벹)쪽에서 온 우리와 같은 민족 동이족이죠. 한국 선조들이 중천국국에서도 살았습니다. 원래 같은 민족 같은 종족이었는데 어떤 사유인지는 몰라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허황후, 그 오라비 장유화상도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들임.
불교가 제일 융성한 나라가 신라죠. 남북국(발해, 후기신라)시대를 거쳐 고리(고려) 역시 불교국가입니다. 골제인 성골, 진골만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외 등급은 그냥 평민들이라 왕이 될 수 없었고 혈통 유지를 위해 왕족인 친인척간 근친혼을 했는데, 외국의 여인을 기다렸다가 왕후로 맞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통하여 역관을 썼다는 얘기도 없고. 저는 예전부터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고 허황후는 원래부터 동이족. 김수로왕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맞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석가족이 살던 중천축국(현재는 네팔, 티벹)쪽에서 온 우리와 같은 민족 동이족이죠. 한국 선조들이 중천국국에서도 살았습니다. 원래 같은 민족 같은 종족이었는데 어떤 사유인지는 몰라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허황후, 그 오라비 장유화상도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들임.
중국서남쪽에서 중개무역을 하던 종족으로 세력다툼에 밀려 기존에 교역을 하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가야와 이해관계가 맞아서 가야에 정착했겠죠..통역은 그들이 무역했던 사람들이라 서로 통역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겠죠..그리고 그들이 샤카족이었기 때문에 가야로 먼저 흘러들어왔던 샤카족과도 인종적 언어족으로 통했을 것 같기도 하죠..
남북국 시대는 후기신라라기보다는 신라중대와 하대입니다. 신라는 골품제하에서 성골 진골 이외에도 귀족들과 양인과 천민이 있었죠. 고려 광종때 과거제가 생기고 부터 귀족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귀족이 완전히 없어졌죠. 왕족과 양인, 천민만이 있었죠. 유럽과 아시아에는 아직 왕족이나 귀족들이 있는 나라가 많죠.
인도의 고대귀족은 고조선의 후예들 산스크리트어를 쓰던 귀족들이다 산스크리트 즉한반도의 사투리를 쓰던 이들이 인도에서귀족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다 대홍수 때 천산 산맥으로 피신 했는데 일부의 부족은 히말리아 산맥으로 피신 했다가 홍수시대가 끝나고 다시 평지로 내려올 때 부족별로 각지로 흩어지며 이별을 노래한 것이 아리랑 이라는 것이다 고조선의 후예들은 모두가 아리랑노래를 전승으로 부르며 살고있다고 한다
산해경에 "조선 천독" 이라고 나온 부분을 잘못 이해해서 천독 = 천축 = 신독 = 신두 = 인도 라고 한것임. 산해경의 천독 은 상서 미자편 에 "천독강재황은방" 에서 나오는 천독 으로, 여기서 독 = 둑 = 치우 임. 발해에서 왕의 호칭이 가독부 인데, 이게 큰 독 애비 라는 소리임. 큰도깨비 = 도깨비 = 치우
아유타국은 네팔 바로아래 내륙국인데 항해술이 뛰어날 가능성이 적죠. 그러니깐 타밀족과 허왕후와 상관없는 국가입니다. 허왕후가 가져온 물건에는 중국물건도 있고 중국 사천성에 인도 허씨 집성촌이 있으니 중국 해안가로 왔다가 가야로 왔을 현실적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타밀어족의 원래 고향이 앗시리아 망했으니 인도 북서쪽 카슈미르 근처가 맞을 것이고 지도에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아유디아는 다른 왕족에 망했고 약간의 거리차이가 있습니다.
나도 이것이 젤 궁굼했어요. 그래서 나름 연구한 결과를 말해볼게요. 한반도 토착 민족은 농경민족이였음. 이 농경민족은 동남아에서 쌀농사 방법을 갖고 온 드라비아 민족이였음. 이후 북방의 유목민족은 기후 변화로 인구가 증가하여 새로운 목초지 찾아 남하하여 한반도로 유입되었음. 유목민족은 강력한 철기로 무장한 기마민족으로 농경민족을 손쉽게 복속시켰음. 북방의 유목민족 중에 가장 많이 남하한 세력이 김수로왕이 였음. 김수로왕이 복속시킨 농경민족은 7부족이였음. 7부족은 김수로왕을 왕으로 추대하는 대신 혼인동맹을 맺기로 하였음. 하지만 부족장의 딸을 왕비로 추대하기엔 김수로왕의 권위에 비해 많이 부족한 느낌이였음. 부족장들은 김수로왕과 대등한 권위를 갖고 싶었을 것임. 하지만 자신들이 김수로왕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임.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7부족의 본토에 있는 강력한 세력의 공주를 앞 세워 7부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을 것임. 본토의 공주라면 김수로왕과 비등한 권위를 갖는 다고 생각하여 허황옥이 한반도로 오게된 것임. 그런데 허황옥이 진짜 인도에서 출발했는지 아니면 중국 남부의 허씨 집성촌에서 왔는지는 불확실함. 어찌 되었건 허황옥은 동남아 최고 세력의 공주였을 것임.
@@jameskoo7137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다 중국이 본토입니다 한반도는 소도 비슷한 개념으로 고려시대에는 아예 변방지역이었어요. 조선시대부터 우리영토가 한반도로 축소되면서 한반도가 생활터였죠. 김수로 허황옥은 같은 고향나와바리 사람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쪽으로와서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지역입니다. 한강이 한반도 한강이 아니라 중국한강이고 평양이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중국평양이고 전주가 한반도 전주가 아니라 중국전주입니다. 김수로의 가야 구지봉 거북이 바위 거북이 등껍질 바위 이런건 한국에 없어요 한국인들이 어리버리하고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것. 역사에 관심있었으면 진작에 뜯어 고쳐야할게 한국역사에여 한국역사는 맞는게 별로 없어요. 고려왕건도 중국에서 태어났고 한반도와 관련도 없는 사람.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적도 없고 중국에서 했어요. 박혁거세가 외가로는 스키타이왕자(페르시아왕자) 였으며 몽골 중앙아시아 유럽 러시아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까지 세계를 통일한 인물인데도 시골촌장처럼 가르치는게 한국역사에여. 이씨 조선은 여진족의 세운나라인데 민족말살정책과 역사왜곡을 국가 정책적으로 했어요 수백년간.. 아틸라가 우리나라 사람인데 아는 사람들도 없어요.
저 역시 하양 허씨이고 허황옥 후손이라고 하지만 어뗗게 인도 지방에서 한반도까지 시집 오셧다는게 이해가 안감니다. 요즘처럼 뱃길과 도로길과 치안이 안전하다면 몰라도 그당시 위험을 무릎쓰고 먼길를 오게 되엿을까요? 오랫 동안 먹거리도 해결하려면 상당히 힘들텐데 말이죠. 제가 미국서부 사막 오지를 개 밥 먹으면 한달간 차박 여행 해보면 짐작이 가죠. 그게 가능하냐는 거죠? 그리고 식민학자들의 의해 한반도 역사 왜곡이 심해서 믿기 어려운 것도 잇지만요 등등...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김수로도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 그리고 이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는 중국이 본토입니다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페르시아까지 글로벌적으로 연결된게 사국시대입니다 토르가 세계를 일통해서 실크로드가 있었어요 실크로드라는 말이 신라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김수로도 인도 티베트 페르시아 나와바리 사람으로 같은 나와바리 허황옥과 결혼한것 그리고 가야의 본토는 중국지역입니다
약간의 시기는 다르지만 이란 사산조 이전의 이란인들이 신라와 교역을 한 기록이 여럿 있습니다. 이란은 인도보다 훨씬 멀죠. 동남아 지금의 인도네시아 여러 섬국들도 페르시아 인도와 무역을 많이 했죠.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엄청난 규모의 해적질과 중국의 해금 정책으로 그 뱃길이 오랫동안 끊겨 남아 있지 않을 뿐 입니다.
@@jkim949 뭘좀 모르니까 이런 헛소리를 하지.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쓰여진 만주족의 역사서 "만주원류고" 읽어봐라. 만주족은 자기 조상들이 "삼한, 부여, 백제, 신라, 발해, 숙신, 읍루, 말갈 여진" 이라고 했다. 뭐 이상한거 못느껴? "고조선, 고구려" 는 자기 조상에서 빼놨다는 거다. 그리고 "흉노, 선비, 거란, 돌궐, 몽골, 한족" 도 자기 조상에 껴주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만주족이 고조선 후예야?
왕망의 신나라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죠. 왕망의 고모가 전한의 황후 였죠 (전국옥새 땅바닥에 집어던진 바로 그년), 왕망의 외척이 김일제의 후손이고. 왕망의 고모 황후 왕씨 바로 전에 황후 한게 허씨 입니다. 다시말해 김씨일가, 허씨일가는 전한에서 한가닥 하던 집안들 이라는거죠. 그러다 왕망의 신나라가, 후한에 멸망당하니까, 김씨들이 살기위해 바다건너 한반도 남쪽에 정착한게 김수로 고. 김수로가 한반도 남쪽에 정착해서, 안정되자, 중국에 사람을 보내 잘 알고 지내던 허씨 일가에 여자를 보내달라고 한거고, 그래서 온게 허황옥 인거죠. 김씨들은 전한에서 잘나가던 흉노계 집안, 허씨들은 전한에서 잘나가던 인도 불교계 집안 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나라 이름도 불교 성지 "부다가야" 를 따서 지은거고.
@@only2sea 《태종실록》(1431년)에 富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며[6] 《경상도지리지》(1425년) , 《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경상도 속찬 지리지(1469년) 따위에 “동래부산포”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라 하고, 같은 책 삼포왜관도에도 “동래현 부산포”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부산포는 “부자 富”를 썼다.
@@jksmm1 이야~~ 그러면 부산도 중국 역사네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반도는 그나마 있던 역사도 없던 게 되어 버리네요. 고인돌만 잔뜩 있었던 원시인들이었네 우리는... 뭐 아님 국가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는 중국 변두리의 역사?? 중국이 동북공정해도 할 말이 없고 부산에서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면, 김치가 중국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네요. 대단해요.
김수로왕 허왕옥은 같은 나와바리 고향 사람이라 결혼한것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토르와 연관있고 김수로도 우리나라 사람아닌데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에여 김수로도 김씨아닙니다 다른성씨인데 우리쪽으로와서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것
임나는 큐슈지역에 있던 가야 또는 백제의 분국이었습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을 한반도에서 찾는것부터가 망상적 역사관에 따른 사고방식이죠... 백제가 요서를 경략했기 때문에 중국사료에 그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죠.. 삼국사기와 유사에 임나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임나가 한반도내의 지명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관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일본우익의 식민사관 추종하는 인간이란 말밖에 듣지 못할 것입니다
@@kjkosa 고분 출토 인골 남자3명줕 2명 부계하플로가 d2로 일본에만 존재하다시피 하는 일본일 고유 하플로입니다. 나머지 o1b2조차 일본과 한국 고유 표지 유전자구요. 인도요? ㅋ 여자들도 대부분 모계 D4와 M계가 나온걸로 압니다. 동아시아 고유유전자들이고 현대한국인보다 일본과 가깝습니다.
일본 원주민들은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제일 처음 나왔을때,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 시커먼 피부에 꼽슬한 머리카락을 가진 인종임. 그들이 아라비아 반도, 인도, 인도 차이나, 필리핀, 대만, 오키나와, 일본열도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을때 일본까지 진출한 인종임. 그러니 인도 남부 타밀인, 필리핀 원주민, 오스트랄리아 원주민, 일본 아이누족이 다 비슷한 인종임.
이분도 갑갑하네 이주 기록도 있는데 저렇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대륙에서 살았다는게 곧 밝혀지고 공개 될건데 100년이 넘어서 고문서가 많이 해제되는 중인데 어찌 하려고 하는지 한반도 이주 120년이라 하여 건국120년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그걸 속이는 중이라니 참 역사를 가져오지 말던지 아니면 미국처럼 이주해서 건국 했다고 하던지 120년전 한반도 이주기록 공개해 두었으니 검색하여 찾아 보시길 바란다
아리안은 아리랑족 우리민족 가야는 인도에 있었고 대제국 한반도에 가야는 없었다. 공부, 연구 한참 더하세요. 직접 인도. 중앙아시아 연구하 세요. 신라,백제.가야는 인도의 대제국 이었습니다. 한반도에 비정하지 마세요 허황후가 2천년전에 수만리 한반도에 왔다구요? 무슨 배로? 쪽배로?뗏목? 이런 강의 하시지 마세요.
수고 하셨습니다.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허씨 관련 유적유물들이 세곳 ㅡ인도 서남부 중국 동남부 한반도 김해 유물들이 너무도 유사합니다.
법륜스님의 법문에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불교가 전해진 곳은 가야 라고 하시면서 ,
허왕후는 인도의 크샤트리아 계급에 왕족 출신으로 부처님 법을 전해고자 배를 타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역사적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드리니 정학하게 일치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저는 신진공고 기계과 86년도 졸업생 김승현 입니다.
내 인생에 스승님 이신 오순제 선생님 건강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김해 허가 상서공상파 26대손입니다 나의 뿌리를 배울수 있던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계 성을 따랐나요?
아직도ㅡㅡ식민사관이 구석구석 살아숨쉰다는게 통탄할 일입니다.
역사를바로알고,역사를 바로세우고,교육
을통해 바로 전해주는 사명감!!
그래서 왜 고려왕실 유적이 종로에서 발견됨???
아직도 식민사관 드립이냐 한심하다
@@soosoosoo1234넌 원하는게 뭐니? 그냥 뭐든지 왜곡 축소하고 싶어서 안달이지?
@@MF_JH-LEE 아니 설명을 하라니깐 ㅋㅋ 왜 중국본토에있을 왕실유적이 서울에있냐고??
한반도는 고려였으니까 당연히 탐라 신라 고려유물이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의 본국은 대륙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님도 교과서만 공부하지말고왕조실록이라도 재대로 읽어보세요.
이것도 조작된 내용만 보지말고 재대로 꼼꼼히 읽어보세요.@@soosoosoo1234
어렸을때 경상도 시골에서 들어본 사투리가 전부 다 나오니 신기하다. ㅎㅎ
ㄱㆍㅋㄴㅋㄴᆢㄴㅋㄴㅋㄴㄴㅋ
고대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려면 반드시 그당시 천문,해수면 높이,기후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장안에 화제다라는
옛부터 많이사용한 언어입니다
중국에 있는 장안을 두고
말하는것으로
그곳에 우리 민족의 터전이란
증거가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광주는
중국에 있는 백제지역이겠지요
지금도 중국에는백제관련이
많이 있습니다
옛 삼국시대에 중국에도 영토가 있었는데 베이징부근에서 상하이 밑 남부 부근까지 였기에 신라로 시집을 올수 있었으며 지금도 인도에서 한국으로 오기 힘든 해상으로 온게 아니라
해상과 육로를 병행해서 왔을것 입니다 왜냐면 당시 중국 남부는 신라의 땅으로 신라 지배에 있었으니깐요
ㅋㅋㅋ 대륙삼국설 ㅋㅋㄱ 정신차리자 신라랑 중국나라들이랑 전쟁한 기록쫌 찾아도 국경이 맞닿아있으면 분명히 영토분쟁한 기록이 있을텐데 왜 없냐?? ㅋㅋㅋㅋ
@@soosoosoo1234 ua-cam.com/video/L5KhzLoC8hE/v-deo.htmlsi=BQyyCMm8wv71xFeq
인도옆동네옛신라땅허씨집성촌이지금도있다고하는데옆동네로시집와서불교전파와여러가지사정으로현김해까지돌탑을가져오지않았나봅니다그리고아유타왕극이버어마나라에존재하는데그당시버마까지인도였는지연구도좀해봅시다
수로예수왕이 기반을 닦은후 도마를보내 언약한 여인을 데리고오게한것이겟죠
잘은 모르지만 원뿌리는 같은 종족일 가눙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잡니다. 결국은 순다랜드의 같은 종족들이 인도애서부터 갈렸다고 나타나고 있다는데 거기서 부터 갈라져
왔다고 보아집니다. 해안가를 따라 지속적으로 이동을 해온 종족이 우리 한반도에 정착을 한 것(남방계통)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래서 바닷가가 퇴적에 순다랜드라는 지역에
의해서 변화된 평야라는 것이 충분히 받아드려지는 지형의 변화가 그대로 나타난 지형이라고 보아 지네요, 길고긴 낙동강의 하구가 그렇게 매워지면서 드널은 김해평야가 점점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보여지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보여준 사실이라고 보여집니다. 기후의 변화에 따른 이동으로 한반도에서
서로 만나서 그대로 이루어진 종족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잘 나타난 중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기록물이 없기에 기록으로는 알수가 없으나 그 후의 퇴적층의 변화와
만들어진 드넓은 김해 평야지대를 본다면 그렇게 변화되어서 우리 한잔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러니까 인도의 동넘부 지역인들이
해안선을 따라 아동해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대로 확인이 되는 것이 된디고 봐집니다. 그렇게 신라가 이루어졌고, 그 머나먼 지역의 왕족과의 혼인들이 이루아진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봐집니다. 그렇게도 이루어진다는 서실을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텅해서도 충분히 인정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의 동남부 자역민들이 지각의 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해 올라오수가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그렇게 인도의 허황후가 우리 신라의 왕족들과 만나 혼인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일이 그댜로 인정이 된다고 보아 집니다.
그동안 연구를 해오산 분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드러나는 우리 한 반도의 약사적 사건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준들이 해안성\ㄴ을 따라 이동해 오면서 우리 한반도
까지 둘어올 수가 있었구나 라고, 충분히 알수가 있다고 봅니다. 이동해 온 종족들이 거의 그 뿌리가 같았다는 의미가 될 것 같군요, 그래서 인도지역의 허황후가 우리 신라의
왕족들과 혼인을 하는 그런 정황이 잘 드러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군요, 오늘날에는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그냥 드러날 것이라고 봐집니다. 기왕연구를 한 것이라면 그런 것까지
세밀하게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그냥 잘 드러날 것이라고 보아 집니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이루어진 지형의 변화 등과 함께 그 역사적 기긴을 고찰해 본다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간이라고 보면, 인도의 끝자락에서 살던 분들이 이동을 해서 기후의 변화에 따라 아동을 해서, 바이칼 호수의 근처에서 살았던 종족들이 이동을 해서 오늘날 우리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그대로 보여지는 역사적인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라고 보면 될 것 같숩니다. 자는 살았던 분들이 기후의 변화에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오변서, 그 근처에서 살았던 분들과 그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 그대로 증명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집니다.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대로 잘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의 끝 부분에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해 온 오눌의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대로 잘 드러난 것이라고 확신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지약이 오늘날의 김해
평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철저하게 검증이 되는 순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같습니다.
본인 그냥 소설을 쓰세요
환단고기를 읽어보면 본인이 말하는 소리가 얼마나 소설인지 알 수 있습니다
@김도삼님~ 신라가 아니라 가야예요~ 가야~🤭
고대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단 몇 줄로 신화처럼 기록된 것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하죠..그래서 문사철 하는 겁니다.이제는 자연과학적 지식도 동원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 당시의 기후. 해류연구 등등의 지식들도 필요하죠..
파사석 가지고 오셨다는것은 육로가 아닌 해상으로 오셨다는거 아닐까요? 육로 오는데 파사석을 가지고 오실 필요가 있을까요?
그당시에는낙타나코끼리등운반수단이많고파사석은불교의상징이니까가지고옴.일부학자는기독교상징이라고하는분도있음
인도는 한반도와 비슷한 모양이고, 한국의 부산지역쯤 위치한 곳에 카니아쿠마리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허황후는 그 곳에 위치한 왕국의 공주이고, 그 곳 언어와 문화가 한국 특히 경상도와 많이 비슷합니다.
지금 제 여친이 이곳 출신이고 얼마전 한국에 왔습니다.
그녀의 할머님이 왕국의 공주였고, 강의에서 설명하신 많은 부분이 사실입니다.
다만,한가지 다른 사실은 , 공주가 인도 북부 출신인것으로 인도정부에서 조작하고 있고 , 그로인해 한국분들이 북부로 여행을 많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 팩트입니다.
그런데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라 인정받지 못하는 허황우~~
전라도 천년사를 통해 식민사학자들을 퇴출하고
임나는 한반도에 없었다는 학설이 자리잡기를 빕니다. 😊
허황옥의 이야기를 강의 하시려면, 서울대 고고학과 출신이신 김병모 박사님의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를 읽어 보아야 합니다.
허황옥의 선조들이 중국 보주지역에 집단이주 했으며, 허황옥의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이 중국 사천성 보주 허씨 종중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신정기"라고 하며 김병모 박사께서 직접 찾아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라 황실에서 황후를 배출한 외척인 허씨에 대하여 살펴 보아야 하며, 김일제의 후손으로 황후를 배출한 외척인 왕망 집안에 대하여도 살펴 보아야 합니다.
허씨와 김씨는, 이미, 한나라 황실에서 외척으로서 혈연적으로도 연관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가야까지 배를 타고 와서 별 연고도 없이 혼인을 맺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 학문을 하려거든 선학들께서 일생에 걸쳐 연구한 내용을 짚고 넘어가야 기본인 것입니다.
허황옥이 가져온 예물들로 봐서, 인도, 동남아, 중국등지는 이미 바닷길로 왕성한 교역을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 결혼이란 것은, 집단간의 결합인 것이며, 이해관계가 있을 정도의 지역적 인접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ㅇㅇ 불교가 제일 융성한 나라가 신라죠. 남북국(발해, 후기신라)시대를 거쳐 고리(고려) 역시 불교국가입니다. 골제인 성골, 진골만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외 등급은 그냥 평민들이라 왕이 될 수 없었고 혈통 유지를 위해 왕족인 친인척간 근친혼을 했는데, 외국의 여인을 기다렸다가 왕후로 맞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통하여 역관을 썼다는 얘기도 없고. 저는 예전부터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고 허황후는 원래부터 동이족. 김수로왕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맞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석가족이 살던 중천축국(현재는 네팔, 티벹)쪽에서 온 우리와 같은 민족 동이족이죠. 한국 선조들이 중천국국에서도 살았습니다. 원래 같은 민족 같은 종족이었는데 어떤 사유인지는 몰라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허황후, 그 오라비 장유화상도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들임.
이 분이 그 책을 안 읽어보고 이 연구결과를 발표했겠어요. 그 분과 다른 견해를 말했다고 봅니다. 나는 이 분의 주장에 더 공감을 합니다.
오순재 박사님도 직접 현장을 탐사하시고 이렇게 영상을 올리셨을건데요 오순재 박사님 의견에 더 믿음이갑니다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김수로도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
그리고 이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는
중국이 본토입니다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페르시아까지
글로벌적으로 연결된게 사국시대입니다
김해김씨는 예수님 자손이다 박혁거세는 누구 ㅡ 다음 검색
불교가 제일 융성한 나라가 신라죠. 남북국(발해, 후기신라)시대를 거쳐 고리(고려) 역시 불교국가입니다. 골제인 성골, 진골만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외 등급은 그냥 평민들이라 왕이 될 수 없었고 혈통 유지를 위해 왕족인 친인척간 근친혼을 했는데, 외국의 여인을 기다렸다가 왕후로 맞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통하여 역관을 썼다는 얘기도 없고. 저는 예전부터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고 허황후는 원래부터 동이족. 김수로왕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맞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석가족이 살던 중천축국(현재는 네팔, 티벹)쪽에서 온 우리와 같은 민족 동이족이죠. 한국 선조들이 중천국국에서도 살았습니다. 원래 같은 민족 같은 종족이었는데 어떤 사유인지는 몰라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허황후, 그 오라비 장유화상도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들임.
중국서남쪽에서 중개무역을 하던 종족으로 세력다툼에 밀려 기존에 교역을 하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가야와 이해관계가 맞아서 가야에 정착했겠죠..통역은 그들이 무역했던 사람들이라 서로 통역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겠죠..그리고 그들이 샤카족이었기 때문에 가야로 먼저 흘러들어왔던 샤카족과도 인종적 언어족으로 통했을 것 같기도 하죠..
ㅃㅃ
인도에서 왔죠 중국에서 태어난 단군손이 흘러 인도간거요 왕족끼리 결혼하는게 풍습인데 웬 외국인?기록도 있어요 단군손이라 수로왕이 데려왔어요
남북국 시대는 후기신라라기보다는 신라중대와 하대입니다.
신라는 골품제하에서 성골 진골 이외에도 귀족들과 양인과 천민이 있었죠.
고려 광종때 과거제가 생기고 부터 귀족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귀족이 완전히 없어졌죠. 왕족과 양인, 천민만이 있었죠.
유럽과 아시아에는 아직 왕족이나 귀족들이 있는 나라가 많죠.
😊
차나무의 전래에 허왕옥이 올 때 가져왔다는 역사적 사실, 녹차의 진실입니다.
인도인들이 녹차를 마신다고?..ㅋㅋㅋ
녹차는 중국땅에서 건너왔음
중국을 거쳐서 왔겠지요...
인도 갠지스 강변에 녹차(대엽종)나무가 있고
현재 김해지역에는 대엽종인 장군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신리시대 중국으로 부터 김대렴공이 가지고온 차나무는 소엽종이다
30분 10초에 보여주신 '봉황동 유적의 원경' 이 얼뜻 보기에는 전방후원분 비슷한 형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 시끄러워서 마음이 쓰이다 보니, 혹시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구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
살펴볼 필요함을 느낌니다
인도의 고대귀족은 고조선의 후예들 산스크리트어를 쓰던 귀족들이다 산스크리트 즉한반도의
사투리를 쓰던
이들이 인도에서귀족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다
대홍수 때 천산
산맥으로 피신
했는데 일부의
부족은 히말리아 산맥으로 피신 했다가 홍수시대가 끝나고 다시 평지로 내려올 때 부족별로 각지로 흩어지며 이별을 노래한 것이 아리랑
이라는 것이다
고조선의 후예들은 모두가 아리랑노래를 전승으로 부르며 살고있다고 한다
좀...터무니 없는 주장같네요...강상원박사의 주장...산스크리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반도로 흘러들어와 한반도에 산스크리트어가 퍼졌다면 몰라도 어떻게 한반도사람들이 인도로 흘러 들어갔겠습니까..
재미있다. 海伴川
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인도의 춤사위와 아끼가 그러져있는데..이걸 보건데 김해 뿐만 아니라 삼국들이 일찌기 비슷한 시기에 불교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요...
강상원박사 말씀에 천축국이 고조선의 일부라는데. 헷갈리네예
천축국이 고조선의 후예라는강상원박사의 이론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석가모니도 왕족이었다고 하죠?
즉 귀족집안 이라는 겁니다 고조선의 후예들 가문이지요 고대인도의 귀족은 고조선의 후예들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러증거들이 있기에
풍습 언어들이 대표적 증거지요
@@변영주-n1h 동의합니다
산스크리트어 509페이지에 석가모니는 단군의 자손이다 등재 ㅡ 강상원 박사
인류언어의 뿌리는 우리말 사투리다 ㅡ 다음 검색
산해경에 "조선 천독" 이라고 나온 부분을 잘못 이해해서 천독 = 천축 = 신독 = 신두 = 인도 라고 한것임.
산해경의 천독 은 상서 미자편 에 "천독강재황은방" 에서 나오는 천독 으로, 여기서 독 = 둑 = 치우 임.
발해에서 왕의 호칭이 가독부 인데, 이게 큰 독 애비 라는 소리임. 큰도깨비 = 도깨비 = 치우
🎉
단번에 가야로 흘러들어온게 아니라 무역을 하면서 이 곳 저 곳에서 귀화의사를 타진도 했겠죠..그러면서 서서히 이동하며 가야에 그 무리들이 도착했겠죠. 여러세대를 거쳐서 왔을 수도 있었겠죠..
김해고분군이 가야고분이란'증거는 무엇인가요?
그냥 일제가 이곳이 가야라고 했으니 가야고분인가요?
아유타국은 네팔 바로아래 내륙국인데 항해술이 뛰어날 가능성이 적죠. 그러니깐 타밀족과 허왕후와 상관없는 국가입니다. 허왕후가 가져온 물건에는 중국물건도 있고 중국 사천성에 인도 허씨 집성촌이 있으니 중국 해안가로 왔다가 가야로 왔을 현실적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타밀어족의 원래 고향이 앗시리아 망했으니 인도 북서쪽 카슈미르 근처가 맞을 것이고 지도에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아유디아는 다른 왕족에 망했고 약간의 거리차이가 있습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타밀이 아니라 벵골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가야사를 일본에 빼앗기면 안된다.
남천축국으로보지않는다. 엿태국에 아유다국이 있었고 지금도 그지역에는 쌍어문이 새겨져 있음으로 보주허씨가 남천한것으로 봐야함!
태국의 아유다국은 훨씬 후대요. 인도의 아유다국에서 나중에 태국으로 일부 세력이 이주한 걸로 보입니다.
식민지가 아직 존재한다는 증거다 ㅋㅋ 식민사학존재는
무슨 인연으로 인도의 공주께서 수만리 떨어진 가야국 왕에게 시집을 왔을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설명이 무척 궁금하군요~!!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김수로도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
그리고 이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는
중국이 본토입니다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페르시아까지
글로벌적으로 연결된게 사국시대입니다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밀려나온 거라고 지난 영상에....
나도 이것이 젤 궁굼했어요. 그래서 나름 연구한 결과를 말해볼게요. 한반도 토착 민족은 농경민족이였음. 이 농경민족은 동남아에서 쌀농사 방법을 갖고 온 드라비아 민족이였음. 이후 북방의 유목민족은 기후 변화로 인구가 증가하여 새로운 목초지 찾아 남하하여 한반도로 유입되었음. 유목민족은 강력한 철기로 무장한 기마민족으로 농경민족을 손쉽게 복속시켰음. 북방의 유목민족 중에 가장 많이 남하한 세력이 김수로왕이 였음. 김수로왕이 복속시킨 농경민족은 7부족이였음. 7부족은 김수로왕을 왕으로 추대하는 대신 혼인동맹을 맺기로 하였음. 하지만 부족장의 딸을 왕비로 추대하기엔 김수로왕의 권위에 비해 많이 부족한 느낌이였음. 부족장들은 김수로왕과 대등한 권위를 갖고 싶었을 것임. 하지만 자신들이 김수로왕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임.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7부족의 본토에 있는 강력한 세력의 공주를 앞 세워 7부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을 것임. 본토의 공주라면 김수로왕과 비등한 권위를 갖는 다고 생각하여 허황옥이 한반도로 오게된 것임. 그런데 허황옥이 진짜 인도에서 출발했는지 아니면 중국 남부의 허씨 집성촌에서 왔는지는 불확실함. 어찌 되었건 허황옥은 동남아 최고 세력의 공주였을 것임.
@@jameskoo7137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다 중국이 본토입니다
한반도는 소도 비슷한 개념으로
고려시대에는 아예 변방지역이었어요.
조선시대부터 우리영토가 한반도로 축소되면서 한반도가 생활터였죠.
김수로 허황옥은 같은 고향나와바리 사람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쪽으로와서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지역입니다.
한강이 한반도 한강이 아니라 중국한강이고
평양이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중국평양이고
전주가 한반도 전주가 아니라 중국전주입니다.
김수로의 가야 구지봉 거북이 바위 거북이 등껍질 바위 이런건 한국에 없어요
한국인들이 어리버리하고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는것.
역사에 관심있었으면 진작에 뜯어 고쳐야할게
한국역사에여
한국역사는 맞는게 별로 없어요.
고려왕건도 중국에서 태어났고
한반도와 관련도 없는 사람.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적도 없고 중국에서 했어요.
박혁거세가 외가로는 스키타이왕자(페르시아왕자) 였으며
몽골 중앙아시아 유럽 러시아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까지 세계를 통일한 인물인데도
시골촌장처럼 가르치는게 한국역사에여.
이씨
조선은 여진족의 세운나라인데
민족말살정책과 역사왜곡을 국가 정책적으로 했어요 수백년간..
아틸라가 우리나라 사람인데 아는 사람들도 없어요.
김해김씨는 예수님 자손이다 박혁거세는 누구 ㅡ 다음 검색
김해는가야후예들이라던데~¿.
아직도 임나일본부를 신봉하는 강단식민사학은 반성해야
인도 북부하고 "틀리다" 가 아니고 다르다가 맞는 표현 아닌가요?
김해 김씨는 위내시경 상 지나친 위하수를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인도 파키스탄 지역사람과 유사합니다.
1.기원전에 해양루트를 이용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현재 유력한
해양역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2.김해에 출토된 인골에 대해
TV에서도 DNA조사 결과에
의해 인도 또는 남방족이
많다고 나옵니다.
많다는 것이 방송되
인도에서 직접 배타고 왔다라고 보는것보다 인도 아유타 왕조가 망해서 중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허씨 집성촌이 있음) 중국에서 난리가(왕망과관련있음) 나서 가야로 왔다는 설도 있는데
저 역시 하양 허씨이고 허황옥 후손이라고 하지만 어뗗게 인도 지방에서 한반도까지
시집 오셧다는게 이해가 안감니다. 요즘처럼 뱃길과 도로길과 치안이 안전하다면 몰라도
그당시 위험을 무릎쓰고 먼길를 오게 되엿을까요? 오랫 동안 먹거리도 해결하려면 상당히 힘들텐데 말이죠.
제가 미국서부 사막 오지를 개 밥 먹으면 한달간 차박 여행 해보면 짐작이 가죠. 그게 가능하냐는 거죠?
그리고 식민학자들의 의해 한반도 역사 왜곡이 심해서 믿기 어려운 것도 잇지만요 등등...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김수로도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
그리고 이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는
중국이 본토입니다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페르시아까지
글로벌적으로 연결된게 사국시대입니다
토르가 세계를 일통해서
실크로드가 있었어요
실크로드라는 말이 신라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김수로도 인도 티베트 페르시아 나와바리 사람으로 같은 나와바리
허황옥과 결혼한것
그리고 가야의 본토는 중국지역입니다
약간의 시기는 다르지만 이란 사산조 이전의 이란인들이 신라와 교역을 한 기록이 여럿 있습니다.
이란은 인도보다 훨씬 멀죠.
동남아 지금의 인도네시아 여러 섬국들도 페르시아 인도와 무역을 많이 했죠.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엄청난 규모의 해적질과 중국의 해금 정책으로 그 뱃길이 오랫동안 끊겨 남아 있지 않을 뿐 입니다.
@@ok.kr-sun 토르가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외가로는 페르시아 왕자입니다
한반도로 영토가 축소된건 조선시대부터..
페르시아를 점령했으니 당연히 교류가 있죠
걸어가던 배를타던 어디를 못가겠노. 시간이 걸리는것뿐
김해김씨는 예수님 자손이다 박혁거세는 누구 ㅡ 다음 검색
역사카테고리 댓글들은 정말 특징이 있네. 첫줄은 뭔가 있을듯 흥미롭게 시작하다가 마지막줄에 광기로 끝남.
드라비다 족이면 검은 피부였을 긴데 ...
동남아가 검은 피부임. 이집트 -인도- 동남아 - 중국 남부 - 한반도로 해양문명이 이동함.
신라김씨. 허황후들의 조상은 다 고대 재중 교포, 재인도.스리랑카 교포들 후선이지 외국인이 아님.
모두 고조선의 후예들이다
@@변영주-n1h 고조선은 만주족이지 한국뿌리가 아님...
@@jkim949 뭘좀 모르니까 이런 헛소리를 하지.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쓰여진 만주족의 역사서 "만주원류고" 읽어봐라.
만주족은 자기 조상들이 "삼한, 부여, 백제, 신라, 발해, 숙신, 읍루, 말갈 여진" 이라고 했다.
뭐 이상한거 못느껴? "고조선, 고구려" 는 자기 조상에서 빼놨다는 거다.
그리고 "흉노, 선비, 거란, 돌궐, 몽골, 한족" 도 자기 조상에 껴주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만주족이 고조선 후예야?
마한인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도 전혀 관계가 없음.
@@yonghanmo9178 당나라때 고구려 유민들의 묘지명에 스스로를 "요동조선이" 또는 "요동삼한인" 이라고 표기했씀. 적어도 당나라때 고구려인들이 스스로 고조선, 삼한의 후예라고 여겼다는 1차적 증거 사료임.
금관가야 고분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 인골에 일본 죠몬인 유전자가 나왔습니다. 이래도 인도 타령할겁니까?
역으로 생각하면 신라인이 일본으로 갔을 경우는 없을까요?
인도에서 와봤자, 허황후와 그 하인들 몇명이 왔을 뿐인데, 고분에 있는 인골에 까지 유전자를 미치지는 못했겠죠.
군장 묘에 합장된 노예였나 보죵!!!!
타밀어와 공통점이 많은 언어 ? 한국어 일본어
허황옥은 인도에서 온 것이 맞습니다. 함께 들어온 자들의 행적을 “영주도마상‘ 검색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 건너가 복음을 전파한 인물입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 했어요 기독교를 허황옥이 들여 왔다는 얘기도 있어요 김해가면 예수아라는 이름을 새긴 돌이 있다죠
@@yoyoungkim8692그런 돌이 어디 있나요?
어차피 허황후도 동이족여인입니다
동이족은 만주족이지 허황후와 상관없음.
감사합니다.~♡
허경영
도마 사도 가야시대때 가야는 기독교 국가였다 도마사도의 글씨가 있고, 허왕후가 싣고온 돌탑은 5개 즉 빵다섯개와 문양에 물고기 2마리 오병이어 예수님의 기적, 한국은 제사장의나라
아니지. 예수가 드라비다의 불교를 알게되었겠지.
징기스칸이 어딜 못가나 한민족 이 어딜 못가냐 고향으로 돌아 왔을뿐
징기스칸이 못 간 곳도 있어요.. 베트남에 3번 쳐들어갔다가 세번다 쳐맞고 울면서 되돌아갔음.
김해김씨 족보에 허황후는 보주허씨라 되어있는데 보주는 지금의 사천성에 있는것으로 양자강을 따라 뱃길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동경로 설명이며 도착지점이 현재의 한반도 김해가 아닐것으로 보입니다. ㅉㅉㅉ
왕망의 신나라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죠. 왕망의 고모가 전한의 황후 였죠 (전국옥새 땅바닥에 집어던진 바로 그년), 왕망의 외척이 김일제의 후손이고.
왕망의 고모 황후 왕씨 바로 전에 황후 한게 허씨 입니다. 다시말해 김씨일가, 허씨일가는 전한에서 한가닥 하던 집안들 이라는거죠.
그러다 왕망의 신나라가, 후한에 멸망당하니까, 김씨들이 살기위해 바다건너 한반도 남쪽에 정착한게 김수로 고. 김수로가 한반도 남쪽에 정착해서, 안정되자, 중국에 사람을 보내 잘 알고 지내던 허씨 일가에 여자를 보내달라고 한거고, 그래서 온게 허황옥 인거죠.
김씨들은 전한에서 잘나가던 흉노계 집안, 허씨들은 전한에서 잘나가던 인도 불교계 집안 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나라 이름도 불교 성지 "부다가야" 를 따서 지은거고.
인도 건축물이 훨씬 세련되고 멋있다. 한국에 오니 좀 초라하게 변했군.
너무 길어서 이만 나갑니다.
허황옥이라는 것 자체가 불교소설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창조한 인물입니다. 원래 허씨는 허황옥 이전에 신라 건국기에도 존재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반에 이미 허루(許婁)라는 허씨족이 나옵니다.
일연이 할일 없어서 소설을 썼을까요... 일연의 삼국유사는 일연 스스로의 생각을 기록한건 단 한줄도 없고 모두 고대 기록을 참고하여 쓴 것입니다... 혼자만의 사고방식은 버리세요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김수로도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
그리고 이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는
중국이 본토입니다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페르시아까지
글로벌적으로 연결된게 사국시대입니다
허씨가 있었다는 건 허황옥이 뜬금 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일 뿐입니다.
김해김씨는 예수님 자손이다 박혁거세는 누구 ㅡ 다음검 색
삼국사기도 고려때 편찬한것임... 1세기때 고려인들이 어떻게 암?
김해에 장유화상이 지은 장유사, 은화사등 절은 왜 있는거임?ㅋ
한반도로 온것이 맞나요? 허왕후가 왔다고 전해지는 곳에 살고 있는데 이곳으로 왔다는것을 믿을수 없군요
혹시 책보고를 아시나요?
ㅋㅋㅋㅋ 여러분! 부산은 사실 부탄에 있었습니다!! 밀양은 사실 밀라노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은 사실 영국 옥스포드에서 있었습니다!! 식민 사관에 빠져서 이게 말이 안 된다 생각하시는 거죠???
@@only2sea 부산이 대륙에 푸젠성 부사산입니다 부사산이 후지산이라고 합니다 알려면 똑 바로 아세여 부산은 원래 부자 부자를 섯어여 중국 富山 실록의 기록입니다 이후 현재 부산 곡갱이 부자로 바뀌었다 참 알지도 모르면서 원문 사서나 보세여
@@only2sea
《태종실록》(1431년)에 富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며[6] 《경상도지리지》(1425년) , 《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경상도 속찬 지리지(1469년) 따위에 “동래부산포”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라 하고, 같은 책 삼포왜관도에도 “동래현 부산포”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부산포는 “부자 富”를 썼다.
@@jksmm1 이야~~ 그러면 부산도 중국 역사네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반도는 그나마 있던 역사도 없던 게 되어 버리네요. 고인돌만 잔뜩 있었던 원시인들이었네 우리는... 뭐 아님 국가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는 중국 변두리의 역사?? 중국이 동북공정해도 할 말이 없고 부산에서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면, 김치가 중국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네요. 대단해요.
@@only2sea 맞습니다 이땅은 원주민 500만만 살던 곳 인데 그 원주민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기록은 없답니다 부산도 대륙이고 모두 대륙지명을 가져온 겁니다
그래서 문디들이 살 살 그러는구나
드라비다는 인도 북부입니다
남부?
남쪽
허황후는 인도가 아니고 태국사람입니다 ...
아유타국이 망하고 태국의 비슷한 이름의 국가로 이전 했다는 썰도 있으나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압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죠.
태국인? ㅋㅋㅋ
허황후가 홍어를 좋아했다는 말이 있다고 하던데?
경남은 신라라기도 어럽다 백제인들인데
김씨부터 그러닌까 웃기는 거지 흉노족이라고
하지 않나 ㅎㅎ 김이박이 어떻게 훙노냐 ㅎㅎ
무열왕이 흉노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밝혔쟎나 ??
마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부족 국가였지
그 당시에 인도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를 인력으로 움직이는 선박으로 이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순항해도 몇 달은 걸린다. 그런 상황에서 일반 뱃사람이 아니라 귀족 공주가 이주해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 | 세계 최초 최장 결혼항해 '허황옥 신행길' 72시간을 과학으로 추적한다.
가장의문스러운것은 김수로왕이 허황후가 올걸 어캐알았냐는거죠 후에 만들어진이야기인가?????
참 너같은 어리석은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것
@@user-pl5fw4cr4q 설명을해바라 어리석은이한테 궁금해서그란데
@@김승욱-n4c연락 했겠죠. 혼사면 대사인데.
사주단지를 미리 보낸것임...
김수로왕 허왕옥은 같은 나와바리 고향 사람이라 결혼한것
토르가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티베트 인도 페르시아를 점령했어요
토르와 연관있고 김수로도 우리나라 사람아닌데
토르와 친척이라 우리쪽으로 온거에여
김수로도 김씨아닙니다 다른성씨인데
우리쪽으로와서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것
김해고분군 남인도 타밀족
우리랑 같다
경상도쌀못하고 살 이라함
곤지곤지 도리도리 같은말많다
식민사관, 반도사관인데 오늘 또 올라 오다니;;;
이놈은 친일잔재가분명하다
가야라는 지명자체가 고려시대때 불교식으로 바뀐겁니다. 그전에는 임나, 가라 등의 지명이었습니다. 김해 지역은 왜와 관계가 가장 깊고 인도, 불교와는 하등 무관한 지역, 인종이었습니다.
김해지역 일본애들이 와서 흔적 찾으려고 혈안이되서 탈탈떨어도 왜 흔적 하나없어 보고서 작성 하나 못했는데,
뭔 왜와 가장 깊다 구라질을 하시나요
임나는 큐슈지역에 있던 가야 또는 백제의 분국이었습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을 한반도에서 찾는것부터가 망상적 역사관에 따른 사고방식이죠... 백제가 요서를 경략했기 때문에 중국사료에 그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죠.. 삼국사기와 유사에 임나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임나가 한반도내의 지명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역사관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일본우익의 식민사관 추종하는 인간이란 말밖에 듣지 못할 것입니다
@@kjkosa 고분 출토 인골 남자3명줕 2명 부계하플로가 d2로 일본에만 존재하다시피 하는 일본일 고유 하플로입니다. 나머지 o1b2조차 일본과 한국 고유 표지 유전자구요. 인도요? ㅋ 여자들도 대부분 모계 D4와 M계가 나온걸로 압니다. 동아시아 고유유전자들이고 현대한국인보다 일본과 가깝습니다.
@@조둘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요…
일본가면 한반도 도래인들 넘처나는데…
@@kjkosa 그게 흔적하나도 없는건가요? ㅋㅋ 앞에 본인이 단 답글좀 보시고요. 그게 본인의 현재 삶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짜증이 나시죠? 그냥 역사는 역사로 즐기시고 보다 과학적으로 접근한 것이 감정적인 선동보다 좀더 진실일 수 있음을 아시길 바랍니다.
그럼 태양계, 곧 태양에서 왔다고 해야지요.
태양처럼 생겼으니!
최소 남미에서도 왔다고 해야지.
그곳은 태양신 숭배의 원천?
이니까.
그건 아니죠. 남미에서 온 게 아니라 우리가 남미로 간 거죠.
아사달 = 아스땅 = 아스탄 = 아즈탄 = 아즈텍 문명의 최고 지도자 명칭은 대대로입니다. 고구려 관직명을 똑같이 사용하였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가서 관직을 했으니까요.
@@borntosingsing283 갈 때 비행기로 갔나요?
@@홍성규-v4z 예 저는 30년 전에 갔기 때문에 당시에는 직항이 드물어서 일본 경유해서 갔어요.
일본 도자기 자체가 다 우리 기술 받은 걸로 만든 건데 무슨 일본 거가 어딨어
삼국사로 전쟁사 패권주의로 왜곡 했으니
문화에 원류도 못찾고 차를 인도에서 가지고
왔다는둥 참 갑갑 하오 ㅎㅎ
최근 중국대륙에서 조선초까지 살은 지도가 나왔는데 무슨 이상 소리를 하는지 유적 유물도 대륙서 수집 했다는 증언도 있는데 재밋네 그려 ua-cam.com/video/_5Vvd2foRVQ/v-deo.html
허황옥이란 단순한 비유야 수로왕이란건 帝를 말하는거야 당신들이 생각하는것보다 스케일이커...수로왕릉은 大仙陵이야
교수님 좀더 연구 하셔야 겠네요. 타고르가 드라비다인이라고요? 아요디아가 언제 망했는지? 타밀어가 우리말과 비슷한 발음이 많다고요? 적어도 시대라도 맞춰야지요? 좀더 연구하시고 방송 하세요
가야만 연구하고 신라역사는 엥간하면 연구하지말았으면....
한민족 후손이지만 챙피스러워 얼굴을 못들겠어요.
수치스런 역사는 매장이 답이얌!!!
정신차립시다
김수로왕이라면
42년에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
아니면 369년에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 입니까
시간에 맞춰서 누구의 아내가 허황옥입니까
최근 연구자료를 가지고 떠드세요 ㅋㅋㅋ 최근 대성동 고분 인골 분석 유전자 결과 전부 일본 원주민 죠몬인 계통으로 나왔는데 뭔 드라비다니 타밀 같은 소릴 하고 앉았네 ㅋ 상식적으로 2천년전에 인도인이 김해까지 항해하는 것이 진심으로 가능하다고 믿고 떠드는거냐.
일본 원주민들은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제일 처음 나왔을때,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 시커먼 피부에 꼽슬한 머리카락을 가진 인종임.
그들이 아라비아 반도, 인도, 인도 차이나, 필리핀, 대만, 오키나와, 일본열도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을때 일본까지 진출한 인종임.
그러니 인도 남부 타밀인, 필리핀 원주민, 오스트랄리아 원주민, 일본 아이누족이 다 비슷한 인종임.
다 대륙에 있는걸 어찌 한반도에 있다고 주장하시는지 ㅠㅜ 안타깝습니다
총균쇠에 인도 사람들이 일본 어디에 살았다고 나옵니다.
한번 찾아 보세요, 인도에서 한국까지 바로 온건 아니고요
그 들이 살던 가까운 일본에서 왔다고 보는 게, 과학적입니다.
그림 비슷한 문화는 여러 군데에 다 있는 거고요...
그게 뭔 고고학적으로 증거가 되겠습니까?
이분도 갑갑하네 이주 기록도 있는데 저렇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대륙에서 살았다는게 곧 밝혀지고 공개 될건데 100년이 넘어서 고문서가 많이 해제되는 중인데 어찌 하려고 하는지 한반도 이주 120년이라 하여 건국120년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그걸 속이는 중이라니 참 역사를 가져오지 말던지 아니면 미국처럼 이주해서 건국 했다고 하던지 120년전 한반도 이주기록 공개해 두었으니 검색하여 찾아 보시길 바란다
아리안은 아리랑족 우리민족
가야는 인도에 있었고 대제국
한반도에 가야는 없었다.
공부, 연구 한참 더하세요.
직접 인도. 중앙아시아 연구하
세요. 신라,백제.가야는 인도의
대제국 이었습니다.
한반도에 비정하지 마세요
허황후가 2천년전에 수만리
한반도에 왔다구요?
무슨 배로? 쪽배로?뗏목?
이런 강의 하시지 마세요.
아직도 이부분에서 해메고 있으면 되오 ㅎㅎ
컴플렉스 빠진 민족 ㅎㅎ
그런 공주가 없었다고 하잔아요.
오순제 교수는
역사 소설이나 쓰기 바랍니다
식민사학자라는 스승들에게서만 역사를 배웠으니 ㅉㅉ.
뻐다귀 가지고 장난하지 마라.
허황옥은 인도사람 아닙니다
보주태후가 무슨말인지
알아보셔야합니다
보주는 중국대륙에있고
양자강타고 가락국에
왔지 한반도에는
온적이 없습니다
강의하려면
제데로 공부해야합니다
김해김씨 후손입니다
제발 제데로 알고
강의 해야합니다
허황옥은
한반도에 온적이 없어요
돌배를 타고 돗달고 온다?
한심한 발언입니다
허왕옥은 또 뭐야?
우선 의사는 과학자가 아님. 그리고 그런 DNA검사결과 나온 적 없음. 2004년이면 분자인류학 초초초창기 때. 별 유의미한 분석이 있을 수 없음.
의사가 과학자가 아니면 뮈라는 겁니까? 생리학,약리학,병리학.세포학.유전학.분자생물학.해부학.현대물리.현대수학.생화학. 임상메서 내과외과 등 수많은 과 다 배우고.이것 중에 과학 아닌게 하나도 없는데 의사가 과학도가 아니다면 뭐가 과학도라는 겁니까?
2000년대 초부터 DNA 검사가 이루어졌음
@@기러기-r6y 자동차 정비사가 물리학자가 아닌 이유와 같음.
@@변영주-n1h 너의 무식에 경의를 표한다.
김해김씨는 예수님 자손이다 박혁거세는 누구 ㅡ 다음 검색
한국어로 내려온 "새로운 성경",,,,,,,,,,영원한 생명의 양식,,,,,,,,아이유(새신발),,,조미미(먼데서오신손님),,,60대이상환영,,,새천년
엉터리^^ 한반도에는 가야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끼어 맞추기..역겹습니다^^
맞습니다
한반도에 가야가 없었다니? 그럼 어디 있었음?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굴된 가야계 유물은 대체 뭐임?
김철은 토착왜구인가?
가야는 중국에서 건국 해서
한반도 일부지옄도 차지했다고 봄.
당나라가 가야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도 가야 ㅡ 다음 검 색
이건 뭐징??? 😤😪
이성계 정도전의 앞잽이질 정도전역적질 하고 인간백정질 한 하륜이 학자? ㅋ
얘도 식민사학자여?
식민사학자라고 매도하는 것들이
친일잔재들이다
언어문제는 없었나요???
황옥 여사와 수로가 통역없이 대화가능???
중국어로 외교함. 지금의 영어처럼.
김해는 지금의 중국상해다
허황후는 대륙에 있는데 왠 김해 타령하죠?
허황후 얘기는 인도와 가야에서 유물과 유적으로 증명된 것임
아가리파이터인가?닥시청해라
책보고가 어렷 망가뜨리네. 지명 몇개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