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충설명도 해주시고 조언도 보이고 또 비판도 보이는군요. 그냥 비판이 아니라 구체적 내용을 적어주시고 또 어떤 분은 이렇게 해라하고 대안도 제시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제가 잘못 알고 있던 내용도 다시 공부하게 되네요. 참 감사합니다. 음... 인물 관련해서는 나중에 한 번 따로 다룰게요. 저와 여러분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부분,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이 꽤 있지요. 그리고 포격과 기뢰 관련 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축약되었는데 통신이 재개되고 나서 갑자기 포격을 하니까 지근거리까지 최대한 끌어들인후 기습포격한 것처럼 되었어요. 정말 완전 기습이었죠. 심리적 마비 효과도 대단했고요. 뭐 그렇지만 터키군의 방어노력에 대한 평가절하처럼 느껴진다는 지적은 참 고맙습니다. 맞는 말씀이예요.
1차 전투인 해군주도의 해전이 실패하여 해군장관인 처질이 사임하고난후 육해군 연합작전으로 변경하여 2차로상륙작전을 하게됩니다... 전체를 Gallipoli campaign 이라하고 1,2차를 각각 Dardanelles battle, Gallipoli battle로 나누기도 합니다
토전사와 같이 보면 더 좋아요. 근데 기뢰설에 대해선 좀 갈리네요. 결과적으로 기뢰 소해에 실패해 배들이 그거 건드려 펑펑 터지는 것은 같은데 토전사는 오스만군이 헌신적으로 작은 배까지 동원하며 기뢰를 열라 깐 거를 높이 사는데 여기선 오스만군의 통신마비로 정말 우연의 기회가 생겨 영프함대가 허둥대다 기뢰에 쾅쾅 당한걸로 나오네요. 토전사 갈리폴리편에서 나온 해전이 보편적이지 않나 싶은데...일단 승자인 터키측에서 그때 썼던 배를 역사박물관처럼 활용하면서(토전사에 나옴) 엄청 강조하기도 하고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말이죠. "적군의 통신장비 마비"로 인해 혼란에 빠진 영프군이 기뢰를 건드렸단건 영국측의 주장인데 우연 때문에 진거라며 정신승리 하는 것 같지 않나요? 애초에 기뢰 제거에도 사력을 다하지 않아서 징발한 민간인과 민간인배더러 시킨 양반들입니다. 전함에 딸려온 군함들이 많았음에도 말이죠. 돌이켜보건대 해군과 첩보조직으로 만들어진 대영제국이 해군에서 그딴 정신승리로 만족하던 순간부터 쇠락은 예고되지 않았나 그리 보입니다. 그리고 전장이 계획대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지만 저는 우연이 아닌 필연에 더 점수 주고 싶네요. 먼저 노력한자에게 하늘이 기회를 주는 것이죠. 그리고 작은배로 기뢰깔기 어렵다고 했는데 토전사에 나온 갈리폴리의 오스만군인들 진즉에 개혁을 안해서 문제된 무거운 대포와 포탄도 전사로서의 자부심과 가오로 끌고간 양반들입니다. 전 악으로 깡으로 기뢰도 깔았을거 같습니다. 6.25에서도 전사답게 탄이 떨어지자 떼거지로 달려드는 중공군 상대로 백병전도 하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기뢰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뭐 결론은 똑같은 것이네요. 결국 터키는 기뢰정으로 기뢰를 깔았고 어찌저찌해서 영불 연합 함대는 연달아 그 기뢰와 접촉해서 무려 6척이 줄줄히 피격 된것이고. 암튼 전공은 전공이지요. 영국으로서는 정상 상황에선 그런 뻔한 미끼밥 안문다 라고 정신 슨리질 하는것 같은데 결과는 함대 주요 전함의 큰 피해였기 때문에 결과가 일치하는데 굳이 논란이 될 부분은 지엽적인 문제라 하겠습니다. 좌우간 이후 영불 함대의 주력함은 다르다넬스 해협 밖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죠. 요즘같이 소해정이나 기뢰 소탕전을 할 기술이 있던 시대도 아니고,,,
긴 전투를 짧은시간에 정리하시다보니 오류가 있습니다....1차공격은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포격전을 함 11분에 있는 영상처럼 갈리폴리반도 북쪽이 아님... 둘째 1차공격은 상륙함대가 아닙니다 그냥 해군만으로 공격한 것임 (소규모 해병대가 있었지만) 셋째 2차공격시 오스만군이 해안방어에 지뢰를 설치했다는 것은 오해를 살수있습니다... 오늘날 생각하는 대인지뢰가 아닙니다...어뢰의 탄두를 매설해 놓는수준
그것도 있었죠. 마르마라 해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장악해야 흑해를 통해 러샤의 세바스토폴과 연결되고 러샤 역시 흑해함대를 끌고 지중해로 나와 연합군 해군과 힘을 합칠 수 있었으니까요. 그보다는 여기를 먼저 돌파하면 수도인 이스탄불을 러샤 흑해함대와 함께 해상에서 봉쇄하고 잘하면 상륙전을 통해 수도 점령도 시도해볼 수 있었으니 작전 목표가 꽤 유혹적인건 사실이였지요. 작전이 너무 빡세서 그렇지.
무스타파 캐말에 대한 설명이 너무 틀립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한것이 아니고 오늘날 사관학교 출신이고 초급장교시에는 비밀결사 조직에 참여하는등 청치활동을 많이하였고 전투경험은 리비아에서 이탈리아와 전쟁에 2년 참여한것이 전부고 갈리폴리전투시에는 34살이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것이지 그때까지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아님
밑바닥은 사실임. 저당시 사관학교 가는건 주로 오스만 제국에서도 귀족자제들이 가는거. 그에반해 무스타파 캐말처럼 평민출신으로 사관학교 간 인원들은 몇명 되지도 않음. 물론 빈민가에서 산 정도로 엄청나게 가난한건 아니지만, 오스만 제국내의 귀족출신이나 잘사는 평민들과 비교하면 낮은건 사실임.
이게 처칠 최악의 흑역사다보니
다키스트 아워에서도
갈리폴리로 만족하지 못한거냐는 핼리팩스의 대사에
처칠이 벌컥 화를 내는 장면이 있을정도죠ㅋㅋㅋㅋㅋ
"그건 내잘못이 아니야!"
6ㅈ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충설명도 해주시고 조언도 보이고 또 비판도 보이는군요. 그냥 비판이 아니라 구체적 내용을 적어주시고 또 어떤 분은 이렇게 해라하고 대안도 제시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제가 잘못 알고 있던 내용도 다시 공부하게 되네요. 참 감사합니다.
음... 인물 관련해서는 나중에 한 번 따로 다룰게요. 저와 여러분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부분,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이 꽤 있지요. 그리고 포격과 기뢰 관련 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축약되었는데 통신이 재개되고 나서 갑자기 포격을 하니까 지근거리까지 최대한 끌어들인후 기습포격한 것처럼 되었어요. 정말 완전 기습이었죠. 심리적 마비 효과도 대단했고요. 뭐 그렇지만 터키군의 방어노력에 대한 평가절하처럼 느껴진다는 지적은 참 고맙습니다. 맞는 말씀이예요.
결정적 하루의 가장 큰 문제 - 매주 안 나온다, 짧다. 앞으로 결정적 하루는 순삭밀톡이 아니라 따로 코너 해서 나와야한다. 진지하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1차 전투인 해군주도의 해전이 실패하여 해군장관인 처질이 사임하고난후 육해군 연합작전으로 변경하여 2차로상륙작전을 하게됩니다... 전체를 Gallipoli campaign 이라하고 1,2차를 각각 Dardanelles battle, Gallipoli battle로 나누기도 합니다
현기증납니다. 담편좀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갈리폴리 전투 영화로도 제작된걸로 아는데 보진않았지만.. 오늘도 재밌게.봤습니다.
보람이형 너무 재밌어요
5:03 에 부대 혹을 군단을 뜻하는 corps의 발음은 코r-스 가 아니고 코r- 입니다. 제가 영어가 약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제일 기대하는 코너
미 해병만 코어고 다른 군단은 콥스 맞아요
롤리폴리 너무좋아 사랑해
토전사와 같이 보면 더 좋아요. 근데 기뢰설에 대해선 좀 갈리네요.
결과적으로 기뢰 소해에 실패해 배들이 그거 건드려 펑펑 터지는 것은 같은데 토전사는 오스만군이 헌신적으로 작은 배까지 동원하며 기뢰를 열라 깐 거를 높이 사는데 여기선 오스만군의 통신마비로 정말 우연의 기회가 생겨 영프함대가 허둥대다 기뢰에 쾅쾅 당한걸로 나오네요.
토전사 갈리폴리편에서 나온 해전이 보편적이지 않나 싶은데...일단 승자인 터키측에서 그때 썼던 배를 역사박물관처럼 활용하면서(토전사에 나옴) 엄청 강조하기도 하고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말이죠.
"적군의 통신장비 마비"로 인해 혼란에 빠진 영프군이 기뢰를 건드렸단건 영국측의 주장인데 우연 때문에 진거라며 정신승리 하는 것 같지 않나요? 애초에 기뢰 제거에도 사력을 다하지 않아서 징발한 민간인과 민간인배더러 시킨 양반들입니다. 전함에 딸려온 군함들이 많았음에도 말이죠.
돌이켜보건대 해군과 첩보조직으로 만들어진 대영제국이 해군에서 그딴 정신승리로 만족하던 순간부터 쇠락은 예고되지 않았나 그리 보입니다.
그리고 전장이 계획대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지만 저는 우연이 아닌 필연에 더 점수 주고 싶네요. 먼저 노력한자에게 하늘이 기회를 주는 것이죠.
그리고 작은배로 기뢰깔기 어렵다고 했는데 토전사에 나온 갈리폴리의 오스만군인들 진즉에 개혁을 안해서 문제된 무거운 대포와 포탄도 전사로서의 자부심과 가오로 끌고간 양반들입니다. 전 악으로 깡으로 기뢰도 깔았을거 같습니다. 6.25에서도 전사답게 탄이 떨어지자 떼거지로 달려드는 중공군 상대로 백병전도 하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기뢰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저도 이 의견에 더 동의합니다
저는 두가지 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둘 중에 뭐가 더 주요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둘 다 자기 입장에서 이게 중요했다 라고 서술하고 있으니 진실은 그저 역사속에 허허....
뭐 결론은 똑같은 것이네요. 결국 터키는 기뢰정으로 기뢰를 깔았고 어찌저찌해서 영불 연합 함대는 연달아 그 기뢰와 접촉해서 무려 6척이 줄줄히 피격 된것이고. 암튼 전공은 전공이지요. 영국으로서는 정상 상황에선 그런 뻔한 미끼밥 안문다 라고 정신 슨리질 하는것 같은데 결과는 함대 주요 전함의 큰 피해였기 때문에 결과가 일치하는데 굳이 논란이 될 부분은 지엽적인 문제라 하겠습니다. 좌우간 이후 영불 함대의 주력함은 다르다넬스 해협 밖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죠. 요즘같이 소해정이나 기뢰 소탕전을 할 기술이 있던 시대도 아니고,,,
적군의 통신장비가 마비가 왜 정신승리로 읽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히려 적군의 포가 잠시 멈췄다고 거기를 바득바득 기어들어가서 결국 기뢰쳐맞은데 더 바보같아보이지 않나요?
@@hawk8873그때도 소해기술 자체는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군이 그래도 썩어도 준치였나 봐요... 적절하게 잘 대응했네요.
헤어스타일이 매번 바뀌시네요. 항상 인상적입니다.
토전사의 방영내용과 좀 다르네요.
같은 방송국에서 의견이 서로 다른 내용을 방송하다니...누구 말이 맞는 것인가요?
잘보고갑니다
처칠이 영국내에선 위인이라고불리어도..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도화선에 불 붙인 것도 그 사람이 국제간 2중계약 느낌으로 외교를 한 후 나몰라라 해서 그런거고.. 참 드릅다할지라도 국내에선 영웅이었쥬. 찾아보고 까보면 흑역사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처칠 역사상 최고의 바람둥이 수상입니다.
처가 7이거든요.
인도에서 쌀밀을 수탈해서 인도인 수십만을 아사시키고 독립운동가들을 고문, 총살시키는거로도 유명했습니다
@@jstv5313 학교다닐때 친구없었죠?
결말을 알고 있어도 안타까울 뿐
긴 전투를 짧은시간에 정리하시다보니 오류가 있습니다....1차공격은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포격전을 함 11분에 있는 영상처럼 갈리폴리반도 북쪽이 아님... 둘째 1차공격은 상륙함대가 아닙니다 그냥 해군만으로 공격한 것임 (소규모 해병대가 있었지만) 셋째 2차공격시 오스만군이 해안방어에 지뢰를 설치했다는 것은 오해를 살수있습니다... 오늘날 생각하는 대인지뢰가 아닙니다...어뢰의 탄두를 매설해 놓는수준
갈리 폴리 갈리 갈리 폴리~
날 밀어내도 난 다시 네게로 다가가서~
갈리 폴리 갈리 갈리 폴리~
나만 보일꺼야, 너에게 나를 보여 줄꺼야~
엌ㅋㅋ 저랑같은생각을ㅋㅋㅋㅋ
할리갈리~~~
터키와 영국간의 흑역사...
그런데 2차대전 당시에 처칠의 유명한 인상쓰는 초상 사진은 터키의 유명한 사진사 유서프 카쉬가 찍었다고 하죠.
www.hani.co.kr/arti/culture/music/340623.html
이 사건 뒤로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개빡쳐서 2차대전때는 영국군 지휘 안 받음
심지어 캐나다는 영국이 나치독일에 선전포고할 때 의회에서 참전 결정을 따로 함 자치령 주제에 ㅋㅋ
그때 이탈리아는 어느 편이였나요?
처칠의 처절한흑역사가 갈리폴리죠 터키의 뻘짓만 안했다면 독일의지원 지휘아래 완전박살 낼수도 있었는데 ㅋ 엥 갈리폴리 총지휘는 처칠의 첫 해군작전일텐데 사령관으로 ??
갈리폴리 전투는 갈리폴리 해협을 통해 러시아로의 보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좀 다르네요.
그것도 있었죠. 마르마라 해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장악해야 흑해를 통해 러샤의 세바스토폴과 연결되고 러샤 역시 흑해함대를 끌고 지중해로 나와 연합군 해군과 힘을 합칠 수 있었으니까요. 그보다는 여기를 먼저 돌파하면 수도인 이스탄불을 러샤 흑해함대와 함께 해상에서 봉쇄하고 잘하면 상륙전을 통해 수도 점령도 시도해볼 수 있었으니 작전 목표가 꽤 유혹적인건 사실이였지요. 작전이 너무 빡세서 그렇지.
갈리폴리 반도는 지형 자체가 상륙전하기엔 최악의 지형인지라 8개월 전역 기간 동안 연합군이 25만명이 녹아내릴 수 밖엔 없었지. 인천 상륙작전도 빡센 상륙지라고 했지만 갈리폴리에 비하면 아예 레드 카펫길로 느껴질 정도. 간조야? 8시간 동안 휴식~~~
사전 설명이.. 너무 짧은 듯...
무스타파 캐말에 대한 설명이 너무 틀립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한것이 아니고 오늘날 사관학교 출신이고 초급장교시에는 비밀결사 조직에 참여하는등 청치활동을 많이하였고 전투경험은 리비아에서 이탈리아와 전쟁에 2년 참여한것이 전부고 갈리폴리전투시에는 34살이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것이지 그때까지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아님
밑바닥은 사실임. 저당시 사관학교 가는건 주로 오스만 제국에서도 귀족자제들이 가는거. 그에반해 무스타파 캐말처럼 평민출신으로 사관학교 간 인원들은 몇명 되지도 않음.
물론 빈민가에서 산 정도로 엄청나게 가난한건 아니지만, 오스만 제국내의 귀족출신이나 잘사는 평민들과 비교하면 낮은건 사실임.
밑바닥을 무슨 병사에서 기어올라왔다고 이해한건 그럴 수는 있지만 너무 틀리다라고 할 정도로 틀리진 않았는데요. 호들갑 ㄴㄴ
존 남 좋 아
캐멀이 하는 말 들으면 이연벙한다고 이것들아 약간 이런 느낌이 드네
독일군 장성들이 전쟁을 히틀러 때문에 졌다는건 순 말도 안되는 핑계임. 영국에는 처칠, 소련에는 스탈린이라는 똥별이 있었음. 결코 히틀러 한명만 무능한게 아님.
루스벨트가 그나마 가장 유능했음.
? 스탈린초반만 지휘하고 똥싸니깐 군지휘는 장군들한테 넘기고 독일장성들은 명장이 얼마나많은대 만슈타인 룸멜 구데리안 발터모델 룬트슈테트 되니츠 등등
히틀러 삽질 때메진거임
@@kallven2561 소련은 아예 전쟁전에 스탈린이 장교들을 전부 대숙청으로 갈아버렸습니다. 게다가 전쟁 초반에도 삽질했고요. 그래놓고도 못이겼는데 이건 히틀러 한명의 무능만으론 설명할수 없습니다.
2차대전 패전 요인이 무제한잠수 작전 및 소련 침공 덩케르크 공격중지 명령 이작전 모두 히틀러 지시한겁니다 애초애 히틀러가 군지휘안하고 장군들에게 맏겼다면 얘기가다르죠
@@kallven2561 애초에 히틀러가 낫질작전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1차대전 시즌 2가 터졌겠죠.
낫질 작전도 만슈타인 장군께서 계획하시고 만든겁니다 히틀러는 아무것도안한 무능한 총통일뿐..
샤를세환 어디갔어 어!!
앤잭임? 안잭임?
처칠 집요한 또라인데 갈리폴리 얘기만 하면 아닥했다는 ㅋㅋㅋ
ua-cam.com/video/oOCe2Y7iVF8/v-deo.html
갈리폴리 한 번 느껴보시고 가세요~~ ㅋ 안작부대라고 했었는데, 뭔가 발음이 쎄~련되셔서... ㅋㅋㅋ
교수님 머리좀......
토전사
본토 심장을 겨냥한 공격 없이 승산은 없다. 작은섬부터 하나 하나 점령하려는 전투는 하지 마라 본토를 공격 점형하고 지방의 점령으로 넗혀가는 전력이 피해를 줄이고 승리할 수 있는 전투다.
근데 SMS괴벤은 갈리폴리전투당시 뭐했지?
대부분 흑해에 있었음 지중해방면은 자살꼴이라
@@kisear455 당시 괴벤은 터키에있었습니다
@@seongmin663 지중해 방면이 아니라 흑해에서 러시아해군 상대하고 있었다고요
설직히 토크멘타리전쟁사나 본게임 내용과 넘 겹체네요 밀덕 영상구독자가 준군사테이타가 가득한데 토멘사 본게임 과제 프린터같음 근데 국방체널아레 프리렌스 ??? 이레선 안되는데 ???안되지 이리 숟가락영상은 정말 안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