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 밀어 넣어야 .. 전투 참여 안하고 구경만 하는 것을 막을수 있죠 .. 앞머리만 격파하면 뒤에 있던 배들이 도망 가니 .. 상대를 끌어 들이고 퇴로를 막으면 .. 화끈하게 붙어 볼수 있겠죠 .. 지난번에 보면.. 앞머리 격파 당하는거 보더니 .. 수송및 보급선이 다 도망 가는 경우 있더군요.. 상대를 끌어 들인 후 뚜껑 닫는 개념으로 복병을 배치 했을꺼라 보게 되서요. .
퇴각이 정해진 일본군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처럼.고양이라도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적을 쫒아내기 보다는 끝까지 최대한 살상하려는 목적으로 출전하는 것이 조선군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전쟁이 끝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운 부모자식을 볼 수 있는 처지라.누구든지 무사히 치루고.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투의 기획자이자 주인공인 이순신장군은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 해냈던 작전과 전술의 운용이 아닌 그저 죽음을 각오하고 앞장서서 나가야만 부하들의 사력을 끌어내어 적들을 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군이 살려고 했다면 노량해전에서의 대승은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적들의 사력을 살려고 하는 조선수군이 당해 낼리가 없겠지요
당시 이순신과 노량 해전에서 맞붙은 다이묘는 시마즈 요시히로인데 고쿠다카 73만 석짜리 제법 무게감이 있는 다이묘였다. 솔직히 고니시 유키나가나 가토 기요마사는 다이묘 치고는 애송이였는데 각각 20만 석밖에 안 되는 다이묘였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라이벌로 나오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건 뭐 다이묘이긴 하지만 다이묘 취급조차 해줄 수 없는 3만 석 따리였다.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라서 그렇지 이것도 19만 4천석에 불과해 약소 다이묘였다. 총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는 56만 석이라서 총사령관이 된 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본인은 거대 다이묘로 고쿠다카가 222만 석이었다. 그런데도 1위가 아니었는데 1위는 고쿠다카 256만 석의 히든보스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필승
좁은 공간에 밀어 넣어야 .. 전투 참여 안하고 구경만 하는 것을 막을수 있죠 .. 앞머리만 격파하면 뒤에 있던 배들이 도망 가니 .. 상대를 끌어 들이고 퇴로를 막으면 .. 화끈하게 붙어 볼수 있겠죠 ..
지난번에 보면.. 앞머리 격파 당하는거 보더니 .. 수송및 보급선이 다 도망 가는 경우 있더군요.. 상대를 끌어 들인 후 뚜껑 닫는 개념으로 복병을 배치 했을꺼라 보게 되서요. .
뵤ㅕㅑ
순수한 필리핀 사람들 멋지네요 항상 원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전쟁에대한 기록이 정말 쬐금일까??? 일재 45년동안 과연 상식적으로 우리나라의 위대함이 적혀있는 기록이 보존 될수 있었겠어요
근데 궁금 한건 이순신 장군이 바닷길 막고 있었는데. 도요토미 사망 소식과 철군 명령 을 어떻게 전달 했죠,
노량 해전. 조선군. 전사자. 150명 한산 명량 옥포. 등등 전사자가 거의 없었는데 노량해전150전사 많이 했네요
아 ~ 그렇네요 임진왜란 역사 정확히 😂 알고 있네요
솔까 장군님 전사할 때 보다 거북선 격침 될 때 질질 짰다
역사학자라는 분들은 왜 한번밖에 없는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이미 사라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탐구하는데 소비하는 걸까... 이런 걸 볼때 마다 그런 의문이 먼저 든다...ㅎㅎ
결국 조명 육군이 적당히 했어도 이순신 통제공이 나설 이유도 없었다. 전쟁 후는 신경쓰지않고 이득만 생각하니 저꼴이었지.
드라마 에선. 선조가. 일본군 곱게 보내주랴고 전투하지 말라고. 선전관 까지 보냈는데. 그게사실 인지 궁금 하네요
물들어올때 노저어야디요 칭찬합네다
마귀라~
뜻이나 알고,지은 이르이던가?
퇴각이 정해진 일본군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처럼.고양이라도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적을 쫒아내기 보다는 끝까지 최대한 살상하려는 목적으로 출전하는 것이 조선군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전쟁이 끝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운 부모자식을 볼 수 있는 처지라.누구든지 무사히 치루고.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투의 기획자이자 주인공인 이순신장군은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 해냈던 작전과 전술의 운용이 아닌 그저 죽음을 각오하고 앞장서서 나가야만 부하들의 사력을 끌어내어 적들을 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군이 살려고 했다면 노량해전에서의 대승은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적들의 사력을 살려고 하는 조선수군이 당해 낼리가 없겠지요
노량해전. 병사들은 가솔 식구들이 왜놈에게 다 죽임을 당 해서 그걸 복수하기 위해 조선 수군에. 자원입대한 병사들 100퍼센트. 살기위해 싸운게 아니라 죽기위해 싸운겁니다
당시 이순신과 노량 해전에서 맞붙은 다이묘는 시마즈 요시히로인데 고쿠다카 73만 석짜리 제법 무게감이 있는 다이묘였다. 솔직히 고니시 유키나가나 가토 기요마사는 다이묘 치고는 애송이였는데 각각 20만 석밖에 안 되는 다이묘였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라이벌로 나오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건 뭐 다이묘이긴 하지만 다이묘 취급조차 해줄 수 없는 3만 석 따리였다.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라서 그렇지 이것도 19만 4천석에 불과해 약소 다이묘였다. 총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는 56만 석이라서 총사령관이 된 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본인은 거대 다이묘로 고쿠다카가 222만 석이었다. 그런데도 1위가 아니었는데 1위는 고쿠다카 256만 석의 히든보스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람 사이샤 는 다이묘. 몆등 인가요
여자 이뿌다
역사는 똑바로 전하시길.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죽었지만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철군명령서신을 보냇고 히데요시 사망했다는건 일본군도 몰랏으며 당연히 조명연합군도 몰랏다 마지막전투이니 이러자저러자 한적없다. 이순신장군님은 철군하려는 일본군을 쓸어버리려고 한것이지 마지막전투라 생각하시지도 않음
이순신 장군이 바닷길 막고 있는데 일본에서 도요토미. 사망 소식을 어떻게 전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