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당시 추억이 있거나 아는 지역 장소가 있으시면 많은 댓글 부탁 드립니다. ▶복원왕 구독해주세요👍 : bit.ly/2Vhlf3l 보고 싶은 영상 댓글남겨 주세요 The first video I want to see Leave your comment まず見たい映像 コメントしてください
61년도에 중구 신창동에서 태어난 부산사람인데, 이렇게 소중한 사진자료를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특히 신창동 창선동 이쪽은 건물만 바뀌었지 골목길은 거의 그대로네요. 이지역은 조선시대 일인들이 거주하던 초량왜관 서관의 삼대청과 육행랑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1876 부산항 강제개한 후에도 일인들이 전관거류지로 눌러붙어 살았고요. 부산역은 (본역) 중구 중앙동에 있었고, 부산 진구(부산의 진구가 아닌)는 부산진(釜山鎭)구 입니다. 보수천은 서구 대신동에서 발원하여 내려와 자갈치시장으로 내려가는 하천인데 중간 쯤부터 하천을 중심으로 서구와 중구로 나눠집니다. 보수천 박내과쪽으로 찍은 사진은 중구쪽 부펑동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영어와 한자가 같이섞인 표지판과 서울못지않게 넘쳐나는 인파가 인상적이네요 예전 부산역이 너무 단아하니 예뻐서 화재가 나지않았더라면 서울역같은 명소가되었을거같기도하고 전쟁통에 올림픽에참가했다니 짠합니다 그래도 환영퍼레이드도하고 웃통벗고나온 꼬마아이들이 뒤따라다니는 모습이 사람냄새가나네요 전방에서 교전만있던 전쟁후반기 최후방이어서인지 평화스러워보여요 사람들의 모습도 표정도
이 영상의 앞 부분에 나오는 부산역은, 현재 중앙동 부근에 위치하였던 일제시대때 지어진 건물이었고, 초량동에있는 지금의 부산역과는, 전혀 별개의 건물이며 다른 장소입니다. 6.25 전쟁통이라는 혼란 속에서 불타버린, 원래의 부산역은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문화재인데 안타까운일입니다! 참고로, 일제시대때에는 경성역(서울역)보다도, 우선 순위가 앞섰던 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서울역을 기준으로 열차편성이 이루어지는것이아니고 당시에는 부산역을 기준으로 모든, 철도가 운행되었습니다!
우리 외갓집이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피난민 아이들 줄줄 있는 6가구나 오랫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 줬는데 전쟁 끝나고 돌아 가서는 아무도 고맙다는 인사가 없었다는 씁쓸한 얘기가 기억나는구만요. 거꾸로, 부산사람들 서울로 피난 갔으면 다 굶어 죽었을 거라는 얘기들도 있었죠. 서울 사람들 깍쟁이들이라고......
6분 16초 씀에 나오는 영상 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 아마도 대연동 고개에서 문현동 로터리 가는길 아닌가 추정됩니다 제 고향 부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립고 그립습니다 그당시 유엔묘지로 소풍간다고 걸어갔다가 문현국민학교까지 걸어서 오곤 했었던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원래 부산역 자리는 지금의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 자리여서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세관이 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역과 세관 옆 부두와 연결된 철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스팔트 밑에 매립되었어요. 1948년 런던대회와 1952년 헬싱키대회 두대회 연속 역도 동메달 딴 김성집 선수가 유명하죠. 우리 동네 하일리야부대(시민공원)이네요. 예전 전차 1량이 서구 토성동 부산대병원에 근처에 있는 동아대 부민캠퍼스에 있어요. 1952년이면 동원 김재철 회장이 수산대 입학하기 직전이네요. 부산 지하철2호선에 지게골역과 못골역이 있어요.
@@user-oy2ps9gg4s 질문을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글 적은 분이 남성여중을 다녔던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남성여중,남성여고 근처의 혜광고를 졸업해서 남성여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질문한 것입니다 남포동에 위치했던 학교들이구요
옛 시청 건물과 옆에 있던 이름이 가물거렸던 미나카이 백화점은 기억이 납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보수천의 검정다리도, 부산역 광장 앞쪽에 반원형의 길죽한 콘세트 건물 2동이 있었는데 한 곳이 철도문화관이라는 가설극장이었는데 이모 따라 캉캉춤이 나오는 영화를 봤습니다 부산역 대화재 때 서대신동에 살았는데 아침에 마당 수채가에 불타고 남은 종이가 산을 넘어 날아와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있지만 일단은 공산주의를 피해 부산으로 피난 온게 우선 일겁니다 1.4 후퇴 흥남 부두 보셨죠(영상으로) 마지막 보루인 부산이 없었다면 미군 이나 UN군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은 언감생심 공산국가 에서 비참 하게 살듯요 작금의 세대가 부산을 토착 왜구의 본고향으로 왜곡 하는 것에 분통이 터집니다
역시 우리 선조들은 다릅니다 그어려운 시절에도 거리와 의상이 비록 지금보면 형편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ㅡ얼마나 깨끗하고 단정합니까? 지금 중앙아시아 와 아랍권의 이란 파키스탄 탄,탄, 하는나라들 가보면 믿 을수 없을만큼 오물 투성이의 거리 볼수있습니다ㅡㅡ다른나라 나뿌다 평가하는게 아니라 ㅡㅡ육이오 그전쟁 피난민 들로 힘들었던 그때도 우리 아버지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늘깨끗한 환경과 헤져서 누더를 덧대고 기워 입었지만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히고 입으시느라 밤잠을 설치셨슴니다ㅡㅡ이런귀한 나라를 저 사회주의 썩은정신을 추앙하는 좌파 문재앙이 패거리들 역적중 에 역적 나라팔았다고 욕먹고 있는 이완용 은 저들에 비교하면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ㅡ대한민국 이여 이쓰래기들 쓰러버리고 다시 빛날지어다ㅡ 위대한 코리아여 ㅡㅡ 일어난다 우리는 할수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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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72년도 탈농자 입니다 부산서면 로타리가에 다방에서 또중국집에서 냉면집 또 크라운대학 일명 술집에서 생활 했네요 참말로 옛날 생각이 아련하네요 좋은 영상을보니 너무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소중한시절의
추억이아련합니다
전부는아니지만
많은광경을
회상합니다
모두들
따뜻한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멀어저간 그때 그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대단한 복원 입니다
감사합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저는 부산사람 81년생으로써 너~~무 감동받았습니다.엄마,아빠때 부산이 저런모습이였구나~~소중한 영상 넘 감사합니다😊😊😊😊👍👍👍
저는 저시절에 부산을 한번도 못가봤는데도
아련한 그리움이
솟아오르네요
지금도 부산은 너무
멋지고 매력적이
도시라 생각해요
귀하고 멋진 영상
감사합니다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원왕님 고맙습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인데..... 잘 지켜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나라 물려줘야할 의무가 있는데 어찌 지금은....
정말 잘 봤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어머니가 태어난 시절의 영상 감사합니다. 부모님은 저런곳에 사셨구나 알게되었네요
옛추억이 떠오르네요
전쟁중인데도 열심히.살고 계셨던 모습이.. 왠지 아련해 집니다..
오늘도 좋은 구경했습니다.👏👏👏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961년생으로 9살 때 부터 남포동 근처에 살아서 남포동은 저의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복원왕 최곱니다 👍👍👍
감사합니다😍😍
복원왕님 덕분에 흑백사진이나영상을컬러로복원해노니 넘보기좋아요.전쟁시절임에도. 부산은 북한놈들이 점령못해서인지. 평화롭고.올림픽도 나가고. 제법 고층건물도 보이고. 부산의중심 남포동.주앙동.보수동등. 제가지금살고있는 해운대는안보이지만 ㅎ 저도 43년째부산사람으로살고있다보니 고향이나마찬가지라 넘정겹고.귀한 영상 잘보고갑니다. 좋아요.구독 필. 우리밴드에 퍼갑니다.ㅎ늘. 좋은 영상부탁드립니다.
2019년까지 중앙동 무역회관 건물에 입주한 회사에서 근무 했었는데 부산역 화재 당시 무역회관 일대가 부산역 이었다고 들었고 예전 모습을 보니 정겹기도 하고 힘들게 사셨지만 웃음 가득한 표정보니 순수하고 해맑았다 싶네요 귀한 영상 감사히 잘봤습니다^^
61년도에 중구 신창동에서 태어난 부산사람인데, 이렇게 소중한 사진자료를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특히 신창동 창선동 이쪽은 건물만 바뀌었지 골목길은 거의 그대로네요.
이지역은 조선시대 일인들이 거주하던 초량왜관 서관의 삼대청과 육행랑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1876 부산항 강제개한 후에도 일인들이 전관거류지로 눌러붙어 살았고요.
부산역은 (본역) 중구 중앙동에 있었고, 부산 진구(부산의 진구가 아닌)는 부산진(釜山鎭)구 입니다.
보수천은 서구 대신동에서 발원하여 내려와 자갈치시장으로 내려가는 하천인데 중간 쯤부터 하천을 중심으로 서구와 중구로 나눠집니다.
보수천 박내과쪽으로 찍은 사진은 중구쪽 부펑동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잘 시청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예전 부산역 건물 멋지네요.
1952년 제가태어나기 3년전이군요 제가 55년생 저어린시절만해도 1960년 그무렵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는데 상이군인 넝마주이 소록도 수용하기전에 나병환자도 깡통든 제또래 어린아이들이 엄청 많았어요 잔치집주변에는 그사람들이 얻어먹기위해 바글거렸죠
좋은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재밌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어와 한자가 같이섞인 표지판과 서울못지않게 넘쳐나는 인파가 인상적이네요 예전 부산역이 너무 단아하니 예뻐서 화재가 나지않았더라면 서울역같은 명소가되었을거같기도하고 전쟁통에 올림픽에참가했다니 짠합니다 그래도 환영퍼레이드도하고 웃통벗고나온 꼬마아이들이 뒤따라다니는 모습이 사람냄새가나네요 전방에서 교전만있던 전쟁후반기 최후방이어서인지 평화스러워보여요 사람들의 모습도 표정도
현재 부산동구 부산역 맞은편 초량동에 살고있습니다.부산에서 나고 부산에서만 62년 살았군요. 영상을 보니 반갑네요 6,25 이전에 부산인구가 40 만이나 되었군요 몰랐네요.
😍
ㅎㅎ 부산에 옛날사진 감사합니다
이 영상의 앞 부분에 나오는
부산역은, 현재 중앙동 부근에
위치하였던 일제시대때 지어진
건물이었고, 초량동에있는
지금의 부산역과는, 전혀 별개의
건물이며 다른 장소입니다.
6.25 전쟁통이라는 혼란 속에서
불타버린, 원래의 부산역은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문화재인데
안타까운일입니다!
참고로, 일제시대때에는
경성역(서울역)보다도, 우선 순위가
앞섰던 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서울역을 기준으로
열차편성이 이루어지는것이아니고
당시에는
부산역을 기준으로
모든, 철도가 운행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쌀 가마니 깔아 놓고
명절때 마다 놋 그릇 닦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판잣집, 길거리 노점상등
그리운 옛날 모습들....🎉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수고하신 결과물 감사히 봅니다.
대단하십니다.👍👍👍
Gracias por la traducciones ...se disfruta más....
눈물이 난다~ 과거 역사를
그땐 이때 이랬지?
와우~ 이런사진들을 어떻게 구하나요??
대단합니다.👍
61년생입니다 보수천의 모습은 70년대 후반까지도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서구 동대신동2가에서 살았는데 80년대중반 까지 일본군 관사가 있었습니다 4관사까지 있었습니다 영상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최고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포항의 옛모습도 보고싶습니다
내가 400번째 엄지 척.~👍
👍👍
우리 할아버지가 32년생이신데 저 시절 청청한 청년이셨겠네요 내일 보여드려야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혹시나 아버님 사진에 찍혔을까 열심히 찾아 봤습니다.감사합니다
울 아부지도 피난와서 대여섯 살 적에 피난 와 충무동 로터리 현 천일 abc 볼링장 앞에서 울 할아버지가 양복점 했어요.
우와... 정말 희귀사진들이네요!! 어마 무시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많이 보고 배울수 있는 채널 너무 좋습니다. ~ 😍
60,70년대초만해도 흰저고리에 남자들은 두르마리 입고다녔습니다 옛날이 아련히 떠 오르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옛날생각이. 남니다
😍
감사합니다,
옛 사진을 칼라로보니 감회가 깊습니다.
일본재국이 지은 부산역 건축물이무척 나름답게 설계를 했는데, 우체국, 세관 건물들이 불에 탓다는게 너무나 안타갑군요.
잘 보고 갑니다.
우리 외갓집이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피난민 아이들 줄줄 있는 6가구나 오랫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 줬는데
전쟁 끝나고 돌아 가서는 아무도 고맙다는 인사가 없었다는 씁쓸한 얘기가 기억나는구만요.
거꾸로, 부산사람들 서울로 피난 갔으면 다 굶어 죽었을 거라는 얘기들도 있었죠. 서울 사람들 깍쟁이들이라고......
전쟁중에도 운동 하는 사람들은 있었구만, 놀랍다
이것을보고있어니. 자꾸만. 옛날이.떠오르네요이때는. 부산이참가난했지요. 배고파 굶주리는. 아이들 많았고 구두딱이며. 극장. 다방.껌 팔이소년소녀들도. 많았지요.
58년 생인데 중구 부평동 구산파가 나와서 깜짝 놀랐읍니다. 제가 거기서 태어 났읍니다.
전쟁 중에도 올림픽을 참가했군요...
정말 왠지 짠해지는군요... 이평와로와보이는 와중에도... 전방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었을 텐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빨리 끝나길 기원합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텐데....
와~~~ 쥑깁니다...신기합니다.. ^ ^;
울 아부지 대여섯 살 적에..
1952년 대구시남구,동구,서구,북구전모습을 복원해서 보여주면 되게 지금이랑,어떻게달라젔는지
6분 16초 씀에 나오는 영상 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 아마도
대연동 고개에서 문현동 로터리 가는길 아닌가 추정됩니다
제 고향 부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립고 그립습니다
그당시 유엔묘지로 소풍간다고 걸어갔다가 문현국민학교까지
걸어서 오곤 했었던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22 현재 중앙동사거리 이며 세관에서 중앙대로 방향 모습이죠.
개전하자마자 서울함락되고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대반격해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게 불과 개전 6개월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죠. 저 당시는 38선 정도에서 전선이 고착화되는 상태가 길어지는지라 상대적으로 부산같은 후방은 안정적이었을겁니다.
1976년 영도동삼동서 살았는데 그때도 금붕어장수가 양동이같은데다 집집마다 붕어팔러다님 주황색 물고기가 가득든 양동이
울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이네 뭔가 신기하다ㅋㅋ
😍👍
👏👏👏👍👍👍
춘천쪽도 한번 부탁 드립니다 복원왕님
저 당시 부산역은 동구가 아닌 중구 중앙동에 있었습니다! 대화재때 모두 소실되어서 동구로 이전을 했죠
1952년 이라면 ,저희 외갓집 에 큰 이모부 가 1952년에 출생하여서 올해 나이가
72살 입니다 ^¿^ 그때 옛날에 부산 대연동 에서 살았습니다 ㅎㅎ
혹시 강원도 영상은 없으실까요? 고향이 강릉인데 예전 시절 궁금합니다..강릉 아니어도 괜찮아요
1952년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그시절 추억은 없을거 같은데
최소 1930년생 정도되야, 당시 18살이니까 추억이라도 있지
1930년생이면 지금은 94세....
전쟁이라는걸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어찌보면 참 평화로워 보이네요
전쟁중에도 시장에서 물건팔고 집을짓고 그러나요?
우리나라 가장 후방이었기에 가능
52년 이면 한국 전쟁도 교착화 되고 전선도 38도선 에서 공방을 주고 받고 휴전 얘기가 나올때라 최후방인 부산은 긴장감은 떨어지고
피난 나온 사람 들은 귀향 준비중 였답니다
총알이 날라 다니고 포탄이 떨어지고 하는 지역은 아니니
원래 부산역 자리는 지금의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 자리여서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세관이 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역과 세관 옆 부두와 연결된 철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스팔트 밑에 매립되었어요. 1948년 런던대회와 1952년 헬싱키대회 두대회 연속 역도 동메달 딴 김성집 선수가 유명하죠. 우리 동네 하일리야부대(시민공원)이네요. 예전 전차 1량이 서구 토성동 부산대병원에 근처에 있는 동아대 부민캠퍼스에 있어요. 1952년이면 동원 김재철 회장이 수산대 입학하기 직전이네요. 부산 지하철2호선에 지게골역과 못골역이 있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외할아버지 초딩때.... 자기 큰형님 끌려갔다고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햐... 전쟁통 50년대에 금붕어를 파네 ㅎㅎ
ㅅ서면로타리시대따라변함80년도초에는.초시계도철치되있었어요
60년대 어린시절 사용했던 석유 등이 보여서 단칸방에서 많은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중한 추억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50년대인데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네... 대한민국 대단하다
의식주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쓰레기가 나올수 없는거임.어린아이들이 길에 떨어진 과자보면 막 주워먹던 시절이니~
암것도 없었던 폐허시절에 쓰레기조차 나올 무언가가 흔한 길거리에 있을리가
4:57 과거 대청동에 기찻길이 있었나요? 상상이 안가는데..
광복로의 미화당 백화점 앞 거리(광장?)는 그 때도 똑같이 생겼네요~~~ㅎㅎ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남성여중 소풍 가는 모습, 반갑네요~~~
나중엔 교복 리본이 더 세련되어 졌지만
저 시절엔 소풍백도 없었고 다들 보자기에 싸들고 다녔어요
남성여중인지 어떻게 아시는지요?
아무런 자막도 없는데....
@@user-oy2ps9gg4s 질문을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글 적은 분이 남성여중을 다녔던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남성여중,남성여고 근처의 혜광고를 졸업해서
남성여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질문한 것입니다
남포동에 위치했던 학교들이구요
@@user-oy2ps9gg4s ㅎㅎ 저는 1975년에 남포동에서 가까운 경남중학교를 입학했으니
사진의 여중생들은 저보다는 연배가 훨씬 많은 분들입니다
6:00 ㅎㅎ 고양이하고 노시는 걸까요
처음 부산역은 지금의 부산시 동구가 아니라 부산시 중구 중앙동이었는데~다시한번 더 확인해보세요 ㅡ부산 중구 시민
3:15 저 원형 화단 지금 ABC 마트 광복점 앞 아이가?
멀리 아미동 뒷산인 아미산이 보이는것 보니 맞는듯 합니다
3 : 00 '아 원수(元帥) 내한 만세'가 뭔가 했더니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방한을 환영하는 아치를 세워 놓았습니다.
혹시 우리 부모님 사진 없나 열심히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나 대연동사는대 남구나오자마자나오네근데못골역ㅋ
70년전 8949 센스있네
친형이52년생인데 배정중학교 중퇴 빈한도골신세 컴컴한방에서 아침이면 벤토산다꼬 막된장 퍼서도시락싸던 아푼상처 거친세월보내고 지금은일흔이훨씬지났네,😂😂😂
부산하면 마음 아려온다 55년범일동 안창마을 태어나 난번듯한고향도없어 삼화고무고무공장다니다입대어언칠십ㅇ네요 참세월빨라 당시범일국민학교동창들은 잘먹고사는지 김용국최양순 보고싶네😂😂😂
자막 켜고 보니까 " 안녕하세요 보건왕입니다 "
😭😭😭😭 자동 자막 수정 하겠습니다 😭😭😭😭
@@rkk 유튜브 자체 자막이라 음성인식을 잘 못한거 같아요 재미있고 좋네요
여성분들 쪽진머리와 한복 차림이 너무 인상적이고 여성들은 여전히 조선시대와 다름이 없어보여요....너무나 소중한 자료입니다...그리고 전쟁의 원흉들이 누구들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남북의 교과서와 언론에서 철저히 함구되고 금기되는 그 내용들요.
분통이 터질 노릇 입니다
각종 지원물자와 전쟁물자가 몰려드는 곳이라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잘살던 부산
김두한이 부산 딴스홀에가서 똥바가지 퍼부은 이유도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리는데 이놈들은 전쟁중에도 춤추고 술마시고 정신차리라고 퍼부었음
마!!! 김두한은 국회에다 똥 바가지 투척 했다
방구석 코모리들 ㅉㅉ
옛 시청 건물과 옆에 있던 이름이 가물거렸던 미나카이 백화점은 기억이 납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보수천의 검정다리도, 부산역 광장 앞쪽에 반원형의 길죽한 콘세트 건물 2동이 있었는데 한 곳이 철도문화관이라는 가설극장이었는데 이모 따라 캉캉춤이 나오는 영화를 봤습니다
부산역 대화재 때 서대신동에 살았는데 아침에 마당 수채가에 불타고 남은 종이가 산을 넘어 날아와 있었습니다
전쟁중에도 올림픽을 나가긴 했구나
전쟁통에 부산가면 먹고 살기 있다며 피난 와 급격한 팽창을 일으켰던 도시.
먹고 사는 것도 있지만
일단은 공산주의를 피해 부산으로 피난 온게 우선 일겁니다
1.4 후퇴 흥남 부두 보셨죠(영상으로)
마지막 보루인 부산이 없었다면 미군 이나 UN군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은 언감생심 공산국가 에서 비참 하게 살듯요
작금의 세대가 부산을 토착 왜구의 본고향으로 왜곡 하는 것에 분통이 터집니다
1952년이면 임시수도였을 때군요
하지만 이후 부산역전 대화재로 인해서 일제강점기 모습은 물론 문교부 창고에 있던 조선 국왕의 초상화 어진을 비롯해서 문화재가 소실되었죠
경공업과 미국 물건과 원조로 하루를 살았던 지금의 울 할매 할배들..
솔직히 일본이 손대지 않은곳은 대부분 원시인 수준이네!
일본이 손댄게 아니라 일본인 아무개가 손댄거죠
@@yorocorome 일본인 아무개가 누구냐?
선동질은 ㅉㅉ
@@김정수-j8i 누군지 모르니까 아무개라고 했죠ㅎㅎ 그렇게도 일본제국주의를 칭송하고 싶으신가
부산 진구? 그기에서 금정봉과 금용산이 저렇게 보이나?
아, 고층건물이 없으면 저렇게 보이구나.
1952년 모습이 거진 1965년까지 변화 없다, 중심부 남포동시장으로 박정희 대통령 1965년 정도부터 도로 정비. 기본형은 지금과 거의 같고, 건물과 인프라는 다 재건립
잘 시청했씁니다
😍
역시 우리 선조들은 다릅니다 그어려운 시절에도 거리와 의상이 비록 지금보면 형편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ㅡ얼마나 깨끗하고 단정합니까? 지금 중앙아시아 와 아랍권의 이란 파키스탄 탄,탄, 하는나라들 가보면 믿 을수 없을만큼 오물 투성이의 거리 볼수있습니다ㅡㅡ다른나라 나뿌다 평가하는게 아니라 ㅡㅡ육이오 그전쟁 피난민 들로 힘들었던 그때도 우리 아버지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늘깨끗한 환경과 헤져서 누더를 덧대고 기워 입었지만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히고 입으시느라 밤잠을 설치셨슴니다ㅡㅡ이런귀한 나라를
저 사회주의 썩은정신을 추앙하는 좌파 문재앙이 패거리들 역적중 에 역적 나라팔았다고 욕먹고 있는 이완용 은 저들에 비교하면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ㅡ대한민국 이여 이쓰래기들 쓰러버리고 다시 빛날지어다ㅡ 위대한 코리아여 ㅡㅡ
일어난다 우리는 할수있다 ㅡ
셋째누나태어나던해영상이네
일본어 간판을 보니 맘이 아프네요~ 역사를 잊지않았으면 합니다.
산다 구십평생 보따리 몆
cg6a
친일매국 반민족세력이
득세하여
우울합니다
조선인의 피를 가진놈으로 친일을 가장 마니한놈 일성이 수령놈의 6,25 덕분에 일본은 70년대에 미국 다음의 세계경제대국이 됐땅께 😮😮😮
우리 어릴 때 부산 동래 전차도 있었는데 나는 무서워 울고 했어요
😍😍
옛날 부산시청이 보이네요. 하야리아부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