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반응] 명량 해상전투 리액션 한글자막!! 이게 실화라는걸 믿을수 없는 리액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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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 жов 2022
  • 실화인지 찾아보는 리액터!!
    명량 해상전투 리액션 한글자막!!
    이순신 장군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The Admiral Roaring Cu... The Ho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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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ЕНТАРІ • 730

  • @50wooju41
    @50wooju41 Рік тому +353

    불멸의 성웅 이순신, 천번을 말해도 세계 해전사에 유일한 위대한 장군

    • @user-qe3xw2rb2b
      @user-qe3xw2rb2b Рік тому +2

      에이

    • @MrHan-hs5qu
      @MrHan-hs5qu Рік тому +25

      해외 군인 장교들도 리스펙 하시는 이순신 장군님이죠
      일본이 본인들을 이순신장군님과 같다 이런 얘기하니까 해외에서 욕 엄청 쳐먹었다던데

    • @user-ub3wd4nx3g
      @user-ub3wd4nx3g Рік тому +4

      옳소!

    • @user-qw4cx2vb6j
      @user-qw4cx2vb6j Рік тому +17

      뭐가 에이지...
      미국 레딧이라는 큰 커뮤니티에서도
      해군쪽에선 1위 이순신장군님 2위 넬슨제독
      뽑음. ㅡㅡ

    • @dr.agumon9146
      @dr.agumon9146 Рік тому

      ​@@user-qe3xw2rb2b// 넬슨은 그나마 보급이나 병력지원은 빠방하게 받았지만, 이순신은 그런거 없었음. 혼자서 자급자족하고, 그걸 또 쪼개서 국왕에게 보냄. 거의 혼자서 조선을 떠맡은게 당시 이순신이었음. 만약 이순신이 서울에 압송 안되었으면 그냥 정유재란 없이 임진년에서 끝났을 거임.

  • @windlimpid6942
    @windlimpid6942 Рік тому +323

    진심으로 존경하는 위인......저런 분이 이 땅에 실존하셨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당

    • @hiroono1
      @hiroono1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직후 2개월 정도만이다. 일본군의 배가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이긴 것은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며, 그 이후는 매회 패주했다. 다음은 조선문서에 있는 기술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쓰여 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패퇴했다. 난중 일기에 쓰여있다.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하고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이때 거의 모든 조선군의 사령관이 죽었기 때문에 이후 홍타이지와의 전쟁에서는 대패하여 청국의 속국이 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일본군의 사령관에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2년 후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이 사실을 비교하면 조선군은 일본군에 패배해 일본군의 귀국을 멈출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 @user-fi5qz4xn4n
      @user-fi5qz4xn4n 4 місяці тому +1

      10:05 노량해전이 아니라 명량해전입니다!!

    • @user-uk3em5el7e
      @user-uk3em5el7e 4 місяці тому

      윤썩렬은 김건희와 나라를 팔아쳐먹고 있는 와중

    • @user-ur5ys3yt6p
      @user-ur5ys3yt6p 2 місяці тому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쇄미록에는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5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와 사대주의로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O2b : 이 유형은 가히 한국인의 고유 Y염색체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의 37.3%를 점유하고 있으나 중국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반도 이외에 O2b는 주로 일본(31.9%), 만주족(3.8%)등에 분포하므로, O2b는 가히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특징적인 유전자라 할만하다."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신석기시대에 시베리아에서 토기문화를 지니고 이동해온 고아시아·퉁구스 계통의 종족으로 언어학적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일본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계통의 야요이인(야마토 민족) 외에 일본 열도 선주민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족이 있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
      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
      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 @dasreich73
    @dasreich73 Рік тому +561

    실제로 이겼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믿기질 않는 거.

    • @84PYS
      @84PYS Рік тому +105

      실제 역사대로 영화화 했으면 더 말도 안되서 그나마 너프한건데 그래도 압도적

    • @user-pu3gf6bf5z
      @user-pu3gf6bf5z Рік тому +65

      실제는 경상자가 몇안됐죠 ㅋㅋ 포격으로 씹어먹은

    • @FireSpon
      @FireSpon 10 місяців тому +19

      ​@@user-pu3gf6bf5z 대장선이 앞에서 막고 무쌍찍은건 맞음.
      다만 문제는 그 무쌍찍으면서 역조류 올때까지 버티고 밀어내기까지 난중일지 공식으로 전사자 단 두명...
      ㄹㅇ 사실을 알면 알수록 이걸 영화화 시면 ㄹㅇ로 재미 더럽게 없거나, 억지로 엄청 죽게 만들거나 둘중 하나일거 같다 생각했는데...

    • @AensIand
      @AensIand 10 місяців тому +31

      솔직히 판타지소설로 써도 초딩이냐고 욕먹을수준의 전개라서 어쩔수없음ㅋㅋ;
      근데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마저 그걸 인정하는 역사서가 존재하니까 얼탱이 없어도 믿는거지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1

      @@AensIand 거짓말이다.

  • @user-tc6nf2uk4z
    @user-tc6nf2uk4z Рік тому +120

    매 번 감동과 존경에 맞이하는 성웅 이순신장군님~지금 이 나라를 굽어 살피어 주옵소소🙇🙇🙇

    • @user-ki3fz7bl5g
      @user-ki3fz7bl5g Рік тому +16

      우리나라가 의롭지 않고 , 야욕만 있는 민족 이었다면 ~~세계사는 다시 써야했을테지, 최소한 지금의 중국은 없을테지

    • @user-pu8vc9ib6t
      @user-pu8vc9ib6t Рік тому +9

      존경에 맞이하는 ->존경해 마지않는...죄송~

  • @ahejigichoi7819
    @ahejigichoi7819 10 місяців тому +44

    선조라는 최악의 등신같은 왕 밑에서 정말 불리했던 해전을 승리로 이끈건 믿기 힘든 사건이다.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히어로다.

    • @user-yb1oi2uy8l
      @user-yb1oi2uy8l 7 місяців тому +4

      웃긴게 조정대신들 반대하에도 승진시켜준 이가 선조임 `

    • @sujzang
      @sujzang 7 місяців тому +2

      ​@@user-yb1oi2uy8l아이러니 쩔죠?ㅋ 선조는 자기 자신만 생각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용한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 @wallolo
      @wallolo 5 місяців тому +2

      ​@@user-yb1oi2uy8l 처음엔 필요하니까 승진시켜줬는데 지는 여기저기 도망다니고 빌빌댈동안 공 엄청 세우니 경계한거지

    • @genshinimpactgood
      @genshinimpactgood 4 місяці тому

      선조 성군이었다는데

    • @ayylmao02
      @ayylmao02 2 місяці тому

      이순신 입장에선 등신같지만 선조 본인한텐 신들린 인사능력이지. 처음 이순신 등용할때 신하들이 지랄하니 자기가 이순신 커버 쳐주면서 직접 키웠고 결과적으론 자기가 키운 인재 덕에 나라도 보존했고 덕분에 왜란을 막은 왕이라고 기록도 되고 전란후 본인한테 눈엣가시같은 이순신도 자기손으로 처리도 안해도 되서 내심 속으로 기뻐했을듯. 이씨왕조의 근본이 장군이 쿠데타 일으켜서 세운 왕조인걸 선조 본인이 더 잘 아니까 전란후 민심을 따질때 이순신이 더 껄끄러웠던거임.

  • @ftc7777
    @ftc7777 Рік тому +182

    제일 믿기 힘든게... 역사기록상 명량해전 조선군 사망자가 단 두명뿐이였다는 기록...
    저 치열한 전투에서 아군의 희생은 단 둘뿐이였다...

    • @user-by9mj6dt7n
      @user-by9mj6dt7n Рік тому +7

      근접전이 아니라 원격전. 함포전이니 가능했겠죠 . 육지에서도 이순신장군처럼 준비 잘 했다면. 화포로 쉽게 이겨겠죠.

    • @dudrak7575
      @dudrak7575 Рік тому +16

      @@user-by9mj6dt7n 근접전이 이루어졌지요.
      장군의 배를 왜적선이 두겹세겹 둘러쌓고,
      안위의 배도 위태하였다니...

    • @beatbuzz2
      @beatbuzz2 Рік тому +27

      오전부터 정오까지..장군선 혼자서 개돌격 해서 1대 다수로 혼자 깨부수고 싸웠음...그후에야 안위의 배가 왔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네가 군법에 죽고싶으냐 라고 하신것이고...영화에선 도도다카도라 총대장이 퇴각이다 하면서 그냥 돌아가지만..사실은 화살을 2방이나 맞았음

    • @user-jm8km6zl4d
      @user-jm8km6zl4d Рік тому +7

      조선의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 이라는거다.. 좋은점은 방향 전환이 쉽다는것.. 이를 이용한 함포전술.. 한쪽은 쏘고 한쪽은 장전하고 빙빙 돌면서 개속 쏜다.. 다만 평저선은 대양항해 장거리 항해에 부적한 배로 연안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 @user-jm8km6zl4d
      @user-jm8km6zl4d Рік тому +10

      일본의 배는 첨저선으로 대양항해 장거리 항해에 적합한 바닥이 뾰족한 배다.. 선회반경이 졸라 크기 때문에 방향전환에 졸라 취약 극악수준이다 ..이를 이용한 전술을 극대화 했다...

  • @koreapatriotism1869
    @koreapatriotism1869 Рік тому +156

    이순신장군이었기에 명량해전에서 대승할수 있엇습니다. 지휘관, 지도자가 이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패퇴했다. 이순신이 이겼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뿐이다. 왜 한국인은 역사를 날조하는가? 대답하십시오.

    • @user-ty4mu6pu6l
      @user-ty4mu6pu6l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대한민국을 지휘하는 굥 술통은..?

    • @JEONGYOUNGTAI
      @JEONGYOUNGTAI 5 місяців тому

      ​@@user-ty4mu6pu6l여기서 정치 무새가?ㄷㄷ하네 ㅋㅋㅋ

    • @k-love8896
      @k-love8896 29 днів тому

      ​@@user-ty4mu6pu6l두말할 나위 없이 최악이죠

  • @sky2024
    @sky2024 20 днів тому +1

    불멸의 구국 영웅 !!! 성웅 이순신 장군 !!!
    나라가 어려울때 항상 이순신 장군님을 떠올리며 기도드린다

  • @sionpapa
    @sionpapa Рік тому +46

    저게 거짓말이 아니란게 거짓말 같은 전투..

  • @saryanglee3752
    @saryanglee3752 Рік тому +137

    가끔 수 백척의 적선 앞에, 대장선 한 척을 몰고 나가 겁 먹은 아군들이 언젠가 반드시 합류해 줄 것이라 믿으며 한참동안 싸우는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보곤 함. 이걸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일 일까?

    • @kdekdc
      @kdekdc Рік тому +20

      서야인들은 고구려가 수나라 100백만 대군을 물리친것을 들어면 놀라 자빠지겠군...

    • @joyful994
      @joyful994 Рік тому +15

      @@kdekdc 당나라 이세민이도 고구려한테 안시성전투에 한방 먹은것도 있으니

    • @YangManChun645
      @YangManChun645 Рік тому +10

      *내가 썰을 풀어야할때가 온것같군....*

    • @DS-us4rj
      @DS-us4rj Рік тому +4

      @@YangManChun645 만춘게이야...

    • @user-he6oe1gb8z
      @user-he6oe1gb8z Рік тому +4

      말 그대로 님이 쏜 포가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격침 순서도 틀리지 않아야 가능한 내용
      참고로 이순신 장군님이 1:300 찍을 때 물은 일본군에 유리한 물살이었음.

  • @user-jc7pq9qn2p
    @user-jc7pq9qn2p Рік тому +66

    불가능한 일에 부딪혔을때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한국인이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거짓말쟁이니까.

    • @user-jc7pq9qn2p
      @user-jc7pq9qn2p 9 місяців тому +1

      @@hiroono1 힘들게 한글배워 못된곳에 쓰는구나 너희들이 맨날 욕하는 한국인특성 아니냐? 니들같으면 할복한다고 난리치다 비굴하게 무릎꿇을때 한국인은 부득부득 또 덤비는거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user-jc7pq9qn2p 나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배우는 가치는 없다. 기계 번역으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한국인은 한국어의 특수성에 지켜져 국내에서 거짓말을 퍼뜨려왔지만 앞으로는 기계번역으로 외국인이 감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한국인의 역사 날조는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 @user-sz1is3gz3n
    @user-sz1is3gz3n Рік тому +92

    영국 해군 전투 교본에도
    실려있는 해전이라죠!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user-tw8dz6po5y
    @user-tw8dz6po5y Рік тому +42

    출전 모두 전승!

  • @user-he2yx8fr9m
    @user-he2yx8fr9m Рік тому +41

    이순신은 조선의 영웅이고 현제도 대한민국의
    영웅이고 미래에도 영웅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인물중에 한명인 이순신님
    멋있습니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belle1004.
    @belle1004. 10 місяців тому +35

    해군이면 나라구분없이. 모든나라에서 제일존경하는 장군

  • @shipowner77
    @shipowner77 Рік тому +88

    한놈도 살려 두지 마라 저 놈들이 다시는 이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 이순신 -

  • @user-vg4op9jd4j
    @user-vg4op9jd4j 16 годин тому +1

    제가 이순신 장군 28대손
    손자라는게 자랑 스럽네요
    😊😊😊

  • @Koreankingsonny
    @Koreankingsonny Рік тому +32

    장군님이름만들어도 가슴이운다
    존경이란말로는 감사함을 다말할수없다

    • @user-hi9ut6wb6i
      @user-hi9ut6wb6i 10 місяців тому

      태조왕건의 금성 나주 전투를 영화로 만들면 명량을 능가하는 해전 씬 볼수 있음
      첫 전투는 일단 나주 상륙작전이고 그뒤에 본격 함대전 심지어 함대에 공성 무기가 실려서 불덩이를 날려댐 그리고 배가 배를 부수고 후백제군 배에 도선해서 근접전도 벌임
      진짜고려 태조 황제의 금성 나주 전투는 영화화에도 해외에서 대박칠거임

  • @marineqoo
    @marineqoo 11 місяців тому +84

    이순신 장군님의 전투업적이 놀라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상황을 하나도 남김없이 더함없이 항상 일기로 기록해 두셨다는 그 자체이다.
    그의 의지와 지혜보다 놀라운것은 바로 장군의 그 성실함과 겸손함이 아니었을까?
    천행은 백성들이었다 말하는 이순신장군의 눈빛은 오늘날 우리가 존재할수 있는 이유이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이순신의 일기에는 23전 23승이었다고는 적혀 있지 않다.

    • @smikeht
      @smikeht 8 місяців тому +4

      ​@@hiroono1어쩌라고

    • @hiroono1
      @hiroono1 8 місяців тому

      @@smikeht 이순신은 실재한 인물이지만, 23전 23승은 날조이다.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개전 후 2개월 정도 사이뿐이며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다. 그 후 몇 년간 이순신은 패주를 계속했다. 통산전적은 3승 20패 정도일 것이다.
      덧붙여 거북선은 실재한 배가 아니다.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 @sujzang
      @sujzang 7 місяців тому +5

      ​@@hiroono1ㅍㅎㅎㅎㅎ 역사학자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않겠어요.?ㅋㅋㅋㅋ

    • @sujzang
      @sujzang 7 місяців тому

  • @jdk2320
    @jdk2320 Рік тому +45

    이순신 제독은 신화같은 장군임!

  • @solongos453
    @solongos453 Рік тому +50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동양의 역사,나가서 세계역사가 바뀌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이순신장군은 그저 작은 조선의 장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세계평화에 기여한 사람이다. 그 외에도 한국의 모든역사가 그러하다.
    한민족은 세계평화의 씨앗이고 핵심이었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qwer-us8ky
    @qwer-us8ky 9 місяців тому +55

    전세계 유명한 장군들은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순신장군만큼은 정반대로 이간질로 고문과 파면까지 당한상태에서 정부지원없이 자급자족으로 모든걸 조달하고 전투에 나가 승리했다는점에서 위대하다고 할수있지

    • @hiroono1
      @hiroono1 7 місяців тому

      거짓말이다.

    • @orro3832
      @orro3832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정부에서 지원은커녕 수군들이 틈틈이 논밭과 염전을 일구어 마련한 군량미와 물자를 정부에서 다달이 수탈해갔죠ㅠㅠ

    • @hiroono1
      @hiroono1 7 місяців тому

      @@orro3832 이순신과 그 군대가 작물을 만든 것은 아니다. 조선인의 농민으로부터 강탈한 것이다.

    • @question_mark3
      @question_mark3 7 місяців тому +2

      ​@@hiroono1그래도 일본처럼 중국식민지였던 나라보다는 훨씬 낫죠

    • @hiroono1
      @hiroono1 7 місяців тому

      @@question_mark3 한국인은 일본 교육에 의해 소변으로 얼굴을 씻고 거리에서 대변을 하는 습관을 멈췄지만 식민지의 의미를 알기에는 병합의 36년간은 너무 짧았던 것 같다.
      식민지란 종주국에 종속되어 종주국으로부터의 이주자에 의해 새롭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개발된 지역이며, 그 이익은 주로 종주국이 얻는다.
      이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 해당한다. 조선은 중국에 군사적 보호를 받고, 보답에 정기적으로 성노예를 계속 주었다.
      대한제국은 일본에 종속되어 일본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그 이익은 한반도에 남았기 때문에 식민지가 아니라 병합이라고 부른다.
      한편 일본은 중국에 종속된 적이 없고 중국에 의해 개발된 적도 없기 때문에 독립국이다.

  • @miya4195
    @miya4195 Рік тому +95

    다시 볼때마다 처음보는 것처럼 가슴벅차고 가슴아프고 웅장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다시 일어나고..
    어서 아이들이 커서 이영화를 볼 수 있길 손꼽아 기다립니다

    • @dudrak7575
      @dudrak7575 Рік тому +4

      잘 보관해주셨지요?
      영화..!
      같이 보며 기뻐할 모습에 기대가 큽니다.

    • @hiroono1
      @hiroono1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순신이 일본군에 대해 우세하게 싸운 것은 전쟁 개시 직후 2개월 정도만이다. 일본군의 배가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이긴 것은 한산도 해전이 마지막이며, 그 이후는 매회 패주했다. 다음은 조선문서에 있는 기술이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쓰여 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패퇴했다. 난중 일기에 쓰여있다.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하고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이때 거의 모든 조선군의 사령관이 죽었기 때문에 이후 홍타이지와의 전쟁에서는 대패하여 청국의 속국이 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일본군의 사령관에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2년 후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이 사실을 비교하면 조선군은 일본군에 패배해 일본군의 귀국을 멈출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 @kimsthovan50
    @kimsthovan50 10 місяців тому +8

    우주의 다른 행성에도 이런 위대한 전투는 없으리라!

  • @inilykim1062
    @inilykim1062 Рік тому +37

    명량해전에 참전한 판옥선은 12척이냐 13척이냐 오락가락하는데 정확히 13척입니다
    아마도 충무공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라는 장계때문일겁니다
    처음에는 배설이 칠천량에서 도망칠 때 끌고 간 배 12척이 전부였으나 나중에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1척을 끌고 와서 합류합니다

  • @user-fe8ez7or3e
    @user-fe8ez7or3e Рік тому +63

    아..자랑스럽고 저분의 후손이 그리고 끝까지 지킨 백성이 우리란게 자랑스럽다..ㅠㅜ

  • @user-sl1fu6hc1d
    @user-sl1fu6hc1d Рік тому +53

    아 진짜...영화보다 더 상세한 책으로 세세히 읽어봤지만... 진짜 이런 천재 이런 성군이 없다...ㅜㅜ

    • @dudrak7575
      @dudrak7575 Рік тому +5

      아니..
      장군을 성군이라 칭하시다니요.
      이건 역모입니다.
      장군을 역모의 수괴로 만드실 참이오..?ㅋ
      성웅이라 쓰시려다 감동의 떨림으로 웅을 군으로 삐끗 하신듯...ㅎ

    • @user-qe3xw2rb2b
      @user-qe3xw2rb2b Рік тому

      성군??

  • @user-ph9qb3kk8k
    @user-ph9qb3kk8k 9 місяців тому +11

    이순신 장군님이 지켜주신 이 나라를 굳건히 지켜냅시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이순신이 몇시 조선을 지킨 거야? 이순신은 일본에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일본군이 철수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며, 이순신은 관계없다.
      한국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당시의 많은 민중은 일본군을 지지하고 있었다. 음식을 제공해 길 안내했다. 조선 민중은 양반의 정치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서울의 미야기로 방화한 것도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의 민중이다. 당시 조선의 지배자 계급의 대부분은 홍타이지에 의해 숙청되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인의 조상은 당시 민중이다. 즉 당신의 조상의 적은 이순신이고, 일본군은 아군이다.

    • @user-yk7eq5on1k
      @user-yk7eq5on1k 8 місяців тому

      ​@@hiroono1 너 일본인이냐?ㅋ

    • @hiroono1
      @hiroono1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yk7eq5on1k 나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 @user-yk7eq5on1k
      @user-yk7eq5on1k 8 місяців тому

      @@hiroono1 번역기 썼네

    • @hiroono1
      @hiroono1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yk7eq5on1k 한국어를 배울 가치는 없다. 지금까지 한국인은 한글의 로컬성에 의해 국내에서 역사 날조를 부풀려 왔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다. 외국인이 한국인의 거짓말을 항상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user-zp1mh5rl8y
    @user-zp1mh5rl8y Рік тому +23

    역사상 해군 장군으로써 가장 위대한 이순신장군 그는 불멸의 장군으로써 말도 안되는 업적을 남기며 명언도 남겼다!!!
    한국인들 보다 외국 해군장교들이 이순신장군을 더 섬기며 그가 벌여왔던 작전모두 보고배우는 해군장교들!!!
    단언컨대 세계 해군 사령관중 최고는 이순신장군 이다는건 명백한 사실이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simoncrom
    @simoncrom Рік тому +13

    명량 해외반응으로 유명한분들인데 오 감사합니다

  • @user-kf6kj6co8q
    @user-kf6kj6co8q Рік тому +185

    전 세계 해군장교들은 이순신장군님의 병법을 공부한다는 사실 정말 위대하신 분

    • @user-hi9ut6wb6i
      @user-hi9ut6wb6i 10 місяців тому

      우리나라에는 단독 뛰어난 장수가 이순신만은 아닙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조 태조황제도 궁예 집권시절 태봉국 수군총사였습니다
      그리고 태조황제는 호족들의 도움으로 수백척의 거대 함대를 제작 그리고 수천의 군사로 금성상륙작전을 개시해 금성을 함락 시키고 고려땅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고구려에는 광개토태제 께서 백제정벌때 수군을 직접 지휘하시었구요 또한 왕으로는 당나라의 개가 된 고건무역시 장수 시절에는 뛰어난 수군 장수였죠 수나라의 수백척의 전함을 격파한 전공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호아의 수군을 평양성 내에 끌어들여서 수만의 수나라 오랑캐들의 군대를 몰살시켰구요
      이순신은 불운한 장수입니다 왕을 잘못 만났어요 만약 고려조에서 장군이되었다면 아마 좋은 대접을 받았을겁니다 아마 수군 대총관 자리는 물론 고려 조정의 최고의 관직인 시중벼슬에
      아마 아산 도독 직도 겸하였을 겁니다 고려버젼 이순신 관직명을 지어보면 대 고려국 수군총사 아산도독겸 시중이순신 이라는 수기가 내걸렸겠지요 그러나 조선의 왕은 이순신 같은 장수를 대우하기는 커녕 그야말로 속 좁은 아녀자처럼 투기를 해서 엿 같은 대우를 함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맡기에는 조선의 선조는 그릇이 안됨 적어도 고려조의 태조나 광종쯤은 되어야 함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거짓말이다.

    • @user-jh3ew5yv7d
      @user-jh3ew5yv7d 9 місяців тому

      정보화시대에 찾아보면 나올껀데
      무조건 우리는 별볼일없어보이죠
      18세기까지 성인남자 기저귀만 차고 우편배달한 쪽국은 위대해보이죠

    • @user-br5bl6ym7t
      @user-br5bl6ym7t 9 місяців тому +12

      ​@@hiroono1뭐가 거짓말임 ㅋㅋ 실제로 일본이 배웠고 그 일본이 청일전쟁 해전 학익진으로 바르고 그게 또 퍼진건데 ㅋㅋㅋ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user-br5bl6ym7t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 @user-mq7zw7tt5k
    @user-mq7zw7tt5k 10 місяців тому +3

    필승 594기 인사 올립니다 대선배님 존경스럽습니다...

  • @seeder0083
    @seeder0083 Рік тому +39

    영화 천군 마지막에 그러잖아
    병사가 이 전쟁 이길수 있습니까...
    하니까 '믿어 우리가 이겨' 라고 역사를 알고
    말하는거였지만 그당시 소름돋고 배꼽잡아 웃었던 기억이 있네요

    • @RTNRTN94
      @RTNRTN94 Рік тому +5

      천군에서 이순신도 자신을 의심하고 전혀 영웅적인물이 아니였다가..
      성장하는 캐릭터로 꽤나 재밌는 발상의 영화였음.. ㅋㅋ 상업영화로는 꽤나 잘풀었다고봄.. 당시 수준으로..

    • @dudrak7575
      @dudrak7575 Рік тому +2

      밝혀지지 않은 시간대이기에
      그러한 상상력이 작용된 영화였다 봅니다.

    • @dudrak7575
      @dudrak7575 Рік тому +1

      @@RTNRTN94 꽤 발칙한? 발상이었지요.
      밝혀진 것 없는 시간대인지라...
      위인의 성장기..
      어릴 적 꽤나 개구졌던 장군이시니..

    • @Arahan-33
      @Arahan-33 Рік тому

      @@dudrak7575 개구쟁이라고 하기엔.,, 사실 깡패같은 모습들도 많으셧죠;;

  • @user-mo7rm3id2d
    @user-mo7rm3id2d Рік тому +4

    멋있다 이순신장군

  • @user-sp7tr2oc9t
    @user-sp7tr2oc9t Рік тому +10

    세계적으로 해전을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순신 장군을 최고로 칭송 합니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user-vt5hr3bj2n
    @user-vt5hr3bj2n Рік тому +6

    영화보다 실제가 더 말이 안되었을거야 우린 그걸 영화로도 못담아내고있지...

  • @lyucia40
    @lyucia40 Рік тому +33

    이건 국뽕치사량 맞지..무엇보다 규모에서 압도될만도한데 그걸 버티며 이겨냈다는것부터 보통인물과는 너무 달라 그저대단!

  • @user-jg9te4rc1q
    @user-jg9te4rc1q 4 місяці тому +2

    이순신 장군님을 나라를 구하신 수호신이야 지금도 바다를 지키고 계시겠지 감사합니다

  • @ONLYGD0818
    @ONLYGD0818 Рік тому +17

    아침에 조조로 봤는데 어르신들이 굉장히 많은거에요 영화관에 어르신들 많은거 처음 본듯 영화끝나고 어르신들 일어나서 박수치는데 저도 엉덩이 들썩임 결국 일어나지는 않았지만ㅎㅎ이때 국뽕이 머리꼭대기까지 찼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 @hehe_88888
    @hehe_88888 Рік тому +8

    일본에서도 이순신 장군을 위대한 존재라고 믿눈 사람이 있을정도니까

  • @user-wv8cp5kk6v
    @user-wv8cp5kk6v Рік тому +8

    영화여서 사람 좀 죽었지 실제론 2명인가 1명죽음 ㄹㅇ 개사기 이순신 장군 이게 지휘관의 능력이다 어떻게 이렇게 잘싸웠을까 존경을 넘어 신이야그냥

  • @kkwangtae
    @kkwangtae Рік тому +5

    저런 위대한분을.. 나라에서는..

  • @jgh00
    @jgh00 Рік тому +7

    이순신 장군님은 미래에서 오신분이 맞는거 같아요

  • @sunpark4554
    @sunpark4554 Рік тому +4

    나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해군의 다짐

  • @prospective_
    @prospective_ Рік тому +2

    우리나라 너무 멋있어요

  • @user-zz9cb2bj7k
    @user-zz9cb2bj7k Рік тому +2

    코~ 막혀 설명 하시는 소리^^
    저도 많이 울었어요^^

  • @jdr.431
    @jdr.431 Рік тому +6

    13분동안 뭘본건지도 모르게 지나갔네.. 그만큼 몰입하고 봤는듯.... 한산도 재밌다 ㅎㅎ

  • @apck2004
    @apck2004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존경합니다 장군

  • @user-ve2it1ds6p
    @user-ve2it1ds6p Рік тому +6

    10만원지폐권으로 바꿔야 한다...존경하는 이순신장님.

    • @lenlan493
      @lenlan493 28 днів тому

      원래 가장 위대한 인물은 가장 비싼화폐가 아닌 가장 많이 쓰는 화폐에 사진으로 나옵니다.. 보통 가장 낮은 화폐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그려집니다.
      그 예로 미국 1달러 지폐에는 조지 워싱턴이 그려져 있죠
      무작정 국뽕에만 취하지 마시고 왜 가장 비싼 화폐가 아닌 가장 많이 쓰이는 화폐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그려넣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 @llantelynnel1989
    @llantelynnel1989 Рік тому +8

    한국양궁 쎄죠 ㅎㅎ 저 시대때엔 국궁이라고 봐야겠죠. 양궁이 아니라..

  • @goodsgood09
    @goodsgood09 Рік тому +3

    적국인 일본은 이순신장군을 두려워했으며 이순신장군을 존경했다 라고 들은 기억이 있네요

  • @minzokielizabeth3830
    @minzokielizabeth3830 Рік тому +56

    명랑에 이은 한산 대첩까지 우리가 잊으면 안될 성군 이순신의 얼을 다시 느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적인 위정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건 변함 없단게 슬프다

    • @user-nx2xh8ym5w
      @user-nx2xh8ym5w Рік тому

      그럼 군인이 권력을 잡고 있어야함?

    • @user-qe3xw2rb2b
      @user-qe3xw2rb2b Рік тому

      성군?

    • @user-nx2xh8ym5w
      @user-nx2xh8ym5w Рік тому

      @@user-qe3xw2rb2b 성군이 뭔지도 모를거임ㅋㅋ 위정자는 또 어디서 들었는지 걍 정치인이라고 하면되는데 정치적인 위정자 ㅇㅈㄹㅋㅋ 개웃김

  • @icu_Nmh
    @icu_Nmh Рік тому +51

    세계 전사를 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육전에서는 몽골군의 수부타이, 해전에서는 이순신을 꼽는다.
    그러나 솔직히 이순신은 그냥 사기캐릭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버릴수 없을정도의 장군이라는 것에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단 한번의 패배도 존재하지 않는 장군이 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 @user-br5bl6ym7t
      @user-br5bl6ym7t 9 місяців тому +3

      무패는 몇명있었죠 근데 무패중에 단 한번도 유리한 전투가 없었던 장군은 이순신 장군님이 유일 ㅋㅋ 그게 최대 임팩트 !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세계 사람들은 이순신 등 아무도 모른다.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Panorama-memory
      @Panorama-memory 5 місяців тому

      자도 그래. 육전은 수부타이.
      그러나 이순신 장군에게는 그도 미치지 못한다.
      최소한 수부타이는 지원이라도 정상적으로 받았지. 병력도 많았고. (절대적 병력은 적었어도 몽골군은 전원 기병이었고 지금으로 치면 기병은 탱크임. 탱크 5천대의 위용을 생각해봐라)
      보병은 몽골 기마병을 상대할 방법 자체가 없어. 사람들이 단순히 병력수만 놓고 몽골군이 적은 수로 전투를 이겨서 대단하다 올려치는데 전군이 기마병이다 라는 걸 잊으면 안됨. 유럽에서는 한 나라의 기마병 (기사) 해봐야 백단위임. 유럽 기사 기마병을 동일한 수로 붙어도 몽골군이 이김. 기동성 차이 때문에 애초에 몽골군이 전투 시기와 지형 등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있었음. 불리하면 내빼면 끝이고. 아주 잠시도 못쉬고 밥도 못먹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님.

  • @user-ue6op4xn2w
    @user-ue6op4xn2w Рік тому +9

    외국인들 반응을 보니 한국영화가 왜 상을 받는지 알겠네요.

  • @jpl1659
    @jpl1659 Рік тому +8

    중국을 향해 호령 했던
    을지문덕 장군의 동상도
    광화문 광장에 세워 말위에
    앉아 중국을 향해 포호 하는
    동상을 하나더 세웠으면
    합니다

    • @machmax7
      @machmax7 8 місяців тому +1

      광개토태황을 세워야지😊

  • @user-vm4tz7kz8p
    @user-vm4tz7kz8p Рік тому +3

    천군도 잼있는데 특히 마지막에 두두두둥 글씨가 나올땐 소름이 ㄷㄷㄷ

  • @armatus6136
    @armatus6136 Рік тому +14

    전세계에서 넬슨을 2류취급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

  • @user-qk1tm9xz8s
    @user-qk1tm9xz8s 5 місяців тому +3

    12 대 330 : 영원히 존경 받아야 할 이순신 장군님을 기억합니다.

  • @user-zz9cb2bj7k
    @user-zz9cb2bj7k 8 місяців тому

    코 막히신거^^
    들려요^^
    저두 다시 보고 있지만
    울고 있네요~

  • @user-dq9ux4gu3g
    @user-dq9ux4gu3g Рік тому +4

    이순신은 신이다.

  • @user-wh6om3tf7q
    @user-wh6om3tf7q 8 місяців тому

    우리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는 선조님으로 여기는 후손이라는게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 @user-py7hc6tq6x
    @user-py7hc6tq6x 4 місяці тому

    이순신 장군님의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가슴이 웅장해지고...닭살이 돋고....척추 저 밑에서 부터 머리 끝까지 뭔가가 타고 올라오는 걸 느낍니다.

  • @kikihshc
    @kikihshc 8 місяців тому

    내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위인
    이순신 장군님

  • @user-he6oe1gb8z
    @user-he6oe1gb8z Рік тому +12

    여담이지만 명량 영화를 보면 권율 장군이 이순신 보고 육지로 와 같이 싸우자고 하는데 그렇게 말한 근거를 들자면,
    하나는 조선 수군이 원균 놈에 의해 작살이 나 함선 수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버린 상황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좌수사로 오기전에는 북방 국경에서 여진족의 침략을 방어하던 육군 장수였음.
    그리고 전공도 혁력하게 올렸기에 고향 친구인 유성룡의 추천을 통해 좌수사가 될 수 있었죠.
    즉 권율 장군 님은 이순신 장군에게 북방에서 보여주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보고 본대랑 같이 싸우자고 불러 들인 것이지만 바다를 버리면 양면으로 협공을 당해 공격만 당하다 피폐해져 전멸할 것을 예견한 이순신 장군은 이 권유를 뿌리치고 13척으로 300척을 막아내는 위엄을 달성하며 조선 수군의 건제함을 보여주며 일본 수군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공포를 다시 각인시키고 행동에 제약을 걸어 시간을 벌었죠.
    이순신 장군님의 육지에서의 능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게 백의 종군하다가 원균이 수군 말아 먹고 다시 전라도 쪽으로 내려가며 병력을 수수습하고 흩어져 도망쳐 살아남은 판옥선들을 회수할 동안 단 한 번도 일본에게 걸리지 않았따는 점만 봐도 그 능력이 미쳤다는 걸 알 수 있음.
    이게 어떤 거냐면,
    님이 적들이 장악한 진영 한복판에서 흩어진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모아 수천 명을 데리고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적에게 걸리지 않고 무기까지 챙기고 보급까지 하면서 님 진영까지 돌아와 군을 재건하는 미션을 받은 거임.

  • @kysg3498
    @kysg3498 4 місяці тому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님과 세종대왕 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민족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고개 숙여지고 저절로 존경심이 앞선다

  • @user-ey8cr1qi9i
    @user-ey8cr1qi9i Рік тому +2

    한국 국궁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추후 자막에 참고하심요~ㅎ

  • @ggghhhhhhhjkjkkkkk
    @ggghhhhhhhjkjkkkkk 5 днів тому

    미해군 사관학교 에서도 이순신을 배우는걸로 알고있는데요.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 #죽고자하면 살것이고 살고자하면 죽을것이다#

  • @starnspace
    @starnspace 11 місяців тому +6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 전쟁을 꼭 내 눈으로 보고 싶다. 어떻게 이긴걸까? 이순신 기함이 홀로 싸운 반나절이 정말 궁금하다. 이순신도 난중일기에 썼다. 실로 천운이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이긴걸까... 정말 궁금하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이순신의 공적은 한국인이 날조한 것이며, 한국인의 날조에 세계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실제 이순신은 3승 20패 정도의 일본군에서 도망친 겁쟁이 사령관이다. 그러니까 백의병에 떨어진 것이다. 당당히 싸워 패한 원균이 훨씬 더 우수하다. 2층 건물이나 바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조선인이 일본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 와키자카 본인은 미역을 먹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이 100년 이상 뒤에 날조한 이야기다.

  • @lms175
    @lms175 Рік тому +1

    그분이 왜,
    영웅이 아닌,
    성웅인지 알려주는 대목.

  • @user-ue6vc2vz9k
    @user-ue6vc2vz9k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일본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귀신'으로 묘사, 얼마나 충격과 공포였을까요

  • @magivgunlee245
    @magivgunlee245 8 місяців тому

    이순신장군은 우리해병들의 전신이다 충성

  • @jschoi3990
    @jschoi3990 2 місяці тому

    저런 지도자른 다시 볼수 있을까요

  • @user-nh8cv7mx6i
    @user-nh8cv7mx6i Рік тому +5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서울한복판에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는 이유를 모르겠지..

  • @user-zu5ju3rp5h
    @user-zu5ju3rp5h Рік тому +21

    제대로 알고 말하자. 12:330 이 아니고 원래는 1:330 이라오. 나머지 부관들은 장군의 명령에 나중에 합류한것이라오.

  • @rlftjswns8489
    @rlftjswns8489 Рік тому +4

    영화 300같이 좁은지리에서 소규모으로 대규모 적을 유인해 물리치는 작전은 같지만 이순신장군님의 신의 한수는 물의 흐름과 날씨의 전략으로 인한 확신함이 있었기에 대군을 물리칠수 있었다는 대단하지 중국의 전략제갈량처럼 그만큼 대장군인 이순신 장군은 지식과 지혜가 높았다는 증거가되는꼴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패퇴했다. 이순신이 이겼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뿐이다. 왜 한국인은 역사를 날조하는가? 대답하십시오.

  • @kbk0723
    @kbk0723 5 місяців тому +1

    낮선 이방인인 여성 해설자가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벅차 오르는 감동 그 자체에 어쩔줄 몰라하는 장면 5:59을 보니, 영화를 본지 꽤 오래되었지만 또 한번 감동이 몰려옵니다.
    풍전등화에 내몰린 내몰린 그 시대 백성들이 울둘목에서 악전고투하는 조선수군들이 목숨 건 해상전투를 바라보는 심정은 오죽했을까하는 생각에 감동과 숙연함이 몰려오네요.

  • @keithcho4535
    @keithcho4535 Рік тому +6

    우리도 긴가민가 하다가
    성인이 되어 팩트를 확인하고 나서야 깜놀인데
    그대들은 어떨지 감이 옴.

  • @April-friend
    @April-friend Рік тому

    노량해전.? 명량해전..!!

  • @BibigoJjolmyeon
    @BibigoJjolmyeon 6 місяців тому +1

    난 아직도 명량에서 "포탄을 조란탄으로 바꿔라. 그리고 백병전을 준비하라."라는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음

  • @user-wf1jo3zm2l
    @user-wf1jo3zm2l Рік тому +3

    저런 분이 선조인데 역사를 무슨 수로 잊어 이게 내가 살 수 있는 이유인데

  • @user-fi9pz4kf2x
    @user-fi9pz4kf2x Рік тому +1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순신 장군님 세종대왕님 이 계셔서 지금의 한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시간까지 영웅이시고 훌륭한 분들 많은데

  • @user-cc7lr7ln5s
    @user-cc7lr7ln5s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국내 외 최고의 장군이였다.....

  • @chwihanbang-gae
    @chwihanbang-gae Рік тому +3

    개인적 영화보단
    드라마 에서 나온 이순신이 더 옛날맛감성 이 있어서 몰입감 좋았는데ㅋㅋ

  • @Klunchbreak
    @Klunchbreak 8 місяців тому

    뜬금 없겠지만 안녕하세요가 너무 좋아요 북극곰 ㅎㅎ

  • @BrianHSC
    @BrianHSC Рік тому +3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을 할때는 타이타닉처럼 실화를 크게 바꾸지 않는선에서 다른 스토리를 더하는게 원칙인데. 판옥선을 대나무로 밀고 밧줄로 어부들이 당기고 이런 말도 안되는 각색없이 그냥 역사 그대로가 훨씬더 감동적 이었을것. 실제로는 전사자 2명, 부상자 3명밖에 안되는 말도 안되게 압도적인 승리였는데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깎아 먹은 졸작.

  • @user-cc9vi3bj8h
    @user-cc9vi3bj8h Місяць тому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종대왕님 그리고 이순신 제독님 정말 존경합니다 워낙 말도 안되는 업적을 만드시니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 @ANA-ml6js
    @ANA-ml6js 4 місяці тому

    누가믿겠어😊😊😊해신그자체지

  • @user-pk8pi2ym4l
    @user-pk8pi2ym4l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실제로 명량해전에 우리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는게 팩트

  • @kgw4181
    @kgw4181 Рік тому +3

    이러한 나라가 한명의 무식이가 이나라를
    어찌 할거라고 보지 않지
    이미 경험했으니 또 그리 될것이다

  • @zoker6806
    @zoker6806 4 місяці тому

    어릴적부터 알고있던 우리 후손들도 커가면서 더욱 믿기가 힘든 사실들인데, 외국인이야 오죽하겠나..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을 더 믿기가 힘들고, 그만큼 존경심이 커지는것 같다.

  • @user-yz2qo3oe7z
    @user-yz2qo3oe7z Рік тому +12

    거짓말 같은 진실 일세대 배우이신 최무룡 배우가 이순신 영화 재작했다가 망했다는 얘길 오래전에
    어린시절에 들엇는데요
    지금의 이런영화 만들고 싶엇을거요

  • @user-pe3jn8sf7e
    @user-pe3jn8sf7e Рік тому +1

    무시기 형

  • @user-kg3wh3fk1i
    @user-kg3wh3fk1i 10 місяців тому

    상상이 안가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전 세계인 모두가 이순신에 대해 알아야 하는거야

  • @user-rl7zx6qh7f
    @user-rl7zx6qh7f Рік тому +6

    그냥 전세계 사기캐야.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수자기를 보면 일본인들이 기겁하지.
    욱일기를 빡빡우겨서 한국해군에서 수자기를 달고 나갔더니 기겁하더니 ㅈㄴ 항의 했다던데. 이것만 봐도 욱일기도 단순히 단게 아니란 얘기지.

  • @smileycat8117
    @smileycat8117 5 місяців тому +2

    한국 양궁(×) 한국 국궁(○)

  • @smcho7383
    @smcho7383 4 місяці тому

    울돌목 한번가봐야 진심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수 있다.

  • @hooang8711
    @hooang8711 Рік тому +9

    깃발 내려가는건,, 솔직히 이해가 좀 필요하지 이순신 장군이 전술도 전술이지만 많은 첩보랑 깃발로 안되는 수신호같은건 연이랑 뭐 다 만들었다고 하니,, 있던 깃을 내리고 다른 깃발을 올리는건,,, 전세가 바뀌었다는 의미가 크니 의미를 알면 감동도 더 할듯,,,

  • @wonhojang1213
    @wonhojang1213 10 місяців тому +3

    믿기 어렵겠지만 서방의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배웁니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거짓말이니까.

    • @user-cn3cz9sr5t
      @user-cn3cz9sr5t 9 місяців тому +2

      ​@@hiroono1 저게 거짓이면 압도적인 왜군이 서해 보급루트를 왜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 연구 결과라도 가져와봐라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user-cn3cz9sr5t 한국인은 뇌가 없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데 육로가 확보되어 있는데 배로 가는 바보가 어디에 있는 거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 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제공해 길 안내를 했다. 이에 따라 일본군은 불과 3주 만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점령했다. 서울의 궁전은 일본군이 도착하기 전에 조선 민중에 의해 소각되었다.
      히데요시의 편지에 “조선 부대에게 물자를 보내는 것은 일본 국내보다 쉽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날씨에 따라 위험한 해로를 사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 따라서 이순신이 일본의 보급을 방해했다고 하는 것은 한국인이 만든 날조이다. 이순신은 부산항을 탈환해야 했다. 그것을 이순신은 물론 알고 있었고, 몇번이나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벌레처럼 두드려졌다. 결국 이순신은 전의를 상실하고 백의병에 빠졌다. 그것이 역사의 사실이다.

    • @hiroono1
      @hiroono1 9 місяців тому

      @@user-cn3cz9sr5t 일본군은 부산을 지키고 있으면 충분했기 때문에 수군에는 수천명밖에 배치하지 않았다. 조선군은 수만명의 수군에 의해 일본에 싸움을 했지만 일본군이 압승했다. 그것이 칠천 양해전이다. 조선의 배는 13척밖에 남지 않았다. 복귀한 이순신이 그 13척을 사용해 싸운 것이 명량 해전이다.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패주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도망쳤다.

    • @user-cn3cz9sr5t
      @user-cn3cz9sr5t 9 місяців тому

      @@hiroono1 그후에 왜 일본은 조선 수군을 공격하지 않았지? 당신 말대로 조선 수군이 패주했으면 추격해서 섬멸하는게 전술의 기본 아닌가?
      일본이 1번 조선 수군을 이기긴 했으나 그때 지휘관은 이순신이 아니었어.
      이순신이 지휘관일때 조선 수군은 한번도 패하지 않았어

  • @user-xm6sd5pe2i
    @user-xm6sd5pe2i Рік тому

    불멸의 이순신
    명량해전 보세요.
    확실히 실화입니다,

  • @Red-Octopus
    @Red-Octopus 9 місяців тому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은 우리 대한민국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