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백제 마지막 날, 우금산성 [주류성을 찾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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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4 гру 2024

КОМЕНТАРІ • 81

  • @jinyumin99
    @jinyumin99 Рік тому +11

    백제 마지막날..... 한 문장이.... 참.... 마음을 울적하게 하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우리 역사의 가장 큰 분기점이지요😞

  • @명규최-q1h
    @명규최-q1h Рік тому +6

    오늘영상 잘보았습니다
    백제부흥군의 항쟁지역이내요
    사비보다는 이곳이 더욱유리하지 않을가
    하는 섕각이 듣입니다 만약에 백강전투에서
    승리했다면 백제라는 나라가조금은 더 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듣입니다
    😊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풍왕과 도침과 복신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부흥군이 이길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안타까운 역사의 분기점입니다😮

  • @창조노량완수
    @창조노량완수 Рік тому +2

    놀랍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역사의 흐름을 잘 듣고 갑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감사드립니다😌

  • @Werner4voss
    @Werner4voss Рік тому +3

    직접 못가보고 있는 유적지들을 고퀄로 찍어서 상세한 설명까지...! 항상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 @향원익청
    @향원익청 Рік тому +2

    영상을 참 여러번 돌려봅니다 저 역시 우리 역사 중 제일 궁금했던게 주류성의 위치와 탄현의 위치였습니다
    저도 우금산성이 주류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군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주류성이라는 백제명문와가 떡하니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 @-joshuaTV-
    @-joshuaTV- Рік тому +5

    차분한목소리에 15분 정주행 순삭되네요.
    복신굴 가보고잡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오 주위에 굴이 꽤 많어요, 대부분 인공으로 보여서 더욱 복신굴로 여겨지고요😄

  • @천마총마립간
    @천마총마립간 Рік тому +2

    정말 지금까지 영상물 중에서 깊은 고서해석과 지형분석이 탁월했습니다...................................!!!언젠가 백강전투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안내해주시는 날이 오기를^^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백강전투면 염창산성이나 백산성에서 시작하면 좋겠군요😄

  • @ljs0328
    @ljs0328 Рік тому +2

    역시 쵝오!!! 이번 편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작가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어서 집필하신 서적을 보고싶읍니다😄

  • @dongkim2000
    @dongkim2000 Рік тому +2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kimsangmini
    @kimsangmini Рік тому +5

    서울살아서 날잡고 아침부터 풍납부터 몽촌토성 한성백제박물관, 방이동고분군(뭐 신라고분일수도 있지만ㅋ), 석촌동고분군까지 쭈욱 걸어서 답사하고 배낭여행으로 공주 (무령왕릉 발굴50주년 기획전도 볼겸ㅎ)부여, 익산까지 갔는데 날잡고 부안도 가봐야겠네요 ㅎㅎ 주류성 출판사 최애 출판사고 최근 그 건물에 파이브가이즈 생겨서 햄버거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찐 주류성을 보러가야겠슴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주류성 검색하면 출판사가 더많이 나오😞지요
      진정한 답사객이십니다👍😄

    • @kimsangmini
      @kimsangmini Рік тому +2

      @@사적돌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사적돌님을 뵈면 저는 정말 한참 멀었네요😭 올여름 부산거점으로 다른가야지역은 다 가도 못갔던 고성 합천 가야투어 마저 다녀오고 주류성에서 출판하고🤣 노중국선생님이 쓰신 고대 한류 열풍의 중심지 아스카책보고 일본으로 아스카 백제투어 떠나려고합니다. 항상 현장의 생생함과 넓은 시야로 역사를 바라보고 해당 현장이 문헌만으로 추정하기보단 발굴되어 학술로 고증된 역사를 바라보고 심층적으로 추정 할 수 있게 영상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위속에서 촬영하시느라 고생많으십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합천 참 좋지요 갈데도 많고요😄 염려 감사드립니다😌

  • @waterlilies5577
    @waterlilies5577 Рік тому +3

    백제주류성시리즈 너무 즐겁게 봤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시청 감사드립니다😌😄

  • @김멍-k2x
    @김멍-k2x Рік тому +2

    시골동네가 나왓네요 백산산 일어서면 죽산 앉의면 백산이라고 동네서 들엇는데 아니네요. 조그만한 산같은 언덕인데 올라가면 주변에 산이 업어서 온사방이 훤히 잘보이죠 어렷을때 동진강은 여름에 홍수가 가끔씩낫죠.
    지금은 둑안쪽엔 농사를 안하죠. 그전엔 농사를 지엇죠. 그래서 홍수나면. 싹날라갓죠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2

      이름의 유래는 사실 누가 맞고 틀리다 라고 확실하게 단정짓기는 좀 뭐합니다. 오히려 지역 전승이 더 정겹고 아련하군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주민분 반갑습니다😌 소중한 과거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그렇지요, 자료조사하면서 백산성 과거도 같이 조사했지만 잘 없더라고요🤔

  • @손스타-h1q
    @손스타-h1q Рік тому +3

    영상 잘 밨어요 .북한에있는 고구려 역사도 보고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아쉽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통일되서 북한 촬영도 다닐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gotrade21
    @gotrade21 Рік тому +2

    좋은 영상과 소개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시청 감사드립니다😌😄

  • @dhonghyokho6813
    @dhonghyokho6813 Рік тому +2

    맨번 느끼지만, 앎이 협소한 나에게, 사적돌의 나래이션은 마치, 최순우님의 ‘베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포맷이요, 빛의 속도는 초당 30만 키로미터의 불멸처럼, 마치 잘 익은 랩퍼처럼, ‘다 들어오지 않으나’ ‘그 맛이’ 그런 나래이션입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슴슴한듯 시나브로 나직하게 만드는것이 목적입니다😌

  • @아자아자-z8m
    @아자아자-z8m Рік тому +2

    여름철 이라 그래서 그런지..쥔장님께서 몸이 조금더? 가벼워보입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저날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 @아자아자-z8m
      @아자아자-z8m Рік тому +2

      @@사적돌 에겡..
      난 또..살이 좀 빠진줄🤪🤪🤪🤪🤪🤪🤪🤪🤔😄👍🙏

  • @키르케-h2m
    @키르케-h2m Рік тому +7

    백제의 마지막 구절에서 절절한 마음이 느껴 집니다 😢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가끔은 그때 일본으로 넘어간 백제 유민들의 기록이 어딘가에 있지 않겠나 라는 기대를 합니다
      그럼 더 잘 이해할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요😌

    • @자유민주-w4f
      @자유민주-w4f Рік тому +1

      @@사적돌
      거기 있겠죠.한국엔 지금도 삼국전쟁 중이죠.치열하게.잘못함
      ㅇㅇ도 바뀔 지경.
      이미 네버검색에나 위키엔 이미 조작글천지임.애들거나 위키에 제일 늦고 산맥막혀 ㅈ과 교역못해 무식 약했던 신라가 반쪽반도나마 통일 등등 ㅠ
      위에서 쓰는건지.네버 족 관리자가 쓰는건지
      더블에서 쓰는건지
      국어사전도 황당단어들로. 분명 ㅈ단어인데.ㅠ 사람들 입에 배인 말을 잘못된 거라 정정중.
      ㅡ헌 종이사전이 꼭 있어야할듯.

  • @향원익청
    @향원익청 Рік тому +3

    너무 잘 보았습니다 진표율사 얘기까지 해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그때 댓글에서 말씀 나누었을때 대본이 나와있었는데 진표율사 언급하셔서 감짝놀랐습니다😄

  • @키르케-h2m
    @키르케-h2m Рік тому +3

    서면 백산이요 앉으면 죽산이라~~
    저쪽 익산 주변은 백제 대형산성이 많더라구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일단 미륵산을 빼놓을수 없고, 마한의 비밀이 전해지는 낭산 산성도 있지요, 미륵산성은 발굴중이라 그냥왔고 낭산산성은 이번에 촬영해왔습니다😄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3

    데츠카 오사무 선생의 작품 불새 태양편 소장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작품내 여풍장(부여풍)을 따르던 부여씨 백제왕족 하리마 라는 사람인데 백강전투에 패한 직후부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오늘 영상을 보면서 그 작품이 겹칩니다. 백산성 우금산성 잘 봤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궁금해집니다😮 소개시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송하나라
    @송하나라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백제의 유민들은 다시 힘을 모아 후백제아래에 서게 되니 아마도 대우나 가진 풍습이 하나로 섞이기에 상당히 이질적이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여전히 가장 홀대받는 지역이기도 하지요. 양국은 앙숙 중의 앙숙이었던 걸로 여겨집니다.

    • @사적돌
      @사적돌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수백년 수천년을 이어가는 유민의식과 그 실행력이 대단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뿌리를 기억하기마련인가봅니다🤔

  • @아자아자-z8m
    @아자아자-z8m Рік тому +2

  • @노정남-d9y
    @노정남-d9y Рік тому +2

    백강전투를 충남 당진 석문면 일대 인 웅포 용무치로 보는 견해도 있던데 이건 어떠신가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내포지역 구전들을 보면 충남 북쪽으로 들어온 수군들도 있던것 같은데,
      사서기록은 없네요🤔 일단 주류성 위치도 바뀌어야되고 무엇보다 험난하고 큰성이 없습니다😌

  • @tomandtrip
    @tomandtrip Рік тому +3

    볼 때마다 참 신기해요
    대본?을 미리 준비해 놓구서
    영상을 붙여나가시는가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5

      오 다른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줄 모르겠어요🤔
      저는 현장촬영이 영상의 중심이라
      자료조사-가대본-현지촬영-자료조사-완대본-녹음-편집 순인데..
      가대본은 반나절-하루정도 걸립니다, 영상의 주제를 잡고 관련된곳은 어디어디이고 일정도 같이 잡고요
      촬영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는데, 드론촬영비행허가가 어려운곳들이 많다보니 그점이 애로사항입니다.
      이번영상도 국립공원이라 드론금지😞 원거리촬영만했네요.
      사전 서류작업이 보통 일주일이상, 영상 한편에 반나절에서 하루정도 소요되고, 산타면 하루 다쓴다고 봐야지요,, 장비도 많고해서;
      촬영해온 영상에맞게 대본작업과 편집이 하루이틀, 삼일도갑니다.
      10분 상관 영상만드는데 꼬박 3일들어가요
      매일 영상업로드하시는분들 존경스럽습니다😮

  • @han002k
    @han002k Рік тому +1

    이런 좋은채널이 있다니😂😊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 @jinyumin99
    @jinyumin99 Рік тому +2

    사적들님!!
    백제 멸망 전후와 백제 부흥군 전후로 해서 고구려 구원 군은 당시 전혀 소식이 없었나요...?
    의자왕 께서 웅진성에서 항거했다면 고구려 구원 군이 내려왔을 수도 있었다고는 흘러들은 것 같긴 한데... 혹시 배경에 대해서 알려주실 점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당군이 계속 고구려를 침공해와서 잘 막아내기는했지만 국력이 첨차 소모되고 있었는데
      거기다 고구려 내부의 정국도 안정되어 있지 않았지요🤔

  • @aramis229
    @aramis229 2 місяці тому +1

    여기네 여기야

    • @사적돌
      @사적돌  2 місяці тому

      현재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있습니다😄

  • @joeu9622
    @joeu9622 Місяць тому +1

    영상 잘 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 또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흠순이 고사비성 밖에 진을 치고 두량윤성을 한 달 엿새 동안이나 공격하였으나 부수지 못하고 퇴각하다 복신에게 피습당했는 점인데, 이점에 비추어 보면, 고사비성은 상시 주둔 군사가 1,200명이었고, 전시임을 감안하면 이보다도 훨씬 많은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 곳으로 부터 멀지 않은 곳에 주류성으로 비정되는 우금산성이 있었으므로 이곳을 치기 위해서는 그 근처 어디에 있는 두량윤성을 먼저 쳐야 부대의 뒤쪽이 안전할 것이니 고사비성 밖에 진을 쳐서 고사비성 안에서 원군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테니, 결국 두량윤성은 고사비성과 주류성 그 사이 어디에 있는 성이어야 맞지 않는가...하는 생각이고, 이점에 대해 그곳에서는 사산리토성을 두량윤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특히, 사산리토성은 그 지역사람들로부터 도롱이산성으로 불리기도 했고, 그 도롱이의 음운이 마치 두량윤성과도 흡사하기 때문인데, 왜 김흠순이 두량윤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고사비성 남쪽이 진을 쳤는가를 생각해 보면, 두량윤성의 위치는 어느 정도 비정 가능한 곳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 @사적돌
      @사적돌  Місяць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챈들러빙-m5e
    @챈들러빙-m5e Рік тому +2

    백제의 마지막은 너무 의문이 많네요 ㅜㅜ 무왕은 익산 출신인데 왜 의자왕은 익산에 관심이 없었을까요? 그리고 왜 의자왕은 공격 당할때 태자였던 부여효를 일본이나 고구려로 보내서 사직 보존 및 구원병을 좀 더 신속히 모으지 않았는지 ㅜㅜ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안타까워서 더욱 그런마음이 드는것 같습니다🤔

    • @미제드론
      @미제드론 Рік тому +2

      1. 아버지 무왕의 의도와는 달리 아들 의자왕은 부여지역 세력들과 함께 하기로 한것 같습니다.
      2. 아시다시피 당시 백제는 동서 길이가 신라에 비해 너무 짧아서 양측에서 공격받은 시점에선 뭘 어떻게 할수가 없었을 겁니다. 백강하구는 물론이요 신라 세력이 금산 추부 동편기슭까지 진출하여 산성을 쌓고 금산분지 서쪽과 남쪽의 백제성들과 대치한지 제법 된 시점이었습니다. 금산에서 대둔산 지나면 바로 논산이죠.

    • @챈들러빙-m5e
      @챈들러빙-m5e Рік тому

      @@미제드론근데 좀 이해가 안가는게 그전해까지 백제는 신라를 공격하고 대야성도 공략하고 신라에 공세적인 위치였는데 확실히 당나라가 수군으로 쳐들어오는걸 너무 안일하게 판단하게 문제인거 같네요 사비세력 믿었다기엔 의자왕이 친위쿠테타를 일으키고 사비세력인 사택지적도 숙청했고 참 의자왕은

  • @바르게살자-z3x
    @바르게살자-z3x Рік тому +2

    전국방방곡곡 다니시면서 고생 많으십니다 정성 스럽게 만드신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 근데 가만히 보면 백제 유적지인데도 보통 발굴하면 남북국신라시기나 고려시대께 나온다고 하시네요~ 좀 더 확실한 유물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요즘 역사유튜브를 보면 재야사학 식민사학이며 우리민족이 대륙에서 발생했다하기도 하고 여러정보가 올라오니~ 정말 헷갈리네요~ㅠㅠ 중국 정사25사도 시대에 흐름에 많이 수정되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당당하게 인정 할 수 있는 역사서가 많이 부족하고 옛 사서들과 유물들이 많이 훼손되고 유실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개발,경제,민생으란 명목으로 많이 훼손되고 있지요 ㅠㅠ 중도 유적도 청주 마한백제유적도 그렇고.. 한편으론 당대를 사는 사람들이 항상 먹고 사는 것에 목메어 조금 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다른이야기 이지만 요즘엔 통일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니.. 나중에 동북공정으로 인해 중국이 휴전선 위쪽을 모두 자국화 한다면 남은 우리 민족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점점 우리의 유물과 정신과 영토를 잃어가는 요즘 역사를 그저 바라만 보는 안타까운 마음만 듭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시청 감사드립니다😌, 고구려나 백제 가야 신라인들이 폐쇄적인 사람들이 아니었고 활발히 무역을 했으므로 중국에도 흔적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건물이나 토기들의 유물등이 '지배'적일정도로 많이 나와야 그곳을 지배한것이지요.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것과 문화적 연결성이 있어야하고요.
      과거의 기록은 현재 같지 않아 오류가 많고, 필사한것이 타국으로 넘어가는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안맞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발굴해서 사서 기록과 비교해서 고증하는거고요.🤔
      그나마 다행인것은 우리나라 어지간한 곳은 유물 산포지가 빽빽합니다. 빈틈이 없을정도로 많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으니 기준을 세워서 발굴해가면 되겠지요😄

  • @현광장-l1c
    @현광장-l1c Рік тому +1

    해수면을 복원한 사진을 살펴보면 부안 위금암성은 주류성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피성으로 이전하려면 바닷물 때문에 고부를 지나 돌아돌아 갈수 밖에 없다.
    백제의 중방성으로 방어하기 좋고 주변에 옥토를 가진 고부를 두고 아무런 방어시설이 없는 김제로 옮겼다는 것은 넌센스다.
    따문에 김제 성산은 결코 피성으로 보기 힘들다. 피성을 설명하는 내용은 벽성의 오기라는 설명뿐 어떠한 고증이 있는지 궁금하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덧글 감사드립니다😌

  • @swaneeway
    @swaneeway Рік тому

    백제가 일본이라는 나라명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당 중국에서 보면 백제가 일본이 아니였을까 싶고 백제 세력 유민이 당에 죽어 묘비에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기록된 사실이 비추어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명은 백제 때 부터 쓰다가 백제 유민이 왜국으로 가서 일본 국호를 쓴 게 아닐까요? 문제는 왜국 이전 부터 한반도 백제를 일본이라고 쓰인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 @swaneeway
      @swaneeway Рік тому

      일본이란 국호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670년 문무(文武10년12월)조에 나온다. 즉, “왜국(倭國)이 국호를 바꿔 일본이라 하였다. 이는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그와 같이 이름을 지은 것이다(‘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라고 하였다.
      또한 중국의 ‘구당서’ ‘동이전(東夷傳)’는 서기 670년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본국은 왜의 다른 명칭이다. 이는 그 나라가 해 뜨는 곳에 있어서 만들어진 이름이요.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라 함이 아름답지 못한 이름으로 스스로 싫어하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이란 이름으로 고쳤다(“日本國者倭之別稱也 以其國在日處故爲名.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故改爲日本).”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일본문학박사 장팔현은 블로그를 통해 “정작 왜국에서 일본이라는 국호의 공식적인 사용은 서기 701년 다이호오(大寶) 율령 제정 후”라고 밝혔다.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망한 백제 왕족과 귀족들은 상당수가 왜국으로 건너가 융숭한 대우를 받았다. 이는 무령왕과 왜대왕 계체나 성왕과 흠명, 의자왕과 제명여제의 관계로부터 추정하건데 혈연관계로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긴밀히 밀착된 관계였다.
      때문에 기존에 왜열도를 가리켜 일본(日本)이라 부르던 백제인들이 패망 후 상당수가 열도의 귀족층화 해가면서 ‘키가 작다’, ‘추하다’란 의미가 들어있는 왜국을 버리고 일본이라 고치자고 40여 년간 야마토정권에 주장하거나 건의, 또는 논의하는 과정이라 보인다. 즉, 백제 지식인들의 권고로 왜국에서 일본으로 국호가 변경됐을 것이란 추정이다.]
      재미있는 주장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이란 국호는 우리나라가 먼저 불렀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장팔현의 설명이다.
      [왜국이 자신들의 나라를 일본이라 했을 가능성은 적다. 왜냐하면 일본열도에서 ‘해 뜨는 나라’, ‘해 뜨는 곳(땅)’을 찾는다면 분명 태평양상의 괌과 같은 섬나라가 될 것이다. 물론 당시까지도 태평양 동쪽은 미지의 세계였다. 때문에 백제에서 해 뜨는 곳 동쪽의 나라로 왜국을 일본이라 불렀다함은 자연스럽다.]
      출처 : 더리포트(www.thereport.co.kr)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항상 왜가 등장할때는 선박을 통합니다🤔

  • @darkenbear
    @darkenbear Рік тому +1

    평왜 : 왜를 평정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jjuhyung
    @jjuhyung Рік тому +2

    백제와 고구려는 부흥운동이라도 했는데 신라는 마의태자 전설 빼고는 그닥…
    혼란기가 길어서 고려에 순응한건가? 아니면??

    • @서울범고래
      @서울범고래 Рік тому +4

      백제, 고구려, 발해는 적군이 다짜고짜 수도로 돌격해서 항복을 받아낸거라 수도는 항복했어도 주변 지역들은 건재함. 그래서 부흥운동이 꽤 의미있는 수준으로 벌어지고요. 반면 신라는 후삼국시기를 거치면서 국력이 거의 끝물이었고 마지막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하는지라 부흥운동 할 여력이 없었지요

    • @큰사발
      @큰사발 Рік тому +3

      나라를 들어바쳤는데 뭐하러 부흥운동?

    • @jinyoungan4830
      @jinyoungan4830 Рік тому +2

      신라 멸망 후 몇백년이 지나서도 이의민, 이비, 패좌 등이 신라부흥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1000년 신라의 말로가 참 초라하지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아무리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신라편이 없나...라는 생각도 들지요
      왕실봉지였던 영천도 돌아서고... 포항도 돌아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