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순흥 읍내리 고분이나 어숙술간묘를 통해 영주지역이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포항지역까지 깊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비록 많이 도굴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져서 고대사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고향이 고현 입니다. 지금도 시골에 본가가 있어 자주 갑니다. 어릴 때 고현리 앞 산을 개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표조사 이런 것도 없이 불도저로 밀어 버렸죠. 그때 아버지가 마을 이장 이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토기가 많이 나왔어요. 우리집에도 몇개 있었든 기억이 있습니다. 앞 산에 돌 무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도굴된 상태죠 그리고 동네 뒷편에 동굴 같은 것이 있었는데, 어른들 말로는 옛날에 고려장으로 사용 되었든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남겨 봅니다.
남한 고구려 유적이 많이 부족한 상황인데 말씀처럼 발굴 기대해 봅니다. 대한민국 단위 면적당 유물 밀집도는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에 우리 나라를 산성의 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고분군의 나라이기도 한 듯 합니다. 답사하실 때 늘 길 조심하시고 방한도 꼭 신경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입니다. 이전부터 고구려-백제, 백제-신라 관계에 비해서 고구려-신라 관계가 제대로 조명이 안됐다고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내 고구려 관련 유적들이 점차 발굴되고 충주고구려비의 내용을 판독할 수 있게 되면서 고구려와 신라가 이르게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이 드러나고 있죠. 그리고 당대 중국 사서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라 혁거세, 알지, 탈해 건국신화가 없고 대신 고구려인이 신라 건국에 참여했다는 전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신라 김씨 족단의 기원을 위의 전승과 연결해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대사 관련 미스터리가 하나둘씩 풀려나가길 바랍니다
지리지에는 해당 지역은 '본고구려아혜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본래 고구려 아혜현 이라는 뜻이죠. 즉 본래부터 고구려땅이었고, 후대 어느 시점에 고구려에게서 이 땅을 빼았아 차지했다는거죠. 따라서, 초기 (경주지역)신라는 고구려 지역에서 움텄다는 것이고, 적어도 신라 전반기 정도까지(~ 503?)는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
경주 김유신묘 주차장 출구쪽 위에 누가 구덩이를 파놨더군요. 인근 부대는 이제 해체된다던가? 그래서 예비군도 영천 보급단이 맡는다 하므로 군이 참호를 파는건 아닐 터이니만큼 신규 도굴일것 같은데 무덤인지 아닌지 애매한 지형이고, 확증이 없어 신고하기가 어려워 그대로 뒀습니다만 도굴행위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불안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이런 도굴에 관한 신고가 활발해지도록 향후 문화재 도굴 흔적을 좀 더 자세히 다룬 영상을 볼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서를 보면 당시 삼국은 고구려가 완전히 한반도를 통일한 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신왕은 아예 영원한 노객을 자처했고 신라는 경주마저 왜구들에게 털리다가 고구려의 원군을로 살았으니 거의 식민지 상태였을 것이고. 그래서 호태왕이 붕어한 해에 제작된 청동솥이 신라땅에서 나온 것이겠죠.
@@David-nu8gx 당시 고려는 몽골의 지방정권이었음. 쌍성총관부, 요즘말로하면 식민지 총독부까지 세워졌으니. 노국대장이니 제국대장이니 아무리 공주 내려서 부마국이라고 해봐야 나라가 완전 몽골의 총관부에 좌지우지되면 그건 그냥 종속국이니 그냥 몽골국이었다고 봐도? 그래서 고려왕은 심왕도, 카간의 자리도 얼마든 주장할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 황금씨족의 부마였으니 당연하겠지만.
고구려가 남쪽으로 많이도 내려 갔네요. 강릉을 고구려 사람들이 "아래에 신라가 있다"는 의미에서 "하슬라(하신라)"라고 했는데, 차라리 포항의 옛날 이름을 "하슬라"라고 했어도, 아무도 뭐라할 문헌 학자가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혹시 문헌상의 착오로 강릉을 하슬라라고 한건 아닐지 의심도 되고요. 아니면 신라 왕조가 정치적인 이유로 하슬라의 위치를 윗쪽으로 이동시킨건 아닐까 하고, 의구심을 품어 봅니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하슬라의 성주였다고 하는데, 우산국 정벌을 위해서는 포항의 성주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훨씬 좋은 위치입니다. 동해안의 해류가 울릉도 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릉의 신라 군인들이 우산국으로 가기에는 해류가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기 때문에 동해 북부 쪽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높고...허참!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그 당시 서로 말이나 통했나? 글자 유물도 없고 후세에 연도, 왕별로 가지러니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정도. 종족도 전혀 달랐다 본다. 양자강유역에서 넘어 온 객가족 백제, 요동에서 몰린 가탄 신라, 흑룡강주변 고조선 고구려, 모두들 흉노 투르크 등에 밀려 반도에 샌드위치 된 것 아닐까?
백제-가야-왜 연합이 신라를 압박하고, 왜군이 신라 서울을 포위하였을 때, 광개토왕이 급히 경주까지 군을 움직여 신라를 구원하고, 왜병을 쫓아내고, 가야까지 공격했습니다. 현재 주한미군이 남한에 있듯이,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하였습니다. 고구려 입김을 받아 신라 왕도 친고구려계로 바뀌었지요. 이후 장수왕 때 고구려가 한강유역과 동해안으로 계속 내려오자 신라도 고구려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은 것이구요. 4세기~5세기초 : 고구려-신라 연합 / 백제-가야-왜 연합 ▶ 5~6세기 중반 : 고구려 전성기 / 백제-신라 나제동맹 ▶ 6세기 : 신라 전성기 ▶ 7세기 : 돌궐-고구려-백제-왜 연합 / 신라 - 당나라 연합
고구려는 우리민족의 조상이 아닙니다. 고구려는 한나라 후손으로 수나라랑은 라이벌관계였죠. 전쟁전 그들의 대화내용을 보면 왕자들간의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 그래서 수당 고구려 전쟁은 통일전쟁이었음. 이는 전쟁전 그들이 나눈 대화기록만 봐도 명백한 사실임. 삼국사기에도 한나라 후손이라고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죠.(髙句麗自秦漢之後 - 고구려는 본디 진나라 한나라의 후예다 - ) 이걸 왜곡하기 위해 지은이 김부식마저 까는데 이런게 현대논리에 맞춘 역사왜곡 아니면 뭐겠슴? 고구려가 지금의 서울을 점령했을때 그 강을 왜 한나라 한강이라 불렀으며 서울을 왜 한성부라 했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수 있는 사실임. 하지만 박정희 정권때 북방영토점령 논리로 사주받은 어용학자들이 진실을 외면한채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했슴. 신라에 왜가 침략해 나라가 멸망할때쯤 고구려가 와서 구해주고 떠난적이 있는데 같은 언어 같은 민족이었으면 돌아가지 않고 관리만 두었으면 삼국통일은 고구려가 해냈을꺼임. 하지만 서로 다른 민족이었기에 조선시대 때 명나라가 와서 구해주고 떠난것처럼 똑같이 구해주고 떠난거임. 후백제는 신라장군 견훤이 난을 일으켜 세웠고 후고구려는 태봉이란 이름으로 신라왕족 궁예가 세운 나라임. 따라서 후삼국이라 하면 안되고 신라의 지방정권들이라 해야 맞는 얘기가 되는거임. 고려를 세운 왕건은 고구려가 멸망할때즘 일부 피난민이 신라로 온적이 있는데 그중 한명의 후손이었슴. 그래서 궁예를 몰아내고 신라의 왕권을 찬탈하고 나라 이름을 정할때 고려라 명명한것임.
포항 사람으로서 저도 몰랐던 포항 내의 역사 유적을 소개해주시고 설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포항의 고대유적이 엄청납니다, 역사도시라 불러도 과함이 없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추위 건강 조심하세요. 포항의 고구려..
염려 감사드립니다😄 건강 유념하세요😌
우연히 알게된 채널..
놀라울 정도로 높고 깊은 역사적 고증과 해석이 통찰된 채널입니다.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더욱 공부하겠습니다😌
와, 순흥 읍내리 고분이나 어숙술간묘를 통해 영주지역이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포항지역까지 깊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비록 많이 도굴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져서 고대사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신라안에서 발견되는 단속적인 고구려계 유물유적의 비밀은 고현리에서 밝혀질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있습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 컨텐츠 좋아요.
아무래도 제한된 답사지, 제한된 사료를 비집고 들어가야하네요, 열심히 찾아오겠습니다😄
옛날에 국사시간에 배웠던 고구려 전성기 시대 지도상에 영역과 딱 일치하는거 같습니다.
호랑이 꼬리 읫부분까지가 경계였네요. 다 고고학적 근거가 있었군요.ㅎㅎ
ㅎㅎㅎ 기록의 힘인듯싶습니다😄
사적돌님 영상 보고 찾아간 순흥 어숙묘를 보면서 고구려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신라 바로 윗 동네까지 내려가 있었네요. 또 배우고 갑니다.
순흥인근의 거대고분군들도 속히 발굴될날을 기다립니다😄
영월-부석-봉화-예안-임동-진보-청송-신광-청하까지 연결되는 지역입니다. 광개토 시절 고구려 영토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신라는 고구려속민
영상 고맙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좋은 영상 잘 보고 갑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신라의 동해안 경역 확장과 고구려의 남하라는 주제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저 역시 흥해 미질부성과 영해 괴시리 고분군 관련 조사보고서를 훑어본 적이 있는데, 고현리 고분군의 존재 부각에 관심이 많이 가네요. 훌륭한 리포트 잘 봤습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제 고향이 고현 입니다. 지금도 시골에 본가가 있어 자주 갑니다. 어릴 때 고현리 앞 산을 개간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표조사 이런 것도 없이 불도저로 밀어 버렸죠.
그때 아버지가 마을 이장 이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토기가 많이 나왔어요. 우리집에도 몇개 있었든 기억이 있습니다. 앞 산에 돌 무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도굴된 상태죠
그리고 동네 뒷편에 동굴 같은 것이 있었는데, 어른들 말로는 옛날에 고려장으로 사용 되었든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남겨 봅니다.
오 생생한 말씀 무척 흥미롭습니다😌
한동안 흥해 인근을 걸어다녔었는데,
아는 지역이라 더 흥미진진합니다.
참, 알고 계시겠지만 흥해읍내에는 신라시대 조성되었다는 연못도 남아있답니다.
오 덕성2리 마을이 원래 신라 저수지였다고 들었습니다😮
남한 고구려 유적이 많이 부족한 상황인데 말씀처럼 발굴 기대해 봅니다. 대한민국 단위 면적당 유물 밀집도는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에 우리 나라를 산성의 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고분군의 나라이기도 한 듯 합니다. 답사하실 때 늘 길 조심하시고 방한도 꼭 신경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 찬바람 건강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꼭 발굴되었으면하는 곳중 하나입니다. 포항시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잘보았습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크게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역사를 설명해주려는 노고 참 좋습니다
많은분들께서 도와주시니 함께 헤쳐갈수있어 좋습니다😌
멋져요🎉🎉🎉
시청감사드립니다😄
오... 포항이네요. 나중에 영상촬영하려 가야겠군요.
오 포항에 유적들이 많아 좋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항상 감사드립니다😄
평소 지나다니며 보던 야산에 이렇게 많은 고분군들이 있었다니.
포항에서 손가락에 꼽는 고밀집 고분군입니다😄
최근 돌아보셨던 성곽들은 고구려 남진과 관련된 당시 삼국시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함이셨군요...
오 그렇습니다😌
흥미롭습니다
고구려 영향력이 여기까지 닿았다니
잘 배웠습니다
백제쪽은 대전까지, 신라쪽은 금관가야까지 진출했었지요, 생소한듯 엄청난 일입니다😮
좋은 영상입니다. 이전부터 고구려-백제, 백제-신라 관계에 비해서 고구려-신라 관계가 제대로 조명이 안됐다고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내 고구려 관련 유적들이 점차 발굴되고 충주고구려비의 내용을 판독할 수 있게 되면서 고구려와 신라가 이르게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이 드러나고 있죠. 그리고 당대 중국 사서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라 혁거세, 알지, 탈해 건국신화가 없고 대신 고구려인이 신라 건국에 참여했다는 전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신라 김씨 족단의 기원을 위의 전승과 연결해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대사 관련 미스터리가 하나둘씩 풀려나가길 바랍니다
오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리지에는 해당 지역은 '본고구려아혜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본래 고구려 아혜현 이라는 뜻이죠. 즉 본래부터 고구려땅이었고, 후대 어느 시점에 고구려에게서 이 땅을 빼았아 차지했다는거죠.
따라서, 초기 (경주지역)신라는 고구려 지역에서 움텄다는 것이고, 적어도 신라 전반기 정도까지(~ 503?)는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나레이션이 참ㅋㅋ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성우 같으십니다ㅋㅋ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재 포항 흥해 거주 중이고, "안강,강동"이 고향인 사람입니다 ㅎㅎ 너무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ㅎㅎ 그러나 현 안강읍은 경주시에 속해있는 지역입니다 ㅎㅎ 그래서 구분을 확실히 해주시면 더 유익하고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시청감사드립니다😌
제가 발굴했던 흥해읍 대련리고분에서도 고구려양식의 태환이식이 출토되었고 위덕대 인근의 산에서는 고구려기와가 발견되어 고구려 관련유적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죠.
오 현직이시군요, 덧글 감사드립니다😄
헐
대박!
@사적돌 제가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고현이 옛날의 현이라는 의미라는 건 전해들어 알았는데, 석실묘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구독한지 꽤 된 좋아하는 채널에서 저희 마을이 나오다니, 놀랍고도 반갑습니다ㅎㅎ
경주 김유신묘 주차장 출구쪽 위에 누가 구덩이를 파놨더군요. 인근 부대는 이제 해체된다던가? 그래서 예비군도 영천 보급단이 맡는다 하므로 군이 참호를 파는건 아닐 터이니만큼 신규 도굴일것 같은데 무덤인지 아닌지 애매한 지형이고, 확증이 없어 신고하기가 어려워 그대로 뒀습니다만 도굴행위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불안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이런 도굴에 관한 신고가 활발해지도록 향후 문화재 도굴 흔적을 좀 더 자세히 다룬 영상을 볼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오, 저도 항상 신경쓰는 부분입니다😌
석실묘 포항에?
시청 감사드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미천왕 때 강릉까지 고구려가 내려왔고 그 후 광개토대왕 시절에 고구려가 강원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이견도 있어서)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저기 언급된 지역들이
후삼국시대 후백제, 고려의 치열했던 현장이네요
고려와경주를잇는 통로였네요😯
힘 내시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역사서를 보면 당시 삼국은 고구려가 완전히 한반도를 통일한 상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신왕은 아예 영원한 노객을 자처했고 신라는 경주마저 왜구들에게 털리다가 고구려의 원군을로 살았으니 거의 식민지 상태였을 것이고. 그래서 호태왕이 붕어한 해에 제작된 청동솥이 신라땅에서 나온 것이겠죠.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몽골에게 통일 당한 것은 고려가 맞나요?
@@David-nu8gx 당시 고려는 몽골의 지방정권이었음. 쌍성총관부, 요즘말로하면 식민지 총독부까지 세워졌으니. 노국대장이니 제국대장이니 아무리 공주 내려서 부마국이라고 해봐야 나라가 완전 몽골의 총관부에 좌지우지되면 그건 그냥 종속국이니 그냥 몽골국이었다고 봐도? 그래서 고려왕은 심왕도, 카간의 자리도 얼마든 주장할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 황금씨족의 부마였으니 당연하겠지만.
에?포항까지 고구려 영역이었나요?
삼국사기의 기록입니다. 의성 고구려계금관, 경주 고구려계금관, 울산 적석총, 포항 냉수리고분, 순흥 어숙묘 등이 신라고토의 고구려계 유적들이라 할수 있겠네요😮
고구려가 남쪽으로 많이도 내려 갔네요. 강릉을 고구려 사람들이 "아래에 신라가 있다"는 의미에서 "하슬라(하신라)"라고 했는데, 차라리 포항의 옛날 이름을 "하슬라"라고 했어도, 아무도 뭐라할 문헌 학자가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혹시 문헌상의 착오로 강릉을 하슬라라고 한건 아닐지 의심도 되고요. 아니면 신라 왕조가 정치적인 이유로 하슬라의 위치를 윗쪽으로 이동시킨건 아닐까 하고, 의구심을 품어 봅니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하슬라의 성주였다고 하는데, 우산국 정벌을 위해서는 포항의 성주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훨씬 좋은 위치입니다. 동해안의 해류가 울릉도 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강릉의 신라 군인들이 우산국으로 가기에는 해류가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기 때문에 동해 북부 쪽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높고...허참!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시청감사드립니다😌
고구려가 울산까지 내려갔죠
오 은현리적석총 발굴한다만다 얘기만 무성하네요, 어서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적돌 빨리발굴해야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중성리신라비(지증왕2년=501년)이죠.
흥해읍 중성리 169-1번지.. 도로공사 중 발견되었는데 그 자리에 가면 발견장소 안내판이 있습니다.
오 , 원래 이번편에 삽입하려했는데 너무 길어서 다음편으로 편집했습니다 😄
영상 잘 봤습니다.
* 아혜리(阿兮里) : 무슨 뜻일까~??
여진말~? / 중국고어~?
- 영상에 한자가 있어 궁금증~~.
### ### ###
> '아오지'가 여진족_말로~
'불타는 돌'이고
> 경주 아화리(阿火)는
중국어로 '아~불' 형식인데
. 우리말 호격조사 ~아,~야 형식을
중국어는 '阿+명사' 로 쓰여서
친근감을 줘.
고구려의 고어를 한자로 표기한것 아닐까 합니다. '홀'이 붙으면 성이지요😮
고구려가 경북 동해안을따라 진출하는거 보다 안동을 기점으로 낙동강을 따라 내려 왔다면 신라를 압박하기 수월했을거 같내요.
오히려 경북서부로는 가지않았네요,🤔
사실 백제가 고구려 방패막이해준게 크죠 신라가 죽령을 넘는데 500년이 걸렸다고하니 경북 북부와 동해안의 고구려가 컸다고봅니다
알을 깨는 과정이 힘들었지요😌
신라가 초기에 경주에만 있은게 아닙니다
200년대에 계립령 조령을 넘어 남한강 상류에 거점이 있었음이 삼국사 신라본기에 나옵니다
추풍령 넘어 삼년산성,
그 이전에 벽골제, 고소부리가 신라 영토 였어요
고대로 갈수록 거점 지배였읍니다
@@한계포 죽령을 넘는데는 500년이 걸린건 맞습니다 ㅎ
추풍령 조령은 일찍이 넘었죠
그 당시 서로 말이나 통했나? 글자 유물도 없고 후세에 연도, 왕별로 가지러니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정도. 종족도 전혀 달랐다 본다. 양자강유역에서 넘어 온 객가족 백제, 요동에서 몰린 가탄 신라, 흑룡강주변 고조선 고구려, 모두들 흉노 투르크 등에 밀려 반도에 샌드위치 된 것 아닐까?
백제신라는 서로알아들었다고하기도하는데
고구려신라는 통역이 필요했다는 기록도있네요🤔
경주 코앞이 포항인데 고구려가 포항까지 내려 왔다니 대단하네요 왜고구려가 삼국통일을 못했을까 ?
가야고토까지 진격했던것보면 가능했을법도 한데말이지요🤔
백제-가야-왜 연합이 신라를 압박하고, 왜군이 신라 서울을 포위하였을 때,
광개토왕이 급히 경주까지 군을 움직여 신라를 구원하고, 왜병을 쫓아내고, 가야까지 공격했습니다.
현재 주한미군이 남한에 있듯이,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하였습니다. 고구려 입김을 받아 신라 왕도 친고구려계로 바뀌었지요.
이후 장수왕 때 고구려가 한강유역과 동해안으로 계속 내려오자 신라도 고구려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은 것이구요.
4세기~5세기초 : 고구려-신라 연합 / 백제-가야-왜 연합 ▶ 5~6세기 중반 : 고구려 전성기 / 백제-신라 나제동맹 ▶ 6세기 : 신라 전성기 ▶ 7세기 : 돌궐-고구려-백제-왜 연합 / 신라 - 당나라 연합
이양반 골때리네 ㅎㅎㅎㅎㅎ
만주 오랑캐가 삼한땅인 사로국까지 침략하였으니 망해도 싸지... 삼한은 우리의 고대역사이고 고구려는 만주족의 역사...
시청 감사드립니다😌
성과 산성은 다릅니다.
사서엔 거의 성이라고 나오죠 산성이 아닙니다.월성 동쪽엔 명활성이지 명활산성이 아니죠. 연구해 보이소.
산성은 근래에 조사되어 고대의 이름을 모를때붙습니다 결정적증거가 나오면 사서에 기록된 이름을 붙입니다 백제부흥군 임존성이 대표적이겠습니다😌
고구려는 우리민족의 조상이 아닙니다. 고구려는 한나라 후손으로 수나라랑은 라이벌관계였죠. 전쟁전 그들의 대화내용을 보면 왕자들간의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 그래서 수당 고구려 전쟁은 통일전쟁이었음. 이는 전쟁전 그들이 나눈 대화기록만 봐도 명백한 사실임. 삼국사기에도 한나라 후손이라고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죠.(髙句麗自秦漢之後 - 고구려는 본디 진나라 한나라의 후예다 - ) 이걸 왜곡하기 위해 지은이 김부식마저 까는데 이런게 현대논리에 맞춘 역사왜곡 아니면 뭐겠슴? 고구려가 지금의 서울을 점령했을때 그 강을 왜 한나라 한강이라 불렀으며 서울을 왜 한성부라 했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수 있는 사실임. 하지만 박정희 정권때 북방영토점령 논리로 사주받은 어용학자들이 진실을 외면한채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했슴. 신라에 왜가 침략해 나라가 멸망할때쯤 고구려가 와서 구해주고 떠난적이 있는데 같은 언어 같은 민족이었으면 돌아가지 않고 관리만 두었으면 삼국통일은 고구려가 해냈을꺼임. 하지만 서로 다른 민족이었기에 조선시대 때 명나라가 와서 구해주고 떠난것처럼 똑같이 구해주고 떠난거임. 후백제는 신라장군 견훤이 난을 일으켜 세웠고 후고구려는 태봉이란 이름으로 신라왕족 궁예가 세운 나라임. 따라서 후삼국이라 하면 안되고 신라의 지방정권들이라 해야 맞는 얘기가 되는거임. 고려를 세운 왕건은 고구려가 멸망할때즘 일부 피난민이 신라로 온적이 있는데 그중 한명의 후손이었슴. 그래서 궁예를 몰아내고 신라의 왕권을 찬탈하고 나라 이름을 정할때 고려라 명명한것임.
영상 너무 고맙습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