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q389 임진왜란이전 조선의 평민들이 내는 세금 10% 일본 봉건영주가 영지인들에게 걷던 세금은 70%(+잡다한거 추가하면8~90%까지) 일본은 근대까지 거의 봉건시대였고 평민은 사실상 없고 그냥 노예취급이었다는 얘기다 조선 노비타령좀 그만하고 니들 역사나 제대로 공부해라 18 hours ago 지폐에 나온 신사임당 이황 율곡. 이자들 노비불려 재테크한자들.노비입장에선 일제강점기가 조선시대보다 더 나았을터.노비해방 신문물개방
@@user-q389 일제강점기 이전에 1886년에 노비세습제 폐지라 전혀. 오히려 제도적으로는 구한말이 차라리 일제강점기보다 나았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때는 진짜 소수의 친일지주들을 위한 정책 위주였거든. 소작농들이 그 덕에 해마다 폭증하는데다가 조선 후기에 생겨난 소작농들의 기본 권리까지 없어졌다. 조선 중기 시절이면 모를까 조선 후기는 이미 세습제 폐지 이전에 노비 비율이 10% 미만까지 떨어진지 오래였다. 1867년에 인천 영종 호적대장 조사해보니 0.6%만 노비일 정도였고, 타 지역들에서 노비들 조사해보니 대다수가 이름만 기재된 가짜 노비...즉 존재하지 않는 노비들을 존재하는 것마냥 지어낸 관행이었다.
유럽의 노예들중 시대나 국가별로 다르지만 부모가 노예라고 자식도 반드시 노예가 되는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조선의 노비는 부모중 어느한쪽만 노비라도 자식도 노비가 되는것이다 기득권층인 사대부들이 자기들의 노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것이었다 조선은 오직 이씨왕조 유지와 (지금 북한의 김씨 왕조세습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조선초의 5%였던 양반계층 기득권층의 가문유지및 권한과 재산유지가 주목적이었을뿐 ...주인은 노비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고 노비는 주인몸에 손만대어도 능지처참 같은 죽여도 그냥죽이지 않고 일가족을 찟어 죽이는 처벌로 다스렸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없는 노비에 대한 무거운 형 벌이다 외거노비 또한 주인이 부르면 밤중에라도 달려와야 했고 노비의 딸중 이쁜딸은 주인이 마음대로 첩으로 삼거나 잠자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냥 주인에게 빼앗긴다 조선 노비에 있어서 권한은 없다 무조건 주인이 시키는대로 해야 했고 그지역을 벗어날수가 없다 팔려간 동생이나 형이 죽어도 주인허락이 없다면 문상조차 못갔다 그냥 소보다도 값이싸고 주인이 성질나면 패죽여도 그만이고 .. 그청렴하다던 황희정승도 노비가 5000명이나 되었고 아들과 딸의 결혼식때 각각500명씩 나눠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노비는 그냥 소나 돼지 닭같은 사고파는 가축이었고 소나 말보다도 월등히 값싼 짐승이었을뿐...
세계에서 가장 정이 많은민족(미운정 고운정 번역 해봐라) . 삼천리 금수강선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 세계1등 민족,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 전세계가 강남스타일, bts, 오징어게임으로 들썩이고, 한국 특유의 정 문화에 놀래 자빠지는 중이다 . 올챔퀸 김연아 사랑해요♥ . 범 내려온다 독도는 우리땅!
해적국가인 왜는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국가. 결국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이 되었고 1억옥쇄로 자국민 다 죽이려는걸 미국이 핵두방으로 막아줬더니 아직까지도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한다. 하도 거짓말로 역사왜곡을 하더니 하나에 1조원하는 원전 망가질까봐 해수주입 미루다가 원전 3기를 다 터뜨림. 지금 원전 사고 처리비용이 400조원에서 1000조원이 넘는걸로 추정하고 있음 3조 아끼려다 나라를 말아먹은 왜라는 국가
ㅋㅋ 서양은 같은 민족을 노예로 안 만들었나? 아니 농노제와 장원제 같은 건 다 까먹었나? 오히려 자국민을 노예로 너무 만들어서 새로운 노예 수급을 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털어먹었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나나? 자국민 범죄자를 노예로 만든 조선 VS 생판 남의 나라 쳐들어가 죄없는 사람 학살하고 노예로 만든 나라..... 어느쪽이 더 나쁘냐? 지능 수준이 너무 처참하지 않니?
한국의 역사학자 십중팔구는 빨갱이고, 역사학과를 다니는 학생들도 거의 그렇다고 생각함. 애당초 내세울것도 없고 배울 가치도 없는 학문에 매달려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다보니 국뽕은 기본 탑승이고, 한국 교과서는 거짓말 투성이다. 주변국(일본 중국 북한)들은 모두 거짓말 하는데 한국만 안한다는 그 가정부터가 우습다.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seongki1003 깨동철할에다가 ?? 뭔 예술작품???? ........................... 신사임당은 친정어머니에게서 노비 30여 명을 물려받아 119명으로 불려 율곡 등 슬하 7남매에게 나눠줬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卽賤)’의 결과다. “부귀가 음탕을 부른다”고 가르친 퇴계 이황도 엄청난 자산가였다. 그의 외아들 이준이 남긴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땅 36만 평, 노비 367명에 이른다 ..............................
@@mik3482 ................................ 하지만 신사임당은 친정어머니에게서 노비 30여 명을 물려받아 119명으로 불려 율곡 등 슬하 7남매에게 나눠줬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卽賤)’의 결과다. “부귀가 음탕을 부른다”고 가르친 퇴계 이황도 엄청난 자산가였다. 그의 외아들 이준이 남긴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땅 36만 평, 노비 367명에 이른다. ......................................
유럽의 노예들중 시대나 국가별로 다르지만 부모가 노예라고 자식도 반드시 노예가 되는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조선의 노비는 부모중 어느한쪽만 노비라도 자식도 노비가 되는것이다 기득권층인 사대부들이 자기들의 노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것이었다 조선은 오직 이씨왕조 유지와 (지금 북한의 김씨 왕조세습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조선초의 5%였던 양반계층 기득권층의 가문유지및 권한과 재산유지가 주목적이었을뿐 ...주인은 노비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고 노비는 주인몸에 손만대어도 능지처참 같은 죽여도 그냥죽이지 않고 일가족을 찟어 죽이는 처벌로 다스렸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없는 노비에 대한 무거운 형 벌이다 외거노비 또한 주인이 부르면 밤중에라도 달려와야 했고 노비의 딸중 이쁜딸은 주인이 마음대로 첩으로 삼거나 잠자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냥 주인에게 빼앗긴다 조선 노비에 있어서 권한은 없다 무조건 주인이 시키는대로 해야 했고 그지역을 벗어날수가 없다 팔려간 동생이나 형이 죽어도 주인허락이 없다면 문상조차 못갔다 그냥 소보다도 값이싸고 주인이 성질나면 패죽여도 그만이고 .. 그청렴하다던 황희정승도 노비가 5000명이나 되었고 아들과 딸의 결혼식때 각각500명씩 나눠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노비는 그냥 소나 돼지 닭같은 사고파는 가축이었고 소나 말보다도 월등히 값싼 짐승이었을뿐...
노예라고 생각하는 이유 1. 매매가 가능함 단순히 신분상 주종관계가 아니라 돈을주고 거래를 했고 심지어 거래시장까지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 2. 법의 보호를 못받음 세종때 만들어진 부민고소금지법 때문에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됨. 고려시대 까지만해도 노비가 주인을 고소한 사례가 종종있음.
부민고소금지법은 수령을 고소 못하는 법이지 주인을 고소 못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노비가 주인을 고소한 사례는 막상 고려시대때는 기록상 전혀 없고 조선시대때만 확인이되는데요? 실제로 1437년 음력 11월 4일, 주인에게 억울하게 맞아 죽은 노비 서가이의 어미 부가이가 여종의 신분으로 주인을 고발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세종은 좌찬성 신개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인 이씨를 국문토록 했고, 부가이는 교형을 받지 않고 속죄토록 하여 억울함을 풀어줬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한반도의 노비들은 삼국시대 고려시대때도 전부 매매가 되던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기록상 노비들에 대한 최초의 가격 설정은 986년 고려왕조 초기에 결정되어 기록되었는데, 그때의 가격은 15~60세 노(奴)의 가격은 베 100 필, 15~60세 비(婢)의 가격은 베 120필이었습니다.
@@solla3130 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hk_014r_0010_0350 어쨌든 법적으로 노비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어긴다 해도 처벌은 유배형에 처해질 뿐이며 실제로 처벌을 적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처벌을 피하고 만일 주인이 고위 관리나 양반이면 걱정을 끼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노비는 아무리 심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자신을 소유한 주인을 고소할 권리가 없으며 배상금을 지불하고 방면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노비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면 뒤좇아 오는 하인들에게 쉽게 붙들리거나 길가는 행인에게 납치될 것입니다. ..........................................................................
19세기 조선 프랑스 외교관인 콜랭 드 플랑시가 쓴글에 조선에는 남자노비는 거의 없고 여자노비만 있다고 했음 여자노비는 대대로 노비생활하고 여자노비가 아들낳으면 성인될때 자유주거나 쉽게 도망갈수있다고함. 그리고 어차피 조선 노비~ 어쩌구 앵무새처럼 말하는 애들 9할은 일뽕처맞은 102030대 남들이라서 여성인권같은거에 1도 관심없으니 조선이 반이 노비든 70퍼가 노비든 어차피 조선노비는 거의 여자였으니 니들이 열불내서 일뽕노릇안해도됨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세계에서 가장 정이 많은민족(미운정 고운정 번역 해봐라) . 삼천리 금수강선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 세계1등 민족,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 전세계가 강남스타일, bts, 오징어게임으로 들썩이고, 한국 특유의 정 문화에 놀래 자빠지는 중이다 . 올챔퀸 김연아 사랑해요♥ . 범 내려온다 독도는 우리땅!
그래서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양반 집안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안중근도 좋은 집안 이었고, 윤봉길 또한 그렇죠.. 지금으로 치면 기득권들인데 그들이 일본에 의해서 집안이 거덜 날 판인데 좋았겠습니까? 같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양반출신들과 아닌 층이 나눠졌다고 합니다. 그게 팩트 입니다.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미국에서 흑인노예를 둔 위인들 역사서에서 지우고있음. 앞으로 첩을 거느렸거나 노비를 심하게 대한 조선 위인(애초에 당시 양반의 성생활이나 타신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보다 더하지만,..)(아니, 현대 시각으로 애초에 조선에 위인이 있나?)은 역사서에서 사라질겁니다. 특히, 첩을 거느렸던 조선위인은 앞으로 제명될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힘있는 집단은 여성인권운동입니다.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농민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6. 에도시대 문서에 특히 여자아이는 죽여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했고(마비키) 아니면 유곽에 창녀로 팔아버리는게 아주 흔한일이었음(심지어 외국에까지 팔려나감, 50만명의 가라유키상-해외 일본인 매춘부가 그 예)
@happydream121 조선시대 백성 과반수는 상민이였다 바보야 ㅋㅋ 조선시대 때 신분제 해방됬는데, 무슨소리야 ㅋㅋ 역사 공부좀해!😂 일제시대때 해방? ㅋㅋㅋ 그럼 왜 조선인들이 의원, 총리, 총독, 천황 투표로 왜 안뽑음?🤣🤣🤣 자국민들도 여전히 가라유키상 부라쿠민 노예로 착취하고 핍박하고 해외로 해외로 심지어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자국민을 카미카제 반자이 어택 1억 총옥쇄 등 자폭용 폭탄 취급 했는데 뭔 신분해방이야 ㅋㅋ
같은 동족을 노예로 삼는 미친 나라가 역사적으로 있었나요? 그것도 인구 절반을.. 거기다가 세습이라니.. 노예는 대부분 전쟁으로 적국 포로를 노예로 사고 팔았죠.. 부채로 노예가 될 경우 부채를 다 갚으면 노예에서 풀려나고 세습은 아니고 본인만 노예인게 대부분이죠 같은 민족에 같은 땅에 같은 음식 먹는 동족의 절반이 노예라니..
옆나라 일본은 평민 80퍼센트 이상이 농노 였는데? 평민이 그냥 농노였음 . 에도시대 농민은 하의도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에도시대 일본 평민남자들은 훈도시-빤쭈만 입고 다님. 세율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아서 지들이 농사지은거 영주한테 다뜯기고 고구마만 먹고삼 ㅋㅋㅋ 영지 안에서 이사도 못감 ㅋㅋㅋ 반면에 조선은 정조때만가도 노비 10퍼센트 이하대로 줄어들지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흰나미 같은 민족이니 다른 민족이니 결국 노예나 노비를 쓰는건 현대 과점에서보면 둘다 ㅂㅅ임 우열따윈 없음. 그리고 노비제를 가장 반대하는게 왕들인데 왕정과 노비제를 엮을거면 정치적으로 어떻데 사용했고 왜 그랬는가에 집중하는게 맞지. 참고로 노비제는 다른 국가에서도 있던 제도지만 중국같은경우 원나라,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정부차원에서의 간섭을 없엔거지 민간에선 행해지고있었음. 폐지한 이유도 왕권에 하등 도움이 되질 않아서지 인권이고 인륜같은 이유로 폐지할 확률은 매우 적음. 단지 고려와 조선만 제도적 역행을 한 이유와 당대 왕정의 실축및 양반들의 권력체계, 백성의 생활에 끼친 영향등을 분석하는데 노비제를 바라보는 관점 없이 그저 야만적이다 쓰레기다하는건 알량한 선민의식으로밖에 안보임.
일본 아니면 러시아 혹은 청나라 였을 것이고... 러시아 식민지? 그러다면 92 연방 해체때 어설프게 독립해서 지금쯤 중앙아 stani국가 수준일듯... ㅋ 인구중 다수는 이미 혼혈화 되고 러시아어 공용어에 각종 공산스러운 사회 문화, 게으름 나태, 잔인함 습성 까지도 ㅋ 국민소득 한 2000$짜리 후진국일것임.
노비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주인을 관아에 고소고발하면 사형시키는 법률까지 있었음. 말하자면 당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노비계층 여성은 미투 하는 순간 목아지 댕강(강간한 양반놈이 아니라 강간당해서 관아에 호소한 여자가 사형당함) 이었음. 이게 미개하지 않으면 뭐가 미개한거냐 국뽕들아? 나도 애국자, 이순신 이런 분들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국뽕을 할걸 해야지 잘못된건 잘못되었다고 인정해야지 그래야 발전하는거다.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JEFFPARK99 일제시대때 저희 증조부님 말씀 하길 일본이 신분제도 철폐 하자 양반집 노비 자식들이 초등학교가서 양반집 자식들보다 공부 잘해 순사 헌병 고위층 농업계장 일본 와세다대도 가고 일본역사교사 훈도도 하고 이들이 자발적 친일파들 되었다 합니다ㆍ독립운동이나 반일은 주로 출세기회 박탈당하거나 기득권 빼앗긴 양반들 평민들이 주로 했다 하네요ㆍ조선 인구의 40%가 소작농 빈민 노비 백정이니 친일파가 쏟아져 나올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요ㆍ
@@김민규-l2i9s 그 시대상 자체가 비극이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노비비율이 말도 안되게 높다는게 문제입니다 그 이전 왕조에도 노비는 있었지만 국민의 10프로도 채 되자 않았으나 조선시대에는 많게는 40프로가 노비였다는거지요.. 서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였고..나라의 세수가 적어지고.. 그러다보니 국방관련 비용조차 백성이 부담허게되고. 그 여파가 자주국방과는 거리가 멀게되고. 임진왜란같은 국난을 격게 되었지요..
@성이름 그냥 넋두리같은 옛날얘기입니다.. 아울러 그 당시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어불성설이고요.. 나름 문화유산이라는것도 남겨놓은 조선이지만...치명적 단점은 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 인한 자주국방의 자금을 동원할 기력이 없었다는게 문제지요 서구의 산업혁명까지는 안바라더라도 최소한 경제력이 국가의 부국강병의 근간이 된다는 신념정도는 가지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 국가체계라면 기술자가 천민취급당하는 세상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자신들 조상의 수치를 숨기려고 평생을 노력하는 저런 훌륭한분들이 알콜중독자나 인간을 병쳐걸리게하는것입니다. 가족 공동의존증의 원천이 저 악랄한 노비제도때문입니다. 흑인들과 비교하는데 그것은 먼나라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에 나라가 몇개잇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흑인 들먹이는거 쳐보면 진짜 인간들이 글러먹엇다는 생각이드네요
국뽕 말고 적나라하게 사실을 드러내는 이런 컨텐츠들 많아져야됨. 댓글보면 무슨 일뽕이니 뭐니 하는데 일본 싫어해도 조선 미화는 일뽕보다 더 역겨우니까 그만좀 했으면 좋겠다. 구질구질하고 쉰내나는 유교 성리학 책은 본인 돈 주고 많이 사서 읽으시고요. 조선은 반면교사로 볼때 가치가 있는 시기이지 절대 미화시킬만한 역사는 아님. 막말로 역사의 시각으로 보면 낙제점에 가까운 왕조인데... 수능 9등급짜리 공부방법 들어서 뭐할라고.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주인이 있다는것은 부모가 있는것과 같은것 서양인들이 폄화시킨것 지들 눈으로 바라본것 서양의 노예제도는 갈취에 기반을둔 야만인 제도입니다 노비제도는 복지제도이고요 일부다쳐 제도 또한 복지제도 입니다 아랍인들에 물어보세요 가난하여 부모가 거두지 못하면 비로 주고 일부 보상을 밭는개 지참금 입니다 자본주의 지참금이란 가지고 가는것이고 과거의 지참금은 부모가 보상 밭는제도 입니다 지금 동남아 가면 지참금 밭고 시집보내는 이유가 복지제도에서 비롯된것
한국사가 지금처럼 입시의 도구로 전락, 왜곡되어 정말 중요한 내용 대신 출제하기 좋고 오답내기 좋고 외우기 어려운 근데 전혀 안중요한 온갖 지엽적인 것만 강조하는한 불가능 동시대 인접국 및 다른 문명권에서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세계사랑 같이 가르키지 않는 한 불가능 "강자는 악, 약자는 선" 이런 정신 승리 세뇌 어용 학문 타성, 인습 못버리면 절대 불가능
@@성이름-q1x6i 임진란의 고통을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만 봐도... 얼마나 기득권 양반층들에 의한 개혁에 대한 반발이 씸했는지 알수가 있다. 저들은 나라 망하든 말든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들 기득권 유지만이 최고의 목표인듯... 지금의 강성 노조 그런것들 보면 딱 그 느낌이 든다.
@@DoDo.Shibal 보통은 수입해서 쓰죠, 전쟁을 통하거나 혹은 돈주고 사거나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려와 노예로 사용하죠. 인류 역사적으로 같은 민족을 노예로 만들어 쓴 법전 있나요? 조선이 유일무이합니다. 그래서 500년간 발전이 아닌 후퇴를 했고 일제 점령 이후 민란 한번 없었던 이유구요.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모르면 배우세요. 주권침탈 초기에 유생들이 주도한 독립운동 말고는 대부분이 공화정 아니면 사회주의를 꿈꿨습니다. 독립운동 계파도 민족주의, 사회주의 두 개로 나뉘었지 왕정복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어요. 조선이 덜떠어진 중세사회는 맞았지만 그렇다고 일제의 만행이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일본놈들 아니었어도 뒤집어졌을 나라임.
@@금수달 뭐 배우라는 인간들 특징 잣도 모름 500년이나 유지된 근간은 뭘까 조선왕족이랑 양반들이 대단히 훌륭한 인간들인가를 보면 그냥 뭐 권력자의 모습 그대로임 동서양가릴게 없슴 근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거야 중국 따까리니까 가능했지 천자의 나라 ㅋㅋㅋ 뭔지 모르겠냐 조선실록이 중국에 보내는 보고서급이라 왕도 함부로 못건드리는 문서가 된 거지 물론 규격외의 인간은 있으니 아예 안건드리진 않음 조선의 지배체계가 조선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어서 500년이나 가능했단 것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애미애비도 없는 경우가 현대도 심심찮게 나타남 북조선이 조선과 뭐가 다를까?? 그 달라진게 유의미한가?? 민족정기 이상없나?? 중국빨았고 이제 다시 빠는데 중국은 제국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가?? 정신ㅂㅈ들은 상식을 파괴하지 대한제국의 독립문은 어디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걸까? 무장독립투쟁은 중국자금이 중요했고 그나마도 20년대 이후론 그닥임 일본때문에 조선이 망했단 망상은 조선백성도 아니고 조선양반의 논리임 일본이 싫은건 싫은거고 기분나쁜 존재인건 밎지만 백성의 입장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딱히 그닥인걸 알 수 있슴 일본이 깝치지 않았으면 미국에 핵폭탄도 안쳐맞았겠지 역사에 민약이 없다 조선의 미래는 북조선같은데? 공산화를 피할 방법은 당시엔 미국뿐이었고 공산주의 찬양자가 아니고서야 민족주의를 공산주의로 치환하지도 않겠지 실제로 무장투쟁하던 양반은 중국을 빨 수 밖에 없지. 미화 과장하더라도 당사자들은 현실을 알았을테니
@@No_MinjuDang 뭔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난독증인가... 다른 노예제 국가들이 문명이 발달했으니까 조선도 문명이 발달한거다 이 논리임? 조선시대 기록물이나 유물유적을 보면 되는데 무슨 궤변입니까? 서양에서는 마차끌고 다니고 산업혁명 일으킬때 조선은 달구지 끌고 다녔는데 조선이 무슨 문명이 발달해? 그리고 조선은 봉건국가가 아님. 전제정이었지. 다른 노예제 국가들이 문명이 발달한것도 노예를 써서 그런줄 아냐... 전쟁을 통해 경제적부를 쌓는과정에서 자연스레 전쟁노예들도 생긴거지ㅡㅡ
@구스타프 에휴 틀딱이 뭔 헛소리를 하는지.. 기대승인지 율곡이이인지 나발인지 헛소리만 잘지껄이면 뭐해요? 정작 민중들이 제대로 못먹고 살고 나라가 가난하면 다 위선이고 탁상공론이지. 그리고 나라 자체가 약해서 청에 짓밟혀 명이라는 타국을 신줏단지 모시듯 받들어 이딴나라가 문명이 발달? ㅋㅋㅋ 중국 잘따라한거 맞지 뭐가 아닙니까. 중국한족이 맨날 이민족 지배당하고 그래도 지네 문멸 발달했다고 잘난줄 알잖아요. 딱 그꼴이랑 똑같은데 님논리가ㅋㅋㅋㅋ
@@이관호-u5f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로마의 인구 20%정도는 노예였고 같은 민족도 노예로 부렸으며 노예신분은 세습이었습니다. 주인이 원한다면 해방해 줄수는 있었지만(이건 조선도 가능함) 해방 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인건 아니고 해방노예는 주인에게 은혜를 갚아야 했으며 심지어 해방 노예는 주인의 씨족의 구성원이 되었는데 매우 가부장적이었던 로마는 각 씨족의 호주가 구성원을 노예로 팔 수 있는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해방 노예가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다시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과 다르게 로마사회에는 노예는 인간이 아닌 물건이란 통념이 만연했고 주인은 노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 당시 베디오스 폴리오라는 사람이 자신을 실망시킨 노예를 칠성장어 연못에 먹이로 던져주는것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정도로 노예에 대한 처우가 가혹했고 주인이 암살당하면 그 집안의 노예는 수십이든 수백이든 처형했었습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매우 가부장적인 로마사회에서는 자식을 노예로 팔수도 있었고 로마의 십이표법에는 "아버지가 자식을 3번 노예로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는 조항이 있을정도로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8세기초 에도막부의 일본은 인구의 80%가 농노였으며(거주 이전의 자유없음) 막대한 세율로 인해 마비키라는 이름의 영아살해 풍습이 유행했고 약 250년의 에도시대에 3천번이 넘는 민란이 일어났을정도로 민생이 피폐했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조선통신사가 일본의 피폐한 민생에 대한 기록을 남겼을까요. 그직전 시대인 대항해시대의 일본은 전국시대였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조총과 화약을 사기위해 자국민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노예무역이 성행했고 이수가 자그마치 50만이 넘었으며 너무 많이 팔아넘겨서 일본인 노예의 시세가 흑인노예보다 훨씬 저렴한건 물론이고 일본인여자 50명을 화약 한통과 바꿀정도 였습니다. 동시대의 청나라에도 엄연히 가생자라는 이름의 한족 세습노비가 존재했고 조선과는 다르게 고려처럼 양민과의 혼인이 불법이었기에 조선처럼 인구에 큰 비율을 차지하는것은 아니었으나 중화민국 초기까지 세습노비가 존재했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6.25 전후로 종제도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군요 얼마전 경북의 종택을 취재하는 방송을 보았는데 그 90살 노인이 자기 고택을 수리하다 혼자 안되니 바로 집앞에 어떤 초라한 집문앞에서 사람이름을 고래고래 부르자 어떤 한 촌노가 나와 인사를 하자 그 고택에 사는 노인이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에게 저 촌노가 내가 어릴적 부터 우리집에서 머슴살던 자라고 소개하였지만 그 촌노의 나이를 유추해 보아도 머슴이 아니라 종 이라것을 단번에 알 수 있지요 안절부절하며 고택에 살던 노인을 따라가서 그집의 창틀을 수리하던 그촌노를 지금도 머슴부리듯 대하는 그양반들의 의식은 아직도 사라지지않고 있습니다 70년대 이전까지 촌에는 한동네에도 옛날 양반이 사는 곳과 머슴과 종놈이 사는 곳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살고있는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는 형태가 지금도 옛날 양반들이 많이 사는 경북이나 충청도에 가면 다남아있습니다 촌에 묘사 지내러 한번 가보세요 지금도 양반들이 가지고 있는 상속문서에 첫번째가 노비 입니다
세종 대왕이 태종이 종모제에서 종부제로 바꿨는데 고작 신하들 기 살려주자고 바꿈. 어떻게 보면 자기 대에만 문제 없으면 된다는 마인드고. 세종대왕도 조선왕조 실록에 좋게 기록된거 보면. 당시 기득권층한테 좋은 왕이었다는 소리임. 기록하는 놈이 기득권층이라. 사심 들어갈 수 밖에 없음.
@@딩고-c4t 일제시대때 저희 증조부님 말씀 하길 일본이 신분제도 철폐 하자 양반집 노비 자식들이 초등학교가서 양반집 자식들보다 공부 잘해 순사 헌병 고위층 농업계장 일본 와세다대도 가고 일본역사교사 훈도도 하고 이들이 해방감 느끼고 자발적 친일파들 되었다 합니다ㆍ독립운동이나 반일은 주로 출세기회 박탈당하거나 기득권 빼앗긴 양반들 평민들이 주로 했다 하네요ㆍ조선 인구의 40%가 소작농 빈민 노비 백정이니 친일파가 쏟아져 나올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요ㆍ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6. 마비키 뿐만아니라 여자아이를 낳으면 창녀로 팔아버리는게 아주 흔한 일이었음
역사영화 사극 세계 문화유산 지정은 가짜 역사 세뇌시키는 목적. 우리들이 배운 역사는 왜정시대 중일과 전세계가 조작.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나오는 내용은 전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것. 노비는 타국인을 말하는것. 한민족은 최상의 브라만 계급. 이토 히로부미는 왜 백인일까? 명성황후는 미국에서 살해 당했다 ㅡ다음 검색
조선시대가 악랄했던 것은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동족을 노예 부린 것이다.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주인이 갖는다는점에서 서양의 노예와 전혀 다를것도 없었다. 계몽군주라고 하는 정조나 어느 지식인도 노예제도에대한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한 적 조차 없었으며,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제도적으로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폐지의 계기는 한일합방이었다. 조선은 스스로 노예제를 폐지할 정도로 진보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때 조선이 식민지화되지 않았다면 신분제는 한 참을 더 유지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인도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는 잔인했던 과거가 부끄럽다고 왜곡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일본에게 말하려면 우리부터 떳떳해야 하니까.
노비는 주인을 고소하거나 욕하면 사형에 처해졌고, 주인이 관청에 신고만 하면 때려 죽일 수 있었으며, 수시로 선비에게 강간을 당했고, 평생 노동을 착취당했으며, 매매의 대상이 되었고, 어린 노비를 가족과 강제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 사학자들은 지식인 계급이 저지른 대다수의 착취는 외면한 채, 조선 시대 500년 동안 한두 번 나타나는 특수한 예시만을 부각하며 노비제를 옹호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계급 투쟁으로 타도해야 할 전근대 지배 계급의 잔당일 뿐이다.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농민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6. 에도시대 문서에 특히 여자아이는 죽여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했고(마비키) 아니면 유곽에 창녀로 팔아버리는게 아주 흔한일이었음(심지어 외국에까지 팔려나감, 50만명의 가라유키상-해외 일본인 매춘부가 그 예)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lesliekim7948 일제강점기 전에 조선시대 신분제는 붕괴됨. 반일종족주의 쓴 이영훈도 18세기 영정조때 노비 비율이 5% 미만으로 거의 사라졌다고 분석함. 사료로 분석한 팩트임. 노비가 있어도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남자노비는 없고 여자 노비만 존재함. 1858년 철종때 호구조사에 따르면 양반만 70%이고 28퍼센트는 상민, 2퍼센트만 노비. 즉 일제전에 노비는 거의 사라졌고 소수의 여자노비만 존재했음. 니들 생각에는 일제전에 조선은 인구의 반절이 노비로서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나본데 영정조 이후는 돈있으면 개나소나 양반될수있었던 신분이동이 자유로웠던 사회였음
이영훈 교수의 연구성과를 보니 왜 당시에 그런 대규모 농민봉기가 가능했는지 이해 가네~ 일제 통치에 대다수 백성들은 별 불만이 없었을 듯~ 기득권을 뺏겨야만 하는 양반계층이나 싫어했지~ 나라가 망하면 10% 기득권이 나라를 탈출하여 해외로 도피한다고 하였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면 독립운동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해 봐야 할듯~ 과연 지금도 조선시대라면 과연 나는 양반일까? 중인일까? 상민일까? 노비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양반들도 오히려 반겼습니다. 노론같은 경우는 전혀손해보지않고 친일파로 갈아타서 일제에 붙어 호의호식하고 지위를 지켰죠. 주로 지방양반들이나 권력이 없는 양반들만 보상도없이 갑자기 재산잃고 신분잃게 되어 피봤죠. 한마디로 진짜 조선을 망친 놈들은 전혀 손해보지 않앗다는거임 ㅋ 명에붙었다가 청에는 따이고 일제에 붙어서 끝까지 호의호식했죠. 개중에 진짜쓸만한 개화파들은 민중에 몰매맞아 죽고 졸지에 재산과 신분잃은 잔반들은 독립운동으로 많이 빠지고 아무것도 없는 빈민이나 민중들은 좋아하고..
@@michellelaw1538 ? 노론 소론 싹 해체되고 벽파 시파로 넘어간게 영조 때고 벽파 시파도 세도정치 시작하고는 의미가 없어지는데? 그 세도 가문들은 대부분 김조순을 필두로 한 시파계 가문인데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일본의 침탈이 시작된 강화도 조약이랑 노론 해체랑 거의 100년 차이인데 100년만에 노론이 부활해서 친일 짓을 한다고?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흰나미 노비종모법은 노비를 노비종부법 보다 더 크게 늘리는 법이 아닙니다. 진짜로 노비를 폭증시키는 법은 원 간섭기 충렬왕 재위시기에 고려에서 시행된 악명높은 ‘일천즉천(一賤則賤: 부모 중 한쪽만 노비여도 그 자손들도 무조건 노비가 되는 법)법이지요. 노비종모법은 아버지가 노비이고 어머니가 양인일 경우 오히려 노비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반대로 노비종부법 또한 아버지가 양인이고 어머니가 노비일 경우 노비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문제는 둘 다 고려시대 일천즉천(一賤則賤)법 보다야 진보한 법이지만 여전히도 노비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로 노비제를 없앨려면 구한말 고종시절때 처럼 노비세습제를 폐지(1886년)하거나 신분제를 완전히 철폐(1894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노비종부법도 문제가 많은게 노비인 여성이 낳은 자식의 친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양반들이 우기거나 친부가 노비라고 양반들이 우기면 그 아이는 그냥 노비가 됩니다... 그나마 노비종모법은 낳은 어머니 만큼은 확실하니 그런식으로 우길 수는 없었죠. 실제로 조선 초기라면 몰라도 이미 중후기 부터는 그 반대인 노취양녀(奴娶良女)가 더 성행하였으며 노비종모법 덕분에 노비인 아버지와 양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모두 양인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양처소생종모종량법(奴良妻所生從母從良法)」입니다. 이법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노와 양녀가 혼인하여 낳은 소생을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양인신분으로 하여(자식의 신분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른다는 점에서 '종모법'에 근거함.) 이들에게 양역을 지울 목적으로 실시된 것입니다. 영조 이후 노와 양녀와의 결혼이 더욱 성행했던 것은 역시 노비들이 이 법으로 그 소생을 간단히 면천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법의 실시 이후 조선의 노비 인구 비율은 10% 미만으로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세종시대 이후에도 노비를 죽이면 당연히 처벌을 받았습니다. 실록을 보면, 세종은 노비를 죽인 주인을 처형하게 했고, 그 사실을 고발하지 않은 이웃이 있으면 수령을 벌주게 했습니다.(1440년 6월). 실제로 집현전 관리 권채나 이색의 손자 이맹균 같은 명문가 출신의 관리들이 계집종을 학대하거나 살인한 아내를 대신해 파직당하거나 유배가기도 했습니다.(1427년 9월, 1440년 6월). 자신의 여종을 임의로 죽인 안주인이 처벌받은 일(1438년 5월)도 있었습니다. 또한 서구식 대도서관은 동북아에서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책방들이 있었죠. 전근대 동북아에서는 국민들 누구나 이용하는 대도서관이 없었고 그냥 책방만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만 봐도(드라마는 물론 각색된 부분도 많지만) 일제강점기 시대때 독립 운동도 왜 양반이 일반계층,천민 계층보다 참여율이 높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천민들 입장에선 조선의 붕괴가 반가웠을겁니다. 저라도 그랬을 듯요. 노비 자식으로 태어난 죄로 평생을 착취만 당하고 살았을거고 또 백정의 자식으로 게다가 그 당시 여자로 태어난다면,, 참 조상들 일이지만 부끄럽습니다.
@@hara9tube 역사의 기록? 그 기록 따져보면 노비가 땅 소유한게 더 정확한데 ㅋㅋㅋㅋㅋ 권내현 교수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2014)에 따르면 1720년 경상도 용궁현의 토지 중 약 10%를 노비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87페이지)
@@busa00037 경국대전 보세요, 노비 인권 자체가 없는데 역사 날조하는 쓰레기들이 미화 시키는거에요. 그리고 노비는요 양반 주인 성씨 따라 쓰던가 아예 성씨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노비가 있다면 양반에서 노비로 떨어진 케이스겠죠. 주인이 종년 따먹고 세끼 낳고 또 같은 주인이 종년의 자식 따먹고 하던게 그 잘난 조선시대 가계도입니다.
기자가 말을 안한게 있는데 경국대전에 노비가격이 나와있다. 말 한마리에 노비가 세구, 젊은여노비는 말 한마리 가격하고 비슷하다고 되어있구만... 사람한테 붙이는 단위인 한명, 두명이 아니라 가축한테 쓰는 단위인 '입 구' 자를 써서 한구, 두구, 세구 이렇게 불렀다. 가축하고 동급 ;;;
조선의 노비를 노예제 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신분제 사회에서의 한 계층으로 서양의 농노하고 비교하는게 더 맞음.... 조선의 노비나 유럽의 농노가 유사하고,,,,,유럽도 나라에 따라 따르지만 19세기까지도 농노제가 유지되었는 곳이 많고, 일본도 공식적으로 농노제가 폐지되는 메이지유신전까지 마찬가지임... 농노나 노비나 노예나....현 시점에서 불평등한 신분제도인 건 맞지만,,,,, 근대화 이전 신분제 사회에서 최하층민이 있을 수 밖에 없고,,,이를 국가권력이나 지배계층이 이를 이용한 것도 다 비슷함.... 근대화 과정 속에 산업화와 시민의식이 확립되며 이런 신분제가 철폐되는 과정을 거쳤고, 조선이 이런 근대화에 뒤쳐지면서 오랜 기간 이런 신분제가 유지된 것에 대한 비판은 맞는 것이나,,,,이런 노비제가 조선만의 문제였던 것으로 과장,왜곡하는 것은 문제가 됨... 조중동이 가끔 친일 반민족적 행태를 띠는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그래도 최소한 친일식민사대주의자 들이 주장하는 이런 내용들을 100% 여과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이 나라는 이런 자들이 너무 넓고 뿌리 깊게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seongki1003 제가 말을 하다가 말아서 오해하셨나봐요 계급문화가 혼란했으며 존재했음 몰론 이전보다는 희석이 되었지만 계급문화가 있었음 공식적으로 폐지는 됬음 근데 폐지 되었다고 사람들의 인식 문화 존재 했음 예시이지만 제사나 설날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로 인식 된것처럼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이 그명성을 얻기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피눈물흘리며 이름없이 죽어갔을까요.
지폐에 나온 신사임당 이황 율곡. 이자들 노비불려 재테크한자들.노비입장에선
일제강점기가 조선시대보다 더 나았을터.노비해방 신문물개방
@@user-q389 임진왜란이전 조선의 평민들이 내는 세금 10% 일본 봉건영주가 영지인들에게 걷던 세금은 70%(+잡다한거 추가하면8~90%까지) 일본은 근대까지 거의 봉건시대였고 평민은 사실상 없고 그냥 노예취급이었다는 얘기다
조선 노비타령좀 그만하고 니들 역사나 제대로 공부해라
18 hours ago
지폐에 나온 신사임당 이황 율곡. 이자들 노비불려 재테크한자들.노비입장에선
일제강점기가 조선시대보다 더 나았을터.노비해방 신문물개방
@@brians2192 공식세율일뿐 현실은 조선이 수탈 더 심했음. 그러니 돈이 없어서 사회문화가 발전 못 하지.
@@user-q389 일제강점기 이전에 1886년에 노비세습제 폐지라 전혀. 오히려 제도적으로는 구한말이 차라리 일제강점기보다 나았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때는 진짜 소수의 친일지주들을 위한 정책 위주였거든. 소작농들이 그 덕에 해마다 폭증하는데다가 조선 후기에 생겨난 소작농들의 기본 권리까지 없어졌다.
조선 중기 시절이면 모를까 조선 후기는 이미 세습제 폐지 이전에 노비 비율이 10% 미만까지 떨어진지 오래였다. 1867년에 인천 영종 호적대장 조사해보니 0.6%만 노비일 정도였고, 타 지역들에서 노비들 조사해보니 대다수가 이름만 기재된 가짜 노비...즉 존재하지 않는 노비들을 존재하는 것마냥 지어낸 관행이었다.
유럽의 노예들중 시대나 국가별로 다르지만 부모가 노예라고 자식도 반드시 노예가 되는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조선의 노비는 부모중 어느한쪽만 노비라도
자식도 노비가 되는것이다 기득권층인 사대부들이 자기들의 노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것이었다 조선은 오직 이씨왕조 유지와 (지금 북한의 김씨 왕조세습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조선초의 5%였던 양반계층 기득권층의 가문유지및 권한과 재산유지가 주목적이었을뿐 ...주인은 노비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고 노비는 주인몸에 손만대어도 능지처참 같은 죽여도 그냥죽이지 않고 일가족을 찟어 죽이는 처벌로 다스렸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없는 노비에 대한 무거운 형
벌이다 외거노비 또한 주인이 부르면 밤중에라도 달려와야 했고 노비의 딸중 이쁜딸은 주인이 마음대로 첩으로 삼거나 잠자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냥 주인에게 빼앗긴다
조선 노비에 있어서 권한은 없다 무조건 주인이 시키는대로 해야 했고 그지역을 벗어날수가 없다 팔려간 동생이나 형이 죽어도 주인허락이 없다면 문상조차 못갔다 그냥
소보다도 값이싸고 주인이 성질나면 패죽여도 그만이고 .. 그청렴하다던 황희정승도 노비가 5000명이나 되었고 아들과 딸의 결혼식때 각각500명씩 나눠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노비는 그냥 소나 돼지 닭같은 사고파는 가축이었고 소나 말보다도 월등히 값싼 짐승이었을뿐...
아니 그렇게 자유로우면 뭐하러 도망자신세를자처하고?그걸잡으러 다니는 직업까지 있었을까요?
심심해서 도망치고 심심해서 돈써가며 잡아들였을까요?
노비로사느니 도망자신세가 나아서 도망치고
노비가 돈이되니 돈을써가며 잡아들였을까요?
상식선에서 생각합시다
상식적으로 사람은 자유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음
현시대에 이르러서도 대기업에 들어가도 1년 못버티고 퇴직하는데
당연한거 아닐까
그러게요..빨걸 빨아야지..
추노?..ㅋㅋㅋ..
자슥이 드라마가 역사인 줄 아네...
특별한 죄를 범하지 않는 한 조또 추노꾼 안 쓴다.
조선의 역사학자란 새끼들은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나라를 단 한번도 비판해 본적이 없는 놈들 ,,,,조선을 왜 그렇게 미화하냐면 오직 일본은 나쁜놈들이란걸 정당화 하기위해서는 조선은 완벽해야 하기 때문.........뭐만 하면 난 잘못없는데 남탓하는 미개한 놈들
임진왜란이전 조선의 평민들이 내는 세금 10%
일본 봉건영주가 영지인들에게 걷던 세금은 70%(+잡다한거 추가하면8~90%까지)
일본은 근대까지 거의 봉건시대였고 평민은 사실상 없고 그냥 노예취급이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미화된 부분이 있을 뿐 조선은 200년쯤 유지되다 망했어야하는 나라다.
100년도 길었다..
지금 조선보다 더 후진 북한도 21세기에도 굳건히 잘 유지되는데 뭘
세계에서 가장 정이 많은민족(미운정 고운정 번역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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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금수강선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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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등 민족,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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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강남스타일, bts, 오징어게임으로 들썩이고, 한국 특유의 정 문화에 놀래 자빠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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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챔퀸 김연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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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독도는 우리땅!
@@josammosa98 세계에서 가장 편가르기를 잘하는 민족 ㅋㅋㅋ
해적국가인 왜는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국가.
결국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이 되었고 1억옥쇄로 자국민 다 죽이려는걸 미국이 핵두방으로 막아줬더니
아직까지도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한다.
하도 거짓말로 역사왜곡을 하더니
하나에 1조원하는 원전 망가질까봐 해수주입 미루다가 원전 3기를 다 터뜨림.
지금 원전 사고 처리비용이 400조원에서 1000조원이 넘는걸로 추정하고 있음
3조 아끼려다 나라를 말아먹은 왜라는 국가
조선의 본얼굴은 현재의 북한이지
정확히 보셨군요
완전 동의. 조선은 양반 3%만 위한 중국 속국사회.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함
양반은 남한지역에 확연히 많았음
ㄴㄴ 일제의 본 얼굴이 북한임.ㅋ
가짜 대통과 가짜의원 150명 ㅡ다음 검색
21년 25년까지 5만세대 완공 ㅡ 다음 겅색
서양인이 바라본 노비제도가 정확하다 고 생각하는데 그런 조선이 망한것이 천만 다행이다
조선이 지금까지 유지 되었다면 인도 처럼 되었겟지
같은 민족을 노예로 만들고 지 자식들도 노예로 썼다는 점에서 더 악랄한 노예제도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받아들여야 발전이 있다.
같은 민족이라 불릴만한 때가 된게 조선이라 ㅋㅋㅋ 언제부터 한민족이었다고
공감
ㅋㅋ 서양은 같은 민족을 노예로 안 만들었나? 아니 농노제와 장원제 같은 건 다 까먹었나?
오히려 자국민을 노예로 너무 만들어서 새로운 노예 수급을 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털어먹었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나나?
자국민 범죄자를 노예로 만든 조선 VS 생판 남의 나라 쳐들어가 죄없는 사람 학살하고 노예로 만든 나라.....
어느쪽이 더 나쁘냐? 지능 수준이 너무 처참하지 않니?
다른나라 침략해서 노예로 만든게 더 악랄하고 미개한거 아님?
@@연남생-w2d 고려 : ????
서양시각이 맞는거 같다 부끄러운 과거는 숨기려든는 한국ㅠ ㅠ
서양의 시각으로만 보는것도 잘못됨..
@@송밀리터리국뽕보단 나은데
@@장대음봉불나방 국뽕도 잘못 되었고..서양의 시각으로만 보는것도 잘못된거임...
@@송밀리터리 조선의 시각만으로 보는거보다 서양의 시각만으로 본게 훨씬 정확하것지 ㅉㅉ
@@장대음봉불나방 역사는 한쪽의 시선으로만 보면 역사 왜곡이됨.. 역사는 다각도로 봐야죠.. 그래야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수 있죠.ㅎㅎ
노비제도는 일본에의해서 갑오개혁때 노비문서가 사라지고
소작농형태의 경제적노비는 이승만의 토지개혁으로 사라졌다
한국의 역사학자 십중팔구는 빨갱이고, 역사학과를 다니는 학생들도 거의 그렇다고 생각함.
애당초 내세울것도 없고 배울 가치도 없는 학문에 매달려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다보니 국뽕은 기본 탑승이고,
한국 교과서는 거짓말 투성이다. 주변국(일본 중국 북한)들은 모두 거짓말 하는데 한국만 안한다는 그 가정부터가 우습다.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ㅎㅎㅎ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이렇게 되지
어디 다른 평행세계에서 왔냐 ??
이미 조선후기가 되면 실학자들 사이에서 노비제 폐지를 논의했고
그 결과물이 갑오개혁이라고 할수 있는거야.
이승만 토지개혁은 이야기 안할련다 ㅋㅋㅋ
@@byunhy 김홍집 박영효의 갑오개혁을 고종이 훼방치고 다시 노비제 복권시켰다.. 역사를 배우지 못한것아 역사좀 팩트로 배워라, 감성팔이 역사 소설로 역사 타령말고..
히이튼 지구상에 같은 민족을 노예로 만든. 최초의 후진국
이황 이율곡 신사임당 지폐어서 빠졌으면...
진정한 백성들을 위한 위인들은 아닌듯
나라를 구한것도 아니고 양반들을 위한 정책만 만든거 아님 ?
철학과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로 올라간 사람들임.
@@seongki1003 깨동철할에다가 ?? 뭔 예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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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친정어머니에게서 노비 30여 명을 물려받아 119명으로 불려 율곡 등 슬하 7남매에게 나눠줬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卽賤)’의 결과다. “부귀가 음탕을 부른다”고 가르친 퇴계 이황도 엄청난 자산가였다. 그의 외아들 이준이 남긴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땅 36만 평, 노비 367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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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인가
이승만, 박정희가 들어가야지.
아직도 조선인의 멘탈은 조선왕조.
지금도 이씨조선 같은데요?
사고 팔고, 주인 맘대로 하고 결혼도 맘대로 시키는데 노예가 아니면 뭐냐..
노비인데
@@ritmo3141 고려노비 Not 노예.......조선노비=노예
@@mik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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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사임당은 친정어머니에게서 노비 30여 명을 물려받아 119명으로 불려 율곡 등 슬하 7남매에게 나눠줬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卽賤)’의 결과다. “부귀가 음탕을 부른다”고 가르친 퇴계 이황도 엄청난 자산가였다. 그의 외아들 이준이 남긴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땅 36만 평, 노비 367명에 이른다.
......................................
한국은 이게 문제야. 노예를 아니라고 우기면 뭐하나.
노예지 뭐여 심심하면 따먹다 버리고 죽이고 싶으면 멍상 말이 해서 죽어라 패고
정말 헬조선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북조선 !!
양반들이 여자 노비를 겁탈하고 정말 ㅜㅜ
그 북조선 따라가자는 게 임종석 같은 좌파. 민주당 가끔 말하는 거보면 정말 썩은 양반들 특권의식 같은 거 있음
우리나라 노비가 한때는 절반을 넘었다고 하더군요 양반 비율은 당시 5%도 안되니 철저한 산분제 사회였죠 정말 없어져야할 제도였죠
노비는 노예가 아니라고 부정하시는 분들조차 17세기 초 노비비율 60%란걸 부정 안 하시죠.
양반은 5퍼센트까지 내려간적이 한 번도 없고 양인같은 중산계급도 계속 존재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 갈수로 양인이 오히려 늘어서 노비 비율은 더 줄었고요
유럽의 노예들중 시대나 국가별로 다르지만 부모가 노예라고 자식도 반드시 노예가 되는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조선의 노비는 부모중 어느한쪽만 노비라도
자식도 노비가 되는것이다 기득권층인 사대부들이 자기들의 노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것이었다 조선은 오직 이씨왕조 유지와 (지금 북한의 김씨 왕조세습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조선초의 5%였던 양반계층 기득권층의 가문유지및 권한과 재산유지가 주목적이었을뿐 ...주인은 노비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고 노비는 주인몸에 손만대어도 능지처참 같은 죽여도 그냥죽이지 않고 일가족을 찟어 죽이는 처벌로 다스렸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없는 노비에 대한 무거운 형
벌이다 외거노비 또한 주인이 부르면 밤중에라도 달려와야 했고 노비의 딸중 이쁜딸은 주인이 마음대로 첩으로 삼거나 잠자리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냥 주인에게 빼앗긴다
조선 노비에 있어서 권한은 없다 무조건 주인이 시키는대로 해야 했고 그지역을 벗어날수가 없다 팔려간 동생이나 형이 죽어도 주인허락이 없다면 문상조차 못갔다 그냥
소보다도 값이싸고 주인이 성질나면 패죽여도 그만이고 .. 그청렴하다던 황희정승도 노비가 5000명이나 되었고 아들과 딸의 결혼식때 각각500명씩 나눠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노비는 그냥 소나 돼지 닭같은 사고파는 가축이었고 소나 말보다도 월등히 값싼 짐승이었을뿐...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제도는 조선시대 당시에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비슷한 제도 였습니다
노비제도 때문에 조선왕조가 결국은 망한거죠. 전쟁 났을때 나가 힘들게 싸울 사람은 거의 없고 도망갈 사람들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가 500년이나 유지한것도 기적입니다.
행정력이 우수해서 500년을 간거임ㅎㅎ
기적이라고 말할꺼 까지야.. ㅎㅎㅎ 그리고 신분제도는 비슷한 시기 서양이나 다른나라도 다 있었음 그것하나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하는건 억지주장이죠 ㅎㅎ
그럼 고려는 왜 망했음?
@@전립선강화 고려말 노비 6프로 ㅡ> 조선 노비 40프로 같은민족인데 노비를 저리 많이 만드는 나라가 어딨었나
@@전립선강화 고려말 노비 6프로 ㅡ> 조선 노비 40프로 같은민족인데 노비를 저리 많이 만드는 나라가 어딨었나
@@iwjsk조선은 40프로라 망했다 치고
고려는 겨우 6프로였는데 왜 망했음?
노비가 이리 많으니 말에 존대말과 비어가 이리 많은것
이황은 인간으로 투기를 했네. 존경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었구먼.
우리 지갑속 지폐에 항상 있는 분 ㅋㅋㅋㅋ
조선최고 청렴하다던 황희정승은 노비가 5000명이었고 자식들 결혼할때마다 500명씩 나눠 주고서도 남았다고 합니다
노예라고 생각하는 이유
1. 매매가 가능함
단순히 신분상 주종관계가 아니라 돈을주고 거래를 했고 심지어 거래시장까지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
2. 법의 보호를 못받음
세종때 만들어진 부민고소금지법 때문에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됨.
고려시대 까지만해도 노비가 주인을 고소한 사례가 종종있음.
2번은 반박이 가능한데 케바케인게 문제
@@kisear455
개솔댓 자꾸 달지 말자...주인이 폭력 살인 강간에 대해서 ...법의 보호를 못받는 거는 이미 다~~~알려진 사실임.
@@HotSoil510 케바케라는 문장 안보세요?
부민고소금지법은 수령을 고소 못하는 법이지 주인을 고소 못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노비가 주인을 고소한 사례는 막상 고려시대때는 기록상 전혀 없고 조선시대때만 확인이되는데요? 실제로 1437년 음력 11월 4일, 주인에게 억울하게 맞아 죽은 노비 서가이의 어미 부가이가 여종의 신분으로 주인을 고발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세종은 좌찬성 신개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인 이씨를 국문토록 했고, 부가이는 교형을 받지 않고 속죄토록 하여 억울함을 풀어줬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한반도의 노비들은 삼국시대 고려시대때도 전부 매매가 되던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기록상 노비들에 대한 최초의 가격 설정은 986년 고려왕조 초기에 결정되어 기록되었는데, 그때의 가격은 15~60세 노(奴)의 가격은 베 100 필, 15~60세 비(婢)의 가격은 베 120필이었습니다.
@@solla3130
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hk_014r_0010_0350
어쨌든 법적으로 노비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어긴다 해도 처벌은 유배형에 처해질 뿐이며 실제로 처벌을 적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처벌을 피하고 만일 주인이 고위 관리나 양반이면 걱정을 끼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노비는 아무리 심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자신을 소유한 주인을 고소할 권리가 없으며 배상금을 지불하고 방면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노비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면 뒤좇아 오는 하인들에게 쉽게 붙들리거나 길가는 행인에게 납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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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을 그저 신분하나로 남의잡일이나 평생을 처해야하는 운명을 만들어놨으니 후대로 갈수록 다른국가에비해 압도적으로 발전도못하고 뒤쳐져있었죠
근데 자국민 노예로 만든건 다른나라도 마찬가지라서... 조선이 세종대왕이후에 발전이 없는건 다른이유가 있죠
19세기 조선 프랑스 외교관인 콜랭 드 플랑시가 쓴글에 조선에는 남자노비는 거의 없고 여자노비만 있다고 했음 여자노비는 대대로 노비생활하고 여자노비가 아들낳으면 성인될때 자유주거나 쉽게 도망갈수있다고함. 그리고 어차피 조선 노비~ 어쩌구 앵무새처럼 말하는 애들 9할은 일뽕처맞은 102030대 남들이라서 여성인권같은거에 1도 관심없으니 조선이 반이 노비든 70퍼가 노비든 어차피 조선노비는 거의 여자였으니 니들이 열불내서 일뽕노릇안해도됨
잡일 하다가 맘에 안들면 멍석 말아서 패죽이던게 일상
@@수호-t1q 그게 무슨 일상임.... 어떤 미친놈이 자기재산을 본인손으로 파손함? 그게 어떻게 평소 일상임?
노예 신분제는 다른 나라도 다 있었는데
지금도 북한은 2500만명의 노비가 있읍니다.
북한은 고조선보다도 못한 나라임...
남한도 기득권들은 세습하고 저소득 노비들 양성하고 있잖아! 북한과 다를거 없다 남한도
Hanging lee
남한을 어따 북한에 비교를 하냐 쨔식아
돈많은 사람 미워하지마
너같이 질투 많은 놈은
돈있면 더하면더했지 별반 다를것이없다.
재벌들은 돈벌려고 머리쓰고 열심히살잖아
쨔식아
너도 열심히 머릴써라
Pc방에서 시간 썩히지말고
이런 빙을 봤나 ㅋㅋ 말섞는게 시간 아깝다 군대는 같다왔냐?
Lee
피시방에서 나와
열심히 살아라
그것도 힘들면 죽던가..
난 너같이 찔찔이가 아니다.
난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 해서 아주잘 살고있다.
넌 50억 아파트 본적있니?
살아 생전에 너같은 찔찔이를 10명정도 밝은
길로 인도하고싶다.
근데 넌 안될것 같애..
미화시키지 마라. 노예가 맞다.
동족을 노비로 삼는 미개한 나라 ㅋㅋㅋㅋ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세계에서 가장 정이 많은민족(미운정 고운정 번역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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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금수강선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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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등 민족,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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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강남스타일, bts, 오징어게임으로 들썩이고, 한국 특유의 정 문화에 놀래 자빠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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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챔퀸 김연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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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독도는 우리땅!
다른 민족을 노비로 삼는 건 안 미개함?
중국과 오랭캐들과 수백 수천번의 전쟁에서 한국으로 노비가 되여 한국인이 되었기에
완전 동족이라고 하긴ㅜㅜ 유전학 조사를 해도 한국인은 동남아 중국 몽고등 많은 피가 섞임!!
@@ryu_geom당연하지 남인데
조선시대 노비는 노예 맞고요... 있는 사실을 포장하거나 숨기는 것은 올바른 역사가 아니죠...
조선시대 노비는 노예여서
지 이름으로 세금도 내고
양반 고소도 가능하고
자기가 직접 재산을 모으는 것도 가능했고
양반이 노비 제사까지 지내줬나 보네요?
잘 알겠습니다^^
@이므 뭔 말을 하실거면 제발 말의 상관관계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이므 그리고,말은 상대가 알아듣게 하는겁니다. 님이 알아듣지도 못 할 개소리 장황하게 써놨다고 말이 아니에요
@이므 뭐,그래도 제가 당신을 상대는 해야하니
'사대부시대의 사회사- 조선의 계급·의식·정치·경제구조',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이 두 책이라도 읽고 오십쇼. 무지하면 배우면 됩니다
@이므 그럼 좀 니가 해석 불가능한 개소리를 쓰지를 말던가요
전체 노비의 10%인 100만명이 삶을 위해 도망쳐야 하는 조선은 미친 나라. 이 사람을 잡으러 추격하고 돈받는 추노. 이러고서도 일본에 의해서 노비제도가 없어진게 그렇게 억울하냐?
그래서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양반 집안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안중근도 좋은 집안 이었고, 윤봉길 또한 그렇죠..
지금으로 치면 기득권들인데 그들이 일본에 의해서 집안이 거덜 날 판인데 좋았겠습니까? 같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양반출신들과 아닌 층이 나눠졌다고 합니다. 그게 팩트 입니다.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퇴계이황도 존경할만 한 사람이 아니구나
당연 아니죠. 누구나 그 명성만큼 추악하답니다. 저 양반도 노비 부리고 자기만 편하게 살다가 살만하니까 이기이원론 이따위 학문 같지도 않은 쓰레기 만들어서 탁상공론에 빠진 추악한 늙은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섹마 세종도 부민고소금지법만든거 숨기고 교육하는데 퇴게이황이뭐라고 ㅋㅋㅋㅋㅋㅋ한11남 조상들일뿐ㅋㅋㅋㅋㅋ
이황은 화폐에서 빼버릴 필요가 있음..
미국에서 흑인노예를 둔 위인들 역사서에서 지우고있음.
앞으로 첩을 거느렸거나 노비를 심하게 대한 조선 위인(애초에 당시 양반의 성생활이나 타신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보다 더하지만,..)(아니, 현대 시각으로 애초에 조선에 위인이 있나?)은 역사서에서 사라질겁니다.
특히, 첩을 거느렸던 조선위인은 앞으로 제명될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힘있는 집단은 여성인권운동입니다.
조선 광해군때 기록을 보면 왕의 형제가 노비가 마음에 안들거나 도망가면 잡아다가 때려 죽였답니다.
뭐가 다른나라 노비와 다르다는 건지 그 학자들의 뇌속이 궁금하네요.
그건 개네들이 사이코패스인거고 농민에게도 그지랄했음
김첨지댁 마당쇠가 안방마님과 눈이 맞아
도망갔는데 안방마님을 흠모하던 돌쇠가
잡아 발로 밟고 몽둥이로 때려 죽여답니다.
광해군 형제면...임해군이랑 순화군인데...그 둘은 조선시대500년 역사를봐도... 유래가 없는...심지어 연산군이 천사로 보일정도로... 인성이 쓰레기 인지라.... 특수한경우로 봐야함...그걸 일반적인 예시로 드는건
...잘못된거..임
그래서 임해군 왕이 못 되어죠
노예제도맞지ㅋㅋ 뭘 다르게봐ㅋㅋ 그리고 우리나라는 본인의 신분유지를 법을 만들어서라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심보가 강한 민족임ㅋㅋㅋㅋㅋㅋㅋ 오늘날의 로스쿨제도만 봐도 답나오지
그리고수시비율 늘리는 것도 마찬가지임 ㅋㅋㅋ 돈있는 놈들 지들이 다 해먹겠다는 소리임
맞습니다 맞고요 노비는 사고팔고해서 가축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ㅋㅋㅋ 그건 전세계 기득권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음. 미국을 가봐라... ㅋㅋㅋㅋ 한국보다 훨씬 심하다 그 격차가
@@Joel-ux6bn ㅋㅋㅋ 미국이 그런다고 우리나라가 똑같이 하는게 문제아님??ㅋㅋㅋ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사람들보다 관계지향적문화라서 저런제도 시스템이면 더 기득권자들이 자기자녀들이나 친인척들 유리하게하고 이용해먹기 좋은제도임
국가에대한 세금이외에 특정인에게 뭘 받쳐야했다면 노예제도 맞지
노예를 얼마나 핍박했느냐의차이일뿐
19세기 이전 같은 민족 노예 부리는 나라 별로 없었음 보통 다른 부족 나라를 약탈 하면 노예로 부린거지
인류학적으로 봐도 같은 민족을 노예화 시킨 사례는 굉장히 드문걸로 알고 있어요. 이건 법제화 시킨 거라 ㄹ ㅇ 유일할거에요.
@@hara9tube 여기저기 구라치고 다니시네...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농민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6. 에도시대 문서에 특히 여자아이는 죽여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했고(마비키) 아니면 유곽에 창녀로 팔아버리는게 아주 흔한일이었음(심지어 외국에까지 팔려나감, 50만명의 가라유키상-해외 일본인 매춘부가 그 예)
@@pradeepsumit9870 혹시 정조가 노비종모법을 폐지 시켰나요 혹은 손을 봤나요? 역사적 근거가 있다면 자료 출처 부탁드려요.
@@hara9tube 유일같은 소리하고 있네 옆나라 일본도 같은 민족 포르투칼 상인한테 팔아넘기고 그랬는데 ㅋㅋ
조선시대를 미화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깨져야 정신차리겠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병임.
일제 미화 하는 것 보단 100배 더 나음.
@@w18w 조선시대 백성의 과반수가 노비였는데 위사람에게 물한컵 떠주는 것도 못참을 사람들이 일제시대때 신분제에서 해방된거 고마운지도 모르지? 미화가 아니라 현실을 있는그대로 직시하라는 거야 어리석은 중생아
@happydream121 조선시대 백성 과반수는 상민이였다 바보야 ㅋㅋ
조선시대 때 신분제 해방됬는데, 무슨소리야 ㅋㅋ
역사 공부좀해!😂
일제시대때 해방? ㅋㅋㅋ 그럼 왜 조선인들이 의원, 총리, 총독, 천황 투표로 왜 안뽑음?🤣🤣🤣
자국민들도 여전히 가라유키상 부라쿠민 노예로 착취하고 핍박하고 해외로 해외로 심지어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자국민을 카미카제 반자이 어택 1억 총옥쇄 등 자폭용 폭탄 취급 했는데 뭔 신분해방이야 ㅋㅋ
일제가 악랄한 제국주의, 조선은 카스트 하..
@happydream121 조선시대 백성 과반수는 평민인데 뭔 개소리야.
신분제는 조선 말 구한말때 사라진거다.
신분제 해방 시켜줬으면 왜 3.1운동 일어났고 광복때 만세 왜 부르고 독립운동가들 득실득실한 제1정부가 왜 들어서노?
같은 동족을 노예로 삼는 미친 나라가 역사적으로 있었나요? 그것도 인구 절반을.. 거기다가 세습이라니..
노예는 대부분 전쟁으로 적국 포로를 노예로 사고 팔았죠.. 부채로 노예가 될 경우 부채를 다 갚으면 노예에서 풀려나고 세습은 아니고 본인만 노예인게 대부분이죠 같은 민족에 같은 땅에 같은 음식 먹는 동족의 절반이 노예라니..
옆나라 일본은 평민 80퍼센트 이상이 농노 였는데? 평민이 그냥 농노였음 . 에도시대 농민은 하의도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에도시대 일본 평민남자들은 훈도시-빤쭈만 입고 다님. 세율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아서 지들이 농사지은거 영주한테 다뜯기고 고구마만 먹고삼 ㅋㅋㅋ 영지 안에서 이사도 못감 ㅋㅋㅋ 반면에 조선은 정조때만가도 노비 10퍼센트 이하대로 줄어들지
ㅈㄴ많았는데? 당장 프랑스가 그랬는데 뭔 ㅋㅋㅋㅋ
@@busa00037 평행우주에서 왔니? 프랑스가 19세기까지 자국민 같은 피부색 같은 종교 믿는 국민들을 사고 팔았다고? 헐...
몇번째 지구에서 왔니?
@@kingmaker0101 아 19세기;; 그건 없지;; 근데 애초에 노비도 사고파는 일도 없는데;;
@@happle4811 '해줬는데' ㅇㅈㄹ ㅋㅋㅋㅋㅋㅋ
이제 시대가 옛날 정보도 많이 밝혀졌고, 세종에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야하지 않을까요?
재평가 논리가 ㅂㅅ같으니 까이는거지
어찌됐건 세종은 유일무이 하단다 나대지말길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흰나미 모 교수에 의하면 양천측제하고 노비 증가하고 연관 없다고 했는데요
@@흰나미 같은 민족이니 다른 민족이니 결국 노예나 노비를 쓰는건 현대 과점에서보면 둘다 ㅂㅅ임 우열따윈 없음. 그리고 노비제를 가장 반대하는게 왕들인데 왕정과 노비제를 엮을거면 정치적으로 어떻데 사용했고 왜 그랬는가에 집중하는게 맞지. 참고로 노비제는 다른 국가에서도 있던 제도지만 중국같은경우 원나라,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정부차원에서의 간섭을 없엔거지 민간에선 행해지고있었음. 폐지한 이유도 왕권에 하등 도움이 되질 않아서지 인권이고 인륜같은 이유로 폐지할 확률은 매우 적음. 단지 고려와 조선만 제도적 역행을 한 이유와 당대 왕정의 실축및 양반들의 권력체계, 백성의 생활에 끼친 영향등을 분석하는데 노비제를 바라보는 관점 없이 그저 야만적이다 쓰레기다하는건 알량한 선민의식으로밖에 안보임.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나라한테 먹혔을거야.
일본 아니면 러시아 혹은 청나라 였을 것이고...
러시아 식민지? 그러다면 92 연방 해체때 어설프게 독립해서 지금쯤 중앙아 stani국가 수준일듯... ㅋ
인구중 다수는 이미 혼혈화 되고 러시아어 공용어에 각종 공산스러운 사회 문화, 게으름 나태, 잔인함 습성 까지도 ㅋ
국민소득 한 2000$짜리 후진국일것임.
@@chonulgwiin5051 2000도 안될듯
중국이엿으면 국공내전끝나고 공산당으로 편입돼 마오쩌둥이 주석이돼면서 우리나라 국민들 다죽엿을뜻 지독한 한자쓰면서 거지같이 살고 GDP도 적은대다가 밥도 제대로 못먹엇고 옷도제대로 못먹고 농사지으면서 마오쩌둥에 손에 하늘나라로 갔음 그냥 러시아한테 먹히든 중국한테 먹히든 둘다 망한거지
일본한테 먹히고 떨어져서 천만 다행이었음. 중국,러시아 였다면 끔찍하다.
@@JEFFPARK99 딱 먹혀야 할 때 먹히고, 딱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지고, 딱 미국에 붙어야 할 때 미국 끌어들이고.......정말 한국은 행운인 국가인데, 종북이들이 질투나서 다 망쳐 놓으려고 덤빔
퇴계 이황은 노비 300명을 거니르고 부유하게 잘 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한거죠. "학문에도" 전념한 건 아니죠. 그리고 그 학문은 동아시아 에서나 극소수 학자들입에서나 언급되는, 현대에 그닥 쓸모가 없는 학문...
지폐 위인들 다 바꾸면 좋겠음 세종 빼고. 독립운동가분들 좀 넣어라 제발 ㅠㅠㅠ
@@Bri-hu3ok ㅇㅈ 우리나라를 위한 일을 하신 독립운동가 분을 지폐에 넣어야 되는데 쓸데없는 일을 한 사람을 넣음
@@Bri-hu3ok 세종도 빼고 대조영하고 광개토 이승만 박정희 넣어야됨
@@Northwestyouth 븅 ㅅ ㅋㅋ 박정희를 왜 처 넣냐 거기서 ㅋㅋㅋ
@@아-v2j 왜 넣긴 시발아 문재인 넣을까그면 ㅋㅋ
내가 조선시대때
태어났으면 노비로
태어났을것이고
내 남편도 걸 맞는 노비를
만나서 내 아이도 노비로
살아갔을것이고...
인권도 자유도 출세도
없는 막막한 종으로
평생 살았을거라고 생각허니
갑자기 지금 내 모습이
정말 운이좋고 행복하고
ㅎㅎ
끔찍하네 조선!
에라이 조선!
더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아마 남편이 여러명이었을겁니다. 혼기가 되면 주인이 노비 혹은 양인과 짝을 지어주고, 여아가 태어나면 일정이상 나이가 되면 팔았던게 양반들의 주 수입원이었습니다. 마치 가축을 다루는듯 하죠.
말이 남편이지
남편구실도 안했고 싸고튀는 버러지들이었지
자식이 태어나면 애비가 누군지도 몰랐고 양육의 책임은 오로지 여성에게만 있었죠
현재 한국남자의 원조들이지
@@sunny-d7l1c
하긴~~~~양반들이
종년 품는
10행시가 있더만요!!!!!!!!!
(조선 비극사^란 책에서 봄)
@@sunny-d7l1c
~~~결론은 천황폐하 만세!!!!!!
참~~~조국^ 저 인간은.....분명
토착 양반가 후손이 틀림없음!!!!!!!!
맨날~~~죽창가 타령을 하니까^^
지금은 막막하지는 않아도 재벌들 보면 가슴이 먹먹하지 않으신가요? 뭐 다 같은 노예인데요.
노예지 노비이고.그것이 조선이라는 나라다. 그러니 일본한테 작살나도 불쌍치가 않다.
노예지 그럼뭔데? 맞아죽어도 암소리도못했는데
노비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주인을 관아에 고소고발하면 사형시키는 법률까지 있었음. 말하자면 당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노비계층 여성은 미투 하는 순간 목아지 댕강(강간한 양반놈이 아니라 강간당해서 관아에 호소한 여자가 사형당함) 이었음. 이게 미개하지 않으면 뭐가 미개한거냐 국뽕들아? 나도 애국자, 이순신 이런 분들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국뽕을 할걸 해야지 잘못된건 잘못되었다고 인정해야지 그래야 발전하는거다.
허준도 노비였다. 그렇지만, 할 거 다 하고 살았다. 현대의 노예와 비교해서 억지로 끼워맞추지 마라.
@@jinwo4474 허임이겠지 허준은 양반 중의 양반인데
@@evenstararwen9367 제도가 있으나마나인데 뭐..
@@evenstararwen9367 퍽이나 그게 지켜졌겠다 ㅋㅋㅋ
노예맞고 세습으로 인해서 기득권의 부의 상징이기도 했어요, 같은 민족을 노예삼는것과 백인이 흑인을 노예삼는것과는 차이가 있어요
맞아요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흰나미 이걸 반박한다고 무슨 양천교혼 금지시켰다는데 그게 지켜졌을지나 의문 ㅋㅋ
뭔 노예는 노예지 같은 인종이든 다른 인종 뭔상관임
@@흰나미 근데 그 이야기는 세도정치후개판난 조선을 보고한거라 노비랑상관없음
파도파도 괴담뿐인 조선...
그것은 당신이 심층의 식민사관에 찌들어있기 때문. 근대역사를 연구하여 정립한 것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틀대로 우리가 배우고 보고있다는 것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해보기 바람.
@@최경호-s1s정신차리고 보면 조선이 더욱 막장이란것만 알게됨 ㅋㅋ 애초에 조선백자부터가 후기로 갈수록 더 엉망이 되는게 그걸 증명하지.
@@최경호-s1s식민사관 이러네ㅋㅋㅋ
@@최경호-s1s 정신병 그만 드러내고 조용히 하셈 좃선이 조오옷 같은건 사실이었음 ㅋㅋ
@@최경호-s1s 정신 똑바로 보고 차려보니 조선은 지금 북한급이나 그보다 못한 나라였다
평생 개같이 일해도 신분상승,교육의 기회도 없고 내 자식들도 동족의 노예가 되는 조선시대.
이시대 백성들은 나라를 포맷 시켜준 일제가 좋았을까 싫었을까?
@@JEFFPARK99 일제시대때 저희 증조부님 말씀 하길 일본이 신분제도 철폐 하자 양반집 노비 자식들이 초등학교가서 양반집 자식들보다 공부 잘해 순사 헌병 고위층 농업계장 일본 와세다대도 가고 일본역사교사 훈도도 하고 이들이 자발적 친일파들 되었다 합니다ㆍ독립운동이나 반일은 주로 출세기회 박탈당하거나 기득권 빼앗긴 양반들 평민들이 주로 했다 하네요ㆍ조선 인구의 40%가 소작농 빈민 노비 백정이니 친일파가 쏟아져 나올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요ㆍ
500년 왕조를 버틴게 비극이다ㅜㅜ
추악한 한국의 역사다..ㅜㅜ
조금만 더 일찍망하고..
새 왕조가 세워졌어야 하는건데..ㅜㅜ
새 왕조가 세워 졌으면 노비가 없었을까요? 그냥 그 시대는 노비는 당연히 상위계층 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했던 겁니다…
@@김민규-l2i9s 그 시대상 자체가 비극이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노비비율이 말도 안되게 높다는게 문제입니다
그 이전 왕조에도 노비는 있었지만 국민의 10프로도 채 되자 않았으나
조선시대에는 많게는 40프로가 노비였다는거지요..
서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였고..나라의 세수가 적어지고..
그러다보니 국방관련 비용조차 백성이 부담허게되고.
그 여파가 자주국방과는 거리가 멀게되고.
임진왜란같은 국난을 격게 되었지요..
@@파란넥타이-s2v 그때당시 통계는 100퍼 믿으면 안되요... 오차가 심해서..
@성이름 그냥 넋두리같은 옛날얘기입니다.. 아울러 그 당시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어불성설이고요..
나름 문화유산이라는것도 남겨놓은 조선이지만...치명적 단점은 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 인한 자주국방의 자금을 동원할 기력이 없었다는게 문제지요
서구의 산업혁명까지는 안바라더라도 최소한 경제력이 국가의 부국강병의 근간이 된다는 신념정도는 가지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 국가체계라면 기술자가 천민취급당하는 세상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파란넥타이-s2v갠적으로 선조의 임진왜란 전후에서 사망 행적보고 여파를 생각해보면 멱살잡이 하고 싶음 또한 축출 안된게 이상함
노비가 곧 노예가 맞음. 노예는 서양과 다르다고 말하자면 서양의 각나라들마다 전부 다 취급이 다르고 중동 아랍도 다조금씩 다름. 한국학자들은 자기들역사니까 좋게 포장하려고 이악물고 다르다고 외치는 것일뿐
그게 바로 서구와 일본에서 획책한
심층의 식민사관에 당신이 찌들어있기 때문. 근대역사를 연구하여 정립한 것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틀대로 우리가 배우고 보고있다는 것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해보기 바람.
@@최경호-s1s 뭔 개소리함? 니들이 항상하는소리가 우리국사계가 일제식민사관이라며? 난 국사책서 가르치지 않는것을 얘기하는데 왜 닌 금칠하려하냐
단편적인것만 알고 이 영상6분만보니 노비제=노예제 라는 소리를 하는거임. 노예가 주인보다 돈많은 경우가 있음? 노비는 주인 집밖에 살면서 주인보다 돈이 많아서 주인먹여살리는 노비도 있었음
자신들 조상의 수치를 숨기려고 평생을 노력하는 저런 훌륭한분들이 알콜중독자나 인간을 병쳐걸리게하는것입니다. 가족 공동의존증의 원천이 저 악랄한 노비제도때문입니다. 흑인들과 비교하는데 그것은 먼나라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에 나라가 몇개잇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흑인 들먹이는거 쳐보면 진짜 인간들이 글러먹엇다는 생각이드네요
@@sushi4865 노비, 노예는 주인먹여살리라고 있는거야. 뭔소릴하는거야
국뽕 말고 적나라하게 사실을 드러내는 이런 컨텐츠들 많아져야됨. 댓글보면 무슨 일뽕이니 뭐니 하는데 일본 싫어해도 조선 미화는 일뽕보다 더 역겨우니까 그만좀 했으면 좋겠다. 구질구질하고 쉰내나는 유교 성리학 책은 본인 돈 주고 많이 사서 읽으시고요.
조선은 반면교사로 볼때 가치가 있는 시기이지 절대 미화시킬만한 역사는 아님.
막말로 역사의 시각으로 보면 낙제점에 가까운 왕조인데... 수능 9등급짜리 공부방법 들어서 뭐할라고.
수능 9등급 답다. 노비랑 노예를 구분을 못하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usa00037?😂
일본에도 츠지키리, 요바이, 사토코, 스테코, 마비키, 야마스테우바 같은 미개하고 잔인한 풍습이 많았는데 일뽕들은 그런건 외면하고 미디어에 의해 포장된 사무라이만 노래부른다. 내가 일뽕을 경멸하는 이유. 너도 일뽕이야. 정신차려.
@@busa00037 노비랑 노예랑 같단다. 영상에도 노비란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를 묶어서 지칭하는 단어다. 라고 나오잖아.
@@seongki1003 애초에 영상 내용이 잘못 됐음.노비•노예•농노 자체가 1대 1 대응 하기에는 ㅈㄴ게 애매함
갑오경장도 일본이 시켜서 한것...ㅋㅋ코메디민족 조선
1차는 일본이 청일 전쟁으로 정신 없을 때 김홍집 내각이 주도적으로 한거다. 그 때 신분제 폐지했고. 애초에 동학농민운동 이후에 조선이 스스로 개혁하려했는데, 일본이 막고 갑오개혁 시킨 것인데 사실 관계 좀 파악하고 떠들어라.
1801년에 이미 노비를 해방시켜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준도 노비였다. 뭣도 모르면서, 지금의 노예 개념에 빗대로 억지로 껴맞추지 마라.
@@jinwo4474 허준은 양반의 서얼이었는데 어머니가 노비출신 아닙니다. 양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참교육-i9o또 일본탓.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졌으면 청나라에 병합 됐을 나라
자유롭다면서 도망을 100만명이나감?ㅋㅋ
곡물을 바치던 말던 주인이 있다는건 노비라는건 달라지지않지...
주인이 있다는것은
부모가 있는것과 같은것
서양인들이 폄화시킨것
지들 눈으로 바라본것
서양의 노예제도는 갈취에 기반을둔 야만인
제도입니다
노비제도는 복지제도이고요
일부다쳐 제도 또한 복지제도
입니다
아랍인들에 물어보세요
가난하여 부모가 거두지 못하면 비로 주고 일부
보상을 밭는개 지참금
입니다 자본주의 지참금이란
가지고 가는것이고
과거의 지참금은 부모가
보상 밭는제도 입니다
지금 동남아 가면 지참금
밭고 시집보내는 이유가
복지제도에서 비롯된것
노예 맞음. 독립운동 세력중에도 조선 구질서를 보존하려던 인물들은 별도 구분해야함. 안그러면 독립투쟁이 속좁은 이민족 혐오 정도밖에 안됨.
조선이 안 망하고, 왕족이 아직도 유지됐다면...끔찍하다. 신분제니 뭐니..난리도 아니었을듯 함
일본한테 고마워 해야지 ㅇㅇ
일본이 신분제도 폐지시켜주고 근대화 시켜줬는데
@@fuxckcommunism 일본한테 왜 고마워해야돼 일뽕아 신분제해벙같은소리하네 그전에 이미 해방되어단다
어릴때 조선에 대해 배우면 한글창시에 여러가지 좋은거 많이 배웠는데 어느나라나 문제가 있는건 알지만 내가 태어난 땅의 과거의 문제를 이런곳에서도 알게되니까 좋네요. 개인적으로 학교에서도 이런거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네요.
한국사가 지금처럼 입시의 도구로 전락, 왜곡되어 정말 중요한 내용 대신 출제하기 좋고 오답내기 좋고 외우기 어려운 근데 전혀 안중요한 온갖 지엽적인 것만 강조하는한 불가능
동시대 인접국 및 다른 문명권에서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세계사랑 같이 가르키지 않는 한 불가능
"강자는 악, 약자는 선" 이런 정신 승리 세뇌 어용 학문 타성, 인습 못버리면 절대 불가능
학교에선 가급적 이런거 안가르침. 고려->조선-> 대한민국 이 테크트리의 정당성이 훼손됨
노비제도 폐지시킨 나라가 일본임
@@트럭커쉬샤오둥 폐지 ㅋㅋㅋㅋㅋ 아직도 부라쿠민이라고 자기 당 의원 면전에서 입을 터는 인간들이 무슨 ㅋㅋㅋㅋㅋㅋㅋ
@@busa00037 할짓 없나?
닌 걍 조선시대 가서 밭이나 처 매라
이분 잘못알고계신내용이 많은것같은데요. 조선시대 상놈 노비신분 즉 양반아닌 피지배 계층은 45%가 아니라 95%였습니다.대학에서 사학전공했어요.
양반도 양인인거 아시죠?
양천제죠. 양민과 천민. 양민에 사농공상이 들어갔고 사가 선비, 즉 양반. 양반 5프로 빼면 농공상+천민이 95프로죠
솔직히 노비가 저렇게 늘어난게 된건 세종때문 아닌가? 세종때문이라고 하면 또 우리세종대왕님은 한글을 만드신분이라구욧 하면서 부들부들 거릴 애들이 몇몇 있겠지만 솔직히 세종때문이지
동족을 자손대대로 노비로 삼는 경우도 드물어서 몽골제국 황제가 노비제도를 없앨것을 요구했다는 말도 있대요....하멜표류기에도 독특하다고 했고
@@성이름-q1x6i 임진란의 고통을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만 봐도...
얼마나 기득권 양반층들에 의한 개혁에 대한 반발이 씸했는지 알수가 있다.
저들은 나라 망하든 말든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들 기득권 유지만이 최고의 목표인듯... 지금의 강성 노조 그런것들 보면 딱 그 느낌이 든다.
@@성이름-q1x6i 몽골이 노예제를 했는데 뭔...
@@DoDo.Shibal 같은 민족을 노비로 쓴건 아니잖아요.
@@한장원-x9l 그놈의 같은민족 노비...지려버리네 진짜 ㅋㅋㅋㅋ전세계에서 역사긴곳중 안그랬던 나라있음??
@@DoDo.Shibal 보통은 수입해서 쓰죠, 전쟁을 통하거나 혹은 돈주고 사거나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려와 노예로 사용하죠.
인류 역사적으로 같은 민족을 노예로 만들어 쓴 법전 있나요? 조선이 유일무이합니다. 그래서 500년간 발전이 아닌 후퇴를 했고
일제 점령 이후 민란 한번 없었던 이유구요.
조선시대에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던 양반들이 과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까? 한국인들이 꼭 뒤돌아보고 반성해야할 과거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은폐하고 그걸 극단적인 반일로 덮어버리는건 누구?
민주당 좌파들
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잘 된 일이지만 일본이 이 나라 노예를 해방하려고 침략한 것은 아니였다. 그 것을 미화 시키는 친일파들의 의도가 참 치졸하다.
친일행위가 부끄러우면 정당화하려고 미화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던 지, 더러운 친일 유전자가 튀긴 너희들 조상의 섬나라로 돌아가라. 여긴 대한민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가증스럽고 뻔스러운 짓 아니냐?
일제시대때 독립운동 한 사람들은 설마 저런 조선왕조가 다시 들어서길 바란 건 아니겠지요
글쎄요
모르면 배우세요.
주권침탈 초기에 유생들이 주도한 독립운동 말고는
대부분이 공화정 아니면 사회주의를 꿈꿨습니다.
독립운동 계파도 민족주의, 사회주의 두 개로 나뉘었지
왕정복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어요.
조선이 덜떠어진 중세사회는 맞았지만
그렇다고 일제의 만행이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일본놈들 아니었어도 뒤집어졌을 나라임.
@@금수달
뭐 배우라는 인간들 특징
잣도 모름
500년이나 유지된 근간은 뭘까
조선왕족이랑 양반들이 대단히 훌륭한
인간들인가를 보면 그냥 뭐 권력자의 모습 그대로임 동서양가릴게 없슴
근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거야 중국 따까리니까 가능했지
천자의 나라 ㅋㅋㅋ
뭔지 모르겠냐
조선실록이 중국에 보내는 보고서급이라
왕도 함부로 못건드리는 문서가 된 거지
물론 규격외의 인간은 있으니 아예 안건드리진 않음
조선의 지배체계가 조선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어서 500년이나 가능했단 것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애미애비도 없는 경우가 현대도 심심찮게 나타남
북조선이 조선과 뭐가 다를까??
그 달라진게 유의미한가??
민족정기 이상없나??
중국빨았고 이제 다시 빠는데
중국은 제국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가??
정신ㅂㅈ들은 상식을 파괴하지
대한제국의 독립문은
어디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걸까?
무장독립투쟁은 중국자금이 중요했고
그나마도 20년대 이후론 그닥임
일본때문에 조선이 망했단 망상은
조선백성도 아니고 조선양반의 논리임
일본이 싫은건 싫은거고 기분나쁜 존재인건 밎지만 백성의 입장은 이미 임진왜란으로
딱히 그닥인걸 알 수 있슴
일본이 깝치지 않았으면 미국에 핵폭탄도 안쳐맞았겠지
역사에 민약이 없다
조선의 미래는 북조선같은데?
공산화를 피할 방법은
당시엔 미국뿐이었고
공산주의 찬양자가 아니고서야
민족주의를 공산주의로 치환하지도 않겠지
실제로 무장투쟁하던 양반은
중국을 빨 수 밖에 없지.
미화 과장하더라도
당사자들은 현실을 알았을테니
@@금수달 모르면 배우라는 새끼들중에 정상 한명도 못봄
@@금수달 뭔소리여? 중국사대주의에 빠진 양반들이 독립군의 주세력이었다는걸 모르나?? 사람들이 민족주의?? 처돌았나??
삼정의문란으로 백성들에게 과도한세금 부과하고...백골징포, 황구첨정, 인징, 족징....이런거 안배웠나?? 민족이란 말도 없었다.
엄격한 신분제 노비제도사회에서 민족?? 지나가던 구더기가 처웃겠다 ㅋㅋㅋㅋ
조선은 일제가 침력을 하면 개혁이 되는 구조 같네요 ㅎ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국뽕들 거품무는 소리지만 사실임 일본이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한게 배수로 건설 그리고 전기 가져오고 건물세우고 물론 자기들 나라라고 생각했으니까 한 일들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이 근대화하는데 시초가됨
그 개혁(사회 모든 분야에서 근대화)을 우리 내부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구한말의 집권층이 그대로 친일파가 되어 잘먹고 잘 살았죠 ㅋㅋ 독립운동가는 극소수 대부분은 일제 치하에 순응하며 살았고 ㅋㅋ 역사의 모순같기도 하네요
힝 믿을수 없쩌여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다 해주신거란 말이에욧❤
조선 포맷시키고 백성 절반 해방시켜준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지
망해서정말다행
조선이 어딜봐서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뤘다는건지 참 이해가 안됨 ㅋㅋㅋ 그냥 한국인들 지들 망상 ㅋㅋㅋ 역대왕조중 가장 중국을 잘 모방했다는 점에서 보면 높은 수준의 문명이긴 하지 ㅋㅋㅋㅋ
@@No_MinjuDang 뭔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난독증인가... 다른 노예제 국가들이 문명이 발달했으니까 조선도 문명이 발달한거다 이 논리임? 조선시대 기록물이나 유물유적을 보면 되는데 무슨 궤변입니까? 서양에서는 마차끌고 다니고 산업혁명 일으킬때 조선은 달구지 끌고 다녔는데 조선이 무슨 문명이 발달해? 그리고 조선은 봉건국가가 아님. 전제정이었지. 다른 노예제 국가들이 문명이 발달한것도 노예를 써서 그런줄 아냐... 전쟁을 통해 경제적부를 쌓는과정에서 자연스레 전쟁노예들도 생긴거지ㅡㅡ
@구스타프 에휴 틀딱이 뭔 헛소리를 하는지.. 기대승인지 율곡이이인지 나발인지 헛소리만 잘지껄이면 뭐해요? 정작 민중들이 제대로 못먹고 살고 나라가 가난하면 다 위선이고 탁상공론이지. 그리고 나라 자체가 약해서 청에 짓밟혀 명이라는 타국을 신줏단지 모시듯 받들어 이딴나라가 문명이 발달? ㅋㅋㅋ 중국 잘따라한거 맞지 뭐가 아닙니까. 중국한족이 맨날 이민족 지배당하고 그래도 지네 문멸 발달했다고 잘난줄 알잖아요. 딱 그꼴이랑 똑같은데 님논리가ㅋㅋㅋㅋ
니미 로마제국도다른민족 전쟁포로들은 나이40정도되면 노비문서불태우고해방시켜주고시민권도주었다 그것도고대시대에
어떻게조선은같은민족을 그것도대대손손이어서
@우상 조선보다 고려가 더 헬이었는데요 님은 한토지에 수조권자가 여러명인게 정상적이라 보심?
@@이관호-u5f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로마의 인구 20%정도는 노예였고 같은 민족도 노예로 부렸으며 노예신분은 세습이었습니다. 주인이 원한다면 해방해 줄수는 있었지만(이건 조선도 가능함) 해방 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인건 아니고 해방노예는 주인에게 은혜를 갚아야 했으며 심지어 해방 노예는 주인의 씨족의 구성원이 되었는데 매우 가부장적이었던 로마는 각 씨족의 호주가 구성원을 노예로 팔 수 있는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해방 노예가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다시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과 다르게 로마사회에는 노예는 인간이 아닌 물건이란 통념이 만연했고 주인은 노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 당시 베디오스 폴리오라는 사람이 자신을 실망시킨 노예를 칠성장어 연못에 먹이로 던져주는것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정도로 노예에 대한 처우가 가혹했고 주인이 암살당하면 그 집안의 노예는 수십이든 수백이든 처형했었습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매우 가부장적인 로마사회에서는 자식을 노예로 팔수도 있었고 로마의 십이표법에는 "아버지가 자식을 3번 노예로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는 조항이 있을정도로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8세기초 에도막부의 일본은 인구의 80%가 농노였으며(거주 이전의 자유없음) 막대한 세율로 인해 마비키라는 이름의 영아살해 풍습이 유행했고 약 250년의 에도시대에 3천번이 넘는 민란이 일어났을정도로 민생이 피폐했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조선통신사가 일본의 피폐한 민생에 대한 기록을 남겼을까요. 그직전 시대인 대항해시대의 일본은 전국시대였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조총과 화약을 사기위해 자국민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노예무역이 성행했고 이수가 자그마치 50만이 넘었으며 너무 많이 팔아넘겨서
일본인 노예의 시세가 흑인노예보다 훨씬 저렴한건 물론이고 일본인여자 50명을 화약 한통과 바꿀정도 였습니다. 동시대의 청나라에도 엄연히 가생자라는 이름의 한족 세습노비가 존재했고 조선과는 다르게 고려처럼 양민과의 혼인이 불법이었기에 조선처럼 인구에 큰 비율을 차지하는것은 아니었으나 중화민국 초기까지 세습노비가 존재했었습니다.
노비가 노예지
암흑시대로 불렸던 중세시절조차 귀족들이 강제로 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조선의 양반들은 그토록 유학 배웠으면서 마구 저지르고 다녔죠.
공식적으로 처녀로 인정받는 여자들로만 잠자리한 세종조차도 임질에 걸릴정도이니 말 다 했죠.
배웠는데 노비는 사람 취급을 안 하고 물건 취급을 했으니깐 그렇겠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6.25 전후로 종제도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군요
얼마전 경북의 종택을 취재하는 방송을 보았는데 그 90살 노인이 자기 고택을 수리하다 혼자 안되니 바로 집앞에 어떤 초라한 집문앞에서
사람이름을 고래고래 부르자 어떤 한 촌노가 나와 인사를 하자 그 고택에 사는 노인이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에게 저 촌노가 내가 어릴적 부터 우리집에서
머슴살던 자라고 소개하였지만 그 촌노의 나이를 유추해 보아도 머슴이 아니라 종 이라것을 단번에 알 수 있지요
안절부절하며 고택에 살던 노인을 따라가서 그집의 창틀을 수리하던 그촌노를 지금도 머슴부리듯 대하는 그양반들의 의식은 아직도 사라지지않고 있습니다
70년대 이전까지 촌에는 한동네에도 옛날 양반이 사는 곳과 머슴과 종놈이 사는 곳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살고있는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는 형태가 지금도 옛날 양반들이 많이 사는 경북이나 충청도에 가면 다남아있습니다 촌에 묘사 지내러 한번 가보세요
지금도 양반들이 가지고 있는 상속문서에 첫번째가 노비 입니다
조선과 오늘날의 북조선은 많은 점에서 닮아있다.
北조선은 계급사회를 붕괴시킴.
@@빨강-w6i북한은 계급대신 출신성분 사회 도낀개낀
세종 대왕이 태종이 종모제에서 종부제로 바꿨는데 고작 신하들 기 살려주자고 바꿈. 어떻게 보면 자기 대에만 문제 없으면 된다는 마인드고. 세종대왕도 조선왕조 실록에 좋게 기록된거 보면.
당시 기득권층한테 좋은 왕이었다는 소리임. 기록하는 놈이 기득권층이라. 사심 들어갈 수 밖에 없음.
조선시대 노비는 노예였다고 봅니다. 노비는 사람이 아니고 재산이었고 가격이 정해져있어서 매매대상이었으니까요~ 노비의 남편을 주인이 맘대로 바꿀수 있었으니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 그냥 인간가축이었네요~
ㅋㅋㅋ 정말 개같은 조선이죸ㅋ 그런 조선을 옹호하는 도라이 학자들이 많타는게 충격임
조선인구 1000만명중 노비 노예가 400만이었다면 일본이 조선 합병후 노비제도 철폐 여성교육 주장 실시한건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면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네ㆍ국민의 40%가 인간대접 못받는 노비였다면 지금 인도의 카스트제도로 고통받는 인도꼴 이었겠구나ㆍ
그때 당시 통계는 정확하지 않아서 전부 믿으면 안됨.... 그리고 일제시대 일본이 남긴 기록도 왜곡이 심하게 들어가서 그대로 믿으면 안되요......역사 기록이라고 해도 검증이 안된 기록은 믿으면 안되요....
합병이 아니라 강제 점유다 노비제도 철폐했어도
식민지시대에 조선인들은 노비처럼 살았다
일제 시대 조선인들 교육수준이 조선시대랑 다를게 없었고
특히 여성은 90%이상이 까막눈이었다
@@딩고-c4t 일제시대때 저희 증조부님 말씀 하길 일본이 신분제도 철폐 하자 양반집 노비 자식들이 초등학교가서 양반집 자식들보다 공부 잘해 순사 헌병 고위층 농업계장 일본 와세다대도 가고 일본역사교사 훈도도 하고 이들이 해방감 느끼고 자발적 친일파들 되었다 합니다ㆍ독립운동이나 반일은 주로 출세기회 박탈당하거나 기득권 빼앗긴 양반들 평민들이 주로 했다 하네요ㆍ조선 인구의 40%가 소작농 빈민 노비 백정이니 친일파가 쏟아져 나올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요ㆍ
@@딩고-c4t일제 시대에 근대교육 할 수 있는 학교가 우후죽숙 생겼는데 뭘 똑같어 ㅉㅉ 일본이라면 무지성으로 까고보는 ㅉㅉ
합병임
노비 120명을 거느렸던 신사임당 본가인데 그런 사람을 위인이라고 화폐에 넣는 나라에 뭘바라겠나.
전세계 유일하게 자국국민을 노예 만든 민족
내부 폭력에 특화된 민족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다른나라늘 침략한적 없다고
자랑질 하는 한심한 나라...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6. 마비키 뿐만아니라 여자아이를 낳으면 창녀로 팔아버리는게 아주 흔한 일이었음
중국 침공하면 나라가 망하고 일본 침공하면 중국이 딴지 거는것괃 동시에 관리 안되서 반란남 시바 제대로 알고 말해
"이보시오, 영상. 조선에서 우리 가문은 대대로 노비였소.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오. 다시는 나를 조선사람이라 부르지 마시오!" - 영화 남한산성 -
역사영화 사극 세계 문화유산 지정은 가짜 역사 세뇌시키는 목적.
우리들이 배운 역사는 왜정시대 중일과 전세계가 조작.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나오는 내용은 전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것.
노비는 타국인을 말하는것.
한민족은 최상의 브라만 계급.
이토 히로부미는 왜 백인일까?
명성황후는 미국에서 살해 당했다 ㅡ다음 검색
노예나 노비나 도찐개찐이지 뭐가다르다고!? 저랬으니 주변국들에게 침략 당하면서 살았지 멍청하고 창피한 조선왕조 입니다~~
신분제를 철패하는데는 일제식민지 시대와 6.25전쟁이 크게 기여한 면이 있고 이것은 오늘날 한국을 만드는데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신분제가 남아 있다면 일반인의 삶은 끔직했을것 같다.
조선시대가 악랄했던 것은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동족을 노예 부린 것이다. 노비의 생사여탈권을 주인이 갖는다는점에서 서양의 노예와 전혀 다를것도 없었다. 계몽군주라고 하는 정조나 어느 지식인도 노예제도에대한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한 적 조차 없었으며,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제도적으로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폐지의 계기는 한일합방이었다. 조선은 스스로 노예제를 폐지할 정도로 진보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때 조선이 식민지화되지 않았다면 신분제는 한 참을 더 유지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인도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는 잔인했던 과거가 부끄럽다고 왜곡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일본에게 말하려면 우리부터 떳떳해야 하니까.
한국 학자들이 이를 악물고 노비는 노예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유는, 이것이 지식인 계급의 죄악이기 때문이다. 권력과 권위만 있으면 지식인들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개소리가 명백히 틀렸다는 반례이기 때문이다.
노비는 주인을 고소하거나 욕하면 사형에 처해졌고, 주인이 관청에 신고만 하면 때려 죽일 수 있었으며, 수시로 선비에게 강간을 당했고, 평생 노동을 착취당했으며, 매매의 대상이 되었고, 어린 노비를 가족과 강제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 사학자들은 지식인 계급이 저지른 대다수의 착취는 외면한 채, 조선 시대 500년 동안 한두 번 나타나는 특수한 예시만을 부각하며 노비제를 옹호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계급 투쟁으로 타도해야 할 전근대 지배 계급의 잔당일 뿐이다.
노비 늘리는 법 만든 왕과 노비 늘이는 법 전수한 유학자나 전부 쓰레기들이 지폐에 들어가있다.
ㅇㅈ 쓰레기들이 지폐에 들어가 있음
@@faintcorona1726 ㅋㅋㅋ 그니깐요 대한민국 건국한지 100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쓰레기 같은 이씨왕조 놈들이 지폐에 있음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지폐에는 경제학자들이 잘 들어가는데
바로 그들이 노예 경제학자들...
한국경제의 정체성 그대로.
세종이야 한글 만든 공로라도 있지, 나머지 애들은 머야 ㅋㅋ 생각해보면 넣을 만한 위인자체가 없음.
인류 역사의 수치 조선
제가 중고교때 국사공부포기했슴. 참담하고부끄러워서 세계사는 잜해슴
와.. 조선에서는 손녀 손자, 아들,딸을 노비화해서 이득 챙길 생각으로 낳은거 였어..? 진짜 짐승보다 못하다
팩트: 정조때만되도 노비비율 10퍼센트도 안됨. 평민과 노비들이 족보를 사서 너도나도 양반이 됬기때문에 1700년대부터 이미 신분제가 붕괴되고있었다
반면 그당시 옆나라 일본은 80퍼센트 이상의 평민들이 영주에게 구속받는 농노였음. (에도시대 일본 평민 = 농노)
1. 일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백성은, 죽지 않을 정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합치점을 구해 세금을 납부토록」라고 말할정도로 애민정신따위 개나 줘버릴 일본 지배층(무사계급)들은 백성(농노)들 착취가 엄청났다고한다. 즉 몇개의 도시나 지배층만 부유했을뿐 80퍼센트 이상의 대다수의 평민들은 지배층 사무라이에게 착취당함.
2. 그 당시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로 농사지은 쌀은 영주한테 다뜯기고 농민들은 고구마, 나물로 연명 (농민들에게 쌀밥, 고기 법으로 금지)
3. 평민이지만 농노이므로 거주이전 자유 X , 직업선택 자유 X
4. 농민들에게 하의를 못입게 법으로 정해놔서 남자들은 빤쭈(훈도시)만 입고다님(19세기 말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일본인들은 다 벗고다닌다고 충격받음)
5. 각종 규제와 세금으로 인해 농민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자식을 낳자마자 죽이는 풍습이(마비키) 전국적으로 유행
6. 에도시대 문서에 특히 여자아이는 죽여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했고(마비키) 아니면 유곽에 창녀로 팔아버리는게 아주 흔한일이었음(심지어 외국에까지 팔려나감, 50만명의 가라유키상-해외 일본인 매춘부가 그 예)
@@pradeepsumit9870 일단 미비키는 그렇게 영향이 컸다고 보긴 힘듭니다 당시 사망률 통계보면 질병으로 뒤진게 많아요
혈연적으로 보면 다 지 아들이고 딸이고 한데 신분이 노비라고 돈없으면 팔아먹기도 하고 양인한테 시집보내고 손자 손녀 노비로 만들어서 재산 늘었다고 좋아하던게 조선시대 양반들이었죠 ㅋㅋ
지금도 그러지않나?ㅋㅋ 상견례가면 득실부터 따지던데ㅋㅋ
조선은 쉴드가 안됨. 쉴드치는 놈이 바보됨😊
조선은 잘 망한거임
@Kest eres 이조의 전통을 김조가 계승한것이고...
또한 국민이라 불려지는 열등한 존재 때문에 남한 마저도 다시 열등 대륙 공산권으로 편입될려는 찰라다!
군인이나 노예나
조선은 애초에 건국되어서는 안돼는 나라였음
북한이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사상을 쉽게 받을수있었던 사상적 토대 계기가 아닐까
그래서 일본이 더 좋은거죠. 노비였던 국민들 입장에서는요.
노비가 노예지 무슨 ㅋㅋ 하여간에 이런데서도 그놈의 국뽕질은 ㅋㅋ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흰나미 그래서 지금도 남남,남북갈등이 심하지요,심지어 북을좋아하고 찬양하는 인간도 많고...
노비는 노예랑 다름. 1745 년(영조 21)에는 『속대전』에 속전가를 100냥(兩), 즉 100냥만 지불하면 양인이 되도록 법제화되어있음.
노비는 노예보다는 차라리 러시아의 농노제도에 가까움.
사유재산도 보장되어있고, 혼인의 자유도 있음.
돈주고 사고 팔았는데, 노예가 아나라는 사람이 있네요. 진짜 국뽕 심하네요.
극우나 극좌나 패악질은 알아줘야해
결혼이아니라 노비낳는기계죠
마치 가축이군요
노비 새끼까서 재산증식하는걸 현재 부동산투기하는 정도로 생각했을거같음 ㅋㅋ
진짜 미친거같애ㅠㅠㅠ 번식까지 시키냐ㅠㅜㅠ
돼지 발 전 제 홍 ㅈㅍ
노비 번식은 양반의 주 수입원이었죠
@@Bri-hu3ok 실제로 양반끼리 주고 받은 서찰(편지)에 그리 나옴.
@@Bri-hu3ok 조선은 정복국가도 내전이 흔한 국가도 아니였는데 노비(노예)가 늘어나는 이유죠.
노예보다 못한 노비. 부끄러운 제도다.
당연히 노예지. 노예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았는데. 조선이 없어져서 천만다행입니다.
조선 노비는 대다수 노비가 주인 집 밖에 거주해서 개인 재산과 가정을 꾸릴수있는 외거노비였다. 니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노예가 아님.ㅣ
@@pradeepsumit9870 야, 그건 평생 대를 물려 노예로 부려먹으려 했던 거잖아. 그래, 너나 너희집안 모두 평생 노비노예로 살아라.
@@lesliekim7948 일제강점기 전에 조선시대 신분제는 붕괴됨. 반일종족주의 쓴 이영훈도 18세기 영정조때 노비 비율이 5% 미만으로 거의 사라졌다고 분석함. 사료로 분석한 팩트임. 노비가 있어도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남자노비는 없고 여자 노비만 존재함.
1858년 철종때 호구조사에 따르면 양반만 70%이고 28퍼센트는 상민, 2퍼센트만 노비. 즉 일제전에 노비는 거의 사라졌고 소수의 여자노비만 존재했음. 니들 생각에는 일제전에 조선은 인구의 반절이 노비로서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나본데 영정조 이후는 돈있으면 개나소나 양반될수있었던 신분이동이 자유로웠던 사회였음
노예? 노비보다 노예가 낫다 조선의 노비는 전세계 어디보다 잔혹한 삶을 살았다
조선의 노비가 서양의 노예가 아니라면, 노비들은 왜 도망가고 그들을 쫒는 추노군들이 있는 거죠??
이영훈 교수의 연구성과를 보니 왜 당시에 그런 대규모 농민봉기가 가능했는지 이해 가네~
일제 통치에 대다수 백성들은 별 불만이 없었을 듯~
기득권을 뺏겨야만 하는 양반계층이나 싫어했지~
나라가 망하면 10% 기득권이 나라를 탈출하여 해외로 도피한다고 하였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면 독립운동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해 봐야 할듯~
과연 지금도 조선시대라면 과연 나는 양반일까? 중인일까? 상민일까? 노비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역사를 유튜브로 배우지 마
@@장우혁-m7k 유튜버 전직 스타 강사들 시무룩
양반들도 오히려 반겼습니다. 노론같은 경우는 전혀손해보지않고 친일파로 갈아타서 일제에 붙어 호의호식하고 지위를 지켰죠. 주로 지방양반들이나 권력이 없는 양반들만 보상도없이 갑자기 재산잃고 신분잃게 되어 피봤죠. 한마디로 진짜 조선을 망친 놈들은 전혀 손해보지 않앗다는거임 ㅋ 명에붙었다가 청에는 따이고 일제에 붙어서 끝까지 호의호식했죠. 개중에 진짜쓸만한 개화파들은 민중에 몰매맞아 죽고 졸지에 재산과 신분잃은 잔반들은 독립운동으로 많이 빠지고 아무것도 없는 빈민이나 민중들은 좋아하고..
@@michellelaw1538 ? 노론 소론 싹 해체되고 벽파 시파로 넘어간게 영조 때고 벽파 시파도 세도정치 시작하고는 의미가 없어지는데? 그 세도 가문들은 대부분 김조순을 필두로 한 시파계 가문인데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일본의 침탈이 시작된 강화도 조약이랑 노론 해체랑 거의 100년 차이인데 100년만에 노론이 부활해서 친일 짓을 한다고?
@@장우혁-m7k 노론이라는 이름이 해체된거지 사람이 교체된게 아니죠. 노론이 벽파시파로 디테일하게 분화되었을뿐 결국 근본은 모두 노론입니다.
과거에는 지탄을 받았겠지만. 제임스팔레의 말대로 조선은 노예제국가가 진실이라 보는게 옳다
다른나라에서 수급할 힘이없었으니까 자국민을 노비로 삼았겠죠
조선 진작에 망했어야 하는 나라..
참역사라는 곳에서 조선이 중국계 쿠데타 왕조라고 주장해서 욕을 많이 먹는데요
저도 처음에는 욕했는데 알고보니 맞는것같아요.그렇게 보니 백퍼 이해가던데요
재평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문제가 보통이 아니에요.완전 식민통치죠.
역사관 관련해서 총체적 재정비 필요.
노비제도 옹호했던 사람들은 위인에서 빼야합니다.
노노 세종이 종모법을 만들었어요..세종을 너무 감싼다.
종모법? 엄마가 양인이면 오히려 노비가 줄지 등신아 종모 종부가 중요한게 아니고 노비늘릴려고 입맛대로 종부했다가 종모 했다가 하는게 문제야
@@제국전기 ㅇㅈ
조선시대 오스트리아인 여행자가 조선을 보고 "지구 상에서 조선 만큼 지배층이 거짓되고 범죄적이면서 백성은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는 결코 없다." 라고 썻음.
세종은 한글 만들었지만 또한 세종은 노비 종모법 만들었습니다.
노비 종모법은 여자 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는 법 입니다.
또한 세종은 노비는 주인의 잘못에 고소 할수 없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노비에게 부당한 대우 하거나 때려 죽여도 하소연 못하게 된 겁니다.
세종은 노비(노예)가 확대 되게한 왕입니다.
조선 시대 500년간 양반 은 병역의 의무도 없이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삶. 500년간 우민화(500간 도서관 없었음), 신분차별
@@흰나미 이ㅂㅅ 여기도 와있어?
@@흰나미 노비종모법은 노비를 노비종부법 보다 더 크게 늘리는 법이 아닙니다.
진짜로 노비를 폭증시키는 법은 원 간섭기 충렬왕 재위시기에 고려에서 시행된 악명높은 ‘일천즉천(一賤則賤: 부모 중 한쪽만 노비여도 그 자손들도 무조건 노비가 되는 법)법이지요. 노비종모법은 아버지가 노비이고 어머니가 양인일 경우 오히려 노비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반대로 노비종부법 또한 아버지가 양인이고 어머니가 노비일 경우 노비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문제는 둘 다 고려시대 일천즉천(一賤則賤)법 보다야 진보한 법이지만 여전히도 노비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로 노비제를 없앨려면 구한말 고종시절때 처럼 노비세습제를 폐지(1886년)하거나 신분제를 완전히 철폐(1894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노비종부법도 문제가 많은게 노비인 여성이 낳은 자식의 친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양반들이 우기거나 친부가 노비라고 양반들이 우기면 그 아이는 그냥 노비가 됩니다... 그나마 노비종모법은 낳은 어머니 만큼은 확실하니 그런식으로 우길 수는 없었죠.
실제로 조선 초기라면 몰라도 이미 중후기 부터는 그 반대인 노취양녀(奴娶良女)가 더 성행하였으며 노비종모법 덕분에 노비인 아버지와 양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모두 양인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양처소생종모종량법(奴良妻所生從母從良法)」입니다. 이법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노와 양녀가 혼인하여 낳은 소생을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양인신분으로 하여(자식의 신분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른다는 점에서 '종모법'에 근거함.) 이들에게 양역을 지울 목적으로 실시된 것입니다.
영조 이후 노와 양녀와의 결혼이 더욱 성행했던 것은 역시 노비들이 이 법으로 그 소생을 간단히 면천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법의 실시 이후 조선의 노비 인구 비율은 10% 미만으로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세종시대 이후에도 노비를 죽이면 당연히 처벌을 받았습니다.
실록을 보면, 세종은 노비를 죽인 주인을 처형하게 했고, 그 사실을 고발하지 않은 이웃이 있으면 수령을 벌주게 했습니다.(1440년 6월). 실제로 집현전 관리 권채나 이색의 손자 이맹균 같은 명문가 출신의 관리들이 계집종을 학대하거나 살인한 아내를 대신해 파직당하거나 유배가기도 했습니다.(1427년 9월, 1440년 6월). 자신의 여종을 임의로 죽인 안주인이 처벌받은 일(1438년 5월)도 있었습니다.
또한 서구식 대도서관은 동북아에서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책방들이 있었죠. 전근대 동북아에서는 국민들 누구나 이용하는 대도서관이 없었고 그냥 책방만이 있었습니다.
양반여자와 결혼? 거이 불가능했고 노비와 사랑에 빠진 양반딸은 양반 부모에게 집안 명예를 더렵혔다는 이유로 명예살이까지 당한후 자살로 위장하는 경우도 많았음
같은민족을 노비로 그것도 대대로 노비로만든게 세종때시작되었는데 대왕은 무슨! 백성의40% 노비.왕족20%.양반20% 일반백성20% 이런게 국가였다니!!!
양반들이 마음대로 노비들을 학대하고 죽일수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들이 노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유명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만 봐도(드라마는 물론 각색된 부분도 많지만) 일제강점기 시대때 독립 운동도 왜 양반이 일반계층,천민 계층보다 참여율이 높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천민들 입장에선 조선의 붕괴가 반가웠을겁니다. 저라도 그랬을 듯요. 노비 자식으로 태어난 죄로 평생을 착취만 당하고 살았을거고 또 백정의 자식으로 게다가 그 당시 여자로 태어난다면,, 참 조상들 일이지만 부끄럽습니다.
일제는 단순히 악랄한 제국주의자, 양반은 하층민 피 빨아먹고 성공
노비가 노예냐 아니냐는 외국학자의 주장이 맞을 것 같음. 외국학자는 세계 각국의 노예제도를
연구가능했으므로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했을 것 같음.
한국 국사학자 ?
기본적으로 과학적인 연구보다는 이념적인 주장을 더 많이 함.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슴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사공부 안하면서 한척하지마라 진짜 ㅋㅋ
@@이도형-x9x
외국??? 은 그렇지 않았음...동족을 노예로 부린 경우는 아프리카 추장이 동족을 백인노예상에게 팔아먹은 거와 비슷한 수준.
@@HotSoil510 1. 애초 민족 개념이 없었습니다
2. 양반들은 노비를 동족이라 보지 않았습니다
3. 조선 노비제보다 더 가혹했던 재판농노제의 주 대상은 동족이었습니다
@@이도형-x9x 걍 유명한 조선까니 무시하면 됨
노예 한명의 가격이 조랑말 절반 가격이었음.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노비가 아니면 뭔지?
세종 때 노비는 양반을 고소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음.
양반에게 맞아죽어도 하소연도 못함.
동족을 짐승취급하는 임금이 세조대왕이란 짐승이었음.
이게 팩트죠. 역사의 기록이구요.
@@hara9tube 역사의 기록? 그 기록 따져보면 노비가 땅 소유한게 더 정확한데 ㅋㅋㅋㅋㅋ
권내현 교수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2014)에 따르면 1720년 경상도 용궁현의 토지 중 약 10%를 노비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87페이지)
@@busa00037 경국대전 보세요, 노비 인권 자체가 없는데 역사 날조하는 쓰레기들이 미화 시키는거에요. 그리고 노비는요 양반 주인 성씨 따라 쓰던가 아예 성씨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노비가 있다면 양반에서 노비로 떨어진 케이스겠죠. 주인이 종년 따먹고 세끼 낳고 또 같은 주인이 종년의 자식 따먹고 하던게 그 잘난 조선시대 가계도입니다.
@@hara9tube 원래 머저리들이나 학자 말 못 믿죠. 이해합니다
@@hara9tube 전기야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적어도 후기는 아닙니다. 저 사례들 모두 후기의 사례고요
아니 가격이 있고 사고 팔고 신분 세습을 하고 부민고소금지로 부당한 일을 당해도 고소를 못하는데 노예가 아니고 뭐냐?
기자가 말을 안한게 있는데 경국대전에 노비가격이 나와있다. 말 한마리에 노비가 세구, 젊은여노비는 말 한마리 가격하고 비슷하다고 되어있구만...
사람한테 붙이는 단위인 한명, 두명이 아니라 가축한테 쓰는 단위인 '입 구' 자를 써서 한구, 두구, 세구 이렇게 불렀다. 가축하고 동급 ;;;
내가 양반이면 노비장사 존나 잘했을텐데 ㅎㅎ
입 구자는 삼국시대부터 사람수를 세는 단위로써 쓰여왔습니다.
@@jaeun1234 나도 양반이었으면 노비장사로 엄청 부자가 되었을꺼야. 당근과 채찍 번갈아가면서 관리 잘했을듯
@@田中夏一 조선노비에겐 가축에게 쓰는 '입 구'자를 사용했음.
@@田中夏一 '입 구'하면 이해가 안됨? '주둥이 구', '아가리 구'....ㅇㅋ???
우리가 흔히하는욕 상놈 이게 50년전에는 실제 존재하던 신분이었다
전세계에서 자국 역사 미화 젤 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라.
그리 미화된 교과서로 공부해도 조선의 이미지는 최악이죠.
조선의 노비를 노예제 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신분제 사회에서의 한 계층으로 서양의 농노하고 비교하는게 더 맞음....
조선의 노비나 유럽의 농노가 유사하고,,,,,유럽도 나라에 따라 따르지만 19세기까지도 농노제가 유지되었는 곳이 많고,
일본도 공식적으로 농노제가 폐지되는 메이지유신전까지 마찬가지임...
농노나 노비나 노예나....현 시점에서 불평등한 신분제도인 건 맞지만,,,,,
근대화 이전 신분제 사회에서 최하층민이 있을 수 밖에 없고,,,이를 국가권력이나 지배계층이 이를 이용한 것도 다 비슷함....
근대화 과정 속에 산업화와 시민의식이 확립되며 이런 신분제가 철폐되는 과정을 거쳤고, 조선이 이런 근대화에 뒤쳐지면서 오랜 기간 이런 신분제가 유지된 것에 대한 비판은 맞는 것이나,,,,이런 노비제가 조선만의 문제였던 것으로 과장,왜곡하는 것은 문제가 됨...
조중동이 가끔 친일 반민족적 행태를 띠는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그래도 최소한 친일식민사대주의자 들이 주장하는 이런 내용들을 100% 여과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이 나라는 이런 자들이 너무 넓고 뿌리 깊게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제에 고마워해야 할 지경.. 노비를 해방시켜준 고마운나라
@박지현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일뽕이라고 하는...
@@user-RINACHICHII ㄴㄴ 노비제는 갑오개혁 때없어졌음 법이 없어졌다고 하루아침에 문화나 그런게 바뀌지 않음 하지만 일본이 그게 노비제 폐지해주었다고 볼수 없음
@@sjwclover 갑오개혁이 일본이 한거다.
@@sjwclover 그리 따지면 조선과 대한제국은 멸망하기전까지도 노예제 국가란 이야기가 됩니다. 동의하시죠?
@@seongki1003 제가 말을 하다가 말아서 오해하셨나봐요 계급문화가 혼란했으며 존재했음 몰론 이전보다는 희석이 되었지만 계급문화가 있었음 공식적으로 폐지는 됬음 근데 폐지 되었다고 사람들의 인식 문화 존재 했음 예시이지만 제사나 설날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로 인식 된것처럼
사대부 때문에 망했군
다른 형태의 봉건제.. 그러나 주군이 나를 지켜주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