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철원6사단 제대 한달 남은 말년이었는데 저 사건 이후 계급장 색상이 제 다음달 군번부터 노랑색에서 검은 색으로 바꼈죠. 제가 마지막으로 노랑계급장을 달고 제대한 군번입니다. 저때 공비들이 눈에 잘 띄는 계급장땜에 장교만 골라 사격을 했기 때문이죠. 저는 포병이라 경계태세만 유지했는데 보병들은 장난 아니게 바빴을 겁니다.
오래된 이야기네요. 이때 말년병장으로 마지막 위병조장 쓰고 전역대기 할려고 했는데,우리부대는 상황전파가 되지 않아 일상적이였다가 당일 행정반 후임들한테 알아보라구,일직사관도 당황해서. 난리가 났죠. 그후 각초소 24시간 풀타임 투입, 동기인 일직하사는 3주간 교대없이 일직하사. 그러다가 외곽 섹터 수색및 주요거점 확보등. 정신없이 지내다가 작전중 전역했네요.
702 특공연대 95년 11월 군번 입니다 저희도 그날 준비태세 훈련 하다가 상황 종료가 안되길래.. 뭔일 났나 했었는데.. 북한 잠수함 좌초.. ㅜㅠ 작전 지역으로 출동 하기전 유서 쓰고 한놈 잡아서 헬기 타고 집에 간다 했었는데.. 막상 출동해 보니.. 춥고.. 배고프고.. 잠도 못자고.. 씻지도 못하고.. 상거지꼴 하고서.. 낮엔 수색.. 밤엔 매복.. 그짓을 거의 3~4개월 가량 했었죠 저도 등산 절대 안갑니다 ㅋㅋ
@@다음날-z7d 이구 안습ᆢ만약 저 무장공비는 특수부대 대원이니까 들키지 않게 국군제압한 것ㆍ 만약에 공비가 대검으로 한명씩 목 베서 소리없이 죽였어바ᆢ그 후 한국서 무장공비에게 매복중 졸다가 네명 모두 목 베어서 죽었다고 신문지상 난리났다ㆍ 적어도 그 무장공비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국군을 살려주었어ᆢ너가 당시 국군이였다고 생각해바ᆢ그 네명은 저 죽은 공비에게 다 생명은이야 이 몬난 사람아ㆍ 초딩이냐^^ 너는 당시 군인이 싸리비자루 하러 산에 갔다가 목 베어서 죽은 군인 한명 모르냐ㆍ 적어도 죽은 공비에게 명복은 빌어야지 이 못난 사람아
당시 강원도 양양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침투사건이 발생한 날 유서써놓고 방탄조끼, 실탄, 수류탄등을 지급 받고 동터오던 새벽녘에 투입되던 상황은 20년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남습니다. 그때 내 옆을 지켜주던 전우들은 뭘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제 대학 때 교수님이 udt 출신에 강릉 사태 당시 작전과장 하고 계셨는데 이광수 직접 심문 하셨다고 회고하셨습니다 근대 그때 웃펐던게 이광수 신변을 위해 본인 관사로 이광수를 데려갔는데, 관사가 허름해서 이광수 본인 생각으로는 아직도 자기를 심문하려고 집이 아닌 곳에 집이라고 속이고 데려온 줄 생각 했답니다. 이광수 가 여기가 어디오? 해서 내 집이요 라고 하니 말도 안된다며 안 믿었는데 나중에 자기 물품 다 보여주고 나서 그제서야 믿고 "우리는 이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군인이면 좋은 집 살게 해주는데 이런 데서 살고 있다고 하니 놀랐다" 라고 얘기 했다고 합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군인에 대한 대우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대한민국이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맡는 역할에 따라서 대우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면 후진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군인들에 대한 처우는 확실히 더 나아졌으면 합니다. ㅋㅋ
이후 ...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역 했다... 당시 ... 현역 추격전으로 전사가 많았다 지금은... 다 잊혀진 잠수함좌초 공비침투소탕작전 영화를 만들어도 될 49일 대간첩소탕작전 요즘엔... 대 놓고 간첩질 해도 안 잡아가는 나라가 되었다 무장공비가 더 필요 없다는거지... 강력한 반공법이 절실이 필요하다
연화동 마지막 기무사 대령과 큰 인력 피해가 난 것은 전투 경험이 없는 안일함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공비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수색과 인력 없이 렌턴 켜고 돌아다니니 타겟이 되지.. 병력 지원 받고 수색부터 했다면 여러 인명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 끝난 시점에서 보면 송이 따러 가는 민간인도, 국군이동 경로 방송하는 언론도, 갈 사람없다고 기무사 장교 보내는 지휘관도, 졸고있다가 공비가 꺠워주는 군인.. 개판도 저런 개판이 없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게 더 두렵다. 희생이 큰 거 ? 작전자체가 원래 어려운 작전이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맨날 북한 운운하며 모든 문제를 무마해온 군대가 사회나 병력 운용에 대한 협조나 통제도 안되는건 문제 아닌가.
이후 kbs? 이 사건을 발생부터 종료까지를 방송으로 내 보냈다 마지막은 광수?씨를 희생된 유족의 산소까지 동행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장면 연출했다 가족들 울음 참아가며 대화 잇지만은 아들은 광수씨를 노려 보았다 사람 사는데 잘못이 있으면사과를 해야하며 용서도 필요하겠지만 그곳에 카메라가 필요할까 생각 들었고 방송국의 횡포 같았다
95년 2월 고교 졸업 .. 같은해 11월 자원 입대.. (사실은 본인 몰래 아버지가 육군에 지원서 넣음) ㅜ ㅠ 19살 189 에 80 킬로.. 내 생애 통틀어서 신체적으로 최고로 균형 잡히고 발달됐던 시기.. 2군단 직할 702 특공연대에 떡하니 차출됨 20살 되기 딱 한달 전 강릉대침투작전 투입됨..
실탄 240발 , 수류탄 2발 지급 받고 작전 투입 되서.. 처음 1~2주는 긴장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배변 못해서 변비 걸리고.. 야외에서 배변 할때도 소총 들고 볼일보고.. 해 떨어지면 공비한테 모가지 따일까.. 매복도 FM으로.. 그런데 한달쯤 지나니 매복 할때 전투화 끈 풀고 교대로 자게 되더라는.. 훈련 나온거 마냥..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맡은 섹터로 공비들 안온게 운이 좋았지.. 근데 실패한 작전이니 어쩌니.. 댓글 다는 애들아 너네는 뭐 별수 있었을꺼 같냐? 낮에는 수색 또는 차단선 따라 이동 배치.. 밤에는 매복.. 이걸 3개월 내내 밤낮으로 했단다 이제 갓 20살 된 애들이..
68사단 173연대 내륙2대대 8중대에서 당시 5분대기 출동한 인원중 1명으로 댓글 답니다. 임용한 박사님이 새벽 3시30분 어쩌고 저쩌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자대에서 5분대기 출동한 시간이 새벽 2시쯤이였고 현장에 도착했을시각이 2시반쯤이였습니다. 그날 제가 위병소 초번 근무라 근무후 잠시 눈붙이자 마자 바로 출동 걸린거였는데 우리는 자세한 상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5분대기 출동 차량이 위병소까지 지나 계속 가고 현장에 2시반쯤 도착했을때만 해도 자세한 상황은 몰랐습니다. 도착해보니 차량 거치 서치라이트들로 주변이 대낮처럼 환한 상태였고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수색 투입 들어갔습니다. 173연대 1대대 2대대 3대대 수색중대가 수색작전 투입이 가장 빨리 들어갔을겁니다. 당시 저 작전에 투입되고도 민주당 지지하는것들은 없겠지요. 댓글들줄에 실패한 작전이라니 뭐라느니 입만 동동 산것들도 보이는데 니가 저 작전에 참여 했어봐라 그런 말 나오나 그리고 왜 그런 자료들이 존재 하는지 모르지만 시신 발견된것은 새벽7~8시경에 산에서 총소리가 나서 인근 수색중인 부대들이 올라갔고 그중에 우리 5분대기조도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고 본대와 합류한 시각이 오전 9시쯤에 주변에서 이미 사주경게 하던 우리 본대와 합류하고 특전사와 기무대가 시신 발견 지점으로 투입 확인하고 나올때까지가 오전 11시정도까지입니다. 이후 우리 본대는 산을 내려오고 대략 13시쯤에 인근 민가 근처에서 식사 추진하여 숟가락이 없어 근처 나뭇가지 꺾어 껍질 벗겨내서 젓가락 대용하여 밥을 먹고 국은 마셨지요. 직접 경험한 사람과 육본에 기록된 시간이 많이 틀리네요.
그당시 뉴스속보나 군대내 상황전파도 헬기에서 레펠로 내려오다 총맞고 전사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헬기에서 내려온 다음에 수색 도중에 전사했다고 하니 좀 당황스럽네요. 그리고, 끝날때쯤 양구쪽 철책선에 구멍이 발견됐다고 야간근무 도중에 상황전파가 된적이 있는데, 나머지 1명은 북으로 갔을수도 있죠.
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대한민국 육군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작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고작 24명의 무장공비 그것도 11명은 잠수함 승무원으로 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처형을 당해 고작 13명밖에 안되는 무장공비를 잡기 위해 4만 3천명을 투입했지만 특전사 대원을 포함해 18명이 전사하고 27명이 부상당했으니....... 거기에 우리나라 국군도 진짜 엉망진창이었다고 합니다. 군수지원도 개판이고 투입정보도 언론에 다 노출되고 훈련도 안된 상태에서 그냥 밀어넣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만약 저 상황이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추철구 아니요. 일본이 저 상황에 처하면 자위대가 아닌 경찰이 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전경같은 경찰기동대와 우리나라 경찰특공대라고 할 수 있는 SAT가 출동한다는 거지요. 자위대는 절대로 출동이 안됩니다. 출동을 법제화하는데만도 1달 반이 걸리니까요. 거기에 치안출동에 대한 매뉴얼도 없어서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까지 다 하려면 자위대 출동하는데 3달이 걸린다고....... 그런 부분은 영화 신 고질라에서도 잘 묘사를 했는데 진짜 황당한 것은 일본이 진짜 일 처리를 빠릿빠릿하게 하고 관료적 절차 없이 아주 최단시간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영화 신 고질라에 나오는 식이라는 겁니다.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때 상병이었는데 그때 운전병으로 출동했던기억이 나네요 원통 12사에서 군복무했습니다
3사단 일병이였는대gop들거가는시기라 작전참전안함 긴장하긴했어요
이미 알고있는 내용였지만 몰랐던 디테일한 설명이 있어서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저도 제대말년에 저기가서 수색한다고 하루종일 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젊어서 몰랐는데 28년 가까이 지나 50이 넘은 중년인 지금에서 보니 돌아가신 분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96군번 4월입대
백일휴가 나가기직전 휴가취소되고
작전투입후 고 송관종일병 옆중
대라 같이 교전했던기억이남니다.
작전종료후 위로휴가는갔었지만
정말힘들었던 기억이납니다.
근무중엔 당시에 유튜브도없고 뉴스를잘못봐 무덤덤했는데
전역후 영상이나 이런 자료보면
살아있는게 행운이었단생각이듭니다.
친구반갑다 96 4월 ㅎㅎ
국가를 지켜주셨던 그당시 군국장병님들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역시 실전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군요
전우가죽었는데수하는한번만요?
저때 철원6사단 제대 한달 남은 말년이었는데 저 사건 이후 계급장 색상이 제 다음달 군번부터 노랑색에서 검은 색으로 바꼈죠. 제가 마지막으로 노랑계급장을 달고 제대한 군번입니다. 저때 공비들이 눈에 잘 띄는 계급장땜에 장교만 골라 사격을 했기 때문이죠. 저는 포병이라 경계태세만 유지했는데 보병들은 장난 아니게 바빴을 겁니다.
도발에 대한 응징은 강력해야 합니다
굴종하면서 평화를 외치는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거기선최고중에최고를보낸거죠.
무엇때문에그럽니까?
저시절 전역 몇달남겨놓고 작전하다가 옆자리 생활하던 병장이 총상으로 순직했습니다. 12사단 65포병대대 .. 아시는분 인사라도 합시다..
명복을 빕니다...... 11사단 13연대 소총수입니다....
11사단 9연대 입니다
삼가 고인의명복을빕니다
고생많으 셨네요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27사단78연대 였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명복을 빌어 봅니다,
오래된 이야기네요.
이때 말년병장으로 마지막 위병조장 쓰고 전역대기 할려고 했는데,우리부대는 상황전파가 되지 않아 일상적이였다가 당일 행정반 후임들한테 알아보라구,일직사관도 당황해서. 난리가 났죠.
그후 각초소 24시간 풀타임 투입, 동기인 일직하사는 3주간 교대없이 일직하사.
그러다가 외곽 섹터 수색및 주요거점 확보등.
정신없이 지내다가 작전중 전역했네요.
수시로훈련 하던 준비태세가 그날은 실제상황이라고 방송나오는데 전쟁난줄 알았죠. 그 당시 수색조로 투입되어 산을 하도넘어다녔더니 질려버려서 등산을 안갑니다 ㅎㅎ 수색하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 수색은 길로 다니는게 아니잖아요 길이 아닌곳으로만 다니니 등산보다 몇배는힘듬
702 특공연대 95년 11월 군번 입니다
저희도 그날 준비태세 훈련 하다가 상황 종료가 안되길래..
뭔일 났나 했었는데..
북한 잠수함 좌초.. ㅜㅠ
작전 지역으로 출동 하기전 유서 쓰고 한놈 잡아서 헬기 타고 집에 간다 했었는데..
막상 출동해 보니.. 춥고.. 배고프고.. 잠도 못자고.. 씻지도 못하고.. 상거지꼴 하고서..
낮엔 수색.. 밤엔 매복..
그짓을 거의 3~4개월 가량 했었죠
저도 등산 절대 안갑니다 ㅋㅋ
안인진리에 터널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작업전 집합 장소가 그쪽 부근이었는데 ㅎㅎ
94년 12월 군번입니다. 진지공사 끝날 즈음에 실탄 받고... 참 어려운 지경이었네요.
전 94 년 9월 군번. 제대일이 작전 종료일. ㅜㅜ
당시 군인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에이시 슬픕니다.
참한심하다
적군이잠복한지역에서캄캄한야간에후레쉬를키고수색을하다니.그것도대령이란사람이
이것이국군의현실이란말인가?
자빠져 자다가 되질뻔한 포병대위와 병사 참 운이좋네. 원래 공비한테 살해당하는건데ㆍ
넘 기다려 집니다 ~ 기대됩니다~^^
그 당시 노력하신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더이상 군발이라는 말 보다는 군인이라는 표현으로 존중합시다.
이광수가 광어회 먹고싶다고,, 설마 그귀한걸 주겠어하고 말했는데 바로 가져오니 완젼놀램, 그이후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는ㅋ
공비라고하면 엄청예전이야기 같은데 비교적 최근에도 있었네요 ㄷㅡ
국민학교 때는 공비하면 무장공비 생각 하다가 나중에는 등차 등비 수열을 생각케 됩니다
현재 군병력이 48만에서 계속 소멸중인데, 지금 공비 내려오면 포위할 병력도 없을듯
그냥 대한민국 산하를 활개치고 다니는거지
국군 네명 졸다가 공비에게 제압ᆢ근데 안죽이고 ᆢ생명은인이네ᆢ
안타깝다ㆍ
아무리 그래도 네놈이 다 자빠져 자노?
@@SongKyunNo 설마했겟죠ㆍ
무장공비 안스럽네요ㆍ
ᆢ
그당시 무장공비들 전원 사살ᆢ
이광수만 ᆢ
저것이 북한군 정신입니다ㆍ
깡다구에 남한군인들은 안되죠ㆍ
공비가 국군 4명 살려줬는데 안죽이고 나중에 본인들 사살되서 안타깝다는겁니까? 아니면 뭐가 안타깝다고 하시는거죠? 공비가 안타깝다고 하시는거면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당시 제압현장으로 출동 나갔던 군인중 한명으로 직접본결과 안타깝진 않습니다
@@다음날-z7d 이구 안습ᆢ만약 저 무장공비는 특수부대 대원이니까 들키지 않게 국군제압한 것ㆍ
만약에 공비가 대검으로 한명씩 목 베서 소리없이 죽였어바ᆢ그 후 한국서 무장공비에게 매복중 졸다가 네명 모두 목 베어서 죽었다고 신문지상 난리났다ㆍ
적어도 그 무장공비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국군을 살려주었어ᆢ너가 당시 국군이였다고 생각해바ᆢ그 네명은 저 죽은 공비에게 다 생명은이야 이 몬난 사람아ㆍ
초딩이냐^^
너는 당시 군인이 싸리비자루 하러 산에 갔다가 목 베어서 죽은 군인 한명 모르냐ㆍ
적어도 죽은 공비에게 명복은 빌어야지 이 못난 사람아
@user-hi2rv2mx7j 저때 낮에 수색 하고 밤에 매복이 며칠 이어져서.. 그랬다함
대침투작전 경계의 기본은
보고되지않은 유동병력
선조치 후보고
먼저보고 먼저쏘아
초탄에 명중시킨다
잘보겠습니다 😊
이 사건으로 68사단 해체되고, 23사단으로 개편되었는데.. 삼척 목선사건으로 23사단 해체되고, 23경비여단으로 축소됨.
우리아들이 2013년도 23사단에서 근무함 동천대대인가 헷갈리지만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토대로 국방부에서 정훈 자료로 만든 진중시네마도 있는데, 거기 나온 음흉한 아재 한 명이 예전에 나 군생활 할 때 작전과장이랑 똑같이 생겼어서 애들이랑 킥킥거리면서 봤던 기억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명 디테일과 긴장감이 역대급이네요. 오. 굿..
우리 국군분들 존경하고
돌아가신분들께 경의와 명복을빕니다.
당시 강원도 양양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침투사건이 발생한 날 유서써놓고 방탄조끼, 실탄, 수류탄등을 지급 받고 동터오던 새벽녘에 투입되던 상황은 20년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남습니다. 그때 내 옆을 지켜주던 전우들은 뭘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양양요. 군단 특공대 근무 하셨어요? 저때 정말 고생 많이 했죠. 저때 이후 주사파는 사람 취급 안 함.
속이 터진다
제 대학 때 교수님이 udt 출신에 강릉 사태 당시 작전과장 하고 계셨는데 이광수 직접 심문 하셨다고 회고하셨습니다 근대 그때 웃펐던게 이광수 신변을 위해 본인 관사로 이광수를 데려갔는데,
관사가 허름해서 이광수 본인 생각으로는 아직도 자기를 심문하려고 집이 아닌 곳에 집이라고 속이고 데려온 줄 생각 했답니다. 이광수 가 여기가 어디오? 해서 내 집이요 라고 하니 말도 안된다며
안 믿었는데 나중에 자기 물품 다 보여주고 나서 그제서야 믿고 "우리는 이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군인이면 좋은 집 살게 해주는데 이런 데서 살고 있다고 하니 놀랐다" 라고 얘기 했다고 합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군인에 대한 대우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대한민국이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맡는 역할에 따라서 대우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면 후진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군인들에 대한 처우는 확실히 더 나아졌으면 합니다. ㅋㅋ
글쎄. 북에서 대남 올 정도의 위치랑 그냥 군인 위치랑 비교를 합시다요. 한국에서 의사 빼고는 다 마찬가지지. 군인만 그럽니까? 경찰 소방관 간호사...과학자 교사 청소부 ... 그들은 국가에 덜 중요합니까?
멸공!!
이후 ...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역 했다...
당시 ... 현역 추격전으로 전사가 많았다
지금은... 다 잊혀진 잠수함좌초 공비침투소탕작전
영화를 만들어도 될 49일 대간첩소탕작전
요즘엔... 대 놓고 간첩질 해도 안 잡아가는 나라가 되었다
무장공비가 더 필요 없다는거지...
강력한 반공법이 절실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순회하면서 학생의 반공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면 좋겠다.
미국처럼. 군인이 최고. 대우해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됩니다.진짜
와 돌아가서 잡겠다고 돌아가다가 전사한분은 대단하다.
돌아가서 공격하는게 정석이긴 한데 들킨거 같네
1명 못잡은거 아닌가요?
대학교 2학년때 군대 갈려고 준비중이였는데 전쟁난줄 알고 졸라 좋았음...😂
96년7월입대 자대배치받고 이등별때 저 사단이나서 실탄에 수류탄 지급받고 유서쓰고 검문하고 수색했던 기억이 나네요
96년 9월19일 오후 칠성산 정상부근 특전사가 공비 3명 사살한 사건은
편집된건지...?
10:16 유준호 준위 ??!
팔뚝 무슨일
수하가 문제네 선조치 후보고 시행하고 있겠죠
75군번인데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무조건 선조치후보고였는데 그후 역대정권에선 선 물어보고 후조치했는가봐~ 햐~ 걱정이다.
우리가 진거나 마찬가지
특수부대가먼저갔어면 사상자가 적었지않았는지요?
TV전체화면 확대
그래서 좀 더가면 울겠네 ?
대체 누구 사정을....
공비 사정 ???
작전기간 당시. 추석일도 겹치는 날이여서 양양 터미널서 동서울 터미널로 금강고속 버스로 상경 하는중에
오색약수터에 군막사. 군병력 .실제작전 상황을 실제로 목격 하였습니다.
1명 넘어갔다더니 아니구나
아닌게 아님. 위키백과 한번 보시오. 26명으로 나오는데 ...저 사람들 이상해보이오. 작전참가자들도 아니고
1명 공식 비공식 미상임
전쟁 경험 이 업는 당신의 군대에서 그 정도면 not bad. yall just need some real war experiences, war is a good thing but...
저거 내 군대사진 엄청사용하는구나
연화동 마지막 기무사 대령과 큰 인력 피해가 난 것은 전투 경험이 없는 안일함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공비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수색과 인력 없이 렌턴 켜고 돌아다니니 타겟이 되지.. 병력 지원 받고 수색부터 했다면 여러 인명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이가 없긴 하네요
23:56 에라이.
한국군은 산속에서 주먹밥 먹고 북한군은 강릉 시내에서 국밥 먹고...
용감한 대한민국 육군 공수부대원 존경읗표합니다
때려잡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대한민국
산에 불을 질렀어야 했나
이상하게 기록된 작전들이 많네. 시간도 그렇고 공비 사살 된 작전도 그렇고...
앞으로뒤로도 세금 아깝다
웃긴 거는 말이지. 징병당한 사병들이야 고생 고생한 거지만, 직업군인급들이 말이지, 이 작전이 대단히 성공이고 대단히 잘했다며 자랑한다네, 참.
17:07 머지? 머지? 아무런 전파를 안 하고... 실명 까고 저렇게 말해도 돼? 그게 진짜 사실이면....
저때 기자들이 공비 새끼들 도망치는데
한몫 했지.. 잘사냐 당시 기자 인간들아
지금 기자랍시고 부장 계급달고 있으려나
군필들은 안다. 실탄이 배듭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상황이 좆됐다는건지.
아니지 , 실탄도 실탄이지만 날이 선 대검이 지급되었다? 그럼 그날 너가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일수도 있다는 상황이라는걸…
거북목....
#703특공연대정하욱소령 #단경골작전 #인자마이tv
공비에게 제압당한것도 영창감인데 공비를 추잡하게 사살하다니..공비가 더멋있네
졸다가 총뺐건 이야기 안하죠
군경 너무고생이많앗다 국개를 비롯한 정치인을 총알받이로 내세워 싸우게 하면 정신을 차릴까
위키백과에는 26명이 침투한걸로 나온다. 확인해라
저때 울 장성 외삼촌 합참본부 계시다 총대매고 브리핑하고 옷벗으셨다 ㅠㅠ
다 끝난 시점에서 보면 송이 따러 가는 민간인도, 국군이동 경로 방송하는 언론도, 갈 사람없다고 기무사 장교 보내는 지휘관도, 졸고있다가 공비가 꺠워주는 군인..
개판도 저런 개판이 없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게 더 두렵다. 희생이 큰 거 ? 작전자체가 원래 어려운 작전이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맨날 북한 운운하며 모든 문제를 무마해온 군대가 사회나 병력 운용에 대한 협조나 통제도 안되는건 문제 아닌가.
한국군 무쟈게 깨지고 공비도 놓치고
우크라이나 ㆍ타이완 교훈 ㅡ 대한민국 핵 무장은 생존 입니다 😅😅😅
대간첩작전의 민낮이 다드러난 한국군!!!!
이거 거짓말 마사지 많이 보이네 나 97년 3월군번 23사단 59연대 해안2대대 8중대 출신이고 귀에 못이 박히게 정훈교육 당한 사람이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제대로 알고 사실대로 방송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용이 여러모로 틀린부분이 많네요
갑자기 왜 이 시점에서 도발을 운운?
우리끼리 쏘고 그런거 뉴스로 본거같은데 그런얘기는 없네 ㅋㅋ 주민 죽인것도 있는거 같고
간첩 우수성 홍보물 인가😮😮😮
96년 강릉 안인진리 잠수함침투사건이후로
강릉-동해-삼척라인에 해안경계담당 23보병사단이 창설되었지~ 예하 57연대 58연대 59연대가 각 해안섹터로 책임구역이 있고
확인도 안 하고 발사!
지난일이지만 경계실패!
오늘날은 좋와졌겠지,
저거한마리잡으먼 돈이 얼만 데저거 참 93 나한테 걸리야
말 흐리지말고 정확한 팩트를 얘기해줘야지 누가 어찌된건지 알아듣겠응?
안기부 발표에도 26명으로 나온다. 반박할자료 있음 말하라.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안기부 발표자료도 믿지 않는건가. !!!
그리고 쇼츠에 나오는 공비 숫자도 26명이라한데 저기 앉아 설명하는 사람들 이상하네 위키백과에도 26 명으로 나오는데 이상한 방송이군
조준하고 실탄됴. 없이 작전하는 헬레레 부대
국민들은 북쪽의 도발. 호시탐탐 노리는 데 방심하면 안되는 마음 을가집니다,
우리군들 도 준비도 안돼있고. 안일함과. 태만 한듯. ㅉㅉ
사회자가 말하기를 이광수가 잡히기전에 송이채취하러왔다말한거보고 그때송이가 어딨어요? 이랬는데 좀이따 송이채취하러온사람이 신고했다? 이사람은 누구일까요? 뭐 말이되야 보던말든하지....
공비한테 손들어. 미쳤군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암구호가 정식. 죽이는 것 보다 생포가 더 중요.
이후 kbs? 이 사건을 발생부터 종료까지를 방송으로 내 보냈다 마지막은 광수?씨를 희생된 유족의 산소까지 동행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장면 연출했다 가족들 울음 참아가며 대화 잇지만은 아들은 광수씨를 노려 보았다 사람 사는데 잘못이 있으면사과를 해야하며 용서도 필요하겠지만 그곳에 카메라가 필요할까 생각 들었고 방송국의 횡포 같았다
실전상황에서
매복중에 암구호는 적에게 이쪽을 노출시키는 바보짓 아닌가
나 여기있다
나 죽여라 하는거지
실전경험 없는 군대가
오합지졸 이라는것을
보여준 케이스
지금도 총 제대로
못쏘는 현역 들 많음
적은 악랄 하고 교활하다
동백림 수지김 부림 용공 조작
95년 2월 고교 졸업 ..
같은해 11월 자원 입대..
(사실은 본인 몰래 아버지가 육군에 지원서 넣음) ㅜ ㅠ
19살 189 에 80 킬로..
내 생애 통틀어서 신체적으로 최고로 균형 잡히고 발달됐던 시기..
2군단 직할 702 특공연대에 떡하니 차출됨
20살 되기 딱 한달 전 강릉대침투작전 투입됨..
실탄 240발 , 수류탄 2발 지급 받고 작전 투입 되서..
처음 1~2주는 긴장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배변 못해서 변비 걸리고.. 야외에서 배변 할때도 소총 들고 볼일보고..
해 떨어지면 공비한테 모가지 따일까.. 매복도 FM으로..
그런데 한달쯤 지나니 매복 할때 전투화 끈 풀고 교대로 자게 되더라는.. 훈련 나온거 마냥..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맡은 섹터로 공비들 안온게 운이 좋았지..
근데 실패한 작전이니 어쩌니..
댓글 다는 애들아 너네는 뭐 별수 있었을꺼 같냐?
낮에는 수색 또는 차단선 따라 이동 배치.. 밤에는 매복..
이걸 3개월 내내 밤낮으로 했단다
이제 갓 20살 된 애들이..
이게맞지. 현장에서 직접뛰어보면 이런고충이 안생기기가힘들다. 방구석에서 아가리만터니 살인공비가 뛰댕기니 잠이오나 이딴개소리가 아무렇지않게 튀나오지
한국애들 군사력 바닥이구나..3명한테.....전쟁나면 어쩔테냐?
북한에서 저당시 죽은 북한군에게 영웅칭호 ㆍ
그들 자식들은 국가에서 보살핌
국군 지휘관의 지휘에 문제가 많았군요. 적 발견하면 즉시 사격하거나 수류탄 투척해야지 수화는 무슨 수화? "나 여기있네" 라고 소리치는 것 밖에 안되는데~~
겁나 똑똑하네 천잰걸 쏘고나서 아 우리편이네 뭐 그냥 운이 나빳나보지 ㅋㅋㅋㅋ 제정신이냐 ㅋ
미필인듯. ㅋㅋ 손들어 움지이면 쏜다 화랑
68사단 173연대 내륙2대대 8중대에서 당시 5분대기 출동한 인원중 1명으로 댓글 답니다.
임용한 박사님이 새벽 3시30분 어쩌고 저쩌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자대에서 5분대기 출동한 시간이 새벽 2시쯤이였고 현장에 도착했을시각이 2시반쯤이였습니다.
그날 제가 위병소 초번 근무라 근무후 잠시 눈붙이자 마자 바로 출동 걸린거였는데 우리는 자세한 상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5분대기 출동 차량이 위병소까지 지나 계속 가고 현장에 2시반쯤 도착했을때만 해도 자세한 상황은 몰랐습니다. 도착해보니 차량 거치 서치라이트들로 주변이 대낮처럼 환한 상태였고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수색 투입 들어갔습니다.
173연대 1대대 2대대 3대대 수색중대가 수색작전 투입이 가장 빨리 들어갔을겁니다.
당시 저 작전에 투입되고도 민주당 지지하는것들은 없겠지요.
댓글들줄에 실패한 작전이라니 뭐라느니 입만 동동 산것들도 보이는데 니가 저 작전에 참여 했어봐라 그런 말 나오나
그리고 왜 그런 자료들이 존재 하는지 모르지만 시신 발견된것은 새벽7~8시경에 산에서 총소리가 나서 인근 수색중인 부대들이 올라갔고 그중에 우리 5분대기조도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고 본대와 합류한 시각이 오전 9시쯤에 주변에서 이미 사주경게 하던 우리 본대와 합류하고 특전사와 기무대가 시신 발견 지점으로 투입 확인하고 나올때까지가 오전 11시정도까지입니다.
이후 우리 본대는 산을 내려오고 대략 13시쯤에 인근 민가 근처에서 식사 추진하여 숟가락이 없어 근처 나뭇가지 꺾어 껍질 벗겨내서 젓가락 대용하여 밥을 먹고 국은 마셨지요.
직접 경험한 사람과 육본에 기록된 시간이 많이 틀리네요.
일개 병사가 경험한 단편적인 시각과 종합적 정보가 쌓이는 육본이 당연히 차이가 나지 당연히 내경험이 맞다라고 하는건 너무 대놓고 틀닥 아닌지??읽다보니 어이없어서 댓단다.
@@shp6804 어떤 지능을 갖고 살아야 현장에서 생생하게 작전 참여하여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말보다 현장에 없이 300키로 가까이 떨어져 서류작업 하던 놈의 기록을 더 믿는다고 하는건지?
민주당이 어쨋다는겨..
특전사출신이 대통령한 정당인데도 친북 종북을 믿는겨,
참 어이없다,.
그럼 국짐이 북한에서 귀순한넘을 국회의원 만들어준건 잘한건가..
27사단 77연대 수색중대로 현장에 투입된 1인입니다. 그저 그때 고생한 전우들과 전사한 장병들에게 예우를 갖추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민주당 지지자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국힘당정권이 안보에 더 무능해 보이네요.
난 96군번 수색대대출신인데 민주당 지지하는데 넌 공산당지지자냐?
생각보단 잘싸웠네. 03군번인데 간부들이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얘기하면서 당시 국군선배들 엄청 못싸웠다며 너희들은 또 그러면 안된다면서 엄청 굴렸는데....사기당한 기분이네...당시 아군이 아군 쏜 경우도 많았다는데....헬기에서 내려오다 총 맞고...다 구라였나...
뭔 또 구라야. 당장 유튜브에 당신이 말한 그 검색어로 검색만해도 헬기하강 헤드샷건이나 오발건 다 사실인거 뜨는데 어디 모자라요?
@@shp6804야 싸리나무 작업하던 병사 공비가 죽였는데 탈영으로 가족들 괴롭힌게 국군이다
그당시 뉴스속보나 군대내 상황전파도 헬기에서 레펠로 내려오다 총맞고 전사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헬기에서 내려온 다음에 수색 도중에 전사했다고 하니 좀 당황스럽네요.
그리고, 끝날때쯤 양구쪽 철책선에 구멍이 발견됐다고 야간근무 도중에 상황전파가 된적이 있는데, 나머지 1명은 북으로 갔을수도 있죠.
국군 졸라 못싸운게 사실임
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대한민국 육군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작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고작 24명의 무장공비
그것도 11명은 잠수함 승무원으로 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처형을 당해
고작 13명밖에 안되는 무장공비를 잡기 위해
4만 3천명을 투입했지만
특전사 대원을 포함해 18명이 전사하고
27명이 부상당했으니.......
거기에 우리나라 국군도 진짜 엉망진창이었다고 합니다.
군수지원도 개판이고
투입정보도 언론에 다 노출되고
훈련도 안된 상태에서 그냥 밀어넣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만약
저 상황이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답답한놈아 소규모 특수전 병력 잡는것이
정규전 병력끼리 붙는거 보다 더힘든거다
모르면 그냥 영상만 처봐
니가 빠는 미군도 오인사격 으로 이라크전에서 사망한줄 아니?
일본 뭐? 모의전투에 실탄 지급하고 사격간 아무도 안다친거?
@@추철구 아니요.
일본이 저 상황에 처하면
자위대가 아닌 경찰이 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전경같은 경찰기동대와
우리나라 경찰특공대라고 할 수 있는
SAT가 출동한다는 거지요.
자위대는 절대로 출동이 안됩니다.
출동을 법제화하는데만도 1달 반이 걸리니까요.
거기에 치안출동에 대한 매뉴얼도 없어서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까지 다 하려면
자위대 출동하는데 3달이 걸린다고.......
그런 부분은
영화 신 고질라에서도 잘 묘사를 했는데
진짜 황당한 것은
일본이 진짜 일 처리를 빠릿빠릿하게 하고
관료적 절차 없이
아주 최단시간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로 영화 신 고질라에 나오는 식이라는 겁니다.
기름값 아깝다
결국 북으로 도망감
선거끝나고 해라 불안감 조성하지 말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지만 불안감조성은 더 싫어요
평화가 좋으면 싸워서 이길 ㅁ 유비무환 자세를 가저야지 니 마음이 불안해서 싫다 이말이지 북으로 가면 평화롭게 산다
불안감 조성이라 생각하신다 어쩔 수 없죠 다른 의미로 북조선 주의는 맨날 맨날 해야겠죠
안불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