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인데 인천으로 거쳐를 옮기시고 국군으로 입대하고 백마고지전투에서 다리 잃으시고 ᆢ 처절한 삶을 살으셨다ㆍ 자식인 내가 다 보았고 아버지는 위대하고 웅장하셨다ㆍ소천하신 아버지는 대전현충원에 모셔졌고 아버지의 친구들 한분 한분 함께 그곳에 잠드셨다ㆍ😂
백마! 28연대 83군번입니다. 선배님들이 흘리신 고결한 피, 육십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가슴속에 자랑스런 백마혼을 간직하고 살고 있네요. 늦게나마 이 영상을 보게되면서 다시한번 자랑스런 모 부대의 뿌듯함을 느끼고 갑니다. 후배님, 반가웠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던 후배님의 삶속에 언제나 빛난 승리가 함께하는 복됀 삶이 되시길 진심 바랍니다. 늘 행복 하시길요.
백마고지 전투.. 너무 가슴 아픕니다. 저희 할아버지 고1 때 인민재판을 피해 부모님과 누나를 두고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제주도에서 훈련받고 첫 전투로 투입된게 백마고지 전투였다고 늘 얘기하셨습니다. 거기서 총 2발을 맞고 나오셨는데 그거 덕분에 사셨다고 늘 말씀하셨죠... 이후 부사관으로 월남전도 참전하시고.. 뉴전사에서 꼭 보고싶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어깨 와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고 평생장애를 안고 사신 저희 외숙께서 백마 고지 산증인 이시죠 딸많은 집안에 외아들 어찌될까 귀하게 크시고 그러시다 6.25터지고 징집되서 죽을고생 다하시고 백마에서 총상으로 더이상 불가능하실때 전역을 해 평생을 장애로 ...그래도 93세 되시도록 건강을 유지하시고 국가유공자로
한국전쟁에서 우리 한국군이 어떤 전투를 했는지 그것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야한다 단순히 미군과 연합군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승전이면 승전 패전이면 패전 어떤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다 우리 할아버지들꼐서 묵숨바쳐 싸우신 전투다 물론 승전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분명한것은 당시 한국군은 군대 장비, 훈련등의 부족은 사실이고 인정해야한다 전툴르 통해서 훈련을 통해서 어떻게 바겼느지도 알려여쟈한다
병력의 훈련부족을 이야기 하는데 사실 그보다는 장교단 지휘관들은 지휘능력부족이 제일 큰 원인임.. 6사단 같은 경우는 6.25 초기부터 큰 공을 세웠고 당시 미군축에서도 1사단과 6사단은 그런데로 잘 싸우는 한국사단이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패전할때보면 한국군은 일단 일사분란함이 없고 지휘부도 지휘를 포기하고 병사들은 각개로 탈출함. 그 6사단이 부대 재정비하고 용문산전투의 주역이 되었는데 이 차이는 병사들 차이보다 지휘관들 능력 차이로 보임.
내가 요근래에 든 생각인데 1.4후퇴 이후에 평양 대동강 상륙작전같은건 왜 없었을까~ 정치적인 이유나 그런 여건이 되기 어려워 인천상륙작전같은 작전을 시도해보지 못한것이 아쉬워지네요~ 평양대동강이나 신의주상륙같은 작전이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다음주 2부 기다려봅니다~
인천상륙작전때는 북한군 병력 대부분이 낙동강 전선에 몰려 있어서 인천상륙후 서울탈환 가능성이 높았지만 1.4후퇴때는 중공군 병력이 많아서 후방이 비어 있지 않았죠. 이미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는걸 경함한 공산군이 똑같은 실수를 할리가 없죠. 그때 상륙강행했다간 오히려 상륙군이 괴멸당했을 겁니다. 노르망디나 인천처럼 상륙성공사례만 보고 상륙작전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질수 있지만 실제로 상륙작전 엄청난 준비를 필요로 하고 그러면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작전입니다. 하다못해 해안가에 기뢰를 뿌려놓으면 상륙함대가 접근하기 힘듭니다. 1.4후퇴이후 UN군은 원산항을 포위해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원산의 시가지와 산업시설을 초토화하고 소련방면에서 오는 보급선을 위협했죠. 거기에 맞서 공산군은 기뢰를 부설하고 해안포로 저항했습니다. 원산시는 휴전협정 빌효일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까지 포격을 받아 사실상 시가지 전채가 초토화되었죠.
슬프지만 그건 한국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게 들여다 본다면 충격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김일성의 부탁과 스탈린의 계략으로 6.25라는 전쟁이 벌어졌고, 스탈린은 그로인해 자신은 그 어떠한 피해를 입지도 않고, 걸치적 거리는 중공과 최대의 적인 미국의 힘을 동시에 빼놓는 성과를 얻게 됐죠. UN 안보리에서 쏘련이 거부권을 행사를 했다면 UN은 참전을 할 수 없었지만 쏘련의 목적은 미국과 유럽의 힘을 빼기위한 것 이었기에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없이 불참을 해버렸죠. 그 결과 한반도에서 UN군과 중공만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됐습니다. 중공의 개입을 목격한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고 한반도에 그 어떠한 방위 계획도 없이 철수하려고 계획 했습니다. 미국내 반대세력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휴전 직전인 53년 까지도 미국은 에버레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이승만을 암살하고 한반도에서 철수 하려고 했죠. 당시 미상원원목과 국무부 장관등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많은 미관료들이 이승만의 암살을 막았죠. 이게 당시 미국이 처했던 상황과 그들의 입장입니다. 유럽을 위협하는 쏘련을 두고 2군이라 생각했던 중공에 자신의 전력을 소모시킬 수 없었던것 입니다. 지도부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규모 상륙작전은 말이 안되죠.. 확고한 한미동맹을 생각 하셨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을 저랬습니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 5,180만명 가운데 일제강점기를 겪은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분들 중 살아계신 분 들은 전체인구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전체 국민 95% 이상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세대임에도 반일감정이 높은 까닭은 왜일까요? 가장 큰 요인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망국은 일본 제국주의 때문이 아니라, 조선 양반계급의 세도정치와 파벌정치 / 백성의 과반을 넘는 노비 제도 / 무관을 무시하고 중국을 사대 하는 성리학 등등 내부적 요인으로 이미 망국상태였음을 부인할 수 없음 에도 국민들 대다수가 내부의 성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적요인중 하나인 일제를 감정적으로만 원망하는 것이죠. 1910년 8월 한일합병이 되면서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기 까지 3천만명에 가까운 인구중 몇%가 광복을 원하며 투쟁했을까요? 일제강점기간동안 전체인구중 광복을 위해 투쟁하거나 지원한 인구는 0.5% 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광복군 활동을 위한 군자금 조달이 어려워 대부분 중국, 소련 등 주변국의 지원과 도움으로 광복활동을 유지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국민들 대다수가 군주제 에서 벗어나 일제강점기간 산업화를 맞이하면서 독립보다 먹고 살기가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 미군 관할지역인 후방 차단이 원인이었고. 2.지휘 부대마다 완전히 삭제키를 가진 유재흥 군단장이 제일 먼저 비행기타고 도망갔고. 3. 사단장 및 연대장 각개지휘로 스스로 와해됨. 4. 이 참패로 미군>육본>각 예하부대 하달에서 미군 >한국군 각예하부대로. 5.그 당시 장군들이 위관급 또는 소령급 들이 불과 1-2년에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 잡은 사람들이고 그나마도 독립군 출신은 씨가 말랐으며 오히려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 요즘 논란이된 일본군. 순사 출신임. 6. 유재흥이 안 뒤지고 그뒤로 다른 꽂보직을 함. 7. 그 당시 사병이나 장교 장군들 다 신병임.
현리전투는 3사단과 9사단만이 고전한것이 아니라 7사단도 대패했고 3군단 차원에서 중공군의 천삽분할 위할섬격 전술에 휘말려 보급선이 차단되면서 군단 전체가 붕괴한 대패를 당한 전투인데 너무 축소해서 얘기하시는군요. 그리고 50% 국군이 패퇴한게 아니라 60%넘게 손실되었습니다. 인해전술은 잘 말씀하셨군요
이런방송을 보고도 미국을 적대하는 인간들은 이 나라를 떠나라! 미국에 역사적으로도 값을 수 없는 빚을 졓다는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고 든든한 우방으로 튼튼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6.25당시 미국이 모른척 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태어나지도 못했다. 아메리가 감사합니다.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너무 변명으로만 일관 하는 내용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져서 창피 하다고 해도 사실을 객관으로 설명해 주고 반성하는 시간이 되야 하는데 전부 남의 탓 이건 아니다 변명으로 일관 하네요,,,, 이런 분들이 지휘를 했기에 전선이 무너지고 전투에서 패퇴하니,,,, 미군이 한국군을 불신한 것 입니다.
해방이후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미군은 우리에게 군사장비를 제대로 줬고 훈련에대한 조언을 해줬나요? 또한 1.4후퇴때 지휘능력이 뛰어난 미군이 왜 중공군의 개입을 무시했나요? 미리 준비했더라면 후퇴하면서 중공군 후방에서 물자보급을 못하도록 결사대를 보냈다면 후퇴를 좀 더 수월하게 할 수가 있었는데....지들 능력이 뛰어나고 생각하지만 착각....
미군은 2차대전을 겪은 베테랑 우리 선조들은 농사짓고 생활하던 순수한 민간인 화력도 약하고 하지만 점점 강ㅅ내지고 전투능력 빠르게 습득하고 특히 전우가 죽으면 눈 뒤집히는 것.우리는 친구고 형이고 동생인데 중공군한테 죽임당하면 죽기살기로 복수해야 하는 것.순국선열께 머리숙여 존경과 감사를.고이 잠드소서
백마고지와 6.25 전쟁에서 헌신하신 애국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육군 수도사단 하사관으로 육이오 전쟁 참여하신 친할아버지 이제는 이세상에
없으시지만 정말감사합니다 다커서
전쟁이라는 것을 간접으로 경험해봐도
무서운데 모든 육이오 참전용사분들
감사합니다 적들을 무찔러주셔서
백마! 9사단 장병 출신으로써 선배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훈련없는 승리는 없다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아버지도 백마부대 출신이십니다. 비록 고엽제 후유증으로 일년간 투병하시다가 작년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저의 마음속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백마부대는 가장 안전한 지역에서 보초서다 와서 고엽제 피해가 있을 리가 없음.
고엽제 피해는 고엽제를 뿌린 후 작전 투입된 미군, 호주군에게나 인정됨.
전투 투입된 적도 없이 해안에서 보초서다 온 파월군이 고엽제 피해가 있을 리가 없음.
ㅋ
역사를 중공 교과서로 쳐배웠나 ㅋㅋㅋ
우리나라 사단들이 젤 치열한 곳에 투입 됐는데
@@WHCAV-u5p
백마고지가 아니라 적마고지네요. 피로 직신 적마. 혈마고지. 아 슬프다. 산화된 한국군 영혼들. 🎉🎉🎉
그래서 백마고지을 아이스크림 고지라고도 불러요!!
피가 흘러내리는게 녹는 아이스크림 같다고 해서~~
죽어간 젊은 영혼에게 경의를 표함
고지전이 이젠 참호전이 되어
생명이 사라지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하신 영웅들의 명복을 빕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웅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영상 시청합니다 YTN 따봉 👍
할아버지가 백마고지 전투에서 어깨에 총상으로 평생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셔서 잊혀지지를 않음.. 작은아버지 월남전 참전했고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
애국자 직안이십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울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인데 인천으로 거쳐를 옮기시고 국군으로 입대하고 백마고지전투에서 다리 잃으시고 ᆢ 처절한 삶을 살으셨다ㆍ 자식인 내가 다 보았고 아버지는 위대하고 웅장하셨다ㆍ소천하신 아버지는 대전현충원에 모셔졌고 아버지의 친구들 한분 한분 함께 그곳에 잠드셨다ㆍ😂
당신의 부친을 온 국민이 존경합니다.
곡중교... 하늘이 대한민국을 위해 보낸 천사와 함께 귀순한 것만 같은 은인이었구나... 이 사람이 없었다면 백마고지 전투에서의 아군 사상자가 얼마나 늘었을지 가늠이 안된다...
백마! 96군번 출신입니다. 선배님들 흘리신 고귀한 피 항상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마!
28연대 83군번입니다.
선배님들이 흘리신 고결한 피,
육십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가슴속에
자랑스런 백마혼을 간직하고
살고 있네요.
늦게나마 이 영상을 보게되면서 다시한번 자랑스런
모 부대의 뿌듯함을 느끼고 갑니다.
후배님,
반가웠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던
후배님의 삶속에 언제나 빛난
승리가 함께하는 복됀 삶이
되시길 진심 바랍니다.
늘 행복 하시길요.
두분 모두 아니 백마부대 한국군 모두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jsc5348
진심 감사 드립니다.
늘 건강, 행복하시길요^^
나라를 지키고 싸운 그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은 이런분들을 최대한 예우해라
미국이 왜 최강인줄 아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은 인종 상관없이 존경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도 존경 받는다
무슨소리 예로 부터 군인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는 멸망의 길로 갔어요
백마고지 전투.. 너무 가슴 아픕니다. 저희 할아버지 고1 때 인민재판을 피해 부모님과 누나를 두고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제주도에서 훈련받고 첫 전투로 투입된게 백마고지 전투였다고 늘 얘기하셨습니다. 거기서 총 2발을 맞고 나오셨는데 그거 덕분에 사셨다고 늘 말씀하셨죠... 이후 부사관으로 월남전도 참전하시고.. 뉴전사에서 꼭 보고싶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할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와 존경스럽네요.. 애국자 그자체다
참전용사 할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할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여기 있을 수 있게 해주신 분입니다.
고지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죽었나요 이런 소모적이고 미련한 작전은 다신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역사인 한국전쟁에 대해 승전이든 패전이든 많은 내용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프간 정규군이 미군에게 훈련받는거 보면 한숨나오던데.. 한국군은 잘 따라왔나봄. 싸울의지가 있는게 중요한듯
뺏고 뺏기는 처절한 고지전에 선배님들의 결사투혼에 감사하고 안타깝습니다
어깨 와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고 평생장애를 안고 사신 저희 외숙께서 백마 고지 산증인 이시죠 딸많은 집안에 외아들 어찌될까 귀하게 크시고 그러시다 6.25터지고 징집되서 죽을고생 다하시고 백마에서 총상으로 더이상 불가능하실때 전역을 해 평생을 장애로 ...그래도 93세 되시도록 건강을 유지하시고 국가유공자로
감사합니다
백마고지가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매우 큽니다. 북쪽으로는 효성산, 고암산을 시작으로 높고 험한 마식령산맥, 아호비령산맥이 계속 이어지는데 남쪽에는 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어 여기를 먹히면 철원평야 중부의 방어가 불가능해 다 버리고 고대산-금학산까지 후퇴해야 했죠
즐감하겠습니다
저의 외조부께서도 백마고지에 참전을 하셨었는데 당시에 목이 너무 말라 물을 찾는데 물이 없어 누군가의 피를 마셔가면서 싸우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종전 후 몸안에 박혀있던 포탄파편이 몸밖으로 조금씩 밀려나오는데 그 파편을 손수 펜치로 찝어 빼내셨다고 하시더군요.
알찬방송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군의 훈련교관들도 엄청 유능한가보네,, 정말 현대 한국군대 체계의 뿌리는
미군형님들이 다 기초를 다져줫다 ㅠ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싫어합니다.
중공군이 미군의 포화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땅굴이었다고한다.
백마고지전투 영화 고지전이 생각이 나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어르신들의위국헌신
영원히 기억하고
계승토록하겠읍니다
한국전쟁에서 우리 한국군이 어떤 전투를 했는지 그것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야한다 단순히 미군과 연합군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승전이면 승전 패전이면 패전 어떤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다 우리 할아버지들꼐서 묵숨바쳐 싸우신 전투다 물론 승전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분명한것은 당시 한국군은 군대 장비, 훈련등의 부족은 사실이고 인정해야한다 전툴르 통해서 훈련을 통해서 어떻게 바겼느지도 알려여쟈한다
전쟁초기에 잘막는 사단도 있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잘 막아냈는데..중공군에 공세에 왜그리 무력했는지 싶었는데.. 이러한 일이 있었구나..
방종관 장군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밥먹으면서 보다가 눈물 찼습니다..
총대신 지게로 지원해주신 노무단 여러분들 끼지 정말 고맙습니다..
월남전을 배경으로한 영웅들의 눈물 영화는 언제쯤 방영돼나요
고멜! 여기서 보니 좋네유
계곡 가야지~
응원한다, 한빈아👍ㅋㅋㅋ
고지라 해서 겁나 높은 지역인지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동네 뒷동산 느낌
내가 현역때 백마고지 앞 대마리 마을뒷산이 나의 참호인데..149알비에도 근무했고???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을 기억하라 미국이 타국군인에께 수여한 유일한십자훈장을 받은인물이다
왜? 지금이 최고? 최고!
병력의 훈련부족을 이야기 하는데 사실 그보다는 장교단 지휘관들은 지휘능력부족이 제일 큰 원인임.. 6사단 같은 경우는 6.25 초기부터 큰 공을 세웠고 당시 미군축에서도 1사단과 6사단은 그런데로 잘 싸우는 한국사단이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패전할때보면 한국군은 일단 일사분란함이 없고 지휘부도 지휘를 포기하고 병사들은 각개로 탈출함. 그 6사단이 부대 재정비하고 용문산전투의 주역이 되었는데 이 차이는 병사들 차이보다 지휘관들 능력 차이로 보임.
이것이 갈락티코인가 그 기자님도 합류한다면 두려울게 없다
9사 96군번 입니다 ㅜㅜㅜㅡ 우리부대는 힘든부대였죠....
자료화면 한 컷도 고증하고 신중하게 올리길 바랍니다
6분35초 무렵 화면에 나타나는 폭격기는 미군의 것이 아니라 추축군이 시용한던 폭격기로 보입니다.
첫번째 마크는 왜 하필이면 미쯔비씨 마크일까요?
양심적으로 평가하는 박사님
역대 최악의 전쟁!!ㅠㅠ
구사단요!😊
저 투항하신 분은 어케 됐을꼬?
내가 요근래에 든 생각인데 1.4후퇴 이후에 평양 대동강 상륙작전같은건 왜 없었을까~
정치적인 이유나 그런 여건이 되기 어려워 인천상륙작전같은 작전을 시도해보지 못한것이 아쉬워지네요~
평양대동강이나 신의주상륙같은 작전이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다음주 2부 기다려봅니다~
인천상륙작전때는 북한군 병력 대부분이 낙동강 전선에 몰려 있어서 인천상륙후 서울탈환 가능성이 높았지만 1.4후퇴때는 중공군 병력이 많아서 후방이 비어 있지 않았죠. 이미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는걸 경함한 공산군이 똑같은 실수를 할리가 없죠. 그때 상륙강행했다간 오히려 상륙군이 괴멸당했을 겁니다.
노르망디나 인천처럼 상륙성공사례만 보고 상륙작전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질수 있지만 실제로 상륙작전 엄청난 준비를 필요로 하고 그러면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작전입니다. 하다못해 해안가에 기뢰를 뿌려놓으면 상륙함대가 접근하기 힘듭니다.
1.4후퇴이후 UN군은 원산항을 포위해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원산의 시가지와 산업시설을 초토화하고 소련방면에서 오는 보급선을 위협했죠. 거기에 맞서 공산군은 기뢰를 부설하고 해안포로 저항했습니다. 원산시는 휴전협정 빌효일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까지 포격을 받아 사실상 시가지 전채가 초토화되었죠.
슬프지만 그건 한국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게 들여다 본다면 충격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김일성의 부탁과 스탈린의 계략으로 6.25라는 전쟁이 벌어졌고, 스탈린은 그로인해 자신은 그 어떠한 피해를 입지도 않고, 걸치적 거리는 중공과 최대의 적인 미국의 힘을 동시에 빼놓는 성과를 얻게 됐죠. UN 안보리에서 쏘련이 거부권을 행사를 했다면 UN은 참전을 할 수 없었지만 쏘련의 목적은 미국과 유럽의 힘을 빼기위한 것 이었기에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없이 불참을 해버렸죠. 그 결과 한반도에서 UN군과 중공만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됐습니다. 중공의 개입을 목격한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고 한반도에 그 어떠한 방위 계획도 없이 철수하려고 계획 했습니다. 미국내 반대세력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휴전 직전인 53년 까지도 미국은 에버레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이승만을 암살하고 한반도에서 철수 하려고 했죠. 당시 미상원원목과 국무부 장관등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많은 미관료들이 이승만의 암살을 막았죠. 이게 당시 미국이 처했던 상황과 그들의 입장입니다. 유럽을 위협하는 쏘련을 두고 2군이라 생각했던 중공에 자신의 전력을 소모시킬 수 없었던것 입니다. 지도부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규모 상륙작전은 말이 안되죠.. 확고한 한미동맹을 생각 하셨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을 저랬습니다.
잊혀진 전쟁이라는 근본없는 표현 이제 그만 쓰고 우리부터 더 열심히 파해치고 공부해야할 역사라고 봅니다.
윤아나 오랜만이네요.
최고 지요?
3사단은 줄행랑만 쳤는데 무슨 의지인가요?
그대들 있기에 이 나라 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
서비스라는 말 어감이 안좋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그 당시에 복무에 임하신 분들
그리고 그 이상의 헌신과 희생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군이 6.25때 훈련시키고...베트남전 당시 맹호부대가 1965년 참전하고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참전했으니...미군 입장에서는 교육훈련과 지원이 절대 헛된 투자가 아니었음...
최 전선에 백마 고지는 없습니다..
왜 용문산 전투는 빼먹나요. 국군이 기동전에서 중공군 박살낸건 숨길일이 아닌데.
왜 우리는 일본만보면 거품을 물면서..
훨씬더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북한에 대해서는
사과 요구하는 사람이 하나도없을까?
엄청난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 5,180만명
가운데 일제강점기를 겪은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분들 중 살아계신 분 들은 전체인구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전체 국민 95% 이상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 세대임에도 반일감정이
높은 까닭은 왜일까요?
가장 큰 요인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망국은 일본 제국주의 때문이
아니라, 조선 양반계급의 세도정치와
파벌정치 / 백성의 과반을 넘는 노비
제도 / 무관을 무시하고 중국을 사대
하는 성리학 등등 내부적 요인으로
이미 망국상태였음을 부인할 수 없음
에도 국민들 대다수가 내부의 성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적요인중 하나인
일제를 감정적으로만 원망하는 것이죠.
1910년 8월 한일합병이 되면서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기 까지 3천만명에
가까운 인구중 몇%가 광복을 원하며
투쟁했을까요?
일제강점기간동안 전체인구중 광복을
위해 투쟁하거나 지원한 인구는 0.5%
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광복군 활동을 위한 군자금
조달이 어려워 대부분 중국, 소련 등
주변국의 지원과 도움으로 광복활동을
유지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국민들 대다수가 군주제
에서 벗어나 일제강점기간 산업화를
맞이하면서 독립보다 먹고 살기가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사단요!
잠을 못자서 죽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졸음은 총알이 날아와도 참기 어렵다
아하! 그렇구나
지금은 5사단 관할 구역
5사단이 아니라 6사단 관할구역 입니다.
5사단 맞습니다.쌍팔년도 180 gp출신입니다
마지막것은 알겠는데 첫번째 것은 무슨 의미이죠?
1. 미군 관할지역인 후방 차단이 원인이었고.
2.지휘 부대마다 완전히 삭제키를 가진 유재흥 군단장이 제일 먼저 비행기타고 도망갔고.
3. 사단장 및 연대장 각개지휘로 스스로 와해됨.
4. 이 참패로 미군>육본>각 예하부대 하달에서 미군 >한국군 각예하부대로.
5.그 당시 장군들이 위관급 또는 소령급 들이 불과 1-2년에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 잡은 사람들이고 그나마도 독립군 출신은 씨가 말랐으며 오히려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이 요즘 논란이된 일본군. 순사 출신임.
6. 유재흥이 안 뒤지고 그뒤로 다른 꽂보직을 함.
7. 그 당시 사병이나 장교 장군들 다 신병임.
같은,민족 침약한 김일성 북한이,땅이 한국보다,많아 그래서,승리라고 말하는거야 ❤😢😊
조선족 해방군 3개사단 인천등륙작전 모두희생됐어요.
내가 나온 8사단 ~~
❤❤❤❤
(내용 중) 지평리 전투 이후 (중공군이) 미군의 전투력을 인식해서 한국군 쪽을 집중 공격했다고 하시는데 미군, 한국군 작전 지역을 중공군이 쉽게 알 수 있었나요???
국기를 걸어놓고 싸움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6.25에 참전한 중공군 상당수가 조선족과 만주족들이었음.
그때,미국이 핵을안쓴다는 정보가 중공군에 흘렀기 때문에 중공군이 6.25전쟁에 개입되었지요!맥아드장군의 전의대로 했다면.대한민국은 그때 통일되어 지금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을 겁니다!
윤지연씨 많이 달라졌네요.
싸울 의지가 있었으니 미국이 도와줄 생각을 한거지 그것도 없었으면 아프간 꼴 나는거였죠. 그나저나 왜 조선족들이 많이 보이지?
국공내전으로 단련된 중공군에 비해 훈련과 지휘력이 부족한 게 큰 원인이 아닐까?
현리전투는 3사단과 9사단만이 고전한것이 아니라 7사단도 대패했고 3군단 차원에서 중공군의 천삽분할 위할섬격 전술에 휘말려 보급선이 차단되면서 군단 전체가 붕괴한 대패를 당한 전투인데 너무 축소해서 얘기하시는군요.
그리고 50% 국군이 패퇴한게 아니라 60%넘게 손실되었습니다.
인해전술은 잘 말씀하셨군요
천삽분할 위할섬격은 대체 어디 나오는 전술.
보급선 차단돼서 군단이 붕괴했고 3군단 해체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는데 바라는 점이 뭔지 ?
우나라가 쵝고😢
5사단85넌 백마고지 179근무 ㆍ아옛날이여. ㆍ그립다
출산율 0.5 되면 백마고 나발이고 없어질 듯 ㅋㅋ
처들어오는 적을 조준해서 총을 쏴야 되는데 머리는 땅에 처박고 사격을 하니 중공군이 죽겠나 공중에 대고 총을 쏘는 격이니
이런 상황을 현재 정치하는 인간들이 보고 느껴야 하는데ㅡ
미쓰비시. 왜 여깄노?
근데 이 당시 북한군은 어디 있었던건지? 다 중공군 이야기 뿐이네요? 다 죽었었나?😂
상대 군 상세한 소개는 없고 그저 뭉뚱그려서 중공군 이라네요 아마 지금도 잘모르나 보네요.
이런방송을 보고도 미국을 적대하는 인간들은 이 나라를 떠나라!
미국에 역사적으로도 값을 수 없는 빚을 졓다는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고 든든한 우방으로 튼튼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6.25당시 미국이 모른척 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태어나지도 못했다.
아메리가 감사합니다.
나 군대 있을 때 30연대 1대대였는데 지도에서 보니깐 백마고지 중앙이네.. 60년 먼저 태어났으면 X될뻔 ㅋㅋㅋ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너무 변명으로만 일관 하는 내용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져서 창피 하다고 해도 사실을 객관으로 설명해 주고 반성하는 시간이 되야 하는데 전부 남의 탓 이건 아니다 변명으로 일관 하네요,,,, 이런 분들이 지휘를 했기에 전선이 무너지고 전투에서 패퇴하니,,,, 미군이 한국군을 불신한 것 입니다.
해방이후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미군은 우리에게
군사장비를 제대로 줬고
훈련에대한 조언을 해줬나요?
또한 1.4후퇴때
지휘능력이 뛰어난 미군이
왜 중공군의 개입을 무시했나요? 미리 준비했더라면 후퇴하면서
중공군 후방에서 물자보급을 못하도록 결사대를 보냈다면
후퇴를 좀 더 수월하게 할 수가 있었는데....지들 능력이 뛰어나고 생각하지만 착각....
아직 중공은 불법침략에 사과하지 않고 있는데, 중공에 굴종하는 민주당의 정체는?
미국은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에 사죄했는가?
이렇게 내부분열 책동이 국력에 가장 해악이 되는데~~~
6,25 ㆍ이승만 과 똘만이들의 무능함을 적실히 보여주는 훈련이 안된국군
정권이 바뀌니 이런 좋은 방송도 생기는군요.
쌉재앙 시절에 잘 방송하던 토전사 폐지했었지요..다시 봐도 대한민국에 재앙
근데지금 나라 꼬라지가ㅋㅋ
⁰
골수 일본인 유재흥 군단장 얘기 안해주네 ㅋ
언제나 기득권층을위해 천민들은 고기방패로 갈려나감 본인이 하층민인데 애국심소리하는 애들보면 참 생각없이 산다는게 느껴짐
굥씨는 한방에 무너트릴 비책부터 찾으면 좋겠다.
중공.북괴라면 사죽을 못쓰는 좌명씨부터 무너뜨릴 비책을 찾는게 먼저 아니겄쏘?
예비고사가 아니라 모의고사가 더 의미에 가까울 것 같은데..
이런말 하기 쪼금 그렇지만.. 박사님 머리 크기가 ㄷㄷㄷㄷ
미군은 2차대전을 겪은 베테랑 우리 선조들은 농사짓고 생활하던 순수한 민간인 화력도 약하고 하지만 점점 강ㅅ내지고 전투능력 빠르게 습득하고 특히 전우가 죽으면 눈 뒤집히는 것.우리는 친구고 형이고 동생인데 중공군한테 죽임당하면 죽기살기로 복수해야 하는 것.순국선열께 머리숙여 존경과 감사를.고이 잠드소서
400백고지가 낮아졌어요
포격으로
이 때 미군은 2차대전의 베테랑 중공군은 국공내전을 거친 베테랑 한국 군만 생초보 하지만 전투민족 한국은 신속하게 습득 적응
백골은 와수에남고
백마는 파주로왔네
욤운산전투 6사단의 분전이 전환점이다 밴플리트 장군의 교뮥훈련이 큰 힘이 됐고 ~~
이유가 어떻든 피한방울 안 섞인 모르는 나라 와서 도와준게 미국임. 요즘 자꾸 국민들이 미국상대로 시비걸고 중국에는 사대함 미친거지 실리외교도 어디가 주인지 놓고 득실을 따져야지
그래서 중국이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