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우리 아부지가 외출하다 돌아오시는 고개에서 굴러 죽었음 좋겠다고 생각 한 적 있다. 엄마하고 싸움을 많이 하셔서 공포,불안이 일상이던 어린시절.... 커서 보니 자식 여섯 대학 보내느라 두분 뼛골 빠지게 일하셔서 그런거드라.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던 부모님이 쉬운 돈은 벌지 못하셨고. 다행히 두분 괜찮은 두뇌와 성실함을 꼭 닮아 자식들은 모두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생 많이 하신 엄마는 돌아가셔 벌써 열번 째 제사... 팔순 아버지에게 들를 때마다 밉기도 하고 노름 한번, 딸들한테 욕한번 안하고 융통성없이 성실하게 키워주신 아버지가 많이 고맙기도 하다.
저두 4남 2녀남.5번째 차녀로 아버지와의 케미가 대단했었죠 사랑이 엄청 많으시고 자애로우신 아버지였지만 다른 자식들은 아버지를 어려워 했지만 저만 유일하게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냈죠 스킨쉽도 어릴때부터 많이해서 스스럼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에 전화하면 제가 항상 '아버지 사랑해' 라고 하면 해맑게 웃으시던 울아버지 아직도 아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요
다시 태어난다면 박목월 시인님 딸로 태어나고 싶다. 우리 아빠는 늘 자기말만했고 엄마와 두 딸을 손, 발, 회초리, 손에 잡히는 모든게 무기였을 정도로 때렸고, 이기적이었으며 곧80을 바라보는 지금 이순간에도 내 딸이 뭐가 필요한지 뭘할때 행복한지.. 가장 힘들때가 언제였는지 물어본적에 단한번도 없었다. 늘 자기 편이 없다며 외롭다 말하고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달고 사는 인생이며 자기 병간호해주는 와이프에게 고맙다는 말은 커녕 자기 죽을날만 기다리는 여자라고 말한다.. 그래.. 난 내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 바득바득 자기는 더 살아야 한다고 지금 죽는게 억울하다 말하는것 조차 꼴도보시 싫은..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그 디엔에이를 내가 물려 받았다는것 조차 소름끼치게 싫다 단 한순간이라도 따뜻한 아빠의 미소를 머금고 사랑받으면.좋겠다.. 그럴일은 내 일생엔 없겠지만
이경제원장님 제 또래이신거 같은데, 브랜드운동화는 만원대 아니었는데요.ㅎ 집에서 사주셨는데 두번이나 잃어버려서 가슴 아프게 기억하거든요. 저는 십만원대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브랜드청바지랑 혼동하는지도.ㅋ 그때는 학교신발장에 두면 잃어버리고 집안 현관에서도 훔쳐갔던거 같아요. 그 만큼 좀도둑도 많은거겠지만 문도 허술히 하고 살 인심이었나싶네요~
한국 목회자중에 재산이 최고 인것 아십니까? 전라도 대전 부동산이어마무시합니다 즉 양복입은 무당 장경동 목사 그묻ㅇ 말씀에 홀아당 발린 교인들 어리벙벙한 순진한 사람들 그러나 정경동 목사 무당 존경하고 싶은 마음 0% 또 정치랍시고 좌파 딸따리가다 다시 전광훈 목사에게 합류 존경할 가지 없ㅎ습니다
나는 어려서 우리 아부지가 외출하다 돌아오시는 고개에서 굴러 죽었음 좋겠다고 생각 한 적 있다.
엄마하고 싸움을 많이 하셔서 공포,불안이 일상이던 어린시절....
커서 보니 자식 여섯 대학 보내느라 두분 뼛골 빠지게 일하셔서 그런거드라.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던 부모님이 쉬운 돈은 벌지 못하셨고. 다행히 두분 괜찮은 두뇌와 성실함을 꼭 닮아 자식들은 모두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생 많이 하신 엄마는 돌아가셔 벌써 열번 째 제사... 팔순 아버지에게 들를 때마다 밉기도 하고 노름 한번, 딸들한테 욕한번 안하고 융통성없이 성실하게 키워주신 아버지가 많이 고맙기도 하다.
전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했는데 박목월 아버님 말씀 하시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이 나네요~ 옛 부모님들특히 어머니들은 자식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이들 하셨지요~옛 어르신들 존경합니다.
😡ㅈㅂㅂㅈㅂㅈ
중북부지방ㅂㅈㅈ
저두 4남 2녀남.5번째 차녀로 아버지와의 케미가 대단했었죠
사랑이 엄청 많으시고 자애로우신 아버지였지만 다른 자식들은 아버지를 어려워
했지만 저만 유일하게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냈죠 스킨쉽도 어릴때부터 많이해서 스스럼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에 전화하면 제가 항상 '아버지 사랑해'
라고 하면 해맑게 웃으시던 울아버지 아직도 아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요
우리가 박목월 시인님을 기억하는 것이 이렇게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 정말, 고개숙여 감사합니다.
박목월 시인님을 원효로 친구집에 갔다가 주변에서 뵌적이 있었죠
반백의 스포츠 머리에다 흰 모시적삼 한복을 깨끗하게 입으셨었는데
풍모가 참 멋지셨었죠
오랜 세월이 흘렀음예도 뚜렷한 잔상이
떠오르네요
박동규 교수님의 아버지 관련된 일화가
마치 소설같네요^^
표현도 역시 박목월 시인 아드님답습니다.
서정적인 간결한 단편소설의 일부분 보는 듯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여러분들의 부모님과의 추억을 들으며,, 저도 어린 시절이 생생해집니다. 어느새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삶의 소중한 시간들에 게을렀던 '나'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네요. 함께 흐믓해지는 시간입니다. 감사 합니다.
박 동규 교수님 말씀 들을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네요😂.
와 옛날에 거의 그랬지 부모 학력 하물며 자동차 전화 티브이 등등 별별거 조사 다했지 ㅠ
그래요....
멋진 부모님에는..
멋진 자녀분들이 .......
박 목월 시인님
멋지시다~...
아ㅠㅠㅠㅠ잔치국수 왤케 감동이냐 😅😅
박목월 시인과
박 동규교수 부자사이의 잔치국수 사연에 저 또한 울컥 했음요!
그 큰 사랑과 추억이 잔치국수에 투영되어 두고두고 생각나실듯요.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중 한 분인 박목월시인님의 아드님 박동규교수님
좀 자주 뵀으면 하네요....^^
미투입니다
어쩌다본 예전동치미 프로그램이네ㅡ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혼자 팔장끼고 다리꼰 사람은
양재진 밖에 없네ㅡ.
바로옆에서 노 교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데도...
나도 하나 기억나네~
초등학교때 그런 조사 기록지에 카메라 유무도 체크했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수학여행가는 덕선이에게 주기 싫은 카메라를 줬다가 잃어버려서 벌벌...떨던 장면이 생각나네ㅋㅋ
어릴때 유독 잔병치레를 많이 한던 8남매 막둥이로 태어나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탓에...아빠를 닮은 남편을 만나 먼 타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빠 ,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우리 꼭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아니~여기 패널로 탈렌트 이수나씨가 보이네요~오래전에 찍었던 프로 갔군요~지금 이수나님은 병환으로 무척 고생하고 있다는데....부디 쾌차하세요....
어릴적에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오래 살아 계셨으면 이수나씨 법조인 됐을듯.
고려대법대 출신이 딴따라광대로 풀려서..... 😮💨
박목월 시인 완전 낭만파 아버님 이셨네..😊
다시 태어난다면 박목월 시인님 딸로 태어나고 싶다. 우리 아빠는 늘 자기말만했고 엄마와 두 딸을 손, 발, 회초리, 손에 잡히는 모든게 무기였을 정도로 때렸고, 이기적이었으며 곧80을 바라보는 지금 이순간에도 내 딸이 뭐가 필요한지 뭘할때 행복한지.. 가장 힘들때가 언제였는지 물어본적에 단한번도 없었다.
늘 자기 편이 없다며 외롭다 말하고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달고 사는 인생이며 자기 병간호해주는 와이프에게 고맙다는 말은 커녕
자기 죽을날만 기다리는 여자라고 말한다..
그래.. 난 내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
바득바득 자기는 더 살아야 한다고
지금 죽는게 억울하다 말하는것 조차 꼴도보시 싫은..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그 디엔에이를 내가 물려 받았다는것 조차
소름끼치게 싫다
단 한순간이라도 따뜻한 아빠의 미소를 머금고 사랑받으면.좋겠다..
그럴일은 내 일생엔 없겠지만
나도,,,아비를 오랜동안 지금껏 원망하고 미워하지만,,,우리도 아비가 언제힘들었는지 외로웠는지 뭘포기하고살았는지 알려하지않았고묻지도않았던듯,,,부모의삶이란 무거운 것,,,아비들도 힘들었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잊고 살아감
좋아요
목사님 고맙습니다 깨달음 주셔서 진심
직업만없으면다행.
노름,여자 폭력.
다행히 딸들은 예뻐함.
그거하나.
그래서 돈벌어서 아부지,옷도사주고 용돈도 드렸다
이경제원장님 제 또래이신거 같은데, 브랜드운동화는 만원대 아니었는데요.ㅎ 집에서 사주셨는데 두번이나 잃어버려서 가슴 아프게 기억하거든요. 저는 십만원대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브랜드청바지랑 혼동하는지도.ㅋ 그때는 학교신발장에 두면 잃어버리고 집안 현관에서도 훔쳐갔던거 같아요. 그 만큼 좀도둑도 많은거겠지만 문도 허술히 하고 살 인심이었나싶네요~
나이키 처음 나왔을때 18000원이었어요~~
참고로 제 나이 57살이에요~~ㅋ
이경제 원장이 말 재간이 좋으시네
모든 인생은 아프다 ㅋ
😮고등학교때 학생들 한테 인기 짱이었씀
그때 다 그랬써
제 조부님 연희전문 나오시고 김구선생님 조봉암씨 신익희씨등 집안돈을 다 하셨고. 조부님 난대없이. 좌익? 고통주고 31:02 내동생 전국써클 동아리 연합회장. 남영동가서 고통 받고 끌려갔고 다쳤고. 구역질이 난다.
무슨말이야?.
이경재. 아버지한테 저사람이 뭐냐! 정말 인성뭐지
아 박목월 시인님!
박동규 교수님 통해 듣는 아버지 박목월은 아버지로서도 감성 풍부
사랑 풍부하신 분 이셨네요!
참,멋있는 분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참 괜찮은 교회 목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나오면 돌려버림
목자는 영혼을 위해 살아야지.무슨 방송에 나와서 말이😢
저분들에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호수조사하면서 누구한테 촌지 많이줄까만 머리썼구만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는건 생각은 없고
결혼 했으면 아버지 라 부르시면 좋겠네요 아빠아빠 어린아이가 부르는 말 이잖아요~
장경동 목사님은
태극기 부대 아닌가요
목사님이 언제 쯤 나오신걸까요? 설마 요즘은 아니것쮸~ 광화문에 담 싸셨나?
이건 2015 년에 방영됐었던 거예요
아이구 아빠가 뭡니까?
아버지 지
아빠 아빠하다 또 아버님은 뭡니까?
남의 아버지나 님이지
내 아버지를 남 앞에서 아버님 다시 배우세요
저 여잔 고작 1살많은 남편에게도 50넘은 지금도 오빠오빠하더라구요
장경동 목사님 나오는 동칭미가 제일 재미있어요 😅
도대체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두 아빠아빠 하는지 참 !!
그 당시에 동국대 영문과는 별로 좋은 학교 아니였는데 ...
그때당시 대학문을 들어갔다는게 중요하죠
그걸 또 뭘 따질까~
그러면 지금은. 살아계시면 90이라는데 당시에 대학문을 두드렸다는 건 대단함
뮤지컬하는 저 여자는 동안도 아닌 노안스탈인데 1살많은 남편을 나이 50넘은 지금도 오빠오빠하는거 듣기 거북함
목사가 아니고 연예인이다 영혼을 팔아라
저양반 별루 정목사 태극기 부대
이 목사는 왜나와요
전광훈따라 다니다가
박목월 시인
목사가 뻥이 심하네요
우리 목사님 장 갱도이는 머시서..
태극기부대로 광화문에서 전광훈과 포악하게 악쓰던 장경동이 아직도 나오네~대전에 장경동 왕궁은 잘 있나?
그 당시 동국대 돈만 있으면 입학했다
아주 오래전 동국대 나름괜찮은 학교였음. 한번 확인해 보시요. 서강대 없었고 중대 비메이커 이던 시절.
그때는 서울대만 대학이었지.그래서sky.sky하는것.....서울.연.고대 말고는 핵교도아냐 ㅋㅋㅋ
맞아요 동국대는 3류였죠 오히려 지금 더 좋아짐
돈만 있다고 입학 한 건 아니죠.
@@AvianceHair-t2j 동국대.경희대.단국대.건국대....소위 삼국시대들은 돈없어도 와달라고 통사정해서 2학년부터시작해서3년만에 졸업했었는데 ㅋㅋㅋ
한국 목회자중에 재산이 최고 인것 아십니까? 전라도 대전 부동산이어마무시합니다 즉 양복입은 무당 장경동 목사 그묻ㅇ 말씀에 홀아당 발린 교인들
어리벙벙한 순진한 사람들 그러나 정경동 목사 무당 존경하고 싶은 마음 0% 또 정치랍시고 좌파 딸따리가다 다시 전광훈 목사에게 합류 존경할 가지 없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