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로 사라진 서울 최대 달동네. 관악산 신림7동 '마지막 달동네' 1년의 기록! [KBS 2001122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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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8 вер 2023
  • ■ 끝까지 난곡을 지키겠다던 효숙이네 이사가는 날
    효숙이는 집 앞 판자집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 대신 집안 일을 도맡아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마을이 형성되던 60년대 말부터 가마니 장사를 했다는 할아버지,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공장 일을 끝낼 수 없는 아버지와 다리를 저는 어머니와 직장을 다니는 언니가 효숙이네 구성원이다.
    유난히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하는 효숙 엄마 덕에 낮이고 밤이고 늘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는 효숙이네 공장, 거센 재개발 바람 앞에서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알콩 달콩 살아가는데...
    지난 겨울의 끝자락 더 이상 그냥 보고만은 있을 수 없어, 효숙 엄마를 비롯해 몇몇 가옥주들이 재산 보호 위원회를 결성하고 시위를 시작하게 된다.
    여름이 지나고 지칠 대로 지친 효숙 엄마, 거기에 효숙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끝까지 난곡을 떠나겠다는 각오를 접고 이주를 결심을 하게 이르고... 이 동네가 사라지는 게 못내 아쉬운 효숙이는 기억 속에 동네를 남겨 놓기 위해 난곡동 지도를 그려본다.
    ■ 난향보다 짙은 사람냄새가 나는 산동네의 난곡별곡
    8평짜리 다 허물어지는 집을 떠나며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들, 춥고 누추해도 여기가 곧 가난한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믿는 난곡 사람들, 그건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 속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식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인데....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그들만의 정서와 문화를 카메라가 포착했다.유난히 많은 독거 노인들이 이웃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모습, 공가를 뒤져 고철을 모아다 팔아 생활비를 버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추운 겨울과 다시 돌아온 봄,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텃밭에 씨뿌리며 봄을 준비 하는 꿋꿋한 삶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 일본인 눈에 비친 서울특별시 신림7동 산101번지
    신슈대학 농학부 교수로 재임중인 가토교수는 해마다 난곡을 찾는 낯익은 손님이다.그는 도시형성화 과정에서 이농민이 어떻게 도시에 정착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처음 난곡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10년간 상세한 호구 조사를 통해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난곡동은 다른 나라의 슬럼과는 차별된 공간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한 희망이 있는 주거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난곡동을 [가난한 사람의 야전 병원]이라 표현한다. 가난으로 지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어느 정도 가난이 치유되면 떠나게 되는 역할을 난곡이 해왔 다고 믿고 있다.
    일본인 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판자촌과 도시빈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지는 달동네의 풍경만이 아니라, 거처를 잃은 도시 빈민의 삶에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떠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달동네는 없어져도 가난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 사실과,그들의 삶은 상대 적 빈곤으로 더욱 피폐해질 것이란 문제 의식과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세입자들의 애타는 절규도 프로그램에 담는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가난과 소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것인지를, 그들이 수놓은 사계를 통해 조용하고 깊숙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상은 2001년 12월 23일에 방영된 [일요스페셜 - 난곡의 사계, 마지막 달동네 1년의 기록] 입니다.
    #부동산 #재개발 #아파트

КОМЕНТАРІ • 309

  • @user-ox4et3qr7k

    신림동하면눈물이나요..나10살때천막촌으로들어와살면서.좀씩돈업어올라간게 신림밤골이였어요 난곡하면 삐죽위라고했어요 밤골보다 더꼭대기라삐죽우라고했어요.물차가오는날은물받을라고 줄서고난리났어요 저녁이어둑해지면일나간엄마기다리느라 목빠지게 처다보면 다지처가는엄마가힘업이지처서 쌀한대 연탄한장새끼줄에뀌여올라오면 그렇게반가왔는데 그때내나이가15세.나중엔공장다녔어요 동생이넷이긂고있어거든요 지금은67세지만 그시절생각하면 눈물나요...

  • @kpc664
    @kpc664  +46

    술을 먹긴 했지만... 울고 있어요. 골목만 봐도 어딘줄 알겠고... 내가 살던 집... 친구집,,, 떠나보내야 했던 모든이들... 그리워서 눈물이 납니다.

  • @user-zd4xk3jc9i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5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래도 이웃간에 정이 있었던시절 온가족이 따뜻한 밥을 먹던기억과 젊은시던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 @Happyhan
    @Happyhan  +62

    나는 이런 아날로그 삶의 기록이 좋다. 그 시절 어떻게들 살았을 지 알 수 있는 기록이어서 좋고. 어려운 시절, 이웃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챙겨주고, 의지하며 돕고 사는 모습 역시 매우 좋아 보인다. 그 속에서 배려가 묻어 나오고, 인내와 화합, 상호 봉사하는 인성도 배어 나온다. 물론 현재보다는 물질적으로 많이들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인내와 배려,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에 안들면 묻지마 칼부림을 하고 그 죄의 무게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가난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2세들에게 가르치고 보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 @pjreboot8302

    전 지금도 신림7동에 살고 있습니다. 7동은 단독, 다가구 주택지역과 달동네라고 하는 두지역으로 돼있었어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곳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지만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과 놀던 그곳을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저때까지는 이웃사촌이라는게 뭔지 알던 시절이였는데...

  • @user-gg5zi4ev3d

    슬프다

  • @user-tx5ts1wm4o

    70년대를 살아본 세대 거의 못살아서. 고등 학교도 못가고 자아도 형성 안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보다 뒤처지니 자격지심에 주눅들어 살았었다. 내인생에 지우고 싶은 페이지. 그 청초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인생은 지나는 것인걸

  • @user-tn6ic6vu4y

    중학생일때 나도 구로공단 삼립빵공장밑에 살 시절 한아이가 학교을 나오지안아 선생님이 찾아 가보라 해서 난곡을 감 버스종점에서 내려보니 거기서부터 물지게를 들고 올라가더만 그물에 흘린것이 얼어 빙판 그언덕들이 그냥빙판이었네요 진짜 관악산 골짜기 산꼭대기 끝에 산 친구임 그애 어머니는 일본인 어머니 병들고 숨을 못실정도 아파하심 그애는 가출한 상태고 난 정말 충격 먹음 정말힘든 시절 있였네요

  • @tv-ig1mj
    @tv-ig1mj  +37

    78년생 난곡초등학교 다녔습니다

  • @user-fy8cw7ww4m

    난곡동 ㅡ 신림7동

  • @user-cr7db4fv9n

    효숙이도 지금은 나이 서른이넘어,,,,

  • @JG77999
    @JG77999  +49

    22년이 지난 지금저분들 다 건강하시길

  • @user-nq4pd2zg1n

    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이지만 가슴이 먹먹할 만큼 그립습니다 ❤

  • @user-in7lb7xc1o

    우리효숙이 지금은 뭘 하던 행복하게 잘~살고있기를 바란데이~!^^

  • @user-dg7yw9fv4z

    대구 비산동도 지지리못사는 동네였죠 .😢60년도에

  • @user-mi8dn8jl1j

    효숙이는 지금 35살 되었겠네요.

  • @Testdrivereviews

    74년생입니다.

  • @travel001

    박씨 할머니 옆집에 연탄불도 확인해주고 손도따주고 잔소리도 해주시는 효숙어머니가 계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 @tiny2292
    @tiny2292  +19

    나 이거 보면서 진짜 울었다...

  • @Yurina0212

    난곡동 이라고 부르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