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피터슨 | 사회와 언론의 자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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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7 лют 2025
-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세상의 구조를 창조할 때에 '로고스'와 함께 했으며, 그것이 보기 좋았다고 했습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창세기와 다른 신화의 교차점 속에서 그 의미를 주제로 논의를 이어갑니다. 즉, 각각의 인간은 연약한 존재임에도 진실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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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간이 완전히 파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의 대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화를 하는 당사자들이 오직 진실에 헌신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애초에 그런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대화는 그저 의미없는 말잔치나 서로의 이권을 위한 구색밖에 안될테니까요.
추천하고 갑니다
로고스 이즈 구웃;;
갈때까지 가면 결국 남는게 좋은것
로고스의 결과로 남은 유물 ㅡㅡ
엎어치나 매치나 똑같은데 ㅠㅠ
이런 걸 볼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고대인들이 적절한 은유를 사용해서 신화를 지어냈는지 놀랍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면 나는 그런 이야기를 못 쓰겠던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냈는지 궁금하고, 알고 그랬다면 그건 그것대로 놀랍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진리는 상대적인것이냐 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냐에 따라 다른 사회가 펼쳐지는 것 같음.
진리는 상대적이란 말은 여러 진리가 공존 할 수 있다는 얘기고 다르게 얘기하면 어떠한 진리도 없다고도 가능.
그래서 나도 맞고 너도 맞고 라는 식의 흔히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식의 사회가 형성되게 되는듯.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답한다면 그 다음 질문은 그게 그럼 뭐냐는 거임.
진리를 찾기 위한 물음과 시행착오,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진리에 가까워져가는 과정을 겪는것이 필요해짐.
물론 극단적인 유대교, 전통주의 기독교, 극단적인 이슬람에서는 그 진리를 정해버리고 확정해버리니 오히려 교류가 안되는 문제가 발생함.
그렇더라도 피터슨교수님이 기독교를 통해 말하고자하는바가 진리를 알아가기위해 소통하고 교류하고 시행착오를 겪어나아가야한다는것 같음.
개인적으로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하기에 포스트 모더니즘이 틀렸고,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는 증명이 불가능 하기에 다양한 절대적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근거는 로고스(논리)가 증명 불가능하다는 부분에서 나오죠. "이 문장은 참이다"라는 명제가 있을 때, 저 문장이 맞고 틀린지는 결국 증명이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보거든요.
하지만 결론에 도달하려면 로고스를 전제할 수 밖에 없어요. 포스트 모더니즘은 맞고 틀린게 없다고 하지만, "없다"는 것도 로고스에 따른 하나의 진리의 주장이거든요. 유의미한 결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심지어 이를 기반으로 도덕윤리까지 주장하려면 로고스가 있긴 하다고 믿어야 되는 거죠. 포스트 모더니즘은 현실도피라고 봐요.
도가가 포스트모더니즘 보다 훨씬 일찍 출현하고 더 완성되어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도가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도의 실현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이면서도 그런 예시로서 어떤 도를 실현한 사람을 "언급"하고 도가의 책을 남기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죠. 둘 다 결국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고 혼자 사라졌어야만 자기실현적이었다고 봐요.
발언 할때 보통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발언 한다는것은
개인의 판단에 참인것을 결정, 타인에게 증거함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발언은 진실, 즉
개인 각각의 발언은 작은 진리입니다
생활의 달인, 생활의 진리 인거죠, 여기서
발언 = 개인의 진실 = 작은 진리
진리가 허락한 자유
진리의 허락따위 필요하지 않은 자유
자유는 진리의 눈치따위 보지 않습니다
가이사 = 자유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 진리의 것은 하나님에게
유니콘 = 유니콘의 것은 유니콘에게
@@김성희-c6w8m 발언의 자유가 반드시 발언이 진리임을 전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진리라는 기준이 만약 있다면 개인이 진리라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한들, 그것이 틀렸을 수 있죠.
객관적 진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서로 다른 주장을 따져서 사회적 결론이 나오는 "과정"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다른 주장을 모두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쨌든 다른 주장들을 배제하니까요. 객관적 진리나 논리 자체가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논리를 인정해야만 결론으로 따져가는 과정이 정당화 되죠. 개인의 주장은 상관없으나, 개인 간의 상호작용을 인정하려면 결국 논리라는 전제가 근본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만 객관적 진리 자체는 증명이 불가능 하기에 발언의 자유는 언제나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언이 다 진리여서가 아니라, 진리일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죠.
심지어 진리가 없을 가능성도 있지만, 진리가 없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완성될 뿐 더 이상의 의미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도가적 입장에서 "주장"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자기모순적이라고 하는 거죠.
근데 실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도가적 주장을 한다는 명제가, 그 자체로 옳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모순됨을 떠나서, 그 자체가 절대적 진리거나 절대선 일 수 있죠. 어차피 절대적 진리는 증명 불가능하기에, 이런 방식으로 앞에서 말한 다양성은 보장 됩니다. 저도 그저 사회적으로 합리성과 논리를 "믿고" 그것이 더 나은 방향이라고 믿기에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는 주장을 하는 거겠죠.
@@아잉뀨잉뀨잉-u5q 네, 저도 그렇습니다
답장 감사합니다
@@김성희-c6w8m 아 그랬군요ㅋㅋ 제가 맥락을 못 파악했나 봅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수메르 문명에서도 질서와 혼돈의 개념이 있었다니 너무나 신기하네요!
최근에 사피엔스를 다시 읽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문자가 수메르 문명 유물에 있다 하더군요.
기원전 5000~2000년 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는데... 질서와 혼돈은 정말 대단한 개념인가 봅니다.
7:58 - 부터 끝까지 공감이 많이 되네요 ㅎ .
모든 학습되고 보유한 정체성에 의해 나오는 발언은 (혼돈에 가까운) 백지상태의 자유 개인일 수 없고 발언에는 구속된 소속 집단(질서)을 옹호하는 요소가 있다.
관념과 개념안에서 표현을 통해 진실에 다가갈 때 이미 자타의로 여러 색칠 된 개인이 처한 자기 모순을 잘 표현한 강연 같아요.
혼돈(전체 침묵) 에서 분리되버리는 질서(언어)와 그 안에서 영향 받은 정체성이 말하는 자유로운 발언이 얼마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지?
침묵은 금 등의 잠언도 떠오르게 하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갓난 아기의 순수성만을 유지하려고
자타공인 영향받을 개인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죠;;
갓난아이도 바늘구멍에 들어가는건 어려울테니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시작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향받았음에도
개인의 발언으로 점점 본래 모습 본성을 찾아감
순도 100% 진실을 타인에게 강요하려고
순도 99.9% 진실을 외면하는게 시트콤이죠
24K 보다 불순물이 많다고
18K 금이 아닌게 아니잖아요
순도 100% 진리는 오히려 사용가치 없을지도
개인 선호도 차이를 무시하는건
그냥 인간 그자체가 자웅동체라는 건데;;
6:36 - 고통속에서 진실에 등 돌리기 쉽습니다
@@김성희-c6w8m
마지막 부분에서 개인적으로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것으로 부터의 자유 가 떠올랐습니다.
힌디즘에서 신의 유희 (마야) 라는 표현이 체험을 제외하면 제일 근사치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개체성을 넘어 전체로 보면요.
붓다는 세상을 수많은 보석들이 서로에게 빛을 교환하는 통합된 장면으로 설명하고, 분리될 수 없는 불이 라는 표현도 했지요.
대부분은 개체(일시적 허구, 후전적 요인들로 빚어진 자아) 기반 위에서 색이나 빛, 파동을 주고받죠.
우물(이성, 언어, 개념의 한계 비유)안 개구리가 자신을 둘러싼 우물의 한계와 그 밖( 배경) 을 인식 하는지 여부 (외부 관찰 모드),
(우물 벽이 두꺼워 질 수 있으나 그 폐쇄성 때문에) 우물이 투명해지는 체험이 진리나 자유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영상에서 각자 속한 우물의 대변인 위치에서 발언하는 어쩔 수 없는 로고스와 자유의 속박 관계를 잘 표현한듯 합니다.
한명이 여러 나라별 언어를 구사할 때 각인된 그 문화 배경과 기억 경험에 따라 약간씩 인격이나 대화시 반응이 다르기도 하죠.
함께 생각해보는 측면에서는 조던 피터슨의 강연이 효과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붓다의 표현대로 각 의식들의 작용 반작용 면에서요)
반대로 침묵하는 명상가 부류도 있죠. 자유 측면에서 보면 둘다 자유겠지만, 언어와 자아 개체의 한계는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고스는 이해와 표현 도구도 되지만, 생체 에너지 효율 상 (찰나 찰나) 외부 감각을 대부분 쳐내고 거칠고 뭉뚝하게 만드는 습관도 있다고 봅니다.
창세기를 인간의 의식 발현 은유로 표현하면 바벨탑은 로고스의 자기 모순을 표현한지도 모르죠.
@@hwa81 우물 벽이 무한이 두껍고
원하는만큼 한없이 투명해지더라도
눈으로 보고 실제를 믿지 못하면
투명하지 않은것과 똑같습니다;;
우물에서는 하늘 하나만 보겠지요
우물벽이 투명해진다는 상상조차 못하고
투명해진 우물벽 넘어에 무관심하여
하늘만 바라보는 순수 100% 개구리
투명해질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믿는다는건 우물벽 넘어로 가는 길이에요
그래서 위험하고 깨지고 썩어서 싹이 납니다
@@김성희-c6w8m 20세기 초에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양자물리학에서 세상은 입자와 파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이며 우주는 10차원 이상이라고 수학적 이론으로 해석했습니다만,
개체의 이성이나 수학적 능력 여부에 따라 그것은 현실을 떠난 환상일 수도 있죠. 마치 무신론자에게 신의 개념처럼 느껴질 겁니다.
분명히 속한 정체성에 따라 물리학 이론을 추구하거나, 신을 추구 하겠죠. 조던 피터슨은 이점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결국 믿음이 필요하면 로고스는 개체마다 각자의 한계가 있다는 반증이고,
그게 영상 말의 대리인으로 발언의 자유 한계를 만드는듯 합니다. 저희 대화처럼요.
@@hwa81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답장 감사합니다
세련되게 답해주셔서 진심 감탄했습니다
로고스를 존중하면 그 어떤 말이든 결국 더 나은 결론에 다다르게 만들기에, 발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네요. 이것만 보면 사회적 담론을 중시하는 샌델의 입장과도 유사한거 같기도 하고요.
추천하고 갑니다
로고스를 존중하면
결론에 다다르게 만들지라도
인간을 기준 잡으면 한오백년 더 걸리겠죠
물론
로고스가 보시기에 한순간 이겠지만;;
포퍼의 점진적사회공학과도 비슷하네요
길을 끝까지 걸은 자가 도달하는 곳은 항상 같다
오...로고스 지지자...
저도 독일에 비슷한 사람 알아요.
미대 떨어지고 정치인돼서 총리하다가 총통한 친구
오늘도 감사합니다
어렵네요...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포스트모너디즘 중 집단주의에 따르면
"개인은 각 집단의 일부일 뿐이므로,
본인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재생산된 밈일 뿐."이라는 의미인가봐요.
어찌보면 매력적인 관점 같네요. 인간은 '진정하게 자유로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사회 구조의 억압을 받는 그 일부이니까요. 자신이 속한 배경과 성질에 따라 분명 다른 삶을 살게 되긴 하죠.
저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시대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대화나 담론은 자유의지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죄다 상투적인 주제, 논리, 개념... 그나마 피터슨 교수님 덕에 저희는 신문물을 취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존경 받을 만한 역량을 지닌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요.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거 내 마음대로(내 ㅈ대로) 말할 수 있다"는 자유로운 말하기의 목적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목적은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대로 "개인이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기 위한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일반적인 개인은 자유 사고가 불가하고 그럴 의지도 없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밈의 노예라는 거죠. 그렇게 불려지고 싶지 않을 뿐.
추천하고 갑니다
개인이 선악과를 먹은건 OK
타인에게 그 열매를 주어 먹게하는건 NG
항상 배우고 가르쳐주시는 것 같아 멋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배웠네요. 영상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영상 감사합니다! 의미의 지도도 올려주신다면 너무나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징벌적 제도를 보고 정말 대한민국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참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피터슨 교수님의 견해도 궁금해서 이 영상을 보게됐네요
징벌적 제도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언론이 얼마나 말같지도 않은 기사들을 거리낌없이 내고 (개인 혹은 단체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기사들) 그 기사들이 거짓으로 밝혀졌을때 단 한마디의 정정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벌적 제도가 통과된거죠. 그것도 심지어 제대로 통과되지도 않았어요. 피터슨 교수가 말하는 자유 발언이란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그 말을 내뱉었을때의 책임까지 감수하는거에요. 그 책임의 부분에서 우리나라 언론들은 입 싹 닫고 외면해버리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필요성이 수면위로 오른거고요. 대한민국에서 기자나 언론을 옹호하는 사람이 다 있네요.
@@jun_park13 ㅋㅋㅋㅋ기레기나 잘못된 언론을 옹호한하기 위해 반대한다고 생각하다니ㅋㅋㅋ난 무조건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옳고그름을 판단하는게 결국 인간이고
한쪽의 입맞에 맞게 가짜뉴스로 판단시켜 인위적으로 진실을 가리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실된 표현만 하는 언론을 가려낼 것ㅋㅋ???
취지는 좋으나 실현이 불가하다ㅋㅋ 여기가 유토피아가 아닌이상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노출시킬 기회만 박탈시킬 것이라 본다
@@sjj8732 의견을 개진하는거랑 거짓정보를 사실마냥 전달하는거랑 같은 맥락으로 보시는 것부터가 자유발언의 취지에서 벗어나는건 아시죠? 의견개진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제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거고 그게 바로 피터슨 교수가 말하고자하는 자유발언입니다.
거짓정보를 사실인 것 마냥, 혹은 의도적으로 악의적 짜집기를 해서 낸 보도때문에 피해를 받은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서는 그럼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jun_park13
ua-cam.com/video/nte0DgALl6I/v-deo.html
피터슨 교수가 말한 표현의 자유
ua-cam.com/video/FiZBGmPRcWA/v-deo.html
당국에 과도한 재량을 부과한 언론통제법에 대한 뉴스
지금 통과된 법이 그렇게 믿을만한가? 이거보고 자문해보셈
물론 가짜뉴스는 문제이지만 이번 법압은 그걸판단하는 자들의 입맛데로 악용될 수 있기에 표현자유를 표방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함 (가짜뉴스가 안나쁘다는게 아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이고 처벌기준도 상당히 모호함 역으로 묻지 이게 잘만든 법이라고 생각함? )
인간이 저 법을 완벽히 정의롭게 운용할 수 없기에
모든종류의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함
그중 진실을 볼 수 있는 시각, 중립적인 마인드는 개인의 책무이지 정책적으로 판별한다면 생기는 부작용 더 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함
@@jun_park13 모욕죄 언제 어이없게 한번만 당해보시면 생각 싹바뀌실듯.
3:05 소름이 돋는 통찰력.
4:55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가져오는 것의 사회경제적 해석.
5:35 사실 모든 존재가 그런것이 아닐까?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는 기도문, 질량보존의 법칙을 바탕으로 고려해보면 정신적, 물질적으로 합당하게 보임.
9:15 포스트모더니즘, 공산주의와 이론적으로 깊게 결속된 페미니즘에도 적용되는 병적인 부분. 이는 저들이 뒤집어쓴 '평등'의 거짓된 껍질아래, 전체주의적 야욕을 품은 '인간 자유 의지'에 대한 탄압이 도사리고 있음을 시사함.
3분5초부분이 왜 통찰력이에요? 무슨뜻이에요
실제로 창세기를 원어로 보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를 운행하시니라"(창1:2)가 아니라 "물을 돌풍처럼 궤뚫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혼돈을 영(루아흐, 바람으로도 번역가능)이 짓누르는 장면인 것이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말씀(로고스, 이성)으로 빛이 있으라 외칩니다.
그 표현들이 너무 정교해서 성경고고학자, 성경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이 고위사제계급이 편집하고 구성했고, 2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이 민간전설이었으리라 봅니다.
전두환도 울고갈 언론중재법 허울좋게 포장하려하지만 음....
그래도 민주당 내에서는 공수처 1호대상으로 자기진영이 지목된것처럼 제발목 붙잡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음. 그.런.데. 제 발목 붙잡을거같다의 뉘앙스를 자기들 입으로 내놓은것은 의아함.
왜냐면 1. 재갈물리려고 만들었다는 뉘앙스도 되기에
너무 어렵네요ㅠㅠ
로고스 이즈 굿
이건 들리더라구요 ㅠㅠ
@@김성희-c6w8m ㅎㅎㅎ공감합니다
10번 더 보시면 나아질거에요!
@@김소환-j1l 헉 ㅡㅡ;;
옛날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사실은 단지 어휘가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거겠지만...
자유 발언이라는것이 존재하느냐
진리 또는 사실이 자유롭지 못하기에
자유는 진리 또는 사실 위에서 가능할수 없음
자유는 가능성이며 혼돈이며 창조이자 혼란임..
인간이 진리를 알고나면 인간을 유지 할수없음
무한한 진리를 이해하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게 되어 인간이 아니게됨
인간의 탈을 유지하려고
진리에게서 멀어진것 같네요
원펀맨 리미트 해제처럼
모든 인류가 스스로 진리를 해제 할수 없겠죠
그것은...이제 기독교적 해석에 따라서 보셔야 진리에 대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피터슨 교수님이 말하는 로고스라는 건 '태초의 가장 유일한 원형'으로 가정한다 했을 때, 로고스의 열화판으로써 존재하는 우리는 원형에 닿을 수 없는 존재인데... 예수라는 존재를 통해서 열화판인 우리가 로고스에 접촉하게 되는 길을 '내려주신 것'이죠. 우리가 기어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자유라는 것에는 사실 공의적인 면과 로고스에 대한 추구가 존재함으로써 자유가 자유로 확정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혼돈이나 무질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것은 오히려 자유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것이죠. 자유라는 것은 단지 모든 방향성에 대한 가능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로고스에 대한 방향성 자체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신 것처럼 인간의 탈을 벗는다는 것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는 동의합니다. 로고스에 대한 접촉은 혼을 죽이고 로고스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young_tkim9721 추천 하고 갑니다
자유 안에서 진실 될수 있고
진리 안에서 자유 할수 없겠네요;;
개인의 진실이 표현되는 자유
진리 안에서 개인의 진짜 실체, 본성이 드러날뿐
진실된 인간의 본성은 개인적이고
진리로 인간의 본성을 구분하겠죠;;
자유가 전체집합, 진리가 부분집합
본성이 여집합..
진리 안에서 자유는 선별일뿐 ㅡㅡ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진리가 편가르기 쉽다는게 이해되네요
@@young_tkim9721 확인하고 싶어 답장 남깁니다
절대적 기준을 관측할 인류가 유동적
진실, 절대적인 기준이 움직이는게 아니라
진실을 관측하는 인간 한계의 유동적인 해석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 한다면
“인간의 한계”로 절대적 가치를 서로 공유불가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유동적이면서 동시에 무동적 입니다
한계가 없으면서 한계가 있어야 ㅋㅋㅋ
결국은 양자역학 ㅡㅡ
5~6명이 토론한 결과를
확인 받고 싶어서 댓글 남겼습니다
중2병 같은 표현력이라서
아무 반응도 없네요 ㅋㅋㅋ
샤피로에서 피터슨까지 일주일쯤 걸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83년생 김성희입니다
진리라는 단어 하나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제 생각엔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생각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 이라고 정의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이전에 동물이고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스스로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고도로 발달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사물들처럼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현실에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인류가 자원난을 극복하고 불로장생할 수 있거나 혹은 단체 혹은 개인의압도적인 무력을 통한 방법 정도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교수님께선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제 생각엔 이렇습니다.
실존이 본질 보다 앞서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혹은 인류의 본질에 대한 생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서술한 견해를 품고 있는 사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이며 다른 영상에서 무신론자에 관해 이야기를 하실 때도 같은 맥락에서 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할 목적도 존재할 이유도 없는 모순에 빠져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모는 행위를 막기 위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회복할 수 있는 신(사상)의 존재를 등장시켜 자신을, 세상을 좀 더 옳은 방향으로 가게 하자는 주장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쓰신 질서 너머에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만든 신(사상)또한 때로는 무너뜨리고 새로 세울 수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진리도 신도 자신과 세상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 진리와 신을 위해 자신과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진리가 실현 가능 하기 전까지는 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와 언론의 자유 하니까 언론중재법 생각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이 영상으로 분석한다면 에밀졸라가 포스트모던에 가깝다 봐야 하는걸까요???
이 댓글으로 분석한다면
슬라보예 지젝이 마르크스에
가깝다고 봐야 하는걸까요???
지젝은 지젝리즘
피터슨은 피터슨리즘
당신은 레이니즘
1일 1깡 하실 누추한분이
왜 이런 귀한곳에서 시간낭비 하세요? 근손실
@@김성희-c6w8m 저는 좋은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병신에게 병신아!!라고 할 수 있는 재주에요.
이런 천박함과 시원함으로 말씀드리건데
병신님아 시비 멈추세요!
@@김소환-j1l 시비는 Social Philo가 멈춰야함 ㅋ
외국인도 인정하는 프로불편러 편들고 있네
그래서 영상에 언급되지도 않는
에밀졸라가 뭐하는 물건인데, 십덕아
“신뢰할수 있는 답변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유니콘이 있냐고 왜 묻는 거냐
오늘 영상 요약.
피터슨은 과거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응?)
I'm not sure how you came away with that message. It didn't seem overtly masculine to me. Seems like the summary is: pay attention.
ㅋㅋㅋ외국인한테 어그로 끌었네
ㅋㅋㅋㅋㅋ이러시는 이유가 있을거 아니에요
진심 훈민정음이 아깝다
왜 한글을 사용 하는거야?
@@김성희-c6w8m Just using it to study. You sound angry.
@@fortysixyou שמשון נזי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