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김정남 감독은 같은팀 유공의 오연교 키퍼를 줄곧 기용했었는데, 저 한일전에서 패하여 32년만의 월드컵진출을 놓치면 완전히 역적될까봐 최종예선 두경기는 당시 전국민이 신뢰했던 조병득을 기용했음. 막상 월드컵에 나가니까 목표는 이루었겠다, 상대는 아르헨,이태리,불가리아.. 어차피 누가 키퍼로 나가도 결과는 같을거라고 생각했는지 오연교로 내리 등용..😢 하지만 결과론으로 우리가 본선에서 숱한 키퍼실수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2무1패를 거두면서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올라갈수있는 상황이었음.
@@9rjan 당시 우리선수들이 거의 월드컵 첫출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1차전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는 상당히 위축이 되었지만, 이내 우리 페이스를 찾고 3차전 이태리전은 대등한 경기를 벌였습니다. 만일 키퍼실수가 없어서 이태리와 비기고, 그길로 16강에 올라갔다면 아무래도 상대가 아르헨,이태리보다는 수월했기에 8강까지도 넘볼수 있는 전력이었습니다. 너무나 아깝죠 (차범근,허정무,최순호,김주성,김종부,조광래,조병득.. 일명 레전드세대)
유니폼 브랜드 위크엔드부터 그리운 얼굴들과 이름으로 향수가 느껴지네.... 내 개인적인 최고의 영웅 16번 김주성 전설이 시작된 해..., 1985년... 머리 기르기 전의 모습이 정말 야생마의 모습.... 아쉬운 점은 저렇게 지역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조병득 골키퍼를 안쓴 86 본선대회.. 만약 조병득을 기용했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던 실제 본선대회....
원정 1차전에서 대포알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한 수비수 정용환(1990년 월드컵 대표팀 주장이었고 이제는 고인이 되심)과 외눈 골잡이 이태호, 그리고 2차전에서 최순호가 때린 대포알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달려들어서 결승골을 성공시킨 허정무의 골, 다 기억난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1954년 🇨🇭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진출이 성사되서 너무나 좋았고 박창선,조광래,변병주,김종부,김주성,조민국,허정무,조병득...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스쿼드에 실력도 실력이지만 요즘 국대나 프로선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투혼이 느껴집니다🧐
■ 축구는 대한민국의 혼에 가까운 스포츠다. 모든 타구기종목이 폭망하고 있는 가운데 축구만은 꼭 지켜야한다. 축협회장 자르고 새운영진이 들어와야한다. 들딱뿐만아니라 예능하며 타븨 및 유트브에서 축구선수 연예인화 만드는 것들, 그리고 이름값으로 k리그 감독하는 무뇌것들도 모두 일선에서 나와야한다. 진짜 경영인 진짜 전술 감독들만이 축구를 살릴수있다...
저때 일본 매스컴 난라났었죠. 프로야구는 4~50년이나 된 나라가 어째서 프로축구가 없느냐. 프로축구 없는 일본이 3년전부터 프로축구 시행해온 한국 이기고 월드컵 본선 나갈꿈 꿨느냐고 겁나게 때려댔죠. 저때부터 일본 축구는 축구 인재들 죄다 브라질로 유학보내면서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J리그 시작하기 1년전인 1992년부터 일본축구가 엄청 강해졌다걸 실감했던게 1992년 5월 20세이하 월드컵 1차예선 잠실 한일전 패배. 1992년 8월 다이내스티컵 예선 한일전 무승부, 리턴매치가 된 결승전 승부차기 패배였었죠
1992가 일본축구 도약의 해가 된것이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미우라,기타자와,이하라 세대가 주축이 되어 최초우승을 했습니다. 우리는 92 바르셀올림픽에 대학선발팀이 나가 무패선전을 한것으로 방심하여 같은해 아시안컵 지역예선에도 대학선발팀에다 실업선수들 몇명 집어넣고 내보냈다가 탈락하는 바람에 본선진출 실패 😢 결과적으로 일본애들 기를 살려주는데 일조했음..
장신공격수 하라를 못막아서 반칙으로 끊으면 장거리 프리킥의 달인 기무라한테 골 허용해야 했던 일본의 상대팀들. ㅋㅋ. 헌데 한국은 홍명보 등장하기전 최고의 수비수 정용환이 하라를 철저히 수비해서 기무라까지 있으나마나로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1차전 선취골까지. ㅎㅎ. 한일전의 MVP 정용환 선수가 선정됐었죠. ㅎ
우리 축구 시원시원하게 잘했네. 전술도 좋고, 스피드도 훌륭하다. 요즘 보다 더 파워풀하다
저때가 진짜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살아있는듯!
저때는 한일전 한다면 결과가 궁금한게 아니고 우리팀에서 누가 골을 넣을까가 더 궁금할 만큼 실력차가 컸던 시절…..차붐 허정무 안나오고도….여유있게 이기는 모습….그때로 돌아가야 한다
저 당시 32년만이라고
온 나라가 TV앞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세월 참 빠르다
저 경기 끝나고 정규방송 중단하고 kbs에서 특별 스튜디오 만들어 선수들 땀도 안닦고 바로 오게해서 인터뷰했죠..
우리나라 선수들은 외모부터가 축구도 잘하게 생겼지만 일단 깡다구 엄청좋게 생김.
과거엔 그랬죠 헝거리정신
최순호 허정무 박창선 조광래 변병주 정용환 이태호 김주성 김종부 등 선수들의 이름값으론 레알, 저때가 한국대표팀 역대 최고의 스타군단이었음.
차범근까지...ㄷㄷ
월드컵 본선때는 차범근도 있었음
골키퍼 오연교가 본선 볼리비아전서 알까서 ㅠㅠ 그경기 이겼으면 16강 확정인데 아쉽다.
@@hskim991 볼리바아가 아닌 불가리아임. 볼리비아와는 94년 미국월드컵에서 대결했고~.
당시 서독 분데스리가 해외파인 차범근은 최종예선 오지도 않았음.
지금보다 더 호화맴버임
스코어차는 더나야되는 결과지만. 지금과 달리 헝그리 잘하고지 하는 의지가 달라보여 너무나 신선함.
최순호님 진짜 우아하게 공 잘차심
인터밀란, 유벤투스가 데려갈려고 했었는데 병역특례 받아서 진출을 할수가 없었죠. 특례받으면 국내에서 5년이상 뛰어야 했어서.. 월드컵 이탈리아전 한번 접고 날린 대포알 골은 정말 멋졌음..
월드컵 1호 골을 뽑으신 분.
@@유동주-o2l 아르헨티나전 박창선님이세요 ^^.
@@Vivaravida365 아.. 그래요?? 전 최순호님으로 알고 있었네요.. ㅠㅠ
@@유동주-o2l 최순호님은 이탈리아전 동점골이지요. 그 대회 마지막 경기 ^^
2010년 월드컵 한국 그리스전 보고 남아공 국내선 타고 요하네스로 이동하는데 그 비행기 안에서 월드컵 첫골의 주인공 박창선 선수를 뵈었네요^^
그리운 선수들이네요 어릴때 한일슈퍼게임볼때면 항상 빡쳤었고 한일전 축구볼땐 완전 기분 좋았던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저때 김정남 감독은 같은팀 유공의 오연교 키퍼를 줄곧 기용했었는데, 저 한일전에서 패하여 32년만의 월드컵진출을 놓치면 완전히 역적될까봐 최종예선 두경기는 당시 전국민이 신뢰했던 조병득을 기용했음.
막상 월드컵에 나가니까 목표는 이루었겠다,
상대는 아르헨,이태리,불가리아..
어차피 누가 키퍼로 나가도 결과는 같을거라고 생각했는지 오연교로 내리 등용..😢
하지만 결과론으로 우리가 본선에서 숱한 키퍼실수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2무1패를 거두면서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올라갈수있는 상황이었음.
공감합니다. 조병득이 PK도 잘막고, 진짜 잘했는데,..
@@이승엽-h7s 방어에 임하는 진지한 근성도 대단했고, 전국민과 선수들이 이견없이 신뢰했던 선수입니다.
유일한 약점으로 공중볼에 약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 횟수조차 상당히 낮았습니다.
국내 우물 안 감독의 한계로 보이는 내용이네요.
@@9rjan 당시 우리선수들이 거의 월드컵 첫출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1차전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는 상당히 위축이 되었지만,
이내 우리 페이스를 찾고 3차전 이태리전은 대등한 경기를 벌였습니다.
만일 키퍼실수가 없어서 이태리와 비기고, 그길로 16강에 올라갔다면 아무래도 상대가
아르헨,이태리보다는 수월했기에 8강까지도
넘볼수 있는 전력이었습니다. 너무나 아깝죠
(차범근,허정무,최순호,김주성,김종부,조광래,조병득.. 일명 레전드세대)
@@이승엽-h7s 분명 조병득이 한수위의 선수였고 86월드컵 본선에서도 컨디션이 최상이었다고 하더군요.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2차전때 잠실에서 직관 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
어째 이때 축구가 시원시원하니 더 재밌어 보이냐.
수준도 꽤 높고
옛날 축구에선 시원하네 중거리 뻥뻥 많이 때리네요... 지금처럼 접고 서로 떠넘기고 하는거 보다 못넣어도 좋으니 중거리 계속 때려주는거만으로도 분의기 전환 등 상당히 좋은데..
전술의 차이도 있지만 저때 주로 사용했던 탱고계열의 공이 적당히 무겁고 반발력도 좋아서 중거리를 때려도 왠만하면 안뜨고 골대안으로 쭉쭉 들어갔죠.
해외경기에선 요즘은 보기힘든 허리높이 정도의 장거리 직선타 득점들이 종종 나왔습니다.
전술 압박 강도의 차이도 있음. 계속해서 압박과 전술은 발전하고 있기 때문
나도 저런 축구가 훨 재미있네. 무슨 전반 양팀 슛0개 이런경기 보면 토나옴 ㅋ
교체인원이 5명으로 늘고 강한 바디체크에대해서 var까지 동원해서 엄중히 처벌하면서 축구라는 스포츠가 그 이전과 달라져버렸습니다. 체력과 체격에대한 부담이 오히려 줄어들어서 선수들이 거진 45분만 뛴다는 생각으로 쉴새없이 다같이 뛰면서 조금만 공간이 생겨도 메꾸로 들어가고 다같이 공간 점유와 압박에 집착하면서 중거리슛할 공간자체가 사라지는
경향이 큽니다 요즘 축구는.
0:38 콱 밟아라 😂😂😂
와 오래된 영상이네요 굿!!!
최순호는 저 신장에 저 정도 유연성과 볼컨트롤 능력을 가지기 어려운데 발군의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
일본버전 보고 싶었는데
이 귀한영상을...
감사합니다❤
유니폼 브랜드 위크엔드부터 그리운 얼굴들과 이름으로 향수가 느껴지네....
내 개인적인 최고의 영웅 16번 김주성 전설이 시작된 해..., 1985년... 머리 기르기 전의 모습이 정말 야생마의 모습....
아쉬운 점은 저렇게 지역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조병득 골키퍼를 안쓴 86 본선대회..
만약 조병득을 기용했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던 실제 본선대회....
한국 선수들 움직임이 장난아님... 상대선수들이 주늑들수 밖에 없는 강력하게 빠르고 터프한 움직임... 엄청 매서워보임..
원정 1차전에서 대포알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한 수비수 정용환(1990년 월드컵 대표팀 주장이었고 이제는 고인이 되심)과 외눈 골잡이 이태호, 그리고 2차전에서 최순호가 때린 대포알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달려들어서 결승골을 성공시킨 허정무의 골, 다 기억난다~^^.
1:53일본과의 도쿄 1차전 수비수로 골 넣은 정용환 선수 2015년 하늘의 별이 되셨죠.3:06이태호 선수는 훗날 시합 중 스파이크에 찍혀 한쪽 눈을 실명하면서도 선수생활을 계속 하셨죠.
국민학교 5학년 시절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1954년 🇨🇭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진출이 성사되서 너무나 좋았고 박창선,조광래,변병주,김종부,김주성,조민국,허정무,조병득...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스쿼드에 실력도 실력이지만 요즘 국대나 프로선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투혼이 느껴집니다🧐
너무 귀한 영상 감사드립니다~~ 축구 카페에 올려도 되는지요?
80년대엔 한일 축구 전적에서 한국이 상당한 우위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86년 월드컵 스쿼드는 역대 대표팀에 결코 밀리지 않는 정예 멤버들이었죠.
잘하셨고 고생하셨습니다 ..이만큼 끌어준거에 감사합니다..
최순호, 정말 대단하네 ~
■ 축구는 대한민국의 혼에 가까운 스포츠다. 모든 타구기종목이 폭망하고 있는 가운데 축구만은 꼭 지켜야한다. 축협회장 자르고 새운영진이 들어와야한다. 들딱뿐만아니라 예능하며 타븨 및 유트브에서 축구선수 연예인화 만드는 것들, 그리고 이름값으로 k리그 감독하는 무뇌것들도 모두 일선에서 나와야한다. 진짜 경영인 진짜 전술 감독들만이 축구를 살릴수있다...
중거리슛은 지금보다 훨씬 좋네요. 최순호 선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5년 이상을 쫒아 다녔는데 결국 스카웃을 못했지요 대한민국에서 허락을 안해줘서
8:45 어렸을적 생방송으로 봤는데
골터진 후 최순호선수 좋아서 펄쩍뛰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 장면중 하나
지금이야 기술력 이런건 차이 나겠지만 저런 투지와 끈기는 배워야한다..죽기 살기로 뛰는모습..
지금 선수들이 저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뜁니다. 예전 선수들을 추억하는 것은 모르지만 요즘 선수들이 투지와 끈기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 당시 선수들이 술담배 쩔어 지내고 20대 후반만 되어도 기량 쇠퇴하는 것 보이고 했었는데
저때는 그냥 무대뽀 중거리슛 이였네 ㅎㅎ 기억나네 최순호 만세춤 ㅎㅎㅎ 다들 건강하시쥬?
1985년 11월 3일 일요일 잠실에서 했던 2차전. 전반전 막판 최순호 선수 실려가는줄 알고 아찔했던 기억납니다. 김정남 감독님도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셨을 정도였죠.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영상이네요...이런날이 또 올가나??
82 WC 예선, 84 올림픽 예선 등에서 오일머니가 득세하는걸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일본협회가 피파에 간청해서 동서 아시아 구분해서 각 1장씩 티겟으로 변경했죠
모리감독은 패한 후 일본축구의 프로화를 진행했고 그 결실이 94 WC 예선에서 나올번 하기도 했죠
오...
저땐 전투축구 였지...........
저때는 응원가가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빛내라 빛을 내자 대한의 건아들..." 그래도 웅장했다. 저때 월드컵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에 일본을 꺾고 36년만에 나간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던지.
와 중거리포 쩐다
기억난다.. 특히 최순호가 아웃론트로 멋지게 슛한거 허정무 세컨볼 따낸거 레전드....😅
86 멕시코 🇲🇽 월드컵 최종 👉 예선 한국 🇰🇷 일본 🇯🇵
다이나믹하고 수준높았던 대표팀
0:38 플랭카드가 콱 밟아라 라니 참 살벌했던 시기였네 ㅋㅋㅋㅋㅋ
실력차가 크네 이시기엔. 피지컬 기술 볼트래핑 스피드 슛팅 능력까지. 아예 찍어 누르는게 느껴짐
중학교 때 봤던.. 최순호,변병주, 조광래,이태호,박창선,허정무.. 국대 자부심 만은 최강이었던.. 그립습니다~
일본은 저 당시에도 수비진에 귀화선수가 보이네요 한국의 장신 스트라이커들 때문에 그런듯 한데 지금도 아시안컵에서 키 190넘는 이란 이라크 공격수들에게 명색이 EPL과 분데스리가 수비수들이 대책없이 밀린걸 보면 신체 크기와 능력은 일본축구의 영원한 화두이지 싶군요.
85년도면 전 4살때죠 추억입니다...
생중계 해줬더라구요
일본은 밟아야 쫄깃쫄깃~
저땐 일본도 한국 이겨보려고 몸도 날리고 반칙도 막하고 그랬네. 원래 반칙은 약한 애들이 하는거.. 그래도 지금은 더 잘하니, 과거는 과거일 뿐. 발전하는 일본이 부럽다.
저때 일본 매스컴 난라났었죠. 프로야구는 4~50년이나 된 나라가 어째서 프로축구가 없느냐. 프로축구 없는 일본이 3년전부터 프로축구 시행해온 한국 이기고 월드컵 본선 나갈꿈 꿨느냐고 겁나게 때려댔죠. 저때부터 일본 축구는 축구 인재들 죄다 브라질로 유학보내면서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J리그 시작하기 1년전인 1992년부터 일본축구가 엄청 강해졌다걸 실감했던게 1992년 5월 20세이하 월드컵 1차예선 잠실 한일전 패배. 1992년 8월 다이내스티컵 예선 한일전 무승부, 리턴매치가 된 결승전 승부차기 패배였었죠
1992가 일본축구 도약의 해가 된것이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미우라,기타자와,이하라 세대가 주축이 되어 최초우승을 했습니다.
우리는 92 바르셀올림픽에 대학선발팀이 나가 무패선전을 한것으로 방심하여 같은해 아시안컵 지역예선에도 대학선발팀에다 실업선수들 몇명 집어넣고 내보냈다가 탈락하는 바람에 본선진출 실패 😢
결과적으로 일본애들 기를 살려주는데 일조했음..
그리고 94월드컵최종예선에서 일본에게 진것은 큰 충격이었죠.다행히 이라크덕에 월드컵은갔지만 이때부터 양팀 격차가 줄기시작했습니다
8살이었는데 새벽에 오가족이본거생각난다 불가리아전은 일요일이었고 이탈리아전 너무재밌었어 최순호동점골 허정무 만회골 아르헨티나전은 못봤어요 ㅋㅋ
1986년 월드컵은 피파가 아시아에 2장의 티켓을 부여. 피파가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로 구분했기에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랍팀과의 경기는 경기전에 이미 0대2로 시작 할 정도로 심판 장난질이 극악이던 시절.
일본엔 절대 질수 없다는 결의가 보인다...
이런거 보면서 과거의 향수에 젖어야하는 현실이 안타갑습니다. A매치로 일본은 언제 다시 이길수 있을지
이 시절 한일전은 진짜 전쟁이었음.
내 한몸 조국에 바친다.
이런 마인드가 TV를 넘어 전해지고,
그걸 선수고, 코치고, 국민이고 당연하게
생각했었음.
지금은 시간이 흘러,
한일전의 피로도가 약해진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좀 다행이기도 함.
85년 가을 충정로 다방에서 친구들과 보던 기억이 새록하네~
투박해 보이지만 시원시원하게 경기하시네들
근성있다
전설의 선수들. 김종부.이태호.변병주.최순호.최고의 순수들.
내가 나이 오십인데 90년대 후반까지도 한일전하면, "야 있다가 축구 안볼래?" 하면 "어차피 이길껀데 뭐하러봐!" 이 정도였음.....ㅠ.ㅠ
허정무 감독님❤
저 당시 선수들 보니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의 아재들 모습 보는 것 같다. 50 대 이상 아재 ㅋㅋ 당시 모두 20 대 중 후반 이었을텐데 ㅋㅋ 앞으로 30 년 쯤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하다. 30 년후 지금의 손흥민 보고 정말 촌스럽다 할건데 ㅋㅋ
멤버가 후덜덜이네.
직접 가서 본 경기. 스코어는 저랬지만 내용은 그냥 가지고 논 수준이었슴. 패싱력도 비교불가로 계속 일본선수가 따라오면 돌리고돌리고 가지고 놀았던 경기.
지금 이런 깡다귀가 없다
이때 스타플레이어
최순호. 김주성.허정무.김종부.차범근.조광래
당시에 골킥을 차면 가장 멀리 상대 진영까지 공이 날라갔던, 전설의 골키퍼 조병득 골키퍼
0:36 콱! 밟아라 라고 적혀있네ㅋㅋㅋㅋㅋ
최순호 어시스트 2개
일본진짜 많이발전했네. 중국에 버금가는 실력이었는데
요즘 축구보다 더 재밌네 ㅋㅋㅋㅋ 존나 파워풀
최순호의 슛이 골대 맞았을때 MBC 아나운서가 악~ 비명지르며 안타까워 하는 그순간 총알같이 파고들어 goal~로 연결시켰던 무릎부상 투혼의 허정무. 올해 11월 3일이 일요일인디 32년만에 월드컵 본선 이뤄냈던 1985년 11월 3일도 일요일이었죠. ㅋ
저당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은 볼수없는 투지와 깡다구....그 당시 한국 일본 선수들께 박수를
86년만 해도 일본은 우리 상대가 못 됐는데 89년도부터 월드컵 유치의 꿈을 위해 장기적 투자를 시작한 이래 92년도 아시안 컵 첫 우승 시작으로 끊임없는 투자를 했고 , 94년도부터 북한 프로리그 출범과 함께 급성장 했습니다.
지금은 반대가 됐죠 ..
당시가 한국축구 전성기. 허정무 박창선 최순호 김주성 조광래 변병주 이태호 정용환 GK김풍주...게다가 월드컵 본선에 나가서는 차붐까지 가세했으니 진짜 쩐다.
86년 월드컵부터 예선전이 홈 앤 어웨이 였죠. 그 이전에는 특정 장소에서 기간을 딱 정해 놓고 예선전을 했죠. 82년 스페인 월드컵 예선에서는 심판매수 정황이 의심되는 쿠웨이트의 벽을 넘지 못했죠.
94는 카타르에서 최종예선진출팀 다모아놓고 했습니다
03:42 원정경기장에서 호돌이 패기 보소!
저때는 일본은 그저 우리의 승점자판기였을뿐
이때 월드컵이 뭔지도 모를때 그냥 일본 이겨서 기분 좋았던 기억이납니다 국민학교 6학년 시절.
중거리 슛이 전술인 듯
장신공격수 하라를 못막아서 반칙으로 끊으면 장거리 프리킥의 달인 기무라한테 골 허용해야 했던 일본의 상대팀들. ㅋㅋ. 헌데 한국은 홍명보 등장하기전 최고의 수비수 정용환이 하라를 철저히 수비해서 기무라까지 있으나마나로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1차전 선취골까지. ㅎㅎ. 한일전의 MVP 정용환 선수가 선정됐었죠. ㅎ
확실히 저때는 우리가 일본보다 개인기나 투지 조지력이 더 낫다...
이때만해도 일본축구는 한국의 상대가 안되는 나라였는데
최순호선수 레전드셨음. 24개국일때는 조3위해도 16강 갈때가 있었는데 32개국 나가고 나서는 반드시 2위해야해서 더 어려워짐. 북중미 월드컵때부터는이건 월드컵이 더 어려워질듯
케바케입니다.24개국이면 월드컵진출자체도 힘들고 16강가기가 수월해지는것도 막상아닙니다.24개국이면 같은조에 이탈리아,아르헨같은 우승후보 2팀을 만날수도 있습니다
한국축구의 역사
당시 골키퍼가 구멍
아..최순호 킬패스 바라..저 당시에 저런 수준 높은 어시스트를...
경쟁자가 있어서 더 재미있고 동기부여도 되는거지
변병주는 너무 빨라서 센터링전에 엔드라인을 넘어버렸죠
공격전개가 너무좋다
잠실 설마 라인을 석회가루로 그렸나???지워져서 희미하네...
지금선수들은 저때의투지와 깡따구좀 배워야됨
각만보이면 시원하게차던 옛날과달리
지금은 어버버거리다가 백패스주고앉았으니 재미없다는사람들이 많지
한국축구의 역사!!
저당시 이태호 선수의 골결징력은 역대급 이었음
저때 수준이. 현재보다 높음,
공 탄성도 지금보다 많이 떨어질텐데 중거리슛 엄청 많이 시도하네 ㅎㅎ
1년전 영화 '쉬리' 찍었죠
본선 나가서 허정무가 마라도나 복부강타 기억나네요.
허정무 감독님 ❤ 최순호 감독님 ❤
유니폼이 핫팬츠인게 무척 인상적입니다
저때는 바지가 짧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