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돈카를로스의 심하게 초상화를 보고 엘리자베트가 사랑했을거라고 생각하시는데..실제로는 곱추에 가문의 특유한 주걱턱이 너무 심해서 음식먹기 불편할 정도였고 다리길이도 좌우가 많이 달라 심하게 절었다고 합니다...이성으로 사랑하기는 힘들었을거예요..선량한 사람이라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는 편이 말이 되요
그 어느편보다 푹 빠져보게 되네요 스페인 편 인물그림 먼저 등장할땐 다른 소개없이도 아 스페인 왕가구나 싶을정도로 저같은 사람도 알정도로 스페인왕가의 유전은 유~명한듯요 ᆢ 그리고 다른분 댓처럼 저도 바로 사도세자가 생각나더군요 능력있고 장수한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부족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고 일찍 죽게되는 과정이나 어딘가 비슷한 참 슬프고 그런 ᆢ ᆢ 아트인문학의 여러 세계사 역사ㆍ문화 얘기는 마치 영양가 있으면서도 맛있기까지 한 간식을 나만의 냉장고에 채워놓고 아끼면서 순서대로 아끼며 꼭꼭 씹으면서 먹는 느낌으로 표현하고싶네요^^ 우연히 알게 되어 요새 푹 빠져있어요 인물들의 초상화며 유럽 여러나라를 넘나들며 연관있는 인물들 조사까지 어쩜 짜임새있게 정리해서 소개 하시며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매번ㅇ감탄하고 갑니다 덕분에 즐겁게 보고 편하게 지식도 쌓여갑니다 감사해요^^
오모나, 이건 완존히 뒤주에 갖혀죽은 사도세자의 스페인 판 이야기 아닌가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 입니다. 9:55 여기서 그가 진솔하게 고민을 털어놨던 후안데 아우스트리아가 누군가 했더니 레판토 해전(1571.10.7) 기독교 함대 최고 사령관을 맡아 오스만 투르크 해군을 대파한 명장,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였군요. 왕세자 돈 카를로스,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왕비와는 두살 어렸지만 카를 5세의 사생아였기 때문에 펠리페 2세와는 이복 형제간이였기 때문에 나이어린 숙부뻘에 해당 되었습니다. 카를5세와 오페라 가수 사이의 사생아로 출생했지만 일찌감치 혈육임을 인지한 카를 5세의 배려로 자라다가 카를 5세 사망 직전에 펠리페2세와 만나게 되고 이때 동생으로 인정 받게 됩니다. 또한 왕자에 걸맞는 예우와 대접을 해주었지만 왕위 계승권 없는 서자였기 때문에 예전상 전하가 아닌 각하 호칭으로, 서열도 왕족과 귀족 사이에 위치를 받았고 그정도 예우를 해주었습니다. 원래 부왕 카를 5세와 펠리페2세는 정치적 고려 때문인지 돈 후안이 신부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장성하면서 점차 군사적재능과 흥미를 보여 일찍부터 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처음에는 꺼려했던 필리페2세도 그의 높은 신분과 군사적 재능이 꽤 쓸모있다고 판단하여 차츰 중책을 맡기면서 지중해 일대 스페인 해군의 총 사령관 지위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그가 레판토 해전 총사령관을 맡았을때 약관 27세에 불과했지만 절대 전면전을 벌이지 말라는 펠리페2세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연합함대에 착임하자마자 총공격을 단행하였고 대승을 거둬 급격히 성장하는 오스만 투르크 해군의 지중해 패권 장악 시도를 격파하고 이후 50년 이상 오스만 해상세력, 해적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기질이 호방해서인지 전장에서 항상 최전선에서 진두 지휘를 선호하는 스타일이였으며 일개 병사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리고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가 지휘하는 스페인 군 장병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였다고 합니다. 정식 호칭이 각하였음에도 병사들은 어느덧 전하로 호칭하면서 왕자로서 응대했었고 뛰어난 전공 덕분인지 펠리페 2세도 이런 불경스러운 행동을 묵인해주었다고 합니다. 동년배여서 왕세자 돈 카를로스, 엘리자베트 왕비와 셋이 서로 잘 어울려 지냈고 특히 돈 카를로스는 비록 두살 어리지만 숙부이기도 하고 실전 경험으로 훨씬 더 성숙한 돈 후안과 격의 없이 대화하던 사이였었는데 본문 내용대로 저지대에 가있을때 현지 반란 세력과 동조하면서 부왕 펠리페 2세에 대한 반역을 도모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고지하였고 이후 돈 카를로스가 비참하게 사망했을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로 계속 스페인 군의 사령관으로서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군무에 몰두하다가 티푸스로 병사했을때 고작 31살에 불과했으니 재능에 비해 요절했다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왕위 계승 문제 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후환을 없애기 위해 펠리페 2세가 그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ko.wikipedia.org/wiki/%EB%8F%88_%ED%9B%84%EC%95%88_%EB%8D%B0_%EC%95%84%EC%9A%B0%EC%8A%A4%ED%8A%B8%EB%A6%AC%EC%95%84
엘리자베트는 아마 돈 카를로스를 남매나 유일한 친구처럼 여겼나봐요. 남편이 아닌 남자와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남편은 나이 차이도 나고 왕이니 무서운 존재, 궁정 사람들은 아무리 잘 해준대도 타국 사람들. 하지만 돈 카를로스는 동갑내기에 매년 남편이 될 존재로 들으며 자라 낯설지 않았을 거고, 사실상 이해받지 못한는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었겠죠. 돈 카를로스도 엘리자베트도 살아서 나이를 좀 더 먹고 각자의 가정을 평화롭게 이룰 수 있었다면 친구로서 오래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실러 원작 오페라는 참 좋아하긴 하는데요, 얘가 걔란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들면 좀 많이 깨고, 실소가 나서 힘들어요ㅋㅋ 제 생각엔 엘리자베스가, 자꾸 가족이 죽었잖아요. 아버지도 오빠도 일찍 죽고, 카를로스를 동갑이지만 챙겨줘야 하는, 프랑스에 두고 온 동생들처럼 생각했나 본데, 그렇게 죽어서 너무 불쌍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펠리페는, 권한을 누구에게 떠맡기는 성격이 아니긴 한데, 재상이나 왕세자에겐 맡기지 않으면서 그노무 알바에겐 전권을 맡기고 참 누구나 알바를 싫어할 수밖에 없죠 뭐. 그리고 엘리자베스 죽고 나선 안나랑 결혼하지 말았어야죠. 돈 카를로스도 근친혼 결과인데 또 조카딸이랑 결혼하다니, 우리 조상님들은 단일민족이어도 근친혼 피하고 옆 마을과 혼인하든가 해서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정작 많은 민족 피가 섞인 유럽에서 근친혼이 가장 짙게 나타난 게 참 아이러니하죠.
돈 카를로스가 엘리자베트 왕비를 사랑했다고 하는 데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돈 카를로스가 새어머니였던 엘리자베트 왕비를 잘 따른 건 맞았지만 사랑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돈 카를로스가 강력한 호감을 보낸 인물은 따로 있었는데, 사촌이자 또 다른 약혼녀였던(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펠리페 4세의 네번째 아내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안나입니다. 돈 카를로스는 약혼 후보들 중에서 안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안나의 초상화를 마음에 들 때마다 들여다보았고, 심지어 스페인을 빠져나가 오스트리아로 가 안나와 결혼할 계획까지 세웠었습니다.
영상 중 년도가 잘못되어 바로 잡습니다 4:57 1965년은 1565년입니다
다들 돈카를로스의 심하게 초상화를 보고 엘리자베트가 사랑했을거라고 생각하시는데..실제로는 곱추에 가문의 특유한 주걱턱이 너무 심해서 음식먹기 불편할 정도였고 다리길이도 좌우가 많이 달라 심하게 절었다고 합니다...이성으로 사랑하기는 힘들었을거예요..선량한 사람이라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는 편이 말이 되요
네 저도 연민에 좀 더 가까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펠리페의 인내심이 대단하네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합니다.
펠리페도 참 대단하죠? 감사합니다~
펠리페는 아버지로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 문제는 제일 맘아픈 일인거 같아요
네 그렇죠. 펠리페도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지만 참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영조대왕도 똑같이 어리석은 아들을 죽였다
@@kellyyoo6096사도세자와 돈 카를로스가 같다고 생각하나? 사도세자는 원래 총명하고 정상인이었으나 아버지의 욕심이 망친 인물이고 돈 카를로스는 원래부터 정신병에 기형에 폭력적인 유전병자였다.
스페인판 사도세자 빼박이네요. 잼있게 보았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실이 무언지
너무 슬픈일 이네요
어쩜 이리도 감칠맛 나게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시는지요
사도세자 생각이 스치네요 ᆢ
네 정말 사도세자가 떠오르죠.
에고..누굴 탓하겠어요~~ 역사는 멀리서 볼때와 가까이 볼때가 많이 다른것 같아요. 특히
뒷 이야기는 들을수록 마음 아프구요.
잘 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는 역사와 가까이서 보는 역사가 많이 다르다... 참 공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기다렸어요
네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교수님^^ 즐거운세계사 입니다
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스페인의 사도세자 라고해도 되나요? 돈 카를로스얘기 잘 들었습니다.돈 카를로스도 엘리자베트도 참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네요.다음 이야기 메리 스튜어트도 기대됩니다~
네 딱 맞는 표현이죠. 스페인의 사도세자....
너무 재미나서 끊을수가없네요.
참 놀라운 이야기죠^^
그 어느편보다 푹 빠져보게 되네요
스페인 편 인물그림 먼저 등장할땐 다른 소개없이도 아 스페인 왕가구나 싶을정도로 저같은 사람도 알정도로 스페인왕가의 유전은 유~명한듯요 ᆢ
그리고 다른분 댓처럼 저도 바로 사도세자가 생각나더군요
능력있고 장수한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부족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고 일찍 죽게되는 과정이나 어딘가 비슷한 참 슬프고 그런 ᆢ
ᆢ
아트인문학의 여러 세계사 역사ㆍ문화 얘기는 마치
영양가 있으면서도 맛있기까지 한 간식을 나만의 냉장고에 채워놓고 아끼면서 순서대로 아끼며 꼭꼭 씹으면서 먹는 느낌으로 표현하고싶네요^^
우연히 알게 되어 요새 푹 빠져있어요
인물들의 초상화며 유럽 여러나라를 넘나들며 연관있는 인물들 조사까지 어쩜 짜임새있게 정리해서 소개 하시며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매번ㅇ감탄하고 갑니다
덕분에 즐겁게 보고 편하게 지식도 쌓여갑니다
감사해요^^
비유도 쏙속 이해되게 아주 찰지시네요^^ 즐겁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아~ 재밌다.
감사합니다~
5분 정도 시청한듯 한데 벌써 끝이라니 ㅠㅠ 영상 엄청 빨리 올려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집중해서 보셨군요. 감사합니다~
해설~~넘 재밌어요
무조건 구독~~
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귀에 쏙쏙 들어와요 넘 잼있어요👍
^^ 감사합니다~
옛날옛날 ~ 세계사 이야기 잼나게 금요일밤이 무르익습니다 ^^ 새해에도 건강하고 복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새해 좋은 일들과 함께 하세요
영상이 빨리 올라와서 반갑네요.
항상 아주 재밌게 이야기 해주셔서 애청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도세자가 떠오르네요
네 스페인의 사도세자입니다
@@art.humanities 그래도 사도세자보다는 덜 비참하게 죽은 것 같네요. 적어도 아빠가 굶겨죽이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유폐만 시켰잖아요...
그래도 펠리페2세가 영조보단 낫네요.
방에 가두고 밥도 줬잖아요.
사도세자가 저랬으면 영조는 정조까지 다 찢어죽였을
펠리페는 아들 하나와 아내를 3명이나 저 세상으로 보냈네요..(더 많았는지?)
높은 지위와 부가 있어도 불행한 삶을 살았네요~
네 오스트리아 조카도 하나 더 있었죠.ㅠㅠ
펠리페가 산속에 궁전을 지은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가 가네요 오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ㅎ
네 그런 곳에서 지내는 게 편했던 사람 같죠?^^
막강한 황제 펠리페 2세도 자식 농사는 마음과 같이 되지 못하고
나이 어린 아름다운 엘리자베트까지 잃고 불행해졌네요!?
네 그게 참 사람 마음 대로 안 되더라구요.
세상에..진짜 천생연분이었나보네..불쌍해라..내가 다 마음이 아프네🥺😢
참 안타까운 인연이죠
사도세자가 생각나네요
돈카를로스왕자와 펠리페ㅠㅠ
너무 슬퍼요
네 참 슬픈 이야기죠 ㅜㅜ
넘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와 저도 나름 세계사 좋아하고 공부했다고 생각하는데, 엘리자베트와 돈 카를로스의 이런 뒷이야기는 생각도 못했네요 너무 슬퍼요😢 그리고 메리 스튜어트 이야기를 해주신다니ㅠㅠ 진짜 감동입니다!!!!! 기다릴게요 교수님❤❤
네 참 슬프죠. 메리 스튜어트 이야기도 곧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교수님 혹시 그 자리에 계셨어요? 너무 생생하네요. 이건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증언입니다.
그런가요? 역사에선 한 줄로 간단히 다루는 대목도 여러 자료들을 읽다 보면 상황들이 조금씩 그려집니다^^
결혼하면 부인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아들은 미쳐버리고 펠리페의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네요
네 펠리페로서는 가혹한 운명이라고 느꼈을 거 같네요.
문제아는 없고 문재부모만 있다고 했는데.... 펠리페가 며느리만 제대로 줬어도 아들래미는 마누라 말 잘 듣고 잘 컸을텐데.... ㅠㅠ
네 그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요~
어느 왕실이나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빠지지않네요
어떻게 같은 해에 출생해 같은 해에 사망까지 했을까요
스코트랜드의 메리라면 블러드메리인가요
기대됩니다
참 애잔한 사이죠. 메리가 참 많습니다. 블러드 메리는 엘리자베스의 언니구요. 이번 메리는 스튜어트 가문의 메리입니다.
엘리자베스영왕때. 단두대에 죽은사람일겁니다
어쩜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 왕비가 진정한 인연이지 아니었을까. 엘리자베트와 혼인을 하였다면 온달과 평강공주처럼 그가 그래도 좀 더 인간답게 살수도 있지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드네요.
참 안타까운 운명이었습니다.
오모나, 이건 완존히 뒤주에 갖혀죽은 사도세자의 스페인 판 이야기 아닌가요. 참 재미있는 이야기 입니다. 9:55 여기서 그가 진솔하게 고민을 털어놨던 후안데 아우스트리아가 누군가 했더니 레판토 해전(1571.10.7) 기독교 함대 최고 사령관을 맡아 오스만 투르크 해군을 대파한 명장,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였군요. 왕세자 돈 카를로스,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왕비와는 두살 어렸지만 카를 5세의 사생아였기 때문에 펠리페 2세와는 이복 형제간이였기 때문에 나이어린 숙부뻘에 해당 되었습니다. 카를5세와 오페라 가수 사이의 사생아로 출생했지만 일찌감치 혈육임을 인지한 카를 5세의 배려로 자라다가 카를 5세 사망 직전에 펠리페2세와 만나게 되고 이때 동생으로 인정 받게 됩니다. 또한 왕자에 걸맞는 예우와 대접을 해주었지만 왕위 계승권 없는 서자였기 때문에 예전상 전하가 아닌 각하 호칭으로, 서열도 왕족과 귀족 사이에 위치를 받았고 그정도 예우를 해주었습니다. 원래 부왕 카를 5세와 펠리페2세는 정치적 고려 때문인지 돈 후안이 신부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장성하면서 점차 군사적재능과 흥미를 보여 일찍부터 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처음에는 꺼려했던 필리페2세도 그의 높은 신분과 군사적 재능이 꽤 쓸모있다고 판단하여 차츰 중책을 맡기면서 지중해 일대 스페인 해군의 총 사령관 지위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그가 레판토 해전 총사령관을 맡았을때 약관 27세에 불과했지만 절대 전면전을 벌이지 말라는 펠리페2세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연합함대에 착임하자마자 총공격을 단행하였고 대승을 거둬 급격히 성장하는 오스만 투르크 해군의 지중해 패권 장악 시도를 격파하고 이후 50년 이상 오스만 해상세력, 해적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기질이 호방해서인지 전장에서 항상 최전선에서 진두 지휘를 선호하는 스타일이였으며 일개 병사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리고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가 지휘하는 스페인 군 장병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였다고 합니다. 정식 호칭이 각하였음에도 병사들은 어느덧 전하로 호칭하면서 왕자로서 응대했었고 뛰어난 전공 덕분인지 펠리페 2세도 이런 불경스러운 행동을 묵인해주었다고 합니다. 동년배여서 왕세자 돈 카를로스, 엘리자베트 왕비와 셋이 서로 잘 어울려 지냈고 특히 돈 카를로스는 비록 두살 어리지만 숙부이기도 하고 실전 경험으로 훨씬 더 성숙한 돈 후안과 격의 없이 대화하던 사이였었는데 본문 내용대로 저지대에 가있을때 현지 반란 세력과 동조하면서 부왕 펠리페 2세에 대한 반역을 도모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고지하였고 이후 돈 카를로스가 비참하게 사망했을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로 계속 스페인 군의 사령관으로서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군무에 몰두하다가 티푸스로 병사했을때 고작 31살에 불과했으니 재능에 비해 요절했다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왕위 계승 문제 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후환을 없애기 위해 펠리페 2세가 그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ko.wikipedia.org/wiki/%EB%8F%88_%ED%9B%84%EC%95%88_%EB%8D%B0_%EC%95%84%EC%9A%B0%EC%8A%A4%ED%8A%B8%EB%A6%AC%EC%95%84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궁금해 자세히 찾아보셨네요. 출처까지 남겨주시니 감사합니다. 독자 분들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네요.
👍🏻 월화수목금금 올려주세요
건강보단 영상이죠 ㅋㅋㅋㅋㅋ
ㅎㅎ 많이 기다려 주시는 마음 강력하게 전해집니다
과거에 서양이나 동양이나 여성은 아이를 낳는 도구였다는게 슬픈일이네요. 왕세자를 낳아야만 했던 엘리자벳 몸도 약한데 계속 임신해야만 했고 펠리페는 그녀가 죽고서도 아들 낳기위해 또 결혼해야했겠죠. 참 그 유전자가 뭐라고...
네 그러게요. 유전자라는 게 참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죠.
아버지가 약혼자를뺏다니!!
저 시대 10대시절부터 출산만 반복하다 요절하는 여인네의 운명은 신분고하를 막론하네요 ㄷㄷ 가엾. 얼마나 무서웠을까
네 왕가 사람들 인데 참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죠ㅜㅜ
뒤주에 죽엇던 사도세자 떠오르네요;;;
많이 비슷한 사례네요
엘리자베트는 아마 돈 카를로스를 남매나 유일한 친구처럼 여겼나봐요. 남편이 아닌 남자와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남편은 나이 차이도 나고 왕이니 무서운 존재, 궁정 사람들은 아무리 잘 해준대도 타국 사람들. 하지만 돈 카를로스는 동갑내기에 매년 남편이 될 존재로 들으며 자라 낯설지 않았을 거고, 사실상 이해받지 못한는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었겠죠. 돈 카를로스도 엘리자베트도 살아서 나이를 좀 더 먹고 각자의 가정을 평화롭게 이룰 수 있었다면 친구로서 오래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불행한 가정사에 슬프고 애틋한 사이였네요
결국 일국의 공주란 타국에 볼모나 다름 없는 신세로 팔려가 그 나라 왕의 아이만 줄창 낳아주다가 언제 죽어도 이상치 않을 그런 존재로군요. 어쩐지 돈까를로스가 엘리자베트를 데려가버린듯한 이 느낌...뭘까요? 그녀의 인연은 펠리페가 아닌 돈까를로스였던걸까요???
네 공주란 정략결혼의 도구에 불과했죠 ㅠㅠ 두 사람이 보통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영화였다면 실화를 많이 각색했다고 생각할 만큼 모두의 삶과 운명이 비극이군요. 아버지 펠리페도 참 기구하고요.
엘리자베트.. 그런 광기를 보이는 사람에게 끝까지 애정을 보이다니... 정말로 사랑했던 걸까요.
네 누가 그럴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애정이엇죠.
가여운 돈 카를로스.. 전 상냥한 엘리자베트가 돈 카를로스를 사랑보다는 동정했다고 생각 합니다.
네 착해서 그랬을 겁니다
타이틀을 바꿔야 겠네요ㅜㅜ
어떤 타이틀을 바꿀까요?
부모의 그늘이 너무 크고 본인이 그만한 그릇이 안될때 . ^^;;
비극이 일어나는듯. 특히 가계의 유전적 저주까지...^^;;;;;;
네 정말 그렇네요. 너무 원칙주의인 아빠를 만나 더 힘들었습니다
돈 카를로스의 초상화를 보면 '발기'한 듯 사진이 있는데, 저게 실제 저런 장면을 그린건지 아니면 조롱인지 그 어떤 곳에도 알 수가 없네요. 혹시나 아시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조금 이상하다 보고 있었는데요. 당시 왕족들 의상에 저 부위를 편하게 하기 위해 공간을 만들어두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런 것의 일종이 아닐까 합니다^^;
그당시 복식 형태입니다
넘 불행한 왕자 기구하내~
펠리페2세 일생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아내복 자식복이 참 없었네요;;:
아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아들들도 참 변변치 않고... 가족복이 없는 사람 같아요
네 그렇습니다. 가족 복이 참 없었죠
1965년에 돈 카를로스가 20세가 되엇다는 자막이...ㅜㅜ
ㅠㅠ 네 정신줄을 잠시 놓았네요.. 정정 내용 댓글에 남겨두었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가 연상되네요. 물론 사도세자와 정순왕후는 서로 무시하는 사이였다는 거 말고는.....
네 정말 많이 비슷하죠. 둘 다 엄청난 비극입니다.
오타 1965년이라니요
04분 57초
목소리는 돌아왔는데 정신줄이 아직 안 돌아왔나 봅니다^^ 친절하게 시간도 적어주셨네요. 댓글에 정정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해에 죽었다면 두 사람이 인연은 인연이었나보네요. 그냥 순리대로 결혼시키지 ㅉㅉ
네 인연이 있어 보이죠. 그리고 안타까운 인연입니다
실러 원작 오페라는 참 좋아하긴 하는데요, 얘가 걔란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들면 좀 많이 깨고, 실소가 나서 힘들어요ㅋㅋ 제 생각엔 엘리자베스가, 자꾸 가족이 죽었잖아요. 아버지도 오빠도 일찍 죽고, 카를로스를 동갑이지만 챙겨줘야 하는, 프랑스에 두고 온 동생들처럼 생각했나 본데, 그렇게 죽어서 너무 불쌍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펠리페는, 권한을 누구에게 떠맡기는 성격이 아니긴 한데, 재상이나 왕세자에겐 맡기지 않으면서 그노무 알바에겐 전권을 맡기고 참 누구나 알바를 싫어할 수밖에 없죠 뭐.
그리고 엘리자베스 죽고 나선 안나랑 결혼하지 말았어야죠. 돈 카를로스도 근친혼 결과인데 또 조카딸이랑 결혼하다니, 우리 조상님들은 단일민족이어도 근친혼 피하고 옆 마을과 혼인하든가 해서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정작 많은 민족 피가 섞인 유럽에서 근친혼이 가장 짙게 나타난 게 참 아이러니하죠.
혈통이 뭔지요^^ 다른 가문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이 그런 안 좋은 전통을 낳았습니다.
애당초 엘리자베트의 짝이 돈 카를로스가 아닌가 싶네
둘이 결혼했다면 둘다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듯
그러다 보니 둘이 인연이 있었던 거 같다고 합니다.^^
다윗도 아들한테 당했는데....권력앞에선 부자관계도 다 허상....
돈 카를로스가 엘리자베트 왕비를 사랑했다고 하는 데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돈 카를로스가 새어머니였던 엘리자베트 왕비를 잘 따른 건 맞았지만 사랑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돈 카를로스가 강력한 호감을 보낸 인물은 따로 있었는데, 사촌이자 또 다른 약혼녀였던(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펠리페 4세의 네번째 아내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안나입니다. 돈 카를로스는 약혼 후보들 중에서 안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안나의 초상화를 마음에 들 때마다 들여다보았고, 심지어 스페인을 빠져나가 오스트리아로 가 안나와 결혼할 계획까지 세웠었습니다.
네 역사적으로 분명 논란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마음에 관한 거라 사료가 없어서 상상의 영역이 필요한데요. 문학적으로는 예외없이 카를로스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니 그런 부분을 반영했습니다^^
펠리페2세의 이복동생이 그렇게나 아이돌외모에 유능했다고 하던데...그래서 왕세자랑 비교도 많이되고.
돈 후안이 국민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죠.^^
아들도 불쌍하고 아버지도 불쌍하고 왕비도 불쌍한. 역사.
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모두가 불쌍해지는 이야기입니다.
1965년?
네 익숙한 년도가 가끔 튀어나옵니다^^;
약간,,, 사도세자 같은...
네 정말 비슷하죠
진짜 나쁜 펠리페 2세
참 비극적인 가족사죠...
역사를 잘보면 과거나 현재나 서양이됫던 동양이됫던 사람사는거 생각의 흐름이...별반 다름이 없다고느껴저요. 어쩌면 저도 지금이대로 중세를 살게된다면 문학하는 여인은 무슨! 저또한 마녀사냥같이 당하지말란법도 없었겠지요.
이런 저런 구속도 더 많고 먹고 살기 힘든 참 어려운 세상이었을 거 같네요.
곳츄모자는 적응안됨
펠리 ㅔ가 잘못했네 그렇게 결혼한 게
ㅎㅎ 잘못했죠
1965년은아니거가튼데!
네 년도가 틀렸네요^^;
돈 카를로스의 광기를 너무 미화시켰네요
실상은 상상을 초월했지요.
근친결혼의 폐해로 싸이코패스보다 더 심한 괴물이 되었죠
다음번에 좀 더 자세히 사실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세요
미화할 의도는 없었는데 그렇게 느끼셨나 봅니다. 저는 괴물까지는 아니고 여러 만행을 저질렀던 불쌍한 인간으로 봅니다.
에리자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