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3만 쯤 되면 저 시절엔 어지간한 대도시가 아니곤 수용이 불가능하니 숙영밖에 답이 없는데, 숙영을 하면 당연히 방어시설이 없으니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적인 건축장비와 방어장비들도 필요하고, 얕은 물이라도 건넌다 치면 안전한 도하를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제대로 된 길이 없다면 기초적인 벌채장비도 있어야함....
또 저만한 군세가 진군하려면 길도 잘 봐야함. 어느정도 너비가 되서 앞뒤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안되고 숙영할 만한 넓은 땅도 있어야하고 중간중간 물보급을 위한 강도 있어야하고 수레를 끌만큼 길 상태도 양호해야하고..... 저런 조건들 생각하니 매번 비슷한 곳으로만 진군하는 수밖에
태조 왕건 스트리밍에서도 댓글에서 2천 혹은 5천 대군이라는 묘사에 그게 어떻게 대군이냐면서 중국이나 삼국지 속 군대규모 같은 거 엄청 운운하는데 솔직히 중국이 규격 외인 거지, 일반적으로 영상에서도 말했다시피 1천 이상만으로도 충분히 대군인 건 맞다. 보통 1만 이상 단위가 나오려면 징집병까지 박박 긁어모아야 나오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
이게 사람들이 전국 7웅 국가 멸망빵 총력전이나 소설 삼국지에 개념 밥말아먹혀서 그런듯 ㅋㅋㅋㅋㅋㅋ 조선보다 인구 두배 많았던 일본에서도 전국시대 전 영주 총출동 클라이막스가 양쪽 합쳐서 30만이 안되었는디 조선 인구 3분의 1정도 되었을 후삼국시대 지방 호족따리가 수천명이면 대군맞죠. 그 시대 둑스니 뭐니하는 유럽 대영주들 병력이 그정도 되었을까 말깐디
동서양 모두 어디서 봐도 눈에 잘 띄는 깃발들과 큰 소리를 내는 관악기&타악기로 신호체계를 만들어 운용해왔습니다. 특히 깃발을 담당하는 병사는 부대 안에서도 전투경험이 많고 오래 살아남은 정예들이 담당했죠. 또한 지휘관이 정확히 명령 신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눈과 귀가 밝은 베테랑들을 지휘관의 곁에 가까이 두었습니다.
참고로 고수전쟁과 고당전쟁에서 나오는 중국 측 병력은 거의 뻥튀기가 없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고구려도 15만정도의 군대는 동원한 것으로 보이구요. 물론 주필산에서 전부 갈렸다고는 하는데, 혹자는 주필산에서 전부 다 죽은 건 아니고 약 10만정도는 후퇴에 성공해 그 병력이 안시성에서 싸웠던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실제 전투에서 10만 v 10만 할 때 실제로 얼굴 맞대고 교전하는 인원은 많아야 30~40%, 개무리하면 50~60%인 몇 만 내외, 이 중에서 죽거나 다치는 인원은 어지간해서 많아야 얼굴 맞대는 인원들 중 20~30% 정도란 점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기도 함. 한 쪽 또는 양 쪽이 지면 ㅈ되기때문에 패배를 상정하면 안되는 위치에 있거나, 배수진같은 특수한 상황인 경우 많으면 70%까지도 투입하니 사상자도 이에 맞춰 늘어남. 즉, 당대 전투의 평균적인 사상자는 총 참여자의 15~20% 정도였으며 이들 중 1/2~1/3 정도가 전사자가 됨. 평균의 전투에서 평균의 중대(100명으로 가정)는 전사자 5~7명, 부상자 10~13명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며 이 비율은 현대전에서도 얼추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음. 보통 이정도의 피해를 입는다면, 대부분의 경우엔 적의 동급 부대에 맞서 싸울 전투력을 기대할 수 없음. 얼핏보면 80~85% 정도가 살아있으니 작은 피해가 아닐까? 싶겠지만, 눈앞에서 사람 죽어나가는걸 실시간으로 보고 전장에서의 엄청난 소음과 불안감/공포에 노출되는게 심리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크고(이런 경험 단 1~2번 만으로 PTSD를 평생앓는 케이스가 셀 수 없이 많음), 부상자들을 위한 후송인력 소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멸 직전 쯤으로 평가됨. 사상자를 보고 전투 양상 유추도 가능한데, 사상률이 일반의 범주를 넘어섰다면 한쪽이 압도적으로 밀려 퇴각에 실패했거나, 저항이 극심했거나 양쪽 다 지면 ㅈ되는 쪽이라 밑천 다털어 싸웠다던 등 지독한 전투였다는 증거가 됨. 1차대전기 이전의 전투에서 사상률이 25~30%를 넘어갔다면 기본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에서도 정말 말도안되는 인세지옥이 벌어졌다는 것임. 모든 부대가 항상 평균의 피해를 입는게 아니므로(최전선 병력들은 후방 병력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기 떄문) 특정 대대들은 말 그대로 몇 명 남지도 않고 증발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임. 나폴레옹 전쟁기 전투 중 가장 끔찍하게 평가되는 보로디노 전투가 사상률이 30%를 넘었었음(양측 30만 중 10만 가까이 전사상). 근대 이전에는 이 정도 피해를 입으면 퇴각이 강제되었지만, 근현대 이후엔 이런 피해를 메꿀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기 때문에 (철도 등 이동수단 + 엄청나게 발전한 행정과 전산 + 유선전화와 전보 등을 통한 통신 딜레이의 극적인 단축 등) 연인원 대비 사상률이 50%를 넘어가는 말도 안되는 전투들이 등장하게 됨. 특히 1차대전 참호전 시기나 2차대전 독소전 등 양쪽 모두 퇴각이 매우 어렵고, 꼴아박는 대로 빠르게 보충할 수 있던 전장의 경우에는 특정 시점에 살아있는 사람보다 전장에 굴러다니는 시체의 수가 더 많은 기막히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음.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췄고 심지어 포위전 양상을 띄어서 사상자 후송이 불가능했던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가 가장 극단적인 예시임. 전장 종심이 엄청 깊어지게된 1차대전기 이전까지는, 최전선에서 얼굴 맞대지 않는 나머지 절반 이상의 부대들은 예비대로 어디 짱박혀있거나 행군(기동)만 존나게 하면서 적군은 커녕 몇 km 거리의 희뿌연 연기속에서 화약 소리만 잔뜩 들리는 전장만 구경하고 간간히 날라오는 길 잃은 포탄에 고개 몇번 숙이다가 전투가 끝났음. 물론 간간히 적 엽병이나 기병들같은게 본진털이 뛰러와서, 걔내들한테 일제사 한두번 먹여주는 심심한 이벤트는 종종 있었음. 실제 사례 중 하나로 7.3만 v 6.8만 (+ 4만)으로 싸웠던 워털루 같은 경우도 실제로 라에상트, 몽생장같은 최전선에서 서로 물어뜯고 싸운 인원은 만약 지면 ㅈ되는 프랑스 쪽이 약간 무리하게 5만, 영/란쪽은 많아야 3.5만 정도였음. 후반에 진입한 프로이센 쪽은 비교적 높은 비율인 3만 정도(전투 시점의 군규모 자체가 매우 작은 편이고, 긴급한 상황이었으니 투입비율이 높음)가 교전에 참여함. 결국 5만 정도를 전투에 써버리고(이중에 죽거나 다친건 2만 정도), 프로이센 쪽이 합류하면서 전장 병력비도 1:1.5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속에서 남은 1/3도 사기를 잃어버리고 예비대가 오링난 프랑스의 패배로 끝남. 물론 여기서 프랑스군이 다 항복한건 아니고 그루시가 지 똥 지가 치우러오면서 패잔병 재편하고 철수는 할 수 있었음. 이런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 전투에서 양쪽이 진짜 밑바닥까지 털어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함. 이 전투에 사활을 걸지 않았다면 총 인원의 3분의 1 정도만 사기를 잃어도 후일을 생각해서 과감하게 빼는게 다반사임. 졌다는 걸 인지하는 시점이 늦으면 늦을수록 퇴각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100명 중 70명이 멀쩡할 때 사기 잃은 20여명을 데리고 도망가는게 그나마 쉬운 편이지, 30명만이 멀쩡할 때 도망치고 있는 60여명을 엄호하는건 존나게 어렵다는 걸 생각해보면 됨. 후자의 경우 엄호고 자시고 간에 남은 30명도 조직력 없는 패잔병으로 전락할 위험이 큼.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말 그대로 군 하나가 패잔병 수습 전까지 증발하기때문에 지휘관들이 제일 경계하는 일이었음. 그리고 추가적인 이유로, 사기를 잃은 전투원들은 지휘관이 뭐라뭐라 떠들든 어쩌든 실제로 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건 이미 수백 수천차례의 전투동안 명백히 검증된 사실이라 더더욱 지휘관들이 말로만 독전하지 결국 후퇴각 칼같이 잡을 수 밖에 이유가 되었음. 사기를 완전히 잃었지만 집에 처자식 보고싶어하며 생존의지는 명확한 수백~수천명 상대로, 지휘관 몇 명이 전열 흔들린다고 흔히 삼국지에서 그러듯 누구 본보기로 목따는게 제정신 박힌 지휘관이면 가능할까? 조금 지나서 총알 날아들 시점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뒤통수에 총알박힐텐데 어떤 병신 쏘가리가 그런 짓을 함. 장교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보호받을 수 있는건 그나마 좀 배운 놈이 있어야 자기들도 살아나간다는 믿음이나 전우애 때문이지, 얄랑한 계급장 때문이 아님. 이런 배경때문에 병사 100명 중 총/칼맞아 죽거나 병걸려 죽거나 어디 잃어서 오는건 많아야 10~20명, 나머지 75~80명이 멀쩡히 살아돌아오는 현실적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군대가 나름 출세의 방법이자 돈벌이 도박 중 하나였던거임. 동네 형이나 아재들 10명이 군대가서 그 전쟁이 일단 이기든 지든 1~2명 정도만 못돌아오거나 다리 없는채로 돌아오고(이런 상이군인들은 경제가 매우 험난할게 불보듯 뻔했던 지라 보통 동네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도움을 주었음. 같이 전장 나갔던 동네 귀족 장교가 하인으로라도 고용해주거나, 전우였던 동네 친구들끼리 약탈해온 돈 조금씩 모아서 작은 가게라도 차려주던 식으로.) 나머지가 어느정도 약탈품 들고오면서 잘 풀리면 장교로 인생 피거나 보통은 동네 골목대장 정도는 할 수 있는 서전트같은 부사관되어서 돌아옴. 게다가 피튀기는 전장 갔다온 것 자체가 당대에는 상남자 인증이었기 때문에 가오가 살아서 충분히 매리트 있게 보였겠지. 만약 흔한 편견처럼 진짜 10명 가서 과반수가 죽어오는게 일상 다반사였으면 그 누구도 군에 출세 따위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반증됨. 당대에도 이런 인식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있었고, 예시 중 하나로 프리드리히 척탄병 행진곡 가사 중에 “모든 총탄이 쉽게 사람을 맞힌다면 왕들은 어디서 그들의 군사들을 모았겠는가!”가 그 인식과 당대 전투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임. 삼국지연의처럼 수십만 대 수십만이 붙어서 수십만이 죽었다같은 건 현실에서 매우 보기힘들고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인건 사실인데다 이런 이유로 전멸을 한참 넘어 섬멸 수준의 타격을 입힌 칸나이 같은게 전세계 사관학교에서 수천년동안 줄창 나오는거고, 기존의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 손실을 보여준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이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참사로 기억되는 거임. 보통 원정 실패하면 상술했듯 많이 일어야 30% 선에서 끝나는데 러시아원정은 60만으로 출발해서 모스크바 찍을 때 20만, 다시 안전지대로 돌아올 때 약 5~6만 정도 남은게 당대에는 전혀 납득못할 피해였던 거임. 이런 이유로 군사학 제1법칙은 바로 모스크바를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란 농담이 생겼음. 대부분의 경우 러시아원정에서 겨울에 엄청난 손실을 본걸로 알지만, 실제로 죽거나 이탈한 사람들은 7~9월 여름시기의 수인성 질병이 대부분의 원인임. 콜레라같은 걸로 거의 30만이 죽거나 이탈했음. 겨울도 추위 따위로 잃은 것보다, 지나치게 길어진 보급로를 러시아군이 때리는게 훨씬 위협적이었음.
대군이라고 무조건 좋은게 아니죠. 대군일 수록 하루에 먹어치우는 군량의 양이며 싸는 배설물의 양까지. 게다가 식수는 또 어디서 구하구요. 대군일 수록 보급에 취약하고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대군이라 해도 한 공간에 투입될 수 있는 병력의 숫자는 제한적이라 막는 입장에선 그저 성안에서 죽어라 막기만 하면 적은 얼마 못가서 와해되기 마련이죠.
반지의제왕 장면 나무위키 읊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확한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작: 로한 기병 "6천", 모르도르군 "수만", 하라드군은 로한군 "3배", 기타 "많음" 영화: 장면 구상 당시 모르도르군 5만으로 잡고 견적을 냈으나, 평원이 영 비어보여서( ua-cam.com/video/7gHpvMv53yE/v-deo.htmlsi=pU5NWLLl-uhrbamm&t=145 ) 결국 오크 20만으로 늘려서 연출함. ( ua-cam.com/video/7gHpvMv53yE/v-deo.htmlsi=Doqq8ifd_-d4AQYW&t=789 ) 즉 저 장면에서 보이는건 기병 6천과 오크 20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통계수 내는 방법은 대부분 전체를 격자 단위로 나눈 다음에, 격자 몇개를 표본 추출해서 각 격자당 숫자를 세고 그 평균을 전체 숫자로 곱하는 방법을 씁니다. 그게 그 시점 기준 인원이죠. 그리고 각자 일정한 계수를 곱해서 연인원을 산출합니다. 즉 해당 시점에 와있는 사람 말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 숫자보정을 하는거죠. 얼마전 선생님들 연석시위 같은건 일정인원이 일정시간만 있다가 갔으니까 이런 것이 필요없지만, 촛불시위 같은 이 시간에는 있다가 저 시간에 없는 경우가 문제가 되죠. 그래서 경찰추산 인원과 주최측 추산인원이 차이가 나는게 이래서 그렇습니다. 좀 더 흔하게는 여름철 해수욕장 피서객 숫자 같은게 그런식으로 계산됩니다. 물론 현실에는 (특히 관광객 같은 경우에는) 좀 더 가라가 섞이는...
@@우끼끼아니 잘못한건 아닙니다. 이시간대는 있다가 저시간대는 없는. 촛불시위경우 뭐 그런 오차란게 큰 집단인건 맞는데, 그 오차 잡겠다고 시위측에서 제시한 참석인원 분석이 기가 막혀서 욕먹을만 했거든요. 그 시위측 추산의 추산법은 시위날자에 시위장소에서 내린 지하철, 버스승객들을 전부 합치기였답니다. 비판받을만해요.
단순히 산수만 해봐도 1만 병력을 1m단위로 5열 종대로 세워도 길이만 2km에 육박하죠. 실제로 사람이 고지에서 전체 병력을 조망하더라도 1만 단위가 넘어가는 병력 규모는 육안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희의 외교담판에서 소배압이 수만의 병력을 끌고와서 수십만 대군으로 뻥카를 치는게 통했던거구요.
역사공부할때 하도 대륙에서 끌고오는 인원이 몇십만에서 100만명을 10년마다 준비 시킨 기록 보다가 게임이나 영상에서 고작 몇만명 그러는데도 끝이 안보이는걸 보면 100만명이나 준비시킬수있는 대륙은 진짜 뭐 하는 동네냐 먹고 재우고 장비 입히는걸로도 한반도 몇십년은 풍족하게 살겠다
이 방법이 실제로 시위할 때 인원수 예측하는데 쓰이는 방법이랑 비슷합니다 특정 구역의 시위대 수를 보고 인원을 판단하는데 그래서 경찰측 추산 몇만명, 시위대측 추산 몇만명해서 어느 지역을 보고 추산을 했냐에 따라 전체 인원수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짱깨들 백만대군 진짜 까마득하네 여기에 보급부대까지 하면 진짜 어지럽네
참고로 언론에서 추정할때는 면적에따라 계산합니다 예를들어 밀집도가 높다면 가로세로 1m공간에 사람 2명씩 서 있다가정하면 가로세로 100m인 공간에 2만명이 설 수 있습니다. 게임은 무장을하고 긴 무기를 들고있어서 실제보다 밀집도가 높아보이는 것 같습니다. 실제 시위나 응원시에는 저것보다 밀집도가 훨씬 높습니다
토탈워를 해보면 5천명만 되도 바글바글하다는걸 깨달음.. 토탈워를 해본자만이 옛날 수만, 수십만 병력이 죽고 피가 강을 만들었다 할때 "진짜 그랬을지도.." 하면서 고개 끄덕일듯 ㅋ 근데 한번에 29만 7천명 미국보낸 을지문덕은 어캐햇노 시발려나! 마! 니 토탈워좀 치나?
사실 이론적으로 1만명은 100m×100m 운동장에 무조건 들어감. 왜냐하면 1만은 100의 자승이니까. 10만명도 아마 들어가긴 할 거임. 다만 훈련이 충분하지 않다면 지휘관의 말 한 마디에 수백, 수천 단위의 압사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 만약 앞으로 가라고 명령하면 공기 중 음파의 속도 때문에 병사들이 명령을 듣는 속도가 다르니까 먼저 명령을 들은 뒷사람에게 앞사람이 깔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봄. 고대의 전쟁에서 군기(flag)가 매우 중요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됨 이 병력들은 핵 한 방이면 모두 없이 증발함 그리고 데시벨의 정의식대로 계산해보면 10만명이 각자 속삭이는 소리(30db)로 말해도 합쳐지면 80데시벨임
역사책만 제대로 봐도 대강은 알 수 있음..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입할때 전투병력과 보급병력 포함 300만 이상을 출정시키는데만 40여일이 걸림.. 즉 첫번째 부대가 출발하고 40여일이 걸려서야 마지막 부대가 전쟁터로 떠날 수 있었음~~~ 당시 고구려 전체 남자 인구보다 많은 적군을 몰살해서 수천의 잔존병력만 살아서 수나라로 돌아가게 한 을지문덕 장군과 고구려의 선조님들.. 돌아간 수나라 양제는 농민 반란을 진압할 군사력도 없어서 수나라는 망했고, 농민들은 수나라 양제가 너무나 싫어서 양제의 무덤을 파묘하고 물을 채워서 호수로 만들어버림... 이게 바로 고구려의 힘!!! 이랬던 나라가 지금 전시작전권도 남의 나라 손에 있는 나라가 되 버렸음...
수송병 병력은 전투병력의 x2~x3 여야 함 식량, 의료용, 무수히 많은 칼(칼 이라는 특성상 생각보다 쉽게 무딤 이 상태에서 서로 갑옷까지 쳐 입었으니.....) 수장 x 수장을 시키려면 강을 막아 놔야 하는데 당시 그런 기술력은 없음 패주해서 사기가 땅으로 떨어짐+강을 건너면서 속도가 느려짐 보급병들이 겁 먹고 대열 안 지키고 마구잡이로 이탈하면서 피해가 확산 했을 가능성 100%
10만 대군중에 실제 전투병은 2만~3만 언저리다 대부분이 보급 부터 후방관련으로 서포트 안해주면 저 2~3만명 전투력도 순식간에 약해진다 특히 전선이 길어지면 이 비율이 더 심해짐 알면 알수록 영상의 군단 보면서 하.. 저걸 어케 먹이고 장비채워주냐...? 생각이 먼저난다
저 어느 시위는 일본에서 아베 총리 때 징병제 도입 반대 시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컷 안에는 5000명 내외 정도 모여있지만 총리 공관 앞에 대로에 양 옆으로 사람이 꽉차 있어 실시간 동시 시위자는 3만에서 4만 그리고 시위현장에 나온(들어갔다 나가고한 인원)까지 다 합치면 12만 쯤 될 겁니다. 우리나라 시위 관련 언론보도들도 그런 점에서 숫자가 심히 들쭉날쭉하지요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제대로 훈련도 안하고 바로 징병해서 보내고 보는 군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십만 근대도 부지기 수였죠... 보급도 기본보급은 본국에서 보내기는 하지만 부족분은 현지보급에 기대게 되었고요. 근데 재미있는건 이런 군대가 패배할 상황이 오면 대부분의 군인들은 그냥 탈출해 버립니다. 죽는 숫자보다 탈출하는 숫자가 많을겁니다. 그중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일부는 산적이 됩니다. 그래서 전쟁터지면 산적이 대규모로 늘어나죠. 조선이후 시대로 넘어오면서 화약무기보급이 시작되죠. 화약무기는 현지보급이 불가능한 무기이니 보급의 중요성이 급증합니다. 그러면서 관리 가능한 군인의 숫자가 급감하죠.. 조선중기 넘어가면 10만 군대 동원하는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고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가능한 보급의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군인의 숫자도 같이 늘어나죠. 그러면서 2차세계대전가면 몇백만씩 동원하는 상황이 재현됩니다. 거기에 고대시대 몇백만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군대로 몇백만이요..
유럽 걔네는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빽빽한 숲이 대부분인데다 언덕,산이 겁나많고 도로나 수운업도 발달이 잘 안되있어서 장원 체제아래에서 수만개의 고립된 공동체로 분리되어있었음. 나중에 중세 말 ~ 르네상스 그 때되서도 알프스이북은 거의 다 공국에 남작 백작 공작들이 쪼매씩 다스리고 있었으니.. 거긴 분쟁이 일어나도 목적이 약탈임 동아시아쪽은 수백만 수천만 민족이 다 통합국가를 세웠으니.. 그냥 멸망전이지 서로
근데 역사 공부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인데 중국에서 숫자는 마음으로 보는 거임ㅋㅋ 9척이라는 게 몇 cm 인지 계산하는 게 아무 의미 없음. 정말 딱 그 cm다 라는 게 아니라 덩치가 컸다라는 말인 거라ㅋㅋ 백만 대군도 많다라는 말을 한 거지 정망 백만명이다 라는 뜻은 아닐 거임 물론 중국인 만큼 정말 많은 숫자였기는 하겠지만
중국은 거기에 특유의 허세도 심해서 공식기록이나 회의도 죄다 눈치껏 올려치고 깎았다는 설도 있음. 특히 난세인 삼국시대때 이게 극심해서 5만 원군 보내주세요 하는건 사실 2만 쯤 보내주면 고맙겠는데요 하는 거고 4만 보내줄께 하는건 1만 정도 보내는게 한계니 이걸로 비벼봐... 식으로요. 다만 집권국가가 되면 재정 통계가 중요해지니 수 당 기록 등은 믿어보는게 맞겠죠.
팩트 : 원나라 몇 만 군사에게 거하게 털리고 난 뒤 피식민지배, 명나라라고 하는 통일왕조에겐 알아서 굽신, 조공국으로 들어감, 청나라에게 깝치다가 몇 만 군사에게 수도 따이고 강화도 따이고 남한산성 따여서 사실상 속국으로 들어감. 중국왕조가 한민족 계열 국가들 상대로 인해전술 펼친 건 고구려 말기때나 6.25 전쟁뿐이였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기어들어갔지.
수나라 100만대군은 솔직히 구라임 원래 중국쪽 사서가 뻥카가 심함 삼국사기 기록도 어처피 중국기록 고대로 배낀거라 똑같음 그냥 생각해봐도 말이안되는게 전투병력이 100만이면 보급부대만해도 최소 200만인데 100만명이 먹을 식량 거기에 200만명이 갈때 되돌아 올때 식량 단순히 생각해도 500만인분인데 거기에 소 말 먹이까지 생각하면 어우...그것도 건장한 성인남성 300만빠지면 농사는 누가지음
수나라는 팩트가 맞음. 중국 사서가 뻥카가 심한건 맞는데 상식적으로 백만으로 뻥카하면 오히려 백만군대 막아낸 고구려가 고평가되는데 중국 역사학자애들이 그렇게 할것 같음? 수나라는 실제로 백만대군을 동원했을 확률이 높은거임 그래서...실제로 너무 많은 남자가 죽어서 휘청거리다 순식간에 그 큰 나라가 멸망한거고
수십만이 한맵에 모여 전역을 펼치는 게임이면... 거의 rts급으로 전장 규모가 커져야할듯?? 하지만 지금 토탈워 방식에서 맵 규모를 2~3배 늘리면 또 그 규모의 전투뽕을 만들수도 있을지 모름.. 하지만 특정지역에서의 전투는 현실적으로 양 병력이 20만이나 모이면 다행일듯
동양이 수만 수십만 대군씩 회전을 하고 그랬던 것은 1. 노동집약적인 쌀문화권으로 인구가 많음 2. 중앙집권적인 왕정 사회로 뭉쳐서 뽑을 수가 있음 3. 순수 병력이 아닌 보급+수행원+상인까지 데리고 가서 비전투 인원까지 적음 4. 특유의 과장된 기록(동아시아권 특징), 실제론 2~5배까지 부풀려서 적은 경우가 다반사 5. 기둥허리까지 뽑아서 싸우는 동아시권의 고유한 특징으로 항상 '총력전' 태세 서양은 1. 밀농사로 인해 생산성이 딸림(비료, 구아노, 품종개량 3가지 조건이 없었으니). 그래서 인구가 많지 않았음.(소빙기에 페스트까지 오니 인구가 박살) 2. 봉건적 사회로 서로 뭉쳐지지 않음.(왕은 귀족중 대표자인거지 봉신들이 꼭 말을 들은건 아님. 자신의 영지 방위가 더 중요했고 왕은 그 권위를 존중해야만 했음.) 3. 국가, 국경의 개념이 희박한 시대. 가문(클랜)끼리 통혼으로 섞여지는 혈통 등으로 인해 서로 전투보다는 정치질로 영토를 삼켰음. 전쟁(영지전)은 최후의 수단 4. 병력을 주 병력만 정확하게 표기함. (기사의 경우 대략 5명의 시종이 붙는데 이들은 전투인원임에도 불구하고 편제에 포함이 안되었음. 기병도 마찬가지였고, 보급병+주보상인들도 전혀 포함안시켰기 때문에 부풀리기가 x) 5. 싸워도 겉에서 보기엔 영지전, 내전 수준에서 끝나기 때문에 1대전 이전까진 국가적 총력전x. 적장이나 기사를 잡아도 같이 티타임하면서 누가 이길지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전투? 전투가 끝나면 가문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고 병사들은 운이 없으면 노예로 팔려나갔음
옛날 고수전쟁에서 113만의 군대와 보급행렬까지 합쳐서 그 첫머리와 마지막이 400km 규모였답니다. ;;; 정신나간 규모고 중간에 이탈도 많았을 겁니다. 실제 전쟁에 참여한 군대는 60~70만정도였을 것이고요. 근대 고구려도.... 30만 정도의 대군을 동원했을 거라고 하니. 당시의 전쟁이 말이 안되는 규모였던 거죠.
ㅅㅂ 머리위에 1랩인거 보고 ㅈㄴ 웃었네
? 그거 내가 한거 아님 원본임 ㅅㅂ ㅋㅋㅋㅋ
뭔소리인지 설명좀
@@정재우-e1i 토탈워 유닛 경험치 시스템 중에 1랭크가 저거임 ㅇㅇ
@@우끼끼 저게 원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재우-e1i 4:52 육군 노래로 나온 장면에서, 머리 위에 있는 저 표시가 토탈워에서는 유닛이 처음 태어났을 떄 시작하는 1레벨 표시
진짜... 와... 전쟁을 수행하는 위대한 장수도 대단하지만 병참을 완벽히 지원하는 행정, 보급관들 당신들은 정녕... 엑셀도 없던시절... 존경 스럽습니다.
ㄹㅇㅋㅋ
그러네
시대 최고의 장군들은 야전사령관 형태 말고도 최고위 행보관 형태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네
사실 고대~중세기의 전쟁은 기발한 전략보다는 병참으로 시작해서 병참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어떻게 보면 현대전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김유빈-h6m그런 최고위 행보관의 대표적 인물이 하후돈 ㅋㅋㅋㅋ
우리나라의 행정보급관이라는 단어 자체가 진짜 이상한 것 같음...
'행정'과 '보급'은 절대적으로 하사관 따위가 할 일이 아님.
무조건 승진이 보장된, 유능한 장교가 해야 할 임무인 것을...
이러니깐 군수가 중요하다는 거죠...
1만명이 먹을 식량, 깨끗한 식수, 분뇨 처리, 숙소문제, 무기를 보존하기 위한 기름, 피복류, 그걸 옮길 수레, 그걸 구입하기 위한 재정력. 저 인원이 사용할수 있는 급료.
와 1만명이 저렇게 보니 군수 .. 진짜 ..장난 없겠내 ..
손자병법에서도 하루에 천금이 들어간다고 했죠
2만,3만 쯤 되면 저 시절엔 어지간한 대도시가 아니곤 수용이 불가능하니 숙영밖에 답이 없는데, 숙영을 하면 당연히 방어시설이 없으니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적인 건축장비와 방어장비들도 필요하고, 얕은 물이라도 건넌다 치면 안전한 도하를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제대로 된 길이 없다면 기초적인 벌채장비도 있어야함....
또 저만한 군세가 진군하려면 길도 잘 봐야함.
어느정도 너비가 되서 앞뒤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안되고 숙영할 만한 넓은 땅도 있어야하고 중간중간 물보급을 위한 강도 있어야하고 수레를 끌만큼 길 상태도 양호해야하고..... 저런 조건들 생각하니 매번 비슷한 곳으로만 진군하는 수밖에
@@소래가-s3h등애 이새킨 도대체...
저게 실제 전쟁터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저들이 모두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란 것.
때문에 저 정도의 병력을 차출하려면 병력 수 X 5-6배의 인구가 있어야 함.
어 이분은
헐;; 이분 그분 맞음??
찐이다...
*30배 40배는 있어야 함 생산활동을 할 인구를 모드 징집하면 나라전체가 마비됨 중세시대 큰전투도 많아봤자 전 국민 대상으로 1퍼센트에서 2퍼센트 징집했음
@@승준-s3d 생각해 보니 맞네요. 감사합니다.
태조 왕건 스트리밍에서도 댓글에서 2천 혹은 5천 대군이라는 묘사에 그게 어떻게 대군이냐면서 중국이나 삼국지 속 군대규모 같은 거 엄청 운운하는데 솔직히 중국이 규격 외인 거지, 일반적으로 영상에서도 말했다시피 1천 이상만으로도 충분히 대군인 건 맞다. 보통 1만 이상 단위가 나오려면 징집병까지 박박 긁어모아야 나오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
보통 중세 유럽에서 4만에서 5만이면 진짜 국력 다 털어서 몰빵하는 최대치 전력이라고 하던데
그 영화 트로이에서 아가멤논이 그리스의 5만 대군이라고 할때를 보면, 그떄 5만은 아마 폴리스 몇개치 국력 오오린 한 수준일듯
@@닉네임꼭설정해야함 ㅇㅇ 맞음. 그리스 연합군이라 미케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여러 그리스 폴리스 국가들이 각자 군대 끌고 참전했던 것
이게 사람들이 전국 7웅 국가 멸망빵 총력전이나 소설 삼국지에 개념 밥말아먹혀서 그런듯 ㅋㅋㅋㅋㅋㅋ 조선보다 인구 두배 많았던 일본에서도 전국시대 전 영주 총출동 클라이막스가 양쪽 합쳐서 30만이 안되었는디 조선 인구 3분의 1정도 되었을 후삼국시대 지방 호족따리가 수천명이면 대군맞죠. 그 시대 둑스니 뭐니하는 유럽 대영주들 병력이 그정도 되었을까 말깐디
@@유튜브까마귀근데 그건 중국이나 동양이랑 비교어려운게 걔네는 직업군인 개념이고 동양쪽은 그냥 징병개념이라 수는 당연히 차이나도 질적으로 떨어짐
저걸 1인칭으로 라디오나 무전기 없이 지휘한 그 시절 장군들은 대체...
그래서 지휘관들은 옷을 더 화려하게 입거나 투구나 모자 위에 병사들이랑 구분되는 장식을 달아서 누가 지휘관인지 구분하게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깃발 많이썼죠.
동서양 모두 어디서 봐도 눈에 잘 띄는 깃발들과 큰 소리를 내는 관악기&타악기로 신호체계를 만들어 운용해왔습니다. 특히 깃발을 담당하는 병사는 부대 안에서도 전투경험이 많고 오래 살아남은 정예들이 담당했죠. 또한 지휘관이 정확히 명령 신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눈과 귀가 밝은 베테랑들을 지휘관의 곁에 가까이 두었습니다.
농담으로 이순신 장군님은 북치기 장인이라는 말이 있죠 ㅋㅋ
맞부딪히고 난전되면 지휘고 뭐고 못함 그래서 로마군이 대열유지에 존나게 강조한거고
토전사에서 말한적 있음… 전투병은 한 2만에 보조 지원 심지어 군대 따라다니는 상인들까지해서 한4만이고 대충 올려치기해서 10만 ㅋㅋㅋㅋ 근데도 이것도 엄청 많은거라고.. 쌀문화권이 인구가 많아서 그렇지 서양에선 5만만 모아도 국가 총동원 한타임..
한국인이 생각하는 국경 느낌인가 ㅋㅋ 서양이랑 동양은 확실히 다르네
참고로 고수전쟁과 고당전쟁에서 나오는 중국 측 병력은 거의 뻥튀기가 없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고구려도 15만정도의 군대는 동원한 것으로 보이구요. 물론 주필산에서 전부 갈렸다고는 하는데, 혹자는 주필산에서 전부 다 죽은 건 아니고 약 10만정도는 후퇴에 성공해 그 병력이 안시성에서 싸웠던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수나라는 보급능력을 초과해 너무 많아서 실패했죠. 당나라처럼 이삼십만 동원해서 여러 번 치는 게 더 효과적이었고 결국 고구려도 무너졌으니..
뻥튀기가 없는게 아니라, 그냥 학계에서는 생각하는걸 포기함. 걍 많았다는 뜻으로나 해석하는게 현실적이란 결론임
백만대군 어떻게 동원하냐. 나라 망한다
@@LongsleepingBear실제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 여파로 수나라 망함 ㅋㅋㅋ
@@LongsleepingBear나라 망한다(망함)
우리가 옆나라가 중국 일본이라서 규모에 대한 상식이 좀 이상함
전근대부터 육지로는 백만 단위로 밀고오고 해상에서도 10만 단위로 드랍오는 놈들이 이웃나라다 보니..
그냥 동아시아가 죄다 몇십 만이 평타라는 미쳐버린 중국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동원력 기준이 인플레 되어버림. ㅋㅋㅋ
심지어 기록상으로만 따지면 전국시대 때부터 10만 단위임
그야말로 "인해전술" 그 자체인 나라 ㅋㅋㅋㅋㅋ
@@alldhf 뻥튀기 주작임
@@asadaea실제로임 춘추전국시대 중국인구가 3천만명
실제 전투에서 10만 v 10만 할 때 실제로 얼굴 맞대고 교전하는 인원은 많아야 30~40%, 개무리하면 50~60%인 몇 만 내외, 이 중에서 죽거나 다치는 인원은 어지간해서 많아야 얼굴 맞대는 인원들 중 20~30% 정도란 점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기도 함. 한 쪽 또는 양 쪽이 지면 ㅈ되기때문에 패배를 상정하면 안되는 위치에 있거나, 배수진같은 특수한 상황인 경우 많으면 70%까지도 투입하니 사상자도 이에 맞춰 늘어남. 즉, 당대 전투의 평균적인 사상자는 총 참여자의 15~20% 정도였으며 이들 중 1/2~1/3 정도가 전사자가 됨.
평균의 전투에서 평균의 중대(100명으로 가정)는 전사자 5~7명, 부상자 10~13명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며 이 비율은 현대전에서도 얼추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음. 보통 이정도의 피해를 입는다면, 대부분의 경우엔 적의 동급 부대에 맞서 싸울 전투력을 기대할 수 없음. 얼핏보면 80~85% 정도가 살아있으니 작은 피해가 아닐까? 싶겠지만, 눈앞에서 사람 죽어나가는걸 실시간으로 보고 전장에서의 엄청난 소음과 불안감/공포에 노출되는게 심리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크고(이런 경험 단 1~2번 만으로 PTSD를 평생앓는 케이스가 셀 수 없이 많음), 부상자들을 위한 후송인력 소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멸 직전 쯤으로 평가됨.
사상자를 보고 전투 양상 유추도 가능한데, 사상률이 일반의 범주를 넘어섰다면 한쪽이 압도적으로 밀려 퇴각에 실패했거나, 저항이 극심했거나 양쪽 다 지면 ㅈ되는 쪽이라 밑천 다털어 싸웠다던 등 지독한 전투였다는 증거가 됨. 1차대전기 이전의 전투에서 사상률이 25~30%를 넘어갔다면 기본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에서도 정말 말도안되는 인세지옥이 벌어졌다는 것임. 모든 부대가 항상 평균의 피해를 입는게 아니므로(최전선 병력들은 후방 병력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기 떄문) 특정 대대들은 말 그대로 몇 명 남지도 않고 증발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임. 나폴레옹 전쟁기 전투 중 가장 끔찍하게 평가되는 보로디노 전투가 사상률이 30%를 넘었었음(양측 30만 중 10만 가까이 전사상).
근대 이전에는 이 정도 피해를 입으면 퇴각이 강제되었지만, 근현대 이후엔 이런 피해를 메꿀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기 때문에 (철도 등 이동수단 + 엄청나게 발전한 행정과 전산 + 유선전화와 전보 등을 통한 통신 딜레이의 극적인 단축 등) 연인원 대비 사상률이 50%를 넘어가는 말도 안되는 전투들이 등장하게 됨. 특히 1차대전 참호전 시기나 2차대전 독소전 등 양쪽 모두 퇴각이 매우 어렵고, 꼴아박는 대로 빠르게 보충할 수 있던 전장의 경우에는 특정 시점에 살아있는 사람보다 전장에 굴러다니는 시체의 수가 더 많은 기막히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음.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췄고 심지어 포위전 양상을 띄어서 사상자 후송이 불가능했던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가 가장 극단적인 예시임.
전장 종심이 엄청 깊어지게된 1차대전기 이전까지는, 최전선에서 얼굴 맞대지 않는 나머지 절반 이상의 부대들은 예비대로 어디 짱박혀있거나 행군(기동)만 존나게 하면서 적군은 커녕 몇 km 거리의 희뿌연 연기속에서 화약 소리만 잔뜩 들리는 전장만 구경하고 간간히 날라오는 길 잃은 포탄에 고개 몇번 숙이다가 전투가 끝났음. 물론 간간히 적 엽병이나 기병들같은게 본진털이 뛰러와서, 걔내들한테 일제사 한두번 먹여주는 심심한 이벤트는 종종 있었음.
실제 사례 중 하나로 7.3만 v 6.8만 (+ 4만)으로 싸웠던 워털루 같은 경우도 실제로 라에상트, 몽생장같은 최전선에서 서로 물어뜯고 싸운 인원은 만약 지면 ㅈ되는 프랑스 쪽이 약간 무리하게 5만, 영/란쪽은 많아야 3.5만 정도였음. 후반에 진입한 프로이센 쪽은 비교적 높은 비율인 3만 정도(전투 시점의 군규모 자체가 매우 작은 편이고, 긴급한 상황이었으니 투입비율이 높음)가 교전에 참여함. 결국 5만 정도를 전투에 써버리고(이중에 죽거나 다친건 2만 정도), 프로이센 쪽이 합류하면서 전장 병력비도 1:1.5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속에서 남은 1/3도 사기를 잃어버리고 예비대가 오링난 프랑스의 패배로 끝남. 물론 여기서 프랑스군이 다 항복한건 아니고 그루시가 지 똥 지가 치우러오면서 패잔병 재편하고 철수는 할 수 있었음.
이런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 전투에서 양쪽이 진짜 밑바닥까지 털어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함. 이 전투에 사활을 걸지 않았다면 총 인원의 3분의 1 정도만 사기를 잃어도 후일을 생각해서 과감하게 빼는게 다반사임. 졌다는 걸 인지하는 시점이 늦으면 늦을수록 퇴각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100명 중 70명이 멀쩡할 때 사기 잃은 20여명을 데리고 도망가는게 그나마 쉬운 편이지, 30명만이 멀쩡할 때 도망치고 있는 60여명을 엄호하는건 존나게 어렵다는 걸 생각해보면 됨. 후자의 경우 엄호고 자시고 간에 남은 30명도 조직력 없는 패잔병으로 전락할 위험이 큼.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말 그대로 군 하나가 패잔병 수습 전까지 증발하기때문에 지휘관들이 제일 경계하는 일이었음.
그리고 추가적인 이유로, 사기를 잃은 전투원들은 지휘관이 뭐라뭐라 떠들든 어쩌든 실제로 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건 이미 수백 수천차례의 전투동안 명백히 검증된 사실이라 더더욱 지휘관들이 말로만 독전하지 결국 후퇴각 칼같이 잡을 수 밖에 이유가 되었음. 사기를 완전히 잃었지만 집에 처자식 보고싶어하며 생존의지는 명확한 수백~수천명 상대로, 지휘관 몇 명이 전열 흔들린다고 흔히 삼국지에서 그러듯 누구 본보기로 목따는게 제정신 박힌 지휘관이면 가능할까? 조금 지나서 총알 날아들 시점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뒤통수에 총알박힐텐데 어떤 병신 쏘가리가 그런 짓을 함. 장교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보호받을 수 있는건 그나마 좀 배운 놈이 있어야 자기들도 살아나간다는 믿음이나 전우애 때문이지, 얄랑한 계급장 때문이 아님.
이런 배경때문에 병사 100명 중 총/칼맞아 죽거나 병걸려 죽거나 어디 잃어서 오는건 많아야 10~20명, 나머지 75~80명이 멀쩡히 살아돌아오는 현실적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군대가 나름 출세의 방법이자 돈벌이 도박 중 하나였던거임.
동네 형이나 아재들 10명이 군대가서 그 전쟁이 일단 이기든 지든 1~2명 정도만 못돌아오거나 다리 없는채로 돌아오고(이런 상이군인들은 경제가 매우 험난할게 불보듯 뻔했던 지라 보통 동네에서 이런저런 식으로 도움을 주었음. 같이 전장 나갔던 동네 귀족 장교가 하인으로라도 고용해주거나, 전우였던 동네 친구들끼리 약탈해온 돈 조금씩 모아서 작은 가게라도 차려주던 식으로.) 나머지가 어느정도 약탈품 들고오면서 잘 풀리면 장교로 인생 피거나 보통은 동네 골목대장 정도는 할 수 있는 서전트같은 부사관되어서 돌아옴.
게다가 피튀기는 전장 갔다온 것 자체가 당대에는 상남자 인증이었기 때문에 가오가 살아서 충분히 매리트 있게 보였겠지. 만약 흔한 편견처럼 진짜 10명 가서 과반수가 죽어오는게 일상 다반사였으면 그 누구도 군에 출세 따위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반증됨. 당대에도 이런 인식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있었고, 예시 중 하나로 프리드리히 척탄병 행진곡 가사 중에 “모든 총탄이 쉽게 사람을 맞힌다면 왕들은 어디서 그들의 군사들을 모았겠는가!”가 그 인식과 당대 전투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임.
삼국지연의처럼 수십만 대 수십만이 붙어서 수십만이 죽었다같은 건 현실에서 매우 보기힘들고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인건 사실인데다 이런 이유로 전멸을 한참 넘어 섬멸 수준의 타격을 입힌 칸나이 같은게 전세계 사관학교에서 수천년동안 줄창 나오는거고, 기존의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 손실을 보여준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이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참사로 기억되는 거임. 보통 원정 실패하면 상술했듯 많이 일어야 30% 선에서 끝나는데 러시아원정은 60만으로 출발해서 모스크바 찍을 때 20만, 다시 안전지대로 돌아올 때 약 5~6만 정도 남은게 당대에는 전혀 납득못할 피해였던 거임. 이런 이유로 군사학 제1법칙은 바로 모스크바를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란 농담이 생겼음.
대부분의 경우 러시아원정에서 겨울에 엄청난 손실을 본걸로 알지만, 실제로 죽거나 이탈한 사람들은 7~9월 여름시기의 수인성 질병이 대부분의 원인임. 콜레라같은 걸로 거의 30만이 죽거나 이탈했음. 겨울도 추위 따위로 잃은 것보다, 지나치게 길어진 보급로를 러시아군이 때리는게 훨씬 위협적이었음.
그래서 칸나이전투가 개쩌는 거였군요. 한니발 ㄷㄷ
살수대첩 개꿀~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원래 그래서 30%인가? 1/3인가? 전체의 그 정도가 전투불능 빠지면 그 부대는 전멸로 친다고 하던데
반증 방증 정확하게 구분해서 쓰는 사람 거의 처음보네 개추 ㅋㅋㅋㅋㅋ
대군이라고 무조건 좋은게 아니죠. 대군일 수록 하루에 먹어치우는 군량의 양이며 싸는 배설물의 양까지. 게다가 식수는 또 어디서 구하구요. 대군일 수록 보급에 취약하고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대군이라 해도 한 공간에 투입될 수 있는 병력의 숫자는 제한적이라 막는 입장에선 그저 성안에서 죽어라 막기만 하면 적은 얼마 못가서 와해되기 마련이죠.
고구려 침략한 수양제가 딱 그랬지...
보통 군대를 이끌때 기본적인 보급을 생각해서 데려가긴함... 대군일수록 가져가는 물자도 많고, 보급로 호위에 차출할 병력도 여유가 생김
정말 작정하고 갈아넣으면 보급로가 없는 수성전이 말라죽을 수 밖에없긴함
수나라가 백만대군을 동원했을때 최소 30만이 전투병력이고 나머진 보급부대란 말이있음
@@GGamngHori그건 기록마다 다릅니다 몇몇 기록에는 수나라 전투병력이 113만명 이고 기타 보급 부대들이 200만이 넘었고 총 합쳐 300만이 넘는 병력이 고구려를 침공했다는 기록들도 꽤 많습니다
@@GGamngHori팩트는 수나라가 전투 병력 100만명 이상 동원한거 자체는 팩트임 그때 수나라 인구상 못할 일도 아니고
반지의제왕 장면 나무위키 읊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확한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작: 로한 기병 "6천", 모르도르군 "수만", 하라드군은 로한군 "3배", 기타 "많음"
영화: 장면 구상 당시 모르도르군 5만으로 잡고 견적을 냈으나, 평원이 영 비어보여서( ua-cam.com/video/7gHpvMv53yE/v-deo.htmlsi=pU5NWLLl-uhrbamm&t=145 )
결국 오크 20만으로 늘려서 연출함. ( ua-cam.com/video/7gHpvMv53yE/v-deo.htmlsi=Doqq8ifd_-d4AQYW&t=789 )
즉 저 장면에서 보이는건 기병 6천과 오크 20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헐 개추
진짜 전장을 고증하려면 명령전달시간 개념을 넣을수도 있겠습니다.
부대에 명령을 내릴때, 장군 위치 기준으로 부대의 거리가 멀수록 버퍼링을 넣어서, 저 맵 끝에 보내놓은 부대는 이동 클릭하면 10초 후에 반응한다던지 하는식으로
그거 뭔가 익숙한...ㅋㅋㅋㅋ
어느 시대 전쟁을 구현하느냐에 따라 다를 거 같은데, 고대 전쟁 같은 경우에는 전령을 통해 명령이 하달되서 재미대신 현실성만 고려하면 장군 근처 유닛을 다른 부대에 보내서 반응한는 식으로 하는 게 맞을거 같네요.
근대시대까지만 해도 같은 전령을 여러명 나눠서 시간별로 축자투입했죠. 가다가 총이나 포탄 맞고 죽는게 다반사라...
사실 근대근처까지만 가도 전투는 모두 장군이 한눈에 볼 수 있는곳에서만 일어났으니 명령내리는곳이 높고 잘 보이는곳일수록 깃발이나 소리 봉화같은걸로 명령체계가 신속해질 순 있어도 게임이 더럽게 어려워질것 같은데요
@@e-vac2896 그라비팀택틱스에 그런게 구현되었습니다. 병력을 옮기면 통신선을 매설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명령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프로게이머같은 클릭질을 해대면 무전이 폭주합니다.ㅋㅋㅋㅋㅋ
이런 영상 볼 때마다 나치독일이랑 소련은 미친놈들이란 걸 체감함. 전투 하나하나마다 백만씩 때려박고 전투 하나에서 백만이 죽은 적도 있고 60만이 포로로 잡힌 적도 있고 탱크 7천대가 터지기도 했으니...
아니 결말 고구려뽕으로 틀었다가 이걸 또 아미타이거로 트네 ㅋㅋㅋㅋㅋㅋㅋ
ㅂㅅ
유꾼! 유꾼! 유꾼!! 애미타이거 빅토리!!
근근타이거....그저 joat
69 69 69! 69애미타이거!
참고로 통계수 내는 방법은 대부분 전체를 격자 단위로 나눈 다음에, 격자 몇개를 표본 추출해서 각 격자당 숫자를 세고 그 평균을 전체 숫자로 곱하는 방법을 씁니다. 그게 그 시점 기준 인원이죠. 그리고 각자 일정한 계수를 곱해서 연인원을 산출합니다. 즉 해당 시점에 와있는 사람 말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 숫자보정을 하는거죠. 얼마전 선생님들 연석시위 같은건 일정인원이 일정시간만 있다가 갔으니까 이런 것이 필요없지만, 촛불시위 같은 이 시간에는 있다가 저 시간에 없는 경우가 문제가 되죠. 그래서 경찰추산 인원과 주최측 추산인원이 차이가 나는게 이래서 그렇습니다. 좀 더 흔하게는 여름철 해수욕장 피서객 숫자 같은게 그런식으로 계산됩니다. 물론 현실에는 (특히 관광객 같은 경우에는) 좀 더 가라가 섞이는...
귀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농담이라도 신중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일 확실한건 그시간대 각 통신사별 핸드폰 중계기를 보면 되긴 합니다
@@여름주의자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전부 자기 명의 휴대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의미없습니다.더구나 이걸 확실하게 쓰면 한명이 휴대폰 몇개 더 챙겨오는 것으로 일당십을 할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대포폰 임대사업이 신규업종으로 부상할지도 모르죠.
@@우끼끼아니 잘못한건 아닙니다.
이시간대는 있다가 저시간대는 없는. 촛불시위경우 뭐 그런 오차란게 큰 집단인건 맞는데, 그 오차 잡겠다고 시위측에서 제시한 참석인원 분석이 기가 막혀서 욕먹을만 했거든요.
그 시위측 추산의 추산법은 시위날자에 시위장소에서 내린 지하철, 버스승객들을 전부 합치기였답니다.
비판받을만해요.
@@여름주의자그시간대 중계기라고 해도 사실시위참석인원인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인지, 심지어 지하철이나 버스가 지나가는중에 잡히는것도 있을태니 바른방법은 아니라 봅니다.
저 시대면 오히려 몇십만이 더 독이될 확률이 큼 ㅋㅋ
21세기 군대도 무전기 없으면 소통이 힘든데 전근대에 100만을 통제할수가 없음.
비수대전도 100만이 소통이 어긋나서 8만한테 털린 대표적 사례
단순히 산수만 해봐도 1만 병력을 1m단위로 5열 종대로 세워도 길이만 2km에 육박하죠.
실제로 사람이 고지에서 전체 병력을 조망하더라도 1만 단위가 넘어가는 병력 규모는 육안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희의 외교담판에서 소배압이 수만의 병력을 끌고와서 수십만 대군으로 뻥카를 치는게 통했던거구요.
설정상 미나스 티리스 공성전당시
사우론은 군대는 4만5천
새오른왕의 기병대는 6천
미나스티리스 수비대는 3천입니다.
원작소설에는 여기에 사우론의 동맹군 동부인과 하라드림수천명 그리고 미나스티리스는 주종국 동맹군 수천 추가해서 공성전을 펼첬습니다.
진주성전투가 저랬겟네요.. 왜군 3만여명 .. 수비하는 조선군 3천명...
@@알보칠-x7v
공성측이 아무리 많아도 성둘래의 면적때문에 정작 공성을 하는병력은 3분의1도 안될껍니다. 병력이 많더라도 소모전하면서 성채에 병력 다 꼴을 지휘관은 별로없으니
실질적으로 조선군3천 왜군1만명남짓으로
치룬 공성전이였지요 그래서 조선이 이겼고요.
알랙산더대왕이 대단한게 3만명으로 페르시아군 10만에서 20만정도랑 싸워서 이김
@@user-kd5pp5ol9q 근데 사실 그 10만~20만 페르시아군도 정병의 숫자는 2만~3만 정도고 나머지는 징집병이라 정면회전에서 그 정예군만 없애도 모랄빵 나긴할듯
모르도르군 플러스 동맹군 조금 해가지고 10만 아니었나요? 오크만 8만으로 아는데...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다.'라는 동학 농민 운동 중 백산 대회에서 농민군 몇 천으로 작은 산이지만 산 하나를 덮어 앉으면 죽창이 보여 죽산, 서면 입고 있는 하얀 옷으로 백산이라 할 정도로 1만 병력이라는 수도 거대한 수이지요.
사실 알만한 사람은 알지만 유닛이 몇천명 이상 되면 공성전 지상전 해전 어느거든 정말 힘들다 그러나 전투 후
수많은 시체더미를 보면 왠지모르게 많은 생각이 들고 고생을 잊어버리는
무언가가 있다
주접을싸고잇노 멸돼공새끼
뭐 어디 삼국지 장수였노?
싸퍀ㅋㅋㅋㅋ
마운트 앤 블레이드 많이 하셨나보네 ㅋㅋ
토탈워하면 많이 느끼죠
삼국지에 심심하면 10만씩 나오는건 어느정도 과장이 섞여있다고 보긴 하지만, 실제로 동일면적 대비 쌀이 밀보다 생산력이 더 많아서 상대적으로 대군 유지를 위한 식령 생산에는 쌀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많은 아시아권이 더 유리하긴 했을거에요.
그건 맞는말입니다만 그당시에 중국의 주식은 조 수수 콩 등의 밭농사 위주의 곡물이였습니다
쌀이 주식이 된건 오호십육국 시대에 강남 개발 및 확장이 이뤄지면서 부터입니다 대중화 된건 송나라 이후입니다
수나라 백만대군 개구라 인정하냐??
@@ljh6463 수나라 백만대군은 사실이 맞습니다
기록이 세세히 적혀있거든요 편제와 보급등등
다만 전투병은 30만정도에 보급병이 70만명정도 됐던걸로 추산됩니다
1차세계대전 전쟁전 이렇게 많은 병사를 한국가가 투입한적은 없습니다
@@Doctor__game고구려는 대체 어떤 국가일까
@@ljh6463 수나라 백만대군은 정설임, 대규모전투에서 이토록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있는경우는 거의 유일무이한수준. 근데 100만명 동원한거때문에 나라경제 휘청거리고 100만대군 컨트롤도못해서 나라망함
예로부터 전투병력을 1로 하면 지원병력이 3정도 필요함.
100만대군 : 전투병력 25만에 지원병력 75만(보급 수송 등등)
수양제는 별동부대만 30만 보냈으니 전투병민 113만 맞을겁니다. 황제 친위대만 해도 비슷한 수인 30만이 필요했을테니
@@easeafe4re581원댓은 1:3이고 님이 말한 대로면 수양제는 3:1인데요?
@@easeafe4re581별동부대가 전투부대의 일부를 말한 건가요?
역사를 배우신건가요?@@300mm4
@@집가고싶다고요 내가 이해를 잘못한 거임? 전투병만 113만이라고 했으니 실제 규모는 400만 정도였다는 거임?
난 토탈워하면서 전쟁에 대해 깨달은것중 가장 놀라웠던게 사기의 중요성이었음. 측후방이 공격받으면 순식간에 사기털려서 도망치게되고 그럼 도미노처럼 대열이 다 무너지는게 가장 무서움. 그렇기에 상대방을 감쌀수 있을정도로 쪽수차이가 나면 답도 없는거고
괜히 밥 ㅈㄴ 잘먹이고 언플 ㅈㄴ 조지고 사기고양이랍시고 교육 ㅈㄴ 해대는 게 아님. 사기가 없으면 그냥 허수아비 모임일뿐
ㄹㅇ 기병 측면이나 후면에 잘만 꼬라박으면 바로 모랄빵남
토탈워도 게임적 재미를 위해 리더십 사기 높게 잡힌 편이죠. 보통 징집병들은 5~10%만 죽어 도 모랄빵 났다고 합니다. 100명짜리 보병 90명 남았는데 백기 올리면 겜하기 싫어지죠
@@anflada 그런 의미에서 쇼토 아시가루가 모랄이 심하게 낮긴 함 ㅋㅋㅋㅋ 부대 한 2~3개만 줘패서 모랄빵 내면 아시가루들은 다 살아있어도 모랄터져서 런치던데
현실성은 모르겠고 겜하다보면 빡치긴 함
그건 시스템을 그렇게 해둬서 그런 거고 병신아
몇 만명 모였다는 언론보도가 개구라였다는 거네ㅋㅋ
알 사람은 다 알고있던거
특정 진영이 모이면 10만명이 되는 기적 ㅋㅋ
저렇게 게임으로 보면 그런데
축구 경기장이나 콘서트때 5만명 10만명 비교하면 또 비슷해 보임
밀집도 차이가 큰듯
주로 더듬어공샨댱 찢빠들이 이빨을 많이 깜ㅜㅜ
뭉쳐있는정도가 다르잖슴
삼국지에나온 백만대군 이면 땅끝까지 사람이 안보일정도로 빽빽했다는건데..그게 보급부터 통제까지 가능한건지 의문을 가지긴했죠..아니 뭐 사람을 모았다고쳐..수저들힘 있는 남자는 다부른건데 사회가 돌아갔을런지..
참고로 펠렌노르평원 전투에서 오크 군대가 8만명, 하라드림 1만 8천명, 룬 칸드 7천명, 기타 2천명 도합 10만 7천 이었습니다. 로한의 기마대의 경우 6천명이었죠.
삼국지연의가 사람을 망친게 한두가지가 아님
게임과 현실의 원근감 체감은 매우 다름. 현실의 공간은 실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넓음. 공간이 넓을 수록 채워넣어야 하는 리소스가 ^2으로 많아지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은 실제보다 웅장해보이기 위해 여러 트릭을 씀.
침착맨같은 대형 유튜버들은 저만큼 x 100만큼 구독자가 있다는거 아니야? ㄷㄷㄷ
역사공부할때 하도 대륙에서 끌고오는 인원이 몇십만에서 100만명을 10년마다 준비 시킨 기록 보다가
게임이나 영상에서 고작 몇만명 그러는데도 끝이 안보이는걸 보면 100만명이나 준비시킬수있는 대륙은 진짜 뭐 하는 동네냐
먹고 재우고 장비 입히는걸로도 한반도 몇십년은 풍족하게 살겠다
쌀의 힘이죠 뭐
그래서 수나라가 망했죠...
고구려 멸망후에도 거둔 소득보다 손해가 커서 당시 지식인들이 뭐하러 고구려 멸망시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었죠. 고구려 멸망후 북방민족들이 고삐가 풀려서 날뛰게 되어 당나라 멸망의 원인중 하나가 된답니다.
ㄹㅇ 고구려가 유목민 억제기였는데
그게 한번 박살난 결과가
요 -> 금 -> 몽골로 이어지는 대유목시대라는 관점도 있기는 함
사실상 몽골 이전의 유목민들의 이상향은 고구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와 그럼 600만명 이상 병력을 동원한 소련은 도대체 ㄷㄷ..
응~죽여봐~또 징집하면 그만이야~
현대 전장과 고대 전장은 다릅니다
트럭은 신이다
@@82마일석티비고대? 1940년대가 고대임? ㄷㄷ 소련이라고 분명히 적어놓음 ㅈ문가 스멜
한번붙을때마다 백만명씩 붙는 전투를 수십번함 ㄷㄷ
이 채널 영상 처음보는데 댓글보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ㅋㅋㅋㅋㅋㅋ 밀덕분들이 막 정보 미친듯이 뿜어내서 허겁지겁 읽어보는중
전쟁게임하면서 느낀점: 5000명도 엄청많다
참고 중국100만대군중 실 전투병력은 많아야 70퍼 이하 그마져도 해군과 육군으로 나뉘어 왔고 그래서 실 전투병력은 최소 30만 최대 50만정도라 생각하면 편하다 그렇다
고구려는 최대 50만을 막아낸것이다
(근데 이리따지면 명량도 약133척vs 최대 13척 아닌가?)
50만 생각만해도 끔찍
1500년 전에 50만 대군이면... 진짜 미친 수준이다
그래도 조온나 많네
@@CBRN-115 근대 고구리가 전성기일때 백만의 군대가 있었다고 삼국사기에 있어서
@@Fortuna-Aesculapius 성하나에서 막는다는 전제면 극악인게 맞는
이래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아는게 정말 중요하죠..
머리로 아는것과 직접 보는게 얼마나 차이나는지
공부로 배우는건 어디까지나 현실에 기반함
이런 실험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조건에서 재미로 하는거라서 비교하기 어려움
@@unarmed_civilian다들 재미로만 봐줬으면..ㅠㅠ
특 공부안한사람만 이말함
@@우끼끼 어느시위 이러면서 조롱해놓고 재미로봐달라하네ㅋㅋ 시위참여인원 어케추산하는지도모르고ㅋㅋ
@@ajajaj736 자추 역겹노 긁?
어디서 봤던 방법으로 멀리있고 높은 곳에서 정찰할 때 양손으로 네모를 만들고 그 손 안의 병력수를 짐작하고 그걸 이용해 전체 병력수를 짐작하는 방법이 있다더군요. 그걸 생각해도 100만은 말이 안 되는거 같네요
눈대중보단 손대중으로 보는게 그나마 정확하겠네요
이 방법이 실제로 시위할 때 인원수 예측하는데 쓰이는 방법이랑 비슷합니다
특정 구역의 시위대 수를 보고 인원을 판단하는데 그래서 경찰측 추산 몇만명, 시위대측 추산 몇만명해서 어느 지역을 보고 추산을 했냐에 따라 전체 인원수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짱깨들 백만대군 진짜 까마득하네 여기에 보급부대까지 하면 진짜 어지럽네
많은 수를 셀때 원래 그런식으로 셈 우주에서 별의 갯수를 셀때도 대충 그런식이고
참고로 언론에서 추정할때는 면적에따라 계산합니다
예를들어 밀집도가 높다면 가로세로 1m공간에 사람 2명씩 서 있다가정하면 가로세로 100m인 공간에 2만명이 설 수 있습니다. 게임은 무장을하고 긴 무기를 들고있어서 실제보다 밀집도가 높아보이는 것 같습니다. 실제 시위나 응원시에는 저것보다 밀집도가 훨씬 높습니다
음... 토탈워 안해봤죠?
공성할 때 병목현상만 느껴도 밀집도가 높은 게 느껴져요.
물론 평벙하게 대형유지할 때는 시위때랑 비슷할 듯?
@@벚나무-j2w 시위 근처 지나가보신적 없으신가요?
밀집도 지립니다
중심부는 아예 못뚫고가요
@@유희왕마스터듀얼 알고있어요, 그래서 제가 병목현상이라고 조건을 달아놨잖아요
한 사람의 죽음은 슬프지만
다수의 죽음은 통계에 불과하다 - 이오시프 스탈린
토탈워를 해보면 5천명만 되도 바글바글하다는걸 깨달음.. 토탈워를 해본자만이 옛날 수만, 수십만 병력이 죽고 피가 강을 만들었다 할때 "진짜 그랬을지도.." 하면서 고개 끄덕일듯 ㅋ
근데 한번에 29만 7천명 미국보낸 을지문덕은 어캐햇노 시발려나! 마! 니 토탈워좀 치나?
되도(x) 돼도(ㅇ) 되어도(ㅇ)
되/돼 구분은 하/해 대입해서 자연스러운 거 고르면 쉬움
하도(x) 해도(ㅇ) = 되도(x) 돼도(ㅇ)
그리고 돼=되어 준말이라, 되어 넣어서 자연스러우면 돼는 가능 되는 불가능
그건 패잔병 경기병 무한추적이잖음 ㅋㅋㅋ
사기 모랄빵나서 가능했던거임 ㅋㅋㅋㅋㅋ 을지문덕성님이 대단한건 회전으로 30만명이랑 붙기 전에 30만명이 제대로 싸워도 못하고 반항도 못하게 사기가 모랄빵나게 만든거 그자체임 ㅋㅋㅋㅋㅋ
@@user-uc4px3vu6z ㄹㅇ
그리고 그 인원들이 다시 뭉칠 기회도 안 주고 끈질기게 추적해서 다 조져놓은것까지
그때 이기긴 했어도 고구려도 국력이 거덜나서 이런거 두번은 못하겠는데?란 생각합니다
실제로 또 오면 끝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나라도 타격이 큰지라 평화협정 했죠
이 전쟁 이후로 고구려는 친중국 정책을 펼쳐요
그걸 깨고 자존심을 외친게 연개소문이라 당나라가 침공한거구요
나폴레옹이 군대를 끌고 지나가면 그 지나간 곳은 똥밭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지...
바르바로사 작전 시 독일이 290만, 소련이 380만이라고 하는데... 어떤 느낌일지 감도 안오네요.
그건 현대전인 '전선' 개념이 나왔을 때 얘기라 좀 다름 ㅋㅋ 냉병기 시절 때는 원기옥 모아서 빵 쳤으니
그래서 광화문에서 백만명이 시위 했다느니 하는 말은 절대 안믿음
ㄹㅇ ㅋㅋ
예전에 경찰이 추산하던 때 집회인원 산정 방식이 다르다지만 주최측 주장이 항상 20배 이상 많았더랬죠 실제로 많은 사람이 모인건 맞지만 뻥튀기가 분명 있다고 볼 수 밖에 없긴 합니다.
경찰은 그 장소에 있던 사람만 시위인원으로 인정하고 시위대는 그 주변에 있던것도 시위에 참여한 의사가 있다고 생각해서 근처에서 인터넷을 쓰거나 구매한사람도 포함시킨다고함@@앞병-z3u
ㅅㅂ 게임 그래픽이랑 현실을 구분 못하노
@@tridish7383 무슨 유동인구들이 서명을 백만명씩이나 하냐 말이되노
100만 대군의 대부분은 후방 보급 인원들 ㅋㅋ 이건 현대전이나 과거 전쟁 때나 변한게 없음
보급 없으면 군대는 역할을 전혀 못하니...
반지의 제왕의 CG팀이 펠렌노르 평원전투에 나온 병력은 오크, 로한등등 다 합쳐서 13만이라고 했던걸 본거 같음
1:30 여기서 한명 뽑히는게 10000:1임. 800만:1보다 확률이 낮은 로또는 실질적 불가능😂
사실 이론적으로 1만명은 100m×100m 운동장에 무조건 들어감. 왜냐하면 1만은 100의 자승이니까.
10만명도 아마 들어가긴 할 거임.
다만 훈련이 충분하지 않다면 지휘관의 말 한 마디에 수백, 수천 단위의 압사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
만약 앞으로 가라고 명령하면 공기 중 음파의 속도 때문에 병사들이 명령을 듣는 속도가 다르니까 먼저 명령을 들은 뒷사람에게 앞사람이 깔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봄.
고대의 전쟁에서 군기(flag)가 매우 중요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됨
이 병력들은 핵 한 방이면 모두 없이 증발함
그리고 데시벨의 정의식대로 계산해보면 10만명이 각자 속삭이는 소리(30db)로 말해도 합쳐지면 80데시벨임
실제 고대 전투에서 이런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는 가장 큰 문제 : 이걸 전령이나 편지로 지휘해야 함.(아니면 그냥 처음 전달 받은 작전대로 행동하던가)
역사상 돌발 상황에 허우적 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가가하겠지만 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함.
역사책만 제대로 봐도 대강은 알 수 있음..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입할때 전투병력과 보급병력 포함 300만 이상을 출정시키는데만 40여일이 걸림..
즉 첫번째 부대가 출발하고 40여일이 걸려서야 마지막 부대가 전쟁터로 떠날 수 있었음~~~
당시 고구려 전체 남자 인구보다 많은 적군을 몰살해서 수천의 잔존병력만 살아서 수나라로 돌아가게 한 을지문덕 장군과 고구려의 선조님들..
돌아간 수나라 양제는 농민 반란을 진압할 군사력도 없어서 수나라는 망했고,
농민들은 수나라 양제가 너무나 싫어서 양제의 무덤을 파묘하고 물을 채워서 호수로 만들어버림...
이게 바로 고구려의 힘!!!
이랬던 나라가 지금 전시작전권도 남의 나라 손에 있는 나라가 되 버렸음...
그렇긴 한데 1,2위 국가들의 총력전이 해봤자 2천대군 vs 2천500 정도로 끝나면 뽕 엄청 빠지긴 하죠ㅋㅋㅋ 병력의 정예화때문에 아무리 강국끼리의 전투라도 숫자가 늘지는 않아서ㅋㅋㅋ
갓겜 브사가를 하면 고증이라 전혀 상관없거늘..
@@우끼끼우리는 30명이다 모두 전사들이지
@@einheri1674 아 이 드립 어디서 나왔었죠?ㅋㅋㅋ
@@min6428-s7m 라스트 킹덤 시즌 1에서 나옵니다
@@min6428-s7m 영화 300에서 레오니다스가 아테네인들에게 말하는 장면 아니었나 싶네요. 아테네인들이 겨우 300명으로 뭘 할거냐고 물으니까 '님들은 죄다 본업이 민간인이지만 우리는 300명 모두 직업군인이다' 이런 느낌으로
그... 영상 잘 봤는데... 결말이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구려 수나라 전쟁은 미친 전쟁이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네요
수나라 병력 약113만(전투병)+ 약32만(수송병) 이걸 게릴라 + 살수에서 싹다 수장 시킨 을지문덕 장군은 대체..........
그건 모랄빵 만들어서 경기병으로 끝없이 쫓아서 낸 성과. 수장된 인원 자체는 그리 크진 않았음.
살수대첩이 북한에 있는 청천강이라고 믿는건 머리가 없는거임. 살수(사르수)는 노란색물을 의미하는 투르크계 단어로 황하를 뜻함
살수에소 한방에 끝낸 게 아닙니다.
전투 한 번에 죽는 병사 수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패주하는 수나라군을 요하 건너까지 끝까지 쫓아가 아주 작살을 내버린 겁니다.
수송병 병력은 전투병력의 x2~x3 여야 함
식량, 의료용, 무수히 많은 칼(칼 이라는 특성상 생각보다 쉽게 무딤 이 상태에서 서로 갑옷까지 쳐 입었으니.....)
수장 x
수장을 시키려면 강을 막아 놔야 하는데 당시 그런 기술력은 없음
패주해서 사기가 땅으로 떨어짐+강을 건너면서 속도가 느려짐
보급병들이 겁 먹고 대열 안 지키고 마구잡이로 이탈하면서 피해가 확산 했을 가능성 100%
@@violet1945ㅈㄹ하네
10만 대군중에 실제 전투병은 2만~3만 언저리다 대부분이 보급 부터 후방관련으로 서포트 안해주면 저 2~3만명 전투력도 순식간에 약해진다
특히 전선이 길어지면 이 비율이 더 심해짐 알면 알수록 영상의 군단 보면서 하.. 저걸 어케 먹이고 장비채워주냐...? 생각이 먼저난다
저 어느 시위는 일본에서 아베 총리 때 징병제 도입 반대 시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컷 안에는 5000명 내외 정도 모여있지만 총리 공관 앞에 대로에 양 옆으로 사람이 꽉차 있어 실시간 동시 시위자는 3만에서 4만 그리고 시위현장에 나온(들어갔다 나가고한 인원)까지 다 합치면 12만 쯤 될 겁니다. 우리나라 시위 관련 언론보도들도 그런 점에서 숫자가 심히 들쭉날쭉하지요
그걸 알아보시다니 ㄷㄷ 국내 시위는 문제의 소지가 있을까봐 외국 시위 아무거나 퍼온 겁니다 ㅋㅋ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박근혜 탄핵 때 서울시청 집회 인원이 언론 추산 백만명이었다는데.. 영상 보니 말도 안되는 숫자였겠네요.. 완전 속았네..
@@mark6767 누적 집계가 아니라 주최측 추산이라 나오는데 왜그러세요. 그때 뉴스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인데
@@mark6767 누적한거도 한 10배는 부풀렸을듯
이탈리아가 도시 국가였던 시절 프랑스가 2만 정도를 동원해서 쳤는데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대군이었습니다..
중국과 그 침략을 막아낸 한반도는 대체 머하는 곶일까?
@@EeeeGggg-w8t진짜 100만을 믿음?
그리고 전근대이전 편제가 치중대가 전투병의 2배인거 생각하면 전투병 5만이면 사실상 15만대군으로 봐야죠
4:42 요약 : 을지문덕 GOAT.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제대로 훈련도 안하고 바로 징병해서 보내고 보는 군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십만 근대도 부지기 수였죠... 보급도 기본보급은 본국에서 보내기는 하지만 부족분은 현지보급에 기대게 되었고요.
근데 재미있는건 이런 군대가 패배할 상황이 오면 대부분의 군인들은 그냥 탈출해 버립니다. 죽는 숫자보다 탈출하는 숫자가 많을겁니다. 그중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일부는 산적이 됩니다. 그래서 전쟁터지면 산적이 대규모로 늘어나죠.
조선이후 시대로 넘어오면서 화약무기보급이 시작되죠. 화약무기는 현지보급이 불가능한 무기이니 보급의 중요성이 급증합니다. 그러면서 관리 가능한 군인의 숫자가 급감하죠.. 조선중기 넘어가면 10만 군대 동원하는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고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가능한 보급의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군인의 숫자도 같이 늘어나죠. 그러면서 2차세계대전가면 몇백만씩 동원하는 상황이 재현됩니다. 거기에 고대시대 몇백만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군대로 몇백만이요..
이런거 볼때마다 느끼는게
100만대군은 사실 10만정도만 전투인원이고
90만명이 일열로 줄서서 쌀 날랐는게 정설이다
근데 수나라 113만명은 실제일 확률이 높은게 나라가 진짜 망하기도 했고, 수양제때 워낙 인구를 갈아먹어서 이를 넘어서며 회복한 시기가 당나라 현종때였다고 함. 무려 백 몇여년 뒤였는데다가 당의 황제도 7대인가를 거친 뒤...
@@하인즈-l1j
???:어떻게 보급하냐! (못함)
???:나라 망한다! (망함)
초반에 보여준 1~2만명 영상
요즘 저출산 1달에 2만명씩 감소한다는 기사를 보면 매달 2만명 엄청 많게 느껴지네ㄷㄷㄷ
바다의 모래알과 같이 많다 라는 표현을 성경에서 종종 쓰는데 대충 100만 쯤 되면 그렇게 표현이 가능할 성요
어렸을때는 그냥 막연하게 '10명이 한 놈씩만 죽여도 이기는 싸움인데 왜 졌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ㅋㅋ
1만명 되는 순간 보급도 문제지만 저 시대의 깃발과 북소리 등 한정된 수단으로 지휘통제하는것도 심각한 문제임
수 당 100만대군이래 봤자 실 전투병력은 최대 30만정도.. 나머지는 보급 수송 지원등 비전투인력
이렇게 보니 고구려 침략 실패하고 왜 수나라가 망했는지 알겠네
저 인원 한끼만 먹이는게 그 무게만 해도 ㄷㄷ하고 옮기는것도 ㄷㄷ하고 옮기는 애들 밥먹는것도 ㄷㄷ하고
100만 대군 먹이느라.. 보급대가 2백만이란 얘기가 있더군요..
@@알보칠-x7v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에도 수송인원이 배였다고 하죠
@@알보칠-x7v ”전투 편제는 113만명이나 과장해서 200만 대군이라 하였고
수송대는 그 두배는 되었다“
라고 기록돼있음
@@닉네임-d6d굿이 과장을 해야함? 이미 상식을 초월했는데 단위가
수원정 때 그래도 보급을 생각해서 수십일 식량을 짊어지게 했는데 이것도 사실은 몰상식이라 병사들이 무거워서 버틸 수 없어서 죄 버렸죠. 그래 갖고 보급이 더 망가졌다고 하죠
냉병기로만 전쟁하던 시대에서의 10만이상 단위는 머릿수가 10만이상 이라기보다는 10만이상의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대규모 군대라 보는게 타당하다 생각함
내가 어떤 만화책에서 봤는데
옛날에 당나라군에 고구려 침략했을때 그 수가 114만명이라고 했는데
병사들을 1열로 쭉 나열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된다고 함
백만대군 하면 실제로 싸우는 전투인원은 얼마 안되고 나머지는 보급 운수 담당이라 전투필드에 안보이는 걸꺼에요..
ㅋㅋㅋ 이런거보면 동서양 동원력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짐
서양은
"무슨영지에서 기사 둘과 30명의 병력을 보냈답니다."
우리가 볼 땐 씨발 저걸 어디다 써먹어 하는데 상대도 그정도 규모임
동양은 보냈다하면 천단위에
각잡고 전쟁한다하면 십만단위인데
걍 규모가 달라져버림
유럽 걔네는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빽빽한 숲이 대부분인데다 언덕,산이 겁나많고 도로나 수운업도 발달이
잘 안되있어서 장원 체제아래에서
수만개의 고립된 공동체로
분리되어있었음. 나중에
중세 말 ~ 르네상스
그 때되서도 알프스이북은
거의 다 공국에 남작 백작 공작들이
쪼매씩 다스리고 있었으니..
거긴 분쟁이 일어나도 목적이 약탈임
동아시아쪽은 수백만 수천만
민족이 다 통합국가를 세웠으니..
그냥 멸망전이지 서로
실제 유비도 관우 복수 하겠다고 100대군 이끌었다가 망하고 병져 누웠죠.... 보급이 어려워서...
삼국시대 100만은 과장이 맞습니다. 촉나라 혼자 그만큼 뽑을 국력이 되질 못했어요.
촉나라 100만은 과장입니다. 인구 5000만 수나라도 백만대군 원정이후 나라 휘청이다 망했는데 촉나라가 백만을 감당했을리는 없죠
실제로 촉나라가 동원한 군사 수는 적으면 4만, 많으면 8만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저거 보면 한국군 50만 북한군 130만이 상상도 안 감.. 물론 한 자리에 모여있진 않지만
고구려는 대체 무엇과 싸웠던걸까
대규모 병력에는 주 전투 병력 외 대게 후방 지원 인원도 포함 되어있는 겁니다
후방 지원이 30% 정도는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처럼 대규모 군대가 그렇게 가깝게 붙어있다가는 이동 중에 압사 사고가 날 위험성이 존재하므로
더 큰 면적에 분배 되어야 합니다.
플사2 할 때 홍보는 대규모 전투 유저간의 333vs333vs333인데
100명만 모여도 뚝뚝 끊겨서 33vs33vs33으로 싸우는데도
정신없더라구요
언덕에 매복해서 대기중에 논두렁 길 2개 중대가 일렬로 뛰어가는거 봤는데
1개 중대 100명 지나가는거도 한참 걸리더라구요
육군병력 40만도 무너졌어요
군중 수는 단순이 눈대중으로 보기는 힘든게, 숫자가 커질수록 평균 간격이 약간만 달라져도 전체 면적이 크게 변해서 보기보다 훨씬 많을수도... 예를들면 운동 경기장 같은데는 불과 200x200미터 안되는 공간에 십만명씩 모이죠
요즘도 시위하면 언론과 주최측에서 말하는 인원수가 몇만명씩 차이남.. 국회근처에서 일하는데 대충 눈으로 봐도 1만도 안됨..
이번 영상 컨셉 재밌네요 ㅋㅋ
2차 세계대전 사상자 최소 5천만
그 전쟁은 대체...
언론사들에서 이제 밀착 취재들어옴 밥줄 들켜서
제가 뭐랬읍니까 언론사들이 찾아온다니까요
육군 육군 마지막 노래 나오는데 하필 얼마전 훈련병 죽인게 육군 12사단 여중대장이라고...
징집할땐 우리의 아들, 사건 터지면 남의 아들...
12일 스윗한 살인휴가 받는거 보면, 저거 뒷빽을 조져야 저 살인마도 잡을수 있을듯한데 말이죠
근데 역사 공부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인데 중국에서 숫자는 마음으로 보는 거임ㅋㅋ 9척이라는 게 몇 cm 인지 계산하는 게 아무 의미 없음. 정말 딱 그 cm다 라는 게 아니라 덩치가 컸다라는 말인 거라ㅋㅋ 백만 대군도 많다라는 말을 한 거지 정망 백만명이다 라는 뜻은 아닐 거임 물론 중국인 만큼 정말 많은 숫자였기는 하겠지만
그 사료의 성격에 따라 좀 다르긴 합니다. 중국 역사를 기록하거나 정리한 학자들, 심지어는 사관들 중에서도 좀 더 실증적이고 현대적인 엄격함을 가진 이들이 있을 때가 더러 있었죠.
수나라의 백만대군은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에 똑같이 기록되어 있으니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시 중국 척은 20cm라 9척이면 그냥 180 수준임 실제사이즈라 쳐도 말이 됨
중국은 거기에 특유의 허세도 심해서 공식기록이나 회의도 죄다 눈치껏 올려치고 깎았다는 설도 있음. 특히 난세인 삼국시대때 이게 극심해서 5만 원군 보내주세요 하는건 사실 2만 쯤 보내주면 고맙겠는데요 하는 거고 4만 보내줄께 하는건 1만 정도 보내는게 한계니 이걸로 비벼봐... 식으로요. 다만 집권국가가 되면 재정 통계가 중요해지니 수 당 기록 등은 믿어보는게 맞겠죠.
적게는 수만, 많게는 백만 이상을 상대하셨던 고구려 조상님들은 대체,, 얼마나 민족 자체가 기개가 넘쳐야 그걸 수차례 방어해냈을까.... 심지어 멸망도 적의 공격으로 망한게 아닌 내분으로 사분오열 되서 망한거니까.. 대단하다 정말
팩트 : 원나라 몇 만 군사에게 거하게 털리고 난 뒤 피식민지배, 명나라라고 하는 통일왕조에겐 알아서 굽신, 조공국으로 들어감, 청나라에게 깝치다가 몇 만 군사에게 수도 따이고 강화도 따이고 남한산성 따여서 사실상 속국으로 들어감.
중국왕조가 한민족 계열 국가들 상대로 인해전술 펼친 건 고구려 말기때나 6.25 전쟁뿐이였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기어들어갔지.
하긴... 반지의 제왕 로한 기마대도 6천 이었으니...
반지의 제왕에 나온 해당 전투에서 병력 수치는 원작대로라면 오크군이 약 10만 전후, 달려오는 로한 기병대가 6천입니다.
톨키니스트이자 고증에 신경 쓴 피터 잭슨 감독을 생각하면 아마 영화에서 보여주는 비쥬얼도 거의 비슷한 수치라고 보면 될 겁니다.
수나라 100만대군은 솔직히 구라임 원래 중국쪽 사서가 뻥카가 심함 삼국사기 기록도 어처피 중국기록 고대로 배낀거라 똑같음 그냥 생각해봐도 말이안되는게 전투병력이 100만이면 보급부대만해도 최소 200만인데 100만명이 먹을 식량 거기에 200만명이 갈때 되돌아 올때 식량 단순히 생각해도 500만인분인데 거기에 소 말 먹이까지 생각하면 어우...그것도 건장한 성인남성 300만빠지면 농사는 누가지음
그래서 망했자나
중국은 그 당시에도 인구가 수천만이라 나라가 망하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늠 수나라는 기록도 세세하게 있어서 인정 받던데
별동부대만 30만명인데 전투병을 다 끌고갔다는 건가?
수나라 100만의 증거는 사서만 아니라 오만데 다 남아 있어요. 두보조차도 수나라 원정 때 북쪽에서는 남자들 씨가 말라서 마을이 다 망해 황폐해지고 여자들 통곡소리만 간간히 들렸다고 시를 남겼죠.
수나라는 팩트가 맞음. 중국 사서가 뻥카가 심한건 맞는데 상식적으로 백만으로 뻥카하면 오히려 백만군대 막아낸 고구려가 고평가되는데 중국 역사학자애들이 그렇게 할것 같음? 수나라는 실제로 백만대군을 동원했을 확률이 높은거임 그래서...실제로 너무 많은 남자가 죽어서 휘청거리다 순식간에 그 큰 나라가 멸망한거고
고대시대에 군대 숫자가 적으면 현지보급도 많이 사용하지만... 군대 숫자가 늘어나면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산의 나무가 사라지고 산속의 나물이 증발하며 산의 토끼가 증발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즉 군대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현지보급은 불가능해집니다.
수십만이 한맵에 모여 전역을 펼치는 게임이면... 거의 rts급으로 전장 규모가 커져야할듯?? 하지만 지금 토탈워 방식에서 맵 규모를 2~3배 늘리면 또 그 규모의 전투뽕을 만들수도 있을지 모름.. 하지만 특정지역에서의 전투는 현실적으로 양 병력이 20만이나 모이면 다행일듯
전장이 더 커지고 부대에 더많이 쑤셔넣어서 더 높은 곳애서 조망하는 식으로 가면 어차피 병사들 싸우는 거 안보이는 수준이라 그냥 더더욱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우끼끼그때는 다른 방식의 전략 게임이 되어야될듯? 장수 하나하나에 ai 부여해서 게이머는 능력이나 성향에 맞게 배치하고 fm의 감독마냥 지켜보면서 큰툴의 명령만...
@@배재환-p2d CK2나 코에이 삼국지네. 결국 숫자로...
@@배재환-p2d 이미 여러 나라들이 그런식의 워게임으로 장교 훈련하고 시뮬돌립니다
동양이 수만 수십만 대군씩 회전을 하고 그랬던 것은
1. 노동집약적인 쌀문화권으로 인구가 많음
2. 중앙집권적인 왕정 사회로 뭉쳐서 뽑을 수가 있음
3. 순수 병력이 아닌 보급+수행원+상인까지 데리고 가서 비전투 인원까지 적음
4. 특유의 과장된 기록(동아시아권 특징), 실제론 2~5배까지 부풀려서 적은 경우가 다반사
5. 기둥허리까지 뽑아서 싸우는 동아시권의 고유한 특징으로 항상 '총력전' 태세
서양은
1. 밀농사로 인해 생산성이 딸림(비료, 구아노, 품종개량 3가지 조건이 없었으니). 그래서 인구가 많지 않았음.(소빙기에 페스트까지 오니 인구가 박살)
2. 봉건적 사회로 서로 뭉쳐지지 않음.(왕은 귀족중 대표자인거지 봉신들이 꼭 말을 들은건 아님. 자신의 영지 방위가 더 중요했고 왕은 그 권위를 존중해야만 했음.)
3. 국가, 국경의 개념이 희박한 시대. 가문(클랜)끼리 통혼으로 섞여지는 혈통 등으로 인해 서로 전투보다는 정치질로 영토를 삼켰음. 전쟁(영지전)은 최후의 수단
4. 병력을 주 병력만 정확하게 표기함. (기사의 경우 대략 5명의 시종이 붙는데 이들은 전투인원임에도 불구하고 편제에 포함이 안되었음. 기병도 마찬가지였고, 보급병+주보상인들도 전혀 포함안시켰기 때문에 부풀리기가 x)
5. 싸워도 겉에서 보기엔 영지전, 내전 수준에서 끝나기 때문에 1대전 이전까진 국가적 총력전x. 적장이나 기사를 잡아도 같이 티타임하면서 누가 이길지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전투? 전투가 끝나면 가문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고 병사들은 운이 없으면 노예로 팔려나갔음
븅신이라는 줄 ㅋㅋㅋㅋㅋㅋ
토탈워 나폴레옹에선 포병,기병,보병 섞어서 편제하면 2천명 가까이 되고 보병만 둔다면 3000명까지는 됨 근데 1만명 정도면 보병만 둔 편제를 4개씩이나 만들어서 같이 돌아다녀야 되는거임
사실상 1만명 넘어가면 하나의 전투에 동시에 투입되기 힘듬. 모든 작전을 총괄한 투입인원이 10만이니 20만이니 하는거고 그마저도 후방지원, 예비대까지 합친것이니 그걸 한번에 맞닥들일일이 없음.
이분 컴퓨터 사양이 궁금해지네ㅋㅋ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그 많은 숫자를 다 없애야 이기는게아님 부대의30%만 사상자가 발생해도 작전수행이 불가능해짐 사망이아니고 사상자가 그리고 전투시 대부분 사망자는 패전 후 후퇴시에 대부분 사상자가 발생함 전투시가 아니라
삼국지는 진짜 판타지소설맞네ㅋㅋㅋ
생각해봄 군량미 조달도 안됐을듯! 😂
근데 놀랍게도 과장은 되었지만 수십만 단위로 처싸우고 물고 자빠진건 사실이라서 개무서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옛날에 길도없는 산과 들과 강을 몇십 몇백키로 행군하는데 몇십만명의 대군이 움직인다는건 불가능한일임
언제들어도 가슴벅찬 육군아미타이거
옛날 고수전쟁에서 113만의 군대와 보급행렬까지 합쳐서 그 첫머리와 마지막이 400km 규모였답니다. ;;; 정신나간 규모고 중간에 이탈도 많았을 겁니다. 실제 전쟁에 참여한 군대는 60~70만정도였을 것이고요. 근대 고구려도.... 30만 정도의 대군을 동원했을 거라고 하니. 당시의 전쟁이 말이 안되는 규모였던 거죠.
시위꾼들한테 보여줘야 할 필수시청영상
한반도는 산이 많아서 대규모 전쟁이 없어서 였을까요? 중국 사이즈를 보면 진작에 속국이 됐어야할 운명이었는데, 선조님들이 정말 잘 지켜주셨어요.
무슨 소리임?
당장 몽골제국 때 부터 800여년간 청나라 말기때까지 한반도 왕조들은 최소 속국이나 다름없는 조공국 내지 피식민지배 국가로 살아왔는데?
척후 : 장군! 적이 쳐들어옵니다!!
장군 : 몇명?
에?!?
몇명 오는데?
어...내가 그걸어케알ㅇ(사형)
그래서 척후병들이 주로 최정예 병사들로만 뽑았었나
척후들은 당시 병사 중들 최고 엘리트급임.. 전투력이 그렇다는 말보다는 실제로 적이 대충 얼마고 정찰 루트는 어떻게 짜고 이런거 하나하나 다 교육을 했다고 함.
그러네 ㅋㅋㅋ 그냥 졸라 많아요 하기도 그렇고 ㅋㅋ
보통 적진 정탐 들어가서 아궁이 갯수, 장군깃대수 정도만 파악하고 옵니다. 일일이 절대 못 셈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생 척후?@@sjmtech7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