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상처에 대한 아주 뜻밖의 가르침 (철학자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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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9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38

  • @chungco_phil
    @chungco_phil  7 місяців тому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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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rikoyu137
    @karikoyu137 7 місяців тому +9

    나의 이해의 항상 바깥에 있는 것
    그러면서도 실존하는 것
    고통은 마치 절대속도를 가져 따라잡을 수 없는 빛과도 같다고 느껴지네요

  • @trigger3619
    @trigger3619 7 місяців тому +7

    고통은 자아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무력화시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너무 공감되는 구절입니다.
    의료사고로 3년간 극복할 수 없는 육의 고통속에서 살았습니다.
    스테로이드 (Triamcinolone) 신의 약물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보고있느냐! 이종우 병원장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평안한 한 주 보내세요~

  • @KimMyeongJu-pr9ro
    @KimMyeongJu-pr9ro 7 місяців тому +8

    고통이란,
    스스로 선택한 주체적인 고통과
    의지와는 상관 없이 무기력 하게 당하게 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주체적인 고통의 한 예로,
    과거 카톨릭 베네딕도 수도승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던 자학, 학대란 게 있습니다.
    이는 , 평생 스스로 자신의 몸에 쇠사슬을 묶고 산다던지 ,
    (쇠사슬 때문에 살이 다 문드러지고 썩습니다. )
    자신의 등을 스스로 채찍질 하는 등의 자학을 통해 신앙의 증거를
    찾고자 했던 끔찍한 행위였습니다.
    그러한 몸의 고통을 통해 그들은 좀 더 신께 다가가길 원했고,
    아마도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을 직접 체험 함으로써
    신앙의 참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고통이란 과도하게 집착 광신적으로 왜곡 되었지만,
    어쨌든 스스로 선택한 방향이 다른 고통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찌 생각 하면 불교의 삼천배나 오체투지 순례도 성격이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통을 극기 함으로 신의 영역에 도달 하고자 했던
    차원이 다른 초월 의지력 같은 것일 겁니다.
    저도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수많은 고통과 상처를 인내 했습니다.
    고통이 극심할 땐 나 자신을 상실 하기도 했습니다.
    이 고통이 정말 끝이 날까?
    믿음이 사라진 나약한 나 자신이 한없이 슬프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런 시간들 또한
    자연스레 지나고 어느새 오롯이 우뚝 더욱 굳건해진
    새로운 심지가 돋아 났음을 깨닫게 되죠.
    그것은 어쩔수 없는 고통의 순간들을 인내 하며 얻게 된 결실 인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덮쳐 온 고통으로
    "나" 라는 주체 너머로 "나아가게 되는 체험" 이란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짐작 해 봅니다.
    결국 사유 하는 동물인 인간이란 ,
    고통을 통해 ,
    그 고통의 순간들에 잠식 되고 ,
    그 고통의 순간이 어느새 사라진 그 순간엔
    불현듯 더욱 맑아진 정신 세계를 경험 하기도 합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주인공인 해리가 아프리카에서 오른쪽 무릎에 괴저가 걸려 사투 하는 장면에서,
    해리는 이후 통증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고,
    공포도 사라지고,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져 야전 침대에 누운 채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
    자신의 경험 중 일부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회상하며 성찰합니다.
    원작과 영화가 결말이 다른데,
    원작에선 해리가 사망하며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결국
    초연히 극복하는 결말을 택한 듯 한데,
    저는 영화판의 결말을 좋아 합니다.
    영화에선 해리가 극적으로 구조 됩니다.
    썩은 피 냄새를 맡고 그를 괴롭히던 하이에나와 육식성 새들의 무리 또한 깨끗이 사라 집니다.
    해리는 그 처참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오며
    킬리만자로에서 사체로 발견 된 표범의 의미를 인지 한 듯 합니다.
    불교의 "고집멸도"를 언듯 연상케 합니다.
    인간은 어차피 죽음의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는 동안 좀 더 활기 있고 창의적인 성취를 이룬다면
    어느 날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란 그닥 고통은 아닐 듯 합니다.
    바로 정신적 승리인 것이지요.
    그것이 가장 핵심이 될 겁니다.

  • @sunghunlee185
    @sunghunlee185 7 місяців тому +3

    고통에 대한 좋아하는 말을 남겨봅니다.
    고통의 크기보다 지혜의 크기가 더 크면 고통으로부터 배울 수 있고,
    그 반대면 고통에 존재가 잠식되어간다.

  • @eunEuneUneuNEUneUNEuNEUN
    @eunEuneUneuNEUneUNEuNEUN 7 місяців тому +12

    예시로 가져오신 미술 작품들이 다 어디서 본 적 있는데 적절해서 인상깊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충코님이 좋아하는 미술, 음악에 대해 커뮤니티 글이라도 올려주신다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 @Jundddddungi
    @Jundddddungi 7 місяців тому +3

    고통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본질적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절대 도망칠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통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최대한 고통으로부터 먼 곳에 위치한 채 살고싶습니다.

  • @joo5155
    @joo5155 7 місяців тому +6

    고통의 의미가 어떠한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형이하학적인...몸으로 직접 느끼는 생생한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 사유라는 점이 흥미롭네요. 낙관주의적인 자기계발서와 확연히 다른 메시지가 와닿기도 하고요

  • @toward_Ireland
    @toward_Ireland 7 місяців тому

    시간이 지나고보니 고통은 결국 나를 성장 발전시키는 자양분이었습니다.

  • @whiteriver2962
    @whiteriver2962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아래 댓글을 보고 한번 생각해봤는데, 자각하지 못하는 고통 -> 내가 놓치고 있는 고통 -> 현재성을 가지지 않는 고통-> (일단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고통 -> 없는 고통 아닌가요
    충코님 채널을 알게 된 후로 늘 하루에 한 편 이상씩은 보고 놀다가 가는데, 항상 좋아요만 누르고 사라지다가 오늘 흥미로운 댓글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저도 댓글을 남겨봅니다. 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그리고 응원합니다!

    • @안녕-r9i4m
      @안녕-r9i4m 7 місяців тому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 자각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발병되는 경우나 지금 내가 힘든게 맞는데 (육이는 심이든)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고 무리하다가 한순간 무너져버리는 경우는 어떤가요?자각하지 못하지만 고통인건 맞잖아요

  • @hyunsongwe7874
    @hyunsongwe7874 7 місяців тому

    고통을 통해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옵니다.

  • @MsPeace2all
    @MsPeace2all 6 місяців тому +1

    3:25 나를 덮치는 배움의 가능성(레비나스), 나라는 주체를 넘어서 나아가는

  • @vinci7804
    @vinci7804 7 місяців тому +25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행복이 자각하지 못하는 행복이 있듯, 고통도 자각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는 거라 봅니다.

    • @블랑뱅
      @블랑뱅 7 місяців тому

      심리철학 ㄱㄱ

    • @전광표-w4d
      @전광표-w4d 7 місяців тому +1

      당신 꽤 흥미로운 견해를 보여주시는군요? 이 댓글을 봐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 @정철-g4l
      @정철-g4l 7 місяців тому

      우와
      고통을자각하지못한자
      하느님
      부쳐님
      예수님
      복상사
      이하등등

      희망에찬젊은이
      생로병사
      병사의고통은
      대부분

    • @arcomain
      @arcomain 7 місяців тому +1

      날카로운 사유입니다. 다만 고통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가 레비나스의 고통과 엄밀하게 통하지 않는 지점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유튜버님과 레비나스의 고통은 자각하지 못하는 고통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미래인이세리
      @미래인이세리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자각은 언어안에서의 사유로 귀결되죠 반드시 왜곡이 있게됩니다 언어는 인공적 산물이에요 언어의 분절성 속에서 스펙트럼인 무지개는 7빛깔로 이해되기도 하듯이요

  • @JousungKim-ji6hz
    @JousungKim-ji6hz 7 місяців тому

    "모두 의대 가려는 지금, 대한민국 과학계 리더 될 절호 기회"❤️❤️❤️

  • @no-Name..
    @no-Name.. 7 місяців тому +2

    고통으로 인해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그건 레비나스가 보는 관점이 아니란 말에 떠오른 게
    내려놓음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헌데, 보니까 고통의 가르침은 가르침을 받는 자가 없는 가르침이라고 했는데.
    내려 놓는 다는 마음조차, 그 고통에 잠식 돼서. 정신을 못 차리기에
    그저 질서가 없는 혼돈이 생각나네요. 그러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자연이란 게 생각 나는데.
    고통에 대해서 뭔가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이라고 하기엔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것조차 없는 그런 상태의 것이니.
    물론 지나고 보면 의미 부여해서 교훈을 얻어서 뭔 가를 배웠다고 하겠지만,
    결국 그 현재 진행형인 순수한 고통인 레비나스의 관점에선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그렇듯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이다. 그러니까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 같은 말로 뭔 가를 가르쳐 들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 라는 생각이 나네요.

  • @JohnW-y9t
    @JohnW-y9t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진화적 순서로 보면 먼저 육체와 생명 유지를 위한 뇌가 생기고, 다음으로 대뇌피질이 크지면서 의식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이 의식은 육체로부터 자율성을 가진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이 속박되어 있습니다.
    의식은 육체 생존을 위해 많은 정신적인 일을 해야합니다. 식량 구하기, 안전한 장소 구하기, 다음세대를 위한 짝 찾기.
    이런 관점에서 고통과 쾌락은 육체가 정신적인 세계를 통제하는 방법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뇌는 몸이 불편하고 힘든 상태가 되면 마약성 물질 분비를 조절해서 정신에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 @taehaya8699
    @taehaya8699 7 місяців тому +4

    혹시 레비나스의 어떤 책들을 참고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 @SWMoon-ex9eh
    @SWMoon-ex9eh 7 місяців тому +3

    좋은 내용입니다. 참고한 자료들을 알려주면 더 좋을 것 같군요.

    • @joo5155
      @joo5155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저도 궁금하네요 레비나스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더 좋을듯ㅎㅎ

    • @chungco_phil
      @chungco_phil  7 місяців тому +3

      짧은 책 중에 시간과 타자 보시면 도움될 겁니다ㅎㅎ

    • @SWMoon-ex9eh
      @SWMoon-ex9eh 7 місяців тому +2

      몇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군요. 1. 고통에 불가해하고 제어불가능한 면이 있는 것처럼, 쾌락에도 유사한 면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타자적 특성 때문에 때로 고통과 쾌락은 얽히고 연결되며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죠. 2. 레비나스는 점차 나 또는 우리의 고통보다 타자의 고통을 중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통이나 쾌락이 어떤 상태나 대상을 회피하거나 지향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걸 지표로 삼으면 결국 이익 추구라는 틀 안에 갇히게 될 테고, 그렇다고 나의 고통이나 쾌락의 원천으로 타자를 지목하는 데 그친다면 타자에 대한 원망이나 의존을 넘어서지 못할 공산이 있지 않을까요? 3. 나에 대한 타자의 영향을 '상처입기 쉬움''과 '근접성'으로 놓는 것과 고통이나 쾌락으로 놓는 것의 차이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나 또는 우리보다 타자나 낯선 자 쪽에서 삶의 국면과 양상들을 조망해 보려는 시도가 현대에도 꼭 필요하다 싶습니다.

    • @강한결-e4b
      @강한결-e4b 7 місяців тому

      ​@@SWMoon-ex9eh 저는 유대인이라는 특성때문일것이다라는 역사적해석이 아닐까싶습니다.
      레비나스는 독일에서 나치를 경험하고나서 우리의 윤리(파시즘)에 대해 경각심과 고민을 했을것입니딜.

    • @김기남-w5h
      @김기남-w5h 7 місяців тому

      ​@@chungco_phil존재의 본질이 악,존재의 본질이 악이 아니되 존재하지 말아야할 존재를 결정하는 모든가치관,모든존재?
      존재+모든걸 할수있는것+모든걸 아는것?

  • @areumdaum5805
    @areumdaum5805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인간이 살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본의 아니게든 심리적 고통이나 신체적 고통을 겪게 될 때와 곳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고통이 비가역적 상태로 치달아 더이상은 삶을 못살게 연행하기도 합니다
    그 고통의 크기와 고통을 인지하는 수준의 차이가 인간마다 다르겠지만 인간은 언젠간 죽게 되기에 그 고통이란 것이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 지점에서 고통을 대하는 인간 각자의 대처능력에 따라 그 고통이 주는 삶의 무게는 꽤나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 고통이 고통을 낳게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고통을 겪어도 어떤 이는 그 고통으로 인해 자신도 괴롭히고 주변 사람도 괴롭히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어떤 이는 오롯이 스스로 그 고통을 감당하고 감내하고 감수하려는 태도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려하면 그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드리려는 마음을 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이는 고통에 대해 공포심으로 민감하여 그 고통 당하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고 억울해하며 남이 겪을 고통을 자신이 대신 겪는거 처럼 세상에 적대감을 가집니다
    정말 크나큰 고통은 오면 그냥 죽기 전까진 달리 할 것도 없고 한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살면서 그 때 와 곳의 시기와 상황과 강도와 수준이 다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를 뿐이며, 누구나 죽는거 처럼 누구나 고통은 찾아 오지만, 대처하는 마음마짐은 있어야 할 게 없고 없었으면 하는게 있는 경우가 많아서 고통이란 놈이 인간을 아직도 여전히 기습적으로 고통속으로 몰아가고 지배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겠죠
    감당, 감내, 감수, 감사할 지적능력은 갖춘 후에 고통이란 놈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거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 @vamp_c502
    @vamp_c502 7 місяців тому

    고통을 말씀하시니 통증이 떠오르고, 통증하면 마취가 떠오릅니다.
    마취, Anesthesia 단어의 뿌리는 인식, 감지를 뜻하는 그리스어 aisthēsis 에 without을 뜻하는 접두사 an 을 붙인 것. 그런데 미학을 뜻하는 aesthetics도 같은 어원이기 때문에 이 aesthetics가 왜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고통’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미학이라는 단어가 되었을까 궁금증에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이론을 탐구하면서 미적 인성 교육에 중요한 가치를 뒀는데 1750년 Aesthetica라는 학명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베를린 출생의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고트립 바움가르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취라는 용어는 약사에게 ‘디오스코리데스의 선서’로 유명한, 고대 로마황제 네로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디오스코리데스가 영화 해리포터에도 나오는 맨드레이크라는 식물의 마약같은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사실 현대 마취의 역사는 최초로 에테르로 마취해서 공개 수술을 한 1846년 10월 16일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10월 16일이 세계 마취의 날.
    그리고 마취약이 점점 더 개발되면서 유명한 프로포폴이 나오는데 마이클 잭슨이 수면 장애 때문에 프로포폴을 맞았다고 하지만, 잠을 들 수 없었던 심리적인 문제, 그 심리적 고통을 잊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포폴 투약으로 뉴스를 장식했던 여러 유명인들이 떠오르는군요.

  • @윤한순-v5t
    @윤한순-v5t 7 місяців тому +3

    레비나스를 읽어내신 것도 부럽고, 그걸 쉽게 풀이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있습니다. 저도 충코님처럼 철학자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끝으로 철학이란 학문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합니까? 인간의 성숙을 위한 교양입니까?

    • @skyboy879
      @skyboy879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철학은 병입니다.
      안주할 수 없는 병이죠
      세상이 말하는 고정 관념에 대해 끊임 없이 의심하는 학문입니다.
      이 영상을 예로 들어도 사라져야 할 것 같고 안 느끼는게 맞을 것 같은 고통을 부정의 긍정으로 다루죠
      철학은 성숙의 기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 삶의 투쟁 속에서 발현합니다.

    • @윤한순-v5t
      @윤한순-v5t 7 місяців тому

      @@skyboy879 실례지만 님께서는 철학을 하시면서 어디까지 고정관념에 도전하셨나요?
      저는 제가 동성애자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느끼는게, 최근들어 부끄럽네요.

    • @skyboy879
      @skyboy879 7 місяців тому

      ​​​@@윤한순-v5t 사실 제게 있어서 고정관념의 대한 도전은 늘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연한 것들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져보고 제 관념들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죠
      지금 막 떠오르는거는 정신병, 연애 스타일, 경제 체제, 사회 체제, 언어, 권력 등등이 있겠네요.
      제가 대댓글 알림을 꺼놨었는데 지금 댓글을 단 이유는 어느 채널에서 그대를 마주쳤기 때문이죠 ㅋㅋ
      극단적으로 나아가 보면 전 동성애자이지 못해 아쉽다. 라고 표현 할 수 있겠네요.

  • @크로플마라탕엽떡
    @크로플마라탕엽떡 7 місяців тому +3

    비약이 너무 심한데

  • @JohnW-y9t
    @JohnW-y9t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진화적 순서로 보면 먼저 육체와 생명 유지를 위한 뇌가 생기고, 다음으로 대뇌피질이 크지면서 의식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이 의식은 육체로부터 자율성을 가진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이 속박되어 있습니다.
    의식은 육체 생존을 위해 많은 정신적인 일을 해야합니다. 식량 구하기, 안전한 장소 구하기, 다음세대를 위한 짝 찾기.
    이런 관점에서 고통과 쾌락은 육체가 정신적인 세계를 통제하는 방법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뇌는 몸이 불편하고 힘든 상태가 되면 마약성 물질 분비를 조절해서 정신에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