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논리적사고로 진리에 밀접하게 다가가는 것이 대단해보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습을 남들이 보고 가스라이팅당한다거나 헌신, 희생적이라는 표현을 쓰곤하는데 사랑을 한다는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그(그녀)' 자체에 있고, '나'라는 허물을 내려놓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분리되어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원래 합일되어있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말씀하신걸 인용해봅니다. '사랑에 빠진다'라는 표현은 정말 정확한 표현이다. 사랑에 날아오른다, 사랑에 다가간다, 사랑에 눕는다 라고 하지않고 falling, 빠진다라고 표현한다는 점은 내려놓다(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제가 하는 사랑의 신념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불완전한 진동의 연속이며, 죽음은 완벽한 상태입니다. 무엇을 뺄수도 더할수도 없는 완벽한 상태. 그래서 사람들이 완벽해지려는 욕구가 강해질수록 죽음의 상태와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다고 느낄수록 더 성장할 수 없는 상태, 즉 죽음과 가까운 것이죠. 완벽해질 수 없는 현재를 그대로 수용해야 비로소 우리 인간들이 말하는 '완벽함'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저는 사랑만이 완벽함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수를 몇번이나 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충코님의 선한 영향력 늘 응원합니다.
하나였던 존재가 분리가 되어 다시 하나가 되려는 것! 인용한 신화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글이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이 났어요. "사랑의 힘과 크기를 이해하려면 어떤 준비가 있어야 한다. 사랑의 문제는 사람들이 사랑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려고 애쓰고, 심지어 사랑받으려고 애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것이 첫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샬 비안 서머즈가 쓴 글 '사랑' 에서는 자기에 대한 사랑, 즉 자기 본성에 대한 사랑을 먼저 정직하게,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크게 공감을 느꼈습니다. 영감을 주는 영상, 감사합니다.
어릴때는 사랑은 희생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랑은 아껴주는 마음같아요 그사람이 행복한게 사랑같고 엄마가 나때문에 김장을 못하게 하는 그런게 사랑같아요 중요한건 자기 자신을 먼저 있는 그대로 사랑할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것 같고요
최근에 이별을 했어요 상대방과 저의 욕망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있었고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 상대방의 욕망을 채워주었어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가네요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는 조건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찾아갔어야 했거든요 저는 사랑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헌신적인 사랑을 했던 저의 모습을 떠올리면 상대방을 사랑한 것보다 사랑을 주는 내 모습을 사랑한 것 같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욕망이 상대방의 욕망과 구분이 가지 않으려면 내 욕망도 지키고 있어야 하잖아요
사랑이란 뭘까에 대해 친구와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때 나온 답이 아마 말씀해주신 내용과 조금 비슷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이 잘 됐으면 해서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 대충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났던 걸로 기억나네요 근데 하나 드는 생각은 흔히 말하는 남녀 간의 사랑에선 먼저 누군가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는 가로 시작되니까 결국 1차적으로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만큼 나를 발전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걸 생각하는 건 한창 사랑하고 있을 때나 필요한 거지 아직 시작도 못해본 상태에선 부질없는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은 연인 친구 가족등 여러 대상을 상대로하고 충코님의 책을 인용하면 연인간의 사랑에도 100커플이면 100가지 사랑의 양상이 있는데 다시 인용하자면 자기중심성의 극복과 "나"의 관점에서 "우리"의 관점으로의 변화가 이 모든 사랑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는데요 자기중심성이 완전히 극복될 수 없다는점과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는데에 근원적으로 내재된 한계때문에 제한적인 합일만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충코님의 책을 다시 인용하자면 삶의 의미를 경험하는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들었고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2.또한 인간은 자신의 정신 중 일부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부만 의식으로 올라오고 나머지는 무의식상에 잠재된 형태로 있는데 사랑을 하면 인간실존의 핵심과 관련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던 자신의 일부 또는 핵심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3.저의 직관적으로는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4.자기중심성을 완전히 없애진 못하더라도 기존의 경향과 반대되는 자기중심성이외의 내면상태를 경험하게 되고 그런행동을 하게되는데 저는 이것이 자기자신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곤충부터 동물 인간까지 모든 세계에 편재된 세상의 법칙의 유일한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줄이자면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온 세상의 규칙의 예외로서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김으로서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주어진 굴레를 극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형이상학적 이미지 입니다. 서로 서로가 만든 이 ’하나의 공간‘ 에서, 내가 중심이고, 상대는 나의 욕망의 선택이어서… 항상 내 파이를 키우는라 그리고 잃지 않으려고 왜곡된 사랑을 진짜인줄 알고 연습했네요. 진보적인 하나로써는 가치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충코님 덕분으로 깊이 자기성찰해보니 그래서 ‘에의’가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와 닿습니다. 정말 소중한 영상, 본질에 이르는 철학적 사유를 하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유투버들이 사랑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썰푸는 영상 안 좋아하는데 우연히 클릭한 이 영상은 끝까지 보게 되었네요. 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곳에서 늘 듣는말이 "Don't ever change yourself"였어요. 전 남친2명에게도 "I will never change myself for you"란 말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기도 하고 왜 사랑의 의미가 이 사람들에겐 다를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쇼핑몰에 한 번만 같이 가달라 부탁하다 딱 잘라 싫다길래 토라졌더니 "넌 왜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강요해? 난 너한테 너 싫은 거 해달란 부탁 안하잖아"(본인 물건 사러갈 땐 혼자 잘 감) 라고 할 땐 결국 내가 잘못한 건가? 싶게 되더라구요. 저같으면 정말 싫은 것도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해 줄수있지 생각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극단적 개인주의 사회의 장점은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존중 받는다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자란 저는 모두를 위해 나를 맞추는 법을 배우며 자랐기에 이런 정서가 이해가 안 가도 어느새 그냥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니...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은 원자적 개인을 뛰어넘는 것이었단 걸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네요. 나자신을 버리고 타인에게 스며드는 경험도 정말 인간적인 경험이라 생각하구요. 사실 독신으로 평생 살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큰 거 안 바라고, 조금 더 덜 계산적이고, 서로를 위해서란 고집을 꺾을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따뜻함을 계속 은근하게 데워줄... 그런 사람 만나보는게 제 꿈이에요.
ㅜㅜ 공감가요. 인간으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자유와 합일이 될 수 없기에 인간으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괴로웠던적이 있었어요. 인간 자체가 지구 우주의 해악이라고 생각한적도 있고요. 지금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긍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 그런데 또 육체가 존재하니 쾌락과 같은 극도의 고양감도 존재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인간이 사랑을 정신적으로 갈구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인간이 육체에 갇혀서 평생을 오르락 내리락의 그래프를 가지면서 살아가는건 애초에 육신은 자유와 거리가 멀고 평온과 가까워질 수 없기에 가질수 없는 평온 그리고 행복을 계속 추구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 가질수없는 행복을 행복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쾌락에 눈이 돌아가서 인간은 어쩔수없이 중독적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하면서 살게되고 그 중에 하나가 사랑인거죠. ”완벽 = 자유 = 평온 = 죽음“ 이 가질수없는걸 대체하는게 “사랑. 그리고 쾌락.” 어떻게보면 내 자유를 그나마 책임져주는것이 사랑이었기에 끊임없이 사랑의 대체제를 찾으려고 노력해왔던게 아닌가 싶어요. 자유를 갈망하고 죽음을 갈망하는 나의 무의식이 그렇게 상대방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도록 만들었구나 싶네요.. 난 너에게 갇혔다고 항상 괴로워했지만 알고보니 넌 나의 자유였구나
'사랑'은 강력한 '감정' 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은 생존을 위한 행동을 끌어내는 수단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랑은 감정의 한 종류이며, 그 목적이 생존이라는것에서 다른 감정들과 다를바 없지만 강도(체감)가 큰거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남녀간의 불타는 사랑, 동료간의 끈끈한 우정. 표현과 양상은 다양하지만, 나란 자아를 확장하여 타인을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노력이며 사회를 이루고, 타인과 소통하고 연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특성을 위해 개발된 도구란 생각입니다. 결국 '사랑'도 수단이기에 수단을 목적으로 하는 극단적 행동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사랑을 가치절하 하는 느낌이지만 그건 아니고, 사랑을 높게만 평가하여 신성시 하는 관점에 다른 생각을 가져 볼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전 이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위대하다는 1개의 정답같은 착각에 다른 여러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테니까요. 어쩌면 모두가 하나의 물질이라는 점에 대한 반항으로 개인의 자아가 생겨났다면, 모두가 하나의 물질임을 다시 인식하게 만드는 본능이 사랑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잘 들었습니다~ 사랑은 길을 밝히는 현상이라고 할까요? 빛따라 저절로 사랑하여지는 ... 나도모르게 상대에게 기울어지는 마음의 불균형 상태... 얽히고 설킨 감정의 그물에 엮이게 된채로 서로를 알게되어 그 그물코를 사랑 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너와 나의 분리의식은 명확하게 분간하는 도리나 사리이지만 사랑은 그 모두를 포함하고 보살펴주는 그지없는 책임인 동시에 또한 상대에게 매료되는 감성이라고 할까요? 사랑을 위하여 ~ ❤
영상을 보면서 정말이지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상 끝 부분에서 저출산도 언급하셨지만, 오늘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현실의 물질적 맥락에서만 남녀 간 사랑과 결혼을 바라 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영상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갖는다고 봅니다. 사랑의 현실적 측면에서 출발하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그 이면 깊은 곳에 내재된 정신적 측면을 실존적 맥락에서 일깨워 주신 충코 님의 알찬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사랑'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떤 시기, 어떤 때에 누구랑, 또는 삶을, 일을, 집단을 분야를, 영역을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러므로 사랑할 줄 알게 됨으로 살아가다보면 특별한 삶을 살고자 할 때가 있거나 특별한 일을 하고자 마음갈 때가 있거나 특별한 누군가와 서로 원 한 관계를 맺고자 할 때가 생기며 그 때에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니 그와중에 지금 한 이성을 만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위들(흔히 말하는 사랑나눔)도 있게 되는 것이라고 봐주고 싶네요 고로, 이성간의 사랑에서 함께하는 행위를 통해 '사랑하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오로지 한 인간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자로 자리하고(공시, 가치평가)있느냐가 알파요 오메가인 것입니다 아.. 물론, 한 인간의 성장(이름모를 사랑)을 위해 어느 누군가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희생당할 수가 부지기수라는 사실은 현재에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죠
사랑도 비지니스화 된지 오래라고 봅니다 인간은 예수나 부처가 아니기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배려 존중만으론 사랑이 빠르게 고갈될수 밖에 없고 나만 노력하는것 같고 상대방이 나에게 줄수 있는 가치(물질적 정신적 유형 무형 전부포함)가 내가 상대에게 줄수 있는 가치에 비해 너무 차이가 나면 제아무리 천년의 사랑?이라도 식는건 시간문제 같아요
사랑의 눈으로 상대를 볼때 상대를 향한 마음과 생각이 저에 대한 마음과 생각이 된다는 경험을 잘 정리해주셔서 공감이 됩니다. 그래서 살아가게 되나봐여. 스스로만을 보고 좋은 피드백을 스스로 주기엔 악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것 같은데.. 그래서 요즘 1인 가구로 연애 결혼 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고 꾸미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것을 사랑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물질이 최고인 세상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제 의견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충코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목적론의 일종인 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전체주의와도 유사한 거라 봅니다. 그리고 이런 견해는 충분히 가능하고 사랑에 대한 다양한 관점 중 하나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실을 놓고 보면 일자를 향한 목적론을 가지고 있을 때, 오늘날 사람들은 이별을 많이 겪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사랑에 대한 낭만 또는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좋지 않은 이별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회의감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거라 봅니다. 혐오스런 이별을 겪는 경우도 그렇고, 그저 시시하게 끝난 경우도 그럴 것입니다. 내 사랑이 고작 이거였어? 오늘날 한국에서는 결혼 연령이 높아졌고 그것은 많은 이별을 겪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에따른 정신적 상처가 많을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합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도 ‘사랑은 하나다’라고 요약될 수 있는 그 생각이 얼마나 울림이 있고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사랑에 대한 제 의견은 무엇인지도 이야기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론으로 인식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개인이 오히려 강조되어야 한다고 봅니나. 간단히만 말씀드리자면,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조화시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타인과의 조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내면을 놓고 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욕망과 자유를 말씀하셨지만, 인간 내면의 욕망이란 것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욕망과 불안이 대립하고 있는 거라 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조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사랑은 바로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거라 봅니다.
근래에 술자리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적절히 사랑을 해명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렇게 다뤄주셔 감사합니다. 다만 한가지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적습니다. ‘우리’라는 새로운 자기의식은, 비단 사랑에서만 이야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비롯하여, 한 사람 이상을 포함하는 개념의 다양한 언어사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사용을 꼭 사랑의 관계에서만 형성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랑의 관계가 아닌 다양한 관계에 있어 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 일종의 자기의식을 투사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어떤 신념, 역할, 집단에 자기의식을 투사하여 그것들과 구분되지 않는 욕망을 행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개념들과 비교하여 특별히 사랑의 동기, 사랑의 양상, 사랑의 실천 등을 설명할 때 '우리'라는 자기의식에서 원자적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처럼 보이던 욕망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하나됨의 경험’한다는 것이 충분한지는 확 와닿지가 않습니다. 충코님의 이론에서는 이 지점이 어떻게 해명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슈미츠가 ‘사랑의 해석학’에서 통찰했듯, 사랑을 원자적 개인의 개별적인 두 감정이 아닌, 하나의 사랑으로 해석하시는 부분에는 동감합니다. 사랑에는 답이 없다지만 늘 문제가 되는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사랑으로 방황할 때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런 멋진 이론을 완성해주시길.. 기대해봅니다.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하는 언어는 아닐지라도 철학자들은 언어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매번 하게되네요. 인간이 만든 프레임, 선악 행불행 사랑 등등,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의미 없는 걸텐데 그걸 주구장창 파고파서 먹고사는 듯.. 사람들이 만든 프레임중 하나인 행복 또한 문명이 발전할수록 줄어드는데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경외합니다. 인간으로서 자만하기도 하구요.
본래사랑의 이해는 없음과있음의 힘을 알면된답니다 없음과 있음의 힘이 손뼉처럼 동시에 있음을 알면된답니다 둘은 떨어질수없는 하나며 동등한힘이 정확히 일치한답니다 있음은나와우리의 다양한알아차림 텅빈자리. 존재. 절대의 처음새로움으로 확장하며 없음또한 있음의 의식상태만큼 동일한힘이 정확히 일치하며 없음있음에 사랑.생명의힘이 동시에 흐른답니다 있음만을보는것에서 없음이 동일하게 일치됨이 힘의 균형을 알때 있음에서 자유로우며 없음과의 균형적이고 일치된 삶을 영위한답니다
잘봤습니다. 제 경험으론, 이성과하는 사랑에선 내경계를 무너뜨리고 희생하고 상대를위해 하는것...이 좋은결과를 주진않더라구요. 그런 나의 사랑태도에대해서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아래두고 휘두르거나.. 하는식의 주고받음. 관계가 바탕에는 깔려있었던거죠.(사람마다 다르겠죠. 제 경험내에서는 슬프게도..) 말씀하신 정도의 사랑관계는 내자식.을 낳고 기를때 느낄수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딱 말씀하신. 내 경계가 무너지고 저 대상이 잘되고 유익해지는것에 내에너지를 아깝다 생각않고 자발적으로 바칠수있는 ... 그렇게함으로써 상대가 발전하고 상승하능 모습을 보고 내가슴이 진정으로 충만감으로 가득찬..하루하루 를 보내는 경험을 아이를 기를때. 그때 경험을 해보았네요.. 그 사랑에는 돌려받음이나. 조건이 없이. 평가나 논리가 없이 내가가진 에너지와 여력이 그쪽으로 흘러들러가고 일으켜세워주고 거름으로 쓰이고잇음이.. 그자체로 내게 기쁨이되는 상태였습니다. 아..이래서 엄마가 되보라고 하는건가? 싶기도했고 그 찐한 경험들로인해 정신적으로 정말많이 성숙할수있었던 기회가 된것같습니다. 확실히 사회적태도나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 제 스스로가 느낄수있을정도로 많이 달라졌거든요 제 경계가 '내자신'에서 내아이라는 외부타인까지 허물어지고 확장되어져 보니 내가족. 내 주변 사람들로도 확장되는 느낌이예요 일하며 만나는 주변사람들. 혹은. 내가 만나는 잠깐의이웃. 들에게. 나의 에너지와 친절함이 흘러가기를 그들에게 닿아서 조금은 오늘하루 더 상승되는 경험이 되기를 바라는 진정한 어른. 이 된것같은 느낌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각자 턴제로 공수 교환하듯 나아가는 관계. 어쩌면 남녀관계이기에 사랑이 더욱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결국 호르몬이 꺼지는 시간이 오면 무한한 권태가 반복되는 관계들이 될 뿐이기에, 일반적인 대다수의 남녀관계가 그렇기에 그 호르몬의 도움을 받은 일시적 사랑이 꺼지기 전에 자식에게 전이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나 싶네요.
사랑이 나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를 성립시키는 힘이라 할 때,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사랑일까...그것 역시 또 다른 우리로 나아가는 것 아닐까...사랑은 또 사랑과 엮인 초월은 이렇게 '나-우리-..'라는 출발점을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아닐까...인간에게 또는 인간 정신에게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이 가능할까...?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우리 라는 충코님의 생각을 들으니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마음입니다 댓글은 많이 못달고 있지만 새로 올라오는 영상은 알림설정해서 꼭꼭 챙겨보고 반복해서 다시 또 보기도 합니다 이번 영상은 두번 봤는데 특히 더 반복시청 하게될 것 같아요 항상 응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십대때는 사랑으로서의 우리, 타자와 타자로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경험을 너무 강렬하게 했던것 같은데 사십인 지금은 왜 그런감정을 못느낄까요 영상보고나서야 내가 그랬단걸 기억해냈네요. 이것도 생물학적 시기가 있는건지, 아님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 사랑이 아닌건지(여보 미안ㅋㅋ) 아님 같은 대상이어도 경험의 감정은 변화될수밖에 없는지 궁금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화 헤드윅도 떠올랐어용
인간은 사랑 할 수 없습니다. 전제부터 다시 하시죠... 단순히 사랑이라는 활동을 정의하는 것은 너무 표면적인 것 같습니다. 핵심으로 가보시죠.. 보통 사랑이란 “내 맘에 드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고 시작하죠… 사랑이라는 것이 꼭 내 맘에 드는 사람에게 뭔가 해주는 것일까요? 충코님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은 인간을 벗어날 수 없구나… 생각이 들어요. 글쎄요 모순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사고와 생각을 뛰어 넘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없을까요? 철학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죠.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의 할 수 있는 모든 총체의 하위카테고리라면 인간은 사랑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종류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 그거 사랑일까요?? 의심해 보세요 ㅎㅎ 참고로 저는 철학은 안했고, 물리학(학부) 문화인류학(석)했습니다.
사랑을 대한 얘기는 메디아 와 이야손 을 생각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랑은 메디아 처럼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이야손이 자기 일에 빠져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봅니다. 자유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르시스소스 를 보면 자기애에 빠져 주변에 과심이 없어 강에 홀려 죽는것 그래서 전 사랑이란 자기자신을 소중함을 느끼는것 처럼 주변에 용기를 경청 과 공감이라고 봅니다.
참 신기하면서 이상한게,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대화하고 교류하며 실제로 '초월하면서'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데, 한 편 혼자서, 또는 자아에 있어서 만큼은 자꾸 집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 사실은 이미 살아가면서 계속 느끼고 경험하는 것인데도...
충코님은 사랑 경험이 있으신 분 같습니다.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시거나. 상당히 깊이 있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사랑은 또한 미스테리이기도 합니다. 초월적 차원을 넘어선 미스테리죠. 이 광대한 우주의 수많은 장미 꽃 중에 한 송이가 불쑥 우연히 내 공간에 씨앗 하나로 날아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사랑이란 우연을 가장한 미스테리 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숙명인지는 확신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유효 기간이 다 되어 끝이 났을 때, 어쩌면 그토록 온 마음을 다해 사랑 했던 그 시간들이 아무런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소멸해 버렸을까,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을 따라 물끄러미 시선이 흘러 가듯 약간의 슬픔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에 대해 생각 합니다. 영화 도 있었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가 등장 합니다. 물,불,흙,공기의 무게와 성질을 가진 4원소에, 지구를 초월한 천상의 완전한 물질인 가 가 됩니다. 이는 당시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상상계와 거의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즉, 현실과 거리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무게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가 진리 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 에서는 그 정체를 "사랑"으로 결말 짓습니다. "파괴 시킬 게 뻔한데 뭐하러 구해요?" "릴루,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아직도 구할 가치가 있는 게 많아. 아름다운 것들이!" "그래 사랑!" 아주 좋은 거야. 구할 가치가 있지!" 절대 악을 물리 치고 지구를 구할 최종의 원소인 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반드시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 하지는 않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보다 더 미스테리 해서 종종 진실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철학과, 수많은 시와, 소설과, 영화류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 누가 "사랑"에 대해 완벽한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사랑"을 경험하고 시나 산문을 쓰기도 하지만 절대 확언 하지는 못합니다. 흠, 정말 정말 "사랑"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아파 울기도 하죠. 그것이 댓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 정신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우리"라는 새로운 자아가 "하나"의 형태로 삶의 특별한 경험으로 피어 났을 때, 그것은 인간을 매우 성숙한 정신적 활동으로 이끕니다. 충코님의 논리에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자의 일흔의 "종심소욕불유구"에 대해서는 약간 견해차가 있습니다. 충코님은 사회적 욕망즉 사회가 요구 하는 도덕적인 관점으로 말씀하신 듯 합니 다. 물론 그 말도 상통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공자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때는 보다 총합적인 관점이 필요할 것 같습니 다. 즉, 공자가 나이 일흔에 대해 얘길 할 때는, "나는 나이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부터 시작해서 마흔에는 미혹 되지 않았고, 오십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았고, 예순에는~을 지나 일흔"에 이릅니다. 그러니 단순히 사회적 도덕이나 욕망에만 국한 된 일흔은 아닐 듯 합니다. 좀 더 심오한 세상 이치에 대한 우주적 관점의 깨달음에 대한 것일 겁니다. 인간의 이론과 논리를 초월 하는 것이죠. 공자가 평생에 걸쳐 노력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정신 세계 입니다. "자유"에 대해서 논할 때, "죽음"이 곧 "자유"의 길이다, 라는 결론이 에 등장 한다는데, 저는 그 또한 약간 견해가 다릅니다. 인간이 육체를 벗는 죽음으로 자유를 얻는 다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생각 합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지는 순전히 정신적인 것입니다. 살아 생전 정신적으로 한이 되는 일이 있다면 절대 죽음으로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잘 죽는 것이 가장 어려울 수 있는 겁니다. 욕망이 지나쳐 소유욕이 끝이 없을 때도 절대 죽음으로 자유로와 질 수 없습니다. 저는 를 본 적이 없어 내용을 모르므로 잘을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가 자유를 갈망하며 결국 죽음과 하나?가 되어 엔딩을 맞이 했다면, 그런 자유는 아마 정신적 자유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닌가. 즉, 불교 철학적으로 "해탈"에 대한 의미는 아닐까 합니다. 는 아마 구속적인 환경을 벗어 나는 노력을 통해 정신적인 큰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유"란, 순전히 정신적 차원으로써 대단히 폐쇄적인 극한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찾기 위한 탈출을 제외한 공간에서의 자유란, 그 자유를 추구 함에 있어서 "영감"을 얻기 위한 정신적 활동이 필요 합니다. 순전히 "자유"만을 논하기 보다는 매 순간, 매 공간 마다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이 보다 진정하고 찬란한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에 마무리로, "사랑" 또한 서로에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꾸준히 잘 키워 나가야 할 것 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그(그녀)에게서 "영감"을 얻는 다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찬란한 순간이 됩니다. 전 우주적 순환의 생애를 모두 아울러 이 한 번의 찰나의 "인생" 속에서 가슴이 아릴 정도로 깊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영감"을 얻는 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보석 보다도 더욱 더 진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심신을 매우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삶"이 되도록 "우리"는 매 순간 깨어 있고,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사랑"에 상처 받았다 해도 절대 "사랑"을 놓아선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혼탁해진 지구를 악에서 구할 진귀한 보석 제입니다. 무게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영혼계의 영적인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사랑이 우리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근원이라고 느끼고, 그만큼 사랑을 알아가고 사랑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우리의 경험이 없습니다. 연애라는 것은 보통 이성에 대해 감정적으로 끌리면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성중심적이고 사고형이 강해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이성적으로 푹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상대에게 이성적 끌림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기에(외면적인 것 말고 내면적인 것들도 중요하기에) 적극적으로 간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연애를 보면, 상대에게 어느정도 호감과 끌림이 있다면, 더 알아가기 위해 의지를 갖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상대는 저에게 자신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여러번 묻기도 했고요 이렇게 연애를 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는 시작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천천히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제 성향에 맞는 것 같습니다 무튼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저처럼 이성중심적이고 사고형이 강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푹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아가 사라지는, 계산적이지 않게 되는 사랑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Shalomel_ 안녕하세요 @Shalomel_ 님. 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여성분이신지, 연령은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략 20대 중반 정도 되신 듯 합니다. 저의 의견은 그저 참고 정도만 하셔도 됩니다. 저 외에 더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들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사랑에 있어선 정답이 다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얼핏 @Shalomel_ 님이 아직 운명의 짝을 못 만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운명의 짝을 만나면 그렇게 싫어 하던 면조차 사랑 하고 이해 하게 됩니다. 운명의 짝이 아니면 온갖 것에 트집이 생기게 됩니다. 계산 하게 되고, 비교 하게 되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보려고만 하게 되죠. 운명적이란 것은 마치 자연스런 이끌림이거나 편안함 같은 것입니다. 자석 처럼 음과 양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찾아 이끌리듯이. 내가 취미로 하거나 좋아 하는 분야 같은 것에 상대가 이해력이 부족 해 함께 즐길 수 없어도 그것 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너와 내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서로 각자의 세계를 그저 인정 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가 그냥 너라서 좋아. 사랑해. " 와 같이 되죠. 하지만, 아무리 운명적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가치관이나, 정치적 견해, 종교 등이 너무 다르면 절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아주 나쁜 취미나 나쁜 버릇이 있어도 반드시 미련조차 남기지 말고 끝을 내야 합니다. 그런 것은 절대 인내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 하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이 다양한 생활의 경험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탐독을 한다면 세상에 대한 화각이 드넓어져 보다 원숙한 사랑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설익은 젊은 나이엔 설익은 사랑을 하기 쉽고, 상처도 쉽게 받게 됩니다. 그것 또한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그 경험을 통해 또래 보다 더욱 성숙 해 집니다. 저의 경험 한 단락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린다면 , 저는 어느날 , 우연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유머러스한 행동을 보면서 깔깔깔 웃다가 순간적으로 뭔가 특별한 감정이 훅~! 들어 왔고 그만 푹 빠져 한참을 중독적으로 사랑 했었습니다. 울고 웃고 깊이 인내 하고 사랑 했지만, 결국 깨끗하게 끝났어요. 왜냐면 그가 사이비 종교에 영혼을 팔았더군요. 그래서 미련 없이 끝을 냈어요. 하지만 그를 사랑 했던 영감어린 시절의 풍부한 경험은 저의 정신적 자산으로 남겼습니다. 사랑엔 정답이 없습니다. 스스로 탐독 하고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은 음과 양을 만드시면서 우리 인간에게 그러한 성찰의 여정을 선물 하셨습니다. 비록 이 생에 운명적인 사랑의 인연이 없다 해도 절대 절망 하거나 낙담 하지 말고 , 그 우여곡절의 다채로운 여정 자체를 사랑 하셨으면 합니다. @Shalomel_ 님은 아마도 영원을 함께 할 진정한 사랑을 만나실 듯 합니다. 적어도 그 여정의 길 위에 계신 듯 합니다. 아직은 이정표를 발견 하지 못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이정표만 찾으려 하지 마시고 , 그 길가에 피어 난 생명들의 순수를 느끼고 체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예상치 않은 어느 날 얼핏 원하던 무엇을 찾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여기까지만 저의 의견을 올립니다. 만족스럽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최대한 세계를 개방 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 하세요. @Shalomel_ 님은 분명 원하던 사랑을 하실 것입니다. 곧 설 입니다. 우리 우리 설날을 새롭게 잘 시작하시고,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저에게 의견 물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사랑을 도파민과 옥시토신 분비의 증가가 아닌 이런 인문학적(?)인 관점으로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통해 ’트윈 플레임‘이란 용어의 기원이 그리스 신화였다라는 사실을 알고 갑니다. 재미있네요. 그러고보니 타로카드에서 연인에 해당하는 ‚The Lovers‘ 카드가 떠오릅니다. 타로카드니까 아담과 이브만 그려져 있어도 될 법한데 굳이 성경에 따라 선악과 나무까지 그려져 있고, 이 카드가 별자리 중 쌍둥이자리에 해당되는 까닭, 그리고 이 카드가 ‘우리’라는 연결성 속에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윤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이유도 이 영상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군요. 어느 분야에서 고수가 되면 그 통찰력으로 인해 다른 분야에서도 고수가 되기 쉽다는데 철학자한테 이런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충코님 타로 배우시면 금방 타로마스터 되실 듯. 참, 충코님 영상 특징은 영상 배경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야외에서 산책하듯 촬영하시는 것이 정말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메타버스같은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철학에 대해 토론하는 ‘찐’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기분 다른 채널에서는 못 느꼈는데 정말 특별하네요.
-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논리적사고로 진리에 밀접하게 다가가는 것이 대단해보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습을 남들이 보고 가스라이팅당한다거나 헌신, 희생적이라는 표현을 쓰곤하는데
사랑을 한다는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그(그녀)' 자체에 있고, '나'라는 허물을 내려놓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분리되어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원래 합일되어있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 말씀하신걸 인용해봅니다.
'사랑에 빠진다'라는 표현은 정말 정확한 표현이다. 사랑에 날아오른다, 사랑에 다가간다, 사랑에 눕는다 라고 하지않고 falling, 빠진다라고 표현한다는 점은 내려놓다(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제가 하는 사랑의 신념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불완전한 진동의 연속이며, 죽음은 완벽한 상태입니다. 무엇을 뺄수도 더할수도 없는 완벽한 상태.
그래서 사람들이 완벽해지려는 욕구가 강해질수록 죽음의 상태와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다고 느낄수록 더 성장할 수 없는 상태, 즉 죽음과 가까운 것이죠. 완벽해질 수 없는 현재를 그대로 수용해야 비로소 우리 인간들이 말하는 '완벽함'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저는 사랑만이 완벽함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수를 몇번이나 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충코님의 선한 영향력 늘 응원합니다.
와우!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chuckberry7749님은 그냥 감정사고가 너무 강하신듯. 비극이라뇨;
남의 정의를 비극이라며 내려치기하지마세요
댓글에 감탄하고 갑니다...!
스스로 사랑이 없나 나는 왜 그런가 생각했는데 이 글에 큰 울림을 받습니다. 캡쳐해서 들고다니며 읽고 명심하려구요. 저는 가족과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싶습니다. 사랑 한다고 말로만 하지않고 진짜 사랑을..
하나였던 존재가 분리가 되어 다시 하나가 되려는 것! 인용한 신화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글이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이 났어요. "사랑의 힘과 크기를 이해하려면 어떤 준비가 있어야 한다. 사랑의 문제는 사람들이 사랑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려고 애쓰고, 심지어 사랑받으려고 애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것이 첫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샬 비안 서머즈가 쓴 글 '사랑' 에서는 자기에 대한 사랑, 즉 자기 본성에 대한 사랑을 먼저 정직하게,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크게 공감을 느꼈습니다.
영감을 주는 영상, 감사합니다.
어릴때는 사랑은 희생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랑은 아껴주는 마음같아요 그사람이
행복한게 사랑같고 엄마가 나때문에 김장을 못하게 하는 그런게 사랑같아요
중요한건 자기 자신을 먼저 있는 그대로 사랑할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것 같고요
어느 심리학 박사님께서도 실제로 사랑을 하게 되면 뇌에서 자아를 구분하는 영역에 상대방을 끌어들여 동일시하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충코님 말씀대로 사랑은 우리라는 새롭고 역동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최근에 이별을 했어요 상대방과 저의 욕망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있었고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 상대방의 욕망을 채워주었어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가네요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는 조건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찾아갔어야 했거든요 저는 사랑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헌신적인 사랑을 했던 저의 모습을 떠올리면 상대방을 사랑한 것보다 사랑을 주는 내 모습을 사랑한 것 같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욕망이 상대방의 욕망과 구분이 가지 않으려면 내 욕망도 지키고 있어야 하잖아요
저의 생각과 같아요
정말 존경하고 서로 의지할 만한 사람과
진심으로 사랑해보고 싶다
자의식 속에서만 정지해 머물러 있으면 사랑을 할 수 없다라.. 어쩌면 에고가 비대한 인간일수록 자연스런 사랑에 대한 가능성이 옅어질수도 있겠네요
사랑이란 뭘까에 대해 친구와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때 나온 답이 아마 말씀해주신 내용과 조금 비슷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이 잘 됐으면 해서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 대충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났던 걸로 기억나네요
근데 하나 드는 생각은
흔히 말하는 남녀 간의 사랑에선
먼저 누군가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는 가로 시작되니까 결국 1차적으로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만큼 나를 발전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걸 생각하는 건 한창 사랑하고 있을 때나 필요한 거지 아직 시작도 못해본 상태에선 부질없는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충코님 영상은 두번 세번 보고 들어도 매번 느끼는게 달라지는 재미가 있어요. 이 세상에 진정 필요한건 ‘철학’이 아닐까요
사랑이란 각자의 욕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정말 맞는 말 입니다, 알지만 안되는것, 항상 경계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 싶어서 싸우지요.
너무나도 좋은말씀입니다. 사랑에 대한 철학은 너무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은 연인 친구 가족등 여러 대상을 상대로하고
충코님의 책을 인용하면 연인간의 사랑에도 100커플이면 100가지 사랑의 양상이 있는데
다시 인용하자면 자기중심성의 극복과 "나"의 관점에서
"우리"의 관점으로의 변화가 이 모든 사랑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는데요
자기중심성이 완전히 극복될 수 없다는점과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는데에 근원적으로 내재된 한계때문에
제한적인 합일만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제한된 사랑의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필요한 이유, 의미가 있을까요??
1.충코님의 책을 다시 인용하자면 삶의 의미를 경험하는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들었고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2.또한 인간은 자신의 정신 중 일부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부만 의식으로 올라오고 나머지는 무의식상에 잠재된 형태로 있는데 사랑을 하면 인간실존의 핵심과 관련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던 자신의 일부 또는 핵심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3.저의 직관적으로는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4.자기중심성을 완전히 없애진 못하더라도 기존의 경향과 반대되는 자기중심성이외의 내면상태를 경험하게 되고 그런행동을 하게되는데 저는 이것이 자기자신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곤충부터 동물 인간까지 모든 세계에 편재된 세상의 법칙의 유일한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줄이자면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온 세상의 규칙의 예외로서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김으로서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주어진 굴레를 극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민호박-z5e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너무 아름다운 형이상학적 이미지 입니다. 서로 서로가 만든 이 ’하나의 공간‘ 에서, 내가 중심이고, 상대는 나의 욕망의 선택이어서… 항상 내 파이를 키우는라 그리고 잃지 않으려고 왜곡된 사랑을 진짜인줄 알고 연습했네요. 진보적인 하나로써는 가치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충코님 덕분으로 깊이 자기성찰해보니 그래서 ‘에의’가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와 닿습니다.
정말 소중한 영상, 본질에 이르는 철학적 사유를 하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유투버들이 사랑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썰푸는 영상 안 좋아하는데 우연히 클릭한 이 영상은 끝까지 보게 되었네요. 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곳에서 늘 듣는말이 "Don't ever change yourself"였어요. 전 남친2명에게도 "I will never change myself for you"란 말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기도 하고 왜 사랑의 의미가 이 사람들에겐 다를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쇼핑몰에 한 번만 같이 가달라 부탁하다 딱 잘라 싫다길래 토라졌더니 "넌 왜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강요해? 난 너한테 너 싫은 거 해달란 부탁 안하잖아"(본인 물건 사러갈 땐 혼자 잘 감) 라고 할 땐 결국 내가 잘못한 건가? 싶게 되더라구요. 저같으면 정말 싫은 것도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해 줄수있지 생각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극단적 개인주의 사회의 장점은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존중 받는다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자란 저는 모두를 위해 나를 맞추는 법을 배우며 자랐기에 이런 정서가 이해가 안 가도 어느새 그냥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니...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은 원자적 개인을 뛰어넘는 것이었단 걸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네요. 나자신을 버리고 타인에게 스며드는 경험도 정말 인간적인 경험이라 생각하구요. 사실 독신으로 평생 살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큰 거 안 바라고, 조금 더 덜 계산적이고, 서로를 위해서란 고집을 꺾을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따뜻함을 계속 은근하게 데워줄... 그런 사람 만나보는게 제 꿈이에요.
그런 사람 만나보는게 꿈을 꾸기보다 그런 사람 되기로 하시길
@@nitamaharanis지혜로운 답변이네요
모두를 위해 나를 맞춘다는게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그러면 님은 남들에게 nice girl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사셨다면 no more Mr. Nice Guy 란 책 한번 봐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준 레전드북입니다.
고전적이지만 남성의 굳건함에 여성은 기꺼이 따르고, 여성의 상냥함에 남성은 기꺼이 희생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성립되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형성에 가장 이상적인 전제조건이 아닌가 싶어요.
단편화할수없지만 문화차이일수도. . . 그쪽동네가유독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라 반좋고반별로인거같아요
그래서한국사람은 한국사람만나는게최고같아요
나이들면나이들수록 그런게크게오더라구요
중코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계속 떠오르는 단어가 '포기'네요.
'나의 이익과 개인적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결코 상대방의 욕망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젖게 되는 영상이었습니다.
ㅜㅜ 공감가요.
인간으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자유와 합일이 될 수 없기에
인간으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괴로웠던적이 있었어요.
인간 자체가 지구 우주의 해악이라고 생각한적도 있고요.
지금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긍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
그런데 또 육체가 존재하니 쾌락과 같은 극도의 고양감도 존재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인간이 사랑을 정신적으로 갈구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인간이 육체에 갇혀서 평생을 오르락 내리락의 그래프를 가지면서 살아가는건
애초에 육신은 자유와 거리가 멀고
평온과 가까워질 수 없기에
가질수 없는 평온 그리고 행복을 계속 추구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 가질수없는 행복을
행복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쾌락에 눈이 돌아가서
인간은 어쩔수없이 중독적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하면서 살게되고
그 중에 하나가 사랑인거죠.
”완벽 = 자유 = 평온 = 죽음“
이 가질수없는걸 대체하는게 “사랑. 그리고 쾌락.”
어떻게보면 내 자유를 그나마 책임져주는것이 사랑이었기에
끊임없이 사랑의 대체제를 찾으려고 노력해왔던게 아닌가 싶어요.
자유를 갈망하고 죽음을 갈망하는 나의 무의식이
그렇게 상대방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도록 만들었구나 싶네요..
난 너에게 갇혔다고 항상 괴로워했지만
알고보니 넌 나의 자유였구나
'사랑'은 강력한 '감정' 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은 생존을 위한 행동을 끌어내는 수단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랑은 감정의 한 종류이며, 그 목적이 생존이라는것에서 다른 감정들과 다를바 없지만 강도(체감)가 큰거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남녀간의 불타는 사랑, 동료간의 끈끈한 우정.
표현과 양상은 다양하지만, 나란 자아를 확장하여 타인을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노력이며
사회를 이루고, 타인과 소통하고 연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특성을 위해 개발된 도구란 생각입니다.
결국 '사랑'도 수단이기에 수단을 목적으로 하는 극단적 행동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사랑을 가치절하 하는 느낌이지만 그건 아니고,
사랑을 높게만 평가하여 신성시 하는 관점에 다른 생각을 가져 볼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전 이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위대하다는 1개의 정답같은 착각에 다른 여러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테니까요.
어쩌면 모두가 하나의 물질이라는 점에 대한 반항으로 개인의 자아가 생겨났다면,
모두가 하나의 물질임을 다시 인식하게 만드는 본능이 사랑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잘 들었습니다~
사랑은 길을 밝히는 현상이라고 할까요?
빛따라
저절로
사랑하여지는 ...
나도모르게
상대에게 기울어지는 마음의 불균형 상태...
얽히고 설킨 감정의 그물에 엮이게 된채로 서로를 알게되어
그 그물코를 사랑 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너와 나의 분리의식은 명확하게 분간하는 도리나 사리이지만 사랑은
그 모두를 포함하고 보살펴주는 그지없는 책임인 동시에 또한 상대에게 매료되는 감성이라고 할까요?
사랑을 위하여 ~
❤
사랑으로 시작되지만, 사랑으로 죽기도 하는 동물. 그게 생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전자의 본능조차 거역하게 만드는 욕망이랄까요.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의 독사과 사건이 어쩌면 가장 사랑과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네요 ㅎㅎ
그런가요?
결국 우리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로
놓여지기를 본능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닌까요?
희생하고 보호하고 그리고 책임지는 태도로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때까지 혼란과 갈등을 심하게 겪지 않을까요?
사랑도 귀의의 본능이겠지요ㅎ
■사랑은 말로 논리로 객관적으로 표현할수 있는게 아니지. 각자 개인이 느끼는 그 감정 이니까.■ 사랑은 너가 경험한 그 느낌 만큼만 알수 있는거다. ■ 사랑이란 말을 몰라도 충분히 느낄수있다. 😊
네 이웃의 몸을 네 몸 처럼 사랑하라
-예수
다른 생물들에게 친절하라
-석가모니
영상을 보면서 정말이지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상 끝 부분에서 저출산도 언급하셨지만, 오늘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현실의 물질적 맥락에서만 남녀 간 사랑과 결혼을 바라 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영상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갖는다고 봅니다. 사랑의 현실적 측면에서 출발하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그 이면 깊은 곳에 내재된 정신적 측면을 실존적 맥락에서 일깨워 주신 충코 님의 알찬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사랑'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떤 시기, 어떤 때에 누구랑, 또는 삶을, 일을, 집단을 분야를, 영역을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러므로 사랑할 줄 알게 됨으로 살아가다보면 특별한 삶을 살고자 할 때가 있거나 특별한 일을 하고자 마음갈 때가 있거나 특별한 누군가와 서로 원 한 관계를 맺고자 할 때가 생기며 그 때에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니 그와중에 지금 한 이성을 만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위들(흔히 말하는 사랑나눔)도 있게 되는 것이라고 봐주고 싶네요
고로, 이성간의 사랑에서 함께하는 행위를 통해 '사랑하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오로지 한 인간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자로 자리하고(공시, 가치평가)있느냐가 알파요 오메가인 것입니다 아.. 물론, 한 인간의 성장(이름모를 사랑)을 위해 어느 누군가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희생당할 수가 부지기수라는 사실은 현재에도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죠
전 진심으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
다음 생이 있다면 한번 해 보고 싶네요
참으로 좋은 경험 일 듯 해요
여러분들 늘 사랑하시옵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
충코님 덕분에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도 비지니스화 된지 오래라고 봅니다 인간은 예수나 부처가 아니기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배려 존중만으론 사랑이 빠르게 고갈될수 밖에 없고 나만 노력하는것 같고 상대방이 나에게 줄수 있는 가치(물질적 정신적 유형 무형 전부포함)가 내가 상대에게 줄수 있는 가치에 비해 너무 차이가 나면 제아무리 천년의 사랑?이라도 식는건 시간문제 같아요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소통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겠죠?
사랑의 눈으로 상대를 볼때 상대를 향한 마음과 생각이 저에 대한 마음과 생각이 된다는 경험을 잘 정리해주셔서 공감이 됩니다. 그래서 살아가게 되나봐여. 스스로만을 보고 좋은 피드백을 스스로 주기엔 악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것 같은데.. 그래서 요즘 1인 가구로 연애 결혼 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고 꾸미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것을 사랑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물질이 최고인 세상에서..
결론은 다 지좋자고 하는것임
단도직입적으로 제 의견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충코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목적론의 일종인 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전체주의와도 유사한 거라 봅니다. 그리고 이런 견해는 충분히 가능하고 사랑에 대한 다양한 관점 중 하나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실을 놓고 보면 일자를 향한 목적론을 가지고 있을 때, 오늘날 사람들은 이별을 많이 겪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사랑에 대한 낭만 또는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좋지 않은 이별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회의감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거라 봅니다. 혐오스런 이별을 겪는 경우도 그렇고, 그저 시시하게 끝난 경우도 그럴 것입니다. 내 사랑이 고작 이거였어?
오늘날 한국에서는 결혼 연령이 높아졌고 그것은 많은 이별을 겪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에따른 정신적 상처가 많을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합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도 ‘사랑은 하나다’라고 요약될 수 있는 그 생각이 얼마나 울림이 있고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사랑에 대한 제 의견은 무엇인지도 이야기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에 대한 전반적인 회의론으로 인식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개인이 오히려 강조되어야 한다고 봅니나. 간단히만 말씀드리자면,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조화시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타인과의 조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내면을 놓고 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욕망과 자유를 말씀하셨지만, 인간 내면의 욕망이란 것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욕망과 불안이 대립하고 있는 거라 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조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사랑은 바로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존경합니다..
제가 공부하고싶은 분야에 완전하셔서..늘 제 삶에 원동력이 되고았읍니다..❤
굉장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나란 사람이 사랑을 하며 말도 안되게 헌신적이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사랑은 상대방을 섬기는 그 과정 자체일까?'하는 무언가 신앙적인 관점으로 사랑을 해석했었는데, 영상을 보니 또 재밌는 주제로서의 고민이 생기네요!
충코님 영상은 여러번 돌려봅니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여러번 곱씹으며 제 사고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아서요
희망적인 미래를 상정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그건 사실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판단자들은 믿을 것이나 그들이 그러는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때 그들은 창조자가 된다
근래에 술자리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적절히 사랑을 해명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렇게 다뤄주셔 감사합니다.
다만 한가지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적습니다.
‘우리’라는 새로운 자기의식은, 비단 사랑에서만 이야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비롯하여, 한 사람 이상을 포함하는 개념의 다양한 언어사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사용을 꼭 사랑의 관계에서만 형성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랑의 관계가 아닌 다양한 관계에 있어 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 일종의 자기의식을 투사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어떤 신념, 역할, 집단에 자기의식을 투사하여 그것들과 구분되지 않는 욕망을 행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개념들과 비교하여 특별히 사랑의 동기, 사랑의 양상, 사랑의 실천 등을 설명할 때 '우리'라는 자기의식에서 원자적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처럼 보이던 욕망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하나됨의 경험’한다는 것이 충분한지는 확 와닿지가 않습니다. 충코님의 이론에서는 이 지점이 어떻게 해명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슈미츠가 ‘사랑의 해석학’에서 통찰했듯, 사랑을 원자적 개인의 개별적인 두 감정이 아닌, 하나의 사랑으로 해석하시는 부분에는 동감합니다.
사랑에는 답이 없다지만 늘 문제가 되는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사랑으로 방황할 때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런 멋진 이론을 완성해주시길.. 기대해봅니다.
사랑은 양자 중첩과 같은 나와 너의 중첩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면서 너이면서 하나이면서 둘이면서
나이가 어느정도 들었는데도 서로 완성된사랑을 해본적이없어요 제가 경험한사랑은 아픔과 버림받은 기억뿐이네요 이젠 사랑같은거 하기싫어요
많이 공감가네요. 사랑..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살아가는 것도 참 의미있게 느껴질 듯 한데 ㅠㅠ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하는 언어는 아닐지라도 철학자들은 언어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매번 하게되네요. 인간이 만든 프레임, 선악 행불행 사랑 등등,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의미 없는 걸텐데 그걸 주구장창 파고파서 먹고사는 듯.. 사람들이 만든 프레임중 하나인 행복 또한 문명이 발전할수록 줄어드는데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경외합니다. 인간으로서 자만하기도 하구요.
원자를 초월해야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듯 합니다.
원자적 개인, 대전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충코님의 영상을 통해 철학이, 생각이 주는 힘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됩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기하다..저렇게 생각해본적 없는데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됬네요 감사합니다
몇 개월 전, 로맨틱 러브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이 영상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여러 공부를 하고 다시 들으니 와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신 건지!!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좋은 철학자를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금 영상 여러개 연이어 보고 있습니다. 책도 읽어 볼께요 😊
너무 좋은 영상이에요....❤감사합니다!!!
사랑은 밥이죠.
충코님 맛있는거 자주 짬짬이 즐기세요~
좋은말씀 녹화 떠서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해 보렵니다. ..동의 하니까요~~🤣
화이팅~~^^
본래사랑의 이해는
없음과있음의 힘을 알면된답니다
없음과 있음의 힘이 손뼉처럼 동시에 있음을 알면된답니다
둘은 떨어질수없는 하나며 동등한힘이 정확히 일치한답니다
있음은나와우리의 다양한알아차림
텅빈자리. 존재. 절대의 처음새로움으로 확장하며
없음또한 있음의 의식상태만큼 동일한힘이 정확히 일치하며
없음있음에 사랑.생명의힘이 동시에 흐른답니다
있음만을보는것에서 없음이 동일하게 일치됨이 힘의 균형을 알때 있음에서 자유로우며 없음과의 균형적이고 일치된 삶을 영위한답니다
많은 공감이 되네요. 사랑을 통해서 의식 확장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오히려 예수가 더 묵상이되네요 저에겐 고마운 영상이네요
이렇게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가 내게도 한명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 하고 있어요!!
널 위문 이지현 님 덕에 알게 됐는데 집중해서 듣게 되네요
말로써 철학하시는 모습이 멋지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철학은잘몰라서 내용정리가 안되지만 논리적으로 잘말씀하셔서 이해는 어느정도되네요 저는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누가 물어보면 영화에빗대고싶습니다 제가본영화중에서 가장 사랑의감정을 깊게느낀영화는 인터스텔라와 밀리언달러베이비였습니다 어떤 남녀간의 사랑영화보다도 저는 감동적이었고 많이울었습니다
작가님이 올려주신 영상 중에서 가장 감명깊게 본 영상입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생각이 담긴 다른 영상도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와우 큰깨달음 얻어가요
모든 행동은 본인이 좋자고 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함께 좋자는거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건 아집과 집착이 되어버림. 물론 나를 포기하는 것도 사랑이 아님. '함께'가 아니기에, 결국 상호작용이어야 단단해짐..
사랑에 대한 철학은 아무래도 경험을 통해 깨닫고 확인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런 점을 생각하면 충코님과 j님의 관계가 정말 부러워지네요.. 책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녹여내주셔서 특히 더 흥미롭게 읽었어요
충코님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작년에 힘들다는 댓글 달았다가 충코님이 댓글 달아주셨는데 제가 부끄러워 그 댓글을 지웠습니다. 당시에 사랑과 일 둘다 잃은 상황에서 절망스러웠고 충코님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을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충코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사랑을 해보고 싶네요.... 사랑이란 의미의 정답은 없는 것 같지만, 제가 아직까지 성숙한 사랑을 해본 적 없다는 건 저 스스로 넘 잘 알고잇기에
넘 깊은 사색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제 경험으론, 이성과하는 사랑에선 내경계를 무너뜨리고 희생하고 상대를위해 하는것...이
좋은결과를 주진않더라구요.
그런 나의 사랑태도에대해서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아래두고 휘두르거나.. 하는식의 주고받음. 관계가 바탕에는 깔려있었던거죠.(사람마다 다르겠죠. 제 경험내에서는 슬프게도..)
말씀하신 정도의 사랑관계는 내자식.을 낳고 기를때 느낄수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딱 말씀하신.
내 경계가 무너지고 저 대상이 잘되고 유익해지는것에 내에너지를 아깝다 생각않고 자발적으로 바칠수있는 ...
그렇게함으로써 상대가 발전하고 상승하능 모습을 보고 내가슴이 진정으로 충만감으로 가득찬..하루하루 를 보내는 경험을
아이를 기를때. 그때 경험을 해보았네요..
그 사랑에는 돌려받음이나. 조건이 없이. 평가나 논리가 없이
내가가진 에너지와 여력이 그쪽으로 흘러들러가고 일으켜세워주고 거름으로 쓰이고잇음이..
그자체로 내게 기쁨이되는 상태였습니다.
아..이래서 엄마가 되보라고 하는건가? 싶기도했고
그 찐한 경험들로인해 정신적으로 정말많이 성숙할수있었던 기회가 된것같습니다.
확실히 사회적태도나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 제 스스로가 느낄수있을정도로 많이 달라졌거든요
제 경계가 '내자신'에서 내아이라는 외부타인까지 허물어지고 확장되어져 보니
내가족. 내 주변 사람들로도 확장되는 느낌이예요
일하며 만나는 주변사람들. 혹은. 내가 만나는 잠깐의이웃.
들에게. 나의 에너지와 친절함이 흘러가기를
그들에게 닿아서 조금은 오늘하루 더 상승되는 경험이 되기를 바라는 진정한 어른. 이 된것같은 느낌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각자 턴제로 공수 교환하듯 나아가는 관계.
어쩌면 남녀관계이기에 사랑이 더욱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결국 호르몬이 꺼지는 시간이 오면 무한한 권태가 반복되는 관계들이 될 뿐이기에, 일반적인 대다수의 남녀관계가 그렇기에 그 호르몬의 도움을 받은 일시적 사랑이 꺼지기 전에 자식에게 전이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나 싶네요.
사랑이 나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를 성립시키는 힘이라 할 때,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사랑일까...그것 역시 또 다른 우리로 나아가는 것 아닐까...사랑은 또 사랑과 엮인 초월은 이렇게 '나-우리-..'라는 출발점을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아닐까...인간에게 또는 인간 정신에게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이 가능할까...?
무조건 상대가 원하는걸 우선하는게 사랑이 아님. 그리고 이원성이 없으면 사랑이라는 계념도 없음. 떨어지게 된것도 우주의 의지임. 대상이 없으면 대상을 인지하는 나도 없다.
정성들여 집을짓고 관리하는 이유는 내가 거기서 따뜻하게 머물수있기 때문에.
단 내가 해야만 얻을수있는 나만에왕국
넌 그저 필요요소일뿐 바뀔수있는..
2번째 책도 읽었어요 👍
긴 글을 쓰진 못하지만 여러 철학을 아울러 이해가 잘 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우리 라는 충코님의 생각을 들으니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마음입니다 댓글은 많이 못달고 있지만
새로 올라오는 영상은 알림설정해서 꼭꼭 챙겨보고 반복해서 다시 또 보기도 합니다
이번 영상은 두번 봤는데 특히 더 반복시청 하게될 것 같아요
항상 응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십대때는 사랑으로서의 우리, 타자와 타자로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경험을 너무 강렬하게 했던것 같은데 사십인 지금은 왜 그런감정을 못느낄까요 영상보고나서야 내가 그랬단걸 기억해냈네요. 이것도 생물학적 시기가 있는건지, 아님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 사랑이 아닌건지(여보 미안ㅋㅋ) 아님 같은 대상이어도 경험의 감정은 변화될수밖에 없는지 궁금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화 헤드윅도 떠올랐어용
우연히 동영상 보게 되었는데요...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내용 완전 공감합니다
평범한 청년이 참 말을 감칠맛나게 잘한다했더니
와우 작가님이셨네요 ㅋ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나도 사랑 하고 싶다
눈물 흘리는 사랑..
킄크크크크킄푸하하하하핫하훟ㅎ
자기자신을 존중하고, 명상호흡과 함께 자기자신을 먼저 사랑해보세요. 더 행복 합디다. 💞🙏🏻
감사합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결론을 가져오는 그런 대전제을 갖는건 아니라면
그건 어떻게 보면 의미가 없는 이론일 뿐이다 라는 생각이 듦
충코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존경은 어떤거라 생각하세요? 이것도 영상 찍어주실 수 있나요?
책 너무 잘 읽었어요.
인간은 사랑 할 수 없습니다. 전제부터 다시 하시죠... 단순히 사랑이라는 활동을 정의하는 것은 너무 표면적인 것 같습니다. 핵심으로 가보시죠.. 보통 사랑이란 “내 맘에 드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고 시작하죠… 사랑이라는 것이 꼭 내 맘에 드는 사람에게 뭔가 해주는 것일까요? 충코님의 말을 들으면서 철학은 인간을 벗어날 수 없구나… 생각이 들어요. 글쎄요 모순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사고와 생각을 뛰어 넘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없을까요? 철학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죠.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의 할 수 있는 모든 총체의 하위카테고리라면 인간은 사랑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종류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 그거 사랑일까요?? 의심해 보세요 ㅎㅎ 참고로 저는 철학은 안했고, 물리학(학부) 문화인류학(석)했습니다.
참 안타까워요 다 욕망에서 시작된거에요
우리라는 새로운 자아의식
이 영상을 보고, 남편을 많이 떠올렸어요. 사랑하는 남편!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이 영상보고 책 삽니다 ㅎ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사랑을 대한 얘기는 메디아 와 이야손 을 생각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랑은 메디아 처럼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이야손이 자기 일에 빠져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봅니다. 자유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르시스소스 를 보면 자기애에 빠져 주변에 과심이 없어 강에 홀려 죽는것 그래서 전 사랑이란 자기자신을 소중함을 느끼는것 처럼 주변에 용기를 경청 과 공감이라고 봅니다.
그치 이게 사랑이지
난 불행해도 그 사람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참 신기하면서 이상한게,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대화하고 교류하며 실제로 '초월하면서'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데, 한 편 혼자서, 또는 자아에 있어서 만큼은 자꾸 집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
사실은 이미 살아가면서 계속 느끼고 경험하는 것인데도...
충코씨 귀엽게 생겼네요 ㅎㅎ
충코님은 사랑 경험이 있으신 분 같습니다.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시거나.
상당히 깊이 있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사랑은 또한 미스테리이기도 합니다.
초월적 차원을 넘어선 미스테리죠.
이 광대한 우주의 수많은 장미 꽃 중에 한 송이가 불쑥 우연히 내 공간에
씨앗 하나로 날아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사랑이란 우연을 가장한 미스테리 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숙명인지는 확신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유효 기간이 다 되어 끝이 났을 때,
어쩌면 그토록 온 마음을 다해 사랑 했던 그 시간들이
아무런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소멸해 버렸을까,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을 따라 물끄러미 시선이 흘러 가듯
약간의 슬픔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에 대해 생각 합니다.
영화 도 있었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가 등장 합니다.
물,불,흙,공기의 무게와 성질을 가진 4원소에,
지구를 초월한 천상의 완전한 물질인 가 가 됩니다.
이는 당시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상상계와 거의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즉, 현실과 거리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무게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가 진리 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 에서는 그 정체를 "사랑"으로 결말 짓습니다.
"파괴 시킬 게 뻔한데 뭐하러 구해요?"
"릴루,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아직도 구할 가치가 있는 게 많아.
아름다운 것들이!"
"그래 사랑!" 아주 좋은 거야. 구할 가치가 있지!"
절대 악을 물리 치고 지구를 구할 최종의 원소인 는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반드시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 하지는 않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보다 더 미스테리 해서 종종 진실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철학과, 수많은 시와, 소설과, 영화류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 누가 "사랑"에 대해 완벽한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사랑"을 경험하고 시나 산문을 쓰기도 하지만
절대 확언 하지는 못합니다.
흠, 정말 정말 "사랑"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아파 울기도 하죠.
그것이 댓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 정신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우리"라는 새로운 자아가
"하나"의 형태로 삶의 특별한 경험으로 피어 났을 때,
그것은 인간을 매우 성숙한 정신적 활동으로 이끕니다.
충코님의 논리에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자의 일흔의 "종심소욕불유구"에 대해서는 약간 견해차가 있습니다.
충코님은 사회적 욕망즉 사회가 요구 하는 도덕적인 관점으로 말씀하신 듯 합니
다.
물론 그 말도 상통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공자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때는 보다 총합적인 관점이 필요할 것 같습니
다.
즉, 공자가 나이 일흔에 대해 얘길 할 때는,
"나는 나이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부터 시작해서
마흔에는 미혹 되지 않았고, 오십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았고,
예순에는~을 지나 일흔"에 이릅니다.
그러니 단순히 사회적 도덕이나 욕망에만 국한 된 일흔은 아닐 듯 합니다.
좀 더 심오한 세상 이치에 대한 우주적 관점의 깨달음에 대한 것일 겁니다.
인간의 이론과 논리를 초월 하는 것이죠.
공자가 평생에 걸쳐 노력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정신 세계 입니다.
"자유"에 대해서 논할 때,
"죽음"이 곧 "자유"의 길이다, 라는 결론이 에 등장 한다는데,
저는 그 또한 약간 견해가 다릅니다.
인간이 육체를 벗는 죽음으로 자유를 얻는 다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생각 합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지는 순전히 정신적인 것입니다.
살아 생전 정신적으로 한이 되는 일이 있다면 절대 죽음으로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잘 죽는 것이 가장 어려울 수 있는 겁니다.
욕망이 지나쳐 소유욕이 끝이 없을 때도 절대
죽음으로 자유로와 질 수 없습니다.
저는 를 본 적이 없어 내용을 모르므로 잘을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가 자유를 갈망하며 결국 죽음과 하나?가 되어 엔딩을 맞이 했다면,
그런 자유는 아마 정신적 자유를 의미 하는 것이 아닌가.
즉, 불교 철학적으로 "해탈"에 대한 의미는 아닐까 합니다.
는 아마 구속적인 환경을 벗어 나는 노력을 통해
정신적인 큰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유"란,
순전히 정신적 차원으로써
대단히 폐쇄적인 극한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찾기 위한 탈출을 제외한
공간에서의 자유란,
그 자유를 추구 함에 있어서 "영감"을 얻기 위한 정신적 활동이 필요 합니다.
순전히 "자유"만을 논하기 보다는 매 순간, 매 공간 마다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이 보다 진정하고 찬란한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에 마무리로,
"사랑" 또한 서로에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꾸준히 잘 키워 나가야 할 것 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그(그녀)에게서 "영감"을 얻는 다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찬란한 순간이 됩니다.
전 우주적 순환의 생애를 모두 아울러 이 한 번의 찰나의 "인생" 속에서
가슴이 아릴 정도로 깊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영감"을 얻는 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보석 보다도 더욱 더 진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심신을 매우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삶"이 되도록 "우리"는 매 순간 깨어 있고,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사랑"에 상처 받았다 해도 절대 "사랑"을 놓아선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혼탁해진 지구를 악에서 구할 진귀한 보석 제입니다.
무게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영혼계의 영적인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사랑이 우리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근원이라고 느끼고, 그만큼 사랑을 알아가고 사랑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우리의 경험이 없습니다.
연애라는 것은 보통 이성에 대해 감정적으로 끌리면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성중심적이고 사고형이 강해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이성적으로 푹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상대에게 이성적 끌림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기에(외면적인 것 말고 내면적인 것들도 중요하기에) 적극적으로 간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연애를 보면, 상대에게 어느정도 호감과 끌림이 있다면, 더 알아가기 위해 의지를 갖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상대는 저에게 자신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여러번 묻기도 했고요
이렇게 연애를 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는 시작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천천히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제 성향에 맞는 것 같습니다
무튼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저처럼 이성중심적이고 사고형이 강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푹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아가 사라지는, 계산적이지 않게 되는 사랑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Shalomel_ 안녕하세요 @Shalomel_ 님.
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여성분이신지, 연령은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략 20대 중반 정도 되신 듯 합니다.
저의 의견은 그저 참고 정도만 하셔도 됩니다.
저 외에 더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들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사랑에 있어선 정답이 다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얼핏 @Shalomel_ 님이 아직 운명의 짝을 못 만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운명의 짝을 만나면 그렇게 싫어 하던 면조차 사랑 하고 이해 하게 됩니다.
운명의 짝이 아니면 온갖 것에 트집이 생기게 됩니다.
계산 하게 되고, 비교 하게 되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보려고만 하게 되죠.
운명적이란 것은 마치 자연스런 이끌림이거나 편안함 같은 것입니다.
자석 처럼 음과 양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찾아 이끌리듯이.
내가 취미로 하거나 좋아 하는 분야 같은 것에 상대가 이해력이 부족 해 함께 즐길 수 없어도
그것 마저도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너와 내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서로 각자의 세계를 그저 인정 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가 그냥 너라서 좋아. 사랑해. "
와 같이 되죠.
하지만, 아무리 운명적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가치관이나, 정치적 견해, 종교 등이 너무 다르면 절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아주 나쁜 취미나 나쁜 버릇이 있어도 반드시 미련조차 남기지 말고 끝을 내야 합니다.
그런 것은 절대 인내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 하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이 다양한 생활의 경험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탐독을 한다면 세상에 대한 화각이 드넓어져 보다 원숙한 사랑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설익은 젊은 나이엔 설익은 사랑을 하기 쉽고, 상처도 쉽게 받게 됩니다.
그것 또한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그 경험을 통해 또래 보다 더욱 성숙 해 집니다.
저의 경험 한 단락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린다면 ,
저는 어느날 , 우연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유머러스한 행동을 보면서 깔깔깔 웃다가 순간적으로 뭔가 특별한 감정이 훅~! 들어 왔고 그만 푹 빠져 한참을 중독적으로 사랑 했었습니다.
울고 웃고 깊이 인내 하고 사랑 했지만,
결국 깨끗하게 끝났어요.
왜냐면 그가 사이비 종교에 영혼을 팔았더군요.
그래서 미련 없이 끝을 냈어요.
하지만 그를 사랑 했던 영감어린 시절의 풍부한 경험은 저의 정신적 자산으로 남겼습니다.
사랑엔 정답이 없습니다.
스스로 탐독 하고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은 음과 양을 만드시면서 우리 인간에게 그러한 성찰의 여정을 선물 하셨습니다.
비록 이 생에 운명적인 사랑의 인연이 없다 해도 절대 절망 하거나 낙담 하지 말고 ,
그 우여곡절의 다채로운 여정 자체를 사랑 하셨으면 합니다.
@Shalomel_ 님은 아마도 영원을 함께 할 진정한 사랑을 만나실 듯 합니다.
적어도 그 여정의 길 위에 계신 듯 합니다.
아직은 이정표를 발견 하지 못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이정표만 찾으려 하지 마시고 , 그 길가에 피어 난 생명들의 순수를 느끼고 체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예상치 않은 어느 날 얼핏 원하던 무엇을 찾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여기까지만 저의 의견을 올립니다.
만족스럽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최대한 세계를 개방 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 하세요.
@Shalomel_ 님은 분명 원하던 사랑을 하실 것입니다.
곧 설 입니다.
우리 우리 설날을 새롭게 잘 시작하시고,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저에게 의견 물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KimMyeongJu-pr9ro 소중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말씀하신대로 제게 주어진 이 길을 충만하게 경험하고 누리며 걸어가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명주님도 설날 잘 보내시고 몸과 마음 항상 건강히,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Shalomel_ 네, 감사드립니다. ^^
연애 경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게 사랑사랑 거리지만 해어지면 모든 쏟아 붇었던 사랑과 돈과 시간이 쓸모 없고 남는게 없다라고 하던데 과연 진짜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결국 호르몬에 의한 게 맞는듯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말이죠.
완전히 붕괴됐어요.
-헤어질 결심
사랑은 본인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이러고저러고 왈가왈부가 답이 아니다
사랑을 도파민과 옥시토신 분비의 증가가 아닌 이런 인문학적(?)인 관점으로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통해 ’트윈 플레임‘이란 용어의 기원이 그리스 신화였다라는 사실을 알고 갑니다. 재미있네요.
그러고보니 타로카드에서 연인에 해당하는 ‚The Lovers‘ 카드가 떠오릅니다. 타로카드니까 아담과 이브만 그려져 있어도 될 법한데 굳이 성경에 따라 선악과 나무까지 그려져 있고, 이 카드가 별자리 중 쌍둥이자리에 해당되는 까닭, 그리고 이 카드가 ‘우리’라는 연결성 속에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윤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이유도 이 영상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군요.
어느 분야에서 고수가 되면 그 통찰력으로 인해 다른 분야에서도 고수가 되기 쉽다는데 철학자한테 이런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충코님 타로 배우시면 금방 타로마스터 되실 듯.
참, 충코님 영상 특징은 영상 배경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야외에서 산책하듯 촬영하시는 것이 정말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메타버스같은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철학에 대해 토론하는 ‘찐’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기분 다른 채널에서는 못 느꼈는데 정말 특별하네요.
좋은 내용이네요~! 혹시 장소가 어디인가요? 한적하고 좋은것 같네요~
결론은?
❤
철학과 통찰력 그리고 사람에 대한 긍휼함…
우아아ㅏㅏㅏ❤❤❤❤❤
충코형 잘생겼어요
예수님이 말한 사랑인 것 같네요...
충코님 동성애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불교의 해탈이나
동양철학의 인, 겸애 같은 개념이 생각나네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공황장애가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