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댓글이나 욕설, 영상과 동떨어진 주제에 대한 댓글은 경고 없이 삭제 또는 차단될 수 있습니다.🛑 이번 영상은 형무소와 수감자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만큼 분량상 '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보도연맹 학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보도연맹 학살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우리 현대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사건으로 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군의 만행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려고 생략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과거 구판 역사 교과서랑 지금의 교과서를 보면 천양지차입니다. 퇴임하기도 전인 대통령 사진을 교과서에 박아넣는 몰상식한 짓을 한 대단한 인간들이 지금 180석 권력을 쥐고 좌파 교육감들이 장악하고 있는 교육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니까요.
6.25당시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이 많았죠. 교도소에서 교도관이나 재소자를 대상으로 일어난 학살을 보니, 서울의대 부속병원에서는 인민군이 침입해서 국군부상자 위문차 남아있던 가족 심지어 정신병동까지 습격해 무차별 학살을 버렸던 사건도 생각나네요. 전쟁은 정말 끔찍한것 같습니다
전시에 흔히 자행되는 살인, 강도, 강간, 방화등등 수많은 범죄도 감당이 안되는데 수용자의 비중이 전체인구의 0.3% 이지만 전시에 석방 혹은 건물파괴등으로 범법자들이 사회에 나와 일으킬 혼란을 생각해보면 죄의 경중에 따라서 이송시키거나 반사회적이고 폭력성을 지니고있거나 경제사범의경우에는 사형집행시키는게 옳지않나싶기도 합니다.
1년 5개월을 복역 후 순천교도소에서 20년도 9월에 출소한 사람입니다. 영상대로 주로 강력사범들 제외한 일반 및 경제 사범들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이 각 교정기관에 하달이 되면 석방된다고 7급공무원인 교위 직급의 교도관분에게 직접 들은 내용입니다. 사실과 동일하네요. 강력사범들은 후방으로 이송시킨다는 영상 내용은 처음 듣는내용인데 일리는 있어보입니다.
근데 형무소에 있는 재소자를 위해 일반 시민들을 보호할 여력까지 차출 해서 그들을 지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임. 이미 타인의 기본권을 해치는 행동을 하여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인데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안 그래도 없는 힘을 나눠서 일반 대중 대신 그들을 지키는 건 좀.......
4.3사건때 북한간첩들 남로당이 제주도에서 선전선동해서 제주도민 10명중 1명이 사망하고 빨갱이로 낙인이 찍혔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군에 지원을 해서 나라를 지키러갔고 이는 80년대~9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해병대로 입대해서 북한군에 맞서 싸웠어요 저는 4.3사건 유공자입니다 저희 외증조할아버지가 4.3으로 희생당하셨어요
정치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이용해먹으려는 정부와 무지함을 반공주의라는 사상아래 물들여 무고한 이들을 죽인 국민들은 제주도민들의 1/10을 죽이고 이후로도 제주도민=빨갱이 라는 논리로 제주도인에대한 마녀사냥과 온갖 차별과 멸시를 하고 결국에는 제주어(언어학) 제주사(역사학)등의 학술적 가치가 높은것들을 빠른속도로 소멸시켜버리고 생존자들은 자신의 출생, 언어 모든것을 숨기고 공포와 고통속에 살게 만들었지만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을 위해 바다건너에 있는 전쟁터로 몸바쳐 싸우러가신분들..
@@탐라도민 2차대전 미국의 니세이부대 같은 케이스네요.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내 일본계들 격리 시키고 할 때, 명예 회복을 위해 입대해서 미국인으로서 제일 빡센 지역만 다 돌면서 전쟁 수행한 일본계2세 부대. 재미교포 김영옥 대령이 이끌었죠. 6.25전쟁 때도 참전하심.
@@soehojohn7645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고 왜곡한 사건. 전남합수단에서 작성한 광주교도소 습격기도사건에는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류락진의 처 신애덕과 동생 류영선이 시위에 가담해 교도소를 습격, 복역중인 류락진을 구출하도록 선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더욱이 류영선은 시위군중과 함께 교도소를 습격하다 총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때문에 광주 교도소 습격 사건은 한 때 극우 사이에서 무장폭동설로 왜곡하기 위한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되었고, 역사에 무지한 일부 국민들도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으로 알고 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진상은 완전히 달랐다. 류락진이 광주교도소에 복역한 것과, 류영선이 총상으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 신애덕은 합수부에 가 시위주동자로 예비검속했던 딸 류소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또 류영선은 소재를 모르는 조카 류소영을 찾으려다 계엄군의 과격진압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5.21. 전남도청앞 발포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류영선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은 차례로 전남합수단에 불려가 '류영선이 류낙진을 구하기 위해 시민군을 선동하고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혐의와 관련하여 심문받았다. 한마디로 교도소 습격 기록은 같은 날 먼저 앞선 시각에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시위주동자가 멀쩡히 살아서 광주교도소를 습격해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는, 누가보더라도 계엄군 측에서 날조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류영선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그외 시민군들이 광주 교도소를 습격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애초에 광주 교도소는 계엄군과 시민이 '충돌'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soehojohn7645 교무과장으로 근무했던 김근재는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제가 당시 광주교도소 교무과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도소 주변에서 총격사건이 몇 번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시민군이나 학생들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사실은 전연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2004년 3월 18일, 김근재 증언. 대한민국 육군 제31보병사단장과 정웅 장군과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박준병 장군도 증언하길 "광주교도소를 21일 오후 2시 이전의 제31사단이나 23일 오후 7시 이후의 제20사단 병력이 경비하고 있을 때는 습격을 받은 사실이 한 번도 없다"라고 했다.국회 '광주청문회 회의록', 제21호, 1988년 12월 21일, 박준병 정웅 증언
@@soehojohn7645 교도소 앞 300미터 전방까지 시위대가 진출했던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이걸로 습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300미터 전방은 바로 인터체인지로 연결되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광주교도소는 담양군, 곡성군, 여수시, 순천시 쪽으로 빠져나가는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광주 동부인터체인지가 연결되는 길목이어서 앞, 좌, 우는 물론 두쪽으로 국도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리는 교통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교통요충지다. 당초 동명동에 자리 잡고 있던 광주교도소가 1960년대에 추진된 개발과 동시에 광주광역시에 의해 이곳 문흥동으로 이전해 올 때는 담양, 곡성, 순천, 여수 방면으로 향하는 겨우 2차선 비포장 국도만이 오른쪽으로 뻗어 있었다. 시민군은 광주항쟁의 도내 확산을 위해 차량을 이용하여 이 교도소 앞과 옆길을 거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국도로 진입하려 했다. 여기에 공수부대가 총격을 가한 것이다. 시민군이 대응사격을 했지만 빈약한 카빈이나 M1 소총으로는 M16 소총이나 기관총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같은 교전을 놓고 계엄군 측은 폭도들이 사상범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를 습격했기 때문에 부득이 교전이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soehojohn7645 당시 교도소 교무과장과 육군 제31보병사단장 정웅 장군,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박준병 장군의 교도소는 습격받은 바 없다는 증언을 비롯하여 시민군의 교도소 내 침입이 발생 사실 자체가 없는데 교도소 문서를 불태웠다느니 하는 소리는 사실무근이고 소설입니다.
범죄자들은 전시상황이 되면 소계.양계.소멸작전 3단계로 진행되지만 마지막단계인 소멸작전은 중범죄자와 정치범수형자를 대상으로 말그대로 소멸 시키는 것이다. 평시에도 사회에 크나큰 손실을 입힌 자들이기에 전시상황이 되면 적에게 동조하여 더 큰 피해를 줄 대상자들 임으로 즉결처형을 하는 것이다.
유죄를 벌하는 것보다 무죄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나 범행은 워낙 많아서 그들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무죄인 사람을 법정에 세워 유죄 선고를 하고, 혹시 사형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시민들은 말할 것입니다. '내가 죄를 범하든 말든 상관 없어.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호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시민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떠한 안전도 다 끝일 것입니다. - 존 애덤스
우리군도 준비를 하던 상태였습니다. 안그래도 공비소탕한지 2년도 채 안되고 아직도 저 남ㅉ고이선 시끌하던 무렵이엇으니까! 문제는 준비여부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태엿지요! 당시까지도 식량자급 없었고 제대로된 공업기반마저 전무 했습니다. 비상상태 1개월 넘어가자 병사들 먹일 군량조차 부족 했지요! 그래도 버티다가 6월 하순이 되자 비상을 풀고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냅니다. 겉으로는 농번기때 일손을 도우란 것이엇지만 실은 너희들에게 줄 쌀이 없으니 고향가서 좀 먹고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일이죠! 그래서 보내놧더니 일주일도 안됮 너쟁 터진 겁니다. 여러사람들이 왜 병사들을 대기도 아니고 시골로 보냈냐고 당시 정부를 욕하지만 데리고 있어봐야 먹일 수도 없는데 어쩌잔 겁니까!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임진왜란 입니다. 왜란터지기 1년도 전부터 왜에 심상치 않은 행동이 보인다며 무기를 점고하고 산성을 수축하고 군사훈련을 하는등 대비를 했지만, 이때 가장 큰 반대가 터져나온건 그 잘난 유생들이 아니라 백성들이었습니다. 안그래도 힘든데 자꾸 공역시켜서 농사지를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 이었던 겁니다. 지방 각지에서 이런 장계가 날아드니 선조는 뭐하나 제대로 성취해보지도 못하고 GG칩니다. 그나마 임진왜란이나 6.25에서 이순신이나 김종오 같은 이들이 사력을 다해 준비한 값을 톡톡히 보기도 했지만 결국 같잖은 준비로는 한 방에 훅간다는 것을 배운 겁니다.
형무소를 보니, 전쟁이 나면 문화재 같은 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이런 것도 당연히 지금으로서는 메뉴얼이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전시 상황의 재소자들 메뉴얼도 제대로 안되있던 상황이였는지라 문화재에도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 그 부분이 궁금하고, 동물원도 전시에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이것도 그 당시에는 메뉴얼 같은 게 따로 없었는지라, 개전 초기에는 사육사들이 대피를 못해서 그대로 서울에서 발이 묶여버렸는데(다행이도 인민군들이 살려놓아서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니 동물과 사육사 다 멀쩡하게 있었다고 함), 이거랑 관련되서는 시설 파괴시 탈출하여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맹수들을 살처분 하는 거 외에는 다른 메뉴얼이 딱히 없더라고요.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만.. 아이티 대지진때문에 교도소가 파괴되서 재소자들이 죄다 탈옥을 해서 아이티 치안이 더욱 엉망이 됐다지요. 그런점에서 봤을떄, 재차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이 충분히 죄수들을 사면조건으로 프락치로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러시아가 그런 방법을 쓰고있지요.
@@kimonelight 그런데 저 당시 어쩔 수가 없었는게 그 때는 주민등록번호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음.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음? 게다가 지금은 공산주의가 실패한 엉터리 사상이란걸 알지만 그 때는 오히려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파급력이 커서 현혹되기 딱 좋은 상황이란걸 고려하면 달리 방법이 없었음.
후송 해주고 보살피고를 못한 사실만으로 끝났으면 당시 정부의 선택을 욕하는 사람이 정부 역량으로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거라고 비판받을 일이나, 문제는 후송과 보살핌이 없었다는 사실을 넘어 무차별적으로 생명을 박탈한 사실이 추가되었다는 점입니다. 보살핌과 후송없이 방치했다고 비판합니까? 목숨을 빼앗은 것에 비판의 화살이 가는거지. 일반 민간인과 재소자의 형평성을 예로 드는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3년형 이하 잡범 재소자까지 모조리 처형한 이상 이들은 사형수와는 받은 형량이 전혀 다른데도 똑같이 처형당한점, 사형수가 아닌데도 각자도생이라도 할 기회가 있는 민간인과 달리 각자도생의 기회도 박탈당하고 국가로부터 확정된 죽음까지 부여받음으로 인해 2중으로 형평성에 안 맞습니다. 부족한 민간인 보호를 형평성의 기준으로 삼을거면 '사형수와 강력범은 즉시처형, 경범죄자는 보호 없이 완전히 방치후 전후 형집행, 민간인은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보호'를 기준 삼아야지. 당장 '절도범과 사형수 둘다 처형하는 경우'와 '조기석방된 절도범과 민간인' 중 형평성에 더 안 맞는 것은 명백히 전자고요.
@@kimhunv 전 님이 생각하는 인권 좋아하는분에 속할것같은데 섬에 고립시켜 그들만의 사회만드는건 일반인을 위해 필요하다생각합니다. 솔직히 정도를넘어선 반사회적사람들을 무작정 사형시키기엔 대형사고 일으킬까겁나고 (예- 어차피 잡히면 사형인데 집단살해하고 자살하잔 마인드) 복역후 사회에 돌아간다면 또 나쁜짓할게 뻔한놈들이니(갱생불가) 걍 섬에서 걍 고립하는게 사회를 위해서 젤 좋은 선택같아요
현역시절 주둔지와 그 부근 대전형무소 집단 학살 사건이 있었던 곳이여서 기억에 남음. 무심코 점심시간 흡연장에서 6.25 관련 서적에서 민간인 학살 관련 챕터를 읽고 있었는데 대전교도소 사건 당시 사진 속 배경과 바로 앞의 풍경이 똑같아서 그 때 눈치 챘죠... 국군과 인민군이 전쟁 중 벌인 학살 장소가 전후에도 군부대로 남았구나라고...
그건 당연한 얘기고 문제는 '어떻게'인데, 송양지인의 따르자는 쪽도 있고, 반대로 강력한 힘으로 억제하자는 쪽도 있는데, 어느쪽이 옳은 길인지는 뻔하지만 의외로 전자가 솔깃하게 들리기 때문인지, 그런 주장이 세를 얻는 경우도 많은 거 같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도 현재 젤렌스키전에 소련간첩 비슷한 사람이 대통령을 맡아 친러행보를 하다가 결국 지금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야기한건데, 송양지인처럼 적국에 알랑방구 뀌는게 더 치명적인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실례가 될 거 같습니다.
@@emisayongzoong 극단적인 평화책 배척도 문제지요 최근 시니컬한게 주류가 되면서 유화론이 동네북이 됐는데 국가 수뇌부가 젬병이 아닌 이상 유화책은 갈등 해결을 위한 단계적 조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봐야합니다 대표적인 유화론자 체임벌린도 최근엔 영국이 재무장할 시간을 벌었다고 재평가되고 있지요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로 드셨는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송양지인때문에 일어났다고 단적으로 말하긴 힘들것 같습니다 크림반도 사태가 2014년이고 우크라이나는 최근까지 돈바스 반군과 교전해왔는데 이런 전시상황급의 긴장도에서 우크라이나가 국방을 신경쓰지 않을리가 전무하고 우크라이나 침공하기 몇 주 전부터 러시아가 국경에 군대들을 알박아놔서 기습당한것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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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상은 형무소와 수감자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만큼 분량상 '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보도연맹 학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보도연맹 학살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우리 현대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사건으로 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좌우 치우쳐지지 않은 공정한 영상으로 부탁드립니다.
파주 이북지역에서 보도연맹단원들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북한군에 붙어서 우익인사(군경과 그 가족)를 학살한것도 포함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대통령의 명령이전에 이미 분노한 군경에 의한 보도연맹학살이 일어났습니다
@@soehojohn7645 ㄹㅇ 지금처럼
@@김현수-o6b "일부" 일뿐임 보도연맹원이 아니어도 북한군점령지에서 북한군에 아부하며 공무원들 쳐죽이고 사업가들 잡아죽인놈들 쌔고쌤
보도연맹은 전쟁발발전에 좌익인사들 강제 가입시켰다고 하는데 좌익인사들보다 뭘모르고 가입한 평범한사람들이 훨씬많았음
공무원들이 실적올리려고 글도모르는 사람들한테 서명하면 식량준다 의복준다하며 꼬셔가지고 보도연맹에 가입시킨사람들 완전 많았어요 보도연맹자체가 문제인게 아님
보도연맹에 그런색깔 씌워놓고 글도 모르던 평범한 사람들 꼬셔가지고 가입시켰으면서 좌익인사들있다는 이유로 무차별학살한게 수도없이 많구만;;
반드시 한번은 짚고 가야할 한국사의 어두운 부분이죠,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어두운 부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그 어두운 부분들 (강제집징, 보도연맹 사건)을 다뤘었죠. 당시 국방부에서 강제집징과 보도연맹 사건 삭제 안하면 지원 안해준다 했는데, 감독이 무슨 배달의 기수 찍냐면서 시원하게 무시해버렸죠.
어두운 역사는 무슨
진행형이지
지금 북한이 남침해도 다를거없을듯
그냥 대한민국종특임
왜 어둡죠? 재소자들 살려두고 풀어주니까 총 남한한테 들이민거 아님? 당연히 죽여야지
전쟁나면 북한군은 교도소 타겟을 하려고 하겠죠 가단 간단하면서도 쉽게 고취시키는 방법. 그래서 외교관형 교도관들 키워낸다해도 교도소 들어갈 정도면 본성은 바뀌지 않는 거라 스트레스 많이 받을 듯요
6.25시리즈를만들어주셔서 매우감사합니다.
당시에무슨일이있는지 과거전쟁사는 교과서엔
넘어간부분이많기때문이죠.
북한군의 만행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려고 생략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과거 구판 역사 교과서랑 지금의 교과서를 보면 천양지차입니다.
퇴임하기도 전인 대통령 사진을 교과서에 박아넣는 몰상식한 짓을 한 대단한 인간들이 지금 180석 권력을 쥐고 좌파 교육감들이 장악하고 있는 교육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니까요.
6.25당시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이 많았죠. 교도소에서 교도관이나 재소자를 대상으로 일어난 학살을 보니, 서울의대 부속병원에서는 인민군이 침입해서 국군부상자 위문차 남아있던 가족 심지어 정신병동까지 습격해 무차별 학살을 버렸던 사건도 생각나네요. 전쟁은 정말 끔찍한것 같습니다
전쟁보다는 인간이 끔찍한것같다.
버렸던->벌였던
북한군이 끔찍한거지
인간이 없었다면... 핵도 없고..전쟁도 없고...
쓰레기 북한과 중국
전쟁 기간 중 희생된 교정직 공무원들은 기억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죠. 안타깝습니다.
그들도 학살이나 하던 악마들에 불과. 잘 죽은 것임
@@paulkwon8106 교정직 공무원이 학살을 했다고...?
적치하의 가족은 아이 어른 할거없이 학살됐지요....특별법으로 보상과 연금 체용특혜가 필요합니다
@@paulkwon8106 깜방에서 출소한 벌레인가보네
@@Cosmo-spa-univer 안됨
2:05 국군도 열세로 퇴각하기 바빴는데 열악한 교정무장으로 정규군인 인민군을 상대로 수차례 격퇴시킨 우학종 소장님의 사명감 정말 존경합니다.
우범곤이 짱임
@@허점례-u7k 이양반아 정신 좀 차리고 얘기하슈.
아직도 의령에는 피비린내가 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얘기하슈.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씹어 갈아 먹어도 시원찮은 인간을 무엇 짱?
에이 이양반아.
교도관님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현직교도관입니다. 공무원 무조건 세금충,누칼협으로 무지성 매도 당하는 현실에서 따뜻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항상 좋은 일 가득하세요
간호사도 많이 강간당해서 경의를 표합니다
@@park88891 수감자들 말 안들어요?
전쟁이란... 정말 사람의 목숨이 파리처럼, 그냥 지나가다 힘을 가진 사람이 앵앵거리는 것이 거슬렸다고 아무렇지 않게 죽을 수 있는 미친 상황이죠... 그 전쟁의 명분이 얼마나 대단하고 숭고하던지간에 항상 있는 일입니다.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요.
그러니 국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목숨 위험없이 자유를 느끼는것도 우리를 지켜줄 국가가있기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 보세요 거기 사는 사람들은 국민이 보호해야할 국가가 없기에 치안이 안좋은거예요
민간인 학살 같은거 하는건 쌀을 주식으로 ㅊ먹어서 인구 과다라서 생명 경시 문화가 뿌리 내린 동양 문화권만 그런 거임
적어도 서유럽 선진국에선 (1차 새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서부 전선애선) 선진국에선 민간인 한텐 이딴일 안생김
유대인은 민간인 아님?
다루기 힘든 사건을 자세하게 다루어 준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직도 다룰 수 없는 일들을 다루어도 허락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성인되고 제일 충격받은 부분이 학생때 배워왔던 교과서엔 사건들의 한면만을 보여줬다는 점인듯. 흑역사를 되짚는거야말로 그런 실수를 다신 하지않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특정사건과 인물의 명암을 전부 보여주는게 훨씬 도움될거같은데..
하지만 학생들에겐 지옥이죠
ㅈ같은 시험범위
진짜 역사를 배울라면 한국의교과서가아니라 미국 의 역사책을 읽어야... 미화된게 많죠 한국역사책은
역사 교육이 이래서 쓸데 없다는거 미화시키고 정부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그딴거 배울시간에 수학과학이나 가르치는게 나음
@@아리아리해-n3k 미국도.. ㅎㅎ
합리적인 매국노를 만들바엔 일단은 조국의 장점과 긍정적인면을 부각시키는게 좋겠지요.
참 안타까운 근현대사네요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도를 드리며, 국군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ㅠㅠ
전시에 흔히 자행되는 살인, 강도, 강간, 방화등등 수많은 범죄도 감당이 안되는데
수용자의 비중이 전체인구의 0.3% 이지만
전시에 석방 혹은 건물파괴등으로 범법자들이 사회에 나와 일으킬 혼란을 생각해보면
죄의 경중에 따라서 이송시키거나 반사회적이고 폭력성을 지니고있거나 경제사범의경우에는 사형집행시키는게 옳지않나싶기도 합니다.
문제 생기는게 두려우면 없애면 그만, 어차피 사회에 피해만 주는 해충들이기에 죽여도 크게 문제 없을듯
꼭 이런 애들은 지들이 누명 씌워져 봐야 됨
@@Nasty_Jello 그래 니 말이 다 맞다
니네 어머니랑 너가 사형된다고 해도 꼭 그렇게 말해라 어디서 사람 목숨을 함부로 여기고 있어
영상이 중립적이라 너무 좋네
항상 유익한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전쟁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많은 시민들이 북한군은 물론이요 믿었던 국군 양쪽에 의해서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고 유가족은 그 억울함을 토로할 창구가 없는 수십년의 세월을 보낸 것이라 느낍니다..
개소리하지 마세요. 국군은 국민을 학살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인민군에 붙어먹어 공산주의자 전향을 천명한 극히 일부 변절자를 제외하고는요.
그림들 너무 예쁘네요. 내용은 슬픈데..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625당시 남쪽에있던 북한간첩의 활동과 북한이 저지른 공무원가족 8촌까지 찾아내 학살한 내용도 함께 영상을 만들어주세요.
군경, 교도소 관리자, 공무원분들께 애도를 올립니다. 다시는 공산당들이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한강다리 폭파해서 수많은 민간인 죽음에 처하고 도망간 이승만 반역자를 추앙하는 개자식들과 같은하늘아래 숨쉬고 있다는게 서글프다
@@장길산-b9o국민 대다수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왜 소수의 삶을 살고 있니 조선족 좌빨아 ㅋㅋㅋㅋㅋㅋ
@@장길산-b9o 중국 북한 찬양하고 친하게 지내야한다는 민주당 좌파들 보단 ㅋㅋㅋㅋㅋ
@@장길산-b9o한강다리 폭파지시는 이승만전대통령도 아니다. 그리고 당시 1950년대 건국직후 혼란한 시스템화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당시 시대상에서 지금의 잣대로만 평가하기 힘들다.
@@장길산-b9o이런 놈들이 좌익 공산주의자 체게바라를 추종한다.
1년 5개월을 복역 후 순천교도소에서 20년도 9월에 출소한 사람입니다. 영상대로 주로 강력사범들 제외한 일반 및 경제 사범들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이 각 교정기관에 하달이 되면 석방된다고 7급공무원인 교위 직급의 교도관분에게 직접 들은 내용입니다.
사실과 동일하네요.
강력사범들은 후방으로 이송시킨다는 영상 내용은 처음 듣는내용인데 일리는 있어보입니다.
왜 복역 하셨나요?
억울하게 죽은 분들도 안타깝고, 또 전쟁 초반부 북괴의 공작으로 풀려난 재수자들 때문에 학살 명령이 내려진 상황도 이해가 가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북괴보다는 이승만정부의 책임이 더 크죠
북괴보다는 이승만정부의 책임이 더 크죠
응 헛소리
@@원-v2r 빨갱이네
@@원-v2r 이게 전쟁일으킨 김일성 탓이지 ㅋㅋ
전쟁막은 이승만탓이냐?? 에이 빤겐이 섹히
와 이부분 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살기힘드니 뭐니 해도 이시대에 나고 자란걸 감사히 생각합니다
근데 형무소에 있는 재소자를 위해 일반 시민들을 보호할 여력까지 차출 해서 그들을 지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임.
이미 타인의 기본권을 해치는 행동을 하여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인데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안 그래도 없는 힘을 나눠서 일반 대중 대신 그들을 지키는 건 좀.......
6.25 시리즈 재밌네용. 인천상륙작전에 활약했던 해병대 3,4기 모두 제주도사람이라던데 혹시 이 이야기도 다뤄주실수 있나요!
4.3사건때 북한간첩들 남로당이 제주도에서 선전선동해서 제주도민 10명중 1명이 사망하고 빨갱이로 낙인이 찍혔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군에 지원을 해서 나라를 지키러갔고 이는 80년대~9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해병대로 입대해서 북한군에 맞서 싸웠어요
저는 4.3사건 유공자입니다
저희 외증조할아버지가 4.3으로 희생당하셨어요
정치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이용해먹으려는 정부와
무지함을 반공주의라는 사상아래 물들여 무고한 이들을 죽인 국민들은
제주도민들의 1/10을 죽이고
이후로도 제주도민=빨갱이 라는 논리로 제주도인에대한 마녀사냥과 온갖 차별과 멸시를 하고 결국에는
제주어(언어학)
제주사(역사학)등의 학술적 가치가 높은것들을 빠른속도로 소멸시켜버리고
생존자들은 자신의 출생, 언어 모든것을 숨기고 공포와 고통속에 살게 만들었지만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을 위해 바다건너에 있는 전쟁터로 몸바쳐 싸우러가신분들..
@@탐라도민 2차대전 미국의 니세이부대 같은 케이스네요.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내 일본계들 격리 시키고 할 때, 명예 회복을 위해 입대해서 미국인으로서 제일 빡센 지역만 다 돌면서 전쟁 수행한 일본계2세 부대. 재미교포 김영옥 대령이 이끌었죠. 6.25전쟁 때도 참전하심.
그래서 제주어로 교신해서 무전기 탈취당한것을 모면했죠
입대 안하면 비국민으로 취급 받아 다 입대함.
6.25영상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6.25는 성역화가 되면 안되고 절대로 객관적인 사실로 다뤄져야하는데 이런영상은 진짜 아껴야합니다
혹시 6.25 전쟁 당시 상륙함 운행 같은 후방 지원이나 비밀리에 참전한 일본인들에 관한 영상이나 기록도 나중에 나오나요?
맞아요 이걸 다루는 영상을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정권도 교체 되었겠다 이 시점 누군가는 한 번 다뤄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인간성 자체가 희박해지며 인권 같은건 더욱 신경도 안쓰게 되죠...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잔혹함이 여실없이 드러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는데.. ㄷㄷㄷㄷㄷ 6.25때 저런 일들이 ㄷㄷ
전쟁...그상황에 인권이라니..꿈꾸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전시 탈영병을 주제로한 영상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요즘 군부대 내에 사건사고가 많아서 전쟁사기저하에 큰 영향을 끼칠수 있어서리
꼬꼬무 보고 이거 보는데 이제야 정리가 확실히 되는구만
전시에 감옥에 처박혀있으면 ㅈ되는거네;;; 근데 솔직히 정부입장도 이해는 되는게
그냥 놔두면 적군에 동조할수도있고 석방해버리면 전시 국내에서 치안악화시킬수도있고
여러가지로 전시나 평시나 국가에 해악이되는 존재들이구나
그래도 패배하면 종족 자체가 멸종당하는게 분명한 종족전쟁을 한 것도 아니고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6.25는 적국의 종족(해당 국가의 인간종 하위 국가종족)을 멸종시키는게 목적인 전쟁이 아닌 이념과 탐욕싸움이니까요
실제 탈옥자는 규모에 비하면 거의 없었고 수감자 대부분이 이승만의 악랄한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임.
@@대마-d3z 그들이 인민군에 편입..
@@컁도미닉 극히 일부에 불과함.
@@대마-d3z
뭔 헛소리?
당시에는 진짜 좌익 세력들이 끌려 온 게 대다수였음.
제주 4.3, 여순 사건 같은 좌익 반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나 주모자들이 수감 되어 있던 거임.
탈옥 + 학살 + 반역 등등에 기록 파기까지 다 합쳐져서 혼란중의 대혼란 이였네요 교도소 쪽은..ㄷㄷㄷ
재미있게도 5.18도 비슷한 유형이죠.
교도소를 습격했고
장부를 불태워 시민인지 범죄자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점도요.
@@soehojohn7645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고 왜곡한 사건. 전남합수단에서 작성한 광주교도소 습격기도사건에는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류락진의 처 신애덕과 동생 류영선이 시위에 가담해 교도소를 습격, 복역중인 류락진을 구출하도록 선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더욱이 류영선은 시위군중과 함께 교도소를 습격하다 총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때문에 광주 교도소 습격 사건은 한 때 극우 사이에서 무장폭동설로 왜곡하기 위한 근거 중 하나로 사용되었고, 역사에 무지한 일부 국민들도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으로 알고 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진상은 완전히 달랐다.
류락진이 광주교도소에 복역한 것과, 류영선이 총상으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 신애덕은 합수부에 가 시위주동자로 예비검속했던 딸 류소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또 류영선은 소재를 모르는 조카 류소영을 찾으려다 계엄군의 과격진압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5.21. 전남도청앞 발포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류영선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은 차례로 전남합수단에 불려가 '류영선이 류낙진을 구하기 위해 시민군을 선동하고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혐의와 관련하여 심문받았다. 한마디로 교도소 습격 기록은 같은 날 먼저 앞선 시각에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시위주동자가 멀쩡히 살아서 광주교도소를 습격해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는, 누가보더라도 계엄군 측에서 날조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류영선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그외 시민군들이 광주 교도소를 습격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애초에 광주 교도소는 계엄군과 시민이 '충돌'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soehojohn7645 교무과장으로 근무했던 김근재는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제가 당시 광주교도소 교무과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도소 주변에서 총격사건이 몇 번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시민군이나 학생들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사실은 전연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2004년 3월 18일, 김근재 증언.
대한민국 육군 제31보병사단장과 정웅 장군과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박준병 장군도 증언하길 "광주교도소를 21일 오후 2시 이전의 제31사단이나 23일 오후 7시 이후의 제20사단 병력이 경비하고 있을 때는 습격을 받은 사실이 한 번도 없다"라고 했다.국회 '광주청문회 회의록', 제21호, 1988년 12월 21일, 박준병 정웅 증언
@@soehojohn7645 교도소 앞 300미터 전방까지 시위대가 진출했던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이걸로 습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300미터 전방은 바로 인터체인지로 연결되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광주교도소는 담양군, 곡성군, 여수시, 순천시 쪽으로 빠져나가는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광주 동부인터체인지가 연결되는 길목이어서 앞, 좌, 우는 물론 두쪽으로 국도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리는 교통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교통요충지다. 당초 동명동에 자리 잡고 있던 광주교도소가 1960년대에 추진된 개발과 동시에 광주광역시에 의해 이곳 문흥동으로 이전해 올 때는 담양, 곡성, 순천, 여수 방면으로 향하는 겨우 2차선 비포장 국도만이 오른쪽으로 뻗어 있었다.
시민군은 광주항쟁의 도내 확산을 위해 차량을 이용하여 이 교도소 앞과 옆길을 거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국도로 진입하려 했다. 여기에 공수부대가 총격을 가한 것이다. 시민군이 대응사격을 했지만 빈약한 카빈이나 M1 소총으로는 M16 소총이나 기관총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같은 교전을 놓고 계엄군 측은 폭도들이 사상범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를 습격했기 때문에 부득이 교전이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soehojohn7645 당시 교도소 교무과장과
육군 제31보병사단장 정웅 장군,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박준병 장군의 교도소는 습격받은 바 없다는 증언을 비롯하여 시민군의 교도소 내 침입이 발생 사실 자체가 없는데 교도소 문서를 불태웠다느니 하는 소리는 사실무근이고 소설입니다.
좌우를 떠나서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혼란과 혼란속의 미숙한 국가였는가가 느껴지는군요...
건국한지 5년 남짓하고 문맹이 너무 많아서 오죽하면 친일파들을 그대로 기용해서 나라를 운용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밑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들 덕분에 남침을 격퇴해낸겁니다.
친북하는 인간들은 이걸 두고 친일파라며 매도하고 까대지만요.
그 당시의 좌우는 좌는 반국가 공산주의자였고 우는 대한민국 지지였으니 지금과는 다르죠
교도관 충혼탑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범죄자들은 전시상황이 되면 소계.양계.소멸작전 3단계로 진행되지만 마지막단계인 소멸작전은 중범죄자와 정치범수형자를 대상으로 말그대로 소멸 시키는 것이다. 평시에도 사회에 크나큰
손실을 입힌 자들이기에 전시상황이 되면 적에게 동조하여 더 큰 피해를 줄 대상자들 임으로 즉결처형을 하는 것이다.
정부가 무관심할 때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역사의 한 면을 보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이드네요 ㅎ 정부가 이걸 교육을 시킨 적이 없으니...
교과서에 국가의 전쟁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으면 좋겠습니다.
암기 같이 달달 외우게 하지 않아도 한 번씩 알아두고 넘어가게 말입니다.ㅠㅠ
서울대병원 학살사건도 조명 부탁드립니다
그때사건을 알게되면, 지금떠들고 있는좌파들 그냥....
경범죄자는 석방이나 징집이 맞고 사형수, 강력범, 좌익사범은 지금도 별수 없을거 같은데요..석방도 할수없고 적에게 넘겨서도 안되면 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후방 교도소로 보내지말고 그냥 사형집행 하면 안될까?
범죄자가 아닌 국민들은 나라를 지키기위해 전방으로 보내져 목숨 바쳐 헌신 하는데, 범죄자들은 후방으로 보내져 안전하게 목숨을 유지 할 수 있다는게 말이 안되잖냐..
일정기준이상 중범죄자들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사형집행한다고 여야국개들 협의에의해 법만들어야한다봅니다
영상잘봤습니다 ㅎㅎ
유죄를 벌하는 것보다 무죄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나 범행은 워낙 많아서 그들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무죄인 사람을 법정에 세워 유죄 선고를 하고, 혹시 사형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시민들은 말할 것입니다. '내가 죄를 범하든 말든 상관 없어.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호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시민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떠한 안전도 다 끝일 것입니다.
- 존 애덤스
그런데 공산주의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무죄를 보호하느라 공산주의를 방치하면
이놈들은 암세포와 같아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칠겁니다.
그래서 과거 이승만 등 정부들은 항상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해왔는겁니다.
우리군도 준비를 하던 상태였습니다. 안그래도 공비소탕한지 2년도 채 안되고 아직도 저 남ㅉ고이선
시끌하던 무렵이엇으니까! 문제는 준비여부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태엿지요!
당시까지도 식량자급 없었고 제대로된 공업기반마저 전무 했습니다.
비상상태 1개월 넘어가자 병사들 먹일 군량조차 부족 했지요!
그래도 버티다가 6월 하순이 되자 비상을 풀고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냅니다.
겉으로는 농번기때 일손을 도우란 것이엇지만 실은 너희들에게 줄 쌀이 없으니 고향가서 좀 먹고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일이죠! 그래서 보내놧더니 일주일도 안됮 너쟁 터진 겁니다.
여러사람들이 왜 병사들을 대기도 아니고 시골로 보냈냐고 당시 정부를 욕하지만 데리고 있어봐야
먹일 수도 없는데 어쩌잔 겁니까!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임진왜란 입니다. 왜란터지기 1년도 전부터 왜에 심상치 않은 행동이 보인다며
무기를 점고하고 산성을 수축하고 군사훈련을 하는등 대비를 했지만, 이때 가장 큰 반대가 터져나온건
그 잘난 유생들이 아니라 백성들이었습니다. 안그래도 힘든데 자꾸 공역시켜서 농사지를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 이었던 겁니다. 지방 각지에서 이런 장계가 날아드니 선조는 뭐하나 제대로 성취해보지도 못하고
GG칩니다. 그나마 임진왜란이나 6.25에서 이순신이나 김종오 같은 이들이 사력을 다해 준비한 값을
톡톡히 보기도 했지만 결국 같잖은 준비로는 한 방에 훅간다는 것을 배운 겁니다.
전쟁소식이 듣리면 감빵에 수감된 무기수들이 환호한다고해요 전쟁시~탈옥할궁리?하느냐고 그런것같아요 그리고 6.25때 학살된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북한군뿐만아니라 국군 미군에 의한 암수학살도 많아요
전쟁은 논리로 하는게 아니니까요. 분노와 광기로 하는거에요.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가 죽어나가는데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이 없죠.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놈을 조져야 하는데 잘 먹고 잘 살다가 수명 다 해서 죽었죠
이런 내용은 어떻게 조사해서 만들었는지
참 유익하네
형무소를 보니, 전쟁이 나면 문화재 같은 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이런 것도 당연히 지금으로서는 메뉴얼이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전시 상황의 재소자들 메뉴얼도 제대로 안되있던 상황이였는지라 문화재에도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 그 부분이 궁금하고, 동물원도 전시에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이것도 그 당시에는 메뉴얼 같은 게 따로 없었는지라, 개전 초기에는 사육사들이 대피를 못해서 그대로 서울에서 발이 묶여버렸는데(다행이도 인민군들이 살려놓아서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니 동물과 사육사 다 멀쩡하게 있었다고 함), 이거랑 관련되서는 시설 파괴시 탈출하여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맹수들을 살처분 하는 거 외에는 다른 메뉴얼이 딱히 없더라고요.
6.25 전쟁이 발발해서, 서울에 보관하고 있던 문화재들을 모두 부산으로 이전했었는데, 이후 부산 용두산 화재사건으로 인해 조선 왕들과 세자들의 어진 대부분이 소실된 사건이 있었죠. 정조는 어진이 하나도 안남아있어서 용모를 추정하는게 불가능하다는..
한국은행에 보관된 달러와 금 은 제일먼저 피난할겁니다
음.. 나였어도 저때 총살령 내렸을것같긴함 형무소에 있는 애들 냅둬도 북한군으로 이용이되거나 치안악화가 더 심화되기에 비윤리적이여도 저 생각이 나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함
공리주의로 보면 그게 최선이죠
님이 누명 씌어서 들어가보셈
당시 사법시스템이 개판이라서
무고하게 징역살이 하던 민간인이 매우
많았다는걸 감안해야지요;;
안타깝지만 전시상황에선 희생자가 따르게되네요.지금우크라이나 하고 러시아전쟁만 봐두요
지들이 입장돼봐 죄지었어도 살려달라고 할걸. 절도 죄나 교통 죄 저지른 사람이 죽어도 된다는 얘기냐? 악마같은 생각 좀 버리고 정신 좀 차리길
교도소에서 있다가 맞서 싸우거나 죽은 교도관들은 6.25참전유공자 또는 6.25국가유공자로 인정됩니다.
이런건 상상만 했는데 신기하네요
전시에 수감자중 중범죄자와 적성국 동조자는 죽이는게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거라고 생각됩니다. 대다수 국민의 인권과 국가가 전과자 인권보다 훨씬 중요하죠.
전쟁은 정말 일어나면 안되는것이야,,
그 당시 재소자들이 북한군인 되었네요...ㄷㄷ
국가 위급 상황시에는 사형수는 집행하고 등급을 분류해서 가벼운 범죄자는 석방시켜야 합니다
간첩이나 사상범죄는 사형시켜야 맞습니다
이열~~~자료수집력이 어마어마한데요??
거의 전문가수준
리스펙합니다😍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만.. 아이티 대지진때문에 교도소가 파괴되서 재소자들이 죄다 탈옥을 해서 아이티 치안이 더욱 엉망이 됐다지요.
그런점에서 봤을떄, 재차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이 충분히 죄수들을 사면조건으로 프락치로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러시아가 그런 방법을 쓰고있지요.
그런일이 있었군요.
경범죄든 중범죄든 위법자들을 가둬놓은 교도소까지는 챙길 여력이 없으니, 적의 악용을 막기 위해, 다 몰살하고 직원들은 도주하는게 맞는 판단이지, 저들을 챙기려다 직원들이 희생되면 그게 더 불합리한게 아닌가?
8:44 민간인을 해칠우려가 있어 괜히 적군과 싸우기 벅찬 국군 장병들만 골치아파질 뿐입니다.
알고싶었던걸 쉽게 풀어주심!!
역시 사기공화국이라 사기/횡령범은 그냥 풀어주는군요
대전형무소(구 대전감옥소) 감시탑은 대전 중촌동에 보존되어 아직 남아있으니 한번 방문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소련 형벌부대의 경우에는 전투에 투입해도 총알받이, 지뢰제거, 전차 조종수, 지상공격기 후방기총사수와 같은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거나 없는 임무에 투입했죠.
@@성이름-o5n6n
냉전시대부터 전차는 전차하부에 장갑이 얇도록 발전해서 상대적으로 낮음
@@성이름-o5n6n T-34의 경우 전차가 파괴될 경우 조종수의 90%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조종수 전면 출입구가 유달리 좁아터진데다 장갑이 얇아서 이 전차의 약점이었기 때문이고 다른 소련 전차들도 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성이름-o5n6n 소련은 전차를 소모품으로 취급했죠. 아, 물론 탑승인원까지 세트로 말이죠.
소련군은 총알받이들에게는 무기를 지급하지 않음 ㅋ
@@성이름-o5n6n 지금까지도 러시아탱크는 생존성이 거의 없음ㅋㅋ 생존율 올리기는 커녕 자동장전장치때문에 탄약 배치까지 이상하게 해서 피격당하면 거의 죽는다보면됌 t시리즈 재블린에 빵빵터지는 이유도 그것때문임
미국이 m1a2까지 자동장전안쓰는이유기도하고
M1a3에서부터 자동장전장치 달아서 나온다는데요
625를 겪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인터뷰 하셨던 영상을 본 적이 있음. 625때 가장 무서웠던건 북한군이 아니였다, 좌익세력이 가장 무서웠다고 하셨던 모습이 기억나네. 근데 지금 나라가 참..
흉악범을 살려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인권을 떠나 즉결 처분하고 신속히 이동하여 새로운 명령에 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과거의 잘못된 처사로 많은 교도관들이 실종되거나 사살된 불운의 역사를 답습해서는 안된다.
?우리 대한민국이 독재국가라면 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가능하지 싶습니다
아 3년도 안된 범죄자도 죽이는구나
@@101보병-d7v 독재국가가 아니어도 가능한데요 웅앵아
전쟁중 범죄자 수송이 가능할까요?
죄없는 민간인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범죄자를 후송해주고 보살피고 하는게 당시의 정부역량으로는 말도 안되는 거고, 그럴 능력이 있었더라도 죄없는 민간인에 대한 상대적인 차별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고 생각됨.
그렇다고 학살이 정당화될순 없다고 생각됨
@@kimonelight 그런데 저 당시 어쩔 수가 없었는게
그 때는 주민등록번호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음.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음?
게다가 지금은 공산주의가 실패한 엉터리 사상이란걸 알지만
그 때는 오히려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파급력이 커서 현혹되기 딱 좋은 상황이란걸 고려하면
달리 방법이 없었음.
후송 해주고 보살피고를 못한 사실만으로 끝났으면 당시 정부의 선택을 욕하는 사람이 정부 역량으로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거라고 비판받을 일이나, 문제는 후송과 보살핌이 없었다는 사실을 넘어 무차별적으로 생명을 박탈한 사실이 추가되었다는 점입니다.
보살핌과 후송없이 방치했다고 비판합니까? 목숨을 빼앗은 것에 비판의 화살이 가는거지. 일반 민간인과 재소자의 형평성을 예로 드는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3년형 이하 잡범 재소자까지 모조리 처형한 이상 이들은 사형수와는 받은 형량이 전혀 다른데도 똑같이 처형당한점, 사형수가 아닌데도 각자도생이라도 할 기회가 있는 민간인과 달리 각자도생의 기회도 박탈당하고 국가로부터 확정된 죽음까지 부여받음으로 인해 2중으로 형평성에 안 맞습니다. 부족한 민간인 보호를 형평성의 기준으로 삼을거면 '사형수와 강력범은 즉시처형, 경범죄자는 보호 없이 완전히 방치후 전후 형집행, 민간인은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보호'를 기준 삼아야지. 당장 '절도범과 사형수 둘다 처형하는 경우'와 '조기석방된 절도범과 민간인' 중 형평성에 더 안 맞는 것은 명백히 전자고요.
명백히 적국 출신 군인인 전쟁포로 조차도 기본적으로 보호 대상이고 그들을 상대로도 고문을 가하거나 적법한 사법과 양형 절차 없이 무차별 처형하면 그 또한 전쟁범죄로 규정되고 전범재판에서 처벌받습니다. 하물며 자국민 상대로 불법적 처형집행은 잘못이 아니게요..
학살은 왜 쳐하는데 그럼 생각이 이리도 짧나
보도연맹 사건에서 사망자 4934명, 실종자 최소10만명에서 최대120만명.
교도소에 있던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살던 사람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래서 실종자가 저렇게 많죠.
정말 역사 과목은 잘 가르쳐야 할 것 같네요... 역사 교과서도 좀 과감히 수정하고.... 유튜브로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하니...
암튼 애국심 강요하는 것들은 항상 제일 먼저 도망간다는 것은 진리인 것 같음
나라 전체가 이대남한테 애국심 강요하지 않나
소련의 형벌부대에 대해 한번 다뤄주시는것도 좋을꺼 같아요
결론은 하나입니다
교도소에 갈만한 죄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 입니다
저 당시 단순 절도로 형무소 생활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건데
정만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 군요
ㅜㅜㅜㅜㅜㅜㅜ 슬퍼요ㅜㅜㅜㅜㅜ
안타깝긴한데 언제 돌변해서 폭동일으키거나 북쪽으로 붙을수 있는데 별수 없었지.
우라나라도 중범죄자들에게 강제무장을 시킨 뒤에 제일 먼저 선봉으로 보내는 게 제일 좋을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수송기나 상륙정으로 적 후방에 투입하는 방식으로요
전쟁시 모두 사살해야합니다 ㅜㅜ
이념이란것도 결국은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것 일텐데
그깟 이념이 뭐라고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갔는지
전쟁이나면 제일먼저 철퇴는 국회의원들과 법조계놈들 ..여지껏 호의호식하며 살았잖아
경제사범 즉 사기꾼들은 즉결 '사형집행' 해야 되지 않나요? 왜 풀어주나요.
강력범들 사회에 교회되기어려운 사람들 싸그리모아 섬에 고립시키면 안될까... 거기서 그들만의사회를 만들면 안되나
인권 좋아하시는 분들께서 노하심니다
@@kimhunv 전 님이 생각하는 인권 좋아하는분에 속할것같은데 섬에 고립시켜 그들만의 사회만드는건 일반인을 위해 필요하다생각합니다. 솔직히 정도를넘어선 반사회적사람들을 무작정 사형시키기엔 대형사고 일으킬까겁나고 (예- 어차피 잡히면 사형인데 집단살해하고 자살하잔 마인드) 복역후 사회에 돌아간다면 또 나쁜짓할게 뻔한놈들이니(갱생불가) 걍 섬에서 걍 고립하는게 사회를 위해서 젤 좋은 선택같아요
어떤집단에 납치되면 또,어찌될지~
힘내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은 안타깝지만 전쟁났는데 저런 범죄자들 신경 쓰는 것도 큰 국력 약화의 원인일 듯… 만일 후퇴가 늦어서 포위된다면 강력범들은 북한 측에 넘어 갈 수도 있으니 사형 시키는게 맞지 않나요?
팩폭
웬만한 강력범이 아니면 풀어주는게 맞지
비슷한 사건으로 한센인들이나 기타 수용시설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들었내요
혹시 주몽에 대한 얘기도 해주실 수 있나요 아 뭐 국뽕 때문에 그런건 아니고ㅋㅋㅋㅋ;;
교도관님들 고생하셨네여
안녕하세요 잘보고갑니다 화이팅 하세요 좋아요 찜하고감니다 와우 👍
전쟁 중 좌익사범 처리는 이동보다 사살하고 철수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더 큰 희생을 예방하기 위해 ~~~
무서워 ㅠㅠ
전쟁 나서 다죽게생겼는데 법리 따져가며 일사부재리의 원칙이어쩌고.. 지금 입구멍에 쌀이라도들어가니깐 그말하는거지.
강력범죄자들은 사실상 교화라는게 어렵다고 본다.. 전시에는 사형집행외엔 답이 없을듯..
1945년 8월 14일에서 1945년 9월 11일까지의 일들도 알려주세요~
왜 일본이 패전했는데, 한반도가 분단이 되어야했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예전에 만든 영상이 있습니당
ua-cam.com/play/PLEFdqOeF1nkSLwig948Xch66LJk7sbKWI.html
이 재생목록에 있는 한국전쟁 2편입니다
@@퍄퍄킴 감사합니다~~
8:42 그럼 전시에는 경범죄자들보다 얘네가 더 안전해지는거네요
전쟁중 지킬것 다지키다 적군들의 밥이 된다 다 죽고나서 전시법을 지키면 누가 좋아하냐
현역시절 주둔지와 그 부근 대전형무소 집단 학살 사건이 있었던 곳이여서 기억에 남음. 무심코 점심시간 흡연장에서 6.25 관련 서적에서 민간인 학살 관련 챕터를 읽고 있었는데 대전교도소 사건 당시 사진 속 배경과 바로 앞의 풍경이 똑같아서 그 때 눈치 챘죠... 국군과 인민군이 전쟁 중 벌인 학살 장소가 전후에도 군부대로 남았구나라고...
8:30 보시면 됩니다.
내일 모레면 나이가 60인데 이런 얘기는 처음 듣네요 사실이겠죠
저건 살해가 아니라 사형입니다. 전시에는 일반 사범을 제외한 강력법 사상범은 이동이 불가능하면 즉결 사형이 답입니다. 아님 저놈들이 우리를 죽이게 됩니다.
전쟁이 참 무섭네요 다시는 절대 일어나면 안됩니다.
그런 무서운일이 지금 기름값때문에 다시 일어날려고 하고있네요...ㅠ
절대라고 해선 안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라면
전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내겠다는 식으로
나가야지 이길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외견만 사람이지 거의 인간 말종
혹은 짐승에 가깝습니다.
그건 당연한 얘기고 문제는 '어떻게'인데, 송양지인의 따르자는 쪽도 있고, 반대로 강력한 힘으로 억제하자는 쪽도 있는데, 어느쪽이 옳은 길인지는 뻔하지만 의외로 전자가 솔깃하게 들리기 때문인지, 그런 주장이 세를 얻는 경우도 많은 거 같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도 현재 젤렌스키전에 소련간첩 비슷한 사람이 대통령을 맡아 친러행보를 하다가 결국 지금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야기한건데, 송양지인처럼 적국에 알랑방구 뀌는게 더 치명적인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실례가 될 거 같습니다.
@@emisayongzoong 명답이네요. 송양지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misayongzoong 극단적인 평화책 배척도 문제지요 최근 시니컬한게 주류가 되면서 유화론이 동네북이 됐는데 국가 수뇌부가 젬병이 아닌 이상 유화책은 갈등 해결을 위한 단계적 조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봐야합니다 대표적인 유화론자 체임벌린도 최근엔 영국이 재무장할 시간을 벌었다고 재평가되고 있지요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로 드셨는데 우크라이나 사태가 송양지인때문에 일어났다고 단적으로 말하긴 힘들것 같습니다 크림반도 사태가 2014년이고 우크라이나는 최근까지 돈바스 반군과 교전해왔는데 이런 전시상황급의 긴장도에서 우크라이나가 국방을 신경쓰지 않을리가 전무하고 우크라이나 침공하기 몇 주 전부터 러시아가 국경에 군대들을 알박아놔서 기습당한것도 아니었습니다
3년 미만도 총살 ㄷㄷㄷㄷ 미친세상
대전 형무소는 재소사 3천명 다 사살 하고 후퇴 했다고 하던데요
집합명령위반죄라고 전쟁나면 잡범은 풀어주고 언제까지 후방지역에 도착하라고 지시 후 도착 못하면 집합명령위반죄로 처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