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의 정변이 의문투성이인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현종이 왕이 되었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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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1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26

  • @historycreator
    @historycreator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역사숏보기 추천 쇼츠😊
    최초의 유목민족은 얼마나 강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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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라리스-x3x
    @폴라리스-x3x 10 місяців тому +3

    현종의 즉위의 정당성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조는 충심으로 왕을 세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살을 붙이다보니 이상해진 케이스일 수도 거기에 후대에 보니 더욱 이상해진 걸 수도 강조가 반역을 일으켜 현종을 세웠다는 단순한 사실인데 왕명을 받고 왔다는 없던 사실 들을 추가한거죠 거기에 망설엿다는것은 성앞에서 대치한것을 후대에 상황을 잘못 파악하고 기록한거죠

  • @민들레-j5s
    @민들레-j5s 10 місяців тому

    김치양 아무리 생각해 봐도
    뒤에 뒷배가 없고선 저렇게까지 나댈수가 없다고 봅니다.

  • @왕태자
    @왕태자 7 місяців тому

    천추태후를 살렸던게 미스터리이긴 하네요.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10 місяців тому

    드라마에선 전령이 강조에게 닿지 못 하고 습격 당했다는 픽션이 들어 갔지만... 이건 픽션이라;;

  • @떠도는이야기-j6c
    @떠도는이야기-j6c 10 місяців тому +10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이렇습니다. 당시 고려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갈팡 질팡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왕은 잘 살아있기는 하지만, 김치양이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이고, 김치양은 왕씨가 아닙니다. 그리고 김치양의 아들도 왕씨가 아니죠. 즉 정통성이 없습니다. 목종은 천추태후 아들로, 천추태후를 어떻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천추태후의 남편인 김치양도 어쩌지 못하고,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 문제는 김치양도, 천추태후도 아니고, 김치양의 아들입니다.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천추태후가 있으니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왕은 천추태후를 말리지도 못하고, 천추태후의 아들,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을 죽일 수 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김치양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죠. 대량원군이 설령 궁으로 와서 세자가 된다고 한들, 김치양이 죽일 수 도 있으며, 이미 목종도 죽을뻔 했다는 내용을 보건데, 뒷배도 없는 대량원군이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김치양의 아들이 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태죠. 이렇게 되면, 당시 지방권력이 강성하던 시절에, 왕의 권위는 추락하고, 후삼국시대 시즌2를 찍는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변방에 거란이 준동하던 당시 상황을 보건데, 이건 정말 심각한 상황인거죠. 고려이전에 삼국이 죽도록 싸우다가 당나라에게 삼국이 동시에 망할 뻔 한 역사가 이미 있다는 걸 당시 사람들도 잘 알것이고, 내부 분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절대 과제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조의 정변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신하가 없다는 것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러니까 이 상태로 방치하면 왕조도 망하고, 고려도 망하는 중대한 위기상황이었던 겁니다. 목종은 게이였다고 합니다. 게이왕은 후사를 볼 수 없으니, 아무리 기다려도 세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니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계승 순위 1위인 대량원군은 김치양 입장에서는 언제든 제거 할 수 있는 상대죠. 그리고 설령 대량원군이 세자가 된다고 한들, 당시의 의료기술로서는 대량원군과 목종 중에 누가 먼저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량원군이 세자인 상태로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세자의 아들과 왕의 아들은 급이 다릅니다. 정통성 시비에서 태후의 아들과 세자의 아들이 다툰다면, 당연히 태후를 등에 업은 태후의 아들이 이기는 거죠. 그리고 아들을 낳을떄까지 대량원군이 생존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상황은 그냥 불안정 그 자체이고, 이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조정은 제역활을 하기 힘듭니다. 목종, 김치양, 천추태후 이들이 권력을 공유하는 상태에서 일사분란한 조정의 대책을 기대할 수 없을 수 도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으로 마비 상태가 올지도 모릅니다. 강조는 이지점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왕까지 죽이며, 정변을 일으킬 필요까지 있느냐라고 생각한다면, 판단이 쉽지가 않습니다. 왕이 죽은것도 아니고, 표면적으로는 왕이 살아있으니까요. 하지만 죽는다면? 또 김치양의 아들이 세자가 된다면? 그런데 김치양의 아들이 세자가 되지 않고, 대량원군이 세자가 된다면? 대량원군이 무사히 왕이 될 수 있을까?
    갈팡질팡하기 충분하죠.
    그리고, 목종을 죽인것은 목종이 살아 있으면, 목종을 다시 옹립하겠다고 세력이 모일 수 있고, 거란이 폐위된 목종을 앞세워 침공도 가능합니다. 그럼 목종 주변으로 모이는 고려사람도 생길것이고, 이러면 역시 고려는 분열로 망합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아들인 목종을 통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니 살려둬도 대세에 지장이 없습니다. 김치양과 그의 아들은 살려두면 역성혁명을 할 것이므로 죽인 것이라고 봅니다.
    왕조시대에는 왕이 곧 국가고 국가가 왕이던 시절입니다. 왕이 없으면 국가가 아닌거죠. 그냥 무주공산, 조정도 없고, 신하도 없고 관료도 없습니다. 정통성이 있는 왕이 없는데, 백성들 중 누가 관료나 신하의 말을 들을려고 할까요? 왕조의 보존은 국가보존과 같은 거죠. 이 상황에서 왕을 죽이고 새왕을 옹립하는게 왕조를 안정시키는 최상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신하들이 여기에 동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강조가 거란의 성종에게 잡혔을때 했던 말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거란주가 조의 포박을 풀고 물었다: "넌 내 신하가 될 것이냐?" (강조가) 답하니: "난 고려 사람이다, 어찌 너(汝)의 신하가 되겠느냐?"// 고려사의 내용이라는데,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게 있습니다. 고려임금에 대한 충성을 내세워 신하되기를 거부한게 아니라 고려사람이라는걸 내세우고 있습니다. 민족의식 비슷한게 당시에도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서양사람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극동에서는 그 전에도 민족의식이 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양역사에서는 민족의식이 19세기에 출현한것이지만, 동양 특히 한국역사에서는 민족의식이 아주 이른시기부터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많다고 합니다. 고조선시대부터 상투를 틀었다는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고 하니, 한민족의 출현은 정말 5000년이 될 수 도 있는데, 서양역사를 기준으로 봤을때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합니다. 서양역사에서는 2000년 이상 존속한 민족은 없다고 한답니다. 고조선의 상투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니...아무리 봐도 우리민족은 5000년 존속한것 같죠. 하지만 이것도 갈팡 질팡이죠.
    하여간 강조의 정변은 왕조에 대한 충성, 또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위해 벌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중상모략
      @중상모략 10 місяців тому

      너무 길어서 못 읽겠네;
      핵심을 요약하는 게 좋을듯

    • @문재덕-i6h
      @문재덕-i6h 10 місяців тому

      그러면 강조가 김치양 일파, 유행간을 죽이고 대량원군이 세자로 책봉하도록 하면 되지 않나요? 왜 목종을 죽여서 거란에게 빌미를 제공하나요? 목종이 무능하다, 게이였다는 것은 공감하나 드라마에서 강감찬 장군의 말처럼 무능하더라도 고려의 안위를 위해 있다가 현종에게 양위, 선위하고 현종이 요 성종에게 책봉받았어야 합니다.

    • @최우진-w3y
      @최우진-w3y 10 місяців тому

      부계 사회의 잣대로
      그릇된 생각을 하시네요
      우리 조상들은 유목민의
      생활방식을 고수해왔고
      그로인하여 모계 중심 사회 였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잘못된 편향된 인식의 차이로
      고대 시대를 제단하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목종 다음에 왕위의 적통성
      문제에는 대량원군이
      우선 순위 일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천추의 아들역시
      후계에서 벗어난 건 아닙니다
      아버지 성을 따라 김씨이지라는
      생각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편향된 생각 입니다
      이때문에 역사 중간 중간의
      오류들이 너무 많죠
      그게 심한 건 고구려 백제 입니다
      여성 주심 역사관을
      남성 중심으로 기술 하려다 보니
      이곳 저곳에서 말도. 않되는
      수명과 차이들이 발생하지요
      김치양 세력의 국정농단
      이것이 문제이지
      국가 전복을 쾌한것이 아닙니다
      고구려가 왜 초기에는 해씨에서
      고씨로 바뀌었는지
      납득할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죠
      모계 사회의 기술된 모든 것을
      조선 사대부들이
      부계 기술로 바꾸려다보니
      일어난 모순 입니다

    • @A아인슈타인
      @A아인슈타인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중상모략 겨우 이 정도의 글도 길어서 못읽겠다뇨....

    • @중상모략
      @중상모략 10 місяців тому

      @@A아인슈타인 책이면 읽죠
      근데 댓글은 틀딱 아닌 이상 핵심만 짧게 적는게
      대부분입니다만..? 여기서 뭐 책읽을 거에요?
      그렇게 읽을 정도로 님들한테 관심이 없어요;

  • @울주특공대
    @울주특공대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ㅇㄱ에 수레바퀴를 걸어?
    김치양도 미스테리네

  • @챠챠-v5h
    @챠챠-v5h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처형 X 처남

  • @고대경-b6d
    @고대경-b6d 10 місяців тому +5

    목종 이후 왕위를 계승할 고려 왕족은 현종이 되는 대량원군 왕순 뿐이었죠.

    • @왕태자
      @왕태자 7 місяців тому +1

      근데 엄마 아빠 다 태조왕건 후손이면 현종밖에 안 남은 건 맞는데 엄마 아빠 둘 다는 아니지만 아빠가 태조왕건의 후손인 왕손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조왕건의 9남 왕원의 애들이나 뭐 그런 애들이요. 따라서 만약 현종이 죽더라도 태조왕건의 딴 아들들의 후손들 중 왕을 골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 @고대경-b6d
      @고대경-b6d 7 місяців тому

      @@왕태자 오늘날 남은 개성왕씨, 태조왕건의 후손은 효은 태자 왕원의 후손들 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부모 양쪽 모두 태조왕건의 후손인 왕손으로 왕위 계승 유력 후보는 현종이 되는 왕순이죠.

  • @이이종갑
    @이이종갑 10 місяців тому

    보이지않는 ......떡관계?...❤❤❤ㅎㅎ

  • @akssk5202
    @akssk5202 10 місяців тому +2

    제도(남성-문자)와 생활(여성-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역사를 들여다 보니 잘 못 된 해석이 비일비재 합니다.
    우리나라는 제도(남성)중심 사회로의 전환이 임진왜란 이후부터 진행되어 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생활(모계)중심 사회입니다. 이것은 유목민(유랑)의 특성입니다. 농업민(정주민)과 다른 생활 방식입니다.
    중국은 정주민 중심이기에 여성이 황제(왕)이 될 수 없지만(당의 측천무후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세민이 유목민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목민 중심이기에 여성이 왕이 될 수 있고 여성 중심생활 사회입니다.
    고려 초기의 혼인 관계가 전혀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고 그것은 우리의 뿌리입니다.쿠빌라이가 고려의 생활 방식을 수용한 이유가 그 또한 유목민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는 제도(남성)중심으로 기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간과하는 지점들이 발생합니다.

    • @최우진-w3y
      @최우진-w3y 10 місяців тому

      그렇지요 딱 맞는 말씀
      임진 왜란 이후에
      전형적인 부계로 돌아섯다는
      우리 오천년 역사는
      모계사회 였고
      그나마 조선 전기엔
      부모계 모두 잇고
      후기로 가면서 부계만 남았죠
      해서 김치양과 천추의 아들 역시
      그 시대 대세에 따라
      왕씨가 될수도 있습니다
      김치양의 집안이 그리 큰
      명문가도 아니고
      왕건이 하사한 김씨라는 점에서
      그리 큰 세력은 아닙니다
      김치양 세력의 국정농단
      이것이 문제 였던거지
      그 아들이 누구의 핏줄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징기스칸의 딸들을 보세요
      여러나라에 시집 보내고
      그 징기스칸이 사위들을 앞세워
      전쟁하고 나중엔 그 딸들이
      나라를 꿀꺽 하잖아요

  • @매니아썬
    @매니아썬 10 місяців тому

    ❤❤❤

  • @주채용-x1m
    @주채용-x1m 10 місяців тому

    드라마 천추태후를 보면

  • @곰돌이-x6h
    @곰돌이-x6h 10 місяців тому

    저도 이 부분 의아했음

  • @최우진-w3y
    @최우진-w3y 10 місяців тому

    그렇지요 딱 맞는 말씀
    임진 왜란 이후에
    전형적인 부계로 돌아섯다는
    우리 오천년 역사는
    모계사회 였고
    그나마 조선 전기엔
    부모계 모두 잇고
    후기로 가면서 부계만 남았죠
    해서 김치양과 천추의 아들 역시
    그 시대 대세에 따라
    왕씨가 될수도 있습니다
    김치양의 집안이 그리 큰
    명문가도 아니고
    왕건이 하사한 김씨라는 점에서
    그리 큰 세력은 아닙니다
    김치양 세력의 국정농단
    이것이 문제 였던거지
    그 아들이 누구의 핏줄이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징기스칸의 딸들을 보세요
    여러나라에 시집 보내고
    그 징기스칸이 사위들을 앞세워
    전쟁하고 나중엔 그 딸들이
    나라를 꿀꺽 하잖아요

  • @윤영역
    @윤영역 10 місяців тому

    멤버쉽 ㅋ 돈에 너무
    물들었다
    밥맛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