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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특집3탄] What? 현종이 성군이었다고?! 사극을 보면서 역사학자로서 반성되는 것은 과연 무엇?│[무묻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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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3 гру 2023
  •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으로 고려사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뜨겁다. 조선사에 비해 관심이 덜 했던 고려사여서 그런지 각 인물에 대해 궁금한 점도 많은 제작진! 역사학자 심용환을 소환해서 묻는다. 천추태후와 김치양, 목종과 현종의 관계는? 강조의 정변은? 현종은 정말 절에서 죽을뻔 했나? 귀주대첩 이후 100여 년 간의 평화기는 어떻게 봐야 하나? 각 물음에 시원하게 답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들려주는 심쌤! 역시!! 무엇이든 묻는 역사, 무묻사는 계속됩니다! #고려거란전쟁 #천추태후 #김치양 #목종 #현종 #강조 #양규 #근친혼 #문벌귀족 #김은부 #이자겸 #강감찬 #귀주대첩

КОМЕНТАРІ • 528

  • @epsdm
    @epsdm 8 місяців тому +50

    근친혼은 현종 이전부터 있었는데 이걸 현종이 고착화 시켰다고 할 수 있는건가요?

  • @user-lt2nd5qh8f
    @user-lt2nd5qh8f 8 місяців тому +19

    1. 쿠데타에 의해 추대된왕 -> 강조의 죽음 이라는 다소 운이 작용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안정적인 치세를 구축하며 정통성의 문제를 극복하고 왕권을 회복함
    2. 즉위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두번의 걸친 전쟁 -> 2차 침입때는 비록 개경까지 함락당해야 했으나 3차 침입을 대비해 방어에 성공함(이 과정에서 강감찬 같은 인물을 발굴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움)
    3. 지방 행정제도 정비 -> 지방을 장악하지 못했던 고려사회의 모습을 느끼고 행정제도를 개혁해 지방을 통제하는데 성공함
    4. 부인13명? -> 왕실의 번성이 중요한 이유는 당장 목종, 현종의 불안정한 승계만 봐도 알 수 있음 왕실에 충분한 후계자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승계작업의 구도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가 여실히 보여줌 현종대 부터는 왕실도 번성하고 매우 안정적인 형식의 승계가 이루어짐 애초에 안정적인 왕위 계승이 없다면 끊임없는 혼란을 야기시키고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삶에 까지 영향을 미침..
    5. 김은부와의 결탁 -> 이 점이 가장 공감이 안되는점은 김은부의 처가에서 이자연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강조 하시면서 김은부의 딸 두명에게서 나온 덕종, 정종, 문종에 이르면서 고려가 최전성기의 문을 열었다는 점은 빼놓고 이야기 하셨음... 애초에 아들인 문종때 처가에 들어온 이자연을 예시로 현종이 성군이 아니라고 주장하셨는데 아들인 덕, 정, 문의 치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는게 좀 모순인거 같습니다
    또한 왕권의 안정이 민생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셨는데 제 짧은 소견으로는 전근대 시대의 왕권은 일반민의 치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최소한 관리들의 수탈이나 특정 권신의 권력 독점으로 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게 왕실인데 왕권의 강화가 그것과 관련이 있어 민생과 떨어져있는 문제는 아니지않나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당대 최고의 문신이었던 최충은 한나라의 문제 또는 주나라의 성왕에 비유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최충의 의견이라고 해서 다 맞다 틀리다 이렇게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당면과제를 모두 해결하였고 불안정한 시대를 태평한 시대로 극복시켰다는 점에서 성군내지는 명군으로 평가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 @user-lo2sx1jd3u
      @user-lo2sx1jd3u 8 місяців тому

      매우 동감합니다. 현종 이후의 황제들이 근친이 아니라 김씨 황후들에게 낳은 자식들이 황제가 되었고 고려 전성기라 불리는 황금기를 만든 문종은 현종이 기틀을 마련해서 가능한거고 고려시대에서 태조왕건과, 혜종 그리고 현종이 불천위로 되었는데 왜? 이런 평가는 외면하는지 보르겠습니다. ㅠㅠ 그리고 왕조 국가에서 황권이나 왕권이 강할때가 신권이 강할때보다 태편성대이고 치안도 좋은데 황권이 강한게 백성하고 뭔? 상관이냐고 하는것도 굉장헤 모순적인 말 입니다. ㅠㅠ

  • @houbird
    @houbird 8 місяців тому +255

    현종이 성군은 아닐지라도 저 어린나이에 남의 추대 그것도 왕을 시해한 권신이 강제로 옹립한 왕이 거란의 외침에 맞서서 왕조를 지켜낸것만 해도 한국사에서 반드시 재조명 받아야한다고 봐요

    • @asurakang
      @asurakang 8 місяців тому

      근데 ‘아닐지라고’가 오타에요, 아님 진심으로 맞다고 생각해서 쓰는 거에요..?? 요즘 진짜 많이 보여서 하도 궁금해서 지나가다 여쭤봐용;;

    • @houbird
      @houbird 8 місяців тому +6

      @@asurakang ㅖ 오타에요

    • @babyandi3397
      @babyandi3397 8 місяців тому +8

      @@asurakang자판에 ㄱ이랑 ㄷ이 가까워서 오타 나기가 쉬운듯

    • @user-co3xe3hu5m
      @user-co3xe3hu5m 8 місяців тому +7

      명나라 사대주의 오랑캐 이성계 이씨 조선 세종 따위가 성군이라 생각하는 애들이 고려사는 무시하는데 저런 것들은 이씨 조선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 @user-ey1gl2bl7
      @user-ey1gl2bl7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co3xe3hu5m
      세종 따위(?)
      세종대왕 없었으면
      아직도 한자를 썼을텐데
      중국이랑 일본애들
      컴퓨터 자판하고 핸드폰 자판 봤냐
      세종대왕이 너따위 무지랭이에게
      무시받을 그런 분 아니다

  • @lda2000777
    @lda2000777 8 місяців тому +51

    동의하기 힘드네요. 결국 현종시기에 거란을 이겼기 때문에 평화가 온겁니다.
    그후 거란과 송 내부사정은 결과론인거죠. 그리고 쿠테타에 의해서 왕이 되었고 몽진까지 하였기에 왕권이 엄청 약했습니다. 몽진하면서 도적 습격까지 있었고 공주에 가서야 김은부가 환대해주어서 딸들과 결혼한겁니다. 그리고 통일했다지만 고려 자체가 호족들에 힘으로 세워진건데요. 왕권강화를 위해 혼인을 할수밖에 없고 왕씨도 이제 없으니 많은 후사를 위해 부인도 많이 들여야죠.
    그리고 애초에 거란한테 항복했거나 졌으면 고려가 유지되도 국토의 절반은 넘어갔을겁니다.
    거란군을 박살냈기에 금이 더 성장한거고 거란이 약해져서 송과의 균형도 있던겁니다.
    원정에 얼마나 많은 국력이 소비되는데요? 그리고 뭣하나 얻지 않고 깨졌는데 평화가 현종 덕분 아니라니ㅋ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준 전쟁 맞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불교가 강해서 뒷백이 없는 현종은 불교계를 키워주며 기반을 만들수밖에 없었기도 했고요
    이걸 저런식으로 해석하시다니 매번 잘보았는데 이번편은 동의하기 힘드네요

  • @woongzzyang
    @woongzzyang 8 місяців тому +46

    그냥 긍정적인 여론을 반대하기위한 억지로밖에안느껴짐
    09:00 여기서부터 확실히 억지아닌지요?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약간 그런 느낌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한번은 이렇게 비판해서 매몰되는걸 막고 다시한번 점검할 필요는 있죠
      비판과 질문, 그게 순수하든 어떤 목적이든 이 두개가 학문과 지식을 더 정교하고 예리하게, 풍요롭게 하니까요

    • @user-tx2kg6bp6i
      @user-tx2kg6bp6i 3 місяці тому

      @@user-ol9gk8bt7e 너무 우상숭배를 하니까 반발심이 생김.
      그렇게 성군이면 한반도 방구석에서 힘자랑을할까 ㅋ

    • @user-lr8qy7uz5p
      @user-lr8qy7uz5p Місяць тому

      진짜 딱 이렇게 생각함

  • @c.c3444
    @c.c3444 8 місяців тому +61

    선생님. 이번편은 현종이 성군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무리한 비약과 예시를 들으신것 같습니다.
    1) 세종과 비교해서 고작 한게 뭐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렇게 치면 세종대왕도 당대에 사민정책 등 때문에 백성들에게 욕 많이 먹었다는건 아시지 않습니까
    2) 현종이 결혼을 많이해서 문벌귀족의 도래를 이끌었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치면 세종대왕도 능력있는 아들 많이 낳고 그들에게 힘 실어주면서 계유정난 발생하고 훗날 조선의 기풍이 바뀌지 않았나요.
    3) 거란과의 외교력도 중앙정부가 한게 아니라고 하셨는데
    항복하라는 대신들의 의견을 반대하고
    차관급 예부시랑의 말을 듣고 그를 외교관으로 써먹은것 또한 제왕의 인용술 아닌가요?
    4) 현종이 거란 전쟁을 이겼다고 해서 동아시아에 평화가 온건 아니라고 하신 예시에도 거란에 성군이 안나타나고 송나라가 상업에 빠져서 라고 하셨는데,
    어느 한 시대의 상황이 한가지로만 결정되지 않을텐데
    필경 거란과 송이 그런 상황일 지라도 현종 이후 군주들이 무난히 잘 정치를 해냈기에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던것 아니겠습니까.

    • @tv-funhistorytv1061
      @tv-funhistorytv1061 7 місяців тому +4

      몇개는 동의 되지만 몇개는 조금 반박을 드려도 될까요?
      외침이라는 것은 외부세력의 침략입니다. 즉 침략할 세력이 어느 정도의 강성함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인데,
      거란의 국력이 성종만한 성군이 나와서 다시 한번 재 정비를 했다면 외침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외침은 고려 내부 상황이 아니라 외부 침략 세력의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외침이 없었다는 간 고려의 힘이라는 전제 보다는 거란의 내부 사정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침략을 생각치 못했다로 보는게 조금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

    • @tv-funhistorytv1061
      @tv-funhistorytv1061 7 місяців тому +2

      또한 3번에 관한 것인데
      드라마 상에서 고려 사신으로 강감찬이 매번 간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기록에는
      현종의 몽진을 주장한 것이나, 이후 강공의 계책 등으로 강감찬이 몽진 등의 전략을 주장한 것은 맞으나 강감찬이 직접 사신으로 간 길은 없습니다.
      다만 현종 몽진시기 강감찬에 대한 기록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데, 이를 두고 강감찬이 사신의 업무로서 파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고 정도로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

  • @kj3244
    @kj3244 8 місяців тому +96

    이번엔 공감 안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 지 모르겠는데...
    1. 역사 기록에는 현종이 강력한 불교계에서 편안하게 대접받으며 떵떵 거리며 살았다고요? 그러면서도 "물론 천추태후에게 암살 위협은 받았지만..." 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드라마에 묘사한 게 딱 맞는 정도 아닌가요? 드라마에서도 절 내에서는 왕자님으로써 대접은 받는 걸로 나오고 암살 될 뻔한 것도 사료 근거해서 잘 묘사한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아무리 대접을 받았더라도 늘 암살위협에 시달리는데 편안하게 살 수가 있습니까? 심용환님은 "드라마에서는 절이 너무 약하게 나왔다" 고 하는데... 그럼 실제 역사에서는 황제도 어찌하지 못하는 천추태후에게 일개 절의 스님들이 정면으로 맞설수 있었을까요? 기록에서도 대량원군 죽이려고 군사들 들이닥치면 주지스님이 은신처를 만들어 숨겨주고 했다는 게 다 나와있습니다.
    2. 근친혼을 했고 혼인을 많이해서 성군이 아니다? 이것도 황당한 게 첫째부인과 둘째부인은 근친관계이긴 하지만 왕권 강화를 위해서 즉위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된 거지 현종이 픽한 왕비들이 아니었고 후에 김은부 딸들이랑 결혼한 것부터 시작해서 본인 픽 왕비는 근친이 아니죠. 오히려 이 때부터 황실 근친혼이 완화됐고요. 김은부 자매(언니와 여동생)를 함께 취한 걸 가지고 문제 삼는데 그래서 호색한이란 건가요? 당시 기준에서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고 자신을 도운 우호적 호족과 더 탄탄한 겹사돈을 맺는 거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죠. 조선시대는 후궁까지 티오가 9명으로 제한 되어 있지만 당시 고려는 형식적으로 거란에 사대하고 있지만 황제국이라서 부인을 몇을 두던 한계가 없었기에 13명 부인을 둔 게 문제될 게 없죠.
    바로 전 황제인 목종이 동성애자라서 후사가 없어서 김치양 아들한테 보위가 넘어가 왕조가 끊길 뻔한 시대적 상황에서 왕비 많이 들이고 자식 많이 낳았다고 문제?? 당시에는 황제 자신 빼곤 용손이 전멸한 상태라 현종으로써는 자식을 많이 낳아서 왕실을 융성케 하는 게 커다란 책무이자 사명이었을 겁니다. 그 공로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현종을 고려의 제 2의 건국을 한 태조나 다름 없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현종이 왕실 튼튼하게 한 건 왕권이 강화 됐을 뿐이지 그게 일반 백성들과 무슨 관련입니까?"라고 하셨는데 왕조국가 임금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후계자를 생산해서 왕실을 안정시키고 적절히 왕권을 발휘해서 선정을 배푸는 거 아닌가요?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제일 힘들어지는 게 백성들인데 "그게 백성들하고 무슨 상관" 이냐니...ㄷㄷ;;
    3. 현종 때문에 문벌귀족 사회가 되었고 이자겸의 난도 현종 때문이다? 하아... 원래 고려는 호족 연합체라 근친혼으로 왕권 유지하던 초기가 지나면 시스템적으로 문벌귀족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대략 한 세기 후 일어난 일도 현종 때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걸 넘어 궤변에 가깝네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종대왕은 본인 죽자마자 삼촌이 조카 왕위 찬탈하는 난이 생겼고 이는 재위기간 내에 왕자들 세력 억제를 하지 않은 세종의 책임이 큰데 그것 때문에 세종대왕이 성군이 아니라고 하는 말은 하지 않으셨죠? 현종을 까기 위해 후대 인물인 이자겸까지 소환하셨는데 그건 현종 사후 수십년 후의 일이고 세종대왕 서거 후 일어난 일은 바로 직후 일어난 일인데 사후에 일어난 일까지 탓을 하자면 현종 보다는 세종대왕이 더 문제 아닌가요? 저는 세종대왕도 성군이 아니다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심용환님이 현종 까는데 이자겸까지 등판시키는 게 그만큼 말도 안 된다는 걸 세종대왕의 사례를 빌어 이야기 한 겁니다.
    4. 불교계를 지원하고 절을 지어서 성군이 아니다? 고려는 엄연히 불교국가인데 불교를 융성하게 하는 게 왜 문제가 되죠? 거기에 지나친 백성들의 노역과 국고탕진이 되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현종 시대에 나라가 더 부강해졌는데... 그리고 이건 현종시대 얘긴 아니지만 몽고 침략 때 불제자들이 팔만대장경을 제작했는데 이건 황제가 시키고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나라에 위기가 닥치자 불심으로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만큼 고려는 불교국가의 정체성이 강했다는 방증이고 현종의 불교 융성정책이 성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죠.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임의로 비틀어 주류 학계의 공론에서 동떨어진 개인 의견을 피력하셨는데 전체적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거나 고려하지 않으시고 하신 말씀 같네요. 그리고 주장하신 게 다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왜 현종이 성군이 아니라는 근거가 되는지도 도무지 모르겠네요.
    역사 인물 재평가? 좋죠. 근데 이건 재평가라기 보다는 그냥 맹목적 현종 까기일 뿐이라는 느낌이 강하군요. 오히려 요즘 연구에 의한 재평가는 현종이 성군이 아니었다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현종은 더 대단하다"가 중론이고 그럴만한 근거가 다 있는 것입니다.

    • @jmk290
      @jmk290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아. 중요한건 아닌데 다른분이 태클 거실까봐.
      현종이 1031년 사망, 이자겸이 1050년대 탄생이니, 몇백년은 아닙니다.
      결론은 같지만요. 죽은뒤 20년뒤에 태어난 사람을 현종탓으로 돌리면 안됨.

    • @kj3244
      @kj3244 8 місяців тому +6

      @@jmk290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vw4wo4jc5s
      @user-vw4wo4jc5s 8 місяців тому +7

      1. 영상 어디를 봐도 현종이 불교계에서 편안하게 대접받으며 떵떵거리고 살았다는 표현은 안나옵니다. 다만 고려의 국교가 불교이고 태조 왕건의 유언을 보더라도 당시 불교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극중에서 불교의 역할이 축소되어 나온 부분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무슨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2. 영상 어디에도 근친혼을 해서 호색한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님의 모든 글에는 영상에 나오지 않은 표현들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고요. 왕조사회에서는 왕실을 안정시키고 적절히 왕권을 강화해서 백성에게 선정을 베푼다?? 이렇게 선정을 베푼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3.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자겸의 난이 현종때문이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님의 감정이 무리하게 들어가서 영상을 심각하게 오독하고 있는거 같네요. 본인이 쓴 글이 궤변이 아닌지 논리적인 오류가 가득한 글이 아닌지 생각해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4. 불교계를 지원하고 절을 지어서 성군이 아니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불교계를 지원하고 절을 창건한 것을 설명하셨지 그것이 성군이 아닌 이유와 결부시켜 설명하시질 않았는데 님의 머릿속에서 연결시켜서 비판하고 있네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비틀었다? 주류 학계의 공통된 의견과 동떨어진 개인 의견을 많이 담으셨다? 님이 얘기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과 주류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 무엇이죠? 제가 보기에는 최근 고려사 열풍을 통해 현종에 대한 재평가를 넘어서 현종에 대해 빈약한 근거를 토대로 무리한 해석을 하는 부분에 대해 경계하는 정도로 이해되는데, 님이 너무 본인의 감정에 호도되어서 1,2,3,4번 모두 영상에는 없는 말을 만들어서 논리비약을 하고 있네요.

    • @kj3244
      @kj3244 8 місяців тому +3

      @@user-vw4wo4jc5s 분명히 나왔어요. 영상 제대로 안 보셨네요. 그리고 승병들이 용감히 거란군 무찌르는 장면도 나오는데 도대체 극 중 어디에서 불교 역할이 실제보다 축소된 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또 아무리 불교 힘이 강하다고 해도 절에 군사들이 몰려 오는데 맞서 싸워야 힘이 있는 걸로 묘사 되는 건가요? 힘이 강하냐 약하냐기 문제가 아니라 맞서는 순간 반역인건데요? 김치양의 군대니 사병이라고 테클 거실 수 있지만 어쨌든 그런 많은 병사들과 싸우지 않는 건 불교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무모하지 않았을 뿐인 겁니다. 그건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인데 소림사도 관군한텐 안 됨ㅋㅋ

    • @jmk290
      @jmk290 8 місяців тому +13

      ​@@user-vw4wo4jc5s
      최소 3번은 제가 대답하지요.
      이자겸 이야기를 하면서, 이자겸의 생예를 보여줌. 거기에 볼드체로 이자겸의 난이 써있음.
      이게, 의도가 없나요??
      자.. 이게 심용환님의 의견이 아니라면 편집자가 잘못한겁니다.

  • @dongwonlee246
    @dongwonlee246 8 місяців тому +86

    조선시대 관점에서 왕이 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지 말라면서 정작 지는 조선시대 국가시스템의 관점에서 현종 바라봄 ㅋㅋㅋ

    • @user-nw1be9yj2j
      @user-nw1be9yj2j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이해하기 쉽게 비교를 통해 고려와 조선의 차이점을 설명한 거지 조선의 기준으로 본 건 아니지 않나? 도대체 뭘 보고 이런 댓글을 쓰는 거지?
      시대적 기준으로 본다는 것이 무조건 그 시대를 긍정하는 게 아닐 텐데?

    • @ifeelthat5879
      @ifeelthat5879 7 місяців тому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munsukwon8393
    @munsukwon8393 8 місяців тому +40

    시간이 오래지난 역사와 인물을 이야기할때는 다양한 관점도 중요하지만 그런관점을 이야기하려면 공정한 균형을가지고 말해야 어느정도 설득력이있지 이건 아니라고봅니다.

  • @JungSungMock
    @JungSungMock 8 місяців тому +46

    토전사에서 본게 생각나네요
    사생아에 부모일찍 가버리고 항상 암살위협에 의지하던 왕마저 시해당하고 강제로 왕이 된상황에 외침으로 피난가다 지방호족에게 죽을뻔하기까지했는데
    인성박살 안나고 전란극복했다는건 진짜...

    • @ifeelthat5879
      @ifeelthat5879 7 місяців тому

      어렸을때 종교집단에서 살아서 그런가 인성이 좋았던건가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그런데 백성이 몽진가는 왕을 위해 문짝 뜯어서 강 만드는데 그런 민가 집을 헐어 버리라는 명령내려
      국가 좆폐의 위기에서 구한 구국의 영웅 억까에
      전쟁이후의 공정보단 천륜이라며 자기 사고치는 자식 두둔에
      상황이 고려보다 더 나은 상태의 조선의 군주가 참 형편없는 작태를 하니 우습기 그지없죠
      그렇게 정치체제와 행정을 발전시키고 중앙집권제를 한게 이런 빤스런을 위한 포석이면 대단하긴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고려보다 뛰어난 행정을 가지고도 몽진밖에 못하는 조선과 비교되죠
      근데 왜 댓글이 안 올라가는지 모르겠네요

    • @JungSungMock
      @JungSungMock 5 місяців тому

      @@user-ol9gk8bt7e 그것도 토전사에서 나옴
      조선은 이전 우리역사와다르게 북방에 올인한 방어력과 달리 남부에서의 대규모 침공또한 방어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됬다고
      심지어 임진년에는 청이전 여진족의 움직임도 활발해서 그쪽에서의 국지전도 치뤄야 했음
      조선이 멍청한게 아니라
      망하라고 억까했는데도 버틴게 대단한거라고 생각합니다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JungSungMock
      근데 그점도 의문인게 조선시대는 북방만이 아닌 남쪽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라 군사력이 둘로 나뉜다 하는데
      이미 고려후기 고려 31대 공민왕 치세 북쪽과 남쪽의 전선을 두루 신경쓰는 형국인데
      그런 시기를 거쳐 만들어진 조선이 대비를 못한건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죠
      애시초 고려를 멸망케한 원인중 하나가 그런 외적들의 공격인데
      그걸 지적해 만들어졌음 똑바로 해야지 그걸 못하고
      조선은 그 이전시대와 달리 북쪽과 남쪽을 동시에 신경을 써야해서 문제였다는 소리는
      고려후기에서 이미 피해가 있었으나 스스로 전부 격멸시켰는데 반해 명나라에게 구원 요청까지 하며 간신히 극복한 조선이 할 소리는 아니란 생각밖에 안들죠

  • @starlightt20
    @starlightt20 8 місяців тому +82

    현종 정도면 성군 중에 성군이죠. 한국역사상 현종정도의 업적 남긴 왕이 몇이나 있을까요?

    • @sjwclover
      @sjwclover 8 місяців тому

      @@j3459 근거가 있나요? 게다가 후손과 그사람과 다르지 ㅋㅋㅋ 그리고 북한 지역과 독일 단순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심?

    • @ewnam-ct1jn
      @ewnam-ct1jn 7 місяців тому +1

      많이 있음. 고려만 봐도 광종, 성종, 문종, 예종, 숙종, 공민왕 등... 특히 고려의 왕들 중에 최고의 성군은 문종이죠. 가장 태평성대를 구가했음은 물론이고 40년의 재위기간 동안 이룬 업적들이 조선의 세종 못지 않게 많죠. 교과서에만 봐도 업적이 화려하죠.
      현종이 폭군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추앙받을 성군인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강감찬과 양규 등의 활약으로 거란 침공을 막아낸 일이 현종 대에 있었을 뿐 현종 본인이 주도해서 이룬 업적이 딱히 보이지는 않아요. 초중고 국사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도 별로 없구요. 평범하고 무난한 군주였다고 봅니다.

    • @user-du5tf9ji8x
      @user-du5tf9ji8x 11 днів тому

      ​@@ewnam-ct1jn국난을 극복하고 사직을 지킨 왕 그리고 용인술의 뛰어난 귀재 천하의 거란 성종을 엿먹인 책략가
      3차 거란 침입때 강감찬의 군대를 따돌리고 개경으로 진군하는 소배압의 군대를 백성들과 함께 항전해 개경을 사수하여 전쟁의 기류를 바꿔낸 명군
      후대로 이어지는 3대 군주의 아버지
      170년의 전성기의 시작을 연 중흥주

  • @user-pj6lb9rw7c
    @user-pj6lb9rw7c 8 місяців тому +27

    고려의 중시조격이며 100여년의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군주인데 성군이 아니면 그 누가?

    • @user-tx2kg6bp6i
      @user-tx2kg6bp6i 3 місяці тому

      애초에 그냥 조그마한 반도에 뭐가 그리 성군이고 영웅이라고 참 ㅋ
      그냥 인간중에 일좀잘한거지뭐 ㅋ
      고려 중시조에 100년 전성기 몽골이 와서 개발살내고 이성계가 구테타했는데 뭔 의미가 있다고 ㅋ
      아예 몽골처럼 100년 전세계 지배한게 전성기지 ㅋ 저건 아무것도 아니다

  • @Factriot_Missile_104
    @Factriot_Missile_104 8 місяців тому +49

    억까가 심하네. 후대의 잣대로 하나하나 트집 잡는건 전혀 바람직한 접근법과 해석이 아님. 그 시절에 그러한 정책들이 효과적이었냐만 판단하면 됨. 그렇기 때문에 현종은 누가 뭐래도 성군임

  • @justkukaro4824
    @justkukaro4824 7 місяців тому +11

    그럼 근친혼과 귀족사회를 안만드는 대신 대안이 뭔가요? 그 당시 어느 사회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데...

    • @justkukaro4824
      @justkukaro4824 7 місяців тому +4

      예시 하나라도 들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가 알기론 1700년대 이전까진 전무하거든요

    • @John-xv3yc
      @John-xv3yc 6 місяців тому

      그냥 까고싶은거여 ㅋㅋ

  • @SP-ve1im
    @SP-ve1im 8 місяців тому +50

    너무 깎아내리기 방송이네.. 거란이 고려에 패배해서 100년간 평화가 유지된거는 사실인데. 뭐 금나라 몽골 예기하면서... 몽골은 그어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도 이길수 없는 상대였는데... 그리고 현종이 자식도 많고 이후 문벌시대 예기하는데, 솔직히 세종대왕도 자식 많았고, 그이후 손자가 자기 아들한테 죽었던 역사는 어떻게 설명할것임. 어느 왕이던 그시대 상황에서 이룬 업적으로만 평가하고 넘어가야지 그이후 사건들 전부 책임을 어떻게 질수있나...

    • @user-qu7mg6wd5t
      @user-qu7mg6wd5t 7 місяців тому

      현종이 뭘했죠???ㅎㅎ
      사실 전권을 강감찬한테 넘겼죠..
      즉 한게 없단거죠...
      성축조
      병사 훈련
      작전지휘등...
      현종는 그냥 강감찬이 하자는데로
      한거 뿐임..
      일예로
      현종은 끝까지 강김찬이 직에 남아있기를 바랬죠..
      악착같이 부탁했죠..
      강감찬하고 현종의 사망시기도 비슷합니다.
      현종의 일대기는 강담찬하고 같이 갑니다.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user-qu7mg6wd5t
      그런 고려 8대 현종이죠 키타이와이 3차 전쟁때 직접 갑옷을 입어 적장을 소배압의 군대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야습으로 강하죠
      또한 강감찬이란 유능한 신하를 아끼고 직접 궁궐에서 나와 맞이하고 손수 머리에 여덟게의 은꽃을 수놓죠 궤장을 하사하고 끝까지 중용하죠
      그리고 지방제도의 정비를 하며 고려의 운영체제를 정비하죠
      어디어디의 14대와.16대와는 천지차이죠 ㅎㅎㅎㅎㅎㅎㅎㅎ

  • @user-yp3cl9zb1l
    @user-yp3cl9zb1l 8 місяців тому +65

    조선 시대 왕들도 현종을 성군이라 칭했다는데 좀 황당스럽네요.
    물론 현종의 행보가 다 완벽할 수 없어도 거란으로 부터 나라를 지켜내는데 일조했고 왕권강화에 힘썼고 이후 100여년간의 태평성대를 연 왕인데 너무 박하네요

    • @user-lo2sx1jd3u
      @user-lo2sx1jd3u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매우 동감합니다. 그리고 현종 이후의 황제들이 근친이 아니라 공주에서 피난다닐때 잘해줬던 왕후들에게 낳은 자식들이고 그 중 후에 고려 전성기라 불리는 황금기를 만들었던 고려 문종도 나오는데 그게 현종이 기틀을 마련해서 그런건데 너무 평가가 박하다 생각합니다. ㅠㅠ

    • @user-gn2pt6br7n
      @user-gn2pt6br7n 6 місяців тому +2

      책 한권만 읽은 사람이 더무섭다는 말이 맞네요 ㅋㅋㅋㅋ 현종은 성군이라고 칭송받았던게 팩튼데 지혼자 아니라고하노

  • @jyhong2023
    @jyhong2023 8 місяців тому +23

    유목민족 침입을 막고 동북아세력을 균형있게 유지한 정도면 조선의 세종보다 못하지 않다고 봄ㅋㅋㅋ 그리고 세종도 태종이 왕권확립을 해줬으니 성군 소리 듣는거지... 고려 현종도 마찬가지로 왕권이 확립되어야 자기 뜻을 펼치는데... 말에 모순이 있네요..
    또 조선이 시스템 갖고 고려는 없다는 듯 말하는데... 조선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제대로 시스템적으로 막은 적이 없음...

    • @k-374
      @k-374 8 місяців тому

      세종이 한글을 만들지 못했다면 맞는 말이지만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드셨죠. 그 하나로 모든 왕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대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 @jyhong2023
      @jyhong2023 8 місяців тому +7

      @@k-374 누가 더 우위가 아니라 고려 현종도 조선 세종 못지 않은 왕이라고 했는데요... 근데 시기적으로 고려 현종이 없었으면 조선 세종이 있었다고 하기도 힘들죠...

  • @davidkim439
    @davidkim439 8 місяців тому +40

    군주로서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돌파하고 당대 세계최강의 군대를 물리치고 주권을 지켜낸 군주에게 어찌 편하게 지내는 우리가 가타부타 평을 하겠어요.

  • @llliiilllllliiil3320
    @llliiilllllliiil3320 8 місяців тому +110

    선조도 처음에는 비난받을만한 임금은 아니었다만, 침략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실망스러운 모습 많이 보였죠. 실제 전쟁이란 큰 사건을 경험하면서 망가지는 군주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현종이 큰 전쟁을 두번이나 겪으면서 인재를 적재적소에 두게 한 것만 해도 큰 공이라고 생각합니다.

    • @k-374
      @k-374 8 місяців тому +1

      선조가 도망친건 항전하여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잘한 선택이지만 선조는 조선을 떠나 명나라로 망명하려고 했었죠.

    • @llillllii
      @llillllii 8 місяців тому +6

      문벌이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작 문벌이 없었다면 고려 건국 초기의 국가형태인 봉건 호족 연합이 계속 유지되는 형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한 차원 더 나아간 방법이라고 볼 수가 있음 다만 문벌의 모순이 터졌을때 타개를 한 것이 아니라 그 모순점의 반작용인 무신정변에 그쳤다는게 문제

    • @kdyu178
      @kdyu178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명종 때 나라가 워낙 개판이라서 그러것도 있지만, 실록에 보면 선조 집권 전반기엔 잘해보려구 했던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 @user-nw1be9yj2j
      @user-nw1be9yj2j 8 місяців тому +1

      현종이 무능하다는 게 아니라 애민정신에 입각한 성군이 아니란 소리지 암군이란 소리가 아닌데...

    • @joshua8700
      @joshua8700 7 місяців тому

      ​@@user-nw1be9yj2j 애민하지 않아서 근친혼하고 문벌귀족화 시키게 그냥 두었다는 말인가 ㅋㅋㅋㅋㅋㅋ
      애민을 안했다고 평가하기엔 너무나 실책이 없는데?

  • @zlwon83
    @zlwon83 8 місяців тому +134

    현종을 지금기준으로 평가할께아니라 당시 시대 기준에서 평가하는게 맞다봅니다 거란의 외침을 이겨내고 당시 봉건시대적인 제대로된 국가 시스템도 제대로 안되있는 국가를 중앙집권하 시킨거만해도 훌륭한거죠 현종은 딱 그시대에 할수있는 필요한걸 해낸 성군이라보네요

    • @user-nw1be9yj2j
      @user-nw1be9yj2j 8 місяців тому

      최소한 명군하고 성군을 헷갈리면서 이런 댓글 쓰지는 맙시다.

    • @zlwon83
      @zlwon83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nw1be9yj2j 영상 안보셨나보군요....그런이유로 성군이 아니다 라는 내용이였으면 공감하고 댓글안달았을껍니다.실제로 지금 님의 댓글도 공감되거든요 근데 그런 내용이 아니니 이런 댓글단겁니다

    • @user-qu7mg6wd5t
      @user-qu7mg6wd5t 7 місяців тому

      성군의 의미를 모르시는군요
      성군은 말그대로 애민정책이 우선시 돼야합니다.
      왕족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고
      성군이라뇨...
      그냥 자기들 권력을 공고히 한거뿐입니다.
      또한 이민족친입을 막았다는건데..
      역사에도 있지만
      현종의 후견인은 강감찬이죠.
      강감찬은 모든 권력을 쥐고선 성축조 병시훈련 작전지휘등 모든걸 다합니다.
      당시 강감찬의 군사지휘권은 임진왜란의 이순신을 능가하는 거의 황제급의 군사지휘권을 가지고 있었죠
      맘만 먹으면 강감찬이 국가를 전복할정도의 힘을 가집니다.
      현종이 별로 한게 없단겁니다.
      또한 현종은 강감찬을 끝까지 의지합니다..
      역사에도 많이 있지만
      현종은 즉위후 부터 계속 강감찬이 후견인 역활을 합니다.

  • @user-nq7bs6my5u
    @user-nq7bs6my5u 7 місяців тому +6

    천년이 지난 현시대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순신이고 세종대왕이고 욕 안먹을 사람이 없다.

  • @user-bn1ch8ot7r
    @user-bn1ch8ot7r 8 місяців тому +40

    거란과의 2,3차 전쟁을 귀주대첩의 승리로 끝내고 고려의 평화를 가져온 것으로 현종은 성군으로 평가 받을 수가 있죠.

  • @user-lh4dd2iw1h
    @user-lh4dd2iw1h 8 місяців тому +13

    무한긍정론은 당연히 경계해야겠지만 글쎄요. 트집 잡으려면 안 잡히는 군주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네요.
    세종과 비교하는 건 애초에 어불성설이고 (막말로 세종이 현종이 처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면 잘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반대로 현종이 세종의 입장이었을 때 세종 만큼 해낼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구요)
    불교를 지원하는 건 당연히 과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왕권을 세워 중심점을 세워야 할 때 불교의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시에는 필요한 조치 아니었을까요? 앞에서 얘기하시는 것처럼 불교의 힘이 좀 센게 아니었잖아요? 지방의 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고 정치에서의 힘은 결국 세력이지 않습니까.
    이자겸의 출현은 정조의 안동김씨를 떠오르게 하는데 결국 이건 후대에 벌어진 일이고 무엇으로 봐도 한계 정도로 봐야되지 않나 싶어요. 설명하신 것만으로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네요.
    반대로 지방관을 파견했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업적으로 넘어갈 업적이 아니라, 고려가 그나마 나라다운 나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에서 엄청난 의의가 있는 것으로 봐야되는 것 아닐까요? 중세 정도 왔는데 지방관도 똑바로 파견하지 못하는 나라가 나라겠습니까? 수도에서의 그들만의 리그죠.
    무한긍정론을 깨기 위해서 반대 의견에 방점을 찍는다고 무리수가 있었던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소신발언을 하시려면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좀 더 명확한 근거와 함께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uhappy3996
    @uhappy3996 8 місяців тому +58

    국난을 극복하고 국가 시스템의 토대를 세운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군소리를 들을만 하죠
    외척을 늘리게 된 것도 결국 정치적 균형의 문제인데 현종 이후 몇대에 걸쳐 수십년동안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이 유지되었으니 이 또한 과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조리가 쌓이고 균형이 무너지는건 당연한거죠 그걸 견제하거나 개혁하는데 실패한 후대의 잘못이 큰거고

  • @user-pb8qd5kk2d
    @user-pb8qd5kk2d 8 місяців тому +19

    근데 현종이 성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점은 충분히 명군이라고 생각함..

    • @user-qu7mg6wd5t
      @user-qu7mg6wd5t 7 місяців тому

      큰역활 뭐 했는데요???
      강감찬을 등용한거???
      현종즉위부터 현종의 후견인은 강감찬입니다.
      딱히 누구한데 군사권을 줄사람도 앖었죠..

    • @user-bi5vh2qm8m
      @user-bi5vh2qm8m 6 місяців тому +3

      ​@@user-qu7mg6wd5t의외로 저런 대규모 침략때 군주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냐가 매우 중요해요. 2차때 위험성을 알지만, 차라리 개경에 있는게 나을것만 같은 상황에서 몽진을 떠나며 항전의 의지를 보인것. 전간기 동안 전쟁대비를 충실히하며 강감찬이 활약할 상황을 만든 것.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것 등 말이죠.

    • @user-lv5zf8lk7g
      @user-lv5zf8lk7g 6 місяців тому

      ​@@user-qu7mg6wd5t 선조하고 비교해도 왕이 누구를 믿고 등용하고 헤쳐나가는 지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달라지는 걸 알 텐데 등용하는 게 그렇게 작은 일입니까?

  • @user-zc1pn8ez3p
    @user-zc1pn8ez3p 8 місяців тому +10

    고려는 이랬고 조선은 이랬으니 조선이 우수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됩니다.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고 그 후엔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뿐 입니다. 조선시대 민주주의 했었으면 좋았겠죠? 보고 들은것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하냐고?

    • @user-cq2vw4iw9r
      @user-cq2vw4iw9r 8 місяців тому

      신라의 골품제와 같은 혈통주의 사회에서 고려시대에 와서는 과거제로 어느정도 능력을 보기는 했지만 음서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서 관료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라는 과정속에서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고 이해가 되던데요.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아버지가 과거제로 등용된 양반사회에서 이름을 날렸어도 아들이 과거제를 보지 않으면 지배층인 관료사회에 진입할 수 없었던 점은 진일보했다고 보여지는 것과 일맥상통하고요. 물론 조선도 왕권(=행정부)을 위협할 만한 신권(=입법부)을 견제할만한 방법(=투표로 인한 권력교체)이 왕권밖에 없었다는 게 한계점인 것처럼요.

  • @user-bv2vz2ds5q
    @user-bv2vz2ds5q 8 місяців тому +13

    마치 국가경제 발전하면 무슨 소용이야!
    월급은 안오르는데!
    같은느낌....

  • @bennyspapa9510
    @bennyspapa9510 8 місяців тому +48

    현종을 집안사 가지고 평가 절하하고 성군이 아니었다고 평가하는건 너무나간 평가임
    우리나라 전체 역사에서 중국 대륙을 평정한 중국왕조의 주력부대랑 주력대 주력으로 다이다이 까서 이긴게 딱 세번 뿐임
    그 중에 하나를 이뤄냈는데 저평가라니….
    심지어 그 고구려는 수나라 막아내고 자기도 맛이 가서 같이 골로 가버렸는데 현종은 오히려 이기고나서 고려 전성기까지 이끌었는데 뭔 ㅋㅋㅋ

    • @riversideu
      @riversideu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요는 중국왕조가 아닙니다. 요,금,원의 역사가 중국사면 일본사도 한국사죠

    • @user-lv5zf8lk7g
      @user-lv5zf8lk7g 6 місяців тому +1

      ​@@riversideu 일본사는 한국사이기도 함. 그냥 한일사로 봐야하지만 차이나는 유전적으로 우리랑 다름. 차이나 남부면 모를까 한족하고 다른데.
      그리고 한족의 역사로 인정되는 건 한송명 뿐이잖슴.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2 місяці тому

      @@riversideu 중국의 역사는 한족이든 뭐든 상관없이 누가 중원을 차지하느냐의 과정입니다. 한자 쓰고 중국식 국호 왕호 관직시스템 쓰고 중국어 쓰면 그건 그냥 중국왕조 인겁니다.

  • @ojw5129
    @ojw5129 8 місяців тому +12

    소신발언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그냥 느껴지는 바로는 상당히 기울어진 식견으로 비춰집니다.
    결국 고려는 멸망할 수밖에 없고, 그걸 개선해낸 것은 조선이었다는 건데..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배경과 사회상을 감안한 접근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작가님께선 오로지 현대의 시선에서 당시 시대상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네요.
    그 조선조차도 말기에 가서는 망조가 든 고려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선은 외세에 의해 먹히기까지 했는데..
    오늘 방송은 무슨 논문을 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발상의 전환이라면서 말이죠.

  • @user-vu8um3pu7l
    @user-vu8um3pu7l 8 місяців тому +18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정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하네요. 정조의 한계와 실책은 싹 빼시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 @ssk7216
    @ssk7216 8 місяців тому +79

    심 강사님의 주된 비판의 근거가 왜 중세봉건제에 머물렀냐는 건데요.이게 도대체 뭔 비판인 건지...
    중세인을 보고 민주주의 국가라도 세우라는 건가요.이번에 크게 실언하셨네요.

    • @Epikrous
      @Epikrous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중세봉건제에 머무른다는건 근거중(그것도 과거 신라, 후삼국 체제에서의 답습 즉, 중앙집권화를 통한 중앙관리 파견 등을 하지않고 호족세력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의미같음) 하나로 나오지 영상에서의 맥락은 왕실의 강화에 초점을 주되
      조선의 세종대왕처럼 백성에게 미치는 정책을 세우는 등과같은 노력이 없었다 말 같은데요?
      이해를 잘못 하신듯

    • @Epikrous
      @Epikrous 8 місяців тому

      @@bwslovely ??

    • @ssk7216
      @ssk7216 8 місяців тому +12

      @@Epikrous 구분전 지급하고,향리 통제하고,사형삼심제에,농민 지원,군현제(일부)에 5도양계 정비했는데 뭐가 정책이 없습니까.결국 심 강사님은 중세시대 자체의 한계를 넘지 못한 걸 가지고 까고 있는 겁니다

    • @Epikrous
      @Epikrous 8 місяців тому

      @@ssk7216 그니까 딥하게 봤을때 결국 그런정책들보다 불교진흥에 좀 더 집중하고 조선만큼 중앙관리 파견하지 못했고결국 많은 혼인을통해 왕권자체를 강화하려고 했다는게 지방호족들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그런맥락에서 지방호족세력 중앙 집권화실패를 중세봉건제라는 표현을 쓴거구요
      즉, 후기신라 그리고 후삼국 시대의 시스템과 그결이 다르지않았고 그결과 문벌귀족사회를 초래했다고 하잖아요
      이부분을 영상에서 맥락적으로 심선생님은 비판을 하신다는겁니다 중세라서 잘못된게아니라 호족의 통제실패를 마치 봉건제같다라고 그냥 표현만 하신거라구요

    • @ssk7216
      @ssk7216 8 місяців тому +19

      @@Epikrous 아니 애초에 중세시대이고,호족 중심 사회였던 것을 문벌사회로 재편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의 안정을 가능케 한 건데요..강조가 앉혀놓은 힘없던 멸망 직전의 국왕이, 자기 대에 바로 송ㆍ거란과 맞먹을 수 있는 위상이 있는 국가의 군주로 성장했는데.뭔 중세봉건제 타파 못 했다고 난리인지요

  • @SeoulH_KIM
    @SeoulH_KIM 7 місяців тому +8

    조선 세종 밑에 세조 태어났다고, 세종도 암군이라 하실 분이네.

  • @80infp92
    @80infp92 8 місяців тому +42

    현종의 평가를 그 당시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를 해야지. 현대적 관점에서 평가를 하네…

    • @user-kj8dy2xq6u
      @user-kj8dy2xq6u 8 місяців тому

      저런 논리면 세종도 반민주 독재자임.

    • @worktolive5885
      @worktolive5885 8 місяців тому

      선조도 그당시 역사적 관점에선 성군임 현대적관점에서 노답인거지

    • @user-lv5zf8lk7g
      @user-lv5zf8lk7g 6 місяців тому

      ​@@worktolive5885 그 당시 평가해도 선조는 성군이 아니지. 능력있는 악군이었지. 임진왜란 끝나자마자인지 중이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공신들 죄다 죽이려는 게 선조인데 성군은 아니죠.

  • @user-ny2fw1nn1d
    @user-ny2fw1nn1d 8 місяців тому +8

    현종이 결혼으로 문벌귀족의 기반이 되어서 성군이 아니라고 하면 안동김씨와 사돈을 맺은 정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세도정치의 뿌리를 뿌렸는데 정조는 성군이 아닌가요?

    • @user-cq2vw4iw9r
      @user-cq2vw4iw9r 8 місяців тому +3

      그래서 그것때문에 정조에 대한 평가가 갈리기도 합니다 이건 정조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숙종 때 있었던 환국의 영향도 있다고 보여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조선 숙종때부터 과거제라는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영조와 정조 재위기가 거의 죽어가는 조선사회에 왕의 혼자 힘만으로 심폐소생을 했던 시기로 평가받기도 하죠. 이게 정조 사후 계속 어린 왕들이 즉위하면서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거구요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기막힌 예시네요
      그렇죠 조선 22대 정조 치세에 최악의 단점중 하나죠

  • @fontas4781
    @fontas4781 8 місяців тому +39

    당시 시대에 부합한 체계로 가고 그것이 한계점에 다달았을때 또 변화가 있는게 아닐까요? 역사학자라면 지금의 관점에서 판단하는것이 아닌 당시 시대의 관점에서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 @user-yf2pl8bq3q
      @user-yf2pl8bq3q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제가 하고 싶은말 다 하셨네요 ㅎㅎ 역사는 당시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죠 왕권강화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니.......

  • @skj4409
    @skj4409 8 місяців тому +35

    현종은 거란으로부터 두차례대규모 외침에다 무신정변까지 일어났음에도 왕권을 지킨 현명하고 담대한 군주임

    • @user-th3lq3md6j
      @user-th3lq3md6j 7 місяців тому

      무신들 땅을 문신에게 넘기는데 당연한거 아님?성군은 아니지.

    • @user-qu7mg6wd5t
      @user-qu7mg6wd5t 7 місяців тому

      하나 물어봅시다..
      왕권을 지킨게 햔명하고 대담한 군주인가요???
      외침도 현종이 한게 없습니다.
      2차는 도망만 다니고
      3차는 강감찬이 전군통솔권과 이북삼군모두를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전쟁에 임합니다.
      바보같은 정책으로 무신정변도 있었고요
      맘만먹으면 강감찬이 국가전복해도 이상할게 없을 껍니다.

    • @user-gn2pt6br7n
      @user-gn2pt6br7n 6 місяців тому +1

      ​@@user-qu7mg6wd5t2차때 도망안갔으면 개경성 먹혔을때 살해당하고 고려는 망했을텐데요??

    • @user-lv5zf8lk7g
      @user-lv5zf8lk7g 6 місяців тому

      ​@@user-qu7mg6wd5t 왕이 누굴 선택하는 지도 일인데 그걸 모르고 폄하하는 것도 어이없지만 도망만치고 아무것도 안하는 현종으로 말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네.
      그리고 왕권을 잡아야 중앙집권이 안정이 되요. 왕권 못잡으면 신하들끼리 싸우게 되고 자기들 권력잡기 놀음에 빠지는 거 십상시, 동탁과 여포, 고려의 무인시대, 조선의 김종서, 안동 김씨들 보고도 모릅니까? 왕권 안잡으면 나라가 편안하는 줄 아셨어요?
      지난 역사 돌아보면 신하가 권력을 잡을 때보다 왕이 권력을 잡을 때 더 안정감이 있는 거 봤을 텐데 그래도 모르겠어요?
      저런~

  • @user-fb4lk5nf4b
    @user-fb4lk5nf4b 7 місяців тому +7

    저 시대에 성군이 있을 수 있나? 거란에 맞서 고려를 지켜낸 것 만으로 성군이라고 봐야죠. 조선시대 선조에 비해 보세요.
    현 시대를 살면서 평가를 하니까 그런 것이죠. 솔직히 이 유튜브 보면서 전문가 축에도 못끼는 사람들이 "소신발언"이라면서 평가하는데...
    정말 전문 역사학자 들은 당신같이 왕들을 쉽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조선시대 이전) 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 @user-ev5yf2xr6f
    @user-ev5yf2xr6f 7 місяців тому +6

    망할뻔한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그 공 하나만으로 웬만한건 덮는다.

  • @ekgns019
    @ekgns019 8 місяців тому +15

    왜 현재시점 가치관에서 과거를 바라봐야하는거죵..?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있다고 생각해요

    • @c.c3444
      @c.c3444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반대로 과거의 일을 현대인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건 매우 위험한 생각임

    • @user-md6bd3bk3i
      @user-md6bd3bk3i 7 місяців тому +1

      @@c.c3444 반대가 아니고 같은말인거 같은데요;;

  • @user-lo2sx1jd3u
    @user-lo2sx1jd3u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현종은 지금의 잣대가 아니라 그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성군 아닌가?
    고려태조왕건 그리고 혜종과 함께 불천위로 된 황제가 현종이고 황권이 강해진게 백성과 뭔? 상관이냐고 하는데 왕조 국가에서 황권이나 왕권이 강한게 신권이 강할때보다 태평성대 입니다. 이번편은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거란의 침입을 믹고 현종 이후는 어째듯 근친한 왕후가 아니라 김씨 왕비에게서 낳은 황제들이 뒤를 이었고 그 중 고려 문종때는 고려의 전성기라 불리는 문화 황금기를 맞이 하는데 너무 평가가 박합니다.

  • @user-bs3cq8tk7p
    @user-bs3cq8tk7p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기나긴 시간을 지나서 조선과 고려를 비교하면 문제가 많아보이겠지만 삼국이 통일되고 분열되고 다시 통일되는 혼란기를 거쳐 아직 지방제도도 확립이 안된상태에서 쿠테타에 전쟁까지 더더욱이 조선처럼 중앙집권제의 국가도 아니고 오히려 삼국시대의 봉건국가에 가까운 국가이기에 현종이 했던것들은 그시대에는 최선이였던거같은디요

  • @Minch_57
    @Minch_57 8 місяців тому +49

    강사님은 역사를 잘 설명해주는 스토리텔러로써 되게 좋아합니다, 근데 이번편은 현종의 안좋은 점을 무리하게 부각한 느낌...?

  • @mir_choi07
    @mir_choi07 8 місяців тому +60

    선생님 영상 즐겨봤고, 선생님보다 배움은 짧지만 역사 공부를 좋아하는 국민으로서 댓글 남깁니다. 역사는 팩트만 전달해주시면 되는데 언제부턴가 선생님 생각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가는거 같네요.
    채널 구독자로서 한 마디 드립니다.
    나중엔 모 역사 강사처럼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며 정치색도 드러내고, 자신의 견해는 옳다고 고집하시는 분이 될까봐 걱정됩니다. 구독자들이 원래 기억하던 선생님으로 돌아와주세요~

    • @ignisilluminati
      @ignisilluminati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공감.. 점점 색채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움. 뭐 한 개인으로서는 그게 성공하는 길일수도 있겠지만서도..

    • @kj3244
      @kj3244 8 місяців тому +13

      황모씨 닮아가나….

    • @user-ut3tz5mh1d
      @user-ut3tz5mh1d 8 місяців тому +5

      역사 사실 그대로의 사실주의 역사가들도 있지만 저는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도 있어야 역사학자라고 봅니다 다만 잘못된 해석이나 주장은 비판 받아야 합니다.

    • @user-ie3ye5qi4p
      @user-ie3ye5qi4p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배움이 짧을땐 다 그럴듯해 보이는데 조심이 알고 나면 역사를 팩트로 전달안하고 본인생각을 이야기 하는 인간들 많이 있죠. 설민석이 공중파 처음 나왔을때 와 저렇게 이야기해도 되나? 이런 생각들더군요. 지금도 그런 역사강사들 꽤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은 무시하고 그장면만 딱 편집해서 본인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인간들

    • @mir_choi07
      @mir_choi07 8 місяців тому +1

      ​​@@user-ut3tz5mh1d 동감합니다. 다만 역사학자 및 선생님, 강사들이 팩트를 학생 및 국민들에게 가르쳐주고 학생 및 국민들이 스스로 가치관과 역사관을 생각하고 정립할수 있게 도와주는 선에서 선생님 및 강사들의 역할은 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주입하듯이, 강사의 사견이 더 들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모 정치인을 성웅 이순신 장군님에 비유한 어떤 역사 강사처럼요.

  • @Lettaro
    @Lettaro 8 місяців тому +14

    글쎄.... 이번 현종에 대한 평가는 좀 아쉽네요.
    너무 결과론적인 느낌이 강해요.
    당시 현종은 강조에 의해 앉혀진왕이 었으니 특히 고려상황에서는 더더욱 왕권이나 목숨을 위협받는일도 많았을테고.
    자신의 지지세력을 공고히 하는건 당연해보이네요.
    또 어쨌든 거란의 침입을 잘 수습한 왕이게도하구요.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8 місяців тому +59

    대부분 사가의 평이나 현대 관점에서도 성군의 기준에 부합한것 같습니다.
    문벌귀족의 성장과 모순은 결과론적 얘기로 당시 시대적 한계에선 최선책이었고
    그리고 조선도 후기에 양반이 중앙관직을 소수가문이 독점하게 된 걸 보면...
    현종에 대한 비판과 한계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당~ 재밌게 잘 봤습니다.

    • @epsdm
      @epsdm 8 місяців тому +16

      조선 세종에 견주지 못 한다는 거지 현종이 성군이 아니라고 한다면 성군의 기준이 너무 엄격해지는 게 아닌지? 싶음

    • @k-374
      @k-374 8 місяців тому

      ​@@epsdm 세종은 한글을 만들었다는 업적이 다른 모든 업적을 능가할만큼 뛰어나기에 세종은 논외로 하고 다른 임금들과 비교해 봐도 현종은 성종 문종과 함깨 고려 3대왕 한국사 5대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성군이죠.

    • @user-zs4ur8fc1e
      @user-zs4ur8fc1e 8 місяців тому +3

      현종은 성군이 아니라도 충분히 명군으로 불릴 만합니다. 조선 선조나 인조를 명군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판에, 현종이 그 둘한테 전혀 꿀릴 게 없죠.

    • @user-ob2mr6sh8b
      @user-ob2mr6sh8b 8 місяців тому +7

      @@k-374세종은 한글뺀 다른 업적도 그냥 역대급이에요. 오히려 그것때문에 가려지는 면이 있음

    • @user-nw1be9yj2j
      @user-nw1be9yj2j 8 місяців тому +1

      다들 너무 성군이란 것을 유능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아는 이미지의 성군이 아니란 거지 무능하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애초에 영상을 보면 우리가 생각한 이미지의 성군이 왜 아닌지를 말하고 있지 현종의 무능함을 말하는 게 아닌데.
      이런 부분을 얘기하면서 비판적인 부분이 너무 강조된게 아쉽긴 한데 영상 길이도 짧으니 어쩔 수 없죠.

  • @user-gc6of8vx3i
    @user-gc6of8vx3i 8 місяців тому +28

    평소에 영상 자주 보는데 오늘 얘기는 정말 공감 안 가서 웃음이 나오네요 허허
    오히려 조선을 변호하려고 고려까는 수준으로 밖에 안 보일 정도네요

  • @user-vu8um3pu7l
    @user-vu8um3pu7l 8 місяців тому +7

    아니 신라와 고려를 비교해야지, 고려와 조선을 비교하는 건 조선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것과 다른 게 없죠.
    그 당시의 시대적 과제인 중앙과 지방 통합을 이끌어낸 것만 봐도 고평가할 수 있습니다.

  • @user-ie7mh5jl5e
    @user-ie7mh5jl5e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그리고 공주 지역의 호족이랑 결혼한 이유는 피난길에 현종을 도와서 피난이 끝나고 나중에 결혼한걸로 기억하는데

  • @user-et6zr4jj7q
    @user-et6zr4jj7q 8 місяців тому +30

    고려가 조선에 비해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로는
    1. 500여년의 조선 역사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대규모 병력 운용 - 고려는 중세적 유산을 지녔기에 가능했고 조선은 사병을 혁파했기에 불가능했다라고만 이야기하기엔, 조선이 애초에 중앙군을 잘 조직해서 고려 때처럼 괜찮은 양질의 병력을 운용했으면 이렇게까지 억까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조선은 왕조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조일전쟁 당시에도 의병들까지 박박 긁어모아서 10만여명 동원한 게 최고네요. 그것도 한 곳에 집결시킨 뒤 움직인 게 아니고 개별적으로 각 의병장들 역량에 따라 따로따로.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진짜건 아니건 이런 주장이 나왔다는 건... 실제 운용했던 중앙군, 향토병 숫자를 다 합쳐도 10만명이 안됐다는 이야기겠죠...?
    2. 적어도 당대 국제 사회 질서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 본 경험이 있는지 여부 - 고려가 몽골에 머리를 조아리고 심각한 내정간섭에 시달렸을지언정 조선이 고려보다 잘났다곤 이야기 못하죠. 조선은 개국부터 중국에 대한 찐 사대주의로 시작했고, 실제 국력은 주변 나라들에 비해 정말 강했던 것도 아니면서 나라 안에서만 2인자 행세하고 거기에 만족하며 살았던 것에 비해, 고려는 적어도 여요 전쟁 끝나고 여진이 제대로 발흥하기 전까지 비록 1인자는 아닐지라도 자타공인 1인자 나라에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하는 숨은 고수 같은 대접은 받고 살았습니다. 주변 세력들 역시 고려 국력의 수준을 인정했을 뿐더러 그 기간이 잠깐 반짝도 아니고 100년을 지속했고요. 우리나라도 지금 독립 후 정부 수립한지가 채 100년이 안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고려로 치면 아직도 전성기라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100년도 안됐는데 지금 국가 소멸, 국력 쇠퇴를 이야기하고 있고요.
    3. 현종이 문벌 귀족 발흥의 단초를 제공 - 2차 여요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르면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면서 간신히 피신했는데, 당연히 끝까지 자신을 버리지 않고 제대로 대우해줬던 사람을 위해 논공행상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엄청난 명문가도 아닌 무려 향리 따위가 자신이 왕 해보겠다고 피난길에 마주친 왕을 상대로 반란군까지 일으켰다는데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조선의 선조는 명나라로 건너가 살겠다고 역정을 내는 와중에도 자신을 제대로 보필하지 않은 신하들 대상으로 전쟁 끝나고 화풀이 했던 것과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공신 집안도 시대가 흐르면 당연히 부패합니다. 그런데 그 부패는 부패한 사람들의 문제지, 왕이나 리더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우리나라도 독립유공자 집안 출신이면서 국회의원 뱃지 달고 갑질하다 혼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선 역시 이순신 장군 집안과 권율 장군 집안이 합쳤더니 나라를 팔아먹은 엄청난 매국노가 등장하기도 했고요.
    4. 제도 정비 -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롱런했던 나라들의 필수 요건 중 하나는 제대로 된 국가 제도의 정비 입니다. 시스템을 합리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려 현종은 그 어려운 일을 제위 내내 평화로웠던 시기도 아닌 전쟁 준비하는 와중에 해냈습니다.

    • @kaiserthum
      @kaiserthum 8 місяців тому

      2는 지나토의 분열기가 한몫한거죠. 조선 때에도, 명이 완전히 지나토를 통일하지 않았을 때에는 요동정벌 같은 것도 추진했습니다만.. 중화에 대해 찐 사대를 했던 기간은 왜란 끝나고 명한테 좀 한거고, 청한테는 200년간 사대주의를 강제당했던 거고요. 심지어 조선후기에도 청사신이 기록한 보고서를 보면, 뿌리깊은 청멸시 풍조가 있다고 기록했을 정도였고..
      그리고 명에 조선이 비교적 높은 대우를 받았던 것도, 조선의 국력을 경계했기 때문이고요.
      고려는 거의 존속 기간 내내, 지나토가 분열되어있었다는 메리트도 간과할 수는 없죠.

    • @user-et6zr4jj7q
      @user-et6zr4jj7q 8 місяців тому

      @@ctngel1990 임진왜란, 항왜원조 전쟁, 분로쿠의 역 같은 명칭보단 훨씬 객관적인 명칭이라 생각합니다.

    • @user-et6zr4jj7q
      @user-et6zr4jj7q 8 місяців тому

      @@ctngel1990 네, 그래서 조일전쟁 명칭을 썼습니다. 제가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이었다면 분로쿠의 역을 썼겠지요.

  • @stellalumina_poem
    @stellalumina_poem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어그로 끌어서 조회수 늘리려는 것으로 보여서 안타깝다. 개인의 의견이라기엔 영향력있는 사람이니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구나 라고 PD가 잘 생각해봤음 좋겠음.

  • @monicajeong5565
    @monicajeong5565 8 місяців тому +52

    왕권이 강해지는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구요?
    왕조국가에서는 왕권이 강하고 안정이 돼야 왕이 뭐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 @user-vu8um3pu7l
      @user-vu8um3pu7l 8 місяців тому +9

      그저 왕권이 강해지는 것을 넘어서 중앙집권화를 통해 고려의 분열을 반영구적으로 막은 군주인데...고려사에서 태조와 함께 가장 빛나는 임금이죠

    • @user-yt8dj2xe5x
      @user-yt8dj2xe5x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이말은 좀 실망스럽긴함 안그래도 고려 중앙집권체제 하기가 힘든나라 였는데 ㅎㅎ

  • @user-go9eb1om5g
    @user-go9eb1om5g 8 місяців тому +30

    출발은 전두환 밑에서 대통령을 잠시 하게 된 최규하 신세였지만
    어쨌거나 자기를 옹립한 강조가 죽었어도 여전히 빈약한 왕권으로
    거란족의 침입과 지방 호족들에게도 시달리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지만
    서서히 내공을 쌓아 나가 대단한 국가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했으니
    현종은 고려조 명군 중 한 명으로 손색이 없네요

    • @k-374
      @k-374 8 місяців тому +3

      성종 현종 문종 3명의 임금이 고려 3대 대왕이죠.

    • @user-fc6kz3cq8g
      @user-fc6kz3cq8g 8 місяців тому

      @@k-374광종도 포함 시키죠 😂

  • @user-lx9pm6km2s
    @user-lx9pm6km2s 8 місяців тому +16

    그 시대적 관점에서는 정말 훌륭한 왕 아닌가? 지금 관점으로 세종을 평가하면 세종도 성군은 아니죠!

  • @user-vu8um3pu7l
    @user-vu8um3pu7l 8 місяців тому +9

    참...현종, 그리고 고려 자체에 대한 한계를 짧은 영상에 설명하려고 하시다보니 좀 오해의 소지가 많은 영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만 조선의 안정성과 체계적 통치를 비교대상으로 하고 고려의 문벌귀족적 통치를 비판하시는 거에 대해서 좀 반감을 느낍니다.
    지배층의 세습을 넘어 지배층의 존재 자체에 염증을 느끼셔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말씀하신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시대적 맥락 상 폐쇄적이었던 신라의 골품제를 뛰어넘어서 지방의 호족을 중앙의 조정과 연계된 문벌귀족을 엮어낸 것은 오히려 국가의 붕괴를 막고 안정적인 통치를 이끌어낸 진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애당초 현종이 거란 침략과 갑작스런 옹립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요.
    한계가 있지만 고평가하기에 충분한 군주라고 끝맺음하시는 게 어땠을까 싶네요.

    • @user-cq2vw4iw9r
      @user-cq2vw4iw9r 8 місяців тому

      아무래도 고려가 과거제가 도입되고 귀족사회에서 관료사회로 진입하기까지의 과도기를 겪는 와중에 단맛 쓴맛을 겪은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신라의 골품제보다는 개방적이고 음서보다는 과거제로 구성된 조선의 양반지배체제에 비해서는 다소 폐쇄적인게 맞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 영향으로 한 국가로 부국강병은 이루어내기는 했지만 무신정변이나 원간섭기의 권문세족의 영향 아래에서 정치구조적인 문제가 끊이지 않을걸 보면요. 이걸 현종의 문제로만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고려 전체적인 원인을 가지고 현종이 성군이 아니다라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것도 사실인것 같고 전체적인 구조 문제에 대해 현종이 아예 책임이 없지 않다는것도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고로 이 영상에서 현종에 대한 평가는 공과 과가 있긴 하지만 전쟁에 잘 대처한 명군정도로 말할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는 영상 속에서도 부정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요

  • @mrhou88
    @mrhou88 8 місяців тому +15

    사실 그런 관점으로 따지면 노비종모법 시비가 있던 세종도 성군이 아닐겁니다. 역사적 관점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 @louiskane2495
    @louiskane2495 8 місяців тому +6

    왕실이 강화되었다는 건 마침내 중앙징궙체제가 강화되었고 이를 통해 중앙의 힘으로 지방호족들 억제가 가능해 지방체제를 정비하였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요?

    • @user-lv5zf8lk7g
      @user-lv5zf8lk7g 6 місяців тому

      그렇기 때문에 백성의 삶이 달라지고 변화된 것일 텐데 왕권강화와 백성의 삶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에 그냥 할말을 잃음.

  • @user-vk9pq5ue1i
    @user-vk9pq5ue1i 8 місяців тому +23

    심용환형 존경합니다
    그러지만 모든 사회를 현재에 맞추어 보면 안되지요
    문벌, 귀족 근친혼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회틀과 관념이 강하게 잡혀있을땐데.. 그걸 잘못되었다고 합니까..ㅜㅜ

  • @user-bi5vh2qm8m
    @user-bi5vh2qm8m 6 місяців тому +4

    이번꺼는 억까가 많이 심한거 같은데요... 저런 기준으로 들이대면 세상에 현군이라 불릴 왕이 있을까요??

  • @seberus3790
    @seberus3790 8 місяців тому +12

    공감하기 어렵네요.
    고려사, 아니 한국사에서 현종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임금이 과연 몇이나 더 될까요?

  • @user-hl2ns7qx2r
    @user-hl2ns7qx2r 7 місяців тому +7

    너무 억지스럽네요.
    21세기에 어느 나라에서 근친혼과 문벌귀족제도를 만든다면 그건 비판해야겠지요.
    근데 고려시대잖아요. 중세시대에 근친혼을 했다고, 문벌귀족제도를 공고히 했다고 21세기의 관점에서 비판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
    그렇게 생각하면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모든 왕정은 다 비판해야겠죠.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이제현이
    말하길 군주는 태평세세에도 대비를 할줄 알아야 한다, 여러 이유로 보건데 고려 8대 현종에게 흠을 찾아 볼수가 없다
    라고 칭송받는 군주가 고려 8대 현종이죠
    불교를 지원하되 불교의 사치를 계속 비판하기도 하죠
    또한 국가적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접 갑옷을 걸쳐 맞서 싸우죠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칭찬받는 부분이죠 어디 14대나 16대와는 비교되죠
    고려의 군주들의 리더쉽이나 정치체제및 제도와 특성, 특히 영상에서 언급된 후삼국을 거쳐 형성된 강한 군사력은 분명한 고려의 장점이죠

  • @ttl8746
    @ttl8746 8 місяців тому +9

    생각 개짧네 100년의 평화기가 마치 알아서 찾아왔다는듯이 말하는데 현종이 몽진 안하고 저항못하고 망했으면 요나라가 병력국력이 보존된채로 있었으면 그래도 평화기 였을까??? 그리고 백성들의 삶보다 왕권강화를 위해노력한걸 무시하는데 그럼 고려시대에 시민들을 위해서 뭘한다치면 강한 왕권없이 그걸 어케합니까???

    • @ttl8746
      @ttl8746 8 місяців тому +5

      유수의 학자들이 이견없이 현종을 성군으로 뽑는데 뜬금없이 반대하길래 근거가 뭔가하고 궁금해서 봤더니 얄팍하네요 4편에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써줫으면 합니다

  • @user-wh2pn8zu6u
    @user-wh2pn8zu6u 8 місяців тому +6

    나라 구하는데 개고생 했잖아. .... 근친혼은 동서양 모두 나타난 현상 이잖아. 클레오파트라 남편도 남동생이었고(왕족 피 보존) ... 암튼. 졸라 현종이 졸라 고생해서 나라 보존했어

  • @user-up9dc7hm1m
    @user-up9dc7hm1m 7 місяців тому +14

    객관적으로 보면 현종은 성군이 맞다. 18살에 황제에 올랐는데 강조가 목종을 죽여서 실권이 없었음. 그런데 그 구실로 거란이 침공해서 전쟁을 겪었는데 몽진 중 호족들에게 치욕을 겪었어도 3족을 멸하지 않고 봐주고 고려의 전성기를 시작한 왕이며, 백성을 생각한 왕이고, 거란의 재침을 막은 왕인데 성군이 아니면 누가 성군임?
    전쟁을 못 겪어서 그런건가? 전쟁에서는 군주의 가장 큰 덕목이 외적을 막아 백성들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것임.

  • @k-374
    @k-374 8 місяців тому +3

    그당시 불교는 지금의 민주주의 같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이었고 문벌귀족이 지금의 법조인 의사 이런 것일 텐데 지금 우리도 사시없에고 로스쿨을 만들고 의대정원을 늘리는 등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죠. 지금의 우리도 어찌하지 못하는 문제를 그당시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hosky8962
    @hosky8962 8 місяців тому +20

    이런식으로 따지면 조선 세종도 정조도 성군이라 할수없지 뭐 이렇게 편협해?

    • @user-ls4yj5hm5l
      @user-ls4yj5hm5l 3 місяці тому

      가끔씩 조선을 일방적으로 빨아 재끼고 고려를 일방적으로 까는 것들은 알고보면....
      조선 양반 집안 직계 후손인 경우가 많아요....
      일종의 기득권 지키기죠

    • @hehehehet
      @hehehehet Місяць тому

      조선 양반은 하늘에서 떨어졌냐?? 멍청한 소리

    • @hehehehet
      @hehehehet Місяць тому

      ​@@user-ls4yj5hm5l
      조선시대 양반은 하늘에서 떨어졌냐??멍청한 소리

  • @user-pf3fp7hi3g
    @user-pf3fp7hi3g 7 місяців тому +2

    그럼 이제현의 평전에서 현종을 '어떠한 흠도 잡을 수 없다' 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뭐고 왜 거짓말을 기록했을까요?

  • @user-vc8su3wo9t
    @user-vc8su3wo9t 8 місяців тому +5

    대략 1000년전에는 고려만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고 대다수 왕조가 체계화가 되지 않은것으로 보임

  • @khbmedia
    @khbmedia 8 місяців тому +19

    성군은 아닐수있어도 구국의 영웅은 맞을 겁니다.
    성군과 구국의 영웅은 엄연히 다를 수 있죠.
    개인적인 고난을 다 이겨내고 나아가 그 전란을 수습하는 데에 1등공신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인류역사에 전쟁중에 왕이 제역할을 못해서 망한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
    저 전란에 현종 이라는 왕이 중심을 잡지않고 있었다면 지금 여기가 조선족 자치구 였을지도 모릅니다.

    • @user-zs4ur8fc1e
      @user-zs4ur8fc1e 8 місяців тому +2

      ㅇㅇ 적어도 명군이라고 봐야 할 듯

    • @bbangbbang8
      @bbangbbang8 8 місяців тому +5

      성군맞습니다 뭔 아닐수도 있어도임? 압도적인 무력차이인데도 오직 전쟁에 지면 백성들이 학대당하고 노예화될수있는 끔찍한 상황이 당하기싫어서 백성을 위해 끝까지 싸운 왕인데 성군이란건 세종처럼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성군이 되는게 아님 그런기준이면 전세계적으로 성군이 될수있는 왕 거희없음

  • @user-yb5bm3ro6g
    @user-yb5bm3ro6g 8 місяців тому +8

    현종 때에 비로소 지방정치체제가 구축되었죠. 그 계기는 물론 현종의 나주 피난 동안 개고생... 그리고 위기 상황을 잘 넘긴 것과 이후 천리장성 및 개경 나성 축조 시공까지..

  • @user-xj6ry1py8j
    @user-xj6ry1py8j 8 місяців тому +4

    100만 거란군을 막어내며 전국적 통지 체계확립에 기틀을 마련했다. 자체가 위대한 업적.
    비교가 적절할진 몰라도.. 조선의 금난전권이 애초 폐단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때는 최선이었으니 한것처럼.
    국가 존망의 위기에는 그것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해야만 하는게 있음. 약소국이 위기라면 최악이나 차악이냐에 선택지만 남듯...

  • @user-hf5wh3ll6w
    @user-hf5wh3ll6w 8 місяців тому +10

    우리역사 3대 대왕중에 한명을 고려시대 현종이라고들 합니다.
    성군이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 @user-fh1ot8jg7z
      @user-fh1ot8jg7z 8 місяців тому

      누가 그러디?

    • @user-go5zi6hn1c
      @user-go5zi6hn1c 8 місяців тому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영조대왕 이렇게 3명인데요???

    • @ignisilluminati
      @ignisilluminati 8 місяців тому

      ​@@user-go5zi6hn1c영조따위가 어딜 끼나..ㅋㅋㅋ

    • @user-go5zi6hn1c
      @user-go5zi6hn1c 8 місяців тому

      @@ignisilluminati 저 3명이 대왕으로 불리웁니다.. 영조는 재위기간이 길어서 대왕으로 불리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 @song-mail4633
    @song-mail4633 8 місяців тому +6

    현종대에 거란의 대규모 침공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광종대의 노비안검법이 주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광군 30만명이 호족의 사병도 포함이 되겠지만 결국 자기땅 지키러 나온 그 시대의 중산층들이 무기를 들어서 모였다고 생각해요.

    • @k-374
      @k-374 8 місяців тому

      고려 성종이 다시 환천시켰죠.

    • @hairdoctors
      @hairdoctors 8 місяців тому

      광군은 정종때 만든 것으로 노비안검법(광종) 이전입니다.
      지방호족 휘하의
      농민(중간계층)위주의 예비군이라고 보면 됩니다

  • @alexcho1106
    @alexcho1106 7 місяців тому +6

    이런식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말해버리면 모든 역사의 상황을 다 부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user-vu8um3pu7l
    @user-vu8um3pu7l 8 місяців тому +22

    선생님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좀 납득이 어려운 질문이 생길 때 이러한 질문을 학생들 다루듯이 추가적인 영상으로 보충설명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활동해주세요

  • @user-yb2kz4jn3f
    @user-yb2kz4jn3f 8 місяців тому +8

    조선 고려시대 역대 왕들 생각하면 충분히 성군이라고 평가할만 한거같은데

  • @jay-g9987
    @jay-g9987 7 місяців тому +1

    현종은 고려의 중시조입니다. 꺼져가는 왕족들의 불꽃 본인이 다시 살려냈죠. 본인 자식3명, 손자3명이 모두 왕이었고 현종이후 왕들이 사실상 현종의 후손들입니다.

  • @user-oe8ok1lv5s
    @user-oe8ok1lv5s 7 місяців тому +2

    그 시대에 맞게 역사를 해석해야지
    그 당시에 그 시각으로 비판을해야지
    결과론적인 비판을 하려면 누구든
    다 비판당해야함

  • @user-cq2vw4iw9r
    @user-cq2vw4iw9r 8 місяців тому +6

    음... 이 영상의 논조로 볼때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고려의 불교가 천추태후의 정치적 압력에서 현종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정치세력인 것일 부각시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지적과
    강조의 정변을 통해 불안한 정국 속에서도 거란 침략에 대한 대처를 한 점과 왕실을 번영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현종을 명군으로 인정할 수는 있으나 종친을 견제해 왕권을 안정화하고 왕실을 번영시키는 과정 속에서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은 또 다른 세력인 문벌귀족이 다른 권력의 견제 없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든 부분은 비판할 점이 있다는 걸로 이해를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 뒤로 왕권의 안정화로 뒤를 이은 덕종,정종,문종이 안정적인 정국을 운영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안한 정국과 전쟁이란 혼란기를 겪으면서 무인들에 대한 과도한 의심으로 인한 적절지 못한 보상과 문인들에게만 치우친 처우와 같은 배경과 함께 다른 권력의 견제 없이 왕실의 인척이란 세력을 힘입어 문벌귀족의 입김이 폐해가 돌아오기도 한 건 맞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ex)김훈과 최질의난, 강조의 정변, 이자겸의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무신정변, 권문세족 등등
    물론 현종만이 아니라 고려의 고질적인 문제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인 태조 왕건이 근친혼으로 호족들의 힘을 억제하지 못해서 왕권이 안정되지 못했음을 간과하고 문벌귀족가문간의 족외혼을 근친혼으로 발전시켜서 외척의 발호로 인한 왕권 약화를 불러일으키게 된 배경을 만든 사람이 현종이란 사실은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 싶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종을 강력한 왕권을 통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불안한 국제정세를 잘 파악했던 명군은 맞지만 이러한 장점을 이어받으면서 조금 더 균형있는 견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공공성을 확립하고 민생을 살피는 성군의 역할을 했던 건 그 뒤를 이은 세 아들들이나 여진전쟁에 대비하면서 군사력을 키워냈던 숙종과 예종이 그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 @k.78holy75
    @k.78holy75 7 місяців тому +2

    댓글들 클라스가 넘사벽 ㅎㄷㄷㄷ하네요 댓글만 봐도 국뽕이 차오른다 ㅎㅎ 고려시대 뚫렸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없을듯요 현종 양규 강감찬 다 멋져부러~~~

  • @user-cs9ju9hq5o
    @user-cs9ju9hq5o 8 місяців тому +2

    당시 서쪽에 서하라는 나라가 건국되서 거란 입장에선 송 서하 고려 적에게 둘러쌓임...거기다 여진까지 심상치않고... 고려를 다시넘볼 처지가 안됨

  • @user-mj3rm1io9r
    @user-mj3rm1io9r 8 місяців тому +14

    왕조국가에서 왕실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안정이 되고, 백성의 삶이 안정되는 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조선 태종, 세종, 정조가 대표적이고

  • @kariiko1782
    @kariiko1782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근데 현종대 문벌귀족이 완성되었다 보기엔 이미 성종대 부터 형성되었기에 좀 어폐가 있을것 같아요

  • @jaeilhwang9620
    @jaeilhwang9620 8 місяців тому +4

    고려가 거란을 패퇴시켜서 그뒤 정복군주가 못 나온거 아닐까요? 제가 일기로는 거란족은 한족문화에 적극 동화되어서 유목보다 정착으로 변해서인것 같기도 하구요 농경정착 하면 굳이 약탈경제를 유지할 필요도 없을테니

  • @mr.j4826
    @mr.j4826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기존에 현종에 대해 알게 된 게 토전사에서 고려 거란 전쟁 언급할때 현종에 언급한 부분 때문이었는데 거기서 2차 침입에 나주까지 피신갈 동안 지방관리가 공격, 산적이 공격, 지키던 호위군사도 반란 그 과정에서 공주절도사 한명만 왕으로 대접해주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딸들을 왕비로 삼았다고 하던데... 틀린 건가요?😅

  • @mypq12
    @mypq12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외치는 괜찮게 했는데 내치는 평범했다는데는 동의합니다. 김은부 딸들과의 정략결혼은 당시 관점에서 보면 나름 신세력 육성을 위한거라고 볼수는 있겠는데 정작 메커니즘이 고려초 왕건이 혼인동맹 맺던 수준에서 바뀌질 않어서 대상이 소수의 문벌귀족으로 좀 늘어난것 빼곤 폐단이 그대로였다는게 특히 문제였던것 같습니다...종합적으로 보자면 나쁘지 않은 군주였고 고려기준으론 나름 명군축에 들지만 세종과 비교할정도인지는 저도 잘...

  • @user-vw2mu1sn6d
    @user-vw2mu1sn6d 7 місяців тому +1

    섬길명분이 있으면 한없이 섬길것이고
    내릴 명분이 있으면 한없이 내릴것이니
    나무의 가지도 여럿이고 흐르는 바람과
    날리는 물결도 여럿 인데
    진리가 무엇이며 질서가 무엇이니라
    돌은 돌인 것을 모르고 나무는 흔들리는 것을 모르고 바람은 무엇을 흔드는지 모른다

  • @baseboy5152
    @baseboy5152 8 місяців тому +11

    항상 역사를 여러관점에서 재조명해주는 심작가님.
    좋은 영상 잘 보고있습니다.😊😊

  • @carlosj8637
    @carlosj8637 8 місяців тому +19

    ㅋㅋㅋ 왕권이 거의 최악인 상황에서 문어발식 혼인이 어쩔수 없었을듯. 이로인한 외척 발호는 태조 왕건도 자유롭진 못할겁니다. ㅎ

  • @spring-spring
    @spring-spring 8 місяців тому +4

    제5비 신성왕후 김씨로 나온거..인물사진이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대목왕후(황보여원)역인 이하늬씨 아닌가요..? 좀더 신경써주셨음 하네여😅

  • @acadclinton
    @acadclinton 8 місяців тому +2

    애초에 고려시대에 왕 개인의 업적을 평가한단거 자체가 약간 어불성설임. 유럽 중세시대에 왕들은 다 도찐개찐이고 절대왕정시대로 가야만 유명한 왕들이 나오는거랑 같음. 그게 한반도에서도 딱 조선시대.

  • @hae82e922
    @hae82e922 8 місяців тому +6

    음 역시 같은 역사라도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네요 . 역사학자도 아닌 방구석 사극덕후이지만 동의하는 의견도 아 이건 아닌거같은데 반대되는 의견도 나오게되네요 답은 없죠 ^^ 사실만 우린 기억하면 될거같습니다 추측은 자유긴하죠.. 고려는 대단한 나라였고 고려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사도 완전히 바뀌어갔겠죠?? 오늘 영상도 재밌게 잘봤습니다

  • @user-rf9ye4uf9k
    @user-rf9ye4uf9k 8 місяців тому +13

    현종은 성군이 아니라 현군 또는 명군이죠..

  • @user-it1ij5cp6u
    @user-it1ij5cp6u 8 місяців тому +10

    신라, 고려시대는 근친혼이 정상이었을 정도로 했는데 현종이 뭔 문제 ?

  • @user-rz6nh2xu2n
    @user-rz6nh2xu2n 8 місяців тому +13

    장점 단점이 다 있겠죠. 요새 고려시대 흥미가 많은데 여러 시각을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kx4cb4st9b
    @user-kx4cb4st9b 7 місяців тому +2

    자객을 수시로 보냈다니. .이모라는 여자가..

  • @user-ip8vi8fy1r
    @user-ip8vi8fy1r 4 місяці тому +3

    그럼 세종도 쓰레기 폭군이네요?

  • @user-lv5zf8lk7g
    @user-lv5zf8lk7g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왕권이 무슨 상관이냐를 역사강사에게서 듣다니 ㅋㅋㅋ
    다른 분들이랑 다르게 제가 볼 땐 은근 근친 얘기하면서 그 부작용과 함께 고려사 죽이기 하는 걸로 밖에 안보이는데..
    근친한다고 무조건 머리 나쁘고 기형 생기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임금도 누구를 앉히고 어떻게 극복하느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강감찬 앉혀두고 전쟁 승리한다고 거기서 머뭇거리지 않고 없던 중앙집권 세울정도면 현종이 성군은 아닐지라도 엄청난 명군인 건 맞죠.
    그리고 왕권이 강해져서 신권을 잡아야 권력이 안정화되고 신권이 마음대로 횡포 벌일 수 없는 거죠.
    신권이 강화되는 때보다 왕권이 강화 될 때가 훨씬 백성에게 이득이었습니다.
    한 예로 신권이 왕권보다 강했으면 지금 쓰는 한글의 초본 훈민정음이 세상 빛도 못 봤습니다.
    고려라고 다를 줄 아십니까?

  • @daehanchoi9895
    @daehanchoi9895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성군 x 암군O 이라는 게 아니라
    무한긍정론을 비판하는 영상인데 제목 때문인가
    댓글에 뭇매가 많이 보이네요

  • @user-shdkcnwvsuk
    @user-shdkcnwvsuk 8 місяців тому +5

    근데 나도 현종을 딱히 성군이라고 배우진 않았어서.. 고려나 조선이나 성종은 성군이긴 한데 현종은 그다음으로 나라의 체계를잡은 왕정도? 지금보니 성군 대우해도 잘못된건 아니겠네요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킨 선조랑은 확실히 비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