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5년 1592년 5월 1일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대포 구멍으로 활용했고, 뒤에는 거북 꼬리를 만들어 밑에 총구멍을 설치했다" "우리 군사가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았다." 거북선, 용머리로 대포 쐈다...대포 배치 분석해 복원 / YTN 사이언스 위 기사에 나온 말
@@김일욱-i5o 당시에 전장에서 일반적으로 보급되던 활이 약 70~100파운드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대에 이만한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현대의 프로 양궁선수가 당기는 활이 45파운드 정도입니다. 현대사람들을 징병해서 70파운드짜리 활을 주면 절대 제대로 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말씀은 동의하지만, 옛날 군인들은 영양부족으로 힘이 약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1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킨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해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따라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의 조상은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의 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치는 조상을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대군이었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해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마침내 수군을 재건해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승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올렸다. 다만,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은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구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내는 것만으로 성과가 오르지 않아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로 강등했다. 조선수군의 그 후의 전투는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의한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성노예를 헌상하는 속국이었기 때문에 종주국인 중국이 체결한 평화조약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조선의 공식기록인 선조실록에 근거한 이순신과 일본군 전투의 개요다. 이순신의 행동은 어떻게 봐도 영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싸움의 약한 친필라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서동연-e4d 전쟁은 끝난 것은 이순신과는 관계가 없다. 조선은 명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일본과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이 화해하면 조선은 그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거기에 위반해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죽었다. 만약 일본군이 화나 전쟁을 재개하고 있었다면, 이순신은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이었을까? 이순신은 조폭하고 화병의 전형적인 조선인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KBS역사스페셜에서 거북선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CG로 재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저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네요 전체 3층 구조에 가장 밑의 1층에서 노를 젓고 2층에서 포를 쏘고 3층에서 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부분이나 용두에서 포를 쏘고 거북이 머리처럼 용두가 들락날락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었고 돌격해서 왜선을 부수기위해 용두아래의 도깨비얼굴은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어려서 봤는데도 너무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몇년 전에 여수에 갔을 때 거북선보고 많이 실망했던 기억도 나고 영상 재밌게 봤습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와플wafle 거북선을 재현한 것은 한국인 연구자다. 한국인 연구자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난중 일기에는 거북선의 모습이 적혀 있지만, 준공했다고 일본군과 싸웠다고도 적혀 있지 않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13척의 배로 싸웠지만 거기에 거북선은 없다. 거북선이 정말로 출격했다면 그 이전에 침몰했을 것이지만 그 기록은 없고 또 거북선의 잔해는 전혀 회수되지 않았다. 거북선의 무거운 철의 가시는 바다 속에 머물겠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거북선의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설계 혹은 제조 과정에서 결점이 드러나 제조 중단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채교수님 말이 확실히 와닿네요. 실험해 본 게 없다고.우리나라 사학계도 기록과 기존 연구자들의 권위에만 의존하는 꼰대사학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으로써 총체론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기본으로 하는 실증사학이 주류이자 기초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파벌 나눠서 싸우기만 하지 과학적인 시뮬레이션 한번 안하는 인간들이 무슨 학자라고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1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킨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해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따라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의 조상은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의 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치는 조상을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대군이었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해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마침내 수군을 재건해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승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올렸다. 다만,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은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구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내는 것만으로 성과가 오르지 않아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로 강등했다. 조선수군의 그 후의 전투는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의한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성노예를 헌상하는 속국이었기 때문에 종주국인 중국이 체결한 평화조약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조선의 공식기록인 선조실록에 근거한 이순신과 일본군 전투의 개요다. 이순신의 행동은 어떻게 봐도 영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싸움의 약한 친필라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HenA-eo2jq 1600년경 조선과 일본의 기록에는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는 기사는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고 쓰여진 것은 100년 이상 뒤에 쓰여진 조선의 소설이다. 원래 거북선이 실재한 증거는 전혀 없다. 칠천 양해전에서 침몰했다고 한국인은 주장하지만 철 가시 1개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에 의한 거짓말이다. 한국인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대답하십시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기록을 보면 거북선이 4~5척이 있었는데 모양이 다 다름 처음 만들어 보고 계속 보완했다는걸 알수 있음 거북이 머리가 내부에서 밖으로 넣었다 뺏다 하는 것도 있고 고정되어 있는 것도 있음 머리에서 포를 쏜 기록도 있고 유황을 나오게 한 기록도 있음 등부분은 쇠못이나 칼을 꼽았는데 안보이게 물에 젓은 짚같은 것로 덮었음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맹맹-s7c 정치적인 것은 한국인의 날조이다. 그림의 거북선의 모양을 보십시오. 돛도 없고, 고무 보트를 크게 한 모양이다. 그럼 속도는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일본선에 충돌해서 분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거북선이 출격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한국인은 역사의 날조를 멈추십시오.
선조 25년 1592년 5월 1일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대포 구멍으로 활용했고, 뒤에는 거북 꼬리를 만들어 밑에 총구멍을 설치했다" "우리 군사가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았다." 거북선, 용머리로 대포 쐈다...대포 배치 분석해 복원 / YTN 사이언스 위 기사에 나온 말
설계자로서 거북선은 판옥선에서 크게 설계가 바뀌지 않았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전란도 가까워오는듯 하니 설계, 제작방법, 제작 부품, 운용방법등등을, 호환되게하여 제작시간, 운용을 위한 훈련시간등을 단축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텐데 새로 무엇을 만들어서 처음부터 시작하는것 보다 기존의 판옥선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하는것이 여러면에서 현실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 거북선은 3층이었던 판옥선의 고속근접공격형 모델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ㅎㅎ
제가알기로는 거북선은 3층구조로 이루어진것이맞고 지붕에는 쇠옷을 박은걸로 알고있습니다 2층에어는 노를 젖고 3층에는 포를 쏘았으며 전면에 4문 좌측8문 우측8문 후방4문이며 추가로 용머리에서는 포를 쏘았고 필요에따라 들어갔다 나왔다 할수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3층이면 배가 전복이 된다는 말들이 만은데 그것은 판옥선으로 3층구조를 하면 당연희 무게중심으로 위험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거북선은 판옥선 2척을 연결해 3층으로만들어 지붕을덮고 2층은 노 를젖고 3층은 포를 쏜걸로 알고 있으며 1층 선실바닦에는 돌을깔아 파도와 포를 쏠때 반동을 잡아 준것으로 알고있 습니다 그리고 포를 쏠때에는 돗대를 세워 그사이로 연기가 빠지게 설게하고 외구의 백병전을 막기위해 배에 오르기 어렵도록 3층으로만들고 쇠못을 박았다고 들어 왔어요 아참 배 전면 하부에는 도깨비 머리를 돌출되게 설치하여 거북선 머리를 넣고 일본배와 충돌하여 도깨비 머리로 쪽바리 배에 구멍을 뚷어줬다고도 하더라구요 거북선을 지위한건 이순신 장군이지만 그 배를 만든것은 나대용 으로 임금이 그 공을 높이사 나씨성을 하사했다는 것두 알아두시면 좋을듯 함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아니 진짜 채교수님 말씀 천배 만배 맞다 복원에 의심이 가면 현대 지금 와서 거북선 만들고 직접 사람 태워서 노젖고 선조한테 올린 뭐... 현자포 그거 달아서 쏴보면 될꺼 아닙니까?? 계속 추측 논란 지금 학과 교수님 많은 논문 추론하시는데 그냥... 통영에 있는 거북선 공원 처럼 한강에 띄워 놔서 관광용으로 사용하지마시고. 지금 모대학교에 이순신학과도 개설 되었는데 진짜 진심으로 정부에 근거와 언론만 제기 하지마시고 참나무 소나무 깎아서 직접 조선시대 조상님 들처럼 손에 피땀 흘려가 노젖고 총포 현자포 쏴보면 될꺼 아입니까?? 직접 만들어서 해보면 논문 근거 필요없고 성공되면 쉬마이입니다.
교수님 말이 맞다. 실제 전투가 가능한지 띄어보고, 포도 쏘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거북선이 특수용도의 선박이라서 범용으로 사용이 어려운 한계도 인지해야 한다. 거북선은 공간도 좁고, 전투시 돛을 쓰기 어려워 노꾼에 의존해 속도도 느리고, 상부가 복개되 주력인 활을 쓰기도 어렵고(활을 곡사 무기 이므로 상부가 덮히면 안됨), 철갑이 부식이 되 관리도 힘들다. 거북선 근무 병사는 최악의 보직인것이다. 그리고 화약이 매우 고가에 구하기 어려워 함부로 포를 못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또한 노꾼은 전투시 방향과 속도 조절을 위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해서 두 가지 일을 못한다. 특히 측면 충돌시 노를 안으로 끌어 당기지 않으면 노꾼의 허리가 잘려 나갈 수도 있다. 느린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해류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리 철갑이라도 화공에는 취약하니, 포를 쏜 후 바로 도망가야 한다. 포는 재장전에 포를 식히는 시간이 필요해서 30-60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갑판의 적을 섬멸할려면 포의 위치가 높아야 한다. 그리고 포는 직사 무기이다. 전진을 해류를 타고 휙 지나가는 배이므로 적선 사이의 유기적인 전열을 깨는, 육상전에서 기병의 역할만 가능하다. 그런 역할을 위해, 제한된 시간안에 포는 딱 한번 쏠 수 있을 것이고, 그냥 충돌 전략이 주효 했을 것이다. 결론은 거북선은 중기병처럼 적의 전열을 깨는 역할만 하고, 실제 전투는 판옥선이 했을거라는 거다. 그리고 형태가 판옥선 이에 작은 거북이 모양의 등갑을 올린 모양일 수도 있다. 그게 전투시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국가에서 표준 설계도로 만든게 아니기때문에 만든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만들었을듯.. 그중에는 철갑을 씌워본것도 있고, 목을 높이 올려본것도 있고 할듯.. 물론 다 전력화가 되지는 않았을테고.. 따라서 뭐가 맞다라고 한가지를 고르는것은 불가능 할것으로 보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거북선의 모티브는 기본적으로 판옥선. 판옥선은 왜선보다 높은 구조.그 판옥선의 갑판에 포를 배치하고 뚜껑을 덮어서 왜군이 조총이나 상륙을 못하게 한 구조가 기본인데. 그리고 거북선의 주된 용도는 해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돌격하여 다가오거나 도망가는 적의 진영을 붕괴시키는 돌격선의 목적. 따라서 주력선이 아니라 특수임무용 전함. 거북선이 휘젓고 다니면 오합지졸로 분산된 적선들을 판옥선들이 진영을 갖추어 함포사격. 따라서 거북선은 강도를 더 보강했을 것.거북선을 복원하려면 판옥선을 제대로 복원하면 됨.
거북선의 고향은 절라도 여수 근처다. 여수 근처 3곳 조선소에서 각 1척씩 건조했다. 이게 임진 정유재란 왜침에 대항한 유일한 거북선 고향이고 완성 되고 훈련 된 곳이다. 거북선을 설계 건조한 지휘관은 절라도 나주 출신 나대용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아는 대한민국 국민은 드물다. 여수 조차 거북선을 복원, 가치 제고, 홍보 등에 소극적이다. 이순신 장군의 군 기지가 여수요, 거북선 고향은 여수다. 여수 관청은 거저 거북선 모형 몇 개 만들어 놓고 끝이다. 모형이라도 바다에 띄울 생각은 전혀 안 한다. 사고 날 깜이. 소극적이고 복지부동 철밥통 관료들이다. 오히려 원균의 본거지 경남 통영이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관광용으로 활용한다. 잘 못 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요약하자면 "이순신과 임진왜란" 이란 책에 있는 내용이 맞다는 말씀. 3층구조이고 용머리는 연기나는 굴뚝이 아니라 포를 쏘기 위한 것이고, 그 아래쪽에 적선과 충돌(직충)전을 위한 약 2미터 가량의 거대한 창(도깨비머리 모양)이 설치되어 있었음. 예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거북선이 기록에 남아있는 실제모습과 유사한데, 문제는 그 거북선은 도깨비머리 모양의 충돌을 위한 돌기가 없었다는 게 아쉬움. 왜냐하면 거북선은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함포사격과 충돌전(직충전)을 감행한 돌격선인데, 그것을 위해 설치한 중요한 장치가 바로 도깨비 머리 모양의 래밍임. 따라서 이것을 재현하지 못한 것은 거북선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놓친 것임. 그런 면에서 현재 재현되어 전시되고 있는 거북선들은 제대로 재현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그냥 쓰레기들 임. 여기서도 지적하듯이 만들면서 실제로 노 저으면서 포도 쏴보고 자료도 좀 제대로 찾아보고 해서 언젠가는 제대로 복원되길 바랍니다.
취재 의뢰합니다. 저상 버스에는 뒷문에(앞문에도) 노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사슬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요? 저의 생각은 아무 역할도 하지도 않는데 저상버스가 주행하면 플라스틱 사슬이 덜렁덜렁 거려서 거슬립니다... 따라서 저상버스의 노란 사슬은 무슨 역할을 하는건가요? 취재 의뢰합니다.
거북선의 화포 배치도 용두: 현자포 용두 양 옆 쪽: 지자포 2개 용두 쪽 층의 옆면 벽: 황자포 12개 용두 쪽 층의 뒷면: 현자포[용두 화포와 동일] 2개 아래 층 정면 및 전면부: 천자포 2개 사용 및 활용된 화포 총포 종류: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 총통
결론 : 저 정도의 공식적인 자료로는 진짜에 가까운 복원 불가능.. 최대한 과학적으로 그 시대의 과학기술로 생각해 한다해도 불가능.. 즉... 현재 재현된 거북선이 진짜와 10프로 비슷하다고 하면... 위 영상처럼 최대한 실제로 바다에서 각종 테스트를 해서 구현한다해도 절대 50프로를 넘지 못할 근본적인 문제로 보임.. => 별 의미없다 판단됨. 그냥... 있는 그대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현재 자료는 겨우 요정도 이다.. 라고 교육하면 될듯.
저 그림은 제가 추측하기에 상판 즉 용두와 상판갑 부분을 운반하기 위해 다른배에 실어서 옮기는 과정에서 그려진 그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님 종가에서 내려오는 거북선 그림이 있고 1920년대 엘리자베스 키스의 이순신 장군초상화로 추정되는 그림의 인물 뒷편 병풍의 거북선도 있구요 19세기의 수군조련도 에도 거북선의 모습은 남아 있습니다.비록 수세기가 지났지만 거북선의 기본 형태는 바뀌지 않았을 듯 합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나도 용두는 연기가 아니라 포 쏘는 걸로 배웠는데
후기에 연기로 바꼈던 겁니다
나는 용두에서 불나오는 걸로 알고있었는데 ㅋ
@@가즈아아-t3s 그거 연기 뿜고 화염방사기처럼 불 붙여서 쏘는 방식이라 그래요
포격인 이유 ㅡ 저당시 해상에서 연막이란 개념이 없었음
@이찬민 저 사람 댓글 전에 쓴 거 보면 그냥 일뽕인듯
그렇죠 판옥선에 거북등을 올린 것이 거북선인데 절대 2층 구조일 수가 없죠
노꾼과 포병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노는 어찌 저을 것이며 또 포는 어찌 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일반적으로도 상식에 어긋나죠 2층구조면 몇십몇백명이 노를 저어야 하는데 그때에는 더군다나 못먹어서 힘도 없었을것이고 어휴.지금거북선가지고는 전투에 참여하지못하고 웃음거리밝에 안되고 전쟁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는데 느려가지고 싸음이나 할까 의문이 드네요
선조 25년 1592년 5월 1일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대포 구멍으로 활용했고,
뒤에는 거북 꼬리를 만들어 밑에 총구멍을 설치했다"
"우리 군사가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았다."
거북선, 용머리로 대포 쐈다...대포 배치 분석해 복원 / YTN 사이언스
위 기사에 나온 말
@@mathamour 현재 지차체에서 업적쌓기 등으로 복원한 거북선들이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져 있는 지 알 수 있죠
@@김일욱-i5o 당시에 전장에서 일반적으로 보급되던 활이 약 70~100파운드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대에 이만한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현대의 프로 양궁선수가 당기는 활이 45파운드 정도입니다.
현대사람들을 징병해서 70파운드짜리 활을 주면 절대 제대로 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말씀은 동의하지만, 옛날 군인들은 영양부족으로 힘이 약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sumire-fanclub 이건 저도 인정. 현대인은 나약함.
그때는 차도 없고 걸어다니고, 맨날 나무하러 다니고, 전쟁나면 징집되고.. 못먹어서 외소해보일지 몰라도 근력에서는 현대인이 밀렸을거에요.
일단... 배나온사람이 거의 없었을겁니다.ㅋㅋㅋㅋ
등이 가려운데 겉이 가려운게 아니라 몸속이 가려워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 않는 영상이네.,...
얽
그거 발가락사이에 그런적있어서 너무 짜증났는데
@@matlab357 와 이거 개공감가네 추운데있다 집안으로 들어오면 손부어갖고 쥰나 간지러워짐 ㅋㅋ
TV에서 광고 할 때 프로그램의 제목은 항상 오른쪽 위에 있고 방송 중에는 왼쪽 위에 있는데 언제부터 왜 이렇게 변한건지 궁금합니다
오오오오
5555
오 이거다
오른쪽위에,왼쪽위에 있어야 보기 편합니다 오른쪽 으래 왼쪽 아래에 있으면 영상을 보고있으면 계속 신경쓰여요 (작게 로고를 해서 하면 상관은 없음) 근데 시청자를 끌어야 하니까 왼쪽이라 오른쪽 위에 많이 하죠
이거다
이거 어릴때 어디서 보고 친구들한테 말해도 절대 안믿어서 포기했었던건데 20대후반이 되서야 같은 내용을 심도있게다룬 영상을 보다니 조금 감동이네요..ㅜ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1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킨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해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따라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의 조상은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의 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치는 조상을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대군이었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해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마침내 수군을 재건해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승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올렸다. 다만,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은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구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내는 것만으로 성과가 오르지 않아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로 강등했다.
조선수군의 그 후의 전투는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의한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성노예를 헌상하는 속국이었기 때문에 종주국인 중국이 체결한 평화조약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조선의 공식기록인 선조실록에 근거한 이순신과 일본군 전투의 개요다. 이순신의 행동은 어떻게 봐도 영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싸움의 약한 친필라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hiroono1 이순신떄문에 임진외랜이끝난걸로 알고있지만 실은 명과 휴전협정으로전쟁이끝난거에요 조총이 정확도가 낮아서 이순신을 저격했다는것은 힘들고요.
@@서동연-e4d 전쟁은 끝난 것은 이순신과는 관계가 없다.
조선은 명국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일본과 조선의 종주국인 명국이 화해하면 조선은 그에 따른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거기에 위반해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죽었다.
만약 일본군이 화나 전쟁을 재개하고 있었다면, 이순신은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이었을까? 이순신은 조폭하고 화병의 전형적인 조선인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KBS역사스페셜에서 거북선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CG로 재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저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네요 전체 3층 구조에 가장 밑의 1층에서 노를 젓고 2층에서 포를 쏘고 3층에서 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부분이나 용두에서 포를 쏘고 거북이 머리처럼 용두가 들락날락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었고 돌격해서 왜선을 부수기위해 용두아래의 도깨비얼굴은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어려서 봤는데도 너무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몇년 전에 여수에 갔을 때 거북선보고 많이 실망했던 기억도 나고 영상 재밌게 봤습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hiroono1 느린 귀선을 최대한 활용하기에 조류를 이용한 전술도 많았는데 ㅋㅋㅋ 우리 잼미니는 컨셉은 잘잡았는데 지식이 약하네?ㅋㅋㅋ
@@user-kimhx1115 그래서 잃었다고 말하고 싶은가?
@@hiroono1 어디서 나온 자료인지도 모르겠고, 이순신이 올린 보고서나 난중일기에도 나오는게 거북선의 내용과 전과인데....
@@와플wafle 거북선을 재현한 것은 한국인 연구자다. 한국인 연구자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난중 일기에는 거북선의 모습이 적혀 있지만, 준공했다고 일본군과 싸웠다고도 적혀 있지 않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13척의 배로 싸웠지만 거기에 거북선은 없다. 거북선이 정말로 출격했다면 그 이전에 침몰했을 것이지만 그 기록은 없고 또 거북선의 잔해는 전혀 회수되지 않았다. 거북선의 무거운 철의 가시는 바다 속에 머물겠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거북선의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설계 혹은 제조 과정에서 결점이 드러나 제조 중단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궁금한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알고 있어야 할 우리 역사의 하나입니다
끄덕끄덕.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0:19
ㅓ...제가 거북선을 그리면 그냥 거북이 등껍질이 되어있을겁니다.
제가 거북선을그리면 목만있을 것입니다...
저는 거북목만 남을듯
제가 그리면 이상한 물체가 하나 있을겁니다
내가 그리면 찌그려진 박스인데
ㅋㅋ
채교수님 말이 확실히 와닿네요. 실험해 본 게 없다고.우리나라 사학계도 기록과 기존 연구자들의 권위에만 의존하는 꼰대사학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으로써 총체론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기본으로 하는 실증사학이 주류이자 기초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파벌 나눠서 싸우기만 하지 과학적인 시뮬레이션 한번 안하는 인간들이 무슨 학자라고
1592년 4월 12일 오전 8시, 일본군의 제1대는 700종의 대소군선으로 쓰시마·오우라를 출발해, 오후 2시 지나 부산에 상륙했다. 부산을 지킨 조선군은 하루 만에 괴멸했다.
일본군이 육로 북상해 조선군은 공포에 몰려 잇따라 도망쳤다. 조선귀족(양반)에 의한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조선민중은 일본군을 환영하고 식량을 헌상했다.
4월 29일 조선왕의 조상은 밤이 밝아지자 서울을 버리고 출발했다. 해가 뜨고 뒤를 돌아보니 성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도착 전에 조선인의 민중이 폭도화한 것이다. 도망치는 조상을 본 민중은 자신의 국왕에게 돌을 던졌다.
5월 2일 일본군은 10만명 이상의 대군이었지만 민중의 협력으로 행군이 원활하게 진행해 부산 상륙 후 불과 3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육군도 수군도 조선군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순신은 마침내 수군을 재건해 일본을 기습했다. 그리고 7월 7일 한산도 해전까지 이승신은 몇 차례만 일본군을 기습해 성과를 올렸다. 다만, 조선군의 전술은 화살에 의한 방화이며, 검을 가진 백병전은 아니다. 한국인은 거북선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또 화살을 쏘는데 거북선은 불리하기 때문에 전술상도 거북선의 참전은 의미가 없다. 거북선을 탄 이순신의 이미지는 한국인에 의한 날조다.
일본이 출격 전술에서 수륙 공동 방어 전술로 방침을 변경하자 조선군의 전략은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수송용이었던 배에 대철포를 갖추어 중요 지점에 포대를 세웠다. 이후 이순신에 의한 일본측 공격은 부산포 공격, 구마가와 공격 등 조선수군의 피해를 많이 내는 것만으로 성과가 오르지 않아 조선수군의 출격횟수는 격감했다. 그 후 이순신은 적전 도망의 죄로 부하가 없는 병사로 강등했다.
조선수군의 그 후의 전투는 모두 패전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에 의한 사망에 의한 평화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되어 전쟁은 끝났다. 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성노예를 헌상하는 속국이었기 때문에 종주국인 중국이 체결한 평화조약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화 후에 귀국하는 일본군을 비겁하게도 배후에서 덮쳐 반대로 총격을 받고 죽었다.
이상이 조선의 공식기록인 선조실록에 근거한 이순신과 일본군 전투의 개요다. 이순신의 행동은 어떻게 봐도 영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싸움의 약한 친필라이다. 한국인에 의한 역사의 날조가 얼마나 심한지 알 것이다.
@@hiroono1 일본 가도 너는 낙오자란다ㅋㅋㅋ
@@hiroono1님 친일파셈? 매국노요??
@HenA-eo2jq 1600년경 조선과 일본의 기록에는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는 기사는 없다. 거북선이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고 쓰여진 것은 100년 이상 뒤에 쓰여진 조선의 소설이다.
원래 거북선이 실재한 증거는 전혀 없다. 칠천 양해전에서 침몰했다고 한국인은 주장하지만 철 가시 1개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모두 한국인에 의한 거짓말이다.
한국인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대답하십시오.
@@HanWoong1015 나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가끔 문자로 뭔 기부아동 이름을 적어주세요가 있던데 적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세요... 궁금한데 돈이...
나는왜 모쏠인지 취재해주세요
@@츄츄2 거울보세요
@@츄츄2 모솔의 특징을 일아보도록 하자
일단 얼굴을 보자.......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아니 거북선 3층구조 저거 역사스페셜에서 부터 시작해서 나온게 언제적인데
아직도 2층구조로 비현실성있게 만들고선 관광으로 팔아먹을려고만 하면 그걸 누가 ㅇㅈ해줌
지금 용산전쟁기념관 안에 있는 거북선도 다 뜯어 고쳐야함
2층이냐 3층이냐 말이많았던거로 아는데, 3층이 맞는이야기같네요, 관광용말고 실제적인 테스트를 통해 좀더 현실적으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ㅎ
예전에 역사스페셜 '거북선 머리는 들락거렸다'편 보시면 자세히 나옴
3층이 맞겟죠. 1층 노꾼, 2층 대포, 3층 덥판. 3층은 옥탑방처럼 썻겠죠. 2층건물에 옥탑방 하나 만들면 3층 되는 것처럼요...
기존 판옥선에 지붕을 설치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hiroono1 근데 졌잖아
기록을 보면 거북선이 4~5척이 있었는데 모양이 다 다름
처음 만들어 보고 계속 보완했다는걸 알수 있음
거북이 머리가 내부에서 밖으로 넣었다 뺏다 하는 것도 있고
고정되어 있는 것도 있음 머리에서 포를 쏜 기록도 있고
유황을 나오게 한 기록도 있음
등부분은 쇠못이나 칼을 꼽았는데 안보이게 물에 젓은 짚같은 것로 덮었음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hiroono1 너무정치적이야
@@맹맹-s7c 정치적인 것은 한국인의 날조이다. 그림의 거북선의 모양을 보십시오. 돛도 없고, 고무 보트를 크게 한 모양이다. 그럼 속도는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일본선에 충돌해서 분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거북선이 출격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한국인은 역사의 날조를 멈추십시오.
포연에태해선 나름 일리가 있는 지적 같네요
@@user-wi3ky7jn4n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는 기록은 없다. 모두 한국인에 의한 날조이다.
왜 한국인은 거짓말을 하는가? 대답하십시오.
잘보았어요👍👍
시간이 흐름에 배는 변천하고 여러가지로 바뀔수있죠! 그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죠!
취재의뢰 합니다
왜 우리나라 교육은 수능 중심이 되었고 하라는 데로만 하는 교육이 되었을까요?
애들을 순종적으로 만들어야 얘네가 생산인구가 되어도 지들 입맛대로 잘 굴려먹을 수 있으니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로 만들어두면 발전 없는 철밥통 꼰대들 언제 모가지 날라갈지 모름
@문영심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공부하게 시키는게 정상이란 말인가..?
@@bca6194 하루 10시간 공뷰하시나요?
@@노지웅-z2r 나중에 고딩쯤 되면 10시간은 넘죵
노지웅 고딩 되면 주변의 분위기나 학교의 시스템이 그정도 안하면 따라가기 힘들게 되있어요
오호...굉장히 유익한 유투브 채널이 여기있었네? 제가 늦게라도 장가갈 확률이 있는지 취재 부탁합니다 ~.^
거북선 입에서 유황을 뿜었다가 역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내부에 있는 선원들 아마 다 질식했을 수 도 있다...
ㅋㅋㅋㅋ
선조 25년 1592년 5월 1일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대포 구멍으로 활용했고,
뒤에는 거북 꼬리를 만들어 밑에 총구멍을 설치했다"
"우리 군사가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았다."
거북선, 용머리로 대포 쐈다...대포 배치 분석해 복원 / YTN 사이언스
위 기사에 나온 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계자로서 거북선은 판옥선에서 크게 설계가 바뀌지 않았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전란도 가까워오는듯 하니 설계, 제작방법, 제작 부품, 운용방법등등을, 호환되게하여 제작시간, 운용을 위한 훈련시간등을 단축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텐데 새로 무엇을 만들어서 처음부터 시작하는것 보다 기존의 판옥선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하는것이 여러면에서 현실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 거북선은 3층이었던 판옥선의 고속근접공격형 모델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ㅎㅎ
저 역시 기존 판옥선에 지붕과 용두, 충수가 설치된 형태가 아닐까 합니다.
상상속의 배일뿐
가끔 TV에서 마약 거래가 잡혔다
하는대 범인을 다 잡고 일이 끝나면 압수한 마약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세여
마약이나 밀수입된 식품 약 같은것 전부 소각 처리하는걸로 알고있어요.. 그런것 처리하는 전문 업체가 있고 계약을 통해서 하는걸로 알고있음 ...
이후 제작자들이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소~각 ㄱㄱ
외국같은 경우에는 증거물 보관실같은 곳에 보관되거나 연구 시설에 기증하기도 합니다.
@정연종 스태프가 먹었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내용이네요
오!!!!!!
감사합니다..♡
정확한건 모르지만 거북선은 왜란 훨씬전에 제작이 되었었다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정과 성능이 더 개선을 시켰을거라는 의견이 적절하다고하던데
거북선은 제대로 복원 해줘야되는거 아닌가
영상에 대한 감상글은 없고 급식들 궁금증 해결 요청이 전부라니..
잘 보고 갑니다.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문화 복원하는 작업에 정부의 지원이나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길 바람
오 영상 깔끔하고 잘만들었네요 구독합니다
취재의뢰합니다
레몬 챌린지,실종아이를 찾습니다,아이스버킷 챌린지 등 많은 돌고도는 챌린지는 누가 무슨나라에서 언제부터 시작했고, 아직도 그 챌린지가 돌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레몬챌린지는 코이티비라는 분이 시작하셨어요
만일 우리나라에만 있고 외국에는 없는 법을 외국인이 어기거나, 반대의 상황이면 어떻게 처리되나요?
예시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없는)외국인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인에게 하면 어떻게 되나요?
속지주의로 인해 처벌받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경우에따라 달라요
거북선 하나 제대로 복원 못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박물관이나 지자체에 전시 한다는사실이 쇼킹하다 역사스폐셜에선 거북선 밑에 충돌용 머리있다고 하는데 왜이러냐 진짜 짝퉁 거북선이나 만들고
그는 삼도수군통제사,,
ㄹㅇ 찐이다...
거북선 모양은 몇가지 될거라봅니다..개선이 되며 만들었을 테니까요...
오 천재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인진의 양끝에 거북선을 두는 등 거북선은 한 대가 아니었고
어떤그림에는 3층으로되어서 등껍질이 앖었나? 하는 그림도 있었던걸로압니다
바꿔갔던지, 종류가 몇개 있던지 했을거같아요.
이걸 어디서 만들었을 까요 제작소?
4:01 인가본데 그것도 그런대로 멋있구려. 다만 저 머리통이 약간 귀여워요.
제가알기로는 거북선은 3층구조로 이루어진것이맞고 지붕에는 쇠옷을 박은걸로 알고있습니다
2층에어는 노를 젖고 3층에는 포를 쏘았으며 전면에 4문 좌측8문 우측8문 후방4문이며 추가로 용머리에서는 포를 쏘았고 필요에따라 들어갔다 나왔다 할수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3층이면 배가 전복이 된다는 말들이 만은데 그것은 판옥선으로 3층구조를 하면 당연희 무게중심으로 위험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거북선은 판옥선 2척을 연결해 3층으로만들어 지붕을덮고 2층은 노 를젖고 3층은 포를 쏜걸로 알고 있으며 1층 선실바닦에는 돌을깔아 파도와 포를 쏠때 반동을 잡아 준것으로 알고있 습니다 그리고 포를 쏠때에는 돗대를 세워 그사이로 연기가 빠지게 설게하고 외구의 백병전을 막기위해 배에 오르기 어렵도록 3층으로만들고 쇠못을 박았다고 들어 왔어요
아참 배 전면 하부에는 도깨비 머리를 돌출되게 설치하여 거북선 머리를 넣고 일본배와 충돌하여 도깨비 머리로 쪽바리 배에 구멍을 뚷어줬다고도 하더라구요 거북선을 지위한건 이순신 장군이지만 그 배를 만든것은 나대용 으로 임금이 그 공을 높이사 나씨성을 하사했다는 것두 알아두시면 좋을듯 함니다
말씀에 대체로 공감합니다만... 하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여쭙니다.
말씀 중에 '판옥선 2개를 연결해 3층으로 만들어'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해하기 어렵네요?
2층으로 구성되어 1층은 격구실 .. 2층은 포격실 . 3층은 지휘 통제실 있는 .. 판옥선 위에 ..방어용 지붕을 얻으면서 ..3층 구조가 되었다는 내용이죠..
오 설득력이 확실하게 있군요
옛날 조선시대 무기나 기구 (거중기, 거북선,판옥선등등) 복원하는 프로그램이나 다큐있음좋을듯...
뭐든 나는 거북선을 만드신 이순신장군님에 대한 존경은 늘 한결같다 왜군을 척결하신것이 실로 대단한것이지 왈가불가할게 아님 ㅇㅇ
꿀팁: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든게 아닌 태종때부터 만들어져서 이순신때까지 내려온것이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왈가왈부
오 최교수님의 복원본이 더 멋있는데요
아니 진짜 채교수님 말씀 천배 만배 맞다
복원에 의심이 가면 현대 지금 와서 거북선 만들고 직접 사람 태워서 노젖고 선조한테 올린 뭐... 현자포 그거 달아서 쏴보면 될꺼 아닙니까??
계속 추측 논란 지금 학과 교수님 많은 논문 추론하시는데 그냥... 통영에 있는 거북선 공원 처럼 한강에 띄워 놔서 관광용으로 사용하지마시고.
지금 모대학교에 이순신학과도 개설 되었는데 진짜 진심으로 정부에 근거와 언론만 제기 하지마시고 참나무 소나무 깎아서 직접 조선시대 조상님 들처럼 손에 피땀 흘려가 노젖고 총포 현자포 쏴보면 될꺼 아입니까??
직접 만들어서 해보면 논문 근거 필요없고 성공되면 쉬마이입니다.
취재의뢰합니다!!
왜 일본괴담은 끝이 찜찜하고 한국괴담은 결말이 있나요 개운하게
..
? 뭔소리여
역시 이순신장군님
제발 정부에서 저 교수님 데리고 복원 좀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것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관광용으로만 쓰이고있다는게 너무 아쉽다.
거북선이 임잔왜란 때만 활동한 배도 아니고
수백년동안 현역에서 활동했으며
실전에서 사용해보고 다양한 변형이 있을수 있지
그래서 다양한 버전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야지
그리고 일본간첩이 그린 거북선 그림이 일본에서 발견됨
취재 의뢰합니다!
다이소는 어떻게 다 저렴할까.
유황 연기가 난다는 게 용두에서 발포한 직후에 화약 연기가 피어나니 그런 것 같습니다. 화약에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유황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귀선을 제대로 본 사람이 아니거나 일부러 상징적으로 귀선을 그렸을 가능성도 있겠죠.
교수님 말이 맞다. 실제 전투가 가능한지 띄어보고, 포도 쏘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거북선이 특수용도의 선박이라서 범용으로 사용이 어려운 한계도 인지해야 한다. 거북선은 공간도 좁고, 전투시 돛을 쓰기 어려워 노꾼에 의존해 속도도 느리고, 상부가 복개되 주력인 활을 쓰기도 어렵고(활을 곡사 무기 이므로 상부가 덮히면 안됨), 철갑이 부식이 되 관리도 힘들다. 거북선 근무 병사는 최악의 보직인것이다. 그리고 화약이 매우 고가에 구하기 어려워 함부로 포를 못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또한 노꾼은 전투시 방향과 속도 조절을 위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해서 두 가지 일을 못한다. 특히 측면 충돌시 노를 안으로 끌어 당기지 않으면 노꾼의 허리가 잘려 나갈 수도 있다. 느린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해류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리 철갑이라도 화공에는 취약하니, 포를 쏜 후 바로 도망가야 한다. 포는 재장전에 포를 식히는 시간이 필요해서 30-60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갑판의 적을 섬멸할려면 포의 위치가 높아야 한다. 그리고 포는 직사 무기이다. 전진을 해류를 타고 휙 지나가는 배이므로 적선 사이의 유기적인 전열을 깨는, 육상전에서 기병의 역할만 가능하다. 그런 역할을 위해, 제한된 시간안에 포는 딱 한번 쏠 수 있을 것이고, 그냥 충돌 전략이 주효 했을 것이다. 결론은 거북선은 중기병처럼 적의 전열을 깨는 역할만 하고, 실제 전투는 판옥선이 했을거라는 거다. 그리고 형태가 판옥선 이에 작은 거북이 모양의 등갑을 올린 모양일 수도 있다. 그게 전투시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오 ㅋㅋㅋ 집에서 거북선 만들고 있었어서 자료 다 찾고 만드는중이여서 웬만한건 다 알고있었는데 역시 다 알고있는거였네요!ㅋㅋㅋㅋ 드디어 왱보다 내가 먼저 알았다!
채교수의 연구에 일정 부분 나와 의견이 공통된 것이 있지만..
학계에서 받아들이지 않을만큼 문제가 많다.
직접 세미나를 들은 나로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여 질문을 못하고 온 것이 한. )
2004년 미국 뉴욕에서 발견된.. 임진왜란 당시 종군 화가가 그렸다던 거북선 그림 보니 교과서에서 봐왔던 모양과는 크게 다르더라고요ㅎ 종군 화가가 그렸다면 실제 모양과 거의 같겠죠?? 구글링하면 그림들 그 그림들 꽤 많이 나오고요ㅎ;;
이야 자랑스럽습니다
거북선이 존재했고 활용 했었다면 만들 수도 있을텐데...지금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당시보다 지혜나 지식이나 돈이 없어서 못만드는걸까? 안타깝다. 거북선 모형을 사고 싶은데 살 곳이 없다. 부끄럽다.
연구가 필요하긴 하죠. 이게 제대로 연구되면, 이걸 기준으로 새 전투함을 만들수도 있겠어요.
노젓는 격군과 포대가 한층에 같이 있는건 말도 안된다.판옥선처럼 아랫층엔 격군이 노젓고, 윗층은 포대가 있고 그위에 덮게를 씌운 형태가 맞다고 봄.
학교 컴퓨터할때마다 심심할때 하는 지뢰찾기는 누가 최초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마이크로 소프트 이는 마우스에 익숙 해지라고 넣은 게임 (마이크로 소프트 개발자라고 해두죠 )
@기윤 비행기에 있음ㅋ
생방송은 어떻게 편집을 하는건가요?
생방송을 할 때 조금이라도 오타가 나면 그대로 방송에 나오는건지 궁금합니다.
그대로 나오죵
이순신 장군님 존경합시다.
이순신 장군님 존경합니다.
어떻게 목소리보다 효과음이 더 크지... 옹알옹알 하는 느낌...
재미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국가에서 표준 설계도로 만든게 아니기때문에 만든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만들었을듯.. 그중에는 철갑을 씌워본것도 있고, 목을 높이 올려본것도 있고 할듯.. 물론 다 전력화가 되지는 않았을테고.. 따라서 뭐가 맞다라고 한가지를 고르는것은 불가능 할것으로 보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취재 해줍쇼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YTN 이라고 언론사가 나오는데
실제로 있는 방송산데
자주 보여서 YTN이 자주나오는 이유좀!
그거 간접광고 뭐 그런거예요.
난 거북선 머리에서 불발사되는줄알았는뎈ㅋㅋㅋㅋ
거북선 용머리에서 화염방사기발사되는줄ㅋㅋㅋㅋㅋㅋ
어릴때 이순신 장군 관련 책봤을때 특:거북선 머리가 화염방사기나 대포인줄 알았음
오잉 진짜 대포네
헉 저게 비과학적인 복원이였다고요?? 이런 건 또 처음 듣는 말이네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거북선의 모양이 진실이 아니였다는 것도 그것대로 충격이기는 하네요..ㅠㅠ 역사적인 일들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아쉬운 게 많네요 ㅠㅠ
거북선의 모티브는 기본적으로 판옥선.
판옥선은 왜선보다 높은 구조.그 판옥선의 갑판에 포를 배치하고 뚜껑을 덮어서 왜군이 조총이나 상륙을 못하게 한 구조가 기본인데.
그리고 거북선의 주된 용도는 해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돌격하여 다가오거나 도망가는 적의 진영을 붕괴시키는 돌격선의 목적.
따라서 주력선이 아니라 특수임무용 전함.
거북선이 휘젓고 다니면 오합지졸로 분산된 적선들을 판옥선들이 진영을 갖추어 함포사격.
따라서 거북선은 강도를 더 보강했을 것.거북선을 복원하려면 판옥선을 제대로 복원하면 됨.
대체로 공감합니다만... 저는 아무래도 무게 문제 때문에 철갑까지는 아니고 나무지붕에 쇠못 등을 박은 형태가 아닐까 합니다.
@@wannabeangus7105 현대 전함들은 무게 가볍나보오.
불필요한 BGM소리때문에 나레이션이 하나도 머리에 안 들어옴
돌격선이니까 그에 맞는 고증이 필요하죠~
판옥선을 기본으로 들이받아버리는 구조로 개조를 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거북선의 고향은 절라도 여수 근처다. 여수 근처 3곳 조선소에서 각 1척씩 건조했다. 이게 임진 정유재란 왜침에 대항한 유일한 거북선 고향이고 완성 되고 훈련 된 곳이다. 거북선을 설계 건조한 지휘관은 절라도 나주 출신 나대용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아는 대한민국 국민은 드물다. 여수 조차 거북선을 복원, 가치 제고, 홍보 등에 소극적이다.
이순신 장군의 군 기지가 여수요, 거북선 고향은 여수다. 여수 관청은 거저 거북선 모형 몇 개 만들어 놓고 끝이다.
모형이라도 바다에 띄울 생각은 전혀 안 한다. 사고 날 깜이. 소극적이고 복지부동 철밥통 관료들이다. 오히려 원균의 본거지 경남 통영이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관광용으로 활용한다. 잘 못 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제대로 복원된 거북선 복원 됬으면 좋겠네요.
취재의뢰 합니다 요즘에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못가는데... 이러다가 계속 연기가 되면 어떡해 되나요? 궁금합니다
거북선을 제대로 복원했으면 좋겠네요. 지자체 하나가 제대로 돈을 써서
요약하자면 "이순신과 임진왜란" 이란 책에 있는 내용이 맞다는 말씀. 3층구조이고 용머리는 연기나는 굴뚝이 아니라 포를 쏘기 위한 것이고, 그 아래쪽에 적선과 충돌(직충)전을 위한 약 2미터 가량의 거대한 창(도깨비머리 모양)이 설치되어 있었음. 예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거북선이 기록에 남아있는 실제모습과 유사한데, 문제는 그 거북선은 도깨비머리 모양의 충돌을 위한 돌기가 없었다는 게 아쉬움. 왜냐하면 거북선은 적진 깊숙히 들어가서 함포사격과 충돌전(직충전)을 감행한 돌격선인데, 그것을 위해 설치한 중요한 장치가 바로 도깨비 머리 모양의 래밍임. 따라서 이것을 재현하지 못한 것은 거북선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놓친 것임. 그런 면에서 현재 재현되어 전시되고 있는 거북선들은 제대로 재현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그냥 쓰레기들 임. 여기서도 지적하듯이 만들면서 실제로 노 저으면서 포도 쏴보고 자료도 좀 제대로 찾아보고 해서 언젠가는 제대로 복원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3층 배를 만들 기술이 있었나요?
@@朝鮮帥 응
@@朝鮮帥 네 목조 배하나는 기가막히게 만듬 그게 멀리 향해용 이니라서
배의바닥면이있고 이부분은 수면이하로잠계있음.
바다에서 띄워서 2층을만들고
이곳에 격군이거주하며 노를젖게
되어있음
다시한층을 더만들어 갑판이되며
이곳에 군사들과 함포들이 배치되어있음
따라서 바다층.격군층.갑판층해서 3층이되는것임
@@朝鮮帥 판옥선 자체가 1층 선저, 2층 노젓기, 3층 포와 활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로만 이순신의 후예 이러지 말고 해군에서 한번 총대 메보자
@@역지사지-u4e 어르신이야말로 꼰대가 아니신지 좀 반성해보시지요ㅋㅋ
낭비 일수도 있지만 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아..댓삭되서 내용이궁금해..쩝.
@@watakinzz11 얼마나 꼰대스런 댓글이였길래 꼰대라는 말에 삭제했을까...
ㅋㅋㅋㅋ 또 보나마나 세금낭비무새들이 짖어대겠지
취재 의뢰합니다.
저상 버스에는 뒷문에(앞문에도) 노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사슬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요?
저의 생각은 아무 역할도 하지도 않는데 저상버스가 주행하면 플라스틱 사슬이 덜렁덜렁 거려서 거슬립니다...
따라서 저상버스의 노란 사슬은 무슨 역할을 하는건가요? 취재 의뢰합니다.
아마도 안전선 역활을 하지 않을까요?
해당위치는 문이열리면서 뒤집히는곳입니다. 우리가 아는형태로 문이 열리지않고 저상버스의 출입문은 바깥쪽으로 뒤집혀서 열립니다. 거기에서있으면 다치게되니 노란안전사슬로 서있지 못하게 합니다.
@@박준서-b1e 안전선입니다.
안전선 이랍니다..!
문을 여닫을때 그위치가 위험하니 그자리에 있지 말라는 겁니다
제대로 고증된 거북선 궁금하긴 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맞아요. 세끼부네는 함포 발사하면 배가 흔들려서 걍 돌격선이었다고 하죠.
교수님 말씀처럼 포격선은 그 용도에 맞게 설계부터 다를 겁니다
글구 왜나라 정권의 지속으로 문화재 복원에 의지가 없었던 것도 가슴아픈 사실이죠..
계절 온도 습도 날씨 시간에 따라 집밖에나갔을따 냄새가 다른데 뭔가요?
ㅠㅠ
거북선의 화포 배치도
용두: 현자포
용두 양 옆 쪽: 지자포 2개
용두 쪽 층의 옆면 벽: 황자포 12개
용두 쪽 층의 뒷면: 현자포[용두 화포와 동일] 2개
아래 층 정면 및 전면부: 천자포 2개
사용 및 활용된 화포 총포 종류: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 총통
김박사는 로보트 태권브이를 분해해서 우주전함 거북선을 만든다 하지만 우주전함 거북선이 적에게 피격당하자 거북선 앞부분이 열리면서 여러 부분으로 나눠진 태권브이가 합체되면서 적을 조져버리는 그만화영화가 생각난다.
취재의뢰 할게염
아침에 눈을떴을때 눈에 뭐가 껴있는느낌이 나고 눈엔 아무것도 안껴잇던데 그건 먼가요
뭐가 둥둥 떠다니죠? 눈이 눌려서 그래요.
눈곱인데 눈물에 녹은거임
@@dakakimasao 왜 녹은 건 가요?
댓글에 취재의뢰만 가득하고 영상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댓글 보기가 좀 그러네용ㅇ;(
혹시 이메일 같은 것으로 취재의뢰를 받거나 하는게 어떠신지오? 아니면 게시판을 파거나,투표기능 있는 뭔가를 하거나,,,
그럼 뭔말을 더 해야..
시비는 아니지만 기분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맞아요
영상에 대한 내용이 있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Yamagata_Akazonae 앗 지금 보니까 댓글을 잘못썼네용ㅋㅋㅠ 영상에 관한 내용의 댓글이 없어서 좀 그렇다고 말할라 했습니당
결론 : 저 정도의 공식적인 자료로는 진짜에 가까운 복원 불가능..
최대한 과학적으로 그 시대의 과학기술로 생각해 한다해도 불가능..
즉... 현재 재현된 거북선이 진짜와 10프로 비슷하다고 하면...
위 영상처럼 최대한 실제로 바다에서 각종 테스트를 해서 구현한다해도 절대 50프로를 넘지 못할 근본적인 문제로 보임.. => 별 의미없다 판단됨.
그냥... 있는 그대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현재 자료는 겨우 요정도 이다.. 라고 교육하면 될듯.
이전에는 없던 워낙 실험적인배가 실전배치된거라 여러가지 버전이 있었을거 같긴하다.
0:53 저건 배 2개로 위의건 해골선. 밑의건 돛대가 접혀있는 상태에서 지붕으로 덮여있는 거북선같음.
진짜....웅장이 가슴해진다......
모양이 달라도 이순신장군님은 변함없이 대단하시다
포 쏘고나서 포연 생기는거 때문에 연기로 왜곡 된 걸수도 있겠네요.
용 머리는 앞으로 들락날락랬데요 명랑 영화 마지막처럼요! 쿠쿠
현자총통 보다는 불량기포가 더 실용적이고 편리할거라 봅니다
돌격선은 앞이 뾰족해야하는데 그림보니까 맞네요. 현재 복원된건 앞부분이 네모로 되어 있어서 돌격하기 어렵죠
기록의 나라 조선인데, 왜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없을까...
운전면허시험 주행중에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배상 책임
보험드니 그냥 일반 차대차 혹은 차대인 사고라 보면....될듯??
주행시험 다시봐야져~
저 그림은 제가 추측하기에 상판 즉 용두와 상판갑 부분을 운반하기 위해 다른배에 실어서 옮기는 과정에서 그려진 그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님 종가에서 내려오는 거북선 그림이 있고 1920년대 엘리자베스 키스의 이순신 장군초상화로 추정되는 그림의 인물 뒷편 병풍의 거북선도 있구요 19세기의 수군조련도 에도 거북선의 모습은 남아 있습니다.비록 수세기가 지났지만 거북선의 기본 형태는 바뀌지 않았을 듯 합니다.
거북선은 가로폭에 대하여 세로가 짧고, 선형성이 나쁘고, 속도가 일본선의 절반 이하인 것이 재현 실험에 의해 판명되고 있다. 카약과 고무 보트의 차이입니다. 즉 적의 배에 충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느리기 때문에 충돌해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천장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번 대포를 쏘자 연기가 선내에 충만해 선원이 질식했다. 거북선은 결함선이다.
원래 거북선의 개요 기술은 오래된 문헌에 있지만 전투에 참가한 기록은 조선측에도 일본측에도 없다. 거북선의 전투 장면을 날조한 것은 이승만이다. 한국인은 바보이므로 여기서도 이승만에 속아있는 것이다. 재미 있습니다.
차사고가 나면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보험으로 처리하는데 보험직원들은 왜 백퍼처리는 없고 꼭 과실을 매기는지 궁금합니다.
이순신장군은 세계최고 장군
아 용머리에서 대포가 나갔구나..
난 불이 나가는지 알았는데 유황가스도 처음 알았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나 아줌마들은 카톡 문체나 sns상 문자언어가 획일화 돼 있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저씨들은 말 중간중간 ,,,을 붙히고 아줌마들은 ~~~~^^을 붙히는데 이유가 궁금해요!
@노알라 Wls
@@용산역환승통로 Wls
이건 조선초기 나무 거북선이잖아요.
조선후기 거북선은 다른거죠.
조선초기를 참고로 화학무기에 더 효율적으로 개선한 것이 진짜 거북선이죠.
거북선은 목선 입니다 . 등위에 쇠창살 같은것 나와있는것 말고는 전부목제인데 철갑선 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해군 박물관 자료에도 12센치 소나무라 되어 있어요
화약무기...
@NAL DAWSON 철갑의 뜻을 모르나? 지붕만 철갑을 둘러도 철갑선이야
@@parkbomgsu 지붕에 철갑 두른건 생각안함?
(취재 의뢰 합니다.)
대장정을 거치는 카레이서는 허기,목마름,대소변은 어떻게 해결 하는지
해결은 하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