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언제나 자기 생의 한가운데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생을 접는다고 봐요^^ 생이란 특별한 것도 대단한 것도 그리 가치로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죽을 때쯤(가운데에서 빠져 나갈 때 쯤)이면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우리는 가운데에서 혼란을 겪지 않나요. 가운데에선 전체를 보지 못하니까....ㅋ '귀가쁘게' 듣다보니 몇번씩 나누어야 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뮌헨이 나오면 그냥 친근감이 생겨요^^
읽은 소설이 분명하고 너무나 유명한 책이라 뛰어넘겨 듣지 못했나봅니다. 에 다시 듣는 ... 들으며 내 얘기도 소설이 되겠나? 너무 밋밋한 삶이? 더 어려운... 언제 용기내어 써보리라... 용기??? 슈타인이 나? 잘 정리해주셔서 저장해두고... 용기에 독려로 해머질할 수 있게... '지버릇 개 못준다.' 개에게라도 줘볼 생각으로.... 조언? 충고? 감사합니다.
김세라 작가님의 리뷰는 숨넘어가는 듯한 속도감 속에서도 그 작품의 핵심ㆍ정곡을 짚어내는 마력에 빨려 들어가는 걸 항상느낍니다. 바쁘셨는지 오랜만에 영상을 올리셨군요? 먼저 문후 올립니다ㆍ 장마에 존체강녕하신지요? ^^ 이 작품은 제목이 '에세이' 분위기를 풍기게 네이밍해서 참 신선하네요. 마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ㆍ 들어볼래?" 하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풀어가는 에세이 형 필체군요. 먼저, 저는 개인적으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인 만큼, 상황설정에 나오는 '나치' 이야기를 '배경'으로 보고 니나와 쉬타인의 어긋난 사랑을 주제(연애소설)로 보고 니나의 어릴 때부터의 애정결핍과 쉬타인의 지나친 자존감과 용기 부족한 성격으로 인한 '어긋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보면 김세라 작가님의 마무리 해설은 외람되오나 너무 훌륭하신 해설이시고요^^ 한편, '나치'를 '배경'이 아닌 '전경'으로 삼아 크로즈업시키면, 1930년대부터 1945년 나치 패망 때까지의 독일 시대 상황 속에서 니나의 사회활동과 쉬타인의 나치 가입 목적과 그가 실제 행한 반정부 활동ㆍ나치 하의 반정부인사들을 망명시킨 용감한 행동들을 재평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옥석도 구분하지 않는 '입당서 제출 기준'으로 친나치로 모는 게 합리적이냐는, '사실상 정견'을 소설 형식으로 발표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루이제 린저의 성향으로 보아 후자로 해석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푸시킨도 오랜 지방 유배와 검열을 겪다 '반성문'과 '각서'까지 쓰고 풀려나 작품을 다시 쓰게된 시기에 쓴 '대위의 딸'은, 또 '반정부 작가'로 찍히면 작품활동은 커녕 목숨도 담보할 수 없는 전제군주시대에 '연애소설'로 위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자 주인공을 '표트르'로 네이밍한 건, 표트르 대제 시대를 동양의 '요순시대'로 상정한 설정이고, 여주인공을 '마리아'로 네이밍한 건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키도록, 즉 여권신장이 시대 조류라는 메시지와 함께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각 장점을 살려서 러시아의 개혁을 해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장치로도 보입니다. 표트르와 마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사는 설정으로 그런 메시지를 더 한층 분명히 한 것이구요^^ 특히 군인으로 출세하려던 표트르를 과감히 전역시켜 예카테리나 여제의 축복 아래 고향으로 보내버리는 설정으로써 '군인으로 출세하던 시대의 종말'을 묵시록처럼 드러낸 설정이라 할 것입니다^^ 오랫 동안 작가가 미상으로 전해 왔던 춘향전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 출신 의병장 조경남 장군으로 몇년전 학계에서 공인되었다고 합니다. 춘향전은, 김덕령 장군 등 의병장들이 선조의 칼날에 역모죄로 줄줄이 주살되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콱, 엎어버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써서 의도적으로 이름을 숨기고 퍼뜨린 사회개혁소설이라고 합니다^^ 춘향전도 '연애소설' 형식을 빌어 씌여있죠. 실제 있었던 사실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도령이 실은 성도령이라고 합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성 씨를 이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푸시킨의 심정도 그러했을 겁니다. 대위의 딸은, 4년에 걸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집필에 4년이 걸렸을리는 없고, 지인들이 "발표하면 역모죄로 죽일 것이다~" 등 반대가 많아서 고치고 또 고치고 첨삭하느라 지체되었을 겁니다. 중세의 끝자락을 살았던 단테의 경우도, 신곡을 16년 동안 교황 측과 복권을 두고 실랑이 하면서 정치적 변수에 따라 고치고 또 고치고 ~ 공화파가 득세하면 또 고치고, 교황 측에서 '반성문 쓰라"니까, "그럼 ×× 싫다"고 버티고 그러다 죽기 직전에 "교황을 지옥에보내는 설정으로 끝내고" 복권도 다 포기하고 마무리짓고 죽었기에 신곡이 르네상스의 신호탄이라고 칭송받게 된 거지, 대작을 쓰느라 16년 씩이나 걸렸던 게 아니었던 것과 유사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상으로의 '복직' 목적으로 군주론을 써서 바쳤듯이, 원래 단테는 교황을 위한 용비어천가로 '신곡'을 구상했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일제 시대 작품들도 감안해야지 않을까요? 50보100보 이론에 따르면,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다 친일반민족행위 아닐까요?^^ 농사 지어서 공출 당한 자체가 2차 대전 일본 군대 군량으로 들어가는 줄 뻔히 알면서 안 주면 죽일까 봐 내준 것도 친일반민족행위 아닐까요? ~~ 일제 시대 친일 작가로 가장 미움을 받았던 최남선. 이광수 등은 빼박으로 찍혔지만 그들의 제자와 지인들이 권력과 학계에 철옹성처럼 포진해 있었기에 이광수. 최남선이 친일로 찍히면 그들도 졸지에 친일분자 제자가 되니 만큼 차라리 50보나 100보나 마찬가지라는 맹자의 이론에 따라 친일 글 하나만 신문에 기고해도 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해 버리는 바람에 우리 자식들은 졸지에 친일판민족행위자들의 글을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의식을 루이제린저는 ' 독일 나치 시절'에 비추어 이 작품을 쓴 듯 보입니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에 대해서도 소련 공산 치하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푸시킨이 전제 군주정 시절에 '애정 소설'로 위장하지 않았더라면 '푸가초프반란'?이라던가요, 그 민란의 실상 일부나마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기에 불가피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있다는군요. 의병장 조경남 장군이 춘향전에다 김덕령 장군을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색출해서 3족을 멸하지 않았을까요?^^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작품을 비롯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유명 작품 속의 '자살' 또는 '죽음'이란 설정에 대해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사실 작품 속의 주인공 또는 주연급의 등장인물이 자살 또는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설정은 의외로 역사가 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 실은 구약 성경에 '느부갓네살'이라 하는, 바벨탑을 세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대왕 네부카드네자르2세 때로 올라갑니다. '주인공의 자살'이 역사적으로 '소설, 연극' 등 문학 작품을 통해 대박을 안겨주는 소재가 된 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알려져 있었고, '베르테르 효과'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실은 '주인공 자살'이란 작품의 역사적 연원이 최소한 수천년에 이른단 거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소설도 안나 카레니나가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데, 톨스토이가 소설 제목을 주인공 이름으로 그것도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건 다분히 괴테를 의식한 것이고.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로 나타난 작품이면서도 자신이 괴테보다 못 할 것도 없다는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당대 러시아와 독일이 '한ㆍ일관계' 마냥 경쟁국 입장이었기에 나라간 자존심 대결 심리도 서로 크게 작용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또한 작가 개인 입장에선 작품의 '극적효과'를 통해 그 작품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켜 '판매부수 늘리기' 광고 기법으로 '주인공의 자살'을 활용하는 글쓰기 작법이 고대부터 수천년 이상 꾸준히 애용되어온 면도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작품 속의 (여)주인공 '자살' 또는 '죽음'은 그 작품 작가의 '판매부수 늘리기 비즈니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손한? 생각이 드는 건, 제 착각일까요? 젊은, 무명의 괴테를 일약 세계적인 명사로 만든 '베르테르의 자살'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벤치마킹' 하고픈 '베르테르효과'였을 터~ 톨스토이도 안나 카레니나의 자살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던 '역사적 사실'을 볼 때, 괴테 이후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베르테르 효과' 글쓰기 기법도 충분히 조명해 볼 만한 연구 소재가 되겠단 생각이 듭니다 ^^ 암튼 이 작품은 니나와 쉬타인이란 두 남녀를 대표로 하는, 나치 독일 당대의 평균적 내지 그래도 중류층 소시민들이 다 나치에 충성했던 거 아니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먼저 돌로 쳐라"는 식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라 해석됩니다~^😍^
물론 어떤 작품이란 작가의 집필의도와는 별도로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라지만, 그러니 '연애소설'로 보고 또는 성장소설 류로 보고 독자들이 사줘야 작가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도 반영된 거 아닐까요? ^^ 루이제 린저 작가가 제목 '네이밍'을 '생의 한 가운데'로 정한 거라면ㅡ 출판사가 작가의 의도와 달리 판매부수를 늘릴 목적으로 네이밍에 개입하기도 하지만(예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ㅡ, 나치 협력자 명부 지정에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했던 듯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 이 작품 속의 니나는 루이제 린저 본인을 모델로 한 듯도 보입니다마는~^^ "인생은 모래시계도 아니더라~"는 김세라 작가님의 마지막 평은 👍👍👍👍👍👍👍시네요~^💓^
20번째 이야기~^^
예전에 읽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이었는데 그때의 나와 몇 십 년이 지나서 다시 들었을 때 느끼는 느낌은 사뭇 다르네요
기억의 소멸도 한 몫 하겠지만요~
좋은 글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런 다른 느낌 자주 경험해요. 몇년후엔 또 다르겠죠♡♡
감사합니다. 인간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개개인 모두 다를듯 ^^^ 남들에게 선을 베풀면 행복해지는 사람. 군림함으로써 희열과 쾌감을 가지는 사람 등등 ~~~~~
★ 우리가 사는 동안 늘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울 알았습니다 ★
그쵸.
그래서 사는건 좋은것도 그렇지 않은것도 다 겪어야하는가 봅니다.♡♡
"왜 제목이 생의 한 가운데일까?" 생각했었는데 세라씨 덕분에 우리는 사는 동안 늘 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라는 뜻이구나 라고 이해하게 됐어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하구 공감해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
편안한 삶보다는 치열한 삶이 낫죠. 남.주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생각해요. 19:35
그쵸.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렇다는걸 알게되곤해요♡♡
오늘도 좋은 작품 접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최고에요~~~♡
🔮🔮🔮👍🏻👍🏼🤞🏿
😊🍟정~말 주옥같은 작품입니다.
😮다소 이해력이 더디지만 그만큼
여러번 들어두어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겁니다.
옛 작가님들의 정신.얼.창작력들에
감히 경의를 표하고싶어요
고마워요^^ 쭉 정진할게요~~
어릴 때 뭔가 하고 읽다가 뭔지 몰라 덮었던 소설인데 요즘 이 게르만 사람들 글에 끌려 읽어야할 글 같아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선생님의 짙은 전달력도 너무 좋으며. 마지막 부분의 작품 해설(♡) 과 설명은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
고마워요.
우리 쭉 같이 가요♡♡♡♡
늘 감사합니다 선생님 ♡
감사합니다♥️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자기 생의 한가운데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생을 접는다고 봐요^^
생이란 특별한 것도 대단한 것도 그리 가치로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죽을 때쯤(가운데에서 빠져 나갈 때 쯤)이면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우리는 가운데에서 혼란을 겪지 않나요. 가운데에선 전체를 보지 못하니까....ㅋ
'귀가쁘게' 듣다보니 몇번씩 나누어야 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뮌헨이 나오면 그냥 친근감이 생겨요^^
오늘도 좋은 내용 잘 들었습니다!
읽은 소설이 분명하고 너무나 유명한 책이라 뛰어넘겨 듣지 못했나봅니다. 에 다시 듣는 ... 들으며 내 얘기도 소설이 되겠나? 너무 밋밋한 삶이? 더 어려운... 언제 용기내어 써보리라... 용기??? 슈타인이 나?
잘 정리해주셔서 저장해두고... 용기에 독려로 해머질할 수 있게...
'지버릇 개 못준다.' 개에게라도 줘볼 생각으로.... 조언? 충고?
감사합니다.
샤춘기 때 독서에 빠졌던 책들의 요약을 다시 들으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 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학생시절에 읽었던 책인 것같은데...
작가님 목소리로 듣다보면
제가 책을 읽고있는 것처럼 빠져드네요
좋은내용 감사합니다 ^^
목소리도 좋고 읽으시는 문장도 전달력이 좋네요
잘 들었습니다
좋으셨다니 제가 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니나붓슈만과 슈타인의 처절한 만남과 망설임,
지독한사랑인지, 고통인지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으로
아직도 그들의 고뇌는 현재 진행형ᆢ
공산이론은 화려해서 많은자를속이지만 인간은 의롭거나 정의롭지못한 한결같은 속물ᆢ 철없는 여자땜에 많은인생들 선동당햇네 ᆢ
생의 한가운데를 언제나 관통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 깊이 와 닿네요.
감사합니당
소설의 제목으론, 특이하군요^^
김세라 작가님의 리뷰는 숨넘어가는 듯한 속도감 속에서도 그 작품의 핵심ㆍ정곡을 짚어내는 마력에 빨려 들어가는 걸 항상느낍니다. 바쁘셨는지 오랜만에 영상을 올리셨군요? 먼저 문후 올립니다ㆍ 장마에 존체강녕하신지요? ^^
이 작품은 제목이 '에세이' 분위기를 풍기게 네이밍해서 참 신선하네요. 마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ㆍ 들어볼래?" 하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풀어가는 에세이 형 필체군요.
먼저, 저는 개인적으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인 만큼, 상황설정에 나오는 '나치' 이야기를 '배경'으로 보고 니나와 쉬타인의 어긋난 사랑을 주제(연애소설)로 보고 니나의 어릴 때부터의 애정결핍과 쉬타인의 지나친 자존감과 용기 부족한 성격으로 인한 '어긋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보면 김세라 작가님의 마무리 해설은 외람되오나 너무 훌륭하신 해설이시고요^^
한편, '나치'를 '배경'이 아닌 '전경'으로 삼아 크로즈업시키면, 1930년대부터 1945년 나치 패망 때까지의 독일 시대 상황 속에서 니나의 사회활동과 쉬타인의 나치 가입 목적과 그가 실제 행한 반정부 활동ㆍ나치 하의 반정부인사들을 망명시킨 용감한 행동들을 재평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옥석도 구분하지 않는 '입당서 제출 기준'으로 친나치로 모는 게 합리적이냐는, '사실상 정견'을 소설 형식으로 발표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루이제 린저의 성향으로 보아 후자로 해석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푸시킨도 오랜 지방 유배와 검열을 겪다 '반성문'과 '각서'까지 쓰고 풀려나 작품을 다시 쓰게된 시기에 쓴 '대위의 딸'은, 또 '반정부 작가'로 찍히면 작품활동은 커녕 목숨도 담보할 수 없는 전제군주시대에 '연애소설'로 위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자 주인공을 '표트르'로 네이밍한 건, 표트르 대제 시대를 동양의 '요순시대'로 상정한 설정이고, 여주인공을 '마리아'로 네이밍한 건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키도록, 즉 여권신장이 시대 조류라는 메시지와 함께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각 장점을 살려서 러시아의 개혁을 해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장치로도 보입니다. 표트르와 마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사는 설정으로 그런 메시지를 더 한층 분명히 한 것이구요^^
특히 군인으로 출세하려던 표트르를 과감히 전역시켜 예카테리나 여제의 축복 아래 고향으로 보내버리는 설정으로써 '군인으로 출세하던 시대의 종말'을 묵시록처럼 드러낸 설정이라 할 것입니다^^
오랫 동안 작가가 미상으로 전해 왔던 춘향전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 출신 의병장 조경남 장군으로 몇년전 학계에서 공인되었다고 합니다. 춘향전은, 김덕령 장군 등 의병장들이 선조의 칼날에 역모죄로 줄줄이 주살되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콱, 엎어버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써서 의도적으로 이름을 숨기고 퍼뜨린 사회개혁소설이라고 합니다^^
춘향전도 '연애소설' 형식을 빌어 씌여있죠. 실제 있었던 사실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도령이 실은 성도령이라고 합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성 씨를 이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푸시킨의 심정도 그러했을 겁니다. 대위의 딸은, 4년에 걸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집필에 4년이 걸렸을리는 없고, 지인들이 "발표하면 역모죄로 죽일 것이다~" 등 반대가 많아서 고치고 또 고치고 첨삭하느라 지체되었을 겁니다.
중세의 끝자락을 살았던 단테의 경우도, 신곡을 16년 동안 교황 측과 복권을 두고 실랑이 하면서 정치적 변수에 따라 고치고 또 고치고 ~ 공화파가 득세하면 또 고치고, 교황 측에서 '반성문 쓰라"니까, "그럼 ×× 싫다"고 버티고 그러다 죽기 직전에 "교황을 지옥에보내는 설정으로 끝내고" 복권도 다 포기하고 마무리짓고 죽었기에 신곡이 르네상스의 신호탄이라고 칭송받게 된 거지, 대작을 쓰느라 16년 씩이나 걸렸던 게 아니었던 것과 유사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상으로의 '복직' 목적으로 군주론을 써서 바쳤듯이, 원래 단테는 교황을 위한 용비어천가로 '신곡'을 구상했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일제 시대 작품들도 감안해야지 않을까요? 50보100보 이론에 따르면,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다 친일반민족행위 아닐까요?^^
농사 지어서 공출 당한 자체가 2차 대전 일본 군대 군량으로 들어가는 줄 뻔히 알면서 안 주면 죽일까 봐 내준 것도 친일반민족행위 아닐까요? ~~ 일제 시대 친일 작가로 가장 미움을 받았던 최남선. 이광수 등은 빼박으로 찍혔지만 그들의 제자와 지인들이 권력과 학계에 철옹성처럼 포진해 있었기에 이광수. 최남선이 친일로 찍히면 그들도 졸지에 친일분자 제자가 되니 만큼 차라리 50보나 100보나 마찬가지라는 맹자의 이론에 따라 친일 글 하나만 신문에 기고해도 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해 버리는 바람에 우리 자식들은 졸지에 친일판민족행위자들의 글을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의식을 루이제린저는 ' 독일 나치 시절'에 비추어 이 작품을 쓴 듯 보입니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에 대해서도 소련 공산 치하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푸시킨이 전제 군주정 시절에 '애정 소설'로 위장하지 않았더라면 '푸가초프반란'?이라던가요, 그 민란의 실상 일부나마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기에 불가피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있다는군요. 의병장 조경남 장군이 춘향전에다 김덕령 장군을 언급이라도 했더라면 색출해서 3족을 멸하지 않았을까요?^^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작품을 비롯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유명 작품 속의 '자살' 또는 '죽음'이란 설정에 대해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사실 작품 속의 주인공 또는 주연급의 등장인물이 자살 또는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설정은 의외로 역사가 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의 원형은 실은 구약 성경에 '느부갓네살'이라 하는, 바벨탑을 세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대왕 네부카드네자르2세 때로 올라갑니다.
'주인공의 자살'이 역사적으로 '소설, 연극' 등 문학 작품을 통해 대박을 안겨주는 소재가 된 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알려져 있었고, '베르테르 효과'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실은 '주인공 자살'이란 작품의 역사적 연원이 최소한 수천년에 이른단 거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소설도 안나 카레니나가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데, 톨스토이가 소설 제목을 주인공 이름으로 그것도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건 다분히 괴테를 의식한 것이고.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로 나타난 작품이면서도 자신이 괴테보다 못 할 것도 없다는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당대 러시아와 독일이 '한ㆍ일관계' 마냥 경쟁국 입장이었기에 나라간 자존심 대결 심리도 서로 크게 작용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또한 작가 개인 입장에선 작품의 '극적효과'를 통해 그 작품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켜 '판매부수 늘리기' 광고 기법으로 '주인공의 자살'을 활용하는 글쓰기 작법이 고대부터 수천년 이상 꾸준히 애용되어온 면도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작품 속의 (여)주인공 '자살' 또는 '죽음'은 그 작품 작가의 '판매부수 늘리기 비즈니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손한? 생각이 드는 건, 제 착각일까요?
젊은, 무명의 괴테를 일약 세계적인 명사로 만든 '베르테르의 자살'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벤치마킹' 하고픈 '베르테르효과'였을 터~
톨스토이도 안나 카레니나의 자살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던 '역사적 사실'을 볼 때, 괴테 이후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베르테르 효과' 글쓰기 기법도 충분히 조명해 볼 만한 연구 소재가 되겠단 생각이 듭니다 ^^
암튼 이 작품은 니나와 쉬타인이란 두 남녀를 대표로 하는, 나치 독일 당대의 평균적 내지 그래도 중류층 소시민들이 다 나치에 충성했던 거 아니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먼저 돌로 쳐라"는 식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라 해석됩니다~^😍^
생의 한가운데ㅡ 전혜린
고등학교 때, 매혹을 느꼈던 작품과 번역가이네요.
반갑게 잘 들었습니다.
물론 어떤 작품이란 작가의 집필의도와는 별도로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라지만, 그러니 '연애소설'로 보고 또는 성장소설 류로 보고 독자들이 사줘야 작가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도 반영된 거 아닐까요? ^^
루이제 린저 작가가 제목 '네이밍'을 '생의 한 가운데'로 정한 거라면ㅡ 출판사가 작가의 의도와 달리 판매부수를 늘릴 목적으로 네이밍에 개입하기도 하지만(예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ㅡ, 나치 협력자 명부 지정에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했던 듯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
이 작품 속의 니나는 루이제 린저 본인을 모델로 한 듯도 보입니다마는~^^
"인생은 모래시계도 아니더라~"는 김세라 작가님의 마지막 평은 👍👍👍👍👍👍👍시네요~^💓^
너무 어려워요
화이팅 보냅니다.
화이팅으로 3번 다시 들었는데
모르겠어요
담에 시간되면 다시한번 봐야겠네요
나의 언어 결핍이 발목을 잡아서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