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향이 구파발입니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초등학교는 사라져서 과거의 풍경은 모두 없어 마음속에서만 간혹 그 풍경을 그리게됩니다. 가곡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좋은 사람들이 힘을 갖어 세상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주인장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굽어살피시어 나그네들의 입장을 헤아려주시기를 모두가 기도하며... 다들 행복하세요~~~
가끔 고향 생각날 때면 듣는 곡인데 오늘 따라 새벽 잠에서 깨기도 전에 이 노래 선율이 마구 떠올라 귀가에 맴맴 돌았다. 어머니 생각, 고향 생각 곡의 선율이 슬프지만 가슴을 적힌다. 아내는 슬픈 곡은 애써 피하는데, 인간이 원래 희노애락의 감정을 갖고 있으니 슬픔은 슬픔 대로 기쁨은 기쁨 대로 마음을 정화시켜 주니 감사할 따름.
고3까지 줄기차게 교복을 입어야만 했던 고향의 62년 범띠 친구들..... 중학교 다닐 때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녔는데, 보리밭에서 여학생과 찍은 사진은 없지만 하교 시 같이 과일 서리하던 추억은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 가고 싶으나 갈 수 없는 추억 속의 여학생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하며 살고 있을까...
91년도 안동에 홍성자 음악선생님. 음악책에 거의 모든 노래 다 가르쳐주심^^; 덕분에 시골에 없이 살았어도 왠만한 교향곡과 가곡은 다 알게됨. 나중에 알아봤더니 이런 클래식의 선율들이 우리의 정서를 맑게 하고 두뇌를 발달시키고 결국은 공부도 잘 되게...아~ 옛날에 말썽쟁이들도 음악시간만되면 즐겁게 노래불렀던 기억이 ^^;;;
저는 나주인데 배 과수원을 하다 보니 인정 많으신 어머니께서 수확 철되면 객지에서 은혜입고 고마운 분들에게 한상자 씩 선물해 주고 아이들과 푸짐하게 먹으라고 한트럭 씩 보내 주시곤 하셨는데 그 고향이 노무현대통령 시절에 혁신도시로 풀려 지금은 고향이 다 수용되고 없었졌네요 어린시절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오늘 따라 문득 현제명의 고향생각이 나서 들어보니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적셔오네요~ 올 10월이면 2년이 다가오는데 이제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려고. 하니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 지금 살던 집은 어머니께서 살아생전에 일년에 두어번정도 오셨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데 꿈속에서 그 곳으로도 찾아오실지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어요~~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보니 노래 가사가 선뜩 지나가네요~~ 누구나 다 옛 추억을 먹고 살아가지요~~
중 고등학교 시절 가곡을 부르며 감상에 젖었던 추억이 있고 지금도 가곡을 들으면 그때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운데 요즘 너무 어린 아이틀이 트롯에 나와서 어른 흉내 내는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어느정도 나이 제한을해서 그때만 느낄수 있는 정서는 반드시 .그때만 고스란히 느낄수 있기 때문에 너무 아이 어른으로 만들어 돌이킬수 없는 후회를 만들지 말았으면 합니다 (보는 분 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정도에 따라 징그럽기 까지 하더라구요 티ㆍ조 에서 좀 참조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1971년 생 51세의 남성 입니다, 이 곡은 황해도 봉산이 고향 으로, 이산 가족 이시자 실향민 이신 저희 아버님 께서 두고 오신 가족 분들이 그리우셔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산 가족 상봉을 기원 하시면서 부르시던 곡이라서, 이 곡을 들으면 아버님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버님 께선 폐 결핵 으로 198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hhducho8818 네. 공산당 에게 이북에서 아오지 탄광 석탄 채굴 노역에 시달리시고, 거기서 공산당에게 모진 폭행에 자주 시달리셨습니다. 6.25 때 이북 고향 에서 인민군에 징집 당하신 아버님은 이북의 가족 분들과 헤이지신 채 인민군으로 강제로 끌려 이남에 오신 저희 아버님 께선 전투 중에 미군에 포로로 잡히셔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 되십니다. 저희 아버님 께선 이북에서 공산당의 모진 만행에 자주 시달리신 일로, 공산당이 싫으셔서 공산 주의 사상을 배격 하시고 우리 나라로 전향 하십니다. 그 일로 인해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 에서 친 공산당 포로들 에게 반동 분자로 몰리신 저희 아버님 께선 친 공산당 포로들 에게 모진 폭행을 당하시면서 머리를 다치신 겁니다. 아버님 께선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 석방 조치로 석방 되셔서 우리 나라에서 살게 되셨으나 이산 가족 이자 실향민이 되신 겁니다. 석방 되신 후, 우리 나라 육군에 다녀 오신 뒤에 오갈 곳이 없었으나 부대 중대장님의 알선으로 경기도 평택에 정착 하시고, 경기도 평택에 사시는 부대 중대장님의 외조부님 댁에 보내지셔서, 10년간 머슴 살이를 하십니다. 1924년 생이신 아버님 께선 1963년 평택에서 저희 어머니를 만나 결혼 하시고 저희 1남 3녀를 두셨는데요. 제가 아버님 48세 때 태어난 늦둥이 막내 입니다. 아버님 께선 이북 에서 공산당 에게 강제 노동과 모진 폭행에 시달리시며 머리를 다치신 데다가, 거제도 포로 수용소 에서 우리 나라로 전향 하시는 일로, 친 공산당 포로들 에게 반동 분자로 몰리셔서, 모진 폭행을 당하신 후유증 때문에, 생전에 간질 증세로 정신을 자주 놓으시고, 기관지 천식에, 두통에 고혈압에, 신경 쇠약에, 류머티즘 관절염에, 전신 신경통에, 울화병이 겹치셨고, 돌아가시기 5년전인 1984년 폐 결핵 진단 받으시고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66세이시던 1989년에 돌아가신 겁니다. 평생 소원 이시던 남북 통일과 이산 가족 상봉의 소원도 끝내 못이루시고 한(恨) 많고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애를 마감 하셨습니다.
Hometown thoughtsThe sun is down, and no one's coming in the dark. Looking at the bright moon makes me feel lonely. Where's my partner sitting here? I can't help but cry when I think about this and that. I'm looking at my hometown sky, and it's just a star-shaking. What am I supposed to say when I see a heartless star? That moon's over the western mountains. I can't get a good night's sleep. Oh, my God.
해는져서어두운데찾아오는사람없었다 13살때엄마돌아가시고시골집엔언니랑아빠랑너무외로웠고슬펐다 겨울이라날씨는왜그리추웠는지 ~~ 찿아오는사람없는조용한산골마을그때가그래도그립습니다 3:22
전 예전이 그립지 않습니다😢
@@pulgacsi지금이라도 행복하시기를 응원드립니다
그 시골집 외로움이 주었던 어린시절
추억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까
세월은 잔인하죠
조용히 찾을 수 없는 궤적을 찾아 가고 싶다
나도 75세 13살 어머니 돌아가시고 얼마나 외롭고 아팠든지.....
나보다 두살많은거
같네요나는요65년에국졸했음다,그때는중학가면 돈을줘야 하기땜에 못갔읍니다,이런노래 들으니까,맘이찡하네요
감샤합니다,그라고
고맙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가 소주한잔한고 읇조리던 노래. 😢
내고향 大邱 떠난지
50여년 부모님의삶의흔적과
나의어릴적추억이 묻혀있는곳
늘 그립고.....
세월이지날수록 더욱그리워지는 고향산천
왜그런지.... 고향 소고기국밥과 소주한잔이.....아....고향이여...
이제 황혼의 인생길에 접어드니 그 옛날에 즐겨 불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그 길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정말 세월이 유수 같군요 나도 젊음이 있었는데 옛학창 시절이 넘 그립군요 ~~^❤
고향!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쿨~부모님도 돌아가시고,가까운 친척도 없어 부모님 산소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어릴적 고향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라~
참으로 인생 무상 함을 느끼게 하는 故鄕생각 입니다.
참 옜날이그립군요. 후회스럽기도하고. 70이. 아직도 소년입니다
저는 고향이 구파발입니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초등학교는 사라져서
과거의 풍경은 모두 없어 마음속에서만 간혹 그 풍경을 그리게됩니다.
가곡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좋은 사람들이 힘을 갖어 세상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주인장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굽어살피시어
나그네들의 입장을 헤아려주시기를 모두가 기도하며...
다들 행복하세요~~~
저두 광주인데 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지고 ㅠㅠㅠㅠ
아 보고싶은 어머니.
새벽녁 꿈속에라도 잠시 찾아주시여 그리움이 덜하게 해주신다면.?
결혼후에 혼자있으면서
해가 지면부모님생각나
이곡을듣고 부르면서 많은 눈물흘렸죠
그런더 어느새 어 느새
육십중반되고 보니 부모님은 내곁을 떠나고 생각날적마다
~~
늙어간다는건 정말 슬픕니다
가끔 고향 생각날 때면 듣는 곡인데
오늘 따라 새벽 잠에서 깨기도 전에 이 노래 선율이 마구 떠올라 귀가에 맴맴 돌았다.
어머니 생각, 고향 생각 곡의 선율이 슬프지만 가슴을 적힌다.
아내는 슬픈 곡은 애써 피하는데, 인간이 원래 희노애락의 감정을 갖고 있으니 슬픔은 슬픔 대로 기쁨은 기쁨 대로 마음을 정화시켜 주니 감사할 따름.
고향 내가태어난 고향 가고싶다 반겨주는이가 없는 고향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셔 반겨주는 이가 없다
나이 많은 분들이 가곡을 들으면서 남겨주신 글들 잘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나네요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고3까지 줄기차게 교복을 입어야만 했던 고향의 62년 범띠 친구들.....
중학교 다닐 때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녔는데, 보리밭에서 여학생과 찍은 사진은 없지만 하교 시 같이 과일 서리하던 추억은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 가고 싶으나 갈 수 없는 추억 속의 여학생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하며 살고 있을까...
내 나이 63살.
나 어릴 적 그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부르던 유일한 노래.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아, 오늘밤 꿈에 찾아와 주셨으면...
🙏💌
오팔년개띠군요
결혼후변해버린아들! 이제남처럼지내야합니다
노래들으며 삶의 슬픔을느낍니다
어렷을적 고향이 재개발되며 주민들도 다 흩어지고 마을도 통째로 사라져버렸네요.
그래서 어릴적추억의 동네를 볼수 없어 더 그립네요.
내고향경북영천 고향떠난 55년. 어릴때친구생각나오 친구야 늙지말고 늘 건강 하오
💌
영천 화산입니다
건강하세요
영천 금호읍 외가 금호국민학교
선배님 영천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화신이라는 곳에 다니다 이번에 퇴직했습니다. 영천 날로 발전합니다..
24.10.25
팔싶이 넘은 이나이도 가곡은 가슴을 찡하게 하네요 11년전에 떠니간 당신이 넘 그립고 보고파요 같이부르던 그리움 이노래을 이제 혼자서듣고 있어요~~~^😢😂😂😂😢😢
저는 1969년. 2월에 고교를 졸업했어요. 하얀 넓은카라의. 여학생이. 무척아름다웠어요. 청춘의흐름속에. 군대갔다가. 갑자기. 세속에. 접어드니. 그시절이그립군요
본인 70년2월에 공고를 졸업했으니 선배님 되시나 반갑구요 많은것 공유 될것 갔습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만 건설회사 를 전전 하다 이제 건강유지 하는 연생을 보냅니다. 좋은 공유가 되시길 바랍니다..~.~,
70세 어름되시나요
저는 60세,
이 노래가 생각나서 찾아왔습니다
그리운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세월은 덧없게 느껴집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으나 허전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지나간 노래나 한 소절 읊조릴뿐ᆢ
나보다 두살많은거같네요 나는국졸만했음다,
중학가면 돈을줘야하 기땜에뭇갔심다,그렇게됐읍니다,,,,,
지금의 농촌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가사
3년후에 답글을 쓰네요 .저는 하얀시트 위에 엿날을 그리네요!
고향은 내 어린시절을 함께하며 그추억을 얘기할수있는 친구가 아닐까요...너무나 그리운..
91년도 안동에 홍성자 음악선생님. 음악책에 거의 모든 노래 다 가르쳐주심^^; 덕분에 시골에 없이 살았어도 왠만한 교향곡과 가곡은 다 알게됨. 나중에 알아봤더니 이런 클래식의 선율들이 우리의 정서를 맑게 하고 두뇌를 발달시키고 결국은 공부도 잘 되게...아~ 옛날에 말썽쟁이들도 음악시간만되면 즐겁게 노래불렀던 기억이 ^^;;;
👍 홍선생님⚘
안동 떠나온지 어언 30년ㅠㅠ
그리운 내고향 어린시절 그추억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네요.
홍성자 선생님은 어느학교일까요? 저는 경안여중 김윤숙 음악선생님이 생각이나네요^^
저는 80년 5ㅡ18때 1년늦게
인천고등학교 1학년에 다녔으나
입시때문에 음악은 거의 교가나
간단한 평가자료만 배웠을 뿐입니다
입시교육이 다양한 예체능교육을 막았습니다
진정한 음악교사
@@땡벌-t6g 안동중학교요. 땡뻐얼~ 나훈아인가요? 강진인가요? 땡뻐얼~ 처럼 꺾으면 대중음악, 그냥 쭉나가면 가곡이라고 하셨어요. "즐거운 나의 집" 그리고 "동무생각" 검색 ㄱㄱ
고향 떠난지 삼십년..
돌아가신 어머님생각에 눈물난다.
80년대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울산에 살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테너 박인수선생님이 부르셔서 메조인 제겐 좀 높아 따라하기가 어렵네요 NZ 이인기
이 분은 엉정행씨 같은데요
그립다..고향도 어릴적 같이 놀던 친구도,,,옛날 모든것이....
한 없이 한이 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내 고향 김제 청하 이렇게 나이가 먹었네요 잃어버린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청하이세요? 우리 아버지 고향입니다. 월현리입니다. 저는 읍내 용동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장곤
정양전 가슴 먹먹해지네요 힘으내시고 살아가셔요 저도 님의 그심정 이해합니다
청하 이시군요~지금도 그곳에서 망둥어도 잡더군요 저는 익산입니다
저는 나주인데 배 과수원을 하다 보니 인정 많으신 어머니께서 수확 철되면 객지에서 은혜입고 고마운 분들에게 한상자 씩 선물해 주고 아이들과 푸짐하게 먹으라고
한트럭 씩
보내 주시곤 하셨는데 그 고향이 노무현대통령 시절에 혁신도시로 풀려 지금은 고향이 다 수용되고 없었졌네요
어린시절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청하....저도 인연이 있어요...신창정미소...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게 되네요...
오늘 따라 문득 현제명의 고향생각이 나서 들어보니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적셔오네요~
올 10월이면 2년이 다가오는데 이제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려고. 하니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
지금 살던 집은 어머니께서 살아생전에 일년에 두어번정도 오셨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데 꿈속에서 그 곳으로도 찾아오실지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어요~~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보니 노래 가사가 선뜩 지나가네요~~
누구나 다 옛 추억을 먹고 살아가지요~~
옛동산에올라!!
노래를 들으면서 님 사연을 보니 눈물이 왈칵나네요.
더 불쌍한 사람 여기 잇습니다
부모가 보고싶지 않은 사람😢
고향이 그리워 듣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아버지 보고싶습니다.사랑합니다 라는 댓글에
난 통곡한다.살아 계실때
왜 못하고
동감입니다
ㅜㅜ
제가 중학생때 배운 노래인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렇게 교양이 있지도 않고 대충 살았던것 같습니다. 나중에 고등학교 올라가서 한국의 가곡을 애호했던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국민학교때 배운 것 같은데..,
가사가 그때 어려운 시절을 너무나 잘 표현 한 듯..😢
우리의 가곡은 언제나 가슴을 시리게합니다
그렇지요.......
너무 좋은 우리 가곡 듣고 갑니다~~~
지금은 현재 고향에있지만 그옛날 서울 살적에 이곳 고향생각할때를 생각하니 눈시울적시웁니다
지금은 도로사정이 좋아서 일년이면 한두번은 내고향 고령운수에를 가지만 어릴적국민학교 4학년에떠나온터...윤종필 잊지못하는 고향친구이름.
고향을 떠나 살다 보니 고향이 그립고 눈물이 납니다~ 저녁 가마귀 갈 풀에 올고 마을 앞 시내 도 옛자리 바뀌었을라 . 누군가의 고향의 글에서
이 가곡을 듣으니 내 고향이 생각이 나네요.... 잘 듣고 보고 갑니다.
중학교 점심시간이면 들려오던 확성기 속 그 노래입니다. 처연하네요.
해는져서 어두운데 며칠째 엘리베이터 교체작업 으로 밖 에 노을지는 하늘만 바라보며
문득 해는져서 어두운데
가곡 이 생각나서 정말오랫만에 들어봅니다
언제들어도고향생각이나서눈물나는우리가곡
방금 노인한분이 이노래 부르면서 동냥하면서 지나가는데 많이 들은 노래인데 제목이 생각 안나서 들은 가사로 찾아보니 고향생각.. 노인분 정말 구슬프게 부르네....
헉 동냥하면서
이런 고상한 노래를
잘 대접해 주시지 그랬어요
귀인입니다
그랫어요?
그 분 봣으면 1만원이라도..,😢
@@pulgacsi 거의다 천원씩 드리는 편입니다 ㅎㅎ
꼭 내 어머니의 처지인 것 같아 인생무상함을 느낍니다.
노래가 너무 좋아요^^
어틸적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노래가 벗이었던 시절, 고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겨울이라 고향생각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김영숙 저도 어머니 생각 납니다 어머님은 언제나 제가 집에올까 싶어서 겨울이면 아랫목에 뜨신밥을 묻어두고 행여나 자식이올까 기다리다 그밥을 꺼내 주시고햇지요 그랫던 그어머님이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니 자주못 찿아뵙고 가슴만 아프네요 불쌍한 어머님
아버님 생각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고향지키던 내사촌 갑장 한집에서
어릴때 같이 컸던
서른에 요절
혼자 조상들 우리아버지무덤까지 풀베던
그애가 죽으니
외롭다
친구같던 내 사촌
밤에 자다가 갑자기 죽었어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 감사 말습올ᆢ
중.고등학교음악시간이생각나는군요가곡을불러볼려고계속듣고있습니다~~^
중 고등학교시절 그냥 부르기 쉬운곡이라
자주 불러보앗지요. 60여년이 지난 지금
들으니까 실감 100% 거기다 먼 타국에서 감정이
풍부한 음성 그 시절의 모습과영상👍82세 남 ☺?😣?
늘 좋은 우리가곡
이일저일을생각하니눈물만 흐른다
네
어떻게 과장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내 심정을 콕 표현해줄까요?😢
동감입니다
공감합니다 세월이란시간이 지나고보니 빨리도갔구나.생각이듭니다
60년전 습관적으로 불으던 노래
지금 이 시간 나의 운명이 되엿네요노래를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이 순간 기쁨과
슬픔의 세계를 오고 갑니다.82세 독일
아.....인생의 황혼길..?
고향이 진짜소중하군요...
경치 너무 좋습니다. 목소리는 박인수 선생님 같은데?
어머님이 그리워 옵니다..이제 어머님이 그리운들 어쩧게 합니다...옛날이 그리워 옵니다...
ㅎ💦 그러나 내 자식들은 제자식들만 챙길줄알지..... 정작 제자신은 부모가 되리라느걸 모르는 것들이 愚昧한 동물들
.; 사람 입니다. 인간이 됩시다. 사람人 사이間
순식간에 흐르는 세월
기꺼이 맞아 즐겨야지
중 고등학교 시절 가곡을 부르며 감상에 젖었던 추억이 있고 지금도 가곡을 들으면 그때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운데
요즘 너무 어린 아이틀이 트롯에 나와서 어른 흉내 내는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어느정도 나이 제한을해서 그때만 느낄수 있는 정서는 반드시 .그때만 고스란히 느낄수 있기 때문에 너무 아이 어른으로 만들어
돌이킬수 없는 후회를 만들지 말았으면 합니다 (보는 분 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정도에 따라 징그럽기 까지 하더라구요
티ㆍ조 에서 좀 참조하시면 좋겠어요
그리운 내고향 정다운고향 너무도그립구나 농소면봉곡동 그리운 내동우들~~~!!
저는 김천황금동 고향입니다 반갑습니다 그시절이그립네요 농소 그시절친구들이 보고싶네요 농소자두가유명하지요 고향떠난지도 44년 고향이그립고
참으로 반갑습니당!^^
@@김인숙-q5k 저는경기도 안양에 살고있어요
농소면 울산이세요?
@@pulgacsi 김천인데요
🍒
지금도 저녁먹고 다리목에 나가 친구들 지달리면 나오려나 ?
내 첫사랑 순덕이는 어디서 나처럼 늙어 갈까..
보고 싶다 순덕아 .
🎶
조종한 순덕이..? 개이름 인가요???
@@sosoo-r4l 야 이 못된 호롯놈아! 나가 꼴랏!
지극쯤 자두꽃이지고 자두열매가 익어가고있을 아름다운내고향 그리운내고향 김천...
고향생각 그리운 옛생각이 나네요
공중파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곡들~~~~~~
고향 어일적 친구 동무들
어느 하늘밑에 사는고 ?
그립고 애달프다 ?
유동춘
중학교때 가을에 논둑에 서서 하모니카로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항상 그립고 가고픈 고향입니다
고등학교때 배운것같습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이번에는 영욱이 생각납니다. 절 많이 생각해주었던 친구입니다. 석준이 생각도 납니다. 내 친구들
해가 뉘엇 뉘엇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동구밖에서 손을 아랫바지 주머니에 넣고 그냥 소리쳐 불러보는 그런 정겨운 가곡 지금도 가끔씩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 그때가 그리워지는 ...
과연 명곡이요 감사합니다
네 감사 말습을 ᆢ
고향은 어머니 픔속 ~~
중학교시절 하모니카로 많이 불렀던노래 ,,음악선생님이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데 정말 좋더군,,,
내고햐믄 경북의성읍
내나이82세지금은어떤지
터난후에가보지못했습니다
노래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지금은 페교가된 봉곡국민학교 15회동창
보고싶구니~ 그리운 동무들아~~~
그시절 그동무가 그리운거랍니다. 꿈많던 그시절. 돌아갈 수없는 그 시절이 그리운것이지요
그때그시절 넘 그리워
돌아가고파라
오늘도 바다에서 고향생각에 듣고 갑니다 .
너무나도 좋습니다.
+HOSEOP KIM 관심을 갖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 순간은 언제나 후회스럽고 더 없는 추억인거 가요ㅡ
Gorgeous !!!
그냥 그리워 하고있어요 동인천역 국화빵 사달라고해서 사주었지 다음에 내가살게하던 어여쁘고 귀여웠던 기집애들 지금은 할망구가 됐지만 그래도 이뿌고 귀여울거에요 이느므 기집애야 국화빵 빗진거 값어! ! ~ ~ ~ 친구들아 건강은 어떠냐 아프지말고 잘지내자 보고싶다 찬란하게 푸르르렀던 우리들에 그시절에 친구들이 보고싶구나
저를 지지해 줬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앞으로 크게 성공할거라고 해줬습니다.
옛생각이납니다가난했지만그때가그립군요오랜친구들다떠나가고잠시나마추억에잠겨봅니다
추억이새록
오늘도 즐거운 생활 로 우리의 삶을 만들가누나?
돌아갈수있어려나 돌아갈수있다면
사랑이있는고향.
옛날 내고향 경북 의흥면 매성2리가 넘무나 생각이 나네
초등시절 이노래들으며 많은 감상에 젖었는데...
고향친구가 그립네
김말녀 고향이 어디신가요?
해마다 3월이면 고향이 그리워요
추억이 깃든
우리 모두의 노래
옛생각나는군요
저는 1971년 생 51세의 남성 입니다, 이 곡은 황해도 봉산이 고향 으로, 이산 가족 이시자 실향민 이신 저희 아버님 께서 두고 오신 가족 분들이 그리우셔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산 가족 상봉을 기원 하시면서 부르시던 곡이라서, 이 곡을 들으면 아버님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버님 께선 폐 결핵 으로 198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일찍 소천 하셨네요. 우리 역사의 비극 입니다
신해생이네요
(ToT)(ToT)(ToT)
@@오뎅국물-q2i 네, 그렇습니다. 코로나 주의 하십시오. 건강 하시길 빕니다.
@@hhducho8818 네. 공산당 에게 이북에서 아오지 탄광 석탄 채굴 노역에 시달리시고, 거기서 공산당에게 모진 폭행에 자주 시달리셨습니다. 6.25 때 이북 고향 에서 인민군에 징집 당하신 아버님은 이북의 가족 분들과 헤이지신 채 인민군으로 강제로 끌려 이남에 오신 저희 아버님 께선 전투 중에 미군에 포로로 잡히셔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 되십니다. 저희 아버님 께선 이북에서 공산당의 모진 만행에 자주 시달리신 일로, 공산당이 싫으셔서 공산 주의 사상을 배격 하시고 우리 나라로 전향 하십니다. 그 일로 인해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 에서 친 공산당 포로들 에게 반동 분자로 몰리신 저희 아버님 께선 친 공산당 포로들 에게 모진 폭행을 당하시면서 머리를 다치신 겁니다. 아버님 께선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 석방 조치로 석방 되셔서 우리 나라에서 살게 되셨으나 이산 가족 이자 실향민이 되신 겁니다. 석방 되신 후, 우리 나라 육군에 다녀 오신 뒤에 오갈 곳이 없었으나 부대 중대장님의 알선으로 경기도 평택에 정착 하시고, 경기도 평택에 사시는 부대 중대장님의 외조부님 댁에 보내지셔서, 10년간 머슴 살이를 하십니다. 1924년 생이신 아버님 께선 1963년 평택에서 저희 어머니를 만나 결혼 하시고 저희 1남 3녀를 두셨는데요. 제가 아버님 48세 때 태어난 늦둥이 막내 입니다.
아버님 께선 이북 에서 공산당 에게 강제 노동과 모진 폭행에 시달리시며 머리를 다치신 데다가, 거제도 포로 수용소 에서 우리 나라로 전향 하시는 일로, 친 공산당 포로들 에게 반동 분자로 몰리셔서, 모진 폭행을 당하신 후유증 때문에, 생전에 간질 증세로 정신을 자주 놓으시고, 기관지 천식에, 두통에 고혈압에, 신경 쇠약에, 류머티즘 관절염에, 전신 신경통에, 울화병이 겹치셨고, 돌아가시기 5년전인 1984년 폐 결핵 진단 받으시고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66세이시던 1989년에 돌아가신 겁니다. 평생 소원 이시던 남북 통일과 이산 가족 상봉의 소원도 끝내 못이루시고 한(恨) 많고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애를 마감 하셨습니다.
타향살이 서러워 sorrow !!!
고향집이 그립grief습니다......
부모형제 그립고grief 그립grief어/그리워 눈물납니다......
하모니카 불던 생각이... 솔라 솔미도 레도라솔...
도레미솔파미도레
Understanding South Korea 🇰🇷 's
brilliant Economic Success correctly
And further
안녕하세요. 좋은밤 되세요. 이슬우정드림
1972년 졸업했으니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
Hometown thoughtsThe sun is down, and no one's coming in the dark.
Looking at the bright moon makes me feel lonely.
Where's my partner sitting here?
I can't help but cry when I think about this and that.
I'm looking at my hometown sky, and it's just a star-shaking.
What am I supposed to say when I see a heartless star?
That moon's over the western mountains.
I can't get a good night's sleep. Oh, my God.
외롭긴마찬가지,,!
평생 외롭게 살다 돌아갈 팔자인가..
돈이 없진 않은데 사람이 없구나😢
7)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I'm again thinking about this and that,
still it is my tears only that visits me.
나에게 친구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나보면 진정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를 잘 믿지 못합니다.
고향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