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콩 다리'를 건넌 적이 있나요? (2023.06.04/뉴스데스크/목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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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23 вер 2024
- [목포MBC 뉴스]
◀ANC▶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역에는
숨은 그림 같은 표지석이 있습니다.
작은 돌에 새기지 못할
큰 사연이 담겨 있는데요.
단어로 풀어보는 챗MBC,
오늘은 목포 멜라콩 다리 이야기를
허연주 앵커가 전해드립니다.
◀END▶
◀VCR▶
EFFECT
열차는 날마다 삶을 싣고 달렸습니다.
무거운 몸이 더 이상 갈 곳 없던 종착역.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역사(驛舍)를
지켰습니다.
승객들의 짐을 들어 옮겨주던 그는
이름 대신 사무라이 영화 속 극중 인물을 닮았대서
별명으로 통했습니다.
‘멜라콩’ 박길수 씨.
◀INT▶ 강성복 동명동 주민
“눈이 쏙 들어가서 무섭게 생겼어요.
회색, 그분(수화물 취급 인력)들이 입었던 정장은 모자를 항상 반듯이 쓰고..."
고향 장흥에서 12살에 목포로 나온
박길수 씨의 평생 다짐은 ‘1년 1선(1年 1善)'.
(s/u)1년에 하나라도 선한 일을 하겠다는
그가 목포역 앞에 다리를 놓은 건
지난 1964년 4월 20일입니다.
폭 5미터 가량의 ‘멜라콩 다리’
당시 하천을 건너 목포역을 오가던
승객들의 불편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까닭이었습니다.
◀INT▶ 강성복 동명동 주민
“(하천 때문에) 10여분 돌아서 가니까 굉장히 먼
거리예요. 그 짐을 싣고 돌아서 10분 20분 가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지. 그걸 지름길을 만들어준
거예요.."
멜라콩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을 위해 1년 뒤(1965.3) 역 광장에
무료화물보관소를,
다시 다섯 해가 지날 무렵(1970.10)엔
섬 주민들을 위한 무료 숙박시설을 건립했습니다.
(돌출c/g) 영남 지역 등 전국의 중소도시까지 돌며
모금 운동을 벌여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INT▶ 최성환 교수 목포대 사학과
“ 당시 신문 기록에는 20평 남짓 규모로 만든다고
되어 있어요. 지금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괴짜는
괴짜인데 굉장히 시대를 앞서가는 도시재생,
사회복지 봉사활동의 선구자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목포역을 지킨 건 강산이 다섯 번
바뀔 시간인 48년.
(c/g)물처럼 세월이 흘러 다리가 놓였던 하천은
도로가 된지 오랩니다.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역 담장에 박힌 낡고
작은 비석 뿐.
◀INT▶ 정태관 대표*목포문화연대*
“..표지석이 남아있는게 천만다행이고,
현재 저게 사람 눈에 전혀 띄지 않지 않습니까
지역 차원에서보면 표지석을 올려서 키워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평생을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정성을 쏟았던
멜라콩 박길수 씨.
가로 25cm, 세로 45cm의
보잘 것 없는 표지석에 담기엔 그의 선한 사연은
너무나도 차고 넘칩니다.
MBC뉴스 허연주입니다.
지역사 채널의 동영상 링크( • '멜라콩 다리'를 건넌 적이 있나요?[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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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와 굥 부패세력들은 감히 범접할수 없는 훌륭한 분
저런분이 계셨다니 박길수씨 이분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지금이라도 저 비석을 제대로 밝은곳에 세워 주시길 바랍니다
저런분이 있었다. 엠비씨는 잘하고 있다. 화이팅!❤❤❤
박길수씨 같이 선행한 분들의 아름다운 것은 함께 기리는 문화가 되길 바랍니다.
인류를 위하야 😎👍✨️
대단하신분이였네요
의인이시군요 참 어려운 일인데
🧡🧡🧡🧡🧡🧡🧡🧡🧡
가치를 몰라보다 이제야
그 위대하고 숭고함을 알아주네요
스토리가 영화본줄
존경받을분이네요.
어렸을때까지 수화물 옮겨 주신분들 많이
계셨습니다
신안 염전노예도 지역 문화 인가요?
이런 영상엔 항상 호남 무시하고 비하하는 양아치쓰레기들이 나온단 말이야 현실에선 뭣도 아닌 그저 그런 아싸 인생 주제에ㅋㅋㅋㅋ
@@ara-flower보통 아싸도 아닌 운둔형 아싸 ㅋ
선한 사람을 본받기 위해서라도 목포 관광 스토리 여행에 포함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