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전쟁 패배 이후 열 받은 태종이 수군 총관 장량을 모함해서 죽인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수군 삽질이 컸나봅니다. 게다가 저때 하북지역 부병들이 동원 되었을테니 하북지역 부병들도 개판 되었을 것 같고 황제 소속 금군들도 친정 때문에 따라 갔으니 호위 하다가 많이 상했을 테고 여러가지로 손실 ;;
으악!!! 다음 고구려 당나라의 전투를 보려면 또 기달려야 하네ㅜㅜ 농담아니라 갈증과 현기증이 나네요ㅜㅜ 그래도 퍄퍄킴님 처럼 고구려 당나라 전쟁을 알기쉽고 몰랐던 내용도 알수있는 영상은 드물죠 항상 감사합니다. 😊 혹시 고구려와 당나라 전쟁을 다루시고 나당전쟁도 다루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럼 정말 황송할것 같습니다
와 이걸 보니깐 이 수당전쟁이후 고구려가 망할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록 당이 저때는 패했지만 이후 계속 소규모 국지전으로 계속 고구려를 긴장상태로 몰고가게한것도 그렇고 5호 16국을 통일한 두개의 왕조와 거의 연속적으로 싸운것 확실히 고구려의 국력에 엄청난 피해를 줬을거 같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고구려는 강하네요.
고구려 포함 한민족의 산성이 난공불락인 이유도 안시성전투의 승리요인 중 하나입니다. 정약용은 민보의에서 우리나라 산성을 크게 4개로 구분했는데 그 구분은 고로봉형, 산봉형, 마안형, 사모봉형입니다. 이중 고로봉형을 방어하는데 가장 좋은 유형으로 뽑았습니다. 고로봉형은 삼면이 산 또는 험준한 지형으로 둘러싸이고 한쪽만 뚫린 지형입니다. 때문에 안쪽에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물구하기 쉽고, 공격자 입장에선 주변의 고지를 점해 쉽사리 성 안을 볼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공격루트도 뚫린방향 한곳만 노려야하죠. 반대로 수비는 험준한 삼면은 배제한 채 뚫려있는 한쪽에만 수비에 집중할 수 있고요. 광주 남한산성과 청주 상당산성이 전형적인 고로봉형 산성이고, 역사스페셜에서 위치추정한 안시성도 전형적인 고로봉형 산성이었습니다.
(당나라가 수나라때보다 가용자원이 부족했다는걸 감안해야 하지만) 당태종의 원정군이 거둔 전략적 성과는 오히려 수나라때만도 못한 격이군요. 당태종은 역사서를 여러차례 뜯어고친 적이 있는 만큼 자기내 피해를 대폭 축소해서 기록했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인구 지표와 같이 국가전략과 관련된 지표는 통계조작을 밥먹듯이 하거든요.
장안에서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국민들을 향해 발표합니다 "전쟁포고문이 고구려 대사에게 방금 전달 되었다" 이세민은 압록강과 요동성을 비롯해 국내성과 평양성의 무장해제를 자기 몫의 전리품으로 얻을 욕심이었죠. 고구려는 그럴줄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 태종의 공격은 안시성에게 막힙니다.
적벽대전에서 양측의 피해규모는 명확히 알려진게 없습니다. 만약 님이 말한대로 80만중 27명만 살아서 돌아갔다면 조조가 계속해서 패권을 잡을수있었을까요? 아마 항우가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고 살아남은 병사 숫자랑 헷갈리신거 같네요. 그리고 항우의 사례에서도 나오지만 겨우 30명도 안되는 병사만 남은 전투를 한 지휘관은 무조건 죽습니다
과연 당태종은 빼앗은 요동성 50만곡식을 다사용했고 하필이면 왜 요택이였을까요 후방 보급기지에서 원활히 보급이 조달 되지않았거나 또는 고구려 군이 후방에서 길을 끊었다는 소리인데 겨울이 다가와도 전진기지로 요동성을 활용만 한다면 겨울을 거뜬히 보냈을걸로 추정하는데 요동성마저 버리고 갔다는건 뺏긴 성들을 고구려군이 다시 수복했을 가능성도 배제 하지못합니다 추정만 할수있는것이 당태종이 요택늪지대로 도망쳤다는 경로 그것이 정말 미스테리네요 기록이없어 근거가 되지못하지만 아쉽네요
요동 반도 쪽에 몽롱탑이라는 탑에 관련한 설화가 있는데 그 내용이 연개소문이 추격군을 이끌고 당 태종을 요서에 이르기까지 추격해서 괴롭혔는데 그 때 지칠 대로 지친데다 도망갈 곳 하나 없던 당 태종의 눈에 거미줄이 잔뜩 쳐진 우물가가 있어 그리로 숨었고 고구려 추격군은 거미줄까지 잔뜩 쳐진 곳에 사람이 숨어있을 리 없다고 철수합니다. 그 뒤 수도로 무사히 돌아온 당 태종이 그 우물가의 거미줄을 친 거미를 기리는 의미로 그 우물가를 헐고 그 곳에다 탑을 세웠는데 그게 몽롱탑이라고 하죠.
이렇게 활약한 안시성주의 다음 행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이 이후 꽤나 오랜세월이 걸린다는 점에서 아마 노령의 나이로 사망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을지문덕과 함께 민족의 영웅으로서 기억되는 안시성주가 고구려의 멸망을 지켜보지 못하고 죽은건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근데 결국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죠. 처음 삼국 통일은 신라가 이후 후삼국 시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건 고구려의 후계국인 고려였죠. 참고로 고려라는 국명 자채가 고구려(고려)를 그대로 이은 거고 우리가 원래 고려라고 불러야할 고구려를 고구려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려 고려라고 하면 헷갈리니 앞에 옛고를 붙여 옛날 고려라는 뜻으로 고구려라고 근대에 역사학자들이 구분하기 위해 붙인 거죠. 그걸 같은 후계국이었던 발해가 인정하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걸 보면 의심여지 없이 고려는 고구려의 후계국이죠.
고구려 발해 기록이 많이 소설돼서 중국 측 기록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군요.. 당나라 측 기록도 주의 깊게 걸러봐야 하는데, 중국 역사 기록 특성상 워낙 과장 왜곡이 심하긴 하지만, 당태종 이세민은 아예 대놓고 기록에 손대는 못된 버릇의 소유자였다고 하니까 말이죠... 토산이 무너져서 당군이 패배했고 그 때문에 토산 관리자가 처형당했다지만,, 오히려 토성이 무너진 건 당군 측에 유리할 수도 있었죠. 오히려 그런 기회조차 제대로 못 살리고 보급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당나라군 수뇌사령부의 전략 판단착오가 전쟁 실패의 가장 큰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보급난 문제는 주필산 전투 이후 고정의가 남은 고구려군을 수습하고 당군 보급선을 끊어서 발생한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ua-cam.com/video/EpUhWZTZyZI/v-deo.html
@@skyclan 아들내미한테도 얻어먹을 게 없으니까 연남생이 당으로 가자 연정토가 신라로 가자 할 때 성주나 귀족들이 째죠. 그 3차까지 막을 때까지 피해가 엄청난데도 아버지가 뭘 던져주지도 않고 아들내미조차 던져줄 게 없을 정도로 답이 없었던 상황으로 갔습니다. 당장 영상에서 나온 안시성주조차 대놓고 개기는 걸 장기간으로 지속되니까 연개소문이 니꺼해라 할 정도로 균열이 발생했는데.
고구려도 각성에 주둔한 군사나 지원군 하면 대략 30만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그리고 짧게 봐도 70년 길게 보면 100년을 수 당과 싸우니 회복력도 그렇고 내부 분열도 가속화 될수 밖에 없었을듯 항복하고 지권리 보장받을려는 놈들은 언제나 있었으니...내부분열이 가장심한 백제가 제일 먼저 망하고 그다음 고구려가 망한 것도 참 군사력만이 전부는 아닌듯...
여전히 가슴에 울리는 외침 아~~~ 고구려!!!!
고구려 당나라 전쟁 후속편 언제나옵니까 ,..... 현기증 나요 빨리좀 업데이트 해줘요
6:03 토산이 무너진다! 토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나라 대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대조영 5회]
ua-cam.com/video/g6gLT-1Cqt/v-deo.html
해당 영상 찾아주신 @JY-pl2nc 님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카이스님
안녕하세요
[당태종] 토산이 무너졌어... 토산이!... 수십일 간 쌓은 토산이 무너졌어!... 저 작은 안시성을... 빼앗지 못하다니...
스누플즈님 후원 감사합니다!
왜 음성 지원이 되는거죠?!😂
또졌어~~!! (신검스)
양만춘 양만춘...!! 네 이놈!!!!!!!!
고양이들 화났을때 뽀잉뽀잉하는거 너무좋음ㅋㅋㅋㅋ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 !!!!!!!!!!!!!!!!!!!!!!!!!!!!!!!!!!!
재밌음
요즘 설레는 일이 별로없는데 갓나온 퍄퍄킴 고양이볼때마다 설레네요ㅎ
재밌고 의미도 있고 역사관도 좋은 넘 고마운 채널❤
안시성주의 이름이 안 알려져서 너무 아쉽습니다. 최강의 대제국을 끝내 막아낸 영웅인데...(오죽하면 김부식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애석하다 했을 정도였죠.)
양만춘 이요
@@Hambak-Island건 소설인가? 진짜 이름 아니라고 앎
@@Hambak-Island을지마요
옛날 요동이 하북.산서랑께.북경도 포함잉.요녕성 요동은 턱주가리 주원장 멩이 부친거랑께.알긋나잉?
@@Hambak-Island 양만춘은 야사 혹은 민간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고 사서나 공식 역사 기록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그래서 안시성주가 영류왕 시해 정변 당시 연개소문 반대파였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죠
안시성 전투와 안시성주는 후대에도 귀감이 되었는지 임진왜란때 이정암의 연안성 전투를 빗대어 선조가 안시성 전투에 비견될 일이라고 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실록에도 성주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저 안시성주로 나오고요ᆢ
고려시대에도 여수,여당전쟁은 전설로 여겨졌으니
안시성주 이름이 양만춘이 아니란 거죠?
좋아요 부터 누르고 시청합니다. 예의는 차려야지요.
해전도 다뤄보시는것은 어떤가요?
이럴때 백제 신라가 합심하고 고구려 도와줬다면이라는 망상을 해봅니다 ㅠㅠ 항상 중국을 막아주는 고구려 멸망이 제일 안타까움 ㅠ연개소문은 신라 적국으로 돌린거 후회하기도전에 뒤졌으니…다음편도 보고싶은데 몇개월째없네요
0:15 Opening
8:04 Endcard
오 다시 일하는구나
고당 전쟁 패배 이후
열 받은 태종이 수군 총관 장량을 모함해서 죽인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수군 삽질이 컸나봅니다.
게다가 저때 하북지역 부병들이 동원 되었을테니 하북지역 부병들도 개판 되었을 것 같고 황제 소속 금군들도 친정 때문에 따라 갔으니 호위 하다가 많이 상했을 테고
여러가지로 손실 ;;
저희 고앵이가,ㅎ 이 영상을,ㅎ 좋아하내요,ㅎ
앜ㅋㅋㅋㅋㅋ 😂😂 썸네일 너무 귀여워요❤
화난 고양이들 띠용띠용 거리는거도 귀여움 ㅋㅋ
@@김기현-g9n 아 펄쩍펄쩍 뛰는 퍄퍄요?ㅋㅋㅋ
와 진짜 잘만들었다
이랬던 고구려가 연개소문 아들대에 와서는 허무하게 무너진걸 생각하면 역시 내부의적이 무서운거 같아요...
신라 이간계, 백제때도 이간계.. 내부 첩자가 멸망의 원인입니다. 연남생이 당으로 망명하지 않았으면 신라는 멸망했고 고구려가 토번하고 쌍으로 당 공격해서 당 멸망했을 겁니다 너무 안타깝죠
@@김봉두-x8d그건 너무 간듯,,
@@김봉두-x8d그건 좀 현실성이 없는데요?
@@김봉두-x8d애초에 고구려는 죽었다깨어나도 삼국통일 못하는 입장임. 그나마 장수왕때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때 실패하고 내부권력다툼, 중국통일된 순간 이미 가능성 0임.
연개소문의 아들이 연개소문보다 뛰어난 자 일지언정 이미 고구려의 경제는 잦은 전쟁으로 개씹창 + 내부분열 때문에 무조건 멸망테크일수밖에..
재미있어요
으악!!! 다음 고구려 당나라의 전투를 보려면 또 기달려야 하네ㅜㅜ
농담아니라 갈증과 현기증이 나네요ㅜㅜ
그래도 퍄퍄킴님 처럼 고구려 당나라 전쟁을 알기쉽고 몰랐던 내용도 알수있는 영상은 드물죠
항상 감사합니다. 😊
혹시 고구려와 당나라 전쟁을 다루시고 나당전쟁도 다루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럼 정말 황송할것 같습니다
당태종의 군대는 안시성에서 막힙니다
스포 ㄷㄷㄷ
@@jae0204 킹치만 스포라 하기에는 결말이 나온지 너무 오래되었는걸...
두체가 주유소에 매달렸어요!!!!
신라: 백제 6주컷
역참에 거꾸로 매달렸겠노 ㅋㅋㅋㅋㅋ
손실 기록은 분대장 이상 지휘관급이 수천 죽었고 병력 전체가 7,8할 보급품과 각종 무기와 장비의 손실이 병력 손실과 연계될 것. 이라고 이해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진짜 잘만들었다 애니전문프로덕션 공중파역사다큐멘터리채널 쌍뺨따구치네
고양이들 화날때 뿌잉뿌잉 하는거 귀여워요
안시성의 진짜 영웅은 고정의다!
ua-cam.com/video/EpUhWZTZyZI/v-deo.html
뭔 개소리?
와 이걸 보니깐 이 수당전쟁이후 고구려가 망할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비록 당이 저때는 패했지만 이후 계속 소규모 국지전으로 계속 고구려를 긴장상태로 몰고가게한것도 그렇고
5호 16국을 통일한 두개의 왕조와 거의 연속적으로 싸운것 확실히 고구려의 국력에 엄청난 피해를 줬을거 같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고구려는 강하네요.
퍄퍄킴의 고당 풀버전이 너무나도 기다려집니다 :)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주인지 아직 알 수 없다는게 안타깝네요... 기록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걸 ㅜㅜ
안시성의 성주가 양만춘으로 대부분 알고 계시지만, 실제로는 누구고, 이름도 안 알려졌다고 하죠.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양만춘으로 추정이 된다는거임ㅇㅇ 이런거는 알고있어야함ㅇㅇ
@@이시우-m7w추정이 아니라 추정할안한 성씨같은거조차도 기록에없고 그냥 안시성성주로만 기록되있을뿐임 최소 양씨같은 단한자추정할기록도없어요
안시성주 양만춘장군이라는건 수백년후대에 만들어진 얘기라 아직까지는 진짜 성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연개소문이 직접 지휘했을 가능성도있습니다.
안시성 전투때 게릴라전을 아주 잘한 고정의 장군이 있었습니다
안시성주는 연개소문 반대파였는데더 말인가요?
연개소문이 뭘 지휘를 해 연개소문은 평양에있었는데
이상한 소리 줏어듣고 씨부리지 마라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고려사 내용 대부분 조작.
미 국땅이 조선이었다는 증거
1922년 메이저리그 대표단 방한 ㅡ다음 검색
고구려 포함 한민족의 산성이 난공불락인 이유도 안시성전투의 승리요인 중 하나입니다. 정약용은 민보의에서 우리나라 산성을 크게 4개로 구분했는데 그 구분은 고로봉형, 산봉형, 마안형, 사모봉형입니다. 이중 고로봉형을 방어하는데 가장 좋은 유형으로 뽑았습니다. 고로봉형은 삼면이 산 또는 험준한 지형으로 둘러싸이고 한쪽만 뚫린 지형입니다. 때문에 안쪽에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물구하기 쉽고, 공격자 입장에선 주변의 고지를 점해 쉽사리 성 안을 볼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공격루트도 뚫린방향 한곳만 노려야하죠. 반대로 수비는 험준한 삼면은 배제한 채 뚫려있는 한쪽에만 수비에 집중할 수 있고요. 광주 남한산성과 청주 상당산성이 전형적인 고로봉형 산성이고, 역사스페셜에서 위치추정한 안시성도 전형적인 고로봉형 산성이었습니다.
이건 처음 아는 내용이었는데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근대 우리나라산성은 다른나라보단 성기준으로는 약한편에 들어요(오사카성이나 중국에 산서성같은거보면)
우리나라성 단점
1. 해자 못만든다(화강암덩어리라 안파진다고)
2.계절때문에 성이 너무 쉽게 무너지고 보수하는비용이 많음
3.큰성이 별로없음(아마 인구나 예비군들이 싸워야하고 1차에서 막아야가능하기 때문에)
근데 수르수트뢰밍은 어케 되었나요
구독자는 먹을때까지 기다릴겁니다!
라이브로 해주시지
병력의 손실여부도 중요하겠지만.. 말과 소가 8할이 손실되었다는건 그만큼 막대한 전쟁비용을 사용했다는거죠..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돈과 관계가 매우 깊으니
참고로 연개소문이 이세민 추적해 대륙 깊숙히 들어갔다는 기록도 있다고 힙니다
(당나라가 수나라때보다 가용자원이 부족했다는걸 감안해야 하지만) 당태종의 원정군이 거둔 전략적 성과는 오히려 수나라때만도 못한 격이군요.
당태종은 역사서를 여러차례 뜯어고친 적이 있는 만큼 자기내 피해를 대폭 축소해서 기록했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인구 지표와 같이 국가전략과 관련된 지표는 통계조작을 밥먹듯이 하거든요.
요동성,안시성도 대단했지만 신성이 아주 대단한 곳인듯 합니다ㅣ
장손무기 의견은 당시 의견보면...타당한듯...
변수가 너무 많았을뿐,..
개꿀잼
토산이 무너졌을때 현장책임자가 있었다면 재빠르게 안시성을 함락시킬수있었지만 책임자가 없어서 역으로 안시성의 고구려군한테 빼았겼죠
무너지는데 누가 있다한들 뭘 성을 함락을 해요? 안시성 병력은 가만히 있나요?
궁금한게 있습니다 당은 고구려에 비해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고구려의 북쪽부터 성을 깨트리며 내려왔을까요?? 발해만연안이
길은 더 좋은뎅.. 굳이 산골깊숙히 들어가 내려 온 당나라 전략이 궁금합니다
서남쪽이 제일 튼튼하니까 그런거 아닐까여
고구려가 엄밀히 따지면 수나라 당나라와의 전쟁을 무려 70년을 치루었는데 수양제 당태종 전쟁 잘하는 황제들 상대로 승리했기에 평가가 좋은거죠
고구려는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상남자 국가다
와악 드디어 새영상
장안에서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국민들을 향해 발표합니다
"전쟁포고문이 고구려 대사에게 방금 전달 되었다"
이세민은 압록강과 요동성을 비롯해 국내성과 평양성의 무장해제를 자기 몫의 전리품으로 얻을 욕심이었죠.
고구려는 그럴줄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 태종의 공격은 안시성에게 막힙니다.
나인 나인 나인
사실 토산이 안시성쪽으로 무너진건 고구려군에게 더 치명적이었음 바로 성안으로 들어오 수 있었으니... 다만 고구려군의 판단이 더 빨랐을 뿐 바로 토산으로 진격해서 뺏어버렸지
인구수에서 차이가 나고 회복력도 차이가 나서… 토번 몽골 등과 연합하고 백제가 수군으로 도와줬으면 했지만 백제도 신라에 발이 묶여서 쉽지 않았던 상황…
진짜 저 만주벌판 너무 아쉽다.. 저것만 있었어도 우리나라 국력 진짜 2배 이상 업글됐을텐데 저 지역에 심지어 유전도 있고…
만주는 민족구성이 다양해서 통일해도 왕조 유지가 쉽지않습니다. 결국 요나라 금나라 꼴나는거죠 뭐.
@@世重200년도 못간 요나라 금나라를
700년간 만주에서 국가를 확장시켜간 고구려와 비교는 잘못된듯
머 솔직히 우리나 고구려가 우리민족 우리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천년도 넘은 이야기이고.. 그리 치면 런던은 이탈리아 땅이어야하는거지 ㅎㅎㅎ 걍 이야기는 이야기인걸로 ㅎㅎ
만주벌판이요? 고구려가 점유하던 지역은 거의 만주벌판 들어가기 전 산악지대였는데요? 저 벌판은 유목민이나 중국인들의 땅이었지 고구려가 점유한 영토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애초에 다칭 유전 있는 북만주까지는 올라가 본 적도 없어요.
당태종의 몽룡보탑을 수리하다가 진짜 우물터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답니다. 몽룡보탑의 위치를 보면 안시성의 위치가 왜곡 되었음을 알수 있답니다.
안시성:하지만 저한테 막혔죠?
이세민:이건 말도 안되는 거라고!
아군의 우세를 점하려 기껏 쌓아올린 토산이 오히려 적의 참호가 되다니.
부실 공사의 위험성을 매우 극단적으로 증명한 사례하고 할수 있겠군요;;
고려역사도좀해주셈..고려건국영상은없는듯
적벽대전도 수십만의 조조군이 퇴각후엔 27명밖에 안되었다는데....
물론 중간중간에 제갈공명이 설치한 함정에 몽땅 걸려서 손실이 더 커진것도 포함해서....
확실히 소하고 말이 7~8할 죽었다는건 거짓일지도....
적벽대전에서 양측의 피해규모는 명확히 알려진게 없습니다. 만약 님이 말한대로 80만중 27명만 살아서 돌아갔다면 조조가 계속해서 패권을 잡을수있었을까요? 아마 항우가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고 살아남은 병사 숫자랑 헷갈리신거 같네요. 그리고 항우의 사례에서도 나오지만 겨우 30명도 안되는 병사만 남은 전투를 한 지휘관은 무조건 죽습니다
@@flashsword1500 엥? 제가 본 삼국지책 27명이었는데 잘못 번역되었거나
잘못된 정보를 기재한거같네여
5:01 ㅋㅋㅋㅋㅋㅋㅋ 적군이 열심히 싸우라고 응원해주네
과연 당태종은 빼앗은 요동성 50만곡식을 다사용했고 하필이면 왜 요택이였을까요 후방 보급기지에서 원활히 보급이 조달 되지않았거나 또는 고구려 군이 후방에서 길을 끊었다는 소리인데 겨울이 다가와도 전진기지로 요동성을 활용만 한다면 겨울을 거뜬히 보냈을걸로 추정하는데 요동성마저 버리고 갔다는건 뺏긴 성들을 고구려군이 다시 수복했을 가능성도 배제 하지못합니다 추정만 할수있는것이 당태종이 요택늪지대로 도망쳤다는 경로 그것이 정말 미스테리네요 기록이없어 근거가 되지못하지만 아쉽네요
4:56 화낼 때 모찌 스퀴시처럼 가로세로로 늘어나는 거 졸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나중에 고구려 멸망 이후 천문령전투까지 달리실 계획이신가요?ㅎ
진짜 라인업보소 ㅋㅋ 개쩐다
연개소문 활약도 곧 나오겠군요
활약한게 소문 남 ?
당태종: 왜 함락되지 않은거야!?
연개소문: 양만춘이다 애송아!!!
이모티콘 안만드시나요 ㅎㅎㅎ
토산을 쌓는병력이 50만인데 수백 기병으로 점령이 가능한가..
7:57 당태종뒤에 휘장 너무 커여운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흥하는거 같넼ㅋㅋ
이 이후로 당은 계속 우상향만 하고 고구려는 우하향만 한데다
당이 적들을 하나하나 없애가면서 고구려는 지원 받을 나라 없이 혼자 싸우게 되었으니 멸망은 필연적이었지
신라만 없었다면 충분히 버티기 가능했음. 고구려 영토 대부분 바치면서 당나라의 신하국을 자청할 줄은....
@@MinervaChart차피 의미 없는게 이미 고구려는 수,당 침공때 너덜너덜해졌을겁니다. 아무래도 땅도 좋은 땅이 아닌데 고구려의 방어작전은 효과는 좋았으나 국력을 갈가먹었죠. 신라가 없었어도 오래못갔을겁니다.
@@MinervaChart 그런 신라를 포섭 또는 멸망시키지 못한건 고구려 잘못이죠.
안시성 성주 이름이 이번 영상 최대 미스터리네요.
군대가 괜히 산을만들고 강을 메운다는말이나오는게어니야... 고대에도 산을만들었으니 현재도 가능하다는거지
군무원의 역사역할이야기해주세요 64트
안시성 전투가 모든 것을 바꿨네 저 때, 당나라군이 후퇴를 하면서 고구려군이 추격을 했는지 모르지만 기록이 없는터라...
중국 지역의 설화들에 요서까지 쫓겨났다는 내용이 많은 걸 보면 깨져도 크게 박살난것 같아요
요동 반도 쪽에 몽롱탑이라는 탑에 관련한 설화가 있는데 그 내용이 연개소문이 추격군을 이끌고 당 태종을 요서에 이르기까지 추격해서 괴롭혔는데 그 때 지칠 대로 지친데다 도망갈 곳 하나 없던 당 태종의 눈에 거미줄이 잔뜩 쳐진 우물가가 있어 그리로 숨었고 고구려 추격군은 거미줄까지 잔뜩 쳐진 곳에 사람이 숨어있을 리 없다고 철수합니다. 그 뒤 수도로 무사히 돌아온 당 태종이 그 우물가의 거미줄을 친 거미를 기리는 의미로 그 우물가를 헐고 그 곳에다 탑을 세웠는데 그게 몽롱탑이라고 하죠.
역사스페셜에서 위의 얘기를 다룬 적이 있는데 현지인들도 해당내용을 구전으로 알고있더라구요.
양만춘 " 당군 게임 넘 못해 " ( 😊 )
이세민 " 서렌 " ( 고구려 침략 하지마 )
토산을 쌓는방법은 춘추시대 있었던 작전이나 사실 안시성이 아니라 평양성에 사용할방법입니다 즉 토산을 공사할때 이미 진 전쟁 이였습니다 다만 돌아가기전 가오에 비롯한것입니다.
이렇게 활약한 안시성주의 다음 행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이 이후 꽤나 오랜세월이 걸린다는 점에서 아마 노령의 나이로 사망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을지문덕과 함께 민족의 영웅으로서 기억되는 안시성주가 고구려의 멸망을 지켜보지 못하고 죽은건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짜 썸네일 ㄲㅋㅋㅋㅋㅋ 개귀엽넼
주필산에서 대승을 거뒀다면 8월까지 아무것도 안한건 사실 주필산의 승리가 대승이 아니라 일부전투에서 승리하고 고구려 대군이 상당수 건재했던게 아닐까
일반적으로 당태종이 승리한 것은 선봉대라고 히ㅏㅁ
...저 수, 당도 선비족..^
들어올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때는 니네 맘대로 못나간다~~
딱 여기서 당나라랑 평화협상을 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냈어야 했어요 참 정치는 치고 빠지기죠
고구려는 결국 멸망했지만 당나라의 요동 통제는 오래가지 못하고 발해가 건국되었음.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가 요동을 차지한 건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이후 여진족이 북중국을 차지하면서부터 임.
2천만 전사한게아니라 2천만 살아서 돌아갔겠지..
이름이 양만춘 아닙니다 중국 짭서에서 나온게 와전 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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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결국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죠.
처음 삼국 통일은 신라가
이후 후삼국 시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건 고구려의 후계국인 고려였죠.
참고로 고려라는 국명 자채가 고구려(고려)를 그대로 이은 거고 우리가 원래 고려라고 불러야할 고구려를 고구려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려 고려라고 하면 헷갈리니 앞에 옛고를 붙여 옛날 고려라는 뜻으로 고구려라고 근대에 역사학자들이 구분하기 위해 붙인 거죠. 그걸 같은 후계국이었던 발해가 인정하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걸 보면 의심여지 없이 고려는 고구려의 후계국이죠.
이런 재밌는 역사 소재를 가지고 유명한 헐리웃 영화 장면들 그대로 베껴와서 잡탕 영화로 만드는 국내영화 현실..
양만춘, 양규, 양헌수 양씨장군들 재평가시급!!
이런 희대의 영웅인 안시성주도 연개소문의 군사반란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연개소문이 보낸 군사들한테 죽을 뻔했죠.
다행히 막아내긴했지만 만약 연개소문이 반란 일으키면서 죽인 인재들이 살아있었으면 당태종은 살아돌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발해 기록이 많이 소설돼서 중국 측 기록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군요..
당나라 측 기록도 주의 깊게 걸러봐야 하는데, 중국 역사 기록 특성상 워낙 과장 왜곡이 심하긴 하지만, 당태종 이세민은 아예 대놓고 기록에 손대는 못된 버릇의 소유자였다고 하니까 말이죠...
토산이 무너져서 당군이 패배했고 그 때문에 토산 관리자가 처형당했다지만,, 오히려 토성이 무너진 건 당군 측에 유리할 수도 있었죠. 오히려 그런 기회조차 제대로 못 살리고 보급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당나라군 수뇌사령부의 전략 판단착오가 전쟁 실패의 가장 큰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보급난 문제는 주필산 전투 이후 고정의가 남은 고구려군을 수습하고 당군 보급선을 끊어서 발생한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ua-cam.com/video/EpUhWZTZyZI/v-deo.html
안시성은 후에 중국사에서도 두고두고 기억된 모양인게 훗날 고려가 내전중인 몽골의 쿠빌라이한테 항복했을 때 당나라 태종도 못 이긴 나라가 자기한테 항복하러 왔다고, 이 정도면 하늘도 내 편인 거라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첫번째?
비록 고구려가 이겼지만 엄청난 피해를 봤었기 때문에 이는 나중에 고구려멸망에 큰 원인이 되었죠(당나라는 저정도 피해는 감수가 가능했지만 고구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ㄴㄴ 3차까지 버티었고 사실 연개소문 아들내미들 내분 아니었으면 당나라도 포기직전까지 감
그 토크맨터리 전쟁사 보면 알겠지만 고구려 내분은 남쪽과 북쪽 귀족들의 내분인데 그게 일어난 이유는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백제가 있어서 남부 귀족들이 힘이 없었고 즉 신라가 당나라의 신하국이 되면서 영토 쉽게 차지할랴고 했던게 문제
@@MinervaChart
뭐! 신라가 당의 신하국?
@@skyclan 아들내미한테도 얻어먹을 게 없으니까 연남생이 당으로 가자 연정토가 신라로 가자 할 때 성주나 귀족들이 째죠.
그 3차까지 막을 때까지 피해가 엄청난데도 아버지가 뭘 던져주지도 않고 아들내미조차 던져줄 게 없을 정도로 답이 없었던 상황으로 갔습니다. 당장 영상에서 나온 안시성주조차 대놓고 개기는 걸 장기간으로 지속되니까 연개소문이 니꺼해라 할 정도로 균열이 발생했는데.
"요새 10단계", "4 기계화 사단", "보급 거점"
-군인이 총이 아닌 삽을 들게 하면 당군 꼴 나지..-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들의 내분만 아니었으면 안망했텐데
안시성전투이후에도 당태종은 소규모 정예군을 지속적으로 국경지역으로 보내
고구려에 타격을 입힘
고구려vs수,당 전쟁은 양국간 병력충돌도 흥미롭지만 양국측에서 서로 북방 유목민들 가스라이팅해서 끌어들여서 판키우는게 묘미인듯ㅋㅋ
이세민의 군대는 안시성의 군대에 막힙니다
퍄퍄킴!!! ❤
70만이 죽은걸 2000천이 죽었다고 축소했군
고구려도 각성에 주둔한 군사나 지원군 하면 대략 30만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그리고 짧게 봐도 70년 길게 보면 100년을 수 당과 싸우니 회복력도 그렇고 내부 분열도 가속화 될수 밖에 없었을듯 항복하고 지권리 보장받을려는 놈들은 언제나 있었으니...내부분열이 가장심한 백제가 제일 먼저 망하고 그다음 고구려가 망한 것도 참 군사력만이 전부는 아닌듯...
투석기...ㅋㅋㅋ돌팔매질로 전쟁을..
세계적인 다문화제국 당나라/중화문명의 세력확장이 저지된 탈라스 전투 급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
동양 버전 토이토부르크 전투
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당나라에서 쓴 당서연의라는 소설책에 양만춘이라고 나온게 전부입니다.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당나라에서 쓴 당서연의라는 소설책에 양만춘이라고 나온게 전부입니다.
1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