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전 대학원졸업후 늦은 사이로 입대해 소양강에 배타러 갔는데 맞은편에서 배타고온 전역병이 지나가면서 측은하게 바라보며 " x뺑이 좀 쳐봐라. 이놈들아. 내가 네놈들 처지면 자살을 한다. 자살을 해 " 하는 소리에 한없이 막막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사단 의무대에서 근무했습니다. 63, 65, 66연대에 배치받은 동료들이 더 고생하다 다쳐 병원에 온걸 볼때마다 그나마 사단에서는 내가 가장 편한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혹독한 추위와 외로움속에서 보낸 그 시절이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87년 11월 군번입니다 춘천 102보에 있다가 군용선 타고 양구에서 60트럭 타고 양구 2사단 신병 훈련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신병훈련 마치고 양구 31,32연대 그리고 악명높은? 인제 원통 2연대로 자대 배치 받는데 저는 운 좋게도? 2연대 배치 하루 더 훈련소에서 머물렀는데 조교들이 불쌍하다고 빵과 우유 사 주었습니다. 다음날 진눈깨비 내리는 아침 육공 트럭 타고 동기들과 함께 소양강 구비구비 꼬부랑길을 달려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3년 군 생활 통 틀어 별 두개 달린 사단장님을 멀리서 뵌적이 있는데 별이 그 토록 반짝이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방산 천미리에서 전역할 때 대대장님 출타중이어서 양구 선착장 군용선타고 대기 중인데 운전병을 통해 친히 자필로 쓴 전역 축하 엽서 아직도 있네요. 정대윤 대대장님. 내일 모레 60인데도 생생합니다. 장군님 덕분에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여름에 비가 올때마다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서 마사토 산이 부대까지 흘러내려서 건물 높이로 가득 쌓여있는 흙을 포크레인도 안 부르고 부대원들이 쉬다말고 비맞으면서 삽으로 퍼날랐던 기억이 나네요. 포크레인 한대 준비시켜주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군인들이 산을 옮긴다고 농담하는데 그게 저희 부대에선 진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ㅋㅋ 아마 사단장님은 몰랐을거라 생각되는데,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보면 추억인거도 같고...
1999년 딱 이맘때 소양호 선착장에서 군수송선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당시 함께 배를 탔던 훈련소 동기는 “나는 춘천이 여수처럼 바닷가 동네고 양구는 어디 섬인줄 알았다..”라고 말했던 강원도 양구. 나의 청춘이 묻어난 이 곳에 있던 시절.... 소주 병에 새겨진 산 마크만 보아도 인상 찌뿌리며 ‘아줌마 다른 소주로 바꿔 주세요~’라고 말했었고, 동서울터미널 매점에서 백두산 천지 사진이 새겨진 전화카드를 받으면 ‘아줌마 이거 말고 다른거 주세요~’라고 말할 만큼 참 싫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청춘의 한때가 담겨 있기에 한 달이면 한 두번 정도를 떠올리는 추억의 동네가 되었답니다. 한 달 여 전, 서울시청 앞에서 팔도농산물 박람회가 열였는데..... 이 날 선보인 양구 특산물은 ‘방산 DMZ 벌꿀’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밤꿀’ 한 통을 주문하면서, “저 양구 방산에서 군생활 했어요~”라고 말하니깐, 사장님이 반갑다면서 아카시아 꿀 한 통을 덤으로 주셔서 뜻하지 않은 양구의 정도 느꼈답니다. ‘임전무퇴’와 ‘골육지정’은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지만, 백두산부대에서 보냈던 24개월이란 시간 덕분에 ‘임전무퇴’와 ‘골육지정’은 신라 화랑이 아닌 백두산부대의 전우를 떠올리는 키워드가 되었네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 아니라.... 한 번 백두인은 영원한 백두인이죠! 그도 그럴것이 귀신 잡는 무적 해병의 신화를 품은 도솔산과 대암산을 바로 백두산부대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곧 백두산부대를 둘러싼 고지 위로 만년설을 본뜬 눈이 쌓이고, 고지의 눈바람을 견뎌야 하는 계절이 시작되겠지만.... 그 계절을 이겨낸 청춘이라면, 험한 폭풍이 몰아쳐도 인생길 잘 개척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씩씩하다~ 백두산부대~ 21사단 감사합니다!
1979년 도 추운 날 군 입영영장 받고 청량리 역에서 기차 타고 춘천역 까지 춘천역에서 소양강 댐 까지 버스타고 소양강 선착장 까지 소양강 선착장 에서 양구 선착장 까지 갔다가 왔던 적이 있습니다. 장군님이 추억을 소환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1980.1.21 육군제2훈련소에 입소 했습니다.
90년 9월에 논산으로 입대해서 3일동안 골프공 주우러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3일째 밤에 비행기를 제외 한 모든 교통수단으로 사단교육대가 있는 고방산까지 팔려 갔던 기억.참 가는 여정이 죽을 맛이었네요 ㅋ 전역 후 시간이 한 참 흘러 양구 땅을 밟아보았는데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던군요..추억을 회상하는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저는 2001년 군번 102 보충대에서 3 박 4일 대기후 월운리에서 63연대 1대대 근무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처음에 배 타고 들어가는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갈수록 북한으로 가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제대한 지 약 23년 정도 됐지만 그래도 그때의 추억이 가장 좋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33년전 소양강댐에서 군용 배를 1시간 30분 타고 양구 선착장에서 내려 21사단 신교대에 들어갔던 기억과 휴가 때에도 배를 타고 왔다갔다 했던 기억들, 다시 한 번 배타고 가보고 싶습니다. 훈련때에 자주갔던 팔랑리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한 번 시간내서 이목정 두타연에 가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군 생활로 임당리에서 태어나 팔랑리에 살다가 1983년에 서울로 이사 왔는데, 나중에 팔랑베가스라는 별명까지 얻을정도로 발전했었나보네요. 도무지 상상이 안갑니다^^ 영상에는 제가 살던 집도 없어졌고, 많이 새롭군요. 어릴적 제 기억의 아버지 근무처는 몇번 이동했지만 한때 21사단 63연대였던것 같고, 통신대였었고, 적리에 부대입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부대 내의 이발소에 데려가서 이발을 했던 기억도... 정기적으로 군에서 버스를 보내 동네사람들 태우고 어떤 부대 내의 목욕시설로 가서 이용하게 했던 추억도 있네요.
@@bychoi1681 반갑습니다. 저는 포병 이었지만 그때 펀치볼 에 매복 나갔습니다. 그당시 사단장(박병억 소장) 막부임 한때라 사단 전체가 비상 이었던걸로 기억 되네요 그리고 10. 26 사태 났지요 당시 전방내무반에는 티비도 없던때라 뉴스도 접할수 없어서 우리는 대통령 서거 했다는 소식을 10월 29일 에서야 들었습니다 ㅋ
가칠봉에 주둔하고 있을 때 해운대에 백만명이 모였네 방송이 나오고 있는데 비바람 불고 안개가 덮히니 추워 야상 꺼네 입고 생활 6월에 진눈개비 내려 쌓인 거 말도 못했네 하도 사람들이 군대 얘기만 하면 보태서 얘기한다 인식이 있어 백두인이 모이니 오랜만에 속 시원하게 말을 해 보네요 ㅎ (87년 gop 제대)
1. 초대 백두산부대 사단장님은 고등학교 대선배님(14회)이시며 저희동네출생이신 민기식장군님. 22대 사단장님은 (33회)이 준장군님, 34대 사단장님은 (51회)정항래장군님. 2. 제 막내당숙께서도 가칠봉 수색대대에서 근무하신 백두인이십니다. 3. 제가 근무했던 곳의 오른쪽 부대라서 가깝게 느껴집니다. 4. 양구 펀치볼에서 생산된 시래기가 좋다고 합니다. 곰취가 특산물인 건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5. 팔랑리는 많이 들었던 곳입니다. 두타연도 좋다는데... 이 방송도 준비하시느라 대단히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봤습니다. 행 복/^^*
그 말로만 듣던 양구의 21사단!!! 영상으로만 보아도 군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2009년 10월 중순 쯤 21사단사령부가 저희 부대 포술훈련장에서 2주간 지휘 본부를 세우고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때 21사단장님께서 대대장실을 쓰실 수 있다고 해서, 청소를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서 하였는데, 하루는 대대장님이 퇴근하시고 마대로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은 벨트를 착용하고 검은색 지휘봉을 든 간부 한명이 대대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방탄 헬멧을 보니 별이 2개가 있더군요. 순간 너무 당황해서 마대 걸레를 떨어뜨렸고, 경례도 잊은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단장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구나! 잠시 화장실 좀 쓰겠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네 번 정도 사단장님께 차를 올려드렸고 2주가 지나 21사단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부대 1호차가 지휘통제실 앞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인사나 드리려고 문을 열고 나갔는데, 사단장님께서 마침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관등성명을 크게 외치면서 다가갔습니다. 사단장님께서는 악수를 청하시면서 "고생했네! 남은 군 생활 열심히 하고!"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사단장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있는 힘껏 목소리를 크게 "화랑~~~!!!!" 경례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지휘통제실에서 교육장교가 나와서 저를 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그 때문에 작전과장은 지휘통제실의 간부와 병사들에게 "경례는 저렇게 하는 거다, 알겠어?" 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살면서 21사단장님을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뵐 수 있을 것 같아, 나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청소를 하다가 너무 놀라 경례를 못한 것이 2주내내 마음이 걸려 목소리를 더 크게 낸 것도 있었습니다. 사단장님의 존함은 생각이 나질 않으나, 산이 3개가 그려진 부대 마크는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양구의 모습을 보니 21사단장님 생각이 나서 이렇게 군 생활 추억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21사단이 철수한 양구의 모습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그 곳에서 근무를 했던 장병들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져 너무 서운할 듯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장군님 덕분에 공짜로 양구 여행도 하고, 경치도 보고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학군34기로 96년부터 98년까지 2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강릉무장공비침투로 차단 작전을 수행했던 기억, 759GP에 들어갔던 기억, 동기들과 양구 읍내에서 목욕탕에 갔다가 갈매기살에 소주 한 잔 했던 기억... 밤하늘에 별이 정말 아름다웠던 양구, 제 인생에 정말 각별했던 시간들 중에 하나이었습니다.
95년 8월 군번인데 102보에서 백두산신교대로 가기위해서 춘천 소양강에서 배를 타기위해 갈 때 폭우로 소양강땜 수문을 열고 물이 댐 밑으로 방류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고 배 타고 양구로 갈때 배 안에서 점심으로 전투식량인 비빔밥을 먹던 기억 먹던중에 배옆으로 38선이라고 적인 큰 간판을 보면서 갔던 때 38선이 휴전선인줄 알고 동기들끼리 수근대기도하고 제대할때도 저 선착장에서 배타고 춘천까지 가는 배 안에서 군벌줄을 강으로 던져버렸죠 그리고 저 팔랑리 이등병때 두솔산 꼭대기인 두솔대대 근무중에 저 멀리 보이는 팔랑리 불빛만으로도 정말이지 그곳이 부러워 했죠 28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기억인 남는곳이네요
2009년 2월17일에 102보충대에서 백두산부대훈련소로 배정받고 2010.12.23일에 백두산부대 전역했는데 그때는 전역하면 양구는 다신안와야지했지만...전역하고 두번여행갔네요..군생활할땐 벗어나고싶은곳이었는데 관광으로 가면 정말 아름다운곳입니다. 특히 펀치볼(을지전망대) 올라 해안면이었나..거길바라보면 이곳이 한국인가싶을정도로 아름다운절경을 보실수있습니다. 두타연도 아름답고..지금도 사람들한테 가끔 양구 여행가보라고해요. 그땐힘들었지만 지나고나면 모든 추억이고 20대 잠깐의 청춘이담긴 제겐 너무아름다운 도시 양구. 저 군생활때 사단장님 장준규 대장님이셨는데 오실땐 준장(소장진)이셨는데 나중에 육군참모총장까지가셨더라구요. 명문부대!ㅎㅎ
양구 21사단 ... 참 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91년 8월에 21사 66연대 2차 중대장 명령을 받고 서울역에서 내려 청량리까지 전철을 타고 가서 춘천역으로 가는 비둘기호를 탓고 다시 소양강 선착장까지 택시를 타고가서 다시배를 43분 타고 가니 양구 선착장.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양구 백두회관에 가서 내가 하루에 어떤 차를 몇 번 이나 갈아 탓나? 하고 쉬어 보기도 했지요.ㅎ 가칠봉을 처음 가보니 병사들이 머리는 터벅하고 못 씻어서 얼굴과 손은 시커멋고,군복 상의의 팔소매 끝은 때가 굳어서 반짝 반짝 광이 났습니다. 단기 부사관중 한명은 이진삼 장군이 만든 가칠봉 수영장에서 잠자리 채를 들고 빠져 죽은 무당 개구리를 건져 내며 관리 임무를 수행 하였습니다. 8월 인데도 야전 상의를 입고 근무하였고 야간에는 추워서 중대 상황실과 내무반은 장작을 때워 난방을 하였지요 철수하여 서는 팔랑리와 인접한 월운리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팔랑리는 사병,간부들이 유일하게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지요. 근무 기간 동안 2번이나 대형 화재가 나기도 한 많은 애환과 추억 슬픔이 있는 곳입니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곳이기도 하고 다시 한 번 가고 싶기도 한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소양댐 밑에 중대본부를 두고 있던 2군단 직할대에서 복무했습니다. 본부에서 생활할 때 위병근무를 서고 있으면 간혹 소양강댐으로 올라가는 군용트럭을 보곤 했는데요... 고참들이 "야 우리는 그래도 제들보다는 행복한거야~ 제들은 이제 산골짜기 들어가서 죽도록 고생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먼 옛날 애기네요...^^
7사단 철책 근무 지원 갔을때 여긴 진짜 최악이다 그랬더니 같이 근무했던 7사 병장이 저기 계곡 건너 백두산부대도 만만찮다고 했던 그 부대네 지금은 모르겠는데 옛날엔 근무가 너무 힘들어 병사들 하사관들 초급장교들 모두 가족같이 울며 웃으며 근무한 정말 끝내주는 곳 육군 전방부대를 대표하는 꽃인 부대죠
임전필승 산악정신 "한번 백두인은 영원한 백두인" 21사단 출신으로서 장군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
오호! 그러고 보니 효자손 님이 백두인이네요.🎉🎉🎉
21사단이라할때 형생각낫어 자손이형 ㅋ😊
깜빡하고 있었는데 효자손님이 백두산 부대였었죠 소위 메이커 사단 전역자들은 죽을때까지 얘기거리가 있어 좋은거 같습니다 물론 저도 메이커사단 출신이지만 본부대라 ㅎㅎ
빛나는 동해바다~태양을~
씩씩하다 백두산부대~이십일사단~
94~96년 63R 2BN 5CO WP 복무했습니다.
88년도에제대했네요방산.팔랑리.
고생하셨습니다.
이진삼 사단장
생각 납니다
나두 이진삼 사단장이었는데
나두 이진삼 사단장이었는데 지금 살아계신지 ᆢ
살아계십니다.
반갑습니다.
입이 두개라도 할말이 없는곳~!!!!
양구~!!!!
양! 구! ^^
양구는 진짜 삶 자체 극악임....
진짜 예전에 휴가 갈때 나루터에서 배타고 나가셨던 선배님들은 진짜... 존경스러움...
고생하셨습니다.
77.4월에 춘천103보충대에서소양호배타고 양구 적리 보충대에서 본 양구는 눈덮인 최전방 이었죠. 사건사고도 많았는데
78년도에땅굴징후가있에 청진기로 청음조를 운용했죠.
대단히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산최종근선배님
홍한기입니다
오늘이 입대한지 28년전 일이네요 96년1월4일 102보충대로 입대해서 소양강댐에서 군선타고 양구로 팔려가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네요 양구선착장은 휴가갈때도 TMO 이용해서 집에가던 설레던 추억, 전역할때 쾌속정타고 소양강댐 도착할때쯤 선착장에 3열종대로 앉아서 21사단으로 팔려가던 입영장병들...승객한분이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않네요 군인양반 옛날생각 나겠어요 그리고, 마냥 나를 부러워하던 입영장병의 눈빛😂
좋은 추억담 고맙습니다~~~
소양강 선착장에서 배타니 산 칠부능선에 백골마크 북한이라고 조교가 겁주던 그 시절 그립습니다
102보충대서 양구갈때 배안에서 전역병 보면서 마냥 부러워했던 장정의 심정 점심 못먹어 뜨거운 물 부어먹는 전투식량 tmo바닥에 쭈구려 먹던기억 생생하네요
42년전 대학원졸업후 늦은 사이로 입대해 소양강에 배타러 갔는데 맞은편에서 배타고온 전역병이 지나가면서 측은하게 바라보며
" x뺑이 좀 쳐봐라. 이놈들아. 내가 네놈들 처지면 자살을 한다. 자살을 해 " 하는 소리에 한없이 막막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사단 의무대에서 근무했습니다.
63, 65, 66연대에 배치받은 동료들이 더 고생하다 다쳐 병원에 온걸 볼때마다 그나마 사단에서는 내가 가장 편한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혹독한 추위와 외로움속에서 보낸 그 시절이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414기 동립중대 동기 방갑다
ㅋㅋ 논산훈련소 홍천야수교 21사단 가는데 배타구 간다구 해서 양구가 섬인줄알았다 알고보니 길이 안좋아서 깜깜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고...^^
91년 말부터 96년 10월 말까지 21사단 63연대에서 근무하다가 중사로 전역했는데 전역후에는 먹고 사느라 바뻐서 못가본지가 오래됐네요.ㅜㅜ
고생했어요. 파이팅!!!
22년도 10월 군번 24년도 4월에 21사단에서 전역했습니다 양구 지낼동안 정말 공기 맑고 경치도 좋은 구경 했어요 양구 좋은 도시입니다 다들 한번 가보세요
수고했어요.^^
@@장군멍군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1984년도,백두산부대 66연대 근무했습니다!양구선착장,팔랑리(그당시별칭,발랑리)보니,옛시절이 그립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장군멍군 감사합니다!!!
나도 15중대 이원기
단결!
@@강대훈-m7f ^^
21사 사단 마크 나오면 무조건 클릭이고, 백호터널, 고방산, 수입천 전경 나오길 바랬는데 양구 선착장만 보내요, 제 기억은 103보인데 102보라 설명해서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세월탓인가 봅니다.
춘천 소양강에서 타고, 양구에서 내린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신치구, 이진삼 사단장을
잠시 소환합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과거에 103보충대였다가 102보충대로 바뀌었습니다. 세월 때문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그당시엔 힘들고 고달푼 군생활 영상엔 낭만잇는것처럼 비쳐지지만 앞도뒤도 산은로 둘러쌓여 삭막한 군생활 팔랑리!
고생하셨습니다. ㅜ
80년11월군번
33군번 소양강 배타고 하차 군용60트럭 타고 방산 신병교육대 가던 그때 엄청 춥지
65연대 13중대 근무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양구에서 근무를 안했고 옆사단 12사단에서 전역했어요 86년군번이고 전초대대로써 GP생활을했습니다 양구는 펀치볼쪽으로 훈련뛰던기억이 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87년 11월 군번입니다 춘천 102보에 있다가 군용선 타고 양구에서 60트럭 타고 양구 2사단 신병 훈련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신병훈련 마치고 양구 31,32연대 그리고 악명높은? 인제 원통 2연대로 자대 배치 받는데 저는 운 좋게도? 2연대 배치 하루 더 훈련소에서 머물렀는데 조교들이 불쌍하다고 빵과 우유 사 주었습니다. 다음날 진눈깨비 내리는 아침 육공 트럭 타고 동기들과 함께 소양강 구비구비 꼬부랑길을 달려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3년 군 생활 통 틀어 별 두개 달린 사단장님을 멀리서 뵌적이 있는데 별이 그 토록 반짝이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방산 천미리에서 전역할 때 대대장님 출타중이어서 양구 선착장 군용선타고 대기 중인데 운전병을 통해 친히 자필로 쓴 전역 축하 엽서 아직도 있네요. 정대윤 대대장님. 내일 모레 60인데도 생생합니다. 장군님 덕분에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아름다운 추억 공유 고맙습니다. ^^
오늘도 감명깊게 잘보았습니다..
멋지네요 백두산부대
대단히 고맙습니다. ^^
여름에 비가 올때마다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서 마사토 산이 부대까지 흘러내려서 건물 높이로 가득 쌓여있는 흙을
포크레인도 안 부르고 부대원들이 쉬다말고 비맞으면서 삽으로 퍼날랐던 기억이 나네요. 포크레인 한대 준비시켜주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군인들이 산을 옮긴다고 농담하는데 그게 저희 부대에선 진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ㅋㅋ
아마 사단장님은 몰랐을거라 생각되는데,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보면 추억인거도 같고...
고생하셨습니다.
01년도에 입대했구요~ 183포병대대 알파포대 전역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1999년 딱 이맘때 소양호 선착장에서 군수송선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당시 함께 배를 탔던 훈련소 동기는 “나는 춘천이 여수처럼 바닷가 동네고 양구는 어디 섬인줄 알았다..”라고 말했던 강원도 양구. 나의 청춘이 묻어난 이 곳에 있던 시절.... 소주 병에 새겨진 산 마크만 보아도 인상 찌뿌리며 ‘아줌마 다른 소주로 바꿔 주세요~’라고 말했었고,
동서울터미널 매점에서 백두산 천지 사진이 새겨진 전화카드를 받으면 ‘아줌마 이거 말고 다른거 주세요~’라고 말할 만큼 참 싫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청춘의 한때가 담겨 있기에 한 달이면 한 두번 정도를 떠올리는 추억의 동네가 되었답니다.
한 달 여 전, 서울시청 앞에서 팔도농산물 박람회가 열였는데..... 이 날 선보인 양구 특산물은 ‘방산 DMZ 벌꿀’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밤꿀’ 한 통을 주문하면서, “저 양구 방산에서 군생활 했어요~”라고 말하니깐, 사장님이 반갑다면서 아카시아 꿀 한 통을 덤으로 주셔서 뜻하지 않은 양구의 정도 느꼈답니다.
‘임전무퇴’와 ‘골육지정’은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배웠지만, 백두산부대에서 보냈던 24개월이란 시간 덕분에 ‘임전무퇴’와 ‘골육지정’은 신라 화랑이 아닌 백두산부대의 전우를 떠올리는 키워드가 되었네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 아니라.... 한 번 백두인은 영원한 백두인이죠! 그도 그럴것이 귀신 잡는 무적 해병의 신화를 품은 도솔산과 대암산을 바로 백두산부대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곧 백두산부대를 둘러싼 고지 위로 만년설을 본뜬 눈이 쌓이고, 고지의 눈바람을 견뎌야 하는 계절이 시작되겠지만.... 그 계절을 이겨낸 청춘이라면, 험한 폭풍이 몰아쳐도 인생길 잘 개척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씩씩하다~ 백두산부대~ 21사단
감사합니다!
아! 한편의 서사시를 보는 느낌입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소주병에 새겨진 산 마크가...ㅎ
91년군번 이구요
팔랑리에서 근무했어요
GOP2번 다녀왔네요^^
참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같이 근무한 전우들이 너무도 그리운 밤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91년 9월 군번이구요 소양강뱃터에서 양구뱃터까지 갔던기억이 있네요 저는 팔랑리옆 월운리에서 근무했습니다
@@myatoz0415그때 63연대 3대대가 위치했던 것 같은데 소대장 실습 갔었습니다. 빼치카도 있었는데.
저희 막사도 빼치카가 있는 구막사였습니다 983 선점 중대만 신막사였습니다 몇년전에 가보았는데 월운저수지를 기준으로 민통선이였는데 민통선이 해제되어있더라구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99 군번 21사66연대 저도 소양호 배를탔네요 ㅎ 너무더웠습니다 배 안이
고생하셨습니다.
2사단 신교대도 배타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반갑습니다.
단결!! 86년에는 단결이었습니다.당시 용영일사단장님...나중에 이진삼사단장님
86-88 고방산 군번입니다. 102보에서 LST타고 양구선착장...
무자비한 교육훈련!! 훈련소 정문에...악바리 중대 출신에
96 포병대대 출신입니다. 백두산부대 화이팅~~
88년에 평화의댐 수비대 뽑혀갈뻔함...말년에~~
반갑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진삼사단장~용영일사단장순서,,용영일사단장 이임식후 남면삼거리인지 신남삼거리까지인지 에스코트 해드렸던 기억납니다.
98년 군번입니다.아무것도 몰랐고 어디로 팔려가는 순간이었네요 ..그런데 그 배타기전 전투식량비빔밥을 주었는데 그거 먹느라 배타고가는데 주변경치한번 구경못했었네요
감사합니다 .
충성 찾고잡자
비빔밥이 경치보다 우선이죠. ㅎ
저도 98군번 입니다.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양구 선착장까지 배타고 갔던게 기억나네요
65연대GOP
와룡 왕언덕 맥도날드 자칼 빈폴 모두타봤네요 ㅋㅋㅋ 3소초존경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행복 영상 감사합니다 ^^ 행복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88년 군에가서 양구라는곳을 처음 알았죠.
8월의 밤이 어찌그리 춥던지…….
고생하셨습니다.^^
푸하하하 저도 그때 처음 깔깔이 입었습니다.여름에 그리 추운데가 있는지 많이 모를거에요.
늦깍이 95군번입니다.배타고 소양강댐을 건너며 소양강처녀를 부르라 해서 동기들이 같이 부르는데 어찌 그리 슬프던지...
고생하셨습니다.
1979년 도 추운 날 군 입영영장 받고 청량리 역에서 기차 타고 춘천역 까지 춘천역에서 소양강 댐 까지 버스타고 소양강 선착장 까지 소양강 선착장 에서 양구 선착장 까지 갔다가 왔던 적이 있습니다.
장군님이 추억을 소환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1980.1.21 육군제2훈련소에 입소
했습니다.
대단히 고생하셨습니다. ^^
고생많았습니다 선배님 단!결!
1978년 군용 배가 아니라 일반인과 객선 타고 들어갔습니다. 신병으로 후방기 교육 받고 팔랑리에 근무했습니다. 눈이 엄청 오죠. 저희 때는 지옥의 21사단이라 햇죠. 45년만에 다시 보네요. 감사합니다.
대단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제 근무시절엔 4땅굴 발견 했었죠
그래서 4땅굴 발견 기념 메달을 전 장병이 받았죠.
그메달 고향집 서랍 어디에 있을텐데요 ㅎ
당시 이준 사단장님으로 기억됩니다. 메달에 딱 적혀 있었죠
오호! 그런 추억이 있군요.
@@장군멍군저두88년군번입니다
고용복사단장님과이준사단장님두분모시고전역했습니다
단결
90년 9월에 논산으로 입대해서 3일동안 골프공 주우러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 3일째 밤에 비행기를 제외 한 모든 교통수단으로 사단교육대가 있는 고방산까지 팔려 갔던 기억.참 가는 여정이 죽을 맛이었네요 ㅋ 전역 후 시간이 한 참 흘러 양구 땅을 밟아보았는데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던군요..추억을 회상하는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대단히 고생하셨습니다.^^
94년 춘천102보충대에서 3일머물렀다가 배타고 양구 선착장으로 가서 21사단 60트럭 타고 신교대 갔던 생각이 납니다. 영상을 보니 그때 선착장에서 내렸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네요~~지금은 선착장 이용을 안한다하니 교통이 진짜 좋아졌나봅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현재 막내아들이 방산면에서 근무중 입니다.
내년4월 전역예정이지요.
모든 대한민국 국군장병들 건강하게 무사히 군복무하고 전역하길 바랍니다.
장군님도 항상 건강하시고 계속 많은영상 부탁드려요.
막내 아드님의 건강한 군생활을 응원합니다.^^
아들이 몇 명 이기에 막내아들이라고 하시는지요?
혹시 아들만 둘?
네. 8살 터울 큰애는 30사 전역했죠.ㅎ
큰 아들이 2010년 5월부터 2012년초까지
21사단66연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고장군님 저희 3부자
6사단과 21사단 최전방에서 GP와 GOP 복무했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와우! 3부자께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
저는 2001년 군번 102 보충대에서 3 박 4일 대기후 월운리에서 63연대 1대대 근무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처음에 배 타고 들어가는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갈수록 북한으로 가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제대한 지 약 23년 정도 됐지만 그래도 그때의 추억이 가장 좋습니다
모두가 북한으로 가는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ㅎ
와...어버이날 함박눈이 엄청 내려서 집에 전화했던 기억이 나네요...8월에도 해질녘에는 야상 안입으면 너무 추웠었는데.....
어이쿠! 어버이날 함박눈이라니...
고생하셨습니다. ^^
씩씩하다 백두산부대 21사단
21사단 사단가 마지막 구절입니다
63연대에서 GOP로 입단->고방산대대->GOP에서 제대했습니다
102보에서 세면백 하나 달랑들고 소양댐 배터에서 방산 신교대로 갔고 다시 배타고 제대했습니다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
강원도 산골짜기 시냇물소리는 참 정겹게도 흘러 갑니다 ! 행복 사단❤
소리가 들립니까? ^^
@@장군멍군 들리쥬 !
82년도에 보충대에서
자대갈때 트럭을 타라고해서
춘천인근에 배치하겠거니하고 좋아했는데...웬걸 배타고 양구로 가더군요...ㅎ
어이쿠! 고생하셨습니다.
소중한 추억이 소환되는 영상이였읍니다.
감사합니다.^^
양구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기회였어요. ㅎㅎ
82년8월2일 서울병력 팔랑리 적리 아! 옜날 생각이 ㅎ
고생하셨습니다.
화랑!
대대장님~
금일 백두산 부대 영상 감사히 시청 하겠습니다
백두산 부대 대표 유튜브
효자손!님
좋아할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화랑!
진심으로 감사!
@@장군멍군
화랑!
감사드립니다
대대장님^^
화랑!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옙! 고맙습니다. ^^
행복! 드디어 양구 백두산부대편이네요 장군님ㅋ 제가 복무했던 부대여서 더욱 기대됩니다 잘 시청하겠습니다
오호! 아련한 옛 추억이 많이 나시겠습니다.^^
@@장군멍군 ㅎ 사실 제가 복무했던곳은 방산면 송현리 부근이라 동면 팔랑리는 저도 보면서 '양구에 저런 곳이 있었구나'라고 새롭게 느꼈습니다 ㅎㅎ
@@영풍-h9g 팔랑베가스를 안 가보셨군요. ㅋ
저도 방산면에서 훈련소 생활했습니다. 06년18기로
07군번 21사단66연대3대대12중대 입니다 찾고잡자 충성 장군님 영상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때는 사천짜장이 인기이고 봉급이12만원이여서 곱창은 안먹어봤네여 ㅎ
반갑습니다. 지금은 봉급이 많이 올라서...^^
마지막 이해인 수녀님의 시까지
감사히 시청했습니다🤗😊
행복!!!!!^-^
멋진 장군님~⚘️⚘️⚘️☘️☘️
옙! 고맙습니다.
부친께서는 원통에서 특공대 복무, 큰형은 경기도 모처에서. 작은형은 파주에서 특공대 복무. 저는 3사단 백골부대, 조카들도 현역 제대, 복무중. 아들도 현역 복무중. 군장병 여러분 감사합니다.
와우! 애국자 집안이십니다. 고맙습니다. ^^
고성균님 좋은영상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95년 8월 군번입니다.66연대 3대대 10중대 ㅋ 도솔대대 대우선점 가칠봉거쳐 무학대대에서 제대했네요.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반갑네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80년 3월부터 82년 까지 66연대 3대대 11중대 1소대, 대암산,도솔산,가칠봉,땅굴,,,,젊은 시절의 추억이네요
동기인가?이름은 낯설지 않은데 단결 402기!!!
79년 10월 양구간첩작전에 투입되었던 곳 감회가 새롭네요.
백석산 대암산 대우산 천미리 천도리 땀방울을 많이흘렸었답니다.
그 양구 간첩작전 중10. 26이...
고생하셨습니다.
10.26 그날 천미리에서 텐트도없이 야영중 밤10시에 비상. "각 부대는 06시까지 부대로 복귀 명령" 2사단 수색대로 야간행군으로 복귀.
정말로 생생한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 작전의 고생이
내 인생의 커다란 버팀목이었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한 기억입니다.
이기억을 상기시켜주신 장군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참 저의 부친께서
625때 21시단 장교로 참전을 하셨고
2020년경 21시단장 초청으로 사열 열병을 받으시고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부친께서 기뻐하신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도그당시 포병으로 철책근무중 자대복귀로 한밤중 부대복귀했음 169포병대대였음
양구GOP 올라오자마자 이게 알고리즘으로 뜨다니요 ㅎㅎㅎ 잘봤습니다
반갑습니다 😁
팔랑리만 나가도 좋았던 기역이...저 상회 오바로크 치로 간....30년이 넘었네요...
반갑습니다.
백두산 부대 21사단 대암산 도솔산 펀치볼《해안면》🎉
눈 내린 펀치볼 설경 다시 볼날이 있을까?
고생하셨습니다.^^
대암산!! 03군번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63연대출신이데 추억이 새록새록ㅎㅎ 대암선점 유류보급 가다가 비포장에 얼음이 얼어서 두돈반이 경사로에 10미터정도 미끄러지던 쫄깃한 기억이 나네요;ㅎㅎ 운전병입니당ㅋㅋ
지금 들어도 진짜 쫄깃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알림뜬거보고 보러왔어요
대단히 대단히 대단히 고맙습니다.❤
@@장군멍군 아니에요 ㅎㅎ
영상 말미에 막창 맛있어 보여서 주말에 막창 먹으러 가야겠습니다..잘 봤습니다.
먹을만 합니다. ㅎ
21사단 양구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 고맙습니다.
이 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33년전 소양강댐에서 군용 배를 1시간 30분 타고 양구 선착장에서 내려 21사단 신교대에 들어갔던 기억과 휴가 때에도 배를 타고 왔다갔다 했던 기억들, 다시 한 번 배타고 가보고 싶습니다. 훈련때에 자주갔던 팔랑리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한 번 시간내서 이목정 두타연에 가보고 싶습니다~~^^
최고의 난 코스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78년 8월4일 군번 21사 수색 대 81년 5월 4일 제대 63센타 구화랑출신 세월이빠르네요
반갑습니다.
월운저수지 위병소 내려나와 팔랑라스베가스 가서. 놀던때가 30년이 넘었네
팔랑베가스의 추억을 갖고 계시군요,^^
아 팔랑리 87년도 입대 했는데 세월빠르다
반갑습니다.
아버지의 군 생활로 임당리에서 태어나 팔랑리에 살다가 1983년에 서울로 이사 왔는데, 나중에 팔랑베가스라는 별명까지 얻을정도로 발전했었나보네요. 도무지 상상이 안갑니다^^ 영상에는 제가 살던 집도 없어졌고, 많이 새롭군요. 어릴적 제 기억의 아버지 근무처는 몇번 이동했지만 한때 21사단 63연대였던것 같고, 통신대였었고, 적리에 부대입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부대 내의 이발소에 데려가서 이발을 했던 기억도... 정기적으로 군에서 버스를 보내 동네사람들 태우고 어떤 부대 내의 목욕시설로 가서 이용하게 했던 추억도 있네요.
오! 팔랑리를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백두산 부대 팔랑리 포병161대대(105미리) 에서 근무 했습니다 (79년 4월 ~ 82년 1월 제대) 감회가새롭네요
와우! 반갑습니다. ^^
79년10월 대간첩작전때 161담벼락옆에 우리대대가 숙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bychoi1681 반갑습니다. 저는 포병 이었지만 그때 펀치볼 에 매복 나갔습니다. 그당시 사단장(박병억 소장) 막부임 한때라 사단 전체가 비상 이었던걸로 기억 되네요 그리고 10. 26 사태 났지요 당시 전방내무반에는 티비도 없던때라 뉴스도 접할수 없어서 우리는 대통령 서거 했다는 소식을 10월 29일 에서야 들었습니다 ㅋ
단결..161대대 9년 근무한 후배입니다.
대부분의 군생활은 비득추진포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근무하시던 하사관선배님들이 제가 초임때 인사계님 주임원사님으로 근무 하셨을겁니다.
@@S.J.Lee8759 빈깁습니다 저는 본부 포대에서 근무 했습니다. 옛날 전우 들이 생각 나네요 김수명 대대장님 인사과 송태영 중위. 김정열 상사,장종휘 중사 이동우병장 방재석 벙장 후배 김진원 최재근
고성균 장군님 혹시 영상 초반 도로 유실된 곳이 도솔중대로 올라가는 453도로가 맞나요? 저도 백두산 부대에서 복무 했었는데 익숙한 풍경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그런 걸로...^^
88년10월 양구 선착장 내리자마자 혼이 나감 얼마나 돌리던지 육공타고 2사단 훈련소 내리자마자 졸라 돌림 흙먼지로 눈이 안보일 정도로 뺑뺑이 그때 전우들 50중초반이 흑 흑
대단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가칠봉에 주둔하고 있을 때 해운대에 백만명이 모였네 방송이 나오고 있는데
비바람 불고 안개가 덮히니 추워 야상 꺼네 입고 생활
6월에 진눈개비 내려 쌓인 거 말도 못했네 하도 사람들이 군대 얘기만 하면 보태서 얘기한다 인식이 있어
백두인이 모이니 오랜만에 속 시원하게 말을 해 보네요 ㅎ (87년 gop 제대)
대단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99년3월 생각이나네요.
춘천가서 신체검사 군복받고
배타고 전투식량먹어가면서 21사단
신병교육대훈련받은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대부분 선박으로 이동했군요. 수고하셨습니다.^^
3포병여단 922포병대대입니다.96년도 입대.98년도 11월 전역입니다.반갑습니다.
양구군 동면 덕곡리
반갑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922대대 월운리 알파포대 앞 공터에서 조명하 긴급이나 조명탄 사격 훈련 장소였지요.
덕곡리 대대는 333관측이랑 같이 사용하고 922대대 본부쪽에도 훈련때 방렬하러 많이 갔었지요.
지금은 그 앞 96대대가 들어가 있지요.
저희대대 탄약고가 922있어서 자주갔습니다
엄청큰 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행복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군대한바퀴 영상이네요 이번편은 뭔가 풍성합니다 이장님도 만나시고 우체국도 가시고 애정이 많이 들어간 영상이라 21사단 전역자분들이 많이 시청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면 군외 한바퀴.ㅋㅋ
소대장 실습, 자대배치도 21사단. 배도 두번이나 탔습니다. 팔랑리는 완전히 망했더군요. 징글징글 했으나 지금은 그립죠. 대암산 곰취가 최고였죠.
반갑습니다. ^^
고태봉중위 친형인 고태호중위와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1. 초대 백두산부대 사단장님은 고등학교 대선배님(14회)이시며 저희동네출생이신 민기식장군님. 22대 사단장님은 (33회)이 준장군님, 34대 사단장님은 (51회)정항래장군님.
2. 제 막내당숙께서도 가칠봉 수색대대에서 근무하신 백두인이십니다.
3. 제가 근무했던 곳의 오른쪽 부대라서 가깝게 느껴집니다.
4. 양구 펀치볼에서 생산된 시래기가 좋다고 합니다. 곰취가 특산물인 건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5. 팔랑리는 많이 들었던 곳입니다. 두타연도 좋다는데...
이 방송도 준비하시느라 대단히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봤습니다. 행 복/^^*
오호! 청고!!!
곰취가 먼저 그 다음에 시래기가 특산물...^^
01년9월 군번인데 그때도 102보에서 여기와서 배타고 간 기억이있네요.정신이 없었는데 초코파이 파는 할머니들 있던 기억이 있는거 같아요.
시공간을 압도하는 우리들의 초코파이입니다.ㅋ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는 말도 헛소리로 들릴 정도네요. 씩씩하다 백두산부대 21 사단
고맙습니다.^^
저는 88군번이었더랬어요 ㅎㅎ
반갑습니다.
그 말로만 듣던 양구의 21사단!!! 영상으로만 보아도 군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2009년 10월 중순 쯤 21사단사령부가 저희 부대 포술훈련장에서 2주간 지휘 본부를 세우고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때 21사단장님께서 대대장실을 쓰실 수 있다고 해서, 청소를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서 하였는데, 하루는 대대장님이 퇴근하시고 마대로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은 벨트를 착용하고 검은색 지휘봉을 든 간부 한명이 대대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방탄 헬멧을 보니 별이 2개가 있더군요. 순간 너무 당황해서 마대 걸레를 떨어뜨렸고, 경례도 잊은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단장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구나! 잠시 화장실 좀 쓰겠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네 번 정도 사단장님께 차를 올려드렸고 2주가 지나 21사단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부대 1호차가 지휘통제실 앞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인사나 드리려고 문을 열고 나갔는데, 사단장님께서 마침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관등성명을 크게 외치면서 다가갔습니다. 사단장님께서는 악수를 청하시면서 "고생했네! 남은 군 생활 열심히 하고!"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사단장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있는 힘껏 목소리를 크게 "화랑~~~!!!!" 경례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지휘통제실에서 교육장교가 나와서 저를 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그 때문에 작전과장은 지휘통제실의 간부와 병사들에게 "경례는 저렇게 하는 거다, 알겠어?" 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살면서 21사단장님을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뵐 수 있을 것 같아, 나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청소를 하다가 너무 놀라 경례를 못한 것이 2주내내 마음이 걸려 목소리를 더 크게 낸 것도 있었습니다. 사단장님의 존함은 생각이 나질 않으나, 산이 3개가 그려진 부대 마크는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양구의 모습을 보니 21사단장님 생각이 나서 이렇게 군 생활 추억을 소환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21사단이 철수한 양구의 모습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그 곳에서 근무를 했던 장병들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져 너무 서운할 듯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장군님 덕분에 공짜로 양구 여행도 하고, 경치도 보고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재미있는 추억이네요. 2사단이 양구에서 없어졌습니다.ㅎ
@@장군멍군 앗! 21사단이 아니고 2사단이 없어진거였군요!!
21사 신병교대 95년 7월 군번
배 타지말고 터널 드러가지마라
102보 보충대 조교님들이 말씀하시던 64연대 1대대
팔량리 입구 전진부대 대암회관옆
반갑습니다.
102보충대에서 분류마치고 소양댐에서 배 타고 왔던 그 추억이 생각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83년 66연대 1대대 1중대 전우들은 어떠게 변했을까요?
팔랑리 전방올라가서 막사창밖에 흐드러지게 자란 곰취가 그때는 뭔지 몰랐습니다
거기한번 가봤으면싶네요
영상 잘봤습니다
안녕하세요
3소대 근무했습니다
저보다 선임일것 같습니다
11월 군번입니다
반갑습니다
시청과 댓글 대단히 고맙습니다.
학군34기로 96년부터 98년까지 2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강릉무장공비침투로 차단 작전을 수행했던 기억, 759GP에 들어갔던 기억, 동기들과 양구 읍내에서 목욕탕에 갔다가 갈매기살에 소주 한 잔 했던 기억... 밤하늘에 별이 정말 아름다웠던 양구, 제 인생에 정말 각별했던 시간들 중에 하나이었습니다.
오호! 반가워요~~~
행복^^존경합니다 😊
감사합니다 😊
79년 9월에 논산에서 춘천으로해서 양구로 GOP근무 마치고 동면으로 전역전에 다시 Gop근무 방산에서 전역했네요. 선착장을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어려운 시절 고생하셨습니다. ^^
상병시절에 CP에서 근무할때 옆중대로 신임 소대장이 왔는데 친한 고교동창이었습니다 37기인데 지금도 만나면 그 얘기를 하며 웃습니다
내 하고똑같네
94-96년논산에서 양구로 전입갔는데 선착장 보니까 새롭습니다^^
반갑습니다.
89년 2월에 양구 선착장에서 21사단 신교대 가던 것 생각나네, 포병 161대대 근무했었는데, 영상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95년 8월 군번인데 102보에서 백두산신교대로 가기위해서 춘천 소양강에서 배를 타기위해 갈 때 폭우로 소양강땜 수문을 열고 물이 댐 밑으로 방류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고 배 타고 양구로 갈때 배 안에서 점심으로 전투식량인 비빔밥을 먹던 기억 먹던중에 배옆으로 38선이라고 적인 큰 간판을 보면서 갔던 때 38선이 휴전선인줄 알고 동기들끼리 수근대기도하고 제대할때도 저 선착장에서 배타고 춘천까지 가는 배 안에서 군벌줄을 강으로 던져버렸죠 그리고 저 팔랑리 이등병때 두솔산 꼭대기인 두솔대대 근무중에 저 멀리 보이는 팔랑리 불빛만으로도 정말이지 그곳이 부러워 했죠 28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기억인 남는곳이네요
38선 간판 보았을 때 마음이...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군번줄은 왜 버리셨어요. 개인의 역사인데... ^^
예전 102보충대 출신들은 소양강에서 배타고 양구선착장으로 갔었지요. 이제는 방산면 신교대도 없어지고 도로정비가 잘되어서 배로오는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로가 잘 만들어져서 선착장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더군요. 고맙습니다.^^
충성 97년군번입니다
63연대 3대대 9중대 수리봉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때 그시절의 전우들이 이글을 보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반갑습니다.
2009년 2월17일에 102보충대에서 백두산부대훈련소로 배정받고 2010.12.23일에 백두산부대 전역했는데 그때는 전역하면 양구는 다신안와야지했지만...전역하고 두번여행갔네요..군생활할땐 벗어나고싶은곳이었는데 관광으로 가면 정말 아름다운곳입니다. 특히 펀치볼(을지전망대) 올라 해안면이었나..거길바라보면 이곳이 한국인가싶을정도로 아름다운절경을 보실수있습니다. 두타연도 아름답고..지금도 사람들한테 가끔 양구 여행가보라고해요. 그땐힘들었지만 지나고나면 모든 추억이고 20대 잠깐의 청춘이담긴 제겐 너무아름다운 도시 양구. 저 군생활때 사단장님 장준규 대장님이셨는데 오실땐 준장(소장진)이셨는데 나중에 육군참모총장까지가셨더라구요. 명문부대!ㅎㅎ
고생 많으셨고 그래도 추억을 간직하고 계셔서 좋습니다~~~
96년97년 66연대 연대장님 김상기 대령님이 육군 참모총장 최장기간 하신걸로 압니다. 저도 연대장 예비차량 운전병 해서 몇번 모시긴 했는데
반갑네요. 저도 배타고 소양호 건너 백두휴양소를 거쳐 양구 임당리 ,팔랑리와 가칠봉 지오피 근무했던 시절이 벌써 32년이나 지났네요. 감사합니다.
반갑고 고생하셨습니다~~~
양구 21사단 ...
참 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91년 8월에 21사 66연대 2차 중대장
명령을 받고 서울역에서 내려 청량리까지
전철을 타고 가서 춘천역으로 가는 비둘기호를
탓고 다시 소양강 선착장까지 택시를
타고가서 다시배를 43분 타고 가니 양구 선착장.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양구 백두회관에
가서 내가 하루에 어떤 차를 몇 번 이나
갈아 탓나? 하고 쉬어 보기도 했지요.ㅎ
가칠봉을 처음 가보니 병사들이
머리는 터벅하고 못 씻어서 얼굴과
손은 시커멋고,군복 상의의 팔소매
끝은 때가 굳어서 반짝 반짝 광이 났습니다.
단기 부사관중 한명은 이진삼 장군이 만든
가칠봉 수영장에서 잠자리 채를 들고 빠져 죽은
무당 개구리를 건져 내며 관리 임무를
수행 하였습니다.
8월 인데도 야전 상의를 입고 근무하였고
야간에는 추워서 중대 상황실과 내무반은
장작을 때워 난방을 하였지요
철수하여 서는 팔랑리와 인접한 월운리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팔랑리는 사병,간부들이
유일하게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지요.
근무 기간 동안 2번이나 대형 화재가
나기도 한 많은 애환과 추억 슬픔이
있는 곳입니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곳이기도 하고
다시 한 번 가고 싶기도 한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근무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병사들과 첫대면에 산적들을 보는가분이 아니였을까
생각이드네요^^
전 87년도1월부터3월까지 당시 국민적 이슈로 한참떠들석햤던 평화의댐 외곽 경계근무 지원을 나갔는데 방산면 추위가 가희 살인적이더군요 .
누구들처럼 화려하지도 돋보이지도 주목받진못했지만 도리켜 생각해보면 그들이 진정한 군인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듭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려운 곳에서 중대장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박재호-i6o 1자가 빠졌네요 ~~ 91년도에 근무 하였습니다.
진짜 처음가니 병사들이 산적 같았습니다.
옆 중대 병사들을 보고는 라고 부르면서 군기도 없고 시설도 너무 열악하고 ~~~
@@장군멍군 네 ~~ 정말 어려운 여건 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희철 장군과의 영상도 잘 보고 있습니다.
@@전무-k5w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군단장 동지. 백두산도 오시길 바랍네다. 잘 모시겠습네다.
3:51 저도 통일의 선봉장이 되겠습네다.
헐~~
김정은 총비서님 반갑습니다.^^
아~~~
백두산을 가야겠군요. 모심을 받으러...ㅎㅎ
94년 추운 겨울..
피난민마냥 배에 실려 소양강을 건너고 나는 그렇게 백두산부대 신병 훈련소로 향했다..
얼을듯 식은 짬밥을 먹던차
조교의 구두발에 날아갔던 내 식판;;
당시 왜들 그랬는지요. ㅠㅠ
고생하셨습니다.
08년6월에 102보충대 입대하고
백두산 신병교육대대에훈련받고 66연대 에자대배치받고 전역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나네요 5월까지 눈오는게 기억이나네요 ㅋㅋ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백두산 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군생활땐 훈련과 철책근무가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
수고하셨습니다.
소양댐 밑에 중대본부를 두고 있던 2군단 직할대에서 복무했습니다.
본부에서 생활할 때 위병근무를 서고 있으면 간혹 소양강댐으로 올라가는 군용트럭을 보곤 했는데요...
고참들이 "야 우리는 그래도 제들보다는 행복한거야~ 제들은 이제 산골짜기 들어가서 죽도록 고생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먼 옛날 애기네요...^^
ㅎㅎ 고참 말이 딱 맞는 것이었네요. ^^
양구ㅋㅋ
저때는 엄항석사단장님 이셨는데...
참 세월 빠릅니다 ㅎㅎㅎ
반갑습니다 😁
저도 엄항석사단장님 계실때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엄항석 사단장님
계실때 군생활 했습니다
저두 엄항석 사단장님 계실때 근무했었어유.
공병 1중대여~~잘지내니~~~
7사단 철책 근무 지원 갔을때
여긴 진짜 최악이다 그랬더니 같이 근무했던 7사 병장이 저기 계곡 건너 백두산부대도 만만찮다고 했던 그 부대네
지금은 모르겠는데 옛날엔 근무가 너무 힘들어 병사들 하사관들 초급장교들 모두 가족같이 울며 웃으며 근무한 정말 끝내주는 곳
육군 전방부대를 대표하는 꽃인 부대죠
7사 병장이 솔직한 분이셨네요. ㅎ
@@장군멍군 맞아요
건내편 21사 소초를 보면서 위안을 삼더라구요 ㅎㅎㅎ
@@bernardkang4694 ㅎㅎㅎ 상황은 거의 같았을 겁니다.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말이죠.ㅋ
@@장군멍군 웃기게도 쟤네가 더 고생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맘 편한가 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