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고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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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2 лис 2024

КОМЕНТАРІ • 139

  • @mcsgo1225
    @mcsgo1225 Рік тому +2

    영상퀄리티도 너무 좋고 설명도 좋아요 항상 감사하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 @가을선배업고튀어1
    @가을선배업고튀어1 Рік тому +20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매번 감탄하며 영상을 봅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더욱 열심히 제작하겠습니다😌

  • @kyukevin2466
    @kyukevin2466 Рік тому +8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이 일본보다 조성 시기가 더 빠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계 세력이 조성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한반도에서 왜쪽으로 이주 및 문화가 전파된 것으로 사료 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내가알고싶은이야기
      @내가알고싶은이야기 6 місяців тому +3

      한반도에서 발견된 장고분이 일본것보다 조성시기가 빠르다는것이 근거있는 말씀인가요?

    • @gpt_rule_the_world
      @gpt_rule_the_world 4 місяці тому +3

      우리 전방후원분의 조성 시기는 6세기로, 일본의 3~4세기보다 훨씬 느립니다. 다만 전방후원분의 초기형으로 알려진 일본 주구토광묘보다 마한의 주구토광묘의 조성 시기가 빠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hoonhoon1502
    @hoonhoon1502 Рік тому +2

    목소리도 너무 좋구요 영상도 최고 입니다 제가 그 현장에 있는 듯 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현장 지향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박찰리-s7u
    @박찰리-s7u Рік тому +13

    일전에 요청드렸던 부분을 객관적으로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과거 고고학과 학부생으로 장고분을 모두 답사했었는데 그 사이 새롭게 장고분으로 파악된 고분들이 있었군요. 지금 많은 장고분들이 추가발굴을 하고 있다고 하니 백제,마한,왜 사이의 역사적 사실들이 보다 명확해지기를 바래보겠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전공자셨군요😄 얼마전 고속도로 현장에서 발견된 장고분만 빠져있습니다; 나주박물관 전시물 변경하던데, 어떤내용으로 바귈지 궁금합니다😌

  • @이충란-c5c
    @이충란-c5c Рік тому +1

    처음 보는 장고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 @호잇호빗
    @호잇호빗 Рік тому +2

    상세한 설명 너무 감사드립니다! 영상미도 너무 좋아요~!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즐겨 시청해주심 감사드립니다😌

  • @epiphone7007
    @epiphone7007 Місяць тому +1

    저도 답사했던 곳이 곳곳에 보이네요.

    • @사적돌
      @사적돌  Місяць тому

      오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박종필-s8o5v
    @박종필-s8o5v Рік тому +5

    참으로 훌륭한 설명입니다. 왜계 고분이 있으니 왜가 다스렸다고 주장한다면 일본열도에 있는 수많은 한반도계 고분들은 일본열도가 한반도 국가들의 통치를 받았다는 증거라는 주장도 성립하죠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 @Randy_Rhoads
    @Randy_Rhoads Рік тому +3

    그옛날 삼한이 있고 삼국이 있던 시대의 일을 현재의 한국과 일본에 투영해서 판단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도 한반도 남쪽에 왜계 인물들이나 이주세력이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게 자연스럽겠지요... 반대로 일본에도 한반도 유례 이주민들이 지명과 문화등을 남기고 있으니깐요.
    본격적으로 발굴을 하고 있다니 더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정치/외교적 관념을 유물의 해석에 투영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말씀 감사드립니다😌

    • @epiphone7007
      @epiphone7007 Місяць тому

      저도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한반도 땅에 분명 일본에서 넘어온 세력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manson0116
    @manson0116 Рік тому +4

    고고학계의 숙제죠. 아주 예전 제 지도교수님은 일본으로 전래된 ㅎ한반도 묘제라고 생각하셨으나...저도 사적돌님과 생각의 결이 같습니다. 유물 중 특히 무구류는 왜색이 강합니다. 일본의 일부 무력집단이 정치적으로 이용된것으로 저도 추측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그러셨군요😌, 전남의 세력이 들고나는 과정이 참 복잡합니다만 꾸준한 발굴과 공동연구 덕분인지 점점 더 시야에 들어오는것 같습니다🤔

  • @리헵번
    @리헵번 Рік тому +1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 @junpark9182
    @junpark9182 Рік тому +3

    한일 양국 역사학계의 민감한 사안이라 할수 있는 전방후원분이 썸네일에 떴을때
    최대한 국뽕의 우월함 보다는 자료나 유물 상황을 설명 하시며 객관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 하실거라 생각 했습니다
    일단 저도 임나 일본부설의 근거는 빈약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반도 서남부 토착세력과 규슈 연합세력이 삼국 정립 이전에 한반도 서남부에 광범위하게 존재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2

      장고분을 조성한 세력과, 토착세력은 각기 다른 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임나일본부에 사용되는 장고분 조성세력의 한반도 진입은 토착세력보다 후대로 보이니 임나일본부의 증거가 될수 없다 라고 요약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 @junpark9182
      @junpark9182 Рік тому +1

      @@사적돌 장고분 이전에 한반도 남부에 널리 분포 했던 토착세력의 옹관묘제가 있었다는걸 간과 했습니다

    • @닥치통조림
      @닥치통조림 9 місяців тому

      한반도의 전방후원분은 봉분형태 매장주체부의 형태가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현재로선 그 앞선 변천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열도에선 그 변천양상을 명확히 볼수있습니다.
      즉, 삼국정립 이전부터 왜계세력이 한반도남부에 정착해 내려와 장고분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은 성립이 어렵습니다.

    • @닥치통조림
      @닥치통조림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이미 발달되어 있는 전방후원분 묘제를 가진 특정 집단이 특정시기 유입되었다고 보는것이 좋지않을까싶습니다.

  • @csi4240
    @csi4240 Рік тому +3

    웅진천도는 말이 천도지..
    사실상 또 다른 개국이지요.
    왕이 살해당하고 수도의 지배집단 상당수가 고구려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웅진 백제는 흔들린 질서를 다시 잡고 후방을 보강하며
    지배권을 공고히 할 세력이 필요했으리라 봅니다.
    사적돌님 논리에 응원을 보냅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공산성의 왕궁자리를 보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정지산유적과 무령왕릉을 보면 방위상 왕궁이 맞는데, 너무 협소하고 방위에 최우선점을 두고있으니 천도의 혼란이 눈 앞에 보이는듯합니다🤔

    • @csi4240
      @csi4240 Рік тому

      @@사적돌
      다급하게 잡았지요..
      왕궁이란 수도보다는 오로지 방어를 위한 진지로서 기능을 살핀..

  • @최정봉-q5p
    @최정봉-q5p Рік тому +3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당시 전라남도 살던 사람들이 규슈와 밀접하게 교류(문화전파, 백제계로 부터의 독립, 새로운 토지 확보 등)했고 그 결과가 전방후원분과 같은 무덤 양식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당시 중국 남부와 한반도 그리고 규슈 일원은 하나의 세력으로 보는 학자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토착세력과 전방후원분 조성세력은 등장시기와 위치에서 다르다고 봐야 할것 같지요🤔 시청 감사드립니다😌

  • @김고수-n1r
    @김고수-n1r Рік тому +4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직접 찾아가시기에는 어려운 곳도 많으실 텐데, 이렇게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정성에 놀랐습니다.
    개인적인 사족을 덧붙이면 지금이야 한반도 남쪽에 가야 백제 신라가 있던 거지 과거에는 서로 다른 나라가 한반도 남쪽에 자리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이해 관계에 따라 연합하고 대립했던 각 국가 관계에 맞게 그냥 다른 지역의 세력(왜, 중국)이 또 관계를 맺은 거겠죠.
    한반도 국가와 일본 열도 국가 관계는 서로 원하는 걸 주고 받는 파트너 관계였을 거라 봅니다.
    다만 4, 5세기보단 이른 시기의 묘소 문화를 보면, 규슈 북부를 중심으로 혼슈 서부까지 주요 주거 지역의 묘소는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독무덤과 유사한 유구가 발견되고 생활 도구 역시 한반도 남부 출토 유물과 비슷한 생활 도구가 여러 차례 나오는 걸 보면 동질성이 있는 집단 간의 교류는 어느 정도 오랜 시간 이어졌던 건 아닐까 싶긴 하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tomandtrip
    @tomandtrip Рік тому +1

    장고분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논리정연한 설명에 감탄이 나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항상 들려주심 감사드립니다😌

  • @SeaCat-g5m
    @SeaCat-g5m 2 місяці тому +1

    사마왕도 일본에서 태어나서 백재왕이 되었는데, 일본계 유력 인물들이 한반도에서 살았을 가능성도 놉다고 봅니다.

    • @사적돌
      @사적돌  2 місяці тому

      장고분의 특징이 무기류가 상당히 제한적이다라는것이지요, 당시 중심지와 떨어진 외곽에 한두기만 조성되고 중단되며, 이후 훼손의 흔적이 없는것으로 봐서
      지재세력과 밀접한 관계였지만 그 수준이 약간 아래였다고 볼수 있겠지요🤔

  • @우주썸
    @우주썸 Рік тому +15

    해군장교로 군생활을 했는데 마지막 근무지가 3함대(목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역사와 유적지 등에 관심이 많았던 저였기에 휴무에는 항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사적돌님의 지난 영상에도 나왔던 이순신제독 유적지도 돌아다녔었죠 ㅎ 경상도에 근무할때는 여러 성(왜성 포함)을 둘러보는걸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전라도쪽은 남아있는 성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역사다큐를 통해 전방후원분과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고대사를 접하게 되었고, 한동안 쉬는 날만 되면 미친듯이 돌아다니며 둘러봤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영산강 유역 고대사는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참 흥미롭고 신비한 것 같더라고요. 더 많은 발굴이 이루어져서 많은 부분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임나일본부설 등은 이미 일본학계에서조차 거의 무시받는 주장이니까요 ㅎ
    그리고 항상 고생하며 찍어주시는 드론영상은 정말 멋지네요 ㅎ 영상에 나온 광주 광산구는 광주공항 인근으로 기억하는데 매번 드론촬영은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실 것 같네요ㅎㅎ 오늘도 영상 잘 봤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3

      장고분중 꽤 유명한 명화동장고분이 영상에서 빠진이유가 되겠습니다😅 광주기지는 꽤 까다롭게 보는것 같습니다😞

  • @mikeyw7415
    @mikeyw7415 Рік тому +2

    고대에 저렇개 큰 묘지를 만들수 있는것은 강력한 중앙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인믈임은 틀림없습니다
    아무나 구축할 수있는 것이 아니지요
    전방후원분의 일부 특징인 해자는 중국 한반도에서도 발견되지만
    전방후원분 자체는 일본고유의 것이 맞습니다
    저의 개인적 견해는 현재 한국과 일본은 분명히 다른 나라이지만
    고대의 전라남도 지역과 일본의 규슈는 한개의 공통된 커뮤니티 또는 집단으로 생각 됩니다
    옹관묘 및 벼농사 등 거의 흡사한 생활형태가 공통적으로 발굴 됩니다
    복암리에서 발견된 아파트형 고분(전방후원분 아님) 에서 출토된 인골에서 DNA 분석결과 놇랍게도 현대 일본 규슈인과 거의 동일한것이 나왔지요
    또한 전라남도 해안주민과 일본 뷱규슈 주민에게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CIS-AB형 혈액형도 있지요
    삼국사기나 고서에는 가야정도는 조금이라도 내용이 있지만....
    전라남도 지역의 마한은 언급도 없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롭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일본과 한국을 엄격히 구분하듯이 고대를 바라보면 않됩니다
    고대 전라남도 지역은 규슈와 동일한 교집합을 찾을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말 일부학자들이 옹관묘 세력을 연구하고 한반도의 왜 라는 논설을 주장하고 SBS에서도 다큐로 만들어 진적도 있습니다
    당시의 왜는 지급의 일본만이 아닌 중국 양쯔강 한반도 영산강 그리고 일본열도를 모두 포함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오 안그래도 복암리가니 인골대부분 다시 유전자 검사 들어갔더군요, 복암리 토착세력의 등장시점과 백제의 위세품을 받고 있다는것이 주목할점이라 생각합니다😌

    • @kimu3784-z1n
      @kimu3784-z1n Рік тому +1

      ​@@사적돌관련해서 예전에 티비에서 본 내용이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고대사서에" 백제와 왜는 서로 접해 있다" 라고 본듯하네요

  • @Fifty_Fifty_Orbit
    @Fifty_Fifty_Orbit Рік тому +2

    9월 12일 옥천 만의총 고분군 답사하면서 용두리 고분과 군곡리 패총도 함께 답사했습니다. 지난달 답사한 곳들이 영상으로 올라오니 신기합니다. 장고분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도 알게 되어서 더 없이 기쁜 영상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땅끝에 들릴곳이 많지요, 저도 즐겨찾는 곳입니다😄

  • @슬리가찬
    @슬리가찬 Рік тому +2

    프랑크와 앵글로색슨족 사이에 있던 노르만 족처럼 한반도 서남부와 큐슈 양안에서 독자적인 문화와 세력을 구축했으나 시간에 따라 기존세력에 흡수되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싶네요.
    언젠가 본 영드에서 영국 역사를 앵글로색슨만의 것이 아닌 데인, 켈트, 브리튼이 조금씩 믹스되는 결과로 그려내는 것이 인상깊더라고요. 한반도 역시 북방에서의 세력 유입, 남방에서의 세력 유입이 빈번했을 거고 결과적으로 불교문화-유교문화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 아래 다 녹아들었다는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이후의 역사를 봐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주지요🤔

    • @SeaCat-g5m
      @SeaCat-g5m 2 місяці тому

      전방후원분의 시초는 큐슈가 아니라 긴키 지방이라 합니다

  • @해인-e8e
    @해인-e8e 3 місяці тому +1

    우리 국토에서 전라도지역은 역사 공백지대라고 생각합니다. 사서 기록이라고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마한 54국의 일부 소국이 있었다고 추정하나 확실하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외에는 이 정도의 기록조차 없어요. 그러나 땅에는 아직도 적지않은 흔적들이 남아있죠. 따라서 고고학적 접근만이 역사를 조명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사적돌
      @사적돌  3 місяці тому

      다행인것은 미도굴고분이 많다는점이겠습니다😄

  • @곡식정원
    @곡식정원 Рік тому +2

    고대 한반도 마한 지역은 문화의 용광로였던 같아요
    이 지역에 장고분이 있던것처럼 그시절 왜에도 수많은 마한계 유물이 나오고 있죠
    지금처럼 확정적인 국경선이 없는 성읍국가에서 다양한 문화와 유적이 서로 섞이는건 당연한것 아닌가요
    오히려 백제가 일본을 포함한 연방제 비스므리한 국가임을 나타내는 유적은 아닌런지
    한국의 고대사는 언제나 미궁이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백제와 왜는 아주 밀접한 관계였지요,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었느냐는 칠지도의 명문으로 미루어 백제라고 보고
      정촌고분금동신발이나, 반남고분금동관으로 미루어 지배적인 위치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 @향원익청
    @향원익청 Рік тому +1

    관산성전역에 참여한 동방령 물부막기무련이 떠오르네요 저도 제 고향 전남의 장고분이 늘 궁금했었는데 좋은 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백강전투 패배 후 나오는 테례성, 침복기성이 현재 장고분이 있는 전남 서해안의 어느 지역인 것 같습니다만
    침복기성과 테례성 그리고 침미다례의 유사함을 생각해보는데 얼마 전 올리셨던 해남 현산면의 백포만일대의 관방유적들을 떠올렸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저도 연관이 있지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명규최-q1h
    @명규최-q1h Рік тому +1

    늘 감동적인영상감사합니다
    일본고대사에 큰 영향을미첬던 나라가
    백제이기에 이지역또한 수많은문물과
    지역세력이 힘이커기에 고분군이 발달하지 않을가요 또한 임나입부설
    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더욱강하게 되
    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총독부가 주도적으로 한것은 우리민족의 정체
    성을 부정하고 고대사를편했하는 일
    중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의생각이지만 훌륭한문화유적을 보전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역사관을 가질수 있는것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야 나라에대한 자부심이 생기에
    😊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올바른 역사관 참 중요한 듯합니다. 우리것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분석해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왜곡되면 안되겠지요🤔

  • @별나무-c8e
    @별나무-c8e Рік тому +2

    이게 역사학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 건데 학문적으로 증명을 하면 되는 것이니 그래서 임나일본부설이 폐기 된 것이고 그런데 이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거죠. 좁은 해협 사이에 있는 대륙과 섬 인적 물적 자원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인데 일부 사람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건 이상하게 생각함;;;;;;;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정치적으로 넘어가면 모든게 변질되는것 같습니다😞

  • @tv-kt9ic
    @tv-kt9ic Рік тому +1

    저희동네 근처가 자주 나와서 신기하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땅끝 좋아해서 아무리 멀어도 1년에 한번 이상 꼭 가는것 같습니다😄

  • @sunugreen1094
    @sunugreen1094 Рік тому +10

    전남지역의 대형 전방후원분에 대한 기십성의 자료들만 보다 논리적인 설명을 들으니 참 맘에 듭니다. 고맙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tv-kt9ic
    @tv-kt9ic Рік тому +1

    나중에 또 나주에 오실일이 있으시면 회진리에 있는 회진토성도 추천드려요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시간이 좀 걸릴것 같지만 나주가면 다녀오겠습니다😄

  • @dhc3583
    @dhc3583 4 місяці тому +1

    한동안 신기해서 유명한 장고분들 찾아 다니며 봤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 가기전에는 모를꺼 같습니다. 그나마 유물로 추정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아쉽게도 제 개인 기준에서는 그것 또한 큰 신뢰를 주지는 못하네요.

    • @사적돌
      @사적돌  4 місяці тому +1

      요즘 발굴을 많이해서 결과가 많이 나오고있습니다 왜계고분이 확실하고 기존세력에 배제되지않고 동화되고있다는점, 외곽에단일세대로 조성된다는점을들어 적대감없는 일시유입으로 보는것같습니다🤔

  • @롤로토마시-n7e
    @롤로토마시-n7e Рік тому +1

    북한이나 중국땅에서 더 이른 부여계의 전방후원분이 발견된다면, 한반도에 있다가 일본으로 간 부여계가
    다시 백제 땅으로 왔다는 설이 입증이 되겠죠. 물론 이렇게 주장하시는 박사님도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분에 따르면
    중국 쪽에서 발견이 되었는데, 개발 중 정지 그후 자연적으로 손실 되고 있다라고 하시던데...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흥미로우면서 안타깝네요, 중국이라니..😕

  • @solgga_history
    @solgga_hi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2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임나경영설을 부정하였다기보다 일본이라는 명칭이 당시에 없었을 거라고 부정했을 겁니다.
    지금도 일본 역사책에는 임나경영설이 나옵니다.

  • @최정봉-q5p
    @최정봉-q5p Рік тому +1

    구마모토에 있는 전방후원분에서 백제 금동관이 나왔다는 말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규슈지역에서 백제 산성 유적이 많이 있다는 것도 들어본 적 있구요. 왜에서 온 사람의 무덤으로 단정짓기에는 아직 좀 무리이지 않을까요? 전공자가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여쭙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구마모토 백제성 얘기는 많이 접했습니다, 왜가 조성한 전방후원분의 시기가 특정되면 어느쪽이 먼저인가 확실해 지겠지요, 다만 표본이 많아야 처음 출현과 중심연대가 밝혀질것이고 우리것도 마찬가지고요😮

  • @DS-nl5pp
    @DS-nl5pp Рік тому +3

    함평 죽암리 장고분 찍을 당시 발굴조사하고 있나요?
    장고분에 대한 피장자가 연구자마다 달라서 왜계는 잘 납득이 안 되고, 토착세력이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추석때 방문해서 발굴인원은 없었으나 발굴 도중으로 생각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썸네일이 죽암리장고분입니다

  • @mrhou88
    @mrhou88 Рік тому +4

    한국사에서 미스테리한 부분중 하나인 장고분을 다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장고분이 일본 현지의 그것이 연대가 조금 앞서기에..! 왜인 무사를 고용하여 마한 쪽에 파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조금 합당하지 않은가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 대대적 발굴을 통해 기록으로서의 문자가 한줄이라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고퀄리티 영상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저도 같은방향의 생각입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 @yonghyeunju6721
    @yonghyeunju6721 Рік тому +2

    개인적으로... 일본이 그렇게 자랑하는 닌토쿠 왕릉과 모즈. 후루이치 고분군을 한일 공동으로 발굴해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일본 고훈시대 대표적 고분에서 어떤 부장품들과 기록들이 나오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면 한일 고대사의 많은 의문들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객관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내용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우리 장고분도 한일공동연구하니 일본것도 그래야겠습니다😮 많이 궁금하네요🤔

    • @yonghyeunju6721
      @yonghyeunju6721 Рік тому

      이런 실증적이고 사실적인 내용들이 영상으로 남겨져야 합니다. 환절기 건강 챙기면서 답사하시길. 항상 응원합니다~.

  • @청태산종필
    @청태산종필 Рік тому +4

    좋아요 고맙고요 역사를 누가써야하는지 오늘의역사는 어떻게 기록됄지 ㆍ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감사드립니다😌 저도 후손들이 봤을때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jjuhyung
    @jjuhyung Рік тому +3

    판타지소설급 일본 서기…
    하지만 그 서기가 없다면 모르는 우리 역사가 있다는게 있으니;;;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정황이나, 호칭, 명칭은 참고할만 하지요😄 그외는 뭐😕

    • @보타-c4b
      @보타-c4b Рік тому +1

      그런논리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도 판타지적 설화나 내용이 즐비하니 전체 내용을 부정해도 할말이 없죠. 곰이 인간이 된다는 내용이 써있는 비현실적 문헌이 사료가 될수 없다고 외국에서 삼국유사는 사료가치없다고하면 인정하실껀가요?

    • @보타-c4b
      @보타-c4b Рік тому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하는 동의보감에도 판타지적 내용이 즐비합니다

    • @보타-c4b
      @보타-c4b Рік тому +1

      저 논리는 꼭 일본서기에만 적용하더라구요

    • @Pocari413
      @Pocari413 Рік тому +1

      ​@@보타-c4b? 일본서기의 신뢰도는 낮아도 한국고대사의 값진 기록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는 댓글인데 왜 그러세요? 그리고 저분 다른 영상 다른 댓글로도 같은 얘길하셨지 일본서기를 부정하시진 않으셨어요

  • @이종남-n8d
    @이종남-n8d Рік тому +2

    한일 역사학계가 함께 공동연구를 했고, 2010년 임나일본부설이 폐기되었다는 점이 큰 희소식이네요. 정말 기쁜 소식을 이제라도 알았네요.
    정치인들의 놀음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기도 하지만, 학계만큼은 이처럼 많은 교류와 순수성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선례가 되는 것 같고, 마음 또한 시원함을 느껴 댓글을 남깁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시청 감사드립니다😌

  • @solgga_history
    @solgga_hi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삼국사기에 왜가 신라를 침공하니 광개토왕이 군대를 보내어 격퇴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오 여기에 있습니다😌
      db.history.go.kr/id/gskh_001_0010_0010_0020

    • @solgga_history
      @solgga_hi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1

      @@사적돌 그건 광개토왕릉비문이 아닙니까?

  • @qaz75382
    @qaz75382 3 місяці тому +2

    일본서기를 역사를 그냥 백제서기라고 생각해보면 남득이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ㅋㅋ 실로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보면 현재의 일본은7세기부터 일본이라 불렀는데 그이전에도 일본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존재했습니다 그걸 백제로 보는게 맞다는 견해가 많음

    • @사적돌
      @사적돌  3 місяці тому

      일본서기가 만들어진시기와정황을보면 백제인들에의한것이라는 심증을 거둘수없지요🤔

  • @GK-ve1fp
    @GK-ve1fp Рік тому +11

    서로 붙어있는 나라에서 한쪽에서 한 방향으로만 문화가 전해지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주제를 다루시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1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더욱 굳건히 하겠습니다😌

    • @ruslanantonov151
      @ruslanantonov151 Рік тому

      논리상으로는 그럴듯 하지만, 고대사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말이 안되지는 않죠.
      그런 논리가 고대한반도사에 타당하려면 그 숫자가 집계도 안될 정도로 많은 열도 내 한반도문화재 만큼,
      우리 박물관에도 왜계 유물들이 넘쳐나야겠죠.
      강점 이전의 문물이나 일본가전제품을 유물로 친다면 모를까.

    • @kimu3784-z1n
      @kimu3784-z1n Рік тому +2

      ​@@ruslanantonov151맞는 말씀인듯한데 그럼 전남해변에 나오는 전방후원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mapx2100
    @mapx2100 4 місяці тому +3

    반남고분군을 중심으로 장고형고분군들이 빙 둘러서있는 형태라고 하네요.
    이 말은 백제왕가를 호위하는 세력이었다는 뜻이 되죠.
    실제로 무령왕 즉위전까지 백제왕들이 쿠데타로 단명하기도 했고, 그래서 무령왕이 일본땅에서 올 때 후쿠오 호족세력을 데리고 왔다고도 하네요.
    오히려 이 유적들은 백제계가 규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방증이라고도 봅니다.

    • @mapx2100
      @mapx2100 4 місяці тому +1

      후쿠오 호족세력 -> 후쿠오카 호족세력

    • @사적돌
      @사적돌  4 місяці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solgga_history
    @solgga_history 9 місяців тому +1

    기록으로 보나 고고학적 양상으로 보나 임나경영설은 부정하기 힘들죠.
    오직 한국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 @kimu3784-z1n
    @kimu3784-z1n Рік тому +2

    20여년 전 예전에 티비에서 다루었던 내용 이었던것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추정하는 이론만 그대로 아직 있는 상태인가보네요
    근데 일본이라는 지칭이 생긴게 일본국호로 사용되기 전부터 사용해오던거 아닌가요?
    백제를 일본
    고구려를 풍곡
    신라를 계림 이라고
    역사에 관심은 있지만 아마추어라 막 던저 봅니다😂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계속 다듬어지고 있는듯합니다, 예민한문제라서 발굴조사도 더딘편이었고..🤔

  • @이인-v3e
    @이인-v3e Рік тому +1

    백제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ㅎㅎ

  • @설동우-r3t
    @설동우-r3t Рік тому +2

    지방 토착세력 특성이 있는 고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 @사적돌
      @사적돌  Рік тому

      오 덧글 감사드려요

  • @손호선-y9l
    @손호선-y9l 6 місяців тому +1

    장고형 고분의 고대사적 의미가 궁금했는데 자세하게 해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6 місяців тому

      해석과 의견이 분분하지만 장고분 조성 이전, 토착세력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밀집하지않고 산개해 있으며
      바로 우리 문화에 흡수되며
      백제문화와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후의 우리 원분들이 장고분들과 같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보이고
      시기적으로 백제의 웅진천도와 겹쳐 있어서(5세기말)
      멸망의 위기에 빠진 백제왕실이 왜계무장들을 불러온것 아닐까합니다😌

  • @gogog124
    @gogog124 11 місяців тому +1

    왜가 백제에게서 많은 문물을 받았고 일부 백제유민들이 왜로 넘어가서 정착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백제문화가 남아있는것이 아닐까요?

    • @사적돌
      @사적돌  11 місяців тому

      연대가 아주 미묘하지요 5세기말에 반짝했다가 점차 우리와 동화되어가고, 우리 토착세력도 공존하고 있었어요, 특히 군곡리 유적이 대표적이지요
      다들 이부분을 논하는것을 꽤 부담스러워 하시던데, 왜계유물이 실제로 발굴되긴합니다. 무역에 의한것인지, 이주에 의한것인지..(위례성의 상실로 남쪽의 지배력약화를 왜계무인들을 정착시켜 안정시켰다고하는설) 발굴이 거듭되고, 점차 자료가 쌓이다보면 어느순간 뚜렷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