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임진왜란 초 신립과 원균 / 신립이 탄금대에서 패전한 이유 / 원균은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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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3 лис 2019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첫 번째 충주 탄금대에서 조선과 일본군이 육상에서 맞붙어 패하게 된 신립 장군이 왜 일방적인 패전을 당했는지 두 번째 당시 경상 우수사 원균은 초기 왜란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두 사건에 대한 세세한 전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유성룡의 징비록과 일본에 선교사로 있었던 포르투갈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 일본사 그리고 선조실록 등 여러 자료를 비교하며 시간대 별로 구성하여 더 구체적인 사건과 상황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삼도 순변사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 신립장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패전한 원인 다섯 가지.
    첫째 : 신립 같은 지휘관이 왜군에 대한 정보 취득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둘째 : 조령과 탄금대라는 각각의 지형에 맞는 전략 전술의 오판 때문이라는 것.
    셋째 : 조선군의 상비군 즉 훈련을 받은 정규 병력의 턱없는 부족이었다.
    넷째 : 왜군 조총과 맞선 조선군의 기마병 전투 방식은 구시대적 무기 체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고요.
    다섯째 : 최고 책임자인 선조 임금은 물론 그 조정 대신들 역시 인재에 대한 적임자를 헤아려 판단하지 못하는 “인선(人 選) 실패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경상 우수사 원균의 개전 초기 행적
    원균이 스스로 나서 싸우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첫째 : 신규 부임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아 관내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장군으로서 업무 태만입니다.)
    둘째 : 왜군의 급작스런 침입에 먼저 겁을 먹고 싸우려 들지 않았다. (무장의 신분으로 직무유기를 한 것입니다. )
    *.역사의 교훈과 미래 희망
    우리가 역사를 읽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를 때도 있고,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알아본 신립 장군과 원균에 대해서 한마디로 표현하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죠. 징비록에 이런 옛 말이 있습니다. “장수가 군사를 쓸 줄을 알지 못하면 그 나라를 적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훌륭한 리더는 일 잘하는 능력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의 힘을 모으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신립과 원균 이일…. 그들에게도 나름 최선을 다해 승리해 보겠다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들이 보여준 부족함을 욕하기보다는 그때 그들의 실수와 과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즉, 그때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제는 두 번 다시 일본에 당하지 않도록 내실을 다져 나가고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초 우량 국가, 강성한 국가로 성장하여 그 누구도, 어떤 나라도 대한민국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차기 예고
    다음번 영상에서는 서울 한양 가까이 다가온 왜군에 대해 조정에서 벌어진 이야기와 선조 임금의 파천 이야기 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이 첫 출전한 옥포 해전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신립충주탄금대전투 #원균경상우수사 #임진왜란

КОМЕНТАРІ • 204

  • @user-dp3if2we1p
    @user-dp3if2we1p 4 роки тому +20

    정말공감합니다. 역사는 이래야 된다는 당위성보다 가장 우선해야하는것이 사료나 증거로부터 정확한 사실을 사실그대로 받아들이는것이라 생각됩니다. 감격적인 사실도 사실이고 분하고 원통하고 답답한 사실도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는 있는그대로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국뽕주의 민족우월주의에 빠져서 역사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것이야말로 일본이나 중국처럼 식민사관,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왜곡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감동과 환희의 역사도 좋지만 치욕과 슬픔의 역사도 반면교사로 삼는 자세가 올바른 역사관이라 공감합니다.

    • @user-lr5ur4cc3q
      @user-lr5ur4cc3q 4 роки тому +3

      공감합니다

    • @user-zq8py7em5w
      @user-zq8py7em5w 4 роки тому +2

      공감합니다 👍👍👍

    • @user-iv7rz3qy9u
      @user-iv7rz3qy9u 3 роки тому +2

      0

    • @user-pj7le9oe1o
      @user-pj7le9oe1o 3 роки тому +1

      👍👍👍👍👍👍👍👍💞💓😍😍😍😍😍😍😍😍

    • @user-tp2sx5it3i
      @user-tp2sx5it3i 2 роки тому

      관우에 대한 미화가 바로 송나라 사람들이 국뽕주의 민족우월주의에 빠져서 역사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관우는 졸장이다 못해 혹장인 인간쓰레기이며 관우는 화웅보다 한참이나 못한 무예를 가진 게 팩트(악진이 화웅보다 못하고 관우보다 뛰어난 무예를 가진 인물임, 참고로 화웅은 후한 금군 출신이라 무예가 막강했음. 안량 문추같은 버러지들과는 달리. 안량 문추는 원소에게 상장군 자리를 돈주고 샀는데 당대에는 유력자에게 돈주고 관직을 사면 그 유력자가 천거하는 방식으로 임무 먼저 수행하고 나중에 임명되는 방식이었음. 당장 유주에서 유비빼고 나머지 관리들이 다 이렇게 임명된 놈들임. 참고로, 안량과 문추가 원소에게 돈주고 상장군 자리를 샀기 때문에 여포에게 그렇게나 구타 가혹행위를 당한거고 그래서 원소가 여포를 내쫓은 것임.), 관우가 죽은 진짜 이유가 손권의 군량고를 노략질한 죄(정사 오서 여몽전에 다 나와있음.)라는 것 역시 팩트입니다. 관우가 쓰레기인 이유? 정사 오서 여몽전에 다 써있습니다. 정사 여몽전을 읽고도 관우를 증오하지 않는다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 @user-kf2vl2gx9b
    @user-kf2vl2gx9b 4 роки тому +37

    능력이 안되는 인물이 중책의
    자리에 있게 되면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 @user-sn9qt9qk8j
    @user-sn9qt9qk8j 4 роки тому +8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앞으로 계속 부탁합니다

  • @saineiss14
    @saineiss14 4 роки тому +7

    역사에 관심많아요.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구독하고 가요^^

    • @Yeokg
      @Yeokg  4 роки тому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 @user-nt4dd2go2s
    @user-nt4dd2go2s 4 роки тому +10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 @user-dv4yy5hr6x
    @user-dv4yy5hr6x 4 роки тому +5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 @user-dz1zj9us6w
    @user-dz1zj9us6w 2 роки тому +3

    유익한 시간

  • @masterl9380
    @masterl9380 4 роки тому +9

    감사합니다 ~

  • @YoungsupBaeehnneo
    @YoungsupBaeehnneo 4 роки тому +7

    감사합니다.

  • @user-dy9xn4lg6y
    @user-dy9xn4lg6y 3 роки тому +4

    조선 이전 전쟁사를 언급한 역사자료가 미비하고 더욱이나 전투기술은 상세하지 못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 여러 도서를 살펴 깊이있게 분석하시고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서가 일본,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자료들을 찾아서 반드시 가져와야 하겠습니다.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user-ko7ur3ri1u
    @user-ko7ur3ri1u 4 роки тому +28

    나는 충주사람인데 충주는 군사적으로 조령죽령만 지키면 10만대군을 1만명으로 지킬수있는 요세이다

  • @user-sz5cy4xx9w
    @user-sz5cy4xx9w 4 роки тому +11

    비겁한 두사람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를 끝내고 자신이 자살 한분 같아요 살아도 그 정치에는 스스로 총탄에

  • @carlson2958
    @carlson2958 3 роки тому +8

    신립은 장군으로써 무쌍이라도 있었지만, 원균은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 저런자가 무과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는지

    • @oxoxking
      @oxoxking 3 роки тому +2

      중요한점은 선조가 선무공신교서에 이순신,권율 같이 1등공신에 원균이 있다는 사실에 또한번 깝놀ㅋ
      신립은 공신록에 아무것도 없음

    • @soc00l24
      @soc00l24 2 роки тому

      그당시에 아빠찬스 썼습니다

    • @user-rd4qy5wl2y
      @user-rd4qy5wl2y Рік тому

      뇌물..조선은 그냥 뇌물의 시대

  • @acritaslee3203
    @acritaslee3203 2 роки тому +5

    여러사람을 모으고 나아 가는 사람은 본인도 똑똑하고 판단력이 있어야 하지만, 본인을 따르는 사람들의 재주를 파악하고 잘 쓸 줄도 알아야하는데.....
    신립은 이일을 척후병으로 했어야..... 그러면 적어도 살아서는 돌아와서 보고를 듣는데...ㅎㅎ
    감사합니다. ㅎ

  • @user-qb2xw3nx8l
    @user-qb2xw3nx8l 3 роки тому +4

    당파싸움으로 지세우던 시기, 눈치껏 보신하는 무장들이니 제대로 된 자질이 형성 되었겠습니까 ? ,
    눈치보며 뇌물과 아첨으로 그자리에 오른 자이기에 전쟁시 나라의 동량이 되지 못한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현재의 장군들이나 장,차관의 진급도 하루아침에 코드인사로 몇단계 뛰어넘는 인사의 반복이 정권의 충복들에게 주어진다면 ?
    우리나라 안보와 사법의 중한자리가 그때의 모습과 같이 임명되고 채워지는 모습이 걱정됩니다.

  • @user-xr4os2ek1s
    @user-xr4os2ek1s 4 роки тому +2

    무지 무식한 사람들이 쓰는 악성 댓글은 보지도 마세요 그것이 우리 한국인 거의 대다수의 역사 지식 수준입니다 교과서조차도 엉터리 역사가 많은데 책 읽기 싫어하는 국민들이 거의 다수인데 몇가지 줏어들은 엉터리 정보갖고 무개념으로.예의없이 찌꺼리는 사람들 신경쓰지 마세요 선생님의 깊고 넓은 역사 강의 흥미롭께 경청합니다

  • @user-od8ny2mq8y
    @user-od8ny2mq8y 2 роки тому +2

    좋아요

  • @user-mv4ry4oy1d
    @user-mv4ry4oy1d 3 роки тому +6

    경상 우수사 좌수사 박홍 원균이
    바다에서 막았으면 되었는데
    나중에 신립은 아무생각없이
    싸운장군이고

  • @user-vh8ni3fe1w
    @user-vh8ni3fe1w 3 роки тому +4

    물에 빠져 죽은게 아니라 일본군에 잡혀죽었다는 말도 있던데

  • @sponjiho4507
    @sponjiho4507 3 роки тому +4

    신립은 장비같은 스타일이었을 것 같음... 전형적인 용맹무쌍한 무장.... 그러기에는, 고니시 가토등 일본 최정예 주력이 연합된 부대가 너무 강했던거지.... .... 저런 상황서는 용장보다는 지장이 필요했는데..... 그 지장이 지연작전을 펴서 시간을 버는데 집중해서 시간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는 지혜가 필요했던 시점 ..... 상대와 나의 힘에 대한 파악부터가 안되었던 것 같음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공감합니다 👍

  • @user-sd7jl8bz5e
    @user-sd7jl8bz5e 4 роки тому +12

    그래도 원균은 한번이라도 싸워서 10척을 불살랐네요..그당시 조선수군중 가장 강력한 부대가 박홍의 경상좌수영이었고 판옥선만 120척인가 될정도였다고 합니다..일본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라 왜구가 많아 그만큼 군선을 보유했던 것이겠지요..그정도 군세였으면 부산항에 상륙할려는 왜선이나 이미 상륙했다고 하더라도 정박한 왜선들을 공격했으면 부산성이 그렇게 간단하게 함락되지 않았을듯..부산성공격하는 왜군에 대한 수륙협공전이 되자나요..박홍은 겁먹고 싸우지않고 군선을 모조리 불지르고 도망쳤다고 하지요..

    • @Yeokg
      @Yeokg  4 роки тому +4

      네 맞습니다.

    • @bhk3466
      @bhk3466 3 роки тому +6

      글쎄요 원균이 전투를 벌였다고는 단 1%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산진성... 전투에서 정발 장군이 왜군이 몰려오는
      그 순간까지도 절영도에서 사냥...(당시의 사냥은 군사 기동훈련을 겸했죠.)을 하다가 왜군 배가 오는 것을 세견선으로
      착각하다가 왜군들이 조총을 쏘는 것을 보고서야 왜적인줄을 알고 부산진성에서 농성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말 원균이 왜적과 함포전을 벌이며 10척이나 불살랐다면 그걸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죠. 포 쏘는 소리에 천지가 흔들렸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정발이 조총 사격거리까지 올 때까지 왜적임을 몰랐다는 것은... 원균의 해전은 없었다는 반증이죠.

    • @user-xh1lr3yo3y
      @user-xh1lr3yo3y 3 роки тому +5

      @@bhk3466 만약 전투에서 적선 10여척을 불살랐다면 왜 장계를 올리지 않았을까요? 아군 피해가 더 심했다고 해도 자신이 거둔 공은 반드시 챙기는 사람인데. 말이 됩니까? 말이 되는 얘기를 합시다.

  • @oxoxking
    @oxoxking 3 роки тому +6

    아....선조부터 시작해서 나오는 몇몇 등장 인물이 다 발암 유발 인물들이네...
    듣기 싫지만 알아야한다.

  • @user-hj3mj5bp8z
    @user-hj3mj5bp8z 2 роки тому +3

    인문학 성취중 뻥카라는 말은 좀 당황스럽네요ㅋㅋ 재미있었습니다

  • @univ8767
    @univ8767 4 роки тому +6

    왜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를 택했을까요... 유극량장군도 생각 나네요 아직까지 아쉽네요

  • @user-kq3bi7tf3p
    @user-kq3bi7tf3p 3 роки тому +8

    신립 좀무모하긴했고 무능한 지휘관이다라고 할수도있지만 그래도 원균보단낫다. 70여척의 대함대를 침몰시키고1만여명의 수군을해산시킨것보단 나름결사항전해서 싸우긴했으니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당연히 원균 보다는 신립 장군이 훌륭하죠
      원균은 그 시체도 찾지 못한 실종자가 되었으니 도망친 건지 전사한 건지 포로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user-em6dp2ix7g
    @user-em6dp2ix7g 3 роки тому +6

    원균씨를검색해보세요극악무도라는말이어율립니다

  • @user-ts3rm4pb5t
    @user-ts3rm4pb5t 3 роки тому +9

    탄금대는 평지였죠 거기다가 늪도 많았고 결국 기병대 돌격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였습니다. 물론 신립은 조총의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쏜다고 다 맞진 않으니
    빠른 속도로 밀어 버리면 된다고 여겼고 이에 3단 사격법을 사용한 왜군에게 사실상 조선의 주력군대는 녹아 없어집니다.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2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전장의 장군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됩니다.

  • @user-J2M
    @user-J2M 4 роки тому +3

    안타까운 역사를 봤습니다..

  • @천손의자손
    @천손의자손 4 роки тому +5

    신립이나 이일은 그냥 선봉장역활에 어울리지 사령관감당할 그릇이 아니야 그리고 진주성 동래성 전주성같은 중요성에 최소 1만은 배치되어있어야했으며 성곽도 높고 견고한게 아니라서 수성전을 하기에 너무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화포는 장전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장전할때 보조할수있는 쇠뇌와 투석기같은 무기의 부재도 문제였다 징비록 부산진 전투에서 그 단점이 나와있다 왜군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마자 3단사격으로 반격하자 수적으로도 열세인 조선군은 대응도 못하고 허무하게 털리고 화포도 장전도 못하고 무용지물

  • @user-rx2dq1wg3u
    @user-rx2dq1wg3u 3 роки тому +3

    지금도정치배경을두고장성이된 즉똥별들이많다

  • @kriskwon575
    @kriskwon575 4 роки тому +4

    지형지물을 보면 신립은 3방면에서 포위섬멸 당하기 좋은 위치네요. 조선군 8,000명 이 몰살당하는 수모를 당합니다. 오합지졸인 일반병사는 전투경험이 풍부한 왜군과 단기접전에 상대할 수 없죠. 대신 실전을 통한 작은 승리로 조선병사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하거늘 일시에 정면공격으로 조총의 희생이 되어야 하니 안타갑네요.

  • @user-et2xo4eh9c
    @user-et2xo4eh9c 4 роки тому +7

    고경방장입니다능력이 안되는 인물이 중책의
    자리에 있게 되면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 @yoonaeyoon
    @yoonaeyoon 4 роки тому +8

    신립은 병법서를 읽기나 한 건지. 칼만 무식하게 휘두른다고 장군시키면 저 꼴난다. 충주는 지세가 험하고 산이 많아서 몽골군도 고전한 곳이다. 당연히 험한 지형에 진을 쳤어야 했다. 고려의 명장 김윤후의 충주성 전투 승리로도 유명한 곳. 그런데 세상에 그 좁은 곳에서 그 좁은 논바닥에 배수진을 쳐?

  • @user-wo3er2ks1f
    @user-wo3er2ks1f 4 роки тому +7

    신립은 무대포 선봉돌격대장이 제격인데
    장군이라니~?
    장군감은 아니거늘~
    이 일은 비굴한놈인데 왜 이런 비굴한놈을 처단하지
    못한건지 안한건지~
    어떻게 비굴한놈이 장군이
    되었는지~?

    • @Simsim20242
      @Simsim20242 Рік тому

      정치질하고 줄잘스고 아부질하면
      높은자리가는게 지금이랑같죠

  • @kju42
    @kju42 4 роки тому +18

    원래 사람은 익숙하고 잘아는 방식을 고집하게 되죠, 금고털이 전과 10범 사기전과 10범 소매치기 10범 이런 사람들이 다 잡히고 또 잡히면서도 잘하고 익숙한거 다시 하듯이 신립도
    자신의 승리의 기억들이 전부다 기병전술이니...... 그랬을 겁니다.

    • @user-pj7le9oe1o
      @user-pj7le9oe1o 3 роки тому +1

      비유가 절묘하십니다😍😍

    • @CRCheol
      @CRCheol 2 роки тому +1

      맞습니다 신립이 역사적인 결과로는 병신이지만 그 자리까지 아무 성과 없이 올라간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끝까지 남는 사람들은 나쁜족이든 좋은쪽이든 매사에 철저하고 변화 해가는 시대에도 어떻게든 따라 가려는 노력 하는 사람들이 남는거 처럼,,

    • @Simsim20242
      @Simsim20242 Рік тому

      맞아요 자기만의스타일이있죠

  • @sd-cc4px
    @sd-cc4px 4 роки тому +4

    문경 1관문 앞의 주차장과 상가가 있는 지역은 오르막 협곡입니다.
    당시는 길이 험하고 몇 군데 밭뙤기나 있었겠지요..
    어느날이라도 그곳 상가에서 차를 마시면, 울긋블긋 등산객들이 관문을 향해 구름처럼 올라가지요.
    저 무리가 왜군이라면ᆢ
    관문을 지키고 협곡 가에 복병을 숨기면 승전할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에 한탄이 세나옴.
    천혜의 지리조건을 써먹지않았음.
    조령에서 막았으면 아마 오래도록 왜군을 지체시키고 승전의 계기가 될수 있었을수도
    ㅡ당시는 1관문이 없었으므로 위치를 가르키기위해 관문으로 표기함. 즉 그 자리로 보면됨
    그리고 당시의 처벌방식을 보면 곤장수십대 참수가 빈번한데ᆢ이거는 병신을 만들거나 죽이는건데 너무 너무 가혹하고 무지막지한 관습이고 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 @kjs0818
    @kjs0818 4 роки тому +3

    감사 감사. 또.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 @Yeokg
      @Yeokg  4 роки тому

      감사합니다

  • @user-se7vw3bv7x
    @user-se7vw3bv7x 4 роки тому +19

    신립은 그냥 돌격대장이지 장군감은아닌거여

  • @emkim7715
    @emkim7715 3 роки тому +5

    일본인들의 책에 신립은 도망치다가 익사한 것으로 묘사되더군요..

    • @Phd-gp1kw
      @Phd-gp1kw Рік тому

      줄행랑치다보면 발을 헛디디기일수죠

  • @user-xl2yq4rk4t
    @user-xl2yq4rk4t 4 роки тому +17

    원균 참 못 난놈입니다.
    그 후손 경기도 자한당 원유철이 생각 나네요.

    • @user-lv5wi6yv4b
      @user-lv5wi6yv4b 2 роки тому

      조상이 못났으면 후손도 욕 먹어야 하나?

  • @user-jy7dt4ut7q
    @user-jy7dt4ut7q Місяць тому +1

    원균의변명:침몰시킬수밖에없는상황이였음

  • @user-lc5um2lj2c
    @user-lc5um2lj2c 2 роки тому +2

    지금도 똑 같을 겁니다 주둥이로만 애국을 외치지... 적에 미사일 몇 방 떨어지면 제일 먼저 공항으로 도망 갈놈들...이 많을 거에요....

  • @user-de3xz7sp8u
    @user-de3xz7sp8u 3 роки тому +4

    괴멸되어 침몰된 것을 스스로 침몰 시켰다고 거짓 또 병사들도 육지로 갔다는 것도 패배하여 육지로 도망친 것.... 하여한 교활한 거짓말.....

  • @moti8268
    @moti8268 4 роки тому +11

    신립은 선봉장 정도면 딱.
    전략전술을 세밀히 살피는 병법가 스타일은 아닌듯.

    • @Yeokg
      @Yeokg  4 роки тому +2

      잘 보셨네요 신립과 같은 인물은 지금도 많은 섯 같습니다.

  • @user-tz1kv6eb9d
    @user-tz1kv6eb9d 4 роки тому +4

    강의감사합니다.
    만약 임란초에 이순신장군이 경상좌수사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kjs0818
      @kjs0818 4 роки тому +1

      이순신장군이 전라우수사 직위중에도 경상도 지역 다 대승한거죠 정유재란. 명량해전 빼고. 거의다 승 경상도 지역에서 대승했죠

    • @bluediamond1787
      @bluediamond1787 4 роки тому +3

      경상도 수사였다면 ㅡㅡ아마도 이순신도 거의 대패였을겁니다 ? 지형이나 수적으로도 전라좌수영 바다보다 힘든곳일테니까 .

    • @user-jl1cw9zl4q
      @user-jl1cw9zl4q 4 роки тому

      신립과 같은결과겟지요 .당시 조선수군전투력은 일본군과 비교도 안되게 형편없지요 .
      .전면전하면 백전백패 ...

    • @user-wb3ij9mu8m
      @user-wb3ij9mu8m 2 роки тому

      이순신은 경상도 지역의 판옥선을
      다 수장 시켜 버린 원균의 부탁을 받고
      하루종일 노를저어 강상바다까지 가서도
      완승을 했습니다
      감히 이순신장군을 폄하 하지마세요
      원균은 도망나온 한척으로 지원받는 주제에도
      안싸우고 뒤에서 죽은 왜군 목따서
      선조에게 바치고 공세우기 급급했던 인간입니다

  • @user-hj4ui2jw7v
    @user-hj4ui2jw7v Рік тому

    선조와 신립 환상의 조합입니다 ㆍ

  • @user-nv9ov4cu6w
    @user-nv9ov4cu6w 4 роки тому +7

    신립과원균은 ᆢ지금의 아베인가 ᆢ

    • @jydasdfg3688
      @jydasdfg3688 4 роки тому +1

      @영국산타 TV 용장은 용장이지 지략은 없는 돌격형 장수

  • @user-ju2dq6zj4m
    @user-ju2dq6zj4m 3 роки тому +7

    견해가 깊으신 분의 강의를 잘들었습니다👍 몇가지 저와 다른견해가 있어 설명을 부탁드리고자 아래와 같이 여쭙니다!
    1. 신립의 기마전술 선택의도가 빠진것 같습니다. 단순히 자만심이었다? 여진과의 전투에서 신립은 기마 대 기마로 싸워서 승리한적이 있었을텐데요 단순히 자신감 혹은 자만심으로 보긴 어려워보이고, 한사람의 장수로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전략을 내세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기마병은 현대에서 전차, 전투기, 기갑과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요 또한 제승방략체제에서 조령이라는 험준한 요새에 병사(?)들이 분산배치되었을때 올바른 지휘체계가 성립될수 있었을까? 게다가 험준한 지형인만큼 신립이 자부하던 기마대가 자유로이 움직일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2. 조령만 막으면 한양가는 길목이 없는가? 죽령, 추풍령은 동네 현관문이랍니까?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게 무능해서다.. 전략적 요충지의 개념을 잘못이해하신게 아닌지...조령 죽령 추풍령을 통과 하면 공통적으로 만나는 거점이 지리적으로 충주입니다 충주는 더욱이 가흥창을 끼고있지요 목계나루라는곳을 통해 지방의 특산물을 수로로 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말씀대로 조령을통해 육로를 막았다 칩시다(그마저도 선봉 고니시)
    추풍령 죽령을 넘어오는 2진 3진 가토나 우기다는 한양까지 닿는 육로, 수로를 얻는셈이네요! 조령의 신립은 고니시를 막겠지만 죽령과 추풍령의 2, 3진에게 보기좋게 포위될거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선조가 피신을 결심한게 단순히 신립이 데려간 병사들이 죽어서일까요? 충주를 먹히자마자 도성을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만큼 충주가 요충지이기 때문에! 따라서 충주에 배수진을 친게 400여년이 지난후에도 욕할일인가요? 아니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뭔가 잘못된건가요?
    3. 왜군은 왜 단시간내에 한양으로 진격했는가? 풍신수길에 대해서, 일본의 전국시대 승리의 조건이 뭔지는 아시는지.. 성주를 사로잡으면 전쟁이 끝나는 당시 왜나라 특성상 일본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최단경로로 진격했다는점이 설명에 빠져있습니다~!
    4. 일본사에서 충주탄금대 전투의 병력을 8만으로 뻥튀기했다!(이부분은 동의합니다) 라고 확신하십니다만 징비록, 선조실록 등등은 자신들의 과오를 과연 객관적으로 적었을까요?
    5. 신립은 정말 패장입니까? 맞습니다 졌지요! 다만 사람들의 뭇매를 맞을만큼 무능했습니까? 자 그럼 1592년 누가 지휘했다면 중부이남에서 왜군의 저지를 막을수 있었는지!! 누구라면 유능했을지 궁금합니다
    충주사람으로서.. 안타깝게도 충주가 쇠약해진 시기는 임진왜란 입니다 위의 다섯가지 질문에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질문이 상당히 길군요.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댓글 의견 잘 읽었습니다.

    • @user-ju2dq6zj4m
      @user-ju2dq6zj4m 3 роки тому

      답글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히 국사시간에 배울수있는것보다 더 많은 식견을 늘리고자 해서 였습니다:) 언짢지 않으셨음합니다🙏

  • @user-pg1qw5bn4v
    @user-pg1qw5bn4v 3 роки тому +4

    원균 후손이 국회의원 원유철 ㅋㅋ

    • @oxoxking
      @oxoxking 3 роки тому

      같은 원씨는 맞으나..
      저도 찾아보니 직계손인지 자료가 희박하네요
      아무튼 원균 영정이랑 비슷하긴 함..ㅎ

    • @user-qs1vp6kx6y
      @user-qs1vp6kx6y 3 роки тому

      그것도 5선 참으로 평택분들
      대단합니다 ㅎㅎ 😂

  • @user-do6kf1ex8t
    @user-do6kf1ex8t 4 роки тому +5

    신립은 북방에서 여진족을 방어하던 인물로 알고있습니다. 기마대를 활용한 전투에 익숙했겠죠.
    문경의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를 택한 것도 기마대는 넓은 평지가 필요했으니까요.
    신립이 데리고 간 병사가 약한 이유는, 대부분 강제 차출한 농민들이었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배수진도 나왔고요.
    도성이면 후방인데 정규군이라 해도 오합지졸들이었겠죠.

    • @Yeokg
      @Yeokg  4 роки тому

      옳은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

  • @hamasun1
    @hamasun1 3 роки тому +1

    임용한 박사의 탄금대도 같이 보십시오.

  • @user-em6dp2ix7g
    @user-em6dp2ix7g 4 роки тому +4

    원균씨가용서될수없는이유가능력이없으면나서지마라5000년조선사에서최ㅐ역적매국노가들려주는교훈이다는력이없는데나서는그순간모든재앙이몰려온다풀무원원씨들아부끄럽지도않나5000년최고의매국노역적문균히이자는죽어야합니다풀무원불매운동합시다

  • @TV-fg3kd
    @TV-fg3kd 3 роки тому +3

    다른 채널에서도 쓴 말이지만, 신립 장군은 좀 비장한 생각이 지나치지 않으셨나... 전쟁을 신립장군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탓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도망치는걸 반복해서 방어선을 계속 늘려나갈 노력을 하실 수 있는 기량은 있으셨던 분인데, 성품이 너무 딱딱하셨던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충청도가 뚫리면 도성까지는 순식간에 물밀듯 밀어닥치는거기 때문에 임금님의 신하로써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해가 되지만...
    조금 더 긴 호홉으로 전쟁을 봤더라면 좋았을건데요. 전술에 능하되 전쟁에는 약한 사령관으로써의 자질은 부족하셨던 분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살고 살아서 끝까지 왜군의 침입로를 막아내는 노력을 하셨더라면 이런 비참한 평가를 받지 않으셨을건데 안타깝습니다.

  • @user-uc4ru6rx3m
    @user-uc4ru6rx3m 4 роки тому +2

    다음에대조영이야기해주세요

  • @xsw7700
    @xsw7700 3 роки тому +8

    지금현재 이상한 강의나 책이 만이 올라오는데 마치 신립장군이 탄금대 진을 친다는게 어쩔수 없다고 합니다 패전의 이유는 별로 이야기 안하면서 확실히 신립의 패전의 책임이 큽니다

  • @user-ru3xi1mx6t
    @user-ru3xi1mx6t Рік тому +2

    신립은 병법가도 아니다 그런 자가 도원수?라니 그 당시 지도자들 지금 시대의 지도자와 자격은 있는지

  • @3en6ql2h5j
    @3en6ql2h5j 3 роки тому +3

    전술 부분에서, 조총사격만으로는 기마대를 막을수 없습니다. 당시 조총의 사격거리는 50~100로, 중기병 기준 초속 14m(시속 50km)로 이동한다고 해도 4~7초 정도면 충돌합니다(실제로는 훨씬 빨랐을 것으로 봅니다). 아무리 연사속도를 올려도 단 한번 사격이 전부입니다. 기병을 막는 역할은 조총병과 편조된, 장창병을 포함한 냉병기 아시가루들의 임무로, 길면 6m에 이르는 유독 긴 일본식 창을 활용한 밀집대형과 여러 장애물(일본식 방패, 죽창말뚝 등을 활용한 뛰어난 공병기술 보유)을 동원해 충격력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영국에서 실험한 활강머스킷의 명중률이 100m기준 약75%이니 당시 조총이 사냥용 총기 기반의 물건이란점을 고려해도 75%이하의 명중률이었을것이고, 그 이상 거리에서는 명중률이 많이 감소하며, 동시에 측방이나 후방에서 조총으로 기병을 사격하기는 어렵기때문에 속도를 내서 처음 한번 사격만 견디면 도달할 수 있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왜군은 특이하게 기병이 거의 없어서, 신립장군은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사거리전투(각궁 사거리는 145 이상, 조준사격 기대거리는 30~100이나 돌진하며 전방에 집단사격시 그 이상 사거리 확보 / 조총 교전거리 50~100)와 충격력을 활용한 유린전투를 구상했을것으로 판단되나, 처음 한번 성공한 후 충격력을 상실해(장애물/장창+생각보다 높은 사격피해로 돌파및 유린공격 불가)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집중사격으로 궤멸되었다고 판단됩니다.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내용 잘 읽었습니다.

  • @user-se6ww7rt6c
    @user-se6ww7rt6c 4 роки тому +7

    신립은 여진족에 대해서는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으나 이는 부족상태인 여진족의 소규모였으나 일본군은 왜구도 아닌 국가규모의 정규군이었으며 오랫동안 전쟁에 숙달된 대규모의 군대였다. 하지만 신립은 과거의 자신의 전투에 매몰되어 일본군에 대한 정보도 없이 전투에 임했으니 지는건 당연한 것이다.

  • @sunkim90
    @sunkim90 3 роки тому +4

    장군 욕은 그만 합시다. 나라가 군사력을 키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무인을 천시하는 분위기 하에서, 무슨 걸출한 장수가 나올 것이며, 나온다 한들 옥에 가두고 불로 지지는 나라에서, 끝없이 장군들 욕만 합니까? 군인 현실이 비참하고 앞이 암담한게 사실인데 역사마저도 군인을 지지밟으면, 어느 총명한 사람이 군대를 가겠으며 나라에 영웅이 나올까요?

    • @user-qs1vp6kx6y
      @user-qs1vp6kx6y 3 роки тому +1

      선조에 무능함 무순말이
      필요 할까요~~~이성계 가
      정권잡는것이 슬픈일에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Jeonghoonson1
    @Jeonghoonson1 2 роки тому +2

    에초에 원균이 전라좌수영. 이순신이 경상 우수영이였더리면 판이 달라졌을 수도. ㅋㅋ

  • @user-pj9qz8lb1v
    @user-pj9qz8lb1v 4 роки тому +5

    이산해가 간신, 무능한 신립

  • @GGG-mq8dy
    @GGG-mq8dy 2 роки тому +2

    한명의 잘못이아님 조선 백성들의살육전은 김성일 -선조-신립-이일-원균 이들이 존재하였기때문이지

    • @Yeokg
      @Yeokg  2 роки тому +1

      맞습니다. 한명의 과오 만으로 발생된 것은 아니죠.

  • @bhk3466
    @bhk3466 3 роки тому +3

    근데 문경새재에 그 당시에는 어떠한 성곽 같은 구조물이 없었다는데... 그 상황에서 훈련 안 된 병사들을 몰아넣어봐야 의미가 없을 테니까...
    당시 신립으로서는 자신이 있었던 기병 운용 전술을 생각한 모양...
    사실 조선이나 명이나 제일 두려워하고 군사력의 대부분을 집중한 것은 왜구가 아니라 여진족이었다고 하니...
    여진족 상대하던 것에 비하면 왜적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듯...
    어쨌든 조총의 위력을 알지 못한 게 가장 큰 패인으로 봄.
    송나라 2천 보병이 금나라(여진족이죠.) 기병 17명에게 처참히 도륙당한 전과가 있고...
    자신들은 그러한 여진 기병과 기병으로 맞짱을 뜨던 존재들이니 왜군 보병을 우습게 보다가
    집단 조총 운용전술에 당한 거....

    • @Simsim20242
      @Simsim20242 Рік тому

      조총보다 늪지대가 크게한목함

  • @user-pg2xw8qy1h
    @user-pg2xw8qy1h Рік тому +1

    듣기만 해도 답답하다

  • @HsK-sm4vq
    @HsK-sm4vq 3 роки тому +1

    원균의 경우에는 전투에서 이겼을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수군이란 것도 해안에 위치해야 하는거고, 경상도는 이미 엄청난 수의 왜군에 쑥대밭이 된 상황이라, 원균의 상황이 그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user-wb3ij9mu8m
      @user-wb3ij9mu8m 2 роки тому

      첨부터 엄청난수의 왜구가 경상땅을
      통해 이땅에 발을딛게한 자체가 경상도 바다를 책임진 원균의 잘못입니다
      원균은 우리배 수십수백척을 고의로 수장시키고
      홀로 한척만 타고 도망 나온
      비열한 인간 일뿐입니다

  • @nogada8
    @nogada8 4 роки тому +5

    신립이야기만 나오면 광분하는 베충이들많음 고로 내 상관이 베충이라면 가장 먼저해야할것은 빤쓰런~~~이것이 교훈임

  • @user-pp2fq7fp7e
    @user-pp2fq7fp7e 4 роки тому +1

    이일의 자작극이라?
    과연 그랬을까?~~
    병자호란때 남한산성
    에서 전사한 우리병사
    의 목을 잘라와 포상
    받았다가 들통이 난
    일이 있다함(라만갑
    의 병자남한일기중)

  • @kimjuni
    @kimjuni 3 роки тому +3

    원균은 일기를 안써서 모든 사정을 다 알수없죠
    이차대전때도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프랑스해군들은 독일에 함선 넘기기싫어서 자침시키기도했음

  • @tvseoktv1891
    @tvseoktv1891 3 роки тому +1

    구창모 변우민

  • @user-pg2xw8qy1h
    @user-pg2xw8qy1h Рік тому

    원균 과 비견될 인물 신립

  • @user-qs1vp6kx6y
    @user-qs1vp6kx6y 3 роки тому +4

    원균장군 에 후손 평택 국회의원 5선 원유철 의원님 을 장차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모심이 좋을듯합니다
    아무나 오선 합니까?
    명박 에 상왕되신 상득 의원님 도 오선 하시구선 이 나라를 잘도 말아잡수지 않았나요!
    자랑스럽습니다

  • @dongjoo87
    @dongjoo87 3 роки тому +4

    신립 명장은 맞는데 병법가스타일은 아닌듯 유성룡말을 잘들엇어야했는데 본인이 잘하는 전술만 고집하니 결국 그리되엇음

    • @Yeokg
      @Yeokg  3 роки тому

      저는 신립 장군의 패배를 보면서 변화를 시도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의 성공을 답습 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되는지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 @user-dj3dl6ph5j
      @user-dj3dl6ph5j 3 роки тому

      명장이 아닌 용맹

  • @user-fr9gr8uq3m
    @user-fr9gr8uq3m 4 роки тому +5

    조령 요새인건 맞다...
    성, 요새는 그 성과 요새를 지키는 병사만큼만 강하다...
    장수는 용맹하였으나 병졸을 오합지졸 이었다...그 오합지졸이 조령을 지킬수 있었을까...충주 탄금대에 올라 벌판을 보면 탄금대를 택한 기병장수 신립의 판단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4월 봄가뭄 한창인 때...비가 내리니..
    나라면 나와 함께 전선을 누비던 최정예 기병을 활용할까...아니면 왜구도 인정한 도망갈 궁리만을 하는 오합지졸을 데리고 도망가기도 편한 조령에서 싸울까?.. 그 시대 그 현장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신립은 선조와 사돈관계다 그래서 목숨걸고 충주를 지키라고 보낸 것 아닐까?...그리고 애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것 아닐까?
    일본사에서는 신립, 김여물은 사로잡혀 참수되었다고 한다...투신은 우리 역사의 이야기인 것이고...난 참수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 만한 강이 아니니까?
    갑론을박..옳고그름을 떠나 비판하여 터산지석으로 삼으면 모를까 이미 알아버린 과거사의 답으로 폄하하고 비하하는 것은 옛 사람들에 대한 예가 아닌듯...그리고 이시대의 지성이 아닌듯 합니다

  • @user-kr6ec3ne6m
    @user-kr6ec3ne6m 3 роки тому +3

    초보자임??척후병을 한명만ㅋㅋㅋㅋㅋ

    • @user-fp9bg4kk5c
      @user-fp9bg4kk5c 3 роки тому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원시시대 입니까? 아니면 아직 진화가 덜된 유인원? 그 당시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장교입니다

    • @user-kr6ec3ne6m
      @user-kr6ec3ne6m 3 роки тому

      @@user-fp9bg4kk5c 근디요??척후병을 한명만 보내는건 어느시대나 초보대접 받는건데요

    • @oxoxking
      @oxoxking 3 роки тому

      스타할때 정찰 하나만 보내다 중간에 죽음 ㅜ
      적 본대를 못본거죠 ㅋㅋㅋ
      조선시대 무과시험에 스타,롤 과목이 있었어야...

  • @user-bf3wl5bd5e
    @user-bf3wl5bd5e 4 роки тому +5

    역사를 개인적 추측으로 말하면 그역사는 이미 왜곡된 것으로 역사가 아니고 날조된 겁니다.
    사실만 말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것이죠!
    강의에 상당부분이 강사의 개인적 견해를 담고있어
    유감입니다.

  • @user-zv9nw1cj3i
    @user-zv9nw1cj3i 4 роки тому +4

    비난 하는게 전부가 아닐진데 오합지졸 데리고 전투하는 신립장군은 오죽 했겠어요ㆍ

    • @salut3719
      @salut3719 4 роки тому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비난하는 건데요?
      조령에서 매복안한 전략 미스 이런거 떠나서 자기 개인군대도 아니고 함부로 옥쇄할 생각을 하는 자체가 터무니 없습니다.
      이일은 도망가서 패전소식이라도 알려줬지...

  • @user-kp4oy9nq8o
    @user-kp4oy9nq8o 4 роки тому +3

    도대체 당시 신립을 대체할수 있는 장군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 @movingstonelee7323
      @movingstonelee7323 4 роки тому

      단한명?
      ㅋㅋㅋ
      왜구 개대가리 색기가
      대가리도 텅텅 비었노...
      ㅋㅋㅋ

  • @aidenelin7831
    @aidenelin7831 3 роки тому +6

    신립장군을 폄하 하지 마세요.신립장군은 최후까지도 적들과 싸웠다.

  • @user-pe4kc1vn2g
    @user-pe4kc1vn2g 4 роки тому +7

    신립 원균을 욕하지마라 그들어 판단미스가 있었을수가 있어도 애국심은 이순신 못지않았다 오늘의 잣대로 그때를 평가하면 안된다

    • @user-fj1ud7nr6m
      @user-fj1ud7nr6m 4 роки тому +4

      애국심은 인정하지만 지휘관으로서 기본을 망각하여 적에게 별피해도 못주고 무모하게 병력을 소모시킨점

    • @user-pe4kc1vn2g
      @user-pe4kc1vn2g 4 роки тому +1

      @@user-fj1ud7nr6m 역사는 만약에가 업스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죠 안타깝지만 역사는 항상 예측불허방향으로 갑니다

  • @user-ex4rt9vi7i
    @user-ex4rt9vi7i 25 днів тому +1

    자신의 힘만 믿고 용맹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하급 병사 수준에서나 통한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용맹함 보다는 상황판단 능력이 중요한데,, 원균이나 신립은
    높은 자리에 있어서는 안되는 자들임,, 적이 나타났다고 보고 하는 사람을 죽이면
    누가 자발적으로 정보 보고를 할지? 예나 지금이나 포악한 자가 높은 자리에
    있어서 성공한 사례가 없음,,

  • @user-fy1qg9nb7p
    @user-fy1qg9nb7p 4 роки тому +3

    감사합니다 .

  • @user-fb5lv2un3c
    @user-fb5lv2un3c 4 роки тому +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