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입니다... 지난 3년간 방황의 나날을 거치면서 수백 수천개의 영상들을 닥치는대로 무절제하게 찾아다니고 수집해왔는데 단 하나의 영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약 18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점 커지는 벅차는 마음과 함께 남은시간을 아까워하며 시청했습니다.. 이 영상과 더불어 최근 알게된 낙관적 허무주의도 더해져 저의 34년 혼란스럽던 인생관이 비로소 선명해지고 그토록 갈구하던 평온을 찾았습니다. 실행은 별개의 이야기지만, 방향성과 방법을 알았으니 이 영상을 포함하여 저만의 네 가지 영상을 인생 모토로 삼으며, 마음이 흔들리고 기억이 흐릿해지지 않도록 잠재의식에 처절히 새겨질때까지 꾸준히 반복 시청하겠습니다. 김필영 선생님,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제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튜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몇달동안 방황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바다 속에서 어쩌면 나를 일으켜 세워 줄 영상이 없을까하며 무기력도 우울함 속에서 매일 유튜브를 보던중 이 영상을 찾았습니다. 저 또한 영상을 보고 님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십만원을 후원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글을 보고 동질감을 느껴서 이렇게 남깁니다.
행복을 쫒는 것 자체가 불행의 원인입니다. 행복은 그저 삶의 한 상태이며 도구입니다. 도구를 욕망하면 그 도구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식을 위해 책을 욕망할 때 책은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제 책 자체를 욕망의 목적으로 두면 본래의 목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지 쓸모 없는 고통이 될 뿐임으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 특정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같은 내용을 담은 유튜브는 봅니다. 왜냐하면 유튜브는 재미를 위해 보는 것이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을 통해서 도파민을 분비시켜서 결과적으로 재미라는 목적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나 불행이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만일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임에도 그것에 만족한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정서는 유지했지만 긍정적인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즉 우리는 백점만점인 시험을 의도적으로 십점만점이라고 인지를 왜곡해서 십점에 만족하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이러면 긍정적인 정서는 유지가 됩니다. 근데 그 긍정적인 정서, 과연 계속 유지가 될까요? 점수는 9점, 8점, 7점, 결국에는 0점에 도달하는 날이 오고야 말겁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이런 화를 불행으로 보고 내 뜻대로 돌아가는 것은 행복으로 봅니다. 즉 원래 행복과 불행은 내가 원하는 욕구나 욕망대로 이루어졌는가? 아닌가를 알려주는 내면의 신호인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을 욕망하는 것입니다. 세상 그 자체를 모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만일 예측대로 일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세상은 이미 결정된 상태임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즉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도 불가능해도 결국 나는 세상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먄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세상 모든 것은 내가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통제 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만을 채울 수 있습니다. 내가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죠. 여기서 불행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통제 가능한 것만을 욕망한다면 우리는 불행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행복감만을 쫒게 되면 우리는 불행감을 피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고통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행복만을 쫒게 되면 바로 이런 고통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 행복 또한 얻지 못 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남들이 제시하는 수동적인 방식으로 행복을 얻습니다. 즉 우연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스스로의 상태를 원하는대로 결정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혹은 타인이 결정해준 우연한 행복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이 행복감의 양을 늘리지는 못하니 기준을 낮추거나 손쉬운 쾌락을 추구하는 방법 말고는 행복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나 불행을 욕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결정하기를 욕망 혹은 소망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기결정감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긍정적인 상태에 있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상태에 있는지, 내가 그저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고 있을 뿐인지 아니면 어떠한 결심을 통해 행동하고 있는지, 결론적으로 그러한 목표가 잘 이루어졌는지, 이러한 자기결정감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처칠의 명언 중에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이다라는 말이 있죠. 여러분은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결정하고 싶나요? 아니면 용기 있는 사람으로 결정하고 싶나요? 우리는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 역할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뿐 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한 사람으로 유지하려고 아둥바둥할 겁니다. 하지만 나는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자신이 부여한 역할에 심취해서 긍정적으로 여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고통을 감내해내는 용기라는 정서입니다. 우리는 사실 단순한 쾌락이나 행복이 아니라 이러한 살아갈 용기를 가지길 원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길 원하는지.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만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사실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바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부자가 되길 원하길 원합니다. 부자는 힘이 있고 스스로를 더 많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스스로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하고 있는 그 행동들이 바로 자기가 진짜 원하고 있는 행동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원했지만 그 부수적인 작용까지를 원하지는 않았을 뿐이지요. 무엇을 원하길 원하는가? 다르게 말하면 나는 어떤 역할이고자 하는가? 또는 나는 누구이고자 하는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결정한 것은 결국 나입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도 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도 나입니다. 내가 두려워 해야할 것도 나고 내가 존경 또는 사랑해야 할 것도 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을 단지 적처럼 생각합니다. 영상에서 말한 인정 투쟁은 사실 자기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사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욕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인정을 욕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무엇에 실망했는지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우리는 스스로의 앞에서, 그리고 남들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댓글을 읽다가 울컥하기는 처음입니다. 33살 평생 나는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이해 못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위안을 하며 살았지만 결혼 이후 왠지 모를 책임감을 시작으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변화의 이유는 딱 하나더군요 제 스스로의 본성과 대화하는 것, 난 진정 뭘 원하는가 , 그 변화를 위해선 지금 당장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그게 진정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인가, 정말 많은 생각과 독서, 메모를 하였고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길게 써주신 댓글에 비하여 너무 초라한 글이지만 제 지금 순간의 가치관과 완전 동일하기에 몇 글자 끄적여봅니다.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성취하는 그런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말씀감사합니다!
본능과 욕망에 대하여 1.서론 인간의 마음은 본능+감정+의지. 본능이 원하는것을 욕망이라고 함. 욕구는 욕망을 이루려는 충동. 본능의 성취여부에 따라 느끼는 감성을 감정이라고 함. 2. 본론 본능은 5단계 본능 ㅡ 1단계 생리적(식욕 수면욕 성욕), 2단계 존재적(이기심ㅡ아담 스미스는 국부론 책에서 각자가 자기 이기심의 충족을 위해 노력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조정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고 주장), 3단계 사회적(인정욕구-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통해 탁월함을 드러내어 자기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 4단계 소유적(부처와 디오게네스는 무소유를, 플라톤, 맑스, 사회주의는 공동소유를 주장), 5단계 궁극적 본능(재미를 추구하는 본능, 에피쿠로스는 소소한 쾌락을 주장). 에릭 프롬은 2단계 존재본능과 4단계 소유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렸고,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단계의 욕구 사이에서 중용을 지킬것을 권유함. 본능에서 나오는 욕망과 욕구의 성취여부에 따라 감정이 생기는데, 잘 해결되면 행복한 감정을. 본능 성취에 실패하면 불쾌한 감정을 느낍니다. 희노애락애오욕ㅡ 좋은감정(희애락) 불쾌한감정(시기 질투 노애오욕) 3. 결론 본능을 잘 성취하면 좋은 감정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됨.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할때 재미와 보람까지 5대 본능을 모두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잘먹고 잘살아도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행복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잘 정리한 영상인것 같습니다. 인정욕구로부터 욕망이 나오고 그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면 더큰 욕구를 느끼게 된다. 너무 공감가는 내용이에요. 예전에 어나더랩 이라는 채널에서 군중 속에서 뒤쳐지는 이른바 FOMO 가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울 만큼 강력한 감정이라던 애기가 생각나네요 ㅎㅎ
욕망하지 말라는 것은 사랑하지 말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욕망을 채우려고 해도 반드시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욕망하지 않는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단 무엇이라도 하는게 의미있는 삶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좀 더 행복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욕망하지 않고자 하는 것 또한 욕망입니다. 결국 우리는 욕망하지 않는것도 정답이 아니고 과도한 욕망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영상의 '철학적 사고를 통한 욕망'에 대한 설명이.. 절대로 알수도, 도달할 수 없는게 있읍니다..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열매는..(성령의 열매, 곧 그리스도, 성령의 자녀) 그러한 '욕망을 하는 주체인 나' 자체의 ..허상에서 벋어나면.. 천상의 천사나 신과 같은..잃었던 본성을 되찾을 수 있기에.. 영원히 행복(영생)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길을 찾고..그 길을 실제 가는 사람은.. 태초에 잃었던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 있고, 잠들어 있는 영(태초의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고.. 그것은 종교와 신앙 생활으로만 가능한 일이죠.. 철학적 생각(혼의)을 통한 사고의 결론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으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의지로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고..(종교적 세례) 신의 계시를 받아 들이고 실행하면..(신앙 생활) 태초의 창조주의 성령이 그것을 인도하여 이끌어 주고.. 일일이 가르쳐 주며...완성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고 부활 자체인.. 창조주의 성령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내가 믿고.. 내가 만나서.. 내가 성령과 하나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일을 완성시켜 주는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 영혼은.. 철학적 사고를 넘어 ..종교적 영혼이 되어야하고.. 또한 종교를 넘어 신을 믿고 실행하는 ..신앙생활을 해야하고.. 종교와 신앙 생활의 최종 목적이며..영원한 행복인..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없는 욕망과 탐욕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에서.. 그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참다운 영혼(참다운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것입니다.. 그 것이 탐욕에 빠진 나에게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 만큼 창조주가 태초에 주신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우리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음(탐욕으로인한 고통)을 깨닫고.. 되돌아 가야만 ..진정한 행복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머리로 알아듣는게 아니라 강력한 계기와 같은것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건 그 이후에 선택을 해야한다는 거죠. 고대의 그런 초인들의 삶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의 최소한의 타협을 하고 살아갈 것인지. 저에게는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이였던것 같습니다.
세상모든일은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를 풀수있는 하나의답! 자신이답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하는신은 자신 질문하는자되려하지말고대답하는자 待 답 : 대꾸하지않고답하는자😊 행복으로가까이갈수있는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세상에서 가장 믿을수있는친구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바른마음을 품고 살며 바른선택을 하며 살며 바른것에만 기대며 살며 바른것만 보며 살고 바른말만 주고 받고 바른행동만 하며 살고 바른생각만 하며 살고 바르게 자신을 믿고 사는것 자신을알고자신이어떤사람인지알고 소신있게 마음과행동이 어울러진 사람 자신의삶을 즐길수 있는 사람 자신을 세상을 인정 할줄 아는 사람 자신을 존중하고 세상을 존중하는사람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사람 나는너가될수있고너는내가될수있고 자신이세상이고 세상이 자신이다. 자신도세상도지킬수있는방법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에게 줄수있는법 세상어떤일보다가치있고아름다운일 자기자신을깨닫고 올바르게 자신을 아름답게 자신부터 보여주는것 나 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도 그 무엇도 바뀌지않는다. 마음과몸을 자신을 되찾고 자신이 그 모든걸 이겨내고 증명하면 무엇이든 할수있고 세상은 변할거다 사람은 좋은사람이든 나쁜사람이든 태어날때 그 순수한 마음 본질은 바뀌지않는다 어느 누구나 다시 시작할수있다.😊 세상에서 살면서 꼭 이겨야 할 頔 자신도세상도존재도아닌 현실이다😊 세상에서가장빨리알아야할것 효도 세상에서 꼭 깨우쳐야될것 자신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될😊 생명 세상에서 가장 빨리 행복을 깨닫는😊 올바른삶 이것들을 삶속에서 다이루고살면 완벽한삶을 살았다고 후회없이 그 다음의나에게 맡기고 😊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저는 그럴 수 있다 말하지 못하겠지만, 결국 죽음에 가까워질 때 비로소 모든 욕망이 덧없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삶과 멀어져 죽음과 가깝게 살다가 다시 전과 같이 욕망을 추구하는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을 때 즈음 이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겪으며 결국 인간은 죽음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말씀은 제가 느끼기에 동일한 뜻으로 생각됩니다.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영상들 감사합니다..
욕망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만족', '감사'라는 단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만족과 감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덧없는 욕망을 자각하려고 노력하고, 만족과 감사를 중심축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점점 보다 더 나은 행복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많은 영감과 울림을 주는 영상 감사드립니다^^!
잘봤습니다. 어찌보면 서양식 불교버전이네요 내용자체가 거의 불교라 해도 맞는듯. 불교에서 말한 행복과 불행은 다 내마음에서 일어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외부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다 불행하다의 기준을 내가 규정하는것에 따라 행복할수 있고 불행할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린 결국 학습화되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욕망도 사실은 학습화 된 매개물인거죠. 만약 돈이 매개체가 아니라 코코넛을 중요시하는 사회라면 코코넛을 모으고자 욕망했을거고, 높이뛰기를 잘하는 사람이 왕이 되는 사회라면 모두가 지금 돈 버는 것 만큼 어릴때부터 높이뛰기 사교육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높이 뛸까를 고민할겁니다. 인간은 결국 학습화 에서 벗어날수 없고 따라서, 행복또한 자기가 학습화, 자기학습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 행복관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학습하는거 그걸 불교서 정진 수행이라고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을 행복하다라고 규정하면 지금 행복한겁니다 ㅎㅎ나중에 행복할거야 규정하면 나중에 행복할겁니다.. 좋은 영상을 봐서 생각 정리가 잘되네요
흔히들 자본주의를 욕망의 화신으로 생각하지만 실상 이타적인 마음 없이 자본주의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더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하기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세상을 제로섬 게임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진정한 제로썸 게임은 도박이죠 자본주의, 자유경쟁 사회는 인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새로운 시장을 늘 개척해왔고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유욕이 과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욕망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이 중요하지 자본주의는 죄가 없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풍족함을 통해 철학과 같은 인문학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가질수 있습니다 북한 같은 사회에서 이렇게 유튜브를 통해 철학을 배우고 사유할 수 있을까요?
현재 제 나이 32살. 저는 최근 몇달전에 엄청난 큰 깨달음을 느끼고 이런 물질적인 번뇌에서 벗어나서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리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돈이 안되더라도 제가 하고싶었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라도 깨닫게되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올려 주시는 영상을 볼 때 마다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엄밀히 쌓아 올린 철학적 사유야 말로 무엇 보다도 제게 큰 응원이자 위로이며,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으로부터 일시적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것을요. 위대한 철학자들은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듯 한 문장들로, 사실은 쉽지만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한 따뜻한 메세지를 남기고 간 것 같아요. (내가 미리 고민 해 봤으니 너희는 머리 덜 아프라고..사실 다들 굉장한 츤데레인 것인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대신 소화 잘 되게 꼭꼭 씹어서 밥 때 되면 떠 먹여 주시기 까지 하니.. 삼키기만 하면 되는 저로써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들 화이팅입니다!
15:52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바닷물 1리터에는 10g의 소금이 있는데 지속적으로 마시지 않는한 강한 갈증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땀을 많이 흘렸다면 바닷물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도한 나트륨 섭취가 신체의 항상성을 부술 우려가 있다면 직장(항문)으로 바닷물을 넣어 수분만 흡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대장은 오로지 수분만을 흡수하기때문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어쩜 고통을 피하려고 할때 시작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피해도 삶은 늘 우릴 또다시 고통속에 가져다 놓기 때문이죠. 우린 그냥 고통이 없는 영원의 시간(사랑과 평화만 있는 정말 재미 1도 없는 끝없이 권태로운 시간)속 영혼으로만 살다가 아주 찰나적인 육체를 가지는 동안만 느낄 수 있는 정말정말 신기한 경험인 고통을 체험(?)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그냥 즐기면 어떨까요? (고해의 바다에서 해수욕쯤??) 그럼 그 순간 고통은 사라질꺼 같네요~ㅎ 영원의 관점에서 고통은 정말 나쁘기만 한것일까요?^^ (사실...저도 지금 고해의 바다에서 열씨미 수영과 파도타기를 배우는 중?ㅋㅋ)
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가 정의하고 믿으며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한대로 펼쳐질겁니다. 상황은 우리의 의식의 거울로서 중립이고 우리가 정의하고 믿는대로 그 에너지를 체험할겁니다. 존재를 부정하고 거부하며 가치판단하고 저항하며 지금 이 순간의 완전함을 떠나 더 가치 있는 곳이라는 환상을 집착하는게 고통일겁니다. Love and light to you...
고통은 행동을 원하는 신호입니다. 고통은 행동을 원하는 욕구입니다. 행동은 생동이며, 생물들의 활동입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한, 행동하고 있는한 고통 자체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므로 고통이 삶의 필수적인 존재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고통과 함께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욕망에 대해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설명해 주셔서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이 생깁니다 우선 '욕망'은 왜 있는가? 그 가치와 역활은? 그것을 끊는다는 것도 또다른 욕망이 아닌가?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나누는 기준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가 주관적인가? 그 기준은? 이러한 의문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의 마지막 거리뷰가 얼마 전 다녀온 후쿠오카 여행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네요. 클럽에서 밤새 불태웠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욕망 때문인지 아침 9시가 넘은 시간까지 밖으로 나와 여기 저기 모여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봤습니다. 한국에서는 늦어도 4-5시 쯤에는 파하고 집에 가든지 해장을 하러 가든 하는데 이 친구들은 오전 9시가 넘도록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젊은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욕망에 대해 반응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만화 있었는데 악마와 계약으로 자기 욕망을 무조건 다 채울 수 있는.. 그래서 별의별거 다하고 우주에도 가고 하는데 더이상 욕망을 채우는걸로는 권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짐. 그래서 결국 결핍을 원하게 됨ㅋㅋㅋ 굶주리고 싶다고 소원빔.. 이런거 볼때 에피쿠로스처럼 치즈 안먹고 가끔만 먹는게 좋은방법같음 진짜 뭐 디오게네스처럼 살꺼아니면 걍 적당한 직업 가지고 일도하고 하기싫은것도 좀 하다가 한번씩 소소한 욕망을 살짝씩 채워주는걸로 만족하는게 좋을듯. 이래야 자본이 많이 안들어감 큰거 채우겠다고 쎄빠지게 고생하는거는 진짜 제일 불행해보임 뭐 인정욕구는 명품으로 과시해서 채울게 아니라 내가 주변사람 챙기고 잘하면 그게 좋은사람이고 진짜 인정받는거 아닌가? 어차피 부를 과시해서 인정받는건 내가 아닌 내 돈이 인정받는거고 그리고 내 핵심 사람들 한테만 인정받으면 됨
이전에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긴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결론은 resource/desire 중 분자를 높이기 위해 더 노력하던가 혹은 분모를 줄이던가 둘 중 하나의 양자택일을 해내야 결국 한계효용법칙에 맞물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결론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술 한잔하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이미 BC300년 전 부터 논의 되어왔지만 결국 완벽한 해법은 없는거 같아 마음 한 켠이 아쉬우면서 살아갈 동력을 주는 인생의 재미 같아 재밌게 영상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적인 척 하는것이 삶의 기술이라.....권태를 느꼈다가 다시 예전 희망과 도전이 필요해 다시 희망적인 척을 하고 있는듯 합니다. 욕망과 권태...에서 권태에서 다시 욕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삶의기술...희망적인 척.....삶의 기술이 아니라 살기위해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법구경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마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미움이 생기나니 이미 그 얽매임을 벗어난 사람은 사랑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다" 뜬금없이, 영상 보고 문득 떠올라 적어 보았어요..ㅎ 일본에서 새벽까지 돌아댕긴다고 광고하시네요.. 뱅기표 끊고싶은 바람이 가득 생기네요!
권태가 심해지면 우울, 절망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 되면 스스로 빠져 나올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욕망을 가지면서 2프로 부족한 상태가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거짓 희망을 갖는것. 희망고문까지 잃는다면 무엇이 삶을 지탱해 주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영상보아하니 일본인것 같은데 저도 나이 28살에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일본으로 와 있는 상태입니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쌓여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뭔가 해소가 되는 기분입니다. 단순히 기분 일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뇌가 완화되는 기분입니다.
욕망은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죠.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고통의 굴레를 만들기도 하지만 끝없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합니다. 욕망의 에너지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자신감, 가치, 경험, 안정, 힘 등등 여러가지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욕망이라는게 그저 나쁘기만 한것도 아니고 좋기만 한것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다만 욕망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에 무시할 수 없으니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죠.
불교에서 중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 인것 같습니다. 적당히 욕망을 다스리면 행복하게 즐길 수 있지만 양심이든 욕망이든 일정 선을 넘어버리면 타인의 지탄을 받거나 스스로 무너져서 고통스럽게 되니까요. 돈도 적당히 벌고 돈자랑도 적당히 하고 이성도 적당히 만나고 양심 없는 행동도 적당히 하고 그래야 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몇몇 수많은 미꾸라지들이 양심의 선을 무너트리면서 돈도 너무 지나치게 벌려고 하고 섹스에 중독된 인간도 많고 음식도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선을 못지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통이 많아진 세상입니다. 바로 잡을려면 더 양심있는 사람이 강한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권력이라는것이 이상하게 오래되면 부패하려는 속성이 있어서 그 간사함때문에 안타깝지만 고통스러운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영상을 보았네요 ^^ 이 영상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것 같습니다 ㅎㅎ 혹은 이 영상을 보기만 한 사람과 이 영상을 보고 5초 안에 뭐든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 같습니다 ㅎㅎ 우리의 뇌는 생존 보존을 위해 신체와 마음의 결핍 찾아 조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신체든 마음이든 결핍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핍을 찾아서 생존을 위한 균형을 위해 움직이는 시스템이니 당연한 것이겠네요 결핍은 채워야 하니 욕구가 생기고 이러한 욕구는 관계적 허상으로 욕망으로 이어지겠죠. 특히 결핍 중에 심각한 두려움을 경험하게 했던 결핍은 핵심 감정? 핵심 기억?이 되어 삶의 태도와 방향의 기저가 될 겁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삶의 왜곡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극히 당연한 숙명인 생존불안(실존불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장의 결핍은 채워지는 순간 우리 뇌는 또 몸과 마음과 기억을 더듬어 결핍을 찾거나 만들어 내겠죠 ㅎㅎㅎ 끝날 수 없는 게임인 것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생존불안의 가상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죠 ㅎㅎㅎ 그래서 선지식들이 꿈 깨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핍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고 생존불안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결핍과 욕망하고 있는 자신을 봐야하는데 늘 밖에서 답을 구하고 찾던 삶의 습관 때문에 내면을 들여다 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스님 되었다고 모두 수행하는 것이 아니듯 이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나 관심있는 분야죠 ㅎㅎㅎ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려줘도 안하는 ㅎㅎㅎ 정말 대단한 영상 감사합니다.^^
뇌는 크거나 잦거나 쉽게 얻은 쾌락을 얻을수록 그 만큼의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동시에, 동일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줄여버립니다. 이를 뇌의 항성성 유지기능이라 합니다. 뇌가 살려고 그 짓을 못하게 막는 것이죠. 때문에 원시인일 때는 자연적으로 중독에서 벗어납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문명 발전으로 인간은 불만족과 중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하게 쾌락을 느꼈으면서도 더 크고 많고 쉬운 쾌락을 찾아 얻고 그걸 무한으로 반복하다가 결국 뇌가 작은 즐거움이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로 망가져버리죠. 한 번 그렇게 망가지면, 다시 원상복구되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어, 그걸 버티지 못하고 다시 쾌락을 찾고 또 고통에 몸부림치고, 줄여보려 하다가 금단증상에 고통받고, 쾌락에 미치고 무한 반복을 하다가 평생 만족을 하지도 못하고, 불쌍한 삶을 마감하죠. 생각하면 할수록 욕심을 버릴수록 행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욕망이 100% 채워질수없다고해서 욕망을 극단적으로 끊기보다는 욕망을 적당히 채우고 만족할줄아는 지혜가 필요한거임. 욕망 전혀 없이 살수는없음. 욕망이 있어야 의식주를 해결할수있으니까. 기본(의식주)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선택임. 현재로써 만족하고 살건지 그 이상을 추구하면서 살껀지.
욕망은 자연선택된 형질이라 지금의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만물은 물리법칙에 따라 운동하기에 만물 중 하나인 인간도 법칙대로 운동하고 있을 뿐이죠 행복해 지려 노력할 필요가 없고 노력할 수도 없습니다. 법칙대로 운동하다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 행복을 즐기면 됩니다.
쇼펜하우어의 논증이 논리적으로는 가장 합당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이 그 논리를 차용할만큼 길지 않습니다. 잘나가는 사람들 보면 그냥 계속 욕망을 좇다가 갈때되서 나이차면 갑니다.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불교,쇼펜하우어,니체의 사고를 따라가면서 행복론을 찾다보면 허무주의에 빠져 인생 망합니다. 영원회귀라느니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반출생주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행복에 대한 깊은 성찰은 행복을 멀어지게 합니다. 나가서 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냥 그렇게 사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참 인생살이에 유익한 좋은 방송이네요. 디오게네스란 기인을 처음 들었지만, 더 오래전에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버려야 행복해진다고 하신 분들이 있지요. 누구나 알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수 십억 인구가 그 이름을 부르며 추앙하는.. 삼천년전 인도의 부처님과, 이천년전 이스라엘의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성직자나 신학자, 불교학자라는 권위의 옷을 입고서, 불경과 성경의 단순하고 쉽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진리의 가르침들을, 멋대로 해석, 왜곡, 난해하게 만들어서 일반인들이 알아 듣기 어려운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의 차원으로 끌고 간 두 분의 가르침들중에서 게거품을 걷어 내면 되지 않을까요? 삼천년전 인도의 백성들이, 이천년전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알아 듣던 수준의 가르침만 제대로 전달된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알아도 행함이 없다면 야고보서 말씀처럼 공염불이겠지만..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 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교황부터 신부, 목사, 승려, 신학자, 불교학자 등등이 지금처럼 막대한 부와 권력, 명예와 안락, 심지어 부패향락을 누리며 나불대는 것과, 부처님처럼 걸식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처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 않으며 복음을 전할때는 파급력이 다르겠지요.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하고 갑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통감을 금치 못하고 수십분을 과거회상을 하며 멍하니 있었네요 저는 나름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해먹기, 가까운 곳에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 들러보기, 나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만나보기 등 너무나도 사소하고 지극히 별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예전 같으면 새로운 전자기술 행사장이나 자동차 시승회 이런곳에나 가서 욕망을 부풀리고 그랬을텐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생각 합니다 또 제가 이러면 자기들의 욕망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뭐라고 하시는 분들 계실텐데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욕망을 충족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각자에게 충실하면 됩니다 남에게 강요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내가 돈이 없을때 먹고싶은걸 적어봤더니 20개정도 된적이 있었지요.. 어느날 그에상응하는 돈이 생기자 먹고싶은 음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돈을 가졓다는것에 모든것이 풍요를 느끼어 음식의 옥구를 잊혀진적이 있습니다. 채울수없는것이 욕망이요 채워본들 변하는것 또한 욕망이요 본능이 아닌 욕망은 인간만이 가진 가장 단순한 탐욕에 불과하다는것뿐.. 모든것이 지나가는 바람일뿐...영상 잘보고 감사합니다
문제는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그저 그런 상태가 존재한다는 부분이겠습니다 극도의 행복을 100으로 놓고 극도의 불행을 0으로 놓을 때 51과 49, 50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중간지대를 추구하는 것이 정답에 가까워 보입니다 부처도 결국 고행을 통해 그걸 알아낸 것 아닐까요 50이라는 수치는 공한 무언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 수치를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외부에 영향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궁극적인 해탈이 아닐런지 너무 쾌락만 추구하는 것도 문제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도 문제라면 결국 중도를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불행해질 수 있는 용기라고 해야할까요 마음 먹은대로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으니 불행도 명함내밀 곳이 없을 겁니다
욕망을 채우면 그때뿐이고 또 올라온다. 계속 반복되는 , 밑빠진독에 물붓기? 잠도, 음식도, 물건도 , 이성도, 인정도 , 지속해서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다고 탐닉하면 역치상승, 둔감화, 금단 처럼 중독현상도 생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질서와 절제가 필수. 인정을 바라는 것은 부모에게 받는 인정이 제일 강하지만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로부터 온다.
오늘도 너무 유익하고 잼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선생님~ 욕망은 정말 한도 끝도 없는 것을 잘 알기에..나에 대해서 공부하고 나를 사랑해주면 정신적으로 행복하고,타자로부터 부러울게 별로 없음도 느낄수 있습니다.그러나, 저는 오늘도 돈을 벌기위해 열심히 짱구를 굴리고 실행하고 있죠. 더 나아가.. 타자(좀더 안된사람)을 도우면 거기서도 행복이 나옴을 느끼고..내 상황에 감사함도 느낍니다. 나이롱 천주교 신자지만 죽으면 내 뼈에서 사리가 나오도록 철학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속 좋은내용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아 하하하하
(1)기호(記號): +, -, =, % 같은 즉, Symbol (2)기호(嗜好): 나이키냐 아디다스냐 아니면 미즈노 브랜드를 더 “선호”하느냐? 즉, Taste, Liking. 이게 없으면 현대자본주의는 돌아가지 않으니 계속 사람들의 이 선호를 자극함. (2)번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2) taste의 기호도 고착화되는 느낌이라서 이게 또 (1)의 symbol화로 읽어도 무리가 없어지는 느낌입니다.ㅋ 예제)(a)에르메스의 기호를 보이는 이들을 단순화 해서 심볼화를 한다면=>나부자당, 나잘났당, 나금수저의 이미지 심볼화(사회계층적 symbol) (b)다이소의 기호를 보이는 이들을 기냥 압축해서 심볼화를 해버리면=>나가난하당, 나돈없엉, 나흙수정.. 이미지의 심볼화.. 겹쳐서 병립적,중의적으로 사용가능할지도.. 😂
정확한 말..그래서 동양에서도 '남에게 인정받을 욕망을 버리면 그게 바로 성인이다'......... 나이 들 수록 동감되는 말입니다..
80먹어도 정치얘기하면서 내가 옳다 니가 그르다하는게 인간인데 인정욕구를 버리는게 가능할까싶습니다😂
@@리찰리-z1j 네. 어려우니. 할수 있으면 성인이라 하겠죠..^. 그래도 그리 되도록 노력은 해보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잘 알지 못합니다. 타인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욕망이 결정되므로 타인에게 쉽게 조종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사람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인정욕구는 인간 본능 인거 같습니다. 버리는거 자체가 불가능..
@@sidijeok7979 저도 젊어서 잘 나갈땐 불가능 하다는데 동의하구요. 그런데 나이 좀 먹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상에서 내려 올때가 되면 그걸 성숙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못 놓는 사람이 있는 듯 합니다. 적어도 추하게 늙진 말아야 겠죠…^
최고입니다...
지난 3년간 방황의 나날을 거치면서
수백 수천개의 영상들을 닥치는대로 무절제하게 찾아다니고 수집해왔는데
단 하나의 영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약 18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점 커지는 벅차는 마음과 함께
남은시간을 아까워하며 시청했습니다..
이 영상과 더불어 최근 알게된 낙관적 허무주의도 더해져
저의 34년 혼란스럽던 인생관이 비로소 선명해지고 그토록 갈구하던 평온을 찾았습니다.
실행은 별개의 이야기지만,
방향성과 방법을 알았으니
이 영상을 포함하여 저만의 네 가지 영상을 인생 모토로 삼으며,
마음이 흔들리고 기억이 흐릿해지지 않도록
잠재의식에 처절히 새겨질때까지
꾸준히 반복 시청하겠습니다.
김필영 선생님,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제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튜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일단은 화이팅입니다
저도 몇달동안 방황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바다 속에서 어쩌면 나를 일으켜 세워 줄 영상이 없을까하며 무기력도 우울함 속에서 매일 유튜브를 보던중 이 영상을 찾았습니다. 저 또한 영상을 보고 님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십만원을 후원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글을 보고 동질감을 느껴서 이렇게 남깁니다.
그 네가지 영상이 뭔지 공유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동감합니다. 박사님은 저의 철학적 스승님입니다
행복을 쫒는 것 자체가 불행의 원인입니다.
행복은 그저 삶의 한 상태이며 도구입니다. 도구를 욕망하면 그 도구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식을 위해 책을 욕망할 때 책은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제 책 자체를 욕망의 목적으로 두면 본래의 목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지 쓸모 없는 고통이 될 뿐임으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 특정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같은 내용을 담은 유튜브는 봅니다. 왜냐하면 유튜브는 재미를 위해 보는 것이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을 통해서 도파민을 분비시켜서 결과적으로 재미라는 목적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나 불행이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만일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임에도 그것에 만족한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정서는 유지했지만 긍정적인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즉 우리는 백점만점인 시험을 의도적으로 십점만점이라고 인지를 왜곡해서 십점에 만족하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이러면 긍정적인 정서는 유지가 됩니다. 근데 그 긍정적인 정서, 과연 계속 유지가 될까요? 점수는 9점, 8점, 7점, 결국에는 0점에 도달하는 날이 오고야 말겁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이런 화를 불행으로 보고 내 뜻대로 돌아가는 것은 행복으로 봅니다. 즉 원래 행복과 불행은 내가 원하는 욕구나 욕망대로 이루어졌는가? 아닌가를 알려주는 내면의 신호인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을 욕망하는 것입니다. 세상 그 자체를 모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만일 예측대로 일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세상은 이미 결정된 상태임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즉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도 불가능해도 결국 나는 세상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먄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세상 모든 것은 내가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통제 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만을 채울 수 있습니다. 내가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죠. 여기서 불행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통제 가능한 것만을 욕망한다면 우리는 불행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행복감만을 쫒게 되면 우리는 불행감을 피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고통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행복만을 쫒게 되면 바로 이런 고통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 행복 또한 얻지 못 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남들이 제시하는 수동적인 방식으로 행복을 얻습니다.
즉 우연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스스로의 상태를 원하는대로 결정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혹은 타인이 결정해준 우연한 행복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이 행복감의 양을 늘리지는 못하니 기준을 낮추거나 손쉬운 쾌락을 추구하는 방법 말고는 행복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나 불행을 욕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결정하기를 욕망 혹은 소망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기결정감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긍정적인 상태에 있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상태에 있는지, 내가 그저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고 있을 뿐인지 아니면 어떠한 결심을 통해 행동하고 있는지, 결론적으로 그러한 목표가 잘 이루어졌는지, 이러한 자기결정감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처칠의 명언 중에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이다라는 말이 있죠. 여러분은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결정하고 싶나요? 아니면 용기 있는 사람으로 결정하고 싶나요? 우리는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 역할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뿐 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한 사람으로 유지하려고 아둥바둥할 겁니다. 하지만 나는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자신이 부여한 역할에 심취해서 긍정적으로 여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고통을 감내해내는 용기라는 정서입니다. 우리는 사실 단순한 쾌락이나 행복이 아니라 이러한 살아갈 용기를 가지길 원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길 원하는지.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만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사실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바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부자가 되길 원하길 원합니다. 부자는 힘이 있고 스스로를 더 많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스스로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하고 있는 그 행동들이 바로 자기가 진짜 원하고 있는 행동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원했지만 그 부수적인 작용까지를 원하지는 않았을 뿐이지요.
무엇을 원하길 원하는가? 다르게 말하면 나는 어떤 역할이고자 하는가? 또는 나는 누구이고자 하는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결정한 것은 결국 나입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도 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도 나입니다. 내가 두려워 해야할 것도 나고 내가 존경 또는 사랑해야 할 것도 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을 단지 적처럼 생각합니다. 영상에서 말한 인정 투쟁은 사실 자기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사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욕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인정을 욕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무엇에 실망했는지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우리는 스스로의 앞에서, 그리고 남들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공감되네요 진정한 자유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행동하는거죠
댓글을 읽다가 울컥하기는 처음입니다.
33살 평생 나는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이해 못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위안을 하며 살았지만 결혼 이후 왠지 모를 책임감을 시작으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변화의 이유는 딱 하나더군요 제 스스로의 본성과 대화하는 것, 난 진정 뭘 원하는가
, 그 변화를 위해선 지금 당장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그게 진정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인가, 정말 많은 생각과 독서, 메모를 하였고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길게 써주신 댓글에 비하여 너무 초라한 글이지만 제 지금 순간의 가치관과 완전 동일하기에 몇 글자 끄적여봅니다.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성취하는 그런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말씀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내용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할수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사람을
놓치지마세요.
욕망을 채우진 못해요.
하지만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는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렸을땐 몰랐지만 이제와서 보니 마광수 교수가 대단한 사람이었다는걸 느끼곤 합니다
@@윤현준-r5h 우와 마광수교수님얘기가 제 댓글에 달릴줄은! 마광수교수님은 비운의천재이셨던듯. 개인적으로는 마광수교수님의 소설보다 시를 좋아했습니다. 자살에 관한 시를 그의사후에 다시보니 너무 마음 아팠어요. ㅠ
재미 있게 사세요 배우고 집중하고 앞으로 나가는 그것이 당신의 욕망을 따듯하게 할 것입니다. 행복은 땀 흘린자의 선물입니다.
본능과 욕망에 대하여
1.서론
인간의 마음은 본능+감정+의지. 본능이 원하는것을 욕망이라고 함. 욕구는 욕망을 이루려는 충동. 본능의 성취여부에 따라 느끼는 감성을 감정이라고 함.
2. 본론
본능은 5단계 본능 ㅡ
1단계 생리적(식욕 수면욕 성욕),
2단계 존재적(이기심ㅡ아담 스미스는 국부론 책에서 각자가 자기 이기심의 충족을 위해 노력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조정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고 주장),
3단계 사회적(인정욕구-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통해 탁월함을 드러내어 자기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
4단계 소유적(부처와 디오게네스는 무소유를, 플라톤, 맑스, 사회주의는 공동소유를 주장),
5단계 궁극적 본능(재미를 추구하는 본능, 에피쿠로스는 소소한 쾌락을 주장).
에릭 프롬은 2단계 존재본능과 4단계 소유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렸고,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단계의 욕구 사이에서 중용을 지킬것을 권유함.
본능에서 나오는 욕망과 욕구의 성취여부에 따라 감정이 생기는데, 잘 해결되면 행복한 감정을. 본능 성취에 실패하면 불쾌한 감정을 느낍니다. 희노애락애오욕ㅡ 좋은감정(희애락) 불쾌한감정(시기 질투 노애오욕)
3. 결론
본능을 잘 성취하면 좋은 감정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됨.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할때 재미와 보람까지 5대 본능을 모두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잘먹고 잘살아도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비교질 하지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오늘을 즐겁게 살자,
마지막 순간에 "참 좋은 인생이었다." 라며
웃을 수 있게.
역대급 영상입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의미를 창조하시는 모든 분들께 응원과 건승의 기운을 전하고 싶습니다. 화이팅!!!
,,,😅😅😅😅
행복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잘 정리한 영상인것 같습니다.
인정욕구로부터 욕망이 나오고 그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면 더큰 욕구를 느끼게 된다. 너무 공감가는 내용이에요.
예전에 어나더랩 이라는 채널에서
군중 속에서 뒤쳐지는 이른바 FOMO 가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울 만큼 강력한 감정이라던 애기가 생각나네요 ㅎㅎ
욕망하지 말라는 것은 사랑하지 말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욕망을 채우려고 해도 반드시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욕망하지 않는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단 무엇이라도 하는게 의미있는 삶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좀 더 행복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욕망하지 않고자 하는 것 또한 욕망입니다. 결국 우리는 욕망하지 않는것도 정답이 아니고 과도한 욕망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영상의 '철학적 사고를 통한 욕망'에 대한 설명이..
절대로 알수도, 도달할 수 없는게 있읍니다..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열매는..(성령의 열매, 곧 그리스도, 성령의 자녀)
그러한 '욕망을 하는 주체인 나' 자체의 ..허상에서 벋어나면..
천상의 천사나 신과 같은..잃었던 본성을 되찾을 수 있기에..
영원히 행복(영생)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길을 찾고..그 길을 실제 가는 사람은..
태초에 잃었던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 있고, 잠들어 있는 영(태초의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고..
그것은 종교와 신앙 생활으로만 가능한 일이죠..
철학적 생각(혼의)을 통한 사고의 결론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으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의지로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고..(종교적 세례)
신의 계시를 받아 들이고 실행하면..(신앙 생활)
태초의 창조주의 성령이 그것을 인도하여 이끌어 주고..
일일이 가르쳐 주며...완성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고 부활 자체인..
창조주의 성령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내가 믿고..
내가 만나서..
내가 성령과 하나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일을 완성시켜 주는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 영혼은..
철학적 사고를 넘어 ..종교적 영혼이 되어야하고..
또한 종교를 넘어 신을 믿고 실행하는 ..신앙생활을 해야하고..
종교와 신앙 생활의 최종 목적이며..영원한 행복인..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없는 욕망과 탐욕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에서..
그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참다운 영혼(참다운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것입니다..
그 것이 탐욕에 빠진 나에게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 만큼 창조주가 태초에 주신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우리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음(탐욕으로인한 고통)을 깨닫고..
되돌아 가야만 ..진정한 행복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머리로 알아듣는게 아니라 강력한 계기와 같은것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건 그 이후에 선택을 해야한다는 거죠. 고대의 그런 초인들의 삶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과의 최소한의 타협을 하고 살아갈 것인지. 저에게는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이였던것 같습니다.
세상모든일은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를 풀수있는 하나의답!
자신이답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하는신은 자신
질문하는자되려하지말고대답하는자
待 답 : 대꾸하지않고답하는자😊
행복으로가까이갈수있는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세상에서 가장 믿을수있는친구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바른마음을 품고 살며
바른선택을 하며 살며
바른것에만 기대며 살며
바른것만 보며 살고
바른말만 주고 받고
바른행동만 하며 살고
바른생각만 하며 살고
바르게 자신을 믿고 사는것
자신을알고자신이어떤사람인지알고
소신있게 마음과행동이 어울러진 사람
자신의삶을 즐길수 있는 사람
자신을 세상을 인정 할줄 아는 사람
자신을 존중하고 세상을 존중하는사람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사람
나는너가될수있고너는내가될수있고
자신이세상이고 세상이 자신이다.
자신도세상도지킬수있는방법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에게 줄수있는법
세상어떤일보다가치있고아름다운일
자기자신을깨닫고 올바르게 자신을
아름답게 자신부터 보여주는것
나 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도 그 무엇도 바뀌지않는다.
마음과몸을 자신을 되찾고
자신이 그 모든걸 이겨내고 증명하면
무엇이든 할수있고 세상은 변할거다
사람은 좋은사람이든 나쁜사람이든
태어날때 그 순수한 마음 본질은
바뀌지않는다 어느 누구나 다시 시작할수있다.😊
세상에서 살면서 꼭 이겨야 할 頔
자신도세상도존재도아닌 현실이다😊
세상에서가장빨리알아야할것
효도
세상에서 꼭 깨우쳐야될것
자신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될😊
생명
세상에서 가장 빨리 행복을 깨닫는😊
올바른삶
이것들을 삶속에서 다이루고살면
완벽한삶을 살았다고 후회없이
그 다음의나에게 맡기고 😊
저는 욕망이 없는 삶은 허무주의에 매몰되기 쉽고 욕망에 만 집중하면 물질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해서 욕망이란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욕망을 얻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선생님 계속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튜브 대란 속에서 담담하게 선생님 목소리로 해주시는게 더 와닿고 좋아요~! 철학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으니 더 소즁하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되면 좋겠어요🎈꾸준히 시청하겠습니다~!⭐️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저는 그럴 수 있다 말하지 못하겠지만, 결국 죽음에 가까워질 때 비로소 모든 욕망이 덧없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삶과 멀어져 죽음과 가깝게 살다가 다시 전과 같이 욕망을 추구하는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을 때 즈음 이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죽음을 겪으며 결국 인간은 죽음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말씀은 제가 느끼기에 동일한 뜻으로 생각됩니다.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영상들 감사합니다..
욕망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만족', '감사'라는 단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만족과 감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덧없는 욕망을 자각하려고 노력하고, 만족과 감사를 중심축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점점 보다 더 나은 행복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많은 영감과 울림을 주는 영상 감사드립니다^^!
잘봤습니다. 어찌보면 서양식 불교버전이네요 내용자체가 거의 불교라 해도 맞는듯.
불교에서 말한 행복과 불행은 다 내마음에서 일어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외부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다 불행하다의 기준을 내가 규정하는것에 따라 행복할수 있고 불행할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린 결국 학습화되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욕망도 사실은 학습화 된 매개물인거죠. 만약 돈이 매개체가 아니라 코코넛을 중요시하는 사회라면 코코넛을 모으고자 욕망했을거고,
높이뛰기를 잘하는 사람이 왕이 되는 사회라면 모두가 지금 돈 버는 것 만큼 어릴때부터 높이뛰기 사교육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높이 뛸까를 고민할겁니다.
인간은 결국 학습화 에서 벗어날수 없고 따라서, 행복또한 자기가 학습화, 자기학습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 행복관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학습하는거 그걸 불교서 정진 수행이라고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을 행복하다라고 규정하면 지금 행복한겁니다 ㅎㅎ나중에 행복할거야 규정하면 나중에 행복할겁니다.. 좋은 영상을 봐서 생각 정리가 잘되네요
흔히들 자본주의를 욕망의 화신으로 생각하지만 실상 이타적인 마음 없이 자본주의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더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공해야 하기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세상을 제로섬 게임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진정한 제로썸 게임은 도박이죠
자본주의, 자유경쟁 사회는 인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새로운 시장을 늘 개척해왔고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유욕이 과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욕망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이 중요하지 자본주의는 죄가 없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풍족함을 통해 철학과 같은 인문학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가질수 있습니다
북한 같은 사회에서 이렇게 유튜브를 통해 철학을 배우고 사유할 수 있을까요?
현재 제 나이 32살. 저는 최근 몇달전에 엄청난 큰 깨달음을 느끼고 이런 물질적인 번뇌에서 벗어나서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리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돈이 안되더라도 제가 하고싶었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라도 깨닫게되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올려 주시는 영상을 볼 때 마다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엄밀히 쌓아 올린 철학적 사유야 말로 무엇 보다도 제게 큰 응원이자 위로이며,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으로부터 일시적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것을요.
위대한 철학자들은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듯 한 문장들로, 사실은 쉽지만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한 따뜻한 메세지를 남기고 간 것 같아요. (내가 미리 고민 해 봤으니 너희는 머리 덜 아프라고..사실 다들 굉장한 츤데레인 것인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대신 소화 잘 되게 꼭꼭 씹어서 밥 때 되면 떠 먹여 주시기 까지 하니.. 삼키기만 하면 되는 저로써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들 화이팅입니다!
거의 최소 80퍼센트 이상 선생님의 영상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잊혀져서 일수도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제일 멋진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욕망을 채우면 욕구불만은 생기지않는다.
행복은 채워질수있는가?
행복은 채워지는 대상이 아니다.
느낌이다.
욕구불만이 생기지 않는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영상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관심(사랑)받고 싶은 욕구죠. 그래서 인간 욕망에 기반한 최고의 직업은 연예인과 정치가라고 생각해요.
15:52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바닷물 1리터에는 10g의 소금이 있는데 지속적으로 마시지 않는한 강한 갈증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땀을 많이 흘렸다면 바닷물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도한 나트륨 섭취가 신체의 항상성을 부술 우려가 있다면 직장(항문)으로 바닷물을 넣어 수분만 흡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대장은 오로지 수분만을 흡수하기때문입니다.
욕망은 인정요구 에서 나오네요
인정욕구는 사랑받고 싶은것에서 나오네요
끝없이 사랑해줄 신를 찾는것같네요
인간의 불행은 어쩜 고통을 피하려고 할때 시작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피해도 삶은 늘 우릴 또다시 고통속에 가져다 놓기 때문이죠.
우린 그냥 고통이 없는 영원의 시간(사랑과 평화만 있는 정말 재미 1도 없는 끝없이 권태로운 시간)속 영혼으로만 살다가
아주 찰나적인 육체를 가지는 동안만 느낄 수 있는
정말정말 신기한 경험인 고통을 체험(?)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그냥 즐기면 어떨까요?
(고해의 바다에서 해수욕쯤??)
그럼 그 순간 고통은 사라질꺼 같네요~ㅎ
영원의 관점에서 고통은 정말 나쁘기만 한것일까요?^^
(사실...저도 지금 고해의 바다에서 열씨미 수영과 파도타기를 배우는 중?ㅋㅋ)
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가 정의하고 믿으며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한대로 펼쳐질겁니다.
상황은 우리의 의식의 거울로서 중립이고 우리가 정의하고 믿는대로 그 에너지를 체험할겁니다.
존재를 부정하고 거부하며 가치판단하고 저항하며 지금 이 순간의 완전함을 떠나 더 가치 있는 곳이라는 환상을 집착하는게 고통일겁니다.
Love and light to you...
@@-messagefromthestars5471별에서온 소중한 메시지 감사합니다~
매순간 있는그대로 완벽한 세상을 즐기며 살겠습니다~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
있는 그대로의 나🙏
고통은 행동을 원하는 신호입니다. 고통은 행동을 원하는 욕구입니다. 행동은 생동이며, 생물들의 활동입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한, 행동하고 있는한 고통 자체는 없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므로 고통이 삶의 필수적인 존재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고통과 함께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욕망이라는 것이 왜 한 행동의 끝이라는 것으로 차부 될까요 욕망이 드는 것은 자연스런운 것이 그 욕망을 끊어내는 금욕의 과정도 그 옥망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노력의 과정도 그 과정을 즐긴다면 그게 즐거운 인생 아닐까요?
욕망에 대해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설명해 주셔서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이 생깁니다
우선 '욕망'은 왜 있는가?
그 가치와 역활은?
그것을 끊는다는 것도 또다른
욕망이 아닌가?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나누는 기준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가 주관적인가?
그 기준은?
이러한 의문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8:50 흥미롭고 좋아 보이는 책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채워지지 않는 지적 욕망은
"5분 뚝딱 철학"을 만나고 나서 조금은 채워진 느낌입니다.
지적 욕망을 다 채워도 행복해 질 수는 없겠지만.
"5분 뚝딱 철학"을 만나는 날은 행복한 느낌에 취할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감사합니다 ^^
영상의 마지막 거리뷰가 얼마 전 다녀온 후쿠오카 여행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네요. 클럽에서 밤새 불태웠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욕망 때문인지 아침 9시가 넘은 시간까지 밖으로 나와 여기 저기 모여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봤습니다. 한국에서는 늦어도 4-5시 쯤에는 파하고 집에 가든지 해장을 하러 가든 하는데 이 친구들은 오전 9시가 넘도록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젊은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욕망에 대해 반응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매불쇼에서부터 팬이예요 구독하고갑니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불행하다는 건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각 내지 인식일 뿐이고요.
안빈낙도, 안분낙업, 소욕지족... 이러한 말들을 수시로 상기시키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늘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욕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느끼게하는 명료한 강의에 감사합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실현이 가능할 만큼의 절제된 욕망추구가 우리에게 행복감을 쉽게 전해줄 듯합니다.
욕망이 채워져도 다시 다른 채우고 싶은 더 높은 대상을 찾게 됨을 경험하여 알고 있지만
계속 그렇게 사는것이 삶의 의미와 동기가 되어 내 삶을 늘 역동적으로 만드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욕망이 항상 충족되는것도 아니고 그게 안채워지면 욕구불만으로 불행해지는데 그건 어떻게함?
@@user-jz1mg8cz5s 어쩔 수 없죠. 그게 디폴트죠. 그 고통이 괴롭다면 욕망을 통해 나를 움직이게 해서 다시 벗어나야겠죠.
소유욕의 원천이 타인의 인정이라는 내용 듣는 순간 무릎을 쳤습니다 오늘 방송 내용 한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만화 있었는데 악마와 계약으로 자기 욕망을 무조건 다 채울 수 있는.. 그래서 별의별거 다하고 우주에도 가고 하는데 더이상 욕망을 채우는걸로는 권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짐.
그래서 결국 결핍을 원하게 됨ㅋㅋㅋ 굶주리고 싶다고 소원빔.. 이런거 볼때 에피쿠로스처럼 치즈 안먹고 가끔만 먹는게 좋은방법같음 진짜 뭐 디오게네스처럼 살꺼아니면
걍 적당한 직업 가지고 일도하고 하기싫은것도 좀 하다가 한번씩 소소한 욕망을 살짝씩 채워주는걸로 만족하는게 좋을듯. 이래야 자본이 많이 안들어감
큰거 채우겠다고 쎄빠지게 고생하는거는 진짜 제일 불행해보임 뭐 인정욕구는 명품으로 과시해서 채울게 아니라
내가 주변사람 챙기고 잘하면 그게 좋은사람이고 진짜 인정받는거 아닌가? 어차피 부를 과시해서 인정받는건 내가 아닌 내 돈이 인정받는거고
그리고 내 핵심 사람들 한테만 인정받으면 됨
배진수의 금요일 맞나요? 마지막에 병원에서 실실거리며 끝나는?
@@이유는없어-p3z 맞는거 같아요 오래전에봐서 정확한 기억은 아닐수있지만 ㅎㅎ
이전에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긴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결론은
resource/desire 중 분자를 높이기 위해 더 노력하던가 혹은 분모를 줄이던가 둘 중 하나의 양자택일을 해내야 결국 한계효용법칙에 맞물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결론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술 한잔하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이미 BC300년 전 부터 논의 되어왔지만 결국 완벽한 해법은 없는거 같아 마음 한 켠이 아쉬우면서
살아갈 동력을 주는 인생의 재미 같아 재밌게 영상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적인 척 하는것이 삶의 기술이라.....권태를 느꼈다가 다시 예전 희망과 도전이 필요해 다시 희망적인 척을 하고 있는듯 합니다. 욕망과 권태...에서 권태에서 다시 욕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삶의기술...희망적인 척.....삶의 기술이 아니라 살기위해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삶의 기술을 정확히 터득하셨습니다. ㅎㅎ
법구경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마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미움이 생기나니
이미 그 얽매임을 벗어난 사람은
사랑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다"
뜬금없이,
영상 보고 문득 떠올라 적어 보았어요..ㅎ
일본에서 새벽까지 돌아댕긴다고 광고하시네요..
뱅기표 끊고싶은 바람이 가득 생기네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편리성과 과공급에서 선택지도 그만큼 늘어간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불만족에 가까워지고 행복과 멀어진다.
삶은 편리해져가지만 정신은 저도모르게 썩어가고있고
대부분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생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쾌락은 적응되고 고통은 늘어나죠. 생존에 유리한 방향이니까요.
아침에 차 한잔 하면서 들어는데.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네요^^
욕망을 채우면 행복할까?
오늘은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시면서 작은 깨침을 얻어가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귀하고 귀한 선연을 접하게 되어서 살아갈 힘을 얻어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이루고자하시는 바를 성취해가시길 기원합니다
아니오
욕망 채울 수 있습니다.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죠
너무나 간단하고 쉽게..
욕망의 반대말은?
바로 감사입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결핍도 욕망도 권태도
모두 감사의 대상입니다.
행복은 감사에서 시작..
감사로 채우면 행복입니다.
디오게네스도 안분지족으로 감사했을듯..
권태가 심해지면 우울, 절망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 되면 스스로 빠져 나올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욕망을 가지면서 2프로 부족한 상태가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거짓 희망을
갖는것. 희망고문까지 잃는다면 무엇이 삶을 지탱해 주겠어요?
욕망을 이로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게 좋을듯 합니다. 욕망의 에너지를 통해 얻은것이 때로는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요
왜 우리가 항상 감사한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하는지에대한 답이네요
감사합니다 ❤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정말 감사합니다.. 영상보아하니 일본인것 같은데 저도 나이 28살에 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일본으로 와 있는 상태입니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쌓여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뭔가 해소가 되는 기분입니다. 단순히 기분 일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뇌가 완화되는 기분입니다.
인간 욕망과 행복에 관한 최고의 요약 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쉽고 좋네요😊
시간의 역사를 거슬러도 변치않는 인간의 욕망을 잘 요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욕망은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죠.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고통의 굴레를 만들기도 하지만 끝없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합니다. 욕망의 에너지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자신감, 가치, 경험, 안정, 힘 등등 여러가지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욕망이라는게 그저 나쁘기만 한것도 아니고 좋기만 한것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다만 욕망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에 무시할 수 없으니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죠.
방갑네요 매불쇼에서 자주뵈요^^
불교에서 중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 인것 같습니다. 적당히 욕망을 다스리면 행복하게 즐길 수 있지만 양심이든 욕망이든 일정 선을 넘어버리면 타인의 지탄을 받거나 스스로 무너져서 고통스럽게 되니까요. 돈도 적당히 벌고 돈자랑도 적당히 하고 이성도 적당히 만나고 양심 없는 행동도 적당히 하고 그래야 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몇몇 수많은 미꾸라지들이 양심의 선을 무너트리면서 돈도 너무 지나치게 벌려고 하고 섹스에 중독된 인간도 많고 음식도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선을 못지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통이 많아진 세상입니다. 바로 잡을려면 더 양심있는 사람이 강한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권력이라는것이 이상하게 오래되면 부패하려는 속성이 있어서 그 간사함때문에 안타깝지만 고통스러운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용이 답이다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작은 욕구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확실한 만족을 얻습니다. 반면 산속에 들어가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도 있는 것처럼, 욕망이 매우 작거나 없는 사람도 있겠죠.
최고의 영상을 보았네요 ^^
이 영상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것 같습니다 ㅎㅎ
혹은 이 영상을 보기만 한 사람과 이 영상을 보고 5초 안에 뭐든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 같습니다 ㅎㅎ
우리의 뇌는 생존 보존을 위해 신체와 마음의 결핍 찾아 조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신체든 마음이든 결핍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핍을 찾아서 생존을 위한 균형을 위해 움직이는 시스템이니 당연한 것이겠네요
결핍은 채워야 하니 욕구가 생기고 이러한 욕구는 관계적 허상으로 욕망으로 이어지겠죠.
특히 결핍 중에 심각한 두려움을 경험하게 했던 결핍은 핵심 감정? 핵심 기억?이 되어
삶의 태도와 방향의 기저가 될 겁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삶의 왜곡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극히 당연한 숙명인 생존불안(실존불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장의 결핍은 채워지는 순간 우리 뇌는 또 몸과 마음과 기억을 더듬어
결핍을 찾거나 만들어 내겠죠 ㅎㅎㅎ
끝날 수 없는 게임인 것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생존불안의 가상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죠 ㅎㅎㅎ
그래서 선지식들이 꿈 깨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핍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고 생존불안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결핍과 욕망하고 있는 자신을 봐야하는데
늘 밖에서 답을 구하고 찾던 삶의 습관 때문에 내면을 들여다 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스님 되었다고 모두 수행하는 것이 아니듯
이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나 관심있는 분야죠 ㅎㅎㅎ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려줘도 안하는 ㅎㅎㅎ
정말 대단한 영상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기가 아닌 인정아군요
고맙습니다.
너무도 명쾌하고 선명한 정리와 논리 정연한 설명을 통해 욕망의 한계를 정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뇌는 크거나 잦거나 쉽게 얻은 쾌락을 얻을수록 그 만큼의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동시에, 동일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줄여버립니다. 이를 뇌의 항성성 유지기능이라 합니다. 뇌가 살려고 그 짓을 못하게 막는 것이죠. 때문에 원시인일 때는 자연적으로 중독에서 벗어납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문명 발전으로 인간은 불만족과 중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하게 쾌락을 느꼈으면서도 더 크고 많고 쉬운 쾌락을 찾아 얻고 그걸 무한으로 반복하다가 결국 뇌가 작은 즐거움이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로 망가져버리죠. 한 번 그렇게 망가지면, 다시 원상복구되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어, 그걸 버티지 못하고 다시 쾌락을 찾고 또 고통에 몸부림치고, 줄여보려 하다가 금단증상에 고통받고, 쾌락에 미치고 무한 반복을 하다가 평생 만족을 하지도 못하고, 불쌍한 삶을 마감하죠. 생각하면 할수록 욕심을 버릴수록 행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욕망은 인간존재의 이유다!
욕망은 삶의 본질인것!
내용이 너무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욕망이 100% 채워질수없다고해서 욕망을 극단적으로 끊기보다는 욕망을 적당히 채우고 만족할줄아는 지혜가 필요한거임. 욕망 전혀 없이 살수는없음. 욕망이 있어야 의식주를 해결할수있으니까. 기본(의식주)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선택임. 현재로써 만족하고 살건지 그 이상을 추구하면서 살껀지.
욕망은 자연선택된 형질이라 지금의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만물은 물리법칙에 따라 운동하기에 만물 중 하나인 인간도 법칙대로 운동하고 있을 뿐이죠
행복해 지려 노력할 필요가 없고 노력할 수도 없습니다.
법칙대로 운동하다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 행복을 즐기면 됩니다.
모든건 마음에 달렸지요, 일체 유심조
이원준 학파의 일원입니다. 매우 의미있는 강의 잘 듣고 갑니다. 그간 욕망에 빠져 방황한 져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강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욕망해야 행복할수있지. 욕망하지 않는다는것을 강하게 욕망할때 비로소 채워진다. 배고픔이 최고의 반찬이듯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쇼펜 하우어는 저 하고 세상을 바라 보는게 진짜 많이 비슷한 거 같아요
디오게네스는 추운 겨울은 어떻게 보냈나요?
절 구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논증이 논리적으로는 가장 합당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이 그 논리를 차용할만큼 길지 않습니다.
잘나가는 사람들 보면 그냥 계속 욕망을 좇다가 갈때되서 나이차면 갑니다.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불교,쇼펜하우어,니체의 사고를 따라가면서 행복론을 찾다보면 허무주의에 빠져 인생 망합니다.
영원회귀라느니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반출생주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행복에 대한 깊은 성찰은 행복을 멀어지게 합니다. 나가서 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냥 그렇게 사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인정의 욕구 기호의 소비 등에는 별관심없는데.. 가치소비. 내면의 충족등에는 관심이 있네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않으니 자유롭다* 카자차키스 묘비문이라죠 ㅎㅎ
감사합니다 🙏
철학 교수님이 소개해주셔서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셔서 운동할때, 쉴때 틈틈이 보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말씀하시다가 가끔 튀어나오는 담담한 유머가 너무 좋아요 ㅠㅠ
오 보석과도 같은 채널을 만났어요 감사합니다^^
요새 고민하고 있던 주제였는데 많은 도움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교수님! 멋진영상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와 실천으로 응답할께용~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존경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자기앞에 무릎꿇게 만들려는 것 아닐까요?
근본의문부터 최종 결론까지 모두 공감합니다..행복은 신기루 같은 것,무지개 같은 것.
멋진강의 감사합니다.
첫마디에 이미 답이 나오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것은 욕망이다"
움직이고 살거면 그냥 욕망을 받아들이고 삽시다 우리ㅎㅎ
정말 쉽게 쉽게 몇 천년의 철학자들의 고뇌를 정리해주시네요 제 최고의 철학자십니다
참 인생살이에 유익한 좋은 방송이네요.
디오게네스란 기인을 처음 들었지만,
더 오래전에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버려야 행복해진다고 하신 분들이 있지요.
누구나 알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수 십억 인구가 그 이름을 부르며 추앙하는..
삼천년전 인도의 부처님과, 이천년전 이스라엘의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성직자나 신학자, 불교학자라는 권위의 옷을 입고서,
불경과 성경의 단순하고 쉽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진리의 가르침들을,
멋대로 해석, 왜곡, 난해하게 만들어서 일반인들이 알아 듣기 어려운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의 차원으로 끌고 간 두 분의 가르침들중에서
게거품을 걷어 내면 되지 않을까요?
삼천년전 인도의 백성들이, 이천년전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알아 듣던 수준의 가르침만 제대로 전달된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알아도 행함이 없다면 야고보서 말씀처럼 공염불이겠지만..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 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교황부터 신부, 목사, 승려, 신학자, 불교학자 등등이
지금처럼 막대한 부와 권력, 명예와 안락, 심지어 부패향락을 누리며 나불대는 것과,
부처님처럼 걸식하면서 부처님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처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 않으며 복음을 전할때는 파급력이 다르겠지요.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하고 갑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통감을 금치 못하고 수십분을 과거회상을 하며 멍하니 있었네요 저는 나름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해먹기, 가까운 곳에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 들러보기, 나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만나보기 등 너무나도 사소하고 지극히 별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예전 같으면 새로운 전자기술 행사장이나 자동차 시승회 이런곳에나 가서 욕망을 부풀리고 그랬을텐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생각 합니다 또 제가 이러면 자기들의 욕망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뭐라고 하시는 분들 계실텐데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욕망을 충족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각자에게 충실하면 됩니다 남에게 강요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
내가 돈이 없을때 먹고싶은걸 적어봤더니 20개정도 된적이 있었지요..
어느날 그에상응하는 돈이 생기자 먹고싶은 음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돈을 가졓다는것에 모든것이 풍요를 느끼어 음식의 옥구를 잊혀진적이 있습니다.
채울수없는것이 욕망이요
채워본들 변하는것 또한 욕망이요 본능이 아닌 욕망은 인간만이 가진 가장 단순한 탐욕에 불과하다는것뿐..
모든것이 지나가는 바람일뿐...영상 잘보고 감사합니다
아주 우연히 시쳥 정말 유익한 영상이고 구독과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문제는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그저 그런 상태가 존재한다는 부분이겠습니다
극도의 행복을 100으로 놓고 극도의 불행을 0으로 놓을 때
51과 49, 50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중간지대를 추구하는 것이 정답에 가까워 보입니다
부처도 결국 고행을 통해 그걸 알아낸 것 아닐까요
50이라는 수치는 공한 무언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 수치를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외부에 영향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궁극적인 해탈이 아닐런지
너무 쾌락만 추구하는 것도 문제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도 문제라면
결국 중도를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불행해질 수 있는 용기라고 해야할까요
마음 먹은대로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으니 불행도 명함내밀 곳이 없을 겁니다
작은 행복으로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명상이나 심신수련 따위가 아닌 체계적인 도파민 조절입니다.
욕망을 채우면 그때뿐이고 또 올라온다. 계속 반복되는 , 밑빠진독에 물붓기? 잠도, 음식도, 물건도 , 이성도, 인정도 , 지속해서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다고 탐닉하면 역치상승, 둔감화, 금단 처럼 중독현상도 생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질서와 절제가 필수.
인정을 바라는 것은 부모에게 받는 인정이 제일 강하지만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로부터 온다.
오늘도 너무 유익하고 잼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선생님~
욕망은 정말 한도 끝도 없는 것을 잘 알기에..나에 대해서 공부하고 나를 사랑해주면 정신적으로 행복하고,타자로부터 부러울게 별로 없음도 느낄수 있습니다.그러나, 저는 오늘도 돈을 벌기위해 열심히 짱구를 굴리고 실행하고 있죠. 더 나아가.. 타자(좀더 안된사람)을 도우면 거기서도 행복이 나옴을 느끼고..내 상황에 감사함도 느낍니다. 나이롱 천주교 신자지만 죽으면 내 뼈에서 사리가 나오도록 철학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속 좋은내용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아 하하하하
선생님 목소리에 점점 중독되고있어요... 다른 목소리 좋은 유튜버들 보다 선생님 영상이 훨씬 머리도 잘돌아가고 이해도 잘되고.. 너무 조아요..오래해주세요..
진짜 재밌네요. 철학을 이렇게 재밌게 쉽게 설명해주는 영상 첨봤습니다. 대학교에서 강의 잘하는 교수님 강의를 몰래 도강하는 느낌임 ㅋㅋㅋㅋ
누군가 현대사회에 왜 철학이 필요한지 묻는다면 보여주고싶은 채널
요즘 현타가 자주와서 쇼펜하우어 관련 서적을 읽고 있었는데 비슷한 주제로 알고리즘이 안내하네요 ㅎㅎ 인생은 참 어려운거같습니다.
단순화하세요
인스타그램 같은 sns 탈퇴가 답입니다
행복을 하려면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뜻 같은데.. 결국 인간 자체가 그런 삶을 살기 힘든 매커니즘입니다.
정말 내가 작은 것에도 행복하려면 도시를 떠나 살아야하는게 가장 큰 욕망에서 벗어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이 철학선생님 조차도 썸네일이 자극적인거 보이시죠? 말 다했읍니다~! 이 선생님의 행복은 100억인가봅니다~!
안녕하세요?
매번 선생님 영상 찾아서 잘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이번회에 궁금한거 질문하나만 드릴께요.
10분 13초 부터 나오는 기호는
특수기호할때 기호로 쓰신건가요?
기호식품할때 기호로 쓰신건가요?
다른 분들도 아시면 답 좀 부탁드려요.
(1)기호(記號): +, -, =, % 같은 즉, Symbol
(2)기호(嗜好): 나이키냐 아디다스냐 아니면 미즈노 브랜드를 더 “선호”하느냐? 즉, Taste, Liking.
이게 없으면 현대자본주의는 돌아가지 않으니 계속 사람들의 이 선호를 자극함.
(2)번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2) taste의 기호도 고착화되는 느낌이라서 이게 또 (1)의 symbol화로 읽어도 무리가 없어지는 느낌입니다.ㅋ
예제)(a)에르메스의 기호를 보이는 이들을 단순화 해서 심볼화를 한다면=>나부자당, 나잘났당, 나금수저의 이미지 심볼화(사회계층적 symbol)
(b)다이소의 기호를 보이는 이들을 기냥 압축해서 심볼화를 해버리면=>나가난하당, 나돈없엉, 나흙수정.. 이미지의 심볼화..
겹쳐서 병립적,중의적으로 사용가능할지도.. 😂
@@XT55555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
결국 죽을때까지 끝없이 생기는 욕망 충족을 위해 투쟁해야하는것이 사바세계 중생의 운메에
욕망을 일부러 끊어내지도, 그렇다고 욕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길도 있음. 다만 영상 말미의 말처럼 그것이 대다수에겐 불가능하다고 느껴질만큼 어려울 뿐.
영상 잘 봤습니다. 썸네일이 영상의 내용을 압축한다고 생각해서 인강깊었는데 그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간만의 영상이네요! 감사합니다
욕망에 대한 통찰로 일깨워주신 명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