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길라잡이] 12 - 인간의 길은 공감에 있다!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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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іковано 9 січ 2025
- #동양철학 #장자 #제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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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구독자 및 시청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과연 희망이란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는가?' 싶은 생각이 절로 샘솟는
오늘날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제 신간에 담긴 8종(논어/맹자/대학/중용/한비자/묵자/장자/주역 계사전)의
철학적 지혜들이 세상의 다양한 문제와 우리 마음의 여러 가지 소란을 모두 다스리기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심과 정성을 책으로 엮은 결과물로서의 이번 제 신간이
우리의 마음의 내적 동요를 다스려 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함에
작게나마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새해에도 여러분 일신과 가정에 평화가 깃들길 빕니다.
이러한 평화가 우리 이웃과 우리나라와 세계 만민의 평화에
기여하는 바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부족한 채널에 보내 주시는 여러 구독자 및 시청자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에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갈 건 올림.
여러 구독자 및 시청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과연 희망이란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는가?' 싶은 생각이 절로 샘솟는
오늘날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제 신간에 담긴 8종(논어/맹자/대학/중용/한비자/묵자/장자/주역 계사전)의
철학적 지혜들이 세상의 다양한 문제와 우리 마음의 여러 가지 소란을 모두 다스리기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심과 정성을 책으로 엮은 결과물로서의 이번 제 신간이
우리의 마음의 내적 동요를 다스려 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함에
작게나마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새해에도 여러분 일신과 가정에 평화가 깃들길 빕니다.
이러한 평화가 우리 이웃과 우리나라와 세계 만민의 평화에
기여하는 바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부족한 채널에 보내 주시는 여러 구독자 및 시청자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에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제갈 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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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세태에 십자가 목걸이를 쥐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졌었습니다.
사람들의 마땅한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지만
자신의 정의나 공감을 고취하고 떨치기 위해 타인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 역시 불인하다 생각합니다.
이세상 너도 주인공 나도 주인공이지요.
정도를 지키며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ㅎ
감사합니다~!
진짜 생각이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외람된 말이지만...
영화 "최악의악"에 나온 서종렬 닮아써요
👏👏👏👏👏 좋은 말씀 고마워요
인은 공감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의하신 바대로라면 노장은 결국 유학의 뿌리 없이 부유할 수 없는 사상이네요?
공감 능력, 미디어 리터러시, 비판적 사고, 이런 것들은 대체로 미국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말들인 것 같아요. 통제 소재를 항상 최후의 보루로서 개인으로 지정하고 거기에서 세상의 모든 요지경을 대처하라고 위임하는 이데올로기의 엄한 명령 같아요. 그런 사고방식은 결국, "A는 적합하고, B는 부적합하다" 하는 가격감정표를 붙이는 데서 현실적으로 종결되는 듯합니다. 이제 사람들이 걸핏하면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맞닥뜨려 "공감 능력이 없네" "미디어 리터러시가 떨어지네" 같은 말을 반복하곤 하잖아요. 저는 해외 철학자들이 도가 사상을 유가 사상과 맞세우는 방식으로 해석한 것에 매료되어 한국 강의도 찾아보다 제갈 선생님 채널까지 왔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한국 도가 철학 강의는 유학의 뿌리에서 인을 공급받아 그런지 대체로 야단 철학인 것 같아요. 김용옥, 최진석, 강신주 할 것 없이 전부 장자 얘기하면서 옳고 그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변하다가 나중엔 "너 그렇게 살지 마" 야단을 쳐요.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를 이 공동체-사회를 배회하는 우는 사자인 양, 생각지도 말아야 할 악당인 양 묘사하는 것도 장자 철학과 잘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 사람이 있든 없든 저는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의 기관 속에서 챗바퀴 돌고 있는 게 인간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무슨 제가 수양을 해서 공감 능력을 기른다고, 또는 길렀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재밌네요
말씀을 잘하시네요
저의 부족한 부분을 날카롭게 찌르시는군요.. 개인적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사람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면 오직 사람으로서의 인지상정이 객관적 분석이 아닌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가 인공지능과의 유일한 차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정의(正義)'라는 개념이 끼어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갑습니다 ~
👍 이런 철학 강의 너무 좋아요… 그동안 무언가 찜찜했던 회색에 둘러싸인것 같은 저의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알기쉽게 정리하고 풀어주시는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박사님 강의를 계속 들을수 있다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뜁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한없는 사랑이 넘치는 올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문신 지우고 지원했으면 참 좋은 사제가 됐을텐데 아쉽네요
깨달음은 현존하는것이고 그것은 흐르는 물과 하나가 되듯이 외부의 지식을 습득해서 아는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진리 그 자체가 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흐르는 강물의 순간을 손으로 움켜쥘 수 없듯이 자신이 물자체가 되어야 온전히 이 세계의 진실을 깨닫는다는 말이지요. 물아일체의 경지라고도 하고 부처가 말한 무아의 경지라고도 합니다. 그냥 그자체가 되는것입니다.
진리라는걸 외부의 무언가를 배워서 알겠다는 그런 자세로는 안된다는것이고 자신이 진리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존재를 존재 그자체로 존귀하게 대하며 차별없고 조건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매순간 살아가는것 뿐이지요.
예수와 부처의 이름 뒤에 숨어서 종교적 교리와 경전등의 지식을 주입하고 사제간에 등급과 계율을 적용시켜 수직적 계급의 질서를 만드는 형태들은 모두 가짜라는것이며 현존하는 모든 종교들이 이러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기에 오히려 진실과는 멀어지고 거짓신들을 경배하며 스스로를 노예취급하며 살아가게 된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비판하는 과학은 어떤가요? 상대를 비판한다고 자신이 진실하다는걸 의미하는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학계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과학을 신봉해 온것은 과학적 지식이 모두 사실 이어서가 아니라 가설과 검증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내는 과학적 시스템을 신뢰하는것이고 이 방법이 진리를 파악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훌륭한 방식이라는 나름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에 여지껏 활용해 온것이며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 해 온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물질적 기계적 발전을 이루는데 도움을 준다고 해서 이 시스템이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데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오히려 학계의 논문과 시스템에 의존하여 진실을 은폐하고 가려왔다는 불편한 진실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깨닫기 위해 무슨 수련을 하고 산속에서 몇십년간 도를 닦아야 한다는것도 진실이 아니에요. 이 시스템은 진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곳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의문을 가지고 온전히 진실하게 살아가는 인자에게만 그 수준에 맞는 체험과 정보가 주어지는 것이기에 모두에게 공평한 게임이라는 것이에요.
어떠한 조건도 필요없고 순수하게 깨끗한 마음상태인 어린아이의 눈망울처럼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느냐 그 진실함 하나만 가지고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자만이 진실을 알아볼 수 있다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의식과 깨달음이라는건 존재하고 그것은 에고소멸을 의미하고 자신을 죽이는것을 의미해요.
이렇게 거짓된 아상을 깨뜨린후
새로 태어난 존재들은 에고를 일으키는 개체의식이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고 전체의식과 온전히 합일을 하게되는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진정한 의미이고
이것을 영성에서 상위의식과의 합일등의 표현을 쓰기도 하고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께 성령을 수여받는다.
영이 임재한다는 뜻의 본래의 순수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처는 견성 성불로 깨닫고서 반열반을 한것인데 견성은 자기마음이 에고에 지배당하는 저급한의식에 휘둘리고 있었다는걸 깨달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기마음의 현상태를 확인한 것이지 아직 본래면목이 무엇인지 참나가 무엇이고 불성이 무엇인지 이러한 용어들의 본래 의미를 순수한 체험으로 깨닫지는 못한 상태라는말이지요.
즉 자기자신이 주인이 아닌 감각기관의 노예로서 살아온 존재라는것을 깨끗하게 인정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견성이 끝이 아니고 돈오점수를 통한 수행이 필요하다는식의 얘기들을 하는것이고 말로서 깨우칠 방도가 없으니 그저 수행을 하라는식의 얘기를 해줬던것 뿐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완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굴절없이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견성 이후부터가 진짜 자기 스스로와의 영적 전쟁이 시작이 되는것입니다.
외롭고 힘들고 그 어떤 대가도 보상도 없고 멸시와 조롱과 비난과
죽음을 통한 두려움과 협박만이 난무할것입니다.
이 과정을 이겨낸 존재들이 영적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들이 되는것이지 거저 주어지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편하게 놀고 먹으면서 깨닫기위해 여러분들이 이 지구행성에 온것이 아니라는것을 분명히 전달하는 바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욕망을 시험하는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고 모든 에고적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고 진정한 자신의 참자아를 깨달아 영을 받아들인 존재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부활을 통해 여러분들께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부처는 마라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거짓된 자아인 모든 아상을 소멸시킴으로서 성불을 하였고 자신만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가 대평등한 불성을 가진
영원불멸의 영적존재임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80억 인류에게는 80억가지 깨달음의 길이 있습니다.
그 진리의 문은 오로지 존재 스스로만이 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진리의 문을 대신해서 열어주는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존재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것이고 우주안에 대평등한 모든 영적존재들의 관계성을 해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 이라는것을 여러분은 꼭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차크라를 연다거나 쿤달리니가 깨어나고 제3의눈이 열리고 하는건
어떤 정해진 방식의 명상을 하거나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보편적 진리의 실천자로서 매순간 현존하는것에는 어떠한 노력도 조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닫아놓은 진실한 마음의 문을 당당히 열어젖히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인자들에게 깨달음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것이고
그어떤 교만함도 오만함도 두려움도 없는 100%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가슴안의 진정한 사랑의 불꽃을 깨운 존재들
이들이 비로소 재림예수와 미륵으로서 그동안 인류를 속이고 노예화 시켜왔던 종교를 비롯한 모든 물질세계의 우상들을 깨뜨리고 본래의 순수한 진리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이 세계에 드러내게 될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바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깨달음은 존재하지만 여러분 주변에 그런 인자는 없을것이에요. 안목이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척하는 존재들만이 눈에 보일것입니다. 그러니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그 어떤 우상도 섬기지 말고 자신의 진실함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될일입니다. 그리하면 진실로 진리가 여러분들을 자유케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