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구궁... 저의 글이 이렇게 또... 앞으론 년도별로 이야기를 정리해서 시리즈식으로 올려 드릴께요...ㅋㅋ 제가 연식은 좀 되었어도... 일찌기 컴터를 배워셔리... 컴터 관련 회사에서 일도했었구요... 엥간한 컴터 일은 다 해요... 다만 나이가 드니까 이제 동작이 느려서 시간이 좀 걸리지요..ㅋㅋ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사 할배 올림.
당백! 12사단52연대 1974.11.1~1977.8.23근무하였습니다! 그때 힘들었던, 훈련(유격, 동절기)여름에는 방카작업을 진부령과 향로봉에서 하였습니다! 젊음의 추억이 이제는 70세를 넘다보니,오히려 제게 용기와 강력한 힘을 주는듯 합니다! 포기하지않으며 즐거운 행복한 생활을 할 것입니다!
어젯밤 군대 다시가는 꿈을 꿨습니다. 이런 꿈들은 레파토리가 여럿 있는데, 그냥 후임으로 군대생활하는 꿈이거나 선임으로 휴가 나왔다가 다시 복귀하여 제대를 기다리는 꿈인데, 이번엔 분명 제대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군대에서 다시 후임으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대장에게 "나는 이미 제대한 사람이다."라고 얘기하자 소대장이 머리를 긁적이더니만 잠시 기다려봐라고 했고, 저는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들 근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밝아진 창문을 보며 "꿈이구나"했죠.
저 당시 군생활 하셨던 분들이 늘상 하는 말이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잠이 않왔다 였는대 첨에 이 소릴 들었을땐 무슨 변태인가 싶었는대 실상은 점호 끝나면 맨날 뚜들겨 맞고난후에 편하게 잠을 잤는대 어느날은 점호가 끝나도 조용함. 언제 집합 할지 몰라 불안해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고ㅋㅋㅋ
85군번.11공수병출신. 거의 매일 맞았음. 점호전 3시간 30 분 중 평균 2시간은 주먹쥐고 상단 관물대에 업드려 바쳐하고 욕듣고 있었다.나머지 1시간 동안 청소 했습니다.30분 구타 시간. 밤12시 이후 집합후 구타는 선택사항. 기상 얼차려 선착순과 구타로 아침 시작 했습니다. 턱거리 정자세 보통 30개 이상했다. 팔굽혀펴기 한번에 500개 기본 이였다.
울아빠 89 1월 군번 공군 421기신데 자대가서 이야기 들어보면 기가 막히는 이야기들 많더라 잘못한것도 아닌데 수시로 이어지는 구타와 기합에 버티다가 쓰레기 버리러 가는 그 잠깐의 짬에 공중전화로 면회 좀 오라고 고모한테 전화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 그리고 지금도 예비군훈련 때 M16으로 사격한다 말하니까 기겁하시더라 ㅋㅋㅋㅋ
요즘과 달리 좀 무식한사람이 많앗어요.그리고 보상심리도 있엇고요.나도 졸따구때 많이 당햇어니 너희들이 편해보이는꼴 못보겟다 머 그런거죠.본인 역시 고참되니 졸병들이 이빨 보이는건 정말 보기싫더구만요.그런날이면 창고에서 집합시켯고 오파운드로 빳다를친거같아요. 난 이병들은 철저히 열외시켯는데 "요즘 화장실청소가 엉망이야. 너희들은 지금 그곳을 청소하고 나중에 보고한다 알앗나!!" 하고 쫓아내엇죠. 내가 빳다 열대쳣어면 내려가면서 줄빳다를 치기에 그들은 백여대는 맞기때문이죠.
저 때는 현역 비율이 50% 안팎인데 실제로 군생활이 너무 열악하고 워낙 많이 죽다보니까 "군대 간다 = 죽으러 간다"여서 3년 만기 채우고 무사전역하면 지금으로 치면 9급 공무원 된것 이상의 대우를 해줘서 취업자리도 바로바로 내어주고 동네 할매할배,아재아지매들이 나서서 군필자들에게 갓 20살 된 자기 딸이나 손녀를 중매해서 결혼시켜줬음. 그리고 북괴군이 먼저 남침한 6.25전쟁의 미망인, 월남전 참전용사의 미망인들이 많아서 지금처럼 여자들이 감히 "군무새, 군부심" 거리면 오히려 같은 여자들에게 싸대기 맞고 참교육 당하던 시절이었음. 지금은 여자들이 살기 참 좋은 시기인데 똥페미들이 스스로 그걸 망쳐놓음.
이야기 들으며 한참을 웃었음니다 , 다 맞는 말이고 당시는 힘들었지만 이야기 들으며 그랬었지... 하며 맞장구가 절로 나오며 마구 웃었습니다. 맞다는 의미도 의미지만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다 자대에서 M16 대우정밀인가 ? 에서 나온 새총을 받고 총에 관련된 총기 불량상태는 벗어났지요
ㅎㅎㅎ 73년 11월 논산훈련소 군번임. 76년 9월 25일 새마을교육 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예비역 병장. 남침 2땅굴 차단작전에 투입되었던 6보병사단 청성부대 출신임. 옛날 생각 나네요. 좌측은 20사단, 우측은 백골 3사단. 20사단은 대대장 월북 사건으로 후방으로 빠지고 열쇠부대 5사단이 그자리로 들어갔다고 나중 전역후에 들었음. 힘들었어도 청춘의 한 페이지였기에 무조건 때리기만 했던 고참들도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네요. 처음 국방색, 세탁 한번하면 짙은 녹색, 두번하면 연두색, 세번하면 하얀 체육복. 백프로 공감!
반갑습나다, 제2 하교 251기 황산벌 생각 납니다 . 75년 6월 . 이때 훈련복 으로는 월남으록가던 정글복 & 정글화 도 지급 받아 입고 훈련함, 고산유격장 쪼글뛰기 대략 1000 ~ 1500 회정도 않아뛰기 등 등.... 힘들었던 추억 .. ㅎㅎㅎㅎ 그래도. 그시절 이 그립네요, 암튼, 여기오신 여러분 들 힘든 코로나 바이러스.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1977.6에 논산입대, 30연대에서 6주간 인간이하의 구타와 욕설, 기합을 받으며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배출되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KATUSA로 특명을 받아서 당시, 평택 CP.HUMPHREYS 의 카투사 교육대(KPC)에서 3주간 교육수료 후에 서울용산 미8군사령부에 자대배치를 받고 미군장성(소장) 비서실에서 31개월 근무하고 전역 했습니다. 당시는, 주한미군의 용산 전성기 시기 이었지요, 저와 같은 시기, 1970년대에 전,후방에서 열악한 악조건 속에서 고생 많이 하셨던 선,후배 전우님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는 어느새 70대 전,후의 연배가 되었는데, 늘 건강하시고 용기와 행복하세요^^
2000년대 초반군번인데, 글쓴이 선배님 시절 입던 70년대 민무늬 전투복이 논산 cs복이었네요. 내구성 하나는 좋은듯. 서울에서 향방 예비군 할때 M1 카빈 소총 받았는데, 이 당시에는 이미 기능고장난 총들은 처분을 했는지 특별한 문제없이 예비군들이 잘들 쐈었습니다. K2나 M16 사격할때도 간간이 발생되는 기능고장이. 오히려 M1 카빈 사격할땐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밀덕이라 M1 게런드도 쏴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것은 구경도 하지 못했네요.
에구궁... 저의 글이 이렇게 또... 앞으론 년도별로 이야기를 정리해서 시리즈식으로 올려 드릴께요...ㅋㅋ
제가 연식은 좀 되었어도... 일찌기 컴터를 배워셔리... 컴터 관련 회사에서 일도했었구요... 엥간한 컴터 일은 다 해요...
다만 나이가 드니까 이제 동작이 느려서 시간이 좀 걸리지요..ㅋㅋ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사 할배 올림.
아조씨 멋져요 저두 아조씨처럼 나이먹고싶어요
건강하세요
건강하십쇼!!
시대을 젋게 사시는 아저씨!! 건강하세요!
존경합니다
혹시 이 영상을 보시는 중장년층이 계시다면, 그 시절 군대 썰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저희는 그 썰을 재미있게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너의 이야기는 내 먹거리~
아빠랑 술마시면서 군대이야기들으면 ㄹㅇ 어케살아남았나 싶기도함;;;
썰을 풀고싶으셔도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글 작성하시는걸 힘겨워하시는 분들이 많으실듯 하네요.
당장 저희 아버지가 67년생이신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문장 쓰는걸 버거워하시니..
@@맹자-x3m 이게 정답일듯 저희 아버지도 스마트폰 쓰시긴하는데 카톡정도 밖에 안하셔서ㅜㅜ
75~79생활했던 사람임.
지금에와서 보면 정말 너무나 형편없고 불쌍한 군생활이었지요.
눈에 선하게 새삼 그려집니다.
동내의에 이가 버글버글.
내무반 침상속 이가 버글버글..
나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네요.나도75년도군번인데요. 67세입니다. 그시절 군대생활 그대로 잘쓰셨네요. 하나더 덧붙이자면 76년8월에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만행때 데프콘 2발령나서 완전군장메고 진지투입하면서 마을주민들이 건네주던 주먹밥을 눈물과 같이먹었던것이 생각나네요.
반갑슴돠... 같은시대에 군생활을 하셨군요... 도끼만행 사건도 3주전에 나왔어요...ㅋㅋ 제목 : 데프콘2 발령 북한군 처음 마주한 날...
아 제 왕고참들이 그 당시 투입되면서 울었다고 하더군요.....
저두75군번입니다저는육군공병학교근무햇읍니다
그당시무척배고픈생각만납니다
육군공병화이팅
나도75년1월군번인데76년도끼만행때데프콘2걸려서새벽에탄약지급받고철원으로전차몰고출동개고생하고그시절전우들잘들계시겠지요보고싶고그립슾니다
정말 감사해요.
라때를 시전해도 감히 누구하나 토달수 없는 레전드 군번이시네
@짤짤TV 어쩌라구요
@@chulips 매크로여서 먹금하는게 남
@짤짤TV 신고
킹정..
숨만쉬어도 구타당하던시절
북한놈도 적이고 아군도 적이던 시절
마치 롤 같네요
내 팬티도 내일은 남의팬티가 되는 시절
지금도 다를거 없음 ㅋㅋㅋㅋ
사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법이지 ㅋㅋㅋ 게임이든 현실이든 파란적군은 정말 ㅋㅋㅋ
김정은과 정치인들은 같은 혈통인 지금 시절?
77군번인데 후반기 교육인 육군병참학교 수료 뒤에 철원 쪽에 배치 받았는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호롱불 켜고 1년을 생활했었다.
61년 국민학교 때 공부했던 깡통막사는 얼마나 추웠는지...
방한복을 입고 방한장갑까지 발에 끼고 자도 내장까지 떨렸다.
당신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77년입대 대전 병참학교 부보반 440기 입니다
101보충대에서 25사에서 근무 했음
저도 77년 1281이고 대전병참학교 부대보급사병 출신으로 운도없게 철원6사단2연대 말단소총수로 근무 했습니다. 대마리.화지리.5검.6검 등 무척힘들었던 시절이 아련히 새삼 생각 나는군요. 자대 전입초기때 지게지고 식수 죽어라 길어오면 고참들 머리감고 목욕하면 또 발에 불튀게 길어오면 늦게왔다고 물통지게 지고 지게막대기로 빠따찜질후 신속동작 복창하며 잠복호 샛길 돌던 기억이 지금 점점히 씁쓸히 기억 남니다.
@@박용철-x7n 그래요 !!!
그럼 나하고 동기 인가보네요
내가 12810### 인데 논산 30연대 10중대 에서 병참 학교 101 보충대 25사 72연대
재수 없어서 소총소대 1년
후에 연대군수과에서 전역 했읍니다
반갑읍니다
저는 76년8월에입대하여 79년5월20일 제대했습니다 33개월일주일햇습니다 화면보니 옛 군시절이 생각나네요 벌써40년이지난 옛날인데 세월 참 빠르네요
나는76년도 철원에 보병 이등병으로 자대배치받고 가보니 민통선에서 3병호빵커작업에 동원되어 옜날노가다 저리가라로 동원되여 작업중에 아버님이 면회를 오셧다가
노가다로 새까마져서 면회실에 갔는데 아버지가 못 알아보셧죠
그후에 아버지가 집에 오셔
새까매진 아들생각에 눈물을 흘리셧담니다
그당시 동료들 정말 엄청 고생하셨습니다.
76,77군번 전방에서 노가다만 벙커작업 노가다만 하고 나왔읍니다.
3병호? 산병호가 아니고?
76년 9월 25일 새마을 교육까지 마치고 전역한 사람으로 6보병사단 출신인데, 당시 우리 좌측 사단이 20사단. 공동으로 철책근무하던 바로 뒤에 있던 저수지 이름이 산병호.
저번에 택시 탓었는데 기사님하고 얘기하다가 우연히 군대 얘기가 나왔었는데 그분도 70년대때 군생활 하셨다고 하더라고 기사님 군대썰 푸시는데 진짜 시간가는줄 모르고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군생활 하신분들은 리얼 인정 해야할듯
75년 논산군번입니다. 강원도 철원 백골부대에서 2년은 강제노역으로 산병호 작업을 했고 1년은 GOP에서 밤잠을 못자 위장병을 얻었지요. 자살자도 종종 나왔던 열악한 군생활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는데 그래도 그 시절의 전우들이 그립습니다.
ㅎ~~백골gp~첨성대gp 서대문초소.멸공문초소 아시겠네요? 죽을고생했습니다. ㅎ
76.8.18일은 비가오는데 점심때쯤데프콘2가내려와서 gp에서gop로빠졌는데,
처음으로c레이션이라고진지로보급나오는데,세상이야어찌되든좋으니이음식이나계속나왔으면 했습니다.
저는33개월17일했습니다
75년논산군번이시면 1245 정도 되시겠네요
88년 군번이라 70년대 군생활에 칠 드립이없네요.
들어보니 난 군대생활 참 편했구나..생각이..
몇몇 이야기는 겪은거라 공감도가고요..
88년도 부조리 심했을거 같은데요
2010년도 이전까지는 부조리 심했다고들었어요
리얼 이때 당시 이야기을 들으면 어떻게 국방을 지켰는지가 궁금할 지경임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굵직한 사건도 터졌잖음. 지금보다 더 사건은폐 오지던때인데도 큰건 수두룩했으니 안밝혀진건 얼마나컸겠음
저땐 장교들이 싸그리 6 25 월남전에 주임원사등들도 그런 시절인지라 군기가 가혹할 수 밖에없는듯
단지 북한이 우리보다 더 노답이라 지켜졌던듯 ㅋㅋㅋㅋㅋ
@@drkw7918 80년대까지는 북한이 더 잘살았음
80년대부터 슬슬따라잡더니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힘들어할때부터(90년대중반~2000년대초)우리나라나 북한보다 앞어나가기 시작했어요.
@@drkw7918 그때 전쟁안일어난게 다행인거임
아버지, 할아버지 얘기 들어보면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하는게 괜히 하는소리가 아님 ㄹㅇ
강한자만 살아남던 70년대 ㄷ
저때면 ㄹㅇ 우리할아버지 시절인데
70년때 울할아버지는 장교셨는데 제2땅굴때 식겁했다함 공병대대장이셨는다는데 그때 사람들 많이죽고 그랬다고 아버지가 그러심
땅굴사건때 실제로 전투가 있었나보군요
@@틱택톡탁-m8r 전투는 아니고 북괴들이 퇴각하면서 설치한 부비트랩 때문일걸여
@@틱택톡탁-m8r 수색대가 들어갔다가 많이 죽었다고 들었어요
@@틱택톡탁-m8r 수색 군견 죽었죠
동네에 꼭 군대갔다가 맞아가지고 바보되서 돌아온 동네바보형 하나씩은 있었는데....
3년 군생활
열약한 환경
한 내무반에 30명 내외 생활
집합과 구타가 일반화 되었던 시기
하루라도 집합이나 구타가 없으면
이상하고 잠이 안왔던 시기
맞은 사람은 있고 때린사람은없는..
긴막사에 가운데 행정반
1내무반 80명이 어께 부딪히면서 생활
이유없이많이도맞았지.
잠자기전에때리면좋은데,
꼭두번째불침번시간에때려요.하도때니다이유가없으니까이제물어봐요.
너희들무었을잘못햇어?하고. ㅎ
80년대 중반 군 생활했습니다. 70년대에 군생활 하신 선배님들 고생하셨습니다.
ㅠ ㅠ 듣기만해도 머리가 간지럽고 어깨가 아파오네요.. 정말 정말 고생많이 하셨어요 ㅠ
77년 군번인데 복무중 10.26 12.12. 5.18 다 겪었네요.
지금 고인이 되신 5사단장 김복동 장군이 참 멋진 군인이셨습니다.
광목 빤스, 통일화, 이 주머니 오랬동안 잊고 살던 단어 들 생각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진짜 70년도의 군대.. 진짜.. 와.. 상상도 안되네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크으..!!
70년대 ㅋㅋㅋㅋ 02년생 내가 빠르면 올해 말쯤 군대가고 72년생 아버지가 원사신데 그때 군생활이시라... ㄷㄷ
당백! 12사단52연대 1974.11.1~1977.8.23근무하였습니다! 그때 힘들었던, 훈련(유격, 동절기)여름에는 방카작업을 진부령과 향로봉에서 하였습니다! 젊음의 추억이 이제는 70세를 넘다보니,오히려 제게 용기와 강력한 힘을 주는듯 합니다! 포기하지않으며 즐거운 행복한 생활을 할 것입니다!
70년대 80년대 군생활 하신 분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70년대 현대정주영회장님도 에쿠스 제네시스 못타고 ㅋㅋㅋ
군생활로 한국군의 거의 모든 제식소총을 만지
셨네요!
제가 60년대 중학교때
선생님 군대얘기,배고파,산에 나무껍질 벗겨먹음
전방 숙소,온돌이 엉망이라, 추위에 시달림,
휴가중,부모님께,그 참상을 말해,돈써서,후방으로 감
50년대 군대시절 얘기같아요
이야... 개런드 쓰셨음 진짜..
@짤짤TV 꺼져
그때그시절 군복무 생각이 많이납니다
무척힘들고 배고팠던시절이였는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었네요
매번 점호때 이주머니검사 등 많은 추억들이 ?
어젯밤 군대 다시가는 꿈을 꿨습니다. 이런 꿈들은 레파토리가 여럿 있는데, 그냥 후임으로 군대생활하는 꿈이거나 선임으로 휴가 나왔다가 다시 복귀하여 제대를 기다리는 꿈인데, 이번엔 분명 제대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군대에서 다시 후임으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대장에게 "나는 이미 제대한 사람이다."라고 얘기하자 소대장이 머리를 긁적이더니만 잠시 기다려봐라고 했고, 저는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들 근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밝아진 창문을 보며 "꿈이구나"했죠.
나하고 비슷하네
나는 78년 군번으로 전방 보병연대 인사과에서 끗발
부리면서 군대생활 편하게 하다가 제대했는데도 수십년간
군대 또 입대해서 절망하는 꿈을 꾸었다
이제 시효가 지났는지 그 끔찍한 꿈을 안꾼지가 10년 정도 된것 같다
아버지 군생활들으면 가끔 드라마 같음...
왜냐면 전역 일주일 남기고 박정희가 죽었었거든...
나는 박통 죽는날. 소대원들끌고참호로 탄약어깨 매고 구보로 8킬로을 뛰었음 박통죽은거는. 사흘뒤에 알았다는 ㅎㅎ
곧 설날이니까 다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한테 썰 한보따리씩 듣고와서 전파좀 해주십쇼 코로나땜에 만나긴 그러니까 직접 와서 써달라고 합시다.
2021년 현재도 이런 군수비리는 반드시 있을 것 같습니다. 곧 입대하는데 걱정이네요.
저 당시 군생활 하셨던 분들이 늘상 하는 말이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잠이 않왔다 였는대 첨에 이 소릴 들었을땐 무슨 변태인가 싶었는대 실상은 점호 끝나면 맨날 뚜들겨 맞고난후에 편하게 잠을 잤는대 어느날은 점호가 끝나도 조용함. 언제 집합 할지 몰라 불안해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고ㅋㅋㅋ
밤 12시 이전에 집합시켜서 빳다치는 고참은 성인 군자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 얘기 하셨어요 81인가 82군번...
그건좀뻥이고. 그렇게 구타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85군번.11공수병출신. 거의 매일 맞았음.
점호전 3시간 30 분 중 평균 2시간은 주먹쥐고 상단 관물대에 업드려 바쳐하고 욕듣고 있었다.나머지 1시간 동안 청소 했습니다.30분 구타 시간.
밤12시 이후 집합후 구타는 선택사항.
기상 얼차려 선착순과 구타로 아침 시작 했습니다.
턱거리 정자세 보통 30개 이상했다.
팔굽혀펴기 한번에 500개 기본 이였다.
@@californiadreamingtv9333 내 말이... 빳다 구경이 항상 궁금했는데?
현재 현역 입장에서, 1980년대 이전 라떼를 들으면 진짜 그 시절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궁금해집니다...
에이.. 이양반아 요즘군대가 군대라고? 신라호텔에서 부풰드시는거야.. 세월 허벌나게 좋아졌다
@@jackapplegate6058 아재요... 5공수 마크걸고 챙피하게 그러지마세유.....
그때는 군대가 더좋다는 녀석이 있었는데 왜냐고 물으니까 집에서는 하루식사가 2끼 아침저녁인데 군에서는 3끼먹는다고요. 제대한고참이 갈곳이 없다고 계속군에있으면서 몰래 밥타먹는 사람도있었습니다.
제발 일찍 돌아가주세요 할아버지^^
@@jackapplegate6058 신라호텔은 아무리 좋아져도 군대가 비교는 안되고, 그냥 살만한 정도가 됐지. 집 못가서 힘들지 집만 출퇴근 됐다면 군생활도 요즘은 할만한 ㅋㅋㅌ
울아빠 89 1월 군번 공군 421기신데 자대가서 이야기 들어보면 기가 막히는 이야기들 많더라 잘못한것도 아닌데 수시로 이어지는 구타와 기합에 버티다가 쓰레기 버리러 가는 그 잠깐의 짬에 공중전화로 면회 좀 오라고 고모한테 전화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 그리고 지금도 예비군훈련 때 M16으로 사격한다 말하니까 기겁하시더라 ㅋㅋㅋㅋ
74년도 입대 했는데
군복이 물빠지는 군복은 주더라고요ㆍ
이름 하여 유화 염료 군복ㆍ
모장군이 떼먹고 싸구려 군복을
납품 받았다나 ㆍ
두번 세탁하면 힌옷이됨ㆍ
모장군 총살당한걸로 알고있다
72년 2월 논산 군번 1122ᆢᆢ그래도내 가족국민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어려운 군생활을 무사히 만기 전역했읍니다 ㆍ그시절을 잠시 회상해 보네요 ㆍ
그 유명한 와리바시 군번
72년6월9일@@jamestlee9207군번12262--
저 시대가 어른들한테 말로만 들었던 안맞으면 밤에 잠이 안왔다는 시절이죠?ㄷㄷ 고생하셨어요
요즘과 달리 좀 무식한사람이 많앗어요.그리고 보상심리도 있엇고요.나도 졸따구때 많이 당햇어니 너희들이 편해보이는꼴 못보겟다 머 그런거죠.본인 역시 고참되니 졸병들이 이빨 보이는건 정말 보기싫더구만요.그런날이면 창고에서 집합시켯고 오파운드로 빳다를친거같아요. 난 이병들은 철저히 열외시켯는데 "요즘 화장실청소가 엉망이야. 너희들은 지금 그곳을 청소하고 나중에 보고한다 알앗나!!" 하고 쫓아내엇죠. 내가 빳다 열대쳣어면 내려가면서 줄빳다를 치기에 그들은 백여대는 맞기때문이죠.
@@kim-rb4im 다들 맞았다는 소리 밖에 안하고 때렸다는 사람은 없던데 너무 솔직하시네요 ㅋ
월남전때 m16 사용했다는데 75년도에 m1사용하셨나요? ㅠ
76년도초에.전역 했는데.그때 LMG4 사수었는데.개인화기는 카빈소총.
저 때는 현역 비율이 50% 안팎인데 실제로 군생활이 너무 열악하고 워낙 많이 죽다보니까 "군대 간다 = 죽으러 간다"여서 3년 만기 채우고 무사전역하면 지금으로 치면 9급 공무원 된것 이상의 대우를 해줘서 취업자리도 바로바로 내어주고 동네 할매할배,아재아지매들이 나서서 군필자들에게 갓 20살 된 자기 딸이나 손녀를 중매해서 결혼시켜줬음. 그리고 북괴군이 먼저 남침한 6.25전쟁의 미망인, 월남전 참전용사의 미망인들이 많아서 지금처럼 여자들이 감히 "군무새, 군부심" 거리면 오히려 같은 여자들에게 싸대기 맞고 참교육 당하던 시절이었음. 지금은 여자들이 살기 참 좋은 시기인데 똥페미들이 스스로 그걸 망쳐놓음.
군무새 군부심 언제봐도 어이없는단어ㅋㅋㅋㅋㅋ
아무리 군생활 쉬워졌어도 어쨌거나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희생을 강요당하는 건 변함이 없죠.
저때는 대기업 입사 할려면 군필이어야 했음
로마군대초창기는 저때보다 더 열악하고 빡셌고 군생활도 길었는데 대신 전역하면 땅 을 지급해줬다고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난 사단 포사령부에서 근무했는데
사격지휘소가 바로 일직시령실이기 때문에
매일 영관장교랑 같이 생활했습니다
첨엔 어려웠지만 나중엔 농담도하고 그랬었지요
강하사님! 나도 마지막사진 가지고있어요!
보고싶네요 ! 기억하실라나 ...
FDC 이성식?? 오메 방가운거...
연락처 알려주세요
와!! 이렇게 인연이 닿네요. 세상 참 좁구나 하는 순간이 근래들어 참 많네요. 연락처 나누셔서 꼭 연락 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76년도 8.18도끼 만행 사건으로 일주일 군생활 더 하고 전역했는데 그당시 74년도 말경에 아마 일식3찬 얼마나 좋았던지 참 맨들 시락국 염장무 비슷한것 먹다가
또 우리 군복도 나일론 혼방이란것이 나왔지요 참 지금 생각하면 !!!!
1군 사령관이 1식3찬
처음으로 지시하여
시작됨
전12군번 입니다
이야기 들으며 한참을 웃었음니다 , 다 맞는 말이고 당시는 힘들었지만 이야기 들으며 그랬었지... 하며 맞장구가 절로 나오며 마구 웃었습니다.
맞다는 의미도 의미지만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다 자대에서 M16 대우정밀인가 ? 에서 나온 새총을 받고 총에 관련된 총기 불량상태는 벗어났지요
70년대 GP, GOP생활이 궁금하네요, 꽤나 여러 썰이 있을것같은데;
70년대 포니승용차 만들고 금성삼성 티비 만들고 라면 만들고 경운기만들고 포항제철 울산현대조선 거제조선 여수여천석유화확 광주아시아차군용차공장
아래 돌이사님과 같은연배입니다.너무 리얼하게 잘쓰셨네요.저는 논산군번입니다.1년에 몇번씩 고향가는길에 논산훈련소앞을 지나가는데.잊고있었던 옛날생각이 납니다.수용연대에서 ~남아에 끓는피 조국에 받쳐~목이터져라 따블백메고 훈련소 입교하던생각이 납니다.맞는부분도 있고 약간 과장하신 부분도 있군요
그때 고생하던 전우들생각도 나구요.지금은 모두 은퇴할나이들인데.
한겨울에 강원도 산골에 처음가던날 왜그리 처량하던지 지금도 그때 그기분은 잊지를 못합니다
옛시절 소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동시대에 군생활을 하셨군요... 저는 하사관군번 이지만... 논산군번은 1251XXXX 군번과 동기인걸로 기억 합니다...
군복을 보니 인민군 같아요...ㅋㅋㅋ😆전 80년7월에 논산으로 입대했는데..빤즈는 그때도 뻑뻑한 천이고..중요부위가 빨고나면 항상 누런색이었죠..ㅋㅋㅋ
요색 배식문제로 사병들 힘들던데..저희땐 뭐 그렇게 불평할수준은 아니였던거로 기억 배불리 주는 편이었어요..최전방이어서 겨울에 라면은 매일 8개씩 둘이서 끓여먹었죠 (위문품이 차고 넘쳐서 간부들은 집으로..또 가게에다 내다 팔고..ㅋㅋ)
진정한.. "아버지"군번..ㅋㅋㅋ
전 1975년 군번인데 예비사단 신병훈련에서 엄청고생했네요 조교의 구타와 기얍 엄청엄청 고생했네요 젤로힘든건 배고픔이였지요~~
자대배치 받고서야 배고픔을 면했네요 ㅎㅎ
나보다 일년선배시네요
저는 76년에 입대를 했는대
군시절이 희미했는대
이영상을 보니 아~그때내
군생활이 이랫었구나.생각이
나네요.다음영상 기대할게요.
같은해 입대했군요. 저도 76년도 1월군번...
@@jh-yo8bj 저보단 선배 유월군번 .
76년 3월군번입니다. 논산 25연대
난유월 예비사군번
와...... 고생 많으셨겠다 하는 감정이 드는데 징그러 하는 부분에서 뭔가 웃겼엌ㅋㅋㅠㅠㅠㅠ
ㅎㅎㅎ 73년 11월 논산훈련소 군번임. 76년 9월 25일 새마을교육 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예비역 병장. 남침 2땅굴 차단작전에 투입되었던 6보병사단 청성부대 출신임.
옛날 생각 나네요. 좌측은 20사단, 우측은 백골 3사단. 20사단은 대대장 월북 사건으로 후방으로 빠지고 열쇠부대 5사단이 그자리로 들어갔다고 나중 전역후에 들었음.
힘들었어도 청춘의 한 페이지였기에 무조건 때리기만 했던 고참들도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네요. 처음 국방색, 세탁 한번하면 짙은 녹색, 두번하면 연두색, 세번하면 하얀 체육복. 백프로 공감!
근현대사 군대 부분 수업시간이네 ㅋㅋㅋㅋ
나하고 동기벌인고 거의 비슷하게 살았네요 그이상의 얘기도 있네요 한번 다음에 얘기해볼께요
부사관인데도 이러면
일반 병사로 가신분들은;;
간부가 저 정도면 병들은 곱하기 10 하면 됨.
부사관 군기도 병사랑 다를거 없다고 아는데
하사관이 더힘들어요. 훈련도 세고. 자대와서도 병들하고 따로놀고.
이런 라떼는 이야기는 들으면 재미도 있고 유익함
아니 m1 개런드랑 카빈소총이 말이야 방구야 ㅋㅋㅋㅋ
M1들고 총검술 ㅎㅎㅎ. 아침밥. 한빠개스는 먹어야 배고픔견딤 ㅋㅋ
같은 시절 군생활 공감합니다.
와 진짜 썰왕썰래 다양한 분들 썰 엄청 올라온다 70년대 군대썰이 올라올거라곤 생각도 못했네ㄷㄷㄷ
반갑습나다, 제2 하교 251기 황산벌 생각 납니다 .
75년 6월 . 이때 훈련복 으로는 월남으록가던 정글복 & 정글화 도 지급 받아 입고 훈련함,
고산유격장 쪼글뛰기 대략 1000 ~ 1500 회정도 않아뛰기 등 등.... 힘들었던 추억 ..
ㅎㅎㅎㅎ 그래도. 그시절 이
그립네요,
암튼,
여기오신 여러분 들 힘든 코로나 바이러스.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아부지 말론 .. 저 녹색 플라스틱 식판이 숟가락 젖가락 질로 기스가 나있는데 거기 사이로 음식물 들이 껴서 그것이 또 썩어서 냄새가 쩐다고 ..... .
으악 ,, 고생 많으셨겠네요
아버지뻘 되는분께 듣기로는 그당시 군대는 하루라도 안맞으면 불안해서 잠이 안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99년에 다녀왔는데 대단할건 없지만
신교대때 밥먹으러 들어가자 마자 나가라 그러고, 목욕하러 들어가자 마자 나가라 그러고, 밥에는 쌀벌레가 같이 쪄져서 나와서 골라내고 먹었던 그지같은 기억이 있네요.
대대장을 잘 만나야 됩니다! 75년 한탄강에서 군생활 했지만 쌀벌레 같은 거 구경을 못했네요
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에 대한민국이 있는겁니다 감사합니다
제 군대 예기 하는 것 같네요. 정말 그때는 그랬죠. 참고로 저는 72년 입대하여 75년 전역했답니다.
정말 잊혀졌던 군 추억이 그대로 재생되는군요. 감사합니다.
75년 한탄강에서 군생활 했는데, 빳다 구경을 못해 봤는데요!
웃으면 안되는데.. 약간의 개그가 가미되어 재밌네요.
75년도 2월에 입대했는데 그래도 젊어서 견딜 수 있었던 젊은 날의 시절이야. 여산의 육군 제 2 하사관학교 기행240기 같은 시절 군생활을 같이 했네요. M1소총, 카빈소총, 그리고 M16 참 고생 많이 하셨수!!
일계장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고참들 군복 넣어두는곳이였음..
M1 갤런드부터 K2 소총까지 다쏴보셨네 ㄷㄷ
살아있는 대한육군 보병의 역사네
개
@@qwer-x2s 프라이팬
소총, 기관총은 종류별로 다 쏴봤죠... AK-47, 시모노프 소총도 교육용으로 쏴 봤슴다..
고생하셨습니다.
70년대면 부모님도 어렸을 때인데... 그 때는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느라 수고하셨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때만 그럽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김승현-g5s 3년 전 댓글인데......... 답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6년도 군번이었는데 지금도 사열이나 전장비 연대장급이나 검사관 등이 보는 특수한 상황엔 1호차등 여러차량 타이어에 구두약 발랐었습니다..
저도 16군번인데 전장비때 엔진 광나게 한다고 솔벤트로 엔진닦은 기억이 있네요. ㅎㅎ
133 사격지휘는 24시간 FDC벙커에만 근무해서 얼굴이 모두 하했지요
그래서 벙커귀신이라 불렀습니다 주특기중에서 가장 복잡한 계산을 했기에
수학시험보고나서 합격해야 주특기가 주어졌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군대 18개월 까지꺼 금방간다고 하시는데,, 그당시 복무기간 여쭤보니깐 33개월이었음 ㄷㄷ.. 그마저도 시기가 좋아서 3개월인가 줄었던게 33개월이었음;; (60년도 쯤 입대하신걸로 암)
33개월이다가 김신조 때문에 36개월로 늘었다가 다시 33개월 33개월 복무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3사단 출신...전쟁끝나고 얼마안가서 입대...
내가 74년5월군번. 최전방에서 춥고 배고팠던기억, 34개월20일 복무.
지금은 젊은이들은 상상조차 할수없다.
반갑네요 74년 5월 논산 29연대 신막사출신입니다
반갑네요!
그나마 밥나온게 신기 하시네요 저희 할아버지는 밥때 되면 민간 구역가서 얻어먹게 했다고 하더라구요
진짜 저때 군생활하신분들 리얼 리스펙...
전설의 통일화, 줄빠따 세대시네요. 고생하셨습니다
60년군번보다 1968~1977년 군생활이 가장 길었다함 36개월 ㄷㄷ
저도 1977.6에 논산입대, 30연대에서 6주간 인간이하의 구타와 욕설, 기합을 받으며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배출되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KATUSA로 특명을 받아서 당시, 평택 CP.HUMPHREYS 의
카투사 교육대(KPC)에서 3주간 교육수료 후에 서울용산 미8군사령부에 자대배치를 받고 미군장성(소장)
비서실에서 31개월 근무하고 전역 했습니다.
당시는, 주한미군의 용산 전성기 시기 이었지요,
저와 같은 시기, 1970년대에 전,후방에서 열악한 악조건 속에서 고생 많이 하셨던 선,후배 전우님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는 어느새 70대 전,후의 연배가 되었는데, 늘 건강하시고 용기와 행복하세요^^
전 90년 전경인데요 파출소는 그때도 카빈 썼어요....
진짜 쏘면 윗덮개 날아갑니다. ㅎㅎㅎ
70년대 현대정주영회장님은 제네시스 못타고 포니탔음 ㅋㅋ
그래도 카빈은 너무 좋음...가볍고 작고 등에 착붙고...이게 가장 중요...그런데 문제는 수시로 자체분해됨...그리고 타격력이 너무 약함...권총탄을 쏘니 헐....
칼빈은 몇 년전까지 실제 예비군에서도 썼었죠... 나중에 폐기한다고 엄청난 수의 칼빈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사격 훈련때의 기능고장이나 해체하면 보이는 부품의 상태를 보면 진짜 사용 불가한 수준입니다. 그런 총을 지급 받아서 사용하셨다니 신기하네요
신기하기는...? 6.25 때는 남의 나라 무기를 빌려서 전쟁터에 투입했는데요...
60~70년대 군대생활 하신분들 엄청 고생 하셨죠. 지금은 상상할수 없었던 고생
15군번입니다.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우린 일요일에 식판에 찐라면 먹었는데.간단해서 그런듯했죠. 물부어서 라면깔고 그위에 스프뿌려서 찌면~~끝!! 평일엔 밥을 먹는데 바구미가 바글바글했는데 그냥 먹었네요.그것도 먹으면 영양분이래나 대꾸 하나 못했죠.
저희 할아버지는 징용 다녀온 얘길 하셨다고 해요 막걸리만 자시면 라떼는 말이야... 13년생이신데 60년대 초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6.25때는 국군이며 인민군 한테 맞기도 하시고 그때는 삶 자체가 군대같았던것 같아요
큰아버님이 넌 배고픔이 뭔지 모르지?!
그 시절은 남자들뿐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 할머님들이 진짜 찢어지게 고생하셨다고 생각이됩니다.
어머니 할머니 앞에서 라떼는 말이야는 해선 안될것 같아요
저희 큰이모님은 외갓집 제사때 라떼를 하실때... 왜정시대때... 이렇게 푸시더군요ㅎ
보통 일제시대라고 하는데...
라떼 인정합니다...
너무 잼써요
돌이사님
95년 군번 입니다 저분들 존경 합시다 피 땀흘리며 타 군 혐호하지 말고
2000년대 초반군번인데, 글쓴이 선배님 시절 입던 70년대 민무늬 전투복이 논산 cs복이었네요. 내구성 하나는 좋은듯. 서울에서 향방 예비군 할때 M1 카빈 소총 받았는데, 이 당시에는 이미 기능고장난 총들은 처분을 했는지 특별한 문제없이 예비군들이 잘들 쐈었습니다. K2나 M16 사격할때도 간간이 발생되는 기능고장이. 오히려 M1 카빈 사격할땐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밀덕이라 M1 게런드도 쏴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것은 구경도 하지 못했네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네 ㅋㅋㅋ 00년대 군번인데 진짜 극한 군복무하던 시절이네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지만 나름 희노애락이 있었겠죠 주말에 라면은 지금도 괜찮을듯 군대리아도 좋지만 그 덕분에 편히 쉴수 있는게 아닐런지 좋은글 감사하며 다음편 기대됩니다
이야.... 이건 매우 귀한 글이군요
96년 군번인데 위병소 근무서는데 연대 인사과장이 차타고 들어가다 말고 갑자기 후진으로 오더니
군복을 보더니 괴뢰군이라고 ㅋ 자기가 보급해주던가 그나마 주임상사님이 사제 하계 전투복을 구해오셔서 근무설때 입으라고
얇고 가벼워서 좋았죠 근무를 하루 열시간씩 근무를 서다 보면 더워서 환장하죠
6:47 자주나오는 단어가 아닌데.. 간간히 나오면 흠칫흠칫 놀람..
저희 아버지 군대썰이랑 거의 똑같네요
어버지가 식사가 느린편이셔서 식사끝이라고 하면 짬통까지 걸어가면서
허겁지겁 드셨다고
와...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네 ㅋㅋㅋ
저도 육군 2하사관 학교 1대대 8중대 기행345기 출신으로 상무대 기갑학교 졸업후 하사로 임용되어 20사단 전차중대 근무했습니다.악몽같던 시기였네요.
반갑습니다
70년 7월입대후일병근무하다
2하사관학교 차출당하여
기행101기로부산화학학교
졸업 논산훈련소엽 공병대에서근무후 제대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