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서릉은 중국 전통 풍수지리학에 따라 조성되었다. 풍수지리학 연구 자료를 찾아 숭릉과 모릉, 부의 묘, 영복사를 탐방해 본다(청서릉 2부).[베이징(북경)지역 여행6]고산봉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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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3 вер 2024
  • #청서릉#숭릉#모릉#부의묘#풍수지리#지리오결#북경
    이 영상은 지리오결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필요한 풍수지리 연구 자료로 수집한 것 중 그 일부내용들이다.
    청서릉(清西陵)에는 태릉(泰陵, 雍正皇帝), 창릉(昌陵, 嘉慶皇帝), 모릉(慕陵, 道光皇帝), 숭릉(崇陵, 光绪皇帝) 등 4명의 황제릉과 황후 9명, 후궁 57명, 왕 2명, 공주 2명, 황자 6명 등 총 80명의 능묘가 있다.
    2부에서는 숭릉과 모릉, 부의(푸이) 묘, 영복사를 탐방한다.
    ⦁청나라 황제들의 능 개관
    청나라 황제들 중 5명은 하북성(河北省) 당산시(唐山市) 준화시(遵化市)에 위치한 청동릉(淸東陵)에, 그리고 4명은 하북성(河北省) 이현(易縣) 보정시(保定市)에 위치한 청서릉(淸西陵)에 안장되어 있다. 초대 태조(太祖) 천명제(天命帝)와 제2대 태종(太宗) 숭덕제(崇德帝)는 북경에 입성하기 전에 사망하여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던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에 안장 되어 있고,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인 부의(溥儀)는 청서릉(淸西陵) 숭릉의 북쪽에 있는 공동묘원에 안장되어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시대 중국의 황제 능묘의 위치는 풍수지리를 근거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그 배치나 건축양식을 정형화 하였다. 능묘의 전반적인 구조는 명대 황제 릉과 비슷하다.
    옹정제는 청동릉에 안장하지 않고 이곳 청서능에 최초로 능을 조성하고 안장한 황제다.
    ⦁광서황제의 숭릉(光绪皇帝 崇陵 : 1875~1908 재위)
    광서황제와 효정경황후(孝定景皇后)가 함께 안장되어있다. 숭릉은 청나라가 멸망한 후인 1915년에 마지막으로 완성된 황제릉이다.
    지궁은 4개의 석문이 있고 9개의 권역으로 건축되었다. 금권에 있는 금정 위에 황제의 관곽이 그리고 그 옆에 황후의 관곽이 안치되어 있다.
    능은 1938년 도굴 당하였고, 일반에 개방되어있다.
    ⦁부의의 묘(溥儀墓: 1906~1967) '공종(恭宗) 선통(宣統) 1908~1912'
    묘는 숭릉 북쪽에 있는 화룡황실릉원(華龍皇家陵園)에 있다.
    효각민황후 곽포라 완용(孝恪愍皇后 郭布羅 婉容), 상귀인 담옥령(祥貴人 譚玉齡) 등과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청황실 사찰 영복사
    명청 양대 황제능침군에서 유일하게 보존이 돼 온 황실 사찰은 영복사(永福寺)다. 영복사는 건륭 52년(1787) 봄에 건설 시작, 건륭 53년 겨울에 완공되었다.
    영복사는 중심축인 층원이 중심이 되고, 층원 좌우에는 요사체들이 있다. 층원은 3층원으로 되어있다. 1층원은 대웅보전이, 2층원은 보광명전이, 3층원은 보운각이 각 중심 건물이다.
    ⦁도광황제의 모릉(道光皇帝 慕陵 : 1820~1850 재위)
    모릉에는 도광제(道光皇帝)와 효목성황후(孝穆成皇后), 효신성황후(孝慎成皇后), 효전성황후(孝全成皇后)가 함께 안장되어있다.
    도광제는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3번째로 정한 곳이 모릉이라고 한다. 청동릉에는 2번째로 정했던 도광유지가 있다.
    모릉의 특징
    능 조성은 규모를 축소하고, 터 선정은 풍수지리 중시
    대비루, 석상생, 화표, 이주문, 방성, 명루 등을 생략
    석패방은 규모를 축소하고, 모두 청백석재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조각
    융은전과 동서배전은 모두 비싼 금사남목(金絲楠木)을 사용
    융은전의 금사남목의 조각이 매우 정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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