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라가 나서야 하는데 이렇게 나서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실하교수님 복기대교수님 정형진원장님 이덕일 이기훈선생님등과 이지린 윤내현저서 모두가 저의 역사인식을 풍부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의 정체성이 매우 복잡함에 놀랐습니다 동이족(은나라) 요하고조선 부여 흉노 모두 제 피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중 언어가 가장중요한것 같습니다 그다음이 신관 묘제 의식주의 전통문화 혈족관계인것 같습니다 외래 지배부족이 건국해도 그 나라의 정체성은 다수의 주민이 쓰는 언어 문화를 바꾸지 못합니다 청나라가 만주국가를 세워 수백년 지배했지만 그들의 흔적은 지금 미미합니다 흉노가 신라를 건국했지만 그 신라를 구성하는 다수국민의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물론 그 일부분은 흉노의 습속이 스며들 수는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융합동이족이고 기마민족이기도하고 그 오리진은 요하문명지역이라는 것은 확고합니다
한민족 최초의 국가는 BC3897년에 세워진 배달국입니다 환인천제로부터 반고와 초대환웅이신 거발환 환웅이 떨어져 나와서 반고는 삼위산으로 갔고 거발환은 태백산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죠 개천을 했다는 말입니다 개천절이 양력 10월 3일이 아니라 음력 10월 3일인것이죠 배달국을 부정하면 우리나라의 국통맥이 끊어집니다 우하량에서 나온 유물이 우리선조들이었거든요 누가뭐라해도 우리의 국통맥은 환인이 다스렸던 12연방은 우리민족만의 역사는 아니라도 우리민족이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우리민족의 시작인것이죠 그다음 배달국 조선 고구려백제신라 발해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 그다음 대한민국이니까 공부 많이 안해도 인터넷만 뒤져도 다 나오는 역사인 것을요
우실하 선생님 감사합니다 두 눈 뜨고 뭐든 해야할텐데요 구전이고 전해내려온다면 뭐든 신빙성이 있으니까 그러는거겠죠 고조선 고조선 하기만하였지 사실 체감하기란 너무 먼 얘기였는데요 중국 요임금의 궁터가 발견되었다니 기뻐해야할까요 이제는 중국경계선안에 있는 것이겠으나 민족사학자가 계시고 또한 여러분이 연구하시니 좀 기다려야할것같네요 하루빨리 역사를 재정립하여 제대로된 역사서를 보고 또 물려줘야할텐데요
물론 잘 아시겠징산 춘천 위도 유적에서 비파형 청동거이 약 50개 출토되었으며 평창메 출토던 형동검은 기윈전 5세기로 강원도 영서지역은 조선 실록에 기록에 맥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맥은 고조선 후에 예맥구리에서 강르믄 토장을 하는 예이징산 영서는 석장을 하는 맥족 의 구분입니다
참고로 서울대 송모교수란 사람 우리역사를 살펴 볼려면 적어도 중국말과 언어는 기본이 되어야 하는대 제대로 할련지~~그리고 중앙아시아 언어(몽골어 키자스탄등)통해 그들역사를 두루 살펴 볼때 우리 역사를 새로이 조명해 볼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울나라는 오랜 외침과 식민치하를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봅니다. 그래서 고대 유물과 여타 역사서를 참고 할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한번은 그걸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선생님은 되게 경견하게 봤는데.. 애들은 새밥이라고 놀리더라구요.. 오늘 강의 들으니 그게 오히려 청렴하고 경견한 모습이였다는 것은 알게 되었내요^^ 감사합니다. 오히려 지금 유투브 봐도 그게 오히려 근육성장에는 좋은 거라고 나오더군요^^ 모르니 애들은 새밥이라고 노렸던거 같음
동이는 누구이며 예맥은 누구인가... '이'는 한국어로 사람을 의미한다(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고대 중국내륙 중원보다 문명이 앞섰던 홍산, 요하 문명의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이' 였다... "이"는 고유명사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이'를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동이의 예맥족이다... 맥이란 밝다는 의미이고 맥족은 밝음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는 만주의 예수 지역으로 옮겨 살았던 맥족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예맥은 모두 같은 족이다... 예족은 북만주 부여의 중심이 되었고 맥은 남만주, 발해만, 요서지역, 한반도에 널리 분포한 농경민들이었다... 예맥은 모두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중심이었다... 신시배달 시기 요하의 예맥족은 일부가 황하지역으로 이동하여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황하문명을 일으켰다... 중국의 3황이라 일컬어지는 복희, 신농, 수인 등은 중원의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해준 동이의 지배계층이었다... 5제도 역시 동이족이다... 3황5제는 동쪽에서 와서 문명을 전수해 준 사람들이었고 수천년의 기간이 지나며 언어적으로 다수의 토착민들과 동화되면서 중국 내륙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동이였지만 화하의 시조가 된것이다 정통 동이족인 발해만, 만주 그리고 일부 산동반도의 예맥 동이족은 신시배달로부터 단군조선까지 동아시아 문명의 가장 앞선 국가로 천제의 나라, 천독국, 군자국으로 불리며 주변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동일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방계 동이족인 요,순,우의 당,하나라는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황하의 치수를 관리하며 독자적 황하문명의 시초를 이루는 나라를 세웠고 이후 하나라 걸왕의 폭주로 하북과 산동반도 지역 동이의 백성들이 일어나 상나라를 세웠다... 상은 동이족이 세운 왕조로 단군조선의 거수국에 불과하였으나 중원의 많은 인구와 토지 등 경제적 이점으로 발해만, 만주지역과 문화적으로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상나라 말기 은주왕의 폭주로 서쪽의 주문왕이 일어나 은을 멸하고 주를 세웠다... 사료에 주문왕 세력을 '서이'로 기록하였으며 당시까지 '이'는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서이의 주나라 세력은 지금의 관중땅 서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였고 그들이 중원의 패권을 잡으면서 은나라, 산동반도 지역의 동이 사람들은 상당수가 발해만의 고죽, 조선으로 돌아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중원은 서안 지역의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원의 제후 봉건국가로 화하족이 지배하게 되었다 (화하는 관중지역 화산의 화족과 황하유역 하나라의 하족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란 것이 중국인들의 주류 관점이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제도, 문화, 예법을 그대로 물려받아 황하문명을 발전시켰다... 춘추시대 공자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문제 해법은 주나라의 문화와 예법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그것이 그가 말한 유교의 핵심 원리이다... 공자는 죽기전 자신은 은나라 사람이다 라고 말하였다 (공자의 선조는 송나라 왕족출신이었고 송나라는 은나라 왕족인 미자계가 세운 주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이다) ... '동이' 라는 명칭은 주나라 이후 서서히 고유명사화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의 동쪽지역에 사는 이민족들을 모두 '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라는 말이 사람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닌 외부 특정 이민족의 의미를 갖게된 것이다... 당대 사료적 관점에서 화하가 바라본 동이는 3부류가 있었다... 1. 자신들과 인접한 발해만의 고죽, 번조선 등 예맥 집단 2. 내몽골 동부 유목민 집단 3. 만주의 군자국,대인국 (군자국은 단군조선을 의미하고 대인국은 부여를 의미한다) ... 화하족이 동이를 오랑캐로 멸시한 것은 대부분 유목민 집단들이다... 산융(북융), 동호, 선비, 오환, 거란... 내몽골 유목민은 산융때까지 단군조선의 거수국으로 통제되었으며 춘추시대 고죽과 연합하여 연,노,제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단군조선이 점차 쇠퇴하여 bc238년 망하면서 내몽골 동부 유목민 동호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강성하게 되었으나 흉노 묵특에게 멸망당하였다... 유목민 집단인 동호는 예맥 농경민 집단인 조선이 아니다... 고죽(고리, 탁리), 번조선 역시 단군조선(진조선, 진한, 대부여) 멸망후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단군조선은 열국으로 분열되었다.... 한반도의 마한과 수십개 소국들도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분열하게 되었다... 한무제에 의한 위만조선 침공은 발해만의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이 열국으로 분열된 북부여와 만주, 한반도 북부의 기타 중소국가들과의 무역을 방해하여 중개 이권을 차지한데 대한 보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에 대한 열국들의 이간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한무제는 흉노 등 북방 유목민 집단에 대한 보복으로 강력한 토벌을 하였으나 발해만의 번조선 등 이민족 농경민 집단인 예맥에 대해서는 적대하지 않았고 서로가 오랜기간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위만조선에 대한 침공은 여러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본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도 당시 만주에 있던 북부여를 사마천은 조선이라 칭하고 기록하였다... 위만의 손자 우거의 아들과 조선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북부여(또는 동명부여)와 통하였고 그것이 발각되어 모두 처형된다... 위만조선 유민들과 통하였던 북부여를 당대의 중국인들은 조선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단군조선(대부여)의 뒤를 이은 북부여와 동명부여, 졸본부여는 사회, 문화, 종교적 측면에서 예맥 그 자체였다
한국의 대학교의 사학이 얼마나 개판임을 보여 주는 것이 중국 북동 지역에서 발견된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대하여 연구를 하려하지않는가 하는것이다 그 것이 우리나라와 관계없는 문화라 할지라도 유럽의 역사도 아니고 현재 대한문국에 바로 옆에 있던 문명이면 고대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항역이 있었을 터인데도 던구는 커녕 언급조차도 하지안흔 것이 정말 학자들이라는 자들이 할 짓인가? ... 이는 학자로서 자격도 없고 대학교수 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아이에 학위 자체를 취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목부터 바꾸세요 단군조선의 실존 가능성? 단군조선은 실제 역사다로 바꾸세요. 자신없는 제목. 그리고 단군 조선은 중앙아시아 에서 시작된 대 제국입니다. 한반도 위 작은 소국이 아님. 그리고 비파형 동검은 일부 일뿐. 언어.역사,지명 더 많은 증거들이 우즈백,카자흐,터어키 인도, 스리랑카 역사 공부하세요
중국에 대항할 동맹 경제력이 있습니다! 중국참전 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동이족 청이 점령했으나 다시 빼앗겼습니다! 이제 경제적 이득도 별로 없어지고 있습니다 계륵이 되가는 중국 싸우더라도 중국에게 우리의 역사왜곡에 대해 할말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극단적이긴하나 전쟁나면 피해가 있겠지만 중국은 민족벼로 찢어질거라 생각합니다!
바이두는 우리나라의 포탈 네이버나 미국의 구글과 같습니다. 포탈에 있는 글이 전부 사실이 아니며 정부가 강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중국 학자들이 동북공정을 왜곡하기 위하여 이런 주장을 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교수님의 의견이 정론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카메라를 PPT 위주로 잡아야 하는데 강연자 위주로 되어있네요. 옥의 티 입니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도 역시나 환단고기를 까대는 멘트는 빠뜨리지 않는군요. 환단고기의 역사적 일치성, 조선조 초기 단군관련 수많은 사서를 수거해 불태웠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음에도 마치 현대에 창작한 소설쯤으로 매도해 버리는군요. 환단고기 관련 연구 논문 한 편 쓴적도 없는 분이 강의때마다 무시하고 깍아내리는 행태는 진실을 탐구하는 학자다운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건 공영방송이나 교육방송에서 다루어 주면 좋겠다.
흥한멸한
우실하 교수님 건강하시고 용기백배 하시어 이나라 살려주세요.
참 대단한 열정으로 우매한 우리들을 일깨워주시내요
고맙습니다. 늘 건강 하시고 좋은 나날되셔요
식민사관에 몰입되어 총독부역사관을 추종하는 강단식민사학자들은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밝혀지는것을 원하지않죠 그럼에도 우리민족의 뿌리가 분명한 요하문명의 실체를 밝히시는 우실하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대는 진정 독립군입니다
대한독립 만세
우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라가 나서야 하는데 이렇게 나서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실하교수님 복기대교수님 정형진원장님 이덕일 이기훈선생님등과 이지린 윤내현저서 모두가 저의 역사인식을 풍부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의 정체성이 매우 복잡함에 놀랐습니다 동이족(은나라) 요하고조선 부여 흉노 모두 제 피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중 언어가 가장중요한것 같습니다 그다음이 신관 묘제 의식주의 전통문화 혈족관계인것 같습니다
외래 지배부족이 건국해도 그 나라의 정체성은 다수의 주민이 쓰는 언어 문화를 바꾸지 못합니다 청나라가 만주국가를 세워 수백년 지배했지만
그들의 흔적은 지금 미미합니다 흉노가 신라를 건국했지만 그 신라를 구성하는 다수국민의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물론 그 일부분은 흉노의 습속이 스며들 수는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융합동이족이고 기마민족이기도하고 그 오리진은 요하문명지역이라는 것은 확고합니다
이런 소중한 분들 건강히 오래 사셔야 할텐데 존경합니다 빨리 중국이 무너지면 좋겠습니다
유익한 강의 였습니다.
내가 기가막힌건 이런 중요한 강의를 6100명만 봤다는게 충격이다.
그럼 님이 홍보를 하세요
말을 해도 싸가지 있게 잔다
저두 그렇게생각합니다
중국에 저도 오래살며 느낀 큰 문제가 중국 모든 사람들이 바이두라는 검색사이트에 나온 역사를 보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건데, 그걸 심각하게 인지못하는 한국정부가 국민이...이 강의를 꼭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언론이 몰라서
그런 사실에 침묵하는게 아니라
식민사학계와 한 끄나플이기에
그런 것이라 여깁니다.
멋지십니다..부디 많은 후학들이 공부하고 연구할수 있도록 길을 보여 주세요..
첨듣는새로운사실요하문명강의감사
유튜브 뭐 볼것도 없고 해서 믿고볼수있는 우실하교수님 강의를 듣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당신들과 뜻을 같이합니다. 동지
수고많으십니다.' 中原' 지역에서 호모에렉투스의 先祖격인 '東方人',이 대나무 우리에서 250만 년 전의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군님의 활동 무대는' 中原'지역입니다. 최초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한민족 최초의 국가는 BC3897년에 세워진 배달국입니다 환인천제로부터 반고와 초대환웅이신 거발환 환웅이 떨어져 나와서 반고는 삼위산으로 갔고 거발환은 태백산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죠 개천을 했다는 말입니다 개천절이 양력 10월 3일이 아니라 음력 10월 3일인것이죠 배달국을 부정하면 우리나라의 국통맥이 끊어집니다 우하량에서 나온 유물이 우리선조들이었거든요 누가뭐라해도 우리의 국통맥은 환인이 다스렸던 12연방은 우리민족만의 역사는 아니라도 우리민족이 그곳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우리민족의 시작인것이죠 그다음 배달국 조선 고구려백제신라 발해 고려 이씨조선 대한제국 그다음 대한민국이니까 공부 많이 안해도 인터넷만 뒤져도 다 나오는 역사인 것을요
고조선이라하지말고그냥조선이라불러야한다이성계의조선은후조선또는근세조선이라불러야한다60년전부터생각하던거다...
감사합니다 좋은 강연 감사합니다
3000여년전에 해수면이 얼마나 높았는지모르겠지만 발해의서쪽면 북경의동쪽의 해안선이 북경가가이였을거라 생가한다 황하의 이북에 10여개의강이 서에서 동으로흘러 발해만으로 들어가는데 이강들이 토사를흘려와땅이되고 해수면이낮아지면서 땅이되었을거라고 봅니다 지금의해안선과 3000년전 해안선은 많이달랐을겁니다
우실하 선생님 존경합니다.
가공의 신화로만 믿었던 트로이 성을 19세기에 슐리만이 발굴한 후
세계가 일리아드 트로이전쟁을 실제 역사로 믿게 되었다
주인공은 막판에 등장하듯이 20세기 발굴된 홍산문명의 주체 고조선도
세계가 믿게 된다
가능성이 아니라 타당성이라 해야!
멋져부러 !!!
우실하 교수 ㅡ 🇰🇷 👍 💕 훌륭해
우실하교수님 강의 잘듣고있습니다
많은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네요
우리 배달조선은 중원지역에서 시작되었고 단군님은 중원지역 5악을 통솔하셨습니다. 5악은 12주에 있었고 12주에서 3주 즉 마한,진한,변한이 빠져나가고
우 임금이 9주를 다스리는
계기가 되는 역사가 됩니다. 청동기 명문 상형문자는 바로 우리문자입니다.
감사합니다.
Wonderful!
우실하 선생님 감사합니다
두 눈 뜨고
뭐든 해야할텐데요
구전이고 전해내려온다면 뭐든 신빙성이 있으니까 그러는거겠죠
고조선 고조선 하기만하였지
사실 체감하기란 너무 먼 얘기였는데요
중국 요임금의 궁터가 발견되었다니 기뻐해야할까요
이제는 중국경계선안에 있는 것이겠으나 민족사학자가 계시고 또한 여러분이 연구하시니 좀 기다려야할것같네요
하루빨리 역사를 재정립하여 제대로된 역사서를 보고 또 물려줘야할텐데요
물론 잘 아시겠징산 춘천 위도 유적에서 비파형 청동거이 약 50개 출토되었으며 평창메 출토던 형동검은 기윈전 5세기로 강원도 영서지역은 조선 실록에 기록에 맥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맥은 고조선 후에 예맥구리에서 강르믄 토장을 하는 예이징산 영서는 석장을 하는 맥족 의 구분입니다
참고로 서울대 송모교수란 사람 우리역사를 살펴 볼려면 적어도 중국말과 언어는 기본이 되어야 하는대 제대로 할련지~~그리고 중앙아시아 언어(몽골어 키자스탄등)통해 그들역사를 두루 살펴 볼때 우리 역사를 새로이 조명해 볼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울나라는 오랜 외침과 식민치하를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봅니다. 그래서 고대 유물과 여타 역사서를
참고 할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나 어렸을때 할머니가 조당수(좁쌉밥.. 기장죽) 많이 드시던데.. 그게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이강의 보고 처음 알았음.. 그게 제사용이였구나!
한번은 그걸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선생님은 되게 경견하게 봤는데.. 애들은 새밥이라고 놀리더라구요.. 오늘 강의 들으니 그게 오히려 청렴하고 경견한 모습이였다는 것은 알게 되었내요^^ 감사합니다. 오히려 지금 유투브 봐도 그게 오히려 근육성장에는 좋은 거라고 나오더군요^^ 모르니 애들은 새밥이라고 노렸던거 같음
젊은 사학도들 제발 정신 차리고 봐 주세요 하늘에서 조상님들께서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일본돈 먹었어면 뺕어내고 중국돈 먹었어면 뺕어 내세요 올바른 길을 가세요 하늘이 울고 있습니다
위치비정은 모르겠으나 우리상고서적에는 있었을거같다는 생각이듭니다 조선초기와 일제가 없앤책중에 있을것으로 한가지의심가는것은 일본학자들이 먼저발견했다는 광개토호태와비석도 그들은 혹시 서책을가지고 있을거같은
실존가능한 것이 아니라 분명 실존합니다.
우실하 교수 .. 그나마 괜찮은 학자인데 이렇게 조심하니 문제가 있지요... 주류강단이라는 역사 조작무리들이 공격할 걸 아니까.
그러나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입니다 . 송호준이 이 자슥부터 역사계에서 쳐내야 할 역사조작자..
현재중국에 56개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중 북방계소수민족은 모두 고조선의 소수민족 이였을거다 대충 절반정도일거다
1700 년대 레지.당빌신부님들이 고려.조선초기 지도를 그린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역사학계는 그것을 절대 사용할수없게합니다 일본놈들이조작한 한반도가 허리가잘린 지도를 고려영토라고 아직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책을 더 발간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서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강의 제목을 '단군조선은 실존한다' 등으로 바꿔야 할듯합니다
국보급 역사학자이십니다
요하문명은여러곳으로흩어졌지만 그주류는 분명한 우리조상들의 문명이다 그자리에 환웅의배달국이 1565년 단군의고조선과 부여가 2330년 고구려가 700년 살앗던곳입니다
동이는 누구이며 예맥은 누구인가...
'이'는 한국어로 사람을 의미한다(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고대 중국내륙 중원보다 문명이 앞섰던 홍산, 요하 문명의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이' 였다... "이"는 고유명사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이'를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동이의 예맥족이다... 맥이란 밝다는 의미이고 맥족은 밝음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는 만주의 예수 지역으로 옮겨 살았던 맥족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예맥은 모두 같은 족이다... 예족은 북만주 부여의 중심이 되었고 맥은 남만주, 발해만, 요서지역, 한반도에 널리 분포한 농경민들이었다... 예맥은 모두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중심이었다... 신시배달 시기 요하의 예맥족은 일부가 황하지역으로 이동하여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황하문명을 일으켰다... 중국의 3황이라 일컬어지는 복희, 신농, 수인 등은 중원의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해준 동이의 지배계층이었다... 5제도 역시 동이족이다... 3황5제는 동쪽에서 와서 문명을 전수해 준 사람들이었고 수천년의 기간이 지나며 언어적으로 다수의 토착민들과 동화되면서 중국 내륙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동이였지만 화하의 시조가 된것이다
정통 동이족인 발해만, 만주 그리고 일부 산동반도의 예맥 동이족은 신시배달로부터 단군조선까지 동아시아 문명의 가장 앞선 국가로 천제의 나라, 천독국, 군자국으로 불리며 주변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동일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방계 동이족인 요,순,우의 당,하나라는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황하의 치수를 관리하며 독자적 황하문명의 시초를 이루는 나라를 세웠고 이후 하나라 걸왕의 폭주로 하북과 산동반도 지역 동이의 백성들이 일어나 상나라를 세웠다... 상은 동이족이 세운 왕조로 단군조선의 거수국에 불과하였으나 중원의 많은 인구와 토지 등 경제적 이점으로 발해만, 만주지역과 문화적으로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상나라 말기 은주왕의 폭주로 서쪽의 주문왕이 일어나 은을 멸하고 주를 세웠다... 사료에 주문왕 세력을 '서이'로 기록하였으며 당시까지 '이'는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서이의 주나라 세력은 지금의 관중땅 서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였고 그들이 중원의 패권을 잡으면서 은나라, 산동반도 지역의 동이 사람들은 상당수가 발해만의 고죽, 조선으로 돌아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중원은 서안 지역의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원의 제후 봉건국가로 화하족이 지배하게 되었다 (화하는 관중지역 화산의 화족과 황하유역 하나라의 하족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란 것이 중국인들의 주류 관점이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제도, 문화, 예법을 그대로 물려받아 황하문명을 발전시켰다... 춘추시대 공자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문제 해법은 주나라의 문화와 예법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그것이 그가 말한 유교의 핵심 원리이다... 공자는 죽기전 자신은 은나라 사람이다 라고 말하였다 (공자의 선조는 송나라 왕족출신이었고 송나라는 은나라 왕족인 미자계가 세운 주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이다) ... '동이' 라는 명칭은 주나라 이후 서서히 고유명사화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의 동쪽지역에 사는 이민족들을 모두 '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라는 말이 사람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닌 외부 특정 이민족의 의미를 갖게된 것이다... 당대 사료적 관점에서 화하가 바라본 동이는 3부류가 있었다... 1. 자신들과 인접한 발해만의 고죽, 번조선 등 예맥 집단 2. 내몽골 동부 유목민 집단 3. 만주의 군자국,대인국 (군자국은 단군조선을 의미하고 대인국은 부여를 의미한다) ... 화하족이 동이를 오랑캐로 멸시한 것은 대부분 유목민 집단들이다... 산융(북융), 동호, 선비, 오환, 거란... 내몽골 유목민은 산융때까지 단군조선의 거수국으로 통제되었으며 춘추시대 고죽과 연합하여 연,노,제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단군조선이 점차 쇠퇴하여 bc238년 망하면서 내몽골 동부 유목민 동호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강성하게 되었으나 흉노 묵특에게 멸망당하였다... 유목민 집단인 동호는 예맥 농경민 집단인 조선이 아니다... 고죽(고리, 탁리), 번조선 역시 단군조선(진조선, 진한, 대부여) 멸망후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단군조선은 열국으로 분열되었다.... 한반도의 마한과 수십개 소국들도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분열하게 되었다... 한무제에 의한 위만조선 침공은 발해만의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이 열국으로 분열된 북부여와 만주, 한반도 북부의 기타 중소국가들과의 무역을 방해하여 중개 이권을 차지한데 대한 보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에 대한 열국들의 이간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한무제는 흉노 등 북방 유목민 집단에 대한 보복으로 강력한 토벌을 하였으나 발해만의 번조선 등 이민족 농경민 집단인 예맥에 대해서는 적대하지 않았고 서로가 오랜기간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위만조선에 대한 침공은 여러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본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도 당시 만주에 있던 북부여를 사마천은 조선이라 칭하고 기록하였다... 위만의 손자 우거의 아들과 조선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북부여(또는 동명부여)와 통하였고 그것이 발각되어 모두 처형된다... 위만조선 유민들과 통하였던 북부여를 당대의 중국인들은 조선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단군조선(대부여)의 뒤를 이은 북부여와 동명부여, 졸본부여는 사회, 문화, 종교적 측면에서 예맥 그 자체였다
어쨌든 홍익인간 이념하에 법을 만들고 체제를 만들어야할 앞으로 우리 법조인이나 사회학자.. 고고학자들의 과제!! 앞으로 천년은 일본에서 들어온 법 모방해서는 안됨!
1:16:00 고조선은 진시황이 강남 산동에서 몰아냄
선생님 단군조선의 역사를 들여다 볼 생각인데 어떤 책을 읽는게 가장 신뢰도가 높나요? 약간씩 다른 내용의 책들이 존재하나요?
북한에서 그렇게 크게 비파형동검을 만든거는 아마! 앞으로 남북통일되면 이념을 홍익인간으로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거 같음
선후.. 국가라면 적통의 진전이 어디로 향했는가.. 역사단절은 재해로인한 기후변화로 보면.. 대이동이 있었을거고 사방의 확산에 적통은 있기마련..그것을 알자는 것이다.
빼앗긴 땅이기에 숙여서라도 참여하긴해야겠지.
현재의 한국사학계 식민강단사학자들은 중국이나 일본이 아무리 식민사관을 전파해도 조선사편수회 사관에서 한발짝도 바뀌지 않습니다!!!그래야 자리와 월급봉투지킬 수 있으니까요!!!
고인돌을 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
모르니까 용감한거^^ 큰일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책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광주가 정신이 살아있구나..
놀라운 사실 중 하나가 진시황릉 발굴중단의 이유다. 릉을 발굴하다 보니 릉안에서 발굴되는 것이 동이족의 문화였고 그로인해 파급될 여파가 두려웠던 중국정부는 발굴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성경에나오는이스라엘은 한국인인거 같다
에수도 조선인이다 ㅎㅎㅎ
@@いつも123 그냥 그렇다는겁니다 ㅎ
역시 이집트만 bc 2000 3000 4000으로 가는게 아니었군 이집트가 bc4000까지 올라가면 다른데도 비슷해야지 인더스랑 메소포타미아도 비슷하게 초고대국가가 존재했을듯함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카메라는 엉망이다.
300년 전의 산동성이면 지금의 산동성이 아님 그당시 산동성은 태항산맥의 동쪽의 동쪽이 산동성임.
산의 동쪽에 있는 성이라 해서 산동성입니다.
한국의 대학교의 사학이 얼마나 개판임을 보여 주는 것이 중국 북동 지역에서 발견된 새로운 문명과 문화에 대하여
연구를 하려하지않는가 하는것이다 그 것이 우리나라와 관계없는 문화라 할지라도 유럽의 역사도 아니고
현재 대한문국에 바로 옆에 있던 문명이면 고대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항역이 있었을 터인데도 던구는 커녕
언급조차도 하지안흔 것이 정말 학자들이라는 자들이 할 짓인가? ... 이는 학자로서 자격도 없고 대학교수 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아이에 학위 자체를 취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단군 조선은 당연히 존재했죠.
신부님이 중국의 책으로 연구하셨다면 이미 그때에도 중국인들이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기술한것은 아닐 까요?
그성이 고조선이야
저렇게 연구를 많이한 사람도 실존가능성이 존재한다 정도만 얘기하는데
공부도 해본적도 ㅇ없는사람들이 실재했다
또는 그런거 전부 거짓말이다
단정해버리지
실존가능성도 사실 낮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ㄱ 아닐뿐
제목부터 바꾸세요
단군조선의 실존 가능성?
단군조선은 실제 역사다로
바꾸세요. 자신없는 제목.
그리고 단군 조선은 중앙아시아
에서 시작된 대 제국입니다.
한반도 위 작은 소국이 아님.
그리고 비파형 동검은 일부
일뿐. 언어.역사,지명 더 많은
증거들이 우즈백,카자흐,터어키
인도, 스리랑카 역사 공부하세요
중국에 대항할 동맹 경제력이 있습니다! 중국참전 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동이족 청이 점령했으나 다시 빼앗겼습니다!
이제 경제적 이득도 별로 없어지고 있습니다
계륵이 되가는 중국 싸우더라도 중국에게 우리의 역사왜곡에 대해 할말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극단적이긴하나 전쟁나면 피해가 있겠지만 중국은 민족벼로 찢어질거라 생각합니다!
역사학자들이 ㅈㄱ 돈을 말이 ㅊㅁㅇㅅ 그런거 아닐까?
바이두는 우리나라의 포탈 네이버나 미국의 구글과 같습니다. 포탈에 있는 글이 전부 사실이 아니며 정부가 강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중국 학자들이 동북공정을 왜곡하기 위하여 이런 주장을 하여 게재된 것입니다. 교수님의 의견이 정론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동북공정백서 e북 어디서 다운받을수 있나요???
특정 사이비 민족종교가 퍼트린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 ㅜㅜㅜㅜㅜ 저런 현실을 알리려고 해도 환빠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 ㅜㅜㅜㅜ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보면 참담할 지경이다. 그냥 매국노로 밖에 안보인다.
보다가 답답해서 자꾸
중단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중국자본이 많이 들어가 있는걸까요
서울대.... 공산당.... 권력....
빨려들어갔습니다~
왜 관종이 일반사람이냐?
묻고싶다..死學者들에게...단군 조선이 실존하지 않는 근거가 무엇인지? 왜 이런 문젤 강의 해야 한단 말인가?
카메라를 PPT 위주로 잡아야 하는데 강연자 위주로 되어있네요. 옥의 티 입니다.
그리고 이번 강의에서도 역시나 환단고기를 까대는 멘트는 빠뜨리지 않는군요. 환단고기의 역사적 일치성, 조선조 초기 단군관련 수많은 사서를 수거해 불태웠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음에도 마치 현대에 창작한 소설쯤으로 매도해 버리는군요. 환단고기 관련 연구 논문 한 편 쓴적도 없는 분이 강의때마다 무시하고 깍아내리는 행태는 진실을 탐구하는 학자다운 태도가 아닙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실하 교수의 역사관과 학자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듯 하네요
열받아서 못듣겠네요..
강의 내용이 보이지 않아서 신경질 나서 못 보겠다. 최소한 지도는 보이게 해 주야지.
우리는 가만히있는데..
두 저능아들이 역사왜곡하고 있음.
이 인간이 중ㄹ국사람 100퍼센트가 징기스칸이 몽골인으로 안다
한국이 중국문화를 도둑질한다는 말이 다 도둑놈이 제발 저려서 하는 말이구먼~~😂😂😂
시골티를 너무 내는 건가? 강사가 스크린의 내용을 가리키며 말할 때는 스크린의 내용을 비쳐줘야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왜 자꾸 강사의 모습을 비추는지..
그건 좀 아쉽네요
..........큰 물줄기를 설명하고있어요
현재 돌아가는 흐름을 이해해야죠.........
우실하. "사회학과" 석박사
역시 사학 박사소지자 1도 없는 환빠군단 ㅋㅋㅋㅋㅋ
화교는 니네 나라로 가세요
조선조 실록에도 단군왕검 47단군왕 이라고 나온다는데 . . . 제목이 아리송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