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처럼 시장 중심이지만 다른 점으로 집단주의를 강하게 띄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고도화된 능력주의 사회라고 보신 교수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하고 사회의 양극화도 미국과 같이 진행되고 고착화되고 있어 계층 상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님께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토론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이 기회는 Webinar (Web Seminar)이지 일방적으로 듣는 강연 혹은 저자와의 만남 같은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간에 샌델 교수님이 "제 의견이 맞다고 보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이재민 교수님은 다시 책 내용을 인용하고 한국에 비슷한 사례가 떠올랐다는 얘기만 하셨을 뿐 대답을 안하셨고 곧장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으로 동시통역없이 영어 그대로 들었으면 더 편했을 것 같습니다. (오! 영어 영상도 있군요. 방금 확인했습니다.) 능력주의의 결과: 패자에게 좌절감, 승자에게 오만함을. 그리고 그런 승자 또한 상처받은 승자로서 존재한다. 디지털 경제에 관한 질문: 원격근무, 재택근무 한국에서요? 글쎄요, 대유행 때문이 아니라 원래 재택근무를 유연하게 하는 직장인들이 한국에서 몇 퍼센트나 될까요? 생소한 모습인데요. 정치적 담론: 토론이 아닌 평행선을 달리는 일방향적 소통. 한국 정계에도 큰 시사점을 주네요. 이재민 교수님, 샌델교수님은 세계화가 아니라 시장중심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강화되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인간의 존엄성, 노동의 가치를 사회 전반적으로 재고해보아야 한다는 마이클 샌델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회의 불공정함은 기술의 보완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호호혜적인 인식과 Civic Virtue를 내면화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 궁금한 점은 스스로 본인을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승자나 패자의 상황을 헤아리고 공공선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가 어떤 체제를 혹은 영향력을 가져야 할까요? 이런 사람들은 능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극소수에 불과할까요?
@인간다움은어디서올까요? 안녕하세요, 의견 감사합니다. 제 질문이 흥미를 유발했다니 뿌듯한데요? 😊 과냉각 상태라는 비유 재밌네요. 스스로를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군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패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에 헬조선, 삼포세대와 같은 신조어들도 생겨나는 거구요. 승자들은 반드시 그들이 가진 운을 인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운“인지 몰라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땅콩 회항사건도 여러 갑질 사건들도 본인이 그 자리에 „운“으로 앉아있다는 걸 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죠. 만약 그렇다면 최순실 딸처럼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뱉을 수야 있겠어요? 물론 운을 인지하는 기득권층도 있겠지만요. 또 하나 드는 의문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본인의 노력과 인내의 가치를 부각시킨다고 하셨는데 제 시선에서 이것은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네요. 자존감은 외부의 조건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오는 내면적인 감정이기 때문이죠. 내가 내로라하는 기업의 임원이나 회장, 국회의원, 대통령이 아니어도 나의 삶에서 이뤄낸 성취를 바탕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자존감은 외부의 인정과 시선에서 자유롭습니다. 드신 의대교수의 예는 이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의대교수가 얘기하는 운이란 자신의 약점 (낮은 영어 구사능력)을 직업적 성공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인데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 말하는 운은 그 의대 교수가 소위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자라온 환경, 교육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걸 말씀하시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 운은 의대 교수가 스스로 말한 결과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과정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그가 의대 교수인 걸 알고 바뀐 것은 그 사람이 „의대 교수“라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직업을 현재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상태) 그 사람에게 작용한 운을 인지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형외과 의사의 예는 오히려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이론에 반박 내지 보완하는 예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주장처럼 운을 적용한 대학 입학 시스템을 정착시킨다면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가는 것을 능력과 운의 조합으로 인식하겠지만 결국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 난 뒤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사업 성공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통해 얻은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자신을 타인과 물질로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황금만능주의의 폐해로 귀결됩니다. 성적이 다가 아니라는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다들 그걸 아는 분위기라구요? 안타깝게도 여전히 사교육 열풍은 존재합니다. 최근 3년간의 한국 사교육 현황을 보면 (2017년 부터 2019년까지) 오히려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697) 아래에서 두 번째 문단 경험과 목도한 사람과 이론으로 접근한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저 역시 크게 공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계에 사회 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미혼모도, 30대 여성도, 일용직 노동자도, 기간직 근무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도 스스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한국의 여러 모습을 반영하는 풍부한 의견이 수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한국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존에 존재하는 많은 차별과 부조리함이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계기로 양지로 나왔다는 장점은 있지만 실생활을 보면 그리하여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을 돕거나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용하게 되었다기보다 각자 살기 더 바빠져 자신의 상황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다움은어디서올까요? „패자인데 패자라고 말하지 않는 자들도 님이 표현한 군중이라고 생각했네요“ : 이 분들은 패자인거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스스로를 패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요. 제가 생각한 앞서 말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말로 그 두 부류에 분류하지 않는 혹은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를테면 어느 정도의 성공도 했지만 패자로서의 씁쓸함도 느끼며 살아와서 굳이 분류하자면 중립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요. „표면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보이지만 지켜보는 사람들도 각자 삶에서 피해자였을 수도 가해자였을수도 가해자였지만 피해자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일수도 피해자였지만 가해자 편에 선 사람일수도 있는 군중이요. “ : 갑자기 왜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이 나뉘는 거죠? 논의는 신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승자와 패자에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피해자로서의 승자도, 가해자로서의 패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예는 마이클 샌더슨 교수님이 말씀하신 „상처받은 승자“로 표현될 수 있죠. 자존감과 자존심, 그리고 자신감의 차이에 대해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해본 결과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 자존감: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여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 • 자존심: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 자신감: 자신이 있다는 느낌. 따라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저의 자존감 정의 (나의 삶에서 이뤄낸 성취를 바탕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자존감은 외부의 인정과 시선에서 자유롭습니다.) 는 뒷받침 되네요. 님이 말씀하신 자존감 부분을 읽어보면 타인의 인정보다 본인이 들인 노력과 시간, 인내에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타인의 인정과의 비교가 들어가있습니다. 즉, 외부의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죠. 따라서 님이 말씀하신 설명은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교육비 증가 통계 자료는 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아직 그걸 아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근거였구요. 어쩌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가 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Q: „최상위층이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밑에 애들은 그냥 돈 버리고 있다고 저 통계가 말해주고 있는데 사교육 시장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가 뭘까요? “ A: „세상이 지식만으로 모든게 결정되는게 아니니깐요. 이제 그걸 다들 아는 분위기고.“ 말이 안되죠? 님이 하신 말씀 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님이 말씀해주신 정보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수입원을 잃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긍정적 변화인가요? 사회문제들을 바퀴벌레로 표현하신 것 같은데 문제는 기득권층의 집에는 바퀴벌레가 안 살아서 그들은 모른다는 거겠죠. 아니면 이 사실을 알더라도 바퀴벌레는 어차피 하층민들의 주거 문제니까 ,내 알 바 아니다´ 라는 태도를 취하거나요. 같은 뉴스보도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고 반응을 보이기에 그런 경각심을 느꼈다면 좋았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테지요. 이번 위기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돕고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내고 힘을 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님의 상황도 점차 나아지길 바라겠습니다.
마이클 샌델님도 아직 김누리 교수님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네요... 엘리트들이 겸손해지라는거는 아직도 엘리트 주의를 동의하는거잖아요. 엘리트들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자체에 오류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자각하고 우리의 권리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해요...정치인들이 성추행을 한다는 둥...그래서 그사람 감옥에 넣는거보다 그럴 일이 일어날수 없는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처벌은 본질을 흐립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다만, 음성보다 자막으로 해석을 해 주시면 더 집중이 더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미국처럼 시장 중심이지만 다른 점으로 집단주의를 강하게 띄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고도화된 능력주의 사회라고 보신 교수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하고 사회의 양극화도 미국과 같이 진행되고 고착화되고 있어 계층 상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님께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토론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이 기회는 Webinar (Web Seminar)이지 일방적으로 듣는 강연 혹은 저자와의 만남 같은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간에 샌델 교수님이 "제 의견이 맞다고 보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이재민 교수님은 다시 책 내용을 인용하고 한국에 비슷한 사례가 떠올랐다는 얘기만 하셨을 뿐 대답을 안하셨고 곧장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으로 동시통역없이 영어 그대로 들었으면 더 편했을 것 같습니다. (오! 영어 영상도 있군요. 방금 확인했습니다.)
능력주의의 결과: 패자에게 좌절감, 승자에게 오만함을. 그리고 그런 승자 또한 상처받은 승자로서 존재한다.
디지털 경제에 관한 질문: 원격근무, 재택근무 한국에서요? 글쎄요, 대유행 때문이 아니라 원래 재택근무를 유연하게 하는 직장인들이 한국에서 몇 퍼센트나 될까요? 생소한 모습인데요.
정치적 담론: 토론이 아닌 평행선을 달리는 일방향적 소통. 한국 정계에도 큰 시사점을 주네요.
이재민 교수님, 샌델교수님은 세계화가 아니라 시장중심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강화되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인간의 존엄성, 노동의 가치를 사회 전반적으로 재고해보아야 한다는 마이클 샌델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회의 불공정함은 기술의 보완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호호혜적인 인식과 Civic Virtue를 내면화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 궁금한 점은 스스로 본인을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승자나 패자의 상황을 헤아리고 공공선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가 어떤 체제를 혹은 영향력을 가져야 할까요? 이런 사람들은 능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극소수에 불과할까요?
@인간다움은어디서올까요? 안녕하세요, 의견 감사합니다.
제 질문이 흥미를 유발했다니 뿌듯한데요? 😊
과냉각 상태라는 비유 재밌네요.
스스로를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군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패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에 헬조선, 삼포세대와 같은 신조어들도 생겨나는 거구요. 승자들은 반드시 그들이 가진 운을 인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운“인지 몰라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땅콩 회항사건도 여러 갑질 사건들도 본인이 그 자리에 „운“으로 앉아있다는 걸 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죠. 만약 그렇다면 최순실 딸처럼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뱉을 수야 있겠어요? 물론 운을 인지하는 기득권층도 있겠지만요. 또 하나 드는 의문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본인의 노력과 인내의 가치를 부각시킨다고 하셨는데 제 시선에서 이것은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네요. 자존감은 외부의 조건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오는 내면적인 감정이기 때문이죠. 내가 내로라하는 기업의 임원이나 회장, 국회의원, 대통령이 아니어도 나의 삶에서 이뤄낸 성취를 바탕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자존감은 외부의 인정과 시선에서 자유롭습니다.
드신 의대교수의 예는 이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의대교수가 얘기하는 운이란 자신의 약점 (낮은 영어 구사능력)을 직업적 성공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인데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 말하는 운은 그 의대 교수가 소위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자라온 환경, 교육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걸 말씀하시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 운은 의대 교수가 스스로 말한 결과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과정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그가 의대 교수인 걸 알고 바뀐 것은 그 사람이 „의대 교수“라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직업을 현재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상태) 그 사람에게 작용한 운을 인지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형외과 의사의 예는 오히려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이론에 반박 내지 보완하는 예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주장처럼 운을 적용한 대학 입학 시스템을 정착시킨다면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가는 것을 능력과 운의 조합으로 인식하겠지만 결국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 난 뒤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사업 성공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통해 얻은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자신을 타인과 물질로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황금만능주의의 폐해로 귀결됩니다.
성적이 다가 아니라는 점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다들 그걸 아는 분위기라구요? 안타깝게도 여전히 사교육 열풍은 존재합니다. 최근 3년간의 한국 사교육 현황을 보면 (2017년 부터 2019년까지) 오히려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요. (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697)
아래에서 두 번째 문단 경험과 목도한 사람과 이론으로 접근한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 저 역시 크게 공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계에 사회 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미혼모도, 30대 여성도, 일용직 노동자도, 기간직 근무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도 스스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한국의 여러 모습을 반영하는 풍부한 의견이 수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한국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존에 존재하는 많은 차별과 부조리함이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계기로 양지로 나왔다는 장점은 있지만 실생활을 보면 그리하여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을 돕거나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용하게 되었다기보다 각자 살기 더 바빠져 자신의 상황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다움은어디서올까요? „패자인데 패자라고 말하지 않는 자들도 님이 표현한 군중이라고 생각했네요“
: 이 분들은 패자인거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스스로를 패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요. 제가 생각한 앞서 말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말로 그 두 부류에 분류하지 않는 혹은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를테면 어느 정도의 성공도 했지만 패자로서의 씁쓸함도 느끼며 살아와서 굳이 분류하자면 중립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요.
„표면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보이지만 지켜보는 사람들도 각자 삶에서 피해자였을 수도 가해자였을수도 가해자였지만 피해자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일수도 피해자였지만 가해자 편에 선 사람일수도 있는 군중이요. “
: 갑자기 왜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이 나뉘는 거죠? 논의는 신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승자와 패자에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피해자로서의 승자도, 가해자로서의 패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예는 마이클 샌더슨 교수님이 말씀하신 „상처받은 승자“로 표현될 수 있죠.
자존감과 자존심, 그리고 자신감의 차이에 대해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해본 결과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 자존감: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여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
• 자존심: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 자신감: 자신이 있다는 느낌.
따라서 제가 앞서 말씀드린 저의 자존감 정의 (나의 삶에서 이뤄낸 성취를 바탕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자존감은 외부의 인정과 시선에서 자유롭습니다.) 는 뒷받침 되네요. 님이 말씀하신 자존감 부분을 읽어보면 타인의 인정보다 본인이 들인 노력과 시간, 인내에 많은 가치를 부여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타인의 인정과의 비교가 들어가있습니다. 즉, 외부의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죠. 따라서 님이 말씀하신 설명은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교육비 증가 통계 자료는 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아직 그걸 아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근거였구요. 어쩌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가 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Q: „최상위층이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밑에 애들은 그냥 돈 버리고 있다고 저 통계가 말해주고 있는데 사교육 시장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가 뭘까요? “
A: „세상이 지식만으로 모든게 결정되는게 아니니깐요. 이제 그걸 다들 아는 분위기고.“
말이 안되죠? 님이 하신 말씀 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님이 말씀해주신 정보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수입원을 잃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긍정적 변화인가요? 사회문제들을 바퀴벌레로 표현하신 것 같은데 문제는 기득권층의 집에는 바퀴벌레가 안 살아서 그들은 모른다는 거겠죠. 아니면 이 사실을 알더라도 바퀴벌레는 어차피 하층민들의 주거 문제니까 ,내 알 바 아니다´ 라는 태도를 취하거나요. 같은 뉴스보도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고 반응을 보이기에 그런 경각심을 느꼈다면 좋았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테지요. 이번 위기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돕고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내고 힘을 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님의 상황도 점차 나아지길 바라겠습니다.
우리나라하고 똑같네요 조선이 이런방송을 하다니 좀, 놀랐음 자격이 없는데
마이클 샌델님도 아직 김누리 교수님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네요...
엘리트들이 겸손해지라는거는 아직도 엘리트 주의를 동의하는거잖아요.
엘리트들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자체에 오류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자각하고 우리의 권리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해요...정치인들이 성추행을 한다는 둥...그래서 그사람 감옥에 넣는거보다 그럴 일이 일어날수 없는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처벌은 본질을 흐립니다...
혹은 이 영상 자막으로 다른 채널에 올라온 거는 없나요? 아..
네 녹화당시에는 동시통역을 했던 거 같은데 통역분 음성 빼고 자막넣어주시면 안될까요? 동시통역을 집중해서 들으려니까 계속 끈기는 호흡에 내용집중이 어렵네요 ㅠㅠ 좋은 인터뷰 꼭 자막 부탁드릴게요~
광고가 너무많이붙었네요
감상하실 때 불편이 없으시도록 광고를 최소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Utube가 비영리자선단체인줄아쇼?
조선일보 조선미디어.... 램지어 교수얘기는 절대 안하지.... 서울대 교수들 뭐하냐? 조국때는 무슨 나라 망할꺼 처럼 시국선언하던데 왜 조용함?
마이클 샌델의 한계 : 하버드 대학의 기부금 입학 제도에 대한 고찰이 없고, 기부금 입학생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금수저처럼 인기있음에 대한 고려를 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