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의 수도원" by 스탕달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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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10 вер 2024

КОМЕНТАРІ • 13

  • @pick_literature
    @pick_literature  2 роки тому +6

    구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pick_literature
    @pick_literature  2 роки тому +5

    다음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입니다.

  • @user-li5jg9jf9q
    @user-li5jg9jf9q 26 днів тому +1

    오 너무나 좋은 감상평 감사 드립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 @the.feast.of.insignificance
    @the.feast.of.insignificance 2 роки тому +3

    안녕하세요. 문학줍줍님. 이제 한낮은 햇살이 따갑지만 높고 푸른 하늘과 불어오는 바람이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하는 한주네요. 추석연휴에도 어김없이 영상 올리시는 줍줍님 덕분에 저도 덩달아 책 2권을 완독하는 대단한 수확을 거두었네요~ㅎㅎㅎ
    지난주에 예고해주신 스탕달 ‘파르마의 수도원’ 역시 말로만 들었던, 그 유명하면서도 곰팡내난다는 편견이 있어서 전혀 읽고 싶지 않았던 스탕달의 첫 작품을 ‘적과 흑’이 아닌 숨겨진 명작으로 읽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파렴치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벨아미’같은 인물은 읽는 것조차 고역입니다. ‘파르마의 수도원’의 주인공 파브리스, 산세베리아 공작부인, 모스카 백작, 클렐리아 개인이 처한 환경과 인간의 본성 때문에 모두 완벽할 순 없지만 주변에 이런 캐릭터가 있다면 관계맺고 싶은 적당히 도덕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들입니다. 스탕달 만년의 걸작이라는 평에 맞게 인생에 대한 연륜이 배어나고 전체적으로 따스한 관점이 감싸고 있습니다.
    줍줍님의 감상평1 권력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전제군주정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귀족제도(지나(피에트라네아)의 파브리스에 대한 헌신을 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평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특권권력을 지닌 귀족들이 얼마나 비정해질 수 있는지의 문제점을 잘 드러냄
    -네 이점 깊이 공감합니다.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불합리고 공정치 못한 일들을 많이 경험하는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오늘날은 상상도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줍줍님의 감상평2 파브리스의 삶
    주체적이지 못하고 고모에 의해 좌우되는 파브리스, 지나, 클렐리아 모두 나폴레옹의 몰락이후 공허감을 느꼈던 스탕달의 마음을 반영한 인물들이다.(저는 아직 ‘적과 흑’을 읽어보지 못해서 줄거리만 봐서는 주인공 줄리앙 소렐을 권력과 부를 이루기 위해 어떤 행동도 서슴치 않는 벨아미와 같은 인물과 같은 선상에 두고 비호감이 커서 ‘적과 흑’도 거부감이 들었는데 다른 시각으로 보면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로 그려지고 줍줍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갑자기 읽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줍줍님의 감상평3 사랑에도 격이 있다.
    사랑의 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랑을 멈출 때를 아는 것, 즉 사랑의 절제가 있느냐의 유무이다.(저는 파브리스에 대한 지나의 헌신, 파브리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시는 파브리스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한 클렐리아의 맹신적인 사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줍줍님의 감상평을 듣고 보니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에 있어서 절제가 격을 결정한다는 줍줍님의 감상평을 사랑에 대해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파브리스’는 귀족의 둘째 아들로 귀족이라는 칭호 빼고는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스스로 자수성가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17살에 유럽전역을 휩쓴 나폴레옹을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하나로 전쟁터에 찾아간 모습에서 철딱서니 없는 모습에 기가 찼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영웅에 대한 동경으로 목숨과 고생을 무릎 쓰고 원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열정은 인생에 있어서 한번쯤은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브리스는 특유의 매력적인 외모(처음 보는 매점 여인, 다쳤을 때 치료해준 프랑스 자매, 파브리스를 사랑하는 고모 피아트레네아 등등)와 순박한 성품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전쟁터에 뛰어들고도 무사히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옵니다. 무일푼 파브리스가 프랑스에 갈 수 있었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고모 피에트라네아 덕분이었는데 이 여인은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한 나라를 휘두를법한 정치능력, 처세, 인간에 대한 심리파악, 도덕적 품성을 사랑하는 인격,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로 본인이 원했다면 부와 권력을 가진 구혼자와 결혼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자신처럼 신념 있고 강직한 첫 번째 군인남편과 사별하고 얼마 안되는 남편의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다가 파브리스의 아버지 오빠에게 의탁하며 살던 중 우연히 오페라 극장에서 알게 된 모스카 백작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모스카 백작은 젊은 시절에 전쟁터에서 충성을 다하며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지만 정작 전쟁이 끝나자 헌신적인 자신의 보답에 대한 것은 얼마 안 되는 연금뿐임을 알고 파르마 공국에서 일하면서 뛰어난 지략과 대공의 치부를 감싸면서도 체면을 지켜주는 융통성을 지난, 명석함을 인정받아 가장 높은 권력을 휘두를 위치에 서게 됩니다. 모스카 백작은 현재 위치에 비해 재산도 빈약하고 대공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자신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피아트라네아가 나이많고 돈많은 산세베리나 공작과 작위를 원하는 정략결혼을 통해 화려한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면서 나중에 자신과 결혼하는 방법을 제안하는데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피아트라네아는 산세베리아 공작부인으로서 화려한 궁정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고모와 모스카 백작의 후원덕분에 파브리스는 신학공부를 하면서 대주교의 자리에 오를 준비를 합니다. 그러던 중 파브리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진정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열병에 빠지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에 고통을 느끼며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생각한 여배우 마리에타와 밀당놀이?를 하다가 마리에타의 연인 질레타의 질투를 사게 되고 공격을 받다가 방어하던 중 질레타를 죽이게 됩니다. 이 사건을 이용하여 파르마 대국에서 모스타 공작과 산세베리아 공작부인과 반대세력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위해 파브리스에게 누명을 씌워서 사형에 처하려고 하고 산세베리아 공작부인이 파르마 대공이 자신의 미모에 반해있는 점을 이용하여 파브리스를 풀려나려하게 하지만 대공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파브리스는 20년동안 독살의 위협에 시달리며 성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이 감옥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자신의 도피 시절에 만났던 아름다운 소녀 클렐리아와 재회하여 사랑에 빠져 수감생활을 축복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죽는 날까지 고난에 부딪히게 되는데......
    간만에 2권짜리 시대극을 읽으면서 캐릭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고통도 겪지만 생의 기쁨도 누립니다. 잘생긴 외모와 권력을 지녀 얼마든지 화려한 연애생활을 벌일 수 있는 파브리스가 클렐리아에게 바치는 지고지순한 사랑, 또 파브리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파브리스를 살리기 위해 신과 약속했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죽는 날까지 파브리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클렐리아(무신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어이없는 맹세입니다. 윌리엄 그린 그레엄의 ‘사랑의 종말’에도 여주인공이 같은 행동을 하는데 그 때도 이 시대에 이해할 수 없는 바보같은 자기학대라고 생각했지만 종교가 절대적이었던 당시 이탈리아 상황이라면 조금 수긍이 갈지도 모르겠네요) 산세베리아 공작부인의 파브리스에 대한 사랑은 댓가를 바라지 않고 보답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사랑이지만 파브리스가 죽는 날까지 그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파브리스가 죽자 공작부인도 그 뒤를 따릅니다. 또 이런 산세베리아 공작부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공작부인을 위해 몸 바친 모스카 백작. 스탕달은 사랑의 위대함을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파브리스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답답하고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정서가 지루한 부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이탈리아 귀족사회의 모습과 호감있는 인물들이 펼쳐가는 사랑이야기는 일주일동안 800페이지에 다르는 2권의 분량을 독파하게 하는 매력이 더 큰 작품이었습니다. 줍줍님께서 연애와 정치면에서 극에 달한 스탕달의 필력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줍줍님의 감상평은 항상 작품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는 자극이 되어서 얻는 바가 많습니다. 덕분에 스탕달과 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 소개해주실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기대해 봅니다.(줍줍님께서는 한주도 쉬지 않고 달려오셨는데 괜찮으신가요? 휴식을 좀 가지셔도 될 듯 합니다. 즐겁고 건강한 한가위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 @pick_literature
      @pick_literature  2 роки тому +2

      안녕하세요. 무의미의 축제님 ㅎㅎ 오늘도 즐겁게 같이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적과흑을 아직 안읽어보셨다면 꼭 추천드리는 작품입니다. 쥴리앙 소렐이라는 인물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무의미의 축제님 같은 구독자 분들 덕분에 즐겁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user-pj7le9oe1o
    @user-pj7le9oe1o 2 роки тому +3

    스탕달의 작품엔 '신분상승' 코드가 짙게 베어 나오는 느낌이 강한데요, 이 파르마의 수도원 작품도 그렇군요^^ 리뷰 도중에 "당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어서 역사적 가치도 충분한 소설"이란 평을 주목한다면 '나폴레옹의 흥망'을 바라보는 즉 나폴레옹을,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 입장에서, 알레고리 기법으로 풍자한 소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백치아다다의 실제 모델은 고종"이란 평을 한 평론가가 백치아다다 출간 당시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맥락으로 보면 파브리스는 나폴레옹을 알레고리기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당시 프랑스는 계급체계가 왕 다음 성직자이고, 그 다음이 귀족, 나머지가 제3계급이었고 스탕달 집안은 제3계급(아버지는 변호사)이었기에, 코르시카섬 촌뜨기 출신이던 나폴레옹보다는 출신 성분이 나았음에도 프랑스대혁명 이후 격동치던 시절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어 전유럽을 호령했는데 스탕달 자신은 나폴레옹군대의 하급군인(중사)으로 따라다니다 '마지막 꼬락서니가 이게 뭐야?' 하는 인생무상을, '수도원 사제라도 한 자리 챙길 걸' 싶은 내심을 토로하는 작가 자신의 넋두리성 작품으로도 읽히네요^^
    하버드대 한국학(조선 성리학) 전공 교수가 운영하는 '우물 밖 개구리'란 유튜브에는 기상천외한 시각으로 '한국 고전'을 분석해 주는 강의가 많이 올라 있는데, 그 교수님의 강의 내용 중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은 '저항문학'이란 평이 있는데 대단히 날카로운 분석으로 이해했습니다.
    저는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심청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절'이란 말이 '(모례)털네'에서 유래했다더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본어로 절을 의미하는 '데라'가 이집트에선 '신전'이란 뜻이고 지금도 남아있는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이 지었다는 세계유화유산 신전 '덴데라'는 아름답기 그지 없다고 합니다.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었고 유튜브에도 많이 소개되었지요.
    불교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고, 페르시아를 세운 키루스 대제의 아들 캄비세스2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정복했고, 알렉산더 사후 제국이 분열되고 알렉산더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프톨레마이우스가 이집트를 차지해 로마에 망할 때까지 그 가문이 약300년간 이집트를 다스렸으니 마지막 파라오가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이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클레오파트라7세는 '자살하지 않고, 자살을 위장해 증거를 인멸한 후 동방으로 탈출ㅡ했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그 당시 이집트 종교는 천신(태양신) 신앙이었고, '덴데라'는 글자그대로 '천신전'이란 뜻이거든요. '덴'은 '하늘 천' 자의 중앙아시아 발음이구요. 물론 일본어 발음도 되지만요^^ '티그리스강'은 현지 발음으론 '덴그리강'이라더군요^^ 클레오파트라 7세는, 당시 이집트와 교역을 하던 모든 나라들의 언어들 즉 최소 9개에서 최대 20개국 언어를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로 뛰어난 언어 실력을 갖췄다더군요.
    클레오파트라 7세는, 페르시아만을 이용해 탈출에 성공했고~ 도중에 인도 쪽에서 터를 잡고 재기를 도모하다가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거든요^^
    '심청전'은 고대의 불법적인 인신공양 관습을 덮기 위한 스토리텔링으로 볼 여지도 있고, 한반도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 이전, 비공식적으로 중국 상인들을 통해 들어왔을 개연성도 높다고 보는데요, 암암리에 들어와 포교하던 모습을 '화석' 처럼 들여다볼 수가 있는 자료로서, 심청전의 역사적 사료 가치가 크다고도 봅니다ㆍ 중국 후한말기 즉 위. 촉. 오 삼국지의 무대이던 시절 중국에 공식 전래된 불교는 상인 세력들을 통해 포교를 해가던 중 그 포교방식도 상인들의 비지니스 방식을 썼을 것으로 추측합니다ㆍ
    불교공동체라는 뜻의 '승단'의 원 이름이 '상단'이었고, 운영 방식도 당대 상단운영 방식을 따랐기에 그런 추정이 가능한 거죠ㆍ 불교가 (해양) 상업세력과 손잡고 포교를 해왔다는 건 정설이니까요.
    서기 300년 무렵 당시 중국은 위. 촉. 오 삼국지 시대가 사마의 후손들에 의해 통일된 전후였고, 특히 손권의 오나라 세력 일부는 한반도로 망명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ㆍ '역사적 상상력'으로 간극을 매워 본다면, 중국 무역 상단들은 해외에도 요즘 차이나타운처럼 전라남도 곡성이든 전라북도 변산 위도이든 그들이 머무는 장소에 연락사무소 같은 것을 설치했을 것이고ㅡ 요즘 해외 지사와 유사 ㅡ아울러 종교시설도 갖췄을 것입니다ㆍ
    신라 시대 장보고가 중국 산동반도에 법화원을 설치하고 예배 등 종교의식도 하고 항해의 무사를 빌기도 했었으니까요ㆍ
    그러다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현지인(곡성ㆍ위도ㆍ백령도 등등)도 신도가 되기도 하고, 승려가 되기도 했겠지요ㆍ 아마도 주로 현지인 출신 승려는 간헐적인 중국 상인이 와서 보태주는 시주만으론 생계나 불사에 턱없이 모자랐을 테고, 점사ㆍ치병ㆍ천도제 등을 해주고 시주를 받는 통상적인 활동 이외에 출항시 바다에 해오던 인신공양 등 돈되는 일에도 관여했을 테고요^^
    '절'이란 말의 어원이, 전라도 영암이라던가, 비밀리에 숨어서 포교하던 중국승려가 나중에 백제 공주 병을 낫게 해주고나서 공인을 받자 "어디 사느냐?" 니까, "털례(모례)"라 어눌한 발음으로 "털례 집에 있다"는 뜻으로 대답한 데서 '털'이 '절'이 되었다고 초등학교 시절 때 배운 적도 있구요. 이게 일본에 건너가 일본어로 절을 '데라"라는데 데라와 털이 음운법칙상 그리고 뜻이 동일하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심청전은 인신공양을 해서라도 '신분상승'을 염원했던 시대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봅니다.
    스탕달의 '적과 흑' 속의 주인공으로 표현된 '신분상승' 코드로 심청전을 들여다보는 것도 꽤 의미있을 듯 싶습니다.
    한반도에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에 중국 상단을 통해 숨어든 중국 승려가 왕족ㆍ귀족일 리도 없고, 유럽 중세 시대에도 평민이 지배계급으로 '신분상승'할 유일한 길이 사실상 성직자(사제ㆍ신부)가 되는 거였듯이(동양의 경우는 '환관'이 서민의 출세 방법이기도 했던 식으로), 심청은 죽어서 왕비가 되는 설정으로 신분상승 염원을 이용하여 주지는 절 지어 '주지'되고 또 그 공덕으로 극락왕생하고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는 눈 떠서 좋고 중국 상인들은 장사 잘 되고 무사 출항을 빌어주는 곳이 생겨 좋고 1석4조의 효과가 있었다는 사이비종교 교리로, (그 당시도 불법이었던) 인신공양을 '신분상승' 코드로 전환시킨 절묘한 설정이 '심청전'이라 볼 여지도 있다는 게 제 추정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리뷰를 들으면서, "요즘 20, 30 청년들이 '진즉에 비트코인이라도 사둘 걸' 후회하고 있다"는 기사처럼, 스탕달도 나폴레옹이 설칠 때 똘만이 하느라 허송세월하지 말고, 잘 나가는 과부(예로, 클렐리아 같은 과부?)라도 하나 어찌 해서 사제직이라도 하나 챙겨놓을 걸 후회하면서, 아마도 이 작품을 쓰던 당시 프랑스 대다수 시민들의 그러한 냉소적인 심정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펼쳐보인 작품이란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리뷰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풍성한 추석 잘 보내십시요😅

  • @sunnyday563
    @sunnyday563 2 роки тому +2

    매번 감사합니다

  • @lomica
    @lomica 10 місяців тому +1

    재밋네여

    • @pick_literature
      @pick_literature  10 місяців тому

      소설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ㅎㅎ

  • @JHSEO120
    @JHSEO120 Рік тому

    이 소설 읽으며, 소설이라 천주교 사제들의 타락한 삶이 부각되었나 생각했어요. 천주교 사제들의 연이은 아동 성폭력에 이어 최근 비행기 추락위해 기도하는 사제들 보며, 천주교를 더 경멸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