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하소서" 하늘이시여.. 이순신장군님을 도우셨던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바라옵건대 이 땅의 매국노,기회주의자,뉴라이트,일베,적폐..사이비..악귀들을 전부 박멸할 수 있게 아둔한 한국인들의 마음과 정신을 일깨워주소서..🙏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재미있는 건 이순신 장군님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건 선조라는 게 아이러니 하죠. 이순신 장군님이 소위 정도 계급에서 3개월 만에 6계급 특진하여 원스타 투스타 수준이 될 수 있었던 건 선조가 능력 있는 장수들에게 파격 인사를 단행한 덕분이죠. 원래 바로 소위에서 장성으로 만들려다 하도 전례 들먹거리니 그럼 2계급 특진은 있었으니 한달에 한 번씩 2계끕 특진시켜 전라 좌수사 만들어 버렸죠.ㅋㅋㅋ 그리고 조선은 전쟁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었음. 공적을 많이 쌓은 장수들을 뽑아서 진급시켜 남해에 배치 시켰는데 대표적 인사가 이순신 장군님 그리고 정선 장군과 원균이 있음. 그리고 조선은 충분히 일본을 막을 수 있는 전력과 전략도 있었지만 ㅋㅋㅋ 그걸 전부 무위로 돌려 버린 놈이 원균이라는 것도 아이러니 하죠. 원균이 정선 장군이 벌어준 시간과 정보를 가지고 부산성을 지키면서 판옥선을 전부 끌고 해안 보급로를 차단했으면 임진왜란이 아니라 임진년에 왜구들 11만 처들어왔다 다 디짐.이라 기록되었을 걸요. ㅋ
장군님 나레이션과 슬로모션이 좀 지루했지만 이순신 영화중에 제일 재밌고 볼거리가 많았어요 CG가 날이 갈수록 발전 하니 영상이 더 웅장해 질 수 밖에~~ 그리고 전투씬도 더 풍부해진거 같고 일본군사 따라 가는 앵글 폼 미쳤다리~~ 일본어 억양이 한국어 억양이라 넘 어색해서 거슬린건 아쉽... 마지막에 장군님 북치는데 소름 돋고 가슴속에서 뜨근한것이 올라오는데 자꾸 보다보니... 완전 타격폼 그잡채 ㅋㅋ 진정한 조선의 4번 타자 아니였나욬ㅋㅋㅋ 장군님 죽고 아들이 치다가 다른 조선군으로 교체 되는데 금마는 좌타자얔ㅋㅋㅋ 조선의 3번 타자 인가욬ㅋㅋㅋ 이브날에 시먕 영화 보고 뽕 차올라서 유튜브 노량 다 보고 있네요 영화 보고 나오니 눈 오더라구요 모두들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명량은 배설이 남긴 12척의 판옥선과 이억기 장군 전사 후 그 후임으로 온 김억추의 1척을 추가한 13척으로 적과 대치했으나, 김억추는 겁을 먹고 두 마장 정도 뒤쳐져 있었다 하니... 백성들의 향선과 참으로 어려운 전투를 치룬 셈이지요. 과히 장군의 말씀처럼 천행 이라 할 만 합니다.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을실겁니다.
임진왜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있죠. 예를들어 조선은 오랜 기간에 걸친 평화 때문에 전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라거나 일본이 처들어올 줄 몰라 손 놓고 있었다거나 하는 등등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 조선은 일본의 통일 전쟁이 끝나면 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지 병력이 남아도는 군벌들이 조선으로 공격해 온다던지 등등 어떻게든 조선에 영향이 올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음. 때문에 통일이 되기 전부터 전쟁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었음. 선조 저놈이 전쟁이 터지고 원균 이 ㅆㄺ 때문에 전략이고 병력이고 다 무너지면서 도망치며 명나라까지 튀려는 모자란 모습과 시기심 많은 못난 부분을 보여주며 평가가 박한 왕중 하나인데 평시의 정치는 잘하는 왕이긴 했음. 때문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조선팔도에서 공훈을 올린 능력 있는 장수들을 특급 승진을 통해 남해안에 배치했고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근데 왜 졌냐고요? 원균 때문에요. 이순신 장군님과 마찬가지로 선조가 뽑아 올린 능력 있는 장수 중 한 명이었던 정선 장군이 가장 처음 일본군을 맞이하였꼬 500명의 병사로 11만의 발을 하루 동안 묶어 놓는 기염을 토했음. 그리고 막아내면서 하루를 벌어다 주었고 본진인 부산에 일본이 침략 했음을 보고했죠. 문제는 이 파발을 받은 게 바로 원균이었다는 거죠. 원래대로라면 부산에 있는 2만이 넘어가는 병력으로 부산의 방어에 들어가고 판옥선을 전부 출정시켜 1. 해안에 상륙한 일본 군선들을 전부 격침 시키고 2. 해안 보급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펼쳤어야 했음. 하지만 원균이 한 건 11만이라는 군세에 지례 겁을 먹고 판옥서 240척과 2만이 넘어가는 수군과 정병들이 칼질도 하지 않고 도망치게 만들었으며 조정에 일본군 침략 사실을 알리지도 않음. 파벌 + 봉화 아무것도 안 했죠. 때문에 조정은 일본군 침략 3일 후 중간에 있던 성에서 올린 보고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것도 정확한 정보가 아닌 짜집기 되어진 정보라 조선이 일본군 규모와 상태를 정규군이 아닌 왜구로 생각하고 신립 장군이 맞받아치게 함. 근데 이 판단은 상대가 해적이었다면 아주 적절한 판단이었음. 그 당시 왜구들 평균 무장 상태로는 절대 조선 정규군을 이기지 못 하는 수준이었고 2배 4배 차이가 나더라도 완전 무장한 병사들이 일반 양민들을 학살하는 수준 차이였으니까요. 근데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맞이한 건 일본 정규군이었고 그 전날 있었던 기습 폭우 때문에 활과 화약을 다 잃은 신립에게 남은 건 기마 돌격 뿐이었음. 결과는 신립이라는 당대 최강의 장수를 개전 초기 사망했죠. 거기다 원래는 예비군처럼 적은 예산으로 위기 때 많은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조선의 병력 운용 전술은 원균 하나 때문에 모든 기반이 무너지며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림. 만약 신립 장군이 적의 병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탄금대가 아니라 수도로 올라오기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할 성에서 맞이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일본군 참사로 이어졌을 겁니다. 신립이 데리고 전멸한 정예병 8000명이면 성에 틀어 박히면 한달이고 두 달이고 물자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버티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애초에 조선은 자신보다 많은 병력을 상정하고 무기고 병력이고 전술이고 준비되어 있던거라 문제없었음. 대표적 예시로 진주성 전투가 있죠. 13만대 관군 500 +의병 1500명이 2주 동안 물자도 제대로 없는 상태로 버틴 사례 등을 볼 때 말 그대로 조선군의 수성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줌 요약하면 원균만 아니었다면 이순신 장군님이 나설 필요도 없이 일본은 몇 만이 조선땅을 밟았던지 싹다 갈려 나갔을 거라는 거죠. 참고로 임진왜란의 피해 70%가 나온 정유재란도 원균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2:12
고니시 유키나가: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전즉전의 부전즉가도)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길을 비켜달라.
송상현:
戰死易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고니시 유키가와가 저말듣고 감명받아서 전투에서 전사한
송상현 장군의 시신을 그의 고향으로 보내주었다는건 유명한 이야기죠...
고려거란전쟁도 글쿠 노량도 감동적🙏나라 지켜주신 선조님들 고맙습니다
이미 영화 본 사람 개추….
개추😅
역사를 영화로 배우네;;
포토카드까지 삼…
@@꽃한다발-l2v이런 댓글들 도대체 왜 다는건지 이해가 안감 그럼 역사영화는 다 보지 말라는거임?
쿠키영상 뭐나왔나요? 못봐서.. ㅠㅠ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하소서"
하늘이시여..
이순신장군님을 도우셨던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바라옵건대
이 땅의 매국노,기회주의자,뉴라이트,일베,적폐..사이비..악귀들을 전부 박멸할 수 있게 아둔한 한국인들의 마음과 정신을 일깨워주소서..🙏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HotSoil510그래서~
뭐~어쩌라구우~~~
여기저기 복붙해서 이순신장군 이미지까내려서 뭐,무슨 득을 보려고~~
장군님땜에 뭐 손해봤니?
미투하냐??
@@Go-jx8jj 조선은 노예제사회였음....임란당시 조선시절 최고의 노비 전성기였음... 왜병의 태반이 조선사람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임....지금 처럼 우리나라 개념이 없던 중세의 전쟁을 현대인이 미화하는 것은 정신병임. 정신병.
나라 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나신 이순신...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재미있는 건 이순신 장군님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건 선조라는 게 아이러니 하죠.
이순신 장군님이 소위 정도 계급에서 3개월 만에 6계급 특진하여 원스타 투스타 수준이 될 수 있었던 건 선조가 능력 있는 장수들에게 파격 인사를 단행한 덕분이죠. 원래 바로 소위에서 장성으로 만들려다 하도 전례 들먹거리니 그럼 2계급 특진은 있었으니 한달에 한 번씩 2계끕 특진시켜 전라 좌수사 만들어 버렸죠.ㅋㅋㅋ
그리고 조선은 전쟁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었음.
공적을 많이 쌓은 장수들을 뽑아서 진급시켜 남해에 배치 시켰는데 대표적 인사가 이순신 장군님 그리고 정선 장군과 원균이 있음.
그리고 조선은 충분히 일본을 막을 수 있는 전력과 전략도 있었지만 ㅋㅋㅋ 그걸 전부 무위로 돌려 버린 놈이 원균이라는 것도 아이러니 하죠.
원균이 정선 장군이 벌어준 시간과 정보를 가지고 부산성을 지키면서 판옥선을 전부 끌고 해안 보급로를 차단했으면 임진왜란이 아니라 임진년에 왜구들 11만 처들어왔다 다 디짐.이라 기록되었을 걸요. ㅋ
으아아 또 보러가야지
1천원이황
5천원 이이
1만원 세종대왕
5만원 신사임당
보다 뛰어난 성웅이 고작 100원짜리라는게 너무안타깝네요
100원짜리는 집에 두고 잘 안갖고다니니까요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님은 몇 백 년이 흘러서도 전국민의 집안에 전국민의 보금자리에 존재합니다
이순신장군님 아니었으면 지금의 전국민의 보금자리가 한국이 아니었을지도..
화폐만든 순서도.. 생각해봐야지.. 백원을 먼저 만들고 유통활발이 어땟는지
모두가 훌륭하긴 하지만~ 세종대왕,이순신의 업적은 5만원권이다~
이제 동전은 거의 사라지는게 세계트랜드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동전생산량도 줄이고 평소에 쓸일도 거의없어졌는데 오롯이 화폐의 가치로 판단했을때 이순신장군님이 5만원권에 들어가는게 타당합니다. 바꿔야합니다.
2:50경에 나오는 어진은 광해군이 아니라 정조의 어진입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한게 아니였구나
정조 아니신가..? 했는데 역시네요 ㅎㅎ
정정 감사합니다!
오늘 영화보고왔는데 역사에 무지한지라 자세한내용은 잘 이해못한 부분도 많았는데 이해가 쏙쏙되네요 감사합니다☺️
진짜 칠천량에서 이순신장군이 키워온 최정예수군과 장수들이 전멸만 안당했어도... 진짜 전쟁판도가 바뀌었을텐데...
맞아요 어쩌면 더 쉽게 이겼을수도 있죠
이순신이죽지않고 끝낱을수도요
ㄴㄴ 선조 ㅅㄲ는 무능한 놈이여서 누명 씌웠을수도
그래서 원균이 제일 혐오스러워요..
정말 알기 쉽게 잘 설명해 놓으셨네요, 구독!
10:17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이자
조선, 일본 둘다 막대한 피해가 났던 해전...
이건 그냥보는거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오늘 영화 보는데 아주 조아영~
조상세대 중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경신대기근까지 원삿에 다 겪은 인물도 있음
이순신장군 만세~~~
영상 초반에 명나라 영역은 잘못된거 같네요. 당시 만주 지역은 여진족들 영역이었지 한족들은 진출하지 못한걸로 압니다.
역사는 늘 재밌습니다❤
장군님 나레이션과 슬로모션이 좀 지루했지만 이순신 영화중에 제일 재밌고 볼거리가 많았어요
CG가 날이 갈수록 발전 하니 영상이 더 웅장해 질 수 밖에~~
그리고 전투씬도 더 풍부해진거 같고 일본군사 따라 가는 앵글 폼 미쳤다리~~
일본어 억양이 한국어 억양이라 넘 어색해서 거슬린건 아쉽...
마지막에 장군님 북치는데 소름 돋고 가슴속에서 뜨근한것이 올라오는데 자꾸 보다보니...
완전 타격폼 그잡채 ㅋㅋ 진정한 조선의 4번 타자 아니였나욬ㅋㅋㅋ
장군님 죽고 아들이 치다가 다른 조선군으로 교체 되는데 금마는 좌타자얔ㅋㅋㅋ 조선의 3번 타자 인가욬ㅋㅋㅋ
이브날에 시먕 영화 보고 뽕 차올라서 유튜브 노량 다 보고 있네요
영화 보고 나오니 눈 오더라구요 모두들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11:39 이거 진짜 많이하는 실수죠;; 적에게 알리지마라가 아닙니다;; 싸움이 한창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말라 입니다 어느 바보가 우리 대장죽었다고 적에게 떠들고 다니나요;;
내일 보러 갑니다!!
다음주에 성웅 뵈로 갑니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가 아닌데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말라 즉 아군의 사기 저하를 염려하여 말한건데 적에게 사령관의 죽음을 왜알림;;
ㄹㅇ 나도 그 부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함
💖💖Yi Sun Shin forever💖💖
3월 9일 [양력 4월 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9월 19일 [양력 11월 8일]
바 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봉해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와 잤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
바 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 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 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 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女眞)과 세 번 관계했다. 여진(女眞)이 아파 울었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箭竹)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 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들은 하루 종일 같이 놀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맑 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李廷忠)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 해, 면, 울(蔚) 및 수원(壽元)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金渾)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와 은진(恩津) 네 명과 잤다.
고려거란전쟁도 해주세요!!
영화보다 더 재미있게 풀시청
했습니다^^♡
노량은 좀 밋밋하다고 해야할까?
기대만큼 그닥~~ㅠ
궁금소님 병자호란편도 해주세요
방금 영화 보고 왔는데 웅장하다 둥~ 둥~ 둥~
노량 봤는데 기가막임 그냥보고 느껴봐 무슨 느낌인지
안녕하세요! 따뜻한 감성으로 책읽어주는 남자 '이나읊' 입니다! 🙏
8:47 조선수군이 워낙에 공포에 벌벌떨고있어서 섣불리 대장선을 따르지못하자 대장선혼자 막아내고있었음;;
대장선 혼자막아내면서 할수있다는것을 보여주니 그떄부터 스멀스멀 올라와서 같이 싸우기 시작함 이건 13척이 아니라 대장선 1척이 선전한거라볼수있음
잼냔다 내일 보러가야지 ㅋㅋ
이순신 장군님.다시 태어나주세요 ㅠㅠ
21승무패
최고의 해군제독
8:36
정확히는
"아직 신에게는 열 두척의 배가 남았으니
이보다 더한 조건이 있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11:39
정확히는
"아군에게 내 죽음을 알리면 사기가 떨어질것이고 그에 적도 알게될 터이니
내 죽음은 없는것과 같다"
라고했습니다.
구국영웅 이순신 장군님
8:59 다른곳에선 330척이라 나와서 많이들 혼란을겪는데 실전투배 133척이고 일본군 후방에 약200척이 있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궁금소님!! 혹시 911 테러도 다뤄주실수있나요? 영상 잘보고있어요!!
에유 ㅠㅠ이렇게 이순신 장군님이 목숨걸고 지킨 대한민국... 몇 백년 뒤에 처참히 짓밞혀 뺏겨버리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장군님 ..ㅠㅠ
1:17 보면 조선과 달리 이미 유럽과 교류하고 있으며, 1800년대 일본 메이지 유신에 직접적인 영향이 됨
힘있는자가 괴롭히면 돌로 내리쳐라는 교훈이죠
정유재란 발발 전에 일본애들은 무혈으로 자국으로 철수 했었나요?
이순신장군이 안갇혀서 칠천량해전같은 일이 없었다면 제해주도권이 더욱더 강했을테고 이순신장군이 죽을일도 없었을수도 있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드네요.
이순신 장군님 정말 감사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롤모델로 삼는지 알것같네요
와 이순신 장군은 정말 대단한사람이네요
So the Korean won this war or Japanese just withdraw?
Japan withdrew. But when Japan withdrew, they said, "We will come back." But these words ended up becoming a period of Japanese colonial sentiment.
명량때 12척만 남았는데 마지막 노량때까지 몇척이나 회복했는지 아는분 있나요?
일본이 500+500이었지
명량은 배설이 남긴 12척의 판옥선과
이억기 장군 전사 후 그 후임으로 온 김억추의 1척을 추가한 13척으로 적과 대치했으나,
김억추는 겁을 먹고 두 마장 정도 뒤쳐져 있었다 하니...
백성들의 향선과 참으로 어려운 전투를 치룬 셈이지요.
과히 장군의 말씀처럼 천행 이라 할 만 합니다.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을실겁니다.
서울의봄도부탁해요~~
11:41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지 적에게 알리지 말란 얘기는 안했다고 합니다
좀더빨리 읽으면 올림픽에 나가게 해 주겠다.
선조가 이순신장군을 폐위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되었을까요?
영웅을 넘어선 성웅이신 이순신장군에게 오늘 날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습니다.
한국인의 많은 피해가 있었음에도,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정부의 동의하에...
North Korea should recognize him
여기 국민일보 운영 채널인가요?
안녕하세요~ 현직 중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량을 보러 가는데, 사전 교육을 하고자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될까요?~
네 오히려 영광입니다 :)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
굿
아니 이걸 보고 와서 발견하냐ㅠㅠ
한반도는 옛부터 외세의 침략이 많은데도 조상님들의 희생과 지혜로
힘들게 지켜냇는데
저출산과 정치인들 덕분에 없어질 운명에 서있습니다.
백윤식 일어가...좀 어설펐습니다ㅜ
400년후 우리는
호남이 나라를 지켰네요.
저때 고니시 유키나가 가 병력을 많이 손실해서 세키가하라 때 7000명밖에 끌어모으지 못함 ㅋㅋ 거기다 시마즈 통수친거 때문에 돌아와서도 죽을뻔하고
아귀가 전생에 이순신이었나
근데 다른 전투에서는 장군의 죽음을 적에게 알림? 이순신의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거 말이 안 되는 문장 같은데
오늘 보고 왔는데.... 시리즈중에서 최악... 그보다 더 큰 전쟁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유투버 사골 전쟁이죠 !!!
명량이랑 뭔차이임? 대체
이순신 덕에 그후에도 침략을 안했구나
임진왜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있죠.
예를들어 조선은 오랜 기간에 걸친 평화 때문에 전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라거나 일본이 처들어올 줄 몰라 손 놓고 있었다거나 하는 등등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
조선은 일본의 통일 전쟁이 끝나면 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지 병력이 남아도는 군벌들이 조선으로 공격해 온다던지 등등 어떻게든 조선에 영향이 올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음.
때문에 통일이 되기 전부터 전쟁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었음.
선조 저놈이 전쟁이 터지고 원균 이 ㅆㄺ 때문에 전략이고 병력이고 다 무너지면서 도망치며 명나라까지 튀려는 모자란 모습과 시기심 많은 못난 부분을 보여주며 평가가 박한 왕중 하나인데 평시의 정치는 잘하는 왕이긴 했음.
때문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조선팔도에서 공훈을 올린 능력 있는 장수들을 특급 승진을 통해 남해안에 배치했고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근데 왜 졌냐고요?
원균 때문에요.
이순신 장군님과 마찬가지로 선조가 뽑아 올린 능력 있는 장수 중 한 명이었던 정선 장군이 가장 처음 일본군을 맞이하였꼬 500명의 병사로 11만의 발을 하루 동안 묶어 놓는 기염을 토했음.
그리고 막아내면서 하루를 벌어다 주었고 본진인 부산에 일본이 침략 했음을 보고했죠.
문제는 이 파발을 받은 게 바로 원균이었다는 거죠.
원래대로라면 부산에 있는 2만이 넘어가는 병력으로 부산의 방어에 들어가고 판옥선을 전부 출정시켜 1. 해안에 상륙한 일본 군선들을 전부 격침 시키고 2. 해안 보급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펼쳤어야 했음.
하지만 원균이 한 건 11만이라는 군세에 지례 겁을 먹고 판옥서 240척과 2만이 넘어가는 수군과 정병들이 칼질도 하지 않고 도망치게 만들었으며 조정에 일본군 침략 사실을 알리지도 않음.
파벌 + 봉화 아무것도 안 했죠.
때문에 조정은 일본군 침략 3일 후 중간에 있던 성에서 올린 보고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것도 정확한 정보가 아닌 짜집기 되어진 정보라 조선이 일본군 규모와 상태를 정규군이 아닌 왜구로 생각하고 신립 장군이 맞받아치게 함.
근데 이 판단은 상대가 해적이었다면 아주 적절한 판단이었음.
그 당시 왜구들 평균 무장 상태로는 절대 조선 정규군을 이기지 못 하는 수준이었고 2배 4배 차이가 나더라도 완전 무장한 병사들이 일반 양민들을 학살하는 수준 차이였으니까요.
근데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맞이한 건 일본 정규군이었고 그 전날 있었던 기습 폭우 때문에 활과 화약을 다 잃은 신립에게 남은 건 기마 돌격 뿐이었음.
결과는 신립이라는 당대 최강의 장수를 개전 초기 사망했죠.
거기다 원래는 예비군처럼 적은 예산으로 위기 때 많은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조선의 병력 운용 전술은 원균 하나 때문에 모든 기반이 무너지며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림.
만약 신립 장군이 적의 병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탄금대가 아니라 수도로 올라오기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할 성에서 맞이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일본군 참사로 이어졌을 겁니다.
신립이 데리고 전멸한 정예병 8000명이면 성에 틀어 박히면 한달이고 두 달이고 물자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버티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애초에 조선은 자신보다 많은 병력을 상정하고 무기고 병력이고 전술이고 준비되어 있던거라 문제없었음.
대표적 예시로 진주성 전투가 있죠.
13만대 관군 500 +의병 1500명이 2주 동안 물자도 제대로 없는 상태로 버틴 사례 등을 볼 때 말 그대로 조선군의 수성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줌
요약하면 원균만 아니었다면 이순신 장군님이 나설 필요도 없이 일본은 몇 만이 조선땅을 밟았던지 싹다 갈려 나갔을 거라는 거죠.
참고로 임진왜란의 피해 70%가 나온 정유재란도 원균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원균 쓰레기 인정 신립 장군은 명장중에 명장인데 참으로 안타까움
얼마나 우리 조상들이 무능했냐면 500년전 당한 조총에 100년전까지 아무 방비가 없어 결국 나라 말아 먹고 뺏김
아귀 vs 평경장 😅
오타가 왜이리많음 울둘목 야즈하루..
6:22
궁금소님 기본적인 띄어쓰기는 지켜 주시죠....
이순신장군님을 오만원에 넣었어야지. 신사임당따위를
신사임당따위라고?신사임당님도 대단하신 분인데..
조선통신사로 일본으로간 황윤길 김성일의 역활을 적나라하게 파혜처 주시오
선조와 원균은 부관참시
아니 왜 정조 어진을 광해군이라고 하는지...조회수 식충인가? 지킬건 지킵시다...
선조?? 선조가아닌 이연불러야하는인간
왕시호도 아까운놈
내용이 엉성하다
선조는 답없슴
임진왜란 때문에 . 1910년에 일본이 조선 침략 할려고 해도 전쟁은 안할려고 했고 .
문서화로 합병 할려고 했는데 . 실제로 또 문서화로 조선 합병 했지 . 당시도 일본은 조선과
전쟁은 안할려고 했다 . 임진왜란 효과 인거지
이순신장군아니었으면
일저강점기300년일찍왔을겁니다
그리됐으면 우리는 일본인이돼었겠죠
한강이남 4도를 차지하는거만으로도
생명줄이반이나 끓긴거나다름없기 때문에
남대문 동대문도 일본인이 그렇게 불렀다고하네요
숭례문이 맞지 않나요? 정정해주세요
울돌울돌울돌울돌울돌목… 오타가 아닌듯
이순신장군이 살아서 일본을 침공했더라면
그럼 이순신 뒤지겠지.
임진왜란에 참여안한 다이묘도 많은데
당대 최고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참전안함
원래부터 유식했던 이순신 장군은 당시 왜놈들처럼 그리 무식하게 생각은 절대 안했을 듯;;
일본이 av에서 극악무도할만큼 괴상한 연출이 가능한게 예전부터 침략할때 온갖방법으로 강간하고 해대서 가능한거야 진짜 ; 에휴
8:37
캬.......쌌다
영화봤는데 다 좋았고
최고 소름 돋게 좋았던 부분은 첫공격때
일본군 시점에서 쳐맞는 장면이었음 캬
아쉬웠던 부분은 북소리 때문에 시마즈가 머리 쥐어 짜면서 북소리 좀 멈춰라 하면서 피 토하는거 좀 오글거렸음
순간 드래곤볼에서 오반이가 휘파람 부는거 생각남
피토가 아니라 그냥 토한거 보니 배멀미 난듯
피토였으면 그냥 억지긴한데 그냥 토라서 납득감
不有将军在,谁扶国势危。
逆胡驱晨日,妖气卷今时。
大节千人仰,高名万国知。
圣皇求如切,招去岂终辞。
난 진짜 일본에서 재난 일어나면 제발 기부좀 안했으면 좋겠다. 옛날부터 근현대까지 호되게 당해놓고 아직도 정신 못차린건가 싶음.
걍 이 나라에는 몇몇 우두머리 색들만 봐도 대놓고 쪽색들한테 못대줘서 가만 못있는 색들이 너무 많음 진짜 ㅋㅋㅋ
김명민이 이순신1등
7:58
원균:이거 무립니다.
선조:뭔소리야 니가 된다메!!!
원균:....
이후 칠천량해전에 나가기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뿐이라는 개소리를 남기고
행방불명
선조가 레알 쓰렉..
원균한테 못비빔
실망이 큰 영화. 그럴듯한 CG를 빼고는 일본어나 중국어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짜증나는.. 수준이하의 영화였을 겁니다. 한국식의 감정섞인 엉터리 중국어 엉터리 일본어가 계속 이어지고. 이순신 감정도 신파극처럼 억지스럽고 과장되고.. 그렇다고 소름장면도 없었고..
그러고 봉션 ㅇ솔직히 우리나라와 중국은 가까운 사이 였어. . 살짝 재 정립만 하면 일본 보단 낫지 !
얘들아 , 일본 용서하자는 둥 과거는 과거 라는 둥 입에 담지 말자. . 난 절대 일본 용서가 안 된다.
중국에게 얻어터진 역사는 국사책에서 빠졋나보네요?
애초에 한국이라는 국가가 일본이나 중국 식민지가 되었어야했는데...
이 때 선조 잡혀서 조선 멸망하고 일본에 병합되어 내선일체 황국신민이 되었더라면 전쟁도 분단도 없었고 지금 인구2억이상의 세계열강이 되었을텐데
이순신이 원수다
와 이거 내 눈이 잘 못 된건가
그래서 2찍이 윤총독 찍었구나!!
2등국민 되고싶어서!! ㅉㅉ
원종단 기습시위 ㅋㅋㅋ
이때 조선이 일본에 먹히고 멸망했어도
일본 내부를 보면 몇년 정복못하고 끝났을 가능성이 큼 고로 일본이 뭔짓을 해도 소용없을것임 차라리 고려시대 일본을 먹었음 일본자체가 없어져 저런 고통도 업었겠지
우리나라 극우 (극우도 아니고 친일을 넘어선 종일파[從日派]들)들은 그렇게 생각할 듯
전세계 기준으로 진정한 보수, 극우라면 과할 정도로 일본을 까고 씹어야 정상인데
우리나라 극우들은 일본을 찬양하고 있으니...
노량 너무 재미없어 지루해서 혼났어요
앞사람 자고, 뒷사람 자고 역대 이순신 영화중 제일 재미없음, 제목 바꿔라~ 북치는 이순신, 야구 타석 폼~~~~
여자들은 대체뭐하냐 ㅋ
이순신 장군님 죄송합니다.
결국 조선은 일본에게 40년간 굴욕적인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인구의
반이 일본에가서 외화유출이 심각하며
일본이 만든 부품이 들어간 상품들을 쓰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기술적으로 계속해서 일본의 지배를 받아 제2의 일본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친일을 하는 지경에 이르어 진심 사죄드립니다
하늘에서 노하셔서 저들에게서 국가의 자유를 박탈해주소소
노력을 했어야지 주둥이로만 노력하면 뭐하니 ㅋㅋ
@@style-writer 김대중 말하네 이름도 도요타 다이쥬임 ㅋㅋㅋ
@@power_lover_ilb다까기 마사오~~~?
@@나래꿍 도요타 다이쥬 여비서 강제성폭행 지옥에서 지금쯤 벌받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