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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귀여운 목소리의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남겨주기 위해, 선조 분들께서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목숨을 거셨나 봅니다. 정말 뭉클한 것은, 저 목소리의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들의 손주들이 이제 한글과 한국어를 전세계에 알렸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젠 누가 없애려해도 못 없앱니다. 감사하고 참 멋집니다..
아이들이 따라하는 소리가 너무 가슴 뭉클합니다 ㅠㅠ 지금 키우는 아이들의 나이대인데 저 어려운 시기에 밝게 따라하고 따뜻하게 가르쳐주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님도 생각나고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들게 하네요 ㅠㅠ 우리 후손들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오신 이땅의 모든 어르신들과 조상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편히 잘살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는 올해로 94세 되시는 1929년생이십니다. 1935년의 녹음본 어린이 목소리를 들으니 우리 외할아버지도 어렸을 적 선생님께 저렇게 한글을 배우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선조들의 가르침이 대대로 전해져 온전히 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동적이고 눈물 나게하네요.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눈물이 나셨다길래 나도 날까 궁금햇는데 알수없는 애국심과 저 혼란한 시대에 이런 자료를 남기실 생각을 하신 조상님의 혜안과 아이들의 목소리의 순수함과 조상님들의 또렷하고 맑음 목소리에 감동이 밀려오네요. 아마도 제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이 녹음을 마치시고 얼마나 괴로운 맘으로 사셨을지 모르지만 후대에게 이런 소중한 자료를 남겨주어 감사드립니다.
고통스럽긴요. 그냥 그시절 태어나보니 일본땅인건데, 큰 생각 없다가. 독립되고보니 아 독립이 가능한 것이였구나 하고 이게 우리 민족의 얼이였구나 하는거죠. 오히려 배우고 싶은데 돈없어서 못배우거나 가난해서 일하느라 고생했거나 이런 것들이 더 고생이였을겁니다. 일하느라 학교를 아예 못가는 경우도 많았구요. 어릴때 북한에 쌀퍼주는게 핵만들 수 있게 만드는 건 줄 모르고 평화구나~했던 것처럼 큰 생각 없었을겁니다. 오히려 조선 본토보다 일본 본토가 더 서구화되고, 잘사니까 동경했었죠. 지켜낸 분들은 일부 지식인들이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지킨거지, 일반인들은 먹고사는게 최 1순위고, 그외에는 그렇게까지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없었을겁니다.
역사를 바로 압시다. 훌륭하신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저항하고 투쟁한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인 독립은 미국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함으로 일본이 항복한것,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이 조선도 일본이니(당시 세계가 볼 때 조선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의 이름이 많습니다.) 너희도 전범국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이승만이 조선에 대해 미국과 외교적으로 잘 풀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로 역사를 배웠고 당연히 일제가 침략하고 짓밟은걸 알지만 당시 세상은 조선과 일본이 합병했다는 사실만 생각할 뿐이죠.. 일본은 독립투사나 항쟁운동을 하는 사람들외에 일반 백성을 못살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을 괴롭힌 이들은 오히려 일본화 된 조선인들이 많았죠. 저 시절 꼬마들은 태어나보니 일본이었고 그게 당연한거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독립하고 대한민국이 되니.. 그게 더 놀랄만한 일이었겠죠.
다른분들 댓글처럼 큰 감동 이런 복선은 못느끼겠는데 진짜 그 뭐랄까 과거 초등학교때 연구물이나 다큐나 교육용으로 보던 시절 투박한듯한 7-80년대 어법이나 아이들 맑은 소리가 진짜 얼마 안된거같지만 완전히 다른 그런 음색과 소리가 느껴지네요 순수하다 정말 그때와 이때는 뭔가 확 다른 느낌
맑은 목소리로 낭랑하게 우리말 단어를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자니 절로 눈물이 나네요..아이들에게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를 한글 수업을 해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이 녹음본을 지켜내고 복원한 분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지...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이건... 시대적으로 봤을때. 정말 목숨걸고 발음 하나하나 힘주어서 정확하게 녹음 하신게 느껴 집니다. 얼마나 절박하고 노심초사 하셨을지.. 남자 목소리는 예전 서울말. 또박 또박 배우는 5~7세쯤 되보이는 아이들말 여자 목소리는 지금 평양말 비슷하게 들립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저희가 한글을 배우고 쓰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켜주신 국어 새겨새겨 후손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세종대왕 혼자 창제하셨고 그걸적용할수있게 하도록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령하달했는데 그 신하들이 이게 뭐냐고 반발하다가 세종대왕께 뒤지게 깨지고 난뒤 여러 문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집현전학자들도 사대주의에 쩔어있던지라 중국에 반발을 살수있다고 하다가 세종대왕님께 혼난거지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한글은 일제시대 일본이 체계화하고 보급시켰다. 우민 사회의 한반도는 이조 시대에는 한문 교육이 주류로, 한글은 배척됐다.한글 섞인 문장을 체계화한 것은 1897 년 일본의 오구라 쇼헤이 씨가 "조선어, 한글学史"에서 한문 교육 주체로 90 % 이상이 문자를 읽을 수없는 사람 교육에 사용하기 시작하고 1913 년에 본격적으로 오구라 쇼헤이 가나자와昇一郎박사에 의해 한글 교육이 시작되고 교육을 할 수있게되었다. 일본인 언어 학자와 교육 학자를 중심으로 전문가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띄어쓰기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댓글에 다들 눈물이 나셨다길래 어떤 부분이였을까 했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아이들이 다같이 선생님 말씀을 따라며 또박또박 말하는 그 순수함이 와 울컥하게 만드는지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자료 오래오래 보존되어 후세에도 전달되어 감사함을 느꼈으면 좋겠네요 좋은 자료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백인들 없었으면 동양인 은 지금 니네가 매일매일 당연시 누리는 어떤것하나 못누림 중국인들은 마테오 리치같은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을 무려 사부님으로 모시면서까지 서양의 선진 학문을 배울려고 난리였는데 당시 리치가 중국인들에게 건내준 서양의 선진문물 중 가장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 물건이 바로 곤여만국전도 라는 세계지도 였음. 그 이전까지 동양의 전통적인 지구관은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이었고 지구는 평평하고 그 중심에 중국이 위치해 있다고 믿었던 중국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도였지. 지구가 구체라면 당연히 표면상으로는 한 중심점이란게 존재 할 수 없으니까.그래서 리치는 이 ju능a들을 이해 시키느라 달걀 껍질과 노른자 모양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 해주기도 하고 천지의라는 개념을 통해 친절히 하늘과 땅의 대응 관계를 설명해 주기도 함. 어쨋든 중국인들은 그때서야 지구는 둥근것이며 자기들이 세상의 중심이 될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서양인들에 의해) 알게 된거고 조선인들도 그때서야 중국 바깥에 더 넓은 세계가 존재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것이다.즉, 17세기가 될때까지도 지구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른채 미개하게 살아가던 동양 야만인들을 친절히 계몽 시켜준 장본인이 바로 마테오 리치 같은 서양의 선교사들 이었다는 말.서양은 이미 B.C. 500년 고대 그리스 때부터 과학과 수학,기하학, 논리학등의 도구를 발명하여 자연과 우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데에 반해 똥양인들은 17세기가 될때까지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론" 조차 발달시키지 못한채 (사실 '과학'이란 말의 어원도 영어 Science를 그대로 번역한거고 본래 중국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단어) 하찮은 미신과 주술에 의존하여 인생을 살아가던 짐승 무리들과 하등 다를게 없었다. 결론적으로 동양인들은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인 이성(理性)을 갖추지 못한채 수천년 동안 원숭이들 마냥 살아왔다는 점에서 당시 아프리카 토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 보다 전혀 나은 점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연구결과 남자들이 여자보다 암내가 훨씬 심하다고 나옴 실제로 espn 펀치력 테스트보면 메이웨더 620kg 아만다누네즈 120kg임 누네즈 5명합친것보다 파워가 강하고빠름. 누네즈 평체83 메이웨더 보다 15~20kg 많이나가지만 여자선수치고는 평체가 굉장히 어마어마하게 많이 크고 메이웨더 는 남자치고 왜소한편이지만 여자선수는 세계구급 그누가와도 남자프로선수 잽1대이상 못버팀 여자가 운동안한 남자만큼이라도 웨이트 치는것도 도핑아닌이상 극소수지만 한다해도 바벨+자기체중 더하면 결국 운동안한 남자만큼 든것도아니고 수십키로차이임. 여자가 남자와 하체힘은 큰차이 안 난다고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임. 상체보다는 엄청 적을뿐임. 대한민국 여자씨름 역사상 가장 강한 임수정이 그덩치에 레그프레스 240밀고 날고긴다는 여자씨름선수단 전체 레그프레스 랭킹 1위함. 61kg나가는 남자 권민석 은 330밀고 중학교 유도부 에게 레그프레스 참패하고 랭킹쇼123나온 70대 할배들에게도 참패. 운동선수도아닌 트로트가수 유지광 은 레그프레스 550 박진영은 400으로 1세트당 100개함 이대호는 집사부일체에서 620 워밍업하듯이하는거 집사부일체에서 눈으로보여줌. 데드300몇십 치는 민효근은 랭킹쇼123에서 1100kg밀었고 로니콜먼 은 1500kg 여자역도 세계1위 장미란은 130~150kg나가는 약물적발까지된 소련선수2명을 50kg라는 말도안되는 힘차이보여주며 여자세계신기록이뤘지만 남자부 기록과 비교하면 눈물을 넘어 참담한 수준임. 남중여중 선수들기록도 2배넘게차이나고 전국적으로 아주 어릴때부터 체계적으로 운동한애들중에서도 가장 강한 인간들 모아놓고 하루종일 트레이닝하는 태릉선수촌국대들중에서도 여자 서전트1위한 김연아가 체지방11%에 스미스머신 하프스쿼트80kg 여자 스케이팅 세계 챔피언 이상화가 스미스머신 하프스쿼트 1rm 120kg 남자부 메달권근처도못간 모태범이 스미스머신 없이 280kg 김동성 은 만14~15세에 240kg 16번 신봉민이라는 씨름 선수는 350kg 풀가동 스쿼트 15회 10세트 벤치프레스 240kg 마이클조던 은 350kg스쿼트와 150kg벤치프레스 파워리프팅 선수가아닌 농구선수 윌트체임벌린 은 125kg체급에 윙스팬 234cm라는 벤치프레스 에서 말도안되게 불리한 리치가지고 벤치프레스 270kg 데릴 그리피스, 스퍼드웹, 체임벌린,줄리어스어빙 은 조던보다 힘이 더세고 (97kg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여자중 가장 힘센 나탈리아 트루키나 의 기록은 55kg 파워리프팅 선수가아닌 남자유도선수 최민호와 동일 최민호는 약물도없이 주6시간 웨이트 트루키나 는 약빨고 8살부터 웨이트시작 14세부터는 주52~56시간 웨이트) 기네스북에 오른 여자 데드리프트,스쿼트 나탈리아 트루키나 체중97 데드리프트 240kg 스쿼트180 kg 남자 벤치프레스 스콧멘델슨 544kg 남자 데드리프트 베네딕트 매그누손570 kg 남자 스쿼트 제프리루이스 576kg 남성은 사춘기에 접어든 시점부터 유소년시절보다 남성호르몬수치가 50배나 높아지는일명 남성호르몬의 핵폭발?을 겪게됨 이때부터 20대가되면 성인여성보다 300~500배에 달하는 남성호르몬수치가 되버림.남성호르몬수치가 높아짐에따라 초등학교 이후 즉 사춘기부터는 극심한 근육량의차이+ 동일근육량대비에서 조자도 건과인대의 강도와두께, 근섬유의강도와 두께, 근육의힘과 목소리뿐만아니라 똑같은신장대비로도 얼굴과 손발등 신체말단부의크기(특히 길이보다도 두께)뼈두께,골밀도,골강도,관절의 튼튼함,순발력,동적근력,민첩성,운동신경,반사신경 등등 여러가지가 말도안되는 수준으로 비교도안되게 큰차이가생김. (이는 상위1%의 남여끼리 비교할수록 더더욱 심해짐) 이 가운데 1~2개는 남자못지않게 강한 여자가 일반인 기준으로는 극히 드물게나마 있지만 이 모든것에서 남자보다 강한여성은 본적도들은적도없음 (약쟁이+ 아주 어릴때부터 밥먹고 약빨고 운동한 전세계구급 초일류 운동선수 제외)남자의 경우 키가 140인 초등학생 조차도 발사이즈가 250정도됨. 키가 150대인 남자조차 발이280~ 275인 경우도 셀수도없을정도로 흔함. ( 내 초등학교 동창 ㅅㅎㅈ, ㅇㅈㅎ,ㅈㅈㄱ,,ㅅㅊㅇ이 초딩때 이정도였음) 이는 여자에게서는 거인증환자를 제외하고 찾아볼수도없는 수준이며 250만되도 170이넘는 여자보다 손발이큰거임. 여자가 250이면 왕발이라고 놀림을받거나 기성매장에서 여성화구하기가 어려워 이태원에서 구한다고함.( 여자연예인 인터뷰) 뼈두께와 골밀도역시 마찬가지고. 얼굴의 크기또한 비슷한키의 남여들을 비교하면 답나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차이날때가많음
앙증맞은 목소리로 선생님 따라 읽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며 울컥하네요ㅠ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해방이 오자마자 찾아오는 분단과 전쟁을 모르고 있는 순간이겠죠...ㅠㅠ 이 힘든시대를 살아간 선조님들께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당연하듯 우리나라에서 우리 말을 쓰고 살아가는 국민으로 태어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리고 살아있는 역사이신 우리 할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ㅠㅠ 💜
@@GazaeMan 그래서.. 너님은 그런걸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는 했음?? 이미 널리 퍼졌다니.. 증거가 되는게 있어도 혼자만 알고 있음 그건 지식이 아니라 그냥 개인 기억의 흔적임. 누군가에게 알리고자 하는 노력. 그냥 한번 보고 잊고 지나는 무성의.. 누가 더 나을까?? 나도 인터넷 세상에서 헤메고 다닌 시절에 꽤 되는데... 난 첨인데?? 남의 수고를 무너트리지 마라.
너무 감동입니다 편안하게 우리 언어를 말하고 읽고 쓰는 지금 너무 행복한 걸 잊고 살았는데 우리 언어를 만드신 세종 대왕님 한글 말살 정책에도 지켜내신 분들께 무한 감사드리고 새삼 한국인이 자랑 스럽습니다 제작하신 유투버님께도 고맙고 채널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
귀하고 소중한 100년전 한국어 육성 음성자료 공개해주신 디씨멘터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100년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표준어와 가깝고 또렷하고 발음도 정확합니다 녹음에 참여하시고 보존해주시고 복원해 주신 정계환 선생님과 이상만 선생님 외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ㅜㅠ 아름다운 우리글과 언어를 지켜주신 선조님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마음껏 우리말을 표현하고 쓰고 읽고 세계속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한국인으로써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사함에 숙연해지고 자긍심에 울컥해집니다 ㅜㅠ
@@lmkmjn 일제 감정기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입니다! ~를 감정하다 이런뜻이 아닌, 우리 한국이 1910년부터 일본에게서 국권을 빼앗기고 해방된 1945년까지의 시기를 ‘일제강점기’ 라고 하고 그 기간동안 일본은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식민지로 지배하여 우리 민족들이 갖은 수모를 당할수밖에 없었던 시기여서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매우 벅찼을거라고 생각해요..ㅜ
백진삼은 시가 3억원 산삼의 DNA를 그대로 복제한 후 농축했기 때문에 홍삼보다는 조금 비쌉니다만 이미 여러분 앞에 12만 명이 하루 커피 한 잔 값으로 소중한 분들께 산삼을 선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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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bit.ly/3t7JOod
10시간전ㄷㄷ
22시간전 ㄷㄷ 헤응 헤으으으응!
어쩌고 저쩌고는 그대로.ㅋㅋ
응안사
이거 진짠가요?? 3억원대 산삼인걸 어떻게 확인하죠?
바쁘신분은 7:00 부터 들으시면 되어요~
귀한자료를 제출해주신 정계환 할아버지, 보관해주신 고양문화재단과 단독으로 업로드해주신 유튜버님 감사드려요 :)
감사함당
감사합니다
굿
바쁜 사람이 이걸 보고 있진 않겠죠 ㅋ
본론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숨걸고 이 녹음을 지켜주신 어르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게 맞지
따봉
저도 감사드립니다~
딱히 지켜준건 없어보이는데 그냥 어디 편하게 놔두고 가지고있었을듯
@@틀니브레이커-r4y 들키면 바로 체포당하는데 목숨걸고 지킨 거 맞죠
저 귀여운 목소리의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남겨주기 위해, 선조 분들께서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목숨을 거셨나 봅니다. 정말 뭉클한 것은, 저 목소리의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들의 손주들이 이제 한글과 한국어를 전세계에 알렸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젠 누가 없애려해도 못 없앱니다. 감사하고 참 멋집니다..
좀 닥쳐요 뭔 감성똥글을 싸고있어
귀여운 저 목소리들을 들으니 가슴이 짠하고 뭉클해집니다. 지금은 언어 파괴, 사고 파괴가 심한 시대입니다. 표준어를 고수하는게 편협한 사고인것으로 인식되어버리는 시대입니다. 우리의 과학적인 언어, 세계 독보적인 언어인 한글, 한국어를 소중히 잘 보전해야겠습니다.
저어린애는 저시절 잘살고 잘배운애인듯 .. 거의다문맹이었는데
@@제전-f5t 아프냐? 어쩌라고 ㅋㅋ
@@제전-f5t 너가 문제지,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냐 ㅎㅎ 항상 기억하길 바래
저 귀여운 목소리의 아이들은 참으로 힘든 시대를 살다 지금은 많은 경우 세상을 떠났을걸 생각하니 가슴아프네요..
◀☂️
@@lowlanz 제 아버지가 1930년생 올해 95세 저 아이들 또래이시네요~
재밌게 잘살았을 수도 있잖아요 왜 힘들게 살다 갔다고 단정지으시는지 ㅋㅋㅋ 625때문인가요?
@@lowlanz 일제강점기에 다 못산건 아니에요
못살고 잘살고를 떠나 나라를 잃었으니 힘든 시기가 맞죠...
일제강점기때의 한국어 학습 녹음본이라니..
너무 귀하고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자료같습니다
한글의 체계가 정리되고 지금의 한글이 보급된 시기는 일제시대 입니다.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어요.
일본놈들 악하기는 전세계 어느나라보다 악한거같다 ㄹㅇ
독일영국중국 조차도 안할짓을 지들은 해버림 ㅋㅋ
@@user-6626 영국 스페인 프랑스 전부다 식민지언어를 자리나라 말로 바꾸엇습니다 결국 힘없고 못사는것은 죄다
@@js-zb6ye 힘없고 못사는 가족 찾아내서 내 맘대로 해버려도 되는부분?
@@michaelhong2515 근데 넌 그럴 힘이 없잖아
엄청녹음할려고 긴장하면서 또박또박 말한거같아서 듣는데 괜히 귀엽네 ㅋㅋㅋ 선생님도 학생도 다들 귀엽네요 ㅋㅋ
ㅋㅋㅋㅋㅋㅋ 진짜.. 넘 귀엽고 .. 울컥 ㅋ..
진짜 귀엽고 울컥 합니다
나만 울컥한거 아니구나ㅠ
강점기 시절 세종대왕 PR에 울컥합니다...
저 때 애기들이 돌아가신 울 할머니 어렸을 적 같아 또 울컥합니다
ㅔ
저렇게 귀엽게 읽던 아이들은
연세가 많이 차서 다 돌아가셨겠군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 세대도 저런 풋풋한 시절이 있었다는걸 잊고 살았네요 ㅠㅠ
눈물..
너도 할아버지가 될꺼야
ㅠㅠ
그래도 몇몇 분은 아직 살아계시지 않을까요?
위안부 할머니도 아직 몇분은 생존하고 계시니까요.
@@mr.leelee4490 내가 늙었을때가 상상이 안됨 ㅠ
현재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 교원입니다. 어렵게 지켜낸 한국어인 만큼 더욱더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에 임해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엇 안녕하세요? 저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과에 재학중인데 혹시 선배님일지도 모르겠네요
해외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길은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살~짝 알려주실수 있으신가요?
@@Jin-ls9fq 졸업후 저는 세종학당에 지원해 파견을 통해서 해외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후배님이실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아이들이 따라하는 소리가 너무 가슴 뭉클합니다 ㅠㅠ 지금 키우는 아이들의 나이대인데 저 어려운 시기에 밝게 따라하고 따뜻하게 가르쳐주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님도 생각나고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들게 하네요 ㅠㅠ 우리 후손들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오신 이땅의 모든 어르신들과 조상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편히 잘살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니보다 나이 많을텐데 뭔 아이들?
@@루하-d6n 난독오지네 .. 진짜 이해못해서 댓글단건지 아니면 일부러 시비트는건지 이걸 이렇게 댓글을달수도있구나 감탄하게만드네 ㅋㅋㅋ
@@루하-d6n 자존감 회복은 이런걸로 하는게 아닙니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활동적인 인생을 살아보세요 응원합니다
@@루하-d6n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라 무섭다 무서워 ㅋㅋㅋ
@@루하-d6n ㅋㅋㅋ
진짜 희귀자료입니다 1935년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에 당시 6~8세 추정되는 당시 꼬마들이 현재 대략 팔순을 넘어서 구순되시는 우리 할머니들인데 이렇게 우리 언어를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XD-vt7je 구순은 90세를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XD-vt7je 본인도 잘 모르면 남 지적하지좀 맙시다
저희 할무니 이제 구순 되셨는데 헐ㄹ
변성기가 안 와서 그렇지 남자도 있는것 같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하셨을거 생각하니 정말 신기하고 고맙군요
XD 새퀴 쪽팔려서 도망갔나보네 ㅋㅋㅋㅋ
요즘 잼민이들 말 줄일줄이나 알지...책을 안봐서 단어를 잘 모름...안타깝다
100년 전 녹음본이라 하기엔 발음과 음성이 너무도 또렷하고 귀에 콕콕 박혀서 적잖이 놀랬습니다. 이토록 훌륭한 문화유산을 보존해 주신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1000년 전에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user-ub3bv8gs5d 외계어
♡
저때녹음기있었음??
@@챔피언-u3w 측음기가 1877년에 발명됨
따라 읽는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미소가 절로 납니다ㅎ
따라서 발음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요
작은 교실에 앉아서 축음기로 녹음하며 지도하시는 선생님과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우리들의 언어를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목소리 너무 귀여워요ㅠㅠㅠㅠ 뭔가 울컥하네ㅠㅠㅠㅠㅠ
어린이 아님 조상님임
@@sdfdsfa2641 저때는 어린이지
저희 외할아버지는 올해로 94세 되시는 1929년생이십니다. 1935년의 녹음본 어린이 목소리를 들으니 우리 외할아버지도 어렸을 적 선생님께 저렇게 한글을 배우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선조들의 가르침이 대대로 전해져 온전히 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동적이고 눈물 나게하네요.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어쩔티비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나서 눈물나요ㅠㅠ
저희도 후세에 선한 영향을 전달하시죠!
@@Quakermoon 피임의 중요성을 또 한번 느끼게해주다니..!!!
저희 외할아버지는 23년생이세요! 아직도 건강하십니다
한국어 육성 음성 원본이 재생되고 한글을 차분히 읊는 목소리와 따라 읽는 아이들의 음성을 듣자마자 울컥했습니다. 이렇게 귀한 자료를 지키고 복원하고 보존하고 공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음성의 톤이 일본어의 톤과 흡사합니다
저는 오히려 단어를 읽을 때는 지금과 비슷하지만 글을 읽을 때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억양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북한이 폐쇄적인 곳이다보니 그만큼 변화가 적었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ㅎㅎ
한국어 육성이 아니라 조선어 육성인데요.
@@대륙남-o8h 한국어나 조선어나 우리말 육성 녹음본인건 매한가지 아닌가요 한국역사와 조선역사가 서로다른 외국의 역사는 아니잖아요 😊
울컥충 ㅋㅋㅋ
우리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녹음을 했어야하는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네요. 지켜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잃어버릴 우리말이라도 있긴했나 저때 문맹율이 70%가 넘었을거고 한문투성이 한글이었는데 박정희가 국정교과서로 한글정립화했는데
눈물이 나셨다길래 나도 날까 궁금햇는데
알수없는 애국심과 저 혼란한 시대에 이런 자료를 남기실 생각을 하신 조상님의 혜안과
아이들의 목소리의 순수함과
조상님들의 또렷하고 맑음 목소리에
감동이 밀려오네요.
아마도 제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런 가 봅니다.이 녹음을 마치시고 얼마나 괴로운 맘으로 사셨을지 모르지만 후대에게 이런 소중한 자료를 남겨주어 감사드립니다.
해안이 아니고 혜안
@@y3k3137 고맙습니다
와...듣는데 뭔가 울컥하네요...진짜 이 녹음을 지켜주신 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 각자보다도, 실제 문제인 대통령과 이제명 부장님 덕택이시 않읍니까?
🔴 7천만 국민이 문제인,리제명,시주석 을 응원드립니다.
- 전라도 출신의 전국 자영업자 대표 올림.
@@blueberry13117 ㅈㄹ도
대단하시네요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blueberry13117 일베야 이런데서까지 그러고 싶니
와..... 경이롭다.......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맑고 순수한 마음은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아무리 오랜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정 귀중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먼아이들ㅋ 150살은 먹은 조상님들인데
@@sdfdsfa2641 저 목소리는 아이들 목소리잖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소중합니다
@@nhwoo3969 우리 건강합시다
@@sdfdsfa2641 인성에 문제 있는듯 ㅇㅇ
어린이의 목소리가 청량하고 맑은 기운이 느껴지네요.
저렇게 귀엽고 앳된 목소리를 가진 어린이들이 그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아프네요. ㅜㅜ어떻게 지켜내온 대한민국인데.....
고통스럽긴요. 그냥 그시절 태어나보니 일본땅인건데, 큰 생각 없다가. 독립되고보니 아 독립이 가능한 것이였구나 하고 이게 우리 민족의 얼이였구나 하는거죠. 오히려 배우고 싶은데 돈없어서 못배우거나 가난해서 일하느라 고생했거나 이런 것들이 더 고생이였을겁니다. 일하느라 학교를 아예 못가는 경우도 많았구요. 어릴때 북한에 쌀퍼주는게 핵만들 수 있게 만드는 건 줄 모르고 평화구나~했던 것처럼 큰 생각 없었을겁니다. 오히려 조선 본토보다 일본 본토가 더 서구화되고, 잘사니까 동경했었죠. 지켜낸 분들은 일부 지식인들이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지킨거지, 일반인들은 먹고사는게 최 1순위고, 그외에는 그렇게까지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없었을겁니다.
대체 뭐가 ? ㅋㅋㅋ 사농공상의 10선비 사상을 가지고 양반 지나갈때 인사 안하면 맞아죽던 시절이 고통스러웠을까 아님 신분제 폐지한 시대가 고통스러웠을까??
역사를 바로 압시다. 훌륭하신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저항하고 투쟁한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인 독립은 미국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함으로 일본이 항복한것,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이 조선도 일본이니(당시 세계가 볼 때 조선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의 이름이 많습니다.) 너희도 전범국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이승만이 조선에 대해 미국과 외교적으로 잘 풀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로 역사를 배웠고 당연히 일제가 침략하고 짓밟은걸 알지만 당시 세상은 조선과 일본이 합병했다는 사실만 생각할 뿐이죠..
일본은 독립투사나 항쟁운동을 하는 사람들외에 일반 백성을 못살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을 괴롭힌 이들은 오히려 일본화 된 조선인들이 많았죠.
저 시절 꼬마들은 태어나보니 일본이었고 그게 당연한거였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독립하고 대한민국이 되니.. 그게 더 놀랄만한 일이었겠죠.
윗분 말씀대로 인구의 약 60~70%가 노비였고 양반들만 호위호식하고 성리학 사상으로 인해 상업을 천시해서 500년동안 배를 곪고 가난했던 조선 보다는 일제 시대때가 일반 백성들은 더 살기 좋았습니다.
@@sunneepk.6841 이승만 학당 에서 밀고 있는 사상교육 입니다. 일베에서 퍼 나르는 내용임. 누가 보면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 다녀온줄 ㅋㅋ
따라 읽는 한글도 어머니,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가, 두루마기, 나비나비 오너라.. 정말 순수하고 가슴 뭉클한 단어들이라 우리 선조들의 따뜻한 심성을 더불어 느낄 수 있는거 같아요. 눈물이 나네요..
@@엠창정-h6n 영어에 자아의탁해서 그런지 문맥해석능력이 ㅆㅎㅌㅊ네 한글 왜쓰냐
@@엠창정-h6n 실질적 문맹
@@엠창정-h6n ㄹㅇㅋㅋ
@@꿀잼판독기-y1k중국조선족은 못 느끼는게 당연 하다...한민족...한국인만이..느낄수 있단다...우리 선조님들 존경 합니다
여기 답글들 왜이러지 참 건조하네..ㅋㅋㅋ 내 눈을 의심함. 현대 사회가 삭막해지고 있다는게 맞는 말인가봐요 감수성이 풍부한 글만 보면 감성충이라는 말이 꼭 나오니... 답글들 진짜 보는 내가 기분 나빠지고 민망하네..
와 100년전에 발음은 지금과는 크게 다르지 않네요. 자막없이도 충분히 알아 들을 정도니깐. 소중한 자료 공유해주셔서 감사하고, 보관해주신 정계환 선생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희 할머니가 1925년생이시니.. 1935년 어린이 발음이 지금이랑 같은게 이상하지는 않네요
우리 할머니들 보시면 알아들을수 있잖아요 .
그러니 적어도 100년 전사람들의 발음 아니 잘하면 150년 전사람들까지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지요.
애는 몇살일까 ㅋㅋ 초딩인가... 할머니 할아버지 보통 30 40년대분들 아닌가.. 애네들한테는 증조부모인가.. 소름...
100년이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 당연히...
30년 전 서울 사투리만 들어도 어색하던데
90넘으신 저희 외할머니께 이 영상을 보여드리니, 처음엔 이게뭐냐고 갸웃거리시다가 이내 "맞아,나 어렸을때 이렇게 말했어.."라 하시며 계속 들으시더라고요. 뭔가 뭉클했어요.ㅜㅅㅠ)
이런 귀중하고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본 영상 어느부분을 말씀하시는가요?
첫부분이면 ㅋㅋㅋㅋ
@@FrostChoi 덜럴러
거짓말..
@@Ll-t5p속아만살았소???
저시절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순수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지게 되는것 같네요.. 그리고 정말 간단하고 평범한 말들인데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우리아가 이 단어들이
이상하게 큰 울림이 있네요 신기합니다
다른분들 댓글처럼 큰 감동 이런 복선은 못느끼겠는데 진짜 그 뭐랄까 과거 초등학교때 연구물이나 다큐나 교육용으로 보던 시절 투박한듯한 7-80년대 어법이나 아이들 맑은 소리가 진짜 얼마 안된거같지만 완전히 다른 그런 음색과 소리가 느껴지네요 순수하다 정말 그때와 이때는 뭔가 확 다른 느낌
아이들 또박또박 따라하는 귀여운 목소리와, 그 때 처해있는 상황에.. 눈물이 핑 돕니다 ㅠㅠ 귀한 음성이네요 ㅠㅠ
선생님.아이들 목소리에서 맑고 선함이 느껴지고 한글을 익히려는 간절함이 들려 숙연해지고 뭉클 합니다.
우리 말 한글이 일제시대말살 정책에도 이렇게 힘들게 이어져 와 주게 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고생하셨습니다.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은 먼아이들 조상님들인데 ㅋㅋ
@@sdfdsfa2641 저거 녹음 헀을 때는 어린애잖슴 그걸 말 하시는거고
감사합니다 100년전 우리말 들어니 감동입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맑은 목소리로 낭랑하게 우리말 단어를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자니 절로 눈물이 나네요..아이들에게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를 한글 수업을 해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이 녹음본을 지켜내고 복원한 분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지...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이들이라기엔 님보다 150살은 많을듯
@@sdfdsfa2641 상황하고 뜻을 잘 모르시는거같은데 책을 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만 하면 눈물이 쳐나온다고 하노 ㅋㅋㅋ
@@닉넴옵따 뭐만하면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노
뭘 맨날 눈물이난데ㅋㅋ
참 귀하다... ㅠㅠ 그 시절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녹음되어있다니 너무 감동적이다... ㅠㅠ 우리 문화와 언어... 너무너무 귀하고 중요한 거네요 인간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는 요소인 것 같아요
자료도 자료지만 출처 표기 명확하게 하고 메일도 보여주고 댓글 달기전에 가이드라인 띄워주는거 진짜 좋다…웬만한 요즘 유튜버들보다 훨씬 제대로 된 채널이라는게 느껴져서 신뢰가 감
그래서 음성본을 들었을 때 찝찝하지 않고 좋음
한글의 체계가 정리되고 지금의 한글이 보급된 시기는 일제시대 입니다.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어요.
세상에 명시니만 있는게 아니니까요
이거 정말요; 출처표기라도 제대로해야하는데 그냥 퍼와서 무작정 짜집기하는 경우도 있고; 그에 반해 이 채널은 정말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싶을정도에요
@@달그락-p7j 느그애미 가이드라인이나 잡아줘라
@@にろに-q8f찢?
선조분들의 국어를 지키기위한 몸부림에 참으로 눈물이 나네요
국어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좋은 정보 내어 주신 디씨멘터리 고맙습니다
100년전 음성을 들어도 지금과 별 차이가 없네요~ 이런 귀한 자료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신 분들이 남기신 자료를 듣고 감동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joyfollkim5478 님 사람들은 유튜브 댓글 3줄 이상 안읽어여
@이지우 초반부 일본인이 한것만 들으신거같으신데요? 뒤쪽에 나옵니다 초반에 나온거 아닙니다
@이지우 초반 일본인이 읽은것만듣고 넘기는거 ㄹㅇ 무지성이네
@@joyfollkim5478 조선이 노예국가라는건 쫌 공격적인 주장이네요 조선의 노비와 서방국가의 노예와는 결이 좀 다릅니다
눈물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1920년대 출생하셨는데....
할머니 발음과 비슷하다.
이건...
시대적으로 봤을때.
정말 목숨걸고
발음 하나하나 힘주어서 정확하게
녹음 하신게 느껴 집니다.
얼마나 절박하고 노심초사 하셨을지..
남자 목소리는 예전 서울말.
또박 또박 배우는 5~7세쯤 되보이는 아이들말
여자 목소리는 지금 평양말 비슷하게
들립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저희가 한글을 배우고 쓰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켜주신 국어 새겨새겨 후손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이난영 가수등의 축음기 노래를 들으면 목소리가 웅얼웅얼
오래듣기가 힘들던데
이렇게 선명하게 녹음이 되었네요
신기합니다
@@김지우-x5x
그만큼 간절하게
담으셨다는 거겠죠.
혹시나 전달이 잘 안 될까봐.
@@11.tv.7 본인 망상을 참..ㅋㅋㅋㅋ
목숨안걸어도 됐습니다. 선진화된 일본은 조선이 문화, 글 따위 신경안썻어요. 무슨 민족정기를 끊는다고 쇠말뚝 박니마니 하는거 다 거짓말인거 밝혀졌어요
@@워허어어어 망상 ? 니 오산이다.
ㅎ ㅎㅎ
아기들이 따라 말하는 소리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너무 듣기 좋고 맑네요. 지켜주신 정계환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1935년이라면 지금 살아계신 저희 할머니가 저런 아기 나이였던 시절인라 들을수록 가슴이 뭉클하네요.
어른의 마음이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으면
어찌 저리 소리를 곧고 의지있게 가르치실까
아이의 순수한 배움의 마음이 얼마나 예뻤으면 소리가 저리 낭랑하고 소중할만큼 고울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마음으로 아이였고 어른이었던 우리말을 지켜주신 선조들께 감사합니다.
정계환 할아버님과 이 영상을 제공해주신 유튜버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언어의 소중함을 다시끔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계환입니다. 어르신 이름 틀리는거 엄청난 실례예요.
@@Super-denver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소중한 우리 유산입니다..듣는내내 100년전 우리말 즉 조선말과 지금말이별차이가없다니. 놀라울따름입니다..세종대왕님 그리고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최항..더많은분들계셨겠지만..선조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의해 일본어를 국어라 일컬었기에 우리말을 가리켜 ‘조선어’라 하였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혼자 비밀리에 만들었어요.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창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최근 학계의 중론입니다.
세종대왕님 혼자 힘으로 만드신겁니다
세종대왕 혼자 창제하셨고 그걸적용할수있게 하도록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령하달했는데 그 신하들이 이게 뭐냐고 반발하다가 세종대왕께 뒤지게 깨지고 난뒤 여러 문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집현전학자들도 사대주의에 쩔어있던지라 중국에 반발을 살수있다고 하다가 세종대왕님께 혼난거지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이 녹음본을 듣는데 왜 눈물이 날까요
이렇게 좋은 녹음본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은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은것을 기적이라고 하지요....
그 많은 침략과 수탈 속에서도 지켜온 한글 자랑스럽습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의해 일본어를 국어라 일컬었기에 우리말을 가리켜 ‘조선어’라 하였습니다.
글자와 언어는달라유
@@user-tx5qs1nd8w 지금 그걸 왜 따지는데? 글을 읽고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이딴 소리 하냐?
@@천라이언 틀린것을 보고 틀림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네 김정은이랑 니가 다를게 뭐냐 ㅋㅋ
@@user-tx5qs1nd8w 글자가 곧 언어 이니라 함이라
울컥하네요 일제강점기때에도 우리의 문화를 놓지않아준 조상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윗글을 읽어봐 주세요
내가 우리나라 문화의 수준이 높았군요 했더니
그말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평가를 하는 것이므로 그런글 쓰는거 부당하고 맞지 않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네요
@@김지우-x5x 글을 잘못쓰신거같은데요 ㄷㄷ 100년전에 녹음했던것을 들을 수 있다니 놀라워요 그 당시 우리나라사람들은 가치를 모르고 당연하게 썼지만 외국인들은 가치를 알고 지켜주려했다니 우리나라 문화수준이 높았군요라고 썼다면 악플이 달리지 않지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지우-x5x 도대체 기술이랑 문화가 뭔 관계임?ㅋㅋ
@@쪼꼬조아-d9j 유화 그림도 기술력으로 유화재료가 개발되지않았으면
유화그림이 없었겠지~?
기술이랑 왜 연관이 없냐~?
@@쪼꼬조아-d9j 써라운드 음향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써라운드 입체음감으로 음악감상
못하겠지~??
우리선조들 청량하고 정확한 발음에 자신감이 물씬 묻어납니다. 기개와 기품이 느껴집니다. 자랑스럽고요.
이런 영상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합니다.
정말 소중한 자료네요. 이 자료가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과 목숨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디씨 멘터리 화이팅~!!!
녹음을 듣고 그 당시를 상상해보니 참 가슴이 먹먹해지네요.일제치하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으며 한글을 지키려 애썼던 우리 조상님들 덕분에 우리 문화가 요즘 많은 빛을 보는듯...넘 귀한 자료 들려주신 디씨맨터리 감사합니다.😂
일제치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하에서"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말은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이
아닌 합법적인 통치를 하였다는 뜻이므로
사용해서는 안되고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점령기간이라는
뜻을 가진 일제강점기로 사용하셔야 합니다.
ㅇㅇ 조선 양반들 밑에서 노예 생활 하던게 그리운거야?
아니면 사람들 노예 주인 하고 싶어서 그리운거야?
@@임용태-i1o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여.
아이들 따라 읽기하는게 정말 귀엽기도하구..아픈시대에 자라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낭랑해서 더 마음찡해집니다ㅠㅠ
🔴 각자보다도, 실제 문제인 대통령과 이제명 부장 덕택이시 않읍니까?
🔴 7천만 국민이 문제인,리제명,시주석 을 응원드립니다.
- 전라도 출신의 전국 자영업자 대표 올림.
육성을 가만히 듣다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집니다.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 너무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정돈가
귀한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재외국민으로 이곳 한국학교에서 우리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애쓰셨는지 잘 가르치겠습니다.
그 당시 이 녹음을 한 아이 목소리가 또렷하고 발음이 정확 하네요.
정신이 맑다는것을 들음과 동시 단박에 느낄수 있음 올시다
애기들 목소리가 너무 귀엽다... 이 귀중한 자료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듣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힘든 시기에 우리말을 지키고 독립을 위해 애쓰신 어른신들에게 감사드리며 지금의 정치를 보며 정말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눈물 나죠
저 청아한 어린이 소리 낸분들도
이제 고인이되었을거고
물 밀듯이 간악한 왜구들의 우리말 말살을보고
지키기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지키신분들 감사합니다
세종께 감사한 맘은
그때도 지금도 같네요
고마운것은 한글에대한 감사함은 그때나
지금도 같습니다
거룩한 세종대왕님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아놔 꼭 잘나가다 정치충되는거 유행이냐?? 초치지좀 말아라
@@joyfollkim5478 엄마 없냐ㅋㅋ
귀한 자료…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보다가 일제강점기 녹음을 들으면서 눈물읗 흘렸습니다.ㅠ.ㅠ 그 암울했던 시대에 이런 자료를 남겼다는 것 정말 감동입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 만세!
저도 듣다가 눈물이 났는데 저 뿐만이 아니였군요. 참 이상하죠? 눈물 포인트가 아니였는데도 눈물이 흐르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요.
디씨멘터리도 고맙고. 목소리의 주인들께도 감사하고.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
일제시대 보다는 일제 강점기가 좋을듯 하네요.
@@처럼불꽃 넵 수정 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지금 표준어와 비교해도 거의 100% 같네요... 어떤 표현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표현도 있네요... 지금 사용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네요... 우리 나라 선조들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멋진 한글!!!
이거 조선총독부 조선어독본 교재음반임
고려시대 단어들 적어놓은 "계림유사" 란 책에 봐도 별로 큰 차이 없죠.
한글은 일제시대 일본이 체계화하고 보급시켰다.
우민 사회의 한반도는 이조 시대에는 한문 교육이 주류로, 한글은 배척됐다.한글 섞인 문장을 체계화한 것은 1897 년 일본의 오구라 쇼헤이 씨가 "조선어, 한글学史"에서 한문 교육 주체로 90 % 이상이 문자를 읽을 수없는 사람 교육에 사용하기 시작하고 1913 년에 본격적으로 오구라 쇼헤이 가나자와昇一郎박사에 의해 한글 교육이 시작되고 교육을 할 수있게되었다. 일본인 언어 학자와 교육 학자를 중심으로 전문가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띄어쓰기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ysu1806 조선은 이미 1890년대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 한글보급등 근대화문명이 시작될쯤이었고 일제는 약탈하고 말살하고 지들이 한 악행이 소문날까봐 선교사들 추방하고 지들이 아시아의 메근대화에 힘썼다는둥 제침략전쟁 미화시키고
우리나라 언어는 옛날부터 되게 좋은소리,이쁜소리가 많이 나고 소중한거 같아요 앞으로도 표준말을 잘 보존해 나가도록 했으면 좋겠고 이런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2:39 '국어'의 '가나'와 같이.. 라는 말이 가슴을 찌르네요. 다시는 일제강점기와 같은 시대가 도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소중한 자료, 잘 보고 들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납니다.이소중한 것을 지켜낸 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고맙습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의해 일본어를 국어라 일컬었기에 우리말을 가리켜 ‘조선어’라 하였습니다.
눈물은 왜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들으면서 너무 울컥하네요
우리 한국어를 잃지않고 지켜주신 영웅들 감사합니다 ㅠㅠ
유튜브라는게 좋은 콘텐츠도 많고 안좋은 콘텐츠도 많은데 이렇게 뜻 깊은 영상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더 따뜻해진 거 같아서 너무 좋다
원래 인터넷이라는데 양면성이 있을 수 밖에 없죠..ㅠㅠ
0:55 중국인이 동북아 공정으로 고대 한국어가 중국어에서 유래 되었다고 주장 하려고 중국인이 발음을 중국어처럼 발음 하는 것 같은데
한국인이 발음 하면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ㄱ
정말 너무 귀한 자료네요ㅠ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에 다들 눈물이 나셨다길래 어떤 부분이였을까 했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아이들이 다같이 선생님 말씀을 따라며 또박또박 말하는 그 순수함이 와 울컥하게 만드는지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자료 오래오래 보존되어 후세에도 전달되어 감사함을 느꼈으면 좋겠네요 좋은 자료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마치 존나 순수한척하지마라
@@안그래도지금3그릇째 ㅉㅉ 니가 사는세상이 얼마나 비참하면 이런말을 하냐
그 순수함때문에 울컥한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역사공부를 제대러 하지 않은 요즘 아이들 세대는 모르겠어요) 민족정신이 고양되어 울컥했겠죠 어렵게 지켜온 우리의 것 이라는 생각과 함께요
@@piatsien 민족정신(민족주의)는 옳으며 정의이다라는 사고 자체가 요즘 국제 추세와는 정반대입니다
주시경선생님의 혜안과 통찰력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백인들 없었으면
동양인 은 지금 니네가 매일매일
당연시 누리는 어떤것하나 못누림
중국인들은 마테오 리치같은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을 무려 사부님으로 모시면서까지 서양의 선진 학문을 배울려고 난리였는데 당시 리치가 중국인들에게 건내준 서양의 선진문물 중 가장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 물건이 바로 곤여만국전도 라는 세계지도 였음.
그 이전까지 동양의 전통적인 지구관은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이었고
지구는 평평하고 그 중심에 중국이 위치해 있다고 믿었던 중국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도였지.
지구가 구체라면 당연히 표면상으로는 한 중심점이란게 존재 할 수 없으니까.그래서 리치는 이 ju능a들을 이해 시키느라 달걀 껍질과 노른자 모양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 해주기도 하고
천지의라는 개념을 통해 친절히 하늘과 땅의 대응 관계를 설명해 주기도 함.
어쨋든 중국인들은 그때서야 지구는 둥근것이며 자기들이 세상의 중심이 될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서양인들에 의해) 알게 된거고
조선인들도 그때서야 중국 바깥에 더 넓은 세계가 존재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것이다.즉, 17세기가 될때까지도 지구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른채 미개하게 살아가던 동양 야만인들을 친절히 계몽 시켜준 장본인이 바로 마테오 리치 같은 서양의 선교사들 이었다는 말.서양은 이미 B.C. 500년 고대 그리스 때부터 과학과 수학,기하학, 논리학등의 도구를 발명하여 자연과 우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데에 반해 똥양인들은 17세기가 될때까지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론" 조차 발달시키지 못한채 (사실 '과학'이란 말의 어원도 영어 Science를 그대로 번역한거고 본래 중국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단어) 하찮은 미신과 주술에 의존하여 인생을 살아가던 짐승 무리들과 하등 다를게 없었다.
결론적으로 동양인들은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인 이성(理性)을 갖추지 못한채 수천년 동안 원숭이들 마냥 살아왔다는 점에서 당시 아프리카 토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 보다 전혀 나은 점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연구결과 남자들이 여자보다 암내가 훨씬 심하다고 나옴
실제로 espn 펀치력 테스트보면 메이웨더 620kg 아만다누네즈 120kg임 누네즈 5명합친것보다 파워가 강하고빠름. 누네즈 평체83 메이웨더 보다 15~20kg 많이나가지만
여자선수치고는 평체가 굉장히 어마어마하게 많이 크고 메이웨더 는 남자치고 왜소한편이지만
여자선수는 세계구급 그누가와도 남자프로선수 잽1대이상 못버팀
여자가 운동안한 남자만큼이라도 웨이트 치는것도 도핑아닌이상 극소수지만
한다해도 바벨+자기체중 더하면
결국 운동안한 남자만큼 든것도아니고 수십키로차이임.
여자가 남자와 하체힘은 큰차이 안 난다고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임.
상체보다는 엄청 적을뿐임.
대한민국 여자씨름 역사상 가장 강한 임수정이 그덩치에 레그프레스 240밀고 날고긴다는 여자씨름선수단 전체 레그프레스 랭킹 1위함. 61kg나가는 남자 권민석 은 330밀고 중학교 유도부 에게 레그프레스 참패하고 랭킹쇼123나온 70대 할배들에게도 참패.
운동선수도아닌 트로트가수 유지광 은 레그프레스 550
박진영은 400으로 1세트당 100개함
이대호는 집사부일체에서 620 워밍업하듯이하는거 집사부일체에서 눈으로보여줌. 데드300몇십 치는 민효근은 랭킹쇼123에서 1100kg밀었고
로니콜먼 은 1500kg
여자역도 세계1위 장미란은 130~150kg나가는 약물적발까지된 소련선수2명을 50kg라는 말도안되는 힘차이보여주며 여자세계신기록이뤘지만
남자부 기록과 비교하면 눈물을 넘어 참담한 수준임. 남중여중 선수들기록도 2배넘게차이나고
전국적으로 아주 어릴때부터 체계적으로 운동한애들중에서도 가장 강한 인간들 모아놓고 하루종일 트레이닝하는
태릉선수촌국대들중에서도
여자 서전트1위한 김연아가 체지방11%에 스미스머신 하프스쿼트80kg
여자 스케이팅 세계 챔피언 이상화가
스미스머신 하프스쿼트 1rm 120kg
남자부 메달권근처도못간 모태범이 스미스머신 없이 280kg
김동성 은 만14~15세에 240kg 16번
신봉민이라는 씨름 선수는 350kg 풀가동 스쿼트 15회 10세트 벤치프레스 240kg
마이클조던 은 350kg스쿼트와 150kg벤치프레스
파워리프팅 선수가아닌 농구선수
윌트체임벌린 은 125kg체급에 윙스팬 234cm라는 벤치프레스 에서 말도안되게 불리한 리치가지고 벤치프레스 270kg
데릴 그리피스, 스퍼드웹, 체임벌린,줄리어스어빙 은 조던보다 힘이 더세고
(97kg 인류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여자중 가장 힘센 나탈리아 트루키나 의 기록은
55kg 파워리프팅 선수가아닌 남자유도선수 최민호와 동일
최민호는 약물도없이 주6시간 웨이트
트루키나 는 약빨고 8살부터 웨이트시작
14세부터는 주52~56시간 웨이트)
기네스북에 오른
여자 데드리프트,스쿼트
나탈리아 트루키나 체중97 데드리프트 240kg 스쿼트180 kg
남자 벤치프레스 스콧멘델슨 544kg
남자 데드리프트 베네딕트 매그누손570 kg
남자 스쿼트 제프리루이스 576kg 남성은 사춘기에 접어든 시점부터 유소년시절보다 남성호르몬수치가 50배나 높아지는일명
남성호르몬의 핵폭발?을 겪게됨
이때부터 20대가되면 성인여성보다
300~500배에 달하는 남성호르몬수치가 되버림.남성호르몬수치가 높아짐에따라 초등학교 이후 즉 사춘기부터는 극심한 근육량의차이+ 동일근육량대비에서 조자도 건과인대의 강도와두께, 근섬유의강도와 두께, 근육의힘과 목소리뿐만아니라 똑같은신장대비로도 얼굴과 손발등 신체말단부의크기(특히 길이보다도 두께)뼈두께,골밀도,골강도,관절의 튼튼함,순발력,동적근력,민첩성,운동신경,반사신경 등등 여러가지가
말도안되는 수준으로 비교도안되게 큰차이가생김. (이는 상위1%의 남여끼리 비교할수록 더더욱 심해짐) 이 가운데 1~2개는 남자못지않게 강한 여자가 일반인 기준으로는 극히 드물게나마 있지만 이 모든것에서 남자보다 강한여성은 본적도들은적도없음
(약쟁이+ 아주 어릴때부터 밥먹고 약빨고 운동한 전세계구급 초일류 운동선수 제외)남자의 경우 키가 140인 초등학생 조차도 발사이즈가 250정도됨.
키가 150대인 남자조차 발이280~ 275인 경우도 셀수도없을정도로 흔함.
( 내 초등학교 동창 ㅅㅎㅈ, ㅇㅈㅎ,ㅈㅈㄱ,,ㅅㅊㅇ이 초딩때 이정도였음)
이는 여자에게서는 거인증환자를 제외하고 찾아볼수도없는 수준이며 250만되도 170이넘는 여자보다 손발이큰거임. 여자가 250이면 왕발이라고 놀림을받거나 기성매장에서 여성화구하기가 어려워 이태원에서 구한다고함.( 여자연예인 인터뷰)
뼈두께와 골밀도역시 마찬가지고.
얼굴의 크기또한 비슷한키의 남여들을 비교하면 답나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차이날때가많음
앙증맞은 목소리로 선생님 따라 읽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며 울컥하네요ㅠ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해방이 오자마자 찾아오는 분단과 전쟁을 모르고 있는 순간이겠죠...ㅠㅠ
이 힘든시대를 살아간 선조님들께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당연하듯 우리나라에서 우리 말을 쓰고 살아가는 국민으로 태어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리고 살아있는 역사이신 우리 할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ㅠㅠ 💜
저만 그런게 아니었네요
우린 애국자 ㅎㅎ
저 앙증맞은 목소리의 아이들이 격동의 시대를 지켜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신 분들이겠죠...
저만 울컥한 게 아니었네요ㅋㅋㅋ 단가봐ㅋ 녹음소리 들어보니 60년대 사랑손님과어머니? 그런 영화 듣는 것 같아요
백성들이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한글을 창제 해주신 세종대왕님, 한글을 더 발전시키고 지켜주신 분들께 항상 존경의 마음을 가지며 한글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이 따라 읽는 소리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년시절이 상상돼 많이 울었습니다. 모진 세월 견디며 우리 언어를 지켜주신 선조들께도 감사합니다
눈물이나네요 정말
어쩌라고ㅋㅋ
그시절 선생님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대단한문장을 구사하거나 어려운 발음을
하는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하고
뭔가 뜨거운게 가슴을 울컥치고 올라오네요..
우리말을 지켜주시고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ㅠ
너무 귀한 자료네요.
발음도 정확하고요.
77주년 광복절에
이 귀한 자료를 듣게 되어
너무너무 감사하네요
자료를 녹음하시고
제출 하시고 보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아... 진짜 대단대단. 유튜브에서 이런 자료를!!감동입니다.
우리 언어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하고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언어를 지키기 위해 저렇게 녹음하신 것도 넘 감사하고 대단하심..
들으니까 왜인지 찡하고 가슴 한편 따뜻해져요 이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네요 너무 귀한 녹음본을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네요 녹음을 보관해 주신 분도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user-qw6om4gm8f ㄹㅇㅋㅋ
단어 하나하나가 시 같아요
가슴이 찡~~ 해집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우리 말과 글을 전달하려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편하게 말하고 쓰고 하는 것인것을 다시한번 머리가 숙여집니다.
유튜버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멋지셔요
두번째 여성분의 녹음본을 듣다보니 서울 억양과 평양 억양이 반반씩 섞인 듯도 하네요. 시간이 지나고 휴전선이 그이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한 억양을 생각하니 묘해요
생각 보다 음질이 좋아서 놀랬습니다. 복각에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이렇게 소개해 주신 디씨멘터리에도 감사드립니다.
100년을 뛰어넘어서 이렇게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지고야 만 우리의 언어, 목소리... 감동적이다 진짜...
????????
우리나라는 어디국가에도없는 자기민족을 노예로쓴 민족인데ㅋㅋㅋ 감동임?
옛날 미국, 영국에도 백인 노예들 넘쳐 났다. 역사좀 공부해라.
@@모다-k1m 세계사 7등급 나오죠 당신
@@nobodynobody4065 자국민을 노예로 쓴 나라는 공식적으로 인도랑 한국밖에없어요 알고씨부리세요
디씨멘터님 영상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국어 발음에 대한 강의 녹음본이라니...ㄷㄷㄷ 정말 귀한 자료네요... 우리가 100년 전으로 가면 말이 통할까 싶었는데 통할 것 같네요...
ㅈㄹ ㄴㄴ 솔찍히 말들으면서 딴짓하다가 듕귁말인줄 알았는데 뭘 또 말이 통해 통하긴
@@태클좀걸지마라맡춘법 난 들리는데영 ㅋㅋ
@@태클좀걸지마라맡춘법 얼마나 무식한겨
@@태클좀걸지마라맡춘법 이게 안들리면 당신 귀가 이상한거임...
@@태클좀걸지마라맡춘법 다 알아 듣겠는데 국어 못배운 티 내노 국평오 보다 수준 미달이네 ㅌㅋㅋ
100년이 지난 세월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한 할아버지, 친근한 아이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게 참..같은 민족이란..신기하네요ㅎㅎ
디씨멘터리님 대단하십니다.
... 정말 열정이 대단하신 분...
덕분에 어디서도 듣지 못한걸
듣게 되네요.
이러니 일본이 한글을 못쓰게
안달을 했으니 미래를 예언을
했었구나.한글의 위대함과 대한민국이 앞으로 문화강국이
될것을~
이거 딱히 대단한건 아닐듯. 기밀문서 이런거를 단독 입수해서 틀어준것도 아니고 이미 널리 퍼져있는것같은데.
@@GazaeMan 그래서.. 너님은 그런걸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는 했음?? 이미 널리 퍼졌다니.. 증거가 되는게 있어도 혼자만 알고 있음 그건 지식이 아니라 그냥 개인 기억의 흔적임. 누군가에게 알리고자 하는 노력. 그냥 한번 보고 잊고 지나는 무성의.. 누가 더 나을까?? 나도 인터넷 세상에서 헤메고 다닌 시절에 꽤 되는데... 난 첨인데?? 남의 수고를 무너트리지 마라.
@@flear7116 뉴스에도 나왔는데. 내 말은 디씨멘터리가 정부 기관이 아직 밝히지 않은 자료를 끊임없는 요청을 통해 협조를 받아서 단독공개한게 아니라는 말. 물론 디씨멘터리가 구독자가 많아서 그런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효과는 있지만
@@LEEks2004 일본이 조선 문맹률 십창나서 한글 교육 시켜준건데???
애들 소리 듣는데 왜 이렇게 뭉클하고 눈물이 나오는걸까..
요즘 표준어와 거의 비슷한걸보니 잘계승되어왔다는걸 알수있네요 조상님들 감사 또 감사합니다 🙏 😊
남한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세련되어 진거지
남한이나 북한이나 제일많이 쓰는 표준어는 같았다고 봐야죠
갑자기 분단됐으니까..
@@bic7 평양문화어가 원래 억양에 더 가깝군요
진짜 미치겠다 이러니 안 좋아할수가 있나요 우리 조상님들의 목소리 진심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끝가지 잘 들었습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요.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의 피가 저의 몸과 저의 정신에도 흐름을 느낌니다.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의해 일본어를 국어라 일컬었기에 우리말을 가리켜 ‘조선어’라 하였습니다.
아~ 감사드립니다.
이것을 남겨 주신 분들, 지켜주신 분들,
이렇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조상님들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도 이렇게 소중하게 지켜온 어여쁜 우리말을 들으니 정말 뭉클합니다. 우리 세대도 몇십년뒤 다음 세대를 위하여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애기 혼자 읽는거 진짜 귀엽다 ㅋㅋ
지금은 엄청 어르신이거나 떠나셨을분들.. 기분이 신기하네요...
살아계시면105세는 되실듯
9:40
애기는 먼애기 ㅋㅋ 조상님들인데 애기 ㅇㅈㄹ쳐하네
거진 시리 말투ㅋㅋㅋㅋ 개귀여우어
지금도 발음, 낭독의 수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죠. 녹음 참여하신 선생님 아이들 낭독 수준 대단하네요. 어떤 분야이든 최고를 연구하고 널리 알려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받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들의 그 당시의 생생한 음서을 들을 수 있는 아주 귀한 자료를 보고 듣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낭낭한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합니다
깊은 감사 드립니다!!!
정말 소중한 자료입니다
약 백년전 우리말 인데도 전부다 이해할수있다는게 우리말이 소중이 잘 보전되고 있다는데서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다시는 일제식민지같은 일을 격지않도록 우리 자주국방과 국가경쟁력을 세계최고로 꾸준히 만들어가야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세대 말투와 많이 비슷.
백년은 학문의 영역에서는 그리 긴 세월이 아님...
이거 조선총독부 조선어독본 교재음반임
검색해보세요
@@ysu1806 30년대부터 조선어 수업비중 계속 줄이다가 40년대부터 금지시켰음. 이 음반은 일제가 남긴 조선어의 영정 사진 같은 것
@@모니카-k7n 할아버지 할머니 저렇게 말씀하세요…..?
생각보다 너무 차이가 없어서 살짝 놀람
애들 목소리도 그 나이 특유의 귀욤과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요즘 애들과 다를 바 없네요 ㅎㅎ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교사 임용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취준생입니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소름돋네요 와... 공부 하다가 힘들 때마다 들어와서 봐야겠어요.
꼭 임용시험 합격하세요. 훌륭하신 스승이 되실겁니다.
공부하실때 1912년 일제가배포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이 최초의 상용한글이고 세종마왕은 훈민정음만들고 배포안했다 애초에 혜래본에 "중국과 말이달라 새로이28자를 만드니" 라고나와있음 중국식 한자발음 공부시킬려고만든 발음기호 훈민정음 이게뻥이라고? 이미 그전에 파스파문자라고 선례가있음 일제가 조선 합병안하려고 이토히로부미가 결사반대했는데 1909년 안중근장군님이 제거해주신덕분에 통일되서 문명을 이뤘으니 잘됐지뭐 신분제 폐지도 개화파 즉 친일파들이 1894년 청일전쟁터지자 1894년이 갑오년임 갑오개혁진행해서 시작된것이고 완전한 신분제폐지도 1940년 창씨개명으로 모두다성씨를 가지게돼 모두 양반된사회가되서 없어지는게 신문제임
님이 어딜 졸업하는진 몰라도 1915년부터 패전직전인 1944년까지 일제가 고등교육기관을 지으니 그게지금의 한국명문대들임
국어임용 씹창인데 평생백수하겠노ㅋ
합격하시길바래요 응원할게요^^멋진 스승이되실거예요
힘내세요! 저도 국어교욱 전공에서
임용포기하고 현실을택했지만
반달빛님은 꼭 성공하실거에요!
너무 감동입니다 편안하게 우리 언어를 말하고 읽고 쓰는 지금 너무 행복한 걸
잊고 살았는데 우리 언어를 만드신 세종
대왕님 한글 말살 정책에도 지켜내신 분들께
무한 감사드리고 새삼 한국인이 자랑 스럽습니다 제작하신 유투버님께도 고맙고
채널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
녹음본을 듣는데 눈물이 나네요. 소중한 자료 너무 감사드립니다. 녹음본을 지켜내고 복원해 주신 분들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드립니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공간을 넘어 들을수있어 좋네요
가슴아픈 역사의 한귀퉁이를
그당시 일제의 강압통치 속에서 어찌 이렇게 귀한
씨앗을 심어 두셨는지. .
선생님 덕분에 그리고 많은 분들의
수고덕분에 저희 후손들이 그 씨앗에서
비롯된 열매를 취할 수 있고 가장 찬란한
문화강대국의 시대를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씨앗이 발아될 수있게 독립시켜주신 미군과 원자 폭탄 만드는 이론을 적립하신 아인슈타인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귀하고 소중한 100년전 한국어 육성 음성자료 공개해주신 디씨멘터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100년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표준어와 가깝고 또렷하고 발음도 정확합니다
녹음에 참여하시고 보존해주시고 복원해 주신 정계환 선생님과 이상만 선생님 외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ㅜㅠ
아름다운 우리글과 언어를 지켜주신 선조님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마음껏 우리말을 표현하고 쓰고 읽고 세계속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한국인으로써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사함에 숙연해지고 자긍심에 울컥해집니다 ㅜㅠ
와 한편으론 정말 일제때문에 한국어가 사라졌으면, 후대에 이걸 듣고 뭔소린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수도 있단 생각에 섬짓하네요...
뭐 일제강점기까지 갈 것도 없다고생각합니다. 주변에 한국어 제대로 쓰는 사람있는지….
그니까 이게 뭔 소리야 했을수도 있다는게 소름
@@chanpark5143 그러네 니 이름부터 '촨 팕'이네
갑자기 눈물이 흐르네...
저 꼬마 아이가 감당했을 시간들을 생각하니...
저기 녹음된 꼬마 아이가 커서 저 녹음본을 지킨건가요?
@@lmkmjn 일제 감정기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입니다! ~를 감정하다 이런뜻이 아닌, 우리 한국이 1910년부터 일본에게서 국권을 빼앗기고 해방된 1945년까지의 시기를 ‘일제강점기’ 라고 하고 그 기간동안 일본은 우리 민족을 탄압하고 식민지로 지배하여 우리 민족들이 갖은 수모를 당할수밖에 없었던 시기여서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매우 벅찼을거라고 생각해요..ㅜ
ㅋㅋㅋㅋㅋㅋ ㅂㅅ 이란 걸 알고 답 안 해주신 거 개웃기넼ㅋㅋㅋㅋㅋ
@원가찬 상대가 어리석은 아이니깐
@@lmkmjn 자기는 저시대랑 6.25 전쟁을 겪으시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 덕분에 발뻗고 자는데 그런것 이라니 선을 넘는짓 아닙니까?
소중한 자료 공유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방금 30년생이시면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셨으며 대학 국어 교수셨었던 할아버지께 링크를 보내드렸습니다. 국어를 잘 모르는 저도 감동이 밀려오는데 한 평생을 우리말을 공부하고 가르치셨던분께는 얼만큼의 감동이 올지 의문입니다.
할아버님의 감상이 어떠셨는지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너무 궁금하네요
우와 정말 저도 너무 궁금해요
감상평도 궁금하네요ㅋㅋ
궁금궁금!!!!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