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jjim 서브넣는 쪽이 공격 성공하거나 블로킹을 성공하면 1점 따는거고 상대방이 공격을 성공하거나 블로킹을 하면 1점이 올라가는게 아니라 서브넣는 기회가 가는 식이지요. 지금처럼 공격성공하면 1점 올라가는 랠리포인트 제도가 아니구요. 랠리포인트 제도 도입된 것이 80년대 말인가 90년대 초반인가 5세트 한정으로 적용됐고 90년대 말에 전세트 랠리포인트제에 25점 내면 끝나는걸로 바뀌었죠. 아, 5세트는 17점 상한제 랠리포인트 적용되는 것은 동일.
고려증권 돌고래 스파이크 서브 장윤창.. 당시 고려증권 배구단은 야구의 해태같은 이미지가 강했죠... 모 기업의 지원이 많이 없어서 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서비스의 대항마였고... 후에 삼성화재가 나오기 전까지 최대 라이벌이었던 두 구단.. 하종화 와 장윤창 정말 잼있게 봤습니다.. 그 후에 용인 수지구 동천역에 쿠우쿠우 사장님으로 볼 줄은 상상도 못했죠...ㅎ 2017년도까지 봤는데 지금도 사장님으로 계시는지는 모르겠넹~ 그때도 주름빼놓곤 여전히 키크고 멋있어 보였는데..
저는 95년 슈퍼리그 때부터 배구 봤어요. 임꺽정 임도헌 월드스타 김세진 갈색폭격기 신진식 배구도사들 박희상,권순찬 제2의 강만수 소리듣던 이경수 요^^ 아쉬운게.마낙길,노진수,하종화 이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못봐서 아쉽죠 그리고 제 조카 중.고딩때 배구 보러가면 하종화,장윤창,박희상 이 세분이 싸인 해줄때 매너 젤 좋았습니다. 특히 하종화 감독님이 짱!!!
장윤창선수가 최초 스파이크 서브란걸 오늘 첨 알았네요 제가 배구 첨 접했을때는 장윤창 선수가 은퇴였는지 말년이었는지 이름은 아는데 활약한 기억은 가물가물 하네요 신진식 선수로 인해 블루팡스팬이 되었고 역대 스파이크서브의 강력함과 스피드는 탑이 아닐지라도 스파이크 서브의 폼은 단연 최고라 봄. 언젠가 부터 모든선수들이 스파이크서브를 넣고있는데 아직 신직식의 그 아름답고 간지나는 폼의 선수를 본 적도 없네요
15점제 때 모습?...옛 15점제 땐 서브 블로킹도 허용되었던 시기임...나중 서브 블로킹 불가가 되었는데, 그 때부터 시작했죠..당시엔 스카이 서브라고도 했었음..그런데 그게 현행 25점제로 바뀌면서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옛 국대는 장윤창, 강만수, 강두태, 중앙에 속공 명수 듀오 문용관에 류중탁 등등... 경기대의 장윤창과 정의탁.. 인하대 콤비 문용관과 류중탁 멋있었음...
신진식 이전에 장윤창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저때는 서브권이 있던 시절이라 아시아선수들은 스파이크서브를 못넣는 수준이었습니다. 장윤창이 거의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스파이크 서브 넣을 수 있는 점프력과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당시 올림필 중계 보면 이탈리라, 네덜란드, 미국 선수들은 스파이크 서브를 대부분 선수들이 넣을 줄 알고 펑펑 쏘더군요.
세계 어느나라나 농구전용, 배구전용, 배드민턴 전용 체육관을 건설 및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고요 실내 체육관은 농구코트를 기본으로 하되 배구, 핸드볼, 배드민턴, 테니스, 격투기, 체조는 매트를 깔아서 경기를 진행합니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초반까진 체육관에다가 이 라인, 저 라인 붙이면서 경기했지만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84년부터 순차적으로 농구만 목재 플로어에 라인을 붙이고 그 이외의 종목은 매트를 깔아서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 시대 봤죠. 스파이크 보단 스카이 서브라고 했고. 저때 외국은 스파이크 서브를 많이 도입 했는데 국내는 어렵기도 하고 실패률이 높다고 꺼리던 때였죠. 이때 과감히 했던게 장윤창, 스파이크 서브 할때 마다 관중등 환호성이 엄청 났죠. 다만 실제로는 많이 시도 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실패 확률이 무척 높아서, 저렇게 성공 하는건 참 보기 어려웠죠. 저때는 서브 할때 공이 네트 건드리기만 해도 서브 실패로 간주 하던때라 더 힘들었음.
스파이크 서브 하면 나카가이치가 생각난다. 1990년대 초반에 한국 배구팀 탈탈 떨던 그 일본 배구 선수. 언젠가..호주에서 8월 15일 광복절날 일본하고 붙었는데 세트 스코어 3:2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국이 졌지. 당시 호주 배구장 분위기가 일본 편향적이어서 더 아쉬웠는데, 30년 정도 지나니 한국을 더 응원해 줄 거 같은 느낌?!? 아무튼 장윤창 선수가 좀만 젊어서 그 나카가이치랑 대결했었으면 정말 세기의 한일전이지 않았을까 했다.
오~~ 멋지다!!
😉
배구경기장도없던시절인데 저때가 한국배구가 더잘나간게 아이러니
배에 기름차면 그렇게됨.
당시엔 농구,배구장 같이 했던 시절임...장충 체육관 '80년대 초 갔을 때도 농구,배구 경기선 다 그어져 있었음...처음 본 배구경기는 김화복, 이은경 시절의 미도파와 현대의 여자 경기...
그러네 코트가 농구 코트에 네트 깐거네
저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저런거 보는걸 즐겼죠
@@kephas7772어떤곳은 핸드볼 경기선 라인도..ㅋ
역시 장윤창!
아니... 샹너메거 호이짜님이 여기서 왜 나오죠? ㅋㅋㅋㅋ
고려증권의 장윤창 선수를 정말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감동적이네요. 정말 멋진 선수 였습니다. 야구에서 최동원 선동열이 있다면 배구에선 장윤창 강만수 선수가 있었죠 ㅎㅎ
저 때 단연 고려증권은 탑이었죠. 90년대 초반에 시즌마다 남포동에서 사직체육관까지 가서 직관하고 왔더랬죠. 저 때 스파이크가 바닥에 꽂히면 체육관 내부가 떵!!!하는 소리가 전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65세?
@@이진규-n7w 왜 이러세요
현대자동차서비스 팀이 돈으로 잘하는 애들 싹쓸이(마낙길, 하종화,박종찬 등등..) 해가도...
항상 고려증권이 노익장 과시하며 항상 우승하던 90년대.....
고려증권 대단했죠. 전성기 시절 선수들 보다 막판 이수동 선수의 활약이 더 기억납니다.
@@브롤스타-x6k 맞습니다. 슈퍼스타가 즐비했던 현대나 그 이후 삼성배구단 초기 창단 시절에도 고려증권의 벽을 넘는게 힘들었죠.
장윤창은 전설입니다~~
어릴때 스파이크서브 보며 놀랐습니다~
17세 국대선발됐고 장윤창 최고였죠 👍 👍 👍
역시 우월한 사람들은 다르지.
옛 배구 시합구는 천연가죽으로 묵직했어요!
심지어 서브권이 있던 시절이자
17점 상한제 적용받던 시절이죠.
서브권이 있던 시절이라는게 먼뜻
@@kimjjim 서브넣는 쪽이 공격
성공하거나 블로킹을 성공하면
1점 따는거고 상대방이 공격을
성공하거나 블로킹을 하면 1점이
올라가는게 아니라 서브넣는 기회가
가는 식이지요.
지금처럼 공격성공하면 1점 올라가는
랠리포인트 제도가 아니구요.
랠리포인트 제도 도입된 것이
80년대 말인가 90년대 초반인가
5세트 한정으로 적용됐고 90년대
말에 전세트 랠리포인트제에 25점
내면 끝나는걸로 바뀌었죠.
아, 5세트는 17점 상한제 랠리포인트
적용되는 것은 동일.
@@kimjjim 서브권이 있어야만! 득점 할수 있었던 시절 입니다!
@@harangkisutv 경기후 선수 기록을 보면 득권 득점으로 나뉘어 있었죠
그때 장윤창 선수 멋있었습니다 배구 전성기를 시작했죠
고려증권 돌고래 스파이크 서브 장윤창.. 당시 고려증권 배구단은 야구의 해태같은 이미지가 강했죠... 모 기업의 지원이 많이 없어서 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서비스의 대항마였고... 후에 삼성화재가 나오기 전까지 최대 라이벌이었던 두 구단.. 하종화 와 장윤창 정말 잼있게 봤습니다.. 그 후에 용인 수지구 동천역에 쿠우쿠우 사장님으로 볼 줄은 상상도 못했죠...ㅎ 2017년도까지 봤는데 지금도 사장님으로 계시는지는 모르겠넹~ 그때도 주름빼놓곤 여전히 키크고 멋있어 보였는데..
그당시 종목별 우승팀으로
항상 우승할 순 없지만
야구는 해태, 농구는 기아, 배구는 고려증권으로 당연시 되던 시절.
장윤창 선수 둘째 아들이 농구선수 장민국입니다. 민국이명지초등학교 다닐때 장윤창 선수가 학교에 온 적이 있었는데 초딩들 공책 꺼내어 줄서서 싸인 받았었죠.다 해주셨던 기억이..
오 운동능력이.... 장난아닌데요 거의 1m가까이 점프하네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남자배구 보면서 가장 임팩트 있는 선수는 장윤창, 그 다음은 신진식!!
저는 개인적으로 마낙길 선수도 좋아했어요. ^^
저는 95년 슈퍼리그 때부터 배구 봤어요.
임꺽정 임도헌
월드스타 김세진
갈색폭격기 신진식
배구도사들 박희상,권순찬
제2의 강만수 소리듣던 이경수 요^^
아쉬운게.마낙길,노진수,하종화
이들의 플레이를 제대로 못봐서
아쉽죠
그리고 제 조카 중.고딩때 배구
보러가면 하종화,장윤창,박희상
이 세분이 싸인 해줄때
매너 젤 좋았습니다.
특히 하종화 감독님이 짱!!!
장윤창선수가 최초 스파이크 서브란걸 오늘 첨 알았네요
제가 배구 첨 접했을때는 장윤창 선수가 은퇴였는지 말년이었는지 이름은 아는데 활약한 기억은 가물가물 하네요
신진식 선수로 인해 블루팡스팬이 되었고 역대 스파이크서브의 강력함과 스피드는 탑이 아닐지라도 스파이크 서브의 폼은 단연 최고라 봄.
언젠가 부터 모든선수들이 스파이크서브를 넣고있는데 아직 신직식의 그 아름답고 간지나는 폼의 선수를 본 적도 없네요
배구 쪽의 천재는 저도 두명을 하는데 그게 신진식, 마낙길.
15점제 때 모습?...옛 15점제 땐 서브 블로킹도 허용되었던 시기임...나중 서브 블로킹 불가가 되었는데, 그 때부터 시작했죠..당시엔 스카이 서브라고도 했었음..그런데 그게 현행 25점제로 바뀌면서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옛 국대는 장윤창, 강만수, 강두태, 중앙에 속공 명수 듀오 문용관에 류중탁 등등... 경기대의 장윤창과 정의탁.. 인하대 콤비 문용관과 류중탁 멋있었음...
마낙길도 보고 싶네요
장윤창 오랜만이내 ^^
어린시절 기억나네요. 초등학교때 반 전체가 떠들썩했었습니다
고려증권 장윤창, 럭키금성에 이상열 이 생각나네요, 학교끝나고 토요일날 테레비 키면 낮에 중계했었는데.
이상열 최천식, 하종화 이렇게 나름 미남 배우 선수로 통함.
내가 봤던 저 장면, 똑똑히 기억하는 그대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P.S) 박철순 너클볼 영상도 다시 보고 싶은데..
저때는 진짜 토털배구 시절 서브권제라 장시간 경기를 해야해서 정말 공격루트도 다양했음
장윤창 얼마만이냐ㅋㅋㅋ
장윤창 선수 고려증권 시절 엄청났죠
추억 이네요 진짜
장윤창,이상렬,,,서울 인창고등학교 동문 선배님들,,,,,이상렬선수가 1년 선배라 그때 결승전이 있어서 단체로 학교에서 응원 연습하고 장충체육관으로 응원갔던 기억이,,,
맥가이버 머리 이상렬 선수 엄청 좋아했었네요
상렬이는 손도 매섭지요. 국대싸다귀
은석이는 . . ㅠ
농구코트를 배구코트로 쓰는게 그때 그 시절이 어떤지 보여주네요...
지금도 해외에선 흔함ㅋㅋ
세계적으론 농구>>>넘사벽>>>배구니까
@@WOSPKHA ㅇㅇ 토론토 랩터스 창단했을때 야구장이던 토론토 스카이돔 개조해서 홈구장으로 사용했음.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3콤파크에서 미식축구팀이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랑 같이 사용하기도 했고.
인생 첫 배구장갔을때가 90년대중반 대전에서 경기대 후인정이 있을때다. 당시 후인정의 백어택을 너무도 강렬하게 지켜봤는데 아직도 잊지못한다 그후로 30년이 지났네 배구가 좀더 흥했으면 좋겠는데
신진식 이전에 장윤창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저때는 서브권이 있던 시절이라 아시아선수들은 스파이크서브를 못넣는 수준이었습니다. 장윤창이 거의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스파이크 서브 넣을 수 있는 점프력과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당시 올림필 중계 보면 이탈리라, 네덜란드, 미국 선수들은 스파이크 서브를 대부분 선수들이 넣을 줄 알고 펑펑 쏘더군요.
장윤창은 당시 배구계의 차범근이었음
월드클래스 였는데 외국에 못나감.
슬로모션 점프봐~~~요즘말로 간지 쩌네!!!
다음 날 신문 스포츠 기사에 장윤창 돌고래 서브라고 기사까지 났습니다
실제 별명도 돌고래죠 ❤❤
저 시대 약간 뒤 대한항공의 최천식 선수가 인물로서는 남자 배구 선수 탑이었지 ...
와 완벽하네요.
90년대... 스파이크 서브, 일명 스카이서브 하면 대학생 선수들은 빠따 맞았다고 함. 서브 성격상 에러 확률이 높아서. 학생선수들이 저거 하면 멋부린다, 겉멋 들었다고 혼났다 함. 근데 당시 외국에선 서브를 강하게 넣어서 리시브를 흔드는게 흐름이었음...
분노의 스파이크 서브
인생 거의 60되도록 배구선수 이름기억하는 선수는 장윤창 하나뿐임......
저땐 스카이 서브도 잘 안넣던 시절
스카이 서브 넣는것만 봐도 신기하고 멋졌음
지금은 여선수들도 넣고 있지만
어릴적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시합 마친후 쉬고 계실대 사인 받은 기억이 납니다. 레전드 셨죠. 당시 강두태님과 한장석 님도 함께 계셔서 사인해 주시고요.
한창석선수 오랜만에 들어보네요.최천삭과 대한항공을 이끌었던 쌍두마차..
장윤창 김세진 신진식 하종화 임도헌..등등 실업팀 시절이 요즘 그립네
마낙길도 껴주셈~
저때 배구 재밌었지...
90년대 쯤인가....일본 나카가이치 있을때...한일전 축구만큼 쫄깃하게 응원했음.
나까가이치는 미남형이었죠 그리고 혼다 ㅋ
@@user-qsxsucew전 아오야마 선수 좋아했는데 장윤창이 호쾌하다면 아오야마는 우아하고 아름다웠는데
전 일본의 아오야마!!! 이름 맞나??! ㅋㅋ 미녀 배구선수...
신일본제철 선수 ㅋ
남자는 나카가이치 유이치, 여자는 야마우치 미카가 인기있었죠~
저때는 농구코트에서 배구도 겸했었나요?
네. 종합 실내 체육관... 핸드볼, 농구, 배드민턴, 탁구 등등...
@@harangkisutv 예전 능력이 부족했던 탓일까요...?
@@Choonsice시설과 기술 부족이죠 지금도 같은 체육관을 쓰는 구단들이 있습니다
세계 어느나라나 농구전용, 배구전용, 배드민턴 전용 체육관을 건설 및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고요 실내 체육관은 농구코트를 기본으로 하되 배구, 핸드볼, 배드민턴, 테니스, 격투기, 체조는 매트를 깔아서 경기를 진행합니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초반까진 체육관에다가 이 라인, 저 라인 붙이면서 경기했지만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84년부터 순차적으로 농구만 목재 플로어에 라인을 붙이고 그 이외의 종목은 매트를 깔아서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장윤창 유중탁 정의탁 이성희 박삼룡 이수동 문병택
아 추억 장윤창
저때는 스파이크 서브 자체도 흔하지도 않았고, 스파이크 서브를 직접 브로킹 하는 것도 가능 했죠. 장윤창은 강만수와 함께 80~90년대 우리나라를 이끈 공격수 입니다. 세터는 당시 세계 3대 세터 중에 하나인 김호철까지.
저 시절 일본 에이스 선수가 나카가이치 아니였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나카가이치는 아마 장윤창 세대보다 약간 뒤인 하종화 세대때 우리와 맞붙었을겁니다
나카가이차랑 장윤창은 7살차이라 나카가이치 전성기때는 이미 장윤창선수는 노장이였고 한국에서 라이벌을 찾자면 하종화였죠. 한국에서는 나카가이치가 인기많았고 일본에서는 최천식선수가 인기많았죠.
고려증권의 이수동 선수도 기억에 많이 남음. 연습생출신인걸로 아는데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리그라고 해봐야 1년에 몇경기 없던 시절인데.
지금보다 국제대회 성적은 훨신 좋았음.
이야이야
진짜 레전드였다.. 우리나라 배구의 장윤창 하종화 임도헌 마낙길...
내가 기억하는 역대 에이스들 : 강만수 장윤창 하종화 임도헌 마낙길 신진식 김세진 후인정
그 뒤로는 배구 안봐서 모름😢
임도헌은 저 시대 이후인거죠?
@@thw7580 네.
창-------멘
강만수, 강두태..그리고 장윤창
일본 탑 여배우가 공개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과 인기를 가졌던 스타였죠...당시 한류도 있기 전이라..일본 탑 여배우가 그러기 쉽지 않았거던요... 그 정도로 장윤창은 인기와 실력이 좋았습니다.
와~ 저당시엔 저정도가 강스파이크였구나 지금은 ...
공기압차이.공의재질이 지금이랑 다르니까
따지고보면 저 당시가 오히려 더 강력할듯
거의 스포츠 모든 종목에서 섬나라를 압살했던 시절
장윤창 마낙길 임도헌 나까가이치 추억의 이름들
강만수 강두태 장윤창 김호철 문용관 이종경 류중탁 신영철 최천식 이상렬 마낙길 하종화 임도헌 김세진 신진식 후인정 김상우 최세웅... 한국 배구 한획을 그었던 대표선수 이름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어봤음.
농구도, 국내 최초로 덩크 나올때 엄청 신기해 했었지.ㅋㅋ
저 시대 봤죠. 스파이크 보단 스카이 서브라고 했고. 저때 외국은 스파이크 서브를 많이 도입 했는데 국내는 어렵기도 하고 실패률이 높다고 꺼리던 때였죠. 이때 과감히 했던게 장윤창,
스파이크 서브 할때 마다 관중등 환호성이 엄청 났죠.
다만 실제로는 많이 시도 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실패 확률이 무척 높아서, 저렇게 성공 하는건 참 보기 어려웠죠.
저때는 서브 할때 공이 네트 건드리기만 해도 서브 실패로 간주 하던때라 더 힘들었음.
배구를 하다 농구로 전향한 현 창원 LG세이커스 포워드 장민국선수의 아버지.🎉
정의탁의 개인시간차 공격 알면 제또래
난 이걸 직관으로 봤죠 ㅎ
당시 장윤창,고강두태는 점프력이 1m 이상으로 흑인들을 압도~!ㅋ😊
장윤창 서전트 점프가 무려 1미터 90이라죠...2미터에 육작
스파이크 서브 하면 나카가이치가 생각난다. 1990년대 초반에 한국 배구팀 탈탈 떨던 그 일본 배구 선수. 언젠가..호주에서 8월 15일 광복절날 일본하고 붙었는데 세트 스코어 3:2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국이 졌지. 당시 호주 배구장 분위기가 일본 편향적이어서 더 아쉬웠는데, 30년 정도 지나니 한국을 더 응원해 줄 거 같은 느낌?!? 아무튼 장윤창 선수가 좀만 젊어서 그 나카가이치랑 대결했었으면 정말 세기의 한일전이지 않았을까 했다.
아! 잘생긴 일본선수 추억돋네~
”장윤창~“
장선수가 스피이크하면 항상 아나운서 하던 말
”장윤창~“
국내 경기였다. 경기대와 실업팀(무슨팀인지 기억 가물가물)이 경기하는데 13대9인가 10으로 경기대 지고 있었음. 장윤창 서브하러 나옴. 15대 13으로 경기대가 내리 점수 내면서 이김. 추가 설명 필요 없죠?
장윤창 정의탁 이상열 최천식...
남자배구도 스파이크 서브 보급이 안되었던 시기가 있군요.
우리나라 역대 최고 배구선수는 누가 뭐래도 강만수
강만수 선수는 세계적인 공격수죠~ 장윤창 선수한테는 미안하지만 한두단계 위급 선수죠~
강만수와 장윤창의 차이는
스파이크의 파워죠
강만수의 묵직하고 대포알같은 스파이크는 소련의 국대감독도 찬사를 보냈죠
세계4대 거포로 꼽혔구요
아무도 이상열 선수. 언급이 없네.ㅋ
피꺼솟.
어릴적 사직실내 체육관에서 장윤창선수에게 사인받았습니다.저시절은 야구를 포함해서 운동선수들 사인받는거 하늘에 별따기였었습니다.백구에대제전에 연습후 관중석 바로밑에 앉아쉬는 장윤창선수에게 입장할때 받은 책자를 팬과 함께 내려주었더니 거짓말처럼 사인해서 저에게 던져주시던 기억이 쌩쌩합니다.지금도 그사인 책자 집안 어딘가에있습니다.
아드님 두분중 한분이 하늘나라로 가셔서 저도 많이 슬펐습니다.언제나 응원합니다.나의 우상 장윤창 아저씨
나 김세진 팬이었는데 김세진 스파이크서브보다 강력한거 같은데?
내가 잘못봤나?? 점프가 왜 지금선수들보다 높아보이지??
더 잘함.배구 요즘 대형 선수 없지않음?
돌고래서브 올만이네
경기장 바닥보니까 그시절 경기장 인프라 참 처참했네
그래도 저시절 농구 배구 지금애들보단 휠씬 잘했고 죽어라열심히했지
대선배님들은 저렇게 잘했는데 지금애들은 뭐하는지..ㅉ
사람 바글바글하네
배구 인기 많았구나
나까가이치 보고 싶노 ㅋㅋㅋ
이분 어렷을때 너무 가난해서 라면만 드셨단다 키가 190이 넘는다 유전인가?
저때에는 우리나라 선수가 스카이서브를 시도한다는게 신기했던시절...
이 시대에 일본에 나카가이치 있지 않았나요?
마낙길
@ ㅎㅎㅎ 기억나요
강만수와 함께 대한민국 남자배구의 GOAT. 파워는 강만수가 다소 우위였지만 스킬은 확실히 장윤창이 우위.
농구장이냐 배구장이냐
경기장도 없어서 농구장에 줄 그어놓고 하던 시절 저때가 우리나라 배구 리즈 시절이였음 ㅋㅋ
티비서 이걸 지켜보던 시절에, 모든 구기 종목이 일본에게 발리는 시절이 돌아 올 줄은
장윤창 말고는 이제 이름아는 배구선수도 없네 ㅋㅋ
이시절엔 배구가 일본하고 박빙이거나 항상 약간 우세 였는데, 지금은 일본하고 붙으면 학살 당하느라고 눈뜨고 보기가 두려워
돌고래 스파이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