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영상은 시리즈 중 10번째 영상으로 이전 영상들을 먼저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본 영상부터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 1. 칼 시리즈 보기: ua-cam.com/video/hfEzUsx3gbc/v-deo.html 2. 창 시리즈 보기: ua-cam.com/video/KELXTgQmVqI/v-deo.html 3. 활/석궁 시리즈 보기: ua-cam.com/video/UipVIHOjxr0/v-deo.html
형태로만 봤을 떄 제작상의 난이도로 보면 편날의 도 보다는 양날의 검이 더 만들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직선의 형태를 유지하며 중앙을 기점으로 양날을 동일한 각도로 가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시에는 검보다는 더 쉽고 빠르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도가 더 많이 보급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편날 직도보다 양날의 검이 먼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유는 형태에 의한 제작상의 난이도 보다는 재료적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가 가공할 수 있었던 금속은 녹는 온도의 한계 떄문에 청동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청동은 나중에 사용하게 된 철에 비해 인성이 낮았기 때문에 부러지기 쉬웠고, 그렇기 때문에 휘둘러서 베는 도로 만들면 전단 응력에 취약해 쉽게 부러지므로 의도한 사용 방법대로 사용하기가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청동제 무기들은 찌르는것을 주로 하는 검의 형태로 만들었고, 인류 초기의 전쟁용 무기로서의 도검은 모두 사람을 '찔러 죽이는' 용도였습니다. 도검을 찌르는 형태로 사용하면 전단응력이 아닌 압축력을 받기 때문에 찌른 상태에서 비트는 힘에는 취약하지만 단순하게 찌르고 뽑아내는 동작은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습니다. 기마 민족이 곡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영상에 나온대로 말 위에서 사용하는 칼인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 이유를 좀더 파고들어 보면 두손으로 잡지 않고 '한 손으로 잡고 휘둘러 베는 칼'이기 때문입니다. 즉, 한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말의 달리는 속도에 더해 한손으로 후려쳐 베는 용도의 무기이며, 일정한 만곡율을 가진 칼은 그 곡율로 인해서 세밀한 조작 없이도 사람의 살을 베어내기가 더 수월합니다. 전장에서 창 같은 주무기보다 우선도가 떨어지는 부무장에 가까웠기 때문에 만곡도의 날 길이는 일정 이상 길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문화권에 따라 양손 사용임에도 벨수도 있고 찌를수도 있는 두가지 동작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중간적 형태를 선호하는 지역도 있고(ex 일본도), 한손으로만 잡고 쓰더라도 찌르기를 우선시 한 지역도 있습니다(ex 레이피어). 이 경우는 지상에서 빠른 전진과 후진을 바탕으로 1대1의 대결을 주로 하던 지역적 특색이 영향을 끼친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평상시 칼 한자루만을 휴대 하며 몸을 지키는데에 사용하거나 1대1 대결에 사용했던 경우로, 당시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도 많이 관여됩니다.
@@sr4840 말씀하신대로 인간이 한손으로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도검의 무게는 대략 1kg 내외~ 1.5kg 선이라고 보면 됩니다만, 도신의 형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무게 밸런스의 특성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단순히 무게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손 곡도임에도 불구하고 날길이가 길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기병도인 세이버의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역사적으로 총기가 개발된 시점에서 총포로 무장한 다수의 보병과 권총과 세이버로 무장한 소수의 기병으로 편제가 되는 경우로, 물론 이 때에도 도검이 전장에서의 주무기로서 활약하는 경우는 아니었고, 손잡이쪽의 도신의 두께는 7~8미리 정도로 유지하지만, 칼 끝으로 갈수록 급속하게 두께를 얇게 만듦으로서 얇게는 2미리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뽑아냄으로서 무게 중심이 손잡이쪽에 쏠린 형태로 한손 도검으로서도 날길이가 85센티에 육박하는 긴 도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이미 총포에 의해 과거 냉병기 시대의 '갑옷'이라는 개념이 무력화 된 상태에서, 적도 아군도 단순한 천으로 된 제복 군복을 입고 싸우던 시대에, 길이를 위해 두께나 폭을 희생한 얇고 날카로운 도검에 의해서도 충분히 무력화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운용 가능한 도검이기도 했습니다.
직도가 중무장한테 더유리하니 곡도를 쓴 이유는 경무장이기 때문이란 글들이 다수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칼은 아무리 잘쳐줘도 개인화기... 권총급입니다. 소총급 무기가 창류 무기죠 그리고 유목민의 주무기는 활입니다. 몽고가 1인당 말 6마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다른 유목민도 안그랬을까요? 보급용 말에 각종 무기가 실리고, 필요에 따라 다른 무기를 쓸수 있게 준비하겠죠 유목민은 편제는 기마부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단일 편제라곤 하나, 무기는 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쓰는 멀티 편제였습니다. 그리고 툭까놓고... 누가 전쟁을 칼만 들고 합니까
저 북방유목민들이 쓰던 곡도도 고려와 조선도 사용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특히 고려시대 거란과 여진과의 전쟁때 거란과 여진족으로 부터 창, 칼과 갑옷, 말, 낙타등을 노획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여진과의 전쟁 이전에는 여진족들이 고려에 조공품으로 칼을 바쳤다고 나오고 또 고려와 몽골과의 전쟁과 전쟁후 몽골 원나라의 부마국 간섭기때 몽골의 영향을 받아 고려군들도 저 북방유목민들이 사용하던 곡도를 방패와 같이 사용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고 고려말 동북면지방의 여진족 출신 장군이었던 이성계도 고려에 귀화를 하기전에 조부때 부터 몽골 원나라의 지방관 관료출신이자 여진족들과 인연이 깊었기때문에 아마도 조선군도 고려의 영향을 받아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까지는 일부 지방의 군대에서는 저 북방유목민들이 쓰던 곡도를 사용했을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여진족들과 가까이 붙어있는 국경지대인 평안북도나 함경북도에 주둔하는 지방의 군대나 일부 치안을 담당하는 관군들도 긴창과 일직선의 직도와 더불어 여진족들과 몽골 유목민 들이 사용을 했던 곡도를 일부 같이 사용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애초에 경무장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경우가 많다보니...곡도를 선호하게 된거죠. 초원은 까놓고 말해 더워요...도저히 갑옷을 입힌 병력을 유지할만한 여건을 지닌곳이 아니였습니다. 낮에는 미치도록 덥고 밤에는 돌아버리게 춥고..자연스럽게 갑옷 아니라 환경에 버틸수 있는 의복위주의 방어구를 입게 된거죠... 이런 경방어구를 상대하기에는 곡도가 훨씬 더 유리했으니.뭐.... ㅋ
얌나야문화 쿠르간문화 등등 고대 유라시아 초원 전사들 유물 보면 기원전 20세기 이전부터 전사들은 골제 목제 찰갑을 갖추고 있었읍니다. 목 뒤에 널판지처럼 생긴 방호구를 매달기도 했고(영화 알렉산더 이소스 전투때 페르시아 중기병들 어깨 뒤에 매단 장비) 가죽재질이긴 하지만 사람과 말이 다 갑옷으로 무장한 최초의 중기병이 탄생한 곳도 기원전 6세기 경 우크라이나 초원지대 이고 스키타이 인들은 본격적으로 금속 재질로 스케일아머나 찰갑을 널리 착용했습니다.
@@미제드론 유목민의 적들은 결국 같은 유목민인데..그들의 생활 반경 자체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넓었죠. (..장에 나가려고 말타고 몇날이나 달린다는 기록이 제법 많죠..) 그리고 그 반경은 전투 환경 자체도 매우 넓었다는 거구요..그래서 기동성을 더 살리기 위해서 경장비나 혹은 급소만 가린 형태를 선호했죠. 근대 그건 주로 소규모 씨족간의 싸움이나 약탈, 같은 상황인거고.. .. 전쟁상황에선 당연히 이야기가 많이 달랐죠.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놈들이 날뛴거구요.
스키타이 기술력은 아마도 열악한 환경속에서 발현된게 아닌가 합니다. 얌나야 안드로노브 쿠르간유목민 등등 아리안족으로 생각되는 유라시아 초원지대 기원전 3000~2000년 경 유물 유적 보면 그때 이미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캠핑용품 장비들와 유사한게 참 많습니다. 말 타는데 용이하기 위해 고안된 바지도 그렇고요.
유목민족의 칼 하니까 생각나는데 패용법, 즉 칼을 허리에 차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패용법은 칼손잡이가 앞으로, 칼집이 뒤로 향하게 되어있어 언제든지 칼을 바로 뽑을수 있게 한 것이었는데, 유목민족들은 말 위에서 생활하다보니 그렇게 패용하면 말 위에서 몸을 기울일 때 칼이 앞으로 빠져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방유목민족들은 칼을 허리에 찰 때 칼집이 앞으로, 칼손잡이가 뒤로가게 패용했다고 합니다.
환도가 처음 탄생한게 열처리 기술이 높아지면서 생긴거 아닌가요? 똑같은 직도라도 열처리를 통짜로한 칼이 초기열처리 방식이고, 직도를 칼날과 칼등부분을 열처리를 다르게 하면 열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휘면서 약간의 곡선이 생기면서 환도가 되고 이걸을 나중에는 설계단계에서 약긴휘게 설계해서 만든게 우리가 잘아는 일본도, 아라비아검 일겁니다.
개인적으로 알기로 저런 훤칼을 만들라면 상당한 열처리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압니다 직도는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지만 일본도도 그렇지만 진흙으로 열전달을 다르게 하고 급냉같은 열처리를 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칼을 망칠수도 있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데 저런 곡선이 큰 칼을 제작할수 있다는건 상당한 제련기술이 있다는거죠 뭐 솔직히 막말로 직도는 거푸집 방식으로 대량 생산도 가능하기도 하지만 곡도는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일제의 검과 유럽의 롱소드보다도 좋아하느 양식입니다 한손검으로서 역시 손잡이도 작은데 초승달처럼 휘어진 것이 베기 위력조차 단숨에 비무장된 사람의 목을 떨어트릴정도입니다. 지금의 사우디 아랍의 사형 집행에서도 저 검을 한팔로 쥐고 내리치는데 단번에 목이 구를정도였죠
유목민의 칼에 대한 상당히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고퀄리티영상 감사합니다. 유목민들은 우리들 생각과 다르게 상당히 화려하죠. 정주문명이야 집에 중요한 물건을 놔두지만, 유목민은 돌아다니기 때문에 값비싼것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래서 목걸이, 팔찌, 귀걸이, 반지 같은 귀중품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옷도 비단으로 된 화려한 색상을 입지요. 중요한건 전부 몸에 걸친다고 보면 됩니다. 작든 크든 칼은 유목민에게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었고, 남자가 여자에게 칼을 주고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지요. 에미시는 이런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고, 조선시대 은장도 역시도 비슷하게 남아있는거죠. 우리들도 선조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증거가 남자들의 귀걸이에서 알 수 있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군이 왜군수급이라고 가져왔는데, 귀걸이 자국(피어싱)이 있어서 조선인을 잡아서 머리를 깎아서 구라친걸 알아냈죠.
음 직검은 양날이 효율적이고, 끝으로 찌르기도 해야해서 날카로운 부분을 버텨줘야 할 두께가 각각 필요해지고(받춰주는 부분이 부실하면 부러질 우려가 생길듯), 일단 만들고 나서도 날을 갈아야 하는 면적이 넓어져 관리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직검의 형태라면 날이 한쪽에만 있더라도 위기시에는 칼을 보지 않고 뽑고 휘둘러야 하는데, 굴곡을 주면 날이 있는지 구분이 쉬웠을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유목민 특성상 몇천명 몇만명의 전투 보다는 소규모 전투였을 것이기 때문에, 서양의 검만큼의 내구도가 필요하지도 않았을꺼고요. 소규모의 잦은 전투로 죽은자들의 칼을 확보할 기회가 많아졌을것이라 엄청난 내구성이 필요하지도 않았을것 같고요. 또 칼을 만들어봐야 몇십 몇백 자루겠지만 투자되는 원석 대비 칼의 자루수도 많이 나올 것 같고요.
구르카 ㆍ단검, 파괴력이 약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앞으로 휨, 역발상적 무기라 똑똑한 민족이 사용 우리나라는 이를 무기화하지 못하고 농기구화함.. 이름하여 호미 직도 ㆍ장,단검 파괴력 노멀 체킹, 집립보행 무장들 사용 환도ㆍ장검+말, 파괴력이 강함, 힘을 흘려야 함 그래서 사족보행 무장들이 사용 이정도로 정리되는거 같네요
약탈이 빈번하고 고기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문화권은 칼이 필수가 될 수 밖에 없군요. 칼의 나라 일본조차 식기구는 칼이 아닌 젓가락이죠. 이들은 어차피 농경문화 해양문화 권역이라서 당연하겠지만요. 그런데 이번 양상도 그렇고 영상 제작에 참조한 영화나 드라마들을 남겨주실 수 있나요? 유목민의 생활을 조금 더 엿볼 수 있는 재밌어보이는 것들이 보이네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출연한 건 몽골이라는 심플한 제목의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 년 전에 잠깐 본 것 같긴 한데 나머지는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네요~
확실히 마상무예의 특성상 가속도는 늘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찌르기는 늘 큰 문제라 유럽의 마상렌스도 창을 들고 돌파가 아니라 찌르고 바로 놓습니다. 안 그러면 손목아지가 날아가는...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상도가 환두대도 입니다. 예쁜 고리에 끈을 묶어서 팔에 걸어서 사용하는 것이죠
09:33 근데 오랑님 말이 오히려 정답인게 유목민은 남의 동네를 자주 약탈해야 하는데... 무기가 나쁘면 역으로 털릴수도 있어서 야금술과 철 주조술이 뛰어난게 오히려 정상입니다. 자기네 기술이 당장에 딸리더라도 다른 국가를 약탈해서 대장장이들을 노예로 삼아서라도 그 기술을 여기저기서 흡수해서라도 뛰어난 무기를 만들었겠죠...
유목민 기병대의 검, 몽골제국의 도검이 세계사에서 가장 강력한, 전 세계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 검이기도 하죠. 고려를 침략해서 고려의 환도로 진화시켰고, 그리고 몽골제국이 이슬람, 중동을 정복하면서 이란의 샴쉬르(시미터)가 만들어졌고 그 샴쉬르(시미터)의 영향을 받아서 유럽이나 이슬람의 검들도 바뀌었죠.
9분 26초 정도에 보이는 금공품은 그리스 제작입니다. 같은 시기로 보면, 스키타이쪽이 확실히 좀 거칠거나 투박한 조형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투구를 쓰고 말을 탄 채로 적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묘사된 금공품도 마찬가지이구요. 따라서 거기 그려진 상황도 그리스의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 시기 스키타이의 대표적인 조형은 면각의 사슴류나 맹수를 묘사한 금공품입니다. 저 작품들에 비하면 확실히 거칠고 단순한 조형이죠.
병력이 밀집해서 전투를 벌이면 칼을 휘두를 공간이 부족하므로 직도라기보단 찌르기용으로 끝이 날카로운 검이나 창이 보병용 무장이 되죠. 그리고 보호구가 충실한 적병들을 상대로 휘두르는 공격을 한다면 철퇴나 도끼같은 둔기가 더 효과가 있죠. 고구려 벽화에도 도끼병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주 좋은 영상입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첨언 하나 하자면 돌궐제국 역시 그 시작은 금속제련으로 이웃부족들과의 중계무역 및 유연제국에 상납하던 친구들이 힘을 키워서 중앙의 유연을 전복하고 제국을 세우기도 했죠. (부탁 하나만 드리자면 영어라틴식 명칭인 투르크를 튀르크로 바꾸어만 주세요)
*본 영상은 시리즈 중 10번째 영상으로 이전 영상들을 먼저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본 영상부터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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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 시리즈 보기: ua-cam.com/video/hfEzUsx3gbc/v-deo.html
2. 창 시리즈 보기: ua-cam.com/video/KELXTgQmVqI/v-deo.html
3. 활/석궁 시리즈 보기: ua-cam.com/video/UipVIHOjxr0/v-deo.html
한국이 유례없이 큰게 원 간섭기 80년동안 역대 몽골이 섞여서 만약 동북아나 동남아 차이가 없는데 한국 국적이나 일번국적 달고 본인이 신장이 크다면 보기싫은 느낌의 비율이 십중팔구임. 왜냐 북방노예 피가 흐를 수 있기에. 실제 유목 문화들은 엄청 고급스러움.
단순히 칼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칼이 등장한 배경과 다른 칼과의 비교, 사용하게된 이유를 같이 설명해주셔서 늘 좋은거같아요
이번 영상은 유목민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돼서 놀랐습니다
형태로만 봤을 떄 제작상의 난이도로 보면 편날의 도 보다는 양날의 검이 더 만들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직선의 형태를 유지하며 중앙을 기점으로 양날을 동일한 각도로 가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시에는 검보다는 더 쉽고 빠르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도가 더 많이 보급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편날 직도보다 양날의 검이 먼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유는 형태에 의한 제작상의 난이도 보다는 재료적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가 가공할 수 있었던 금속은 녹는 온도의 한계 떄문에 청동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청동은 나중에 사용하게 된 철에 비해 인성이 낮았기 때문에 부러지기 쉬웠고, 그렇기 때문에 휘둘러서 베는 도로 만들면 전단 응력에 취약해 쉽게 부러지므로 의도한 사용 방법대로 사용하기가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청동제 무기들은 찌르는것을 주로 하는 검의 형태로 만들었고, 인류 초기의 전쟁용 무기로서의 도검은 모두 사람을 '찔러 죽이는' 용도였습니다. 도검을 찌르는 형태로 사용하면 전단응력이 아닌 압축력을 받기 때문에 찌른 상태에서 비트는 힘에는 취약하지만 단순하게 찌르고 뽑아내는 동작은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습니다.
기마 민족이 곡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영상에 나온대로 말 위에서 사용하는 칼인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 이유를 좀더 파고들어 보면 두손으로 잡지 않고 '한 손으로 잡고 휘둘러 베는 칼'이기 때문입니다. 즉, 한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말의 달리는 속도에 더해 한손으로 후려쳐 베는 용도의 무기이며, 일정한 만곡율을 가진 칼은 그 곡율로 인해서 세밀한 조작 없이도 사람의 살을 베어내기가 더 수월합니다.
전장에서 창 같은 주무기보다 우선도가 떨어지는 부무장에 가까웠기 때문에 만곡도의 날 길이는 일정 이상 길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문화권에 따라 양손 사용임에도 벨수도 있고 찌를수도 있는 두가지 동작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중간적 형태를 선호하는 지역도 있고(ex 일본도), 한손으로만 잡고 쓰더라도 찌르기를 우선시 한 지역도 있습니다(ex 레이피어). 이 경우는 지상에서 빠른 전진과 후진을 바탕으로 1대1의 대결을 주로 하던 지역적 특색이 영향을 끼친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평상시 칼 한자루만을 휴대 하며 몸을 지키는데에 사용하거나 1대1 대결에 사용했던 경우로, 당시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도 많이 관여됩니다.
만곡도의 길이적 한계는 부무장이어서가 아니라 위에 서술하셨듯이 한손 칼이기 때문 아닐까요?
한 손으로 쓰는 무기와 양 손으로 쓰는 무기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무게 등의 태생적 문제때문에 길이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느 문화권이든 동일하구요.
@@sr4840 말씀하신대로 인간이 한손으로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도검의 무게는 대략 1kg 내외~ 1.5kg 선이라고 보면 됩니다만, 도신의 형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무게 밸런스의 특성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단순히 무게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손 곡도임에도 불구하고 날길이가 길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기병도인 세이버의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역사적으로 총기가 개발된 시점에서 총포로 무장한 다수의 보병과 권총과 세이버로 무장한 소수의 기병으로 편제가 되는 경우로, 물론 이 때에도 도검이 전장에서의 주무기로서 활약하는 경우는 아니었고, 손잡이쪽의 도신의 두께는 7~8미리 정도로 유지하지만, 칼 끝으로 갈수록 급속하게 두께를 얇게 만듦으로서 얇게는 2미리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뽑아냄으로서 무게 중심이 손잡이쪽에 쏠린 형태로 한손 도검으로서도 날길이가 85센티에 육박하는 긴 도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이미 총포에 의해 과거 냉병기 시대의 '갑옷'이라는 개념이 무력화 된 상태에서, 적도 아군도 단순한 천으로 된 제복 군복을 입고 싸우던 시대에, 길이를 위해 두께나 폭을 희생한 얇고 날카로운 도검에 의해서도 충분히 무력화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운용 가능한 도검이기도 했습니다.
인성:금속의 질긴성질
직도가 중무장한테 더유리하니 곡도를 쓴 이유는 경무장이기 때문이란 글들이 다수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칼은 아무리 잘쳐줘도 개인화기... 권총급입니다.
소총급 무기가 창류 무기죠
그리고 유목민의 주무기는 활입니다.
몽고가 1인당 말 6마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다른 유목민도 안그랬을까요? 보급용 말에 각종 무기가 실리고, 필요에 따라 다른 무기를 쓸수 있게 준비하겠죠
유목민은 편제는 기마부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단일 편제라곤 하나, 무기는 상황에 따라 다른 무기를 쓰는 멀티 편제였습니다.
그리고 툭까놓고... 누가 전쟁을 칼만 들고 합니까
저 북방유목민들이 쓰던 곡도도 고려와 조선도 사용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특히 고려시대 거란과 여진과의 전쟁때 거란과 여진족으로 부터 창, 칼과 갑옷, 말, 낙타등을 노획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여진과의 전쟁 이전에는 여진족들이 고려에 조공품으로 칼을 바쳤다고 나오고 또 고려와 몽골과의 전쟁과 전쟁후 몽골 원나라의 부마국 간섭기때 몽골의 영향을 받아 고려군들도 저 북방유목민들이 사용하던 곡도를 방패와 같이 사용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고 고려말 동북면지방의 여진족 출신 장군이었던 이성계도 고려에 귀화를 하기전에 조부때 부터 몽골 원나라의 지방관 관료출신이자 여진족들과 인연이 깊었기때문에 아마도 조선군도 고려의 영향을 받아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까지는 일부 지방의 군대에서는 저 북방유목민들이 쓰던 곡도를 사용했을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여진족들과 가까이 붙어있는 국경지대인 평안북도나 함경북도에 주둔하는 지방의 군대나 일부 치안을 담당하는 관군들도 긴창과 일직선의 직도와 더불어 여진족들과 몽골 유목민 들이 사용을 했던 곡도를 일부 같이 사용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것 같습니다.
채널 컨셉은 판타지 오락 인데 내용은 학술 논문 수준 ㅎㅎㅎㅎ정성과 노력과 식견에 감탄하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논문수준은 에바임...
좋아하니까 진심으로 하는거다
by 건담 빌드 파이터즈 트라이
@@sedumits8231 논문은 써봤냐 단편 논문은 암만 읽어도 딱 이수준임 논문 엮어 현재 트렌드로 내놓는게 상업책인데 대충 지금 관심 가는 책만 봐도 논문 흐름정돈 안다무슨 논문이 뭐다 품평질이야 입시 대비하는 중고딩이노.
오락이 아니라 오랑입니다.. 채널 이름이나 제대로 알고 좀;;
칭찬 한마디 남기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부려쓰..
자료출처 댓글이나 영상마지막에 올려두는게 매번 댓글 다시는 것보다 쉽고 빠르고 공신력있어보일것 같습니다.
이채널 겜하다가 라면먹으면서 커피한잔 하면서 보기좋음ㅇㅇ내용도 심도있고 나레이션하는 쥔장목소리도 편하고
서론이 엄청 긴데 시작은 여기입니다. 3:48
와우 무기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간식 영상 감사합니다
썸네일에 이끌려 왔는데
내용이 정말 알차네요
곡도에 관한 논문을 읽은 것 같습니다
진행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오랑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ㅎㅎㅎ 특히 자료 직접 찾아 영상 제작하셨다는 점, 대단하세요 ㅌㅋ
애초에 경무장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경우가 많다보니...곡도를 선호하게 된거죠. 초원은 까놓고 말해 더워요...도저히 갑옷을 입힌 병력을 유지할만한 여건을 지닌곳이 아니였습니다. 낮에는 미치도록 덥고 밤에는 돌아버리게 춥고..자연스럽게 갑옷 아니라 환경에 버틸수 있는 의복위주의 방어구를 입게 된거죠... 이런 경방어구를 상대하기에는 곡도가 훨씬 더 유리했으니.뭐.... ㅋ
얌나야문화 쿠르간문화 등등 고대 유라시아 초원 전사들 유물 보면 기원전 20세기 이전부터 전사들은 골제 목제 찰갑을 갖추고 있었읍니다. 목 뒤에 널판지처럼 생긴 방호구를 매달기도 했고(영화 알렉산더 이소스 전투때 페르시아 중기병들 어깨 뒤에 매단 장비) 가죽재질이긴 하지만 사람과 말이 다 갑옷으로 무장한 최초의 중기병이 탄생한 곳도 기원전 6세기 경 우크라이나 초원지대 이고 스키타이 인들은 본격적으로 금속 재질로 스케일아머나 찰갑을 널리 착용했습니다.
@@미제드론 유목민의 적들은 결국 같은 유목민인데..그들의 생활 반경 자체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넓었죠. (..장에 나가려고 말타고 몇날이나 달린다는 기록이 제법 많죠..) 그리고 그 반경은 전투 환경 자체도 매우 넓었다는 거구요..그래서 기동성을 더 살리기 위해서 경장비나 혹은 급소만 가린 형태를 선호했죠. 근대 그건 주로 소규모 씨족간의 싸움이나 약탈, 같은 상황인거고.. .. 전쟁상황에선 당연히 이야기가 많이 달랐죠.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놈들이 날뛴거구요.
몽골이랑 만주는 존나 추워요....
스키타이 기술력은 아마도 열악한 환경속에서 발현된게 아닌가 합니다. 얌나야 안드로노브 쿠르간유목민 등등 아리안족으로 생각되는 유라시아 초원지대 기원전 3000~2000년 경 유물 유적 보면 그때 이미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캠핑용품 장비들와 유사한게 참 많습니다. 말 타는데 용이하기 위해 고안된 바지도 그렇고요.
요즘 이런 중세무기나 전쟁얘기가 그렇게 재밌더라
자료 모은다고 엄청 고생 하셨을것 같네요 감탄하고 갑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라고 서두에 있었지만,
당신 자체가 전문가.
유목민족의 칼 하니까 생각나는데 패용법, 즉 칼을 허리에 차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패용법은 칼손잡이가 앞으로, 칼집이 뒤로 향하게 되어있어 언제든지 칼을 바로 뽑을수 있게 한 것이었는데, 유목민족들은 말 위에서 생활하다보니 그렇게 패용하면 말 위에서 몸을 기울일 때 칼이 앞으로 빠져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방유목민족들은 칼을 허리에 찰 때 칼집이 앞으로, 칼손잡이가 뒤로가게 패용했다고 합니다.
맞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활쏘기가 주특기라 칼자루가 앞을 향해 있으면 활대와 칼자루가 자주 부딪혀서 활쏘기할때 매우 불편하게 되므로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항상 칼자루가 뒤를 향해 있는 식으로 차고 있어야 하죠...
울나라랑 같네
오랑님이 일본도검(카타나 및 타치)과 한국도검(환도 및 환두대도)의 분명한 차이점을 다루는 영상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갑주가 북방계 유목민족과도 닮안 점이 많죠
우리민족의 태생이 유목민에 가까워요...그래서 마잔마술이 발달했고 기마전투에 능숙하고 기갑기마군대가 있었죠...백재에 기병토기처럼...기마병은 활이 주 무기라 칼 폐용시 자루가 앞으로 오면 말타기도 힘들고 쓰기도 힘들죠...그래서 손잡이가 뒤로 가야 합니다...
결과적이지만, 곡도가 더 잘 베어지기도합니다. 도마에서 썰 때 문질러 써는 듯한 효과가 곡도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가져다 댈 때 미끄러지면서 더 잘 베어지는....
구독하고 갑니다.제게 꼭 필요한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환도가 처음 탄생한게 열처리 기술이 높아지면서 생긴거 아닌가요? 똑같은 직도라도 열처리를 통짜로한 칼이 초기열처리 방식이고, 직도를 칼날과 칼등부분을 열처리를 다르게 하면 열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휘면서 약간의 곡선이 생기면서 환도가 되고 이걸을 나중에는 설계단계에서 약긴휘게 설계해서 만든게 우리가 잘아는 일본도, 아라비아검 일겁니다.
내용은 진짜 유익했는데 코막히셨나요 ㅋㅋ 목소리가 ㅋㅋ 들을 때마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라 일단 자막으로 봤습니다.
성우분 코로나 걸리셨어요ㅠ
@@Orang_Fantasy 앗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 절삭력을 높이기 위한~
그리고 칼이 안박히고 잘 빠지게 하기 위해서.
역시 곧은 것보다 휜 게....?
직꼬츄보다 휜꼬츄가 더 좋음?
@@talkertalker0 좋지요
기병전투에서 칼은 베기용이라 휜겁니다 절삭력의 문제보다 항상 방편을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오랑님 오늘도 영상 재밌게 보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짧은 다큐 보는것 같아 재밌네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1도 안궁금했는데, 썸네일 보니깐 거부하기가 너무 힘들잖아... 이걸 어케 안눌러봐.. 치사해
가장 큰 이유는 전투에서의 쓰임새에 있음. 고로 곡도는 마상에서의 쓰임이 직도보다 아주 좋기 때문에 점점 직도에서 곡도로 변해갔고 이후는 모두가 곡도로 바뀜. 그리고 지면에서의 싸움할때도 그에 맞게 검술과 전술이 생겨남.
구독꾹하고나갑니다. ..아주 좋은영상이고 배울게많아좋읍니다...
멋지십니다
개인적으로 알기로 저런 훤칼을 만들라면 상당한 열처리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압니다 직도는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지만 일본도도 그렇지만 진흙으로 열전달을 다르게 하고 급냉같은 열처리를 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칼을 망칠수도 있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데 저런 곡선이 큰 칼을 제작할수 있다는건 상당한 제련기술이 있다는거죠 뭐 솔직히 막말로 직도는 거푸집 방식으로 대량 생산도 가능하기도 하지만 곡도는 아니니까요
유목민족이 수백년이나 한 곳에 머무른다? 하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유목민족의 삶은 미국 서부의 광대한 초원지대에서 방목을 통한 목축업을 하며 살아가던 카우보이들의 삶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원래도 정주를 안 한다 해서 발 닿는데로
떠돌아 다니는게 아니라 왠만해서는 이미 정해진
루트를 뱅글뱅글 돌면서 유목 했던거라
미국이 광대한 영토를 다니면서 방목 안했슈. 주변 인근만 다녔슈.
개인적으로 일제의 검과 유럽의 롱소드보다도 좋아하느 양식입니다 한손검으로서 역시 손잡이도 작은데 초승달처럼 휘어진 것이 베기 위력조차 단숨에 비무장된 사람의 목을 떨어트릴정도입니다. 지금의 사우디 아랍의 사형 집행에서도 저 검을 한팔로 쥐고 내리치는데 단번에 목이 구를정도였죠
뒷편보고 학술적노력에 놀라 앞편까지찾아 좋아요붙이네요
그동안 유목민들이 금속을 그저 무역을 통해 얻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정말 양질의 컨텐츠....감사합니다 갑옷의 역사도 한번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영상에 잘못된 점이 있네요.
너무 업로드가 느립니다!!!!
옛날 사람들도 경제적이고 카운터를 치기 위해 항상 궁리했다는걸 영상들 보면서 배웠네요.
짤하나하나 넣는 것도 신경썼을텐데 고생 많으시네요.
항상 재밌는 영상 고맙습니다!!!!
(아재 개그도 많이 넣어 주세여!)
응원 감사합니다. 하지만 영상을 만들 때 그 주제에 해당되는 모든 국내 도서를 읽고 영상을 만들기 때문에 한 주에 하나도 너무 벅차군요ㅠ 그 점은 이해해 주세요ㅠ 지금도 한중일 칼 조사 중인데 자료가 너무 없네요ㅠ 눈 빠집니다ㅠㅠ
@@Orang_Fantasy 허ㅠㅠㅠ 고생 많으십니다 ㅠㅠ 자료도 없고 주제도 어렵고 ㅠㅠ 덕분에 올려주시는 영상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ㅠㅠ 오미크론 심한데 건강 잘챙기세요ㅠㅠ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구독하고 갑니다.
영화 몽골을 일전에 보고나서..
곡도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12:09
테무진이 칼을 뽑아들었을때 멋졌습니다
주인장님 고생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10년전에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한 무기와 방어구 서양편 시리즈의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연결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주류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한두가지 고증 오류쯤은 너무 자책하지 마시길.
꿀잼이었다 이번편
유목민의 칼에 대한 상당히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고퀄리티영상 감사합니다.
유목민들은 우리들 생각과 다르게 상당히 화려하죠. 정주문명이야 집에 중요한 물건을 놔두지만, 유목민은 돌아다니기 때문에 값비싼것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래서 목걸이, 팔찌, 귀걸이, 반지 같은 귀중품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옷도 비단으로 된 화려한 색상을 입지요. 중요한건 전부 몸에 걸친다고 보면 됩니다.
작든 크든 칼은 유목민에게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었고, 남자가 여자에게 칼을 주고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지요. 에미시는 이런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고, 조선시대 은장도 역시도 비슷하게 남아있는거죠.
우리들도 선조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증거가 남자들의 귀걸이에서 알 수 있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군이 왜군수급이라고 가져왔는데, 귀걸이 자국(피어싱)이 있어서 조선인을 잡아서 머리를 깎아서 구라친걸 알아냈죠.
재밌게 잘봤습니다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 질렀어~ 어우
재밌어서 구독과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다른 영상도 봐야징~ ㅎㅎ 😊👍
곡도는 기마자세에서 어깨움직임 반경 만으로 칼을 뽑을수 있을때 최대 길이를 보장합니다
직선형 검을 말 위에서 뽑다보면 같은 길이일때 칼끝의 걸림이 생깁니다
스키타이, 흉노같은 유목민족 무기와 장신구 좋아하는데 영상으로 보니 더 재밌네요~ 칼의 재료는 어떻게 구했을까 궁금했는데 이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유목민이 말이 유목민이지 좋은 땅 발견하면 정착도 했다네요. 철 생산지 같은 곳은 늘 상주하는 이들이 있었고 다른 유목민들이 노예와 철을 바꿨다죠. 그럼 철 생산자 유목민이 그 노예로 또 철을 캐고 했다는…
날붙이를 쓰는 사람입장에서 직선형날은 고정된 대형숫돌이 유리하고 곡선형날은 날에대고 미는 작은숫돌이 유리하죠 미미하지만 그런영향이 있을수도 있겠네요
잘봤습니다
고생많으십니다,
후에 구르카 나이프 관련한 이야기도 한번 기대해봅니다.
영상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이 유익하였음 글고 재밋따
오!!한번보곤 좋아요!!구독 누릅니다!!
응원합니다!!^^bbb
재밌네요 구독합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ㅎㅎㅎ..미약하지만...좋아요와 구독 누르고 갑니다.
음 직검은 양날이 효율적이고, 끝으로 찌르기도 해야해서 날카로운 부분을 버텨줘야 할 두께가 각각 필요해지고(받춰주는 부분이 부실하면 부러질 우려가 생길듯),
일단 만들고 나서도 날을 갈아야 하는 면적이 넓어져 관리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직검의 형태라면 날이 한쪽에만 있더라도 위기시에는 칼을 보지 않고 뽑고 휘둘러야 하는데, 굴곡을 주면 날이 있는지 구분이 쉬웠을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유목민 특성상 몇천명 몇만명의 전투 보다는 소규모 전투였을 것이기 때문에, 서양의 검만큼의 내구도가 필요하지도 않았을꺼고요. 소규모의 잦은 전투로 죽은자들의 칼을 확보할 기회가 많아졌을것이라 엄청난 내구성이 필요하지도 않았을것 같고요. 또 칼을 만들어봐야 몇십 몇백 자루겠지만 투자되는 원석 대비 칼의 자루수도 많이 나올 것 같고요.
니뽄도도 방송해 주세요
왜 칼이 휘었는지 늘 궁금했는데 호기심 해결 잘 했습니다
구르카 ㆍ단검, 파괴력이 약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앞으로 휨, 역발상적 무기라 똑똑한 민족이 사용
우리나라는 이를 무기화하지 못하고 농기구화함.. 이름하여 호미
직도 ㆍ장,단검 파괴력 노멀 체킹, 집립보행 무장들 사용
환도ㆍ장검+말, 파괴력이 강함, 힘을 흘려야 함 그래서 사족보행 무장들이 사용
이정도로 정리되는거 같네요
휜검을...혹은 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베기를 해보신분은 알겠지만..매우 단순합니다.
일자 검은 베기를 하면 그 저항이 심하고 잘 베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휜검(환도)를 사용하면 저항이 훨씬 적고 잘 베어집니다.
매우 단순한 이유 입니다.
위력은 1자가 강합니다.
약탈이 빈번하고 고기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문화권은 칼이 필수가 될 수 밖에 없군요. 칼의 나라 일본조차 식기구는 칼이 아닌 젓가락이죠. 이들은 어차피 농경문화 해양문화 권역이라서 당연하겠지만요. 그런데 이번 양상도 그렇고 영상 제작에 참조한 영화나 드라마들을 남겨주실 수 있나요? 유목민의 생활을 조금 더 엿볼 수 있는 재밌어보이는 것들이 보이네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출연한 건 몽골이라는 심플한 제목의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 년 전에 잠깐 본 것 같긴 한데 나머지는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네요~
확실히 마상무예의 특성상 가속도는 늘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찌르기는 늘 큰 문제라 유럽의 마상렌스도 창을 들고 돌파가 아니라 찌르고 바로 놓습니다. 안 그러면 손목아지가 날아가는...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상도가 환두대도 입니다. 예쁜 고리에 끈을 묶어서 팔에 걸어서 사용하는 것이죠
적이 땅 위에 서 있던
말 위에 서 있던
이럴 경우,
'서 있든'이 맞습니다
이왕 유목민 나온 김에 다음엔 기병의 역사도 다뤄주세요~
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유목민들은 아무데나 돌아다니는 줄 아는데 사실은 수십킬로미터 안에서 움직입니다.
작품속에서 잔혹함을 나타낼 때 곡도를 사용하길래
저도 궁금했던 내용인데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네요 오르도스식 검에대해 hbo였나 히스토리였나에서 다큐로 제작한게 있는데 자료가 아쉽네요
거란족의 기원을 다룬 기록에 따르면 거란족은 흉노의 별종인데, 외투켄산맥에서 철을 캐고 칼을 만들던 대장장이였다고 나와있지요. 그러니 유목민들도 분업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들 유목을 하기만 한건 아니지요
네.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정주 문명들의 도시에서 보여주는 그런 분업화를 말하는 겁니다. 당연히 유목민들에게도 직업은 있었죠. 특히 대장장이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직업이란 정주 문명의 그것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오랑의 오랑케편은 못참지
곡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지요.
곧은칼에 비해 튼튼하지만(한쪽에만 날이 있게 하면 되서요)
중무장한 전사는 상대하기 힘들어서요.
베는 칼이어서 경무장한 전투원을 상대하는데 유리했죠.
직도가 곡도보다 제작이 쉬움
그런 상대는 철퇴로 박살
상대가 중무장 했다? 그럼 바로 편곤으로 뚝배기를 깨주면 됩니다
처음 결투상대가 주변애들 즉 주변 유목민이니 베는 날이 발달할수밖에 없었을듯요
직도도 한쪽에만 날이 있게 할수 있음
이분은 논문 여러번 써보셨을듯
알려지지않은 내용을 직접 조사하시고
잘 설명해주시니까
09:33 근데 오랑님 말이 오히려 정답인게
유목민은 남의 동네를 자주 약탈해야
하는데... 무기가 나쁘면 역으로 털릴수도 있어서
야금술과 철 주조술이 뛰어난게 오히려
정상입니다.
자기네 기술이 당장에 딸리더라도 다른 국가를
약탈해서 대장장이들을 노예로 삼아서라도
그 기술을 여기저기서 흡수해서라도 뛰어난
무기를 만들었겠죠...
유목민 기병대의 검, 몽골제국의 도검이 세계사에서 가장 강력한, 전 세계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끼친 검이기도 하죠. 고려를 침략해서 고려의 환도로 진화시켰고, 그리고 몽골제국이 이슬람, 중동을 정복하면서 이란의 샴쉬르(시미터)가 만들어졌고 그 샴쉬르(시미터)의 영향을 받아서 유럽이나 이슬람의 검들도 바뀌었죠.
갑옷편은 언제 해주시나요^^?
이 채널 ㅈㄴ 재밌다 ㅋㅋㅋㅋ
진짜 개재밌다 ㅋㅋㅋㅋㅋ 최고야
직검이 벨때 닿는 단면적이 크고 곡도가 작습니다 단면적이 작아야 잘 베입니다 설명이 반대로 되어있습니다
음… 어떻게 그렇죠? 잘 이해가…
@@Orang_Fantasy 이미 칼이들어갔을때 접촉면의 면적에 따른 저항에 대한이야기 같네요. 반대로 내용에서 설명하는 면적은 공격시 상대방에게 닿을수 있는 확률?이라고 해야할까요...
9분 26초 정도에 보이는 금공품은 그리스 제작입니다. 같은 시기로 보면, 스키타이쪽이 확실히 좀 거칠거나 투박한 조형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투구를 쓰고 말을 탄 채로 적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묘사된 금공품도 마찬가지이구요. 따라서 거기 그려진 상황도 그리스의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 시기 스키타이의 대표적인 조형은 면각의 사슴류나 맹수를 묘사한 금공품입니다. 저 작품들에 비하면 확실히 거칠고 단순한 조형이죠.
👍👍👍👍👍👍👍
교역을 활발이했다니 그래서 나무위키에선 유목민들의 여성복장들중에 화려한게 많다는게 이유가있었군요
다른 이유로는 재산을 항상 몸에 가지고다니는게 유목민한테는 더 이로운 것도 있어서지요.
보병전에선 직검이 더 유리한가요?
갑옷입은 상대는 직도가 더 수월합니다 ~~~♡
병력이 밀집해서 전투를 벌이면 칼을 휘두를 공간이 부족하므로 직도라기보단 찌르기용으로 끝이 날카로운 검이나 창이 보병용 무장이 되죠. 그리고 보호구가 충실한 적병들을 상대로 휘두르는 공격을 한다면 철퇴나 도끼같은 둔기가 더 효과가 있죠. 고구려 벽화에도 도끼병이 그려져 있습니다.
@@창현-w2l 1대1 보병전에선 직검과 곡도 중 뭐가 더 유리한가요?
@@Kang-kg3ux 창vs칼, 칼vs도끼도 아니고 비슷한 성격의 냉병기니 무기사용자의 신체조건, 숙련도, 무기의 재질과 리치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Kang-kg3ux 평복 중심이라면 실력에 다르겠고 갑주 중심이라면 직검이 좀더 유리하겠지만 그것도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아시아쪽 갑주 입고도 곡검(도) 잘만 썼으니깐요
뱀파이어랑 늑대인간이, 왜 라이벌이 됬는지 이유를 알고싶어요. 혹시 이것에 대해 올려드릴 수 있나요?
제 영상 중 늑대인간 편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Orang_Fantasy ua-cam.com/video/xWeBhRPcvzQ/v-deo.html
이거 다음편이 없나요?
@@levanmagnus3499 늑대인간 찾기 게임 시리즈를 시청해 주세요. 해설편에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Orang_Fantasy 두번 봐도 그 뱀파이어가 왜 늑대인간이랑 대립각이 띄게되었는지 설명이 안나와요....
@@levanmagnus3499 할리웃 영화의 설정이라고 나오지 않나요? 뱀파이어 물과 늑대인간 물이 동시에 히트하면서 이 둘을 붙인거죠.
은근히 초원지대에도 광산이 많이 있었네요.
제 생각인건데 검이 휘어있으니까 칼을 칼집에서 뽑기 쉽지 않았을까요? 직검이라면 손을 쭉 뻗어서 칼을 뽑아야 하지만 곡검이라면 팔을 크게 돌리는 것만으로도 칼을 뽑을수 있잖아요.
모든 기술은 필요에 의해 존재함(라고 생각)
궁금한게 유목민들은 과도나 식칼같이 살상용이 아닌 일반실생활에서도 휘어진 칼을 썼나요??
일상 생활에선 단검을 썼습니다. 다음편에서 나오니 기대해 주세요!
@@Orang_Fantasy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총검이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짧아지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주 좋은 영상입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첨언 하나 하자면 돌궐제국 역시 그 시작은 금속제련으로 이웃부족들과의 중계무역 및 유연제국에 상납하던 친구들이 힘을 키워서 중앙의 유연을 전복하고 제국을 세우기도 했죠. (부탁 하나만 드리자면 영어라틴식 명칭인 투르크를 튀르크로 바꾸어만 주세요)
철컹철컹 차고 다니기 편하고 말위에서 뽑기 편해서일까?뽑을때 말이 베일까바
그리고 납도 할때 피와 기름기 등등 손질하기 편해서?
이모든 내용을 혼자서?? 대단합니다....
11:40 꽁치가 천원
조만간7만구독자 좋아요 꾹 누르고갑니다
유목부족의 특징이 상대가 강하면 장사를 하고 약하면 덮쳐서 약탈하고 뺏는거였음.
그래서 유목부족이 야만족속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비열한면이 있다는거.
그들의 전투 방식때문에 곡도로 발전한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는 칼 강도가 쎄지않아 곡도로 발전한거
중간에 쌍도를 사용하는 케식이 나온 영상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크.. 1:30 공지부터 벌써 백점이다
칼을 쥔 손에 가해지는 충격도 고려해야한다는 건 생각 못했네요
이거 보고 구독을 안누를수가 읍따...ㅋ
유튜브에서 본 다큐멘터리를 여기서 보니 유목민에게 칼은 많은 것을 사용하는 주요 생활용품이고 칼과 활로 문명을 이루는 걸 보면 칼은 죽이기보다는 사람 목숨을 많이 살리고 생활터전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칼이 죽인 사람보다. 살린 사람이 많다.
유목민의 은과 황금 문화 에대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잘 이야기 구성하면 옛날 국제 경제이야기 까지 이어나갈수 있을겁니다 매우 풍성하게요
자료도 충분해서 만들기도 편할걸요?
판타지 에서도 경제 빠지면 섭섭하니까요
뭐 간단하게 하면 실크로드로 구성해도 좋고
좀 하드하게 가면 실크로드 이전이야기도 괜찮죠
야만족이라 말할수 있는곳은 13세기 이전은 유럽 였다는거. 뭐 하나 변변한 것이 없던 유럽! 영화등에서 기사를 넘 띄어 놔서
방직 세공 등 기술도 없었던 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