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 36
  • 4 805 270
멸망직전 고려, 고려를 두번 구한 한반도의 영웅 김윤후 | 모두가 포기했던 처인성전투
고려의 자그마한 토성, 처인성. 이곳에서 세계를 정복한 몽골 제국의 장수 살리타가 쓰러졌습니다. 백 명 남짓한 백성들과 한 승려가 펼친 처절한 항전, 그리고 기적 같은 승리의 순간! 처인성 전투, 몽골 제국의 첫 패배가 된 이 역사적 전투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고려의 천민들과 승려, 백성들이 몽골군을 막아낸 처인성 전투는 단순한 전쟁의 승리가 아닌, 희망과 의지로 이뤄낸 기적입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배우고, 내일을 준비하세요. 구독과 좋아요로 더 많은 역사 이야기를 함께하세요.
Переглядів: 22 941

Відео

광개토대왕,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천명하다!
Переглядів 26 тис.14 днів тому
한국 역사에서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위대한 정복 군주, 광개토대왕. 그는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광개토대왕의 강력한 정복 사업과, 정복군주라는 칭호에 가려졌던 애민군주의 면모를 함께 살펴봅니다.
안시성전투, 고구려 5천병사는 어떻게 80만 당나라를 격파했을까? 삼국시대 가장 통쾌한 승리
Переглядів 121 тис.Місяць тому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는 어떻게 당나라 80만 대군과 당태종 이세민을 막아냈을까요? 이번 영상에서는 역사 속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인 안시성 전투의 전 과정을 심층 분석합니다. 당나라 황제 당태종이 이끈 거대한 군대와 맞선 고구려 안시성주와 그의 장수들은 지형을 이용한 뛰어난 전략과 용기 있는 방어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한반도의 자주적 기상을 세상에 알린 그 전투의 순간을 자세히 알아보세요.
우씨왕후 드라마가 숨긴 진짜 고구려 왕후 이야기
Переглядів 7 тис.2 місяці тому
오늘은 한국사에서 가장 강력한 여인 중 한 명, 고구려의 우씨 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두 명의 왕비로 군림했던 그녀는, 권력과 질투에 휘말려 역사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형사취수제를 역이용해 권력을 잡고, 고구려의 운명을 바꾼 그녀의 놀라운 행보는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씨 왕후는 어떻게 두 명의 왕을 남편으로 두었고, 그녀의 결정이 고구려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그녀의 선택과 대담한 행동을 깊이 있게 파헤칩니다. 권력을 향한 그녀의 욕망과 그로 인해 일어난 고구려의 변화,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까지 권력에 집착했던 이야기까지, 모든 것을 영상에서 확인해보세요. 이 영상을 통해 그녀의 복잡한 인생과 역사적 배경을 알아가며, ...
대한민국 국군 6사단 중공군을 격파 | 한국을 지킨 최강의힘
Переглядів 13 тис.3 місяці тому
6.25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제6사단 청성부대의 놀라운 활약, 알고 계신가요? 이번 영상에서는 춘천-홍천 전투부터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6사단이 보여준 전설적인 전투 기록을 소개합니다. 북한군의 남침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이들의 용기와 결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6사단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UN군의 파병이 가능했고, 한국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6사단의 치열한 전투와 희생, 그리고 그들의 전술적 기지는 국군의 자부심이자, 대한민국을 지킨 역사적 순간들입니다. 이 영상을 통해 6사단의 위대한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
발해, 최초의 중원침공 | 당을 정벌하라 무왕 대무예
Переглядів 382 тис.3 місяці тому
발해, 최초의 중원침공 | 당을 정벌하라 무왕 대무예
고구려 수당전쟁 세계최강 수나라 백만대군은 왜 고구려에게 패하고 멸망했을까?
Переглядів 315 тис.4 місяці тому
고구려 수당전쟁 세계최강 수나라 백만대군은 왜 고구려에게 패하고 멸망했을까?
조선시대 가장 부러운 왕은 누구? | 장희빈에서 인현왕후까지.. 마무리는 숙빈최씨 | 주말에 각잡고 보기 좋은 장희빈 풀스토리
Переглядів 15 тис.5 місяців тому
조선시대 가장 부러운 왕은 누구? | 장희빈에서 인현왕후까지.. 마무리는 숙빈최씨 | 주말에 각잡고 보기 좋은 장희빈 풀스토리
조선이 고려보다 약해지는 시발점 ㅣ 성종의 나비효과?
Переглядів 6 тис.5 місяців тому
조선이 고려보다 약해지는 시발점 ㅣ 성종의 나비효과?
조선시대 멸망을 목격한 고종ㅣ명성왕후, 흥선대원군, 각종외세들의 샌드백
Переглядів 3,9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조선시대 멸망을 목격한 고종ㅣ명성왕후, 흥선대원군, 각종외세들의 샌드백
[홍위병] 역사상 최악의 선동 | 문화대혁명
Переглядів 12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홍위병] 역사상 최악의 선동 | 문화대혁명
한국사를 바꾼 순간: 고려 무신정권 100년간의 이야기
Переглядів 166 тис.6 місяців тому
한국사를 바꾼 순간: 고려 무신정권 100년간의 이야기
한국사를 바꾼 순간: 고려 무신정변의 진실
Переглядів 130 тис.7 місяців тому
한국사를 바꾼 순간: 고려 무신정변의 진실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어진 세계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십자군 전쟁💥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하는 역사로 기억되는 종교의 탈을 쓴 살육전
Переглядів 1,9 тис.7 місяців тому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어진 세계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십자군 전쟁💥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하는 역사로 기억되는 종교의 탈을 쓴 살육전
오직 미국만이 가능한 전쟁… 걸프전! 현대전이란 무엇일까?
Переглядів 1,1 тис.7 місяців тому
오직 미국만이 가능한 전쟁… 걸프전! 현대전이란 무엇일까?
중앙아시아 5개국, 민족과 역사 완벽하게 아는 척하기 (feat.고구려)
Переглядів 9 тис.8 місяців тому
중앙아시아 5개국, 민족과 역사 완벽하게 아는 척하기 (feat.고구려)
목동들이 라마와의 성관계를 통해 옮겨 온 질병의 정체,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매독'의 전염 위험성
Переглядів 28 тис.9 місяців тому
목동들이 라마와의 성관계를 통해 옮겨 온 질병의 정체,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매독'의 전염 위험성
유럽의강대국들이 "무서워서" 못 건든 유일한 나라.. "충격"적인 스위스의 방어시스템
Переглядів 106 тис.10 місяців тому
유럽의강대국들이 "무서워서" 못 건든 유일한 나라.. "충격"적인 스위스의 방어시스템
고려-거란 전쟁 동아시아 강대국 거란은 대체 어쩌다 멸망했나? - 남겨진 거란족의 미스테리한 행방..
Переглядів 184 тис.10 місяців тому
고려-거란 전쟁 동아시아 강대국 거란은 대체 어쩌다 멸망했나? - 남겨진 거란족의 미스테리한 행방..
외국에서는 이순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해외에서 본 이순신’
Переглядів 80 тис.11 місяців тому
외국에서는 이순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해외에서 본 이순신’
명량에서 노량 사이, 충무공의 발자취 죽음이 허락하지 않은 417일
Переглядів 51 тис.Рік тому
명량에서 노량 사이, 충무공의 발자취 죽음이 허락하지 않은 417일
양규. 거란에게 멸망할 뻔한 나라를 지켜냈었던 고려의 이순신 장군으로 재평가 받는 영웅
Переглядів 641 тис.Рік тому
양규. 거란에게 멸망할 뻔한 나라를 지켜냈었던 고려의 이순신 장군으로 재평가 받는 영웅
[고려거란전쟁] 고려 현종의 보디가드, 지채문의 이야기
Переглядів 499 тис.Рік тому
[고려거란전쟁] 고려 현종의 보디가드, 지채문의 이야기
귀주대첩, 그 짜릿한 승리의 비밀 [3차 고려 거란 전쟁]
Переглядів 1,9 млнРік тому
귀주대첩, 그 짜릿한 승리의 비밀 [3차 고려 거란 전쟁]
이괄의 난, 조선 최후의 희망을 무너뜨리다
Переглядів 32 тис.Рік тому
이괄의 난, 조선 최후의 희망을 무너뜨리다
이괄의 난, 조선 최후의 희망을 무너뜨리다
Переглядів 31 тис.Рік тому
이괄의 난, 조선 최후의 희망을 무너뜨리다

КОМЕНТАРІ

  • @산천어
    @산천어 4 години тому

    정치가 나라를 벼랑끝에 내몰았다면 끝까지 나라를 지켰든 무리는 단연 힘없는 백성들 이었습니다. 백성이 곧 하늘 입니다!

  • @김재호-w7z
    @김재호-w7z 4 години тому

    김윤후장군

  • @심규백-o5g
    @심규백-o5g 6 годин тому

    이러한. 역사이야기하실때 지명을 현대어느곳인지 알려주시먼 좋겠읍니다 처인성이 현재어디 있는곳인지를. 니는 용인시에. 거주하므로 바로이해했지만 요즘. 젊는학생들은 특히 지방에있는학생들은 잘 모를거 같읍니다

  • @영찬김-i9w
    @영찬김-i9w 8 годин тому

    ai로 만든 것은 이래서 별로네요. 어찌 붕국성들만 나오게 만드나요? 그냥 그림 넣지 말고 음성만으로 성우 처럼 하세요.

  • @도고산-m6x
    @도고산-m6x 9 годин тому

    당태종 이세민이 쳐들어오기 전에 수나라 양광이 이끄는 수나라 100만대군이 쳐들어 왔어도 이들을 물리친 게 바로 고구려입니다.

  • @녀마-m6z
    @녀마-m6z 9 годин тому

    너무 빨리 죽었어 점더 살아서 중국베이징 점벌 했어야 그리고 삼국통일 해서. 군대군인 더 많이 모아서 훈련시켜 국토를 수복해야 했다. 문제는 세계가 변화는 상황을 습득해서 더 강력한 군대가 되어야 했다 쓸데없는 신분차이 4대부 조선은 태어나지.말아야 했다

  • @커드-u2h
    @커드-u2h 10 годин тому

    아무 논리적 추론도 없는 신당의 해설집이네. 주필산 전투와 아니성 공략까지는 1개월 이상의 공백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나요.

  • @raincho7809
    @raincho7809 19 годин тому

    고려가 대륙동부를 지배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산동반도가 강화도라면 말이 될듯, 그러나 현재 강화도는 너무 작죠. 38년이나 항쟁하기엔. 그전에 나당 연합군, 황산벌 전투 등도 대륙인듯. 반도까지 당나라가 와서 싸웠다? 납득이 잘 안감.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годин тому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말씀하신 대륙설이나 강화도의 크기, 나당 전쟁에 대한 의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역사 애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먼저 강화도와 관련해서는,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것이 맞습니다. 강화도는 당시 천혜의 요새로 평가되었고, 수군의 힘을 빌려 몽골군의 육상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죠. 물론 면적 자체는 크지 않지만, 고려 왕실과 귀족, 관료들은 강화도에서 장기전을 준비하면서 전국적으로 게릴라전과 항전을 벌여 38년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 고려의 항전이 오직 강화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고려는 전국 곳곳에서 저항했고, 삼별초와 같은 집단은 제주도까지 가서 끝까지 싸웠죠. 즉, 강화도는 거점이었을 뿐이고, 전체 고려 영토에서 저항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당 연합군과 황산벌 전투 역시 마찬가지로 한반도 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입니다. 당시 나당 연합군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 세력으로 백제를 멸망시켰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습니다. 이를 근거로 한반도 내의 전투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죠. 반대로 고대 한반도 국가들이 대륙을 지배했거나 산동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인정받은 사실은 아닙니다. 역사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들은 대부분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주요 활동 범위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 해석에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논의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활동 범위가 대륙 깊숙이까지 확장되었다는 주장은 학술적으로 뒷받침될 만한 증거가 부족합니다. 이러한 논의는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 더욱 다양한 역사 사료를 살펴보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답니다. 혹시 더 궁금한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 @이훈-s2f
    @이훈-s2f 20 годин тому

    아저씨 잣까는 소리 하지마라 역사를 뻥으로 거짓으로 남에 역사가지고 이 중공놈아 당나라는 한발자욱도 한반도를 걸어 온적이없다 이 중공놈아 당나라가 넘어온곳은 현 요하 구 압록강를 건너와 고구려와 싸워 이긴적은 있다 허나 요동에 평양성 현) 심양 요양를 빼앗고 고구려는 망했지만 한반도는 넘지못했다 이 중공놈아

  • @성산-p6x
    @성산-p6x День тому

    당시 군사장권이 아니고 정상적인 국가 였다면 몽골이 쉽게 고려을 이기지는 못했을탠데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годин тому

      저도 이번 영상을 준비하며 그부분이 참 아쉬웠습니다

  • @Gogury
    @Gogury День тому

    고려는 한반도만이 아니라네 고려사 첫장에 고려 만리지국이라 나오네 왜 자기 조상들의 역사서도 믿질않나? 조선은 사천리. 고려는 황제국이었고. 고려말. 고려남경에서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고.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며 한양에 도성을 짖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годин тому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언급하신 내용은 굉장히 흥미롭고 많은 논의가 오가는 주제이기도 해요. 고려와 관련된 표현들,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해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 "고려사 첫장 만리지국"의 의미 말씀하신 **"만리지국(萬里之國)"**이라는 표현은 고려사 서문에 등장하는 문구로, 고려의 영토가 광대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하지만 "만리"라는 표현은 당시 동아시아 문헌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된 수사적 표현이에요. 즉, 실제 거리나 영토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크기와 위상을 과장해서 칭송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경우, 영토가 한반도와 만주 일부에 걸쳐 있었고, 광활한 영토와 더불어 황제국의 위상을 갖추고자 했기 때문에 문헌에서 이러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죠. 2. 고려의 황제국 위상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황제국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스스로를 **"황제국"**이라 선언했습니다. 왕을 **"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사용하며, **"천자"**의 위상을 나타내기도 했죠.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속에서 독립적인 자주국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중국 중심의 冊封 체제(책봉 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고려 왕이 중국에 책봉을 받아 **"왕"**의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황제국의 의례와 위상을 유지하면서 자주적인 체제를 구축했죠. 3. 고려 말기와 명나라의 등장 말씀하신 것처럼 주원장은 중국 대륙에서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했습니다. 그러나 주원장의 명나라 건국은 중국 대륙에서 이루어진 사건이고, 고려 남경(지금의 서울)에서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고려 말, 당시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원나라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고, 주원장의 명나라는 원나라의 영향력을 대체하며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했죠. 4. 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을 세우고, **한양(서울)**으로 도읍을 옮깁니다. 이 한양 천도는 지리적 이점과 명나라와의 외교를 고려한 것이었죠. 조선은 고려와 달리 명나라의 책봉 체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왕국"**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고려 시대의 황제국 의식은 조선 초기에는 다소 변화하게 됩니다. 마무리 고려가 자주적이고 강력한 국가로서 황제국 의식을 갖췄다는 점은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만리지국"**이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자주적 의식과 자신감을 상징하는 문구로 이해할 수 있겠죠. 다만, 주원장의 명나라 건국이나 고려의 영토에 대한 해석은 역사적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소중한 의견과 흥미로운 해석 정말 감사합니다! 🤗 더 알고 싶은 부분이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함께 역사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아요~ ✨

  • @ysj2755
    @ysj2755 День тому

    서쪽 국경이 요하라고? 남북 2천리 둥서 6천리의 고구려 영토라는 중국사서인 구당서의 기록은 구라인가😂😂😂 아니면 이 영상이 왜곡하는건가😮

  • @종자인
    @종자인 День тому

    압록강을 건너 처들와다 중국대륙 압록인지 혼란하고 궁금합니다

  • @이훈-s2f
    @이훈-s2f День тому

    거란은 현)압록강를 건너 한반도에는 한발짝도 들어오지못했다 거란이 건너온 압록강은 현 요화이고 고려수도 현)요양 구)평양를 침공한것은 맞지만 한반도는 넘는 짓은 못했다

  • @열심히살자-z9p
    @열심히살자-z9p День тому

    김윤후님 얘기네요. 스님이었죠.

  • @친구야나도간다
    @친구야나도간다 День тому

    잘 만들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ㅣ

  • @암행어사출두여
    @암행어사출두여 День тому

    본좌가 저시대를호령햇다면 테무진 이새낀요절햇다

  • @보리임금
    @보리임금 День тому

    발기가 안되다니 젠장 😢😢😢

  • @김경수-q8q
    @김경수-q8q День тому

    이씨바야 당나라가한족이라고,죠또모르면아가리털지마라.수안ㅇ제와외사촌인세민이.그리고여진족이던 그들엄마들인외갓집.확싨히따지면고놈들은북방 오랑캐족들인것이다.

  • @배룡권
    @배룡권 2 дні тому

    예나지금이나매국노는권력가들이다

  • @승현이-g1v
    @승현이-g1v 2 дні тому

    자유는 인간의 근본이다.. 근데 민주당은 자유늘 억압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로 가려고 한다

  • @권도완-p1u
    @권도완-p1u 2 дні тому

    후에 충주성 성주가 되어 에꾸의 몽골 대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버텨냈고 이 전공을 인정받아 상장군이 됩니다 무신 드라마에 나온 내용입니다 에꾸는 이 충주성 전투에서 낙마사고를 당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 @5lofbread2fishes81
    @5lofbread2fishes81 2 дні тому

    당나라군대~

  • @바다타이거
    @바다타이거 2 дні тому

    당시 세계를 제패한 최강 군대..몽공군에게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승리한, 정말 기적 같은 전투인 것 같네요..김윤후/대단한 지장이며,맹장이었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День тому

      정말 대단한 영웅이죠! 김윤후 장군의 용맹함에 저또한 감탄했습니다 👍

  • @이성근-v7c
    @이성근-v7c 2 дні тому

    우리나라의 역사는 항상 소수의 군대가 초강려끄한 적의 대군을 막아냅니다. 왜 그럴까요? 고구려도 그랬고 고려가 거란의 팔십만(?) 대군을 말로 막아냅니다.그 말 한마디 뒤에 무엇이 있길래 거란이 스스로 삼가고 군을 물렸을까요? 그리고 팔십만(?) 이상의 대군을 맞아 7년(?)간 싸웁니다. 그때는 과연 몇으로 싸웠을까요? 왜 그럴까요? 혹시 의문을 가져본적은 없으세요? 수천으로 수십만의 군대를 막아냈다고 하니까 신회같나요? 정말로 수천명이 수십만의 침랴군을 막아냈다고 생각이 드세요? 난 국사라는걸 배울때마다 의문이 들 때가 많았었어요. 대한민국의 규정되어진 역사학의 논리대로 따르지마시고 다른 눈과 생각으로 돌아봅시다. 마냥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희한한 역사논리를 누군가는 비웃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День тому

      이또한 정말 우리가 보지못한 역사의 맹점이죠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 @임성순-y7m
    @임성순-y7m 2 дні тому

    강동성의 위치를 현대에 와서 찾아본 사료를 근거로 그 위치를 표시해 주면 좋겠읍니다

  • @영국권-d3w
    @영국권-d3w 2 дні тому

    우리선조들의 나라를 위한 피땀어린 희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눈물이 납니다...ㅠ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 дні тому

      이런 분들이 있기에 역사가 기억됩니다. 감사합니다 구독자님

  • @훈민정음-m3w
    @훈민정음-m3w 3 дні тому

    고구려가 신라 백제 삼국통일 먼저 했어야 했다! 위아래 적을 놔둔게 실수임! 신라는 뒤통수 치는 배신자임

  • @joshualoveu2
    @joshualoveu2 4 дні тому

  • @stevenrhee8398
    @stevenrhee8398 4 дні тому

    요동강이 아니라 요하, 수나라는 제후국이 아니라 천자국으로 자처함.

  • @조태준-p2r
    @조태준-p2r 5 днів тому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 고구려 영토 어디까지 인지 잘 알아보세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днів тому

      혹시 영상을 보셨을까요?! ㅜㅜ 대진국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 @O.O_..
    @O.O_.. 5 днів тому

    2:43 당나라는 한족이 아닌 이민족 선비족이 세운 나라 아닌가요

  • @pes9867-6
    @pes9867-6 6 днів тому

    대단했던 발해 헌데 역사가들 마다 내용이 너무 달라요 그중 이강의가 제일 나아 보여요 등주는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가 피흘리던 관미성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6 днів тому

      구독자님..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힘이 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이재일-z9s
    @이재일-z9s 7 днів тому

    한반도에 국한된 영토로 고구리를 이야기한다? 대륙을 빼고는 고구리,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리, 발해를 논하지 말라.

  • @대한민국우리나라-m3w
    @대한민국우리나라-m3w 8 днів тому

    ㅋㅋ 이세민 이 한족이냐? 적어도 내가 아는 그는 선비족이다 한족이 아니다 선비는 동이의 한 갈래에 속한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7 днів тому

      안녕하세요 건강꽃필무렵입니다 🌸 구독자님께서 언급하신 이세민(李世民)은 당나라의 2대 황제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살펴보면, 이세민은 엄밀히 말해 한족(漢族)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당나라의 정체성: 당나라는 중원 지역에 기반을 둔 중국 왕조로, 주류 문화와 정체성은 한족의 문화적 요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세민의 가문 또한 중국 북부에 위치한 귀족 가문으로, 한족으로 간주됩니다. 2️⃣ 선비족과의 관련성: 구독자님께서 언급하신 선비족(鮮卑族)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북방 유목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세민의 가문은 선비족이 아닌 중원에서 태어난 귀족 가문으로, 이민족(예: 선비족)과 직접적인 혈연적 관련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당나라가 다양한 민족을 포괄하는 융합적인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선비족 등 이민족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3️⃣ 동이족과의 연결성: 동이(東夷)는 고대 중국에서 동쪽에 위치한 다양한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세민과 동이를 연결짓는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는 없습니다.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 추가 설명 역사적으로 한족은 다양한 외부 민족과 문화적 교류를 통해 융합되어 왔으며, 당시의 복잡한 인종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세민은 기록상 명확히 한족 황제입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해주세요! 😊

  • @데이빗Lee
    @데이빗Lee 9 днів тому

    연개소문의 얘기가 빠져있는것이 이해가 안되네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8 днів тому

      모든내용을 담으면 구독자님들이 지루해하실까봐 ㅜㅜ

  • @금송아지-b5h
    @금송아지-b5h 9 днів тому

    결국 연개소문이 고구려멸망의 원인이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9 днів тому

      구독자님,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개소문과 고구려의 멸망은 학계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는 주제라 정말 흥미롭죠.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멸망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그의 집권 방식과 그로 인한 정치적 분열 때문입니다. 연개소문은 642년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했죠. 이 과정에서 왕권을 약화시키고 귀족 세력과의 갈등을 심화시켜 내부 결속력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결국 고구려 멸망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 연개소문이 당과 신라의 연합에 맞서 군사적 방어 체제를 강화하고 안시성 전투 등에서 승리를 이끈 것은 고구려를 오히려 일시적으로나마 유지하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의견도 있죠. 따라서 고구려 멸망의 원인을 단순히 연개소문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해석일 수 있습니다. 멸망의 주된 요인은 지속적인 대외 전쟁, 농민 봉기, 경제적 피폐 등 복합적 요소가 얽혀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해요.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연구로는 김기섭 교수의 「고구려 후기 정치 변동과 연개소문」 논문이 있습니다. 더 깊이 알고 싶으시면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구독자님의 깊이 있는 생각 덕분에 또 한 번 역사를 되짚어보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흥미로운 주제 많이 나눠요! 😊

  • @sheeniron5743
    @sheeniron5743 10 днів тому

    중국역사요? 청나라는 화하족이랑 언어가 달랐고, 원나라는 몽골이고, 당나라 이세민 역시 타민족 입니다. 좀 역사를 알고 말하세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대륙에 존재한게 몇십년 밖에 안된거 모르시나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днів тому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해볼게요. 구독자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은 중국사의 다양성과 민족 구성의 복잡성을 잘 짚으셨습니다. 중국은 한족(화하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뿐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아우르며 발전해온 다민족 국가입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이 형성되었죠. 1. 청나라: 맞습니다. 청은 만주족이 세운 왕조로, 초기에는 만주어를 공용으로 사용했고, 이후 중국어(한어)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청의 지배층은 끝까지 자신들의 만주적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2. 원나라: 원나라는 몽골족이 세운 제국으로, 쿠빌라이 칸이 중국 본토를 통합하며 새로운 통치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의 지배 기간 동안 몽골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행정에서는 한자와 중국식 제도를 사용했습니다. 3. 당나라와 이세민: 이세민(당 태종)은 한족 가문 출신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투르크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나라 시기에는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고, 다양한 민족들이 문화적으로 융합되며 번영을 이뤘습니다. 4. 현대 중국의 형성: 현재의 "중국" 개념은 1912년 청나라 멸망 이후 중화민국의 수립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진 현대적 국가 개념입니다. 과거의 "중국"은 한족 중심의 화하 문명이나 왕조 체제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다민족 통합국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역사는 그 시대의 맥락과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독자님께서 말씀하신 관점은 역사의 다양한 면을 조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도 함께 역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기대할게요! 🧐📚 혹시 더 궁금한 점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 @박영숙-m7t
    @박영숙-m7t 10 днів тому

    이. 식민지사관에. 찌든. 매국노역적양아치쉽쇅히야 고구려가. 왕나라냐? 황제나라지. 그럼. 고구려는 황제를. 더 높혀서 태왕으로. 불렀으니. 광개토태왕이고 야. 이. 시발놈아. 백제가. 언제 한반도에 있었노? 역사도. 개좃도 모르는지. 식민지사관 쪽발이 앞잡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너거같은. 버러지를. 매국노역적양아치쉽쇅히라. 부른다

  • @김대현-s1u8z
    @김대현-s1u8z 10 днів тому

    개새끼!@ 오늘부터 개사료 처먹고 살아라.

  • @shyi2787
    @shyi2787 11 днів тому

    신라는 몰라도 백제는 충분히 병합할수 있었을텐데 그냥 놔둔건 아쉬운 선택임은 확실하네. 백제만 병합했어도 신라는 자연스럽게 품안으로 들어왔을거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днів тому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광개토대왕과 고구려의 대외 정책에 대해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구독자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당시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관계는 매우 복잡했고, 광개토대왕의 선택은 지금도 흥미로운 논쟁 주제입니다. 광개토대왕이 왜 백제를 병합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전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광개토대왕의 대외 정책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세력을 북쪽과 남쪽으로 동시에 확장했습니다. 그는 북쪽에서는 거란과 숙신(현재 러시아 극동 지역)까지 진출하며 북방 민족을 제압했고, 남쪽에서는 백제, 신라, 왜(일본 열도)와의 갈등에 적극 대응했습니다. 백제를 병합하려 하지 않은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기됩니다: (1) 백제의 군사력과 방어 능력 • 백제는 고구려 못지않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백제의 수도 한성(지금의 서울)은 자연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고, 이를 함락시키는 데는 막대한 희생이 따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2) 신라와의 동맹 유지 •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보호하며 간접적으로 고구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신라와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백제를 견제하고, 남쪽의 왜 세력까지 차단할 수 있었죠. 만약 백제를 병합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했다면, 신라와의 협력이 깨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3) 왕조의 한계와 자원 배분 • 광개토대왕의 치세는 22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국내 정비와 북방, 남방 전선을 모두 관리해야 했습니다. 백제의 완전 병합은 고구려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안길 수 있었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백제 병합이 불가능했을까? 백제를 병합했다면 신라까지 고구려의 영향권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역사적 가정으로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병합이 곧바로 성공했을지, 그리고 신라가 자발적으로 고구려의 품에 안겼을지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합니다. (1) 백제와의 문화적·경제적 경쟁 • 백제는 고구려와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며 남방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백제를 완전히 병합하려면 단순한 군사적 승리뿐 아니라, 백제의 경제와 문화를 흡수할 방법도 마련해야 했습니다. (2) 신라의 자주적 성격 • 신라는 초기 약소국이었지만, 서서히 독립적인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고구려가 백제를 병합했다고 해서 신라가 고구려에 의존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고구려의 팽창에 반발해 백제의 잔존 세력이나 외부 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광개토대왕의 선택, 그리고 이후의 역사 광개토대왕의 전략은 고구려의 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을 염두에 둔 결과였습니다. 그의 정책 덕분에 고구려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오랜 기간 강국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백제와 신라를 병합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반도의 균형을 유지하며 고구려의 세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결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구독자님의 흥미로운 시각 덕분에 저도 다시 한 번 역사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네요! 😊 혹시 다른 부분이 궁금하시거나 추가로 논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

  • @gudxorrj
    @gudxorrj 11 днів тому

    담덕 : 으아아아아아

  • @zjem0000
    @zjem0000 11 днів тому

    TV는 오락으로만 봐야지 거기서 역사를 배우면 안됩니다.

  • @해규이-z4d
    @해규이-z4d 11 днів тому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중국이 고구려 동북공조땜시 대왕이라고 표현하는거야

  • @freesia4597
    @freesia4597 12 днів тому

    중국이 그토록 기를 쓰고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는.. 중국역사에 지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한족의 정점역사라 해봐야 몇년안돼요.. 짧은 통일 진시황 제외하면 가장 최근해도 명이나 송밖에 없는데 말그대로 중국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쓰여진 굴욕역사라.. 열등감에서 비롯된게 바로 동북공정으로 이어진거죠.. 지금의 중국영토도 만주족 청이 망하면서 갖다 바친거 ㅎㅎㅎ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2 днів тому

      구독자님의 의견에 공감하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하곤 합니다. 😊 중국의 동북공정은 단순히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통합성과 영토 주권을 강조하려는 국가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현대 중국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로, 이러한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고대 동북아시아 지역, 특히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포섭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 현재 영토에 대한 정당성 확보: 동북공정은 만주 지역(현 중국 동북 지방)이 중국사의 일부였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영토적 정당성을 부각하려 합니다. 특히 중국은 이 지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분리주의 운동을 우려하기 때문에, 역사적 근거를 통해 이를 차단하려는 전략을 취합니다. 2. 민족적 통합을 위한 노력: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공존하는 국가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나 발해 같은 역사를 "중국사"로 포함시켜 민족 간의 연결성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3. 주변국과의 외교적 긴장 완화: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로 인정할 경우, 한국과의 영토 문제나 역사 해석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구독자님께서 언급하신 바처럼 중국사에서 한족 중심의 통일 왕조는 진, 한, 명 정도로 한정되어 있고, 그 외에는 이민족(몽골족, 만주족 등)에 의해 통치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굴욕의 역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청나라 같은 왕조는 오히려 중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고, 이는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참고 자료 • 김현구,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적 위치: 동북아시아 고대사 연구, 서울: 혜안, 2003. • Peter C. Perdue, China Marches West: The Qing Conquest of Central Eurasi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5.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

  • @hck-f2g9o
    @hck-f2g9o 13 днів тому

    안시성주 양만춘 위대한 인물이다

  • @미완-e2v
    @미완-e2v 13 днів тому

    당나라도 선비족이 세운 나라죠.한족이 아닙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3 днів тому

      구독자님, 흥미로운 질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당나라는 한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당나라(618~907)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왕조 중 하나로, 이 왕조를 세운 당 고조 **이연(李淵)**은 순수한 한족 가문 출신이에요. 이연의 가문은 서북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명문 귀족 가문으로 알려져 있죠. 그런데 당나라가 선비족과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당나라 이전 북위(北魏)나 서위(西魏), 북주(北周) 같은 북방 민족의 왕조들이 선비족 출신이었고, 이들은 중국의 정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당나라를 세운 이씨 가문도 북주 시대부터 권력을 잡고 있었기에, 선비족 왕조의 유산을 상당히 많이 계승했답니다. 당나라 초기에 특히 북방 유목민족과의 융합적 정책을 펼친 것도 이런 배경 덕분이에요. 따라서 당나라를 선비족이 세운 나라는 아니지만, 북방 민족의 문화와 영향을 깊이 받아들인 한족 왕조라고 볼 수 있어요. 역사에서 이런 민족 간의 융합은 참 흥미로운 부분이죠! 😄 혹시 더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주세요! ❤️

    • @미완-e2v
      @미완-e2v 13 днів тому

      namu.wiki/w/%EB%8B%B9%EB%82%98%EB%9D%BC

    • @미완-e2v
      @미완-e2v 13 днів тому

      수나라와 마찬가지로 선비족이 맞습니다 나무위키에서는 선비족인지 한족인지 명확하진 않다고 나오는군요

    • @미완-e2v
      @미완-e2v 13 днів тому

      namu.wiki/w/%EB%8B%B9%EB%82%98%EB%9D%BC

  • @batisttwota3223
    @batisttwota3223 13 днів тому

    고구려는 한사군을 쫒아내면서 드디어 역사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고조선의 옛고토인 중원북부 산서,태원,북평등을 공략하면서 중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한민족땅인 한반도와 만주의 신라,백제,숙신,예,동예,후연,말갈,동몽골은 고구려 천하로 편압이 되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한민족 1000년 숙적 선비와 싸울수 있었던 것이다. 잔연,후연,북제,북주,북위,수,당까지 치열하게 전쟁을 했고 전연의 모용황에게 털린 적이 있으나 북제를 분할하고 후연,수는 멸망시켰으며 당과는 대승을 거둘수 있었다. 비록 내부반란과 지도부배신으로 고구려가 당에게 멸망당했지만 전젱은 대체적으러 고구려가 이겨왔다. 고구려는 만주한반도의 이슬람화를 막은 역사적 사건도 있는데 바로 선비를 격파하고 새롭게 초원의 패자로 등극한 돌궐의 만주침공을 두차례에 걸친 대승으로 막아냈던 것이다. 이는 수,당제국과의 대전쟁에 버금가는 중요한 승전으로 만약 이때 고구려가 돌궐의 만주침공을 막지 못했다면 만주쁜 아니라 한반도도 초원의 세계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 @원영근-g1l
    @원영근-g1l 14 днів тому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성공했을...수양재. 고구려에...나라망하고. 비참한 최후~~~후회. 바~~~~보ㅡㅡ야. 수양제..는.!

  • @J.S_Lee
    @J.S_Lee 14 днів тому

    정치적으로 연개소문과 대립했기에 기록을 소거했을듯 그러므로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신빙성이 있고 양만춘의 본래 이름이 중국에 전해지며 중국식으로 전래 되었음을 추측 해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