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식
신윤식
  • 1 096
  • 1 108 019

Відео

대하35강-8:7-10 멸하지 않은 자(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4989 годин тому
2025.1.19 은석교회 주일설교 대하 8:7-10 멸하지 않은 자
잠언150강-31:8-9 신원할지니라(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56419 годин тому
2025.1.15 은석교회 수요일설교 잠 31:8-9 신원할지니라
대하34강-8:1-6 솔로몬의 건축(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588День тому
25.1.12 은석교회 주일설교 대하 8:1-6 솔로몬의 건축
잠언149강 31:3-7 술을 마시다가(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6714 днів тому
2025.1.8 은석교회 수요일설교 잠 31:3-7 술을 마시다가
대하33강-7:19-22 재앙의 이유(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8214 днів тому
2025.1.5 은석교회 주일설교 대하 7:19-22 재앙의 이유
잠언148강-31:1-2 내 아들아(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1321 день тому
2025.1.1 은석교회 수요일설교 잠 31:1-2 내 아들아
대하32강-7:11-18 하나님의 응답(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3821 день тому
2024.12.29 은석교회 주일설교 대하 7:11-18 하나님의 응답
잠언147강-30:32-33 입을 막으라(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1628 днів тому
2024.12.25 은석교회 수요일설교 잠 30:32-33 입을 막으라
대하31강-7:4-10 낙성식(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652Місяць тому
2024.12.22 은석교회 주일오전설교 대하 7:4-10 낙성식
잠언146강-30:29-31 위풍 있게(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31Місяць тому
2041.12.18 은석교회 수요일설교 잠 30:29-31 위풍 있게
대하30강-7:1-3 여호와의 영광(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69Місяць тому
2024.12.15 은석교회 주일설교 대하 7:1-3 여호와의 영광
잠언145강-30:24-28 약함과 지혜(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34Місяць тому
2024.12.11 은석교회 수 요일설교 잠 30:24-28 약함과 지혜
대하29강-6:34-42 은총의 내용(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78Місяць тому
2024.12.8 은석교회 주일설교 대하 6:34-42 은총의 내용
잠언144강-30:21-23 하야 하라(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91Місяць тому
2024.12.4 은석교회 수요일설교 잠 30:21-23 하야 하라
대하28강-6:32-33 이방인(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59Місяць тому
대하28강-6:32-33 이방인(신윤식 목사)
잠언143강-30:18-20 음녀의 자취(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67Місяць тому
잠언143강-30:18-20 음녀의 자취(신윤식 목사)
대하27강-6:28-31 사람의 마음(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979Місяць тому
대하27강-6:28-31 사람의 마음(신윤식 목사)
잠언142강-30:17 눈 (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022 місяці тому
잠언142강-30:17 눈 (신윤식 목사)
대하26강-6:26-27 죄에서 떠나거든(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542 місяці тому
대하26강-6:26-27 죄에서 떠나거든(신윤식 목사)
대하25강-6:24-25 죄를 사하시고(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822 місяці тому
대하25강-6:24-25 죄를 사하시고(신윤식 목사)
잠언141강-30:15-16 다오 다오(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812 місяці тому
잠언141강-30:15-16 다오 다오(신윤식 목사)
대하24강-6:22-23 죄를 정하여(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362 місяці тому
대하24강-6:22-23 죄를 정하여(신윤식 목사)
잠언140강-30:11-14 무리가 있느니라(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562 місяці тому
잠언140강-30:11-14 무리가 있느니라(신윤식 목사)
대하23강-6:18-21 하늘에서 들으시고(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9092 місяці тому
대하23강-6:18-21 하늘에서 들으시고(신윤식 목사)
잠언139강-30:10 비방하지 말라(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9003 місяці тому
잠언139강-30:10 비방하지 말라(신윤식 목사)
대하22강- 6:12-17 말씀이 확실하게(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643 місяці тому
대하22강- 6:12-17 말씀이 확실하게(신윤식 목사)
잠언138강-30:7-9 아굴의 기도(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343 місяці тому
잠언138강-30:7-9 아굴의 기도(신윤식 목사)
대하21강-6:7-11 다윗을 대신하여(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7453 місяці тому
대하21강-6:7-11 다윗을 대신하여(신윤식 목사)
잠언137강-30:5-6 더하지 말라(신윤식 목사)
Переглядів 8753 місяці тому
잠언137강-30:5-6 더하지 말라(신윤식 목사)

КОМЕНТАРІ

  • @TS-xv5zd
    @TS-xv5zd 22 години тому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해서 자신의 죄성을 바라보는 것이 현숙함 성숙함이라는 선포가 참으로 놀랍게 다가옵니다. 기이함의 연속인 잠언의 복음입니다. 모든 수고 감사드리며 노트 나눕니다. 잠언이 솔로몬으로 시작해서 큰 비중으로 기록되다가 마지막에 알려지지 않는 르무엘의 어머니로 마치는 이유를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시한번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지않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을 이 땅의 일을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염두 하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인간의 기록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땅에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통용이 안된다. 이것이 복음이 방언인 이유다. 먼저 현숙한 여인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개념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숙한 여인이라는 표현을 두고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현숙한 여인을 찾아나서라는 내용이 아님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오히려 현숙한 여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한 바울을 예를들어 이해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며 산 자신에게 의가 없음을 본 시각에서 난 고백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난 새로운 피조물이다. 없는 가운데 있는 자가 성도다. 이러한 성도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이것이 이 땅에 현숙함과 성숙함으로 드러난다. 즉 예수님을 자신의 힘과 의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고상함이라는 것을 성령의 임함으로 알게된 것이다. 이것으로 자기것을 던저버리는 것이 성도의 가벼움이다. 이것이 기쁨이되는 역사가 복음으로 인한 하늘의 기이함이다.

  • @TS-xv5zd
    @TS-xv5zd 4 дні тому

    참으로 큰 감격으로 들으면서 아멘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나의 힘을 믿는 악함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현실에서 말씀에 끌려가는 삶을 소원하는데 주의하게 됩니다. 수고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솔로몬의 악행은 자신을 죄악 가운데 있음을 보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인 ‘나를 위한 신’이다. 솔로몬의 천명 여인들이 각자 솔로몬의 마음을 얻고싶어 했던 것처럼 솔로몬도 자신의 소원을 위해 사는 그 자체가 악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 인간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현실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살게 하신다. 십자가로 인히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찬송케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현실이다. 하나님이 멸하라고한 이방인을 남겨둔 것이 성전 건축에 역꾼으로 일을했으므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현실의 시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를 잊지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을 살게하신 하나님의 현실에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순종함으로 가나안 족속을 남겨놓은 것에 심판이 없고 오히려 남은 자를 일꾼으로 쓰임받은 것이 좋게보이는 것이 인간의 시각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현실에서 보아야 한다. 즉 자신의 힘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앞에 멸망당하는 것임을 보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믿고사는 것을 죄로 바라보는 역사가 성령의 임함으로 드러나는 하늘의 역사가 된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시는 것은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사는 악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솔로몬의 재물이 자신을 힘이 있다고 보는 악을 드러낸 것과 같은 것이다. ‘가진 자‘라는 죄악의 의식을 끌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신세한탄‘과 함께 드러나 인간 전체가 죄 덩어리임을 드러내는 것이 복음의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는 의식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오늘이 좋은 날’이라는 삶의 방식이 죄 가운데 있음을 보게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 땅에 증거되는 기이한 능력이다. ’내 인생을 포기못한다’라는 발상이 죄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에 주의하고 조심하는 자가 이 땅에 하나님의 권세 안으로 집어넣어진바된 성령의 임함으로 출현한 성도다. 이러한 힘없는 성도의 감사로 영광받으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로 인한 하나님의 현실이다.

  • @snsqhfk9184
    @snsqhfk9184 4 дні тому

    아멘! 아멘! 말씀은 언제나 종말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현실과 나의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 @TS-xv5zd
    @TS-xv5zd 7 днів тому

    난생처음으로 고독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었습니다. 기이한 말씀의 역사기 아닐 수 없습니다. 수고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본문의 내용을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접근하기 쉽다. 즉 약자를 살피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이해를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의 틀과 부딛힌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본문은 백성에 대하여 왕다운 왕이 되라는 어머니의 훈계를 담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왕은 참된 왕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오직 유일한 참된 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유일한 왕에게 속한 백성이 참된 백성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위하여 자신이 거짓된 왕에게 속했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역사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즉 왕은 백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음을 알고 본문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말못하는 경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법 앞에서 죄가 드러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성도의 위치가 된다. 즉 말씀 앞에서 벙어리가 되는 역사가 성령으로 비롯된다. 성도는 성경으로 고발당하는 경험을 하는자다. 교회는 이렇게 입이 막힌자로 모이는 것이다. 여기에 일방적인 죄의 용서의 은혜가 주어진다. 고독한 자의 성경적인 의미는 멸망당하게 된자를 말한다.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자가 참된 쓸쓸한 자이고 그러한 자가 예수님을 주로 바라게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도의 죽음이 참된의미의 고독사가 된다.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원하는 것이 하늘로부터 임한 기이한 복이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8 днів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11 днів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11 днів тому

    오늘 본문이 복음 안에서 이렇게 풀어지는 것을 듣는 것이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참으로 기이한 말씀의 역사입니다. 주님이 평안을 주신 것에서 드러나는 나의 쓸모없음이 감사가 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수고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본문이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개 드러나는가를 보는 것이 오늘 묵상의 중점이 된다. 솔로몬의 업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평화의 왕인 솔로몬이 전쟁을 하였다는 것을 두고 우리의 솔로몬에 대한 오해가 있음을 감지해야 하며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오해가 있을 수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평화의 왕이라는 것은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진 것이다. 솔로몬은 오히려 야심가다. 즉 지기싫어하는 성질의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왕국을 굳건히 하려는 야심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세상의 평화는 힘으로 지켜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솔로몬의 기도에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자신들이 멸망 당해도 마땅함을 담은 내용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과 동일한 산상에 있다. 이 관점에서 솔로몬의 건축을 보아야 한다. 즉 자신의 공로를 굳건히 지키기 위한 건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기도와 맞지 않는다. 힘으로 지키고자하는 평화가 하나님의 그의 응답에 반하는 것이다. 인간이 범죄한 자라는 것은 평화가 없고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인은 복과 평안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죄인됨을 안다. 그래서 복음을 안다‘라는 것이 오해이며 착각임을 아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된다. 여기서 예수님이 주신 평안과 분쟁이 무슨 의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본문을 통하여 왜곡된 믿음과 지식으로 살고 있음을 아는 것이 오늘의 요지가 된다. 바른 기도를 하는 솔로몬이 옳은 인간이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즉 그의 기도가 하나님으로보터 왔다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하는 고백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를 성령의 임하심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다. 주님이 평안을 주신다는 것은 그 앞에서 우리는 그저 쓸모없는 자로 있는 것이 그 평안이 임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 역사에 붙들려 그리스도의 행하신 행함에 감사로 나아오는 자가 성도인 것이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14 днів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15 днів тому

    문자적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잠언에 담긴 풍성한 복음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기이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로 다가옵니다. 수고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성경을 개인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모두에게 적용이 될 수 없는 오늘 본문이 이에 좋은 예가 된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두가지 다른 것에 힘을 쓰지 말라고 훈계하는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왕이 여자에게 힘을 쓴다는 것은 권력을 나눈다는 뜻이고 그러면 왕들이 말한다는 의미로 연결된 한가지를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 묵상을할 때 ‘우리‘라는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즉 다른 개인이 아니라 같은 ‘나‘로 보아야 한다. 왕은 모든 백성을 대표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개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대하시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왕의 범죄는 백성의 범죄와 같다는 것이고 이것은 백성의 범죄가 왕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말한다. 죄는 행위에서 찾으면 안된다. 이것은 나를 의롭게 보는 것이 죄가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고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죄의 본성면에서 다윗의 죄에 속한다. 구원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원은 주 안에 있는 것이다. 창세 전에 성도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예정하셨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잘하신 행함만이 구원이 된다. 다윗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죄악 가운데 있음을 고백했다. 이것이 모든 인생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의 죄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우리를 솔로몬의 죄의 모습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있음을 보는 것이 성경 묵상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죄과를 보는 것이 성경 묵상의 열매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의 죄를 보지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보는 것이다. 성전에는 산당과 달리 인간의 정성이 없다. 인간의 정성이 있다면 그것은 성전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얻기위하여 힘을 쏟아 살아가는‘ 우리가 솔로몬의 죄에 있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죄인됨을 잊어버린 것이 법을 잊어버린 것이고 그것이 술취한 상태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역사에 밝힘을 받고 발가벗겨져 십자가에 나와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자가 성도다.

  • @TS-xv5zd
    @TS-xv5zd 18 днів тому

    복음의 한결같은 방향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가 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기이하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의 해석에 빵 터졌습니다 ㅎㅎ 정말로 밥 한끼도 먹을 자격없습니다. 성젼 건축의 의미기 깊습니다. 모든 수고 감사드리며 노트 나눕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재앙을 기정 사실로 선포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이 율볍을 주신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으로 확증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신 지식은 성경과 아무 관계가 없다. 인간에게서 복이될 만한 행동은 나올 수 없다. 이것은 생명 나무에서 쫓겨날때 부터 드러난 사실이다. 그리고 에덴 밖의 죽음 외에 없는 것이다. 즉 이런 인간에 대해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행동에 의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 사탄의 사고 방식이다. 아벨이 바른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의 첫 새끼와 제물을 받으심으로 그가 거기에 속한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어린 양 외에 선한 것이 없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게 규례와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을 지키겠다고 하는 인간의 죄악성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말씀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무엇과 연결 됐는지를 보아 알 수 있다. 솔로몬의 성전건축은 인간의 성전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내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드리는 것을 율례를 지키는 것으로 알았다. 즉 말씀대로 살고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이 복을 구하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을 기대하는 인간의 심성이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부인하는 것이제물을 들고 나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라고 외치는 것이 성경이다. 성도는 관람 모드로 살아야 한다. 즉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하나님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구경만 하라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무엇을 하려고 설치는 것이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성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흘리신 피다. 이 진리에 감사함으로 관람하는 자가 이 땅의 성도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18 днів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20 днів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22 дні тому

    ‘천국은 관계의 나라다’라는 선포가 울려퍼짐을 듣는 것이 복입니다. 오늘의 증거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오직 성경으로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비행기의 블랙 박스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있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하늘의 일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땅의 생각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인간의 행함이 중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은 성경에서 관계의 나라로 묘사된다. 잠언의 지혜는 인간에게서 나온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의 개입으로 인간에게 들어온다. 그래서 르무엘과 그의 어머니에게 촛점을 둘 필요가 없다. 여기서 ‘아들아‘라고 말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즉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이 천국과 연결되는데 여기서 ‘관계’라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개입에서 비롯된 관계라는 것이 서원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과 노력이 담겨있을 수 없다. 그래서 본문의 이야기는 서원을 들으신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의 이야기다. 예수님의 서원을 들으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의 이야기로 본문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는 자신의 촛점을 두지 않게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기뻐하는 자가된다. 이것은 자신을 죄인으로 보는 자에게만 해당이 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는 자로 인해 감사하는 자가 성도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관계 문제인 것이다. 남은 제물의 고기를 불사르라는 뜻은 이 제사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도 인간을 위한 것으로 보지말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즉 서원을 이루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관계에 부르심으로 들어간 존재가 성도라는 것이다. 속건제를 이루신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자로 부름을 받은 자가 생명의 관계에 있는 성도이며 오늘 본문의 아들에 해당된다. 그 마음은 그리스도의 행함으로 인한 감사로 충만하며 이 주님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 @드리커리지
    @드리커리지 23 дні тому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평안과 자유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주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 @grain3121
    @grain3121 24 дні тому

    목사님 건강 항상 우선으로 챙기셔요! 언제나 귀한 말씀 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24 дні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25 днів тому

    참으로 통쾌한 복음의 외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이한 하나님 말씀의 살아계심의 목도에 감사가 됩니다. 수고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오늘 본문 중 13절을 한마디로 말하면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씀의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전의 낙성식 분위기와 상반된다.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성전 제사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방패막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앙의 언급은 제사의 참된 의미를 말씀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르신 백성이다. 즉 성도든 이스라엘이든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신 연고로 존재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불렀기 때문에 자신들의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는 악이다. 이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이 스스로 낮추는 것인데 그것은 악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 스스로에게 더 나아가서 사탄에게 속고 있는 모습인것을 알아야 한다. 악한 모습 그대로 나아오는 것은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악함을 보는 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는 악한 자다. 이방인도 악하다. 모든 악한 인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백성을 부르시는 방법이 예수님이 죄인을 죄인으로 깨닫게 하셔서 부르시는 것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재앙인 것이다. ‘죄인됨을 안다’라는 것을 핑계로 재앙을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깊은 죄악됨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것을 부수는 것이 욥에게 닥친 재앙이요 그러한 자를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다. 여기에는 차등이 없다. 모두 다 불신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믿음에는 원망이 있을 수 없는 것을 아는 위치가 자신이 저주에 있음을 아는 자리인데 이것이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이며 이것이 십자가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네가 언제 나를 믿었는가?‘로 다가온다. 악한 자는 자신의 뜻을위해 하나님을 찾는 자인데 이 악함을 인정하는 것이 악한 길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성전에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뜻이 무너진 자, 빌빌거리면서 놀고있는 백수로 주의 공로를 바라보는 자 안에 있는 보혈의 능력에 있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28 днів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shwl3390
    @shwl3390 29 днів тому

    주님의 공로가 감사의 전부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TS-xv5zd
    @TS-xv5zd 29 днів тому

    참으로 기이한 잠언의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저 내 입을 막을 뿐입니다. ‘어차피 빌빌 거리고 놀고있는 자인데 제 믿음이 부족합니다 주님 이라는 말이 아무 의미없다‘는 말에 완전 빵터졌습니다. 아멘입니다 ㅎㅎ 모든 수고 진심으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 좋은 것에 대한 시각이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야고보는 아버지께로 오는 것만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외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좋은 것이다. 이것은 위에 있는 것을 구하는 자가 성도라는 뜻이다. 성도는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다. 즉 살리신 분에게 가치를 두게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 구역이 ‘주 안에서’라고 하는 구역이다. 즉 인간이 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주의 일만 있는 구역이다. 주께서 칭찬하는 자는 주의 일을 자랑하는 자다. 성경은 인간을 배제한다는 것을 늘 마음에 두어야 한다. 상급도 주의 일로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상급에는 차등이 없다. ’내가 일해서 받은 내것‘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 하늘의 상급이다. 천국의 백성은 불러주지 않으면 놀고 서있는 자다. 이것을 아는 마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정당한 댓가가 없는 곳 즉 오직 은혜로만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다. 여기에는 감사 외에 다른 반응이 있을 수 없다. 미련함은 주인의 부름을 잊은 것이다. 하늘로 부터 오는 아버지의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불러주신 은혜를 말한다. 쓸모없는 자를 부른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내가 한것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 악함으로 규정된다. 왜냐하면 주의 피가 훼방을 받기 때문이다. 주의 일이 나의 자랑을 막는 상태가 주의 일을 자랑하는 것이다. 즉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주를 자랑하는 삶이 되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이다. 주를 자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 조차도 자기의 자랑으로 삼는 것이 자신의 악임을 알고 입을 막는 것이 주를 자랑하는 것이 된다. 천국은 내 마음에 드는 나로 들어가는 곳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직 부르신 은혜에 감사와 감격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자신의 악함을 보며 입을 막고 말없이 이 땅을 걸어가는 자가 주만 자랑하는 부르심 받은 성도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Місяць тому

    참으로 기이한 복음의 역사입니다. 낙성식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큽니다. 모든 수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성경의 증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마음에 두고 분문을 대해야할 필요가 있다. 스테반과 바울은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증거한다. 그런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나와 제물을 사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가득한 성전에서 성전을 바친다는 낙성식을 한다는 의미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인인 성전에서 낙성식을 하는 이유는 인간 안에 담긴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늘에서 불로 내려오는 것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은 심판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성전에 제사장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인간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마음에 있는 성전이 헛됨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 모든 역사를 행하시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자신에게 유리한 하나님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바라는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시며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모습임을 오늘 낙성식으로 보이신다. 즉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님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모든 의도가 악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편에서 증거하는 성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본문이 말하는 감사는 여호와의 인자가 영원하다는 것에 대한 감사고 이것을 다윗의 악기로 표현하며 이것이 낙성식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것을 받은 반응이 낙성식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받아 누리고 있다는 것에는 과정이 있다. 하나님의 인도의 결과는 회개인데 이것은 죄의 드러남에 있고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과정임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나 자신이 무너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다. 이것이 성경의 현실이요 성령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역사다. 죄인의 괴수로 자신을 보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게되는 것이 이 세상에 속한 일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용서가 드러나는 것이 하늘의 역사다. 손에 피가 가득한 욕심이 약자를 외면하게 한다는 것을 죄로 본다는 것은 기이한 말씀의 일하심이며 이 역사를 기이히 감사함으로 바라보는 자가 성도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어마어마한 피의 양이 우리 안의 죄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이 죄의 발각됨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안에 있는 과정인 것이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도로 거두시는 방식 즉 긍휼과 용서로 이루어 진다. 죄인의 괴수로 드러나는 통로로 십자가만을 증거해야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내 것이 옳다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 사망의 모습이요 이 모습으로 나와 매일 탄핵과 청문회가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이 땅에 드러나는 성도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낙성식으로 탈탈털려 자기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자로 성전에 나아오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백성이요 보혈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현장이 된다.

  • @lylictenor
    @lylictenor Місяць тому

    아멘!, 감사합니다~

  • @이정환-j2f3n
    @이정환-j2f3n Місяць тому

    너희가 북한의 지하교회보다 낫겠느냐? 이슬람안에 있는 기독교인들보다 신앙적으로 낫겠느냐? 북한 지하교회도 모두 지옥가는 데 너희라고 지옥에 안가겠느녀?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너희가 무엇을 알겠느냐 너희의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은 다 우상숭배니라. 예수도 말하지 않는 가 선지자에게 듣지 않으면 죽었다가 살아난자가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모두 지옥행이다. 너희들은 지옥가려고 애만 쓰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 선지자의 말을 듣겠냐? 제대로 들은자가 내가 찾아낸 자 한명이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Місяць тому

    기이한 감동이 마음 속에 흐릅니다. 오늘도 증거된 복음으로 감사가 됩니다. 모든 수고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교회가 종교화된것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즉 미신화된 것이다. 모든 미신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믿음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참된 믿음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여전히 종교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리보게 하는 것이 믿음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럴때 자기부인의 역사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행위에서 종교심이 튀어니오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의 일이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위풍당당한 네가지 중 더 가치있는 존재로 눈이 향하는 것이 우리의 본심이다. 즉 차별을 둔다. 믿음은 이러한 나를 나 자신에게 발각시킨다. 위풍당당하게 걷는다는 것은 즐겁고 기쁘게 걷는다는 뜻이다. 세상에서는 사자와 왕이 더 위풍당당하게 보인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개와 염소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의 기자는 네가지를 동일하게 엮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를 그와같이 두셨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사냥개로 만드신 자신을 사자로 만들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종교인 미신이요 이것을 나는 자가 성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의 힘으로 알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종교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을 성령의 책망으로 받는 자가 성도인 것이다. 이러한 성도는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자랑한다. 여기에는 서로 차등과 차별이 없다. 자신의 높음이 위풍이 되는 곳이 세상이요 이것으로 가득한 것이 지옥의 모습이 된다. 성도에게는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이 관점에서 고달픈 개와 사자의 차이는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오직 주인의 기쁨을 위해 사는 사냥개가 성도인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즉 주님의 기쁨만을 위해 부름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다. 살게하신대로 사는 자가 성도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성도는 살아가게 하신대로 살아가는 가운데 불평하는 자신을 보는 자가 성도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가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 @jj4921
    @jj4921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목사님

  • @Otyk74cgim9
    @Otyk74cgim9 Місяць тому

    목사님.멀리 프랑스에서 설교말씀 항상 듣고 위로받고 있읍니다. 계엄에 대한 댓글들에 전혀 신경쓰지마세요.어차피 복음은 주님의 은혜로만 깨닫게 되니까요.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처참한 광경을 온 세계가 목도 했어요.참 우리나라에 전광훈 목사같은 사람이 있다는게 슬픈 현실이지만...그래도 깜깜한 세상에 복음을 알아듣는 소수가 있어 그래도 위로가되고 행복합니다.목사님 건강하시고 더욱 귀한 말씀으로 타이타닉호 같은 한국교회 에 구명보트가 돼주세요♡♡♡

    • @자유대한민국-v3s
      @자유대한민국-v3s Місяць тому

      @@Otyk74cgim9 계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어쩔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부정선거로 극도로 민주주의 체제가 붕괴의험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한국상황을 너무 모르시네요 그리고 인명피해하나도없는 아주 휼륭한 통치 조치였습니다

    • @자유대한민국-v3s
      @자유대한민국-v3s Місяць тому

      @@Otyk74cgim9 계엄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부정선거로 자유민주우체제가 붕괴 위험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이곳 실정을 너무 모르시네요 그리고 민주주의 하나도 짓밟히지 않았습니다 인명피해하나없는 아주 훌륭한 통치행위 였습니다

    • @Otyk74cgim9
      @Otyk74cgim9 Місяць тому

      신윤식목사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셨는데 굳이 이 곳에 들어오셔서 본인의 가치관을 목사님께 설명하실 필요없다고 봐요.열심히 복음 전하시는 분께 실례가된다고봐요.각자의 정치성향을 밝히는 곳이아니고 오직 은혜의진리만 전하는 곳이예요.아니다 싶으면 들어오지않으심되구요.혹 르몽드. 타임지.한번 읽어보셨나요?(구글번역가능)세계가 어떤 안타까운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는지....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 아가고픈 1인입니다

    • @한나래요
      @한나래요 Місяць тому

      무슨 민주주의가 처참하게 짖밟혔다는건지 댓글좀 달아보시죠 이런곳에 정치색 들어내지 마시구요

    • @한나래요
      @한나래요 Місяць тому

      ​@@Otyk74cgim9 르몽드지면 대표적인 좌파신문 아닌가요? 그런식이면 르피가로지나 미국 폭스뉴스 반응은 왜 언급안하시는지 ㅋ

  • @전춘자-t4s
    @전춘자-t4s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Місяць тому

    오늘의 증거 깊이 감사드립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의미가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는 것을 듣는 것이 참으로 감사가 됩니다. 말씀이 살아있음이 기이힐 뿐입니다. 노트 나눕니다.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교회란 무엇인지를 증거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가 된다. 눈에 보이는 기적도 없고 체험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게 보이는 신앙 생활이라고 느끼는 우리에게 기적이 담겨있는 성경이 주어져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성경에 관심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자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성경에 관심을 둔다라는 이야기들과 주장이 오히려 성경에는 관심이 없다는 증거가됨을 알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제물을 살라버린다. 이것은 신기한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불심판을 받을자가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언약궤로 나아가는 것으로 용서를 나타내는 것이다. 십자가는 용서만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함께 드러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시며 용서하시는 은혜를 나타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마음에 두고 말씀을 대해야 한다. 이 심판의 불을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과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같이 임한 성령을 받은 자는 차별없이 모든 자가 심판으로 죽은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마음이 성령이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심판을 받은자라는 것을 알게해서 인도하시는 이유는 죽은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셔서 오직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즉 오직 십자가로 이루신 하나님의 용서만을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가 된다. 이것을 자랑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성도에게 믿음은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믿음이 된다. 성도는 불심판을 이미 받은 자로 존재한다. 이러한 자가 알곡이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때 성령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심판을 담당하셨다라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함이다. 이것이 십자가다. 즉 세례 요한이 말한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모습은 성도로 하여금 자신이 받으신 십자가로 부르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이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로 인해서 심판받아 죽은 자가 받은 용서를 감사하며 찬송하는 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이 땅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보혈로 정결함을 받은 성도요 그 모임이 하나님이 그 피로 주고 사신 교회다.

  • @친중이재명구속
    @친중이재명구속 Місяць тому

    신윤식 목사님... 대통령은. 계엄을 내릴 권한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아닌자가 했다면 문제겠지요.. 좌파야당. 대표가 자신들의. 범죄를. 막기위해 검사탄핵ㆍ판사협박ㆍ군방장관탄핵ㆍ감사원장탄핵ㆍ행안부장관탄핵...이 정부들어..22회 정부탄핵...보북성..시도 선거로. 당선된ㆍ정부를 불인정..붕괴시킬 정도의..지속적. 공격한..야당 야당의. 중국간첩법. 통과반대 간첩. 수사ㆍ검거 무력화.. 예산 통과 거부로 검ㆍ경ㆍ청와대. 특활비 0원... 야당 당대표 범죄 수사를 하는 경찰ㆍ검찰이 수사 활동을. 못하도록 . 극에 달한. 정치적보복...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조작 국정원의. 증거발견... 감사를 거부하는 선관위.. 야당 대표와. 연관된 선관위 유착관계로. 대한민국. 민주적 선거시스템의 붕괴... 중국공산당의 한국 정치인 매수ㆍ회유로..국가가..친중세력화... 계속되는 중국의 간첩활동.. 대한민국. 안보. 위협을. 계엄발동의. 담화로 발표한것을 못들으셨나요..?? 아니면. 왜곡된 뉴스로만 세상을 판단 하시나요..?? 선관위 전산서버. 비밀번호가 12345. 단순할뿐 아니라.. 방화벽이 없는정도로 허술하고 외부uSB로도 선거 통계를 조작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발표 하셨고.. 어떤 감사도 거부한 선관위의 무소불위권력과 선관위 위원장을. 임기가 끝난 문재인 정권이. 불법으로 자기사람을. 임명하고 내러가는 등...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스텸이 붕괴 되 있다고 대통령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계엄은. 헌법에 준해 발동했고 민주적 절차를 지켜 해제한것도. 대통령의 계획이었다는. 말을. 못들으셨나요..?? 공신력있는 목사님의. 말에 성도들도 북ㆍ중ㆍ러에 적대적 이였기.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 한다는 민주로 위장한. 좌익 정당의 주장에 동조 할까. 걱정됩니다..ㅠ 누구를 지지해서 이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국가이고 국민은. 자유민주체제를 다같이. 지키고 보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좀더 알아보시고 신중히 판단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악을 선으로 보고 선이 악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하심이 우리에게.도. 임하여 주시길 간구 합니다..!

    • @규벅스
      @규벅스 Місяць тому

      많이 잘못 알고 계시네요..유투버에 의존하지 마시고 좀 더 실상과 내막 팩트를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자유대한민국-v3s
    @자유대한민국-v3s Місяць тому

    목사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계속 설교말씀 듣고 은혜받고 목사님을 존경해온 신자입니다 지난 설교동영상도 많이 듣고 또 진정한 기독교정신이 무엇인지도 깨달아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댓글 쓰게된것은 복음내용 때문이 아니라 현시국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에 좀 동의할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요 계엄령이유는 이유없이 생각없이 한게 아니라 선관위 조사를 위해 어쩔수 없이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그러지않고는 조사를 계속거부해왔기 때문입니다 존경하고 복음에대 진리만 설교하시는 목사님께서 현시국에 대해 너무 모르시는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부디 오해말고 댓글 읽어주시고 현시국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경기도에서 항상 설교말씀듣는 평범한 주부 드림-

    • @Otyk74cgim9
      @Otyk74cgim9 Місяць тому

      극우 태극기 유튜버 혹은 전광훈 목사 사상에 현혹되지 마시길바래요.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총을든 군인들이 국회창문을 부수고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저지하며 광란을 부린것 .온 세계가 지켜보았고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걸 가슴아파 했어요.상식을 가진 적어도 자칭 크리스챤 이란 분이 어쩜 그리 어리석은지요? 신윤식목사님은 본인께서 추종하시는 소위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과 전혀 다르신 분이니 함부로 댓글로 괴롭히지 마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 @3rt852
      @3rt852 Місяць тому

      저도 희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용기내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유대한민국-v3s
      @자유대한민국-v3s Місяць тому

      @3rt852 감사합니다 생각이 같은분이 계셔서 위로가 됩니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Місяць тому

    듣는내내 너무나도 감격이돼서 마음의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복음의 역사입니다. 모든 수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노트 나눕니다. 성경을 읽는데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늘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인간의 악함이 본래의 성질임을 성경은 누누히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선을 행할 수 없고 악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의 악함은 자신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악함을 행위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보신다. 그 생각이 악함을 보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계획은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다. ‘너를 위해서 선악과를 먹어라‘라고 한 사탄의 유혹 안에 있는 것이 악함이다. 그러한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선을 행하려고 하지 말고 그 악함 그대로 나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악함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 여기서 이러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허락한 성전이다. 죄인으로 나오는 자들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의 증거 멧세지다. 즉 선함을 행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아는 마음으로 가득한 나라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죄있는 자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자가 아니다. 용서받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세계다. 용서받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 자체가 악함이다.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십자가요 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긍휼가 자비가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구원과 복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지혜다. 즉 자기를 위하여 주를 찾지 않게 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자신을 오직 죽음에 해당한 자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본문의 요지가 된다. 땅의 작은 것들은 날때부터 작다. 그리고 작은대로 살아간다. 위험을 입기쉬운 상태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항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잠언 저자의 포인트다. 개미와 메뚜기가 작은것이 맞다면 나 자신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용납 못함이 우리의 악함이다. 개미가 여름에 일하는 것은 어떤 큰 결과를 기대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겨울을 대비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악한 인간은 힘이 없는 자로 심판을 대비하여 예수님만을 생각하며 살지않는 것으로 드러난다. 개미는 우리에게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너만을 위해 사는것 아니냐는 것이다. 개미의 삶이 노아가 방주를 짓는 삶인 것이다. 사반, 도마뱀, 메뚜기도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님이 피난처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연약한 상태 그대로 주의 피를 믿고 그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사는 자가 이 땅에 지혜로 드러난 성도다.

  • @전춘자-t4s
    @전춘자-t4s Місяць тому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TS-xv5zd
    @TS-xv5zd Місяць тому

    참으로 기이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솔로몬의 기도로 뵙는다는 것이 십자가 보혈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수고하신 모든 증거에 깊이 감사드리며 기록한 노트 나눕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진노의 하나님이 아닌 용서의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중심을 나한테 두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의 기쁨이나 슬픔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여기서 왜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하나님은 내가 눈물을 흘릴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님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욥이 그러하다. 욥은 억을함을 토하면서 하나님을 자기를 치는 자로 보았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는 포악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보시는 자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보는 욥의 잘못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이 증거하는 그의 잘못은 자신의 기준과 시각으로 자기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욥에게는 하나님이 보시는 자신에 대핸 생각은 부재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잘못됨이다. 나의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은 무의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판단만이 진실한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본문이 이를 증거한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즉 범죄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이 모든 기쁨과 슬픔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적국과 싸우는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아 달라는 기도의 의미가 승리가 아니라 진노로 적국에 넘겨 심판을 받는다는 것과 연결이 되어있는 것을 아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가 된다. 적국에 넘기운 가운데 그들의 범죄함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돌봐달라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바라보는 자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다. 범죄한 자임을 아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의 마음에는 오직 감사만이 흘려 넘칠 뿐인 것이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위한 기도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 개입이 하나님의 돌보심이다. 이 개입 안에서 자신을 범죄한 자로 바라보며 십자가의 용서를 감사함으로 마음에 두는 자가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 @배영자-j9m
      @배영자-j9m Місяць тому

      무례하고 꼴볼견인 저는 아멘 아멘입니다. 고귀한 생명의말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