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최윤덕, 조선의 국경을 세우다 / KBS 2011090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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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іковано 21 сер 2024
  • - 세종, 마침내 여진과의 전쟁을 결심하다!
    조선 초의 국경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남쪽에는 고려 말기부터 이어진 왜구들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고 북으로는 여진족들이 평안도와 함경도까지 내려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특히 여진족은 조정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고구려와 발해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여진은 고려 때는 세력이 강성하여 금이라는 나라를 세웠었고 후에는 명을 멸망시키고 청을 건국했을 만큼 막강한 세력이다.
    당시에는 만주지역에 부족단위로 흩어져 살고 있었지만,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언제든 조선을 위협할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만큼 조선으로서는 여진족은 경계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여진족의 잦은 침입으로 피해가 심각했던 조선의 최북단 방어 진지였던 경원부를 후퇴시키자는 의견이 오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토는 한 치의 물러섬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세종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던 1432년 겨울,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파저강 유역에 살던 여진족이 대거 여연에 침공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평안도 지역에서는 처음 당한 여진족의 대규모 침입인 데다가 침입한 세력이 조선의 울타리 구실을 하는 대가로 생활물자를 공급받으며 생활해오던 오랑캐였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마침내 결단을 내린 세종! 여진과의 전쟁을 결심한다.
    - 최윤덕이 이끈 조선의 1만 5천대군, 파저강의 여진족을 정벌하다!
    1432년 여진의 추장 이만주는 기병 400여 기를 이끌고 조선의 영토에 침입해 조선의 백성을 살해한다. 이에 파저강 일대의 여진족을 정복할 것을 선포하는 세종. 파저강 정벌이라는 막중한 임무는 당시 평안도 절제사였던 최윤덕에게 맡겨졌다. 결과는 183명의 여진족 참살과 248명의 생포, 그러나 조선의 피해는 4명에 그치는 대승을 거뒀다. 전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오랜 세월 동안 변경에서 여진족을 방어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최윤덕의 작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저강의 험준한 산 곳곳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 부족들이 힘을 합세해 대항할 수 없도록 1만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기습작전을 펼쳤다.
    파저강에서의 승전보를 들은 세종은 곧바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전반에 걸쳐 국방 요새인 4군 개척 작업에 착수한다. 파저강토벌에는 여진족 정벌 이상의 의미, 북방영토 개척이라는 세종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 파저강토벌을 승리로 이끈 휴대용 개인화기 세총통
    세종의 북방영토 개척은 화포의 발전에도 박차를 가하게 한다. 이때 개발된 조선시대의 신무기 세총통은 전체 길이 14센티미터, 구경은 0.9센티미터로 조선시대의 화기 중 가장 작은 크기다. 오늘날로 따지면 휴대용 개인화기, 권총과 같은 것이었다. 본래 적진에 침투하는 정찰병들을 위한 무기로 고안되었지만 이후 그 휴대의 간편성으로 기병들이 주로 사용하게 된다.
    신속한 기동력이 필요한 파저강 전투의 기습작전에서도 세총통은 큰 활약을 했다.
    뿐만 아니라, 적에게 비밀이 누설될까봐 국경선 지역에서는 연습조차 금했다는 조선의 비밀병기가 편전도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최윤덕의 파저강 토벌을 승리로 이끈 조선의 첨단 무기들을 만나본다.
    - 세종의 제갈공명, 최윤덕은 누구인가?
    4군 개척에 큰 공을 세웠던 최윤덕은 오랜 세월 전장에서 실전을 쌓아왔던 준비된 무장이었다. 그는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원종공신에 올랐던 무관 최운해의 자식으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전쟁터를 누비며 성장한다.
    또한 세종 1년에는 삼군도절제사 신분으로 유정현, 이종무 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도 참여했다. 파저강 토벌을 승리로 이끈 최윤덕은 그 공으로 우의정에 특진된 이후 좌의정에까지 오른다.
    무인으로서 드물게 수상 자리에까지 올랐던 최윤덕이지만 그가 정작 한양의 조정에 머물러 있던 시간은 불과 1년도 안될 정도다. 70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대부분의 세월을 변방에서 보내면서 국경선을 정비하고 경계하는데 힘썼기 때문인데, 세종의 굳은 의지와 최윤덕을 비롯한 수많은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개척한 국경선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땅에 새겨진 역사와 국경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신역사스페셜 80회 - 최윤덕, 조선의 국경을 세우다 (2011.9.1.방송)
    history.kbs.co.kr/

КОМЕНТАРІ • 80

  • @user-cx3di2iy7j
    @user-cx3di2iy7j Рік тому +7

    이런 장군님들이 이 나라를 있게한 거지요. 그냥 힘만쎈 그런 무장보다 지략 전략이 겸비된 최고의 엘리트 무장이죠. 존경스럽습니다. 현 우리나라의 장교들이 저런 최윤덕 장군의 반이나 따라가는 인물이 얼마나 될까요? 승진에 눈이 멀어 아부 아첨만 난무합니다.

  • @jctv888
    @jctv888 5 місяців тому +1

    이프로는. 위대한 방송이다ㆍ.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위대한. 제작진이다 ㆍ

  • @user-ol8kw8pu5m
    @user-ol8kw8pu5m 2 роки тому +18

    세종과 선조의 차이
    세종은 현지 지휘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냄
    선조는 현지 지휘관에게 절대적인 불신을 시전

    • @ghwnsha
      @ghwnsha День тому

      자기 명령을 거역했다고 조선 최고의 장수를 그대로 잡아서 고문하고 죽이려고했던 위대한 업적을 세운 선조 쓰레기새리

  • @user-ee2yl2ik1l
    @user-ee2yl2ik1l 2 роки тому +12

    아~ 공험진.
    고려 윤관장군이 두만강 북방 700리에 있는 선춘령 고개에 고려지경 비석을 세웠지만, 후손들이 아직 회복하지 못했구나.
    압록강, 두만강 연안에 성을 쌓고 지켰더니, 그곳을 국경이라 여겼더냐?

  • @user-dd8jn9lj1d
    @user-dd8jn9lj1d 2 роки тому +21

    최윤덕장군 참 대단하셨네요. 난 김종서 장군만 생각나는데 그 전에 최윤덕 장군이 계셨네요.

    • @user-uj9gk9jg4q
      @user-uj9gk9jg4q 2 роки тому +4

      @@user-qy6nw1cy7m 우리나라? 넌 어느나라 인간이냐?

    • @백마VICTORY
      @백마VICTORY 2 роки тому

      @@user-qy6nw1cy7m 북방정벌은 명나라의.땅이 아니라 우라땅이란 의식이기 때문에 그런
      사대사상은.성립이 안된단 말이라그랴. 대명천지숭정일월은.있어도.조선의히늘과땅이 대명꺼랸.말은 없는말이엇드랫죠

    • @iamnot-there
      @iamnot-there Рік тому +2

      김종서는 문관이었고, 맨날 돌아오고싶다고 상소했다더군요. 무관 최윤덕 장상이 전쟁이나 성건축을 다했죠.. 깍아내리려했다고 조선왕조 실록에 리얼하게 써있음.

  • @user-hm7sq5cg2r
    @user-hm7sq5cg2r 2 роки тому +12

    창원사람이면 시청앞에 최윤덕장군 동상 모르는사람 없지.
    갈때마다 늠름한 동상 간지 지림

    • @myungimsuh4654
      @myungimsuh4654 2 роки тому +4

      창원 시청 앞의 최윤덕 장군님! 창원의 자부심. 참 공경스럽습니다. 👍✌👍✌

  • @100redrose6
    @100redrose6 2 роки тому +2

    영상속 27 : 02 초 새총통 성능위력 발사 시험때 육군에서는 사용한 화약이 오늘날 현대전 무기의 사용하는 총.포탄약에 쓰이는 (무연화약) 으로 화약의 폭발 발화성능이 뛰어나 운동에너지 압력이 뛰어남 관통력 파괴력이 월등 하지만 조선시대 화포 총통 조총에 실제로 사용한 ( 유연화약 ) 흑색화약은 보관에 취약하고 특히 계절의 변화와 온도 습도 발화점에 크고작은 차이가 있어 성능은 많이 떨어지고 발화점이 느리고 연기가 많이 나며 화약의 폭발압력 운동에너지도 많이 떨어짐 만약 새총통에 (유연화약) 으로 사용하여 성능 위력 시험을 할때 값옷 관통력은 현저히 떨어짐 소리도 작고 새총통에 사용하는 (화약종류와 성분의 차이) 일뿐

  • @bhpark9125
    @bhpark9125 2 роки тому +5

    조선판 특수부대인 체탐자 이야기는 여기에 없네요...여진 정벌하기전에 체탐자 여러팀을 보내서 정찰했고 그 정찰 결과를 토대로 군사작전을 진행했다고 하던데....저 체탐자들도 세총통을 사용했다죠.

  • @user-qz2vt3tp6f
    @user-qz2vt3tp6f 2 роки тому +3

    세종.최윤덕.김종서....기억하자

  • @pangyapangya
    @pangyapangya Рік тому +2

    리더의 역량차이가 이렇게 중요하다.

  • @spark2816
    @spark2816 2 роки тому +5

    완전 총 아닌가?ㅋㅋ와...ㅋㅋㅋ 대단...

    • @user-kg3gz9yu7h
      @user-kg3gz9yu7h 2 роки тому

      총? 머 아직 보진 않았지만 ㅋㅋ 편전보다 쎈가? 세총통이? 편전은 300m이상 사거리인걸로 아는데 최대 500m인가

  • @user-mz2qf1vf2y
    @user-mz2qf1vf2y 2 роки тому +11

    세종 이전 ㅡ 태종이 기틀을 마런했기에 ㅡ이런 휼륭한 분이 나올수 있다는걸 ㅡ 세자 모든죄는 이애비가 다지고 가겠으니 세자는 태평성대를 이루는 성군이 되시요 ㅡ 눈물나는 대사 ㅡ진짜인지 모르지만ㅡ

  • @heungsikhan7685
    @heungsikhan7685 11 місяців тому

    새 총통 손잡이 부분이 잘못 제현된듯.
    저렇게 집게 형태라면
    화약폭발시 그ㅡ반동을 견디지 못할겁니다. 사람의 악력이 어찌 저걸 견딥니까.
    손도 바들바들 떨릴정도로 집게에 힘을줘서 손으로 쥐어야 할텐데
    저건 말이 안됩니다.
    아마도 집게 부분은 좌우로 흔들리는걸 방지하고 총통 뒷부분을 받쳐주는 격자가 있었을거고
    그ㅡ아래에 손잡이가 있었을겁니다...

  • @user-er7wx9hw3l
    @user-er7wx9hw3l 2 роки тому +12

    세종대왕이 든든한 버팀목이였군요

    • @user-rf5ow1zq4c
      @user-rf5ow1zq4c 2 роки тому +1

      @@user-qy6nw1cy7m 오랫만에 왔는데 아직도 이렇고 놀고있네 ㅋㅋㅋㅋㅋㅋㅋ매금아 자기소개 그만해^^

  • @user-zl1ob3ui8n
    @user-zl1ob3ui8n 2 роки тому +9

    수신료의 가치~

  • @user-jk7gh5yi9c
    @user-jk7gh5yi9c 2 роки тому

    지금은 가보지도 못하는 땅이라는게...

  • @user-ct1tg4lw7s
    @user-ct1tg4lw7s 2 роки тому

    피 땀 많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손

  • @daebak1
    @daebak1 Рік тому +1

    오녀산성쪽 여진족 토벌했는디 그쪽까지 영토를 확장해서 동화정책을 왜 안했을까?,아쉽네요.공험진까지 돌려받아야할듯

    • @iamnot-there
      @iamnot-there Рік тому

      전쟁해서 땅을 얻는거랑 거기에 조선인들이 정착하는것은 전혀 다른문제니까요. .. 여진이 점거하던 땅이라 민간인을 정착이 힘들었다 해요. 그래서 최윤덕 장상은 늘 성을 쌓자고 하고 덕분에 축성대군이라고 불리셨습니다.

  • @user-pc4pj5ei9c
    @user-pc4pj5ei9c 2 роки тому +4

    만주까지 우리건데ㅠㅠ

    • @PrettyT-rex
      @PrettyT-rex 2 роки тому

      @@user-qy6nw1cy7m 스키타이 아리아인 서흉노 신라인 ㅇㅈㄹㅋㅋㅋㅋ

    • @PrettyT-rex
      @PrettyT-rex 2 роки тому

      @@user-qy6nw1cy7m
      응 개소리ㄴㄴ신라인 고인골이 전부 스키타이족과 혈액형이 똑같게 나왔다고?
      어떤 유적에서 나온 고인골이??
      강원 경상에 서양인 같이 생긴 사람들이 많대 쉬벌ㅋㅋㅋㅋ내가 경상도 사람인데 뭔 염빙이야?

    • @PrettyT-rex
      @PrettyT-rex 2 роки тому

      ​@@user-qy6nw1cy7m
      와 별 내용도 없는데 공간 잡아먹는 댓글 연발로 날리는거 극혐이네 틀딱 아니랄까봐ㅉㅉ
      어느 유적에서 발굴된 유골이 신라인 유골과 혈액형이 같았는지 말하라니까 동영상 링크를 처걸고 있네?
      1- "스키타이족들과 신라인들이 하나의 유전자 그룹으로 묶였음"->그러니까 근거를 대라고ㅋㅋㅋㅋ
      2- "한국내 한국말 잘 하는 중국 이민자 후손들이 무려 45프로 정도 됨"->45%?? 통계 출처 좀ㅎㅎ
      3- 김일제 키가 190? 근거 좀ㅇㅇ
      4- 문화사적, 고고학적, 인류사학적으로 고구려 백제가 중국사?ㅋㅋㅋㅋ근거 하나도 못댈거면 걍 조용히 있는게 어떰?

    • @PrettyT-rex
      @PrettyT-rex 2 роки тому

      @@user-qy6nw1cy7m
      뭐래 근거 갖고오라니까 숙제ㅇㅈㄹ하고있네ㅋㅋㅋㅋ
      지가 질문을 하고있어ㅋㅋㅋㅋ뭐하냐?
      위에서 내가 물어본 거엔 하나도 대답을 못하네 후달리냐?ㅋㅋㅋ
      어느 유적에서 발견된 신라인 고인골이 스키타이 인골이랑 혈액형 같게 나왔냐고...이것부터 대답해봐, 응?

    • @PrettyT-rex
      @PrettyT-rex 2 роки тому

      @@user-qy6nw1cy7m
      1.전라도에서 발견되고 있는 전방후원분? 왜계 유적이지ㅎㅎ
      전라도에서 뭘 숨기고 은폐를해ㅋㅋㅋㅋㅋ
      전라도가 숨겼으면 너같은 찌구르게가 어떻게 알고 있는건데?
      너도 인터넷에서 정보 접한거 아니야?
      망상 수준보소ㅋㅋㅋ
      2.전방후원분에서 발견된 고인골이 백제,신라,가야와 유전자가 달랐다고?
      전부 일본인들과 혈액형이 100% 일치???
      관련 논문 제목 좀 알려줘 찾아보게ㅇㅇ
      (어차피 얘는 근거 못대고 도망갈 예정ㅍㅍ)
      3.송산리고분 1~5호는 굴식돌방무덤이고 중국풍은 6호 무령왕릉밖에 없는데
      무슨 근거로 전부 중국풍이라고하는거임??
      2018년 하남시에서 수두룩ㅋㅋㅋㅋㅋ
      너 자세하게 모르지?
      잘 모르니까 '수두룩'이니 '전부'이니 두루뭉술하게 말하는거잖아?
      하남시 어떤 고분인데? 말해봐ㅋㅋㅋㅋ
      4."양직공도에 중국말 한다"라고 나오는데 사실이냐고?
      응~사실 아니야~
      중국문화의 영향으로 중국말이 많이 된다고 써져있지
      백제가 중국어를 쓴다고는 안나와 있어~
      한국인이 영어로된 명사 섞어쓴다고 브리튼족되냐?
      지늉수듄ㅋㅋㅋㅋㅋ
      5.북방의 예맥족과 남부의 韓족이 섞여서 한민족의 근간이 되었지^^
      중국의 경우도 화하족을 중심으로 동이,서융,남만,북적이 섞여서 한족이 되었잖아?ㅎㅎㅎㅎ
      6.한사군이 400년 넘게 갔댘ㅋㅋㅋ알려면 제대로 알던가 400년 가까이 간 건 낙랑군이고 인간아ㅎㅎㅎㅎ한사군이 한민족의 땅이었냐고?ㅇㅇ
      지배층만 중국계였지 그 땅에 사는 민족 절대다수는 한민족의 조상이었는데?

  • @user-qd2le3ic1k
    @user-qd2le3ic1k Рік тому

    어이구...

  • @stern121
    @stern121 2 роки тому +1

    권총...누가 봐도 너무 불편해 보이는데 그 시절 조상님들도 그리 생각하고 개선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 @user-ed9hn2sh9q
    @user-ed9hn2sh9q Рік тому

    조선초 200년 평화에 안주 하지 않고 세총통을 계속 발전 시켜 정치와 국방을 중시했으면 왜란과 호란없이 국토를 넓힐수 있을텐데?
    현재를 사는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 @iamnot-there
      @iamnot-there Рік тому

      유럽 역사랑 비교해보시죠. 최윤덕 장상이 계셔서 위아래 국경을 지킨거고 500여년넘게 조선팔도의 원형을 지킨것만해도 대단한겁니다. 우로 전범국가, 위, 좌로 러시아랑 중국을 이고, 작은 나라가 이렇게 오래 국경을 지켜낸게 다행인겁니다. 국토를 넓히다니 ..? 위그르족 보세요 . 그 말이 나오나요..? 그들을 상대로 국가 원형을 지킨거만해도 대단한겁니다. 우

  • @user-lg3fs9wm9h
    @user-lg3fs9wm9h 3 місяці тому

    잔라도 오리지널 호남형 이구만

  • @user-rg7rz5cs6w
    @user-rg7rz5cs6w Рік тому

    최윤덕이랑 세종 화포만 있었다면 북벌정책을 더 키워야 했다 조선의 전성시대 정복군주가 세종이여야 했는데 아쉽다

  • @WARRIOR1991birth
    @WARRIOR1991birth Рік тому +1

    세종대왕님! 최윤덕장군님!🫡
    존경스럽고 억수로 멋있으십니다!
    그리고 장군님! 저도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선조나 매국노들같은 조썅놈들은
    지옥에서도 괴롭게 지내고있기를

    • @iamnot-there
      @iamnot-there Рік тому

      통천이 본 이고, 아들들이 유배된 집성지는 옥천이라 창원은 그냥 태어나기만 하신곳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단종애사로 재신몰수된 땅이름봐도 창원이 크진 않았어요. 고려조내내 유서있던 명문가이고, 무관집안이라 조선팔도를 다 다니셨기에, 창원은 최가 가문이 아니라 내자의 연고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원시측도 그런이야길 하더군요. 지방서 태어나기만 하고 실제 삶은 개성이나 한양 압록강변에서 활동하셨는데, 창원의 인물로 내세우기엔 연고가 적은게 아니냐고… 고구려 온달장군의 연고지가 현재 온달장군을 내세우는 지방지역이 아니듯이( 거긴 그때 적진인 신라땅이었던 곳이었음;;) 최윤덕 장상의 생가 표시 한장때문에 창원에서, 연고지로 밀고있고 그런줄로 알아요. 사망시 묻힌곳도 전혀다른 장소였어요.

  • @user-tl3mh7ym7u
    @user-tl3mh7ym7u 2 роки тому

    또~재탕인가!

  • @user-yn3ix9dv9t
    @user-yn3ix9dv9t 7 місяців тому

  • @user-zo2tu8gh7r
    @user-zo2tu8gh7r Рік тому +1

    1405년 고려공민왕 유교사상 시작된다!.
    한국 김해김씨 2차 시작점이다!.최소 김유신이 왕건보다 밑 바닥이냐?..

    • @ghwnsha
      @ghwnsha День тому

      김유신 따위 쓰레기를 어디서 들이대 ㅉㅉ

  • @jeinchoi6687
    @jeinchoi6687 Рік тому

    위대하면 뭣하노???
    세종의 유언을 받들어.....
    뒤에 세조에게서 단종 구제 하다가 멸문 지화를 당한 통천 최씨.....ㅠㅠㅠ
    그리고 순흥안씨.....

    • @iamnot-there
      @iamnot-there Рік тому

      그래도 통천최씨 후손들이 1만명은 살아있습니다.. 저도 그 희귀한 후손중 하나구요.. 왕의 후손이면, 원래 면책특권이 있는건데 세조는 그런 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최윤덕 장상의 아들은 , 그저 왕친과 대화를 했거나, 사육신과 연관된 인맥에서 활쏘기를 했다는 단2가지 이유로 재산몰수를 당하고 두명이 피살되었습니다. 그것도 700여명이 죽어나간 계유정란이 지나간 이후에 세조즉위 2년에 당한일입니다. 유배지가 전남 해남 옥천면이었고 후손들의 집성촌중 하나였습니다..창원은 그냥 태러난장소이구요 .. 단종복위때 수복하고 , 살해당한 아들들은 단종에 대한 충신 백여명 명단에 배향되었습니더. 그후 후손들은 이순신장군과 함께 전라도 해전을 치르거나,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하신분도 있는등, 혈족이 조상 성격 그대로 유지한 분들이 있습니다. 500년의 조선왕조실록 전체에 최윤덕 장상은 무려360번이상 회자되었고, 조선 중기 후기에도 계속 언급이 되셨었습니다. 4도 6군이 한양으로 돌아가겠다고 상소나 내며 징징대던 김종서 덕분인줄만 아는분들이 많은데 김종서는 문관이고, 4군 6도 국경은 무관이 만든겁니다. 그후 성을 짓고 국경을 유지하게 돌본건 모두 최윤덕 장군이 한 일 입니다. 영의정, 좌의정을 하고 70세에 왕의 하사품을 받고 졸하셨습니다.(졸은 왕조실록속의 단어로 사망하셨다는 뜻.) 그리고 대마도 정벌때도, 일본첩자들을 미리 치워놓고 지략을 세운게 최윤덕 장상이 하신일이여요.(대마도 군주는 조선령이라고 승복 편지함) 국경 위아래로 다 지킨 격이죠.

  • @user-xr8tj4qy8u
    @user-xr8tj4qy8u Рік тому

  • @user-eh1zo1ki7t
    @user-eh1zo1ki7t 8 місяців тому

    한민족❤일만천년역사ㅡ부도지ㅡ환단단고기ㅡ고조선.ㅡ북부여ㅡ스키타이.ㅡ흉노.훈족.ㅡ돌궐.투르크민족.ㅡ선비.오환.동호족.ㅡ거란ㅡ.요.몽골.ㅡ원.ㅡ여진.ㅡ금.청.ㅡ몽골리안~~코리안😂🎉😅

  • @user-vh7fh1qb4x
    @user-vh7fh1qb4x 10 місяців тому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3명을 꼽으라면 김유신 최윤덕 이순신을 꼽겠음

    • @ghwnsha
      @ghwnsha День тому

      김유신 따위가 위대한 장군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ㅉㅉ 중국에 나라와 백성들을 바친 쓰레기가 뭔 얼어죽을 위대한 장군이래 ㅉㅉ

  • @user-zx8dm2xs8r
    @user-zx8dm2xs8r 2 роки тому +1

    보슈,교수님. 실제국경은 아복두만강 이북으로 고지도에 나와있읍다.

    • @PrettyT-rex
      @PrettyT-rex 2 роки тому

      안나와있음

    • @ghwnsha
      @ghwnsha День тому

      제대로된 기록도 남아있는게 없는데 뭔 개소리야 ㅉㅉ

  • @user-pi6cn1hx5e
    @user-pi6cn1hx5e 2 роки тому

    건들건들에서 하던거.... 복붙인가?

  • @khwcorea1004
    @khwcorea1004 Рік тому

    현재 압록강은 고리(고려). 조선 국경으로 알려진 현재 압록강이 아니에요....
    북진해서 요하이고, 철령과 선춘령 조선에 실제 국경이니 현재 압록강과 두만강은
    기준은 일제 만든 국경이다.

    • @ghwnsha
      @ghwnsha День тому

      니 뇌피셜로 지껄이고 싶으면 증거자료를 가져와서 제시하면되

  • @tedkim3066
    @tedkim3066 2 роки тому +1

    쭝궈에 사대만 안했으면 ....

    • @user-xf9nl9mv8i
      @user-xf9nl9mv8i 2 роки тому +1

      사대 안했으면 조선은 멸망에 진즉 식민지상태에요

  • @user-un8mi8qk3d
    @user-un8mi8qk3d 2 роки тому

    ㅇㅇㅇㅇㅇ오키

  • @user-du7st2zc8v
    @user-du7st2zc8v 2 роки тому

    아무리 무료라고 해도 광고는 진짜진짜진짜 극악이네요

    • @iamnot-there
      @iamnot-there Рік тому

      크롬 브라우져에서 확장 프로그램을 쓰세요. 광고차단 쓰면되는데 그걸몰라서..;;

  • @user-pc8oz2rg4u
    @user-pc8oz2rg4u 2 роки тому

    이성게 이 자가 우찌 조선을 건굮 하였나 이 근본도 없는 자가 웃겨

  • @tedkim3066
    @tedkim3066 2 роки тому

    조선 국경이 저게 아닌데...

    • @ghwnsha
      @ghwnsha День тому

      증거 자료를 가져와

  • @user-zo2tu8gh7r
    @user-zo2tu8gh7r Рік тому

    염병 정주고 내가우네!.~~

  • @user-pc8oz2rg4u
    @user-pc8oz2rg4u 2 роки тому

    성게 아들 세종이 성군이라니 욱겨

  • @user-if9gy8qg7e
    @user-if9gy8qg7e Рік тому

    더 북벌을 했어야 했다.

  • @user-dokdoya
    @user-dokdoya Рік тому

    우리 선조가 타국을 정벌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면 아마도 중국 일본은 지금 대한민국 영토 일 것이였는데 방어차원의 기술력만 추구 한 것이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