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선생은 충청도사람입니다 지금도 충청도사람들중에는 특유의 비유법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도 조선시대나 그 이전부터 그런 화법을 충청도에서 많이 사용했나봅니다 영국런던이나 일본교토도 비유법이나 반어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런지방은 귀족이나 권력자가 많이 산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일본이 구한말에 우리나라의 인구를 조사할때 전국의 양반이 2%였는데 충청도는 10%였죠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아들 이승인과 함께 3년형을 사는 동안 개신교로 개종했다. 이후 이승인이 옥 중에서 사망하는데 이 때 이승만이 준 성경을 읽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에 원한맺힌 마음을 푼다. 이승만과는 이 때부터 사제 지간이 됐다고 한다. 1906년 조선에 은혜를 입은 일본인 소다 가이치를 기독교인이 되도록 전도하고 소다 가이치는 훗날 조선 아이들을 돌보고 조선의 독립 운동을 도우며 미쳐가는 자국에 맞서 조국의 악행을 회개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된다.
이완용도 그렇지만 당시 조정 대신들중에 이씨들 줫나 많자나요~ 그게 고종전에 대원군이 세도정치 박살내려고 종친들 정치로 끌어들여서 그래요.. 그런 그들을 콘트롤 가능한 대원군을 몰아냈으니 그때부터는 종친이란 배경을 바탕으로 신하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될수밖에요.. 그러니 고종이 아무것도 못하고 이래저래 휘둘릴수밖에 없던거.. 자신이 콘트롤이 가능할만한 시점에 대원군을 몰아냈어야지.. 처음부터 잘못된거였죠..
이상재 선생에 관한 깨알 상식 1. 이상재 선생은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로 야구에서 시구를 한 사람이다.평소 선생은 체육을 통한 인성함양을 중요시 했다고한다. 2.한국인 최초의 라디오 방송 DJ이기도 하다. 조선일보가 창간되고 그는 조선일보 총재가 되면서 라디오 방송을 하기도 했다고한다. 3.이상재 선생이 특사로 미국에 파견됐을때 갓을 착용한 모습을 보고 미국 십대들이 미개하다고 비웃고 돌을 던졌다고 한다. 결국 십대들은 외교관에게 테러를 했다고 잡혀갔으나 이상재 선생이 직접 경찰서로 가 철 없는 아이들이 벌인 일이니 용서해달라하고 자신의 갓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3.일제가 영어는 무조건 일본인한테 배워야 한다 하니까 '윽'이거 발음 못하는 놈들이 무슨 영어냐 라고 했다 한다. 4.한번은 비누를 보고는 칼로 썰어먹으려고 했다고한다. 당황한 외국인이 그건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나도 이게 몸 씻을때 쓰는 거란 걸 알고 있소. 그래서 이걸로 마음도 씻어보고자 하오.'라고 했다고 한다. 5.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인이 대포를 보여주고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군사력이 어떻소 라고 물었는데 그 군인이 감기에 걸려서 재채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선생은 '러시아 군대도 때려잡는 일본 포병이 그깟 감기 하나 못 잡소?'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6.며느리가 재봉틀을 도둑맞았다고 몹시 울고 있었는데 선생은 며느리를 호되게 야단쳤다고한다. '너는 나라를 잃었을때의 슬픔보다 그깟 재봉틀을 잃은 슬픔이 더 크냐? 라고 말이다. 7.3.1운동 당시 그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취조 받는데 '문명국이라는 일본은 제 어미애비뻘 되는 사람도 마구 때린다 하더라.자 어디 나도 한 번 때려봐라. 라며 강경하게 나갔다고 한다. 결국 일본인 순사는 차마 늙은 이상재를 고문할 수 없었다. 8.출옥후에도 선생님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라고 동료가 말하자. 넌 여기가 편한가 보구나. 라며 일제치하 조선은 거대한 감옥이라는 말을 돌려 말했다. 9.한번은 조선총독부의 거물이 이상재를 만나 조선과 일본은 부부와 같은 사이인데 남편이 좀 매를 들었다고 아내가 대드는 게 어딨소? 라고 묻자. 남편? 당신네가 왜 남편이오? 라고 말했다고 한다. 10. 그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한 번은 그가 친일파들의 만찬에 초대받았다. 그는 연회장에 오고는 여기 개나리들이 만발하구나 라고 말했다. 연회장은 개나리가 없기에 무슨 말인가 물었더니. 봐라 참나으리들은 없고 개나으리들만 잔뜩 있지 않은가? 라고 대답했다 한다.
한 때 조선일보 사장도 하셨다고 알고 있슴다... 네.. 서울 뺏기자 김일성 장군 만세 호외판 찍어낸 그 조선일보 맞습니다 맞고요... 방응모가 조선일보 인수 하기 전 까지는 멀쩡했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일보 조차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며 '국가보안법을 배격함' 이라는 사설을 실었...
친일파는 개 순사들은.나리 라고 불렀는데
자기 연설할때 친일파랑 순사들이 많이와있으니
연설 첫마디가
추운 겨울인데도 개나리꽃이 만발이네.라고 함
기 존ㄴ나 쎄
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크으 ㅋㅋㅋㅋ
이게 힙합이지
개나리의 개가 가짜라는 뜻이라 가짜 나리라며 붙은 이름인데 이거랑도 잘맞는 듯ㅋㅋ가짜 나리들
기존쎄식 독립운동
ㄹㅇ 기존쎄 리스뻭트
고종이 젤 병신인데 왜 친일파 욕을하고있노 😂😂
@@본곤곤고종은 그때 그시절 힘 없는 왕치곤 이거저거 시도 많이 했음. 흥선대원군때 이미 손발 다 짤려서 할 수 있는게 없었을 뿐이지
@@user-puuruda 근데 그 시도가 목표만 좋고 과정이 창렬임
@@user-puuruda ???: 독립협회 해산
돌아가시고 장례는 경성에서 사회장으로 치뤄졌음 당시 경성 인구는 30만 명이었는데 추모객 수가 10만 명이었다고..
서울이라고 해라
@@mjK-q5g이상재 선생께선 1927년에 별세하셨습니다. 일제시대였던 당시 명칭은 경성이었으니 경성이라 부르는게 맞죠...
@@kururuntheseafairy3620 그게 맞죠 그냥 저 위에 있는 분은 서울을 경성이라 말한게 아니꼬와서 그런거 같음
@@mjK-q5g 서울이 뭐에요? 경성은 아는데!
@@AaaaaaaaBbbbbbbbbCccccccccDEFG서울의 옛날 이름 입니다 ^^
참고로 이상재 선생은 충청도 출신이라고 한다.
어쩐지 한마디 한마디 타격이 개쩌시더라니만 본가가 거기셨구나ㅋㅋㅋㅋ😂
어쩐짘ㅋㅋㅋ 화법이 보통이 아니더랔ㅋㅋㅋ
끄덕끄덕
엌ㅋㄱ 납득되네 ㅋㅋ ㅋ
ㅋㅋ 돌려까는게 예술이다 싶었더니ㅋ
월남 이상재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출생이십니다.
1881년 일본에 신사유람단 파견당시 일원이셨고
독립협회창립...신민회 ...신간회...
헤이그특사파견 등 큰일 많이 하셨고
105인 사건등 고초도 겪으셨지요..
이렇게 센스 있는 분인줄은..ㅎㅎ
한산 모시가 그 한산인가요?
@@독일호텔가보자 네 그렇습니다
한국도 일본처럼 유람단 파견했나보네
세계 최초로 핵을 맞은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핵 두발을 맞은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핵을 한발 맞고 항복을 안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로 핵을 두발 맞고 항복한 나라
그것이 바로 일본
놀랍게도 전부 사실이다.
존1나 뜨거웠던 1945년의 여름
그리고 세계최초로 미국본토에 선전포고없이 선빵친나라가 일본😊
핵 한발 맞고도 이악물고 항복 안 한건 깡이 ㅈ되긴 해~
여러 나라 침략해 엄청난 사람들 학살하고도 작기들은 핵폭탄 피해자라고 코스프레하는 종자들.... 좃두순도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트라우마 호소자가 될 나라...ㅋㅋ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이상재선생님 생가가 있는데 매년 한번씩은 무조건 갔음 진짜 대단하신 분….서천에사 나고 자랐으면 모를수가 없는 분임
그 험난한 시절에도 위트를 잃지 않으시다니 ㅜ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독립운동하신분 존경합니다.... 진심 존경합니다...
이상재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매년 700만명의 친일파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인터넷에선 너도나도 애국자,
하지만 현실에선 현충원 참배조차 안감.
돌려까기가 예술이다 했것만 역시나 ㅎㅎ
이완용한테 대감께선 나라 팔아 드시는 데는 재주가 있으시니 도쿄 가서 사시면 일본도 팔아 드실 거 아니냐고 한 일화 책에서 본 적 있음
아아!1945년의 따뜻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추억이여!
한국인도 많이 죽었다함ㅠ 사상자가 20만명 정도인데 한국인이 2만명정도
매우 따뜻하군요
비록 기열 소련이 38선 위쪽을 쳐먹는 앙증맞은 찐빠가 있었으나 더 이상 다른놈이 내 자식 패는 일은 없으니 모칠 좋고 톤정 좋지 아니한가! 반 자이자이 차차차!
1945년 일본 서부 평균 기온 📈📈📈📈📈📈📈📈📈📈📈📈📈📈📈📈📈📈📈📈📈📈📈📈📈📈📈📈
@@킹우드yt그분들도 재밌다며 조금이나 한이 누그러드실듯
진짜 말 한마디 한마디가 타격감 미쳤네ㅋㅋ
일본에 가서 살면 일본이 망할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우 !!!!선생님 빠꾸 없으시네.. ㅋㅋㅋㅋ
빠꾸는 일본자재어다 어휴
@@79-zt7gx좀 쓰면 어떻냐
그리고 일본 갔을 때 일화가 하나 더있는데 일본 장군 한명이 기침을 하자 이상재가 "왜이리 기침을 하시오?" 묻자 일본 장군이 감기라고 함. 그러자 이상재는 "참 안타깝게 됐소. 헌데 감기는 총과 대포로는 못 잡는것이오?" 라고 물었고 그 장군은 암말도 못했다는 허허
이상재선생은 충청도사람입니다 지금도 충청도사람들중에는 특유의 비유법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도 조선시대나 그 이전부터 그런 화법을 충청도에서 많이 사용했나봅니다 영국런던이나 일본교토도 비유법이나 반어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런지방은 귀족이나 권력자가 많이 산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일본이 구한말에 우리나라의 인구를 조사할때 전국의 양반이 2%였는데 충청도는 10%였죠
1902년 '개혁당 사건'으로 아들 이승인과 함께 3년형을 사는 동안 개신교로 개종했다. 이후 이승인이 옥 중에서 사망하는데 이 때 이승만이 준 성경을 읽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에 원한맺힌 마음을 푼다. 이승만과는 이 때부터 사제 지간이 됐다고 한다.
1906년 조선에 은혜를 입은 일본인 소다 가이치를 기독교인이 되도록 전도하고 소다 가이치는 훗날 조선 아이들을 돌보고 조선의 독립 운동을 도우며 미쳐가는 자국에 맞서 조국의 악행을 회개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된다.
아 소다가이치로를 이분이 전도..와...
이승만은 배울 때 잘 못 배웠나보다
그때는 알았습니까? 지금처럼 개독이 될지?
역시 킹갓제너럴엠퍼러마제스티 승만이형
소다 가이치 이야기가 감동이네요 참 어르신 ㅠㅠ
위대하신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님. 존경합니다.
오늘날 살고계셨으면 인기 겁나 많으셨을듯ㅋ 기존쎄에다가 드립을 너무 잘치시네😂
암튼 존경합니다❤
오냐 나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랑합니다 이상재 선생님..🔥
첫번째 썰은 군주제 국가에서 공문서를 건든 중범죄인데 이걸 살아남은게 개쩌네 ㅋㅋㅋ
그만큼 왕의권위가 땅에떨어진 시대였던거지..
이완용도 그렇지만 당시 조정 대신들중에 이씨들 줫나 많자나요~ 그게 고종전에 대원군이 세도정치 박살내려고 종친들 정치로 끌어들여서 그래요.. 그런 그들을 콘트롤 가능한 대원군을 몰아냈으니 그때부터는 종친이란 배경을 바탕으로 신하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될수밖에요..
그러니 고종이 아무것도 못하고 이래저래 휘둘릴수밖에 없던거.. 자신이 콘트롤이 가능할만한 시점에 대원군을 몰아냈어야지.. 처음부터 잘못된거였죠..
존나 상남자네ㅋㅋㅋㅋㅋㅋ
견문색도 갖고계셨누
1945년 일본이 가장 뜨거웠던 순간
도쿄핫 ㄷㄷ
거의 골 D 로저 급 미래예지네ㅋㅋㅋ
어린이 ymca출신이라 국민학교때부터 존경하던 선생님.
이사람이 참 진국이네 이런사람같은 친구가 있어야하는데 ㅋㅋㅋㅋㅋ
어머 박력이 만점이시당 ㅇㅅㅇ!!
와 이런분이 계셨었다니... 리스펙트합니다...
충청도 사람임??ㅋㅋㅋㅋㅋㅋㅋㅋ말로 돌려까넼ㅋㅋㅋㅋㅋㅋㅋㅋ
여윽시 충청도식 화법 ㅋㅋㅋ
와 미친 찢었다..ㄷㄷ
이제부터 이분은 내 롤모델
아니 근데 독립운동가 패기 넘친다는 자료로 레일리를 가지고 오는게 맞냐고 ㅋㅋㅋ
이상재 선생님 세수를 할때도 지나가는 일본인한테 인사를 할까봐 서서 세수를 하시는 멋지신 분
그건 단재 신채호선생 아니신가요??
참고로 신채호 선생님도 충청도 출신이라 돌려까기 화법 쩔었음.
진짜 멋지시다 자손 대대로 흥하시기를!
내 이름이랑 같으신분..참 어릴땐 애들이 많이 놀렸는데 니 이름치면 할아버지 나온다고 근데 대단한 분이시다 ㅎㅎ
존멋….👍🏼👍🏼
너무 멋지십니다ㅠㅠㅠ
TMI 이상재 선생님은 민립대학설립 하려다가 일본때문에 실패했고 그러고 몇 년 뒤에 서울대가 설립되었다
아니 마지막이 ㅈㄴ 웃기네 ㅋㅋㅋㅋ
이상재 선생님 견문색 패기로 미래예측을 하셨네
엌ㅋㅋㅋ 니가 먼저 반말했잖아 ㅋㅋ 할말없게 만드는 화법이네 ㅋㅋㅋ
이상재선생은 민립대학설립운동때 평양의 조만식선생과 잘나오는 분이니 국사시험때 참고하시길바람.
또한 어렵게 나오는 시험의경우 조선일보의 사장으로서 행적도 물어볼 수 있으니
후에 조선일보 주도의 문자보급운동, 물산장려운동 홍보등이랑 같이 외우면 좋을듯함.
현시대사람이였으면
대북확성기 효과적으로 잘쓰셨을듯
존경합니다
이상재 선생님
이건 단도로 흥했다가 엑스칼리버 처맞은거잖아 ㅋㅋㅋㅋ
이상재 선생은 독립협회와 신간회를 조직할정도로 독립에 진심이였음
와우 역시 한국인 ㅋㅋㅋ
옛날엔 일본순사들을 나리라고 불렀는데 이상재독립운동가께서 조선어를 말하고 이해할줄 아는 일본순사들을 만난적이 있다고하죠... 그때 이상재선생님께서 "여긴 개나리가 만발하네요" 라고 웃으면서 옆에 개나리 꼬과 일본 순사들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ㅋㅋㅋㅋㅋ....
넘 멋있다 ㅎ
기개가 대단하신 열사 선생님 이시네요..
ㄹㅇ 진짜로 기존쎄 그자체
요즘 자기가 기쎄다고 호소하는 애들이랑 달리 찐이다
멋진 어르신이내~
역시 충청도 서천 출신이시구나.
어르신들께서 항상 그랬지.
충청도 천 자 돌림 쓰는 지역은 강려크한 분들이 많다고 들음.
특히 옥천, 서천, 제천.
일본순사:돌려까기 실력이 교토 놈들보다 더 하네..
좀 애매하긴함
노빠꾸 선생님이시네 크....
두번째 건 듣고 현웃 터졌네 ㅋㅋㅋ
꼽주기 1티어ㅋㅋㅋㅋ
젤 존경하는 분
옛날에 이분 위인전도 있었다, 김구, 안창호, 손병희 선생등과 함께 메이저 독립운동가신데...요즘은 모른다고?
저건 패왕색이 아니라 그냥
상남자 패기잖아 ㅋㅋㅋ
나 학교 다닐때 일제강점기 대쪽같던 독립운동가이십니다.
우리학교 다닐때 배우던 분이셨는데 요즘은 잘 모르나봐요.
이상재님....조선일보 초대사장님......
월남 이상재 선셍님.....
글 읽는 자의 기질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선조이십니다.
와 존경합니다 상재형
마지막 예언지리네요. 칼로 동남아까지 지배했지만, 원자탄 두방에 아작났으니
이상재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경합니다.
50년 살면서 이상재 선생님에 대해 지나가는 독립운동가로만 알았는데 이 영상보고 급반성합니다.
너무 고생많으셨습니다.
누구셨지. 이토가 탄 기차 창문에 돌을 던져서 사람 다치게하심ㅋㅋㅋㅋ
다윗
문명화된 국가들중 수도온도가 1800도가된 유일한 국가 일시적으로 두 도시의 평균 온도가 4000도였던 나라 ㅋㅋ
베를린 공방전때 온도도 1800도는 가지 않았을까 ㅋㅋㅋㅋㅋㅋ
@@빠밤바둥가둥가둥가 베를린에는 네이팜탄 떨구진 않아서 온도는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의 온도일듯?
3.1운동 후 옥중 썰이 레전드네
일본 검사한테 손 내밀고 양 손바닥 붙여달래서 검사가 해줬더니 냉큼 떼버리고는
억지로 붙여놓은 건 떨어지는 게 순리야. 조선과 일본도 그래. 이랬다네 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4번째 일화는 교과서에도 나왔슴
이상재 선생에 관한 깨알 상식
1. 이상재 선생은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로 야구에서 시구를 한 사람이다.평소 선생은 체육을 통한 인성함양을 중요시 했다고한다.
2.한국인 최초의 라디오 방송 DJ이기도 하다. 조선일보가 창간되고 그는 조선일보 총재가 되면서 라디오 방송을 하기도 했다고한다.
3.이상재 선생이 특사로 미국에 파견됐을때 갓을 착용한 모습을 보고 미국 십대들이 미개하다고 비웃고 돌을 던졌다고 한다. 결국 십대들은 외교관에게 테러를 했다고 잡혀갔으나 이상재 선생이 직접 경찰서로 가 철 없는 아이들이 벌인 일이니 용서해달라하고 자신의 갓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3.일제가 영어는 무조건 일본인한테 배워야 한다 하니까 '윽'이거 발음 못하는 놈들이 무슨 영어냐 라고 했다 한다.
4.한번은 비누를 보고는 칼로 썰어먹으려고 했다고한다. 당황한 외국인이 그건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나도 이게 몸 씻을때 쓰는 거란 걸 알고 있소. 그래서 이걸로 마음도 씻어보고자 하오.'라고 했다고 한다.
5.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인이 대포를 보여주고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군사력이 어떻소 라고 물었는데 그 군인이 감기에 걸려서 재채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선생은 '러시아 군대도 때려잡는 일본 포병이 그깟 감기 하나 못 잡소?'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6.며느리가 재봉틀을 도둑맞았다고 몹시 울고 있었는데 선생은 며느리를 호되게 야단쳤다고한다. '너는 나라를 잃었을때의 슬픔보다 그깟 재봉틀을 잃은 슬픔이 더 크냐? 라고 말이다.
7.3.1운동 당시 그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취조 받는데 '문명국이라는 일본은 제 어미애비뻘 되는 사람도 마구 때린다 하더라.자 어디 나도 한 번 때려봐라. 라며 강경하게 나갔다고 한다. 결국 일본인 순사는 차마 늙은 이상재를 고문할 수 없었다.
8.출옥후에도 선생님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라고 동료가 말하자. 넌 여기가 편한가 보구나. 라며 일제치하 조선은 거대한 감옥이라는 말을 돌려 말했다.
9.한번은 조선총독부의 거물이 이상재를 만나 조선과 일본은 부부와 같은 사이인데 남편이 좀 매를 들었다고 아내가 대드는 게 어딨소? 라고 묻자. 남편? 당신네가 왜 남편이오? 라고 말했다고 한다.
10. 그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한 번은 그가 친일파들의 만찬에 초대받았다. 그는 연회장에 오고는 여기 개나리들이 만발하구나 라고 말했다. 연회장은 개나리가 없기에 무슨 말인가 물었더니. 봐라 참나으리들은 없고 개나으리들만 잔뜩 있지 않은가? 라고 대답했다 한다.
청렴해야된다며 비누드신 것도 유명함
3. 저리 가거라! 라거나 저리 꺼져라! 하셨어야 했는데...
괜히 미국한테 까불었다가 줘털리는 결과를 만든 일본의 위엄
미국이랑 전쟁해서 패배한 유일한 아시아국가 일본
센스넘치는 분이시네~
견문색을 극도로 단련 시키면 미래를 내다본다.
멋지십니다
세수 애기도 써주시지, 개나리 얘기는 다른 분이 댓글 달았고,,,
어쩐지ㅋㅋㅋㅋㅋㅋㅋㅋ 충청도인이었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
역사는 김정민 박사님이지~ ㅋㅋ
존경합니다!!
진주만 침공도 설계한 이소로쿠도 처음에는 ㅈㄴ 반대했음 나름 유학파 출신이라 당시 미국의 공업 생산력을 잘알고 있었음 근데 대본영에서 계속 랄지 떠니깐 최소한 협상 이끌어내는 방향 설계함 3파 공격 계획으로 있었는데 어째서 3파 공격은 안했는디 지금도 의문임
주변국에 대한 차가움이 미국의 따뜻함으로 갱생한 나라 대일본제국
내 고향 출신 독립운동가이네😯
이상재 선생님 왜몰라! 위인전이 얼마나 많은데!!
여윽시 드립의 민족.
우리도 윤석열보고.도쿄에 가서 살라고 해야겠다.ㅋ
첫썰부터 레전드넼ㅋㅋㅋㅋ
한 때 조선일보 사장도 하셨다고 알고 있슴다...
네.. 서울 뺏기자 김일성 장군 만세 호외판 찍어낸 그 조선일보 맞습니다 맞고요...
방응모가 조선일보 인수 하기 전 까지는 멀쩡했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조선일보 조차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며 '국가보안법을 배격함' 이라는 사설을 실었...
비행기로 공격한 자 비행기로 망한다
어우 맵다매워 ㅋㅋㅋ
ㅋㅋ이상제선생님 말빨이..
드립 미쳤네 ㅋㅋㅋㅋ
저렇게 기싸움 걸 수있다는게 이상하네.
공교육과 여러 드라마에선 순사들을 괴팍하게 묘사하던데
오냐 나간다 진짜 ㅈㄴ 유상통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상재님 감사합니다
그 해 가장 더웠던 날.
아니 2번은 파괴왕 이냐고 ㅋㅋㅋㅋㅋ
눈빛부터가 ㅈㄴ열의에 가득 차있는게 잔소리걸리면 ㅈ되는 눈빛임
존경합니다
일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영어 문장 :
Nuclear Launch De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