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댓글 말도 일리는 있죠 아이신줘러 홍타이지, 범인은 아니죠 분명 능력 있는 권력자고 그리고 조선은 이 핑계, 저 핑계만 찾고 아무것도 못하고 삼전도 굴욕을 당한 한심한 나라죠 러시아가 한국을 NATO(No Action Talk Only)아고 질타했다는데 삼치 문약 조선이 딱 그짝이였죠
@@yhansookim7850 그 이괄을 부원수로 제수하고 군대를 양성하나 그 아들내미 역모에 연루 되었다고 금부도사 보낸게 능양군과 그 세력들, 서인인게 사실이라 애시초 병자호란때 마부타이를 필두로 정예라고는 하나 300의 철기군으로 선봉으로 맡겨 싸우게 했다는것 자체가 조선을 아주 물로 보고 있음이고 실제로 허약한게 사실이죠
천연두 문제는 결정적일 수 밖에 없는게, 여진족은 이 천연두 문제를 매우 중대하게 다루었고 천연두를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과 천연두 경험이 없는자를 구분해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만약 진중에 천연두가 발생하면 천연두 경험이 없는 왕족이나 고위층은 즉각 진영에서 이탈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원칙을 만들어 이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홍타이지가 바로 천연두 경험이 없는 부류였습니다. 따라서 원칙대로면 홍타이지는 즉시 조선을 떠나 심양으로 돌아가야 했던거죠. 전쟁은 천연두 경험자들이 남아서 지속해야 했는데, 홍타이지는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직접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어 만주-몽골-조선을 정벌했음을 공표하는 진정한 의미의 황제 등극식을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까지 지속할 작정이였던 전쟁을 서둘러 종결시키고자 했고 그 덕분에 상당히 완화된 항복 조건으로 조선의 항복을 받아낼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예로서, 청나라는 처음 항복 조건으로서 청과 결전을 주장한 척화파 대신들을 모두 청나라에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청과 조선의 관계를 이간질한 죄를 묻겠다는 거였지요. 조선은 절대 안된다며 항복을 거부하자, 청은 '모두'에서 "대표 인사 몇 명"으로 요구조건을 줄였습니다. 그 이하는 절대 안된다는 선을 그어버렸고 조선도 결국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3명의 신료가 척화파를 대표해 청에 넘겨졌는데 그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천연두는 위험한 질병이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누구나 격는 질병이라 왠만하면 다 천연두라 진단해서 그런거고 , 실제 위험한건 인풀루엔자 .현명한 부모들은 예방에 신경쓰겠지만 무지하고 개폼잡다 자주 걸려 사망까지 가죠. 여진족이 조선보다 청결면에서 떨어졌다고 보면됩니다. 조선이 더 안전하면 안전했지. 여진족보다 조선이 우수하다는 갓을 모를리없죠.
여진족은 우리 한민족과 형제지간에 가까운 사이임 우리 조상이 만주에 살때는 완전한 이웃사촌이었슴 우리가 한반도에 정착하고 중국 문물을 받아서 농경 고대왕국을 만들때 여진은 여전히 수렵과 교환경제임 여진은 스스로 조선과 형제 국가라는 인식이 있음 침공시에 처음부터 조선의 굴복을 원한거지 참살을 원한게 아님 호란 30년 전에 청태조인 누루하치는 임란 때 왜군을 물리치겠다는 제안도 함 조선왕실이 중화사상에 몰입해있어서 단칼에 거절했었지 ///
당시 만주원류고도 그렇고 후금의 역사인식이 조선을 가리켜 우리랑 같은 고려 백성이다. 변발령을 조선인에게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역사서에 보면 변발령 시행하지 않는 일부성의 주민들은 해가 뜰때까지 참수했습니다. 참수한 인원이 백만명을 육박했다고 합니다. 가장큰이유는 당시 청은 조선이 약한 상태로 있어주는걸 선택했습니다.
멸망시키고 그 지역을 직접통치하면 막대한 비용과 부담이 있죠. 민족도 이주시켜야 하고 관리와 군대도 파견해야합니다. 반란에도 대비해야죠. 본국과 멀수록 부담은 더 큽니다. 그러느니 한 번 가서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확인시키고 굴복시킨 다음 추후 호구처럼 이용는게 이득입니다.
여진족 금나라(청) 정체성이 이야기 들어보니 조선이랑 우리는 예전에 같이 살던 민족이야 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가야계 신라뿌리라는이야기도 있고...그래서 누루하치가 광해가 집권 했을때부터 야우리는 예전에 같이 살던 친척이니....수교 맺고 싸우지 말고 잘지내자 하고 ..계속 서신 보냄....근데 유교에 미친 신하들이 명하고만 지내야한다고 무시함.......그래서 병자호란 일어난거고....그나마 금나라가....봐준거임...
맞아여 누루하치는 신라김씨입니다 경순왕의 후손이죠 그러니 고려조선을 금나라왕실에서는 부모의 나라라고 했죠 고려조선은 금나라와 같은 혈통이니 항복만 받고 정복하지는 않았어요 그대신에 중국의 송나라 명나라를 정복하고 청나라를 세웠지요 그러니 청황실도 김씨입니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침략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정복한거죠
거란 요(침공 후에 오히려 잘 지내자고 땅을 고려에 내줌) , 몽골 원(고려을 부마국으로 대우), 청 모두 고려, 조선에 너그러웠죠(?). 중국 한족과는 다른 동질성을 갖고 있었을 것임. 언어(중국어와 다른 SOV 어순), 직관적으로 봐도 외모의 친밀성이 높죠. 몽골, 만주족은 타 민족과 전쟁시 엄청 무자비했읍니다.(양주 십일기)
당시 조선은 . 자신들에 왕이 맘에 안들면 교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청이 조선을 정복 못한것입니다.. 홍타이지나 누루아치가 .조선 왕으로 왔다가 언제든 반정세력들에게 븥잡혀 끝장 날 수있기 때문에 븍경으로 들어가 안나온 거죠. 간접통치로 만족하며 반면 여진적은 중국 서쪽으로는 적극 진출하죠.
조선은 여진족을 상대하는 최북방 군사력과 기병들은 강력했어요 문제는 바로 이거였죠 조선 군사력과 기병들을 모두 최북방에 몰빵 시켰다는거였죠 물론 일본이 100년 전쟁으로 각지방 쇼군들 끼리 싸우느라 고려때 처럼 침공을 오랬동안 받지 않다보니 후방 방어 자체를 안한탓이 컸지요
여진족은 유목민족 아니예요. 얘내들도 말 키우긴 키웠는데 지역이 지역이라 좀 힘들었구요. 거의 다 몽골에서 수입해서 쓰거나 뺏어온 경우입니다. 농업, 어업, 수렵, 유목 등등 손에 잡히는건 다 했어요. 그렇게 해서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을 상업으로 해결했습니다. 물론 이 시기상 소빙기가 찾아온 탓에 농업은 좀 힘들었지만요. 건주여진은 과거로 치면 고구려의 지배계층 생각하시면 되구요. 야인여진은 그 당시 말갈, 거란같은 지배받던 짜바리 계층이라 보시면됩니다. 야인여진 애들은 백정같은 일들 주로 하는 친구들이구요. 얘내가 수렵을 통해 얻은 자원을 건주 세력에게 세금으로 바치거나, 무역을 통해 식량을 얻었구요.
청나라(후금)는 신라인 김함보가 세운 금(김)나라의 후예국가입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장황하게 긴 글 쓰시느라 고생 꽤나 하셨습니다. 노고를 치하 합니다만, 님이 접한 자료와 그에 따른 님의 생각이 현재 시점으로서 완벽하다 결론으로 주장하시면 안됩니다. 청나라가 우리의 형제국이라 한들 마찬가지로 형제국인 백제, 고구려, 신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전쟁하고 서로 도륙했음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우리 조상이 영향을 미친 분국이었던 일본도 우리 조상국에게 어떻게 했나요?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의견, 다른 시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그것도 있긴한데 사실 송나라 입장에서도 뭐라 말할 처지가 못되는게 고려가 꽤 오랫동안 거란과 전쟁을 하면서 계속 송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음... 고려사 기록에 보면 사신 꽤 많이 보냈음 우리 피똥싸고있으니까 제발 거란 뒤좀 쳐줘 어쩌고... 근데 송나라가 다 쌩깜.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홀로 감내해야했고 이후 살수에서 크게 이긴거... 정확히 기억안나는데 그 이후 고려가 한 40년간은 송나라에 조공안하고 요나라에 했던걸로 기억남.
@@samc9725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국토 면적을 보고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합니까? 만약 너희들이 정말 강대하다면, 러시아나 중국처럼 넓은 영토를 가졌을 것이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희들은 아무것도 없고, 유일하게 가진 것은 환상뿐입니다
@@mikegao2394 중국인은 왜 이렇게 공격적이죠? 당신들이 진짜 승리자라면 다른 승리자인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태도를 갖고있겠지요? 당신들이 그런 공격적인 성향은 그런 강대한 힘을 갖고도 패배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근대시대에 한국은 힘이 없어서 패배했지만 중국은 힘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음에도 굴욕적으로 패배했죠? 그런 역사를 가진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그런 일침 가해봤자 전혀 느껴지는게 없는데요? 게다가 가장 최근의 왕조도 만주족 왕조인데 가장 야만족이라 멸시받던 언더독에게 지배당하고도 그런소리를 한다는게 설득력이 없는데요... 한국은 힘이 없었다는 핑계를 할수 있잖아요 근데 니들은???
@@mikegao2394 왜 이렇게 태도가 공격적이죠? 당신들이 진짜 승리자라면 다른 승리자인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태도를 갖고있겠지요? 당신들이 그런 공격적인 성향은 그런 강대한 힘을 갖고도 패배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근대시대에 한국은 힘이 없어서 패배했지만 중국은 힘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음에도 굴욕적으로 패배했죠? 그런 역사를 가진 너희들이 한국인에게 그런 일침 가해봤자 전혀 느껴지는게 없는데요? 게다가 가장 최근의 왕조도 이민족 왕조인데 가장 야만족이라 무시받던 언더독에게 지배 당하고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게 설득력이 없는데요? 한국은 힘이 없었다는 핑계를 할수 있잖아요 근데 니들은??
우리가 졌던 원인 중 하나는 내분이었음. 이괄 잔당들이 귀순해서 1급 기밀자료들을 전부 넘겨주었고 길잡이 역할까지 해줬기에 속수무책으로 진거다. 특히 내전으로 조선 정예군끼리 싸우다 병력 손실이 엄청 났음. 화합의 리더쉽이 중요한데 한국인들은 모아니면 도인 성격이 보임. 일본 역사서 사카모토 료마가 중요인물인 이유가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두 세력을 화해시켜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킴.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김정은이랑 윤석열이랑 화해시킨 셈이지. 한국인들은 사상이 다르면 서로 맞춰갈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함. 화합하고 양보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한다. 그리고 항상 살 길을 터줘야지. 이괄처럼 어차피 죽을거가 아니라 항상 도망칠 기회를 줘야 국내일은 국내서 해결이 됨.
중국 중원지도를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큰중원을 놔두고.. 산과 언덕으로 이루어지고 중국입장에서 동쪽끝에 변방을 직접 관리하기도 까다롭기 때문이지요... 큰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습니다. 정벌개념이지요... 굳이 그 먼곳까지.. 우리도 우리가 부강했을때도.. 남방이나 일오랑캐를 정벌 개념으로 전쟁하고 쳐들어갔지.. 직접 지배한 경우가 있나요?
옛 고려가(고구려) 고려로 계승되서, 고려시대가 국호만 바뀐 고구려이고 이성계가 고려의 직책으로 개국했다가 사실상 국호만 바뀐 고려시대였다는 취지의(대외적으로 우리나라를 보는 인식) 논리이고 지금도 정식으로 KOREA(고려) 이니 고구려는 멸망한게 아니라 추모왕때부터 이어진(징검다리는 있었을지언정) 지금도 고구려시대에 살고있다는 논리도 가능하겠군요
당시에 청조 내부에서도 조선에 대한 직접 지배 이야기는 나왔습니다. 저는 청이 조선을 직접지배를 안 한 이유는 다른 것 보다 청 스스로 명을 대신한 중화세계의 계승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나중에 북경 함락 후에는 숭정제의 제사도 지내주었죠. 청의 입정에서는 당연히 명의 가장 중요한 조봉책봉국인 조선을 그대로 조공책봉국으로 두는게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죠.
중화세계의 계승자를 자처? 너무 한족위주 세계로 점철되어있습니다. 고려, 요금원송 시절 한족국가는 송나라 하나입니다. 송은 아주 작은 변방국가였는데 오늘날 이를 전부 중국이라고 부르는 누를 범하고 있죠. 중화세계 자처라는 말에서 이런 누를 범하고 있는듯합니다. 청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었는데 이를 인구 90프로 영토 30프로 한족이 어부지리한거죠. 한족은 역사의 반이상을 피지배민족으로 살아요. 대륙통일은 거의 북방민족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문화혁명과 분서갱유는 대륙에 널리 퍼져있는 소수민족의 자취를 지우기 위해 이루어졌어요. 한족위주 사관인 사마천의 를 위주로 청황제 역사서 는 언급도 안하는 데서 알 수 있죠. 만주원류고 첫장에 자신들의 원류로 삼한 백제 신라 발해를 기록해요. 1970년대까지 북한과 역사연구를 같이 하던 중국공산당이 정책을 바꿔 모두 자신의 역사라고 왜곡하는건 대륙 곳곳에 자신들의 역사는 일천하고 모두 타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인데요. 한자를 변경해 오늘날 세대는 역사서를 읽지 못하죠. 역사왜곡, 동북공정을 쉽게 하기 위한 초석이었죠.
@@aprillaurel7956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국토 면적을 보고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합니까? 만약 너희들이 정말 강대하다면, 러시아나 중국처럼 넓은 영토를 가졌을 것이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희들은 아무것도 없고, 유일하게 가진 것은 환상뿐입니다
흠정 만주원류고 를 봐라. 건륭제가 삼천명의 학자들을 모아서 쓴 만주족의 원류를. 신라의 김씨 후손으로 나와 있음. 이 책을 발간한 이유는 청의 노예로 사는 한족을 차별 하기 위함. 그래서 청국노 란 말이 나왔음.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시 청나라의 왕이 사용한 말이 만주어.
@@가까운지옥중국-u3y청나라의 지배계급과 사용 언어는 만주족.만주어 임. 즉. 어순이 한국어와 같은 sov. 중국어는 svo.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은 고려인 출신. 거렁벵이.탁발승.홍건적 가담 하다가 명나라를 세움.그래서 명나라의 왕실에선 궁녀들을 고려 여인들로 채웠음.
고려거란전쟁 후 송나라가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고려에 사신을 파견했을 때, 강감찬장군은 건장하고 잘생긴 부하를 전면에 세우고 자신은 그 뒤에 시중들듯 서있었는데, 중국사신이 앞사람은 거들더도 안보고 자신에게 와서 머리숙여 절하는 것을 보고 강감찬장군이 사신을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야사에 전한다!
설명은 충분히 개연성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보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1차 사료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차 사료 근거를 제시해주시겠습니까? 1. 당시 후금이 국가 부도 상태였다는 기록? 2. 포로 송환 대가에 대한 기록? 3. 끌려간 사람 대비 송환자 수? 등.
댓글중에 청이 조선에 관대했던건 뜯을게 없기때문이라.... 참 .... 돈을 무한정으로 찍어내며 은행에 빛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널리고 널려 물건과 재화가 담보라는 가치아래에 어마어마하게 유통되는 지금 자본주의시대에 사는 우리기준에서야 조선이 가난한 나라이지,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때 다른나라들에 비했을때 조선이 마냥 못사는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못먹는다고 난리치던 구한말에 밥상사진보세요 쌀 그렇게 없다고 민란일어나고 반란일어났는데 쌀밥을 한바가지를 먹고있죠. 구한말에도 그랬을진데 조선대에 소 도축된 숫자나 여러 농업관련 수치들만봐도 조선이 무역이 전무한 농경국가치고는 그래도 부유한편에 속했다고 볼수있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더욱 더 사람이 제일 비싸고 재산인데, 이 작은땅에서 인구가 당시 천만가까이 됬다는것만봐도 조선이 마냥작고 가벼이할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역병돌고 굶어죽고 기근나고 재해나서 사람들 죽어나는건 조선만 그랬던게 절대아닙니다. 조선반도는 옛날부터 인구도 적지않았고 무역을 했던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나 지금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항상 세계탑 10위권에는 항상 들었던 가능성을 가진땅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시하는 조선조차도 그당시 세계랭킹에서 10위안에 인구,군사력,경제규모가 꽤 오랫동안 속해있던 나랍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마찬가지고요 역시 그 혜택은 중국옆에있었기때문에, 미국과 교류하였기때문이고 이런건 지정학적위치가 큰 영향을주지요.
그래서 고려때 원나라에 100년 지배기, 일제 36년, 그것도 강제 해방 당하셨니? 청나라 전성기때 조선은 대기근이었다, 청나라는 지금의 중국 땅 이상으로 확장했는데 조선을 안먹은건 얘네는 군신관계임을 아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티벳,신장은 유라시아로 가는 길목이지만, 조선은 반도 끝자락에 산악투성이, 그리고 임진왜란때 일본의 강대함을 다 관찰한 청나라 입장선 조선을 굳이 소화시킬 이유가 없었던 배경임. 18세기 청나라 전성기때 조선은 이러한 이유로 안 먹힌것뿐임
농경민은 원래 전염병균을 많이 보유하고 내성을 갖고있답니다 전염병은 대개 그들이 키운 수많은 가축에서 유래하기 때문이죠 유럽이 신대륙을 침략했을때 원주민의 90% 이상이 침략자들이 갖고들어온 전염병 때문에 죽었다고 하니 유목민인 청나라인들이 전염병에 취약했던건 당연한듯요
만주족청나라는 원래 함께 대륙을 정복하자고 조선에 제의했습니다. 동족의식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제의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오랑캐야 꺼져!!" 조선은 가만히만 있어도 본전은 하는 상황인데 그 놈의 입이 방정이라,망했죠. 그래서 조선과 함께하려고 맘먹었다가 거꾸로 조선에 쳐들어와 아작낸 것.
@@JML-el2yf 그래서 통일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그런짓 안했쥬? 그런 쩨쩨한 감정이 만주를 상실한거다. 징기스칸이 어떤 인간이냐? 중국에서 백만 단위 학살을 햇다. 청나라? 한족들 머리 죄다 오랑캐 변발시킨거 보면 모르냐? 중국에선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데 근데 청나라 원나라 징기스칸까지 다 지꺼라고 우긴다. 그게 무슨 의민지 어짜피 못알아 듯겠지만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 당신들은 국토 면적을 봐도 현실을 잘 모르십니까? 한국이 정말 강대하다면 러시아·중국 같은 거대한 영토를 갖게 될 것이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킬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가진 게 없고 가진 게 환상뿐이다. 역사책은 중국어로 쓰여 있다. 너희들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한국사는 환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인 이유는 천연두 때문입니다. 청나라 만주족이 천연두에 특히 취약해 빨리 종전하고 철수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물건이나 사람을 노략질 하고 속환비를 받고 속환한 것도 천연두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누가 천연두에 걸렸는지 알수 없고 재수없게 천연두가 만주에 돌면 청나라도 좋을게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청나라는 어차피 조선을 계속 지배는 불가능했음. 우선 압록강과 한강이 녹으면 퇴로가 끊기게 되고 아무리 명나라가 힘이 없다고 해도 퇴로가 없는 청 나라를 공격해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음. 적당히 timing 을 잘 잡아서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청에게 유리했음. 만약 인조가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강이 얼기 전에 강화도로 이전했다면 충분히 바다를 통해서 군인과 군량미를 조달이 가능했고 유사시에는 바다를 통해서 제주로 전주로 이전할 수 있어서 청나라와 계속 전쟁할 수 있었음
남한산성에서도 버틸수 있었음. 사실 남한산성에 조선 최정예 조총병 애기쌀병등 1만명 넘는 병력 있었음. 그런데 식량이 2달분밖에 없어서 항복한것임. 그런데 인조가 등신인게 방어하기 힘든 서울을 지키기위한 전초기지로 남한산성에 최정예병과 무기 비축하면서 왜 식량은 1년치 준비해두지 못한것인지 의문임. 행정의 문제 든가 아님 부패든가 먼 문제가 있은거지. ㅎ 식량은 돈이 되니깐
후금이 그 전략을 아니깐 말들에게 엄청난 채찍질을 가해서 남한산성까지 초스피드로 내려온거임..중간에 있는 산성들 공격하고 어쩌고 하면 시간이 너무 소요되고 군인들도 많이 잃을 게 뻔하니...그냥 본진에 폭탄드랍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고, 그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였지....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간게 아니라 더 밑으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강화도로 도망갔으면 병자호란은 상당한 장기전으로 흘러갔을 것...
고대사를 한반도에 국한된 역사로 논하면 설명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애초에 한반도를 침공하는 것 자체가 경제 사회적으로 설명이 안됩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지형 지물 별자리등도 한반도로 놓고 보면 설명이 안됩니다. 지금도 북경등 중국에 남아 있는 고려와 관련된 지역명칭 등은 왜 인지도 설명이 안됩니다. 반도 사관의 허점은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설명 할 수 없는데 있습니다.
조선과 청의 관계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는 아님.. 구한말 서양외교관들이 청나라에게 조선에 대해 내정간섭 압력을 행사하라고 종용했을때 청나라에서 한 답변은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과 외교는 간섭하지않는다는 것이었음.. 그에 따라 서양에서 본 청과 조선의 관계는 로마교황과 유럽국가들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지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는 아니라고 판단했음
어느 기자가 타이슨에게 만약 당신이 이소룡과 싸우면 누가 이길거냐고 물었더니 타이슨이 껄껄 웃으면서 이소룡은 내 상대가 못 된다고 했답니다. 타이슨은 이소룡은 아주 훌륭한 무술인이나 체급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어느 수준 이상의 훈련을 받은 프로들 사이에선 체급의 차이는 결정적이라고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독소전이나 중일전쟁을 보면 미들급의 국가가 일시적으론 헤비급에게 펀치를 날릴 수는 있지만 결국 체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 했습니다.
독일이 소련에 밀리진 않음. 1대1 맞다이햇다면... 이중전선, 서부에서도 싸우고 동부에서도 싸우고. 미국지원, 비행기 포탄 각종 군수품 등 지원. 그리고 좀 멀어서(기차 궤도도 다름, 철도수송 불가) 병력 및 군수품(방한복 등) 보급이 힘들엇슴. 갠적인 추측으로 맞다이깟으면 독일 윈임.
@@yhansookim7850 독일은 같은 체급의 프랑스는 전략을 잘 세우고 프랑스가 멘붕에 빠지는 바람에 쉽게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달랐지요. 미국의 지원은 부차적인 거고 영토가 너무 넓어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보급선은 한없이 늘어지고 소련군을 아무리 죽이고 없애도 소련군 수십개 사단이 하룻밤만에 바로바로 만들어져서 전선에 투입되고... 결국 체급 차이입니다. 영국이 아편전쟁 이후 중국 정복을 포기한 건 중국의 영토와 인구를 체험한 후 중국이 아무리 병들어도 체급이 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일전쟁때 일본은 겁대가리 없이 헤비급에게 달려든 거고... 더 골때리는 건 중국을 어떻게 못 하니까 중국보다 더 울트라 헤비급인 미국을 공격한 것이니 당시 일본은 집단으로 정신 나간 것입니다.
@@parmenideskim9739 땅덩이 크다고 다가 아니죠. 님이 말한대로 프랑스가 독일에 준하는 국가지만 마지노선 하나믿고 잇다가 된통 당한거니까요. 독일이 유럽과 싸우지않고 미국지원없는 소련과 싸웟다면 충분히 이길만햇습니다. 서유럽도 모자라 x맨짓하는 무솔리니때문에 아프리카 북부나 그리스 지역까지 전선이 확대됏으니까요. 전선이 확대되면 보급 병력배치 등 분산될수밖에 없고요.
@@yhansookim7850 여기서 "이긴다"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도 당연히 제한된 전투에선 소련한테 이길 수 있지만 독소전쟁에서 독일은 단순히 전투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소련이란 국가 자체를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경우 바로 국가의 체급이 중요해집니다. 독소전쟁때 독일은 북아프리카 전선이나 미국의 소련지원 이런게 없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중국과 전쟁을 벌이면 방어는 충분히 할 수 있으나 중국 내부로 진격해 중국을 멸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서 중국 전체를 식민지화하는 논의를 시작했다가 포기한 것도 매우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일본도 전부 바보들만 있는 건 아니고 극소수 현실적인 판단을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본의 트레이트 마크인 꼴통 파벌주의에 묻혔습니다.
체급론 이야기인데 간단한 예시를 들면 체급자체가 틀린 초기의 몽골이 당시 금나라나 서하를 멸망시킨 예가 있고 당시 독일제국은 안밖으로 정리가 안되는걸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나타나며 덴마크에서 자신 보다 큰 오스트리아, 프랑스까지 적은 양반들인데 그외에도 무수한 예시가 있죠 전쟁은 숫자만으로, 체급만으로, 무기만으로 하는게 아니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병자호란때 청시절 정도의 막강한 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어쩔수없이 졌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조선을 치는것조차 모험이었을정도로 여유가 없던 여진족들이 속전속결로 왕잡고 항복만 받고 돌아간 전쟁임. 왜란때처럼 전쟁이 장기화되서 전국에서 의병일어나고했으면 결국 청도 없었을듯... 홍타이지가 능력도 있었지만 청건국사를 보면 진짜 천명을 받은것처럼 하늘이 '너네가 중국먹어라'하고 도와주듯 운이 엄청 좋았음. 막말로 산해관만 지키고있었어도 청은 명 못이겼음.
사실 청나라는 조선의 항복만 받아내고 굳이 그 이상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조선이 임진왜란 때문에 가난해진 상태였거든요. 아직도 피해를 복구 못하고 있고 군사력도 약한 나라라는 걸 확인했으니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겁니다.
인정할것은 인정 해야한다 홍타이지가 능력있는 지도자 였고 외교와 정치를 할 줄 아는 정복자 였다
반면 우물안 개구리에 붕당 지원받아 왕된 인조는 무능하기 그지없는 인물 이었다 나라가 작살나는 꼴을 평생 지켜본 광해는 참담했을 것 이다...
이괄의난을 겪은 인조는 병사 훈련도 못시키게 햇다 함. 트라우마 ㅡ.ㅡ
그리고 이괄의난으로 북방을 지키던 기마병 갈려나가서,
정작 병자호란때 함양 질주하던 여진기마병을 막을수 없엇죠.
덕분에 강화도로 짱박히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남한산성으로...
원댓글 말도 일리는 있죠
아이신줘러 홍타이지, 범인은 아니죠 분명 능력 있는 권력자고
그리고 조선은 이 핑계, 저 핑계만 찾고 아무것도 못하고 삼전도 굴욕을 당한 한심한 나라죠
러시아가 한국을 NATO(No Action Talk Only)아고 질타했다는데 삼치 문약 조선이 딱 그짝이였죠
@@yhansookim7850
그 이괄을 부원수로 제수하고
군대를 양성하나 그 아들내미 역모에 연루 되었다고 금부도사 보낸게
능양군과 그 세력들, 서인인게 사실이라
애시초 병자호란때 마부타이를 필두로 정예라고는 하나 300의 철기군으로
선봉으로 맡겨 싸우게 했다는것 자체가
조선을 아주 물로 보고 있음이고
실제로 허약한게 사실이죠
@@수집쟁이드라하카 서인세력중에 그나마 그래도 외교 군사에 통찰력있던 인물은 없었던가요?
인조 선조 고종 후랴들럼들
하여튼 전주이씨 문제다
홍대선님은 글도 정말 재미있게 쓰는데 말도 재미있게 잘 하는군요. 진짜 부러운 재능이네요
처음부터 조공받는게 목적이었음
전쟁할려면 조선의 조공이 꼭필요했고
그당시 몽골군도 합류했는데
군량이 엄청딸렸고
병력이 필요한게 아니라 식량이 필요했음
그럴려면 우호적 조공국가가 필요했음
명나라와전쟁을 대비를 하기위해서 후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어서 그런듯..
천연두 문제는 결정적일 수 밖에 없는게, 여진족은 이 천연두 문제를 매우 중대하게 다루었고 천연두를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과 천연두 경험이 없는자를 구분해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만약 진중에 천연두가 발생하면 천연두 경험이 없는 왕족이나 고위층은 즉각 진영에서 이탈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원칙을 만들어 이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그리고 홍타이지가 바로 천연두 경험이 없는 부류였습니다. 따라서 원칙대로면 홍타이지는 즉시 조선을 떠나 심양으로 돌아가야 했던거죠. 전쟁은 천연두 경험자들이 남아서 지속해야 했는데, 홍타이지는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직접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어 만주-몽골-조선을 정벌했음을 공표하는 진정한 의미의 황제 등극식을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까지 지속할 작정이였던 전쟁을 서둘러 종결시키고자 했고 그 덕분에 상당히 완화된 항복 조건으로 조선의 항복을 받아낼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예로서, 청나라는 처음 항복 조건으로서 청과 결전을 주장한 척화파 대신들을 모두 청나라에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청과 조선의 관계를 이간질한 죄를 묻겠다는 거였지요. 조선은 절대 안된다며 항복을 거부하자, 청은 '모두'에서 "대표 인사 몇 명"으로 요구조건을 줄였습니다. 그 이하는 절대 안된다는 선을 그어버렸고 조선도 결국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3명의 신료가 척화파를 대표해 청에 넘겨졌는데 그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머리가 있어서 생각을 할수 있다면 절대로 결정적인 이유가 못됨.
천연두는 위험한 질병이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누구나 격는 질병이라 왠만하면 다 천연두라 진단해서 그런거고 , 실제 위험한건 인풀루엔자 .현명한 부모들은 예방에 신경쓰겠지만 무지하고 개폼잡다 자주 걸려 사망까지 가죠. 여진족이 조선보다 청결면에서 떨어졌다고 보면됩니다. 조선이 더 안전하면 안전했지. 여진족보다 조선이 우수하다는 갓을 모를리없죠.
전세가 결정적으로 유리한 청나라가 전부에서 대표 몇명으로 바꿔줬다는건 충격이긴 하네요 ㅋㅋ 설득력있는 주장이세요
상당히 타당한 논리 같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얘기들과는 다르긴 하지만.
많이 배우고 갑니다
구독합니다..세상에 넘 좋은강의예요
여진족이 북방 타 민족 특히 몽골 고원 쪽 민족과 다른 점은 유목과 수렵,채집,농경 그리고 어업까지... 다양한 생활 관습을 가진 민족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뭉치게 하긴 힘들지만 뭉치면 무섭다는 게 그렇게 나온 말인 듯 합니다.
한때 해적질도..
여진족은 우리 한민족과 형제지간에 가까운 사이임
우리 조상이 만주에 살때는 완전한 이웃사촌이었슴
우리가 한반도에 정착하고 중국 문물을 받아서 농경 고대왕국을 만들때
여진은 여전히 수렵과 교환경제임 여진은 스스로 조선과 형제 국가라는 인식이 있음
침공시에 처음부터 조선의 굴복을 원한거지 참살을 원한게 아님
호란 30년 전에 청태조인 누루하치는 임란 때 왜군을 물리치겠다는 제안도 함 조선왕실이 중화사상에 몰입해있어서 단칼에 거절했었지 ///
😮😮d😮😮난 😮😮😅😅😮😅😮😅😅😮😅😅😅😅in 😅😅😮😮😮z😅😮😅😮😮😮@@알루미늄-d6h
정말 말슴도 잘하시고 재미있고 새로운 관점 흥미롭습니다!! 응원할게요!!
그 욕먹는 선조는 도망가서 시간이라도 벌었지...인조는 그것조차 못했어
당시 만주원류고도 그렇고 후금의 역사인식이 조선을 가리켜 우리랑 같은 고려 백성이다.
변발령을 조선인에게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역사서에 보면 변발령 시행하지 않는 일부성의 주민들은 해가 뜰때까지 참수했습니다. 참수한 인원이 백만명을 육박했다고 합니다.
가장큰이유는 당시 청은 조선이 약한 상태로 있어주는걸 선택했습니다.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 100만 넘는 전쟁을 수차례 이긴 혜택을 본거죠.
멸망시키고 그 지역을 직접통치하면 막대한 비용과 부담이 있죠. 민족도 이주시켜야 하고 관리와 군대도 파견해야합니다. 반란에도 대비해야죠. 본국과 멀수록 부담은 더 큽니다. 그러느니 한 번 가서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확인시키고 굴복시킨 다음 추후 호구처럼 이용는게 이득입니다.
제갈공명 남벌처럼
여진족 금나라(청) 정체성이 이야기 들어보니 조선이랑 우리는 예전에 같이 살던 민족이야 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가야계 신라뿌리라는이야기도 있고...그래서 누루하치가 광해가 집권 했을때부터 야우리는 예전에 같이 살던 친척이니....수교 맺고 싸우지 말고 잘지내자 하고 ..계속 서신 보냄....근데 유교에 미친 신하들이 명하고만 지내야한다고 무시함.......그래서 병자호란 일어난거고....그나마 금나라가....봐준거임...
병원에 가봐라
맞아여 누루하치는 신라김씨입니다 경순왕의 후손이죠 그러니 고려조선을 금나라왕실에서는 부모의 나라라고 했죠 고려조선은 금나라와 같은 혈통이니 항복만 받고 정복하지는 않았어요
그대신에 중국의 송나라 명나라를 정복하고 청나라를 세웠지요
그러니 청황실도 김씨입니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침략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정복한거죠
거란 요(침공 후에 오히려 잘 지내자고 땅을 고려에 내줌) , 몽골 원(고려을 부마국으로 대우), 청 모두 고려, 조선에 너그러웠죠(?).
중국 한족과는 다른 동질성을 갖고 있었을 것임.
언어(중국어와 다른 SOV 어순), 직관적으로 봐도 외모의 친밀성이 높죠.
몽골, 만주족은 타 민족과 전쟁시 엄청 무자비했읍니다.(양주 십일기)
@@hiouggdj517 너가 가라~~~~
그놈의 애신각라론ㅋㅋㅋ
정말 재밌다.
당시 조선은 . 자신들에 왕이 맘에 안들면 교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청이 조선을 정복 못한것입니다.. 홍타이지나 누루아치가 .조선 왕으로 왔다가 언제든 반정세력들에게 븥잡혀 끝장 날 수있기 때문에 븍경으로 들어가 안나온 거죠. 간접통치로 만족하며 반면 여진적은 중국 서쪽으로는 적극 진출하죠.
작가님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되어 구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밌게 말씀하셔서 한국인의 탄생도 보고싶긴 한데 전 이북으로만 보거든요 혹시 이북으로 출간 계획은 없으신지 궁금하네요
이북 출간 됩니다~ 이미 배포되었을지도? ㅎㅎ
재밌게 잘 봤습니다. ^^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개념을 도입해서 역사정설과 어긋나는 점도 있겠지만. 역사에 대한 인사이트가 탁월하고 재미있습니다.
싸움도 자주 해본넘이 잘함.
조선은 게다가 무를 천대하고 논어.맹자나 읊어대니 약해질수밖에.
사병을 다 없애서 고려군보다 조선군이 약해졌어요.
아뇨~그때는 임진왜란 끝난지 얼마 안되서 무를 천대하고 그런 상황은 아니었어요~그냥 소국이어서 대국이 되어가는 나라보다 약했던거에요
난 때문에 정예병력들이 다 갈렸는데 논어 맹자 같은 소리나하고 자빠졌네 옛날사람들이 너보다 백배는 현명하고 똑똑하니까 어줍잖게 평가하려 들지말고 입 다물길
조선은 여진족을 상대하는 최북방 군사력과 기병들은 강력했어요 문제는 바로 이거였죠 조선 군사력과 기병들을 모두 최북방에 몰빵 시켰다는거였죠 물론 일본이 100년 전쟁으로 각지방 쇼군들 끼리 싸우느라 고려때 처럼 침공을 오랬동안 받지 않다보니 후방 방어 자체를 안한탓이 컸지요
@@민준-o5i 그럼 결국 소국이라 당한거임? 조선은 주변국가랑 전쟁만 하면 쳐발리던데 걍 약해서 그런거? 체제 유지 된게 신기하네
다 수긍이 갑니다만
건륭황제의 만주원류고 서문과 홍타이지의 서신 내용을 보면
조선에 대한시각이 중원과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진족은 유목민족 아니예요. 얘내들도 말 키우긴 키웠는데 지역이 지역이라 좀 힘들었구요. 거의 다 몽골에서 수입해서 쓰거나 뺏어온 경우입니다.
농업, 어업, 수렵, 유목 등등 손에 잡히는건 다 했어요. 그렇게 해서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을 상업으로 해결했습니다.
물론 이 시기상 소빙기가 찾아온 탓에 농업은 좀 힘들었지만요.
건주여진은 과거로 치면 고구려의 지배계층 생각하시면 되구요. 야인여진은 그 당시 말갈, 거란같은 지배받던 짜바리 계층이라 보시면됩니다.
야인여진 애들은 백정같은 일들 주로 하는 친구들이구요. 얘내가 수렵을 통해 얻은 자원을 건주 세력에게 세금으로 바치거나, 무역을 통해 식량을 얻었구요.
청나라는 고구려의 후손들 (여진족)이 건국했으니 조선과는 형제임. 여진의 실제발음은 주센, 즉 조선과 비슷함
그런거 알면 이딴 유튜브 안찍죠
홍작가님 채널 넘 재밌어요
그런 이우가 있어는지 50살 되서 처음 알았어요.
진짜 ㅈㄴ 재미있었습니다. 진짜 오랜세월 궁금하면서 의문스러웠던 부분인데 시워-----언 하네요.
맞아요. 미국이나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의 늪에서 빠져 허우적 거렸던 것을 보면 청나라가 현명한 거지
반도가 그정도는 아니지.. 고려도 아니고 개같은 조선인데..
쌀과 식량, 금 수탈 금액은 현재가치로 얼마일까? ㅡ 다음 검색
1930년대 까지 미국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우리는 60년간 가짜역사를 배우고 가르치고있다? ㅡ 다음 검색
그냥 청나라와 조선은 같은 형제민족이고
또 중국에 있는 고려유민(가오리빵즈)때문에
분란 만들려고 하지 않았어요.
수십만 먹이고 재우면서 끌고가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한 책략이었네요..
@@vegasaturn4441 수십만 먹이고 끌고 가요?
무슨 꿈을 꾸시나요?
그냥 청나라가 이씨조선같은 계열이고...
또 고려유민(가오리빵즈) 동방의 화약고 만.주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걸 원치 않았어요..
너무 재밌다.....이 역사쌤 엄청 말 잘하시네 와우
청나라(후금)는 신라인 김함보가 세운 금(김)나라의 후예국가입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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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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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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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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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장황하게 긴 글 쓰시느라 고생 꽤나 하셨습니다. 노고를 치하 합니다만, 님이 접한 자료와 그에 따른 님의 생각이 현재 시점으로서 완벽하다 결론으로 주장하시면 안됩니다.
청나라가 우리의 형제국이라 한들 마찬가지로 형제국인 백제, 고구려, 신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전쟁하고 서로 도륙했음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우리 조상이 영향을 미친 분국이었던 일본도 우리 조상국에게 어떻게 했나요?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의견, 다른 시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두두리둠둠 저분이 좋은말로 통하시는분 같습니까?ㅋㅋ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건강 지키세요 ㅎㅎ
와 사람들이 사이비 왜 믿는지 이 사람 보니까 이해되버리네
진짜로 재미있는 역사 채널, 초강추입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knn방송국에 유튜브 담당 피디입니다 섭외관련 이메일 보냈는데 확인부탁드려요^^
유튜브 정말 고맙다
이런지식을 간단히 얻을수 있다니
물론 페이크른 감별할 능력을 키워야하겠지만…
작가님 길~~게 해주세요
모든 영상이 넘 짧아요ㅠ
잡지사 보고 넘어왔습니다
구독❤ 좋아요❤
역사채널 보면서 빵터진건 처음이네요... 자가네들 결론이 자기네들 중화문물을 따라하다가 싸움을 못하게 되었나바요... ㅋㅋㅋㅋㅋ
고려거란전쟁이후.. 우리나라 사신이 송나라 조정에서 관리의 뺨을 때려도 찍소리 못했다고하죠.ㅋㅋ
고려가 제대로 선택한 것입니다.
싸우다가 같이 죽을래? 아니면 대우해줄테니까 알아서 잘해라.. 이 느낌..
그것도 있긴한데 사실 송나라 입장에서도 뭐라 말할 처지가 못되는게 고려가 꽤 오랫동안 거란과 전쟁을 하면서 계속 송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음... 고려사 기록에 보면 사신 꽤 많이 보냈음 우리 피똥싸고있으니까 제발 거란 뒤좀 쳐줘 어쩌고... 근데 송나라가 다 쌩깜.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홀로 감내해야했고 이후 살수에서 크게 이긴거... 정확히 기억안나는데 그 이후 고려가 한 40년간은 송나라에 조공안하고 요나라에 했던걸로 기억남.
@@samc9725 네. 그래도 단순히 도와주지 않았다고 관리 뺨을 때린 것을 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의 실력을 보여줬으니, 송나라는 참은거고 거란도 다시 침략하지 않은거고.
@@samc9725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국토 면적을 보고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합니까? 만약 너희들이 정말 강대하다면, 러시아나 중국처럼 넓은 영토를 가졌을 것이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희들은 아무것도 없고, 유일하게 가진 것은 환상뿐입니다
@@mikegao2394 중국인은 왜 이렇게 공격적이죠? 당신들이 진짜 승리자라면 다른 승리자인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태도를 갖고있겠지요? 당신들이 그런 공격적인 성향은 그런 강대한 힘을 갖고도 패배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근대시대에 한국은 힘이 없어서 패배했지만 중국은 힘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음에도 굴욕적으로 패배했죠? 그런 역사를 가진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그런 일침 가해봤자 전혀 느껴지는게 없는데요? 게다가 가장 최근의 왕조도 만주족 왕조인데 가장 야만족이라 멸시받던 언더독에게 지배당하고도 그런소리를 한다는게 설득력이 없는데요... 한국은 힘이 없었다는 핑계를 할수 있잖아요 근데 니들은???
@@mikegao2394 왜 이렇게 태도가 공격적이죠? 당신들이 진짜 승리자라면 다른 승리자인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태도를 갖고있겠지요? 당신들이 그런 공격적인 성향은 그런 강대한 힘을 갖고도 패배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근대시대에 한국은 힘이 없어서 패배했지만 중국은 힘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음에도 굴욕적으로 패배했죠? 그런 역사를 가진 너희들이 한국인에게 그런 일침 가해봤자 전혀 느껴지는게 없는데요? 게다가 가장 최근의 왕조도 이민족 왕조인데 가장 야만족이라 무시받던 언더독에게 지배 당하고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게 설득력이 없는데요? 한국은 힘이 없었다는 핑계를 할수 있잖아요 근데 니들은??
홍대선님이 혹시 필독님입니까?
초한쟁패 시리즈는 정말 한구절 한구절이 뼈를 때리는게 명작이라 생각합니다
홍대선 작가님이 딴지일보에서 과 를 연재하신 필독님이 맞으십니다~ 다른 영상들 보시면 두 작품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있어요!
명나라 어전회의가 재밌다...왜 고구려의 후예들이 싸움을 저렇게 못할까...명나라 선진문물을 너무 잘 받아들여 명나라 닮아 싸움을 못한다...정답이다.,ㅋㅋ...중국축구를 보면 답 나와있다.
오늘 처음으로 구독하게
됐습니다
그 수많은 역사프로
종교프로의 전문가들도
오늘과 같이 설명하지를
못했었습니다.
설명이 귀에 쏙쏙!!!!!!
그런게 아니고
청나라가 조선을 친것은 당시 단기결전 방식 이어서 장기간 전쟁수행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청나라가 물러갈 상황이었고
명나라가 뒤에 있어서 최대한 빨리ㅜ항복문서받고 빠져야 했음
반역을 막으려 왕자들을 다 끌고 갔지. 그리고, 여자들도 데려가고... 전쟁주장한 신하들도 다 끌고 갔으니, 안심이지.
우리가 졌던 원인 중 하나는 내분이었음. 이괄 잔당들이 귀순해서 1급 기밀자료들을 전부 넘겨주었고 길잡이 역할까지 해줬기에 속수무책으로 진거다. 특히 내전으로 조선 정예군끼리 싸우다 병력 손실이 엄청 났음. 화합의 리더쉽이 중요한데 한국인들은 모아니면 도인 성격이 보임. 일본 역사서 사카모토 료마가 중요인물인 이유가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두 세력을 화해시켜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킴.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김정은이랑 윤석열이랑 화해시킨 셈이지. 한국인들은 사상이 다르면 서로 맞춰갈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함. 화합하고 양보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한다. 그리고 항상 살 길을 터줘야지. 이괄처럼 어차피 죽을거가 아니라 항상 도망칠 기회를 줘야 국내일은 국내서 해결이 됨.
한국인 기질은 그꼴 못봄.
안타깝게도 그게 잘 안됨.. 관용과
자비도 필요한 법인데 현실은 ㅜ
내가이괄이었어도 들어엎었을듯
항상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아첨하는 인간을 좋아하지요, 역사이래 지금도 변하지 않아요. 이를 극복하는 자만이 영웅이지요, 나머지는 피래미들이지요!
지금도 한국 국호가 고려(Korea) 인데 당연한거 아닌가요? ㅋㅋ
대박! 고구려 → 신라 → 고려 → 조선 → 코리아... 한번씩 건너 뛰고 계속 코리아네 ㅋㅋㅋㅋㅋ
대외적으로는 고려의 이름이 커서 코리아지만 한민족에게 있어서는 삼한통합의 의미가 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금도 우리는 고구려, 고려를 계승한다.
오 역사를 참 재미있게 알려주시네요 잘보고 갑니다
중국 중원지도를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큰중원을 놔두고.. 산과 언덕으로 이루어지고 중국입장에서 동쪽끝에 변방을 직접 관리하기도 까다롭기 때문이지요... 큰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습니다. 정벌개념이지요... 굳이 그 먼곳까지.. 우리도 우리가 부강했을때도.. 남방이나 일오랑캐를 정벌 개념으로 전쟁하고 쳐들어갔지.. 직접 지배한 경우가 있나요?
홍타이지가 똑똑했네~
대기근으로 조선전체가 굶어 나 뒹굴고 있을 때 식량지원 해 준 나라도 청나라 임 그것도 상당수는 무상으로...
? 그거 명아님.??
@@시한-0 명나라도 임진왜란 때 식량지원 했지만 을병대기근 때는 청나라도 했음
경신 대기근때 청나라가 식량지원 해줬음. 그런데 당시 조정이었던 서인들이 거부함 그래서 경신대기근때 사람들 엄청나게 죽어 나갔음.
왜놈들에 세뇌된 인간들 보면 당파싸움 비난 하는대 조선 역사 보면 당파 싸움 심할때가 아니라 어느 한 새력이 독재 할때 문제가 컸음..
그거야 청나라는 이미 중국 다 먹었으니 생산량이 만주에 있었을 때랑은 차원이 다르지
@@질문빌런-f5i식량이 남아돌아도 식량지원은 주변국의 약화를 막는 길인데 그냥 도와줬다는 팩트인듯
옛날 기록에 한족 10명이 모여야 고려인 한명을 상대 할 수 있고 고려인 10명이 모여야 여진족 한명을 상대할수 있다는 기록이 있음.. 한족 100명은 모여야 여진족 한명이랑 비벼 볼만 하다는 얘기
푸이황제손녀따님께서 먼저연락한것은 조선은 그렇다치고 일제시대 6.25를거치면서 어려워서 못찾겠지 했지만 살만해진나라가 되었는데 왜? 신라후손인 우리를 찾지 않냐고 직접연락한것이라 분명히 말씀하신걸 시청했습니다
옛 고려가(고구려) 고려로 계승되서, 고려시대가 국호만 바뀐 고구려이고
이성계가 고려의 직책으로 개국했다가 사실상 국호만 바뀐 고려시대였다는 취지의(대외적으로 우리나라를 보는 인식) 논리이고
지금도 정식으로 KOREA(고려) 이니
고구려는 멸망한게 아니라 추모왕때부터 이어진(징검다리는 있었을지언정) 지금도 고구려시대에 살고있다는 논리도 가능하겠군요
당시에 청조 내부에서도 조선에 대한 직접 지배 이야기는 나왔습니다. 저는 청이 조선을 직접지배를 안 한 이유는 다른 것 보다 청 스스로 명을 대신한 중화세계의 계승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나중에 북경 함락 후에는 숭정제의 제사도 지내주었죠. 청의 입정에서는 당연히 명의 가장 중요한 조봉책봉국인 조선을 그대로 조공책봉국으로 두는게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죠.
결국 체면유지국으로서 조선이 필요했던 거죠...오야붕이 되려면 꼬붕이 반드시 필요하니깐...ㅋㅋㅋㅋㅋ
중화세계의 계승자를 자처? 너무 한족위주 세계로 점철되어있습니다. 고려, 요금원송 시절 한족국가는 송나라 하나입니다. 송은 아주 작은 변방국가였는데 오늘날 이를 전부 중국이라고 부르는 누를 범하고 있죠. 중화세계 자처라는 말에서 이런 누를 범하고 있는듯합니다.
청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었는데 이를 인구 90프로 영토 30프로 한족이 어부지리한거죠. 한족은 역사의 반이상을 피지배민족으로 살아요. 대륙통일은 거의 북방민족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문화혁명과 분서갱유는 대륙에 널리 퍼져있는 소수민족의 자취를 지우기 위해 이루어졌어요. 한족위주 사관인 사마천의 를 위주로 청황제 역사서 는 언급도 안하는 데서 알 수 있죠. 만주원류고 첫장에 자신들의 원류로
삼한 백제 신라 발해를 기록해요. 1970년대까지 북한과 역사연구를 같이 하던 중국공산당이 정책을 바꿔 모두 자신의 역사라고 왜곡하는건 대륙 곳곳에 자신들의 역사는 일천하고 모두 타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인데요. 한자를 변경해 오늘날 세대는 역사서를 읽지 못하죠. 역사왜곡, 동북공정을 쉽게 하기 위한 초석이었죠.
@@aprillaurel7956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국토 면적을 보고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합니까? 만약 너희들이 정말 강대하다면, 러시아나 중국처럼 넓은 영토를 가졌을 것이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희들은 아무것도 없고, 유일하게 가진 것은 환상뿐입니다
생각보다 비옥하지만 땅이 작았던 거겠죠. 호란 당시에는 점령보다도 약탈이 우선이었죠. 말이 잘통하는 것도 아니고 육로로 오고가는게 편한 것도 아니구요.
청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고구려 여진족으로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니네는 신라 자꾸 북방에 억지로 끼지말라
북경이 고려였다능
사실 조선이 중국에 문화적 속국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식이면 유럽도 그리스에 문화적 속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조선이 유럽에 위치했으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그리스 문명을 적극 받아들였을 듯.
그런데.. 또 청나라는 애초에 중국이 아닙니다. 동이족이고 여진족이 신라계열임 중국애들 다 중국이래요 ㅋㅋㅋ
청.명 속국이 맞음
있는 그대로 보는게 중요함
나머진 소설이지 역사가 아님
흠정 만주원류고 를 봐라.
건륭제가 삼천명의 학자들을 모아서 쓴 만주족의 원류를.
신라의 김씨 후손으로 나와 있음. 이 책을 발간한 이유는 청의 노예로 사는 한족을 차별 하기 위함. 그래서 청국노 란 말이 나왔음.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시 청나라의 왕이 사용한 말이 만주어.
@@가까운지옥중국-u3y청나라의 지배계급과 사용 언어는 만주족.만주어 임. 즉. 어순이 한국어와 같은 sov. 중국어는 svo. 명나라의 시조 주원장은 고려인 출신. 거렁벵이.탁발승.홍건적 가담 하다가 명나라를 세움.그래서 명나라의 왕실에선 궁녀들을 고려 여인들로 채웠음.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 가입목적을 고려독립이라고 기재? ㅡ 다음 검색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는 음, 뭐랄까...
고작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뺏을 수밖에 없는 전쟁을 한다는게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 되서 짜게 식은 눈으로 봤습나다만 오늘도 설명 감사합니다
이성계 위화도 회군이 한국역사상 최고의 비극이라고 본다
아니러니하게도 그 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문자를 만들죠
한국이 기분나쁘다고 중국과 전쟁하면 이길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위화도 회군은 현명한 실용적 선택이라 봅니다. 생존이 기본 입니다.
최영이 어거지로 요동정벌 명령만 안내렸어도 이성계는 반역까진 안갔겠지. 왜 계란으로 바위치기 전쟁을 밀어 부치는가? 회군만 안했어도 한반도 최고의 명장으로 남았을 텐데. 이성계도 피해자다.
너무너무 재밌는데 한문장 끝날때 하신 말을 다음말 시작에 또 반복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오류난줄 알았네요
진짜 유익한 내용입니다. 단순 국뽕사관으로 보면 청나라가 근본이 신라에 있기에 그래도 부모의 나라라서 그정도로만 하고 끝냈다 이딴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보의 출처만 좀더 밝히면 아주 좋은 내용이 될것 같소이다!
쉽게 생각해서 토탈워 해보면 섬멸시키거나 정복하거나 약탈만 할 수 있는데 약탈만 하는게 가장 단기적 이익을 취하기 쉬움.
고려거란전쟁 후 송나라가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고려에 사신을 파견했을 때, 강감찬장군은 건장하고 잘생긴 부하를 전면에 세우고 자신은 그 뒤에 시중들듯 서있었는데, 중국사신이 앞사람은 거들더도 안보고 자신에게 와서 머리숙여 절하는 것을 보고 강감찬장군이 사신을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야사에 전한다!
설명은 충분히 개연성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보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1차 사료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차 사료 근거를 제시해주시겠습니까?
1. 당시 후금이 국가 부도 상태였다는 기록?
2. 포로 송환 대가에 대한 기록?
3. 끌려간 사람 대비 송환자 수?
등.
조선포로가 수십만이라는 것도 근거가 희박......청나라 측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인포로수가 몇만단위임을 유추할수 있는 구절이 지속적으로 등잘
절충안으로 십몇만
포로들이 끌려가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 후기록자가 자기가 본 모습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실제보다 과장하여 기록했을 것으로 강력히 추정됨.
포로 숫자 60만은 최명길이 명나라에 보낸 외교 문서에 나온 기록이기에 근거는 자체는 상당히 명확함.
단지 학계에서 그 60만이란 숫자가 정확한 통계는 아닐 것으로 보는 것일 뿐임.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ㅡ 다음 검색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 가입목적을 고려독립이라고 기재? ㅡ 다음 검색
댓글중에 청이 조선에 관대했던건 뜯을게 없기때문이라.... 참 ....
돈을 무한정으로 찍어내며 은행에 빛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널리고 널려 물건과 재화가 담보라는 가치아래에 어마어마하게 유통되는 지금 자본주의시대에 사는 우리기준에서야 조선이 가난한 나라이지,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때 다른나라들에 비했을때 조선이 마냥 못사는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못먹는다고 난리치던 구한말에 밥상사진보세요 쌀 그렇게 없다고 민란일어나고 반란일어났는데 쌀밥을 한바가지를 먹고있죠. 구한말에도 그랬을진데 조선대에 소 도축된 숫자나 여러 농업관련 수치들만봐도 조선이 무역이 전무한 농경국가치고는 그래도 부유한편에 속했다고 볼수있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더욱 더 사람이 제일 비싸고 재산인데, 이 작은땅에서 인구가 당시 천만가까이 됬다는것만봐도 조선이 마냥작고 가벼이할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역병돌고 굶어죽고 기근나고 재해나서 사람들 죽어나는건 조선만 그랬던게 절대아닙니다.
조선반도는 옛날부터 인구도 적지않았고 무역을 했던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나 지금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항상 세계탑 10위권에는 항상 들었던 가능성을 가진땅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시하는 조선조차도 그당시 세계랭킹에서 10위안에 인구,군사력,경제규모가 꽤 오랫동안 속해있던 나랍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마찬가지고요 역시 그 혜택은 중국옆에있었기때문에, 미국과 교류하였기때문이고 이런건 지정학적위치가 큰 영향을주지요.
조선의 국력,,, 뭐 없는말은 아니지,,, 다만 그시절 일본이 압도적이었을뿐,,, 이순신장군에 안쳐발리고 조선먹고 전략만 잘짰으면 중국까지 충분히 밀수있던 전력,,,
그래서 고려때 원나라에 100년 지배기, 일제 36년, 그것도 강제 해방 당하셨니? 청나라 전성기때 조선은 대기근이었다, 청나라는 지금의 중국 땅 이상으로 확장했는데 조선을 안먹은건 얘네는 군신관계임을 아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티벳,신장은 유라시아로 가는 길목이지만, 조선은 반도 끝자락에 산악투성이, 그리고 임진왜란때 일본의 강대함을 다 관찰한 청나라 입장선 조선을 굳이 소화시킬 이유가 없었던 배경임. 18세기 청나라 전성기때 조선은 이러한 이유로 안 먹힌것뿐임
조상이 같으니 봐준거다. 금나라가 건국후 송나라와 사생결단하면서도 고려엔 화살하나 안 날린것처럼
형제지간에도 원수지고 싸우는게 허다한데 조상이 같다고 봐준답니까ㅋㅋ
조선은 참 한심해 듣다보면
성리학타령이나 하고
농경민은 원래 전염병균을 많이 보유하고 내성을 갖고있답니다 전염병은 대개 그들이 키운 수많은 가축에서 유래하기 때문이죠 유럽이 신대륙을 침략했을때 원주민의 90% 이상이 침략자들이 갖고들어온 전염병 때문에 죽었다고 하니 유목민인 청나라인들이 전염병에 취약했던건 당연한듯요
나는 관대하다.
그러나 그가 다스리던 중국의 한족들에게는 전혀 관대하지 않았던 황제.
명나라를 견제하려면 청나라 군사력 100을 다 투입해도 힘이 모자라는데 20을 조선에 주둔한다? 조선 점령은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던 것임
만주족청나라는 원래 함께 대륙을 정복하자고 조선에 제의했습니다.
동족의식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제의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오랑캐야 꺼져!!"
조선은 가만히만 있어도 본전은 하는 상황인데 그 놈의 입이 방정이라,망했죠.
그래서 조선과 함께하려고 맘먹었다가 거꾸로 조선에 쳐들어와 아작낸 것.
청나라는 고구려의 후예입니다. 병자난은 내전이란 사관을 심어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겁니다.
내전의 결과가 군신관계를 맺냐? 무슨 같은 후예에서 여자들을 다 끌고가 화냥년을 만드냐? 그런식으로 따지면 모든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후예고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JML-el2yf 그래서 통일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그런짓 안했쥬? 그런 쩨쩨한 감정이 만주를 상실한거다. 징기스칸이 어떤 인간이냐? 중국에서 백만 단위 학살을 햇다. 청나라? 한족들 머리 죄다 오랑캐 변발시킨거 보면 모르냐? 중국에선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데 근데 청나라 원나라 징기스칸까지 다 지꺼라고 우긴다. 그게 무슨 의민지 어짜피 못알아 듯겠지만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 당신들은 국토 면적을 봐도 현실을 잘 모르십니까? 한국이 정말 강대하다면 러시아·중국 같은 거대한 영토를 갖게 될 것이고,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킬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가진 게 없고 가진 게 환상뿐이다. 역사책은 중국어로 쓰여 있다. 너희들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한국사는 환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청나라는 몽골이세웠고 한족은 노예임. 그러므로 중국에 무릎끌은게 아니제
신선한 관점
재미있네요... 새로 알게되는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천연두 때문입니다. 청나라 만주족이 천연두에 특히 취약해 빨리 종전하고 철수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물건이나 사람을 노략질 하고 속환비를 받고 속환한 것도 천연두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누가 천연두에 걸렸는지 알수 없고 재수없게 천연두가 만주에 돌면 청나라도 좋을게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많이 청나라 사람이 죽었어요... 그래서 조선사람들을 잘 안건들고 따로 구분한게 더 컸음 그리고 청나라 입장에서 도박한거라서 운이 좋은거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에 비해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은 별로 없는 거 같음 그냥 국제정세에 무지하고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깝치다 매를 번 역사정도로 인식 함
확실히 신기는 해요
삼치 문약 조선을 배울때 지판구에게 대한 임진왜란에 대한 적개심은 강한데
이상하게 정묘, 병자호란에선 조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후금/청나라를 그닥 절대적으로 보지 않는단 말이죠
뭐, 완전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임진왜란때 만행을 생각하면 후금은 양반이죠
적개심을 품으려고 해도 품을 나라가 없는 애들이라ㅋㅋ
😊😊
최신순 내글 참조
우리도 대마도주 항복만 받고 빠르게 철수하는것과 마찬가지 아닐지.
아씨 왜케 재밌어? 역사왜곡 미친시대에..꿀잼..
화냥녀의 어원이 당나라 시기의 화낭과 관련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환향녀가 아니라
고려 고구려 왕조가 다른 같은 나라 동의 합니다
말 잘하네👌
청나라는 어차피 조선을 계속 지배는 불가능했음. 우선 압록강과 한강이 녹으면 퇴로가 끊기게 되고 아무리 명나라가 힘이 없다고 해도 퇴로가 없는 청 나라를 공격해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음. 적당히 timing 을 잘 잡아서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청에게 유리했음. 만약 인조가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강이 얼기 전에 강화도로 이전했다면 충분히 바다를 통해서 군인과 군량미를 조달이 가능했고 유사시에는 바다를 통해서 제주로 전주로 이전할 수 있어서 청나라와 계속 전쟁할 수 있었음
?지배는 못해도 맘만먹으면 학살후 약탈은 쉽게 가능하지않음?
남한산성에서도 버틸수 있었음. 사실 남한산성에 조선 최정예 조총병 애기쌀병등 1만명 넘는 병력 있었음. 그런데 식량이 2달분밖에 없어서 항복한것임. 그런데 인조가 등신인게 방어하기 힘든 서울을 지키기위한 전초기지로 남한산성에 최정예병과 무기 비축하면서 왜 식량은 1년치 준비해두지 못한것인지 의문임. 행정의 문제 든가 아님 부패든가 먼 문제가 있은거지. ㅎ 식량은 돈이 되니깐
후금이 그 전략을 아니깐 말들에게 엄청난 채찍질을 가해서 남한산성까지 초스피드로 내려온거임..중간에 있는 산성들 공격하고 어쩌고 하면 시간이 너무 소요되고 군인들도 많이 잃을 게 뻔하니...그냥 본진에 폭탄드랍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고, 그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였지....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간게 아니라 더 밑으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강화도로 도망갔으면 병자호란은 상당한 장기전으로 흘러갔을 것...
@@햄야채새우 그게 후금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
강화도로가자봐 어차피 깹이 안돼요 여진얘들이 몽고와달리 생각보다 바다에 능통해서 조선이강화도가봤자 3개월만에 털려요 홍이포도 있고요
한국이 살아남은 한가지...
먹을게 없었다..
😊
조선여자😅
그게 아니라고 영상에서 주구장창 얘기하는데 대가리가 나쁜 건가, 유전자가 썩은 건가.
@@dr.k6544조선족 분들이랑 싸우지 마세요^^
@@dr.k6544그게 아니지 ㅋㅋ 중원이라는 큰 떡을 앞에 뇌두고 잔챙이에 힘쓸 신경이 없는거지 ㅋㅋ 영토가 비옥한것도 아니고 산지가 많아서 점령하기도 드럽게 어려운데 여길 왜 먹음 ㅋㅋㅋ
먹어도 먹은 거 같지도 않고 관리하기로 열라 힘들고.
고대사를 한반도에 국한된 역사로 논하면 설명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애초에 한반도를 침공하는 것 자체가 경제 사회적으로 설명이 안됩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지형 지물 별자리등도 한반도로 놓고 보면 설명이 안됩니다.
지금도 북경등 중국에 남아 있는 고려와 관련된 지역명칭 등은 왜 인지도 설명이 안됩니다.
반도 사관의 허점은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설명 할 수 없는데 있습니다.
조선과 청의 관계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는 아님..
구한말 서양외교관들이 청나라에게 조선에 대해 내정간섭 압력을 행사하라고 종용했을때 청나라에서 한 답변은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과 외교는 간섭하지않는다는 것이었음..
그에 따라 서양에서 본 청과 조선의 관계는 로마교황과 유럽국가들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지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는 아니라고 판단했음
동족이라고 봐준거지. 인정에 이끌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관계와 비슷하다 해야하나?
고구려가 버티고 있었으면 만주족들이 중국을 통일는 일도 없었을텐데 그러면 지금의 거대한 중국영토도 없게 되는건가 고구려멸망은 너무 아깝다
니네 신라가 망하게 햇잖아 당이랑 손잡고
이세민이 고구려가 900년이 되면 늙은 장수에게 멸망한다는 예언에 쳐들어옴 망할 때 됐었나봄
경상도 사투리로 제사 지내는 일본 기미가요는 ㅡ 다음 검색
미국에 있던 평양, 청고려,대조선? ㅡ 다음 검색
북침으로 남침 유도한것은 이승만과 미국이다 ㅡ 다음 검색
국민이 갈라져 80년간 싸우는 원인은 첫 단추를 잘못끼운 왜놈 이승만 때문?
이승만부터 윤까지 전부 미국이 임명.
87년 대통령 선거 부정선거 백서 ㅡ 다음 검색
윤석열 문재인의 정말 충신 증언 ㅡ 다음 검색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어느 기자가 타이슨에게 만약 당신이 이소룡과 싸우면 누가 이길거냐고 물었더니 타이슨이 껄껄 웃으면서 이소룡은 내 상대가 못 된다고 했답니다. 타이슨은 이소룡은 아주 훌륭한 무술인이나 체급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어느 수준 이상의 훈련을 받은 프로들 사이에선 체급의 차이는 결정적이라고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독소전이나 중일전쟁을 보면 미들급의 국가가 일시적으론 헤비급에게 펀치를 날릴 수는 있지만 결국 체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 했습니다.
독일이 소련에 밀리진 않음. 1대1 맞다이햇다면...
이중전선, 서부에서도 싸우고 동부에서도 싸우고.
미국지원, 비행기 포탄 각종 군수품 등 지원.
그리고 좀 멀어서(기차 궤도도 다름, 철도수송 불가)
병력 및 군수품(방한복 등) 보급이 힘들엇슴.
갠적인 추측으로 맞다이깟으면 독일 윈임.
@@yhansookim7850 독일은 같은 체급의 프랑스는 전략을 잘 세우고 프랑스가 멘붕에 빠지는 바람에 쉽게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달랐지요. 미국의 지원은 부차적인 거고 영토가 너무 넓어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보급선은 한없이 늘어지고 소련군을 아무리 죽이고 없애도 소련군 수십개 사단이 하룻밤만에 바로바로 만들어져서 전선에 투입되고... 결국 체급 차이입니다. 영국이 아편전쟁 이후 중국 정복을 포기한 건 중국의 영토와 인구를 체험한 후 중국이 아무리 병들어도 체급이 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일전쟁때 일본은 겁대가리 없이 헤비급에게 달려든 거고... 더 골때리는 건 중국을 어떻게 못 하니까 중국보다 더 울트라 헤비급인 미국을 공격한 것이니 당시 일본은 집단으로 정신 나간 것입니다.
@@parmenideskim9739 땅덩이 크다고 다가 아니죠.
님이 말한대로 프랑스가 독일에 준하는 국가지만 마지노선 하나믿고 잇다가
된통 당한거니까요.
독일이 유럽과 싸우지않고 미국지원없는 소련과 싸웟다면 충분히 이길만햇습니다.
서유럽도 모자라 x맨짓하는 무솔리니때문에 아프리카 북부나 그리스 지역까지
전선이 확대됏으니까요.
전선이 확대되면 보급 병력배치 등 분산될수밖에 없고요.
@@yhansookim7850 여기서 "이긴다"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도 당연히 제한된 전투에선 소련한테 이길 수 있지만 독소전쟁에서 독일은 단순히 전투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소련이란 국가 자체를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경우 바로 국가의 체급이 중요해집니다. 독소전쟁때 독일은 북아프리카 전선이나 미국의 소련지원 이런게 없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중국과 전쟁을 벌이면 방어는 충분히 할 수 있으나 중국 내부로 진격해 중국을 멸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서 중국 전체를 식민지화하는 논의를 시작했다가 포기한 것도 매우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일본도 전부 바보들만 있는 건 아니고 극소수 현실적인 판단을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본의 트레이트 마크인 꼴통 파벌주의에 묻혔습니다.
체급론 이야기인데
간단한 예시를 들면
체급자체가 틀린 초기의 몽골이 당시 금나라나 서하를 멸망시킨 예가 있고
당시 독일제국은 안밖으로 정리가 안되는걸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나타나며
덴마크에서 자신 보다 큰 오스트리아, 프랑스까지 적은 양반들인데
그외에도 무수한 예시가 있죠
전쟁은 숫자만으로, 체급만으로, 무기만으로 하는게 아니죠
실제로 베트남이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명,청 모두 조선만 특별 우대를 해주는데 왜 우리한테는 그렇게 안 해주냐고....
맞는말이네 우리나라가 조공하는 나라가 세계를.... 우리가 지금 미국에.... ....
지금의 북경이 고려의 서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고려역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가 많습니다.
이성계 집권 후 수많은 고서들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조선판 분서갱유
너무 아쉽습니다. 남북 통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청나라는 신라.고구려의 후예들이지...
신라는 빼라 어디 남쪽에 산골짜기가
계속 반복되는.
이성계가 여진족출신이니
여진족끼리 정벌하던 대로 했을뿐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천연두가 창궐하지 않았으면 충분히 멸망시키고도 남았을겁니다. 어찌되었건 산해관은 못 넘었던 시절이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병자호란때 청시절 정도의 막강한 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어쩔수없이 졌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조선을 치는것조차 모험이었을정도로 여유가 없던 여진족들이 속전속결로 왕잡고 항복만 받고 돌아간 전쟁임.
왜란때처럼 전쟁이 장기화되서 전국에서 의병일어나고했으면 결국 청도 없었을듯...
홍타이지가 능력도 있었지만 청건국사를 보면 진짜 천명을 받은것처럼 하늘이 '너네가 중국먹어라'하고 도와주듯 운이 엄청 좋았음.
막말로 산해관만 지키고있었어도 청은 명 못이겼음.
아 그럼 우리나라 정벌은 제국전직 퀘스트였구나
홍대선 선생의 견해가 아주 탁월합니다.
我完全对洪老师的意见同意了。
조선(고려)의 사대를 받는 나라가 帝国의 조건이고, 우리는 百王之王의 王国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