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성 사진가 portfolio: www.jooyongseong.com instagram: jooyongseong 언급된 사진가 Henri Cartier Bresson Jim Goldberg Alessandra Sanguinetti Jonas Bendiksen James Nachtwey Martin Parr Philip Jones Griffiths Alec Soth Gary Knight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였네요, 제 짧은 식견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의 다큐멘터리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사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는 단 한 작품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있는 그대로 개입하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촬영 하려면 예를 들어 어떠한 원주민을 촬영한다고 가정했을 때에 그 사진가가 섬에 있다는 것 자체를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로 이를테면, 반경 500m 바깥에서 온전히 개입하지도 않아야 하고 어째저째 촬영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찍힌 피사체들이 사는 동안 그 촬영한 결과물을 영원히 접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또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요즘과 같은 초상권 시대에 가능할 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예전에야 가능했겠지만, 예전에는 또 기술력이 못 받쳐주었었죠.) 가령... 기술력이 무척이나 발달해서 고양이의 목에 카메라를 달거나 북극의 펭귄 등에 위치 주적기를 다는 것처럼, 한 원주민의 아이에게 촬영 장비를 설치(자각 못하게)해서 그 아이가 보고 듣는 것 자체가 다큐멘터리일 수는 있겠으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자연이나 동물 등과 같이 인간들이 오만하게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전지전능한 시점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는 어떠한 방식으로 촬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원주민을 촬영해야지!' 라는 *주관적 개입이 들어가는 순간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와있는 수십 만, 수백 만 휴먼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냐? 라고 한다면, 저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고 굳~ 이 명칭을 새로 붙이자면 그 또한 없는 사실이 아닌 90% 이상에 가까운 현실적인 모습이기에 다큐멘터리 팩션이라고 언급해야 맞지 않나 싶어요. 매그넘 그룹에서 다큐멘터리의 완벽한 정의를 내린 작가가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사진가가 전쟁에서 총 맞고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총알 1발이 사진가에게 날아가 발사된(적용된) 것이기에 0.001%의 연출적 요소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가가 없었다면 그 총알 1발은 온전히 전쟁에 활용 되었겠죠 그게 진짜 리얼이죠.) *만약 80억 인구 중에서 랜덤 돌리기를 해서 지정된 사람을 찍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넌센스 적인 발상이겠죠~ ㅎㅎ;; 또한 인권과 초상권이 없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동물 취급하듯이 막 찍으면 되니깐요. 아! 그리고 추가로 만약 그 전쟁의 모습을 인공위성으로 관측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그 사람이 그냥 전쟁의 모습을 찍는 도중 군종 사진작가가 죽는다면 그 또한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연출을 위해 죽는 모습이 또 누군가의 3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 동료가(걱정되기도 하고) 사진을 잘 찍고 있는가?의 시점으로 바뀌게 되면 그 또한 2차적인 추가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사진기를 들었을 때 피사체가 순간 움찔 하는 것 또한 '의도치 않은' 연출이라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숨 쉬고 할 것 했었겠죠. 느닷없이 움찔 하진 않았겠죠. 이 의견은 그냥 재미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정말로 완벽의 그 끝의 그 끝의 그 끝에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나눈다면 그 경계는 과연 어디로 정해야 할까? 사진의 회화성과 기술성의 그 끝의 그 끝의 그 끝의 그 끝의 경계를 굳이 나눈다면 과연 그 지점은 어디일까?에 관해 여러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는 녀석입니다. 아~ 그런 녀석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구나 정도로 보아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ㅎㅎ... 그리고 추가로 제가 생각한 것들 중에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꼭 답해주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이런 영상을 보며 제가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셔서 저도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간단한 가십거리 주제의 요소를 던져드려 보고 싶었습니다. 명절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촬영될 것이라고 여기는 연예인들의 경우 최소한 정해진 스케쥴의 일정대로라면 의도적인 이미지와 모습 등으로 항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연예인 본연의 모습으로써의 자연스러운 네츄럴한 모습일까? 아니면 동일하게 직업의 특성상 매우 부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일까?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을 울릴 수 있는 사진이 다큐 사진이죠..ㅎ
라디오처럼 너무 잘 듣고있어요
사진이 나오는 부분엔 셔터음 넣어주셔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백그라운드에서 듣고있다가 사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좋아요 ㅎㅎ
주용성 사진가
portfolio: www.jooyongseong.com
instagram: jooyongseong
언급된 사진가
Henri Cartier Bresson
Jim Goldberg
Alessandra Sanguinetti
Jonas Bendiksen
James Nachtwey
Martin Parr
Philip Jones Griffiths
Alec Soth
Gary Knight
좋은 인터뷰 너무 잘 들었습니다 :)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였네요, 제 짧은 식견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의 다큐멘터리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사람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는 단 한 작품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있는 그대로 개입하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촬영 하려면 예를 들어 어떠한 원주민을 촬영한다고 가정했을 때에 그 사진가가 섬에 있다는 것 자체를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로 이를테면, 반경 500m 바깥에서 온전히 개입하지도 않아야 하고 어째저째 촬영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찍힌 피사체들이 사는 동안 그 촬영한 결과물을 영원히 접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또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요즘과 같은 초상권 시대에 가능할 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예전에야 가능했겠지만, 예전에는 또 기술력이 못 받쳐주었었죠.)
가령... 기술력이 무척이나 발달해서 고양이의 목에 카메라를 달거나 북극의 펭귄 등에 위치 주적기를 다는 것처럼, 한 원주민의 아이에게 촬영 장비를 설치(자각 못하게)해서 그 아이가 보고 듣는 것 자체가 다큐멘터리일 수는 있겠으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자연이나 동물 등과 같이 인간들이 오만하게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전지전능한 시점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는 어떠한 방식으로 촬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원주민을 촬영해야지!' 라는 *주관적 개입이 들어가는 순간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와있는 수십 만, 수백 만 휴먼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냐? 라고 한다면, 저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고 굳~ 이 명칭을 새로 붙이자면 그 또한 없는 사실이 아닌 90% 이상에 가까운 현실적인 모습이기에 다큐멘터리 팩션이라고 언급해야 맞지 않나 싶어요. 매그넘 그룹에서 다큐멘터리의 완벽한 정의를 내린 작가가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사진가가 전쟁에서 총 맞고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총알 1발이 사진가에게 날아가 발사된(적용된) 것이기에 0.001%의 연출적 요소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가가 없었다면 그 총알 1발은 온전히 전쟁에 활용 되었겠죠 그게 진짜 리얼이죠.)
*만약 80억 인구 중에서 랜덤 돌리기를 해서 지정된 사람을 찍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넌센스 적인 발상이겠죠~ ㅎㅎ;;
또한 인권과 초상권이 없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동물 취급하듯이 막 찍으면 되니깐요.
아! 그리고 추가로 만약 그 전쟁의 모습을 인공위성으로 관측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그 사람이 그냥 전쟁의 모습을 찍는 도중 군종 사진작가가 죽는다면 그 또한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연출을 위해 죽는 모습이 또 누군가의 3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 동료가(걱정되기도 하고) 사진을 잘 찍고 있는가?의 시점으로 바뀌게 되면 그 또한 2차적인 추가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사진기를 들었을 때 피사체가 순간 움찔 하는 것 또한 '의도치 않은' 연출이라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숨 쉬고 할 것 했었겠죠. 느닷없이 움찔 하진 않았겠죠.
이 의견은 그냥 재미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정말로 완벽의 그 끝의 그 끝의 그 끝에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나눈다면 그 경계는 과연 어디로 정해야 할까? 사진의 회화성과 기술성의 그 끝의 그 끝의 그 끝의 그 끝의 경계를 굳이 나눈다면 과연 그 지점은 어디일까?에 관해 여러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는 녀석입니다. 아~ 그런 녀석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구나 정도로 보아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ㅎㅎ... 그리고 추가로 제가 생각한 것들 중에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꼭 답해주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이런 영상을 보며 제가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셔서 저도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간단한 가십거리 주제의 요소를 던져드려 보고 싶었습니다. 명절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촬영될 것이라고 여기는 연예인들의 경우 최소한 정해진 스케쥴의 일정대로라면 의도적인 이미지와 모습 등으로 항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연예인 본연의 모습으로써의 자연스러운 네츄럴한 모습일까? 아니면 동일하게 직업의 특성상 매우 부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일까?